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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강론

 

저자 지영근 목사



목 차

 

제1과 룻기 1장 강론 4 바로가기

제2과 룻기 2장 강론 7 바로가기

제3과 룻기 3장 강론 9 바로가기

제4과 룻기 4장 강론 11 바로가기

설교보충 1. 룻기를 읽고 (룻 1:1~18) 13 바로가기

 

제 1 과 룻기 1장 강론 목록으로


먼저 필자가 집필한 “기독교 신앙백과” 542P에 기재된 개론을 꼭 읽으십시오. 본문을 분류하면 ① 1~2절에서 “엘리멜렉 가족이 모압으로 감”이요, ② 3~5절에서는 “나오미 가족의 파멸”이며 ③ 6~7절은 “나오미가 귀향길에 오름”이고, ④ 8~17절은 “두 자부의 선택”이요, ⑤ 18~22절은 “고향에서 환영 받음”입니다. 총제목을 정한다면 “한 가정에 대한 징계와 돌이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엘리멜렉” 가족이 모압으로 감(1~2절).

1) 1절의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라면 사사가 있던 시대를 살펴야 합니다. 사사는 모세 시대에도 있었습니다(민 25:5). 모세 때부터 사사직을 감당한 사람들은 “여호수아”나 “엘르아살”이나 그의 아들 “비느하스”를 들 수 있고, 사사기에 나타난 사사들 다음에 엘리 제사장(삼상 4:18)과 사무엘의 아들들(삼상 8:1~2)이 사사였다고 하였습니다. 사무엘도 사사 역할을 하였지요(삼상 7:5~6, 행 13:20). 사무엘의 아들들 다음에 사울왕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사사들이 치리하던 시대는 여호수아 때로부터 사무엘의 아들들 시대까지를 의미하는데 그 기간은 대락 주전 1410년에서 1050년까지 350년 쯤 됩니다. 그 어간에

2) 유대땅 베들레헴 곧 에브랏이란 곳에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 그리고 말론, 기룐 두 아들이 살았는데 그 땅에 흉년이 든 것입니다(1~2절).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약 25리 쯤 남쪽에 있는 작은 동리인데 옛날에는 그 곳을 “에브랏”이라 하였고, 야곱의 아내 “라헬”의 무덤이 거기에 있으며(창 35:19) 다윗의 고향이고(삼하 23:15), 또 예수님의 출생지(눅 2:4~20)로 잘 알려진 곳입니다. 그런데 그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오늘날도 흉년 드는 해가 가끔 있지만 그 이유를 따지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선민에게 흉년을 주신다는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욜 1:2~4, 10~12, 렘 12:12~13, 학 2:16~19, 신 28:15~19). 따라서 이 흉년은 하나님의 징계 섭리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6절에 보시면 유대땅에 양식이 있게 되었을 때에(곡식 농사를 지음)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을 권고하여 양식을 주셨다”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의 권고 은총이 없었기 때문에 흉년이 든 것인즉 유다 민족이 크게 각성하고 회개하여야 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 같고,

3) 엘리멜렉 가족이 양식을 찾아 이방 나라인 모압땅으로 가서 살게 된 것입니다. “엘리멜렉”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왕이라”는 뜻이고, “나오미”의 뜻은 “즐거움”이란 뜻인즉 하나님을 경외하여 즐거워야 할 가족이 피난을 가고 고향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모압”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출애굽 당시에 발람 사건으로 선민을 많이 죽게 한 족속인데 하나님의 성소 중심으로 율법 따라 살아야 할 백성이 모압으로 간 것은 신앙을 떠나서 식생활 위주로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성도는 3일 쯤 굶어도 믿음을 저버리고 물질주의로 나가면 안되는 것입니다(막 8:1~10).

2. 나오미 가족의 파멸(3~5절).

1) 3절에서 “엘리멜렉” 가족이 모압에서 살던 중 “엘리멜렉”이 먼저 죽고,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게 되었는데 두 아들이 장성하였으므로 모압 여인과 혼인을 하게 되었고, 한 아들 “기룐”은 “오르바” 여인을, 또 한 아들 “말론”은 “룻”을 아내로 맞이 하였는데 10년 쯤 되도록 자식도 없이 말론과 기룐이 다 죽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 시어머니 “나오미”와 두 이방인 자부 “오르바와 룻”만 남은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 가정이 파멸을 당한 것은 모압에 가서 먼저 가장이 죽었고, 두 아들은 장가를 들었으나 하나님이 금하신 일(신 7:3)로 이방여인과 결혼을 한 것이며, 10년 동안 무자 하였고, 또 두 아들까지 죽었으니 파멸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13절을 보면 나오미가 말하기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다” 하였고, 또 20절에서는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다” 하였으며, 21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다” 하였고, 또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다”고 한 것으로 보아 그 파멸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나중에야 깨닫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나중에 고백하였다”는 뜻은 나오미가 남편 엘리멜렉이 죽었을 때 하나님이 징벌하신 줄 알았으면 속히 회개하는 방법을 구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에는 깨닫지 못하였고 두 자부가 10년 동안 생산을 못할 때도 깨닫지 못하였다가 10년 후에 두 아들까지 죽음을 당했을 때에야 깨달은 것입니다. 믿음에서 멀어진 과오를 늦게 깨닫는 바람에 더 큰 징계를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내용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작은 일에서부터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바른 관계 취하는 일을 서둘러야 하는 것입니다.

3. 나오미가 귀향길에 오름(6~7절).

1) 나오미가 귀향길에 오른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① 고향으로 돌아오는 의미가 있고, ② 선민 세계로 돌아오는 의미가 있으니 신약 시대로 말하면 교회를 멀리 하였던 자가 다시 성도의 세계로 돌아오는 것과 같은 것이요. ③ 성소와 율법과 하나님을 멀리한 상태에서 돌아오는 것인즉 마치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회개하는 것입니다.

2) 그래서 나오미는 두 자부를 데리고 유대땅으로 돌아오려고 출발을 한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문제가 있고, 징계를 받는 듯하면 뒤돌아 볼 것 없이 돌이켜야 합니다. 인간적 손해를 감수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귀향을 결심하였을 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권고하셔서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떠났으니 떠난 것은 잘 한 일이요, 어렵지 않게 희망을 갖고 출발한 것입니다. 4. 두 자부의 선택(8~18절).

1) 8~9절에서 나오미는 두 자부들에게 “친정으로 돌아갈 것과 다른 남편을 얻어 행복하기를 축복하면서 자신을 따르지 말 것”을 권하였습니다. 늙은 시모를 따라 낯선 땅으로 가는 것이 친정에서 삶의 길을 찾는 것만 못할 것으로 여겼고, 또 두 자부의 앞길을 고난에서 행복하게 해 주고 싶은 심정으로 권한 것입니다. 그러나 10절에서 두 자부는 1차 권면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2) 11~13절에서는 과부된 젊은 자부들로 하여금 남편을 얻게 하는 방법으로 계대 결혼법이 실현되기 어려운 상황을 말하였으니 이는 신 25:5~10에 나타난 “죽은 남편의 형제들과 결혼하라”는 계명을 두 가지 이유로 실천하기 어려운즉 “따르지 말라”고 권한 것입니다. 두 가지 어려운 점은 12절에서 나오미가 늙었기 때문에 다른 남편을 만나 생산하기 어려운 점이고, 또 한 가지는 생산을 한다해도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13절에서 “어찌 젊은 자부들이 남편 두기를 멈추겠느냐” 하였으니 유다로 가면 계대 결혼 법대로 남편을 둘 가망이 없은즉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권한 것입니다. “나오미”가 이런 뜻을 나타낸 이유는 자신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몸이므로(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심. 13절) 자기와 함께 가는 것이 복 되지 않을 줄로 믿고 두 자부라도 자유와 행복을 누리게 해 주려고 한 것입니다.

3) 14절에서 큰 자부 “오르바”는 나오미의 뜻에 순종하였는데 둘째 자부 “룻”은 효도의 차원에서 늙은 시모를 떠나지 않은 것입니다. 이때 나오미는 15절에서 “동서의 본을 따르라”고 권하였지만 역시 “룻”은 효도의 차원에서 “돌아가라 하지 마옵소서 어머니의 가시는 곳과 어머니의 유숙하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가 죽으시는 곳에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하나님이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다”(16~17절)한즉, 그의 굳은 결심을 보고 더 이상 권하지 못한 것입니다(18절). 여기에서 “룻”의 효성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열망이 대단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 고향에서 환영 받음(18~22절).

1) 19절에서 두 고부가 베들레헴에 도착하였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베들레헴에서는 “온 성읍이 그들을 인하여 떠들며 나오미가 왔느냐”하고 반가움을 나타내 주었으니 이것도 큰 축복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2) 20~21절에서 나오미는 자신의 을씨년스러운 입장과 반대되는 환영을 받는 것이 오히려 괴로웠는지라 “나를 나오미(희락)라 하지 말고 마라(괴로움. 출 15:23)라 하라” 하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치셔서 어려움을 당하고 괴롭게 돌아 온 것을 사실대로 말하였으니 이는 자신의 입장을 진실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3) 22절에서 이 시기는 베들레헴에서 “보리 추수를 시작할 때”라고 하였습니다. 나오미는 돌아옴과 동시에 환영을 받았고, 또 추수 시기에 옴으로 형통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교훈 받으셔야 할 중요한 내용들이 있으니 ① 나오미가 하나님을 의식한 깨달음이 더뎠음을 알 수 있고, ② 이 사건에서 하나님이 개인 가정을 통치하시는 섭리를 나타내 주신 것을 알 수 있으며 ③ 나오미의 타락(하나님을 멀리 한 것)과 회복의 과정을 보여 주신 점과 ④ 룻의 효도가 손해로운 일 같지만 그렇지 않음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⑤ 또 깨닫지 못하는 자가 10년쯤 지났을 때 재앙을 주신 섭리도 기억하게 하시는 대목이라 할 것입니다. 완악한 자들이 대부분 범죄한지 10년쯤 되어 채찍을 맞는 경우를 필자는 많이 보았습니다.

 

제 2 과 룻기 2장 강론 목록으로


2장의 내용을 읽고 총 제목을 잡는다면 “형통하는 절차” 또는 “형통케 하시는 섭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오미의 가족을 형통케 하시는 섭리로서 사건의 전개는 나오미가 유다로 돌아온 다음부터 시작되었고, 나오미의 친족 중 유력한 인물로 “보아스”가 예비되어 있었으며 룻은 효도를 하였으니 이는 늙은 시모를 떠나지 않은 것과 시모를 섬기기 위하여 부지런히 이삭 줍는 활동을 한 것이요, 우연히 보아스의 농장에 가서 이삭을 줍다가 “보아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보아스로부터 칭찬과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3절에서 “우연히(계획없이 행한 일)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의 밭에 이르렀다” 하였지만 이런 일이 하나님의 인도 섭리임을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보아스와 룻 사이에서 오벳을 낳고 오벳이 다윗의 할아버지요, 예수님의 족보 계열인즉 하나님이 섭리하신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마 1:5~6).

1절에서 나오미는 엘리멜렉 친족 중 유력한 인물(富戶, 관주)로 “보아스”가 있음을 말하였고, 2절은 “룻”이 이삭을 주으러 나감에 있어서 “시모의 허락을 받는 내용”이며, 3절은 “룻의 발걸음이 보아스의 밭으로 가게 된 사실”인데 사람은 우연히 행한 것이라도 하나님은 그의 발걸음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꼭 잠 16:9, 시 121:8을 읽어 보십시오. 4절은 “보아스가 자기 농장에 와서 일하는 농부들에게 축복한즉 그들도 보아스에게 축복하는 은혜로운 내용”이 기록되었고, 이 축복은 이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12절에서 보아스가 룻의 신분을 알고 그를 만났을 때 “하나님이 그의 선행대로 보응하시며 상 주시기를 축복” 하였고, 또 20절에서는 “보아스”가 룻에게 은혜 베푼 사실을 알게 된 나오미가 보아스에게 “여호와의 복이 그에게 있기를 원하노라”하고 축복하였으니 이들의 세계가 축복의 세계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5~7절은 보아스가 이삭을 줍는 낯선 여인의 신분을 물어 그가 나오미의 자부임을 알게 되는 사실과 그가 이삭 줍는 일에 근면한 것을 확인하는 내용이며 8~9절은 “보아스”가 룻에게 “자기 밭에서만 이삭을 줍고 다른 곳에 가지 말 것과 물도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같이 먹을 것을 권하여 은혜를 베푸는 내용”이고, 10절에서 “룻”이 보아스에게 절하며 자신이 이방에서 온 자이거늘 어찌하여 친절과 은혜를 베푸시느랴고 하자 11~12절에서 “룻”이 효부로서 낯선 땅에 까지 온 것을 알기 때문인즉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하나님의 따뜻한 보호의 은총을 뜻함. 마 23:37, 신 32:11)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바란다”고 축복한 것입니다. 13절에서 “룻은 보아스의 은혜에 감사하고 은혜 힘입기를 원한다”고 하였으며 14~16절에서는 보아스가 식사 때에 룻을 한 자리에 앉게 하여 음식을 제공하였고, 수확하는 소년들에게 단 사이에서 줍게 할 것과 책망하지 말 것과 오히려 한 줌씩 뽑아 버려서 줍게 하도록 하였으니 이는 룻에게 은혜 베푼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17~18절은 룻이 저녁까지 이삭을 주어 보리 한 에바(한 말쯤)를 만들어 집으로 가서 시모에게 보이고 자신이 받은 음식 중에서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시모에게 대접한 내용이며, 19절은 “나오미”가 룻이 많은 소득을 얻어 온 것은 분명 누구의 은혜를 힘입음인 줄 알고 그에게 복이 있기를 축복하였는데 룻의 말을 통하여 그가 보아스임을 알게 되자 20절에서 “여호와의 복이 그에게 있기를 원한다”하므로 2차 축복을 또 하면서 “그는 우리의 근족이며 기업을 무를 자 중 한 사람인데(레 25:25) 그가 생존자(나오미와 룻)와 사망자(죽은 남편)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않는다”고 치하와 감사의 뜻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 때에 룻은 21절에서 “보아스가 추수 끝날 때까지 다른 밭에 가서 사람을 만나지 않음이 좋다고 한 말”을 전하였고, 22절에서는 나오미도 그 뜻을 좋게 여겨 승낙하였으며, 23절에서 “룻은 추수가 끝나기까지 그 밭에서만 이삭을 줍고 시모와 함께 거하였다”고 하였습니다. 20절의 “기업을 무를 자 중 한 사람”이란 한 가문이 쇠하여 기업을 다 팔고 없어졌을 때 그 기업을 회복시켜 주어야 할 책임이 가까운 집안 사람에게 있다는 율법에 근거하여 설명한 것입니다. 레 25:25과 신 25:5~10을 읽어 보십시오.

이상의 말씀에서 저희들이 깨달으셔야 할 것은 룻과 보아스의 덕행이며 또 하나님이 나오미의 가족에게 은혜 베푸시는 섭리를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1. 룻의 덕행은 시모를 섬기는 효도인데 매사를 어른과 의논하고 허락을 받아 시행하며, 근면하고 자기의 노력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보아스 앞에서 은혜를 받을 때 감사한 줄 알고 또 이방 여인이란 자신의 분수를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룻”은 잠 31:10의 덕행있는 여인에 해당하는 바 이런 덕행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2. 보아스의 덕행입니다. 그는 나오미 가문을 위하여 “평소에도 은혜를 베풀었다”고 하였습니다(20절). 그는 룻의 덕행을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고, 룻에게 선대하되 이삭을 줍게 하는 일과 다른 밭에 가지 않게 한 일과 소년들로 하여금 그를 해롭게 하지 말 것과 보리 이삭을 한 줌 씩 버려 많이 거두게 한 것과 물과 식사를 제공한 일과 먹고 남은 음식을 가지고 가게 한 것까지 주밀하게 배려한 것입니다. 소자를 살펴주는 덕행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마 25:45).

3. 하나님이 나오미의 가족을 복되게 하시기 위하여 섭리하신 은혜입니다. 그 은혜는 룻의 효행과 고부간의 사랑으로 나타났고, 룻의 발걸음을 인도하사 은인을 만나게 하시는 것으로 전개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는 방법 중 가장 많이 쓰시는 것이 은인을 만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만남의 대상을 항상 하나님의 은혜 베푸시는 섭리로 믿으시고 유의하셔야 합니다.

 

제 3 과 룻기 3장 강론 목록으로


본문의 총 제목은 “계대 결혼을 추진함”으로 정할 수 있습니다. 나오미의 몸은 늙었지만 그는 두 가지 큰 책임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자신을 위하여 효도하는 며느리, 룻을 행복하게 살도록 힘써 주어야 할 사명과 또 한 가지는 몰락한 엘리멜렉의 가문을 이어 계대 시킬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율법이 있으니 하나는 계대 결혼법이고(신 25:5~6), 또 하나는 근친이 기업을 무러주도록(없앤 것을 회복시켜 주는 뜻) 제정한 법입니다(레 25:25). 그 때 나오미는 가장 가까운 친족이 “보아스”인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사실은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한 사람 있었음. 12절). 그래서 룻으로 하여금 보아스를 상대로 계대 결혼을 하도록 지도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이기 때문에 누구와 의논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법대로 시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장 가까운 친족이면 계대 결혼을 할 수 있고, 계대 결혼을 할 입장이면 기업을 무러 줄 책임도 함께 지게 되는 것입니다. 신 25:5~6에서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 들어가라” 하셨지만 이 말씀은 가장 가까운 혈족을 우선하라는 뜻이요, 그 이상의 친족은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따라서 계대 결혼으로 아내를 취할 때는 그 여인에게 딸린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서라도 기업을 무러주든지 아니면 그 생계를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엘리멜렉 가족은 유다를 떠날 때 “풍족하게 떠났다” 하였으니(1:21) 그 풍족이 “기업을 처분한데서 마련한 것”일 것입니다. 따라서 룻을 취하고 기업을 회복시켜 주려면 그만한 재산도 있어야 할 것인즉 나오미는 보아스를 적임자로 믿었던 것이요, 보아스가 은혜를 베풀고 책임을 이행할 때 형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이 형통하려면 하나님의 섭리적 인도와 보아스의 사랑과 룻의 현숙한 여인 됨이 합력하여 성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① 1~4절은 “나오미가 룻을 지도함”이고, ② 5~7절은 “룻이 복종함”이요, ③ 8~15절은 “보아스의 태도”이고, ④ 16~18절은 “시모에게 고함”입니다.

1. 나오미가 룻을 지도함(1~4절).

1절은 나오미가 룻의 행복을 위하여 “안식할 곳(가정)을 구하여야 한다”는 내용이고, 2~4절은 “보아스가 친족 즉 계대 결혼의 대상인즉 그의 잠자리를 알아둔 후 몸을 단장하고 그의 눕는 곳에 가서 몸을 대라” 하였으니 이는 계대 결혼을 시도하는 뜻입니다. 보아스가 시녀들을 둔 것은 야곱이 네 사람의 처를 거느린 것처럼 사사 시대에 부요한 자들이 시행한 일이었습니다.

2. 룻의 복종함(5~7절).

5절에서 룻은 “시모의 말씀대로 다 행할 것이라” 하므로 효도의 순종미를 나타냈습니다. 이 때 룻은 젊은 남자에게 시집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6~7절에서 보아스가 노적가리 곁에 누울 때에 룻이 가만히 가서 그 발의 이불을 들고 누웠으니 그 시기는 타작 시기이기 때문에 보아스가 곡식을 지키는 목적으로 노적가리에서 잠을 자게 된 것이요, 룻은 시모의 지도에 따라 하나님의 율법 실천을 시도한 것입니다.

3. 보아스의 태도(8~15절).

8절에서 보아스는 밤중에 자기 옆에 여인이 누운 것을 인하여 깜짝 놀랐고, 9절에서 룻은 자기의 신분을 말한 후 보아스가 기업을 무를 대상이기 때문에 그리한 것인즉 “당신의 옷자락(야숙하면서 의복으로 이불을 겸한 것)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하였으니 이는 몸을 맡긴다는 뜻이었습니다. 10절에서 보아스는 룻을 칭찬하고 축복하였으니 이 칭찬과 축복의 근거는 룻이 “빈부를 따지지 않은 상황에서 가난한 시모를 따라 온 것과 또 계대 결혼의 대상을 젊은이 중에서 택하려 하지 않고(모압에 있었으면 그렇게 할 수도 있음) 늙은 보아스 곁에 왔은즉 그의 베푼 인애(나오미와 보아스를 위한 뜻)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다”고 칭찬하였으니 처음의 인애는 나오미에 대한 효도이고, 나중의 인애는 보아스를 상대로 한 계대 결혼에 순종한 것입니다. 보아스는 젊은이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10절의 “연소자를 좇지 않았다”는 말씀에서 추론된 결과인즉 적당히 추측하실 수 있습니다. 11절에서는 “보아스가 룻을 위로하고 잘 이행할 것을 약속하면서 룻이 현숙한 여인 임을 온 성읍 백성들이 다 안다”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12~13절에서는 보아스가 아는대로 “자기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한 사람 있은즉 그에게 먼저 책임을 묻고 그가 그 책임을 포기한다 하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 하였은즉 이는 보아스의 합당한 처신인 것입니다. 더 가까운 친족의 책임과 특권을 무시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14절에서 그리하여 룻으로 하여금 아침까지 눕게 하였다가(13절) 사람의 눈을 피하여 돌아가게 하였으니 이는 더 가까운 친족이 두 사람 사이를 오해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조심한 태도입니다. 15절에서 보아스도 룻이 떠날 때 룻의 옷자락을 자루로 삼아 보리를 여섯 번 되어(머리 위에) 이어 주었으니 여섯 번 되어 준 의미는 알 수 없으나 구제를 베푼 뜻이 있는 것입니다.

4. 시모에게 고함(16~18절).

16~17절에서 룻은 집에 돌아와 시모에게 사실대로 고하였습니다. 18절에서 나오미는(신념을 갖고 말하기를)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 까지 가만히 앉아(지켜 볼 것이요) 그 사람이 이 일을 성취하기 까지는 쉬지 않을 것이라” 하므로 확신하는 기대를 걸고 있었던 것입니다. 좋은 일은 쉽게 성취되지 않습니다. 또 절차와 시일을 끄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섭리하시면 모든 절차와 난관을 헤치고라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연구를 요하는 부분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2절에서 나오미의 두 아들의 이름이 말론과 기룐이라 하였으니 말론이 첫째이고, 기룐이 둘째로 보아야 하겠지요(성경에 아우를 앞세우는 기록이 거의 없음). 그 다음 4절에서 자부의 이름은 “오르바와 룻이라” 하므로 말론의 아내가 오르바이고, 기룐의 아내가 “룻”인 것으로 예측합니다. 그리고 5절에서 “말론과 기룐이 다 죽었다” 하실 때, 죽음의 순위를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4:10에서는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이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그 동안 룻을 둘째 자부로 인식하였던 것을 첫째 자부로 이해하시든지 아니면 룻의 남편 기룐이 먼저 죽으므로 계대 결혼 법에 의하여 말론의 아내가 되었다가 말론이 또 죽은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필자의 생각은 후자가 맞는 듯 합니다.

 

제 4 과 룻기 4장 강론 목록으로


본문 ① 1~8절은 “기업 무를 자의 포기”요, ② 7~10절은 “보아스가 기업을 삼”이며 ③ 11~12절은 “성읍 백성들의 축복”이요, ④ 13~20절은 “메시야 계열에 오름(결론)”입니다. 따라서 총 제목을 “룻이 보아스와 혼인함”으로 정할 수 있습니다.

1. 기업 무를 자의 포기(1~8절).

1절에서 보아스가 만남의 광장도 되고 송사에 대한 재판도 하며 중대사를 결정하는 장소인 성문에 나가 그 기업 무를 자(돈을 주고 사서 다시 찾는 뜻) 곧 엘리멜렉의 가장 가까운 친족을 만났습니다. 그리하여 그를 그 성문 광장에 앉게 한 후에 2절에서 보아스가 성읍 장로(당시 원로급으로 재판 또는 증인 역할하는 사람들임) 10인을 청하여 앉게 하였으니 이는 그 성읍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제도에 해당한 것입니다. 3절에서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나오미 가정의 사정을 알렸으니 그 내용은 “우리 형제(집안 근족이란 뜻) 엘리멜렉의 소유지(땅, 분배 받은 기업)가 있는데 그와 그 아들들이 죽었으므로 남은 가족 나오미가 관할하고 있은즉 이 곳의 장로들(증인 10인)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한 것입니다. 소유 명의는 엘리멜렉으로 되어 있으나 그는 이미 죽었고, 또 그 가족이 모압으로 갈 때 돈을 받고(1:21) 타인에게 경작권을 내준 듯 합니다. 흉년들어 농사 지을 수 없은즉 모압으로 피하면서 값을 받고 주었은즉 다시 찾아야 하는데 그 가문에 남자가 없으니까 1차는 근족이 도와주어야 하고, 2차는 룻이 젊은 여성인즉 근족과 계대 결혼을 하여 자녀를 생산하면 그 가문을 이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4절에서는 나오미 가족의 사건을 알린 것과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우선권을 준 사실과 그가 책임을 포기하면 그 다음 서열인 “보아스”가 시행하겠다 한즉, 그 가장 가까운 친족이 “자신이 하겠다”고 선언을 하였습니다. 5절에서는 엘리멜렉 소유로 된 기업을 살아 있는 그의 처 “나오미”에게 사되(소유지 밭의 대가를 나오미에게 주면 나오미는 그것으로 경작권을 다시 찾아야 함) 겸하여 죽은 자의 아내인 모압 여인 룻에게서도 사서 그 명의를 죽은 자(말론을 뜻함)의 이름으로 이어가게 해야 한다고 한즉, 6절에서 그는 자기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포기할 것을 선언하고, 보아스에게 넘겨준 것입니다. 여기에서 1차 기업 무를 자가 손해 볼 것을 우려한 것은 밭 값을 주고 경작권을 찾아도 나오미와 룻이 관리 및 경작자가 되기 때문에 그들의 생계 문제와 관련하여 꺼린 것입니다. 나오미는 늙었은즉 노동력이 없고, “룻”은 이방 여인이므로 달갑지 않게 여긴 것입니다.

2. 보아스가 기업을 삼(7~10절).

7~8절에서는 무슨 사건을 결정할 때 “신을 벗어 주는 관례”가 있었으니 이것은 결정을 확실히 한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회의할 때 고퇴를 세 번 두드리는 것과 같고 또 계약서에 날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신을 벗어 상대방에게 주는 것은 포기 및 양보를 뜻하는데, 1차 기업 무를 자는 보아스에게 신을 벗어 준 것입니다. 9절에서 “보아스”는 증인들 앞에서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 명의로 된 소유지(밭)를 살아 있는 사람 나오미와 룻에게서 사서(밭 값을 나오미와 룻에게 주는 뜻. 나오미는 그 값으로 경작권 인수를 받아야 함) 엘리멜렉 가문의 명의로 하고(10절의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집안의 남자인 룻의 본 남편 말론의 이름으로 잇게 하는 뜻.) 10절에서는 말론의 아내 룻을 사서 아내를 삼아 그 가문을 이을 것을 증인들 앞에서 선언한 것입니다. “룻을 산다”는 뜻은 옛날에 여인을 맞이 할 때 값을 준 관행입니다. 그러나 이 집안의 경우는 근족이 가문을 계승시킬 의무로 계대 결혼을 하면서 사게 된 것입니다.

3. 성읍 백성들의 축복(11~12절).

11~12절은 위의 일이 성취 되자 성문에 있던 모든 백성들과 증인들이 그 일의 증인도 되어 주고, 또 크게 축복하였으니 “네 집에 들어 간 여인(룻)이 이스라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처럼 되고 또 다말이 시부 유다를 만나 베레스를 낳으므로 족보를 계승시킨 것처럼 되기를” 축복하였습니다. 여기의 다말과 유다의 관계는 창 38:7~30에 기록되었습니다. 짐작으로는 보아스에게 후사가 없은 듯하고, 있었다 하여도 이것은 룻과 관련하여 엘리멜렉 가문을 살펴 주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4. 메시야 계열에 오름(결론. 13~20절).

13절은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아들을 낳은 사실이고, 14절에서는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축하한 내용으로 “기업 무를 자가 없지 않게 하심”은 남자로서 대를 잇게 하셨다는 뜻이요, 15절에서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로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라” 하므로 후사의 복됨을 축하한 것입니다. 16절에서는 나오미가 손자를 품에 앉고 양육자가 되었으며 그 여인들이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을 “오벳”으로 지었으니 “오벳”의 뜻은 종이라고 합니다. 어른을 받들 종이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17~22절에서는 오벳으로부터 다윗까지의 계보를 기록하므로 오벳이 다윗의 할아버지인 사실과 유다의 아들 베레스로부터 다윗까지 9대의 계보를 기록하였으니 이 룻기가 다윗 출생 이후에 기록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유다와 다말 관계, 또 보아스와 룻 관계처럼 묘하게 이어지는 것을 나타내 주셨고, 한 가정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나오미와 룻을 형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도를 교훈하신 것입니다. 특히 룻의 효도와 보아스의 덕행은 스스로 복 받는 좋은 방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설교보충 1. 룻기를 읽고 (룻 1:1~18) 목록으로


필자는 룻기를 읽고 많은 교훈을 받았습니다.

1. 사사 시대에 베들레헴에 한 선민 가족이 있었으니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 그리고 성장한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었습니다. 이 가족 구성으로 볼 때 딸은 없지만 두 아들이 있은즉 희망이 있는 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 흉년이 들었으니 이는 하나님의 권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6절에 보시면 “하나님의 권고로 그 땅에 양식을 주셨다” 하였은즉 흉년 그 자체는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어려움이 있을 때는 선민들이 더 단합하여 회개를 힘쓰고 하나님의 권고가 있기를 기도하여야 할 것인데 나오미의 가족은 있는 재물을 가지고(1:21) 요단강 동편 이방인들이 사는 모압 땅으로 이사를 갔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채찍을 순종함으로 맞지 않고 채찍을 피하여 달아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성도는 어려운 일을 당하였을 때 항상 자기의 허물을 살피고 회개를 힘써야 합니다. 회개 없이 수단으로 방책을 세우면 더 큰 매를 맞게 됩니다. 나오미의 가족이 베들레헴을 떠난 것은 선민 세계를 떠나서 재물을 따라 이방 세계로 갔은즉 하나님과 재물 중 또 선민과 이방인 중 재물과 이방 세계를 택한 것이니 참으로 크게 잘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처음에 그 잘못을 알지 못한 모양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가장(家長) “엘리멜렉”을 거두셨습니다. 그 때에도 나오미는 깨닫지 못하고, 두 아들을 모압 여인과 혼인을 시켰으니 그 자부가 “오르바와 룻이라” 하였은즉 이는 표기된 순서로 볼 때 첫 아들 말론의 아내가 오르바이고, 둘째 아들 기룐의 아내가 “룻”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아들이 혼인한지 10년이 되도록 무자하였으니 성경에는 징계로 태를 닫으신 사례가 있습니다(창 20:18, 30:22, 삼하 6:22~23). 그런데 그 가족은 10년 동안 무자한 중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권고가 없기 때문이란 사실을 모르고 지나다가 두 아들이 다 죽었을 때에 비로소 깨달은 것입니다. 13, 21절에 보시면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다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나를 징벌하셨다” 하였으니 가정이 거의 황폐된 후에야 깨닫고 돌이킬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이 때에 “나오미”가 결심하고 시행한 것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믿음을 일으키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야 하겠다는 것이요, 또 하나는 젊은 두 자부에게 몰락한 가정의 짐을 지우지 않고 스스로 자유롭게 하여 자기들 고향에서 행복을 찾도록 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로 오는 도중에 두 자부에게 “친정 쪽으로 돌아가서 행복을 찾으라”고 강하게 권면한즉 오르바는 시모의 뜻을 따랐지만 룻은 시모의 말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룻이 응하지 않은 이유는 시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을 자기도 섬기고,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은 상태에서 효도의 사명을 다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계명의 강령은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 사람을 사랑함에 있어서 첫 순서는 부모 공경입니다. 룻이 시모를 따르려는 목적이 시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효도에 목적을 두었은즉 복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고부간의 사랑과 화합을 배울 수 있고, 두 고부가 처량한 상태로 고향에 온 것입니다. 나오미는 늙고 자식들이 먼저 죽었으니 처량하고 룻은 과부의 신세로 또 이방 여인으로서 유다에 왔으니 역시 처량한 신세인데 유다 베들레헴에 와서 새 출발을 하였을 때 형통하기 시작하였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 섭리로 이루어지는 은혜인 것입니다 .첫째는 “나오미가 왔다” 하면서 동리 사람들이 환영을 하였고, 그 다음에는 룻이 효도하는 며느리로 나오미를 섬기기 위하여 친정을 버리고 왔다는데 대하여 큰 칭찬과 호감을 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의 칭찬으로부터 주어집니다. 마침 유다에 왔을 때는 보리 수확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이삭만 주으면 양식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므로 룻이 보리 이삭을 주으러 나갔는데 룻은 2:3에서 우연히 보아스의 밭으로 가게 되었지만 하나님은 성도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이라(잠 16:9) 실은 하나님이 그렇게 인도하신 것입니다. 보아스의 농장에서 일하는 소년들은 그를 알아보았고, 나중에 밭 주인 보아스가 룻을 알게 된 다음에는 물과 식사를 주면서 이삭을 한 줌 씩 뽑아 버려 그로 하여금 많이 줍게 하라 하였으며 돌아 갈 때는 먹고 남은 음식을 가지고 가게 하여 나오미를 섬기게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도가 이런 일을 우연으로 여기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보아스가 은혜 베푼 사실을 알게 된 “나오미”는 그가 집안의 근족인 만큼 나오미의 기업을 회복시켜 줄 책임자임을 알고, 보아스와 룻을 계대 결혼 시킬 계획을 시도하였는데(신 25:5~10, 레 25:25) 그것이 잘 성사되어 그 가족이 안식처를 찾게 되었고, 룻과 보아스 사이에서 “오벳”을 낳으니 그가 다윗의 할아버지가 되었으며, 또 오벳과 보아스가 메시야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 망했어도 큰 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 믿음과 행실만 바르면 주십니다. 복 받을 자의 발걸음을 복 되게 인도하시고 후원자를 만나게 하시며 모든 일을 형통하게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룻기를 통하여 아주 많은 것을 깨달았기로 몇 말씀 증언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