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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강론

 

저자 지영근 목사



목 차

 

제1과 아가서 1장 강론 4 바로가기

제2과 아가서 2장 강론 8 바로가기

제3과 아가서 3장 강론 11 바로가기

제4과 아가서 4장 강론 14 바로가기

제5과 아가서 5장 강론 17 바로가기

제6과 아가서 6장 강론 20 바로가기

제7과 아가서 7장 강론 23 바로가기

제8과 아가서 8장 강론 25 바로가기

 

 

제 1 과 아가서 1장 강론 목록으로


제 목 : 연인간의 대화


아가서를 살피는 성도님이 계시면 우선 필자가 기록한 기독교 신앙백과의 564P 아가서 개론을 읽어 주십시오. 한문자로 아(雅) 자는 맑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맑고 고상한 노래”라는 뜻인데 이 가사를 “솔로몬왕이 지었다”고 하였습니다(1절). 솔로몬왕은 3000 잠언과 1005개의 신앙적 시를 지은 만큼 그 중에 한 부분이라고 예측됩니다.

① 내용을 읽어 보시면 “연인간의 대화”가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내용이 왜 신앙의 시로서 성경이 되었는가?하는 점입니다. 이것은 개론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연인간의 사랑의 관계를 성도의 주님께 대한 신앙과 사랑의 관계로 이끌어가야 할 것을 교훈하시기 위함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신랑으로, 교회와 성도를 신부로 비유한 말씀이 여러 곳에 있으므로(고후 11:2, 마 25:1~13, 엡 5:22~33) 성도들은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시면서 자신과 예수님과의 관계가 마치 연인들과의 관계처럼 서로 사모하고 영적 기쁨을 느끼는지에 대하여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곧 성도의 신랑이십니다(마 25:1).

② 여기의 대화의 두 당사자는 신랑과 신부의 입장에 있는 두 대상입니다. 이 대상 중의 신랑편은 솔로몬 또는 예수님 또는 한 목자를 연상케 하고, 신부의 입장은 교회와 성도를 비유합니다. 여기에서 좀 더 축소한다면 예수님을 비유하는 신랑과 교회의 요소가 되는 신부 즉 성도 개인과의 관계로 축소할 수 있습니다. 또 신랑은 예수님을 비유하므로 완전한 절대자이고, 신부는 신랑이 좋아할 만한 믿음의 조건을 갖춘 성도라야 하는 것입니다. 또 “처녀들”(3절) 또는 “예루살렘의 여자들”(5절)은 신부 되기를 원하지만 수련 과정에 있는 자들이고, “여인 중의 어여쁜 자”(8절) 또는 “내 사랑아”(9절)한 대상은 신랑이 선택하여 좋아하는 믿음의 성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③ 그리고 1장의 내용은 두 당사자간의 “애정적 대화를 묘사”하므로 예수님과 성도와의 뜨거운 관계를 시도해 보려고 이 시를 기록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자칫하면 신랑의 말과 신부의 말을 바꾸어 살필 위험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현령 비현령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교리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 만큼 대명사의 압장을 바꾸어 교훈을 받았다 하더라도 크게 문제된다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4, 12절에는 신랑이 왕으로 묘사되는데 7~8절에서는 목동(목자)으로 묘사되고, 신부는 포도원지기(6절)로 묘사됩니다. 그렇다면 포도원지기 처녀와 왕과는 거리가 멀고(처녀의 소문이 왕궁에까지 들어간다면 왕의 후궁으로 불려 갈 수 있음), 목동과의 관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순수한 남녀의 사랑이 싹트고 전개되는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④ 어떤 해석을 보면 솔로몬왕이 왕의 입장으로 신랑이 되기도 하고(예수님이 선한 목자이신즉), 목자의 입장으로도 묘사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 해석을 긍정합니다. 그러나 조금 달리 생각한다면 자격있는 신부가 목동 신랑(예수님 비유)을 연모하고 목동도 그 신부를 좋아하는데 서로 쉽게 접근되지 않고 또 만나기도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적극성을 띠어야 할 입장입니다. 만일 이 애정 관계가 속히 성사되지 않는 사이에 신부의 소문이 왕궁에 들어가면 왕이 신부를 후궁으로 끌어갈 것이므로 신부와 목동과의 관계는 허사가 될 것입니다. 신부의 사랑은 목동에 있기 때문에 더 안타까운 것입니다. 여기에서 왕궁은 세상 권세와 세속을 비유할 수 있고, 신부는 세속적 특권과 영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목동과의 순수한 사랑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주님과 성도와의 사랑을 묘사한 것인데 여기에 왕이 개입하는 것은 세속적 유혹을 묘사하여 교훈을 주시는 바가 없지 않다고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속히 또 깊이 맺지 않으면 세상 권세와 세속에 휩쓸려 갈 위험이 있은즉 신속히 경성하여야 할 것입니다. 1장의 본문은 4 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7절과 12~14절은 신부(성도)편에서 하는 말이고, 8~11절과 15~17절은 신랑(목동으로 묘사된 그리스도)의 말입니다(1절의 “솔로몬의 아가”란 서론임).

1. 신부가 신랑에게 하는 말.(1~3절)

1) 2절에서 “내게 입 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 보다 나음이로구나” 신부가 신랑을 사모하면서 신랑이 나에게 다가와 입 맞춰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연인으로서 당연한 말이요, 본능적 표현입니다. 성도가 주님을 그렇게 사모하여야 합니다(시 4:7, 16:2, 42:1, 73:25, 빌 3:7~9). 신부는 포도원지기이므로 포도주를 먹고 즐길 수 있지만 신랑과의 교제가 더 좋기 때문에 포도주로 인한 연락에 비교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 3절에서는 “네 기름이 향기로와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 한다” 하였으니 이 뜻은 신랑의 가치와 품위를 높인 말로서 많은 처녀들이 그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의 향기를 성령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성도의 세계에서는 믿음 있고, 성령 충만한 신랑이면 제일 좋을 것입니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다”함은 신부가 신랑의 외모 뿐 아니라 그 이름까지도 신비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성도가 예수님의 이름을 가장 아름답게 여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일단 이 말씀은 신부가 신랑을 좋아하고 사모하는 말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성도 자신이 주님을 얼마나 사모하시는지를 반성하십시오.

3) 4절에서는 “왕이 나를 침궁으로 이끌어 드리시리니”한 것은 좋은 신부가 있다는 소문이 왕께 들리면 왕이 자신을 자기의 침궁으로 끌어갈 것인즉 “너는 나를(속히 네게로) 인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 가리라 우리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에서 지남이라(2절 참고)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우리”란 “처녀들”과 같은 뜻으로 신랑을 좋아하는 여성들을 의미합니다. 본문에서의 연인은 “목동과 한 처녀”이지만 예수님의 신부는 여러 성도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10처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열 처녀 중 기름을 예비 못한 다섯 처녀는 탈락하지 않았습니까?

4) 5절에서는 신부 스스로 신랑이 좋아할 대상임을 확인하는 내용입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 (피부는) 검으나 아름답지 않느냐 (나의 검은 살결이) 계달의 장막(계달은 이스마엘의 둘째 아들로 창 25:13, 검은 장막에서 살았다 함)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처럼 아름답지 않으냐” “신부의 피부가 검지만 아름답다”함은 신부 스스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믿음과 확신에 차 있음을 뜻하고, 우선 하나님이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은즉 그러하며(삼상 16:7, 눅 20:21) 또 자신은 신앙으로 속을 단장하였기 때문에 신랑이 자기를 아름답게 볼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피부가 검게 된 이유는 어미의 아들들이(연애에 빠져드는) 자신에게 노하여 자기로 포도원지기를 삼았기 때문에 살갗이 탔다는 것입니다. 그런즉 피부가 거무스름하다 하여 흘겨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흘겨본다”는 뜻은 얹잖게 여김을 뜻합니다. 성도가 예수님을 사랑함에 지나치면 세속의 사람들이 싫어하고 때로는 핍박도 합니다. 여기의 신부는 가족의 미움도 샀습니다. 그래서 포도원지기가 되었는데 6절에서 “나의 포도원은 내가 지키지 못한 것”은 사랑과 연애에 빠져서 세속의 일을 충실하게 못하였다는 뜻입니다. 성도가 은혜를 받으면 영적 은혜를 사모하여 세속의 일을 덜하게 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인하여 핍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라”고 하셨습니다(마 5:11~12, 딤후 2:12).

5) 7절에서는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야 너의 양떼 먹이는 곳과 오정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고하라 내가 네 동무의 양떼 곁에서 어찌 (내) 얼굴을 가리우겠느냐”하므로 신부가 신랑 보기를 사모하는 말을 한 것입니다. 목동을 연모하는 처녀가 그를 만나려면 목장의 쉬는 곳으로 찾아가야 하는 것처럼 성도가 주님을 만나려면 성경 말씀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요 5:39).

2. 신랑이 신부에게 말함(8~11절).

1) 8절에서 (신랑이 신부에게 말하기를)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네가 (나 있는 곳을) 알지 못하겠거든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찌니라” 하므로 만남의 방책을 알려 준 것입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해석하면 은혜 받는 방법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그런 방법으로 서로 접근하면 만날 수 있습니다. 사 55:6과 약 4:8을 보시면 주님도 만나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2) 9절에서 “내 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 하므로 사랑하는 여인의 아름답고 늠름한 모습을 잘 꾸미고 단장한 바로왕의 말에 비유한 것입니다. 10절에서 “네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네 목은 구슬 꿰미로 아름답구나” 하였으니 이 육체적 단장은 성도의 신앙적 미덕을 나타내는 것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3) 11절에서 “우리가 (신랑의 동료자들) 너를 위하여 금사슬을 은을 박아 만들리라”함은 아름다운 신부 즉 믿음 있는 성도에게 주님이 더 큰 은혜를 베푸실 것을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마 13:12).

3. 신부의 말(12~14절).

1) 12절에서 “왕이 상에 앉았을 때 (나를 그 곁에 있게 하였다면) 나의 나도기름(나드와 같음. 막 14:3)이 향기를 토하였구나”한 것은 신부가 왕에게 초청되었든지 아니면 가상적으로 표현한 말일 것입니다. 왕의 곁에 앉는 여인이 향기를 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13절에서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낭이라” 하였으니 이 뜻은 신부가 왕의 상에 앉은 것은 제도와 예절을 따른 것 뿐이고, 나의 사랑하는 자는 자신의 마음에 품고 있는 향기처럼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왕은 예절로 모시고 연인은 마음에 모신다는 뜻입니다.

2) 또 14절에서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하므로 신랑의 위상을 높이 평가한 것입니다. 고벨화는 작고 향기로운 꽃으로 애굽인들이 그 진액으로 손톱에 물을 들인다고 합니다. 따라서 신부가 신랑을 “고벨화”로 비유한 것은 마음에 지울 수 없는 대상임을 의미한 듯 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롬 8:35)하신 것처럼 4, 12절에서 “왕의 곁에 가는 것”을 피력한 이유는 세속에 끌리는 유혹을 떨치고 목동에게만 마음을 두는 순결함을 나타내려는 역설적 표현 같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함”(마 6:24)도 이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4. 신랑의 말(15~17절).

15절에서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성도는 주님으로부터 이같은 칭찬을 받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16~17절에서는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석가래로구나” 하였으니 이 말이 왕의 말이면 상징성이 없지만 목동의 말인즉 왕궁에 비교하는 상징성을 띤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4절에서 “왕의 침궁”을 거론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목동은 “우리의 침상이 푸르다” 하였으니 이는 왕궁의 침소에 비교하여 대자연을 일컫는 말이요, “우리 집이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석가래라”함은 역시 왕궁에 비교하여 자연의 세계에서 백향목 나무 밑과 울창한 잣나무 밑을 자신들의 사랑의 처소로 삼자는 뜻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성도는 어여쁜 여인이 되도록 순결한 신앙으로 잘 단장하셔야 하고 신랑되신 예수님을 마음껏 사모하고 사랑하여 주님의 인정을 받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만족을 드릴 수 있는 믿음의 성도가 되셔야 할 것을 교훈하실 목적으로 이 말씀이 기록된 줄로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영적 교제는 개인적으로 체험할 일이기 때문에 신부의 입장을 교회로 비유하기 보다는 개인적 신앙으로 비유함이 더 합당해 보입니다. 또 이 시를 솔로몬이 지었기 때문에 신랑을 왕으로 생각하지만 왕의 사랑은 일천 궁녀 중 하나로 상대할 뿐 순수한 사랑이 아닙니다. 따라서 포도원지기 처녀와 목동 간의 사랑의 교제를 성도가 주님을 사랑하는 순수한 사랑으로 승화시키기 위하여 이 말씀을 주신 줄로 믿는 것입니다.

 

제 2 과 아가서 2장 강론 목록으로


필자는 이 본문을 읽고 신부된 자와 신랑된 자의 직업이 포도원지기와 목동을 계속하고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신부가 포도원지기로 있음은 15절에서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하였기 때문이고, 신랑이 목동인 것은 16절에서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먹인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부가 신랑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것은 성도가 주님의 사랑을 연모함에 해당하고, 반대로 신랑이 신부를 사랑하는 것은 주님이 성도와 교회를 사랑함에 비유하여 교훈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① 1~2절은 “신랑의 고백”이고, ② 3~9절은 “신부의 고백”이며 ③ 10~14절은 또 “신랑의 고백”이고, ④ 15~17절은 다시 “신부의 소원과 고백”을 기록한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총 제목을 정한다면 “연인간의 사랑의 전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가 예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데 열심을 가하여야 할 것입니다.

1. 신랑의 고백(1~2절).

1) 1~2절에 신랑은 자신을 비유할 때 “사론의 수선화”와 “골짜기의 백합화”로 비유합니다. “사론”은 사마리아 서쪽 또 갈멜산과 욥바 사이의 평원 지대를 의미한즉 그 곳에 피어있는 수선화는 좋은 꽃이지만 평원이 넓기 때문에 사람의 접촉이 어렵고, 골짜기의 백합화 역시 향기는 많으나 골짜기에 있기 때문에 사람의 접촉이 힘드는 곳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향기 발하는 꽃으로 비유하면서 겸손하여 사람에게 들레지 않으심과 같고(마 11:29, 12:19), 또 목동이 신부를 만나고 싶어도 직업상 얽매여 있기 때문에 부자유한 상태를 나타낸 것입니다.

2) 3절에서는 “여자들 중 내 사랑(자기의 사랑하는 신부)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다” 하므로 두 사람 다 향기를 발하는 거룩한 존재이지만 신부가 신랑을 만나기 위하여 나오는 길은 신랑보다 더 험하고 힘든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가 주님을 모시기 위하여 자신을 부정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져야 하는 일들이 가시밭길과도 같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신랑은 자신의 입장과 신부의 입장을 아울러 고백한 것입니다.

2. 신부의 고백(3~9절).

1) 3절에서 신부는 신랑에 대하여 고백하기를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다” 하였으니 이는 신랑이 신부에게 신선하고 단 열매(은혜를 뜻함.)를 줄 수 있는 대상으로 표현한 것이고,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다” 하므로 신부가 신랑을 통하여 받는 은혜가 큰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는 “각양 좋은 은사가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오는 것”처럼(약 1:17) 신부가 그 목동으로 말미암아 받는 위로가 큰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성도는 주님만 가까이 모시면 아무 것도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시 37:5).

2) 4절에서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치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이 내 위에 기로구나”한 것은 신랑이 신부에게 잔치집에 들어간 것 같은 기쁨과 만족을 주었다는 뜻이요, “그 사랑” 곧 신랑이 베푸는 사랑이 자신(내 위에)에게 자랑거리(깃발을 날린 뜻)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실제 있었든지 아니면 가상적 표현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3) 5절에서 신부는 “사랑에 지친 자신의 몸을 보양하라”고 합니다. “너희는 건포도(영양)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케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관계에서는 만족해도 피곤할 수 있고, 만족을 느끼지 못해도 병이 날 수 있은즉 이렇게 병이 날 정도란 것은 성도가 주님의 사랑을 힘입기 위한 극치의 노력을 나타낸 표현입니다. 6절에서 “그가 왼손으로 내 머리에 베게하고 오른손으로 나를 안는구나”한 것은 신랑이 신부를 포옹하여 느낀 행복감을 기록한 것인데 연인과 잔치집에 간 것처럼(4절) 실제적 체험 또는 가상적 체험을 나타낸 것입니다. 성도가 주님의 품에 안긴 축복은 보호와 안전의 복을 의미합니다(사 46:3~4).

4) 7절에서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으로(그 입장에서)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라” 하였으니 이 뜻은 연인과의 즐거움을 그 신부의 친구들(예루살렘 여인들)이 훼방하지 않도록 부탁하는 것입니다. “노루와 들사슴”은 겁이 많은 짐승으로 두려움을 많이 느낍니다. 따라서 신부도 신랑과 사랑의 밀월에 훼방받는 것을 노루나 들사슴처럼 두려워한즉 “내 사랑이 (신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도가 신령한 은혜를 받았다 하여도 기도를 게을리 하거나 세속에 치우치면 금방 은혜를 상실할 수 있습니다. 신부는 그것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5) 8~9절은 신부가 신랑의 찾아오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기다리다가 만나는 장면을 묘사한 것입니다. 8절에서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이것은 사모하는 신랑이 목동이기 때문에 산에서 급히 오는 모습을 연상(또는 실제)한 것이고,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속히 도착하여) 우리(신부와 그 가족)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 보는구나”하므로 신랑이 신부 집에 찾아와 엿보는 상태를 사모하고 상상한 내용입니다. 성도가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구체적으로 사모하고 상상함이 마땅함을 교훈하신 것입니다(시 107:9).

3. 신랑의 고백(10~14절).

1) 10절에서 신부가 신랑의 말을 옮기는 내용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예수님은 성도와의 동행과 친교를 좋아하심. 요 14:23, 마 28:20, 계 3:20)하며 신부와의 밀월을 원한다는 뜻입니다. 신랑이 신부를 어여쁜 자로 여긴 것처럼 성도가 주님으로부터 그런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오직 믿음과 순종으로 자기를 단장할 때 그런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2) 11~13절은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으며 반구(비둘기)의 소리가 들리고 무화과나무에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가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니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함께 가자”고 합니다. 이 시기는 봄을 뜻합니다. 이 절기는 하나님이 성도에게 주시는 은혜의 환경으로 이 시기에 성도는 은혜를 많이 받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이 은혜 받을 때라”하신 것이(고후 6:2) 은혜의 계절이 도래한 신약 시대를 의미하는 것처럼 좋은 절기는 은혜 베푸시는 환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주님을 교제함에 있어서 세속의 훼방을 받지 않도록 정착된 환경이 필요합니다.

3) 그 뿐 아니라 마귀가 틈타지 못하는 안전한 처소도 필요한즉 14절에서 “바위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너의 얼굴을 보게 하라…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하므로 신부를 비둘기로 비유하였고, 비둘기의 안전한 처소를 바위틈 낭떠러지로 표현하였으니 이는 신랑이 신부의 안전을 그만큼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또 신부를 비둘기에 비유한 것은 신부의 인격이 비둘기처럼 유순하고 착한 것을 아름답게 여긴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성도를 사랑하고 사모하십니다.

4. 신부의 소원과 고백(15~17절).

1) 15절에서 신부는 “우리를 위하여(두 연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하였으니 이 포도원은 신부 가정의 기업이고 신부의 일터인즉 만일 그 곳이 허술해지면 신부의 일이 많아지므로 신랑과 즐길 시간을 뺏기게 됩니다. 그래서 자주 포도원을 허는 훼방꾼을 없애야 하니 이것은 성도들인 세속적 우수 사려를 뜻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신앙 생활의 환경이 안정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14절에 나타난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비둘기의 보금자리처럼 위험 요소를 받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도로 하여금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하여 깨여 있어 기도하라”(마 26:41)하신 것은 바로 행복한 환경(은혜의 분위기)을 파괴하는 요소들을 없애라는 뜻입니다.

2) 16절에서는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한 것은 연인간의 연합을 의미한즉 이는 성도가 예수님께 연합되어 하나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요 14:11, 15:4~7).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먹인다”함은 신부의 직업이 포도원지기인 것처럼 신랑의 직임은 목자인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성도들도 직업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창 3:19, 시 128:2, 마 16:24). 신랑이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먹임”은 그의 환경을 좋게 여긴 신부의 칭찬입니다.

3) 17절에서 “나의 사랑하는 자야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돌아와서(양치는 작업이 끝난 여가를 이용하라는 뜻) 베테르산(예루살렘 서남쪽 10㎞ 지점에 있음)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아여라”한 것은 여가를 이용하여 만나서 노루와 어린 사슴처럼 뛰어놀 것을 바라는 내용입니다. 7절의 노루와 사슴은 두려움을 갖는 동물로 묘사하였고, 9절과 본 절의 노루와 사슴은 날쌔게 뛰는 동물로 묘사한 것입니다.

성도의 신앙 생활은 예수님과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에 있어서 성도는 주님의 칭찬과 사랑과 교제를 독차지 할만큼 성숙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신랑과 신부과 서로 가까워지기를 사모하는 것처럼 성도들도 주님과의 관계에서 그처럼 가까운 교제를 만끽할 수 있어야 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제 3 과 아가서 3장 강론 목록으로


본문은 두 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① 1~5절은 “신부가 신랑을 찾음”이고, ② 6~11절은 “솔로몬의 연(輦)의 출동”입니다. 장명을 정한다면 “솔로몬의 연”이라 함이 좋을 것입니다.

1. 신부가 신랑을 찾음(1~5절).

3장의 말씀은 신부의 입장에서 나타낸 글인데 이것이 실제로 나타난 일인가? 아니면 상상인가?할 때에 영어 성경에서는 “침상에서…찾았다”는 뜻을 꿈꾼 것으로(A dream of the one I love) 번역하였습니다. 상상이든 꿈이든 저희들은 이 내용을 신앙적 차원에서 교훈을 받으셔야 할 것입니다.

1) 1절에서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찾았구나 찾아도 발견하지 못하였구나” 하였으니, 신랑과 신부가 밤에 한 침상에 있어야 함이 마땅한데 신부 곁에 신랑이 없다는 뜻은 신부가 신랑을 든든히 붙잡지 못한 증거일 것입니다. 요즈음도 아내가 남편을 멸시하듯 가까이 하지 않는 경향이 있고, 이로 인하여 남편이 아내 곁에 있지 않고 외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도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도 성도가 잠시 나태하거나 과오를 범하거나 경성하지 않으면 주님이 곁에 계시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기의 신부는 밤에 침상에서 마음에 사랑하는 자(신랑, 예수님)를 찾았다고 하였습니다. 처음부터 동행하였어야 하는 것을 모르고 필요를 느끼지 않다가 침상에서 비로소 생각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려울 때만 찾을 대상이 아니십니다. 본문 1, 2, 4절에 “마음에 사랑하는 자”란 말씀이 세 번 나옵니다. 이 “마음에 사랑하는 자”란 믿음으로 마음에 모시고 계시게 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는 영적 신앙의 시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가 잠잘 때도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잠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찾아도 발견치 못한 것”은 예수님이 성도의 마음에 들어오셔서 자리 잡고 계시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청결하고 빈 마음에만 들어오십니다(딤전 3:9).

2) 2절에서 “이에 일어나서(경성을 뜻함) 성중으로 돌아다니며…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았으나 만나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신랑이 있는 자리에 가서 찾지 않은 것입니다. 은혜를 잘못 사모하는 자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가서 은혜(예수님을 만남)를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는 은혜는 옛날의 삭개오처럼 길에서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 속에서 깨달아야 하니까요.

3) 3절에서 이 때 신부는 “성중의 행순하는 자들을 만나 자기의 사랑하는 자를 보았느냐”하고 물었습니다. 여기의 “행순하는 자들”은 치안을 담당하는 사람들이지만 영적으로는 신앙의 지도자일 수 있습니다. 신앙의 지도자는 성도가 주님을 만나는(은혜받는) 방법을 지도할 수는 있지만 만남과 은혜의 체험은 자신이 직접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 성도가 예수님을 만나는 방법은 성경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때 행순하는 자들이 건설적인 방법을 지도하였을 것입니다.

4) 4절에서 그러니까 “그들을 떠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붙잡고 자기의 어미 집으로 자기를 잉태한 자의 방으로 데리고 오기까지 놓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나태한 틈을 주면 마귀가 틈타고(엡 4:27) 주님을 놓치게 됩니다.

5) 5절의 말씀은 2:7의 뜻과 같습니다. 주님을 모시고 영적 즐거움을 누릴 때 훼방하는 사건들이 나타나지 않기를 부탁하는 내용입니다. 성도와 예수님은 둘이만 있을 때 큰 은혜를 맛보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여자들도 각각 자신에게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날지언정 다른 성도에게 찾아가신 예수님을 끌어내 모시려고 하면 안 됩니다. 은혜는 혼자 있는 처소에서 받아야 가장 깊은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꼭 예수님을 모시고 떠나지 않게 하십시오.

2. 솔로몬의 연(6~11절).

6~11절에서는 연을 타고 오는 솔로몬의 행차가 나타납니다. 1~5절에서 신부가 잃어버린 신랑을 찾아 자기를 잉태한 어머니의 침실로 들어간 다음인 만큼 왕이 이 신부를 찾으러 왔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을 것이요, 신부가 원하는 신랑에게 속한 것을 끊지 못할 것입니다. “연”은 왕이 행차할 때 쓰는 큰 가마, 행구입니다.

1) 6절을 보시면 연의 행열을 표현한 내용이 꿈꾼 것을 말한 듯 하지 않습니까? “연기 기둥과도 같고(길게 늘어선 모습을 멀리서 본 상태) 몰약과 유향과 장사(상인)의 여러 가지 향품으로 향기롭게도 하고(꿈꾸는 상태에서 연의 화려함을 느낀 것) 거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고”

2) 7~8절에서 (알고보니) “이는 솔로몬의 연이라 이스라엘 용사 중 60인이 옹위하였는데 다 칼을 잡고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밤의 두려움을(습격의 위험) 인하여 각기 허리에 칼을 찼다”고 하였습니다. “거친 들에서 온다”는 것은 그 지역이 황막한 벌판이기 때문이요, 왕을 호위하는 무장한 군사가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3) 9~10절에서는 그 연을 만든 출처를 말씀하셨는데 “만든 자는 솔로몬왕이요 재료는 레바논산 나무를 사용하였고 그 기둥은 은이요 바닥은 금이며 자리(좌석)는 자색담(카펫같은 것)이라 그 안에는 예루살렘 여자들의 사랑이 입혔다” 하였으니 이는 솔로몬왕(세상 영광을 비유할 수 있음)을 사모하는 여자들이 솜씨를 제공하여 그 연의 내부를 장식하였다는 뜻입니다.

4) 11절에서 “시온의 여자들아 나와서 솔로몬왕을 보라” 하였으니 이 뜻은 이 글의 주인공인 신부가 “자신은 목동을 신랑으로 택하여 즐기고 있은즉 왕과는 상관이 없다. 예루살렘(시온) 여자들이 솔로몬왕(현실적 향락)을 좋아하여 그의 연을 꾸며 주었은즉 나와 맞이하고 사모해보라”는 뜻입니다. “혼인 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 모친(밧세바)의 씌운 면류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 한 것은 솔로몬왕이 이미 혼인을 하였고, 그가 혼인할 때 그의 모친이 씌여 준 면류관이 그대로 그 머리에 있다하므로 솔로몬의 여인에 대한 사랑은 후궁에 불과할 뿐 순수하지 않음을 비꼬듯 한 내용입니다. 신령한 성도는 세상의 영화를 좋게 여기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성도가 세속적인 것과 현세적 향락을 좋아하면 주님의 사랑은 멀어집니다. 이 시의 주인공은 솔로몬왕의 후궁되는 것을 배격하였고, 그 이전에 자기의 사랑을 성취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여인들은 그 반대였습니다. 이는 성도가 세속적 쾌락을 뒤로 하고 순수한 사랑으로 결속된 주님과의 관계를 확고히 하여야 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의 해석은 다양합니다. 솔로몬을 그리스도의 모형 인물로 해석하여 솔로몬을 사모하게 하는 뜻으로도 해석하지만 필자는 포도원지기 신부(성도)와 목동, 신랑(예수님)과 현세욕의 대표자 솔로몬과 세속주의자들인 예루살렘 처녀로 해석하여 순수한 신앙을 고수함에 대한 교훈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제 4 과 아가서 4장 강론 목록으로


솔로몬이 문장가로서 시를 쓸 때 반드시 자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는 원칙은 없습니다. 1~3장을 살펴보면 솔로몬 자신이 신랑으로 등장한 내용은 없습니다. 성도와 교회를 신부로 비유하고, 신부의 연인 곧 신랑을 예수님으로 비유하여 예수님이 성도와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와 성도의 신앙이 신부처럼 아름다움으로 신랑되신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신앙 세계를 연상한다면 좋은 교훈이 될 것입니다. 아가서의 취지는 예수님과 성도간의 깊은 사랑을 묘사하고 그것을 일깨우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① 1~5절은 “신랑이 신부를 어여쁘게 봄”이요, ② 6~8절은 “신랑이 신부와 함께 있기를 원함”이며 ③ 9~15절은 “신랑이 신부에게 이끌림”이요, ④ 16절은 “신랑이 신부에게 축복함”으로 나누어 살필 수 있고, 총 제목은 “신랑이 신부를 칭찬함”으로 정할 수 있습니다.

1. 신랑이 신부를 어여쁘게 봄(1~5절).

일단 신부는 겉모습부터 예뻐야 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하나님이 성도의 외모를 보신다는 뜻은 아닙니다(삼상 16:7). 신부의 육체의 모습은 성도의 일반적 생활의 모습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1) 1절에서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하였으니 주님이 성도와 교회를 그렇게 아름답게 칭찬하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 믿음의 성도가 되고 그런 교회를 만들어 보시지 않겠습니까?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은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같구나” 하였으니 신부는 눈이 비둘기 눈처럼 유순하여야 하고, 머리털은 여인의 아름다움을 장식하는 귀한 부분입니다. 길르앗산 기슭에는 무리 염소 떼가 많은데 무리를 지어 길게 누운 모습의 아름다움처럼 신부의 머릿결이 고아 보인다는 뜻입니다.

2) 2절에서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온 털 깎인 암양 곧 쌍태를 낳은 양같다”함은 신부의 이가 매끈하고 고르다는 뜻입니다. 3절에서 “네 입술은 홍색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며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하므로 입술과 뺨의 아름다움을 고운 홍색실과 석류로 표현한 것입니다. 4절에서 “네 목은 군기(무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일천 방패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 같다” 하였으니 많은 장식으로 꾸며진 신부의 목이 각종 방패로 장식된 다윗의 망대를 연상케 한 것입니다. 따라서 위엄있고 늠름해 보이는 상태를 칭찬한 것입니다.

3) 5절에서 “네 유방은(겉으로 드러낸 가슴)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노루 새끼 같구나”하여 유방의 아름다움을 격찬한 것인데 이는 두 유방의 모양을 쌍태 노루 새끼가 가지런하게 풀을 먹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상의 내용에서 신랑은 신부의 육체미에 대하여 격찬하였고, 그것을 격찬할 때 비둘기, 길르앗산의 목장, 쌍태 새끼 양, 쌍태 노루 새끼 그리고 다윗의 망대로 표현한 것을 보면 신랑의 신분이 솔로몬왕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나타나는 신랑을 솔로몬으로 비유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묘사한 것보다 순수한 목자로 비유한 것이 더 좋다고 봅니다. 신부의 모든 아름다움은 성도의 신앙 인격의 아름다움이 되어야 함을 잊지 마십시오. 성도가 예수님만 닮는다면 주님이 모든 것을 어여쁘게 여기실 것입니다.

2. 신랑이 신부와 함께 있기를 원함(6~8절).

신부가 아름다운즉 어느 신랑이 함께 있기를 원하지 않겠습니까? 주님도 믿음 있는 성도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십니다(히 11:6, 계 3:20).

1) 6절에서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하루의 일과를 끝낸 후) 내가 몰약산(몰약이 많이 자생하여 향기를 내는 산)과 유향(향목의 일종)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하므로 신부와의 만남을 가장 흥미롭게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한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곳만 다녀야 합니다. 어느 장소가 향기나는 장소입니까? 경건한 세계가 아니겠습니까?

2) 7절에서는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 하였으니 주님의 사랑 받는 성도는 흠이 없어야 합니다. 엡 5:26~27에 보시면 “이는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물도 흠이 없어야 하지 않습니까?(출 12:5, 레 1:3) 성도 개인이나 교회가 흠이 있다면 반드시 정화시켜 흠을 없애셔야 합니다.

3) 8절에서는 “나의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하였으니 이는 6절의 몰약산과 유향산이 레바논 지역에서부터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연인들이 사랑을 즐기는 장소는 경치와 향기가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그런 좋은 장소에서 즐기자는 것입니다.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내려다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내려다보아라”한 히브리어 “타수리”는 “떠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또 헬몬산은 레바논에 있고, “아마나”는 헬몬산의 한 부분이며 “스닐”은 헬몬산을 뜻합니다(신 3:9). 따라서 신랑이 신부를 만나면 그런 좋은 명소를 다녀보자는 뜻입니다. 주님이 성도를 기쁘게 여기시면 이보다 더 좋은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3. 신랑이 신부에게 이끌림(9~15절).

1) 9절에서 “나의 누이(친근감을 표하는 뜻)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는구나” 하였으니 신부의 아름다움을 보는 신랑의 마음이 그에게 뺏기는 것처럼 성도의 좋은 믿음과 인격은 주님의 관심 대상이 됩니다.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뺏는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성도의 세세한 부분까지 보십니다. 마음가짐과 언행의 한 부분도 제외되지 않습니다.

2) 10절에서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승하구나” 포도주는 세속적 연락의 대표적 식품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신부와 교제하는 즐거움 만큼 크지 않다는 것이요, 신부의 아름다움을 기름의 향기로 비유하였고, 그 향기를 “각양 향품보다 승하다”함은 뛰어난 아름다움을 칭찬한 뜻입니다.

3) 11절에서 “네 입술에서는 꿀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다”함은 신부와 입 맞추는 쾌감을 표현한 것으로 성도나 교회가 꿀 같은 말씀을(말씀. 시 119:103, 지혜. 잠 24:13~14) 나타내야 할 것을 상징적으로 교훈하신 것입니다. “의복의 향기”는 성도의 옳은 행실을 뜻하고(계 19:7~8), 레바논의 향기는 “백향목의 향기”를 의미하는데 이 향기 역시 성도의 옳은 행실을 표현한 것입니다.

4) 12절에서는 또 신랑이 신부를 칭찬하기를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이라” 하였으니 이는 신부에게 더 칭찬할 만한 요소가 잠재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아름다운 동산은 겉으로 보아도 신선하거든 속이야 어떠하겠으며 덮은 우물과 봉한 샘도 열면 무한한 생수를 제공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신부에게 나타나지 않은 미덕이 많다는 뜻입니다. 성도와 교회에 대한 평가도 반드시 그러하여야 할 것입니다.

5) 13~15절에서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 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초와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며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하였으니 이 뜻은 잠근 동산 안에 있는 것들을 열거한 것으로 신부(교회)에게 잠재된 믿음의 좋은 열매가 많이 나타날 수 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열린 동산에 “좋은 샘물과 향기나는 약초가 많다”함은 교회와 성도가 복음적 은혜와 사랑의 향기와 생명의 생수를 많이 나타내야 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번홍화는 분꽃과에 속한 다년초로 향 재료에 속하고, 몰약은 감람과에 속한 나무로 역시 향기 있는 건위제라 하며 창포는 다년생 풀로 역시 향기가 있고(겔 27:19), 그 이외의 식물도 다 요긴한 약초를 뜻합니다. 신부와 교회를 잠근 동산으로 비유한 만큼 교회와 성도는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병든 세상을 치료하는 병원과 의사의 역할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4. 신랑이 신부에게 축복함(16절).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한 것은 신부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발휘하기를 바라는 신랑의 축복입니다. 잠근 동산의 향기는 바람이 불 때 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한다” 하였으니 여기의 실과는 신랑을 사과나무로 비유한 말씀(2:3)도 있었은즉 그리스도께서 성도에게 베푸시는 큰 은혜를 상징함이 될 것입니다. 여하튼 이 무대는 신랑, 신부가 함께 즐기는 곳인 만큼 신약 시대의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사랑과 기쁨의 무대가 되어야 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제 5 과 아가서 5장 강론 목록으로


본문 ① 1절은 “신랑이 신부를 기다림”이요, ② 2~7절은 “신랑을 사모하는 꿈”이며 ③ 8~9절은 “친구들과의 대화”이고, ④ 10~16절은 “신부가 신랑을 칭찬함”으로 나눌 수 있고, 총 제목은 “서로 사모함”으로 정할 수 있습니다.

1. 신랑이 신부를 기다림(1절).

1절에서 “나의 누이(4:9, 12. 친근함을 나타내는 애칭) 나의 신부야 내가 내 동사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재료를 거두고(수확 또는 누림의 복을 뜻함)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한 것은 신랑이 신부를 만나 즐거움을 누릴 처소에서 자기의 것으로 누리고 신부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나타낸 말씀입니다. 여기의 “내가 내 동산에서 나의 몰약 나의 꿀송이”라 한 것을 보면 이 곳이 신랑의 거주지이고 소유지임을 뜻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만유의 주 되심을 비유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의 주이시고 또 은혜를 널리 베푸시는 분입니다.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한 것은 신랑이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나누어주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일반은총과 특별한 은혜를, 일반인들에게는 일반 은총을 베푸십니다.

2. 신랑을 사모하는 꿈.(2~7절)

1) 2절에서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다”는 뜻은 3:1의 말씀처럼 “꿈을 꾸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자주 설교하는 꿈을 꿉니다. 항상 말씀 기록하는데 정신을 쓰니까 그런 꿈을 꾼다고 생각합니다(계시 시대에는 하나님이 꿈도 주셨습니다. 욥 7:14, 33:15). 본문의 신부도 침상에서 신랑을 생각하였겠지요. 꿈에 “사랑하는 자의 소리를 들었고 (신랑이) 문을 두드리며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좋은 의미로 호칭하는 것) 나의 완전한 자(신랑이 신부의 흠을 잡지 못함)야 문 열어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다(오래 밖에서 기다린 상태)”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예수님을 사모하면 주님은 말씀과 성령으로 마음에 나타나실 것입니다. “머리에 밤이슬이 가득하도록 기다리게 하였다”는 뜻은 그만큼 성도의 경성하지 못한 나태를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2) 3절은 “신부가 발을 씻고 옷을 벗고 누었다 하여 일어나서 신랑을 맞이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도리가 아니란 뜻입니다. 성도가 찾아오신 주님을 무슨 이유 등으로 영접하지 않는다면 큰 손해를 볼 것입니다. 나사렛에서 예수님을 배척하였고(눅 4:29), 가다라에서도 배척하였으며(막 5:17), 사마리아에서도 배척하였고(눅 9:53~54), 예루살렘과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모시지 않으면 심판의 대상이 되니까요(행 4:12, 히 2:3).

3) 4~5절에서 “나의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 때 내 마음이 동하여 일어나서…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듣는구나”한 것은 신부가 문을 열고 신랑을 맞이하기 위하여 좋은 향품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성도가 자신의 신앙 인격을 잘 닦고 경성하는 상태에서 주님을 맞이하여야 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4) 그런데 6절에서 “문을 열 때 그는 벌써 물러갔다” 하였으니 이는 신랑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과오가 신부에게 있었다 할 것입니다. 눅 12:35~36에 보시면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들고 서 있다가…주인이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주인이 와서 (이렇게) 깨여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이) 복이 있으리라”하신 말씀에 비교할 때 신부가 잠자고 늦게 화장한 것은 신앙의 나태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신랑은 기다리다가 떠난 것입니다. “그가 말할 때에(처음 불렀을 때) 내 혼이 나갔구나(정신없이 잠에 취하여 듣지 못하였음을 후회하는 뜻)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자신의 나태로 주님을 가까이 모시지 못하였다면 “금식을 하여서라도 회복하라”고 하셨습니다(마 9:15).

5) 그리하여 7절에서(신부는 성중에 나가서 두루 헤매다가) “행순하는 자들로부터 매를 맞았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로부터 옷 벗김을 당하였다” 하였으니 여기의 행순하는 자들은 3:3의 말씀처럼 신앙의 지도자로 본다면 신부의 나태 또는 광신적 처사를 징계하는 뜻으로 보아야 하고, 반대로 행순하는 자들을 사탄의 사자들로 본다면 어려운 봉변을 당한 일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꿈을 꾼 것이라 하더라도 여자가 밤에 나와 다녔은즉 폭력배들에게 봉변당하는 일은 있을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성도는 항상 자기의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마귀로 틈타지 않도록 경성함이 필요한 것입니다(엡 4:27, 벧전 5:8).

3. 친구들과의 대화(8~9절).

1) 8절에서 “예루살렘 여자들아(신부 후보자에 해당함) 너희에게 부탁한다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신랑을)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전해다오” 하였으니 이는 신앙 생활에 있어서 사람을 의지하는 태도인즉 큰 효력이 없을 것입니다. 성령님께 의지하셔야 믿음 발전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롬 8:26).

2) 9절에서(예루살렘 여자들이 말하기를) “여자 중 극히 어여쁜 자야(여기에서 신부는 예루살렘 여자들로부터도 어여삐 여김을 받았음)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 하였으니 여기의 신부가 아닌 예루살렘의 여자들은 신부의 신랑(예수님)의 가치를 헤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한낱 역사적인 인물로 여기는 자들의 입장과 같은 것입니다. 별로 나은 것도 없는 신랑을 사모하고 찾는다는 뜻인즉 진실한 성도가 믿음을 위하여 부탁할 대상이 못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귀하신 존재로 알지 못하는 자들이 어찌 신앙의 도움을 주겠습니까? 이교도들은 예수님의 가치를 모릅니다.

4. 신부가 신랑을 칭찬함(10~16절).

이것은 앞부분에서 신랑(예수님)의 존귀함을 모르는 자들에게 예수님의 존귀를 말하는 것인즉 성도의 전도 사역에 해당할 것입니다. 전도는 곧 예수님의 신분을 알리는 것이니까요.

1) 10절에서 “나의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만 사람에게 뛰어난다” 하였으니 여기의 “희다”는 것은 신부 자신의 검은 피부(1:5)와 같지 않다는 뜻이고, 붉다는 것은 건강체를 의미합니다. 또 예수님의 신분을 칭찬하는 의미로는 흰 것을 순결로(히 4:15, 요일 1:5), 붉은 것을 사랑의 열정 또는 보혈로 상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2) 11~16절에서도 신부가 신랑의 모습을 자랑하는 뜻으로 “신랑의 머리와 머리털과 눈과 뺨과 입과 손과 몸과 다리가 어떻다”는 것을 칭찬하는 어조로 말한 것입니다. 이 칭찬의 기준은 그 시대의 문화적 평가로 나타낸 것입니다. 머리를 정금으로 비유한 것은 최고의 지혜의 보고를 뜻하고, 머리털이 검고 고불고불한 것은 그 시대의 미의 상징입니다. 눈을 “시냇가의 비둘기와 젖으로 씻은 듯하다”함은 맑고 부드러움을 뜻하고, 뺨이 향기로운 꽃밭, 풀 언덕 같음은 건강한 광채를 나타낸다는 뜻이며 입술에서 백합화와 몰약즙이 떨어짐은 입맞춤의 쾌감을 연상한 듯하고, 손을 황옥을 물린 황금 노리개로, 몸을 “아로 새긴 상아에 청옥을 입힌 듯하다”함은 늠름하고 건장함을 뜻합니다. “다리도 정금 받침에 화반석 기둥을 세운 것 같고 또 백향목 같으며 레바논 같다” 하였고, “입은 달다” 하였으니 이 모두가 신랑 되신 예수님을 칭찬하는 내용입니다. 다리를 백향목(든든한 기둥)에 비유하였은즉 백향목의 생산지인 “레바논 같다”함은 기둥의 풍성함을 나타낸 뜻일 것입니다. 성도가 예수님을 자랑함에는 표현할 만한 말이 없을 만큼 주님은 완전하신 것입니다. 16절에서는 “그 전체가 사랑스럽다”고 하였습니다. 신부는 예루살렘 여자들(예수님의 우월성을 모르는 자들)에게 예수님의 완전하신 신분을 알리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예수님을 확실하게 알리고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 6 과 아가서 6장 강론 목록으로


본문 ① 1~3절은 “예루살렘 여자들과 의 대화”요, ② 4~9절은 “신랑의 신부에 대한 격찬”이며 ③ 10~14절은 “신랑이 신부를 찾음”입니다. 따라서 총 제목은 “신랑의 신부에 대한 격찬”으로 정할 수 있습니다.

1. 예루살렘 여자들과의 대화(1~3절).

5:8에서 신부는 예루살렘 여인들에게 신랑을 찾아 줄 것을 부탁한 일이 있었는데 그들은 “너의 사모하는 신랑이 다른 사람의 신랑보다 무엇이 더 좋길래 그렇게 사모하면서 부탁을 하느냐” 하였고, 5:10~16에서 신부는 신랑을 격찬하여 자랑을 하였습니다.

1) 1절에서는 예루살렘 여인들이 신부의 요청에 응답을 주었습니다. “여자 중 지극히 어여쁜 자야(성도는 그 이웃들로부터 칭찬의 대상이 되어야 함) 너의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갔는가…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하므로 신부가 소개한 신랑의 신분이 귀한 것을 알고 협력하는 뜻ㅇ르 보였다 할 것입니다. 성경은 연합의 힘이 강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전 4:9~12, 마 18:19~20). 처녀들이 예수님에 대한 것을 많이 배웠은즉 협력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2절에서 신부가 말하기를 “나의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만남의 처소)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 하였으니 이 말은 신부가 신랑이 있을 듯한 처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처소에 대하여는 4:6~8에서도 언급되었던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이 계실만한 장소를 알아야 합니다. 삭개오와 소경이 예수님 지나가시는 길목에 섰다가 만나서 은혜를 받았습니다(눅 19:1~4, 마 9:27). 잠 8:20에서 “나는 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평한 길 가운데로 다닌다” 하셨은즉 그런 곳에서만 예수님은 만날 수 있습니다. 물론 성경말씀으로도 만나지요(요 1:1). 또 믿음과 말씀이 하나 되어야 합니다.

3) 3절에서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는구나”하므로 신부와 신랑의 결속이 영원함을 고백한 것이요, 그 신랑의 신분은 바로 백합화 향기나는 세계에서 양을 치는 목자임을 확실히 고백한 것입니다. 이 말은 2:16의 내용을 반복한 것으로 성도가 주님과 연합된 상태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2. 신랑의 신부에 대한 격찬(4~9절).

1) 4~5절에서 신랑은 신부를 격찬하기를 “내 사랑 너의 어여쁨이 디르사(여호수아가 점령한 성읍의 이름인바 수 12:15, 24, 예쁘게 꾸민 성읍) 같고 너의 고움이 예루살렘(화려하고 깨끗한 도성임) 같고 엄위함이(신부는 엄위도 있어야 함) 기치를 벌인(깃발을 든) 군대 같다” 하였고, “네 눈이 나를 놀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하므로 신부의 시선의 매력에 이끌리는 상태를 표현하였으며 “네 머리털은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염소떼 같다”(4:1) 하였으며, 6~7절은 4:2~3의 말씀을 연속 강조하므로 신부의 아름다움을 격찬한 것입니다.

2) 8~9절에서는 신부의 존귀함이 왕후에 비길 것이 아님을 말하였으니 예를 들어서 “(솔로몬왕은) 왕후가 60이요 비빈이 80이며 시녀가 무수하되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하므로 신랑으로부터 받는 사랑의 강도가 왕에게 비길 바가 아님을 말한 것입니다. 또 “그는 그 어미의 딸이요 그 낳은 자의 귀중히 여기는 자로구나 여자들이 그를 보고 복된 자라 하고 왕후와 비빈들도 그를 칭찬한다”고 하였습니다. 왕후나 비빈들은 왕의 사랑을 독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왕궁에 들어가면 가족들과 격리되어 갇히는 신세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 남자의 신부된 것이 훨씬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성도가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 것은 예수님의 영원하시고 충만하신 속성에 의하여 일대일의 신랑과 신부가 된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3. 신랑이 신부를 찾음(10~14절).

1) 10절에서는 “아침빛 같이 뚜렷하고(믿음은 뚜렷하여야 함) 달 같이 아름답고(청명한 뜻) 해 같이 맑은 기치를 벌인 군대 같이 엄위한 여자가 누구인가?”한 것은 신부가 바로 그렇다는 것을 신랑이 강조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비교할 자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신부는 아침빛 같이 뚜렷하였고, 달처럼 아름다웠으며 해처럼 맑았고, 군대처럼 엄위가 있다는 뜻인즉 이것을 성도의 신앙으로 설명한다면 믿음이 확고하고 순결하며 악에 대하여 대적하는 용기가 있는 용사 같아야 함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2) 11절에서 “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보려고 포도나무가 순이 났는가?” 또 석류나무 꽃이 피었는가? 내가 그것을 알려고 호도 동산으로 내려갔을 때 12절에서 “부지중에 내 마음이 나로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 이르게 하였구나” 하였으니 이 뜻이 무엇일까요? 이 뜻은 신랑이 신부를 찾으러 그의 포도원 가까이 왔는데 포도나무 순이 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향하고 있어서 시야가 가린 것을 안타까워하는 표현이요, 아울러 석류나무 꽃이 피었는지를 알기 위하여(석류나무 꽃이 잘 피었으면 신부가 그 나무 옆에 있을 듯 하므로) 호도동산으로 내려가는 중 12절에서 “부지중에 내 마음이 나로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 이르게 하였다” 하였으니 이는 신부를 찾던 신랑의 태도가 다른 목적으로 변한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5:6에서도 신부가 문을 열었으나 밤이슬을 맞고 기다리던 신랑이 떠나버려 없었던 것처럼 신랑이 포도원으로 찾아왔지만 포도나무 순이 울창하여 시야를 가리므로 차라리 석류꽃 핀 것을 알려고 옮기다가 부지중에 그의 마음이 백성의 수레가 있는 쪽으로 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수레를(내 백성의 수레) 솔로몬왕의 행차로 해석한 경우도 있지만 목동이 신부를 찾다가 다른 것을 생각하는 쪽으로 기울어진 상태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신랑을 예수님으로 비유한다면 주님이 자기의 백성(신부)이 가까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 사이에 다른 사역을 섭리, 간섭하실 수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3) 13절에서는 “돌아오고 돌아오라(신부가 멀리 떠난 것으로 짐작함) 술람미(수넴을 뜻한다 함)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신랑의 친구들, 후원자)로 너를 보게 하라” 하였으니 이는 성도가 주님 앞에 가까이 나오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사랑을 예표함이라 할 것이요, 14절에 “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임의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 하느냐” 하였으니 “마하나임”은 하나님의 군대란 뜻으로 천사를 의미합니다(창 32:2). 여기에서 천사의 춤을 보는 것은 하나님의 명에 의한 복종을 뜻함인즉, 성도는 자원함으로 만나고, 또 사랑에 이끌려 만나며, 즐거운 마음으로 연인을 대하여야 합당하다는 뜻입니다. 성도를 상징한 신부가 술람미에 살고 있는 포도원집 아가씨임을 본 절에서 나타냈으므로 앞으로는 “술람미 여인”으로 호칭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제 7 과 아가서 7장 강론 목록으로


본문을 살피면 ① 1~9절은 “신랑이 신부를 칭찬함”이고, ② 10~13절은 “신랑이 신부와 즐기려 함”입니다. 두 제목을 종합하면 “신랑과 신부의 큰 만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본문의 9~13절을 “신부의 말”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 신랑의 말로 이해하였습니다. 여기의 신랑은 예수님을, 신부는 성도와 교회를 상징하여 교훈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성도나 교회가 예수님을 만족하게 해 드리고, 예수님께 아름다움을 보여드리는 믿음의 정화가 필요함을 깨달으셔야 할 것입니다. 우선 신랑이 신부의 육체미를 칭찬한 일에 대하여 성도는 그것을 신앙적 생활의 의미로 이해하셔야 하고, 또 신랑이 신부와 교제하기를 바라는 말씀(11~13절)도 주님이 성도와의 동행을 요구하시는 뜻으로 이해하셔야 합니다.

1. 신랑이 신부를 칭찬함(1~9절).

1) 1절의 “귀한 자의 딸”이라 하였는데 딸이 귀하면 그 부모도 귀한 것입니다. 한국 속담에 “자기의 처가 귀하면 처갓집의 소 말뚝에 절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귀해지면 그 부모도 귀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살피면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요 1:12)인즉 귀한 자의 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육체 전반에 대하여 발, 넓적다리, 배꼽, 허리, 유방, 목, 눈, 코, 콧김, 머리, 머리털 그리고 입까지 칭찬하였는데 그 칭찬한 내용을 저자의 심정 그대로 다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성도의 육체는 하나님의 것으로(고전 6:11~20)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역할을 할 때 아름답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2) 1절에서 “신을 신은 네 발이 아름답다” 하였으니 여인들이 발의 미를 살리기 위하여 알맞은 신을 선택하지 않습니까? 발이 아름다운즉 그 발걸음도 아름다워야 할 것입니다(롬 10:15). “넓적다리가 둥글어서 공교한 장색이 만든 구슬꿰미 같다”함은 역시 아름답다는 뜻인데 공교한 장색이 만든 구슬꿰미를 보았어야 합당한 감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자의 다리의 미는 예사로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2절의 “배꼽은 섞은 포도주(순포도주는 독하여 약간의 물을 탐)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다” 하였으니 요즈음 아가씨들이 배꼽을 노출하고 다니는 것처럼 옛날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보아야 하며(전 1:9~10) 배꼽을 둥근 포도주 잔으로 비유한 것은 저자가 그것을 아름답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3) 3절의 “두 유방이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음”은 4:5에서도 표현한 것이며 4절의 “목이 상아 망대 같음”도 4:4에서 표현한 것이고, “눈이 헤스본 바드람밈 문 곁의 못 같음”은 이 장소가 아모리왕 시혼의 도성을 의미하는 바(민 21:26) 그 곁의 연못이 맑고 시원스러웠을 것이므로 그렇게 표현한 것이요, “코가 다메섹을 향한 레바논 망대 같다”함은 오뚝한 모습을 표현한 것이고, 8절에서 “콧김이 사과 냄새 같음”은 신부의 호흡을 신선하게 여기는 뜻이며, 5절에서 “머리가 갈멜산 같음”은 갈멜산의 푸르고 둥근 모양을 연상한 것이고, “머리털은 자주 빛이 있으니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였다”고 하였습니다. 머리에 물들이는 기술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자주색 머리도 있었다고 보아야 하며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였다”는 뜻을 “솔로몬왕이 그 여인의 머리칼 매력에 끌려 그를 사랑하였다”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저의 생각은 “솔로몬왕도 자주색 머리칼을 좋게 여겨 그 색을 취한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4) 6절은 “신랑이 신부의 화창함(환한 모습)과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쾌락을 느낀다는 고백”이니 성도는 항상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7절에서 “키가 종려나무 같다”함은 늘씬하다는 뜻이요, 또 “유방이 그 종려나무 열매송이 같다” 하였은즉 이 표현도 저자가 종려나무를 아름답게 여긴 결과입니다. 8절에서 “내(신랑)가 말하기를 종려나무에 올라가서 그 가지를 잡으리라(신부를 접근하여 차지하는 뜻) 하였으니 네(신부) 유방이 포도송이 같음이라”고 하였습니다.

5) 9절에서 “네 입은 좋은 포도주 같을 것이라”하므로 앞 절에서 콧김을 사과 냄새로 비유한 만큼 입을 포도주로 비유한 것입니다. “이 포도주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미끄럽게 흘러내려서(흥미롭게 먹는 모습) 자는 자의 입으로 움직이게 하느니라”한 것은 포도주를 맛있게 먹고 잠을 자면서 잠꼬대까지 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포도주가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처럼 신부의 입이 입맞춤을 통하여 즐거움 누리는 것을 포도주 마시는 일로 비유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 9절은 신부가 신랑에게 주는 말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느낌에 따라 선택하십시오.

2. 신랑이 신부와 즐기려 함(10~13절).

1) 10절에서 신랑은 신부와의 연합성을 강조합니다. 이 뜻은 2:16에서도 서로 확인한 바가 있었습니다. 이는 주님과 성도와의 관계가 피로 맺은 영원한 연합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따라서 신랑, 신부 모두는 절대로 다른 유혹에 넘어갈 수 없습니다. “그가 나를 사모함”은 신부가 신랑을 사모하는 것을 신랑이 알 고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의 성도가 얼마나 주님을 사모하는지를 반성하셔야 할 것입니다.

2) 11~12절에서 “나의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우리가 일찍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폈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서 내가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 하였으니 이 뜻은 자연의 동산을 무대로(성도의 세계 또는 교회를 뜻함) 주님과 성도가 교제하고 이 때에 주님이 큰 은혜 주실 것(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을 약속하신 뜻입니다.

3) 13절에서 “합환채(창 30:14, 어원적으로 사랑이란 뜻이며 향기가 있고, 이 풀을 잉태하는 행운의 상징으로 여겼음)가 향기를 토하고 우리의 문 앞에는 각양 귀한 실과가 새 것, 묵은 것(은혜를 상징함)이 구비하였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 너를 위하여 쌓아 둔 것이라”하시므로 성도가 주님을 모시고 즐거워하는 세계에는 무엇이나 주님이 필요한대로 은혜 베푸실 수 있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따라서 우선 성도는 믿음이 있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여야 하고 주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아야 하며 주님과 더불어 낙을 누리는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얼마나 넉넉하게 주시는지에 대한 은혜를 체험하는 성도가 되셔야 합니다.

 

제 8 과 아가서 8장 강론 목록으로


본문을 주의 깊게 읽으셔야 누구의 어떤 말인지를 분간하실 수 있습니다. ① 1~4절은 “신부의 갈망하는 모습”이요, ② 5~7절은 “신부의 성숙 과정”이며 ③ 8~10절은 “신랑과 신부의 대화”이고, ④ 10~12절은 “두 포도원의 비교”이며 ⑤ 13~14절은 “신랑 신부의 사명”입니다. 종합적인 제목은 “신랑 신부의 전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신부의 갈망하는 모습(1~4절).

1) 1절에서 “네가 (신부가 신랑을 지칭한 말) 내 어미의 젖을 먹은 오라비 같았더면 너를 만났을 때에 입을 맞추었어도 나를 업신여길 자가 없었을 것이라”한 것은 신랑이 자기의 오라비의 입장이었다면 격식과 절차를 떠나서 만나고 입을 맞추었다 해도 허물이 없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신부가 신랑을 가까이 하고 싶지만 시간, 거리, 도덕성의 장애 때문에 더딘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2절에서도 (신랑이 오라비라면) “내가 너를 이끌어 내 어미 집에 들이고 네게서 교훈을 받았으리라”하므로 신부가 신랑을 존경하는 말을 확실히 하였고, 또 “나의 향기로운 술 곧 석류즙으로 네게 마시웠을 것이라”하므로 신부가 신랑을 섬김에 대하여 피력하였은즉 이는 성도 또는 교회가 예수님을 섬기는 일로 비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그리고 3절에서 “너는(오라비로서) 왼손으로 내 머리에 베게하고 오른손으로 나를 안았었으리라”하므로 남매간에 흉허물 없는 포옹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는 사이(가족간)의 친교는 쉽게 성취되지만 남남과의 친교나 정분은 절차가 있어 더딘 것을 안타깝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가 믿음을 성숙시키는데도 그만한 절차와 과정이 있음을 예시한 말씀입니다. 4절 말씀은 3:5과 5:8에도 나타난 말씀입니다. 신부가 신랑과의 교제를 계속 할 수 있도록 훼방하는 일이 없기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여기의 예루살렘 여자들은 신부로 수련 받는 신부의 친구들입니다. 교회로 말하면 믿음 성숙에 이르지 못한 성도들이지요. 그들은 자칫하면 은혜에 달음질하는 자에게 훼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믿음 약한 성도들은 영적 사역을 피곤하게 여기고 세속에 끌리는 일이 많아서 자신이나 다른 성도들에게도 훼방을 줄 수 있습니다. 은혜의 맛을 아는 성도는 주님과 자신과의 교제로 족하고 다른 성도와의 만남에서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따라서 훼방을 받지요. 그러나 믿음 약한 성도는 성도와의 친교에서 도덕적 만족을 얻으려 하기 때문에 그런 생활이 믿음 있는 자에게 훼방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신랑, 신부가 잠들어 있는데 새벽부터 잠 깨우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그래서 신부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라”고 부탁을 한 것입니다.

2. 신부의 성숙 과정(5~7절).

1) 5절에서 “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고” 이 말은 예수님을 비유한 신랑의 말입니다. 신부인 성도가 신랑을 의지하고 거친 들(험한 세상)에서 신랑에게로 가까이 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너를 인하여(신부를 성숙되게 하기 위하여) 네 어미가 신고(辛苦. 애쓰고 괴로움을 당한 뜻)한 (곧)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하였으니 이 뜻은 신부가 신랑을 처음 알게 될 때 그 신부가 있는 처소에 가서 자신을 알도록 일깨운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포도원에 있는 술람미 여인이 멀리 떨어진 곳의 목자를 알 까닭이 없는데 신랑이 먼저 신부 있는 곳(너를 낳은 자가 신고한 그 곳, 그 집 사과나무 있는 곳, 2:5, 7:8, 신부 집에 사과나무가 있음)에 가서 자기를 보도록 일깨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리적으로 주님이 먼저 찾아오셔서(요 15:16, 계 3:20) 택한 백성을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요 3:3, 엡 2:1). “너를 깨웠노라”하신 뜻이 곧 거듭나게 하여 신랑 그리스도를 알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2) 성도는 거듭나면 믿음이 생기게 되어 있고, 그 믿음은 진실한 믿음으로 성숙되는 것입니다. 6~7절 말씀이 바로 주님의 간섭에 의한 신부의 진실되고 성숙된 믿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너는 나를 인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한 것은 신부가 신랑을 믿는 믿음의 확고함(증표)을 뜻하며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죽어도 사랑한다는 뜻)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나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같다”하므로 신부의 신랑에 대한 사랑(성도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불처럼 타오르게 된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투기가 음부처럼 잔혹함”은 신부가 신랑을 사랑함이 죽음보다 강하고 불처럼 타오른즉 그 사랑을 다른 곳에 뺏기지 않으려는 투기심이 잔혹할 정도로 신랑을 사랑하였다는 뜻입니다. 이 부분은 성도들에게 주님의 사랑에 대한 정도를 점검하게 합니다. 7절에서 “이 사랑은 (무한정 불타는 것 같아서)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하므로 성도의 주님에 대한 믿음이 끊을 수 없는 사랑(롬 8:35) 또는 온 재산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마 13:44)으로 성숙된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3. 신랑 신부의 대화(8~10절).

8~9절은 신랑의 말인데 여기에서 신랑은 예수님 또는 그의 몸된 교회의 입장을 취한 상태에서 말씀한 것이고, 10절은 성숙한 신부의 입장에서 한 말입니다.

1) 8절의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성숙되지 못한 신부들 즉 예루살렘 여인들 같은 대상입니다. “그 작은 누이가 유방이 없음”은 결혼할 만큼 성숙하지 못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신앙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을 기쁘시게 할 만큼 성숙한 믿음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이 성숙하기를 바라시고 교회는 그들의 믿음을 양육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청혼을 받는 날(예수님의 초청을 받고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 때)에는 우리(교회)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고”한 것입니다. 신랑이 그의 몸된 교회를 통하여 약한 성도를 돕는 길은

2) 9절에서 “그가 성벽일찐대 우리는 은망대를 그 위에 세울 것이요(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협력을 한다는 뜻) 그가 문일찐대 우리는 백향목 판자로 두르리라”고 한 것입니다. 역시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준다는 것입니다. 성벽에는 망대가 있어야 하고, 문에는 울타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 한 부분이 없은즉 그것을 보충해 준다는 것입니다(고전 12:28).

3) 10절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믿음이 성숙된 신부가 자기의 입장을 고백합니다. “나는 성벽이요 나의 유방은 망대같으니(성숙되고 구비되었다는 뜻) 그러므로 나는 그(주님 또 신랑)의 보기에 화평을 얻는 자 같다”하므로 믿음 있는 자의 안정되고 평화로운 생활을 고백한 것입니다. 성도는 반드시 주님을 모신 믿음 안에서 안정과 평안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4. 두 포도원의 비교(11~12절).

11~12절에서 “솔로몬왕이 바알하몬(위치 알 수 없음)에 포도원이 있는데 그것을 지키는 자들에게 맡기고 그 실과를 인하여 은 일천을 거두고 실과 지키는 자는 200을 거둔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포도원을 교회로 비유한 말씀이 많습니다(사 5:7, 27:2, 렘 12:10, 마 21:33). 포도원은 누구에게 맡기고 자신은 돈만 버는 농장이 되면 안 됩니다. 따라서 교회나 신앙의 기관을 돈벌이 목적에 쓰는 것은 좋지 않다는 뜻입니다. “내 포도원은 내 앞에 있구나”한 것처럼 포도원에 대한 기쁨을 스스로 맛보아야 할 것을 교훈한 것입니다. 교회는 금전과 거리가 멀고 주님과의 신령한 교제만 넘쳐야 할 것입니다.

5. 신랑과 신부의 사명(13~14절).

1) 13절에서 신부가 신랑에게 하는 말로 “너 동산에 거한 자야(신랑 및 교회를 뜻함) 동무들(신부의 친구들)이 네 소리(신랑의 교훈)에 귀를 기울이니 나로 함께 듣게 하라”하므로 예수님을 비유한 신랑이 성도들에게 좋은 메시지 전할 것을 청한 뜻이고,

2) 14절의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신앙의 전진을 기하라는 뜻) 향기로운 산들에서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여라” 하였으니 (노루와 사슴은 빠른 동물임) 신랑은 신부에게(예수님이 성도에게) 신앙의 빠른 성숙이 있어서 더욱 큰 영적 즐거움에 임하기를 권면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솔로몬은 이 시의 저자일 뿐 사건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인물은 아닌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