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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강론

저자 지영근 목사

목 차


먼저 드리는 글 3

제1과 군사를 계수함 (민 1:1~54) 6 바로가기

제2과 진치고 행진하는 법 (민 2:1~34) 9 바로가기

제3과 레위 지파의 업무 편성 (민 3:1~51) 11 바로가기

제4과 역군 계수와 업무 (민 4:1~49) 14 바로가기

제5과 부정, 피해, 의심의 법 (민 5:1~31) 16 바로가기

제6과 나실인의 법 (민 6:1~27) 19 바로가기

제7과 성소 봉헌 예물과 제물 (민 7:1~89) 22 바로가기

제8과 레위 지파 구별 의식 (민 8:1~36) 24 바로가기

제9과 유월절 규례 보충과 행진 (민 9:1~23) 26 바로가기

제10과 은나팔 제도와 행진 (민 10:1~36) 28 바로가기

제11과 메추라기를 주신 경위 (민 11:1~35) 31 바로가기

제12과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함 (민 12:1~16) 35 바로가기

제13과 정탐을 보냄 (민 13:1~33) 38 바로가기

제14과 정탐 보고의 결과(1) (민 14:1~19) 41 바로가기

제15과 정탐 보고의 결과(2) (민 14:20~45) 44 바로가기

제16과 여러 가지 율례 (민 15:1~41) 46 바로가기

제17과 반역당 진압 (민 16:1~50) 49 바로가기

제18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 (민 17:1~13) 52 바로가기

제19과 레위 지파의 책임과 분깃 (민 18:1~32) 54 바로가기

제20과 정결수와 결례법 (민 19:1~22) 57 바로가기

제21과 신광야에서 호르산까지 (민 20:1~29) 59 바로가기

제22과 호르산에서 비스가산까지 (민 21:1~20) 61 바로가기

제23과 아모리와 바산을 정복함 (민 21:21~35) 64 바로가기

제24과 발락이 선민을 저주하려 함 (민 22:1~20) 66 바로가기

제25과 발람이 발락에게로 감 (민 22:21~41) 68 바로가기

제26과 발람의 제사와 하나님의 계시 (민 23:1~30) 70 바로가기

제27과 발람의 선지자 역할 (민 24:1~25) 72 바로가기

제28과 발람이 다녀간 결과 (민 25:1~18) 75 바로가기

제29과 족보와 후기의 통계 (민 26:1~65) 77 바로가기

제30과 기업 계승과 직분 계승 (민 27:1~23) 79 바로가기

제31과 각종 제사와 제물 (민 28:1~31) 81 바로가기

제32과 속죄일과 초막절 행사 (민 29:1~40) 84 바로가기

제33과 서원의 실천 규례 (민 30:1~16) 86 바로가기

제34과 미디안을 쳐부심 (민 31:1~54) 88 바로가기

제35과 르우벤, 각 자손의 특청 (민 32:1~42) 91 바로가기

제36과 선민의 진행 노정과 실천 명령 (민 33:1~56) 94 바로가기

제37과 4방 경계와 분배 책임자 (민 34:1~29) 96 바로가기

제38과 레위인 거처와 도피성 (민 35:1~34) 97 바로가기

제39과 딸들의 기업 보존 (민 36:1~13) 99 바로가기



먼저 드리는 글


하나님의 은혜로 민수기 강론을 짧은 기간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고백하건데 이 강론은 본문 내용을 이해하시기 쉽도록 설명하였고, 여기에서 주시는 영적 교훈에 대하여는 간간히 짧은 내용으로 교훈을 피력한 것이 있기는 합니다만 많이 연구하지 못하였습니다.

아무쪼록 초신자님들이 성경을 읽으신 후에 이 강론을 또 읽으시면 상당한 도움이 있으시리라고 믿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성경의 문자를 살피면서 깊이 연구하며 상고하는 성도님들이 얼마나 계실까 하는 것입니다. 필자가 오랫동안 집필에만 몰두하다 보니 성경 전체의 역사적 지식이 많이 흐려져서 혹 잘못 기재한 부분도 나타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 대하여 깨우쳐 주시고 교정할 기회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필자의 목표는 자신이 증언하고 생각한 바를 글로 남기면서 홈페이지, 인터넷이나 출판물로 많이 보급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현재도 홈페이지와 모든 집필 문서를 정리하는 중에 있습니다. 홈페이지 www.ncbc.or.kr을 이용해 주십시오. 그리고 남은 과제를 계속 잘 진행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04. 7. 30.


저자 지 영 근

 

제 1 과 군사를 계수하심 (민1:1-54) 목록으로


민수기 1장을 읽고 내용분류를 한다면 ①1-2절은 “장정계수를 명하신 말씀”이요, ②3-16절은 “지파별 두령을 임명하신 말씀”이며 ③17-46절은 “20세 이상 장정을 계수한 내용”이요, ④47-54절은 “레위 지파의 직임을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1. 장정계수를 명하신 말씀(1-2절).

하나님께서는 선민이 출애굽한지 2년 2월 1일에 시내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가족과 종족을 따라 20세 이상 싸움에 나갈만한 장정을 계수하되 아론과 함께 이를 시행하라”고 하셨습니다(1-2절).

1)이 시기는 출애굽 2년 2개월 되었을 때요, 장소는 시내광야의 회막으로 제사 드리는 성막을 뜻합니다. 2년 2개월 이전의 역사는 출애굽기에 기록된 것으로 보셔야 하며 출애굽기 마지막부분(35장, 40장)에서는 “성막 제조를 끝내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에 따라 진행한 내용”까지 기록되었으므로(출40:33-37) 민수기 1장에 나타난 시내광야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 성막 제조를 끝낸 다음 행진을 시작한 후 처음 진을 치고 휴식한 장소로 짐작됩니다. “시내광야”란 지도에서 확인하실 수 있는 바와 같이 시나이반도를 의미합니다. 시나이반도는 사방 직경이 300㎞쯤 되는 사막지대로서 우리나라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합친 것 만한 넓이의 땅입니다.

2)하나님께서는 계시를 주실 때에 모세를 으뜸선지자로 세우신 만큼(민12:4-14) 말씀을 모세에게 나타내셨고, 또 모세의 형 아론과 함께 명령을 시행하도록 하셨습니다(3절 “너와 아론은”).

3)여기의 선발대상은 “20세 이상의 남자로 싸움에 나갈만한 자”이므로 어린이, 노인, 여자는 제외되었고, 연령의 상한선은 없으며(수14:10-12) 건강하여도 정신적 결함이 있을 때는 싸움에 나갈 수 없으므로 제외되었을 것입니다. 장정이외의 수를 중요시하지 않은 이유는 만나를 필요한 만큼 주시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선발절차는 “가족과 종족을 따라 시행하라(20절)” 하셨은즉 매 가정에서 선발하고 그 다음에 종족별로 뭉치게 한 것입니다.

4)왜 이런 장정이 필요하였을까요? 우선 이방족의 침략을 막기 위한 방어책과 백성의 치안을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신약의 성도들이 교훈 받아야 할 것은 행7:38에서 선민의 단체를 “광야교회”라 하셨은즉 성도의 신앙생활도 전투적이어야 할 것임을 교훈 하신 것입니다(마11:12, 엡6:10-17, 딤후2:3-4).

구약의 선민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하여 나온 것처럼(출9:1) 신약시대 성도들의 교회생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목적을 시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의 역사는 그림자처럼 따르며 훼방을 하므로 이와 대적하여 싸우는 전투적 생활을 하여야만 믿음생활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음을 배우셔야 할 것입니다.

2. 지파별 두령을 임명하신 말씀(3-16절).

1)모세와 아론은 먼저 매 지파에 두령을 한 사람씩 임명하였으니 이 임명은 하나님이 지명하신 대로 선포만 한 것입니다. 5절 말씀에서 “너희와 함께 설 사람들의 이름은 이렇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파 별로 지명해주셨는데 지명된 자의 아버지 이름을 거론한 것은 동명이인의 혼돈을 피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르우벤 지파의 ‘엘리술’, 시므온 지파의 ‘슬루미’, 유다 지파의 ‘나손’, 잇사갈 지파의 ‘느다넬’, 스블론 지파의 ‘엘리압’, 에브라임 지파의 ‘엘리사마’, 므낫세 지파의 ‘가말리엘’, 베냐민 지파의 ‘아비단’, 단 지파의 ‘아히에셀’, 아셀 지파의 ‘바기엘’, 갓 지파의 ‘엘리아삽’, 납달리 지파의 ‘아히라’”가 임명을 받은 것입니다. 이들은 다 하나님이 보실 때 적임자로 여김 받은 자들일 것입니다.

2)레위 지파는 제사직 직임(제사장 및 성막 직임)으로 특별한 직임을 주셨으므로 제외되었고, 요셉 지파가 장자의 몫을 받기 때문에 큰아들 므낫세와 둘째아들 에브라임으로 두 지파의 기업을 받게 되었으므로 레위 지파를 제하고도, 12 지파의 구성요원이 된 것입니다. 르우벤이 장자이지만(창29:32) 아비의 첩 빌하와 통간한 연유로(창35:22) 야곱이 그에 대한 축복을 통제하였고(창49:3-4), 따라서 장자의 명분을 요셉에게로 돌렸습니다(대상5:1-2). 장자는 갑절의 기업을 받았습니다(선21:17). 이리하여 모세와 아론은 레위 지파의 두령이 된 셈이고, 다른 12 지파의 두령 12명을 포함하여 “천만인 두령이라”(16절) 하였으니, 이 “천만인”이란 수는 장차 크게 번성할 선민을 내다보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3. 20세 이상의 장정을 계수한 내용(17-46절).

1)각 두령은 모세의 명에 따라 자기 지파에 장정을 계수 하여 보고하였으니, 르우벤 지파 46,500명, 시므온 지파 59,300명, 유다 지파 74,600명, 갓 지파 45,650명, 잇사갈 지파 54,400명, 스블론 지파 57,400명, 에브라임 지파 40,500명, 므낫세 지파 32,200명, 베냐민 지파 35,400명, 단 지파 62,700명 아셀 지파 41,500명, 납달리 지파 53,400명 도합 603,550명이었습니다. 여기에 기록된 지파의 순서는 특별한 의미가 없고 보고 받은 순서대로 기록한 듯 하며, 10명 이하의 수가 없도록 한 것은 헤아리기 좋도록 조정하였을 것입니다.

2)유다 지파의 장정 수가 가장 많은 74,600명이고,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의 수로 합한 요셉 지파가 72,700명이므로, 요셉이 연소자의 지파로 크게 번성한 것을 알 수 있으니, 이는 창49:22의 “요셉은 무성한 가지라”하신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3)여기의 장정이 603,550명이면 출애굽 총인구는 대략 얼마나 되었을까요? 아마 노인들과 여인들과 어린이를 포함한다면 약 3배로 가산하여 200만 명쯤으로 추산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입니다.

4)중요한 것은 장정만 계수 한 것입니다. 힘쓰는 자 중심으로 가정과 단체를 통솔함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장정감 성도(믿음으로 힘쓰는 자)를 찾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4. 레위 지파의 직임(47-54절).

1)47-49절에서 레위 지파는 다른 지파처럼 “장정 계수 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2)그 이유는 전쟁에 나가지 않고 증거막(장막 또는 법막)과 그 모든 부속품을 운반, 설립, 관리하는 것을 책임져야하기 때문입니다(50-53절).

3)“외인이 가까이 오면 죽여야 하고(51절), 관리하고 지키는 사명을 편리하게 하기위 하여 증거막 사면에 진을 치고 살아야한다(53절)”고 하셨습니다.

4)이렇게 할 때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는다(53절)”고 하셨으니, 성소의 신성함과 하나님 명령의 존엄성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소의 신성함과 존엄성이 지켜지지 않을 때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화를 내리시기 때문에 그것을 면하기 위하여 성소를 신성하게 관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신약시대의 성도들이 자신의 신앙생활을 거룩하게 보존하여야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레위 지파 중 아론의 후손은 제사장직에 봉하였고(출28:1), 그 남은 레위 지파는 전부 성막 봉사를 맡게 하신 것입니다.

 

제 2 과 진 치고 행진하는 법 (민2:1-34) 목록으로


민수기 2장에서 선민 12 지파가 “진을 치고 행진하는 법”을 말씀하여 “그대로 시행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① 1-2절은 “모세와 아론에게 명하신 말씀”이고, ② 3-9절은 “회막의 동방진”이요, ③ 10-16절은 “회막의 남방진”이며 ④ 17절과 33-34절은 “레위 지파의 진과 진행을 명하신 말씀”이고, ⑤ 18-24절은 “서방진”이며 ⑥ 25-32절은 “북방진과 총계”를 말씀하셨습니다.

1. 모세와 아론에게 명하신 말씀(1-2절).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여금 각각 그 기와 종족의 기호 곁에 진을 치게 하시되 “성막 사면에 진을 치게 하라”하시고, 사면에 각각 진칠 지파 까지 말씀해주셨습니다. 큰 민족이 12 지파(레위 지파 까지 13지파)별로 나누어 있은즉 진을 치거나 행진을 할 때 구분과 질서가 있어야 함은 물론 전쟁이 일어나도 성막과 가족을 보호하여야 하므로 조직과 단결과 정비는 항시 필요하였을 것입니다. “기”는 선민을 표시하는 것이고, “종족의 기호”는 지파를 표시하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2. 회막의 동방진(3-9절).

동방진은 중앙에 있는 회막의 앞이고 또 동쪽을 뜻합니다. 그 곳에 유다 지파를 중심 하여 그 곁에 잇사갈 지파와 스불론 지파를 세우니 그 전체의 수가 186,400명이었습니다. 유다 지파는 12 지파 중 장정이 가장 많은 지파이고, 스불론과 잇사갈은 같은 어머니 “레아”의 소생이므로 유다 지파와 협조가 잘 될 것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또 한가지 생각할 것은 각 지파의 장정 아닌 가족들이 어느 곳에 따로 있었는가?에 대하여 별도로 진친 일이 없고 또 그들이 보호를 받아야 하는 만큼 같은 장소에 함께 진을 쳤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3. 회막의 남방진(10-16절).

남방진은 회막의 오른쪽입니다. 그 곳에는 르우벤 지파를 중심 하여 시므온과 갓 지파가 진을 치게 하셨고, 그 전체의 수는 151,450명입니다. 르우벤은 12 지파 중 맏형이고 시므온은 바로 그의 다음 동생 지파이며 ‘갓’지파는 르우벤의 어머니 레아의 여종 “실바”의 소생이므로 역시 협력이 잘 되었을 것입니다.

4. 레위 지파의 진과 진행을 명하신 말씀입니다(17, 33-34절).

레위 지파는 앞(1:53)에서도 말씀드린바와 같이 성막 사면에 가까이 진을 치게 하셨으므로 역시 그 가족들과 함께 성막 사면에 접근한 상태로 진을 쳤을 것입니다(17절). 그리고 “행진 할 때에도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33-34절). 진을 쳤을 때는 중앙에 성막을 먼저 건립한 후, 그 주위에 백성들이 진을 치고 숙소로 정하였을 것이고, 행진 할 때는 성막을 걷어 묶은 상태 그대로 위치의 변동 없이 진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광야는 전체가 길이기 때문에 도로에 관계없이 진행하게 된 것입니다. 레위 지파는 계수하지 않았습니다.

5. 서방진에 대하여(18-24절).

서방진은 회막의 뒤쪽이고, 에브라임 지파로 중심 하여 므낫세와 베냐민 지파가 진을 쳤으니 이 세 지파가 다 라헬의 소생, 한 형제 입니다. 그리고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베냐민의 조카이지만 요셉의 두 아들 중 ‘에브라임’이 더 번성한 지파이기 때문에 앞세운 줄 압니다. 이 세 지파의 장정의 통계는 108,100명이었습니다.

6. 북방진과 총계입니다(25-32절).

북방은 회막의 왼편으로 단 지파를 중심 하여 아셀 지파와 납달리 지파로 진치게 하였는데 단과 납달리는 라헬의 여종 빌하의 소생이고, 아셀은 갓과 함께 레아의 여종 실바의 소생입니다. 세 지파가 다 여종의 소생이므로 협조가 잘 되었을 것입니다(창30:1-24, 35:16-18, 12형제 출생기록임). 총 장정의 수는 157,600명이니 전체의 수는 603,550명인데 앞쪽이 제일 많고 좌우 양쪽이 비슷하며 뒤쪽이 가장 적은 수로 편성을 하였습니다.

이상의 내용의 의미는 많을 것입니다. 우선 조직과 단결과 힘으로 보호, 통솔, 진행이 잘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교회를 중심 하여 생활 할 때 화목과 단결, 그리고 각자의 책임을 다함으로써 마귀를 대항하고 신앙의 전진을 기하는데 교훈의 중점을 두셔야 할 것입니다.

 

제 3 과 레위 지파의 업무편성 (민3:1-51)목록으로

 

본 장을 읽고 “레위 지파의 업무편성”으로 제목을 정하였습니다. ① 1-4, 10, 38절은 “아론의 아들들과 제사장 직무”이고, ② 5-9절은 “레위 지파를 제사장 시종으로 쓰심”이요, ③ 11-13절은 “레위 지파를 뽑아 쓰신 근거”이며 ④ 14-37절은 “레위족 편성”이요, ⑤ 39-51절은 “1개월 이상 인구조사와 속전”입니다.

1. 아론의 아들들과 제사장직무(1-4, 10, 38절).

1)1절에서 “아론과 모세의 낳은 자가 이러하다” 하시고, 모세의 아들들은 소개하시지 않고(출18:3-4, 대상23:15-17) 아론의 아들들만 소개하셨는데 여기에서 모세의 아들들을 소개하시지 않은 이유는 그들에게 직무를 맡기신 바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론의 아들들은 순서대로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인데 이들이 다 제사장위임을 받았고(2-3절), 나답과 아비후는 시내 광야에서 다른 불(4절)로 제사를 드리다가 무자한 상태에서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제사장 계승은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하였습니다.

2)여기의 “다른 불”은 나답과 아비후가 향단에서 섬기다가 다른 불로 향을 피워 죽은 것입니다. 출30:1-10을 보시면 향단은 지극히 거룩하게 구별되었고(출30:10) 향단의 분향은 등불을 켜거나 정리 할 때 함께 하게 되어 있으며(출30:7-8) 다른 향이나 소제, 전제도 향단에서는 사르지 못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출30:8에서 “이 향은 대대로 끊지 못 한다” 하셨기 때문에 향불이 꺼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향불이 꺼졌기 때문에 다른 불을 가져다가 붙인 것이 아닌가? 예측됩니다. 구별된 불이 있다면 제단불이나 성소내의 등불이 있겠지만 “그것을 사용하라”는 말씀이 없으니 잘 알 수 없습니다. 레10:1-2에서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사용한 것”이 잘못된 것인즉 이 때에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어야 할 것입니다. 레9:22-24을 참고하면 단에서 제물을 태울 때 “하나님 앞에서 나온 불”이 있었은즉 그것을 기다렸어야 할 것입니다.

3)10절, 38절에서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이라”하시므로 제사장직을 함부로 탐하는 자가 있거나 직무방해를 할 수 없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주권으로 세우신 고유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제사장 지파는 “성소의 동쪽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대신하여 성소의 직무를 지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백성들이 하나님 섬길 일을 대표하여 시행한다는 뜻입니다. 성소의 동쪽은 성소의 문이 있는 쪽이므로 성소를 섬기는데 편리하도록 하셨습니다.

2. 레위 지파를 제사장 시종으로 쓰심(5-9절).

1)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를 제사장 시종으로 일하게 하라”하셨고, 6절에서는 “그들이 회막 앞에서 아론의 직무와 온 회중(백성이 제사 드리러 왔을 때 또 회중을 대신하여)의 직무를 위하여 시무하되 7-8절에서 회막의 모든 기구를 수직(보호)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위하여 회막에서 시무하라” 하셨으니 제사장을 도와 성소에 속한 모든 일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2)9절에서는 “레위인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주라” 하셨으니 이는 종처럼 일하게 하신 의미일 것입니다. “그들은 아론에게 온전히 돌리운 자라”는 말씀도 같은 뜻입니다. 아론의 종은 하나님이 쓰시는 종이므로 명예롭게 생각 할 일일뿐 여기에서 인권을 논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왜 아론 지파를 제사장으로, 레위 지파를 그 수종자로 주셨는지에 대하여는 하나님의 주권에 따른 것이므로 알 수 없습니다.

3. 레위 지파를 뽑아 쓰신 근거(11-13절).

이 근거는 그들이나 그 조상 레위의 무슨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요, 하나님이 주권으로 뽑아 쓰신 것인데 출애굽 당시에 초태생이 다 죽었어야 할 것을 살려주신 대가로 징발하여 쓰신다고 하셨습니다. 11-12절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첫태에 처음 난자를 대신케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13절에서 레위인을 하나님이 쓰시는 몫으로 대신하시는 이유는 애굽 땅에서 처음 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선민의 초태생을 구별하여(사람과 짐승 모두) 살리셨기 때문에 그 수를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쓰신다는 것입니다. 이 때에 죽지 않은 초태생을 그대로 쓰시는 것이 아니고 그 수대로 레위 지파의 아들들을 쓰신 것입니다. 애굽에서 해방된 선민이 다 하나님의 것인즉(출 6:17) 초태생과 레위 지파도 그러한 것입니다.

4. 레위족 편성(14-37절).

15절에서 “하나님이 레위의 아들들과 그들의 아들들을 1개월 이상으로 계수 하라” 하셨고, 각 아들의 종족으로 분류하여 계수한 다음 세 아들 지파 별로 족장을 세우고 또 세 족장을 엘르아살이 통솔하게 하셨으며(33절) 세 아들 지파 별로 성소의 재료를 보관, 시설 운반 등의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레위의 아들들은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 였습니다.

1)게르손에게는 립니와 시므이 두 아들이 있었고, (그 후손 중)라엘의 아들 “엘리아삽”이 족장이 되었으며 1개월 이상의 남자 수는 7,500명인데 장막 뒤 서편에 진을 치게 하였고, 회막의 성막과 장막, 덮개, 문장, 뜰 휘장, 문장줄을 취급, 담당케 하셨으니 주로 섬유류 등을 취급하게 하신 것이요,

2)고핫은 아므람과 이스할과 헤브론과 웃시엘 네 아들이 있었고, 웃시엘의 아들 “엘리사반”이 족장이 되었으며 장정 수는 8,600명, 성소의 남편에 진을 치고, 증거궤, 상, 등대, 번제단, 향단, 휘장 등 성소 안의 기구들과 밖에 있는 번제단, 물두멍(기록에 없음)을 맡게 하셨으니 주로 성구시설 물을 취급한 것이며

3)므라리는 말리와 무시 두 아들이 있었으며 (그 후손 중)아비하일의 아들 “수리엘”이 족장이 되었고, 6,200명이며 성소 북쪽에 진을 치고, 성소의 널판, 띠, 기둥, 받침, 기둥 부속품, 말뚝과 줄 등 목재류 등을 취급하게 한 것입니다.

5. 1개월 이상 인구조사와 속전(39-51절).

1)우선 39절에 보시면 레위인(세 아들 계파)의 1개월 이상 남자의 수가 22,000명이라고 하셨는데 이 합계에 300명 착오가 생깁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이에 대한 가장 근접한 해석은 합한 수의 착오가 아니고 고핫 자손의 수가 8,300명인데(הןאטי שׁלשׁ) 사본하는 사람이 ל 한 자를 빠뜨려서 8,600명(הןאטי שׁ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원문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2)그 다음 40절에서는 이스라엘 자손의 (전체) 1개월 이상의 처음 난 남자를 계수한 즉 22,273명인데, 이들은 출애굽당시 죽지 않고 산 초태생의 수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수를 하나님이 받아 쓰셔야 하는데 레위족 아들이 22,000명뿐이므로 모자라는 273명에 대한 값을 1인당 5 세겔로 쳐서 1,365 세겔(27,300 게라)을 속전비용으로 하나님께 바치게 한 것입니다. 즉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준 것을 뜻합니다(50절).

3)그리고 45절에 보시면 그들(22,273명)의 가축도 레위인에게 돌려 하나님의 것을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생명 살려준 값을 형식적으로나마 받으시는 뜻을 나타내셨으니, 이는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하심이고, 또 모든 것 모든 생명이 다 주님의 것임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죽지 않은 초태생 아들들을 레위족 아들들로 바꾸어 쓰시는데는 성직에 대한 구별과 통솔을 위하여 그렇게 하신 듯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에는 엄한 규칙이 있고, 엄한 벌로 다스렸으며 직분 분담제와 계급과 편의제공 등이 나타난 사실을 유의하셔야 할 것입니다.

 

제 4 과 역군 계수와 업무 (민4:1-49) 목록으로


① 본문 1-3, 34-49절은 “레위 지파의 역군 계수”요, ② 4-20절은 “고핫 자손의 맡은 업무”이며 ③ 21-28절은 “게르손 자손의 맡은 업무”이고, ④ 29-33절은 “므라리 자손의 맡은 업무”입니다. 이 업무에 대하여 3장에서 말씀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3:25-26에서 게르손 지파의 맡은 일, 3:31에서 고핫 지파의 맡은 일, 3:36-37에서 므라리 지파의 맡은 일을 말씀하셨는데 그 부분에서는 건설과 보존과 섬김의 시행에 대한 것이고, 본문에서의 업무는 주로 “이동하는 방법”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1. 레위 지파의 역군계수(1-3, 34-49절).

1)1-3절에서는 “고핫 자손 중 30세-50세로 역사에 참가할만한 일꾼을 계수 하라”고 하셨습니다. 고핫 자손 뿐 아니라 게르손 자손(22-23절)과 므라리 자손(29-30절)도 같은 조건으로 계수 하라 하셨으니 하나님은 일할만한 자(믿음과 지식과 건강이 그러함)를 시키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싸움에 나갈만한 자의 계수는 20세 이상이었고, 50세까지로는 한정하지 않았으나(민 1:3, 20) 성소의 사역자만큼은 30-50세로 정하신 것은 가장 일할 나이에 하나님의 일을 하여야 함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구약의 성막 봉사는 그 사역면에 있어서는 신약의 교회를 섬기는 것과 같은 만큼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교회로부터 비용을 받고 일할 때는 연령 통제를 할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연령 통제를 구약시대의 성막 봉사의 경우와 같이 할 필요는 없으나 여하튼 나이가 적거나 많아서 교회의 사역에 누를 끼치는 경우가 되지 않도록, 교회측과 사역자측이 주의하여 시행 할 필요가 있습니다.

2)1-3절의 말씀이 34-36절에도 기록되었고, 고핫 자손의 사역자 수는 2,750명이요(36절), 게르손 자손의 수는 2,630명이며(44절) 므라리 자손의 수는 3,200명이므로, 46절에서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의 족장들의 지도 아래 계수한 총수는 8,580명이라고 하셨습니다(46-49절). 여기에서 내용 절차를 의미상으로 나타내지 않고 절차대로 이중 설명을 하신 것은 주밀 하신 뜻과 역사적 절차를 그대로 나타내신 때문입니다.

2. 고핫 자손의 맡은 업무(4-20절).

1)4절에서 고핫 자손은 회막안의 지성물(지성물은 귀한 성물이란 뜻으로 지성소에 있는 법궤와 시은소가 1급 지성물이며, 성소내부에 있는 기명과 제단이 2급 지성물이고, 3급 지성물은 건축에 사용된 물건들임)을 취급하는바, 고핫 자손은 운반 행진만 하게 되므로 먼저 아론과 그의 아들들(제사장)이 행진준비를 해 주어야 합니다. 고핫 자손이 성물을 직접 철거하지 못하고, “잠시라도 성소에 들어가서 성물을 보아서도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19절). 이것은 거룩하게 구별한 성물을 거룩하게 구별한 제사장이 취급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2)행진 할 때가되면, 먼저 제사장들이 성소의 간 막는 장을 걷어 증거궤를 덮고 그 위에 해달의 가죽과 순청색 보자기(이것은 운반을 위하여 별도로 만든 품목인 듯 함)채를 꿰어 놓습니다(5-6절). 또 진설병 상에는 청색보자기를 펴고, 대접, 숟가락, 주발 등 부속기구들을 그 위에 두고 또 항상 진설하는 떡도 진설한 상태로 둔 다음 그 위에 홍색보자기와 해달의 가죽을 덮은 후 채를 꿰어야 합니다(7-8절). 또 청색보자기를 취하여 등대와 그 부속품들을 덮은 후 해달의 가죽 덮개 안에 넣어, 틀(운반하는 도구) 위에 두고(9-10절) 또 금단(향단) 위에 청색보자기로 편 후 해달의 가죽으로 덮어 채를 꿰야 하며(11절), 다른 기명들도 등대나 금향단처럼 준비하고(12절) 또 단(번제단)에 대하여는 재를 버리고, 단위에 자색보자기를 펴고 부속된 기구들을 얹은 후 해달의 가죽 덮개를 덮고 채를 꿰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청색, 홍색, 자색의 의미는 잘 알 수 없습니다.

3)모든 준비가 끝나면 고핫 자손이 메되 이상의 물품들에 대하여 다른 자손이 메면 안 되고, 성물을 만져서도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15절) 이 만큼 엄격한 이유는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엄중히 복종하여야 할 것을 교훈 하신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밀하게 지키도록 노력하셔야 하며 또 하나님의 깊은 뜻도 이해하려고 하셔야 합니다.

4)16절에서 아론의 아들 엘리아살이 (직접)맡을 것은 “등유와 분양할 향품과 소제물(상에 있는 제물)과 관유며 또 장막 전체와 그 중에 있는 모든 것과 성소와 그 모든 기구라” 하셨으니 여기의 제물(향, 관유)에 관한 것은 직접 들고 운반하라는 뜻이고, 전체의 장막과 기구의 관한 것은 운반 준비까지만 하라는 뜻입니다. 메는 것은 고핫 자손이 하니까요.

5)18-19절에서 “고핫 자손의 지파를 끊어지지 않도록 육성하라”하셨으니 그 지파의 번성을 힘쓰라는 뜻이요, 또 제사장들로 하여금 “고핫 지파가 성물에 잘못 접근하다가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각 사람에게 할 일과 멜 것을 지휘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일은 고하를 막론하고 두려워하며 조심하고, 또 감독자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여야 하는 엄위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3. 게르손 지손의 맡은 업무(21-28절).

1)24-25절에서 게르손 자손이 멜 것은 “성막의 앙장들, 회막과 그 덮개(26:7-14, 염소털, 수양의 가죽, 해달의 가죽)와 회막의 문장(문에 막는 휘장), 26절에서 뜰의 휘장, 성막과 단 사면에 있는 뜰의 문장과 줄들 및 모든 기구라”(26-27절)하셨고, 제사장의 명을 따라 하되 아론의 아들 “이다말”이 감독하게 하셨습니다(28절).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는 감독, 지휘 계통을 잘 알고 엄히 지도를 받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4. 므라리 자손의 맡은 업무(29-33절).

1)31-32절에서 므라리 자손이 멜 직무는 “장막의 널판들과 띠들, 기둥들과 그 받침들, 뜰 사면의 기둥들과 그 받침들, 말뚝들, 줄들과 그 모든 기구들이라” 하셨고, 또 “그 명목을 지정해주라” 하셨으며 역시 므라리 자손과 함께 “이다말의 수하에 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론은 직․간접으로 그 아들들을 지도하고, 큰 아들 엘리아살은 고핫 자손들을, 둘째 아들 이다말은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을 지휘하게 하셨으니 여기에서 성소의 기명들이 건축물보다 더 중요한 지성물임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신약시대의 최고의 지성물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다음이 성직자일 것입니다. 등불이나 분향은 꺼질 수 있으므로 운반할 때 켜지 못했으나 소제물, 진설병은 진설한대로 움직인 점과 성직에 맡은 자가 있고 감독이 있음과 거룩한 성물은 기름 부음 받은 제사장이 취급한 점 등은 우리에게 엄한 순종과 질서와 헌신을 교훈 하신 것입니다.

 

제 5 과 부정, 피해, 의심의 법 (민5:1-31) 목록으로


본문 말씀을 3대지로 나누어 ① 1-4절은 “부정에 관한 것”, ② 5-10절은 “피해를 준 경우”, ③ 11-31절은 “의심에 대한 처리”로 상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총 제목을 “부정, 피해, 의심의 법”으로 정했습니다.

1. 부정에 관한 것(1-4절).

1)본문에서는 하나님이 선민들에게 “남녀를 물론하고 문둥병자나 유출병자나 주검으로 부정케 된 자를 진 밖으로 내보내므로 더럽히지 말라 그 진 가운데 하나님이 계심이라” 하셔서 그대로 시행하였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문둥병, 유출병, 주검으로 인한 부정을 당한 자를 격리하는 이유를 아는 것입니다. 성경에 문둥병을 범죄의 질책도구로 쓰신 점이 있으나(출 4:6, 민 12:10) 유출병과 함께 고쳐주신 사례가 있습니다(민 12:14, 눅 17:14, 마 9:22). 유출병은 마 9:20의 혈루증과 같은 것으로 부정한 요소가 있습니다. 우선 위생상 더럽고 전염성도 있으며 죽음에 가까운 병이기 때문입니다. 또 “죽음으로 부정케 된 자”란 시신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부정과 관련되어 전염성을 보유한 것을 의미합니다.

2)성경이 이들을 격리시킨 이유는 그들에게 자비롭지 못하여서가 아니라 건강한 선민을 보호하기 위한 위생 처방이 첫째이고, 또 백성들로 하여금 범죄의 더러움과 정결법(속죄 은혜)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3절에서 “하나님이 그 진 가운데 거하느니라” 하신 말씀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세계가 위생적으로나 순결면에서 다 거룩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구약의 선민단체는 신약시대의 교회 또는 성도 자신인즉 육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정결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레 14:1-9과 민 15:1-30, 레 22:4-7에서 문둥병과 유출병, 시신접근 자의 결례법을 말씀하신 줄 압니다.

2. 피해를 준 경우(5-10절).

1)6절에서 “남자나 여자나 사람들이 범하는 죄”란 생활에서 나타나는 일반적 범죄를 뜻하고, “여호와께 패역함”이란 신앙적 범죄 외에 사람을 상대로 한 범죄도 하나님께 죄짓는 일이 된다는 뜻이요, “그 몸에 죄를 얻음”은 역시 사람을 상대로 범죄 하여 일신상에 피해준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는 이웃에게 덕을 베풀지언정 고의나 실수 등으로라도 피해를 주지 않도록 힘쓰셔야 합니다.

2)7절에서는 이웃에게 범죄(피해)하였을 때 “그 지은 죄를(하나님께)자복하고 그 죄 값을(피해보상액) 온전히 갚되 1/5을 더하여 갚으라”고 하셨습니다. 회개하고 피해액의 20%를 추가하여 변상하라는 뜻입니다.

3)그런데 8절에서 “피해 당한 자가 없어졌다면(죽거나 찾을 길이 없을 때) 그 친족에게 변상하고 친족도 없을 때는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제사장에게 돌리라”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받아서 제사장이 쓰도록 하신 것입니다. 또 “속죄할 속죄의 수양 외에”란 말씀이 있으니 이것은 가해자가 하나님께 죄 사함 받기 위하여 속죄제물을 갖고 와서 제사를 의뢰하고 당사자 없는 피해보상비(속죄의 수양 외의 것)는 제사장에게(그 명분을 말하고)주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죄 값을 반드시 보상해야 하는 뜻도 있습니다.

4)9-10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거제로(들고 오는 예물, 번제물 아닌 것) 가져오는 모든 성물은 그의 것(제사장의 것)이 된다” 하셨고, “각 사람의 구별한 물건”(제사장에 직접주거나 피해자가 없어서 제사장에게 주는 것)도 역시 제사장의 것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제사장은 하나님이 중보의 모형자로 세우신 만큼 속죄를 위한 헌물 및 보상을 하나님이 받으신 것처럼 대신 받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신약시대의 성직자가 모방하는 것은 건전하지 않습니다. 신약시대의 목사는 신앙의 선배격일 뿐 전권대사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권대사 또는 사신이라 하여 대리자의 특권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것은 바르지 않습니다.

3. 의심에 대한 처리(11-31절).

15절의 “의심의 소재”란 말씀과 29절의 “의심의 법”이란 말씀이 있고, 30절에서 “제사장이 이 법대로 할 것이라” 하시므로 의심을 없애는 방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즈음은 범죄자일 것 같아도 증거를 잡지 못하면 나타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선민을 통치하실 때는 여기에까지 직접 간섭하시고 섭리 하셔서 의심으로 인한 불화를 해결해 주셨고, 또 실제 범인이면 회개할 기회도 주셨던 것입니다.

1)11-14절의 말씀은 “아내가 실행(행실을 그르침)하여 남편 모르게 타인과 정교를 하였는데 남편이 의심은 가나 증거를 잡지 못했을 경우, 또는 반대로 아내가 실제로 실행하지 아니하였는데 실행한 것처럼 의심이 가서 남편이 고민하게 되는 경우를 말씀하신 것이요,

2)이런 경우에 그 의심을 해소하는 법을 15-31절에서 말씀해주셨습니다.

① 우선 의심하는 남편은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 나가되 보리 가루 에바 1/10을 갖고 갑니다. 에바는 22ℓ이므로 그 1/10은 2.2ℓ로 한 되쯤 됩니다. 제사장에게 드리는 단순한 사례(수고비)인 듯하며 기름이나 유향을 첨가하지 않습니다(5절). 그리고 이 보리 가루를 “의심의 소제”(의심하는 문제를 인하여 갖고 온 소제란 뜻, 소제는 곡식제물을 뜻함) 또는 “(죄악을)생각하는 소제”라고 하셨습니다.

② 이때 제사장은 그 여인을 하나님 앞(성소마당, 하나님 앞에 있음을 각성시킴)에 세우고, 토기에 거룩한 물(관유로 보아야함)을 담고, 성막 바닥(바닥은 흙바닥임)의 티끌을 취하여 (그) 물에 넣고 여인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머리를 풀게 하고(비상한 각오를 갖게 하는 뜻), 가져온 소제물을 손에 들도록 한 다음 제사장은 저주가 되게 한 쓴 물(토기에 담긴 티끌 넣은 물)을 손에 들고 여인으로 하여금 “맹세를 시키라”고 하였습니다(16-19절). 맹세의 내용은 19-20절에서 “죄가 없는데 의심을 받았으면 이 쓴 물의 해독을 저주로 받지 않을 것이요, 죄가 실제로 있었으면 네 넓적다리가 떨어지고 네 배가 부어서 너로 네 백성 중에 저줏 거리가 될 것이라”하고 아멘 아멘으로 확답을 받은 후, 또 “그 저주의 내용을 두루마리(종이 대용품)에 써서 그 쓴 글자를 저주가 되게 하는 쓴 물(토기의 물)에 빨아 넣은 후 그것을 여인에게 마시우라”는 것입니다. 그 물은 입에서 쓰다고 하였습니다.

3)여인에게 쓴 물을 마시우기 전에 제사장이 또 한가지 할 일은 25-26절에서 “여인이 갖고 온 의심의 소제물(보리 가루)을 하나님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은 후에 단으로 갖고 와서 기념으로 한 움큼을 단 위에서 소화(화제로 삼음)하고, 그 다음에 마시우라”는 것이니 이는 하나님께 사실을 알리는 뜻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4)27절에서 이 경우에 “그 여인이 실제로 범하고도 거짓말하고 회개하지 않은 상태이면 약속된 저주가 그대로 임할 것이라” 하셨고, 28절에서 “여인이 정결하면 해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잉태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특별간섭이 있는 것으로 믿어야 합니다. 31절에서 “남편이 정당한 의심을 갖고 이렇게 하는 것은 죄 되는 일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상의 사실에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잘 잘못의 공정한 결론은 하나님이 내려주셔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또 범죄자는 범죄한대로 그 대가를 받고, 의심을 받을지라도 죄가 없으면 보호하신다는 뜻입니다.

5)신약시대에는 이런 일을 어떻게 처리하셔야 할까요?

믿어주는 것은 사랑인 만큼(고전 13:7) 의심에 앞서 믿어주고, 확실하게 범죄사실이 드러나면 우선 갈 6:1을 시행하십시오. 그리고 회개하면 마 18:22를 적용하시고, 타인에게 큰 피해를 주는 범죄이면 사회나 교회에 고발하시고(마 18:15-17, 롬 13:4), 개인의 원수로는 여기지 마셔야 할 것입니다(아마 남자에게 그런 의심이 가도 그 방법으로 처리하였을 것입니다).

 

제 6 과 나실인의 법과 축복 (민6:1-27) 목록으로


본문의 총 제목은 “나실인의 법과 축복”입니다. ① 1-8절은 “나실인의 구별된 생활”이요, ② 9-12절은 “구별된 생활을 실패하였을 경우”이며 ③ 13-21절은 “나실인의 제사”요, ④ 22-27절은 “나실인에 대한 축복”입니다. 13절에서 “나실인의 법”이라고 하셨습니다.

1. 나실인의 구별된 생활(1-8절).

1)1-2절에서 보시면 “선민 중 남녀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려거든” 하시므로, “나실인”이란 하나님께 특별히 구별된 서원을 하여 자기 몸을 헌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녀 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하여 극기생활과 헌신을 하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교회생활을 잘하면 그것이 곧 충성, 헌신, 또는 복된 생활이 되겠지만 구약시대의 성도들은 성소(성전)중심이나 제사장 중보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가는 특별한 방법이 기도 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실인의 서원(특별한 서원)은 “성도 개인이 하나님께 드리는 특별한 헌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3-4절에서 나실인으로 몸을 구별하는 첫째 방법은 포도를 일체 멀리하는 것입니다.

① 포도주, 독주, 신포도주, 독주의 초, 포도즙, 생포도, 건포도, 포도씨와 껍질 등을 일체 먹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극기의 일종입니다. 포도주는 좋은 음식인바 그 좋은 것을 금지함이고, 또 포도주는 취하게 하는 것인바 추호도 취하는 성분을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 이는 바른 생활을 위하여 금주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② 그 다음 5절에서는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는 것”인즉 이것은 사치를 금하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포도를(좋은 식품) 금한 사람이 좋은 옷이나 모양새에 신경을 써서는 안 될 것입니다. 따라서 포도를 금하고 삭도를 대지 않는 것은 세속과 인간적 사치를 멀리함에 대한 극단적 표현입니다.

③ 그 다음 6-7절은 여호와께 드리려는 모든 날(이 기간은 서원할 때 스스로 작정함)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시체의 부정함에 대한 말씀은 5:2(레 21:11, 22:4-7)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신체적 정결과 아울러 정신적, 영적 순결을 보존하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부모, 형제, 자매가 죽은 때라도 그로 인하여 몸을 더럽히지 말아야 할 것은 자기를 구별하여 드리는 표(머리에 그 표식을 하였음)가 머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극단의 정결을 뜻합니다. 따라서 나실인은 좋은 식물, 좋은 단장을 절대 금하고, 순결을 크게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나실인으로써 이렇게 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이 세속과 죄를 멀리하시기 때문입니다.

2. 구별된 생활을 실패하였을 경우(9-12절).

1)9절에서 “누가 홀연히 그 곁에서 죽어서 스스로 구별한 자(나실인)의 머리(나실인의 표식)를 더럽히거든” 하신 말씀은 우발적으로 원치 않은 부정에 접한 사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구별된 생활이 파손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정결케 하는 날(레 22:4-7 민 19:11-13)에 머리를 밀 것(깎을 것)인즉 제 7일에 밀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부정을 씻고 새로 시작하는 뜻이요,

2)10절에서는 “제 8일(7일간 결례의 기간이 지난 다음 날)에 산비둘기 두 마리와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회막문에 갖고 와서 제사장에게 주면, 11절에서 제사장은 그 하나(네 마리 중)를 속죄 제물로, 하나를 번제물로(두 마리를 드린 것) 드려서 시체로 인하여 부정하게 된 죄(실수)를 속하고 당일에 성결케 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3)12절에서는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날을 다시 정하고, 1년 된 수양을 가져다가 속건제(모르고 범죄한 죄를 사함받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 레 5:17-19)를 드리고, 지난 일은 무효인즉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경건의 순결 유지가 이만큼 어렵고 중요함을 강조하신 것이라 할 것입니다.

3. 나실인의 제사 드림(13-21절).

앞부분에서는 성결 보존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고, 이 부분에서는 성결 보존으로 구별한 날이 찼을 때 제사 드림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1)13절에서 “나실인의 구별한 날이 차면 그 사람을 회막문으로 데리고 가되 14절에서 번제물로 1년 된 흠 없는 수양 하나와 속죄 제물로 1년 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하나와 화목 제물로 흠 없는 수양 하나(도합 세 마리)와 15절에서 무교병 한 광주리 고운 가루에 기름 섞은 과자들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들과 그 소제물과 전제물을 드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대한 설명은 다음절에서 이어집니다.

2)16-17절에서 “제사장은 이상의 제물을 받았을 때 속죄제(속죄 목적으로 드리는 제사. 레 4:22-35)와 번제(속죄제에 포함되는 것으로 구워드리는 제사임)를 드리고, 또 화목제물(하나님과 제사 드리는 자와의 화목을 목적으로 함. 레 3:1-17)과 무교병 한 광주리와 전제, 소제(전제는 기름에 해당하고, 소제는 떡에 해당함)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상당한 제물과 예물로 하나님께 제사의 성의를 나타내는 뜻입니다.

3)그리고 18-19절에서 “머리털을 밀고(9절) 그것을 화목 제물 밑에 있는 불에 두라”는 것은 태워 없애는 것입니다. 머리털을 다시 미는 것은 중간에 부정함을 당한 것이기 때문에 그 부정을 없애는 뜻일 것입니다. 그때에 제사장은 그 나실인으로 하여금 삶은 수양(화목 제물에서 나온 것. 레 3:9-11에서 요소 부분만 태웠기 때문에 고기는 남겼음)의 어깨와 광주리에 담긴 것 중 무교병과 무교전병을 각 하나씩 취하게 하고, 20절에서 “하나님 앞에 요제로 흔들게 한 다음 그 것(소제물)과, 흔든 가슴과 넓적 다리(수양의 어깨에 포함된 것. 19절)는 성물인 만큼 제사장에게 돌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으로 나실인 제사가 끝났기 때문에 “그 때부터(평상시 생활로 돌아가서) 포도주를 마실 수 있다”(20절)고 하셨습니다.

4)21절은 나실인 서원법의 결론으로 “이 외에도 힘이 미치는대로 하라” 하였으니 여기에 “힘이 미친다”는 뜻은 하나님께 드리는 정성 분량을 뜻하는 것으로 기간을 늘리거나 속죄제, 화목제를 양 아닌 소로 드리거나 전제, 소제 예물을 더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4. 나실인에 대한 축복(22-27절).

선민이 나실인 서원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는 뜻입니다. 오늘의 성도들이 무슨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특별 기도나 특별 봉사를 하는 것과 같다 할 것입니다.

1)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제사장들에게 고하여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라” 하셨으니, 27절에서 “하나님이 약속대로 그들(나실인과 그 민족)에게 복을 주신다”고 하심에 따라 복을 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2)그 축복의 내용은 24-26절에서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하나님이 가까이서 주목하시고 통촉하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하나님이 직접 관심을 나타내시는 뜻)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축복은 중보자(제사장=예수님)를 통해서 주셨고, 축복의 내용은 만 가지 은혜요, 특별한 것은 “하나님의 가까운 임재와 통촉을 인하여 지키시고 평강 주시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3)성도 여러분들도 나실인이 되실 수 있습니다. 신약 시대의 나실인 방법은 퍽 다양해졌습니다. 성경에 복 받는 방법을 많이 말씀하셨은즉 아래 성경 구절을 찾아보시고 시행하십시오. 시 1:1-3, 신 28:1-14, 욥 8:5-7, 대하 16:9, 마 19:29, 눅 6:38, 약 4:8-10, 요삼 2절 등입니다.

 

제 7 과 성소 봉헌 예물과 제물 (민7:1-89) 목록으로


① 1-3절은 “매 지파 감독들의 예물”이고, ② 4-9절은 “예물의 분배”이며 ③ 10-83절은 “12 지파의 예물과 제물”이고, ④ 84-89절은 “예물 제물의 통계와 말씀을 들음”입니다.

1. 매 지파 감독들의 예물(1-3절).

1)1절에서 예물을 드린 때는 “장막 세우기를 필하고 그것(장막)에 기름(관유)을 발라 거룩히 구별하고, 또 그 모든 기구와 단과 그 모든 기구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한 날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물을 다 구별한 것입니다.

2)2절에서 예물을 드린 자는 “족장들 곧 그들 종족의 두령들 그 지파의 족장들로서 그 계수함을 입은 자의 감독들이라” 하였으니 족장, 두령, 감독이 같은 뜻이고, 이들의 명단은 민수기 2장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3)3절에서는 예물 목록이 기록되었는데 “덮개 있는 수레 여섯과 소 열 두 마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족장 두 사람이 수레 하나씩 각 사람이 소 한 마리씩 낸 셈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누가 얼마큼 내는가?” 하는 것도 합리적으로 따져보시는 분이심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막 12:41-44)

2. 예물의 분배(4-9절).

1)이 예물은 성막 기구를 운반하는데 사용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4-5절에 보시면 “하나님이 그것을 레위인에게 주어 각기 직임대로 성막 봉사에 쓰게 하라”고 모세에게 지시 하셨습니다.

2)그리하여 모세는 6-8절에서 “게르손 자손들에게 그 직임대로 수레 둘과 소 넷(한 수레를 소 두 마리가 끌게 됨)을, 므라리 자손들에게 그 직임대로 수레 넷과 소 여덟 마리를 주고, 제사장 아론의 아들 이다말로 이를 감독케” 하였습니다. 이다말은 본래 이 두 지파의 감독자였습니다(4:28,33). 여기에서 고핫 지파를 제외한 이유는 고핫 지파 사람들은 어깨에 메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고(9절), 또 므라리 지파에게 갑절을 준 이유는 그 지파의 맡은 분량이 성소 외곽자료들로서 더 많기 때문입니다.

3. 12 지파의 예물과 제물(10-83절).

1)10-11절에서 “족장들이 단의 봉헌을 위하여(그 지파를 대표하여) 예물을 단 앞에 드리려 한 즉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함께 일시에 드리지 말고) 하루 한 사람(한 족장)씩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12 지파의 봉헌 행사가 꼭 같지만 그 내용을 12회 기록하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매 지파의 예물을 개별적으로 관찰하시고 개별적 정성으로 받으시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봉헌과 봉사도 꼭 그렇게 개별적으로 보시고 평가 하신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막 12:41-44).

2)그래서 순서대로 12 지파의 족장들이 12일간 매일 한 족장(한 지파)씩 예물과 제물을 드렸습니다. 여기의 순서는 민수기 2장에 나타난대로 동편(1진)은 유다, 잇사갈, 스블론, 남편(2진)은 르우벤, 시므온, 갓이요, 서편(3진)은 에브라임, 므낫세(여기에서 12 지파 중 레위 지파가 빠졌어도 요셉의 두 아들이 두 지파가 되어 12 지파가 되었음) 베냐민, 북편(후진)은 단, 아셀, 납달리 순서로 대표 족장이 드렸습니다.

3)12 지파의 예물과 제물은 일정 하였고, 예물은 은반 1개(130세겔, 1세겔은 11.4g이고, 0.5온스 인바 시대에 따라 변하였다 함) 은바리 1개(70세겔)인데 여기에 소제물과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가득 채웠으며 10세겔 중 금 숟가락 1개와, 여기에 향을 채워 드렸으며 제물로는 번제물로 수송아지 한 마리와 1년 된 어린 수양 한 마리이고, 속죄 제물로 수 염소 한 마리요, 화목 제물로 소 두 마리, 수양 다섯 마리, 수 염소 다섯 마리, 1년 된 어린 수양 다섯 마리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매 지파 별로 예물과 제물을 드린 이유는 선민 전체가 성소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 것을 크게 감사하는 뜻이 있다 할 것입니다.

4. 예물의 통계와 말씀을 들음(84-89절).

본문에서는 위에서 드린 12 지파의 예물과 제물을 총합한 것을 기록하셨고, 89절에서는 하나님의 응답으로 속죄소 그룹 사이에서 “말씀이 임하여 모세가 들었다”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응답이요, 축복입니다. 말씀이 임하는 것(성경의 뜻이 마음에 통하는 것)이 곧 은혜요, 축복임을 아셔야 합니다.

 

제 8 과 레위 지파 구별 의식 (민8:1-26) 목록으로


본문 ① 1-4절은 “등불로 앞을 비취게 함”이고, ② 5-15절은 “레위인을 정결케 하는 의식”이요, ③ 16-19절은 “레위인을 헌신케 하는 이유”이고, ④ 20-26절은 “시행과 연령 제한”입니다. 총 제목을 “레위 지파 구별 의식”으로 정하였습니다.

1. 등불로 앞을 비취게 함(1-4절).

1)1-3절에서 “등불을 켤 때 일곱 등잔불을 등대 앞으로 비취게 하라” 하셨으니 이 말씀은 출 25:37에서 “등잔을 위에 두어 앞을 비취게 하라”하신 말씀에 첨부하신 것입니다. 등잔을 등대 위에 얹게 되어 있은즉 그렇게 말씀하셨으나 본문에서 다시 주의를 주신 뜻은 등잔을 등대 위에서 내려서 점검하고 올릴 때(등을 켤 때, 1절) 등대 그림자가 성소 안쪽으로 비취게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성소 내부를 밝힘에 있어서 검은 그림자가 안쪽으로 나타나지 않게 하므로 맑고 투명한 빛이 변함 없이 성소를 비취게 하라는 뜻이니 빛 되신 예수님의 일향 미쁘심을 나타내시는 의미와(딤후 2:13) 성도가 흠이나 중단 없이 빛된 생활을 나타내야 할 것을 교훈 하시는 것입니다.

2. 레위인을 정결케 하는 의식(5-15절).

1)5절에서 “레위인을 취하여 정결케 하라” 하셨으니 여기의 레위인은 전체 대상이 아닌 성막 봉사에 나갈 연령에 해당한 자를 의미합니다. 민 4:3에서 30세 이상 50세 까지 계수 하였는데 본문 24절에서는 25세로부터 49세로 제한 하였은즉 이렇게 되면 25세로부터 29세까지의 수가 계수상 증가되는 셈입니다. 이렇게 변동된 이유는 성막 내부 봉사자를 따로 세웠거나 아니면 직무 범위상 수가 적어서 보충한 의미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물건 운반 등 힘을 쓰는데는 30세 이전의 장정이 더 효과적이니까요.

2)6-7절은 “그들을 성결케 하는 결례식에 관한 말씀”입니다. 레위인이 성소의 일을 도우려면 결례식과 구별하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6절에서 “레위인을 취하여 정결케 하라” 하셨고, 7절에서 “그들을 정결케 하되 곧 속죄의 물(관유)로 그들에게 뿌리고(이것은 부정을 깨끗케 하는 결례식임. 레 8:30, 시 51:2,7), 그들로 그 전신을 삭도로 밀게 하고(이것은 문둥병자를 깨끗케 하는 것처럼 하라는 뜻임. 레 14:8) 그 의복을 빨게 하여 몸을 정결케 하라” 하시므로 구별되게 쓰임 받는 자가 최대한 정결함을 갖추도록 하신 것입니다.

3)8-11절은 속죄의 차원에서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번제물로 수송아지 하나와 소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와 속죄물로 수송아지 하나를 취한 후 회막에 나와야 하는 것(8-9절)이 그 뜻입니다. 또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을 모으고 레위인을 여호와 앞에 나오게 한 후(제단 앞에서 시행하는 것임) 이스라엘 자손으로(족장들이 대표로 안수하였을 것임) 그들에게 안수하게 하라(9-10절) 하셨은즉 이 뜻은 “백성의 직무 책임을 레위인들에게 인계하였다는 뜻”입니다. 그 다음 11절에서 “아론은 레위인을 요제로 여호와 앞에 드린 후에 봉사하게 하라” 하셨으니 이 시행은 다음 절에서 시행이 됩니다.

4)12-15절은 “레위인을 하나님께 드리는 요제”입니다. 그 절차는 12절에서 레위인으로 하여금 갖고 온 수송아지 두 마리(번제물과 속죄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이 안수는 자신의 허물을 전가시키는 표임) 번제와 속죄제를 드려 속죄하고, 13절에서 “그들을 아론과 그 아들들 앞에 세운 것으로 요제를 삼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뜻은 하나님께 속하도록 구별하여 드렸다는 뜻입니다.(14절) 15절에서는 “이상과 같은 결례식과 봉헌식(요제)을 시행한 후에 회막에 들어가서 봉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3. 레위인을 헌신케 하는 이유(16-19절).

1)16-18절에서(레위인은 이상의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린 바 되었고 이는 이스라엘 자손 중 초태생을 대신하여 하나님이 취하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애굽에서 모든 초태생을 치시던 날에 그들을 구별하셨고(17절), 그 대신으로 레위인을 취하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8절).

2)또 이들을 취하신 후에 19절에서 “그들을 제사장들에게 선물로 주셨고 선민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섬기게(봉사) 하며 또 선민 자손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셨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직접) 성소에(스스로) 가까이 할 때에 그들 중에 재앙이 없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초태생 장자 대신 레위인을 구별하신 것은 전문 인력을 만들어 하나님을 섬기게 하고 그로 인하여 백성들의 실수로 당할 재앙을 면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레위인이) 선민 자손을 위하여 속죄한다” 함은 레위인들이 제사장을 도와 시행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4. 시행과 연령 제한(20-26절).

1)20-22절은 이상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지도를 “다 좇아 레위인에게 행하였다” 하셨으니, 말씀대로 다 지킨 성의를 본받으셔야 할 것이요,

2)23-25절은 연령 제한에 대한 말씀인즉 위 5절에서 설명 드렸으며, 26절에서 “레위인들은 그 형제와 함께 회막에서 모시는 직무를 지킬 것이요(성소의 일만 하라는 뜻) 일하지 아니 할 것이라(다른 일은 안 해도 된다는 뜻, 싸움에 나가지 않음. 민 1:47-53)”고 하셨습니다.

 

제 9 과 유월절 규례 보충과 행진 (민9:1-23) 목록으로


본문 말씀을 두 대지로 나누어 살필 수 있습니다. ① 1-14절은 “유월절 규례의 보충”이요 ② 15-23절은 “하나님의 인도와 행진”입니다.

1. 유월절 규례의 보충(1-14절).

1)최초의 유월절 규례는 출애굽 때 받아 시행하였고, 그 후 출애굽 3개월 되었을 때 처음 시내산에 올라가서 율법으로 받았습니다(출 12:2-6, 13:3-4). 그런데 본문 1절을 보시면 “애굽 땅에서 나온 다음해 정월에 하나님이 시내 광야에서 말씀하셨다” 하셨으므로 이 말씀은 분명히 출애굽 1년 되었을 때에 다시 말씀하신 것으로 보셔야 합니다. 최초에는 율법 없이 말씀에 따라 시행하였는데 1년 후에는 율법을 주셨지만 보충 할 것이 있어서 또 말씀하신 것입니다. 보충내용은 6-14절의 말씀입니다.

2)“유월절을 그 정기(1월 14-21일)에 지킬 것(2절)과, 그날 해질 때 지키되 모든 율례와 규례대로 지킬 것(3절)을 명하신 즉 그대로 시행하였다”는 말씀입니다(5절). 율법을 받은 다음 처음 지킨 것입니다.

3)이 부분에서 규례를 보충해 주신 것은 시체로 부정하게 된 경우와 먼 여행 중에 있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선민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에 대한 규례는 재설입니다. 6-7절에서 “시체로 인하여 부정하게 된 자를 유월절에 참여시키지 않음을 인하여” 항의 질문을 받았을 때, 8절에서 모세는 하나님께 여쭈어 그 대답을 듣고 전하게 된 것입니다. ① 10-11절에서 “시체로 인하여 부정하게 된 자와 먼 여행 중에 있는 자는 한 달을 늦추어 2월 14-21일에 시행하라”고 2차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민 19:11-16에 보시면 시체로 인한 부정을 씻는 규례가 있습니다. 그 규례를 시행한 다음에 또 여행자는 그 시기에 돌아와서 반드시 지킬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다른 규례는(무교병, 쓴 나물, 남기지 말 것, 뼈를 꺽지 말 것 등) 출 12:2-6에서 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시대에 세례를 받는 일과 성찬에 참여하는 일을 반드시 시행하여야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막 16:16) ② 14절에서 “선민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 유월절을 지키고자 할 때”는 본토인과 동일한 율례로 시행하라 하셨은즉, 이 사실은 이방인 구원도 가능하며 또 이를 예고하신 것입니다. 출 12:19,48-49에서 “타국인도 유월절에 참여하려면 할례를 받은 후에 선민의 규례에 따라 하라”고 하셨은즉 이 규례는 보충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4)13절에서는 “결격 사유(부정과 여행)없이 (고의적으로)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 자는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니(이 죄목을 처리하는 형법이 기록된바 없으므로 하나님이 적당한 방법으로 제거하신다는 뜻임) 이런 사람은 그 정기에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지 아니하였은즉 그 죄를 당한 것이라” 하시므로 계율에 따라 정기에 지키는 것도 중요하고, 또 “이유 없는 범죄”에 대하여 응징하시는 것도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유월절은 이 시대의 성도들이 십자가의 신앙적 정신으로 가까이 나가는 성찬예식을 모형으로 나타내주신 것입니다(히 9:9).

2. 하나님의 인도와 행진(15-23절).

1)15절의 “성막을 세운 날”이라 하셨는데 이 시기는 1절과 관련하여 볼 때 출애굽 1년 후쯤이 될 것입니다. 출애굽 3개월 후에 시내산에서 지시를 받았은즉(출 19:1) 9개월쯤 준비하여 세웠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15-17절은 출 40:34-38의 재설입니다.

2)18-23절에서는 선민들이 하나님의 인도(영광)에 따라 엄격하게 복종한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18절에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명(불기둥, 구름 기둥)을 좇아 진행하고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위에 머물러 있을 때는 유진(진을 옮기지 않음)” 하였고, 19절에서 “구름이 상당기간 오래 머물러도 진행하지 않았고” 또 20절에서 “구름이 머무는 기간이 짧아도(떠오르면) 진행하였으며” 21절 말씀은 구름이 밤에만 있다가 아침에 떠올라도 움직였고 또 밤낮하루 만에 움직여도 진행하였다는 뜻이며, 22절은 그 기간이 이틀이든지 한달이든지 1년이든지 역시 구름 따라 유진하고 진행하였다는 것입니다.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곧 머물고 움직이는 생명입니다. 23절에서 “선민들이 그런 방법으로 직임을 지켰다”고 하셨습니다.

3)오늘로 말하면 성도가 말씀 따라 살고 시행하며 말씀 따라 멎고, 말씀에 뜻이 없으면 자신도 뜻을 포기하는 식입니다. 칼빈주의 원리가 성경본위의 생활이라고 합니다. 성경보다 더 잘하려고 해도 안 되고 오직 성경대로만 하는 것입니다.

선민의 광야 생활은 고생스러웠겠지만 퍽 단순하였다고 봅니다. 개인 직업이 없으니까요. 여행 중 선민의 할 일은 길삼도 아니고 목축이나 농사도 아니며 오직 말씀 순종뿐 이었습니다. 말씀 순종만 하면 먹을 것을 주셨고, 행진하는 것도 인도 하셨으니까요. 오늘의 성도가 자신의 생활이나 미래를 스스로 설계하거나 염려도 하지 말고 현재 상태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일(또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과 십자가)만 열심히 하면 있어야 할 것은 물론 내일 일과 그 다음의 일과 자신의 진로 문제의 일까지 하나님이 다 섭리하여 인도해 주시는 줄 믿고, 체험하셔야 할 것입니다(시 1:1-3, 마 6:32, 창 28:15, 46:4).

 

제 10 과 은나팔 제도와 행진 (민10:1-36) 목록으로


본문 말씀은 4대지로 나누어 상고 할 수 있습니다. ① 1-10절까지 “은나팔 제도”이고, ② 11-28절까지는 “행진 순서”이며 ③ 29-32절은 “호밥을 권하여 동행함”이고, ④ 32-36절은 “쉴 때와 떠날 때 기도함”입니다.

1. 은 나팔 제도(1-10절).

1)1-2절에서는 “은나팔 두 개를 쳐서 만들어 소집용 신호와 진행용 신호에 사용하라”하셨고,

2)3-9절에서는 ① 두 나팔을 함께 불 때는 온 회중이 회막에 모일 것이요, ② 한 나팔만 불 때는 천부장된 족장들이 모세에게로 나올 것이며 ③ 나팔을 울려(진동음을 내는 것) 불 때는 동편진(민 2:1-9, 유다, 잇사갈, 스블론)이 출발하고, 두 번째 울려 불 때는 남편진(민 2:10-17, 르우벤, 시므온, 갓)이 출발하라고 하셨습니다. 세 번째, 네 번째 분다는 말씀은 없으나 세 번 불면 서진(민 2:18-24,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이, 또 불면 후진(민 2:25-31, 단, 아셀, 납달리)이 출발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나 1진 출발 다음에는 성막재료 운반이 있고(17절), 2진 출발 다음에는 성구 운반 행렬이 있는 것도(21절) 기억하셔야 할 것입니다. ④ 9절에서는 “선민을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팔을 울려 불면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대적에게서 구원해 주실 것이라”하셨고, ⑤ 10절에서는 “희락의 날(경사스러운 날)과 정한 절기(유월절, 맥추절 등)와 월삭에는(매월 1일에 드리는 제사, 민 28:11,14, 29:6) 번제물과 화목제물 위에 나팔을 불어서(그 제물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신호를 하는 뜻)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성도를 가까이해 주시고, 또 기억해주시는 은혜가 큰 것을 아시고 기억하실만한 일을 많이 하는 성도가 되셔야 합니다.

3)7절에서는 “회중을 모을 때 울려 불지 말라”는 주의를 주셨고, 8절에서는 “나팔 불자는 아론의 아들들 즉 일반제사장들이 불라”고 하셨습니다.

4)이 은나팔의 의미를 영적으로 소개하면 나팔이 단순한 신호용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기구인 만큼 계시의 도구라 할 수 있고, 또 나팔을 통하여 나타내신 뜻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말씀이 됩니다. 또 이 나팔은 희년과(레 25:9) 왕을 세울 때(왕하 9:13, 11:14)에도 사용되었고, 하나님의 임재하시는 신호(출 19:16-19, 계 1:10, 4:1)로 또 예수님의 재림 신호로(살전 4:16)도 사용되는 만큼 의미가 크고, 그 나팔소리와 함께 대적을 치러나가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승리도 주신다” 하셨으니(9절) 곧 능력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가 있다 할 것입니다.

2. 행진순서(11-28절).

1)11절에서 “제 2년 2월 20일”은 9:10-11에서 유고자에게 2차로 유월절 기회를 준 마지막 날입니다. 이 날에 구름이 떠올라서 출발한즉 구름이 바란 광야(시내광야의 서북쪽)에 머물러 있으므로 그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14-16절에서 “수두(맨 앞)로 유다, 잇사갈, 스불론 지파가 각 족장들의 영솔로 진행하였고”, 그 다음에는

2)17절에서 1차 진행 뒤에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의 성막 자료 운반 행렬이 있는데 “성막을 메고 발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이 두 지파는 성막 재료를 맡은 일(3:25-26,36-37, 4:27,31 멜 것을 지시함)로 인하여 수례를 배정 받았지만(7:4-9) 그 수례는 성소 기구를 싣는데 쓰인 것 같지 않고, 업무량이 많은 인부들의 휴식을 위하여 쓰인 것으로 보셔야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성소 기구를 수례로 운반하였다”는 말씀이 없고, 게르손 자손이나 므라리 자손도 “그것을 메었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17절).

3)18-20절은 다음 진 르우벤과 시므온과 갓 자손의 행렬이 있었고, 그 다음 21절에서 “고핫 자손의 성물 운반이 있고, 이들이 이르기 전에 먼저 떠난 두 지파가 성막을 세웠다”고 하였습니다. 고핫 자손이 2차로 도착하면 성물 기구를 시설하였을 것입니다.

4)22-28절은 제 3진으로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지파의 행렬이 있었고, 마지막 후진으로 단과 아셀과 납달리 지파가 따라 나갔던 것입니다. 그 행렬에 질서가 있었습니다.

3. 호밥을 권하여 동행함(29-32절).

1)29절에서 모세가 미디안 장인 르우엘의 아들 호밥(처남)에게 선민 진행 취지를 말하고 “선대할 것이니 동행하자 하나님이 복을 주시리라” 하였으나, 30절에서 “그는 자기고향 자기친족에게 갈 것이라”고 사양하였는데

2)31-32절에서 모세가 다시 사정하기를 “당신이(이 근방 지리를 잘 아는 고로) 우리의 눈이 되어 광야에서 진 칠 것을 안즉 동행해주면 하나님이 복을 내리시는 대로 선대할 것이라”하여 결국 그를 동행에 참여시켰습니다. 이 부분에서 호밥이 “승인하고 따랐다”는 말씀은 없으나 삿 1:16, 삼상 15:6 등에서 “그 후손들이 가나안땅에서 거주한 사실을 보아” 동행한 줄로 아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방향 지도 외에도 자신이 노력을 많이 하였고, 호밥의 길 인도를 받은 것 보면 성도가 하나님의 특별 섭리만 의존 할 것이 아니라 일반 섭리에 따른 노력도 하여야 함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모세는 권면, 부탁, 설득력에도 힘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4. 쉴 때와 떠날 때 기도함(32-36절).

1)33절에서 “그들이 여호와의 산(시내산)에서 떠나 3일 길을 행할 때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3일 길에 앞서 행하며(2진 다음에 진행, 18-21절) 그들의 쉴 곳을 찾았다” 하셨으니, 이 뜻은 “3일 만에 바란 광야에 도착했다는 뜻”(11-12절)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그 3일 길에 앞서 행하며 쉴 곳을 찾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찾아) 구름을 멎게 하신 뜻인지 아니면 언약궤를 메는 고핫 지파 사람들이 미리 정탐하여 장소를 찾은 것인지......, 전자의 뜻이 더 유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자신을 언약궤로 표현하셨다 하여도 상관이 없고, 또 하나님은 성도의 쉴만한 곳으로 인도하시는 분이니까요(시 23:1-2).

2)34절에서 “선민이 행진할 때 여호와의 구름(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이 그 위에 덮였으니” 이는 임재의 뜻, 인도의 뜻도 있지만 더운 햇빛을 막아주시는 역할도 한 것입니다.

3)35-36절에서는 “떠날 때와 쉴 때 모세가 기도한 내용”으로 떠날 때는 “주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를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궤(언약궤)가 쉴 때는 “여호와여 이스라엘 천민인(번성을 믿는 마음으로 선민 전체를 일컬은 뜻)에게로 돌아오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움직이고 활동할 때는 서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원한 것이고, 쉴 때는 하나님과의 가까운 교제를 소원한 것입니다. 성도의 생활과 일거수일투족에도 주님과의 동행과 보호 인도를 구하는 마음이 한시라도 떠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제 11 과 메추라기를 주신 경위 (민11:1-35)목록으로


본문에는 “백성들의 원망과 모세의 기도”가 있고, 또 “메추라기를 주신 일과 진노하실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총괄적인 제목으로 “메추라기를 주신 경위”라 하였습니다. ① 1-3절은 “원망과 진노에 대한 말씀”이고, ② 4-9절은 “원망의 성격”이며 ③ 10-15절은 “모세의 기도”요, ④ 16-23절은 “고기를 주시겠다는 약속”이고, ⑤ 24-30절은 “성령의 역사”이며 ⑥ 31-35절은 “또 진노 받고 출발함”입니다.

1. 원망과 진노에 대한 말씀(1-3절).

1)1절에서 “백성들이 하나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였다” 하였으니 이 부분은 “고기를 먹지 못함으로 인한 원망 사건의 서론”으로 보심이 좋고, 또 이 원망은 광야 여행 중 다섯 번째로 기록된 것입니다(1회는 홍해 막혔을 때. 출 14:1, 2회는 마라의 쓴 물. 출 15:24, 3회는 양식 없을 때. 출 16:2, 8, 4회는 르비딤에서 물 없을 때. 출 17:3, 아말렉과 싸울 때는 원망하였다는 말씀이 없음. 출 17:8-13). 그리고 “하나님 들으시기에 악한 말”이란 하나님과 모세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고, 순종하고 출애굽한 것을 후회하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백성의 원망을 들으셨고 여호와의 불로 그들 중에 붙어서 진 끝을 사르셨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성도의 원망을 들으시고 원망한 대가를 진노로 베푸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여 성도는 무슨 일에나 원망할 수 없고,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다짐하십시오. 여기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불로 나타났으니”,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라(히 12:29)”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되고, 또 하나님은 임재의 불(출 3:2), 인도의 불(출 13:22), 심판의 불(본문, 창 19:24, 28), 응답(제물)의 불(왕상 18:38, 레 9:24) 등으로 나타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2)2절에서 “불사름 당한 일로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었고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한즉 불이 꺼진 것”은 지도자의 사명이고, 또 중보자격인 모세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아무래도 복음 사역자의 기도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는 응답의 효력이 있습니다. 3절에서 그 곳(바란 광야의 한 지점, 10:12) 이름을 “다베라”라 하였으니 이 뜻은 “불사름”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2. 원망의 성격(4-9절).

1)4절에서 “이스라엘 중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하였으니 여기의 “섞여 사는 무리”는 선민족 이외의 애굽에서 함께 나온 이방인이나 값을 주고 산 종 또는 여행 중에 합집한 객들입니다(출 12:43-45). 그들이 음식에 먼저 탐욕을 품었고, 선민이 함께 어울러 울었으니 믿음 없는 자들의 소행으로 유혹을 받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들이 고기를 아주 먹지 못하였는가?할 때 그렇지 않습니다. 출 16:13에 보시면 신광야에 있을 때 만나와 메추라기를 조석으로 주셨습니다. 그 후에 메추라기 고기가 계속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 이유는 16-20절에서 “고기를 넘치게 주실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뿐 아니라 그들은 5-6절에서 “애굽에 있을 때 값없이 생선과 채소(외 수박, 부추, 파, 마늘) 먹은 것이 생각난다” 하였으니 이것은 과거의 사치스런 음식에 미련을 둔 것으로 세속에 끌린 상태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성도가 세속의 사치에 얽매이면, 은혜를 받는데 큰 지장이 되는 것을 교훈 하신 것입니다(갈 5:24). 만나만 계속 먹고 채소류를 먹지 못했으며 메추라기 공급이 중단된즉 어려움이 있을 것은 사실이나 그 경우에 정력 쇠약을 원망한 것은 지나친 면이 있는 것입니다.

2)7-9절에서는 “만나의 모양(깟씨, 진주)과 수거(두루 다니며 거둠)와 요리(갈고 찧고 삶으며 과자를 만듦)에 대하여” 말씀하셨고, 또 만나가 내리는 시기는 “밤이슬이 내릴 때 함께 내렸다” 하셨으니 과연 기적의 양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출 16:13-14, 31의 말씀에 보충하신 것입니다. 선민의 여행기간은 과도기에 해당하는 만큼 모든 불편을 잘 참았어야 할 것입니다.

3. 모세의 기도(10-15절).

1)1절의 불로 진노하신 일과 관련하여, 10절에서 “백성의 온 가족들이 각기 장막문에서 우는 소리를 모세가 들었고 또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큰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11-15절에서 “하나님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종으로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의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들을 내가 잉태하여 생산하였습니까 주께서 나더러 양육하는 아비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고....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 이들이 울며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니 내가 어디서 고기를 얻습니까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짐을 질 수 없사오니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당연히 할 말을 드린 듯 합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우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차라리 죽기를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이 기도의 내용은 대단히 자연스럽고 사실대로의 내용을 대화식으로 하나님께 아뢴 것입니다. 기도는 어떤 규모나 가식보다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는 것을 인식하십시오.

4. 고기를 주시겠다는 약속(16-23절).

1)16-17절에서 하나님의 첫째 응답으로 “백성의 장로(노인 중)와 유사(사무 보는 이)된 자들 70명을 회막으로 모아 너와 함게 서게 하라 내가 강림하여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신(성령)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여 백성의 짐을 너 혼자지지 않고 함께 담당케 할 것이라” 하셨고,

2)18-20절에서 “백성들이 그 몸을 거룩케 하여(기적의 양식을 받을 때 최대한 정결하도록 결례 의식을 갖추게 하신 뜻, 레 5:2-6)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애굽에 있을 때 재미있었다 하는 말(1절의 악한 말)이 여호와께 들렸으므로 여호와께서 고기를 먹게 하실 것인데 하루, 이틀, 닷새, 열흘, 20일 뿐 아니라 코에서 넘쳐서(냄새가 싫어짐) 싫다 하기까지 1개월간 먹게 하실 것이라” 하시면서 “이는 너희가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고(악한 말) 하기 때문이라” 하셨으니 유감을 나타내시고 고기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3)21-23절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의아한 뜻을 나타내셨습니다. “어디서 이 많은 백성들에게 1개월 간 고기를 먹이신다는 것입니까? 소 떼, 양 떼, 물고기를 다 잡아드린다 하여도 모자랄 것입니다” 한즉,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응하는 것을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모세의 믿음도 한계를 드러낸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능력자이신즉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로 믿었던 아브라함의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롬 4:17).

5. 성령의 역사와 메추라기를 내리심(24-30절).

1)24-25절에서 “모세가 기도 응답 받은 사실을 백성에게 고하고 70 장로들을 모아 장막(성막)에 둘러 세우매,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여 모세와 말씀하시고 그에게 임한 신(성령)을 70 장로들에게도 임하게 하시니 신이 임하신 때에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다시는 아니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모세를 돕게 하시려고 70 장로들에게 성령의 감화를 주신 것인즉 이 경우에 성령의 체험은 자원이 아닌 상태에서도 받을 수 있었음을 알 수 있고, 계속 되지는 않았으며 그들이 예언한 말은 기록되지 않았으나 성령 감화의 증거 또는 모세의 짐을 함께 지기 위하여(17절) 은혜를 주신 것인즉 “모세의 지도에 순종하라”는 취지를 나타냈을 것으로 사료되는 것입니다.

2)26-30절은 회막에 나오지 않은 두 장로까지 성령을 받고 예언을 한 사실입니다. 그 두 사람은 장로 명단에 기록된 “엘닷”과 “메닷”이었는데, 그들이 회막에 나가지 않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나온 자들과 같은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더욱 일방적이고 피동적 역사로 성령을 받은 것이니 이런 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일시의 체험일 뿐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그들의 예언을 금하기를 청원” 하였으나 “너는 그들을 시기하느냐 나는 하나님께서 그 신을 모든 백성들에게 주셔서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한다” 하므로 모세의 넓은 아량을 나타내 주었습니다. 은혜 받는 일은 시기할 것이 못됩니다.

6. 또 진노 받고 출발함(31-35절).

1)31절에서 “바람이 여호와에게로서(하나님의 명령으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 곁 이편저편 곧 진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 쯤에 내리게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진에서 사방으로 하룻길 되는 범위에 두 규빗 쯤의 간격으로 흩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약 200만명이 흩어진 메추라기를 먹어야 하니까요(21절).

2)32절에서 “백성이 일어나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10호멜(1호멜은 약 230ℓ)이라” 하였으니 한 무더기쯤 된 듯하고, 그것을 “진 사면에 펴 둔 것”은 저장하기 위하여 말린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방법으로 백성들에게 고기를 먹게 하셨으나

3)33절에서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하나님이 진노하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니” 이 재앙은 1-3절에 나타난 진노와 별개의 것으로 사료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1-3절의 재앙은 “모세의 기도로 불이 꺼졌다” 하였으나, 이 곳의 재앙은 “큰 재앙으로 치셨다” 하셨고, 그 곳의 이름을 “핫다아와”(탐욕의 무덤)라 할 정도로 많은 죽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장소는 3절의 “다베라”와 같은 곳입니다. 불탄 시신은 장사할 것도 없겠지만(1절) 이 곳의 재앙은 장사를 지낸 기념 무덤까지 있음을 보니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메추라기를 주시고 먹기도 전에 진노하셨을까요? 이는 분명히 반성도 없고 몸을 거룩하게 하지 않은 듯하며(18절) 감사도 없이 탐욕만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4, 34절).

4)35절에서 큰 재앙을 받은 후 “기브롯 핫다아와를 진행하여 하세롯에 가서 거하였다” 하였으니 “하세롯”은 시내산 동북 55㎞ 지점의 “아인후도”라고 합니다(12:10, 16, 33:17, 신 1:1). 이 사실은 다 바란 광야 안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제 12 과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함 (민12:1-16)목록으로


본문 말씀은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함으로 야기된 사건입니다. 문제의 발단은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함으로 시작되었고, 때와 장소는 2차 메추라기를 주신 다음에 바란 광야 “하세롯”에서 있었습니다. ① 1-3절은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함”이요, ② 4-10절은 “하나님이 두 사람을 징책 하심”이며 ③ 11-16절은 “모세의 기도와 치료”입니다.

1.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함(1-3절).

1)1절에서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이 일을 인하여)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구스”란 이름의 근거는 노아의 손자요 함의 아들인데(창 10:6) 그 종족이 아프리카 지역에 퍼져 살았고 검은 피부를 갖고 있으며(렘 13:23) “에디오피아”의 뜻이 “살이 검다”는 뜻이기 때문에 구스인은 자연적으로 에디오피아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세비오 사기에 “에디오피아 공주가 모세와 결혼했다”는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에디오피아 공주는 모세가 애굽 왕궁에 있을 때 알고 있다가 훗날에 출애굽에 합류하였고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죽으므로 신앙을 갖고 결혼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한 이유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쉽게 말하여 선민 여인을 외면하고 이방 여인, 검은 여인을 취한 것을 마땅치 않게 여겼겠지요. “이방 여인과 혼인하지 말라”는 말씀이 신 7:3에 있은즉 분명코 율법을 주실 때 모세도 알았겠지만 그 취지는 “이방적 신앙을 가진 여인과 결혼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불신앙과 우상적 신앙의 오염을 막기 위한 것이지요. 민 9:14에서 “타국이나 값을 주고 산 노예라도 같은 믿음 세계에 귀속하면 선민과 같은 대우를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따라서 모세가 상처하고 믿는 이방 여인과 결혼하였다고 할 때 비방의 대상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2)그래도 비방을 하였는데 그 이유는 2절에서 “아론과 미리암이 선지자적 입장에서 모세만 높여지는 것을 시기하여 비방한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거의 모세와 말씀하셨지요) 우리와도 말씀하셨다” 하면서 모세와 대등한 듯이 나타낸 것입니다. 과연 그들과도 말씀하신 사실이 있는가?할 때, 출 7:8, 9:8에 보시면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신 사례”가 있고, 출 15:20에서 미리암을 선지자로 알린 사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로 모세와 격위가 같다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모세와 버금가는 지도자로 나타내려 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이 말을 들으셨다” 하셨으니, 하나님은 자기의 종을 비난하는 사실을 익히 들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는 복음 사역자에 대하여 함부로 비방하는 말을 삼가야 할 것이고, 그 대신 복음 사역자의 모범과 교훈이 성경과 일치하는지에 대하여는 늘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3)3절에서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다” 하셨는데 이 뜻은 미리암과 아론의 비난을 잘 감수한데서 평가된 말씀입니다. “예수님도 온유하셨고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고 하셨으니(마 5:5, 11:29) 성도는 반드시 온유한 성정을 지키도록 노력하셔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이 두 사람을 징책 하심(4-10절).

1)4절에서 “하나님이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회막으로 나오게 하셨고”, 5절에서 “구름 기둥 가운데로 강림하사 장막(회막) 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불러 가까이 나오게 하신 다음 내 말을 들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모세, 아론, 미리암을 가까이 하심에 있어서 계시를 나타내 주시는 성격이 모세와 그들(아론, 미리암)과 같지 않음을 일깨워 주시고 모세의 충성됨을 말씀하셨으니

2)곧 6-8절에서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아론과 미리암을 비유하신 뜻) 나 여호와가 이상(마음에 떠오르게 하는 계시)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말하기도 하거니와, 7절에서 모세와는 그렇게 하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8절에서 그와는 대면하여(직접, 더 가까이 임재 하심) 명백히 말하고(이상이나 꿈으로 하지 않고 말씀을 직접 주시는 뜻) 은밀한 말(비유, 상징 같은 것)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모세는 하나님이 충성됨으로 세우신 점과 특별한 방법으로 계시하시는 사실을 말씀하시므로 함부로 비방한 것이 잘못된 것임을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형상을 본다”는 뜻은 하나님이 형상이 없으신 관계로(요 4:24, 약 1:17), 본질의 형상 즉 하나님 자신의 뜻을 특별한 방법으로 나타내주실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특별한 방법은 모세 5경을 기록할 수 있는 은사 같은 것입니다.

3)어떤 이는 3절에서 “모세가 자기의 온유함을 나타낸 것”은 민수기가 모세의 글이 아님을 뜻한다 하며, 모세 5경의 저자설을 부인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민수기는 율법의 말씀이고, 예수님과 사도들이 “모세의 율법”이란 말씀을 여러 차례 하신 만큼(눅 24:44, 요 1:17, 45, 7:19, 23, 행 13:39, 15:5, 28:23)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세가 자기의 온유나 죽음 문제(신 34:1-8)를 기록한 것은 마치 요한 복음을 사도 요한이 3자격으로 기록한 것처럼 모세 5경도 그런 면이 있다고도 하고, 대필설을 주장하여 타인이 한 것을 모세가 한 것으로 되어 있다는 설이요(브살엘이 법궤 만든 것을 모세가 만들었다 하였고, 신 10:3, 백부장 하인이 예수님 만나러 간 사실을 백부장 자신이 간 것처럼 한 말씀, 마 8:5과 같은 의미), 또 한 가지는 “온유”란 챠날(Ἷ󰗇󰙄)의 뜻이 고난 감당을 의미하기 때문에 “모세는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고난을 잘 감당하더라”고 번역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합니다. 필자는 이상 세 가지 해설을 참고할 때 일단 모세가 자기 사건에 대하여 3자격 또는 예언적 감동대로 기록하였다고 믿는 것입니다.

3)9절에서 하나님은 그들(두 사람)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셨습니다. 10절에서 장막의 구름도 떠났습니다. 그런데 “미리암”만 문둥병이 들려 (그 살이) 눈같이 희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죄로 인한 징계로 하나님이 병을 주신 사례인데 아론은 함께 진노를 받았지만 그 결과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출 32:4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 때도 아론이 가담되었지만 중벌을 면한 사례가 있지요. 이런 문제는 심판자이신 하나님이 아시고 묵과 하셨거나 다른 방도로 공의를 시행하신 줄로 믿어야 할 것입니다.

3. 모세의 기도와 치료(11-16절).

1)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리자 11-12절에서 아론이 모세에게 반성하는 뜻으로 “슬프다 내 주여 (모세에게 한 말) 우리가 우매한 일로 죄를 얻었으나 그 허물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 그 살이 썩고 어린 아이 피부처럼 되지 않게 하옵소서” 하고 사정한즉 13절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그를 고쳐주십시오”하고 또 기도하였습니다.

2)이때 14-15절에서 하나님이 응답하시기를 “그의 아비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았다 해도 7일간 (그 부정함을 인하여) 부끄러워하지 않겠느냐” 하셨으니, 이는 정결을 원하는 자의 의지가 그러하다는 뜻이요, 그런즉 문둥병 걸린자인즉 “그를 7일 동안 진 밖에 가두었다가 나오게 하라” 하셨으니 이는 “고쳐주셨다는 뜻”임과 동시에 결례식을 행한 후(레 13-45-46, 14:8-9), 진 중에 들어오라는 뜻입니다. 결국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죄 용서와 함께 병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3)15절에서 그 일로 인하여 7일간 단체 진행이 지연되었습니다. 단체 중 1인이라도 유고가 있으면 그만큼 단체의 발전이 둔화됨을 뜻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교회 생활에서 결코 유고자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십시오. 16절에서 “그 후에 백성이 하세롯에서 진행하여 바란 광야(광야가 넓은즉 다른 곳에 해당함)에 진을 쳤다”고 하셨습니다.

 

제 13 과 정탐을 보냄 (민13:1-33)목록으로


① 1-20절까지 “정탐꾼 파송을 명하심”이고, ② 21-25절까지는 “정탐한 내용”이며 ③ 26-29절까지는 “정탐보고”요, ④ 30-33절은 “정탐 반응”입니다.

1. 정탐꾼 파송을 명하심(1-20절).

1)1-3절에서 정탐꾼 파송을 명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장소는 바란 광야에서입니다. 모세는 각 지파의 족장(그 자손의 두령된 자) 한 사람씩 뽑아 12명을 파송 하였으니

2)4-16절에서 르우벤 지파는 “삭굴”의 아들 “삼무아”요, 시므온 지파는 “호리”의 아들 “사밧”이며, 유다 지파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요, 잇사갈 지파는 “요셉”의 아들 “이갈”이며, 에브라임 지파는 “눈”의 아들 “호세아(여호수아)”요, 베냐만 지파는 “라부”의 아들 “말디”이며 스블론 지파는 “소디”의 아들 “갓디엘”이요, 요셉 지파 곧 므낫세 지파는 “수시”의 아들 “갓디”이며, 단 지파는 “그말리”의 아들 “암미엘”이요, 아셀 지파는 “미가엘”의 아들 “스둘”이며, 납달리 지파는 “웝시”의 아들 “나비”요, 갓 지파는 “마기”의 아들 “그우엘”이었고, 모세는 호세아(구원의 뜻)를 여호수아(여호와의 구원)로 개명 호칭하였으니 구원을 받되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야 함을 상기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16절).

3)17-20절에서는 정탐 지역과 임무를 말씀하셨는데, 지역은 “가나안 땅이며 남방 길로 행하여 산지로 올라가라” 하였으니, 산지로 가면 높은데도 낮은 데도 볼 수 있고, 피신처로도 유익한즉 그렇게 명한 것이며 임무는 땅의 지형, 거민의 강약과 다소, 토지의 형편(땅의 호 불호), 성읍의 형편(진영인지 산지인지, 진영은 천막촌을 의미한 듯 함), 토질의 형편(후박)과 수목의 유무 그리고 그때가 포도 맛물 때이므로, “처음 익은 열매도 가져 오라”고 하였습니다. 또 20절에서 “담대 하라”는 당부도 하였습니다. 이상의 내용들은 선민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점령할 때와 미리 땅을 분배할 때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2. 정탐한 내용(21-25절).

1)21절에 보시면 “그들이 올라가서 땅을 탐지하되 신광야(팔레스틴 남부 평야)에서부터 하맛 어귀 르흡에 이르렀고”, 22절에서는 “남방으로 올라가서 헤브론에 이르렀으니 헤브론은 애굽 소안(아가페, 성서지도에 의하면 라암세스와 같은 곳임)보다 7년 전에 세운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출발지 바란 광야는 시나이 반도 중앙 넓은 지역이고 신광야는 바란 광야의 북쪽이며 사해 바다와 브엘세바의 남쪽입니다(출 16:1의 신광야는 수르 광야, 시내 광야의 중간 지점으로 같은 지역이 아닌 듯 함). 하맛은 지도로 찾아보면 아주 북쪽 안디옥과 다메섹 사이에도 있고(아가페 성서지도), 뉴톰슨 관주 성경에 나타난 지도를 보면 갈릴리 바다 서편 디베랴 위치쯤이 “하맛”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하맛은 아주 북쪽이 아닌 갈릴리 지역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르흡”은 하맛 어귀(가는 길목이란 뜻)라 하였은즉 아가페 성서지도에 나타난 사마리아 지역 길보아 산 쯤의 위치가 됩니다(이 지도에는 요단강 동쪽 므낫세 지파의 땅에 있는 길르앗 라못 쯤의 위치에도 르흡이 있음). 정탐자들이 “르흡”이 있는 북쪽 지역까지 갔다가 다시 “남방으로 올라가서(예루살렘과 그 남쪽 헤브론이 높은 지역이므로 그렇게 표현하신 것임) 헤브론(예루살렘 남쪽 가사와 사해 바다의 중간 쯤)에 이르렀으니 헤브론은 애굽의 소안(라암세스)보다 7년 전에(그 지역 주민들이 도성으로) 세운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그 곳에 아낙 자손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가 있었다” 하였으니 이들은 헤브론의 영수들이요, 28절에서 강한 족속으로 평가하였습니다.

2)또 23절에서는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렀으니 이 지역은 지도에서 찾기 어려우나 헤브론 남쪽 가까운 지역으로 예측됩니다(신 32:9). “그 곳에서 포도 한 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두 사람이 막대기에 꿰어 매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취하였다” 하였으니 이는 그 지역의 땅이 비옥함을 증명한 것입니다. 24절에서 “선민들이 그 역사를 기리기 위하여 그 곳을 에스골(포도송이) 골짜기로 이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25절에서는 “40일간 정탐하고 돌아왔다”고 하였습니다.

3. 정탐보고(26-29절).

1)26절에서 “정탐을 끝내고 도착한 장소는 바란 광야 가데스”였습니다. 이 가데스는 바란 광야 북쪽 중앙에 있는 지역으로 “가데스 바네아”(거룩한 샘, 민 32:8, 신 1:2)라고도 하며 성경의 역사적 사건이 많았던 곳입니다(성경 지명 사전을 찾아 참고하십시오). 정탐자들이 와서 회보하고 그 곳(에스골 골짜기)의 실과를 보이며 말하기를

2)27절에서 “당신이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비옥하다는 뜻) 이것은 그 땅의 실과라”고 한 후에, 28절에서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며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장대하고 힘있는 족속으로 알려졌으나 여호수아에 의해 진멸되었음. 신 1:28, 수 11:22)을 보았고, 29절에서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하며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가에 거한다”고 하였습니다.

3)여기의 “아말렉”은 창 14:7에서 시날왕, 엘람왕 등 연합군에 점령된 기사가 있고, 또 창 36:12에서는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가 그의 첩 딤나의 소생으로 아말렉을 낳았다” 하였는데, 어느 족속인지는 분간하기 어려우나 그들이 가나안 땅 남방에 거한 것이 사실입니다. “헷”은 노아의 증손자요, 함의 손자이며 가나안의 아들로(창 10:15) 에서의 처가 그 계열이고(창 26:34), 헤브론 근방에 거주한 기록이 있으며(창 23:9) “여부스”는 창 10:16에서 헷처럼 가나안의 아들인데 그 지역이 예루살렘의 옛 이름인바(수 18:28) 그 곳에 분포하여 거주한 것을 알 수 있고, “아모리”인도 여부스와 형제이므로(창 10:16) 다같은 함의 후손이며 “가나안”도 함의 장자로서 11 족속의 조상이 되었습니다(창 10:15, 시돈과 헷, 여부스, 아모리, 기르가스, 히위, 알라, 신, 아르왓, 스말, 하맛 임). 보고자들은 대체적으로 정탐의 사명을 성실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뜻을 이루심에 있어서 모든 것을 기적으로만 성취하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4. 정탐 반응(30-33절).

1)이 대목이 가장 중요합니다. 30절에서 “갈렙(여호수아도 함께, 14:6)은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키며 말하기를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길 것이라” 하며 자신감과 조급함을 나타냈는데

2)31절에서 “다른 사람들은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32절에서 “그들이 자신들보다 강하다는 것”이고, 또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말하기를 “거민들을 삼키는 땅이라”는 것이요(이 말은 앞에서 보고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한 것과 반대됨), 또 32절에서는 “그 지역에 네피림(창 6:4, 대장부족으로 나타남) 후손인 아낙 자손들(22절)이 있는데 그들은 다 대장부라 자신들은 그 앞에서 메뚜기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3)갈렙의 보고는 적극적이고 다른 이의 보고는 아예 가나안 땅 점령의 의지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이고, 또 그 동안 약속의 성취를 위하여 역사 하신 바가 크므로 믿음 안에서 용기가 생긴 것입니다(빌 4:13, 신 1:21).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 성취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지 않은즉 자신들은 메뚜기 같은 약한 존재로만 보이고 대적은 강하게만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의지와 용기를 잃고 부정적 요소만 들추어 진격을 포기하려고 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히 11:1).

 

제 14 과 정탐보고의 결과 (1) (민14:1-19)목록으로


13:26-29에서 “정탐보고”가 있었고, 13:30-33절에서 “정탐 반응”이 나타났는데 12 정탐 중 10명이 “가나안 땅 정복의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① 1-5절에서 “원망과 반란을 선동함”이고, ② 6-9절에서 “여호수아과 갈렙의 신앙적 주장”이며 ③ 10-12절에서 “하나님이 나서심”이요, ④ 13-19절에서 “모세가 기도함”입니다.

1. 원망과 반란을 선동함(1-5절).

1)1-4절에서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통곡)을 하였다” 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면서 우리가 애굽에서 죽었거나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이라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도록 하시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차라리) 한 장관을 세워 애굽으로 돌아감이 나은즉 그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의 원망은 출애굽 이후 여섯 번째이며(홍해 막혔을 때. 출 14:11, 마라의 쓴 물. 출 15:24, 양식 없을 때. 출 16:2, 르비딤에서 물 없을 때. 출 17:3, 고기를 먹고 싶다 했을 때. 민 11:1-6까지 5회임) 원인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희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원망 그 자체도 좋아하시지 않지만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 하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악한 말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2)5절에서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렸다” 하였으니, 이것은 지도자로서 “속수무책 또는 굴복하는 형편을 나타낸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원망과 반항의 힘이 크기 때문에 그들을 따르게 할 힘이 없었던 것입니다. 백성들 곧 성도의 믿음과 의지는 약한 면이 있습니다. 이것을 강하게 교육하는 것이 목회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믿음 없고 판단 없이 다수에 따를까 염려됩니다.

2. 여호수아와 갈렙의 신앙적 주장(6-9절).

1)13:30절에서는 갈렙 혼자 신앙적 주장을 하였는데 본문 6절에서는 여호수아가 합세하였습니다. “한 사람보다 두 사람이 낫다” 하신 전 4:10 말씀을 실감케 합니다. 수가 적어도 연합의 힘은 강합니다. 그 두 사람은 안타까운 표현으로 옷을 찢으며 회중에게 말하기를 ① 8절에서 “우리가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답고...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이것은 은혜를 은혜로 평가하는 신앙입니다. ②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그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라” 하였으니 이는 은혜 받을 희망을 하나님께 둔 것입니다. ③ 9절에서 또 말하기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토속신) 그들에게서 떠났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즉 두려워 말라” 하였으니, “그들의 신이 떠났다”고 믿는 것은 하나님이 그 땅을 주시기로 약속하시고 역사 하심을 믿는 때문이었습니다. 성도들도 하나님의 능력과 함께 하심을 믿는다면 어떤 대상이나 역경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도에게 요구하시는 믿음도 그런 것입니다(빌 4:13, 시 27:1-3). 그러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온 회중은 모세와 아론을 돌로 치려 하였은즉(10절)” 그 분위기가 얼마나 삭막하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에 사로잡히면 의욕과 용기가 생기고, 하는 일에도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하심이 없다”(막 9:23) 하신 말씀은 그런 경우에 하나님이 역사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반드시 믿음에 몰두해 보시고 하나님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경험하십시오.

3. 하나님이 나서심(10-12절).

1)하나님은 인간의 힘에 한계가 오고 성도에게 위험이 올 때 역사 하십니다. “모세와 아론이 회중 앞에 엎드렸다”(5절) 함은, 힘의 한계가 온 것을 뜻하고, “회중이 돌로 칠 기세를 보인 것”은 하나님이 보호해 주셔야 할 자에게 위험이 온 것을 뜻합니다. 10절에서 이 때에 “여호와의 영광(구름)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셨다”고 하였습니다.

2)그리고 11-13절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행한 이적을 생각지 않고 언제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너로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하셨으니 하나님은 자기를 멸시하는 자, 곧 이적과 능력을 믿지 않는 자들을 전염병으로 없애시고, 그 남은 자들로 하여금 강한 나라를 이루실 수 있는 분이며, 또 “그렇게 하시겠다” 하였을 때 모세가 또 기도하게 된 것입니다.

4. 모세의 기도(13-19절).

1)이 말씀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의 취지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으로 선민을 인도한 사실이 많이 알려졌고 또 고하는 중(알림)인데 만일 이 백성을 전염병으로 한 사람처럼 일제히 죽이신다면 하나님의 명성을 들은 열국의 백성들이 말하기를 여호와가 그 이상의 능력이 없어서 죽게 하였다 한다면 하나님의 명성이 어찌 되겠습니까 그러하오니 권능을 나타내시옵소서”

2)또 18절에서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으시며 죄악과 과실을 사하나(죄사함 받을 자가 따로 있다는 뜻)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비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3, 4대까지 이르게 하셨나이다” 그러하오니 19절에서 “광대하신 인자하심에 근거하여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여러 차례 사하신 것처럼) 사하여 주십시오”라고 한 것입니다. 이 기도 내용은 11:10-15에 나타난 기도의 성격과 흡사합니다. 하나님의 명성과 인자하심에 근거하여 용서를 구한 것입니다.

3)하나님은 능력이 무한하시고 인자도 무한하시며 은혜줄 자에게 은혜를(출 33:19), 벌할 자에게 진노를 하시며 능력을 더 주실 수도 있고, 악한 자의 죄를 인자하심에 따라 용서하실 수도 있음을 기도로 아뢴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명성을 지키시는 분이라”고 하셨습니다(사 42:8).

4)18절에서 “죄악과 과실을 사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신다”는 뜻에 대하여 “선택자의 죄는 사하시고 비택자의 죄는 벌하심”이라고 앞에서 설명 드렸지요. 그러나 여기에 “사하신다”는 뜻을 아주 죽여 없애시지 않고 적당하게 벌하시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삼하 12:13-14에 보시면, 다윗왕이 우리아의 아내를 취하여 범죄 하였을 때, 회개한즉 하나님이 “죄를 사하셨으니 죽지는 아니 하려니와 이 일로 인하여.....훼방거리를 얻게 하신다” 하시고 아들을 죽게 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뜻이 18절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모세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시는지 다음 과목을 살펴보십시오.

 

제 15 과 정탐보고의 결과 (2) (민14:20-45)목록으로


① 20-35절은 “모세 기도의 응답”이요, ② 36-38절은 “탐지한 자 10명 죽음”이며 ③ 39-40절은 “불순종으로 패함”입니다.

1. 모세 기도의 응답(20-35절).

1)20절에서 “하나님은 네 말대로 사하노라” 하셨으니 이는 아주 “다 멸하시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주동자 10명만(정탐자로 반대한 자들) 재앙으로 죽었습니다(37절).

2)21-23절에서 “하나님의 영존 하심(사는 것)과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한 것으로 맹세 하노니(분명한 뜻이란 뜻), 나의 영광과 그동안 행한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말씀)를 청종(듣고 순종함)치 아니한 그들은 내가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에(창 13:14-17, 17:8)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 뜻은 28절에서 20세 이상 계수된 자들이 광야에서 다 죽을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3)그러나 24절에서 “오직 그 마음이 그들과 달랐던 내 종 여호수아와 갈렙은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믿음의 조건 두 가지를 말씀하셨는데, 하나는 마음이 하나님과 같아야 함이고,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믿음과 생활은 확실하여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추호도 의심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4)25절에서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28-29절, 출 17:8-16) 골짜기에 거하나니 너희는 내일 돌이켜 광야 길로 들어가라”(앞으로 나가지 말고 뒤로 피하여 돌아가라는 뜻) 하셨으니, 믿음과 정신이 확고하지 않으면 전쟁에 이길 수 없고 하나님께서도 돕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5)26-32절에서 “하나님을 원망한 악한 회중을 언제까지 참으랴 그들의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12:2) 그들에게 이르기를....너희 말이 내게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나를 원망한 자 전부 곧 20세 이상 계수 받는 자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따라서)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할 것이요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염려하였던(3절) 너희 유아들(20세 이전)은 내가 인도하여 너희가 싫어하던(13:32, 악평한 뜻) 땅을 보려니와 너희 시체는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하시므로, 죄는 사하여 다 멸하시지 않지만 주동자 10명이 재앙으로 죽고(37절) 남은 장정 불신앙자들은 장수하지 못하여 광야에서 죽을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생명과 죽음이 하나님께 있은즉 하나님 뜻대로 하시는 것입니다(신 30:15, 19).

6)33-34절에서 “패역한 죄를 지고 광야에 엎드러진 시체가 소멸되기까지 40년을 광야에서 유리 하는 자가 될 것인즉 이는 탐지한 날수 하루를 1년으로 환산한 날이며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지니 나의 싫어버림을 알리라” 하시므로, 40년의 세월이 징계의 기간임을 확실히 말씀하셨습니다(신약의 성도들은 광야의 생활을 교회의 생활 또는 연단의 기간으로 여겨 교훈을 삼기도 합니다). 35절에서 하나님은 같은 내용을 재차 확인하셨으니, 하나님은 징계를 하시되 범위와 기간과 내용에 있어서 상당한 뜻을 두시고 합리적으로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탐지한 자 10명 죽음(36-38절).

1)36절에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으로 원망케 한 사람들은....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다” 하셨으니, 이는 전염병으로 치셨을 가능성이 크고(12절) 반대로 여호수아와 갈렙은 생존하였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은 믿음과 불신앙, 순종과 원망에서 나누어진 것입니다.

3. 불순종으로 패함(39-45절).

백성들이 하나님의 경고와 징계를 받았으면 한층 더 깨닫고 모세의 지도에 순종하였어야 하는데 잘못은 깨달으면서 순종은 못하는 불균형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1)39절에서 “백성들은 앞에서 나타난 모든 결과와 말씀을 전해 듣고 크게 슬퍼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40절에서 “백성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하였으니 이것은 앞으로 나가는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용기를 내어 전쟁도 하겠다는 뜻이지요. 그들은 산꼭대기로 올라가면서 40절에서 “하나님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가리니 우리가 범죄 하였습니다” 하면서 불신앙과 불신앙에 동조한 잘못을 회개한 것입니다. 회개는 좋은 것이나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순종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순종으로 이어지지 않고 자율적 행위로 나가려고 하였으니 이는 23절에서 “아말렉과 가나안인이 골짜기에 있은즉 너희는 내일 홍해 길로 하여 광야로 돌이키라”는 말씀을 정면으로 거역한 것입니다. 목적은 좋으나 길 아닌 곳으로 간 것입니다.

2)따라서 모세는 41-43절에서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범하느냐 이 일이 형통치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 중에 계시지 않은즉 (진격에 돕지 않는 뜻) 올라가지 말라 너희가 대적 앞에서 패할 것이다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너희 앞에 있으니 그들의 칼에 망할 것이다 너희가 여호와를 배반하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아주 버리셨다는 뜻은 아님)” 하였는데도

3)44절에서 “그들(군사들)은 그대로 산꼭대기로 올라갔고(이것은 자율주의요, 거역이고 만용임) 여호와의 언약궤와 모세는 떠나지 않았으니” 이는 하나님의 구름 기둥이 인도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45절에서 (결국)“아말렉인과 산지에 거하는 가나안인이 내려와서 선민 군사를 파하므로 패배를 당하고 호르마까지 이르렀다” 하셨으니 “호르마”는 브엘세바와 사해 바다 중간쯤의 지점입니다. 자율주의에 하나님은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과잉 충성은 물론 성경에 나타난 말씀보다 더 잘 하려 하거나 지나친 열심을 내는 것도 하나님은 원하시지 않습니다(롬 10:2-3). 오직 계시로 나타내신 뜻대로만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회개에 치우치다가 말씀 뜻을 져버린 것입니다.

 

제 16 과 여러 가지 율례 (민15:1-41)목록으로


민수기 15장을 읽어보면 ① 1-17절에서 “제물 첨부 규례와 적용법”을 말씀하셨고, ② 18-21절은 “그 땅의 양식을 먹을 때 할 일”이요, ③ 22-31절은 “범죄 성격에 따른 제사”이며 ④ 32-36절은 “안식일 범법자 처단”이고, ⑤ 37-41절은 “계명에 경성 하는 방법”입니다. 총괄적으로 제목을 정한다면 “여러 가지 율례”라 함이 좋을 것입니다.

1. 제물 첨부 규례와 적용법(1-17절).

1)1-2절에서는 “선민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킬 법”이라 하셨고, 18절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제물에 첨부하는 소제, 전제물이 광야에는 없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농산물로 생산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3절에서는 각종 제사에 대한 명칭과 방법을 말씀하셨는데 명칭은 목적에 따라 제사 드리는 서원제, 낙헌제, 절기제이고, 방법은 “제물을 어떻게 요리하여 드리느냐”에 대한 방법으로 화제와 번제를 말씀하셨습니다. 목적에 따른 제사로 서원제는 서원하는 목적으로, 낙헌제는 드리는 목적(헌신, 봉사)으로, 절기제는 유월절, 77절(맥추절), 초막절, 수장절, 월삭, 안식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화제는 불 태워 드리는 것, 번제는 구워드리는 것, 소제는 곡식류 제사를 뜻하고, 전제는 기름이나 포도주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2)문제는 희생물에 첨부하는 제물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손이 어른을 섬길 때, 좋은 음식에 좋은 반찬을 곁들여야 하는 것처럼 제사에는 첨부 제물이 따르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제사로 표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람 섬기는 방법처럼) 섬기는 정성과 제도로 하나님 경외하는 방법을 일깨우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3-4절에서 “희생물이 소나 양일 때는 고운 가루 에바 1/10(2.2ℓ)과 기름(먹는 기름, 감람 ) 1/4힌(0.95ℓ)을 섞어 드리라는 것”이요, 5절에서 “제물이 어린양일 때는(이는 가난한 자가 적은 제물을 가져왔을 경우임) 고운 가루는 생략되고 포도주 1/4힌만 첨부”하면 되며 6-7절에서 희생물이 수양이면(어린양보다 큰 것) 고운 가루 에바 2/10(4.4ℓ)에 기름 1/3힌(1.26ℓ)과 포도주 1/3힌을 드릴 것이요, 3, 7, 10절에서 “향기롭게 하라”는 뜻은 하나님이 기쁘게 흠향하시도록 정성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8-10절에서 “번제, 서원제, 화목제로 수송아지를 드릴 때는(수양보다 큰 것) 고운 가루 3/10에바와 기름 1/2힌을 드려 화제를 삼고”, 11-12절에서는 “각종 희생물의 종류와 수에 따라 부속 예물을 잘 첨부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규례의 특징은 빈부에 따라 조정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구하시지 않는 만큼 형편대로 하게 하신 것입니다(고후 8:11-12).

3)14-17절에서는 “본토인(선민)이나 타국인(믿음 세계에 합류된 이방인)의 법 적용이 같다”는 뜻입니다.

2. 그 땅의 양식을 먹을 때 할 일(18-21절).

만나는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 그쳤으니(수 5:12) 하나님이 이중 대책을 폐하신 뜻이고, 무엇이나 더 온전한 것을 주시면 덜 온전한 것을 폐하시는 섭리가 있는 것도 기억하셔야 할 것입니다(고전 13:10). “양식이 큰 은혜인 만큼 먹기 전에 하나님이 주셨다는 사실을 믿음과 감사로 표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곧 처음 익은 곡식으로 만든 가루떡(거친 식물, 관주)을 타작 마당의 거제처럼(이삭을 들어올린 뜻) 들어 올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제도가 식사 기도의 근원이 된 듯 합니다.

3. 범죄 성격에 따른 제사(22-31절).

1)22-23절은 “회중이 그릇 범죄 하여 모든 명령을....명한 날부터 대대로 지키지 못함이라” 하셨으니, 여기에서 율법의 완전 실천이 불가능함을 말씀하셨고, 이 말씀은 갈 3:10-11에도 나타난 말씀입니다. 따라서 율법 실천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고 중보자의 대속으로 죄사함 받아야 함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2)이 범죄의 성격은 회중의 그릇 범죄(연약하거나 모르고 짓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24절에서 “온 회중이 수송아지 하나와 수 염소 하나를 소제와 전제를 합하여 규례대로 드려야 한다”고 하셨으니, 여기의 규례란 11-12절의 적용입니다. 25절에서는 “제사장이 그 드리는 사명을 이행하라”고 하셨고, 26절에서는 “타국인(이방인) 회중의 경우도 꼭 같은 규례를 적용한다”고 하셨으니 이는 선민 회중의 그릇 범죄한 사건에 포함한다는 뜻입니다(롬 3:29).

3)27-29절은 한 사람 개인의 그릇 범죄에 대한 것입니다. 이 경우에도 타국인과 같이 적용합니다(29절). 그 방법은 “1년 된 암 염소로 속죄제를 드리되 제사장이 그 제물로 제사 절차를 밟아 속죄하라” 하셨으니 이 근거에 의하여 고해 성사가 생긴 듯하고, 개신교에서는 예수님이 중보자이시므로 성도가 직접 회개하므로 사함 받게 하신 것입니다(마 18:22, 요일 1:9). “개인의 범죄를 1년 된 암 염소 한 마리로 해결하라” 하신 것은 회중의 죄보다 단순하게 여기신 때문일 것입니다.

4)그런데 30절에서는 범죄 성격이 그릇 범함이 아니고 짐짓 범함(고의적 범죄)입니다. 이것은 “선민이나 타국인이나 여호와를 훼방한 것이므로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고 하셨습니다. 31절에서 “짐짓 범죄한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 명령을 파괴하였으므로 그 죄악이 자기에게로 돌아가서 온전히 끊쳐지리라” 하셨으니, 이는 영적 또는 현실적으로 구원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즉 당장 죽지는 않아도 하나님의 특별 간섭에서 제외된다는 뜻입니다(마 12:31-32, 히 10:26-29, 요일 5:17과 같은 뜻임).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 이는 거듭남과 믿음이 없는 증거로서 참된 회개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4. 안식일 범법자 처단(32-36절).

1)“안식일에는 불도 피우지 말라”(출 35:3) 하셨고, 출 31:14-15에서 “안식일을 더럽히거나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는 계명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이 광야에 거할 때 안식일에 나무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회중 앞으로 끌어 왔으나 어떻게 처치할 지시를 받지 못하여 가두었는데 반드시 온 회중이 진에서 돌로 쳐 죽이라는 하나님의 지시가 모세에게 임하여 그 명대로 시행하였다”는 말씀입니다.

2)이 시기에는 재판 절차가 확립되지 못한 상태였기로 모세가 직접 지도한 줄 압니다. 결국 죽여야만 하는가? 하시겠지만 율법은 정죄 하여 죽이는 도구임을 알게 하신 뜻도 있고(롬 5:20, 6:23), 일벌백계의 뜻이 있다 할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율법 아래 있지 않기 때문에(롬 8:1) 그런 죽음을 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갈 5:1).

5. 계명에 경성하는 방법(37-41절).

1)37-39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선민이 대대로 지킬 규례로서 “옷단에 술과 청색 끈을 부착 시키라”고 하셨습니다. 그 옷 술과 청색 끈을 늘 눈으로 보게 되는데, 28절에서 “그것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계명을 생각하고 준행 하며 방종 하는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좇지 않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신 6:8-9에 “말씀을 손목에 매고 미간에 붙이며 문설주에 기록하라”는 뜻과 같은 것입니다.

2)“성도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지킬 때 거룩해진다”고 하셨습니다(40절). 41절에서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 하여 선민을 불러내셨다” 하셨고, 또 “나는.....너희 하나님이라” 하셨으니, 성도는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모신 것 이상 더 큰 행복은 없는 것입니다. 그 행복을 뜨겁게 느낄 수 있을 때,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체험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 섬기는 정성, 죄사함의 도리, 벌하시는 하나님, 계명에 경성하는 생활 등을 교훈 하셨습니다.

 

제 17 과 반역당 진압 (민16:1-50)목록으로


① 1-3절은 “반역당과 반역의 발단”이고, ② 4-7절은 “고라와 모든 무리에게 한 말”이며 ③ 8-11절은 “반역한 레위 자손들을 책망함”이요, ④ 12-14절은 “다단과 아비람의 불복”이고, ⑤ 15-18절은 “모세의 기도와 고라당의 분향 준비”이며 ⑥ 19-35절은 “적대 행위와 하나님의 진압”이고, ⑦ 36-40절은 “향로를 수거함”이요, ⑧ 41-50절은 “회중의 원망과 염병”으로 되어 있습니다. 결국 총 제목은 “반역당 진압”입니다.

1. 반역당과 반역의 발단(1-3절).

1)1-2절에서 반역의 당수가 된 사람은 고라(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와 다단과 아비람(르우벤의 자손, 엘리압의 아들)과 온(벨렛의 아들, 이 사람의 계열은 알 수 없음)이고, 여기에 합세한 족장 250인이니 이들은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유명한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이 단합하여 모세의 지도를 거스렸으니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3절에서 그들이 반역한 대상은 모세와 아론이고, 반역한 이유는 “분수에 지나치다”는 것인데, 이 뜻은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레위 지파를 분별하신 뜻) 하나님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어찌하여 너희가 스스로 높이느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세 형제만 특권자로 나서는 것을 불평하여 반항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만 세워주신 경위를 알지 못하면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회도 민주화 되어가는 추세에서 어느 개인의 독재나 교만은 용납될 수 없는 것과 같겠지요.

2. 고라와 모든 무리에게 한 말(4-7절).

1)5절에서 “모세가 듣고 엎드린 것”은 회중의 목소리를 경청하였다는 뜻이고, 모든 무리에게 말하기를

2)6-7절에서 모세는 “레위 자손들의 행위가 분수에 지나친 것”을 말한 후(7절), 하나님이 너희에게 제사장 시무를 맡기신다면(분향의 업무가 그것임) 자신도 기꺼이 여기겠다는 뜻으로 “분향 제물을 갖고 나와 보라”고 한 것입니다. “그들이 향로와 불과 향을 취하여 나온 후 하나님이 그들을 택하여 쓰신다 하시면 택하신 자는 거룩하게 될 것인즉 그리할 수 있다”고 제의한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나 아론이 개인적으로 명예나 이권에 사로잡혀 하는 일이 아님을 보여주려고 제의한 것입니다.

3. 반역한 레위 자손들을 책망함(8-11절).

1)모세는 레위 자손들의 교만과 감사하지 않음을 지도자의 입장에서 책망하였습니다. “너희 레위 자손들아 들으라 하나님이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시고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작은 일이 아니거늘 어찌하여 너희가 오히려 제사장의 직분을 구하느냐”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너희가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이라” 하였고, 또 “아론은 어떤 사람이관데(무슨 죄가 있기에) 그를 원망하느냐”고 질책한 것입니다. 지도자로서의 교훈과 책망을 당당하게 한 것입니다.

4. 다단과 아비람의 불복(12-14절).

그 자리에 고라만 있고, 다단과 아비람이 없었기로 12절에서 “그들을 부르러 보내었더니 그들이 가로되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다(모세 있는 곳이 높은 지역임)”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3-14절에서 계속 불평하는 언사만 전하였습니다.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애굽) 땅에서 이끌어내어 광야에서 죽게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스스로 우리 앞에서 왕이 되려느냐, 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지도 않고 포도원과 기업도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의 눈을 빼려느냐(사람을 불구자로 만든다는 뜻)” 하면서 불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알지 못하거나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지시 받은 사실을 이해하지 못할 때 역시 있을 수 있는 반역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예수님도 죽이는 것이 인간의 무지이니까요.(벨렛의 아들 “온”은 당을 짓고 반역한 것은 사실이나 그들의 구체적 소행과 결과는 기록에 나타나지 않았음)

5. 모세의 기도와 고라당의 분향 준비(15-18절).

1)반역의 무리들이 모세의 말을 거역하였을 때, 15절에서 모세는 심히 노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주는 그들의 예물(분향 준비한 것)을 돌아보시지 마옵소서 나는 그들의 한 나귀를 취하였거나 한 사람을 해한 일도 없습니다” 하고, 16-17절에서 “내일 너희 온 무리들이 각각 분향 준비를 한 후 여호와 앞(성소 앞)으로 가져 오라 향로는 250개 이니라. 너(고라)와 아론도 그리할 것이라”한즉 그 이튿날 아침에(5, 7절), 18절에서 “그들이 각기 향로를 취하여 불을 담고 향을 그 위에 두고 모세와 아론으로 더불어 회막문에 섰다”고 하였습니다. 17절의 “향로가 250이라”한 것은 주동자를 제외한 족장의 수만 기억에 올린 것인즉(1절) 그 정도의 수는 참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고라가 회중 앞에서 모세와 아론을 또 대적하려 한 것”입니다(19절).

6. 적대 행위와 하나님의 진압(19-35절).

1)19절에서 “고라가 회중을 회막문에 모아 놓고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려 하였을 때”, 20-21절에서 하나님이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순식간에 회중을 멸할 것인즉 너희는 이 회중에서 떠나라”고 하신 것입니다.

2)이 때에 두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22절에서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행 17:25) 한 사람이 범죄 하였거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렵니까” 하였을 때, 하나님이 23-24절에서 “너희는 회중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면에서 떠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26-27절에서 모세가 그 지시를 따라 전달한즉 “무리가 그 지역을 떠나고 다단과 아비람은 그 처자와 유아들과 함께 나와서 자기 장막 문에 섰더라”고 하셨습니다.

3)이 때에 모세가 말하기를, 28-30절에서 “이들의 죽음이 일반적이면 나를 보내사 모든 일(출애굽)을 행한 것이 내가 임의로 한 것이 될 것이나 이들의 당하는 벌과 죽음이 일반적이 아니요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사 땅이 입을 벌려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너희들이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줄 알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4)31-33절에서 “이 말이 마치자 그들의 밑의 땅이 갈라져 그들과 그 가족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키매....산 채로 음부(무덤)에 빠지고 땅이 그 위에 합하니 그들이 총 회중에서 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죽은 자들은 주동자들의 무리와 가족들이었습니다.

5)그 다음에 34-35절에서는 “주위의 무리들이 크게 두려워하여 도망하였는데, 또 여호와께서 불이 나와서 분향하는 250인을 소멸하였다” 하시므로, 동조자 장로 250인까지 불에 타서 죽은 사실입니다.

7. 향로를 수거함(36-40절).

1)36-3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명하여 불붙는 가운데서 향로를 취하여 그 불을 타처에 쏟으라 그 향로는 거룩함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지시하신 이유는, 38절에서 사람들은 범죄 하여 그 생명을 스스로 해하였거니와(범죄자의 죽음은 그 자신의 책임) 향로는 그들이 하나님께 드렸으므로(250 족장이 향로를 만들어 하나님이 분향 제사를 받으실 줄로 믿고 구별하여 사용한 뜻) 거룩하게 되었은즉, 그것을 시체와 함께 타도록 버려 두지 말고, 그것을 쳐서 편철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에게 표가 되도록 제단을 싸는데(보수) 쓰라”고 하셨습니다. 이 “표”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다가 죽은 자들을 생각나게 하는 기념품이 된다는 것입니다.

3)39-40절에서 “엘르아살이 그대로 시행하였으니 이는 외인이 함부로 분향할 수 없음을 알아서 고라의 무리처럼 되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8. 회중의 원망과 염병(41-50절).

1)반역자들의 죽음으로 다 진압된 줄 알았으나, 41절에서 “이튿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또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7회째 원망임. 14:2 참고) 가로되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다” 하면서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친 것입니다(42절). 두 사람은 위기에 처하였을 것입니다.

2)이 때 42절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회막을 덮고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은 위기를 놓치시는 법이 없습니다. 43절에서 모세와 아론이 회막으로 나간즉, 43-45절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순식간에 그들(원망하는 회중)을 멸하려 하니 너희는 회중에게서 떠나라” 하셔서 그 두 사람(모세와 아론)이 엎드렸다(복종)고 하였습니다. 이 때에 모세는 하나님이 원망자들에게 염병내리신 사실을 알았습니다.

3)그래서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기를, 46절에서 “분향 제사를 준비한 후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시오(속죄제를 약식으로 드리라는 뜻)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염병이 시작되었소” 한즉, 47-48절에서 “염병은 이미 시작되었고 아론이 분향한 후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 염병이 그쳤다”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모세의 기도와 아론의 분향을 받으시고 재앙을 중지하신 것입니다.

4)49절에서 “이 때에 염병으로 죽은 자가 14,700명이었고”, 50절에서 “염병이 그쳤을 때 아론이 회막문에 있는 모세에게로 돌아왔다”고 하였습니다.

무지, 불신, 불순종, 반항, 끈질긴 원망은 결국 큰 죽음을 가져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역하는 자들을 땅으로도 삼키시고, 불로도 태우시며 염병으로 14,700명까지 죽이시는 무서운 분임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이 때에 15,000명 가량이 죽었습니다.

 

제 18 과 아론의 싹 난 지팡이 (민17:1-13)목록으로


레위 지파의 반역으로 15,000명 가량이 죽은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레위 지파를 든든히 붙드실 필요를 느끼신 줄 압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명하시기를 “12 지파 족장(두령)들이 각각 지팡이 하나씩 만들어 오되, 자기 지파 조상의 이름을 적을 것이나 레위 지파만은 아론의 이름을 써 오라” 하셨고, 그대로 갖고 온 열 두 개의 지팡이를 회막 안 증거궤 앞(하나님과 모세가 만나는 곳)에 두게 하셨으며, 다음 날에는 “제사장으로 택한 자,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날 것이라” 하셨는데, 그 말씀대로 아론의 지팡이에만 움이 돋고, 순이 난 후 꽃이 피고, 살구 열매가 맺어 있었으니 하나님이 초자연적 생명력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이 때에 하나님이 다른 지팡이는 다 이름대로 취하게 하셨지만 아론의 지팡이만은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게 하시므로(히 9:4, 언약궤 안에 보관함) “패역한 자에 대한 표징을 삼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초자연적 역사를 보여주신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이 모든 생명의 주이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요 14:6, 행 3:15과 17:25에서 “하나님은 생명의 주이시고 생명과 만물을 주시는 분이라” 하셨는데, 땅과 수분이 싹을 내지 않고 하나님이 직접 내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생명을 키우고 이롭게 하는 식품이 많지만 생명 주님을 또 한 번 기억하셔야 할 것입니다.

2. 제사장과 레위 지파를 높여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신다”고 하셨습니다(삼상 2:7). 레위 지파의 다른 사람들이 자주 모세와 아론을 가볍게 보고 도전하려 하니까 하나님이 그의 편이 되신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3. 멸시와 고난을 당함에 대한 축복으로 “은총의 표징”을 주신 것입니다. 시 89:17에서 “다윗은 은총의 표징을 보여 달라” 하였는데 모세와 아론이 반역자들로부터 돌로 침을 받는 위험까지 있었는데 이에 대한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이며 긍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합 3:2). 성도는 누구나 은총의 표징(하나님과 자신과의 특별한 관계)을 가지셔야 합니다.

4. 본문에서 싹을 나게 하신 이유는

1)원망하는 말을 다시는 못하게 하고(5절),

2)패역한 자에 대한 표징으로도 주셨으며(10절)

3)원망하려는 자들을 죽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라(10절)고 하셨습니다.

12-13절에서 백성들이 크게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보소서 우리가 죽게 되었고 또 망하게 되었습니다. 성막에 가까이 나가는 자마다 죽사오니 우리가 다 망하여야 하리이까”한 것은 그만큼 두렵게 여기고 조심하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5. 예수님의 부활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제사장이 곧 그리스도의 모형자입니다(히 5:1-6). 그런 의미에서 장차 오실 메시야의 부활을 예고하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또 속된 것도 하나님이 쓰시면 거룩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성도 자신이 그런 은혜를 받았는데 왜 레위 지파가 그런 은혜를 받은 일에 대하여 시기하고 원망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분복대로 받은 복을 감사하며 성직자에게 성원하는 성도들이 되셔야 할 것입니다.

 

제 19 과 레위 지파의 책임과 분깃 (민18:1-32)목록으로


본문 전체의 내용은 “레위 지파의 책임과 분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레위 지파를 두 종류로 나눌 때, 아론과 그 후손인 제사장 계열과 그 이외의 계열로 나누어 하나님이 이 두 계열에 대한 책임과 분깃을 주신 말씀입니다. 고라당으로 인한 불상사가 있었기 때문에 또 한 번 교훈을 다짐하신 줄 압니다.

1. 제사장의 책임에 대하여(1-2, 5-7절).

1)1절에서 “너(아론)와 네 아들들은(제사장이란 뜻) 성소에 대한 죄(레위인과 함께 성소에서 섬기는 일을 잘못하는 죄, 23절)를 담당할 것이요, 또 그 제사장 직분(제사장 단독으로 실수하는 모든 죄)에 대한 죄를 담당할 것이라” 하셨으니 사명과 함께 벌받을 책임도 있음을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2)2절에서 아론으로 하여금 “레위 지파를 데려다가 너(제사장)와 합동시켜 너를 섬기게 하고 네 아들들은 증거의 장막 앞(성소문 앞)에 있을 것이라” 하셨으니 여기의 “합동시켜 섬기게 함”은 레위인을 제사장처럼 맡기라는 뜻이 아니고, 제사장을 돕게 하는 일에 합동시키라는 뜻이요, “증거의 장막 앞에 서야 함”은 제사장이 결코 성소를 떠나서는 안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3)5절에서 “제사장은 성소의 직무와 단의 직무(제사직)를 지키라” 하셨고, “그 직임을 지킬 때 하나님의 진노가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미치지 아니하리라” 하시므로 연속되는 제사 직무가 진로를 막는 방법이 되는 것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이것은 신약 시대 성도들이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는 예배와 기도 생활 등 경성을 잘 하여야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로 경성하고, 신약 시대에는 예배와 생활로 경성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4)6-7절에서 “하나님이 레위인을 (초태생 대신) 취하여 제사장들에게 선물로 주어 회막의 일을 하게 하였나니 제사장들은 단과 장안(성막)의 모든 일에 대하여 직분을 지켜 섬기라 이 직분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인즉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특정인들에게 주신 구별되고 엄위한 직임 임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2. 레위인의 책임에 대하여(3-4, 23절).

1)3절에서 “레위인은 자신의 직무(제사장을 돕는 것)와 장막의 모든 직무를 지키려니와(회막 봉사, 23절) 성소의 기구와 단에는 가까이 못하리니 두렵건데 죽을까 하노라” 하셨고,

2)4절에서 “레위인은 제사장들과 합동하여 장막의 모든 일(성소 외부의 시설 취급)과 회막의 직무(제사를 돕는 일)를 지킬 것이요 외인은 가까이 못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사장이 보는 외인은 레위인이고, 레위인이 보는 외인은 레위 지파 아닌 자들을 의미합니다. 역시 엄격하게 구별하셨다는 뜻입니다.

3. 아론(제사장) 지파의 분깃(8-22절).

1)하나님은 아론 자손에게(레위 지파 전부) 영토 분깃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20절에 보시면 “땅의 기업도 없겠고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레위 지파 전체에게도 23절에서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만 그들이 거처할 곳은 성막 가까운 곳의 동(민 3:38, 제사장족), 서(민 3:23, 게르손족), 남(민 3:29, 고핫족), 북(민 3:25, 므라리)에 진을 치게 하셨은즉, 장막 터와 짐승들을 관리할 수 있었습니다.

2)하나님이 이 지파에게 토지를 주시지 않은 이유는 20절에서 “하나님이 분깃이 되시고 기업이 되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주이신즉 하나님이 기업이 되어 주시면 천지를 진동하셔서 모든 것을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기업”이란 믿음을 가집시다(애 3:24). 자신의 물질이나 다른 인생을 의지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성도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고(마 6:8, 32),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는 것을 체험하십시오(히 4:16). 이런 체험은 고독하고 의지할 대상이 없을 때 하나님만 바라는 신앙을 갖고 기도하시면(시 42:5, 마 7:7) 반드시 체험하실 수 있습니다.

3)하나님이 아론 지파에게 “토지 기업을 주시지 않고 하나님이 직접 기업이 되어 주신다” 하신 것은 큰 은혜요, 특권임을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 기업을 이루어 주셨을까요? ① 8절에서 거제물(거제물과 요제물은 하나님께 보여드린 제물로 태우지 않은 것임. 11, 19절) 곧 거룩하게 한 모든 예물을 주관하게 하셨고, 기름 부음 받음(성직 수행)을 인하여 응식(마땅히 취할 것)으로 주셨습니다. 9-10절에서 “지성물(거룩하게 드린 제물) 중에 불사르지 않은 것은 다 제사장 몫이요, 예물의 모든 소제나 속죄제, 속건 제물이 다 그러한즉 거룩히 여김으로 먹되 남자들이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지성물은 제사장들만 먹어야 하기 때문에 “남자들”이란 용어를 쓰신 줄 압니다. ② 11절에서는 “하나님께 거제물과 요제물로 돌렸던 것은 너와 네 자녀에게 영영한 응식으로 주었은즉 네 집의 정결한 자마다 먹을 것이라” 하시므로 가족의 양식으로도 사용케 하신 줄 압니다. 여기에서 남자들(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것과 가족들까지 먹을 수 있는 것의 구별에 대하여는 더 연구가 필요한 줄 압니다. ③ 12절에서는 “첫 소산 곧 제일 좋은 기름과 포도주 그 땅의 처음 익은 모든 열매와 특별히 드리는 예물도 제사장에게 주었은즉(하나님이 자기 것으로 받으신 다음에 주신다는 뜻) 역시 정결한 자가 먹을 것이라” 하셨고, ④ 15절에서 “초태생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대속하되 사람을 속할 때는 출생 1개월 이후에 그 값을 모세가 정하여 은 5 세겔로 하고, 17절에서 소, 양, 염소의 첫 새끼는 대속 하지말고 그 피만 단에 뿌리고 기름만 불사른 후 가슴, 우편 다리 등 고기는 취하라”고 하셨습니다. 또 처음 난 딸에 대한 대속 언급이 없는데 여자는 본래 계수에 들지 않은 만큼 대속에서 제외된 줄 압니다. ⑤ 19절에서도 “태우지 않은 거제물을 영원한 응식(대대로 주신 뜻), 소금 언약(변하지 않는 약속)”이라고 하셨습니다. ⑥ 25-26절에서 “선민이 드린(모든 소산물의) 십일조를 레위인이 받은 후 그것의 십일조를 떼어 하나님께 거제물로 드린 후 그것을 아론에게 돌리고 또 받은 예물 중에서 아름다운 것을 거제로 드린 후(아론에게로, 28절) 돌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제사장 가족의 생활이 넉넉하도록 주신 줄 압니다.

4. 레위 지파의 분깃(24-32절).

레위 지파의 분깃은 선민의 모든 십일조와 예물을 아론(제사장)의 주관 하에 받아서 그것에서 십일조와 예물의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거제로 드린 후 제사장에게 바치고, 그 이외의 것으로 살게 하셨습니다(31-32절). 12 지파 중 11 지파가 십일조를 드려 한 지파의 생활을 영위해 나가도록 공급하기에 충분하였을 것입니다. 성물은 부정한 자나 레위인 아닌 자가 먹을 수 없고, 잘못 취급하는 것도 성물을 더럽힘이 됩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는 일(회막의 일)을 인하여 그 보수로 십일조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21절). 제사장은 중보자 예수님의 모형이고, 섬기는 직분인 점에서 레위 지파는 성직자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성직자가 교회에서 주는 생활비나 사례비를 받을 수 있지만(고전 9:9, 딤후 5:18) 제사장처럼 대우를 받으려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는 선민 제도나 성전의 제사 제도나 인간 제사장이 없기 때문에 다만 성경 계시에 따라 교훈과 생활의 모범을 누가 잘 보이느냐?에 따라 신앙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시행하기 위하여 성직자란 목사(목자)의 제도가 생겼다고 아셔야 합니다.

 

제 20 과 정결수와 결례법 (민19:1-22)목록으로


20, 21절에 “정결케 하는 물”이란 말씀이 있고, 9절에 보시면 “재를 거두어 진 밖 정한 곳에 두었다가....부정을 깨끗케 하는 물을 만들어 쓰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물을 “정결수”라 하는데 이것이 “관유”와 어떻게 다른가? 하는 점입니다. 관유는 제사장, 레위 지파, 성소 및 성구를 구별 또는 정결케 할 때 사용하였고, 이 정결수는 일반용으로 백성들을 위하여 사용된 것으로 아셔야 합니다. 출 30:22-33에 관유의 규례가 기록된 중, 32절에서 “(일반)사람의 몸에는 붓지 말라” 하신 뜻도 제사장 외에는 만들거나 사용할 수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정결수가 필요하였을 것입니다. ① 1-10절은 “정결수 제조법”이고, ② 11-19절은 “정결케 하는 절차”요, ③ 20-22절은 “주의 사항”을 말씀하셨습니다.

1. 정결수 제조법(1-10절).

1)1-2절에서 “온전하여 흠이 없고(예수님의 무흠성 비유, 히 9:14, 벧전 1:19) 아직 멍에 메지 아니한(새 것, 젊음 또는 값진 의미임) 붉은 암송아지(붉은 뜻은 보혈을 연상케 하고 암송아지는 제물로써 가장 값진 것을 뜻함)를 제사장에게 끌어오게 하고

2)3절에서 “제사장이 그것을 진 밖으로 끌어내어 자기 목전에서 잡게 할 것이라” 하셨는데, 이는 예수님이 영문 밖으로 끌려나가 돌아가실 것과(히 13:11-12) 자기 목전(제단 앞) 즉 인간 대제사장 앞에서 율법의 집행으로 돌아가실 것을 예표하신 것이요(히 9:13-14),

3)4-5절에서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회막 앞을 향하여 일곱 번 뿌리고(주위 또는 성소를 향하여 하나님께로 나가는 길을 깨끗이 하는 뜻, 일곱 번은 완전을 뜻함) 자기 목전에서 불사르되 그 가죽과 고기와 피와 똥(이는 몸 전체를 제물로 헌신하는 뜻)을 불사르고”

4)6절에서 “거기에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실을 던져 함께 태우라” 하셨으니 여기에 여러 가지 해석이 있으나 필자의 의견으로는 백향목은 성도를 비유하고(민 24:5-6), 우슬초는 씻음을 뜻하며(시 51:7) 홍색실은 피를 의미하여(출 12:7, 22-23) “그리스도의 보혈로 자기 백성의 죄를 씻는 뜻”을 담은 줄로 아는 것입니다.

5)7-8절은 “이 일을 집행한 제사장과 불사른 자(협력한 레위인)도 옷을 빨고 몸을 씻은 후 저녁까지 기다려 부정을 씻고 진(가족이 사는 곳)으로 들어가라” 하셨으니 이는 짐승의 시체를 태웠은즉 위생상의 부정을 씻는 의미도 있고, 또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정결한 상태로 취급해야 하는 뜻도 있는 것입니다.

6)9절의 뜻은 “정한 자(부정에 가담하지 않았거나 결례를 끝낸 자)가 그 재를 거두어 진 밖 정한 곳(일반이 거주하는 곳에서 구별된 곳)에 두고 간직하였다가 정결수를 만들 때 사용하라” 하셨으니 여기의 물의 원료에 대한 것은 17절에서 “흐르는 물을 그릇에 담고 재를 섞으라”고 하셨습니다. 또 이 정결수를 “속죄제”라 하였으니 이는 십자가의 공로를 일반적으로 나타내시기 위한 약식(속죄제 드림보다)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7)10절에서는 “암송아지의 재를 거둔 자(본래는 정결한 상태에서 거두었음)도 같은 방법(8절)으로 결례를 행하라 이는 영원한 규례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21절을 보시면 “정결수를 뿌린 자나 만진 자도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2. 정결케 하는 절차(11-19절).

1)11-12절에서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7일간 부정한데(7일간이란 7일간 결례의 기간을 요한다는 뜻) 그는 제 3일과 제 7일에 이 잿물(정결수를 뜻함)로 스스로 정결케 하라” 하시므로 제사장의 도움 없이 스스로 뿌리거나 주위의 정결한 사람이 뿌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뿌린다”는 말씀이 13절에 있습니다. 13절에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깨끗해질 수 없은즉 이스라엘에서 끊쳐질 것이라” 하시므로 이는 불순종이나 반역의 무리로 취급되고 영적으로는 보혈의 공로를 힘입지 않고는 죄사함이나 구원이 있을 수 없음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2)여기에서 “시체 만진 것”을 부정의 대표적 사례로 드신 것은 시체 그 자체도 위생상 부정하지만 시체가 죽음의 잔해물 임과 동시에 죽음의 원인은 죄이기 때문에 죄가 부정한 것인 만큼 그 잔해물을 부정하게 여기도록 하신 줄 압니다. 선민은 시신을 당일에 치우라고 하셨습니다(신 21:23).

3)14절에서는 “사람이 장막에서 죽을 때는 그 장막에 함께 있는 자와 들어가는 자가 7일 동안 부정하다” 하셨은즉, 12절에 따라 결례 하여야 할 것이요, “15절에서(사람이 죽어나갈 무렵에) 뚜껑을 열어놓은 그릇도 부정한즉, 16절에서 들에서 칼에 죽이운 자나 시체나 사람의 뼈나 무덤을 만진 자와 함께 17-18절에서 흐르는 물에 재를 섞은 결례수로 정한 자가 우슬초에 찍어 장막의 모든 기구(뚜껑 연 그릇 등)와 시체와 함께 있던 사람과 시체나 무덤을 만진 사람에게 뿌려 정결케 하되, 19절에서 제 3일과 7일에 뿌리고 7일 되는 저녁에 옷을 빨고 몸을 씻은 후 정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은 위생의 법과 순결의 중요성과 속죄의 은혜를 나타낸 규례입니다.

3. 주의 사항(20-22절).

1)20절에서 “부정하면서 스스로 정결케 하지 않으면(이는 불순종한 자요, 불결한 자인즉)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히는 것이요(그렇게 간주한다는 뜻), 그는 계속 부정한즉 여호와의 총회에서 끊쳐진다”고 하셨습니다. 이 뜻은 속죄 받지 못하거나 거룩해지지 않으면 성민 또는 천국 백성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2)21절에서 “이상은 영영한 율례(구원의 복과 관련할 때 영원함)이며, 정결수를 뿌린 자나 그 물을 만진 자도 함께 부정한즉, 뿌린 자는 그 옷을 빨고 만진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라” 하셨으니 이 경우는 당일에 결례 행사가 끝난다는 뜻입니다.

3)22절에서 “부정한 자가 만진 것은(그 부정이 전염된즉) 부정할 것이요 그것(부정한 자가 만진 물건)을 만진 자도 저녁까지 부정하다” 하시므로 부정의 전염성이 얼마나 무섭고 경계해야 할 것인가를 교훈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죄와 불법과 부덕을 그만큼 경계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 21 과 신 광야에서 호르산까지 (민20:1-29) 목록으로


본문 1절에서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렀다”하셨고, 22절에서는 “회중이 가데스에서 진행하여 ‘호르산’에 이르렀다”하셨기 때문에 총 제목을 “신 광야에서 호르산까지”로 정하였습니다. ① 1-5절은 “미리암의 죽음과 회중의 공박”이고, ② 6-13절은 “제2의 므리바”이며, ③ 14-21절은 “에돔왕의 불친절”이고, ④ 22-29절은 “아론의 죽음”입니다.

1. 미리암의 죽음과 회중의 공박(1-5절).

1)1절에서 “정월”이란 뜻은 민 9:1에서 “애굽에서 나온 다음해 정월”이란 말씀이 있지만, 본문의 정월을 또 그 다음해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그 이유는 20:22-28에서 “호르산에 도착한 기록과 아론의 죽음기사”가 나오기 때문에 광야생활을 거의 끝낼 무렵의 정월로 이해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온 회중이 “신 광야 가데스(성읍 16절)에 거하였다” 하였은즉, 신 광야는 출 16:1,13에 나타난 신 광야(수르 광야에서 시내 광야로 가는 중간)가 아니고 “가데스”지역이 있고 유다 지파가 기업으로 받은 팔레스틴 남단(수 15:1)을 의미합니다. “그 곳에서 미리암이 죽어 장사지냈다”고 하셨습니다. 미리암은 아론과 모세의 누이(민 26:59)로 이 시기까지 살았음은 약120세 이상을 산 것입니다.

2)2절에서는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들을 공박(원망보다 심한 뜻)하였으니” 그 공박한 내용이 과거의 원망과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민 11:4-6, 16:13-14). 5절에 보시면 “이 악한 곳으로 인도하였다. 이곳은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나 포도도 없으며, 석류와 마실 것도 없다”하므로, 공박의 원인을 식생활부족 특히 물 없는 불평을 하게 된 것입니다. 40년 가까이 광야생활에 지쳤을 것인즉 이해가 되기도 하고, 또 한편은 왜 공박하지 말고 기도로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2. 제2의 므리바(6-13절).

1)6절에서 “모세와 아론이 총회(백성들의 모임) 앞을 떠나 회막에 이르러 (하나님 앞에)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7-8절에서 지팡이를 갖고 회중을 모은 다음, 그들의 목전에서 명하여 물을 내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짐승에게 마시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9-11절에서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명을 실천하기 위하여 회중을 반석 앞에 모으고 지팡이를 취하였는데”, 모세가 공박하는 무리들(그들)에게 말하기를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그 손을 들어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이 솟아 나와서 회중과 짐승을 먹였다”고 하셨습니다.

3)그런데 12절에서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 내용은 “너희가 나를 믿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9-11절을 살피면 모세와 아론이 스스로 능력자인 듯 자신들이 물을 내는 당사자인 것처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 하면서 자신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앞세우지 않은 사실과 “명하여 물을 내라” 하신 말씀을 그대로 순종치 않고,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이나 쳐서 (물은 나왔으나) 하나님의 명을 거역한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명하라” 하셨으니, “반석이여 물을 내라”고 외쳤어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의 행동은 말씀에 따라 주밀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 일로 인하여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하나님은 자기의 명예를 실추시키거나 인간 자신을 내세우거나 주밀하게 복종하지 않거나, 혈기(두 번 친 것을 혈기로 해석하기도 함)를 나타낼 때 쓰시지 않는 섭리가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시 81:7에서는 “하나님이 므리바 물가에서 너를 시험하셨다” 하셨고, 시 106:32-33에서는 “모세가 하나님을 노하시게 하였고.....그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다”고 하셨습니다.

4)13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그 곳 이름을 므리바(제2므리바)라 하셨고, 하나님은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사 물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물은 하나님이 자신의 거룩하심을 인하여 주신 것이고, 모세와 아론은 그 순간에 노여움을 샀으며 그로 인하여 두 사람의 인도자 직임과 가나안 입국의 희망이 끊어지게 된 것입니다. 어떤 이는 모세가 율법의 대표자이기 때문에 그의 가나안땅 불입국이 율법으로 구원 받지 못할 것의 상징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3. 에돔왕의 불친절(14-21절).

1)14-17절에서 “모세는 가데스(에돔국의 변방 성읍, 16절)에서 에돔왕(에서의 별명, 창 25:30)에게 사자를 보내어 당신의 형제 야곱(이스라엘)의 족속이란 것과 애굽에서의 고난당한 사실과 하나님의 은혜로 천사를 보내사 나오게 된 사실을 말하고 에돔의 땅을 통과하되 농장의 피해나 물도 먹지 않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으며 왕의 대로로만 통과할 것이니 통과를 허용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형제족이고 피해를 주지 않는 만큼 허용할 듯도 하나

2)에돔왕은 18-21절에서 “허용하지 않고 나가서 칼로 너를 맞을까 한다” 하므로 19절에서 다시 사정하였지만, 20절에서 많은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 강한 손으로 막으므로, 결국 20절에서 “돌이켜 호르산 쪽으로 회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4. 아론의 죽음(22-29절).

1)22절에서 에돔을 통과하지 못한 회중은 “가데스에서 진행하여 호르산에 이르렀다”고 하셨습니다. 이 “호르산”은 약속의 땅 북쪽 경계에도 있지만(민 34:7-8) 이 곳은 사해 남부 에돔땅 변경을 의미합니다(23절).

2)24절에서 하나님이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론이 열조에게로 돌아가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니 이는 므리바 물에서 말씀을 거역한 연고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론을 몇 차례 (금송아지 사건과 반역 사건) 참으셨으나 이번에는 참지 않으신 듯 합니다.

3)25-28절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명을 좇아 대제사장의 이임식을 진행하여 ‘엘르아살’에게 성의를 입힌 다음, 아론이 산꼭대기에서 세상을 떠나니 그의 나이 123세(민 33:38-39)라”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모세 나이는 120세인만큼, 그 해 안에 모세도 세상을 떠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신 34:7).

4)29절에서 아론의 죽음을 인하여 30일간 애곡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역자들을 쓰실 만큼 쓰시면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제 22 과 호르산에서 비스가산까지 (민21:1-20) 목록으로


20:22-29에서 호르산에서 아론이 죽은 사건이 기록되어있고, 본문 20절에서는 “비스가산 꼭대기에 이르렀다”고 하셨습니다. 호르산은 “가데스 바네아” 동북쪽 약10㎞지점이고 비스가산은 사해 동남쪽 모압 땅에 있는 산이므로 호르산에서는 약100㎞의 거리입니다. 그 사이에서 두 가지 사건이 있었으니 ① 1-3은 “아랏 왕국을 멸한 일”이요, ② 4-9절에서 “원망과 불뱀, 놋뱀 사건”이며 ③ 10-20절은 “진행한 노정”입니다.

1. 아랏 왕국을 멸한 일(1-3절).

1)1절에서 “남방에 거하는(약속의 땅 가나안의 남방) 가나안 사람 곧 ‘아랏’(아랏은 가나안 지역 31왕 중 한사람이고, 수 12:14, 본문 2, 3절에서 한 성읍이라 하셨으며 가데스 북쪽 약80㎞지점, 사해남부 서쪽 약30㎞지점임)왕이 이스라엘이 ‘아다림’ 길로 온다함을 듣고, ”이스라엘을 쳐서 그 중 몇 사람을 사로잡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아다람 길”이란 말이 원문으로 “다락크 하 아타림”이어서 본문대로 번역한 것인데 70인역(주전 3세기경에 헬라어로 번역한 성경)에서는 “아타림”의 뜻이 “정탐꾼들”을 의미하기 때문에 “정탐꾼들이 지나간 길로 온다”는 뜻으로 번역을 하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아다림”은 호르산에서 “아랏”쪽을 향한 지명일수도 있고, “정탐꾼들이 통행하는 길”일 수도 있다고 이해하셔야 합니다. 성경을 살피다보면 그런 경우도 있음을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쳐서 그 중 몇 사람을 사로잡은 것”은 기습적으로 선민 단체의 한 부분을 쳤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2)2절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서원하며 기도하기를 “만일 이 백성을 내손에 붙이시면 내가 그들의 성읍을 다 진멸 하겠습니다”하였으니 이 서원 기도는 고난이 있을 때마다 모세가 기도한 것으로 보아 모세가 백성을 대신하여 드린 기도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볼 때 “이스라엘”은 모세가 백성을 대표한 것이고, “내손 내가.......”한 것도 역시 기도자가 개인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3절에서 “하나님이 들으시고 가나안 사람을 붙이시매(이는 하나님이 명하시고 허락하셨다는 뜻) 그 성읍을 다 멸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전쟁에 능하신 분이므로(시 24:8)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전쟁이면 다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삼상 17:47). 그리하여 그 곳 이름을 “호르마”(완전히 멸함)라 하였으니 그 지역은 곧 “아랏”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 원망과 불뱀, 놋뱀 사건(4-9절).

1)4-5절에서 “백성들이 에돔 땅을 통과하지 못하고 회행(回行)함을 인하여 마음이 상하자 또 과거와 같이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였으니 이 원망은 여덟 번째 원망이 됩니다(민 20:2, 출 15:24 참조).

“왜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식물과 물 없는 곳에서 박한 식물만 먹게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믿고, 그 뜻을 따름에 있어서 인내와 고난을 견딜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2)6절에서 하나님은 이 원망함을 인하여 불뱀(악취와 독을 가진 뱀이라 함)들을 보내어 많은 백성을 죽게 하셨고, 7절에서는 “모세가 백성의 원망을 회개하며 뱀을 물리쳐 주실 것”을 기도한즉, 하나님께서 “불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달라 뱀에 물린 자가 그것을 쳐다보면 살리라”고 하셨습니다(8절). 이것은 하나님이 뱀에 물린 자를 살리시는 방법으로 주신 방책입니다. 하나님은 방책도 베푸시고(삼하 14:14) 치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출 15:26).

3)9절에서 모세는 “불뱀을 만들라”하실 때 그것을 놋으로 뱀 모양을 만들어 장대에 달았으니 이 방법에 대한 계시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알려 주셨을 것이며 “뱀에 물린 자마다 그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에 순종한즉 형통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생각과 다른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놋뱀을 보는데 어찌 뱀독이 없어지겠느냐?”하는 것은 인간의 생각이나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기적을 나타내주신 것입니다. 요 3:14에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보면, 이 놋뱀 사건은 “죄로 죽을 자가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 받을 것을 예언”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원망하는 자들을 벌하시는 중에도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3. 진행한 노정(10-20절).

이 부분에서는 호르산을 떠난 선민이 비스가산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8회 진 친 곳을 말씀하셨습니다. 선민의 광야 여행의 여정은 민수기 33장에서 종합적으로 살피게 됩니다.

1)4절에서 호르산을 떠난 후 “오봇”에 진 쳤고(10절), 또 “이예아바림”에 진 쳤으니(11절), 이 곳은 모압 앞 해돋는 편 광야라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세렛”에 진 쳤고(12절), 또 그 다음에는 아모리 지경에서 나온 후 아르논(사해 중간 동쪽에서 유입되는 강) 건너편 (모압과 아모리 사이 모압 경계)에 진 쳤다고 하였습니다.

2)이 때에 모세는 지명을 기록하면서 “여호와의 전쟁기”에 나타난 글 한 조목을 인용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전쟁기”란 표준 계시로 나타내시지 않은 말씀으로 그 당시에 어떤 사람이 기록한 전쟁 역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선민의 광야 여행 역사가 출애굽기, 민수기, 신명기에 상세히 다 기록된 것이 아닌 줄 압니다. 따라서 선민 중 어떤 이가 그 역사의 한 부분(전쟁 이야기)을 기록하였을 수 있습니다. 그 내용 중에 14-15절에서 “수바(폭풍우의 뜻)의 와헙과 아르논 골짜기와 모든 골짜기의 비탈은 아르 고을을 향해 기울어지고 모압의 경계에 닿았다”고 한 것처럼 모세와 선민의 노정도 그 지역을 접하여 진행하였고, 또 그 지역 주위에 진 치게 된 것을 설명하신 것으로 이해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3)16절은 거기서(모압과 아모리 사이 경계, 아르논 건너편, 13절) “브엘”에 이르니, “브엘”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시기를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리라 하시던 우물이라” 하셨으니, “브엘”은 우물이란 뜻이므로 지명을 “우물”이란 명사로 함께 표현한 것입니다.

4)그리고 17-18절에서 그 우물의 역사를 말씀하셨는데 “이 우물은 족장들이 팠고 백성의 귀인들이 홀과 지팡이(지도자적 권위로 일하게 한 뜻)로 판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이 기적으로 주시던 물을 일반 은총에 의하여 공급하신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7절에서 그 우물을 팔 때에 백성들이 “우물물아 솟아나라” 하고 기도하였으며 (우물물이 솟아난즉) 노래하였고(감사 찬양의 뜻) 또 찬송하였다고 하셨습니다. 반석에서 솟은 물이 특별 섭리에 의한 것이라면 우물을 파면서 물 솟기를 기도하여 응답을 받은 것은 일반적 섭리라 할 수 있습니다.

5)이후에 모압과 아모리 경계(아르논 건너편, 13절)에서 “맛다나”에 이르렀고(18절), 맛다나에서 “나할리에”에 이르렀으며(19절) 또 “바못”에 이르렀고, “바못”에서 “비스가산 꼭대기”(모압들에 있는 골짜기에 이르러 광야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르렀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8 곳의 지역은 호르산에서 비스가산 사이의 지역인 만큼 그 부분의 지도를 찾아보시고 확인하신다면 더 유익함이 될 것입니다.

 

제 23 과 아모리와 바산을 정복함 (민21:21-35)목록으로


① 22-32절은 “아모리 정복에 대한 말씀”이고, ② 33-35절은 “바산을 정복함”입니다.

1. 아모리 정복에 대한 말씀(22-32절).

1)선민이 “비스가” 산에서 진행하려고 할 때 아모리왕 “시혼”의 영토를 통과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아모리는 노아의 손자요, 함의 아들, 가나안의 아들입니다(창 10:15-18). “아모리”의 영토는 모압땅 남방이었으나(13절) 모압을 쳐 이긴 일도 있었습니다(26절). 21-22절에서 선민이 아모리왕 시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 땅을 통과하도록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니 이는 20:14-17절에 나타난 말씀처럼(에돔 영토를 통과하려는 뜻) 부탁한 것입니다.

2)그러나 23절에서 시혼왕은 거절하였고, 오히려 야하스(아모리의 성읍 경계)에 나와서 선민을 치므로, 24절에서 선민들이 칼로 쳐서 그들을 파하고 그 땅을 아르논 부터 얍복(사해 바다 동편 강줄기)까지 점령하여 암몬 자손의 지역까지 미치니 그 곳의 경계는 견고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지역의 순서를 정리하면 사해 바다 남쪽에서 동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비스가산, 아모리, 모압 지역, 아르논강, 얍복강, 암몬, 바산의 순서가 되는 것입니다.

3)25-26절에서는 “선민이 아모리인의 성읍 헤스본과 그 촌락에 거한 사실”을 말씀하셨고, “헤스본이 아모리왕 시혼의 도성임과 시혼이 모압 전왕(발락 앞에 있던 왕)을 치고, 그 모든 땅을(영토를 넓힌 뜻) 아르논까지 탈취 하였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선민에게 점령 당한즉 점령 지역까지 다 뺏긴 신세가 된 것입니다.

4)27-30절은 그 당시에 선민 중 한 시인이 그때의 전쟁 역사를 시로 읊은 내용을 소개하였으니, 27-28절에서 “너희(선민)는 헤스본으로 올찌어다(헤스본을 쳤은즉 선민이 그 곳에 거주하라는 뜻) 시혼의 성을(정복 하였은즉) 견고히 세울지어다 (전쟁할 때 보니) 헤스본에서 불이 나오며 시혼의 성에서 화염이 나와(전쟁하면서 불을 지른 것) 모압의 ‘아르’를 삼키며 아르논 높은 곳의 주인을 멸하였도다”(시혼왕도 모압을 쳤은즉 선민이 아모리왕 시혼을 치면서 모압 영토 북쪽까지 점령한 뜻), 그리하여 29절에서 “모압아 네가 화를 당하였도다 그모스(모압인들이 섬기는 신)의 백성아 네가 멸망하였도다 그가(모압의 영주) 그 아들들로 도망케 하였고 그 딸들로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포로(시혼과 함께 잡힌 포로)가 되게 하였도다”, 30절에서 “우리가 그들을 쏘아서 헤스본(아모리왕의 수도)을 디본까지 멸하였고, 메드로에 가까운 노바까지 황폐하게 하였다” 하였으니, “디본”과 “노바”는 모압 영지의 변경으로 얍복강 상류 지역으로 추측됩니다. 아모리왕 시혼이 선민을 대적한 연고로 자기의 땅과 모압 점령지까지 다 뺏긴 것을 나타낸 말씀입니다.

5)31절은 “선민이 아모리인의 땅에 거하였음”을 말씀하셨고, 32절에서는 “모세가 야셀(암몬 경계에 있는 성읍)을 정탐케 한 후 그 곳의 아모리인을 몰아내고 그 촌락도 취하였다”고 하였습니다.

2. 바산을 정복함(33-35절).

1)아모리를 정복하고 33절에서 “돌이켜 바산길로 올라가니 바산왕 옥이 그 백성을 거느리고 선민을 맞아 에드레이(바산의 성읍, 신 3:1-10, 수 13:29-31)에서 싸우려 하였으니”, 바산은 모압과 암몬땅의 북쪽이고, 요단강 동편의 광활한 평원입니다.

2)34절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그 백성과 그 땅을 네 손에 붙였으니......아모리왕 시혼에게 행한 것 같이 그에게도 행하라” 하시므로, 35절에서 “그들을 다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그 땅을 점령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선민을 해하려 하거나 대항하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는 차원에서 싸워 이기게 하시는 것을 믿으셔야 할 것입니다(시 23:4, 시 50:15, 91:7).

 

제 24 과 발락이 선민을 저주하려 함 (민22:1-20)목록으로


위 제목과 관련하여 발람과 관련된 사건의 기록이 25장까지 계속 됩니다. 우선 본문을 대별하면 ① 1-7절은 “발락의 번민과 방책”이고, ② 8-14절은 “발람의 거절”이며 ③ 15-20절은 “발락의 2차 방책”입니다.

1. 발락의 번민과 방책(1-7절).

1)1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진행하여 요단 건너편 곧 여리고 맞은 편 모압 평지에 진을 쳤다”고 하였습니다. 이 지역은 사해 바다 북쪽에서 요단강 상류로 약 20㎞ 올라간 오른쪽 평야를 의미합니다.

2)2-3절에서 이때에 십볼의 아들 발락이(모압이, 아모리왕 시혼이 멸망할 때 국권을 수습하였다고 보아야 함. 21:21-26)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보았으므로(21:21-24) 자신들에게도 위험이 올까 번민하여 미디안 장로들과 협의하여 방책을 세웠으니, 이 “미디안”족은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넷째 아들의 후손으로(창 25:2) 모압 근지에 살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약 80년 전에 그 곳 제사장 “이드로”의 딸과 결혼한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출 2:15-21). 그들은 밭의 소가 풀을 뜯어 먹음 같이 그 지역을 뜯어 먹을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4절).

3)5-7절에서 모압왕과 미디안 장로들은 방책을 협의하여 술사 발람으로 하여금 선민을 저주하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이를 시행하였으니 곧 사자를 강변 브돌에 보내어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선민을 저주하도록 부탁하게 된 것입니다. 강변이란 유프라데강을 뜻하고, “브돌”은 아브라함의 제 2 고향인 “하란” 근방이므로(23:7에서 아람땅) 거리는 모압에서 북쪽으로 약 700㎞(1700리)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발람을 초청해 온 일은 하루 이틀에 된 것이 아니고 선민이 진 치고 있는 중에 상당 기간을 할애하여 두 번이나 왕래하여 시행한 일입니다. 또 발람을 청하여 숙소에 거주하게 하고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였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세 가지 유의할 점이 있으니 하나는 발람의 신분을 아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발락과 미디안 장로들의 토착 신앙이며 셋째는 상당한 예물과 대가를 갖고 와서 발람을 설득한 점입니다. ① 발람은 7절에서 “복술의 예물을 받을 대상”이었고, 수 13:32에서 “술사”라 하였으며, 유 11절에서는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다”하셨은즉, 그는 사술을 행하는 자가 틀림없는 것입니다(민 24:1). ② 발락과 미디안 장로들의 신앙이 미신적임을 알 수 있으니 “술사가 축복하면 복이 되고 저주하면 망한다”고 믿은 것입니다. 복과 화는 절대자 하나님만 주관하시는 것입니다(시 30:15). ③ 하나님이 쓰시는 사역자라면 복술의 예물을 줄 대상이 될 수 없지만 예물을 갖고 간 사실과 존귀를 준다는 말에 사신들을 선대한 흔적(17, 19절)이 있으니 어용적 사이비 술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2. 발람의 거절(8-14절).

1)8절에서 “발람이 발락의 요청을 듣고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하였으니, 그 이유는 “하나님이 계시 주시는 대로 대답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발람이 이렇게 대답한 것은 일단 예물을 갖고 온 존귀한 자들의 청원이므로 가능한 한 저주할 방도(요청 수락)를 찾아보려고 한 것인즉 하나님의 뜻에 배치되는 일을 시도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선민과의 관계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2)9-12절에서는 발람과 하나님과의 대화가 있었으니 하나님이 사탄의 사자와 대화하실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지만, 그런 사실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탄과 대화하신 사실이 욥 1:8-9에 나타나있고, 예수님도 귀신들린 자와 대화하셨으며(막 5:^-13) 왕상 22:22-23에서는 “거짓말 하는 영으로 거짓 선지자에게 말씀을 주신다”고도 하셨습니다. 이런 일은 하나님의 섭리에 속한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있을 수 있음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발람의 말은 하나님의 계시를 그대로 나타낼 수도 있고, 또는 자기의 사술로 말할 수도 있는데, 24:1에서 “전과 같이 사술을 쓰지 않고” 하신 말씀에 따라 23장까지는 사술로 자기 말을 한 것이라고 보셔야 할 것입니다.

3)12절에서 “그들은 복 받은 자이므로 함께 가지도 말고 저주하지도 말라” 하셨다 하였으니, 거짓 선지자가 더 많은 예물을 기다리기 위하여 선뜻 승낙하지 않고 버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뇌물을 주려는 자에게는 버텨야 더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하여 13-14절에서 강한 거절 때문에 사자들은 돌아가서 사실대로 말하게 된 것입니다.

3. 발락의 2차 방책(15-20절).

1)15절에 보시면 술사 발람의 생각대로 발락은 더 높은 귀족들을 더 많이 보내면서, 또 17절에서 “큰 존귀와 그의 말하는 것은 다 수락한다”는 조건(설득을 위한 뇌물)을 앞세워 2차로 찾아가서 처음과 같은 요청을 하게 된 것입니다.

2)18절에서 발람은 자신을 참 선지자처럼 위장하기 위하여 “발락왕이 은금 등 어떤 존귀를 준다 하여도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그런 표현을 하여야 더 인정받고 권위가 설 수 있을 것입니다.

3)그런 다음 19절에서 “그들을 유숙시키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 사실은 2차 요청에 은근히 접근하는 자연적 표현입니다.

4)그리고 20절에서 “하나님이 함께 가라고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만 나타내라 하신다”라고 말하였으니 이는 사신을 따라 가기 위하여 스스로 만들어낸 말입니다. 만일 “함께 가라”는 말씀이 하나님의 계시였다면 32절에서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어 발람의 길을 막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거짓 술사나 점쟁이들에게 이런 방식으로 속는 사람들이 오늘날에 많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이 복과 화를 점쳐서 알게 해준다는 것을 믿고 속는 사람들입니다.

 

제 25 과 발람이 발락에게로 감 (민22:21-41)목록으로


본문 ① 21-30절은 “가는 도중에 있었던 일”이요, ② 31-35절은 “하나님이 발람을 책망하심”이며 ③ 36-41절은 “발람이 영접 받음”입니다.

1. 가는 도중에 있었던 일(21-33절).

1)21-22절에서 발람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나귀에 안장을 지워 타고 두 종과 그리고 모압에서 온 귀족들과 함께 출발하였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길을 막았다고 하셨습니다. 그 막으신 방법은 23절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칼을 빼어 들고 나귀의 앞을 막은 것”입니다.

2)23-27절에서 “나귀는 하나님의 사자가 칼을 들고 앞에 선 것을 보았지만 이 상태가 발람에게는 보이지 않았으며 나귀는 사자의 칼을 피하여 길을 떠나 밭으로 들어갔고 발람은 나귀를 돌이키려고 채찍질 하였으나 좌우에 담이 있는 피할 수 없는 좁은 길에 설 때 발람의 발이 담에 닿아 상하게 되었고 또 나귀가 하나님의 사자를 보고 밑에 엎드리니 발람이 노하여 지팡이로 나귀를 때렸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를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사건은 한낱 나귀의 미친 행동처럼 보여졌을 것입니다.

3)이 때에 28-30절에서 나귀가 말을 하였고, 발람과 대담을 갖게 되었으니 나귀의 입을 열어 말하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고 발람은 크게 놀랐을 것입니다. 나귀가 발람에게 말하기를 “내가 네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 때리느냐” 하였고, 발람은 대답하기를 “네가 나를 거역하는 연고니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너를 죽였을 것이라” 한즉 또 나귀가 말하기를 “나는 네가 오늘까지 일생에 타는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 이렇게 하는 행습이 있었느냐? 없었느니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귀를 말하게 하신 의미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거짓말(자기 말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가장하는 행위)을 일삼는 자는 짐승만도 못한즉 차라리 나귀에게 말씀을 주는 것이 거짓 선지자에게 계시를 주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깨우치시려고 하신 듯 합니다. 또 중요한 것은 발람에게도 그같이 하실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23:7-10, 18-22). 짐승은 거짓말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발람은 “하나님이 가라” 하시지 않았는데도 “가라 하셨다”하고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사 의 성격이 그러함. 24:1)

2. 하나님이 발람을 책망하심(31-35절).

1)31절에서 “하나님이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왕하 6:17 참조) 하나님의 사자가 칼을 들고 길에 선 것을 (그제서야) 보고, 발람이 머리를 숙이고 엎드렸다” 하셨고, 32-33절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에게 책망하기를 “너는 어찌하여 나귀를 세 번이나 때렸느냐 너의 길(하는 일)이 네 앞에 패역하므로(패역한 일을 시행하려 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 나왔더니 나귀가 나를 보고 세 번을 돌이켜 피하였느니라. 나귀가 피하지 않았다면 너를 죽였을 것이라” 하셨은즉 이는 하나님이 거짓 선지자에게 말씀하신 것이고(9-12절에서 설명됨), 그때에 발람을 처단 하시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긍휼”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2)이런 상황(나귀가 말하고 하나님이 눈을 밝히신 일)을 체험한 발람은 34절에서 하나님의 사자 앞에 “내가 범죄 하였습니다. 당신이 막으려고 서신 것을 몰랐습니다. 당신이 기뻐하지 않으면 돌아 가겠습니다” 하였는데, 35절에서 또 “여호와의 사자가 함께 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할찌니라” 하셔서, 귀족들과 함께 갔다고 하였습니다.

3)이 35절 말씀이 하나님의 진정한 말씀인가? 아니면 20절 말씀처럼 발람의 조작인가? 할 때, 이 부분에서도 발람 자신의 말로 해석함이 옳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발람이 바알을 섬기는 자였고, 그는 따라가서 바알 산당에 올라갔으며(41절) 또 23장에서는 사이비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런 정황으로 볼 때 하나님이 그 일을 하게 하시기 위하여 “가라”는 계시를 주셨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하였을까요? 이는 그 자신이 사이비 술사인 만큼 존귀와 뇌물의 미련도 있었을 것이고, 이왕 여행하던 중이며 술법의 묘미를 터득하는데 관심이 있어서 깨끗이 포기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계시를 거짓 빙자하여 간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35절의 “가라”는 말씀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더 많은 설명을 드려야 하는데, “하나님은 거짓 선지자도 쓰시는 경우가 있다”(잠 16:4, 왕상 22:22, 가룟유다의 경우처럼)고 하여야 하고, 또 성도가 무엇을 요청할 때 몹시 원하면 그의 경험으로 깨우치시기 위하여 위험한 것을 아시고 허락하시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삼상 8:4-9, 부모가 자식에게 해로울 것을 알면서 주는 것과 같음). 그러나 발람의 경우는 그가 술사요 성도가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3. 발람이 영접 받음(36-41절).

1)36-37절에서는 “발람이 발락으로부터 큰 환영과 존귀의 약속을 받는 내용”입니다. 어렵게 모신 귀빈이므로 최고의 대우를 하였을 것입니다.

2)38절에서는 발람이 “오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임의로 말할 수 있으리이까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그것을 말할 뿐이라” 하였으니, 술사라도 이대로만 한다면 진실된 선지자이겠지만 그는 이미 환대에 끌렸고, 또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온 자가 된 것입니다.

3)39-40절은 환영 대회를 연 내용입니다. “발람이 발락과 동행하여 기럇후솟(모암의 지명. 명소일 듯)에 이르러 우양을 잡아 함께 한 귀족들을 대접하였다”고 하였습니다.

4)41절에서 “아침에 발락이 발람을 인도하여 바알산당에 올라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의 진을 끝까지 보게 하였다” 하였으니, 이는 바알신 숭배와 아울러 저주의 대상을 점찍게 하려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 발람은 백성을 저주하는 일과 바알 신당에 접근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바알은 베니게와 가나안인들이 섬기는 남신(여신은 아스다롯)으로 태양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모압족들도 그 신을 섬겼습니다.

 

제 26 과 발람의 제사와 하나님의 계시 (민23:1-30)목록으로


발람은 발락을 위하여 선민을 저주해 보려고 꾸준히 시도하였습니다. 그는 선민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의 신을 받아 저주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① 1-12절은 “1차 제사와 받은 계시”요, ② 13-22절은 “2차 제사와 받은 계시” 이며 ③ 23-30절은 “끈질긴 요청과 3차 제사”입니다.

1. 1차 제사와 받은 계시(1-12절).

1)발람과 발락은 22:41에서 바알 신당에 올랐고, “그 곳에 일곱 단을 쌓고 일곱 수송아지와 수양을 각 제단에 한 마리씩 번제로 드린 후(1-2절), 3절에서 발락을 번제물 곁에 서게 하고, 발람은 조금 떨어진 곳(사태 난산)에 가서 하나님의 지시를 받기 위하여 옮겨 간 것”입니다. 여기의 제사 드린 장소는 바알 신당 근방일 것이고, 7 제단과 7 제물은 발람 자율에 의하여 정한 것이며, 그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해 주기를 바랐기 때문에 제사의 대상은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제사는 여러모로 합당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선민에게 주신 제사법에 의한 것이 아니고, 제사장도 하나님이 세우신 자가 아니며 제사의 목적도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고 거기에 사술과 뇌물 의욕 등 잘못이 많은 것입니다(벧후 2:15-16, 유 11, 계 2:14 참조).

2)그런데 4절에서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셨다” 하셨으니 이는 제사를 받으신 뜻이 아니고, 선민을 저주할 수 없음을 알리시기 위하여 발람에게 강권적 계시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 강권적 계시란 감동적 계시와 달라서 “나귀가 말할 수 있게 하신 것”처럼 5절에서 발람의 입에 말씀을 주어 발락에게 돌아가서 주신대로 말하게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방언 하는 자처럼 자기 뜻을 가미 하지 못한 채 말하게 하신 것”입니다.

3)6-10절에서 발람이 이상과 같은 계시를 받고 제물 곁에 선 발락에게로 가서 하나님이 입술을 주관 하시는 대로 나타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요약하면 강권적 계시에 노래까지 포함되었고, “발락이 모압 동편 산 아람에서 나를 청하여 야곱을 저주하고 꾸짖으라 하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 것을 어찌 그리할 수 있느냐 내가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처할 것이라(하나님만 모시고 의지하여) 열방 중 하나같지 않도다(다른 민족 같지 않다는 뜻) 야곱(선민)의 티끌(수가 많은 뜻)을 뉘 능히 계산하며 그들의 1/4인들 계산할 수 있으랴. 나(발람)는 의인의 죽음처럼 죽기를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의인과)와 같기를 원하노라” 하였으니, 한 마디로 바른 말을 한 것처럼 발람이 하나님께 쓰임이 된 것입니다. 본문 5, 16절에서 “입에 말씀을 주셨다”한 것은 나귀의 입을 여신 것과 같은 뜻으로, 22:9, 12, 35의 “이르시되 가라사대”한 것과 차이가 있습니다. 22:9, 12, 35의 뜻은 발람이 조작한 내용입니다.

4)11-12절에서 발락은 의도에 위배된 것을 유감으로 말하였으나 12절에서 “발람은 어찌할 수 없었다”고 대답하였으니, 하나님은 나귀의 입을 여신 것처럼 발람을 이용하여 쓰신 것입니다. 축복과 저주는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2. 2차 제사와 받은 계시(13-22절).

1)13절에서 발락은 발람을 데리고 장소를 옮겼습니다. 선민 전체가 다 보이지 않고 끝만 보이는 곳이었고, 그 곳에서 2차 저주를 시도하였으니, 이는 전체를 저주할 입장이 못 되면 부분만이라도 저주해 보자는 의도이었을 것입니다. 미신을 숭상하는 자들은 저주의 장소나 저주 대상의 분량에 대하여서도 어떤 변화를 가질 때 성취된다고 믿는 신앙이 있습니다.

2)14-17절에서는 1차 제사 드릴 때와 꼭같은 절차를 말씀하신 것이고, 16절에서 역시 “그 입에 말씀을 주셔서” 나귀의 입을 여시듯 발람의 입이 말하게 하신 것입니다. 역시 노래를 지어 말하기를 요약하면 18-22절에서 “발락이여 들으라 나(나의 말)를 자세히 들으라.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한 번 나타내신 말씀을 취소하시지 않는 뜻) 인자(사람과 같은 뜻)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신 분이시다. 어찌 말씀하신 바를 실행치 않으시랴. 내가(발람) 축복의 명(뜻)을 받았으니 돌이킬 수 없다.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시지 않는다(긍휼을 베푸신다는 뜻).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여기의 왕을 부름은 선민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뜻).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셨으니 그 힘이 들소와 같다”고 한 것입니다. 발람은 이 말을 신적 계시로 말하면서 그 뜻을 이해하였을 것입니다. 또 자기 입으로 자기의 하고 싶은 저주를 할 수 없음도 깨달았을 것입니다.

3. 끈질긴 요청과 3차 제사(23-30절).

1)그리하여 23-24절은 발람이 하나님의 계시 없이 자기의 정신을 차린 상태에서 말하기를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복술도 없다 오히려 선민에 대하여 논(평가)한다면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뇨 하고 감탄할 따름이다” 하였고, 24절에서는 “이 백성이 암사자같이 일어나고 수사자처럼 일어나서 움킨 것을 먹되 그 먹이의 피를 마시기 전에는 눕지 않을 것이라” 하였으니, 이는 발람이 예측 하는대로 “선민이 강하여 꺾을 자 없을 것이며 선민이 항상 승리의 길을 갈 것이라”는 뜻으로 말한 것입니다.

2)25-26절에서는 11-12절 말씀처럼 발락이 유감을 표하고 발람이 “어찌 할 수 없었다”는 말이며

3)27-30절에서는 발락이 발람을 세 번째 장소로 인도하였으니 그 곳은 광야가 내려다보이는 브올산 꼭대기였습니다. 이 “브올”은 등불이란 뜻으로 발람의 아비 이름이기도 하고, 또 브올신을 섬기는 높은 산이 있어서(현재는 그 곳을 “제벨엘 무삿갈”이라 한다함) 그 곳에 가서 저주한다면 “하나님이 혹 기뻐하실 것이라” 하였으니, 이는 미신적 신앙인들이 장소 따라 신의 기분을 맞추려는 의도를 보인 것입니다. 29-30절에서는 처음(1-2, 14-15절)과 꼭같은 제사를 또 드리고,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장소 따라 또는 제물 따라 감동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고, 성도의 진정한 믿음과 회개와 하나님의 뜻을 복종하는 순종에 감동을 받으시는 것입니다(마 8:11-13, 욜 2:15-18, 마 7:21을 꼭 읽으시고 확인하십시오).

 

제 27 과 발람의 선지자 역할 (민24:-25)목록으로


본문에는 발람의 깨달음과 변화를 받음과 동시에 성령의 감동까지 힘입어 예언하는 내용이 기록되었습니다. ① 1-9절은 “선민에 대한 1차 예언”이요, ② 10-19절은 “선민에 대한 2차 예언”이며 ③ 20-25절은 “이방에 대한 예언과 귀향”입니다.

1. 선민에 대한 1차 예언(1-9절).

1)23:30에서 발락이 발람의 요청대로 3차 제사를 드린 후에 1절에서 “발람은 하나님이 선민을 선히 여겨 축복하시는 것을(자신의 입으로 나타낸 계시를 통하여) 알고, 전과 같이(22:20, 35 ‘함께 가라’ 하신 계시) 사술을 쓰지 않았다” 하였으니, 이는 자신의 사술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23:7-10, 18-22에서 받은 계시 같은 것)에 굴복 또는 의존해 볼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이는 일종의 깨달음이고, 변화의 자세라고 볼 수 있습니다.

2)그 낯을 광야로 향하여 2절에서 눈을 들어 선민이 각 지파대로 거하는 것을 보는 동시에 하나님의 신(성령님)이 그 위에(발람에게)임하여 예언하는 노래를 하게 되었으니 이 예언은 23:7-10, 18-22에서 시행한 예언보다 한 단계 높여진 성령님의(강권적이 아닌) 감동적 예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발람 자신이 사술을 포기하였고, 또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후(24:1)였으며 2절에서 “하나님의 신이 그 위에 임하여 역사 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 장의 예언은 선지자적 예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3-9절에서 그 예언(노래)은 이러하였습니다. 요약하면 “일찌기 눈을 감았던(무지하였다가 깨달은) 브올의 아들 발람이(하나님의 계시로) 말한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요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그 동안 받은 계시)이며 (이제 비로소) 엎드려서 (하나님께 굴복한 자세) 눈을 뜬 자(깨달았다는 뜻)가 말한다. 야곱이여 네 장막과 거처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그 벌어짐(지파대로 진친 모습, 2절)이 골짜기 같고 강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의 심으신 침향목 같고 물가의 백향목 같도다(진친 모습을 자연의 지리와 나무로 비유하여 축복한 말씀) 그 통에서는 물이 넘치겠고(물의 복) 그 종자는 많은 물가에 있을 것이며(토산의 복) 그 왕(선민의 왕 하나님)이 ‘아각’(아말렉왕, 출 17:8-16) 보다 높으니 그 나라가 진흥할 것이라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으니 그 힘이 들소와 같음이라 그 전국(가나안땅)을 삼키고 그들의 뼈를 꺾으며 화살로 쏘아 꿰뚫을 것이라(전쟁의 승리를 뜻함) 선민의 위세가 꿇어 앉고 눕는 암사자 숫자자 같으니 일으킬 자(대항할 자) 누구랴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예언은 발람이 성령의 감동으로 선민을 축복한 말씀입니다. 9절 말씀처럼 성도가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고 복을 받으면, “그를 축복하는 자도 복을 받고, 저주하면 자신이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 하였으니, 이와 같은 말씀은 창 12:3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도는 축복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2. 선민에 대한 2차 예언(10-19절).

1)10-11절은 발락이 크게 유감을 표현한 사실이, 23:11-12, 25-26의 내용과 같고, 12-13절에서는 발람이 “하나님의 말씀만 나타낸다는 사실과, 은금을 주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느냐”고 하였습니다. 최초에 한 말이 사술적이었다 하더라도, 여기서는 진실한 변명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발락은 발람에게 기대를 걸 수 없게 되었습니다.

2)14절에서 발람은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말하면서 “선민이 당신의 백성(모압족)에게 후일에 어떻게 할 것을 고하겠다” 하고 성령의 감동으로(2절) 노래를 지어 가로되(요약하면), 16-19절에서 “브올의 아들 눈을 감았던 자(무지하였던 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또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자신이 깨달은 과정을 표현한 것)가 말한다. 내가 그(선민)를 보아도 이 때의 일(출애굽 사건만 큰 일이 아니란 뜻)이 아니며 내가 그(선민)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선민의 중대사가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뜻)이 아니로다 한 별(메시야를 뜻함. 계 22:16)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권세, 왕의 상징. 더 4:1, 슥 10:11)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 편에서 저 편까지 파하고(이 뜻은 권세자가 선민 중에서 나와 모압을 정복한다는 예언으로 다윗 왕 때에 정복한 일이 있었음. 삼하 8:2, 12) 소동하는 자식들(원문상으로 소동, 훤화. 렘 48:45의 뜻을 가진 글자가 아람의 아들 ‘셋’으로 번역된 문서가 있어서 각주에 ‘셋의 아들들’로 번역할 수도 있다 하였으나 명확한 해석이 없음. 따라서 ‘소동하는 자식들’이란 메시야를 거스르는 자들을 치실 것을 예언하신 것임. 시 2:9)을 멸할 것이라. 그 원수 에돔(길을 열어주지 않은 에서족. 20:14-21)은 그들의 산업이 되며 그 원수 세일(에돔족이 거주한 땅. 창 33:16)도 그들의 산업이 되고(삼하 8:14, 왕하 3:8, 14:7에서 다윗과 아마샤왕 때 정복한 일이 있음) 그 동시에(그 시대에) 이스라엘은 용감하리로다.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와서 (모압의) 남은 자들을 그 성읍에서 멸절 하리라”(바로 앞 18절에서 설명한 내용임)고 예언한 것입니다. 이 예언 중의 “별과 홀”은 모압을 정복할 권위자를 예언하면서 메시야의 출현까지 계시하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영토 정복과 영적 구원의 의미를 다 깨달을 수 있습니다.

3. 이방에 대한 예언과 귀향(20-25절).

1)발람이 계속 예언하기를 20절에서 “아말렉은 열국 중 으뜸이나 종말은 멸망에 이른다” 하였고(출 17:8-16),

2)21-22절에서 “가인 족속(가나안땅에 자리잡은 족속들, 창 4:16-24)을 바라보며.....너의 거처가 견고하니 네 보금자리가 바위에 있으나(요새지를 뜻함) 가인(조상을 일컫는 말)이 쇠미하리니 나중에는 앗수르의 포로가 될 것이라” 하였는데 이 예언대로 주전 650년경에 앗수르의 침략으로 유다를 제외한 주변 왕국들이 다 정복된 일이 있었습니다(왕하 15:19, 17:1-6, 24, 11:8).

3)23-24절에서 “슬프다 하나님이 이 일(가나안 정복일 듯)을 행하시리니 그 때에 살 자가 누구리야”, 24절에서 “깃딤(구브로에 거주한 야벳의 후손, 창 10:1-5) 해변에서 배들이 와서 앗수르를 학대하며 에벨(아브라함의 후처가 낳은 미디안의 아들 중 에벨이 있으나 확실히 알기 어려움. 대상 5:13, 8:12, 22)을 괴롭게 할 것이나 그 (앗수르)도 멸망하리라” 하므로 앗수르도 주전 700년경에 바벨론에게 정복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4)25절에서 “발람과 발락이 자기 곳으로 돌아감”으로 발람의 실제적 행사는 24장으로 끝났으나, 다음 장에서 발람이 거짓 선지자(술사)로 잘못된 일을 하므로, 선민에게 큰 피해를 입힌 사실이 기록된 것입니다. 발람이 잘못한 명확한 근거는 벧후 2:15-16, 유 11, 계 2:14에 나타나 있습니다. (7분설교13집에 수록된 “발람과선민”벧후2:15-17, “발람사건에 대한 문답”민22:1-6을 참고하십쇼)

 

제 28 과 발람이 다녀 간 결과 (민25:1-18)목록으로


발람의 사건과 관련하여 25장을 이해하는데는 여러 가지 기억할 것들이 많습니다. 우선 모압왕 발락은 선민을 대적하기 위하여 혼자 대적할 수 없은즉 미디안족을 끌어드렸고, 두 계파는 합동하여 발람을 끌어드렸습니다. 발람은 22-23장에서 사술자의 역할을 하여 사이비한 이방적 제사를 두 번이나 드렸는데, 한 번은 선민 전체가 보이는 장소에서 또 한 번은 선민의 끝만 보이는 장소에서 시행하였고, 세 번째는 브올산 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렸는데 이 장소는 광야에 진 친 선민을 더 가까이 바라볼 수 있는 장소라는데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단을 7 제단, 제물을 각 제단에 소 하나, 양 하나씩 드린 것은 많은 제사 음식을 준비한 것입니다. 왜 그런 제사를 드렸을까요?, 24장에서 발람은 깨닫고 예언하고 갔지만, 그 이전에 깨닫지 못하고 눈을 감았을 때는 그에게 사술만 가득하였습니다. 25:18에 보시면 “궤계로 유혹하였다”는 말씀이 있은즉, 하나님이 저주하시지 않는 백성을 저주받게 하려면 그들이 죄를 짓도록 유혹해야 한다는 사실을 궤계로 사용한 것입니다. 이방인 제사에는 여인들의 유혹하는 몸과 음식이 많습니다. 그 제사를 7 제단씩 세 번, 21제단을 선민들이 보이는 가까운 곳에 분산하여 여인들과 음식으로 선민의 젊은이들을 유혹한 것입니다. 따라서 유혹을 받은 선민 장정들이 알게 모르게 그 제사 드리는 곳에 가서 음행도 하고 먹기도 하며 절하고 심지어는 미디안 여인을 자기 장막에 데려오기까지 한 것입니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내렸고 염병으로 24,000명이 죽은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발람이 발락에게 공로를 세우고 돌아간 셈입니다. ① 1-3절은 “선민의 범죄”이고, ② 4-9절은 “염병과 범인 처단”이며 ③ 10-13절은 “공의에 대한 칭찬”이요, ④ 14-15절은 “두 범인의 신분”이고, ⑤ 16-18절은 “유혹자 미디안을 치라”는 말씀입니다.

1. 선민의 범죄(1-3절).

1)1절에서 “이스라엘이 싯딤(가시나무 언덕을 의미함)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 음행은 이방적 제사 의식에 포함된 것으로 선민이 유혹을 받은 것입니다.

2)2-3절에서는 선민이 유혹 당한 원인으로 “그 여자들(모압 또는 미디안 여자들)이 그 신들(바알신 또는 그모스신)에게 제사할 때(발람의 제사 대상은 하나님이었음) 선민 백성을 청하여 제사 드린 고기를 먹게 하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도록 유혹하여 바알브올(바알은 신의 이름이고, 브올은 그 신당이 있는 산 이름임)에게 부속되게 하므로 하나님이 선민에게 진노하시게 되었으니, 그 진노는 염병(2절)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선민 중 일부가 이방 여인과의 음행과 우상 제물과 우상 경배에 유혹을 받고 넘어간 것입니다. 얼마나 여자와 고기에 주린 상태입니까?

2. 염병과 범인 처단(4-9절).

1)4절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백성의 두령들(범죄한 자의 신분이 두령이었음. 14-15절)을 잡아 태양을 향해(바알이 곧 태양신임) 하나님 앞에 목매어 달아야 진노가 떠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5절에서 모세는 사사들(무사를 뜻함)을 명하여, “바알브올에게 부속된 자들을 죽이라”고 명하였습니다.

2)6절에서 (염병으로 죽음 당함을 인하여) “온 회중이 회막문에서 울 때 선민 중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목전(보는 앞에서)에서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 형제에게로 왔다” 하였고, 7절에서 “이 때에 아론의 손자요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인 비느하스가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남자를 따라 장막에 들어가 두 남녀의 배를 꿰뚫어 죽이니 염병이 그쳤고,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24,000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죄를 두려워하지 않다가 비참하게 죽은 것입니다.

3. 공의에 대한 칭찬(10-13절).

1)10-1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하나님의 역겨운 심정을 이해하고 그 입장에서 죄인을 처단한 뜻) 하나님의 노를 돌이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 하지 않게 하였다”고 칭찬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를 좋아하시고 죄인 척결도 좋아하십니다(출 32:26-29, 미 6:8). 사랑으로 감싸는 것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 줄 알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만족을 위하여 막 죽이셨습니다. “나의 질투심으로...진멸하지 않게 하셨다” 함은 “그 질투심의 효력을 죄인 처단과 선민 보존에 적용하셨다”는 뜻입니다.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마음을 시워케 해 드렸습니다.

2)12-13절에서 “하나님은 비느하스에게 평화의 언약을 주시고 그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영원한 제사장”이란 의미는 메시야의 중보자 직위를 뜻하고, 아론 지파의 제사장은 예수님 오실 때까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다” 하셨으니 여기의 속죄란 죄인 처단으로 하나님의 용서와 진노 중단을 힘입게 한 것을 뜻합니다.

4. 두 범인의 신분(14-15절).

1)14절에서 죽임을 당한 이스라엘 남자는 시므온 지파의 한 족장으로 ‘실루’의 아들 ‘시므리’이고, 죽임 당한 여인은 15절에서 미디안족의 한 두령 ‘수르’의 딸 ‘고스비’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범죄자의 이름을 숨기는 예가 거의 없는 줄 압니다. 죄는 인권보다 무서운 것이고, 진실은 생명보다 귀한 줄 아셔야 할 것입니다.

5. 유혹자 미디안을 치라(16-18절).

1)16-1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미디안 인들을 박해하고 그들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궤계로 너희를 박해하되 브올의 일(발람의 유혹)과 미디안 족장의 딸 고스비의 사건으로 너희를 유혹하였음이라”고 하셨습니다.

2)“고스비”는 브올의 일로 염병이 일어난 날에 죽임을 당한 그들의 자매라고 하셨으니 여기의 “고스비”가 자매라 하신 뜻은 “미디안”이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소생(창 25:2)이기 때문입니다.

3)“미디안을 치라”는 말씀에 따라 민 31:7-10, 삿 7:14-25에서 그 결과를 나타내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 29 과 족보와 후기의 통계 (민26:1-65)목록으로


1. 본문에는 12 지파의 후손들과 인구 조사 및 특기 사항과 기업 분배 규칙을 말씀하셨기로 “족보와 후기의 통계”란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습니다. 이 시기는 광야 생활 거의 끝나갈 무렵 여리고 맞은 편 모압 평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레위 지파는 1개월 이상 남자를, 다른 지파는 20세 이상 전쟁에 나갈만한 자를 계수한 것입니다. 레위 지파를 1개월 이상 남자로 계수한데는 제사장 양성이 군인보다 더 중요함을 알게 합니다.

지파명

성경(절)

초기인구

(민 1:-2:)

현재 인구

증감 여부

족보(→아들이란 뜻)

르우벤

5-11

46,500

43,730

-2,770

하녹가족, 헤스론 가족, 발루 가족→엘리압→느무엘, 다단, 아비람, 다단과 아비람은 고라당 무리에 들어가 죽음.(민 16:41-50)

시므온

12-14

59,300

22,200

-37,100

느무엘 가족, 야민 가족, 야긴 가족, 세라 가족, 사울 가족

15-18

45,650

40,500,

-5,150

스본 가족, 학기 가족, 수니 가족, 오스니 가족, 에리 가족, 아롯 가족, 아멜리 가족

유다

19-22

74,600

76,500

1,900

셀라 가족, 세라 가족, 베레스 가족→헤스론 가족, 하몰 가족, 아들 “에르”와 “오난”은 죽었음.(창 38:8)

잇사갈

23-25

54,400

64,300

9,900

돌라 가족, 부와에게서 부니 가족, 야숩 가족

스블론

26-27

57,400

60,500

3,100

세렛 가족, 엘론 가족, 얄르엘 가족

요셉

(므낫세)

28-34

32.200

52,700

20,500

마길 가족, 길르앗 가족→이에셀 가족, 헬렉 가족, 아스리엘 가족, 세겜 가족, 스미다 가족, 헤벨 가족, 슬로브함→딸만 5명, 말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임

에브라임

35-37

40,500

32,500

-8,000

베겔 가족, 다한 가족, 수델라 가족→엘란 가족

베냐민

38-41

35,400

45,600

10,200

아스베 가족, 이히람 가족, 스부밤 가족, 후밤 가족, 벨라 가족→아릇, 나아만(아릇은 단절됨, 40절)

42-43

62,700

64,400

1,700

수함 가족

아셀

44-47

41,500

53,400

11,900

임나 가족, 이스위 가족, 브리아 가족→헤벨 가족, 말기엘 가족, 아셀의 딸은 세라

납달리

48-50

53,400

45,400

-8,000

야셀 가족, 구니 가족, 예셀 가족, 실렘 가족

총계

51

603,550

601,730

1,820

레위

62

22,273

23,000

727

게르손 가족, 고핫 가족, 므라리 가족, 레위의 종족은 립니 가족, 헤브론 가족, 말리, 무시, 고라 가족,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않았음.(11절, 시 42:-48:) 고핫→암므람(요게벳)→미리암, 아론, 모세, 아론→나답, 아비후(출 6:23, 민 3:4, 죽음) 엘르아살, 이다말

여기에 나타난 20세 이상 남자의 수는 초기에 조사된 사람들이 아닙니다(여호수아와 갈렙만 포함되었음). 따라서 “광야에서 다 죽으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 것임(민 14:30, 35).

교훈 1)많이 죽었어도 1820명이 더한즉 하나님이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베푸신 것임(호 3:2).

2)신앙 생활(사회 생활)은 전투와 같은즉 항상 투사가 필요함(엡 6:10-17).

3)통계는 질서 유지 상으로도 필요함(고전 14:39, 살전 5:14, 롬 2:19).

4)기업은 장정 수에 따르고 문제되는 것은 제비 뽑아 정함(52-56절). 조상의 이름으로 받음

5)가장 많이 줄어든 지파는 시므온 지파이고, 가장 많이 늘어난 지파는 므낫세 지파임.

6)인구가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기업을 분정할 때 땅 넓이로 조정한 다음 그 인구대로 조정된 땅을 원치않는 사람들끼리 제비를 뽑은 것으로 사료됨(잠 16:33, 욘 1:7, 수 7:16, 삼상 10:20-21, 14:41, 대상 24:5).

7)여기에 나타난 이름들 중 각주에 나타난 것처럼 다른 이름으로도 사용된 것을 이해하십시오.

 

제 30 과 기업 계승과 직분 계승 (민27:1-23)목록으로


본문 ① 1-11절은 “기업 계승에 관한 말씀”이고, ② 12-23절은 “모세의 직분 계승”입니다.

1. 기업 계승에 관한 말씀(1-11절).

1)1절은 요셉의 후손 중 아들 없는 사람이 있었으니 계보로 따지만 요셉→므낫세→마길→길르앗→헤벨→슬로브핫(요셉의 5대손, 므낫세의 4대손-현손, 고손자의 뜻)이 딸만 다섯(말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 26:33)을 두고 죽은 것입니다. 그 집안은 남자가 없은즉 20세 이상의 장정도 없으니 누구의 이름으로 어떻게 기업을 받으며 또 아들 없는 집안은 어떻게 기업을 이양하는가?의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2)2-4절에서 “그 딸들이 모세에게 나와 아비가 벌받은 일 없이(고라당에 가담치 않음) 딸만 5명을 두고 죽은 것을 말하고, 기업 받을 명분에서 삭제될 수 없으니 사람 수대로 주시는 기업(26:54, 여형제 5명 몫)을 삼촌 명의에 붙여 달라”는 뜻입니다.

3)5-11절에서 모세가 그 사실을 하나님께 여쭌즉 “슬로브핫 딸들의 청원이 옳다” 하시고, 그런 경우(아들 계승자가 없음)에 기업 받는 방법과 기업 계승의 방법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① 기업을 받을 때는 7절에서 삼촌 명의에 붙여(삼촌도 없으면 사촌 형제나 친족으로 이어져야 함. 9-11절을 준용해야 할 것임) 받으면 되고, ② 계승할 아들이 없이 집안이 문을 닫게 될 때는 딸에게 주고(8절) 딸도 없으면 자신의 형제에게 주며(9절) 형제도 없으면 삼촌(아비의 형제)에게 주고(10절) 삼촌도 없으면 가까운 친족에게 주어 얻게 하라(11절)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민법이요, 공유 재산이나 임자 없는 재산은 없고, 또 명의상(가족명) 빠지는 가족도 없게 하신 것입니다.

2. 모세의 직분 계승(12-23절).

1)12-1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아바림 산(모압에서 가나안땅이 바라보이는 곳에 있음. 12절)에 올라가서 “하나님이 선민에게 주신 땅을 바라보라 본 후에는 아론처럼 조상에게로 돌아갈 것이라” 하셨으니, 이는 민 20:12에서 예고하신 대로 모세에게도 시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신광야 가데스 므리바에서 하나님의 거룩을 훼손한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임을 맡은 자는 자신의 명예를 못 박고(갈 5:24),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만 일하여야 하고(고전 10:31), 겸손과 절대 복종에 유의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2)15-17절에서 “모세는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하나님은 영의 아버지도 되심. 히 12:9)께 회중을 목자 없는 양처럼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한 사람을 지도자로 세워줄 것을 청하였으니”, 여기에서 모세는 자신의 죽음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필연적으로 받아드린 점과 백성의 앞 일을 염려하여 후계자를 부탁한 점을 본받을 만한 일로 여기셔야 할 것입니다.

3)18-23절에서 하나님이 답하시기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성령)에 감동된 자인즉 그를 제사장과 회중 앞에 세워 안수(직임을 전수하는 뜻)하고, 그에게(모세의 직임을) 위탁하여 모세의 존귀를 그에게 돌려주고 온 회중으로 복종케 하며,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세우고(서열을 뜻함)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과 두밈의 판결법으로 하나님 앞에 물을 것이고, 온 회중은 엘르아살의 말을 좇아 나가며 들어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몇 가지 설명드릴 것이 있습니다. ① “여호수아를 엘르아살 앞에 세운다”는 뜻은 여호수아가 모세를 대리하는 위치에 있음과 하나님의 직접적 계시(민 12:8)를 받을 자이기 때문이요, ② “엘르아살(대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법으로 하나님께 묻는다”는 뜻은 하나님이 대제사장에게 간접 계시(우림과 두밈의 판결법, 출 28:29-30)를 주신만큼 서로 감독하는 차원에서 살피고 지키라는 뜻이며 ③ “온 회중이 엘르아살의 말을 좇아 들어가고 나가는 것”은 과거에 아론의 위치를 그대로 전수 받을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4)22-23절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명대로 다 시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교훈을 요약하면 ① 여성의 특권을 배제하지 않은 점, ② 하나님이 공의를 발하시고 약속을 지키시는 점, ③ 모세가 하나님께 여쭙는 태도(오늘에는 성경으로 살펴야 함), ④ 모세가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함은 인간의 의로(즉 율법으로) 되지 않음을 뜻하는 것, ⑤ 생명 따라 먹고 살도록 기업을 주시는 하나님, ⑥ 빈틈없는 직분 계승, ⑦ 서열과 감독 체계, ⑧ 인명 재천 등에 대한 것 등을 유의하실 수 있습니다.

 

제 31 과 각종 제사와 제물 (민28:1-31) 목록으로


본문에는 ① 1-8절에서 “매일 드리는 제사”와 ② 9-10절에서 “안식일 제사”와 ③ 11-15절의 “월삭 제사”와 ④ 16-25절의 “유월절 제사”와 ⑤ 26-31절의 “77절 제사”의 말씀이 기록되었기로 “각종 제사와 제물”로 제목을 정하였습니다.

1. 매일 드리는 제사(1-8절).

1)1-2절에서 하나님은 선민에게 제물 드릴 것을 명하시고, 그 제물의 명칭을 “나의 예물 나의 식물 되는 화제 나의 향기로운 것”이라 하셨으며 “정한 시기(하나님이 정해주신 시기)에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숭배의 대상이신즉, 하나님께만 “제사”란 용어를 사용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기가 받으실 제물을 “예물”이라 하심은 정성과 가치가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이고, “식물되는 화제”란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므로 사람을 섬기는 방법에 빗대어 음식을 대접하듯 정성을 드리라는 뜻이며 (화제는 음식을 불로 익혀서 맛있게 하는 뜻) “나의 향기로운 것”은 음식의 좋은 냄새가 향기로운 것처럼, 하나님을 유쾌하게 해 드리는 정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정한 시기를 지키는 것”도 순종인 만큼 엄격히 준수하여야 할 것입니다.

2)3-8절에서는 “매일 드리는 상번제의 때와 제물”을 말씀하셨습니다. 때는 3절에서 “매일 드리되”, 4절과 8절에서 “아침과 해질 때에 드리라” 하셨고, 3절의 “상번제”란 뜻은 매일 제사를 드리므로 그 제물의 성격이 “끊이지 않게 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제물은 1년 되고(맛있는 고기의 뜻, 또는 어린양의 뜻) 흠 없는(무흠, 무죄의 뜻) 수양들을 조석으로 나누어 드리되(저녁은 4, 8절에서 해질 때인즉, 아침은 해뜰 때로 보아야 함) 희생물에 첨부되는 제물로 소제와 전제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첨부 제물로써 소제는 5절의 고운 가루 에바(22ℓ)1/10과 빻아 낸(기름을 짤 때 빻아서 눌려야 함) 기름 힌(3.8ℓ)1/4을 섞어서, 6절의 “시내산에서 정한 상번제로 드려 향기로운 화제가 되게 하라” 하셨으니, 이 규례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실 때도 말씀하셨다는 뜻이요(출 29:38-42), 또 시내산에서 주신 말씀을 거론하신 이유는 본문에서 제사법과 소제 요리법을 생략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그대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과자가 되게 하든지(출 29:2) 무교전병이 되도록(레 7:12) 요리하여 드리라는 것입니다. “저녁 제사도 꼭같이 하라”(8절)고 하셨습니다. 전제로는 “독주의 전제를 드리라”(7절) 하셨으니, 여기의 “독주”란 하나님은 취하시지 않으니까 값진 포도주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2. 안식일 제사(9-10절).

1)이 본문에서는 안식일에 드리는 제사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안식일 제사법은 본문에만 있는 줄 압니다. 다른 곳에서는 대부분 휴식하는 법만 말씀하셨지요(출 16:25, 20:8-11). 그리고 혼돈하시지 않아야 할 것은 7일의 첫 날인 주기적 안식일이 있고(본문의 뜻), “특별 안식일”이 있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특별 안식일은 레 16:31에서 대속죄제 일의 첫 날(7월10일)을 “큰 안식일”이라 하셨고, 또 그 절기의 끝 날(7일간 지킨 후)도 안식일이며(23:32, 38-39) 7월 1일 나팔절도 안식일이라고 하신 것을 기억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런 안식일이 오늘의 우리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시겠지요. 율법의 안식일은 폐지되었지만 하나님 앞에 시간과 정신을 드리기 위하여 세속의 일을 쉬거나 세속적인 일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시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하여 일부러 시간을 내게 한 것입니다. 신약의 주일도 그런 의미가 있지만 대부분 예배 시간에 피곤하고 조는 이유는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2)안식일에 드릴 제물은 모든 절기 제사가 그러하듯이(10, 15, 23절) 매일 드리는 제사로 겸할 수 없고 별도로 드려야 하는데 “1년 되고 흠 없는 수양들과 고운 가루 에바 2/10(매일 제사의 갑절)와 기름 섞은 소제와 그 전제(소제와 전제는 매일 드리는 제사 격식에 준한 것임. 5-7절)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3. 월삭 제사(11-15절).

1)“월삭”이란 매월 초하루를 의미합니다(대상 23:31). 한 달에 한 번씩 초하루에 제사를 드릴 때는, 11-13절에서 “수송아지 둘과 수양 하나와 1년 되고 흠 없는 수양 일곱 마리로 희생의 번제를 드리되, 매 수송아지에 고운 가루 에바 3/10과, 기름 섞은 소제(분량은 없으나 20절에 소에 대한 첨부물 에바 3/10을 적용할 수 있을 듯 함)와, 수양 하나에는 고운 가루 에바 2/10와 역시 기름 섞은 소제와 매 어린양에는 고운 가루 에바 1/10과 기름 섞은 소제를 향기로운 번제로(불판에 구원 냄새를 피우라는 뜻)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13절의 “화제”란 태우고 지지는데 불을 사용한 것을 뜻합니다.

2)또 첨부 제물로 소제 외에 전제가 있으니(전제는 부어 드리는 뜻), 전제는 수송아지 하나에 포도주 반 힌(1.9ℓ)이요, 수양 하나에는 ⅓힌이며 어린양 하나에는 1/4힌을 드리고 또 15절에서 “상번제(매일 드리는 제물) 외에 수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수염소로 드리는 속죄제는 족장이 부지 중에 범한 죄를 속하는 제물에 해당합니다(레 4:22-24).

4. 유월절 제사(16-25절).

1)이 유월절 행사 기록은 출 12:1-27, 레 23:4-14, 민 9:1-14, 신 16:1-8에도 기록되었습니다. 1월 14일이 유월절일이고, 15일부터 21일까지 7일 동안은 그 절기가 됩니다. 그 동안 무교병을 먹어야 하고 “첫 날(14일)과 7일(21일)은 성회로 모이라” 하셨으니 이 두 날을 안식일처럼 휴식하는 것입니다(18, 25절).

2)제물은 “수송아지 둘(첨부 제물:한 마리당 고운 가루에 기름 섞은 것 에바 3/10, 6.6ℓ)과 수양 하나(첨부 제물:한 마리당 고운 가루에 기름 섞은 것, 에바 2/10, 4.4ℓ)와, 흠 없고 1년 된 수양 일곱(첨부 제물:한 마리당 고운 가루에 기름 섞은 것 에바 1/10, 2.2ℓ)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또 “월삭 때처럼(15절) 수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따로 드리라(22절)”고 하셨습니다(19절의 “수양 일곱”을 21절에서는 “어린양 일곱”이라 하셨으나 같은 뜻임).

5. 77절 제사(26-31절).

1)77절은 처음 익은 열매(보리 수확임. 따라서 맥추절, 초실절이라 함, 출 34:22)을 수확하여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날입니다. 이 날을 “77절”이라 한 것은, 유월절 지난 49일째 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이 1월 21일에 끝나므로 거기에 49일을 더하면 2월 초가 됩니다. 49일 지난 다음 날이 50일 째 되는 날이어서, 신약 시대에는 그 날을 “오순절”이라고 명칭하였는데, 그 날 마침 성령님이 강림하셨지요(행 2:1-2). 이 77절 행사는 레 23:1-15에 상세히 기록되었습니다.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 갖고 가서 요제를 삼아 흔들고 다른 제사도 드립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이시므로(고전 15:20) 이 첫 열매의 감사를 예수님의 부활의 상징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월절이 고난의 예표인즉 초실절, 77절, 오순절, 맥추절은 부활의 예표가 되겠지요. 그 날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26절) 하셨은즉, 안식일의 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2)그 날에 드릴 제사는 “수송아지 둘(첨부 제물:한 마리당 소제로 고운 가루에 기름 섞은 것 에바 3/10, 6.6ℓ)과, 수양 하나(첨부 제물:한 마리당 소제로 고운 가루에 기름 섞은 것 에바 2/10, 4.4ℓ)와 흠 없고 1년 된 수양 일곱(첨부 제물:한 마리당 소제로 고운 가루에 기름 섞은 것 에바 1/10, 2.2ℓ)으로 향기로운 번제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30절에서 “속죄제로 수염소 하나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상에 나타난 절기 의식은 모두가 “매일 드리는 상번제” 이외로 드리는 것입니다(31절). 알고 보니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는 통합이 없고, 단순한 것이 없으며, 어디까지나 개별적으로 또 속을 채우는 정성으로 드리고 섬겨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제사 드리는데 바쁘면 다른 일(세속)에 마음 쓸 여유가 없었을 것이니 신약의 성도들이 말씀, 기도, 봉사에 얽매이면 세속에 빠질 기회가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제 32 과 속죄일과 초막절 행사 (민29:1-40) 목록으로


본문에는 ① 1-6절에 “나팔 부는 날의 행사”가 기록되었고, ② 7-11절은 “속죄일의 행사”이며 ③ 12-14절까지는 “초막절 행사”에 대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총 제목을 “속죄제일과 초막절 행사”라 하였습니다. 나팔을 부는 날이 있는 것은, 두 절기(대속죄일과 초막절)를 준비시키기 위한 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나팔 부는 날의 행사(1-6절).

7월 1일 나팔 부는 날을 “나팔절”이라고 합니다. 나팔 부는 목적은 7월중에 있는 속죄 사역과 초막절 행사를 준비하고 경성 하라는 뜻입니다. 그 날 노동을 안하고 성회로 모이는 이유도 그러합니다. 그날 드리는 제사는 수송아지 하나(고운 가루 기름 섞은 것 에바3/10 첨부)와, 수양 하나(고운 가루 기름 섞은 것 에바 2/10 첨부)와, 1년 되고 흠 없는 수양 일곱(고운 가루 기름 섞은 것 에바 1/10 첨부)외에 (전제는 없고) 속죄제물로 수염소 하나를 드리게 됩니다. 29장에 나타난 모든 제사는 상번제나 다른 명목의 제사와 겸할 수 없고 별도로 드려야 할 것을 6, 11, 16, 19, 22, 25, 28, 31, 34, 38, 39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과 정성은 겸하는 식으로 하지말고 항상 개별적으로 하심이 좋습니다.

2. 대속죄일의 행사(7-11절).

여기에서 기록을 줄이기 위하여 “1년 되고 흠 없는 수양”은 “1년 무흠 수양”으로, “고운 가루 기름 섞은 것”은 “소제”란 말로 대신 하겠습니다.

1)7-11절에서 7월 10일은 “속죄일”인데, 이 뜻은 전체 선민의 죄를 대대적으로 속죄하기 위하여 속죄 행사를 갖는 날이란 뜻입니다. 성경에 대(大)자는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이 속죄일의 기록은 레 16:29-31에도 있으며, 그 날을 “큰 안식일”이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에서도 이 날은 “마음을 괴롭게 하고(회개하는 뜻) 아무 노동도 하지말라” 하시므로 성일로 구별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2)이 날에 드리는 제물은 나팔 부는 날(7월 1일) 드리는 것과 꼭같다는 것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8-10절).

3. 초막절 행사.(12-40절)

1)초막절 행사는 시작하는 날인 7월 15일부터 끝나는 날 22일까지 8일을 지키게 됩니다. 선민에게 초막절을 지키게 하신 것은, 40년 광야의 초막 생활을 감사하며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첫 날(7월 15일)과 끝 날(7월 22일)만 성일로 지켜 노동하지 않고 거룩한 대회로 모이라” 하셨는데, 그 제사 예물에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초막절 첫 날은 전제가 제외되었고(12-16절), 다른 날은 소제와 함께 전제가 다 있으며, 속죄제물은 수염소 하나씩 매일 변동이 없습니다.

2)그리고 희생 제물과 소제물의 분량상 차이를 말씀드리면 ① 초막절 첫 날(12-16절)은 수송아지 13(소제 에바 3/10 포함), 수양 2(소제 에바 2/10 포함), 1년 무흠 수양 7(소제 에바 1/10 포함)을 드리는데, 여기에 포함된 예물은 “매 어린양 각기”란 말씀이 있는 것과(4, 10, 14, 15절), “수효를 따라서”란 말씀이 있는 것을 보아(18절) 매 희생물의 수효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셔야 합니다. ② 둘째 날(17-19절)은 희생 제물 중 수송아지만 한 마리 감한 12마리요, 수양 두 마리가 없고 다른 예물은 다 같습니다. ③ 셋째 날(20-22절)은 수송아지 수만 11마리요, 다른 것은 같고, ④ 넷째 날(23-25절)은 수송아지가 또 한 마리 줄어서 10마리가 되었고, 다른 것은 같되 19, 21, 24, 27, 30, 33, 37절에서 “규례 대로 하라”하신 것은 9-10, 14-15절과 레위기 2장의 말씀이나, 민 6:15등의 말씀을 준용하라는 뜻입니다. ⑤ 다섯째 날(26-28절)은 수송아지가 9 마리로, ⑥ 여섯째 날(29-31절)은 8 마리로, ⑦ 일곱째 날(32-34절)은 7 마리로, ⑧ 그리고 여덟째 날(35-38절)은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하나와 1년 무흠 수양 7 마리로 변경된 것입니다. 이 제물이 변경된 이유는 잘 알 수 없습니다. 1년에 한 번씩 경고와 예비의 뜻으로 나팔을 불고, 전 국민의 속죄를 중요하게 여긴 점과 또 40년 간의 초막 생활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일이 중요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 33 과 서원의 실천 규례 (민30:1-16) 목록으로


본문에는 “서원의 실천 규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의 서원자는 아비 집에 있는 여자(3절), 또는 “아비 집에 있는 유년 여자”이고(16절), 또 “남편과 함께 사는 부녀(부인 또는 거기에 딸린 여자)”(10절)에 해당합니다. 9절에서 “과부나 이혼 당한 여인은 다른 사람의 간섭이나 지도 없이 실천하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① 1-2절은 “서원의 일반적 의미”이고, ② 3-5절은 “아비 집에 있는 여자의 경우”이며 ③ 6-8절은 “여인이 결혼하려 할 때”이고, ④ 10-16절은 “남편과 함께 사는 경우”입니다.

1. 서원의 일반적 의미(1-2절).

1)1절에서는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선민 지파의 두령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였으니, 곧 2절에서 “하나님께 서원, 마음의 제어 또는 서약을 하였으면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대로 (기도로 표현한 말) 다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2)성경에는 야곱과 한나가 서원한 것을 실천한 일이 있고(창 28:20, 삼상 1:21), 또 나실인의 규례도 있는 중(민수기 6장), “하나님은 식언치 않으시며(민 23:19) 진실을 원하시고(시 51:6) 또 깨끗한 양심을 바라신즉(딤전 3:9) 하나님께 서원 하였으면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말아야 한다(시 15:4)”고 하셨습니다.

3)“서원과 마음의 제어와 서약”은 다 비슷한 뜻으로 하나님과의 약속을 뜻합니다. 성직자가 성직을 받을 때 “교회의 화평과 발전을 위하고 헌법을 지킨다”고 서약 하였은즉, 해로울지라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보며 서원은 주로 야곱이나 한나처럼 “무슨 의무나 사명을 다하고 은혜를 받아 무엇을 하겠다”는 약속 같은 것이 많으며 “마음의 제어”란 하나님께 양심적으로 약속하는 것으로 예를 들면 “술이나 담배를 끊는다든지 무슨 범죄에 가까이 나가지 않는다”는 식의 결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혹 공인들 앞에서 헌금이나 충성을 약속하는 것도 그런 일에 해당합니다.(필자가 큰 은혜를 받고 감사 헌금 얼마를 교회에 바치려고 마음에 정했는데, 그 다음에 그 헌금을 삭감할 마음을 먹었다가 거리낌이 되어 원래 정한 마음대로 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이 경우는 100% 서약은 아니지만 양심상의 변화가 되므로 거리낀즉 거리끼지 않게 함이 좋다는 것입니다.

2. 아버지 집에 있는 여자의 경우(3-8절).

1)3절에서 “여자가 만일 어려서 아버지 집에 있다”는 뜻은 성인이 못되어 혼인하지 않았음을 의미하고, “그가 하나님께 서원 또는 스스로 제어할 일이 있을 때”는 4절에서 “그 아비가 그의 서원, 제어, 서약의 뜻을 듣고 아무 말 없으면(허락한 뜻임) 그대로 행하고 지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5절에서 “아비가 그것을 허락지 않으면 이루지 못할 것이니 하나님도 허물 하시지 않는다(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뜻은 출가하지 않은 딸이 아버지 집에 있으면서 아버지의 뜻에 전폭 순종하여야 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3)그러면 어린 아들은 그런 자유가 있는가?할 때, 그는 “부모에게 순종할 계명”(신 21:18-21)을 따라야 할 것이요, 어린 여자에게만 이 계명을 주신 이유는 여자가 혼인하여 타인의 가족이 될지라도 아버지 집에 있는 동안은 아버지 밑에 종속됨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면 또 아내는 어찌하느냐? 하시겠지요. 성경은 그것을 다음 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3. 여인이 결혼하려 할 때(6-8절).

1)6절에서 “여인이 남편을 맞을 때(결혼하려 할 때) 마음의 제어와 서약을 경솔히 말하였다” 하였으니, 이 기간은 지도의 주체가 아버지도 아니고 남편도 아닌 중립에 있을 때를 의미하며, 따라서 “경솔히 말했다”는 뜻은 남편 될 사람에게 서원한 사실에 대하여 말을 안 해도 될 것을 한 것입니다.

2)7절에서 (이왕 말을 한 바에는) “남편의 뜻에 따라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남편 될 자가 그것을 듣고 그 듣는 날에 (즉시) 아무 말이 없으면 그 서원과 제어함을 행하고 지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남편 될 자가 당일에 말하지 않으므로 실행을 하는 중, 몇 일 후에 반대를 하는 것은 효력이 없는 것입니다. 완전히 남편과 혼인한 시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3)8절에서 “그러나 그 말을 듣는 날에 남편 될 자가 허락지 않으면(그는 그 남편의 아내가 될 자인즉) 남편 될 자의 반대로 취소를 하여도 그 여자는 사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야 할 이유는 남편이 아내를 다스리고(창 3:16),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할 의무를 주셨기 때문입니다(엡 5:22). 하나님은 철저하게 가부장(家父長) 제도를 제정해 주셨습니다.

3. 남편과 함께 사는 경우(10-16절).

이 부분의 내용은 남편이 지도 행사를 하는 경우와 같습니다. 6-8절을 참고하십시오. 그런데 한 가지 유의하실 것은 10절의 “부녀”란 용어입니다. 이 뜻을 넓혀서 생각한다면 “부인과 그 부인에게 딸려 온 여자 아이”로도 생각됩니다.

1)13절에서는 “무릇 서원과 무릇 마음을 괴롭게 하는 서약을 남편이 지키게 할 수도 있고 무효케 할 수도 있다” 하셨은즉, 아내가 전적으로 남편의 허락 하에서 하나님께 서원, 서약, 제어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괴롭게 하는 서약”은 회개하는 증표일 것입니다. 7월 10일 속죄일에도 “마음을 괴롭게 하라” 하셨으니까요(29:7). 따라서 아내는 남편에게 말하고 반드시 당일에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8절).

2)15절에서 “남편이 들은지 얼마 후에 그것을 무효케 하면 아내가 계속 할 수 없게 되며 그 책임의 죄는 남편이 담당한다”고 하셨습니다. 담당을 하면 어떻게 할까? 하시겠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생활의 차질과 부작용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경우에 재판자는 책임 소관을 잘 따져야 하는 것입니다. 임직 서약이나 결혼 서약도 하나님 앞에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도 독자적으로 책임져야 할 경우가 있고, 그를 지도하는 가장이 책임져야 할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9절에서 “과부나 이혼 당한 여자”는 (혼자 따로 살 경우에) 누구에게도 예속됨이 없다는 점과 따라서 자기의 일을 자기가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제 34 과 미디안을 쳐 부심 (민31:1-54) 목록으로


본문 ① 1-18절은 “미디안 척결에 대한 말씀”이고, ② 19-24절은 “결례에 대한 말씀”이며 ③ 25-47절은 “탈취물 분배에 대한 말씀”이고, ④ 48-54절은 “전리품을 반납함”입니다. 총제목은 “미디안을 쳐부심”입니다.

1. 미디안 척결에 대한 말씀(1-18절).

1)1-5절에서 “하나님은 미디안에게 원수를 갚으라” 하셨고, 그 후에 “모세가 조상(각주;세상 떠난 백성)에게로 돌아갈 것이라” 하셨으니 이는 죽음을 예고하신 것이고, 원수를 갚아야 할 명령은 민 25:17에서 명하신 것입니다. 3-4절에서 “모세는 매 지파당 싸움에 나갈 자 1,000명씩 모아 12,000명을 택하여 무장시키고 전쟁에 대비케 한 후, 6절에서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이 사람은 아론의 손자로 발람 사건 때에도 용기를 낸 일이 있음. 민 25:6-13)로 하여금 성소의 기구와 신호 나팔(본래 제사장이 부는 것. 민 10:8, 전쟁을 지휘하는 뜻)을 들려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들려 보낸 성소의 기구”가 무엇일까? 하는 점입니다. 민 10:33에서 “정착지를 인도 받으며 법궤를 앞에 메고 간 사실”과 수 3:14에서 “요단강을 건너는 중대사가 있을 때”, 또 수 6:8에서 “여리고성을 칠 때”, 또 삼상 4:3에서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법궤를 앞세운 일이 있는 만큼 성소의 기구는 법궤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법궤를 든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태도입니다.

2)7-8절에서 전쟁은 대승하였고, “미디안을 쳐서 그 남자를 다 죽였으며 그 지역의 5왕, 에위, 레겜, 수르, 후르, 레바도 죽였고, 브올의 아들 발람도 칼로 죽였으니” 발람은 멀리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은 상태였고, 이로써 악한 방법으로 선민을 괴롭힌 자들은 시원스럽게 보복을 당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탈취한 전리품들은 9, 11절에서 “부녀들과 그 아이들(여자일 듯, 7절)과 가축들과 재물들”이었으며, 12-13절에서 그것들을 여리고 맞은 편 요단가 모압 평지로 다 갖고 오니 지도자들이 나가 영접하였고, 온 회중에게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3)그런데 14절에서 “모세가 싸움에서 돌아온 장관, 천부장, 백부장들에게 노할 일”이 생겼으니, 그것은 15절에서 “여자들을 살려 온 때문”입니다. 16절에서 이 여자들은 발람 사건 때 음행으로 유혹하거나 범죄케 하여 염병을 불러 온 부류들이기 때문에, 17절에서 “남자와 동침한 사실이 있는 여인들은 다 죽이고 남자를 모르는 여자(처녀)들만 살리라”한 것입니다. 참으로 큰 전쟁이요, 큰 살육이었을 것입니다. 보복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하나님의 원수이면 성도가 얼마든지 가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원수를 갚지 말라”(레 19:18)는 말씀은 개인적 보복을 금하신 것이요, 하나님은 “원수 갚는 것이 자신에게 있다”고 하셨습니다(신 32:35, 롬 12:19).

2. 결례에 대한 말씀(19-24절).

큰 전쟁이었은즉 시체를 접촉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사람과 모든 물건들이 함께 부정해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군인들, 포로된 자, 탈취물(짐승은 거론하시지 않았음)까지 결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전쟁이 지나면 전염병도 발생하므로 정결은 더욱 중요하였던 것입니다.

1)19절에서 “살인자(군인들), 시체 만진 자, 포로된 자, 그들의 지참물인 의복(가죽, 염소털, 나무 섬유질)을 다 결례법(레위기 14장, 민수기 19장)에 의하여 결례하게 한 것입니다.

2)22-24절에서 “금, 은, 동, 철, 상납은 타지 않는 것인 만큼 불을 지나가게 하였고 그 이외의 것은 정결케 하는 물”(민 19:21)로 뿌리고 또 빨아서(24절) 결례에 임하게 한 것입니다.

3. 탈취물 분배에 대한 말씀(25-47절).

1)25-27절에서는 “사람, 짐승(소, 나귀, 양떼 등) 물건을 반분하여 반은 싸움에 나갔던 군인들에 주고, 반은 회중(자손, 30절)에게 주라” 하셨으니, 생명을 걸고 싸운 자들의 공로를 우선 갚아준 것이라 할 수 있고,

2)28-31절에서 이 전리품을 받은 군인들은 “받은 것의 1/500을 하나님께 드리되 거제물(들어 보이는 것)로 하여 제사장에게 드리고 회중은 1/50을 제사장에게 드리게 하였으니” 여기에서도 공을 세운 군인들에게 세금을 감면하는 것처럼 혜택을 준 것입니다. “하나님은 수고한대로 먹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시 128:2).

3)32-41절은 전리품, 통계와 하나님께 드린 것과 별도의 전리품 반환에 관한 말씀입니다. 32절의 “다른 탈취물”은 27절의 “얻은 물건”으로 보석류(30절의 금패물들)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보석류를 제외한 전리품은 양, 소, 나귀, 사람(처녀들)인데, 이 통계는 42-46절에서 양이 675,000, 소가 72,000, 나귀가 61,000, 사람이 32,000명이고, 47-48절에서 군인들이 하나님께 드린 분량은 1/500이므로 양이 675, 소가 72, 나귀가 61, 사람이 32명이며, 회중이 하나님께 드린 것은 1/50이므로 군인들이 드린 분량의 10배가 됩니다.

4)하나님이 주신 소득의 계산, 분배의 합리성, 하나님께 봉사하는 일에 대한 교훈을 주신 것이고, 또 성령님이 기록하신 말씀인즉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피셔야 합니다.

4. 전리품을 반납함(48-54절).

1)48-50절에서 군대의 지휘관(장관, 천부장, 백부장)들이 모세에게 나와서 군인의 한 생명도 축나지 않은 것을 말하고(감사하는 뜻으로), 군인들 각 사람이 얻은 금패물(손․발목걸이, 반지, 귀걸이, 팔고리)들을 생명을 위하여 하나님께 속하려고 예물로 가져온 것입니다. 이 뜻은 하나님이 생명 보호해 주신 값으로(속한다는 뜻은 생명 값을 드리는 제도에서 나온 말임. 사람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하고 그 값을 드리는 뜻. 민 18:15-16) 드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발적으로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감사에 속하는 예물입니다. 성도들도 생명 보호와 건강의 은혜를 늘 감사하셔야 할 것입니다.

2)51-54절에서는 “모세와 대제사장 엘르아살이 그 예물(패물)을 취하여 측정한즉 16,750세겔(1세겔이 11.42g인즉 191㎏임)인데, 53절에서 (이는) 군인들이 각기 자기를 위하여 탈취한 것이라” 하셨으니, 이것은 32절에 기록된 “군인들의 다른 탈취물”로 보아야 하며, 그들은 죽지 않은 것을 감사하여 별도로 취한 패물 전리품을 반납한 것입니다. 54절에서 “모세와 제사장은 이것을 회막에 들여서 (하나님의 회막 섬김에 쓰이는 재정) 여호와 앞에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을 삼았다”고 하셨습니다. 이 “기념을 삼은 내용”은 알려 주시지 않았습니다. 이 말씀에서 성도들은 전쟁, 하나님의 원수 척결, 전리품 분배, 다른 탈취물 반환, 죽지 않은 감사, 기념을 삼아 교훈한 일 등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제 35 과 르우벤, 갓 자손의 특청 (민32:1-42) 목록으로


본문에는 “르우벤, 갓 자손의 특청과 처리,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동편에서 기업을 받는 내용”이 기록되었습니다. 선민 행렬이 25:1에서 발람 사건을 접할 때 “싯딤”에 있었고, 그 다음 26:3에서는 여리고 맞은 편 모압 평지에 도착하였는데, 민수기 마지막 절인 36:13에서도 그 모압 평지를 떠나지 않았으므로 이 지역이 민수기의 끝 지역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많은 일들이 있었으니 27장-30장까지의 율법 계도와 31장의 “미디안과 모압 섬멸”이 있었습니다. ① 1-15절은 “르우벤, 갓 지파의 특청과 모세의 책망”이고, ② 16-24절은 “조건부 허락”이며 ③ 25-32절은 “서로의 약속”이고, ④ 33-42절은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을 줌”입니다.

1. 르우벤, 갓 자손의 특청과 모세의 책망(1-15절).

1)1-5절에서 르우벤, 갓 자손의 특청은 그들에게 가축 떼가 많기 때문에 가축의 목장지로 적합한 야셀 땅과 길르앗 땅(이 땅은 사해 동북 요단강 동편 땅으로 선민이 모압, 미디안, 아모리를 쳐서 멸한 땅)이고, 그 지역 안에 아다롯, 디본, 야셀, 니므라, 헤스본, 엘르알레, 스밤, 느보, 브온 등 지명이 있다고 생각하십시오(3-4절). 그리하여 이 두 지파의 대표자들이 모세와 엘르아살(대제사장)과 회중 앞에 나와서 “요단을 건너지 않고 요단 동편 땅에서 자기들의 기업을 얻게 해 달라”고 청원한 것입니다. 이 청원이 전체 민족으로 볼 때 이해되는 면도 있지만 기업을 먼저 얻으려는 면에서 볼때는 이기주의라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이 청을 들은 모세는 6-15절에서 과거의 역사를 들추면서 책망을 합니다. “너희 형제들은 싸우러 나가는데 너희는 여기 앉고자 하느냐”(6절), “그 일은 이스라엘 자손으로 낙심케 하여 하나님이 주신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7절), “너희 열조(민 13:4의 탐지병, 삭굴의 아들 삼마)가.......그 땅을 탐지 하였을 때.......이스라엘 자손으로 낙심케 하여........주신 땅으로 갈 수 없게 한즉, 하나님이 진노로 맹세하여 20세 이상으로는 한 사람도 그 땅을 볼 수 없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을 온전히 순종치 않은 때문이요(다만 여호수아와 갈렙만 순종하였고) 그때의 진노로 40년 동안 광야에 유리하게 되면서 악을 행한 세대가 필경은 다 소멸하였는데(18-23절), 너희도 열조를 계대하여 일어난 죄인의 종류가 되어, 하나님의 노를 심하게 하니, 그리하면 이 백성이 광야에서 버림을 받고 너희가 모든 백성을 멸망케 함이 될 것이라(14-15절)” 하므로 대단히 따끔한 책망을 한 것입니다. 큰일을 성취하는 데는 단합이 중요한즉 엄히 경계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청은 명분이 있어야 하고, 또 결격 사유가 없어야 하며 의무가 앞서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2. 조건부 허락(16-24절).

1)이 때 두 지파는 16-19절에서 자신들의 이기주의를 오해받지 않기 위하여 “가족과 가축을 정착(성읍을 건축하여 견고히 있게 함)시킨 다음에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그 곳으로 인도하기까지 그들의 앞에서 행하고, 또 다른 지파가 기업을 얻기까지 돌아오지 않으며 요단 동편에서 기업을 받았은즉 다른 지역의 기업은 받지 않을 것이라” 한즉

2)모세가 말하기를 20-24절에서 “너희가 무장하고 하나님 앞에서(법궤 앞에서 또는 선두에서) 싸우되 하나님이 그 원수를 자기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으로 복종케 하시기까지 싸우면 너희는 무죄하게 돌아와서 이 땅(원하는 땅)을 산업으로 차지하리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 범죄 함이니 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 하고 정착을 위한 건축을 허락한 것입니다. 여기의 “죄가 정녕 너희를 찾는다”는 뜻은, 죄의 보응을 응당히 또는 틀림없이 받게 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 서로의 약속(25-32절).

1)25-27절은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20-22절에 나타난 대로 약속하는 내용”이고, 28-29절은 “모세가 두 지파의 책임 이행을 조건으로 수락하는 내용”입니다.

2)30절은 “두 지파가 무장하고 (요단강을) 건너지 않으면 (약속을 처음부터 안 지키면) 약속이 취소됨인즉 가나안 땅에서 산업을 줄 것이라” 하였고, 31-32절에서는 “두 지파가 모세의 말을 다시 확인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상호 계약이란 시행할 때의 약속과 시행치 못할 때의 처리 및 시행 과정상의 차질에 이르기까지 주밀하고 진실하게 하지 않으면 문제가 됨을 유의하셔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정부와 백성 또는 고용주와 노무자 간의 복잡한 문제를 생각하게 됩니다.

4.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을 줌(33-42절).

1)33절에서 “모세가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에게 (요단강 동편)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국토와 바산 왕 옥의 국토(21:21-35절에서 뺏은 것)를 주었다” 하셨는데, 이 아모리인 시혼의 국토란 “시혼”이 모압을 점령한 일이 있으므로(21:26), 모압 전역을 의미하고 또 선민이 발람 사건 이후에 모압과 미디안을 쳤으므로(31:1-11) 역시 그 지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요셉의 아들 므낫세 반 지파(마길의 지파. 인구의 반쯤)에게도 주었다” 하셨으니 이는 39-42절에서 연구하셔야 합니다.

2)34-36절은 갓 자손이 분정 받은 지역으로 “디본, 아다롯, 아르엘, 아다롯소반, 야셀, 욕브하, 벧니므라, 벧하란”인즉 이는 그 지역의 군(郡)이나 면(面) 단위 또는 성읍의 이름입니다. 이 지역은 요단강 하류 동쪽으로 르우벤 지역의 북쪽에 인접하였고,

3)37-38절은 르우벤 자손이 분정 받은 지역으로 “헤스본과 알르알레, 기랴다임, 느보, 바알므온, 십마”인데, 여기의 느보와 바살므온과 십마는 새 성읍으로 건축하여 이름을 준 곳입니다. 르우벤 지파의 땅은 사해 바다를 서남으로 인접한 갓 지파 땅의 남쪽입니다.

4)39-41절은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동편 땅을 분정 받는 내용입니다. 이 지역은 갓 지파 땅의 북쪽이고 요단 상류 동쪽이지만 요단 서편까지 인접된 땅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므낫세 지파가 요단 서편 땅을 받은 경계는 수 13:8-13에, 전체 경계는 수 17:7-13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왜 이 땅을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었을까요? 39-40절에서 므낫세의 아들 “마길”으 자손이 길르앗을 쳐서 취하고 아모리인을 쫓아냈기 때문에 그 명분으로 준 것입니다. 므낫세 지파는 장정의 수가 52,700명으로 12지파 중 6번째에 불과하지만 21:31-35에 나타난 전쟁을 할 때 용맹을 떨친 것입니다. 39절의 “길르앗”이 땅 이름으로 나오지만 이 이름은 므낫세 의 손자요 마길의 아들 이름입니다. 따라서 그 후손들이 아모리 지역을 점령하고 그 땅을 차지할 때, 그 곳 이름을 “길르앗”으로 고쳤다고 봅니다. 그런 사례는 42절에서도 나옵니다.

5)41절에서 므낫세의 아들 “야일”은 가서 그 촌락을 취하고 그 곳을 “하봇야일”(야일의 촌락이란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타난 “야일”은 므낫세의 아들이 아니고, 므낫세의 외현손(고손자)입니다. 성경에는 족보 몇 대를 건너면서 아들이라고 한 사례가 많지요(마 1:8에서 “요람은 웃시야를 낳았다” 하셨지만 요람은 웃시야의 5대조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혈족(본손이나 외손까지)을 아들 또는 자손이라고 하는데, 외손을 아들이라고 표현한 곳은 여기에서 처음 발견한 것입니다. 성경은 깊고 넓게 연구하지 않으면 이해 못하실 부분이 생깁니다. 대상 7:14-19을 꼭 읽어보십시오. 므낫세의 아들은 본처의 아들 “아스리엘”이 있고, 첩의 아들 “마길”이 있지요. 마길의 아들은 “길르앗”입니다. 그리고 15절에서 므낫세의 둘째 아들은 “슬로브핫”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첩의 아들 “마길”은 세 번째의 출생자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성경에서는 첩의 아들이라도 야곱의 경우에 차별이 없었음). “야일”의 족보는 대상 2:4-5, 21-22에서 살필 수 있습니다. 헤스론은 유다의 아들인 베레스의 아들인데(대상 2:4-5) 길르앗의 아비 마길의 딸(길르앗의 자매)에게 장가들어 “스굽”을 낳고, 스굽이 “야일”을 낳았으므로(대상 2:21-22) 야일이 므낫세의 외현손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야일”은 유다 지파라도 외가 쪽에 공을 세운 것입니다.

6)42절에서 “노바는 가서 그낫과 그 향촌을 취하고 자기 이름을 따라 그 취한 땅을 노바라 하였으니” 노바의 인적 근거는 짐작하기 어렵고, “그낫”인 노바 지역은 역시 므낫세 지파가 받은 지역 안에 속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력 따라 우선권을 주셨고(수 14:6-15), 제비를 뽑은 것은 아무런 명분이 없을 때 그렇게 한 것입니다.

7)족보와 계열을 연구하실 때, 므낫세는 요셉이 애굽에서 낳은 큰 아들인바 그 시기는 약 440년 전인즉 여러 세대를 논함에 있어서 계열은 정확하나 대수는 건너 뛸 수 있다고 보셔야 할 것입니다(사 1:8, 그 증거는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 계보는 66대이나 누가복음 3장의 계보는 76대인즉, 누가복음 3:23-38의 강론을 참고하십시오).

 

제 36 과 선민의 진행 노정과 실천 명령 (민33:1-56) 목록으로


본문 ① 1-4절은 “출발 당시의 형편”이고, ② 5-49절은 “노정과 진 친 곳”이며 ③ 50-56절은 “세 가지 실천 명령”입니다. 노정 중에 있었던 특별한 사건을 몇 가지 첨부하였습니다.

1. 출발 당시의 형편(1-4절).

1)이 부분의 역사는 출 12:29-13:3, 17-22에 기록되었습니다. 1절의 항오(行伍)란 군대식 조직 편성을 의미합니다(출 13:18). 2절에서는 “모세가 하나님의 명대로 진행한 것을 기록하였다” 하셨는데, 모세가 이 사실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록하였기 때문에 3,500년 후인 이 시대에도 저희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인즉 기록이란 이만큼 위대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필자도 그런 취지에서 열심히 기록합니다.

2)3절에서 선민들이 애굽을 출발한 것은 “곧 유월절 다음 날”이라 하셨는데, 이 사실은 출 12:27-37에 기록되었습니다. “모든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큰 권능으로 나왔음”은 바로왕에게 나타난 열한 가지 재앙과 불기둥, 구름 기둥을 본 상태이었을 것입니다(출 13:22). 4절에서 그 때에 애굽인들은 장자와 초태생을 장사하는 중이었고, “하나님은 그들의 신들에게도 벌을 주셨다” 하셨으니, 이 말씀은 출 12:12, 사 19:1에도 기록되었습니다. 잡신들이 벌 받는 것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이요, 그 때의 일은 아니지만 다른 신(블레셋 신) 우상이 부서졌다 하여(삼상 5:1) 그것을 벌이라 할 수 없겠지요. 따라서 잡신들이 벌 받는 뜻은 그것들을 섬기는 자들이 재앙을 받거나 힘을 잃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2. 노정과 진 친 곳(5-49절).

1)발행지 라암셋(고센땅, 창 47:6, 11)에서→숙곳→광야 끝 에담→바알스본 앞 비하히롯을 돌아서 믹돌 앞→바다를 지나고 에담 광야로 3일을 가서 마라→엘림→홍해 변경→신광야→돕가→알루스→르비딤(물을 낸 곳)→시내 광야→기브롯 핫다아와→하세롯→릿마→림몬베레스→립나→그헬라다→세벨산→하라다→막헬롯→다핫→데라→밋가→하스모나→모세롯→브네야아간→홀하깃→욧바다→아브로나→에시온게벨→신광야(가데스)→호르산(출애굽 40년 5월 1일, 아론이 123세에 죽음, 20:22-29, 가나안 땅 남방에 거한 아랏왕의 침범 소식 듣고 그들을 멸함, 21:1-3)→살모나→부논→오봇→모압 변경 이예아바림→디본갓→알몬디블라다임→느보 앞 아바림산→여리고 맞은 편 모압 평지(벧여시못에서 아벨싯딤에 미친 곳)에 진을 쳤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진 친 곳(→표)은 정확하게 40곳인즉 1년에 한 번씩 옮긴 셈입니다. 몇 일을 여행하고 몇 일을 머물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기간이 40년이었습니다. “인생은 행인 같고 나그네 같다”하신 벧전 2:11을 실감하게 합니다. 여행한즉 정착할 수 없고 자주 옮긴즉 장막 생활 외에는 할 수 없었겠지요. 그 중에서도 인생 여행을 잘못하여 20세 이상 계수된 자가 다 나그네 중에 죽었고, 모세와 아론은 나그네 생활을 잘 끝내고 죽었으며,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출애굽 당시 20세 미만과, 광야에서 출생한 사람들만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세상살이에 정착을 못하고 사는 것이 성도의 생활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들은 세속을 사랑하지 마시고 세상을 나그네처럼 지나가면서 적당히 사는 방법을 터득하셔야 할 줄 압니다. 우선 사치하지만 않아도 편리하게 사실 수 있을 것입니다(필자가 말씀을 기록하면서 주택에 정착하지 못한 스트레스가 많았음을 간증합니다. 본래 집이 없이 목회만 하다보니 교회에서 주는 사택에서만 여덟 번을 이사하며 살았는데 그 주택 조건이 항상 스트레스를 준 것입니다. 그러나 거저 사는 것인즉 감사하였지요. 58세때 교회를 사임하고 25평 주택을 전세로 들어와서 7년을 살고 지금도 그와 비슷한 집으로 이사와서 2년째 사는데 이 집의 위치는 교회 가까운 곳입니다. 넓은 사택에서 좁은 집으로 옮겨오면서 9년째 서재 정리와 다른 짐 정리를 못한채 사는 것이 곧 나그네 인생 같음을 느낍니다. 70세 정년되면 교회에 얽매인 생활에서 벗어나 주택 사정이 공간적으로 자유로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인생은 나그네 같은고로 원하는 욕구를 다 채우지 못한채 사는 것이고, 완전한 소망은 내세에 들어가야 할 것임을 알려드리려는 것입니다). 광야에 무슨 정착이 있겠습니까? 가나안땅에 들어가야 있겠지요. 그래도 40회쯤 이사다닌 인생은 없을 것입니다.

3. 세 가지 실천 명령(50-56절).

마지막 여행지에 와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할 일 두 가지를 또 명하셨습니다.

1)한 가지는 52-53절에서 “그 땅 거민을 다 몰아내고 그들의 모든 우상과 신당을 다 훼파하여 그 땅을 취한 후 거기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55절에서 “만일 그 땅 거민을 몰아내지 않으면 너희의 남겨둔 자가 눈에 가시처럼 되어 너희 옆구리를 찔러 괴롭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진실치 못한 사람을 가까이 하면 자주 손해를 보게 되는 것처럼, 잘못된 종교에 빠진 자를 곁에 두고 교제하면 영적으로도 큰 손해를 본다는 것을 유의하셔야 할 것입니다.

2)54절에서 “약속의 땅을 분정할 때 가족 수를 따를 것과, 제비를 뽑을 것과, 열조(12지파)의 이름으로 할 것을 명하셨으니” 이는 26:55-56에서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민 26:56에 보시면 “다소를 물론하고 제비 뽑으라”하신 것은 “인구수를 무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 앞 절 53절에서도 “명수대로 땅을 나눈다”는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선 공로자에게 대우하고(민 32:4042, 수 14:6-15) 그 다음에 인구를 고려한 후에 비슷한 조건에서 나누게 될 때는 제비를 뽑아 불평 없이 하라는 뜻입니다.

3)56절에서 “나는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을 너희에게 행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55절의 “그 땅 거민을.....몰아내지 않았을 때 그들에게 가할 벌을 선민이 당하도록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여호수아는 그 땅에 들어가서 많이 점령하기도 하였지만(수 10장-12장) 그가 늙은 후에 목적을 이루지 못한 부분이 많았던 것이요(수 13:13, 17:12-13, 삿 1:19-21). 그로 인하여 큰 어려움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삿 2:1-5, 11-23).

 

제 37 과 사방 경계와 분배 책임자 (민34:1-29) 목록으로


본문에는 ①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의 사방 경계(1-12절) ② 두 지파 반에게 이미 허락한 사실의 설명(13-15절, 32장에 있는 내용) ③ 분배자와 분배 받을 자의 대표자(16-29절)를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연구 방법은 지도를 놓고 지역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 경계는 9 지파 반에 대하여서만 말씀하셨습니다.

1. 약속의 땅의 사방 경계(1-12절).

1)남방 경계는 “에돔 곁에 접근한 신광야”→동편 염해 끝→돌아서 아그라빔 언덕 남편→가데스 바네아 남방→하살아달→아스몬→애굽 시내(시내 광야란 뜻)→바다(지중해)까지요,

2)서편 경계는 대해이며

3)북편 경계는 대해→호르산→하맛(어귀)→스닷→시브론→하살에난에 이르고,

4)동편 경계는 하살에난→스밤→리블라→아인→긴네렛(동편 해변, 갈릴리 해변)→요단→염해에 미친다고 하셨습니다(전문가가 연구한 지도를 보시고 지명을 찾아 기입한즉 다음과 같은 지도가 된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12지파 분배지도, 부록에 첨부함).

2. 두 지파 반에게 허락한 사실(13-15절)은 생략함(32장).

3. 분배자와 분배 받을 자의 대표.(16-29절)

1)분배자는 16-17절에서 “제사장 엘리아살과 (지도자) 여호수아”이고,

2)분배 받을 지파의 대표자는 매 지파에 한 족장씩 선택하였으니 ① 유다 지파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요, ② 시므온 지파는 암미훗의 아들 스므엘이며 ③ 베냐민 지파는 기슬론의 아들 엘리닷이요, ④ 단 지파는 요글리의 아들 북기이며 ⑤ 므낫세 반 지파는 에봇의 아들 한니엘이요, ⑥ 에브라임 지파는 십단의 아들 그므엘이며 ⑦ 스블론 지파는 바르낙의 아들 엘리사반이요, ⑧ 잇사갈 지파는 앗산의 아들 발디엘이며 ⑨ 아셀 지파는 슬로미의 아들 아히훗이요, ⑩ 납달리 지파는 암미훗의 아들 브라헬이라 하셨습니다. 주는 자는 하나님의 명대로 시행하지만, 매 지파의 대표자 한 사람씩 나온 것은 그만큼 질서가 있고 신임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단체 생활은 대표자를 신임하고 일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 38 과 레위인 거처와 도피성 (민35:1-34) 목록으로


본문 ① 1-15절은 “도피성과 레위인 성읍에 대한 말씀”이고, ② 16-21절은 “고살자는 죽이라는 말씀”이며 ③ 22-28절은 “도피성과 우연한 살인자에 대한 말씀”이고, ④ 29-34절은 “일반적 재판 규례”입니다.

1. 도피성과 레위인 성읍(1-15절).

1)1-2절에서 하나님은 여리고 맞은 편 요단가 모압 평지에서 레위인이 가나안 땅에서 거처할 곳과 도피성에 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1-7절에서 선민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다른 지파는 땅을 분정해 받지만 레위 지파는 그런 것이 없은즉 거처할 성읍과 짐승 관리 할 공간을 주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성읍 전체의 수는 48 성읍을 주고, 그 중에 여섯은 도피성으로도 사용하되, 요단 동편에 세 성읍, 서편에 세 성읍을 두게 하신 것입니다(13절). 그리고 모든 성읍 성벽 밖 동, 서, 남, 북 2,000규빗(910m, 1㎞쯤)의 공간을 포함해 줌으로 “가축과 물산과 짐승들을 두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2)8절은 48 성읍을 헌납하는 방법을 말씀하셨는데, “많이 얻은 자에게서 많이 취하고, 적게 얻은 자에게서 적게 취하여 각기 얻은 산업(땅 넓이와 그 가치)을 따라 레위인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나라에서도 부동산의 가치를 따지는 것처럼 그 시대에도 그와 비슷한 방법으로 성읍을 헌납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3)도피성이란 뜻은 “우발적으로 범죄 하여 살인한 자가 그 피해자로부터 재판 절차를 거칠 겨를도 없이 죽임 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그 우발적 살인자가 도피성으로 피신하면 피해자 측에서 그를 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11-12절).

2. 고살자는 죽이라는 말씀(16-21절).

“고살자의 종류는 여러 가지이니 철 연장으로, 죽일 만한 돌로, 죽일 만한 연장으로 죽였을 경우이며 피를 보수하는 자(원수 갚을 자)가 그를 만나거든 친히 죽이라”(116-18절)고 하셨습니다. 이 경우가 재판 전인 듯도 한데(재판을 거쳐야 완전하고) 재판한 즉시 죽이라는 뜻입니다. 또 21절에서는 “미워하는 까닭에 밀쳐 죽이거나 무엇을 던져 죽이거나 원한으로 인하여 손으로 쳐 죽였다면 역시 고살자인즉 피를 보수하는 자가 그를 만나거든 죽일 것이라” 하시므로 일단 의지적 능동적으로 사람을 죽인 자는 만나면 죽이되 무조건 죽이는 것이 아니고, 약식 재판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29-30절)

3. 도피성과 우연한 살인자에 대한 말씀(22-28절).

본래 도피성은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기 위하여 만든 제도입니다.

1)“우연히 사람을 밀쳐 죽게 한 경우 기회를 엿봄이 없이 무엇을 던지거나 보지 못한 상태에서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던졌거나 하여, 아무 원한이 없는 상태에서 사람을 죽게 한 경우에, 회중은 그 우연히 저지른 살인자를 보수자의 손에서 건져내어 보내라”고 하셨습니다(22-25절). 24절에 “회중이 판결한다”는 것은 재판으로 죽여야 할 자인지 도피성으로 보내야 할 자인지를 증거에 의하여 판단하라는 뜻입니다.

2)23절에서 도피성에 들어간 우연한 살인자가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거기 있다가 대제사장이 죽으면 자기의 산업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다(28절) 하셨으니, 이 뜻은 죽음의 위험을 피하기 위하여(우발적 살인자라도 원한 자에 의하여 죽임 당할 수 있은즉) 도피성에 있다가 대제사장의 죽음(예수님의 죽음을 예표한 듯 함)으로 그가 자기 산업으로 돌아감은 인권을 회복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원한 자가 그를 죽이거나 해하면 그 자신이 살인자가 되는 것입니다.

3)그러나 26-27절에서 “도피성에 들어간 자가(임의로 제사장이 죽지 않은 때에) 그 지경 밖으로 나갔을 때, 원한 자가 죽였으면 그는 피흘린 죄(살인죄)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뜻은 사회적 범죄 방지의 의미도 있지만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의 중보 하에서만 죄와 그 심판을 피할 수 있음을 나타내신 것입니다(시 14:6, 46:1).

4. 일반적 재판 규례(29-34절).

1)29-30절은 “대대로 거하는 곳에서 판단하는 율례라” 하시고, 살인자 고살자를 죽일 때는 그만한 증거가 있어야 하되 한 사람의 증거로는 죽일 수 없은즉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을 요하라는 것이요,

2)31절에서는 속전에 대하여 헌신적 차원에서는 속전의 규례가 있지만(레 27:1-8), 고살자는 그렇게 할 수 없으며, 32절에서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 도피성에 있는 자가 속전을 받고(인권을 회복하여) 밖으로 내보내는 일을 하여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3)33절에서 “선민이 거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피흘림을 받은 땅은 이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할 수 없다” 하셨는데 “땅을 피로 더럽힘”은 살인죄를 의미하고,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할 수 없음”은 죄(피 흘림)의 보상을 그 당사자가 자기의 피로 속해야 한다는 뜻이니, 이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를 진다”는 뜻입니다(롬 6:23). 따라서 인간(죄인)은 살아 있으면서 스스로 자기의 죄를 속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4)34절에서 “나의 거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 여호와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함이라” 하심은 가나안땅이 선민과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의 처소인즉 거룩하게(죄짓지 말라는 뜻) 하라는 뜻입니다. 선민은 이 시대의 성도를 의미합니다. 성도가 사는 세계(교회와 가정)도 거룩하여야 하며 또 하나님은 성도와 항상 함께 계신 것을 잊으셔서는 안 될 것입니다(마 28:20).

 

제 39 과 딸들의 기업 보존 (민36:1-13) 목록으로


본문 말씀은 “딸들의 기업 보존에 대한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1)므낫세의 손자 길르앗(마길의 아들) 자손 가족의 두령들이 모세와 다른 족장들 앞에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1절). 여기의 “길르앗 자손의 가족”은 므낫세의 둘째 아들 “슬로브핫”이 딸만 다섯이 있어서 남자 없는 집안이므로, “그 아비의 형제 이름으로 기업을 주라”는 말씀을 민 27:7에서 허락하였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길르앗의 두령들이 문제를 제기 한 것” 보면 아비의 형제 즉 슬로브핫의 형제 마길(대상 6:14-15)의 이름으로 기업을 받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길르앗”은 마길의 아들이니까요.

2)27:1-11에서는 “딸만 있어도 기업을 달라” 하였을 때, “삼촌의 이름으로 주라” 하였으니 딸 개인의 기업이 아버지 형제의 자손 이름 하에 있는 것인데.....그 후에 문제가 생긴 것은 3절에서 “그들이 만일 다른 지파에게로 시집을 간다면(아들은 움직이지 않으니까 상관이 없지만) 딸은 가속에서 떠나게 되므로 그 자신의 기업(몫)을 갖고 갈 수 있는 권리가 있는데, 그렇게 되면 보내는 지파는 기업이 줄고 영입하는 지파는 기업이 늘므로, 공평하게 나눈 기업의 균형이 깨질 뿐 아니라 기업 보존에 문제가 있음”을 건의하게 된 것입니다. 4절에서 “그 기업이 희년이 되면 그 딸이 속한 기업에 첨가 된다”는 뜻은, 희년에 빚을 탕감하고 재산을 정리하게 하신 만큼(레 25:13, 너희가 각기 기업으로 돌아갈지라) 그 당사자의 소유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결국 그 지파의 전체적 기업이 주는 것을 문제 삼은 것입니다.

3)5-10절은 문장이 길어도 뜻은 간단합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자기 지파의 기업을 보존하기를 원하면 “타 지파로 시집가지 말고 자기 지파 안에서 혼인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시집도 갈 수 있고 기업도 보존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해석자는 이 경우를 들어서 성도는 성도와 결혼해야 한다는 교훈으로 받는 경우가 있으나 이 경우는 어디까지나 기업 보존의 차원으로 보셔야 할 것입니다. 성도의 신앙적 혼인은 “이방족과의 혼인을 금한 말씀”과 “주 안에서 하라”는 말씀에 의존합니다(신 7:3, 고전 7:39). 그리하여 10-12절에서 “그 딸들이 그렇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민수기는 “여리고 맞은 편 요단가 모압 평지”에서 있었던 일까지의 역사가 기록된 것입니다. 선민의 나그네 생활, 하나님의 통치 섭리를 주밀하게 깨달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