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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강론

저자 지영근 목사

목 차


 

열왕기하 강론

제1과 아하시야의 죄와 죽음 (왕하 1:1~18) 114 바로가기

제2과 엘리야의 승천 과정 (왕하 2:1~11) 117 바로가기

제3과 엘리사의 사역 시작 (왕하 2:12~25) 120 바로가기

제4과 모압과의 전쟁 (왕하 3:1~27) 123 바로가기

제5과 두 여인의 청원 (왕하 4:1~17) 127 바로가기

제6과 세 종류의 이적 (왕하 4:18~44) 130 바로가기

제7과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침 (왕하 5:1~14) 133 바로가기

제8과 나아만의 변화와 게하시 (왕하 5:15~27) 136 바로가기

제9과 도끼를 건짐 (왕하 6:1~7) 138 바로가기

제10과 아람의 침략을 방어함 (왕하 6:8~33) 140 바로가기

제11과 기근을 해결함 (왕하 7:1~20) 143 바로가기

제12과 수넴 여인과 아람의 역사 (왕하 8:1~15) 145 바로가기

제13과 유다 두 왕조의 역사 (왕하 8:16~29) 147 바로가기

제14과 예후를 왕되게 하심 (왕하 9:1~13) 149 바로가기

제15과 예후의 혁명 역사 (1) (왕하 9:14~37) 151 바로가기

제16과 예후의 혁명 역사 (2) (왕하 10:1~36) 153 바로가기

제17과 아달랴와 요아스 (왕하 11:1~21) 156 바로가기

제18과 요아스의 치적(治蹟) (왕하 12:1~21) 159 바로가기

제19과 여호아하스와 요아스의 역사 (왕하 13:1~25) 162 바로가기

제20과 아마샤와 여로보암(2세) (왕하 14:1~29) 165 바로가기

제21과 두 왕과 여섯 왕의 역사 (왕하 15:1~38) 168 바로가기

제22과 유다왕 아하스 (왕하 16:1~20) 171 바로가기

제23과 이스라엘의 멸망과 죄 (왕하 17:1~20) 174 바로가기

제24과 망한 지역의 형편 (왕하 17:21~41) 176 바로가기

제25과 히스기야의 형통과 문제 (왕하 18:1~17) 178 바로가기

제26과 랍사게의 회유책 (왕하 18:18~37) 180 바로가기

제27과 난관극복의 과정 (1) (왕하 19:1~19) 182 바로가기

제28과 난관극복의 과정 (2) (왕하 19:20~37) 184 바로가기

제29과 히스기야왕의 남은 역사 (왕하 20:1~21) 187 바로가기

제30과 므낫세왕과 아몬왕 (왕하 21:1~26) 190 바로가기

제31과 요시야왕의 초기 역사 (왕하 22:1~20) 193 바로가기

제32과 신앙궐기와 정화사역 (왕하 23:1~20) 195 바로가기

제33과 요시야왕과 두 아들 (왕하 23:21~37) 198 바로가기

제34과 여호야김과 여호야긴의 역사 (왕하 24:1~20) 200 바로가기

제35과 선민국가의 종말 (왕하 25:1~30) 203 바로가기


열왕기하 설교보충

설교보충 1. 엘리사의 받은 은혜 (왕하 2:7~14) 206 바로가기

설교보충 2. 엘리사가 행한 이적 (왕하 2:8~14) 208 바로가기

설교보충 3. 여리고의 물을 고치심 (왕하 2:19~22) 210 바로가기

설교보충 4. 고쳐야 할 세상 (왕하 2:19~22) 212 바로가기

설교보충 5. 빚에 대한 말씀 (왕하 4:1~7) 214 바로가기

설교보충 6. 문제와 해결 (왕하 4:1~7, 28~31) 216 바로가기

설교보충 7. 수넴 여인의 미덕 (왕하 4:8~17) 218 바로가기

설교보충 8. 맹세와 은혜 (왕하 4:28~31) 220 바로가기

설교보충 9. 두 가지 은총 (왕하 5:1) 222 바로가기

설교보충 10. 나아만이 받은 은혜 (왕하 5:1~19) 224 바로가기

설교보충 11. 게하시의 불행 (왕하 5:20~27) 226 바로가기

설교보충 12. 위기 중의 은혜 (왕하 6:24~33) 228 바로가기

설교보충 13. 유다왕 요아스 (왕하 12:17~21) 230 바로가기

설교보충 14. 히스기야에 대한 통치 (왕하 18:1~8, 20:1~7) 232 바로가기

설교보충 15. 요시야왕의 말씀 발견 (왕하 22:1~13) 234 바로가기

 

열왕기하 강론

제 1 과 아하시야의 죄와 죽음 (왕하 1:1~18) 목록으로


성도가 성경을 배우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 강론을 읽으시는 분이 초신자이면 먼저 제가 쓴 기독교 신앙백과 546p에 수록된 열왕기상하의 개론을 읽으십시오. 그 개론에 나타난 연대는 약간씩 차이된 점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윗의 재위 연수가 40년이지만 그중 7년 반은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만 상대로 왕노릇을 하였기 때문에 사울왕의 40년 기간에 포함됩니다(삼하 2:11, 5:5). 그것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은채 계산하였기 때문에 유다왕조의 연대는 다윗부터 8년을 가산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북 양국의 왕조가 바뀔 때마다 1년이 더 되면 2년으로 또는 1년이 못 되도 1년으로 계산하므로 상당기간 차이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이 지면을 통하여 말씀드립니다. 본문 17절을 설명함에 있어서도 차이나는 부분이 있는데(왕하 3:1) 그것도 전왕이 죽은 때와(섭정기간을 보낸 후) 대관식을 가진 때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게 됩니다. 본문의 내용을 분석하면 ① 1~2절은 “모압의 배반과 아하시야의 중상”이요, ② 3~8절은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감”이며, ③ 9~16절은 “엘리야의 책망과 예언”이고, ④ 17~18절은 “아하시야의 죽음”입니다. 따라서 전체의 제목을 “아하시야의 죄와 죽음”으로 정하였습니다.

1. 모압의 배반과 아하시야의 중상(1~2절)

1) 1절에서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아합의 죽음은 왕상 22:34~38에 기록되었고, 모압은 사해바다 동편지역으로 놋의 후손이며(창 19:30~37), 선민이 출애굽할 때 길을 열어주지 않았고(신 23:4~6), 모세가 그 지역을 점령하여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에게 분정하였으며(민 32:1~5, 34, 수 13:15~38), 다윗왕 때 우호관계를 갖다가(삼상 22:3~4) 그 후에 다윗왕에게 조공을 바쳤는데(삼하 8:1, 12) 솔로몬 타락 이후부터 선민국의 위상은 약해졌고(왕상 11:14, 26, 15:16) 분국 후에 모압은 북왕국을 멀리하다가 아하시야왕 때에 아주 배반한 것입니다.

2) 2절에서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었다” 하였으니, 이것이 흔히 인간들에게 있을 수 있는 실수이고 재앙이지만 성도는 이런 일들을 당할 때 하나님의 섭리적 통치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왕상 22:20을 보시면 “하나님이 아합을 죽이기로 작정하신 후 아합이 전쟁을 선택하였고 죽지 않기 위하여 변신하고 갑옷을 입었지만 적의 우연히 쏜 화살이 갑옷 솔기에 맞아 죽은 것”을 참고하십시오. 하나님이 지켜주지 아니하시면 화를 당하게 되어 있는 만큼 늘 조심하고 기도하셔야 할 것입니다(시 121:1~8, 139:1~3).

3) 그런데 문제는 “사자를 보내며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찾아가서 이 병(난간에서 떨어져 상처받은 것)이 낫겠는지를 물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에그론은 블레셋 지역 북구 도성으로 헤브론의 서북쪽 30㎞쯤에 있고, 가드, 아스돗, 아스글론, 가사와 함께 5대 도성에 속합니다. 바알세붑은 파리의 왕이란 뜻으로 그 지역 사람들이 파리의 피해를 막기 위하여 섬기는 신으로 사료되며 바알세불(귀신의 왕, 마 10:25)도 같은 맥락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알세붑에게 묻는다”는 뜻은 바알세붑을 섭기는 제사장이나 신접자에게 묻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아하시야나 그 시대의 방백들이 창조자 여호와 하나님을 멀리하였고, 아주 잊어버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설교문 “아하시야의 불행” 참조).

2.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감(3~8절)

1) 3~4절에서 이때에 아하시야의 사자들은 바알세붑을 만나러 가는 중이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엘리야가 사마리아왕의 사자를 만나 저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하나님의 사자)이 없어서 에그론(이방인)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그러므로…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전하라 하셨고,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하시므로 그대로 이행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주 버리신 백성이 아니면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여쭈어야 함은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멀리한 것은 불신앙과 무지로 비롯된 잘못이지만 무지 그 자체를 야기시킨 것도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전승시키지 못한 죄일 것입니다(신 6:6~7, 수 4:24).

2) 5~6절에서 사자들은 그 길로 다시 돌아가서 왕에게 사실대로 고하였고, 7~8절에서 왕은 말한 선지자의 신분을 알기 위하여 그 사람의 모양을 물은 후 “털이 많고(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었다” 한즉 “그는 디셉 사람 엘라야라”고 짐작을 한 것입니다. “털이 많다”는 뜻과 하단 관주에 “털옷을 입었다”는 뜻은 차이가 있는데, 이는 원문의 “바알세알”(머릿털의 왕)을 적당히 설명한 내용입니다. “머릿털의 왕”을 털이 많은 사람으로 번역한 것은 70인역이요, 또 이 용어를 털옷을 입은 사람으로 이해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공동번역은 “가죽으로 아랫도리를 가리고 몸에는 털옷을 걸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세례요한의 모습을 연상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슥 13:4, 마 3:4). 여기에서 원문에 가까운 번역도 중요하지만 아하시야가 그 말을 한 사람을 엘라야로 알아본 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그 이유는 확실한 계시(진리)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3. 엘리야의 책망과 예언(9~16절)

1) 9절에서 왕이 50부장과 50인(출 18:21)을 보내어 엘리야를 불러오게 한즉 그들이 산꼭대기에 앉은 엘리야를 보고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이여 내려오라” 하였으니, 이 말은 명령적 언사로서 “모시러온 것이 아닌 붙잡으러 온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15절에서 엘리야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함께 내려가라”는 말씀이 있고, 또 하나님의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10절에서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너와 너의 50인을 사를 것이라” 하여 그대로 되어 그들의 불신앙과 포악을 입증한 것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사람은 불이 내려오는 일이 아니라도 정의의 빛으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마 5:14).

2) 11절에서 두 번째 같은 방법으로 보냈고, 이때도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속히 내려오라고 합니다” 하였는데, 12절에서 11절과 똑같은 방법으로 불살음을 당한 것입니다. 어쩌보면 50부장과 50인이 희생된 것같지만 그들은 세 번째 온 사람들처럼 겸손하게 청하지 않은 차이를 충분히 구별할 수 있습니다.

3) 세 번째 사람들은 보내온 형편은 같았으나 그들은 13절에서 “엘리야 앞에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컨대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하나님의 백성을 뜻함)인 이 50인의 생명을 귀히 보소서 (전일에는)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50부장들과 그 50인들을 살랐거니와 나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하고 깊이 엎드려 간구를 한 것입니다. 이때에 15절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두려워말고 함께 내려가라” 하셔서 저와 함께 내려가서 왕을 만났고 엘리야 선지자는 처음에 말씀을 받은 대로 3, 4절과 같은 내용으로 증언한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사역자를 무시한 죄는 벌을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4. 아하시야의 죽음(17~18절)

17절에서 엘리야의 예언대로 아하시야는 죽었고, 저가 아들이 없으므로 (형제 중)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이 시기에 유다왕은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 제 2년이라고 하였습니다(그런데 왕하 3:1에서는 여호사밧 18년이라 하므로 9년을 소급하여 기록되었으니 이는 아하시야의 동생 여호람이 어린 나이에 9년간 섭정한 것을 뜻할 것입니다). 북왕국 아합왕의 아들 여호람은 요람으로도 기록되었고(왕하 8:25~28), 18절에서 “아하시야의 남은 사적은 모두 이스라엘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성도들은 하나님을 잊고 살거나 의식하지 않는 태도,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거나 다른 신을 의지하는 태도가 얼마나 큰 죄인지를 아셔야 할 것입니다.

제 2 과 엘리야의 승천 과정 (왕하 2:1~11) 목록으로


2장 전체의 제목을 정한다면 “엘리야의 승천 전후 역사”라고 하면 좋을 것입니다. 1~12절은 “승천 전의 역사”이고, 12~25절은 “승천 후의 역사”입니다. 내용이 짧지 않으므로 두 과목으로 나누어 살피겠습니다. 1~11절의 말씀만으로 제목을 정한다면 “엘리야의 승천 과정”이라고 할 수 있고, 대지를 나누면 ① 1~3절은 “길갈에서 벧엘로 감”이고, ② 4~5절은 “벧엘에서 여리고로 감”이며, ③ 6~8절은 “여리고에서 요단을 건넘”이고, ④ 9~11절은 “엘리야의 승천”입니다.

1. 길갈에서 벧엘로 감(1~3절)

1) 1절에서 “하나님이 회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에(하나님의 보좌 있는 곳, 영적 천국세계)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로 더불어 길갈(성읍에서 밖으로)에서 나가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왕상 19:21에서 수종자로 엘리야 따르기를 시작하였고, 그때부터 겉옷을 물려받은(왕상 19:19) 후계자로 연수받는 과정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때까지 상당기간 수종자요, 연수생으로 엘리야를 따랐을 것이고, 때가 되매 하나님은 엘리야를 에녹처럼(창 5:24) 하늘로 승천하게 하실 계획을 나타내셨습니다. 이 계획을 사실대로(어떻게 승천시키신다는 것) 계시하신 말씀은 없으나, 3절에서 벧엘에 있는 선지생도들이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하늘)로 취하실 것을 압니까?” 하였을 때, 엘리사가 “나도 안다”한 것을 보면 엘리야의 승천계획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도록 계시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중대한 일을 그의 선지자들에게 미리 알리시는 섭리가 있습니다(창 18:17, 암 2:7). 이 사실의 전개 과정을 처음 체험하는 사람들로서는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므로 마지막 시점까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 일은 에녹에게도 나타난 일이지만 어찌 구체적 절차를 알 수 있겠습니까?

2) 2절에서 두 사람이 길갈(이곳은 엘리사의 고향인 아벨므홀라에서 남쪽으로 50㎞쯤이고, 요단강 서편 7㎞쯤이며, 7시 방향 10㎞쯤에 여리고가 있음, 수 4:19~30, 5:3, 삼상 7:16)에서 나갈 때,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여기 머물라 하나님이 나를 벧엘로 보내신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머물라”는 뜻은 하나님이 나(엘리야)를 벧엘(창 12:8, 28:19, 35:1~3)에 가서 사역하게 하시는 만큼 너는 이곳(길길)에 머물러 독립적으로 사역을 함이 좋겠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절대적 명령이 아닌 사역 장소를 지정하여 권고한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도 “벧엘, 길갈, 미스바로 순회하며 사역한 기록”이 있으니까요(삼상 7:16). 그러나 엘리사는 독립적 사역을 사양하고 “스승을 더 따르고 끝까지 따르면서 더 배우고 더 많은 은혜를 받을 결심”으로 하나님께 맹세하고 끝까지 따를 것을 나타낸즉 엘리사가 그대로 동행하게 된 것입니다.

3) 그리하여 벧엘(길갈에서 10시 방향 22㎞쯤 됨)에 간즉 벧엘의 선지생도들이 두 선지자(두 스승)를 맞이 하였고, 엘리사에게 “엘리야의 승천 계시를 아십니까?” 하였을 때,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엘리야의 승천 계시는 윤곽적(피상적)으로나마 짐작하도록 나타내 주신 것을 알 수 있는데 왜 “너희는 잠잠하라”고 하셨을까요? 이것은 그들이 받은 계시(엘리야 승천 문제)가 성취되는 시기와 과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왈가왈부하지 못하게 한 뜻으로 사료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확실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하는 것이 혼란을 피하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때에 엘리야는 벧엘에서 상당기간 사역을 하였을 것입니다.

2. 벧엘에서 여리고로 감(4~5절)

4절 말씀은 “하나님이 엘리야를 벧엘에서의 사역에서 사명을 다한 만큼 다음 지역인 여리고로 가게 하신 말씀”이고, 이때에도 엘리사를 그곳에 머물러 사역하도록 권했으나 엘리사가 순종하지 않고 끝까지 따른 것은 역시 그의 섬기는 사명과 연수 사명에 집중한 뜻으로 2절의 설명과 같은 것이며, 5절에서 “여리고에 있는 선지생도들이 질문한 내용”도 3절의 내용과 같은 뜻입니다. 벧엘에서 여리고는 5시 방향 22㎞쯤 됩니다. 이 부분의 말씀은 “엘리야와 엘리사가 순회지역을 한곳 더 거쳤다”는 뜻이요, 떠날 때마다 엘리사를 “독립적으로 일하라” 하였지만 엘리사는 엘리야의 종말까지 수종들려고 한 것입니다.

3. 여리고에서 요단을 건넘(6~8절)

1) 6절에서 하나님이 엘리야를 “요단(요단강 동편의 지역)으로 가라” 하셨으므로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여기(여리고) 머물라” 하였지만 엘리사는 처음부터 하나님께 맹세한 바이므로 “이에 두 사람이 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리고에서 요단까지는 동쪽으로 10㎞쯤 됩니다. 7절에서는 엘리야와 엘리사가 여리고에서 요단쪽으로 갈 때 여리고에 있는 선지생도들 50인이 배웅 나와서 “두 사람이 가는 것을 멀리 서서 바라보았다” 하였고,

2) 8절에서 요단강에 도착한 엘리야가 “겉옷(왕상 19:19에서 엘리사에게 던졌던 옷을 돌려받은 것으로 사료됨)을 취하여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저리 갈라져서 두 사람이 육지 위로 건너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멀리서 보고 증언한 사람들이 여리고의 선지생도들이었을 것입니다. “겉옷을 취하여 말아 물을 쳤다”는 뜻은 겉옷을 벗어서 지팡이처럼 말아 물에 힘이 가해지도록 친 것으로 상상할 수 있습니다. 방법이야 어찌되었든 하나님의 이적으로 물이 갈라진 것입니다. 성경에 물을 가르고 땅바닥으로 건넌 사례가 이 경우까지 세 번입니다. 한 번은 홍해에서였고, 다음에 두 번은 요단강에서였는데, 각각 다른 특징이 나타난 줄 압니다. 연구해 보십시오.

4. 엘리야의 승천(9~11절)

1) 두 사람이 요단강을 건넌 후에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기를 9절에서 “하나님이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종드는 사명과 아울러 특별한 은사를 전수받기를 소원하면서 따른 줄 압니다. 그래서 그 사실을 아는 엘리야가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한 것인데, 이때에 엘리사는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영감이 무엇입니까? 이것을 총괄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까운 상태”라 할 것입니다. 엘리야가 영감있는 사역자로 나타난 것은 계시가 주어진 것과 제물응답, 또는 이적 등이었습니다. 따라서 엘리야가 받았던 계시, 응답, 이적 등의 은사를 갑절 구한 것입니다. 엘리야가 크게 쓰임을 받으면서도 피곤할 때가 있었고(왕상 19:4) 사역의 범위가 커지는 만큼 갑절의 영감을 필요로 하였을 것입니다.

2) 10절에서 엘리야는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한다” 하였으니, 은사는 하나님의 주권에 의하여 주시는 것인 만큼(고전 12:7, 11) 엘리야가 중보기도를 한다 하여도 하나님의 섭리에 달린 것이므로 그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않으리라” 하였으니, 여기의 “취하는 일”은 엘리야의 승천이고, 승천은 곧 육체적 변화와 동시에 승천하는 일이므로(마 17:2, 고후 3:18, 살전 4:17) 만일 엘리사가 이 일을 본다면 이는 갑절의 영감에 해당할 것이므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런 중에 엘리사는 그 신비한 광경을 보았은즉 갑절의 영감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 할 것입니다.

3) 11절에서 두 사람이 말할 때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왕하 6:17, 천사의 신비한 역할)이 나타나 두 사람을 격(가름)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한 것입니다. 이때에 현실적 육체가 부활체 같은 영체로 변화되어 승천하였을 것입니다. 에녹이 그러하였고(창 5:24) 예수님도 부활 후에 구름을 타고 승천하셨으니(행 1:9) 엘리야의 이 사건도 에녹의 경우처럼 부활과 승천의 예고적 계시가 되는 것입니다.

제 3 과 엘리사의 사역 시작 (왕하 2:12~25) 목록으로


본문은 엘리야 승천직후에 엘리사에게서 나타난 능력으로 곧 “엘리사의 사역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지를 나누면 ① 12~14절은 “처음 나타난 능력”이고, ② 15~18절은 “엘리야를 찾지 못함”이며, ③ 19~22절은 “나쁜 물을 고침”이요, ④ 23~25절은 “조롱하는 아이들을 죽임”입니다.

1. 처음 나타난 능력(12~14절)

1) 12절은 엘리사가 회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엘리야를 보고 소리 지르기를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할 때 엘리야는 “다시 보이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아버지라” 부른 것은 신앙과 사명을 지도한 아버지란 뜻입니다. 이는 베드로가 마가를(벧전 5:13), 또 바울사도가 디모데를 “아들이라”고 한 것과 같은 뜻입니다(딤전 1:18). 또 “엘리야를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 한 것은 엘리야의 역할로 하나님이 나라의 대적을 물리쳐 주신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니 왕상 20:13과 21:28~29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역할은 엘리사에게도 계승되었습니다(왕하 13:14). 그 다음에 엘리사는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슬픔과 유감의 표현입니다. 야곱이 요셉을 잃었을 때(창 37:29), 갈렙이 참담한 말을 들었을 때(민 14:6), 욥이 고난스러울 때(욥 1:20), 겉옷을 찢었습니다. 아버지같은 스승을 잃었은즉 비통하였을 것입니다. 많은 설교자들이 “자기의 옷을 찢은 사실”을 “자기부정의 의미(마 16:14)”로도 해석합니다(욜 2:13).

2) 13절에서 엘리사는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갔고, 요단 언덕(공동번역은 요단 강가로 번역함)으로 돌아와서 14절에서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으로 물을 치며 “엘리야의 하나님은 어디 계시니이까?” 한즉 물이 이리저리 갈라져서 엘리사가 그 강을 건넜다 하였으니, 이는 8절에 나타난 엘리야의 이적이 재연된 것으로 “엘리야의 하나님이 엘리사와 함께 계신 것”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2. 엘리야를 찾지 못함(15~18절)

1) 15절에서 엘리사가 여리고에 왔을 때 여리고 맞은편에서 모든 광경을 본 선지생도들이 저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영감(엘리야와 같은 성격으로 능력을 나타내는 일)이 엘리사 위에도 머물렀다” 하고 가서 저를 영접하고 땅에 엎드렸으니 이는 경의의 뜻을 표한 것입니다. 영감의 뜻은 보통 계시를 받는 과정에 나타나는 성령님의 감동을 의미하지만(벧후 1:21) 본문에서는 선배선지자의 사역의 능력 전부를 일컬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16절에서 선지생도들은 엘리사에게 청하기를 “당신의 종들(선지생도들)에게 용사(힘 있는 사람) 50인이 있은즉 저희로 당신의 주(엘리야)를 찾게 하십시오. 염려컨대 하나님의 신이 저를 들어 어느 산이나 골짜기에 던지셨는지도 모릅니다” 하였으나, 엘리사는 “보내지 말라” 하였는데, 17절에서 “저(엘리사)로 부끄러워 할 만큼 강청하매 (결국) 보내라” 하였고, 50인이 3일을 찾되 찾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엘리사가 부끄러워 할 만큼 강청한 뜻”은 그 생도들이 “엘리야가 하늘로 영영히 올라갔다”고 믿었으면 청하지 않았을 것인데 그렇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겼을 것으로 예측하였고, 엘리사는 완전한 승천을 믿었으므로 “가지 말라”한 것인데 그것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스승을 버리는 태도가 되어 부끄럽게 된즉 “요청대로 해보라”고 한 것입니다.

3) 18절은 50용사가 허탈하게 돌아왔을 때 “내가 가지 말라고 이른 이유를 알겠느냐?” 하는 뜻으로 깨우친 내용이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의 차이는 행동의 차이를 나타냅니다. 부활승천을 믿는 것과 안 믿는 것도 그와 같은 생활의 차이를 나타낼 것입니다.

3. 나쁜 물을 고침(19~22절)

1) 19절에서 “그 성(여리고)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그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지형의 경치가 좋다는 뜻) 물이 좋지 못하여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는 애로사항을 말하였으니, 이것은 엘리사가 신통한 능력을 나타내어 자연계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란 뜻이고, 또 “물이 나쁘다”는 뜻은 담수가 아닌 다른 불순한 요소가 포함되어 농작물에 유익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2) 20~21절에서 이 말을 들은 엘리사는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오라 하여 그것을 물근원(샘이 나오는 곳)에 던지면서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물을 고쳤은즉 다시는 농작물에 해가 없을 것이라” 한즉, 22절에서 “그 물이 그의 말처럼 고쳐져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불완전한 요소를 고치시는 분입니다. 고치실 때 선지자의 사역을 통하여 고치심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엘리사의 이런 사역은 엘리야보다 갑절의 영감을 받은 증거라고도 할 수 있고, 또 모세가 마라의 쓴 물을 고친 뜻과 같다 할 것입니다(출 15:23~25). “물을 고치심”이란 제목의 설교를 참고하십시오.

4. 조롱하는 아이들을 죽임(23~25절)

1) 23절에서 “엘리사는 거기서(여리고) 벧엘로 올라갔는데 그곳에서 행할 때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서 대머리여 대머리여 하면서 저를 조롱하였다” 하였고, 24절에서 “엘리사가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한즉 즉시 수풀에서 암콤 두 마리가 나와 아이들 중 42명을 찢었다”고 하였습니다. 벧엘의 젊은 아이들이 함부로 사람(선지자)을 놀리고 비방한 것은 큰 죄악입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인즉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저들을 벌하십시오” 하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이때에 하나님이 곰을 동원하여 그들을 찢게 하신 것입니다. 왕상 13:36에서는 불순종한 선지자를 사자로 하여금 찢어 죽이게 하신 사실도 있었으니, 하나님은 자기의 사람(선지자)을 보호하시는 분이시고, 또 자기의 명을 거역하거나 자기의 사역자를 해하는 자에 대하여서도 응징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저희들이 여기에서 깨달으셔야 할 것은 하나님과 엘리사의 관계가 얼마나 가까웠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희들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민감하게 가까워지도록 은혜를 구하셔야 할 것입니다(약 4:8).

2) 25절에서 엘리사는 벧엘에서 갈멜산으로 갔다가 또 사마리아로 돌아왔으니, 요단에서 엘리야를 떠나보냈고, 엘리야와 동행하였던 곳인 여리고와 벧엘을 거쳐서 또 엘리야가 사역한 갈멜산과 사마리아를 답사한 것입니다. 이것은 스승 엘리야가 사역한 곳을 순회답사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붙들고 쓰심에 있어서 특별한 은사와 보호적 권위가 따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 4 과 모압과의 전쟁 (왕하 3:1~27) 목록으로


본문 전체의 제목은 “모압과의 전쟁”입니다. 대지를 구분하면 ① 1~3절은 “여호람(북)의 치적”이고, ② 4~10절은 “모압 정복을 위한 출전”이며, ③ 11~14절은 “엘리사에게 나아감”이요, ④ 15~20절은 “엘리사의 예언”이고, ⑤ 21~27절은 “전쟁의 상황과 결과”입니다.

1. 여호람(북왕국)의 치적(1~3절)

1) 1절에서 “유다왕 여호사밧 18년에 (북이스라엘에는)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되었고, 그는 12년간 치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사밧 18년이면 주전 861년쯤인데 왕하 1:17에서는 왕된 때를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 2년이라” 하므로 9년(여호사밧 왕위 연수는 25년임) 후로 나타냈은즉 이는 그 기간을 섭정기간으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아합왕의 아들 아하시야가 죽었을 때 그는 아들이 없었고, 그의 동생 여호람은 어리므로 그때 섭정왕이 되었다가 9년 후에 정식 왕이 된 것입니다.

2) 2~3절은 여호람왕의 치적으로 그의 선악정도를 평한 말씀으로 “저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 부모(아합과 이세벨)와 같이(최악하게) 하지는 않았으니 이는 저가 그 아비의 만든 바알의 주상(바알신상)을 제하였으나 여러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왕상 12:27~33에 나타난 자율종교를 뜻함)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않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여러보암의 자율종교를 따른 것은 여전하였고, 다만 이방신상인 “바알의 주상만 없앴다”는 뜻이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율법적 참신성에 대하여는 여전히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이는 조상과 왕실 전통에 얽매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정화하고 개혁하려면 전체적으로 시행하여야 하고 전체적으로 시행하려면 여리고의 쓴 물을 고치듯이 근원부터 새로 시작하고 새 그릇에 소금(하나님 말씀)을 담아야 할 것입니다.

2. 모압 정복을 위한 출전(4~10절)

1) 4~5절은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한 내용입니다(1:1). “모압왕 메사와 (그 백성들은) 양을 치기 때문에 새끼양 십만의 털과 수양 십만의 털을 이스라엘왕에게 바쳤다” 하였는데, 이 일은 다윗왕 때부터 있었던 일입니다(삼하 8:2). 그러다가 5절에서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배반을 한 것”입니다. 아합이 죽었을 때 아하시야가 22세에 왕이 되었지만 1년만에 죽었고, 또 여호람이 왕되면서 국권이 약해진 틈을 타서 모압이 배반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2) 6절에서 “여호람왕은 모압을 다시 점령할 계획으로 온 이스라엘의 병력을 점고하였고”, 7절에서 유다왕 여호사밧에게 협력해 줄 것을 통지한즉 여호사밧왕은 아합왕 때에도(아람과의 전쟁을 인하여) 그런 일이 있었던 것처럼(왕상 22:4) 꼭 같은 대답을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이렇게 협력이 잘 된 이유는 여호람과 여호사밧이 처남매부 사이(아합의 딸이 여호사밧의 처임, 왕하 8:18, 대하 18:1, 21:6)이기 때문입니다. 양국이 평화롭게 사는 것은 좋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많은 차이를 갖고 있었습니다.

3) 출전에 앞서 8절에서 여호람왕은 여호사밧에게 “어느 길로 올라가리잇가” 하고 물은즉, 여호사밧은 “에돔 광야길로 가자”고 하였습니다. 사해바다는 그 주위에서 가장 낮은 지역이고, 모압은 사해바다 서북쪽이며, 에돔은 사해바다 남동쪽 지역입니다. 따라서 “올라간다”는 뜻은 낮은 지역에서 표현한 말입니다. 모압을 치되 사해 북쪽에서 사해 동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남쪽에서 북쪽으로 쳐 올라가려고 한 것입니다. 여호사밧이 이 작전을 택한 이유는 에돔이 속국인 만큼(삼하 8:14) 그들의 도움을 받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지리상 여건에 의하여 모압은 북왕국의 속국이었을지라도 에돔은 유다국의 속국이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4) 그리하여 9~10절에서 여호람과 여호사밧, 그리고(여호사밧의 청탁으로 호응한) 에돔왕까지 합력하여 7일을 행군하다가 물이 없게 되자 전쟁의 주모자인 이스라엘왕 여호람이 탄식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지역은 황막한 사막이 많습니다.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는도다” 하고 탄식한 것입니다.

3. 엘리사에게 나아감(11~14절)

1) 11절에서 이때에 여호사밧은 선지자를 찾게 되었고, 엘리사는 북이스라엘쪽에서만 사역을 하였기 때문에 여호사밧은 엘리사를 잘 모를 수도 있었을 것인데, 그때에 이스라엘왕의 신하 중에서 한 사람이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마실 물을 수종든 뜻) 엘리사가 그 지역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게 된 것입니다. 이때에 여호사밧은 12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저에게 있다” 하고 세 왕이 함께 찾아간 것입니다. 13절에서 세 왕이 엘리사를 만났을 때 엘리사는 이스라엘왕 여호람을 대하여 담대히 말하였으니, 곧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 하였으니, 이는 여호람의 부모인 아합왕과 이세벨의 잘못을 책망한 것이고, 따라서 여호람을 인하여서는 말하지 않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때에 여호람은 “그렇지 않다” 하면서 “하나님이 세 왕들을 다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니 (은혜를 힘입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여호람이 아합처럼 완악하지 않은 증표를 나타낸 것입니다.

2) 14절에서 엘리사가 말하기를 “만군이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왕 여호사밧의 낯을 봄이 아니면 당신을 향하거나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선지자의 태도는 하나님의 심정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멀리하는 자와 상관하시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라도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신뢰를 가진 자에게 나타나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이며 선지자를 점쟁이 정도로 알고 이용하는 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그렇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4. 엘리사의 예언(15~20절)

1) 15절에서 엘리사는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을 받기 전에 “거문고를 타게 하라” 하였으니, 이 뜻은 여호람을 책망하면서 격해진 감정을 추스르기 위한 뜻인 듯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감동과 말씀을 받는 상태는 대단히 평온하고 차분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격동된 감정은 성령님의 역사를 훼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리를 증언하거나 받을 때는 고요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2) 16절에서 엘리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기를 “군사들이 주둔한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으니, 이는 17절에서 “너희가 바람과 비를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육축과 짐승이 마실 것이라” 하셨고, 또 18절에서 “이는 오히려 작은 일이며 (더 큰 일은) 하나님이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붙이신다”는 것이며, 19절에서는 “당신들이 (모압의) 모든 견고한 성과 아름다운 성을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 것이라(모압인을 해롭게 하는 뜻)”고 하였습니다.

3) 20절에서 과연 그대로 이루어져서 “아침에 미쳐 소제드릴 때(출 29:41, 아침)에 물이 에돔편(서남쪽)에서 흘러와서 그 땅에 가득하였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는 엘리사의 예언이 있은 날 밤에 에돔쪽에 큰 비를 주셔서 그 물이 흘러 모압땅 가까이 진친 곳 앞까지 물을 채워주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물이 파놓은 도랑에도 채워진 것입니다.

5. 전쟁의 상황과 결과(21~27절)

1) 21절에서 모압인들은 전쟁의 소식을 듣고 갑옷을 입을만한 자로부터 그 이상(장정)까지 다 모여 경계 태세에 들어갔는데 22절에서 아침에 일어나서 이스라엘 군사들이 진친 남서쪽을 바라본즉 햇빛이 도랑의 물을 비춰 맞은편 물이 피처럼 붉어 있음을 보고 23~24절에서 “이는 피라 필연 저 왕들이 싸워 서로 죽인 것인즉 모압 사람들아 이제 노략하러 가자하여 이스라엘 진에 이른즉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을 쳐서 19절의 예언처럼 성취하게 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25절에서 “길하레셋의 돌들은 남겼다” 하였으니, 이 길하레셋은 사해 남단에서 2시 방향으로 25㎞쯤 되는 곳인데 가장 요새화된 지역이라 물맷군이 어찌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25절의 “물맷군”은 적당히 돌을 던지는 사람들이 아니고 기술적으로 큰 돌을 던지기도 하고 석공처럼 성벽을 헐기도 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길하레셋” 성읍이 견고한 뜻은 사 15:1, 16:7, 11, 렘 48:36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2) 26절에서 에돔왕이 전세의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칼 찬 군사 700을 거느리고 (적군을) 충돌하여 에돔왕에게 접근하려 하였으나, 여의치 않자 27절에서 “왕될 맏아들을 성위에서 번제로 드린즉(이방인 제사법에는 사람을 번제로 드리는 관행이 있었다 함, 레 18:21, 20:2~3) 왕자의 죽음을 본 군사들이 다 결사적으로 싸웠을 것이요,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에게 통분함(사기가 꺾인 뜻, 다 이긴 전쟁에서 후퇴하게 된 것)이 임하여 저희가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완전히 이기게 하시려다가 지도록 버려두신 것이 아니고, 19절의 예언만큼 승리하게 하신 것이며, 또 이만큼 은혜를 주신 것은 여호사밧을 보시고 주신 것입니다(13절). 여호람이 무슨 자격으로 국권 회복의 은혜를 받겠습니까?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개개인의 믿음에 따라 대응하시는 것을 알 수 있고, 엘리사가 왕 앞에서도 그 조상의 죄까지 질책한 용기를 배워야 할 것이며, 기상천외한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로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건조한 지역에 물이 고이는 일이나, 아침 햇빛을 인하여 붉게 반사된 물을 피로 착각하는 일이나, 이방인들이 사람을 제물로 바쳐서 사기를 돋우는 일 등은 다 특이한 일인데 그것 때문에 선민이 통분한 일을 당하여 후퇴한 사실 등은 성도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제 5 과 두 여인의 청원 (왕하 4:1~17) 목록으로


이 본문을 읽고 “두 여인의 청원”이란 제목을 정하였습니다. ① 1~7절은 “선지자 생도의 아내의 청원”이고, ② 8~17절은 “수넴 여인의 청원”입니다. 이 청원은 하나님께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 선지자에게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선지생도의 아내의 청원은 “빚 갚는 문제의 해결을 청한 것”으로 그 장소가 명시되어 있지 않고, 수넴 여인의 청원은 “섬김을 받아 달라”는 청원이므로 두 사건이 대조적이라 할 것입니다. 하나는 짐이고, 또 하나는 휴식과 같은 것입니다.

1. 선지자 생도의 아내의 청원(1~7절)

1) 1절에서 선지자 생도(신학생, 신학연수를 하면서 사역하는 사람)의 아내 중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기를 “당신의 종(문하생)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그가 하나님을 경외한 것은 당신도 아시는 줄 아는데 이제 채주가 와서 나의 두 아들을 취하여 종을 삼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선지생도는 죽었고, 그 미망인이 가난에 쪼들리는 상태를 호소한 것입니다. 여기의 “부르짖었다”는 뜻을 공동번역에서는 “호소하였다”로 번역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여러 곳에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 뜻은 “큰 소리로 외치는 기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기도를 시끄럽게 하는 경향에 근거를 두기도 합니다. “부르짖다”는 히브리원문은 28종으로 표기되고, 헬라어로는 5종으로 표기됩니다. 본문의 표기는 “씨아크”인데 이 용어가 창 4:10, 출 5:15, 왕하 8:3에서는 “호소한다”로 번역된 것을 보았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다 하여 너무 과하게 부르짖지 마시고 간절하게 호소하는 기도를 하시라는 뜻으로 말씁드립니다.

2) 2절에서 엘리사는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하였으니, 이는 “내가 당신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하고 연구하는 자세를 나타낸 것입니다(13절). 성도가 교역자를 찾아와서 애로사항을 말했다면 교역자는 적절한 대답을 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방법을 말해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에 타교회에 나간다는 두 부부가 파산지경에서 찾아온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진실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면서 기다리면 하나님이 섭리적으로 나갈 길을 인도하실 것이라”고 권하면서 시 40:1~2과 하나님이 까마귀로 엘리야를 먹이신 사례를 말한 일이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그 성도를 권하는 방책으로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고하라” 하였고, 그 여인은 “한 병의 기름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하였는데, 엘리사가 이 사실을 알려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것은 최후의 은사까지 활용하여 끝까지 노력한 여부를 알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빈 그릇에 은혜를 주십니다. 다시 말하면 아무 것도 없을 때까지 다 쓰고 손을 털어야 한다는 뜻입니다(사 41:17). 그 여인에게 남아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여인 자신과 두 아들과 건강과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과 또 한 병의 기름이었습니다. 한 병의 기름을 계란 한 개로 비유하여 생각해 보십시오. 계란 한 개가 병아리가 되고, 병아리가 닭이 되며, 그 닭이 많은 계란을 낳고, 크게 발전하여 양계 사업자가 되었다면 그가 갖고 있는 남은 은사를 활용하여 성공한 사례가 되겠지요. 어떤 이는 만원을 갖고 나가서 교수가 되어온 사례를 TV에서 방영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엘리사는 그런 방법을 생각한 것이고, 그렇게 시행할 때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이 나타날 것을 확신한 것입니다.

3) 그리하여 엘리사는 3~4절에서 “이웃에 가서 빈 그릇을 많이 빌려오고 네 두 아들과 함께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한 병의 기름을 모든 그릇에 부어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하였는데, 5~6절에서 “그대로 시행한 중 그릇이 있는데 까지 기름이 계속 부어지다가 그릇이 다한즉 기름이 그쳤다”고 하였습니다. 7절에서 이 사실을 엘리사에게 고한즉 엘리사가 “그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는 것으로 생활을 하라” 하여 부채와 생활문제를 해결해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선지자에게 묻고 순종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고 남은 기름을 부은 것은 최후의 은사를 활용한 노력이며, 그 다음에 기름이 계속 나온 것은 하나님의 특별 섭리의 은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드리면 ① 빈 그릇은 은혜를 받을 만한 믿음, 빈 마음 같은 것이요(마 5:3), ② 그것을 이웃으로부터 빌려온 뜻은 이웃의 자문(선지자의 조언같은 것)이나 도움받는 것을 뜻하고, ③ 여인과 그 아들들이 함께 한 것은 가족의 협동이며, ④ 집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시행한 것은 하나님이 그 개인, 그 가정, 또는 그 단체만을 특별히 상대해 주시는 뜻이고, ⑤ 그릇에 기름을 부은 것은 남은 은사를 최후까지 활용하는 노력이요, ⑥ 기름이 계속 부어진 이적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적 은혜로 형통하는 축복이며, ⑦ 차는 대로 옮겨 놓은 것은 은사 활용을 편의롭게 확장시키는 것이요, ⑧ 그릇이 다한즉 그친 것은 믿음의 그릇대로 주시는 은혜의 한계를 뜻하며, ⑨ 그것을 고한 것은 하나님께 고하고 감사하는 태도요, ⑩ 팔아 빚을 갚고 생활한 것은 결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은혜를 뜻한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사건이 사람의 노력에 비할 때 이적이 큰 것은 하나님이 엘리사를 쓰시는 섭리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요, 모든 성도가 역경을 돌파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는 절차로서의 교훈을 주신 줄로 믿으셔야 할 것입니다.

2. 수넴 여인의 청원(8~17절)

1) 8절에서 엘리사가 수넴(호미곳, 갈멜산에 4시 방향 42㎞쯤)에 이르렀을 때에 한 귀한(공동번역은 부유한으로 번역하였음) 여인이 엘리사에게 음식접대를 간권(대접받아주기를 간청한 뜻)하여 엘리사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거절하지 않고) 대접을 받았는데, 9~10절에서 그 여인은 남편에게 엘리사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임을 말하고 합의하여 엘리사에게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침상, 책상, 의자, 촛대를 시설하여 제공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상의 내용은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선지자 사역의 순회차 집을 떠난 선지자(수종자 포함)에게 음식접대와 아담한 휴식의 공간을 제공한 것은 꼭 필요한 것을 봉사한 것이고, 오늘날도 말씀사역자에게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온도에 알맞는 방, 침상, 책상, 의자, 조명이 바로 그것입니다. 마음은 여인이 가졌고, 시행은 부부가 합의하였은즉 그것도 잘한 것입니다.

2) 11절에서 엘리사는 그 방에 누워 휴식을 취하면서 봉사하는 여인에게 축복할 필요를 느껴서 12~13절에서 “사환 게하시를 시켜 그 여인을 불러 그에게 주밀하게 봉사하는 것을 치하하고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2절) 왕이나 군대장관에게 구할 것(부탁할 일)이 있느냐”고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 여인이 사환에게 대답하기를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 하므로 구할 것이 없음을 나타내게 된 것입니다. “내 백성 중에 거한다”는 뜻은 백성들과 같이 일반적으로 살기 때문에 특별하게 부탁할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 여인은 백성들과 함께 평범하게 어울려 사는 것으로 만족하는 여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좀 부족하거나 기복심으로 봉사한 사람같으면 그 기회에 큰 것을 구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 여인은 기복에 얽매인 점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3) 이 사실을 알게 된 엘리사가 14절에서 “그 여인을 위하여 무엇을 할꼬” 하고 구상할 때 사환 게하시가 “여인은 아들이 없고 남편은 늙었다” 하였으니, 이는 “그 집에 아들이 필요할 것이라”고 알린 것입니다. 그런즉 15~16절에서 엘리사가 그 여인을 다시 불러오게 하여 “돐이 되면 아들을 안을 것이라(이것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믿음으로 축복한 뜻)” 한즉, 그 여인은 “아닙니다(그런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의 뜻)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소서” 하였으니, 작은 봉사를 댓가로 큰 은혜나 이적을 바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17절에서 “그 사실대로 성취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저희들은 이 말씀에서 여인의 순수한 봉사와 기복심 없는 마음과 평범한 생활에 만족하는 생활을 배울 수 있고, 또 하나님은 선행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 여인이 아들을 낳은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기적일 수도 있고, 일반은총에 의함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 6 과 세 종류의 이적 (왕하 4:18~44) 목록으로


본문 ① 18~37절은 “죽은 아이를 살림”이고, ② 38~41절은 “음식의 독을 제거함”이며, ③ 42~44절은 “보리떡과 채소의 이적”입니다. 따라서 엘리사의 연속적 이적의 역사가 기록된 것입니다.

1. 죽은 아이를 살림(18~37절)

1) 18~20절에서 “수넴 여인의 아들이 자라매 그가 곡식을 베는 그 아비에게 나갔다가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므로 사환을 시켜 그 어미에게로 데려갔는데 낮까지 어미 무릎에 앉았다가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병명은 고사하고 의술이 없던 시대인 만큼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하나님은 그 사실을 다 섭리하셨으므로 알고 계실 것입니다(삼상 2:6). 선지자의 축복으로 주신 아들인즉 곧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왜 그를 죽게 하셨는지는 결과로 나타난 바가 있지만 인간은 다 알 수 없습니다.

2) 21~23절에서 여인은 그 죽은 아이를 엘리사가 사용하는 침상에 두고 문을 닫고 나와서 그 남편에게 한 사환과 한 나귀를 청하여 “하나님의 사람에게 다녀오겠다” 한즉 초하루 안식일 같은 절기(민 10:10, 출 20:8~11)도 아닌데 왜 가느냐? 하였지만 평안이라(우환과 아이의 죽음을 말하지 않은 뜻) 하고 나서게 된 것입니다. 남편에게 아이의 죽음을 알리지 않은 것을 보면 그 남편을 놀라게 하지 않으려 하였고, 또 하나님의 사람이 와서 살려줄 것으로 믿었을 것입니다.

3) 24~25절에서 그 여인은 나귀를 타고 사환과 함께 급히 엘리사 선지자가 있는 갈멜산으로 갔으니 수넴에서 갈멜산은 100리 길이었습니다. 엘리사는 수넴 여인이 오는 것을 보고 알았고, 26절에서 게하시를 마중 보내어 안부를 묻게한즉 “자신과 남편과 아이가 다 평안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아이까지 평안하다”한 것은 그 남편에게 말하지 않고 평안하다(23절)한 것인즉 하나님이 엘리사 선지자를 통하여 치유해 주실줄로 믿고 그렇게(별일 아니라는 뜻) 말한 줄 압니다. 옹졸한 사람은 적은 일도 크게 말하지만 대범하고 믿는 데가 있는 사람은 큰 일도 예사로 느낄 수 있습니다.

4) 27절에서 여인은 도착하여(퍽 상기된 모습으로) 엘리야의 발을 안았으니, 이는 간청에 힘을 더하는 태도로 관행상 있는 일입니다(마 18:29, 막 5:22, 눅 8:41, 요 11:32과 비교할 수 있음). 게하시가 만류하려 하자 엘리사는 그에게 괴로운 일이 있는데 하나님이 알려주시지 않았음을 알고 (사정을 들은즉)…, 28절에서 “내가 구하지도 않았고 나를 속이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16절)?” 하였으니, 이는 아이가 죽었음을 간접적으로 나타낸 말입니다. 그 여인은 “아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니 이것도 다시 살 것을 믿는 신념에서 그리한 것일 것입니다.

5) 이때에 엘리사는 29절에서 방책을 명하였으니 “네 허리를 묶고 가는 길에 누구와 말하거나 인사하거나 인사를 받거나 지체하지 말고 속히 가서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중요한 부분, 머리)에 놓으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그 여인이 그대로 순종하였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나 그가 선지자를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니 선지자를 꼭 모시고 가야만 해결될 줄로 믿는 바람에 맹세를 먼저 하고 “선지자의 말을 그대로 순종해야 한다”는 문제를 망각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 8:5~10의 백부장의 신앙과 대조되는 것입니다. 선입견이 순종을 해친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를 꼭 모시고 가기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맹세를 한즉 엘리사는 그의 맹세를 헛되게 할 수 없어서 100리 길을 함께 오게 된 것입니다. 맹세는 중요하고 취소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수고를 하면서 그 맹세를 지켜준 것입니다. 처음 주신 말씀만 순종하였다면 엘리사와 게하시는 수고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관성 있는 순종, 또 무조건적인 순종이 큰 복을 받는 방법입니다.

6) 31절에서 게하시가 먼저 오자마자 엘리사의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아이는 깨지 않았습니다. 명령의 대상이 다르고 선지자의 동행이 없는 조건으로 주신 명령인즉 효력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은혜는 모방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여인이 믿음으로 순종하여 선지자와 동행 없이 그렇게 하였다면 그대로 목적을 성취하였을 것입니다. 그런즉 이제는 다른 방도를 취할 수 밖에 없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32~34절에서 “엘리사가 자기의 침실에 가서 침상 위에 뉘인 죽은 아이를 확인하였고, 문을 닫은 후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아이 위에 입과 눈과 손을 맞추고 엎드린즉(이것은 애정의 표현임)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해지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다시 살려주신 것입니다. 35절에서 “잠시 기다리면서 집안에서 이리저리 다니다가(기다리는 모습을 나타낸 것임) 다시 가서 아이 위에 엎드린즉 아이가 일곱 번을 재채기(몸속의 열이 생겨 찬 기운을 밖으로 배출 시킨 것)하고 눈을 떴다”고 하였습니다. 열이 생기고 눈 뜨는 동안 약간의 기다림이 있었던 것입니다.

7) 36~37절에서 “수넴 여인을 불러 산 아들을 취하게 하였고 그 여인은 엘리사에게 절하고 아이를 안고 나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엘리사를 크게 쓰시고 또 그 여인에게 은혜를 베푸신즉 놀라운 능력, 즉 부활의 능력까지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2. 음식의 독을 제거함(38~41절)

1) 38~39절에서 엘리사가 길갈(요단강 하류 서쪽 갈멜산에서 5시 방향 120㎞쯤)에 계실 때 흉년이 들었고, 선지 생도들이 엘리사 앞에 있으므로 사환 게하시로 하여금 “큰 솥을 걸고 생도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 하였는데, 한 생도가 들에 나가 나물을 캐 오면서 야등덩굴(들오이)을 만나 들오이를 따온 것을 썰어서 국에 보충하였는데(흉년이므로 먹을 만한 것인 줄 알고 확인 없이 넣은 것) 40절에서 생도들이 국을 먹다가 사망의 독(먹을 수 없는 형편)이 있음을 발견하여 먹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2) 41절에서 이때에 엘리사가 “가루(곡식가루 같은 것)를 가져오라 하여 솥에 넣고 퍼서 먹게 한즉 해독(해로운 독)이 없어졌다”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마라에서 쓴 물을 달게 하였고(출 15:5), 엘리사는 또 여리고에서도 나쁜 물을 고친 일이 있었습니다(왕상 2:21). 하나님이 독을 제하시는 능력을 나타내신 것입니다(막 16:18).

3. 보리떡과 채소의 이적(42~44절)

1) 42절에서 한 사람이 바알살리사(Baalshalishah,‘살리사’는 길갈에서 11시 방향으로 11㎞쯤된즉 바알살리사도 그 주위에 있을 것으로 사료됨)에서 (길갈로) 와서 처음 익은 식물인 보리떡 20과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엘리사에게 드렸는데 엘리사가 “그것을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한즉 그 명을 받은 사환이 43절에서 “이것을 어찌 100명에게 베풀 수 있겠습니까?(분량이 모자란다는 뜻)” 한즉 엘리사가 다시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에 먹고 남으리라 하셨은즉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하여 44절에서 “그대로 행하였더니 하나님의 말씀처럼 다 먹고 남았다”고 하였습니다. 그 사환은 선지자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였더라면 더 좋을 뻔 하였습니다. 이 기적은 예수님의 5병2어나 7병2어의 기적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한번은 죽은 아이를 살렸고, 또 한번은 음식의 독을 제하였으며, 또 한번은 적은 음식으로 많은 사람을 먹게 하는 이적을 나타낸 것입니다.

2) 이런 이적이 오늘날 우리시대에도 가능할까요? 물론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그런 이적이 재현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나타내시는 목적이 따로 있기 때문이며(히 2:4), 또 계시가 완성된 후에는 일반 은총으로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요즈음에는 죽을 사람을 더 많이 살립니다. 그리고 해독제 약도 많이 나와 있고, 양식은 더 풍성해지지 않았습니까? 이적과 신앙에 대하여 본인이 집필한 기독교신앙백과 414p에 수록된 “하나님의 기적과 병고침의 이적”을 참고하십시오.

제 7 과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침 (왕하 5:1~14) 목록으로


이 본문의 총 제목은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침”입니다. 두 과목으로 나누어 살피겠습니다. 대지를 나누면 ① 1~7절은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치려함”이고, ② 8~14절은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침”입니다.

1.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치려함(1~7절)

1) 1절에서 “아람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전체의 제목만 이해한다면 나아만이 이방 나라의 군대장관이고, 문둥병자라고만 알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구체적으로 연구하려면 우선 아람 나라를 어느 정도 아셔야 하고, 또 나아만의 주인은 어느 왕인가? 하는 것과 그가 전에 어떻게 아람을 (어느 적으로부터) 구원하였는가? 에 대한 역사를 검토하셔야 할 것이며, 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이방 나라인 아람을 그의 적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나아만을 쓰시고, 그를 나라의 공로자가 되게 하셨다는 점까지 이해하셔야 할 것입니다.

① 성경의 역사(歷史)는 대부분 선민과의 관계를 기록하셨지만 하나님은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기 때문에(롬 3:29) 이방인 개인이나 국가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롬 13:1에서 “모든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는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선민국이나 성도를 특별은총으로 다스리신다면 성도 아닌 자나 이방 나라는 일반은총으로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여기의 특별은총이라 함은 영적 구원 문제를 포함하여 적자(갈 4:31), 권속(엡 2:19)처럼 깊은 관심을 갖고 은혜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일반은총은 영적 은혜를 제외한 보편적 통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② “아람”이란 이름의 근원은 셈의 다섯째 아들 이름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창 10:22), 수천년 후까지 그 이름이 계승된 것인가? 하는 점은 역사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야곱시대에는 그 지역이 하란과 메소포타미아였고(창 24:10, 28:2~7, 12:4), 출애굽시대에는 발람의 고향이었으며(민 23:7), 그 후에 그 영토는 갈릴리 바다 동북쪽과 다메섹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사사시대에 옷니엘에게 격퇴 당하였고(삿 3:8~10), 다윗시대에도 조공을 바쳤는데(삼하 8:5~6) 솔로몬시대에 와서 “르손”이 아람국을 회복하였습니다(왕상 11:23~25). 아람어의 영향이 예수님시대까지 팔레스틴에 미친 것(달리다굼, 막 5:41, 고르반, 막 7:11, 아바, 막 14:36, 골고다, 막 15:22, 알게다마, 행 1:19)과 1차대전 후 아람어를 사용하는 나라가 11개국이라 하니 상당한 역사와 전통을 가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③ 나아만이 군대장관으로 있을 때 왕은 벤하닷이었습니다. 주전 900년경에 해당되는 벤하닷 1세가 있고(왕상 15:18~22, 대하 16:2~3), 주전 877~844에 사역한 벤하닷 2세가 있었다고 하니까 이 시대의 나아만의 주는 벤하닷 2세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왕하 6:24). 그리고 그 당시 이스라엘의 왕은 아하시야가 죽은 다음이기 때문에 여호람왕(9대)때로 보아야 하고, 그때에 남방 유다왕도 이름이 같은 여호람왕(11대)입니다.

④ 나아만이 어느 대적으로부터 자기 나라를 구출하였는가? 하는 것은 성경의 기록이 없으나 주전 859~824년에 재위한 앗수르왕 살만에셀 3세의 괴롭힘에서 공을 세운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나아만은 아람왕 벤하닷 2세에게 국방의 큰 공로자이었던 것입니다.

2) 2절에서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작은 계집아이 하나를 사로잡아 나아만의 아내에게 주어 수종들게 하였다” 하였으니, 이 일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입장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이때에 그 이스라엘 소녀가 주모에게 말하기를 3절에서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더면 그 문둥병을 고치실 것입니다” 하였으니, 여기의 선지자는 엘리사를 의미합니다. 그 딸아이는 아람 사람들에게 포로로 잡힐 무렵에 엘리야나 엘리사의 사역을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그 소녀가 엘리사와의 관계에서 직접 큰 은혜를 받은 바가 없다 하더라도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에 대하여 소문을 듣고 알고 있었다는 점과, 그 사실을 하녀의 위치에서 발설한 것이 적은 일 같지만 하나님의 역사 전개로 보나 나아만의 인생을 바꾸는 일에 있어서 중요한 도화선이 된 것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성도가 전도할 때도 그런 경우로 열매 맺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사 45:23).

3) 4~6절에서 “나아만이 왕에게 이스라엘 소녀의 말을 전한즉 아람왕은 기꺼이 다녀올 것을 승낙하면서 이스라엘왕에게 보내는 서신과 함께 은 10달란트(420㎏)와 금 6000개와 의복 10벌을 선물로 주었다” 하였고, 왕에게 보내는 서신에는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니 이 글이 전달되면 당신은 그의 문둥병을 고쳐주소서” 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왕이 직접 고치는 것이 아니라도 그 책임을 이행해 달라는 뜻으로 청한 것입니다. 7절에서 “이 서신을 받은 왕(여호람)은 자기 옷을 찢으며(몹시 괴로움을 표현한 뜻)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겠느냐? 저가 어찌하여 문둥병자를 나에게 보내어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라 저 왕이 틈(무슨 구실)을 타서 나아 더불어 시비함인 줄 알라”고 하였습니다. 이때까지 여호람왕은 엘리사의 존재와 그가 능력 나타낸 사역을 잘 몰랐거나 깊이 신뢰하지 못한 것입니다.

2.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침(8~14절)

1) 8절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여호람왕의 옷 찢은 소식을 듣고 나아만을 자기에게로 보내면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게 될 것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병을 고칠 것을 자신하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를 주시던 시대에는 상당한 능력을 선지자나 사도에게 맡기신 일이 있었습니다. 행 3:6에서 베드로가 “내게 있는 것으로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하여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킨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이적의 역사성격은 계시가 완성될 무렵에 와서 완화되었습니다. 즉 기도로 부탁할 때 하나님의 응답섭리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기독교신앙백과 147과, 414p 참조).

2) 9~10절에서 (왕은 나아만에게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가도록 인도하였고) “나아만은 말과 병거를 거느리고 엘리사의 집에 이르러 문 앞에 섰다”고 하였습니다. 이때에 엘리사는 사환 게하시를 내보내어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시오 당신의 살이 여전하여 깨끗해질 것이라”고 하였는데, 11~12절에서 나아만은 (자기를 영접하여 선대하지 않은 일에 불만을 갖고) 노하여 물러가면서 “내 생각은 저가 내게로 나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피부)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 줄 알았다 다메섹의 아마나강이나 바르발강이 이스라엘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않느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어도 될 것 아니겠느냐 하며 분한 모양으로 떠났다”고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그의 겸손과 순종을 요구하였고, 나아만은 자기 지위를 인정하여 대접 받는 것을 원하였으며, 또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을 믿지 못하였고 병고침의 방도가 약물 요법에 있는 줄로만 안 것입니다. 즉 깨끗한 물에 씻는 것인 줄로만 안 것입니다.

3) 이때에 13절에서 (나아만이 불순종하며 돌아가려고 할 때) 그 종들이 나와서 말하기를 “내 아버지여(종이 주인을 일컫는 말) 선지자가 큰 일을 하라 하였어도 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하물며…씻어 깨끗하게 하라 하지 않습니까?” 하였을 때 나아만이 마음을 돌이켜 그 말을 거스리지 않고, 14절에서 “이에 내려가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 살처럼 깨끗하여졌다” 하시므로 결국 선지자의 말대로 순종하였고, 이때에 하나님의 이적이 나타나서 문둥병이 고쳐진 것입니다. 결국 선지자의 명령(하나님의 말씀)은 거역하다가 억지로 순종해도 효력을 보았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억지로 준 돈이라도 돈의 가치에는 변함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은 말씀에 복종하는 자에게 약속대로 은혜를 베푸셨고, 또 이방인에게도 초자연적인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제 8 과 나아만의 변화와 게하시 (왕하 5:15~27) 목록으로


이 본문의 ① 15~19절은 “나아만의 변화”이고, ② 20~27절은 “게하시의 부정과 벌 받음”입니다.

1. 나아만의 변화(15~19절)

1) 나아만은 깨끗이 병고침 받은 사실을 체험(확인)한 후에 15절에서 “모든 종자(부하 수행원)들과 함께 엘리사에게로 와서 그 앞에 서서 말하기를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 아나이다 청컨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였으니, 여기에서 나아만은 병고친 사람, 겸손한 사람, 감사하는 사람, 또 이스라엘의 여호와만 참신임을 깨달은 사람이 되므로 많은 변화를 나타냈습니다.

2) 그리고 예물을 드리려 한즉 16~17절에서 엘리사가 예물을 고사하며 받지 않겠다고 맹세하자 “노새 두 바리에 실을 흙을 주소서 종이(자신을 엘리사 앞에서 종으로 낮춘 뜻) 번제나 다른 제사를 드릴 때는 다른 신에게 드리지 않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다” 하였으니, 여호와의 신이 이스라엘 땅에만 계신 줄로 알았기 때문에 그 땅의 일부인 흙을 갖고 가려고 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에 대한 애착의 의미도 있겠지만 무소부재하시고 영으로 계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18절에서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그것은 내 주인(벤하닷왕)께서 림몬(아람 사람들이 섬기는 풍작의 신으로 림몬은 선하고 뛰어난 뜻이라 함, 왕상 15:18에서 다메섹왕이요 벤하닷의 부친 이름이 다브림몬이었음)의 당에 들어가 숭배하며 몸을 굽힐 때 내 손을 의지함으로(나도 함께 굽히게 되오니)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뜻은 자신이 왕을 부축할 뿐 림몬을 숭배하는 것은 아니란 뜻입니다.

3) 19절에서 엘리사가 가로되 “너는 평안히 가라” 하므로 저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멀지 않은 거리) 진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림몬을 숭배하는 왕의 육체를 부축하여 왕과 함께 굽히는 일이 죄가 되느냐? 안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직책상, 또 왕의 명에 복종하여 왕의 몸을 보좌한 것일 뿐 림몬을 숭상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평안히 가라” 하고 그 사실에 대하여 거론하지 않은 줄 압니다. 숭배 여부는 마음에 있습니다. 그러나 높은 지위에 있는 자가 그런 태도를 취하면 주위에서 보는 사람들이 그도 림몬 숭배자라 하겠지요. 따라서 그런 기회가 계속 있게 되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만일 이런 것을 엄히 따진다면 성도는 성도끼리만 직업을 따로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성도는 다른 이에게 오해나 부덕을 끼치지 않도록 다방면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2. 게하시의 부정과 벌 받음(20~27절)

1) 20절에서 “게하시는 엘리사가 사례물을 받지 않음을 기회로 자신이 거짓구실을 붙여 사례물 일부를 가로챌 욕심을 갖고 이를 시행하기로 하나님 앞에 맹세하였다” 하였으니, 여기에서 하나님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한 것은 결심에 불과하며 가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좋은 일을 하려는 맹세가 아니고 죄를 짓는 맹세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사가 선지자인데 반하여 게하시는 위선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혹 물질의 탐욕이 있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거짓으로 갈취하는 일을 하나님께 맹세까지 한 것은 완전한 반역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등잔 밑이 어두운 경우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21~22절에서 게하시가 두 사환을 동반하여 바삐 나아만을 뒤쫓아간즉 나아만이 그를 보고 수레에 내려서 만나게 되었고, 게하시는 거짓된 말로 “엘리사께서 방금 에브라임 지역에서 두 소년 생도가 왔는데 그들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이 필요한즉 그것을 청하여 받아오라고 하셨습니다” 하였으니, 나아만이 이를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23절에서 “나아만은 (한 달란트가 아닌) 두 달란트를 받으라” 하고 옷 두 벌과 함께 은 두 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 저를 억제하여 두 사환이 지고 가도록 제공하므로 이를 수령하게 된 것입니다. 거짓말은 거짓말대로 하고 넘치게 주는 것을 사양하는 척 하면서 위장을 한 것입니다. 24절에서 언덕에 이르러 게하시는 그 물건을 사환으로부터 취하여 자기 집에 감추고 사환들은 집으로 보냈습니다.

3) 25절에서 게하시가 엘리사에게 왔을 때 엘리사는 “네가 어디서 오느냐?”고 물었고, 게하시는 “아무데도 가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였으며, 26절에서 엘리사는 “그 사람(나아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이할 때 내 심령이 감각되었다(하나님의 영감적 계시가 있었다는 뜻)” 하였으며, 또 “지금이 어찌 은과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한 사례물로) 받을 때냐?” 하고 책망한 후에, 27절에서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고 하였습니다. “게하시가 물러나오자 문둥병이 발하여(자기 몸이) 눈같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사례물을 구하는 것은 죄라고 하였습니다(사 1:23). 따라서 나아만은 큰 변화의 은혜를 받았고, 게하시는 아주 망하는 벌을 받았으니, 멀리 있던 자는 자기의 문둥병을 인하여 하나님과 가까워졌고,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게하시는 마음의 탐심과 거짓된 정신을 버리지 못한 탓으로 좋은 환경과 관계없이 자기와 자식들까지 망하는 길을 택하게 된 것입니다.

제 9 과 도끼를 건짐 (왕하 6:1~7) 목록으로


이 말씀은 설교문으로 강론을 대신하겠습니다.

1. 본문의 내용을 말씀드리면 신학을 공부하는 선지자의 생도가 엘리사에게 건의하기를 “자기들 거처가 좁으니까 요단으로 옮겨서 그곳의 나무를 찍어 (넓은) 처소를 세워 거하게 하시지요?” 한즉 엘리사가 허락을 하였는데, 또 한 사람이 “선생님도 같이 가시지요” 해서 엘리사도 함께 갔다고 하였습니다. 이 시기는 앞 장의 역사가 있은 다음인즉 아람과 이스라엘이 좋게 지낼 때이고, 이스라엘에는 여호람왕이 다스릴 때입니다. 그리고 본래 있던 장소는 요단 가까운 길갈이나 여리고일 수도 있고, 더 먼 곳일 수도 있습니다. 나아만이 왔을 때도 “요단에 가서 씻으라”한 것을 보면 요단강과 멀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요단강을 말할 때 “요단”이란 약식 표현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역을 말하는 요르단(요단)도 있지만 요단강가란 뜻이 더 어울리는 것입니다. 요단에서 “나무를 베었다”, “나무가지를 베었다”(4, 6절) 하였으니까 톱으로 벤 것이 사실인데, 한 사람이 나무를 베다가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요단강물에 떨어진 것입니다. “찍다가, 하면 좋을 것을 베다가 한 것”이 문장표기의 문제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공동번역은 “한 사람이 들보감을 찍다가 도끼를 물에 빠뜨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개역성경에서 문장이 어색한 것은 원문번역에 충실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고, 공동번역이나 후에 나온 번역은 그런 문장을 대부분 의역한줄 압니다. 톱과 도끼를 다 갖고 가서 베기도 하고 찍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물에 도끼를 빠뜨린 사람이 “아 내 주여(엘리사 선생을 호칭한 뜻) 이것은 빌려온 도끼인데 빠졌으니 어찌합니까?” 한즉 “엘리사가 빠진 장소를 묻고 나무가지를 베어 그곳에 던진즉 도끼가 떠올라서 취하게 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도끼는 하나님의 이적으로 떠오른 것이고, 나무가지를 그 물에 던진 것은 이적을 이루기 위한 상징적 방법이기도 하며, 또 용도상으로 사람이 그 나무가지를 의지하여 떠오른 도끼를 취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것입니다. 이왕 떠오를 도끼이면 땅까지 오게 하면 좋은데, 그 이적의 역사에도 제한이 있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적이 나타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에서만 역사하시고 접근하는 노력은 사람이 해야할 것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어부가 배와 그물을 갖고 가서 열심히 고기를 잡되 “고기가 그물로 들어오도록 하는 것”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과 같다할 것입니다. 이런 절차로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2. 여기에서 성도들이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1) 연장을 예비하고 살다가 필요할 때 가급적 빌리러 다니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 것으로 사용하는 것이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빌리러 가거나 은혜를 꾸러가거나 하나님을 임시방편으로 모시는 사람처럼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요즈음 자동차를 빌려 쓰려고 해 보십시오. 많은 불편이 따릅니다. 육체적, 현실적 생활에 필요한 것을 준비하여 자기 것으로 쓰는 것이 좋은 것처럼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신앙자립도 그렇다는 것을 교훈 받으셔야 할 것입니다.

2) 사전점검입니다. 자동차도 후진할 때 아차하는 순간 장애물이 들어올 수 있으니까 항상 사전에 살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어떤 분의 설교를 들을 때나 믿음으로 큰일을 시행 할 때 앞뒤관계, 성경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등을 잘 점검하셔야 할 것을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3) 위험에 접근하지 않아야 합니다. 특히 꼭 해야 할 일이 아닌 것은 더욱 위험에 접근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물 가까이에서 찍는 것이나, 서투른 사람이 도끼질을 하는 것이나, 도끼질할 때 사람이 곁에 있는 것 등은 참으로 위험하니까 그런 것도 주의경계를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교훈 받을 수 있는 것은 첫째, 예비하고 살라는 것이고, 둘째는 점검을 잘 하라는 것이요, 셋째는 위험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3. 그런데도 혹 실수하였거나 미흡하여 문제가 일어났으면 어찌할 것인가? 할 때, 문제에 따라서 방법이 달라지겠지만 도끼를 빠뜨린 경우를 보면 선지자의 자문이 있고, 건지기 위한 노력이 있었으며 여기에 도끼가 떠오르는 이적의 은혜까지 겹쳐서 문제를 해결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즈음 같으면 잠수부를 동원하거나 뚝을 막고 물을 푸거나 아니면 기중기차에 자석을 매서 붙여 올리면 될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그런 시설이 없었으니까 없는 대로의 형편에서 하나님의 이적이 나타난 줄 압니다. 성도는 주의 임무도 잘 하고 문제가 있을 때 믿음 안에서 지혜롭게 처리하는 방법에도 익숙해야 할 것입니다.

제 10 과 아람의 침략을 방어함 (왕하 6:8~33) 목록으로


본문 ① 8~12절은 “아람의 침략 계획 실패”이고, ② 13~23절은 “엘리사 포박 실패”이며, ③ 24~33절은 “사마리아성의 기근”입니다. 따라서 전체의 제목을 “아람의 침략을 방어함”으로 정할 수 있습니다.

1. 아람의 침략 계획 실패(8~12절)

1) 8절은 아람왕의 이스라엘 침략 계획에 대한 말씀입니다. “때에” 하신 뜻은 24절에 따라 아람왕 벤하닷 2세(871~844) 시대를 의미하고, 그가 이스라엘과 더불어 싸우려고 그 신복들과 의논하여 “이스라엘 지역의 어느 진을 치자” 하면, 9~10절에서 “하나님의 사람(엘리사)이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이스라엘왕에게 기별하여 그곳을 방어하게 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하였습니다. 9절에서 “왕이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한 것은 싸우면서 왕의 신분을 나타내지 말고 보호하라는 뜻이고, “하나님의 사람이 이런 사실을 안 것”은 그때마다 하나님이 계시로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2) 이렇게 되자 11절에서 아람왕은 번민이 생겼고, 신복들을 불러 “우리의 비밀을 이스라엘왕과 내응하는 자가 있지 않느냐?” 하였을 때, 12절에서 그 신복 중 한 사람이 “이는 내응함이 아니라 이스라엘에 엘리사 선지자가 있어서 그가 왕의 침실에서 하는 말(극비의 말)까지 알고 자기왕에게 고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선민보호를 위하여 그런 방법으로 엘리사를 쓰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 엘리사 포박 실패(13~23절)

1) 엘리사의 역할을 안 벤하닷왕은 13절에서 “엘리사를 잡으려(포박) 하였고 그 당시에 엘리사가 도단에 있음을 알았다”고 하였습니다. “도단”은 사마리아에서 1시 방향 16㎞쯤에 있습니다. 이 지역은 요셉이 양 치는 형들을 찾아갔던 곳입니다(창 37:17). 14절에서 벤하닷왕은 병력을 동원하여 “밤에 가서 그 성을 에워쌌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방어력이 약한 틈을 타서 수리아(아람) 군대가 선민의 영토를 임의로 범한 것입니다.

2) 15절에서 엘리사의 수종자가 일찍 일어나서 나가본즉 군사들의 포위가 있는지라 이 사실을 엘리사에게 알리고 어찌하리이까? 한즉, 16~17절에서 “선지자가 두려워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다”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저의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한즉 하나님이 그 사환의 눈을(영적으로) 여시매 “불말과 불병거(천사의 무리들)가 엘리사 주위에 가득 둘려있음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성도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요, 또 영적 눈을 여시고 어둡게 하시는 일을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3) 아람 사람들이 엘리사를 붙잡기 위하여 도단에 가까이 왔을 때에 엘리사는 18절에서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한즉 그 말대로 그들의 눈이 어두워졌고, 19절에서 이때에 엘리사가 나서서 그들의 길을 인도하였으니 “당신들이 찾는 사람(여호람왕)이 있는 곳으로 인도한다” 하고 여호람왕이 있는 사마리아 도성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아람군사들이 도단으로 온 것은 정보 제공자인 엘리사를 먼저 잡은 다음에 사마리아 왕도를 점령하려고 한 것이기 때문에 사마리아가 그들의 목적지인즉 그곳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도단에서 사마리아까지는 남쪽으로 40리 길이지만 앞을 못 보는 자들인즉 어찌할 수 없이 끌려온 것입니다. 20절에서 그들이 사마리아성에 들어갈 때에 엘리사가 기도하기를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소서” 한즉 저희의 눈이 다시 열려 보고 자기들이 사마리아 가운데 있음을 알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눈이 어두워지고, 또 보게 된 문제는 행 9:8에도 나타납니다.

4) 21~22절에서 이스라엘 왕이 저희를 보고 치리이까? 하였을 때, 엘리사는 “칼과 활로 잡아 왔어도 칠 수 없을 터인즉(포로를 선대하라는 뜻) 음식을 먹여 그 주인(적국왕)에게로 돌려보내시오” 하여, 23절에서 왕이 그대로 시행한즉 “이로부터 아람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라도 사랑과 선대에는 상당한 감동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사마리아성의 기근(24~33절)

1) 24절에서 “이후(상당기간 지난 후)에 아람왕 벤하닷이 온 군대를 모아 또 사마리아에 올라와서 에워쌌다”고 하였습니다. 먹을 것이 없은즉 침략 외에는 할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25절에서 이로 인하여(사마리아성에 양식이 들어가지 못하므로) 큰 기근이 닥쳤고, 심지어는 나귀머리 하나에 은 80세겔(1세겔은 64센트라 함)이요, 합분태(여물지 않은 콩찌끼 같은 것) 1/4갑(1갑은 2.3ℓ인즉 1/4이면 0.57ℓ임)에 5세겔(64센트×5=320센트)이라 하였으니, 이는 역시 양식값이 비싸진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나귀머리는 고기가 제일 적은 부분이고, 합분태 역시 쭉정이 곡물을 의미하지만 그 가격단위는 다 비싼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2) 26~29절은 성 중의 기근이 더 심한 것을 말씀하였으니, 여호람왕이 성 위로 통과할 때(백성의 형편을 살피기 위한 듯) 한 여인이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하므로 기근으로 고통을 호소한즉 왕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도우랴 타작마당으로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하겠느냐?” 하였으니, 여기에서 “인간의 대책은 없고 하나님만 기다릴 뿐이라”는 자신의 입장을 말하였는데, 또 한 여인이 말하기를 “이 여인이 내 아이를 먼저 먹은 다음 자기 아이를 다음에 먹자 하여 내 아이를 먼저 삶아 먹었는데 이튿날 자기 아이를 내놓지 않고 숨겼다”는 것입니다. 최악의 현상까지 나타난 것입니다. 이이를 삶아먹기 전에 자기의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하고 고요히 죽기를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요? 여기의 아이를 먹은 것은 굶어 죽은 아이의 시체를 먹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개역성경에는 죽였다는 표현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동번역에는 “잡아먹었다”로 되었으니 참혹한 일입니다.

3) 30절에서 이때에 왕은 자기의 옷을 찢었으니 이는 분하고 원통할 때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야곱이 요셉 없을 때 옷을 찢었고(창 37:29), 여호수아가 다른 정탐의 부당한 말을 들을 때 옷을 찢은 것을 상상하십시오(수 7:6). 그 외에도 스 9:3, 에 4:1, 욥 1:20에도 나타납니다. 그리고 옷을 찢은 상태에서 성을 지나갈 때 백성들이 본즉 “그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다” 하였으니, 이는 왕이 보이지 않게 회개하는 자세를 갖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굵은 베옷은 슬플 때, 회개할 때 입는 것이었습니다(에 4:1, 사 58:5, 렘 6:26, 마 11:21). 이것은 여호람왕이 스스로 취한 것이 아니라 선지자가 “회개해야 하나님이 권고하신다” 하여 왕이 백성을 살려 보려고 노력한 것인데 상당시간 기다려도 그 지경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4) 그리하여 31절에서 선지자에게 속았다는 생각을 하여 “엘리사의 목을 치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을 내리실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의 목을 치는 일은 대체로 애굽이나 바벨론, 앗수르에서 시행하는 형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결심한 바를 강하게 시행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였으니, 이런 맹세는 하나의 전통적 습관으로 여겨집니다. 왕은 이 맹세로서 엘리사를 죽이려고 결심하였고 또 명령을 한 것입니다. 32절에서 “그때에 엘리사가 그 집(사마리아에 있는 자기 집)에 앉았고 장로들(그 지역의 원로들)이 저와 함께 있었는데, 그때에 왕이 엘리사를 죽이도록 사자를 보냈다” 하였고, 엘리사는 그 사자가 이르기 전에 함께 있던 장로들에게 “이 살인자(아합과 이세벨을 뜻함)의 자식(여호람왕)이 내 머리를 취하려고 사람 보낸 것을 아느냐? 너희는 사자가 오거든 문을 닫고 문 안에 들이지 말라 그 주인(사자를 보낸 왕)의 발소리가 그 뒤에서 나지 않느냐?” 하였으니, 엘리사는 하나님의 계시에 의하여 그 사실을 알고 말을 한 것입니다. 과연 엘리사의 말을 들은 장로들이 왕과 그 신하들을 막을 수 있을까요? 33절에서 “무리와 말씀할 때에 그 사자가(왕과 함께) 이르렀고 왕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겠소” 한 것은 엘리사의 말만 듣고 하나님을 기다리며 견뎠으나 아무 소용이 없으니 엘리사를 죽이고(엘리사는 아람의 적도 됨) 아람에게 항복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이만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은 장로들이 엘리사와 함께 있으면서 왕의 성급한 행동을 억제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쟁과 기근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깊이 명심하셔야 할 것입니다(삼상 17:47, 삼하 21:1, 왕하 8:1, 대상 21:12).

제 11 과 기근을 해결함 (왕하 7:1~20) 목록으로


본문은 6장의 계속입니다. 사마리아 도성이 직면한 기근을 해결하는 내용이 기록되었기 때문에 “기근을 해결함”으로 제목을 정하였고 대지를 나누면 ① 1~2절은 “엘리사의 예언”이고, ② 3~7절은 “아람군이 도망함”이요, ③ 8~13절은 “네 문둥이의 역할”이고, ④ 14~20절은 “예언의 성취와 기근의 해결”로 나누어 살필 수 있습니다.

1. 엘리사의 예언(1~2절)

1) 앞장 끝절인 33절에서 “엘리사가 무리(장로들, 32절)와 말씀할 때에 그 사자(여호람이 엘리사를 죽이도록 명하여 보낸 자)가 이르렀는데 (왕이 가로되)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 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재앙인즉 피할 길이 없으므로 아람군에게 항복할 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엘리사는 아람왕이 죽이기 위하여 찾은 사람인즉(왕하 6:13) 어느 편에 있거나 죽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2) 이때에 1절에서 엘리사가 말하기를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가루 한 스아(7되)와 보리 두 스아(14되)가 다 한 세겔(64센트)씩 할 것이라” 하였으니, 이는 양식 공급이 값싸게 이루어져서 기근을 면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때에 2절에서 왕을 인도한 장관이 “하늘에서 창을 내어(양식을 쏟아주지 않는 한) 그런 일이 있겠느냐?” 하며 불신할 때 엘리사가 말하기를 “너는 눈으로 볼 것이나 먹지는 못할 것이라” 하였고, 17절에서 “그는 양식을 구하러 갔을 때 성문을 지키다가 인파에 밟혀 죽으므로 그 예언의 말씀대로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위기 중의 은혜”란 설교가 있으므로 긴 설명을 생략하려고 합니다.

2. 아람군이 도망함(3~7절)

1) 3~5절은 사마리아성을 두루 포위한 아람 진영에 군인들이 군량미, 군수품 등을 버려둔 채 황급히 도망하여 아무도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된 말씀이 기록되었습니다. 그것은 사마리아 성문 어귀에 문둥이 네 사람이 있었는데(이들은 부정한 신분인지라 성한 사람들과 접근 생활을 못함, 레 13:45) 이들이 생각하기를 “성에 들어가자니 성중은 주린즉 거기서 죽을 것이요 그 자리에 앉아 있어도 죽을 것인즉 차라리 아람군사들에게 가서 항복하여 죽으면 죽고 살리면 얻어먹는 수 밖에 없다” 하고 황혼(어두워질 무렵)에 일어나서 가본즉 장막과 짐승과 식량과 의복과 은금을 버려둔채 도망하여 한 사람도 없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들이 용기를 내어 아람진영에 갈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인도섭리에 의한 것이요, 또 그들이 문둥병으로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포기할 수 있었기 때문에(삶과 죽음의 가치를 동일시한 뜻) 위험한 일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말씀이 이들에게 응한 것입니다(마 16:25, 눅 9:24, 막 8:35).

2) 아람군이 황급히 도망한 이유는 6~7절에서 “하나님이 아람군대로 병거소리와 말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신즉(이는 엘리사를 보호하였던 하늘의 천군인 불말과 불병거의 역할로 소리를 듣게 한 듯함) 이는 이스라엘왕들이 헷 사람들의 왕들과 애굽왕의 도움을 받아 자기들을 격퇴할 지원병이 가까이 온 줄로 착각하여 도망을 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선민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같은 특별섭리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3. 네 문둥이의 역할(8~13절)

1) 8~11절에서 네 문둥이는 그곳의 한 장막에 들어가 먹고 마시며 거기에 있는 의복과 은금을 챙겨 자기 처소에 감춘 후에 “그 소식을 성중에 알리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라” 하여 그 밤으로 성중 문지기에게 가서 사실대로 알렸으니 그야말로 복음의 사신 역할을 크게 감당한 것입니다. 좋은 것을 혼자 누리는 것과 그 좋은 것을 몰라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알면서 전하고 나누지 않는 것은 마땅히 화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고전 9:16). 만일 시간을 늦춘다면 그 사이에 죽는 사람들이 또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죽은 자는 죽은 자들로 장사하게 하고 너는 (산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나를 따르라”(눅 9:60)고 하신 줄 압니다.

2) 12절에서 사마리아성 안에서 이 소식을 들은 여호람왕은 이것이 엘리사의 예언을 응하게 하는 사건으로 믿으려 하지 않고 “저희가 우리의 주린 것을 알고 다른 곳에서 매복하였다가 성중의 백성들이 나오는 틈을 타서 그들을 사로잡고 성으로 들어가려는 작전이라” 한즉, 13절에서 신복 중 한 사람이 “성중에 남아있는 다섯필의 말을 이용하여 정탐하자” 하였는데, “이 말들이 성중에 남아있는 이스라엘 온 무리 곧 멸망한 이스라엘 온 무리와 같다”는 뜻은 말과 백성들이 생명을 같이할 만큼 귀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14절에 그 말을 다 쓰지 않고 병거들과 그 말만 취하여 아람군대의 뒤를 정탐한 것입니다. 15절에서 요단까지 따라가며 정탐한즉 적들이 “급히 도망한 것이 사실이고 또 의복과 군수품이 길에 가득한 것을 보고 사실대로 왕에게 고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처음 증언자의 말을 믿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드리고 확인하려면 그만큼 더뎌집니다. 세상일은 확인하셔야 합니다. 다만 진리는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믿고 세례를 받으면 구원을 받으니까요(막 16:16).

4. 예언의 성취와 기근의 해결(14~20절)

1) 이리하여 16절에서 백성들이 아람의 진에 들어가 그곳의 양식을 노략한즉 1절에서 말씀한 예언이 그대로 응하였고, 또 17절에서는 2절에서 예언한 내용이 그대로 응하여 불신한 장관은 성문을 지키다가 그 사실을 보기만 하고 인파에 눌려 죽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18~20절에서 재설하였습니다.

2) 결국 기근의 위기는 하나님의 심판섭리에 근거한 것이고, 아람의 침략은 하나님의 몽둥이로 쓰신 것이며, 왕은 신앙이 확고하지 못하여 선지자의 말을 믿는 듯하다가 의심하고 죽이려고까지 했으므로 하나님이 그와 그의 아비 아합의 죄를 갚으셨으나 환난 중에도 긍휼을 베풀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구원하실 때 천사의 역할(병거소리와 착각)과 네 문둥이의 역할을 들어 쓰셨고, 불신앙한 장관은 은혜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과연 엘리사는 나라의 간성이었습니다(왕하 13:14).

제 12 과 수넴 여인과 아람의 역사 (왕하 8:1~15) 목록으로


8장의 말씀을 두 과목으로 나누어 살피기로 합니다. 본문 ① 1~6절은 “엘리사가 수넴 여인을 도와줌”이고, ② 7~15절은 “엘리사가 아람을 방문함”입니다. 따라서 전체의 제목은 “수넴 여인과 아람의 역사”로 정할 수 있습니다.

1. 엘리사가 수넴 여인을 도와줌(1~6절)

1) 1절에서 엘리사는 수넴 여인을 찾아가서 “하나님이 그 땅에 7년간 기근을 명하셨은즉 너는 일어나서 거할만한 곳으로 가라” 하여 2~3절에서 수넴 여인은 “그 말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의 땅에 가서 7년을 유하다가 온즉 자기의 집과 전토를 (다른 사람이 점유한 상태이므로) 위하여 호소하러 왕에게 나갔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엘리사가 7년 흉년의 계시를 받고 봉사를 잘한 수넴 여인에게 그 사실을 알려 피신케 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봉사를 잘한 여인에게 끝까지 임한다는 사실을 교훈하며, 여기에서 어디로 가라는 목적지는 지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방 땅에 가서 우거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수넴 여인이 블레셋 땅으로 간 것은 나오미가 모압으로 간 것만큼 심각하지는 않습니다. 나오미 때는 유대 땅에 정착하는 시기이고, 수넴 여인의 때는 예루살렘이 차단된 분국시기이기 때문입니다(룻 1:1).

2) 4~5절에서 수넴 여인이 왕을 찾아갔을 때 여호람왕은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를 불러 엘리사의 행한 큰 일에 대하여 듣고 있었고 게하시가 큰 일 중 하나인 죽은 자 살린 일을 이야기 할 때에 그 당사자인 수넴 여인이 그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자기의 집과 전토를 회복하기 위하여 왕 앞에 이른즉 “저가 바로 그 여인이요 그 아들이라”고 말하게 된 것입니다. 6절에서 이때에 왕은 그 여인에게 찾아온 연유를 묻고 한 관리를 명하여 “그 여인의 소유와 그동안의 그 밭의 소출을 다 돌려주라”고 하였으니, 이는 엘리사의 사역에 따른 덕을 본 것이요, 왕하 4:13에서 “왕이나 군대장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하였을 때 “없다”고 대답하였던 사실이 예언으로 응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 엘리사에게는 그 여인이 왕에게 부탁할 일이 생길 것을 예감하였는데 시기적으로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수넴 여인이 축복을 사양한 후 1년 후에 아들을 낳았고(왕하 4:16) 그 아들이 걸어다닐 때(3~4세쯤)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또 7년을 블레셋에게 보냈은즉 왕을 찾아갔을 때는 그아이의 나이가 10여세쯤 되었을 것입니다.

3) 그런데 문제되는 것은 게하시가 문둥병 들린 후인가? 전인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기록의 순서로 보면 수넴 여인이 7년 흉년을 보낸 후이므로 문둥병 들린 상태에서(왕하 5:27, 너와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셨음) 왕과 대화를 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둥병자는 진 밖에서만 살아야 하니까(레 4:35~36) 왕이 문둥병자와 접근하였을까요? 제 생각에는 7장에서 문둥이의 역할로 사마리아성이 기근을 면한 예가 있었은즉 그 문둥이 군이 게하시와 그 자녀들일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양식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과 관련하여 문둥병자 상태에서 왕이 그를 만난 것으로 여겨집니다.

2. 엘리사가 아람을 방문함(7~15절)

1) 7~8절에서 “엘리사가 다메섹(아람의 수도)에 갔을 때 아람왕 벤하닷이 병들어 있었고 이 사실을 안 벤하닷은 (신하) 하사엘을 시켜서 많은 예물을 갖고 엘리사를 만나 자신의 병이 낫겠는지를 물으라”고 하였습니다. 아람과 이스라엘이 자주 전쟁을 하였지만 외교적으로 평화로운 때가 있은 줄 압니다. 그것은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치려고 왕래한 사실을 보아서 알 수 있고, 또 엘리사가 아람에 갈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엘리사를 대적하였으나 엘리사가 아람군사 모두를 돌려보낸 사실도 있었은즉(왕하 6:13~23) 엘리사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엘리사가 아람에 간 이유는 하나님이 이방국을 통치하심에 있어서 엘리사로 하여금 하사엘로 왕되게 하시기 위하여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방나라 아람에 대하여서도 크게 간섭하신 일이 있었으니까요(왕하 5:1의 강론 참조). 그리고 벤하닷이 약대 40에 좋은 선물을 보낸 것은 흉년시기에 양식을 주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2) 9~10절에서 하사엘이 왕명에 따라 다메섹의 아름다운 물품으로 예물을 삼아 약대 40에 싣고 엘리사 앞에 가서 “당신의 아들(왕이 자기를 낮춘 뜻) 아람왕 벤하닷이 나를 보내어 자신의 병이 낫겠는지를 물으라 하여 왔나이다” 한즉 엘리사가 고하기를 “왕이 정녕 나을 것이나 정녕 죽으리라고 알려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이방의 여러나라에 대하여 예언한 것처럼 엘리사도 아람왕에 대하여 예언을 한 것입니다. 좋은 선물은 안 받을 수도 있고 받았어도 죄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3) 그 다음 11절에서 엘리사는 “저가(하사엘) 부끄러워하기까지 쏘아 보다가(시선을 힘있게 집중한 뜻) 운즉”, 12절에서 하사엘이 “어찌하여 우시나이까” 하였고, “네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행할 모든 악을 내가 앎이라 네가 저희(이스라엘) 성에 불을 놓고 장정을 칼로 죽이며 어린아이를 메어치며 아이 밴 부녀를 가를 것이라” 하였으니 이 사실은 하사엘이 반역 혁명을 할 때 왕하 10:32~33, 12:17, 13:3, 7, 22에 나타난 내용으로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성취될 것을 미리 예고한 것입니다. 13절에서 하사엘은 “당신의 개같은 종이 무엇이관대 이런 큰일을 행하겠습니까?” 한즉 엘리사의 대답이 “하나님께서 네가 아람왕이 될 것을 내게 알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하사엘은 엘리사의 예언을 들었을 때 그 일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추진할 것을 결심하였을 것입니다.

4) 14~15절은 엘리사의 예언대로 하사엘이 아람왕이 된 내용을 말씀하신 것으로 하사엘이 엘리사를 떠나 그 주인 벤히닷왕에게 나간즉 왕이 선지자의 말한 내용을 물었을 때 대답하기를 “왕이 정녕 나으신다고 하였습니다 한 후 그 이튿날 하사엘이 이불에 물을 적시어(질식을 위한 것) 왕의 얼굴에 덮어 죽이고 자신이 대신 왕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리하여 벤하닷의 왕조는 주전 844년경에(북왕국 여호람 10년쯤, 남왕국 여호람 2년쯤) 끝나게 된 것입니다.

제 13 과 유다 두 왕조의 역사 (왕하 8:16~29) 목록으로


본문 ① 16~24절은 “유다 12대 여호람왕의 역사”이고, ② 25~29절은 “유다 13대 아하시야왕의 역사”입니다. 유다 왕조의 역사는 사울왕, 다윗왕, 솔로몬왕의 역사를 포함합니다.

1. 유다 12대 여호람왕의 역사(16~24절)

1) 16~17절에서 “이스라엘왕 아합의 아들 요람(왕하 1:17, 3:1에서는 여호람으로 표기되었으나, 이 부분에서는 유다 11대 여호람왕과 구별하기 위하여 요람으로 표기한 줄 압니다. 12년 재위함) 제5년에 유다왕 여호사밧이 오히려 위에 있을 때(죽기 전에 은퇴한 뜻)에 그 아들 여호람이 32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8년을 다스렸다고 하였습니다. 여호람이 왕된 때는 주전 854년경입니다.

2) 18~19절은 여호람왕의 치적으로 “저가 이스라엘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 아내가 되었기 때문이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하나님이 그의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시지 않았으니 이는 저와 그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약속은 다윗 생존시에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었고(삼하 21:17, 왕상 11:36), 등불의 의미는 밝은 소망의 앞날을 주신다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다윗은 주전 980년경에 세상을 떠났고 여호람이 왕된 때는 주전 854년쯤인즉 하나님께서는 126년전의 약속을 6대 후손에게까지 계속 지켜주신 것입니다. 나라가 분국된 후 남방유다는 인구수가 적으므로 북왕국과 적수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따라서 두 왕국이 서로 사돈을 맺고 협력한 시대가 있었으니 그때가 바로 엘리사 시대였습니다.

3) 20~22절은 에돔과 립나의 배반기사입니다. 에돔에 대한 말씀은 왕하 3:8~9을 참고하십시오. 그때만 해도 잘 복종하였는데 여호람왕의 8년 치세 중에 배반한 것입니다. “립나”는 예루살렘에서 서남방으로 40㎞쯤 떨어진 곳이요 블레셋 진영에 가까운 곳인데 가나안 입국 당시 여호수아가 점령하여 유다지파에게 주었으나(수 15:42) 그 당시에 유다를 배반하였고, 나중에는 앗수르에게 점령당한 것입니다(왕하 19:8). 에돔이 다왕 여호람을 배반하여 왕을 세운즉 여호람왕이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 사일(에돔의 한 지역)로 갔더니…, 여기의 21절을 읽어보시면 어느 편이 이기고 진 것인지 명확하지 않지요? 이것은 번역상의 문제입니다. 공동번역은 원문해석의 의미를 떠나서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였습니다. 즉 “왕과 병거대장들은 밤에 충돌하였다가 도리어 에돔군에게 포위되어 참패를 당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22절에서 립나와 함께 오늘까지(이 말씀 기록된 시기) 유다의 수하에서 벗어났다고 하였습니다.

4) 23~24절은 여호람왕의 죽음기사입니다. “역대지략에 관한 것과 다윗성에 장사된 일”은 왕상 14:19~20에서부터 자주 나오는 대목입니다. 그 아들 아하시야가 대신 왕이 되었으니 이때는 주전 848년경입니다.

2. 유다 13대 아하시야왕의 역사(25~29절)

1) 25절에서 “이스라엘왕 아합의 아들 요람 12년(전체 재위년수임)에 유다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다” 하였고, 26절에서 “그는 20세에 왕 되어 예루살렘에서 1년을 다스렸다” 하였으며, 그의 모친은 아달랴로서 이스라엘왕 오므리(아합왕의 아버지)의 손녀라 하였은즉, 여기에서 “아달랴”를 아합왕의 딸이라 하지 않은 이유는 왕의 직계, 즉 여호람과의 남매간이 아닌 사촌쯤되는 왕실 손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27절에서 “아합의 집의 사위”란 말씀을 보아서도 짐작됩니다. 아하시야의 아버지인 여호람에게는 아합왕의 딸이 그의 아내라 하였으나(왕하 8:18) 여기에서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를 왜 아합의 딸이라 하지 않고 오므리(그의 할머니)의 손녀라 하였는지 연구하십시오.

2) 27절에서 “유다왕 아하시야가 북왕국 아합의 길(아합왕이 하나님을 배반한 일)로 행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니 저는 아합 집의 사위가 되었음이라” 하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가족관계가 더 가까운 것을 표명하였는데, 성도는 반드시 가족을 초월하여서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함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마 10:37~38).

3) 28~29절은 아하시야왕과 요람왕이 합세하여 아람왕 하사엘과 싸움한 내용을 기록한 말씀으로 그당시 길르앗 라못(이곳은 왕상 22:1~6에서 설명된 곳임)으로 가서 하사엘과 싸웠는데 요람왕이 부상을 당한 곳은 라마(라마는 여러 곳이 있는 중 이곳은 길르앗 지역의 라마임)요 아람 사람에게 맞아 상한 것을 치료하려고 “이스르엘”로 돌아왔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르엘은 여러차례 나타난 지명인데(왕상 4:12, 18:45) 문제는 북왕국의 수도가 벤하닷의 침략이 있고, 기근이 있었을 당시에도 사마리아였는데(왕하 6:24~7:20) 왕이 사마리아 북쪽 30㎞쯤에 있는 이스르엘로 옮긴 것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하여 그곳에서 요양을 한 것이고(왕상 21:1, 왕하 9:16, 10:36) 그때에 유다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이스르엘에 가서 요람왕에게 병문안을 하였으니 이는 처가의 형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제 14 과 예후를 왕되게 하심 (왕하 9:1~13) 목록으로


본 장을 두 번에 나누어 상고하겠습니다. 본문에는 예후가 북왕국 여호람왕 다음으로 10대 왕이 되는 내용이고, 14~37절은 예후의 혁명사입니다. 따라서 본문의 총 제목은 “예후를 왕되게 하심”이고 대지를 나누면 ① 1~3절은 “기름부음을 명함”이요, ② 4~10절은 “예후에게 기름을 부음”이고, ③ 11~13절은 “예후의 군림”입니다.

1. 기름부음을 명함(1~3절)

엘리사 선지자가 생도를 시켜서 “너는 허리를 동이고(속히 가라는 뜻) 기름병을 갖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그의 형제들 중에 일어나게 하여 골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기름을 그 머리에 붓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노라 하고 문을 열고 지체없이 도망하라”고 하였습니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왕을 삼는 문제는 왕상 19:16~17에서 엘리야에게 주어진 사명인데 늦은 감이 있지만 그 사명을 엘리사가 이어받아 시기가 되었으므로 시행한 것이고, 형제 중 예후만 일어나게 하여 골방으로 들어가 기름을 부은 것은 은밀하게 시행하여 어떤 훼방이나 정보유출을 막은 것이며 또 허리를 동이는 뜻과 지체없이 도망하게 한 것은 감시의 눈을 피하여 신속히 처리하라는 뜻입니다. 선지자가 기름을 머리에 붓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상징이요, 대관식과 같은 것입니다. “길르앗 라못”은 갈릴리 바다 남단에서 4시 방향으로 38㎞쯤 되는 도성으로 갓 지파를 위한 도피성이 있고(신 4:43), 솔로몬을 섬기는 12장관의 한 성읍이었으며(왕상 4:7, 13), 아람과의 싸움이 있었던 곳입니다(왕상 22:3). 그곳에 님시의 손자요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가 있어서 보낸 것인데 이 사람은 아합왕 때부터 군대장관으로 있던 사람입니다.

2. 예후에게 기름을 부음(4~10절)

1) 4~9절에 선지자의 사명을 받은 소년 선지자가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여러 장군들 중 예후만 불러 집으로 들어가게 한 후 그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왕을 삼노니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주므로 아합의 온 집이 멸망하리니 이스라엘 중에 매인 자(종속된 자, 또는 종)나 놓인 자(자유인)나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하되…여러보암의 집과 같게 하며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과 같게 할 것이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후가 왕이 되어 그 사명을 이행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한 것입니다. 이 사실은 왕상 16:29~33, 18:19~40에서 이미 예고된 것이었고, 또 여러보암 집안이나 바아사 집안의 멸망사례도 이미 왕상 14:10, 15:29, 21:22, 16:3, 11에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2) 또 10절에서도 계속 말하기를 “이스르엘 지방에서 개들이 이세벨을 먹으리니 저를 장사할 사람이 없으리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이세벨”이 이스르엘 별장에서 죽을 것과 무덤도 갖지 못할 것을 예고한 말씀입니다. 예후는 이 과정에서 확실한 결심을 하였을 것입니다.

3. 예후의 군림(11~13절)

1) 11절에서 “예후가 나와서 그 주(여호람왕)의 신복들에게 이르니 한 사람이 묻되 평안이뇨?(선지자의 생도가 왔은즉 필시 무슨 소식을 갖고 왔을 것임을 짐작하고 기다렸다가 물은 것) 그 미친 자가 무슨 까닭으로 그대에게 왔더뇨?” 하였으니, 그는 선지자에 대한 신뢰가 없는 사람이고, 또 감정이 안 좋은 사람의 말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에 예후가 말하기를 “그대들이 그 사람과 그 말한 것을 알리라” 하였으니, 이는 시국정세에 비추어 합당한 말을 하였을 것인즉 짐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니냐는 뜻입니다.

2) 그러나 12절에서 다른 신복들이 또 말하기를 “당치 않다 우리는 모르니 우리에게 이르라” 하므로 예후가 사실대로 말한즉, 13에서 “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취하여 섬돌위 곧 예후의 밑에 깔고(사람을 높이 받드는 예우) 나팔을 불며 예후가 왕이라”고 선포하였다는 내용입니다. 그리하여 예후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10대 왕이 된 것입니다. 1~2대는 여러보암과 나답의 세습이었고, 3~4대는 바아사와 엘라의 세습이었으며, 5대는 시므리가 반역하여 7일간 재위하였고, 6~9대는 오므리가 시므리를 죽이고 왕이 되어 아합, 아하시야, 여호람까지 세습하다가 예후가 혁명을 일으켜 10대 왕이 되니 88년 동안에 다섯 번의 정변이 일어난 것입니다.

제 15 과 예후의 혁명 역사 (1) (왕하 9:14~37) 목록으로


이 부분의 말씀은 10장의 내용과 함께 “예후의 혁명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후는 선지생도의 예언과 기름부음으로 왕이 되었으므로 선지자의 명령(7~10절)에 따라 과감하게 혁명을 주도하였습니다. ① 14~16절은 “정보를 폐쇠함”이고, ② 17~26절은 “요람을 죽임”이며, ③ 27~28절은 “유다왕 아하시야를 죽임”이고, ④ 29~37절은 “이세벨을 죽임”입니다.

1. 정보를 폐쇠함(14~16절)

예후가 길르앗 라못에서 왕으로 군림하였을 때(1절의 요람을 배반한 뜻) 왕하 8:28을 보시면 요람은 같은 곳에서 아람왕 하사엘과 싸우다가 라마에서 상처를 입고 후퇴하여 이스르엘에 와서 치료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이때에 16절을 보시면 유다왕 아하시야도 문안차 그곳에 와서 여호람왕과 함께 있었습니다. 예후는 자기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너희 뜻에 합당하거든(예후의 혁명을 지지하면) 한 사람이라도 이 성에서 도망하여 이스르엘에 있는 왕에게 이 소식(예후가 반역한 것)을 전하러 가지 못하게 하라” 하였으니, 이는 내란에 의한 전시 상황이므로 예후의 세력을 규합하고 작전의 지혜를 쓴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르엘에 있는 여호람왕이 길르앗 라못에서의 변란을 알 까닭이 없었을 것입니다. 길르앗 라못에서 이스르엘까지는 서쪽으로 70㎞쯤에 위치합니다.

2. 요람을 죽임(17~26절)

1) 17~18절에서 예후가 무리를 대동하여 이스르엘에 왔을 때 요람왕은 누가 온다는 보고를 받고 한 사람을 보내어 “평안이냐?”(평안한 일로 왔느냐의 뜻)를 묻게 하였는데, 예후는 그 사람에게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하고 그를 돌아가지 못하게 하였고, 19절에서도 꼭 같은 일이 재연되었으며, 20절에서 파숫군이 왕에게 고하기를 “두 번째 전령도 돌아오지 않는 중 그 병거를 모는 것이 님시의 손자 예후처럼 미치게(난폭하게) 몬다”고 보고 한즉,

2) 21절에서 요람이 (부상 중에 있지만) 병거를 메우라 하여 유다왕 아하시야와 함께 각각 병거를 타고 예후를 맞아 싸우러 나온즉 나봇의 토지에서 만났다고 하였습니다. 22절에서 요람이 예후에게 평안이냐? 하였을 때, “네 어미 이세벨의 음행(신앙적 음행을 표현한 듯함)과 술수(정치적 잔꾀)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겠느냐?” 한즉, 23절에서 요람이 아하시야에게 “반역이라” 소리치며 도망하는 중,

3) 24절에서 예후가 쏜 화살이 요람의 두 팔 사이를 맞혀(아합도 그렇게 죽었음, 왕상 22:34) 그 염통을 꿰뚫고 나오매 저가 병거에서 넘어져 죽었는데, 25절에서 예후가 그의 장관 빗갈에게 “그의 시체를 취하여 나봇의 포도원에 던지라 네가 기억하려니와 이전에 너와 내가 함께 타고 그 아비 아합을 좇았을 때(호위한 뜻) 여호와께서 저의 일을 (이 아래의 말씀같이) 예언하셨느니라” 하였으니, 이는 과거에 엘리야 선지자가 아합과 그 자손에 대하여 예언한 말씀(왕상 16:29~33, 18:19~40)을 자신이 이행한다는 뜻이요(7~10절), 26절에서는 또 “내가 어젯날(나봇이 죽을 때)에 나봇의 피와 그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고 또 여호와의 말씀으로 이 토지에서 네게 갚으리라” 하셨은즉(왕상 21:19) 그 말씀대로 “시체를 취하여 이 밭에 던지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절차로 아합의 아들 여호람왕은 죽었습니다.

3. 유다왕 아하시야를 죽임(27~28절)

27절에서 “유다왕 아하시야는 여호람의 죽음을 목격하고 동산 정자길로 도망하였으나, 예후가 쫓아가며 저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 한즉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비탈(이블르암은 이스르엘에서 8시 방향 20㎞쯤임, 수 17:11~13, 삿 1:27)에서 치니 므깃도(이스르엘에서 10시 방향 30㎞쯤이고, 이블르암에서는 서북향 20㎞쯤임)까지 도망하다가 죽었다” 하였고, 28절에서 “유다왕 아하시야가 죽자 그 신복들이 그 시체를 예루살렘으로 갖고 와서 다윗성에 그 열조와 함께 묘실에 장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여호람(이스라엘 9대왕)과 아하시야(유다 12대왕)는 같은 시기에 예후에게 죽은 것입니다.

4. 이세벨을 죽임(29~37절)

1) 29절에서 “아합의 아들 요람 11년(12년 재위)에 아하시야가 유다왕이 되었다” 하였고 1년간 왕노릇 하다가 죽었습니다. 아하시야는 아합의 가족들을 가까이 하다가 함께 망한 셈입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하면 덕 될 것이 없습니다. 30~31절에서 예후가 두 왕을 죽이고 이스르엘(별장)에 이르렀을 때 “이세벨”은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민채 창에서 바라보았고, 예후가 들어간즉 예후를 향하여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하였으니, 여기의 주인이란 왕을 죽인 반역자를 빗대어 하는 말입니다. 시므리(이스라엘 5대왕)가 왕될 때 엘라를 죽이고 왕이 되었으나 7일만에 오므리에게 죽임 당한 일이 있었는데(왕상 16:8~20) 이세벨이 그것을 빗대어 예후가 그런 사람이란 뜻으로 대항을한 것입니다.

2) 32절에서 예후가 창을 향하여 “내 편이 될 사람이 누구냐?” 한즉, 두 내시가 내다보았고(예후편이 되겠다는 암시), 33절에서 “저를 내려 던지라 하니 내려 던진즉…예후가 그 시체를 밟았다”고 하였습니다. 34~35절에서는 예후가 그 별장에 들어가 먹고 마신 후 “이세벨은 저주 받은 계집이나 시돈왕의 딸인즉(왕상 16:31) 장사하라” 하여 시체를 본즉 두골과 발과 손바닥 외에는 찾지 못하자, 36절에서 예후가 가로되 “이는 하나님의 종 엘리야의 말씀대로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고기를 먹을 것이라 한 말씀(왕상 21:19)이 이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37절에서 “그 시체가 이스르엘 토지에서 거름같이 밭 면에 있으리니 이것이 이세벨이라고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한 말씀은 예후가 한 말로서 이세벨이 저주를 받은즉 무덤조차 없으므로 아무도 그의 흔적을 말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37절에 대하여 공동번역에서는 “이세벨의 시체가 이스르엘의 밭에 똥같이 굴러 다녀 아무도 그것이 이세벨이라는 것을 모르게 되리라고 하시더니(이 근거는 저주 받은 자에 대한 다른 말씀에서 인용한 듯함, 관주참조, 시 83:10, 습 1:17, 렘 9:22, 16:4) 기어이 그렇게 되고 말았구나”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혁명도 하나님의 섭리로 되는 것임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 자세한 부분까지 성취되는 것을 볼 때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제 16 과 예후의 혁명 역사 (2) (왕하 10:1~36) 목록으로


본문은 전장의 후반부와 함께 예후의 혁명 사역(아합과 바알의 부패세력을 없애는 것)에 관한 말씀입니다. 대지를 나누면 ① 1~11절은 “아합의 아들 70인을 멸함”이고, ② 12~14절은 “유다왕족을 멸함”이요, ③ 15~17절은 “아합에게 속한 자들을 멸함”이며, ④ 18~29절은 “바알에 속한 자들을 멸함”이고, ⑤ 30~36절은 “예후의 마지막 역사”입니다.

1. 아합의 아들 70인을 멸함(1~11절)

1) 1~3절은 예후가 사마리아에 있는 아합의 아들(“바님”의 뜻이 자손들이라 함) 70인(기드온의 아들도 70인이었음, 삿 8:30)을 없애기 위한 방법으로 선전포고를 한 내용입니다. 그 당시 이스르엘 방백(장로)들과 아합의 여러 아들들(왕손들)을 교육하는 자들에게 전언하기를 “너희 왕손들과 병거들이 그곳에 있으니 왕자들 중 어진 자를 택하여 왕을 삼고(나를 대항하여) 싸우라” 하였더니,

2) 4~5절에서 “저희가 심히 두려워 하며 두 왕(여호람과 아하시야)도 저를 당하지 못하였는데 어찌 싸우겠느냐? 하고 궁내대신과 부윤(행정 책임자)과 장로들과 왕자를 교육하는 자들이 우리는 당신의 종인즉 아무도 왕을 세우지 않을 것이요 무슨 명이든지 복종할 것이라”는 회답을 보내온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후는 다시 편지하여 보내기를 “만일 너희가 내 편이 되어 내 말을 들으려면 너희 주의 아들된 사람들의 머리를 취하여 내일 이 시간까지 나오라” 한즉, 6~7절에서 그때에 그 70인들이 교육하는 자들과 함께 있었으므로 편지가 전달되자 “전부 죽여 그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이스르엘에 있는 예후에게로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르엘과 사마리아와의 거리는 32㎞쯤 됩니다.

3) 8절에서 예후는 갖고 온 왕자들의 머리를 성 밖에 내일 아침까지 두 무더기로 쌓아 놓고 기다리게 하였다가 9절에서 다음날 아침에 나가서 뭇 백성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의롭다 나는 내 주를 배반하여 죽였거니와 이 여러 사람을 죽인 자는 누구냐?” 하였으니, 그들을 죽인 자는 “예후와 같은 입장에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또 10절에서 설명하기를 “그런즉 너희는 알라 곧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왕상 21:20~22)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그 종 엘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신 것이라” 하였고, 또 11절에서는 “이스르엘에 남아 있는 아합의 집에 속한 자와 그 존귀한 자와 가까운 친구와 제사장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죽여 남기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이로서 아합에게 속한 모든 자는 아합의 집권 후 36년만에 다 멸한 것입니다.

2. 유다 왕족을 멸함(12~14절)

12~13절에서 예후가 일어나서 사마리아로 갈 때(사마리아가 왕도인즉 군림하기 위하여 가야할 것임) 노중에서 양털 깎는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한 집단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너희는 누구냐?” 물은즉 “유다왕 아하시야의 형제들로서 왕자들(북왕국 여호람의 왕자들)과 태후(이세벨)의 아들들에게 문안하러 가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 죽을 구덩이에 온 사람들과 같이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14절에서 “사로잡아 죽이라” 하여 42인이 함께 죽으므로 유다국 왕실에 큰 타격을 주었으니, 이는 유다가 하나님의 진노 받을 북왕국의 왕들과 제휴했기 때문에 함께 피해를 본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거나 못하는 자들과 제휴하면 항상 위험하다는 사실을 아tu야 할 것입니다.

3. 아합에게 속한 자들을 멸함(15~17절)

1) 15절에서 예후가 노중에서 유다의 왕족들을 죽이고 사마리아성으로 가까이 나갈 때에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이 맞으러 오는 것을 만났습니다. 이 레갑과 여호나답은 렘 35:6~19에 기사가 있기는 하나 예후와의 관계에 대하여는 알려진 곳이 없습니다. 친구나 동료로 잘 아는 사이로 짐작됩니다. 그리하여 서로 안부를 묻되 예후가 먼저 말하기를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 같이 네 마음도 (내게 대하여) 진실하냐?” 하였으니, 이것은 “마중 나온 것이 선대하는 뜻인데 그것이 진실이냐? 즉 내 편에 섰느냐?”를 확인한 것입니다. 그때 여호나답이 “그렇다” 하므로 “나와 손을 잡자” 하고 병거에 올려 태웠은즉 이는 협력자를 얻은 것입니다.

2) 16절에서 또 예후가 말하기를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 하고, 17절에서 “사마리아에 이르러 그곳에 남아 있는 아합에게 속한 자들을 죽여 진멸하므로서 엘리야에게 이르신 말씀처럼(왕상 21:20~22) 되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1차는 여호람왕과 유다 아하시야왕을 죽였고, 2차는 이스르엘에 있는 왕족과 측근들을 죽였으며, 3차는 사마리아에 있는 왕자들을 죽였고, 4차는 유다 왕족을 노중에서 죽였으며, 5차는 사마리아에 남아 있는 아합의 부류들을 다 죽이므로 군림하게 된 것입니다.

4. 바알에 속한 자들을 멸함(18~29절)

1) 18절에서 예후는 뭇 백성들을 모으고 “자신은 아합보다 바알을 더 많이 섬길 것이라” 하였으니, 이는 바알 섬기는 자들을 색출하기 위한 위장된 말이었습니다. 19절에서 “바알에게 큰 제사를 드릴 것인즉 바알의 모든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와야 할 것이요 불참하는 자는 살리지 않을 것이라” 하고, 20절에서 “큰 대회를 거룩하게 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21~22절에서 “온 지역에 두루 보낸즉 바알의 당 안에 빠진 자 없이 가득하였는데 그들에게 예복을 주어 입게 하라” 하였고, 23절에서는 “예후가 여호나답과 함께 바알의 당에 들어가서 반드시 바알을 섬기는 자만 이곳에 있고 여호와의 종은 있지 못하게 하라” 하여 죽일 대상을 정비 시킨 후에,

2) 24절에서 무사 80인을 밖에 두고 그들에게 명하기를 “바알 섬기는 자들이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려고 들어간 때에 내가 너희 손에 붙이는 사람을 죽이되 한 사람이라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만일 도망하면 자기의 생명으로 대신해야 할 것이라”고 하였고, 또 25절에서는 번제 드리기를 다 하였을 때 “예후가 호위병과 장관들에게 명하여 저들을 죽여 밖으로 던졌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26~27절에서는 “바알의 당이 있는 성으로 가서 목상들을 불사르고 헐며 당을 훼파하여 변소를 만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주밀한 계획으로 바알의 잔재를 없앤 것입니다.

3) 그러나 28~29절을 보시면 “예후가 이렇게 이스라엘 중의 바알은 멸하였으나,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러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않았으니 그 이유를 알아보셔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아사왕과 여호사밧왕이 개혁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왕상 15:14, 22:44).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도와 성전제도는 엄격한 율법에 근거하였는데, 여러보암이 북왕국 이스라엘을 분국시키면서 백성들을 단합시키고 남방 유다의 종교제도(예루살렘에 절기차 올라가는 일들)에 이끌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율법을 어기고 자율제단을 벧엘과 단에 세운 것은 이질적 신앙으로 크게 잘못된 것이었습니다(왕상 12:28~31).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람이 이를 책망하고 예조를 보이며(왕상 13:1~5) 그의 멸망을 예고하였습니다(왕상 14:14~ 16).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하는 왕들이 이방 종교의 제도는 훼파하면서도 그것을 훼파하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그 제도를 하나님 섬기는 유일 방책으로 알 만큼 율법을 몰랐기 때문이요, 만일 잘못을 알았다 할지라도 예루살렘 성전을 인하여 남방 유다와의 통합을 이룰 수 없는 정치적 여건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북왕국 이스라엘은 신앙적으로는 율법을 떠난 자율 종교가 되었고, 제도도 자율화 되었으며, 종교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함이 된 것입니다. 지금도 종교를 정치적 목적으로 쓰는 나라치고 평안한 나라가 없는 줄 압니다.

5. 예후의 마지막 역사(30~36절)

1) 30절에서 예후의 혁명적 활동을 보신 하나님이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하였고, 또 아합의 집에 대하여도 하나님의 뜻대로 다 하였으므로 4대의 왕위를 계승시켜 주시겠다” 하였으니, 유감도 있지만 공은 공대로 갚아 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대의 세습이란 예후 28년(왕하 10:36), 여호아하스 17년(왕하 13:1), 요아스 16년(왕하 13:9), 여러보암 2세 41년(왕하 14:23), 스가랴 6월(왕하 15:8)까지 75년을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리신 것은 누구를 통하여 나타내셨는지는 기록이 없으나 예후를 세운 것이 엘리사 선지자인즉 이 예언도 엘리사를 통하여 주셨겠지요.

2) 31절에서 “예후가 율법을 지켜 행하지 못하고…여러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한 것”은 29절의 설명처럼 여러보암이 만든 자율 종교를 유일책으로 알고 잘못 따랐기 때문입니다. 32~33절에서 “이때에(예후가 통치하던 시기 중일 듯함) 하나님이 비로소 이스라엘을 찢으셨다” 하셨으니, 이는 아람왕 하사엘이 요단 동편 길르앗 땅, 곧 갓 사람과 르우벤 사람과 므낫세 사람의 땅(요단 동편 전역을 뜻함), 아르논 골짜기에 있는 아로엘(네게브 지역에도 아로엘이 있지만 그곳은 본문과 상관이 없고, 사해바다 중앙에서 동쪽으로 25㎞쯤 르우벤 지파의 땅 남단에 있는 곳임)에서부터 (그 북쪽) 길르앗과 바산(요단 동편과 갈릴리 바다 동편임)까지 찢어갔은즉, 이는 요단 동편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지파에게 분배된 땅을 뺏긴 셈입니다.

3) 34~36절에서는 예후의 남은 사역이 역대지략에 기록된 점(왕상 14:19)과 예후가 사마리아에서 28년을 다스린 후 죽어 사마리아에 장사된 일과 그 아들 여호아하스가 대를 이어 이스라엘 11대 왕이 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아하스가 이스라엘 왕이 되었을 때, 남방 유다국에는 14대 요아스왕이 통치할 때였습니다.

제 17 과 아달랴와 요아스 (왕하 11:1~21) 목록으로


여기에 나타난 내용은 남방 유다 왕통에 대한 말씀입니다. 북 이스라엘에서 예후가 혁명을 일으켜 요람왕을 나봇의 밭에서 죽였고(왕하 9:24), 또 요람과 함께 싸웠던 남방 유다왕 아하시야도 죽었은즉(왕하 9:27) 남방 유다에도 정변이 일어난 것인데, 같은 시기에 남방 유다의 왕자들이 북이스라엘왕 요람의 안부를 물으러 이스르엘로 가다가 예후를 만나 노중에서 42명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런즉 남방 유다에는 왕손이 귀해진 것입니다. 아하시야왕도 죽었고 대부분의 왕손들도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때에 죽은 여호람(아하시야의 부왕)의 왕비가 아달랴인데, 이 여인은 아합의 딸이요(왕하 8:17~18) 이방 여인 이세벨의 딸도 됩니다(왕하 9:22). 왕손이 대부분 죽었으면 남은 자라도 찾아서 왕을 세우고 자신이 섭정을 하면 되는데 오히려 남은 왕손을 찾아 죽여 없애고 자신이 왕으로 군림한 것입니다. 그런 중 왕손 하나라도 살리려고 여호람왕의 딸이요 아하시야의 누이인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자기의 조카임) 요아스를 숨겨 6년을 키운 다음에 그의 나이 7세때 그의 남편인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합력하여 아달랴를 죽이고 요아스로 왕되게 하는 내용입니다. 어미가 어떻게 아들들을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될 수 있는가? 하시겠지만 악한 여성인즉 충분히 자기 아들도 죽이려 하였을 것인데 제 생각으로는 이때에 요아스가 아달랴의 직계 혈통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겠지요. 자기 혈통이 다 죽고 다른 여인의 혈통이 왕될 바에는 자기가 권세를 잡기 위하여 그런 망발을 감행한 줄 압니다. 왕하 12:1에서 요아스의 어미는 브엘세바 여인 시브아이니까요. 본문의 대지를 나누면 ① 1~3절은 “왕의 씨를 진멸함”이요, ② 4~12절은 “요아스를 왕되게 함”이고, ③ 13~21절은 “아달랴를 죽임”입니다.

1. 왕의 씨를 진멸함(1~3절)

1절에서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가 그 아들의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씨를 진멸하였다” 하였으니, 악한 여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정도 없고 왕실 예의도 없으며 권세욕만 있는 여인으로 보여집니다. 2절에서 “요람왕의 딸이요 아하시야의 누이인 여호세바가 왕자의 씨를 진멸하는 위급한 상황에서 아하시야의 아들 갓난애기(1세)를 도적하여 자신과 유모가 침실에 숨겼다가 하나님의 전으로 데리고 가서 6년간 숨어 키웠고(대하 22:11~13), 그동안은 아달랴가 스스로 왕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시기는 대체로 주전 853~847쯤 되고, 북왕국에는 예후가 집권하였습니다.

2. 요아스를 왕되게 함(4~12절)

1) 4절에서 아달랴가 왕된지 7년에 여호야다(아하시야, 아달랴 때의 대제사장이고 여호세바의 남편임, 대하 22:11~12, 여호세바는 대하 22:11에서 여호사브앗이라고도 표기되어 있음)가 가리 사람(다음에 설명드림)의 백부장들과 호위병의 백부장들을 불러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서 저희와 언약(복종의 뜻)을 세우고, 또 여호와의 전에서 맹세케 한 후에 왕자(요아스)를 보이고 (아달랴를 없애고) 요아스로 왕 세우는 절차를 명하였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가리 사람”이란 특수한 용어가 연구상의 문제입니다. 이 용어는 원문 그대로의 음역일 것입니다. 공동번역에도 “가리”로 표기되었으나 영문성경에서는 이 용어 대신 “charge of davids body guards”(삼하 9:18)를 대신 썼습니다. 그렇다면 이 가리 사람은 힘센 경호원(royal body guard, 왕상 1:38)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왕상 1:3에서 솔로몬을 왕 세울 때 “그렛 사람, 블렛 사람”을 시켜 일을 감행하였기 때문에 “가리”가 “그렛”의 와전된 용어로도 이해합니다. 소아시아 남서부에 “카리아”가 있는데 그 주민들이 용맹하여 그들을 고용인으로 데려다가 중요한 사람의 보디가드직을 맡긴 것으로 사료됩니다.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대관할 때 그들로 경호직을 맡겼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가리”란 직명, 또는 지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 5~8절에서 여호야다가 가리 사람인 백부장들과 호위병에게 명하되 “병력 중 1/3은 왕궁을 지키고 1/3은 수르문(수르는 바위란 뜻, 대하 23:5에서는 기초문이라 하였은즉 예루살렘 궁전의 한 문을 뜻함)에 있고 1/3은 호위대 뒷문에 있으면서 왕궁을 주의하여 지켜 방어하고 안식일에 출번(교대 근무)하는 너희 중 두 대(부대)는 여호와의 전을 주의하여 병기를 잡고 지켜 왕(요아스)을 호위하되 무릇 반열(11절 참고)을 침범하는 자는 죽이고(요아스를 왕 세우는 것을 미리 알고 해치려는 자가 있을 것을 경계한 것) 왕의 출입이 있을 때(새 왕을 지지하는 시위) 시위하라”고 하였습니다.

3) 9~12절은 준비한 대로 안식일에 성전 마당에서 대관식을 행한 내용입니다. 9절은 당일에 근무할 용병들이 나왔고, 10절에서는 제사장이 하나님의 전에 있는 다윗왕의 창과 방패를 주었으며, 11절에서는 “제단 앞에서 전의 좌우편으로 정렬하여 새 왕을 호위” 하였고, 12절에서는 “제사장이 왕을 인도하여 면류관을 씌우고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매 무리가 박수 치며 왕의 만세를 불렀다”고 하였습니다. 유다 14대 요아스왕의 대관식을 한 것입니다.

3. 아달랴를 죽임(13~21절)

1) 13~14절에서 “아달랴가 (안식일이므로 제사드리기 위하여) 호위병과 백성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본즉 새 왕이 규례대로 대위에 섰고 장관들과 나팔수가 왕의 곁에 모셨으며 온 국민이 즐거워하여 나팔을 부는지라 옷을 찢으며 반역이라 반역이라” 하였을 때, 15절에서 제사장이 백부장들에게 명하여 “반열(경호원이 섰는 곳) 밖으로 몰아내고 저를 따르는 자는 칼로 죽이라” 하였으니, 이 뜻은 “성전 마당에서 죽이지 말고 나가서 죽이라”는 뜻이었으므로, 16절에서 “성전 밖 왕궁의 말 다니는 길로 통과할 때 죽임을 당하였다”고 하였습니다.

2) 17절은 제사장이 모든 이들로 언약을 세워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고(실천을 강조한 뜻) 왕과 백성들 사이에도 언약을 세우게 하였으니, 왕은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고 백성들은 하나님과 왕에게 충성할 것을 맹세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18절에서는 바알의 당과 우상들을 훼파하고, 그 단 앞에서 바알 제사장 맛단을 죽였으며, 또 제사장이 관리들을 세워 여호와의 전을 수직케 하였습니다. 이때에 왕이 어렸기 때문에 요아스왕의 고모부인 여호야다 대제사장이 실권자로서 통치를 하였을 것입니다.

3) 19절은 왕을 호위하는 군인들과 백성들이 “왕을 궁궐로 인도하여 왕좌에 앉게 하였다” 하였고, 20절에서는 온 국민이 즐거워하였고 성중이 평온하였는데 전왕 아달랴는 “왕궁에서 칼로 죽였다” 하였으니, 이는 16절의 “왕궁 말 다니는 길에서 죽였다”는 내용과 같은 뜻이요, 21절에서 그때 요아스는 7세였다고 하였습니다. 요아스는 40년 재위하였으니 그 기간은 북왕국 예후왕 7년부터 예후의 남은 재위 기간 21년과 여호아하스왕 16년을 지나 요아스왕 3년(16년 재위)까지 재위한 셈입니다. 요아스가 왕된 것은 여호야다와 그 부인(대제사장과 고모)의 덕분이었지만 사실은 “다윗의 왕통을 잇게 해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입니다(왕상 11:36, 왕하 8:18, 26, 대하 21:7).

제 18 과 요아스의 치적(治蹟) (왕하 12:1~21) 목록으로


본문 ① 1~3절은 “요아스의 치적평가”이고, ② 4~16절은 “요아스의 성전수리”이며, ③ 17~21절은 “하사엘의 침략과 요아스의 죽음”입니다. 전체를 포괄하여 “요아스의 치적”으로 총 제목을 정할 수 있습니다.

1. 요아스의 치적평가(1~3절)

1) 1절에서 북왕국왕 예후 7년(28년 재위)에 요아스가 7세때에 남방 유다 14대왕이 되었고 예루살렘에서 40년 치리하였으며 그 모친의 이름은 브엘세바(헤브론 서남방 40㎞쯤) 여인 “시비아”라고 하였습니다. 요아스가 성인되기까지 여호야다 제사장이나 그 모친이 섭정을 하였을 것입니다.

2) 2절에서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는 동안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니” 이는 어린 나이에 어른의 말을 잘 들었기 때문이고, 3절에서 “오직 산당은 제하지 않았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 산당에 대하여 아셔야 할 것은 이것이 자율종교 시설을 의미합니다. 북이스라엘의 여러보암왕이 예루살렘 성전에 가는 것을 대신 또는 금지하기 위하여 벧엘과 단에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는 자율제단을 세웠고, 다른 곳에는 대부분 바알제단 같은 이방신을 섬기는 제단이 있었으므로 거의 다 이질적 제단이었는데 남방 유다는 솔로몬의 성전에서 정통적 제사를 드렸지만 그 이전부터 산당제사가 정통적으로 허용된 일이 있었는데(왕상 3:2) 점차 이질화되어 백성들이 행하지 말아야 할 자율제단을 여기저기 만들어서 제사 분향을 하였으니, 이는 그의 선왕 여호사밧이나 여호람 때부터 북방 이스라엘과 제휴하면서 종교적 혼란을 허용한데서부터 용인된 사실로 크게 잘못된 일이지만 이것을 제하지 못한 이유는 자율종교에 전통화된 백성들의 분노를 잠재시킬 힘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종교적 전통은 개인 신앙으로 확보되지 못하면 항상 위험합니다.

2. 요아스의 성전수리(4~16절)

1) 4~5절은 “요아스왕이 제사장들에게 성전수리를 명한 말씀”입니다. 성전은 요아스 자신이 7년간 은신한 곳이므로 애착이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의 “기록하게 하여 드림”이란 성도가 물질을 하나님께 드릴 때 “구별한다”는 의미가 있고, 그것이 하나님께 바쳐졌을 때는 하나님의 것으로 순결하게 취급되어야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헌금을 거두어 드린 명목을 세 가지로 말씀하셨는데 ① “사람의 통용하는 은”이란 출 30:11~12에 근거하여 생명을 살려주신 속전으로 드리는 인두세(人頭稅)를 뜻하고, ② “몸값으로 드리는 은”은 레 27:2~8에 근거하여 하나님께 헌신하고 그 헌신의 댓가를 은으로 환산하여 드리는 것을 의미하며, ③ 또 “자원하여 드리는 것”이 있다고 하였습니다(출 36:3~7). 5절에서 “그것을 제사장들이 각각 아는 자(공동번역에서는 취급자로 되어 있음)에게서 받아 전의 어느 곳이든 퇴락한 곳을 수리하라” 하였으니, “각각 아는 자”란 성전공금 취급자가 잘 내놓지 않는 것을 받아내어 쓰라는 명령인 듯 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성전이 퇴락한 것은 대하 24:6~7에 근거할 때 “요아스의 선왕 아달랴가 성전을 깨트리고 성전의 성물을 바알에게 드렸다”고 하였은즉, 상당하게 훼손된 것이 사실인데, 이것을 여호야다 제사장이 집권하였을 때 세금을 거두어 수리하는 일을 하지 않아서 요아스왕이 장성하였을 때 명령을 한 것입니다.

2) 그런데 6절에서 “요아스왕 27년이 되도록 시행하지 않았다” 하였으니, 이는 요아스가 성장하면서 여호다야와 뜻이 맞지 않는 알력이 생겼거나 빈곤 때문인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요아스왕은 7절에서 “여호야다를 불러 문책하고 이제부터는 너희 아는 사람(재정 취급자)에게 비용을 받아쓰려 하지 말고 저희(백성들)로 성전수리비를 드리게 하라”고 하였는데, 8절에서 제사장들이 “다시는 백성에게 은을 받지도 아니하고 하나님의 전 퇴락한 것을 수리하지도 아니하기로 응락하였다” 하였으니, 이 뜻은 “수리비를 백성들에게 모금하여 하는 일은 할 수 없다”고 거절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모금 자체가 약간의 강요가 따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에서 왕명이 제사장들에게 잘 통하지 않은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왕노릇할 때 요압이 실권을 잡았던 것처럼 이 경우에도 요아스왕이 여호야다의 힘을 꺽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것이 나중에 요아스가 여호야다의 아들 스갈랴 제사장을 죽인 원인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대 24:20~22). 요아스는 성장하면서 신앙을 버렸습니다(대하 24:15~19).

3) 9~12절은 모금 유통과정을 기록한 말씀으로 자유로운 헌금을 드리게 하기 위하여 “헌금함을 별도로 만들어서 제단 옆에 두고 성전에 오는 자들의 헌금을 거기에 넣게 하였으며 많이 모금된 것을 보면 서기와 대제사장이 와서 집계하여 일 맡은 자에게 전하였고 또 일 맡은 자는 그 다음 건축자들에게 주었으며 수리에 필요한 물건들도 사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13~14절은 “그때 모금된 헌금으로는 성전 수리비로만 쓰고 기명을 만드는 데는 쓰지 않았다” 하였고, 15절에서는 헌금취급을 성실히 하였음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물질은 집계하는 자와 전달하는 자와 사용하는 자가 다 성실해야 합니다. 16절에서 “속건제의 은과 속죄제의 은은 여호와의 전에 드리지 않고 제사장에게 돌렸다” 하였으니, 이것은 제사드릴 때에 제물 외에 제사장의 수고를 답례하는 뜻으로 사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민 5:9~10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속건제(레 5:13~16, 민 6:2~6)나 속죄제(레 4:22~26, 민 5:6~8)를 개인적으로 드리는 경우에 제사장의 중보사역에 대하여 사례하는 예물은 제사장 몫이 되므로 그것으로는 성전수리비에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3. 하사엘의 침략과 요아스의 죽음(17~21절)

1) 17절에서 “때(요아스 말년)에 아람왕 하사엘(왕상 19:15, 왕하 8:8~15)이 가드(삼하 1:20, 왕상 2:19)를 쳐서 취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려 한고로, 18절에서 유다와 요아스가 왕궁에 있는 모든 금과 성전 곳간에 있는 금(열조, 여호사밧, 여호람, 아하시야와 자신이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린 것)을 모두 하사엘에게 바친즉 하사엘이 예루살렘을 떠났다”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은 대하 24:15~27에 더 자세히 기록되었습니다. 살펴보면 여호야다가 130세에 세상을 떠났고(대하 24:15), 방백들이 왕에게 이방종교(아세라 목상)로의 개종을 제청하였으며(대하 24:17), 요아스왕이 이에 동하자 하나님이 선지자들(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 등)로 하여금 깨우쳤으나 듣지 않았고 또 여호야다의 베푼 은혜를 배반하며 그의 아들 스가랴 제사장(선지자)을 죽였다(대하 24:18~ 22)고 하였습니다. 이때 스가랴 선지자는 하나님께 감찰을 호소하였고(대하 24:21~ 22), 예수님도 그 사실을 증언하셨습니다(마 23:35, 눅 11:51). 따라서 아람의 침략은 요아스가 스가랴를 죽인 후 1년 만에 일어난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것이었습니다(대하 24:23~25). 19절은 역사기록에 대한 말씀입니다(왕상 14:19).

2) 20~21절은 요아스의 죽음 기사입니다. 요아스왕 40년(1절)에 그의 신복들이 모반하여 실라(예루살렘 근처의 성읍)로 내려가는 길가의 밀로궁(요새로 지은 별궁, 삼하 5:9, 왕상 9:15, 24)에서 죽였는데, 저를 죽인 신복은 시므앗의 아들 요사갈(대하 24: 26, 사밧으로 됨)과 소멜의 아들 여호사바드(대하 24:26, 시므릿의 아들로 됨)라고 하였습니다. 이때에 그 시신은 다윗성에 장사하고 그 아들 “아마샤”가 15대 왕이 되었고, 그 당시에 북왕국의 왕은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12대) 2년이었습니다(왕하 14:1). 설교보충 13과 “유다왕 요아스”란 설교문을 참고하십시오.

제 19 과 여호아하스와 요아스의 역사 (왕하 13:1~25) 목록으로


본문에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두 왕 여호아하스(예후의 아들, 11대 왕)와 요아스(예후의 손자, 12대 왕)에 대한 역사가 짧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① 1~9절은 “여호아하스의 역사”요, ② 10~19, 22~25절은 “요아스의 역사”이며, ③ 20~21절은 “엘리사의 죽음과 시체 회생”입니다.

1. 여호아하스의 역사(1~9절)

1) 1절 말씀은 “유다왕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 23년에 북왕국은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11대 왕이 되어 17년을 다스렸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왕된 시기는 주전 817년경입니다. 2절에서 “(여호아하스가)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러보암의 죄를 좇고 떠나지 않았다” 하였으니, 이 여러보암의 죄는 왕상 12:27~33, 13: 33~34, 14:6~9에 근거한 자율주의종교와 우상종교를 만들어 백성이 따르도록 만든 것이요, 이는 북왕국이 망할 때까지 시정되지 않았습니다.

2) 3~4절에서 (이로 인하여)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를 발하사 늘 아람왕 하사엘의 손과 그 아들 벤하닷(3세)의 손에 붙이시므로 그들의 학대를 인하여 왕이 하나님께 간구하였고 하나님이 저희의 학대 받음을 보셨으므로 들으셨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왕이 “하나님께 간구한 것”은 여러보암의 자율종교에 따라가므로 악을 행하고 있지만 기도와 신앙의 대상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의 간구를 들으신 것은 저희(이스라엘 백성)의 학대를 보시고 선민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3) 5절에서 “여호와께서 이에 구원자를 이스라엘에게 주시매(사사시대부터 그러하였음, 삿 2:16, 3:9) 이스라엘이 아람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 자기 장막에 거하였다” 하였으니, 이 사실은 가까운 시대에 있었던 사실로서 엘리사 선지자가 아람군사의 눈을 어둡게 하여 본국으로 돌려보낸 사실이라든지(왕하 6:22~23), 또 아람군이 사마리아성을 포위하였을 때 하나님이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여 아람군을 후퇴 시키신 사실(왕하 7:6~7)들이 이 말씀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6절에서는 여러보암의 죄(2절에서 설명됨)와 또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 세운 것을 지적하셨는데, 이 아세라 목상은 왕상 16:33에서 아합과 이세벨이 세운 것으로 선민들이 이질적 종교(잘못된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와 이방 우상종교를 숭배한 죄로 하나님이 아람을 들어 선민의 몽둥이로 쓰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4) 7절에서 “아람이 여호아하스의 백성을 진멸하여 타작마당의 티끌같이 되게 하였다” 함은 여호아하스 때에 하나님의 몽둥이로 맞은 것이었고, 국력이 약한 상태에서 아람의 침략으로 크게 눌림 당한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아람의 지배를 받는 입장이 되었고, 아람의 지배에 의하여 “마병 50과 병거 10승과 보병 1만 외에는 여호아하스에게 남겨두지 않았다” 하였으니, 이는 왕에 대한 경호와 내란수습을 위한 최소한의 병력만 허용하고 전쟁병력은 갖지 못하게 한 것을 의미합니다. 8~9절에서는 여호아하스의 남은 역사가 역대지략에 기록된 사실과 17년 집권 후에 죽으므로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 요아스가 12대 왕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때는 주전 803년경입니다.

2. 요아스의 역사(10~19, 22~25절)

1) 10~13절에서는 요아스가 왕 된 시기에 남방유다 왕은 14대 요아스 37년(40년 재위)이었고, 북왕국왕 요아스는 16년 재위하였으며, 유감스럽게도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 있지 못하였고 여전히 하나님 앞에 악한 왕으로 남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과(40년 치세 중 성경으로 기록될 만한 것이 별로 없은 뜻) 유다왕 아마샤와 싸운 권력(왕하 14:8~14에 부분 기록 있음)이 왕실 역대지략에 기록되었다 하였으며, 요아스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이스라엘왕들과 함께(죽음을 뜻함, 살전 4:13)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 여러보암(2세)이 13대 왕이 되었습니다.

2) 14~19절은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었을 때 아람을 쳐서 승리할 일에 대하여 예언한 말씀입니다.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능력있게 역사한 선지자도 병들어 죽었으니, 이는 하나님이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섭리임) 이스라엘왕 요아스가(위문하기 위하여) 저에게로 내려가(사마리아에서 갈멜산으로 간 듯 함) 그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망병이여” 하였으니, 이는 요아스가 여러보암의 죄를 떠나지 못하였더라도 엘리사가 요아스의 조부 예후를 왕세워 왕통을 이어받게 한 일과(왕하 9:1~13, 30) 나라의 간성이 되어 준 것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아스는 자기의 선왕 여호람 때에 엘리사가 불말과 불경거로 보호를 받고 사마리아 군인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돌려보낸 일 등의 역사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왕하 6:14~23). 선지자 한 사람의 역할이 나라를 지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으니까요(왕하 7:6). 이 요아스는 북왕국의 왕인즉 남왕국왕 요아스와 혼돈하지 마십시오.

3) 15~17절은 요아스왕이 아람을 칠 것에 대한 에언입니다. 요아스왕이 눈물을 흘리며 병문안을 한 일에 대한 선지자의 답례도 있어야 하지만 북왕국 백성들도 야곱의 자손들로서 선민인 만큼 하나님의 권고가 떠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22~23절). 이 예언을 엘리사가 병든 몸으로 일어나서 요아스에게 활을 잡게 한 후 자기의 손으로 왕의 손을 안찰하고(능력을 전달한 뜻) 동편 창을 연 후에(아람이 있는 쪽) 화살을 쏘라고 하였습니다. 화살을 쏜즉 “이는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살이므로 장차 왕이 아람 사람을 진멸하도록 아벡(성경에 다섯 곳이 있음, 이 지역은 갈릴리 바다 동편 다메섹 가는 길목임, 왕상 20:26, 30)에서 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예언의 확신을 주는 모형적 계시의 방법입니다.

4) 18~19절도 비슷한 방법으로 또 계시를 전달하였는데 왕으로 하여금 살(화살)들을 취하게 한 후 땅을 치게 하여 세 번을 친즉 “왜 5, 6번을 치시지 세 번만 치셨느냐? 하면서 세 번을 쳤은즉 아람을 세 번만 칠 것이라 5, 6번을 쳤더라면 진멸하도록 쳤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계시의 의미는 왕의 의지 결단에 따라 하나님이 은혜를 더 주시고 덜 주실 것을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화살을 쏠 때 이미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라” 한 만큼 아람을 힘있게 치기 위하여 강한 의지로 여러 차례 쳤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소원따라 의지따라 은혜를 주시는 것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구하는 이 마다 얻을 것이라” 하였고(마 7:8~9), 또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뺏는다”(마 11:22) 하신 말씀이 이런 문제를 말씀한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엘리사 사역의 마지막이지만 21절에 또 한 가지 사건이 있으니 살펴보십시오.

5) 22~23절은 “요아스의 선왕 여호아하스 때에 아람왕 하사엘이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하였으나(이는 여러보암의 죄를 계승한 때문임, 2, 11절) 하나님이 선민에게 세우신 언약을 인하여 이스라엘에 은혜를 베풀어 긍휼히 여기시므로 권고하사 멸하기를 즐겨 아니하시고 이때까지(아주 멸할 때까지) 자기 앞에서 쫓아내지 않으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택 받은 은혜와 복 주신다는 언약 때문에(이 언약은 선민의 세 조상들과 모세와 여호수아 때에 하신 것임, 창 22:16, 12:1~2, 17:7~8, 출 32:13, 수 1:5) 백성들의 범죄를 아시면서도 긍휼을 베푸사 은혜를 베푸시고 권고하셨으며 멸하기를 즐기지 않으시고 이때까지(940년~690년) 쫓아내지 않으셨으니, 그 기간이 250년이 되는 것입니다. 선택과 언약과 긍휼이 은혜 받는 근거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6) 24절은 아람왕 하사엘이 죽고 그 아들 벤하닷(3세)이 왕되었다 하셨고(BC. 782년경), 25절은 18~19절의 예언이 응한 것을 말씀하신 내용으로 “요아스가 벤하닷의 손에서 그 아비 여호아하스 때에 뺏긴 성읍들 중 두어 성읍을 뺐었고 또 세 번을 쳐서 파하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다”고 하였습니다.

3. 엘리사의 죽음과 시체 회생(20~21절)

이 말씀에서 “엘리사는 (요아스왕 때에) 세상을 떠났고 엘리사가 죽은 이듬해에 모압이 이스라엘 지경을 범(침략)하였는데 그때 마침 장사하는 사람들이(모압적당을 인하여 장사 지낼 겨를이 없자)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났다”고 하였습니다. 회생하여 일어났은즉 분명한 부활입니다. 이것은 엘리사를 통한 역사는 아니요 하나님의 역사인데 하나님이 엘리사의 시신을 접촉시켜 부활의 능력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에 있었던 역사이지만 오늘의 성도들에게 “은혜있는 사역자의 시체를 보존하라”는 의미를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으면 그 몸이 흙으로 돌아간다”고 하셨으니까요(창 3:19). 이상의 말씀에서 교훈 받으실 것은 이스라엘이 선민이기 때문에 죄를 범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신 점, 끊질긴 여러보암의 자율종교와 우상숭배 존속, 선지자 한 사람으로 나라의 간성이 되게 하시는 점, 아람을 몽둥이로 쓰시는 징계의 섭리, 능력을 나타낸 사역자라도 하나님이 다 쓰시면 보통 인간으로 돌아간다는 점 등을 깨닫게 하십니다.

제 20 과 아마샤와 여로보암(2세) (왕하 14:1~29) 목록으로


본문 ① 1~6절은 “아마샤에 대한 기록”이고, ② 7~14절은 “아마샤와 요아스의 싸움”이며, ③ 15~20절은 “요아스와 아마샤의 죽음”이요, ④ 21~29절은 “아사랴와 여로보암에 대한 것”으로 나누어 살필 수 있습니다. 이 말씀 중에 아마샤왕의 계승자는 아사랴이고, 요아스왕의 계승자는 여로보암(2세)이기 때문에 이 본문에는 아마샤(유다왕), 요아스(이스라엘왕), 아사랴(유다왕), 여러보암(이스라엘왕), 스가랴(이스라엘왕)까지 다섯 왕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 중 대표자가 “아마샤와 여러보암(2세)”이기 때문에 총 제목을 위와같이 정한 것입니다.

1. 아마샤에 대한 기록(1~6절)

1) 1~2절은 “이스라엘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12대) 2년에 유다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15대)가 왕이 되니(이때는 주전 799년경이요) 위에 나갈 때에 25세였고 예루살렘에서 29년을 치리하였으며 그 모친의 이름은 여호앗단이고 예루살렘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아마샤 29년은 북왕국의 여러보암(2세)왕 27년이 됩니다.

2) 3~4절은 아마샤의 선악에 대한 평가로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한 뜻) 그 조상 다윗과는 같지 못하였으며(탁월하지 못한 뜻) 그 부친 요아스의 행한대로 다 행하였어도(요아스왕은 바알의 산당을 제하고 성전수리에 힘썼으나 말년에 타락하였음, 왕하 12:4~12, 17~18, 대하 24:20~21)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고 분향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마샤가 제하지 않은 유다의 산당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산당에 비할 때 꼭같은 성격의 제사 시설은 아닐 것입니다. 북왕국의 산당은 단과 벧엘에 있는 이질적 제단에서 파생, 또는 이방우상의 제단을 뜻하나(왕상 13:1~3, 33~34) 유다의 산당은 예루살렘의 성전제도에 부속된 산당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솔로몬 성전건립 이전에 사용되었으나(왕상 3:4~5, 대상 16:39, 삼상 9:12~14) 솔로몬 성전건림 이후에는 단일 성전제도를 강조하였으므로(왕상 8:29~30, 33, 44) 없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왕하 13:2, 6, 11).

3) 5~6절에서 아마샤는 나라가 그의 손에 굳게 섰을 때 그 부왕(요아스)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으나 그 자녀들은(율법에 따라, 신 24:16) 죽이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부왕 요아스를 죽인 자는 왕하 12:20~21에서 왕의 신복 시am앗과 여호사바드였습니다. 6절 말씀은 연좌제를 허용치 않은 말씀으로 신 24:6을 인용한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왕이 잘못하였어도 그를 해롭게 하지 않았고(삼상 26:11), 요아스의 두 신복은 요아스가 타락하여 의로운 선지자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죽이는 등(대하 24:20~ 21) 악을 범하므로 모반하여 죽였는데 이런 일이 하나님의 허락(예후의 혁명처럼)에 의함이 아니었으므로 결국 죽임을 당한 줄 압니다.

2. 아마샤와 요아스의 싸움(7~14절)

1) 7절에서 아마샤가 염곡(사해 남부 8㎞쯤의 지점으로 소금 골짜기란 뜻)에서 에돔 사람 1만을 죽이고 셀라(에돔의 성읍, 바위란 뜻)를 정복하고 그 이름을 욕드엘로 고쳤으니 “욕드엘”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정복한 뜻이라고 합니다. 이 염곡에서는 다윗왕도 에돔인 18,000이나 죽인 일이 있었습니다(삼하 8:13). 8절에서 아마샤는 이 승리의 여세를 따라 북왕국왕 요아스에게 싸움을 걸었습니다. “사자를 보내어 오라 우리가 서로 대면하자” 하였으니, 여기의 “서로 대면하자”한 것은 싸움을 거는 뜻, 곧 겨루어 보자는 뜻입니다. 요아스의 조부 예후가 아마샤의 조상들을 죽인 일이 있으므로(왕하 10:14) 그 감정을 갖고 싸우려 하였을 것입니다. 에돔도 쳤고 사기도 있은즉 조상의 원수를 갚으려고 싸움을 걸었는데,

2) 9~10절에서 요아스의 답변은 “레마논 가시나무(유다를 비유한 것)가 레바논 백향목(이스라엘을 비유한 것)에게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라 하였더니(과거에 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아하시야는 북왕국의 공주들을 왕후로 삼았음, 왕하 8:18, 27, 대하 18:1, 21:6) 레바논의 들짐승들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나니라” 하였으니, 이 뜻은 과거에 양쪽 왕실간에 사돈을 맺고 잘 지냈으나 들짐승(외적들)이 그 가시나무를 짓밟은 것처럼 모든 친교관계가 다 없어졌으니 이제는 싸울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10절에서 또 계속 말하기를 “네가 에돔을 파하였다고 마음이 교만해진 것인데 스스로 영광을 삼아 궁에 거함이 좋을터인데 어찌하여 화를 자취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려 하느냐” 하였으나 아마샤가 듣지 않고,

3) 11~14절에서 벧세메스(수 15:10, 삼상 6:9, 예루살렘 서쪽 24㎞쯤)에서 대면(싸운 뜻)한즉 유다가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니 아마샤를 사로잡아 예루살렘까지 들어가서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북쪽에 있는 문, 에브라임 지파의 땅으로 들어가는 문)에서부터 모퉁이 문(성의 방향이 꺾이는 곳에 있는 문)까지 400규빗(600척, 191m쯤)을 헐고 성전과 왕궁에 있는 모든 기명을 취하고 또 사람을 볼모로 잡아 사마리아로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아마샤를 13절에서 사로 잡았으나 19절에서 그의 부왕처럼 모반을 당한 것을 보면 요아스가 예루살렘의 재물을 가져간 후에 다시 놓아준 것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왕들이 처음에는 잘 하다가 솔로몬(왕상 11:4~5), 요아스(유다, 왕하 12:20, 대하 24:15~23), 아마샤(대하 25:27)처럼 나중에 타락하고 악한 일로 벌을 받은 사례가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요아스와 아마샤의 죽음(15~20저)

1) 15~16절은 “이스라엘왕 요아스의 더 자세한 역사가 역대지략에 기록된 것과 요아스가 죽은즉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예후의 증손) 여로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하였고, 17절에서 “요아스가 죽은 후에 유다의 아마샤왕은(29년을 재위하였으므로) 15년을 더 생존하였으며”, 18절에서 “아마샤의 남은 행적은 유다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었다”고 하였습니다.

2) 19절에서 “예루살렘에서 무리들이 아마샤를 모반한고로 아마샤가 라기스(예루살렘 서남방 40㎞쯤, 수 10:3, 31)로 도망하였으나 무리들이 따라가서 죽이고, 20절에서 그 시체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열조와 함께 장사하였다”고 하였습니다(대하 25:27~28). 요아스, 아마샤 부자가 다 장기 집권 중(요아스는 40년, 아마샤는 29년) 말년에 모반 당하여 죽은 것입니다.

4. 아사랴와 여로보암에 대한 것(21~29절)

1) 21~22절에서 아사랴는 그의 부친 아마샤를 대신하여 16세에 유다 13대 왕이 되었고, 집권한 후에 엘랏(아카바만, 또는 갈대해 끝에 있는 에돔의 항구, 신 2:8, 왕상 9:26)을 정복하여 건축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 아사랴는 왕하 15:13에서 웃시야로 호칭됩니다. 23절에서 아마사왕 15년(29년 재위)에 이스라엘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2세)이 사마리아에서 13대왕이 되었으니 그 시기는 주전 784년경이 됩니다.

2) 24절에서 여로보암은 느밧의 아들 여러보암의 죄(왕상 12:25~33)에서 떠나지 않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며 그 당시에 25절에서 “하나님이 그의 종 가드헤벨(수 19:13, 스블론 지파 땅의 어느 지점일 것이나 지도상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움) 사람 요나로 하신 말씀(요나 선지자가 그 시대의 사람임, 욘 1:1)처럼 여러보암이 적에게 뺏긴 땅을 하맛 어귀(북쪽 영토 경계, 신 3:17, 왕상 8:65)에서 아라바 바다(사해 남쪽 경계)까지 회복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당시의 선지자인 요나가 예언한 사실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으나 요나서에 따라 니느웨(앗수르의 수도)가 회개하였을 때 적들이 침략을 포기하는 틈에 여로보암이 영토를 회복하였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3) 26절에서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으며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 또 27절에서 “이스라엘의 이름을 도말하여 천하에 없이하겠다고 하시지 않았으므로(끝까지 보존 할 약속이 있으셨다는 뜻, 사 41:9~10, 44:21) 하나님이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로보암왕은 은혜 받을 일을 못하였지만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언약과 긍휼에 의하여 국권회복의 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의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다”는 뜻은 왕상 14:10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대적의 침략과 위협으로 인하여 정부가 힘을 잃고 통제력을 상실한 무질서한 세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4) 28절에서 “여로보암의 남은 사적과…권력으로 싸워 다메섹을 회복한 일과 이전에 유다에게 속하였던 하맛을 이스라엘로 되돌린 역사가 역대지략에 기록되었다”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큰 문제는 “하맛”의 위치 연구입니다. 지도를 보면 하맛은 르홉 남편 6㎞쯤, 즉 수넴에서 5시 방향 30㎞쯤에 한 곳이 있고, 또 한 곳은 갈릴리 바다 8시 방향 해변에 표기되어 있는데 이것은 유다의 북단 경계를 뜻하는 하맛(민 34:8, 왕상 8:65)은 아닐 것이요, 유다가 차지했던 부분이라면 르홉 남쪽의 하맛을 의미할 것입니다. 성경에는 같은 지명과 같은 이름이 여럿씩 나오기 때문에 이해하는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29절에서 “여로보암이 그 열조와 함께 죽고 그 아들 스가랴가 북왕국 14대 왕이 되었다” 하였으니 이때는 주전 734년경이 됩니다.

제 21 과 두 왕과 여섯 왕의 역사 (왕하 15:1~38) 목록으로


이 본문에는 유다왕 아사랴(웃시야)와 요담의 역사가 기록되었고(1~7절, 32~38절), 또 북왕국의 왕 스가랴,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 호세아 여섯 왕의 역사가 기록되었습니다. 호세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19대 마지막 왕입니다. 대지를 나누면 ① 1~7절은 “아사랴(웃시야)의 역사”요, ② 8~13절은 “스가랴와 살룸의 역사”이며, ③ 14~22절은 “므나헴의 역사”이고 ④ 23~31절은 “브가히야, 베가, 호세아의 역사”요, ⑤ 32~38절은 “요담의 역사”인데 여기에서 아사랴와 요담은 유다왕이고 그 이외의 왕은 다 북왕국의 마지막 왕들입니다.

1. 아사랴(웃시야)의 역사(1~7절)

1) 1~2절은 아사랴왕의 신분 설명으로 “아사랴는 유다왕 아마샤의 아들로 이스라엘왕 여로보암 27년에 유다 13대 왕이 되었는데 16세에 왕이 되어 52년을 예루살렘에서 치리하였고 그 모친의 이름은 여골리야라”고 하였습니다. 아사랴가 왕된 때는 주전 771년쯤입니다. 3~5절은 아사랴의 치적의 평가와 함께 “하나님이 그를 치셔서 문둥이가 되어 별궁에 거하였고 왕자 요람이 궁중의 일과 백성을 다스렸다”고 하였습니다. 아사랴가 문둥병자가 된 이유는 대하 26:16~21에 근거할 때 “그가 교만하여 제사장처럼 분향하려 하다가 그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아사랴가 그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것도 있었으나(왕하 14:3~7) 산당(왕상 3:2~3)은 제하지 않으므로 백성이 그곳에서 제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 산당문제는 왕하 14:4의 뜻과 같습니다. 민속종교를 근절시키는 것은 반발을 사기에 가장 적절하였을 것이요, 따라서 정치적 실권문제와 관련하여 어찌하지 못하였거나 그것을 정치에 이용하였을 것입니다.

2) 6~7절에서 아사랴의 남은 사적이 역대지략에 기록된 것은 여러 차례 언급된 말씀이고, 아사랴가 왕된지 52년만에 세상을 떠나매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요람이 14대 유다왕이 되었으니 이 시기는 주전 723년쯤입니다(대하 26:23).

2. 스가랴와 살룸의 역사(8~13절)

1) 8~9절은 다시 북왕국의 역사를 말씀하십니다. “스가랴의 왕된 일과 그의 선악관계가 여로보암의 죄처럼 악하였다고 하셨고 또 유다왕 아사랴 38년에 북왕국 여로보암의 아들 스가랴가 14대 왕이 되어 6개월 다스린 사실과 그가 왕이 된 후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은 사실”을 지적하셨습니다. 10절에서 스가랴가 왕위를 6개월로 끝낸 것은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저를 모반하여 백성 앞에서 쳐죽이고 대신 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살룸이 15대 왕이 되었으나 그는 또 한달만에 가디의 아들 므나헴에게 피살되어 단명에 끝난 것입니다(14절).

2) 11절에서 “스가랴의 남은 사적은 역대지략에 기록되었다” 하셨고, 12절에서 “하나님이 예후에게 왕위를 자손 4대까지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왕하 10:30)이 이루어졌다” 하시므로 예후와 그 아들 아하시야, 또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여로보암의 아들 스가랴까지 왕이 되므로 자손만 4대를 잇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예후와 그 자손이 치리한 기간은 전부 102년 6개월이 됩니다. 그리고 13절에서는 “유다왕 웃시야(이곳부터 또 대하 26:1부터 아사랴를 웃시야로 변칭함) 39년에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사마리아에서 15대 왕이 되어 한달을 치리하였다”고 하였으니, 이렇게 된 경위는 14절에 계속됩니다.

3) 14~15절은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디르사(수 12:15, 왕상 14:17, 사마리아 동쪽 15㎞쯤)에서 사마리아로 올라가서 살룸을 쳐죽이고 대신 왕이 되니, 16대 왕이 된 것인데 그의 남은 사적과 모반한 일은 역대지략에 기록되었다”고 하였습니다. 16~18절은 므나헴의 역사입니다. “므나헴이 모반하는 군사를 몰고 사마리아성에 왔을 때 성문을 열지 않으므로 딥사(왕상 4:24, 사마리아 부근의 장소)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과 그 사방을 쳤고 그곳에서 아이 밴 부녀를 갈랐다” 하였으니, 잔인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사마리아성을 점령하여 살룸을 쳐죽이고(14절) 왕이 되었으니, 그때는 유다왕 아사랴 39년이었고, 그곳에서 10년을 치리하며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느밧의 아들 여러보암의 죄에서 평생 떠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4) 브나헴이 10년 다스리는 기간에 19~20절에서 “앗수르왕 불이 그 땅을 치려 하매 은 1000달란트(달란트 무게는 중 42㎏, 경 21㎏이 있다 함)를 주어 자기를 돕게 하고 물러가게 하였는데 그때에 그 은을 모으기 위하여 큰 부자들에게 각 50세겔(중은 14g, 경은 7g)씩 토색하여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21절에서 “므나헴의 남은 사적이 역대지략에 기록되었다”고 하였고, 22절에서는 “므나헴이 죽으매 그 아들 브가히야가 대신 왕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보암의 고손자 스가랴(14대)부터 모반이 일어났는데 스가랴는 살룸이 죽이고 살룸은 므나헴이 죽이고 왕이 된 것입니다. 므나헴은 10년만에 겨우 아들 브가히야에게 왕위를 넘겼으나 또 평안치 않았습니다.

5) 23절에서 “브가히야가 사마리아에서 왕이 된 때는 유다왕 아사랴(웃시야) 50년이었는데, 24절에서 그도 느밧의 아들 여러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고 2년만에 25절에서 그 장관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반역하여 왕궁 호위소에서 왕과 아르곱과 아리에(이 두 사람은 왕의 측근임)를 죽이되 길르앗 사람 50명과 함께 죽이고 대신 왕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베가”는 18대 왕이 된 것입니다. 26절에서 브가히야의 남은 사적이 역대지략에 기록되었고, 27절에서 “유다왕 아사랴 52년(최종년수)에 베가가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20년을 치리하며, 28절에서 역시 악을 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9, 18, 24, 28절 참고).

6) 29절에서 “베가의 20년 통치 기간 내에 앗수르왕 디글랏 빌레셋(3세로 알려짐)이 북왕국 영토를 침범하여 온 땅(많은 지역)을 취하고, 백성을 앗수르로 잡아갔다”고 하였습니다. 베가의 다음 왕인 호세아왕은 이스라엘의 19대 마지막 왕이고, 호세아 9년에는 앗수르에게 아주 망한즉, 앗수르는 베가 때부터 북왕국을 침략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앗수르”는 그 이름의 근원이 노아의 손자(창 10:22, 셈의 아들)로 그 후손들이 바벨론 지역으로 퍼져서 처음에는 바벨론에 속하였다가 주전 1400년경에 독립하였는데, 살만에셀(주전 1280~1261년)과 디글랏 빌레셋(1세, 주전 1115~1103년) 때에 큰 나라를 이루어 그 영토가 바벨론 남방에서 지중해쪽까지 확장되었다고 합니다. 베가 때에 침략한 디글랏 빌레셋은 3세인데 이때부터 북왕국은 여로보암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고 보셔야 할 것입니다. 앗수르가 침략한 지역은 아벨벳마아가 지역(갈릴리 바다 북쪽 20~30㎞쯤의 범위를 뜻함)에 있는 이욘(아벨마아가 지역 북쪽에 있는 성읍)과 게데스와 하솔인데, 이 게데스와 하솔도 아벨마아가 지역 범위에 가까이 인접한 성읍입니다. 그리고 야노아(에브라임 지역, 실로 북쪽 12㎞쯤에도 있지만 그곳은 아니고)는 갈릴리 바다와 서쪽 갈멜산(호미곶) 중간에 있는 지역을 뜻하며, 길르앗은 요단강 동편 땅을 의미하고, 갈릴리는 그 당시에 갈릴리 바다를 중심한 행정구역을 의미합니다. 납달리는 납달리 지파가 사는 곳으로 갈릴리 바다 북서쪽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온 땅을 취했다” 함은 북왕국 영토 북쪽과 동쪽을 취하고 접근해 온 것입니다.

7) 30~31절은 웃시야(아사랴)의 아들 요담 20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베가를 반역하여 쳐죽이고 대신 왕이 되었으니 그가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고 연속 5회나 반역으로 정권을 뒤집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가의 남은 사적은 역대지략에 기록되었다고 하였습니다.

5. 요담의 역사(32~38절)

1) 32~33절에서 “요담은 웃시야의 아들로서 북왕국 베가왕 2년에 25세로 유다왕이 되었고 예루살렘에서 16년을 치리하였으며 그 모친은 사독의 딸 여루사라”고 하였습니다. 34~35절에서 “그가 웃시야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것도 있으나(왕하 15:3, 대하 27:6) 오직 산당을 제하지 못한 것은 그 선왕의 관행(왕하 15:3~4)과 같고 다만 여호와의 전의 윗문을 건축하였으며”, 36절에서 “그의 남은 사적은 유다왕의 역대지략에 기록되었다”고 하였습니다(대하 27:1~9).

2) 그때에 전쟁이 있었으니 이는 37절에서 “하나님이 아람왕 르신과 이스라엘왕 베가를 보내어 유다를 치게 하셨다” 하였고(왕하 16:5~7), 38절에서는 “요담이 16년을 집권하고 베가 17년에 죽은즉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아하스가 유다 15대 왕이 된 것”입니다(32~33절).

이상의 말씀에서 느밧의 아들 여러보암의 죄는 이질적(비정통적) 신앙이며, 북왕국 왕이나 그 백성들이 260년 동안 잘못된 종교를 개혁하지 못하여 나라가 망한 사실을 알 수 있으며, 또 살인과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자는 얼마 못되어 자신도 그렇게 당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출 21:23~25). 또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병으로 꺾으시는 섭리도 있음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왕하 16:12).

제 22 과 유다왕 아하스 (왕하 16:1~20) 목록으로


본문 전체는 유다 15대 왕 아하스의 역사를 기록한 말씀입니다. ① 1~4절은 “아하스의 통상적 범죄”요, ② 5~6절은 “르신과 베가의 침략의 받음”이며, ③ 7~9절은 “앗수르를 의지함”이요, ④ 10~20절은 “앗수르의 종교를 도입함”입니다.

1. 아하스의 통상적 범죄(1~4절)

1) 1~2절에서 “(북왕국) 르말랴의 아들 베가 17년에 유다왕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20세에 15대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16년을 다스렸다”고 하였습니다.

2) 2~4절에서는 아하스의 범죄에 대한 기사만 있으니, 그는 처음부터 선하지 않았습니다. 아하스의 죄를 요약하면 우선 그 조상 다윗같지 아니하였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열왕의 길(우상종교)로 행하였으며,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가나안 입국 당시) 이방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였고(이 부분은 레 18:21에서 “자녀를 몰덱에게 주어 불로 통과하게 하지 말라”고 금지한 율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방인들의 종교를 답습한 것을 의미함), 또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다” 하였으니, 이 산당의 성격은 솔로몬 당시의 산당(하나님께 제사 드린 것)과 달라서 완전히 우상숭배의 산당으로 변질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이유는 3절에서 왕이 북왕국 열왕의 길로 행한 것을 보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아하스의 통상적인 죄가 아닌 것은 10~20절에 나타난 예루살렘 성전제도의 개조입니다.

2. 르신과 베가의 침략을 받음(5~6절)

5절에서 “르신”은 아람왕이고, “베가”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인데 이 두 왕이 합력하여 예루살렘에 올라와 아하스왕을 에워쌌으나 이기지 못하였으니, 예루살렘은 요새화 되었기 때문입니다. 6절에서 이때에 아람왕 르신은 “약 100년 전에 유다왕 아마샤가 유다의 것으로 빼앗은 엘랏(왕하 14:22)을 다시 뺏어 자기 나라의 것으로 돌리고 그곳에서 유다 사람들을 쫓아낸즉 그곳에 아랍 사람들이 거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다”고 하였습니다. 현재 그 지역은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 영토의 경계가 되어 있습니다. 머리 점령은 못하고 꼬리를 약간 자른 것과 같은 것입니다.

3. 앗수르를 의지함(7~9절)

아하스왕은 자주 위협하는 아람과 북왕국 이스라엘의 침략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앗수르를 의지하게 되었으니 선민의 왕이면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하는데, 그 방법을 모른즉 이방나라를 의지할 수 밖에 없었겠지요(사 3:1~3). 그리하여 앗수르왕 디글랏 빌레셋(3세)에게 하나님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많은 은금을 예물로 보내면서 “나는 당신의 종이요 당신의 아들인즉(귀속을 뜻하는 말) 아람과 이스라엘 적을 물리쳐달라”고 청하여 허락을 받으니, 앗수르 군사가 올라와서 아람의 수도인 다메섹을 치고 르신왕도 죽였으며 그 백성들을 사로잡아 갔다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은 왕하 12:18에 나타난 요아스의 경우와 거의 같은 것입니다.

4. 앗수르의 종교를 도입함(10~20절)

1) 10~11절은 아하스왕이 앗수르왕 디글랏 빌레셋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그곳에 있는(이방종교) 제단을 보고(그것을 좋게 여겨) 그 구조와 제도와 식양을 그려 사마리아에 있는 우리야 제사장(율법에 의한 예루살렘 성전에서 섬기는 제사장)에게 “자신이 가기 전에 그 제단을 만들라 하여 제사장은 그대로 만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정통신앙은 오직 성경계시에만 의존합니다(고후 13:8). 그러나 그들은 자기 소견에 좋아 보인다 하여 그것을 임의로 모방하니 그것이 곧 인본주의 자율종교의 특색입니다. 12절에서 아하스왕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그 신설제단에서 제사를 드렸으니, 그 방법도 앗수르에서 본대로 모방하였을 것입니다.

2) 13절에서 “자기의 번제와 소제를 불사르고 또 전제를 붓고 수은제 짐승의 피를 단에 뿌렸다” 한 것은 14~15절에 나타난 내용과 함께 레위기(1:~27:)에 기록된 제사법을 시행하면서 또 이방인의 제사법도 응용하였을 것입니다. 제사는 율법을 잘 아는 제사장이 전문적으로 드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은즉 제사의 실권도 왕이 임의로 행사한 것이고, 이방제도를 모방한 듯도 아니 잘한 일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번제(굽거나 태우는 것), 소제(음식제사인데 율법에는 소제를 불살으지 않음), 전제(포도주 기름을 부어드리는 것), 수은제(레 3:1~17, 7:11~21, 하나님과 사람과의 평화를 위하여 드리는 제사로 감사제, 서원제, 자원제가 있음, 레 7:12, 16)를 자기와 모든 국민을 위하여 드렸다” 하였으니, 이는 그와 같은 제사로 복 받기를 원한 것입니다.

3) 14절에서는 “전 앞에 있던 놋단을 여호와의 전과 새 단 사이로 옮겨 그 북편에 두었다” 하였으니, 이는 왕궁에서 제단으로 오려면 먼저 새 단이 있고, 그 다음에 성전이 있으며, 놋단은 성전 북쪽에 있다는 뜻인데 이 위치를 임의로 바꾼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15절을 보시면 “모든 번제와 공적제사를 새 단에서 드리고 놋단은 왕의 문제를 물을 때만(계시를 받으려 할 때) 쓰게 하라” 하므로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서만 쓰려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주석에는 앗수르왕이 와서 자기 나라에 있는 것처럼 사용하게 할 목적이라고도 하였고, 또 어떤 번역은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게 두라”는 뜻이라고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16절에서 제사장은 왕이 시키는대로 하였으니, 율법의 권위는 인정하지 않고 권세에 눌려 복종만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17~18절은 물두멍과 놋바다를 옮긴 것입니다. 물두멍은 왕상 7:30에서 제조한 것으로 “받침의 옆판을 뗀 것”은 옮기기 위한 목적인 듯하고, 놋바다는 왕상 7:23에서 제조한 것으로 이를 놋소들 위에서 내려 돌판 위에 두었으니 왜 이렇게 하였을까요? 저의 생각으로는 앗수르에서 놋을 가져가기 위함이 아닐까요? 어차피 성전 기명들을 개조하는 기회인즉 잘 쓰지 않는 것이면 없애는 목적이었을 것입니다. 15절에서 “이 큰 단 위에 불사르고” 한 것은 이방적 제사에 태우는 것만 있고 삶아 먹게 하는 규례가 없기 때문에 물두멍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5) 18절에서 “안식일에 쓰기 위하여 성전에 건축한 낭실과 왕이 밖에서 들어가는 낭실(이것은 왕상 6:3, 7:6에서 성전과 궁궐의 낭실을 지었음)을 앗수르왕을 위하여(이 뜻은 앗수르왕이 와서 자기 곳의 제단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구조를 바꾼 뜻) 여호와의 전에 옮겨 세웠다”고 하였습니다. 이 구조변동에 대하여 확실하게 떠오르지 않지만 문제는 아하스왕이 앗수르에 굴복하면서 앗수르왕이 예루살렘에 왔을 때 자기의 종교제도에 따른 제사를 편리하고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변경한 것입니다. 따라서 누구도 반대하지 못하였고, 우리나라가 일제말기에 신사참배에 강요당하면서 그것을 국가의식으로 받자하여 신앙을 굽힌 것처럼 생각할 수 있으니, 이것은 나봇이 조상의 재산기업을 사수하다가 죽은 것에 비하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19절은 “아하스의 남은 사적이 역대지략에 기록된 것”을, 또 20절에서는 “아하스가 죽으므로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히스기야가 대신 왕이 되어 유다의 16대 왕이 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때는 주전 696년경으로 북왕국이 망한 후(680년) 16년쯤 지난 때입니다. 본문에 기록된 아하스왕의 역사는 간단하지만 이 기회에 대하 28장을 꼭 읽으십시오. 아하스왕의 역사가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과 본문을 대조하시면서 그 당시 북왕국왕 베가와의 갈등과 앗수르왕 디글랏 빌레셀과의 관계를 살피시면 아하스왕이 얼마나 타락하였고, 또 곤고에 처하였는가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계시종교는 계시근거에 변질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의로 그 시설과 제도와 본질을 바꾸어 놓았으니, 그것이 전통과 유전이 되어 수백년 전승된 것인즉 새로운 시작과 혁신이 있기 전에는 순결을 이룩하기 어렵게 된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항상 복음적 신앙과 그 제도가 변질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제 23 과 이스라엘의 멸망과 죄 (왕하 17:1~20) 목록으로


우선 본 장을 두 번에 나누어 살피겠습니다. 1~18절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과 죄에 대한 말씀”이고, 19~20절은 “남방 유다의 죄”를 말씀하신 것인데, 총 제목의 “이스라엘”이란 뜻은 전체 선민의 뜻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대지를 나누면 ① 1~6절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이고, ② 7~12절은 “북왕국의 죄상”이며, ③ 13~18절은 “선지자의 경고와 불순종”이고, ④ 19~20절은 “남방유다의 죄상”입니다.

1.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1~6절)

1) 1절에서 “유다왕 아하스 12년에 북왕국 이스라엘에는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쳐서 죽이고, 왕하 15:30) 사마리아에서 (19대 마지막 왕으로) 9년을 다스렸다” 하였습니다. 이때는 주전 690년경입니다. 2절에서 “호세아왕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신앙이 옳지 않고 공의롭지 못한 점으로 사료됨) 그 이전 왕들 같지는 않았다” 하셨으니, 이전 왕같지 않다는 점은 우상숭배의 정도가 소극적이었음을 감안하신 평가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범죄정도에 대하여 면밀하게 저울질하시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잠 24:12, 단 5:27).

2) 3~5절에서 “앗수르왕 살만에셀(살만에셀 5세로 주전 727~722년이라 함)이 호세아를 친고로 호세아가 신복(臣服:신하로 복종한 뜻)하여 조공을 드리더니, 4절에서 저가 애굽왕 소(25왕조, 주전 712~700년)에게 사자를 보내어 도움을 청한 후 해마다 앗수르왕에게 드리는 조공을 바치지 아니한즉 앗수르왕이 호세아를 옥에 가두고 사마리아를 3년간 포위한 후 두루 다니다가 호세아 9년에 사마리아를 아주 취하고 사람들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로가서 할라(Halah, 지도상으로 확인하지 못함)와 고산하볼 하숫가(고산은 하란에서 동쪽 110㎞쯤에 있고, 하볼은 고산 남쪽에 있는 강 이름임)와 메데 사람(앗수르 동북쪽의 나라)의 여러 고을에 두었다” 하므로 이때에 북왕국의 존속이 끝나게 된 것입니다. 선민이 회개하지 않고 애굽을 의지한 것이 큰 잘못이었고(사 30:2, 6, 31:1), 또 이렇게 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을 때 그런 일이 있을 것으로 예고하신 것이 이루어진 것입니다(신 28:63~64).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연대의 불일치입니다. 호세아왕 때 살만에셀이 침입하고, 또 그 당시에 호세아가 애굽의 “소”에게 사자를 보냈으면 이 세 사람의 재위 연도가 한 세대 안에 들어와야 하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일치하지 못하는 이유는 한 사람의 연구 재료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요, 특히 열왕의 연조는 연구자에 따라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으니, 이는 출애굽 연도나 사울왕의 시작 연도에서 기점이 다른 점과 또 재위 년수가 1년이 넘으면 2년으로 계산할 수 있는 점과 또 전 왕이 죽기 전에 다음 왕이 세워졌을 때 공백기가 있으면 재위 연수에 혼란이 오는 점 등으로 차이가 날 수 있음을 이해하셔야 할 것입니다.

2. 북왕국의 죄상(7~12절)

1) 7~8절은 북왕국이 망한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즉 “선민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을 멀리하고 다른 신을 경외한 것과 하나님이 쫓아내신 이방신과 이스라엘 여러 왕이 세운 율례(인본주의 규례)를 지킨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인본주의나 자율주의 또는 이방인의 우상주의에 물들면 망한다는 사실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7~12절에서 우상숭배의 죄를 말씀하셨으니, 곧 “이스라엘 자손이 가만히(은밀히 감추는 행위) 불의를 행하고 하나님을 배역하며 여러 곳에 아세라 목상과 산당을 세우고 그곳에 분향하며 또 하나님이 금하신 일을 기어코 시행하는 악을 범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은 밝은 곳에서 밝게 하여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계율을 떠나서 음란하듯 우상을 섬기며 인본주의로 끌려가는 것은 하나님을 가장 노엽게 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2) 13~18절은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하여 권고하셨으나 듣지 않은 사실”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13절에서 “하나님은 각 선지자와 각 선견자로 이스라엘(북왕국)과 유다(남왕국)를 경계하여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 너희 열조에게 명하고 선지자들이 증거한 나의 명령과 율례를 지키라 하였으나 저희가 듣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선지자(나비)나 선견자(코제)는 같은 직종으로 명칭만 다르게 부른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설교자를 강도자로 호칭하는 것과 같다할 것입니다. 특별히 지적한 죄는 하나님의 율법을 떠나고 우상숭배의 길로 간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14절에서 “목을 굳게 한 것”은 듣지 않고 돌이키지 않음을 뜻하고, 또 “열조가 그렇게 한 것처럼 그 후손들도 여전히 그렇게 행하되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과 경계하신 말씀을 버리고 하나님이 본받지 말라 하신 이방 사람의 허무한 것을 본받아 두 송아지(왕상 12:28)와 아세라 목상(왕상 18:19)을 만들고 일월성신을 숭배하며 또 바알(왕상 18:40)을 섬기고 자기 자녀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유다왕 아하스가 그런 일을 하였음, 왕하 16:1~3) 복술과 사술을 행하고 스스로 팔려(왕상 21:20, 자원하여 행한 뜻)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므로 하나님의 노를 격발케 한즉, 18절에서 하나님이 먼저 (죄가 더 심한) 북왕국 이스라엘을 그 앞에서(앗수르의 몽둥이로) 제하시니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3) 19~20절에서 “유다도 (북왕국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고 이스라엘 사람(여러보암)의 세운 율례를 행하였으므로 (나중에는) 온 족속(북이스라엘과 남쪽 유다 전부)을 버리사 괴롭게 하시며 노략군의 손에 붙이시고 심지어 그 앞에서 쫓아내셨으니”, 이는 북왕국이 망한 후에 남방 유다도 북왕국처럼 괴롭게 하시다가 136년쯤 후에 결국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끝을 보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인본주의적 우상숭배가 없는지 반성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지키지 못하거나 말씀보다 제도에 얽매여 외식하거나 지나칠 정도로 세속에 이끌리는 것들이 우상숭배에 가까운 일이라 할 것입니다. “탐심은 우상숭배라” 하셨으니까요(골 3:5).

제 24 과 망한 지역의 형편 (왕하 17:21~41) 목록으로


이 본문의 말씀은 북왕국을 정복한 앗수르가 그 지역에 대하여 통치한 내용으로 북왕국이 망한 후 “그 지역이 어떤 형편이 되었는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대지를 나누면 ① 21~24절은 “인구 이주 정책”이고, ② 25~28절은 “사자의 출몰과 종교계몽”이며, ③ 29~34절은 “다민족, 다종교 정책”이요, ④ 35~41절은 “하나님의 경고대로 됨”입니다.

1. 인구 이주 정책(21~24절)

1) 21~22절은 선민을 찢으시고 망하게 하신 원인을 말씀하셨는데 “이스라엘을 다윗의 집에서 찢어 나누신 이는 하나님이시고 그 원인은 솔로몬과 르호보암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죄는 왕상 11:29~35과, 왕상 12:8~15에 기록되었습니다. 이때에 여러보암이 왕된 것도 하나님의 뜻이었지만(왕상 11:31, 12:20) 여러보암은 백성들로 하여금 오히려 하나님을 떠나게 하고 변질된 종교를 신봉케 하는 큰 죄를 범한 것입니다(왕상 12:25~33). 그리고 그 백성들은 260년간 그 죄를 떠나지 않으므로,

2) 23~24절에서 하나님이 선지자로 하신 말씀대로(신 28:63~64, 왕하 17:13) 앗수르왕 살만에셀로 하여금 나라를 정복하게 하셨고, 그곳 선민들을 앗수르의 여러 지역으로 이주 시키고(6절 참조), 또 바벨론(현재 이라크의 바그다드 중심 부분)과 구다(바그다드 동편 지역)와 아와(유프라데 강변의 성읍이라 함)와 하맛(레바논 영토 동북쪽에 위치함), 스발와임(하맛의 동남쪽임)의 사람들을 사마리아로 옮겨 여러 성읍에 이주 시킨 것입니다. 충분히 이해되는 내용이고 여기에서부터 북왕국 이스라엘 선민은 선민이란 정통성을 잃게 된 것입니다. 그 다음 세대는 혼혈족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2. 사자의 출몰과 종교계몽(25~28절)

1) 25~26절은 “외지에서 온 이방인들이 북왕국 선민의 땅에 거하였을 때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한고로 하나님이 사자들을 보내어 사람을 죽였다” 하였으니, 이 사실은 과거에 없었던 일이 일어났으므로 당한 사람들이 그렇게 인정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 사실을 그렇게 알고(종교적 문제로 신이 노하신 뜻) 본국에 보고를 한 것입니다.

2) 그리하여 27~28절에서 앗수르왕은 “이스라엘에서 잡아온 제사장 한 사람을 그곳으로 데려가서 그 땅의 신 즉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가르치게 하였으니”, 이런 일은 이방인들의 모호한 처사로 사료됩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흩으시려고 망하게 하신 땅에 다른 민족이 사는 것을 훼방하시려고 사자를 보내셨다는 것도 사람의 해석이고, 또 그 처방 자체도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법이 아닌 변질된 종교의 교육이기 때문에 이 두 가지를 다 하나님의 인도로 보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신 것은 일반적 섭리일 것이요, 이방인 왕의 처방은 그 제사장이 바른 제사법을 가르칠 수 없는 형편이므로 그것도 인간의 자율적 행사에 불과한 것입니다.

3. 다민족, 다종교 정책(29~34절)

1) 29~31절에서 (제사장의 종교 계몽은 사자의 출몰을 막기 위한 처방일 뿐이고) 또 각 민족이 자기의 신상들을 만들되 사마리아 사람들이 만든 기존의 산당에 두고 자기들의 종교 풍속대로 자구책(피해없기를 바라는)을 시행하게 한즉 바벨론에서 온 사람들은 숙곳느봇(암탉 형상의 우상이라고도 하고 바벨론의 한 여신 이름이라고도 함, 70인역)을 만들었고, 굿(구다) 사람들은 네르갈(구다에서 전쟁을 이기게 한 수탉 형상의 신이라 함)을 만들었으며, 하맛 사람들은 아시마(수염소 형상의 우상이라고도 하고, 또 하닷왕의 딸 시미를 신격화 한 듯하다고도 함)를 만들었고, 아와 사람들은 닙하스(사비아인들이 개 형상의 니바즈를 섬겼다 함)와 다르낙(개 형상의 우상으로 어두움의 영웅이란 뜻이라 함)을 만들었으며, 스발와임 사람들은 그 자녀를 불살라 그의 신인 아드람멜렉(영광의 왕이란 뜻이라 함)과 아남멜렉(태양여신 아누닛과 관계가 있는 듯하다 함)에게 드렸으니, 여기에 나타난 이방신들의 정체를 명확히 알기는 어렵습니다.

2) 또 32절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여 자기 중에서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택하여 자기를 위한 제사를 드리게 한 자들도 있었고”, 33절에서는 “여호와도 경외하고 어디서 옮겨온 종교이던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신을 섬기는 자도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종교의 자유정책은 좋으나 하나도 쓸모없는 자율종교 행사를 사자의 피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행한 것입니다.

3) 34절에서 “저희(이주해온 사람들, 25절)가 오늘(이 말씀을 기록할 당시)까지 이런 풍속대로 행하여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며…야곱의 자손에게 명하신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다 같은 뜻인데 다양한 표현으로 강조한 것)을 준행치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이리하여 북왕국 선민들은 예루살렘 성전과 격리될 때 1차로 이단종교에 빠진 상태가 되었고, 2차로는 이방지역 또는 종교 혼합세계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멀리 떠나게 되었으니, 결국 유다 이외의 팔레스틴 지역은 다 무의미한 땅이 된 것입니다.

4. 하나님의 경고대로 됨(35~41절)

1) 35~39절은 하나님이 북왕국 선민을 통치하시던 때에 언약을 주시고(출 6:5~8) 또 교훈하신 말씀을 열거한 것입니다. 즉 다른 신을 경외하지 말고 하나님만 섬길 것을 본문에서 5회나 강조하셨고, 언약을 잊지 말 것을 말씀하셨으며(신 4:23, 6:6),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영원히 지키고 하나님만 잘 섬기면 모든 원수에게서 건져주실 것을 약속하셨는데(신 28:8~10),

2) 40절에서 “저희가 듣지 않고 이전 풍속(여러보암의 죄)대로 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중에도 41절에서 “그 땅에 이민 온 다른 민족들 중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도 있었고(32절, 여호와를 신으로 모신 뜻) 아울러 아로 새긴 우상도 섬기더니 그 자자손손이 그 열조의 행한 일을 오늘(그 후시대)까지 그대로 행하더라”고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혼합종교의 판도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제 25 과 히스기야의 형통과 문제 (왕하 18:1~17) 목록으로


본문 ① 1~8절은 “히스기야왕의 형통함에 대한 말씀”이고, ② 9~17절은 “히스기야왕의 어려운 문제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제목을 “히스기야의 형통과 문제”로 정한 것입니다. 히스기야왕의 역사는 왕하 18:~20:까지 기록되었고, 또 대하 29:~32:에도 기록되었습니다.

1. 히스기야왕의 형통함(1~8절)

1) 7~8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다” 하셨고, 또 “저가 앗수르왕을 배척하고 섬기지 아니하였으며 블레셋 사람을 쳐서 가사(블레셋 해변 도시)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블레셋의 수비지역)까지 이르렀다”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히스기야왕을 붙드시고 형통케 하셨을 때 나라가 강성한 상태에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은혜를 주신 것은 히스기야왕의 선행에 따라 복을 주신 때문이었습니다.

2) 1~2절은 히스기야의 왕된 역사를 말씀하신 내용으로 “북왕국 마지막 왕인 호세아 3년에 유다왕 아하스(16년 재위한 15대 왕)의 아들 히스기야가 25세에 16대 왕이 되었는데 그는 예루살렘에서 29년을 치리하였고 그의 모친은 스가리야의 딸 아비라”고 하였습니다. 히스기야가 왕된 때는 주전 696년쯤입니다.

3) 3~6절은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형통케 하실만한 히스기야의 선행을 말씀하셨습니다. 곧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것과 여러 산당을 제하고 주상(바알신의 남신상)을 깨트리고 아세라(바알신의 여신상) 목상을 찍어냈으며, 모세가 광야에서 만들었던 놋뱀을 백성들이 숭상의 대상으로 삼아 거기에 분향하므로 그것도 부셨고, 그것을 “느후사라단”(놋조각이란 뜻)이라 일컬은 것입니다. 용기있는 정화사역입니다. 7~8절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연합한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다” 하였고, 또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한 계명을 지켰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의 연합은 곧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2. 히스기야왕의 어려운 문제(9~17절)

1) 9~12절에서 어려움 당한 문제 첫째는 “히스기야왕 4년, 북왕국 호세아 7년에 앗수르왕 살만에셀이 북왕국 수도 사마리아에 침략하여 2년간 싸우다가(호세아 9년에 함람 되었은즉 2년 싸운 것이 맞지만, 10절에서 3년 후라 한 것은 12개월이 못되어도 1년으로 계산하였기 때문임) 결국 히스기야 6년, 호세아 9년에 사마리아를 함락시켰다”는 내용이요, 11절은 “앗수르왕이 북왕국의 많은 선민을 앗수르로 이주(포로)시켜 할라와 고산 하볼과 메데의 각 지역에 살게 한 사실을 왕하 17:6처럼 재설”하였고, 12절에서 “이는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긴 죄 때문임을 왕하 17:7~8 말씀처럼 재설”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의 말씀은 히스기야왕 6년에 북왕국이 망한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남방 유다에도 큰 충격을 주었을 것입니다.

2) 13절에서 “히스기야 14년에(북왕국이 망한지 10년 후) 앗수르왕 산혜립(앗수르왕 사르곤의 아들, 주전 705~681년)이 올라와서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읍을 쳐서 취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때에 히스기야왕은 전쟁에 패한 것입니다. 왜 형통이 막혔고, 하나님의 보호적 축복이 떠났을까요? 이는 히스기야의 죄가 아닌 그 부왕 요아스의 죄(대하 24:20~22, 눅 11:51)와 그 선왕들의 죄를 갚으심으로 사료됩니다. 히스기야왕이 선정을 하였다 하여 백성들까지 다 변화되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백성들의 죄로 벌하신다는 말씀이 왕하 17:19~20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4~16절에서 히스기야왕은 라기스(수 10:3, 왕하 14:19, 헤브론 서쪽 30㎞쯤)에 주둔한 산헤립왕에게 사신을 보내어 사과하고 “조공을 바치겠다” 한즉,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를 구하므로 이를 승낙하고 돌아와서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다 모으고도 모자라서 성전의 문과 기둥에 입힌 금까지 다 뜯어서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3) 그러나 17절에서 “앗수르왕은 다르단, 랍사리스, 랍사게 세 장군으로 대군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히스기야왕을 치게 한즉 그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포위하고 윗못 수도 곁 세탁자의 밭(사 7:3에도 기록됨, 예루살렘성 밖, 북쪽으로 예측함)에 있는 큰 길에 섰다” 하였으니, 예루살렘성 수비도 견고하겠지만 대단히 위급한 지경에 처하였던 것입니다.

제 26 과 랍사게의 회유책 (왕하 18:18~37) 목록으로


본문은 예루살렘을 포위한 앗수르 산헤립왕의 군사를 거느린 세 장수 중(17절) 랍사게가 대변인이 되어 마중 나간 히스기야왕의 사신들에게 싸우지 않고 성을 개방할 것을 설득하는 회유적 언사입니다. 누가 들어도 약소국의 백성으로서 당하는 수모를 가슴 아프게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① 18~25절은 “유다를 무시하는 회유적 언사”요, ② 26~28절은 “아람 방언을 요청함”이며, ③ 29~35절은 “계속하는 회유 언사”이고, ④ 36~37절은 “왕과 백성들의 반응”입니다.

1. 유다를 무시하는 회유적 언사(18~25절)

1) 18절에서 산헤립의 신하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가 대군을 대동한 상태로 예루살렘성 밖에서 유다왕을 부른즉 유다왕 히스기야가 궁내 대신 힐기야의 아들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인 사관 요아를 저희에게 내보낸즉 랍사게가 자기 왕의 뜻을 히스기야왕에게 전하여 이르기를 19~20절에서 “너의 의뢰의 대상이 있느냐 네가 싸울만한 계교와 용력이 있다 하나 입에 붙은 말 뿐인데 누구를 의뢰하려고 반역하느냐(매년 바칠 조공을 제공하지 못하였거나 독립적 의지로 불복하였을 것임)”, 21절에서 “네가 상한 갈대 지팡이 같은(애굽을 무시하는 말) 애굽을 의뢰하려 하지만 그것(갈대로 비유한 애굽)을 의지하면 (오히려) 그 손에 찔려 들어갈 것이다(유익없이 피해를 본다는 뜻) 애굽왕 바로가 자기를 의뢰하는 자에게 그렇게 할 것이다”, 또 22절에서 “너희가 하나님 여호와를 의뢰하려 하지만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산당과 제단을 제하고 예루살렘 단 앞에서만 숭배하라 하였으니 (어찌 그 여호와가 너희를 돕겠느냐?)”

2) 23~25절에서 “이제 너(유다왕)는 앗수르왕과 내기하라 네가 만일 말 탈 사람을 낼 수 있다면 나는 네게 말 2,000필을 줄 것이다 네가 어찌 내 주의 신복 중 지극히 작은 장관 하나인들 물리칠 수 있겠느냐 너희가 애굽을 의뢰하여 병거와 기병을 얻을 듯하냐 내가 이곳을 멸하러 온 것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하신 것이다 여호와의 뜻이 아니고야 이곳에 올라올 수 있겠느냐” 하였으니, “여호와의 뜻으로 왔다”는 것은 불신앙적 궤변이요 그의 말은 전폭적으로 유다를 무시하는 오만하고도 모욕적인 말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2. 아람 방언을 요청함(26~28절)

랍사게의 말을 듣던 유다의 대신들이 랍사게에게 청하기를 “우리가 알아 듣겠으니(우리만 들으면 된다는 뜻) 성위의 백성들까지 듣게 하는 유다 방언(히브리어)으로 말하지 말고 아람 방언으로 말해 주시오” 하였으니, 이 당시에 아람어는 특수층의 사람들이 사용하였고, 보편적 언어는 히브리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국가 외교적 기밀이 백성들에게까지 알려지는 것을 방지하려고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랍사게는 국민적 선동을 꾀하는 자라 “모든 사람들이 다 들어야 한다 하면서 너희가 함께 똥과 소변을 먹는 자들(비천한 백성들)도 들어야 한다” 하고 유다 방언으로 크게 소리질러 외친 것입니다.

3. 계속하는 회유 언사(29~35절)

1) 랍사게는 계속 성루에서 내려다보는 유다 백성들에게 자기 왕 산헤립의 말을 전하기를 29절에서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말라 저가(히스기야) 너희를 내 손에서 건지지 못할 것이라”, 또 30~32절에서 “여호와를 의뢰하라는 말도 듣지 말라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가 정녕 건지시고 앗수르왕의 손에 함락되지 않게 하실 것이라는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왕의 말씀에 너희가 항복하고 돌아오면 각각 그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각각 자기의 우물의 물을 먹을 것이요(생활의 편의를 제공한다는 뜻) 너희를 곡식과 포도주와 포도원과 감람유와 꿀이 있는 한 지방으로 옮겨 본토에서 사는 것처럼 살게 할 것이라 그런즉 히스기야가 너희를 면려(깨우치는 뜻)하여 여호와가 건지시리라 하여도 듣지 말라” 하였고,

2) 또 33~35절에서는 일찍이 앗수르의 손에서 건짐받고 스스로 방어한 나라가 없음을 상기시키는 말로 “열국의 신들 중 앗수르왕의 손에서 그 땅을 건진 자가 있느냐 하맛과 아르밧(arpad, 하란에서 8시 방향 180㎞쯤)과 스발와임과 헤나(hena, 지역을 확인하기 어려움)와 아와의 신들이 그렇게 한 일이 있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사마리아가 정복되기 전에 그곳에서 열국의 신들을 모아 의지한 사실이 있었으나 아무 소용없었던 것을 거론한 것임) 열국의 모든 신들 중에 누가 그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진다고 하느냐” 하므로 하나님 여호와나 다른 신들을 믿지 말고 순순히 항복하여 산헤립이 주는 혜택을 받으라고 외친 것입니다. 34절에 기록된 지명은 왕하 17:30~32에서 설명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이상의 회유책은 민심을 흔들기에 충분한 말이었을 것입니다.

4. 왕과 백성들의 반응(36~37절)

1) 36절에서 그러나 백성들은 (랍사게의 말을 듣고) 잠잠하며 한 말도 대답하지 않았으니, 이는 왕이 (미리) 명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이 왕의 뜻을 따라 단결함이 마땅한 것입니다.

2) 37절에서 “랍사게와 대면하여 앗수르왕의 뜻을 전해 들은 세 사람이 옷을 찢으며(비통함을 나타내는 뜻) 히스기야 왕에게 나가서 그 사실을 고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오래도록 범죄한 유다의 죄에 대하여서도 묵인하시지 않았습니다.

제 27 과 난관극복의 과정 (1) (왕하 19:1~19) 목록으로


앗수르의 예루살렘 포위는 유다왕 히스기야에게 큰 난관의 과제였습니다. 여기에서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하였는지에 대한 말씀”이 본 장에 기록되었습니다. 두 과목으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대지를 나누면 ① 1~5절은 “선지자의 기도를 의뢰함”이고, ② 6~7절은 “이사야에게 주신 응답”이며, ③ 8~13절은 “랍사게가 또 위협함”이요, ④ 14~19절은 “히스기야왕의 기도”입니다.

1. 선지자의 기도를 의뢰함(1~5절)

1) 1~2절에서 히스기야왕은 앗수르 군사들의 오만불손한 태도에 대하여 보고를 듣고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겸손과 회개와 고난을 표현한 뜻)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궁내대신과 서기관과 장로들에게도 굵은 베옷을 입혀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 선지자에게 기도를 의뢰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목적으로 보냈습니다.

2) 3~5절에서 그들은 이사야에게 고하기를 “왕이 오늘은 곤란과 책벌(하나님의 벌을 인식한 것)과 능욕(앗수르가 유다를 멸시한 것)의 날인데 마치 아이가 임산(낳을 때가 된 것)하였으나 해산할 힘이 없는 것처럼 어려움에 처한 사실과 랍사게가 앗수르왕 산헤립의 사신으로 와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훼방하였으니 하나님도 저의 말을 들으셨을 것인즉 하나님이 저를 꾸짖으실 듯하니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유다 백성들)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왕의 뜻을 전한 것입니다.

2. 이사야에게 주신 응답(6~7절)

이 말을 들은 이사야 선지자는 즉시 히스기야왕에게 전할 말씀을 주었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앗수르왕이 신복들에게 들은바 나(하나님)를 능욕하는 말을 인하여 두려워 하지말라 내가 한 영을 저희 속에 두어 저로 풍문(떠도는 소문)을 듣고 그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 본국에서 저로 칼에 죽게 할 것이라”고 계시하신 사실을 말해 주었습니다. 성경에는 적군들이 착각을 하여 도망하거나 패한 사례가 많았습니다. 물에 비췬 붉은 색깔을 피로 오인하여 도망한 예도 있었고(왕하 3:22~24), 허공에서 나는 병거소리를 실제 소리로 착각하여 도망한 예도 있지 않았습니까(왕하 7:6).

3. 랍사게가 또 위협함(8~13절)

1) 8절에서 “랍사게가 (예루살렘성 밖에서 유다의 사신을 만나고 자기 진영으로, 왕하 18:17~18) 돌아가다가 자기의 왕이 라기스(예루살렘 서남쪽 45㎞쯤)에서 떠났다는 말을 듣고, 립나(이곳은 라기스에서 예루살렘쪽으로 8㎞쯤 됨)로 가서 왕을 만났는데 그때에 산헤립왕은(유다 성읍의 백성들과) 싸움 중에 있었고”, 9절에서 “구스(행 8:26, 아프리카의 에디오피아를 뜻함)왕 디르하가가 (유다를 위하여) 싸우려 한다”는 말(이 소문이 곧 7절에서 말씀한 풍문임)을 듣고 후퇴를 하면서 또 예루살렘으로 사자를 보내어 편지로 왕에게 전하기를 10~11절에서 “너희의 의뢰하는 네 하나님이 앗수르왕의 손에 붙이지 않겠다한 말에 속지 말라 앗수르왕이 열방에 행한 일(열방 정복)을 내가 아나니 다 진멸하였은즉 네가 어찌 구원을 얻겠느냐” 하였으며,

2) 또 12~13절에서는 “내 열조가 멸망시킨 열방 곧 고산(왕하 17:6)과 하란(창 11:27~32)과 레셉(하맛의 2시 방향 200㎞쯤)과 들라살(Telassar, 지도로 확인할 수 없었음)에 있는 에덴 족속(이 에덴은 기쁨이란 뜻인데 조상의 명칭을 딴 것인지 아니면 지역의 명칭을 딴 것인지 알기 어려우나 이들이 유프라데 강 상류에서 소왕국으로 있다가 앗수르에 정복되었고 두로와 통상한 기록이 있음, 사 37:12, 겔 27:23)을 그 신들이 건졌느냐? 하맛(왕하 17:24)왕과 아르밧(왕하 18:34)왕과 스발와임(왕하 17:24)성의 왕과 헤나(왕하 18:34)와 아와(왕하 17:31)왕들이 다 어디있느냐?” 하므로 앗수르가 그들을 정복할 때 그들이 다 굴복하므로 점령하였다는 위용을 나타낸 것입니다. 위의 지명은 다 앗수르 영지에 있는 곳들입니다. 그들은 구스왕이 싸우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 전에 예루살렘을 점령하려고 2차에 걸쳐 말로 위협을 가하였던 것입니다.

4. 히스기야왕의 기도(14~19절)

1) 14~16절에서 히스기야왕은 그 편지를 받아보고 그것을 가진채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서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기도하기를 “그룹들 위에 계신(하나님은 천사의 옹위를 받으신다는 뜻, 민 7:89, 삼상 4: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고 천지의 조성자이십니다 귀를 기울여 들이시고 눈을 뜨사 보시옵소서 앗수르왕 산헤립이 하나님을 훼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하였고,

2) 17~19절에서 “앗수르 열왕(앗수르의 위성국가들)이 과연 열방과 그 땅을 황폐케 하고 그 신들을 불에 던진 것은 저희가 신이 아니요 나무나 돌로 된 우상일 뿐인즉 멸망한 줄 압니다(이는 이방인들이 우상신을 만들거나 폐기할 때 불태워 없애는 뜻임) 원컨대 (하나님은 신이신즉) 우리를 그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러면 천하만국이 주 여호와는 홀로 하나님이심을 알 것입니다” 하고 기도를 한 것입니다. 이 기도를 묵상하면 간절한 정성과 실제적인 호소가 그대로 자연스럽게 담겨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는 곧 진실이요 사실대로의 호소임을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제 28 과 난관극복의 과정 (2) (왕하 19:20~37) 목록으로


난관극복의 계속된 말씀으로 이사야가 받은 하나님의 말씀(20~34절), 즉 앗수르왕 산헤립이 본국으로 돌아가서 죽게 된다는 말씀(35~37절)이 기록되었습니다. 대지를 분류하면 ① 20~28절은 “산헤립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② 29~31절은 “징조와 남은 자의 정착”이며, ③ 32~37절은 “산헤립의 후퇴와 죽음”입니다.

1. 산헤립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20~28절)

1) 이 말씀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응답하신 뜻으로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에게 계시를 주셔서 그 말씀을 히스기야왕에게 기별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이와같은 방법으로 아사왕의 기도를 들으신 일도 있었습니다(대하 16:7~8). 20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앗수르왕 산헤립 까닭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선뜻 마음에 집히는 내용은 “무슨 무슨 까닭에 기도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까닭이 없어도 반드시 기도하셔야 합니다. 무슨 까닭이 있어야만 기도하는 성도는 하나님을 친교하고 사랑하는 자가 아니고 오직 이용만 하려는 자인즉 유의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까닭에 의한 기도응답도 하셨습니다.

2) 21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처녀 딸 시온(선민을 애칭하신 뜻, 시 9:14, 렘 6:2)이 너(앗수르)를 멸시하며 너를 비웃었고 딸 예루살렘이 너(앗수르)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하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딸 같은 백성이 앗수르를 미워하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들의 뜻을 받아 앗수르에 대한 보복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앗수르왕을 향하여 책망하시기를 22~24절에서 “네가 누구를 꾸짖었으며 훼방하였느냐 누구를 향하여 소리를 높이고 눈을 높이 떴느냐 (네가 히스기야왕에게 큰 소리를 치고 모욕을 주었지만) 그것이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나 여호와에게 한 것이니라 또 네가 사자(랍사게)로 주를 훼방하여 이르기를 내가 (너 자신, 즉 산헤립 스스로의 힘으로) 많은 병거를 거느리고 산꼭대기에 이르고 또 레바논 깊은 곳에 이르러 높은 백향목과 잣나무를 베고 그 지경 끝까지 들어가서 그 동산의 무성한 수풀에 들어갈 것이라 하고 또 내가 (스스로) 땅을 파서 이방(앗수르왕이 정복한 타국 땅을 일컫는 말)의 물을 마셨고 나 (자신의)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하수를 말렸다(애굽영토인 시나이 반도에서 모든 샘물을 뒤져 사용하고 말렸다는 뜻)고 하면서 큰 소리치는 것을 하나님이 다 아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모든 것을 자신 또는 자신의 힘으로 하였다”고 말하면 안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붙드심에 의하여서만 기동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행 17:24~27).

3) 25~28절은 앗수르가 일시적이나마 힘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다 하나님의 섭리와 허락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말씀하신 내용으로 “네가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앗수르가 선민을 괴롭힌 것)은 내가 태초부터 정하였고 상고부터 정한바라 이제 내가 이루어 너로 견고한 성읍들을 멸하여 돌무더기가 되게 한 것이라” 하시므로 앗수르의 모든 행동이 하나님의 태고 때의 작정하신 섭리에 따라 이루어진 사실을 말씀하셨고, 그렇게 된 섭리로서 “그곳에 거한 백성의 힘이 약하여 두려워하고 놀라게 된 것이며 마치 들풀이나 나물과 지붕 위의 풀처럼 또 자라기 전의 마른 곡초처럼 선민의 나라(북왕국, 사마리아)가 쇠하여지고 뽑힌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선민이 쇠하고 적국이 강해진 것이 앗수르 사람들 자신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셨고, 또 27~28절에서는 “네(앗수르 군사들) 거처와 출입과 네가 내게(선민에게) 향한 분노를 다 아노니 네 분노와 교만한 말이 내 귀에 들린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갈고리로 네 코에 꿰고 자갈로 네 입에 먹여(35절 참고) 너를 오던 길로 끌어 돌아가게 할 것이라” 하시므로서 앗수르 군사들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에 의하여 코꿴 짐승처럼 끌려 돌아가게 될 것을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2. 징조와 남은 자의 정책(29~31절)

1) 29절에서 이사야의 증언은 계속되었습니다. “또 네게 보일 징조가 이러하니(이 징조는 하나님의 말씀이 실현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게 하시기 위하여 주신 말씀임) 너희(유다 백성)가 금년에는 (피난 다니느라 파종을 못하였은즉) 스스로 난 것을 먹고 명년에는 (스스로 난 것이 넉넉하므로) 그것에서 난 것을 먹되 제3년에는 포도원과 곡식을 심고 거두어 먹게 될 것이라” 하시므로 나라에 평화와 안정이 2, 3년 내에 점차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2) 30~31절은 남은 자에 대한 말씀인데 이 “남은 자”란 난리통에 피난하면서 어렵게 살아남은 유다인을 의미합니다. “유다 족속의 피하고 남은 자가 다시 아래로 뿌리가 서리고 열매를 맺는다” 하심은 유다 선민을 뽑았다가 다시 심은 나무로 비유하여 다시 정착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남은 자가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오고 피하는 자(적의 침략을 두려워하던 자들)가 시온산(역시 예루살렘을 뜻함, 사 40:9)에서부터 나오리니 이는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시므로 하나님이 자신의 약속을 열심히 성취하여 약한 상태에 빠졌던 유다의 백성들을 다시 일으키실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사 9:7, 37:32).

3. 산헤립의 후퇴와 죽음(32~37절)

1) 32~34절에서 “앗수르왕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살을 쏘지도 못하고 방패를 세우지도 못하며 (예루살렘에 들어오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오던 길로 돌아갈 것이라” 하셨고,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과 하나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구원하시고 어떤 방법으로 적군의 코를 꿰실까요?

2) 35절에서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185,000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으므로(예측 불허에서 군사를 잃음) 산헤립이 유다를 떠나 니느웨(티그리스 강변, 하란의 동쪽 400㎞쯤, 앗수르의 수도, 욘 1:2, 창 10:11)로 돌아가서 거하였는데”, 36절에서 “그가 그의 섬기는 신 니스록(아랍어 ‘니슬’이 독수리라 함, 독수리 머리를 가진 신)의 묘(廟:사당의 뜻)에서 경배할 때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산헤립의 아들들이라 함, 사 37:38)이 저를 쳐죽이고 아라랏 땅(창 8:4, 하란의 동북쪽 450㎞쯤)으로 도망한즉 그의 다른 아들 에살핫돈(BC. 681~669년)이 대신 왕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선민 중심으로 이방국을 통치하신 것과 선민의 기도를 들으시고 예언자를 통해 뜻을 전하시며 그 전하신 말씀대로 이루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룻밤 사이에 185,000명을 어떻게 죽이셨을까? 하는 문제는 천사들의 직접적 이적의 역사를 상상하지 않아도(출 12:29) 조류독감의 피해나 바닷물의 온도차이로 어족이 죽는 것이나 자연적 또는 인간적 파괴로 많은 살생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 29 과 히스기야왕의 남은 역사 (왕하 20:1~21) 목록으로


본 장까지 히스기야의 남은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지를 나누면 ① 1~3절은 “병든 히스기야의 기도”요, ② 4~11절은 “기도응답과 징조”이며, ③ 12~15절은 “바벨론 사자를 영접함”이요, ④ 16~19절은 “바벨론에 망할 것을 예언함”이고, ⑤ 20~21절은 “히스기야의 죽음”입니다.

1. 병든 히스기야의 기도(1~3절)

1) 1절은 “히스기야왕이 병들었다”는 말씀인데, 적의 침략으로 나라가 평안치 않은 것을 생각하면 병도 날 법하지만 히스기야의 병은 종처(부스럼난 곳)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러 와서 “히스기야가 죽고 살지 못할 것이니 집을 처치하라(왕위를 계승할 아들이 없을 때이므로, 왕하 21:1, 유언을 하거나, 사 38:1, 왕직 이양을 준비하라는 뜻)”고 하였습니다.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하나님이(삼상 2:6) 히스기야를 데려가시려고 뜻하셨던 것입니다.

2) 2~3절에서 이 말씀을 들은 히스기야왕이 낯을 벽으로 향하고(개인 처소에서 누워 기도한 것으로 사료됨) 심히 통곡하면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였으니, 이 기도에서 기도자의 장소와 자세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고, 통곡을 한 이유는 인생의 아쉬움 때문이었을 것이요, 여기에서 “더 살게 해달라는 간청”은 하지 않았으며, 다만 하나님 앞에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선을 행하려고 노력한 사실에 대하여 부끄러움 없이 고백한 것을 저희들은 가슴 깊이 느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기도자의 요건이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는 이렇게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였지만 그의 부왕인 아하스는 그 반대로 크게 악을 행한 왕이었기 때문에(대하 28:1~4) 그 벌로서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병들어 죽게 하시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2. 기도응답과 징조(4~11절)

1) 4절에서 이사야가 왕궁에서 떠나 자기의 거주하는 성읍에 이르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히스기야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속히 응답하신 사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속히 응답하시기도 하십니다. 성도가 기도하자 속히 응답하신 사례는 단 9:20~23과 사 65:24 말씀을 꼭 읽어보시고 확인하십시오.

2) 5절에서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다윗은 족보상 33대이고, 히스기야는 43대임)의 하나님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여 네가 3일 안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또 6절에서 “네 날은 15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나와(하나님 자신의 권위와 영광) 내 종 다윗을 위하여(다윗에게 베푸신 언약, 삼하 7:8~17)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신 사실을 왕께 전하고, 7절에서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여 그 종처에 놓게 하신즉 그대로 하여 나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눈물(회개, 간구)을 보시며 속히 응답하시고 대적을 물리쳐 주시며, 또 병을 낫게 하시고 생명을 연장하기도 하시며, 왕위를 대대로 이어가게 하시고 나라를 견고하게 붙들어 주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게 행할 때는 그 반대로도 시행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신 30:19). 그러면 무화과 반죽을 종처에 바른 것이 특효약일까요? 이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을 것이니 만큼 하나님이 순종하는 것을 보시고 그런 처방에 따라 고침의 능력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마치 나만의 문둥병을 요단강물에 씻어 낫게 하신 것이나(왕하 5:10) 예수님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실 때 진흙을 바르시고 실로암 물에 씻게 하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요 9:7).

3) 8절에서 히스기야왕은 의외로 형통한다는 말씀을 듣고 더 큰 확신을 갖기 위하여 징조가 있으신지를 여쭌즉 9~10절에서 “아하스의 일영표(부왕 때에 만든 해시계)에 그림자를 10° 물리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수 10:12~13에 나타난 “태양이 머문 사건(자전의 중단)과 같은 성격의 이적”을 보여주신다는 것이었고, 11절에서 “이사야가 간구하매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하였습니다. 징조를 구하는 것이 믿음의 부족으로 볼 때는 아쉬운 일이지만 확신을 갖고 의지할 목적으로 구할 때는 하나님도 인정하시고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왕하 19:29에서는 징조를 구하지 않았어도 필요에 의하여 하나님이 징조를 말씀하신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영표가 10°를 후퇴한 이적에 대하여는 수 19:29 강론에서 설명드렸습니다. 자연 질서를 변화시키신 획기적 섭리로 역사가 증명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3. 바벨론 사자를 영접함(12~15절)

1) 12절에서 “그때에(히스기야왕이 병 나았을 때)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왕 부로닥발라단(사 39:1에서는 ‘무로닥발라단’이라 하였음, BC. 721년에 남부 바벨론에서 갈대아인들과 규합하여 바벨론왕이 되었고 앗수르의 강적이었으며, BC. 710년에 사르곤 2세에게 왕위를 뺏기고 엘람으로 도망하였다가 7년 후에 다시 회복하였으나 9개월 후에 또 쫓겨났다 함)이 히스기야왕의 병든 소식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들려 위문 사자를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바벨론은 앗수르만큼 강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앗수르를 견제하기 위하여 바벨론이 애굽과 유다를 외교적 대상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2) 이때에 히스기야왕은 바벨론 사자의 말(정치적 협상)을 듣고 13절에서 “왕궁의 모든 보물과 군기고(무기창고)까지 다 보여주므로 국력에 관한 것을 안보인 것이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히스기야왕이 군비를 자랑하는 뜻도 있었을 것이고, 또 연합적으로 앗수르를 대항하기 위한 군사력 계산을 위하여 보여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중대한 일을 선지자에게 묻지 않고 시행한 것은 큰 잘못이었습니다. 14~15절에서 이 일이 있은 후 이사야 선지자는 “어디서 누가 와서 무엇을 보였는지”에 대하여 왕에게 물었고 왕은 사실대로 대답하였습니다.

4. 바벨론에 망할 것을 예언함(16~19절)

1) 16~18절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증거하기를 “날이 이르리니 무릇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두었던 것이 다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옮겨질 것을 강조한 뜻) 남지 않을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후손을 뜻함)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였으니 이 예언이 성취되어 유다가 망한 때는 이때로부터 125년 후이었지만 최초에 왕이 붙들려 간 것은 여호야긴 때부터인즉 그때는 유다가 망하기 11년 전이었습니다. 왕이나 귀족이 끌려가서 바벨론의 환관(내시 또는 다른 벼슬)이 된 사람은 여호야긴왕(왕하 24:15)과 시드기야왕(왕하 25:7)과 다니엘(왕족, 단 1:3)이 있었습니다. 국가의 기밀은 함부로 보여주어서는 안될 것이요 유다의 멸망은 왕하 17:19~20에서도 예고된 것이었습니다.

2) 19절에서 이 말을 들은 히스기야왕은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시다 나의 사는 날 동안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않으리요” 하였으니, 자기 당대에 평안하고 나라가 속히 망하지 않는 것만을 큰 은혜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5대손 여호야긴과 고손자 시드기야가 포로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당대의 평안으로만 만족하였던 것입니다. 히스기야 다음의 왕들을 살피면 아들 므낫세(55년 재위), 므낫세의 아들 아몬(2년 재위), 여호야긴(여고냐라고도 함, 3개월 재위), 그리고 마지막 왕은 시드기야인데 이 사람은 여호야긴의 삼촌 곧 아자비이므로 여호야김의 형제가 됩니다. 시드기야 11년에 유다 왕조는 끝이 납니다.

5. 히스기야의 죽음(20~21절)

20절에서 히스기야의 남은 사적이 역대지략에 기록되었는데 그는 “못과 수도를 만들어 성중으로 끌어드렸다”고 하였습니다. 사 22:9, 11에 보시면 “예루살렘 안에 옛못과 아랫못이 있었다” 하였고, 또 “물을 끌어드리기 위하여 성벽 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었다” 하였으니, 이 말씀이 본문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성지 순례를 할 때 예루살렘의 긴 수로를 들어가 본 일이 있었습니다. 그 수로는 실로암 못으로 통하고 있었은즉 그 공사를 그 시대에 한 것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21절에서 “히스기야가 그 열조와 함께 자니 그 아들 므낫세가 17대 왕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29년 재위하였고, 다음에 아들 므낫세가 12세에 왕된 때는 BC. 661년쯤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제 30 과 므낫세왕과 아몬왕 (왕하 21:1~26) 목록으로


본문을 살핀즉 1~18절은 “므낫세(히스기야의 아들이고 유다 17대 왕)왕의 사적”이고, 19~26절은 그 다음 왕 “아몬의 사적”이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총 제목을 “므낫세왕과 아몬왕”으로 정한 것입니다. 대지를 나누면 ① 1~11절은 “므낫세왕의 죄악”이고, ② 12~18절은 “징벌을 예고 받고 죽음”이요, ③ 19~26절은 “아몬왕의 역사”입니다. 이 내용은 대하 33장과 상통합니다.

1. 므낫세왕의 죄악(1~11절)

1) 1절에서 “므낫세가 위에 나갈 때 나이가 12세였은즉” 이는 히스기야가 15년을 연장 받았을 때 낳은 아들이었음을 알 수 있고, “예루살렘에서 55년을 다스렸으니” 이는 웃시아왕의 52년보다도 3년 더 많은 유다왕 중 최장기 집권자가 된 것입니다. 내용을 보시면 므낫세왕은 북왕국의 아합왕보다도 나을 것이 없을 만큼 악한 왕인데 하나님이 왜 55년이나 집권하시게 하셨는지에 대하여는 그가 집권 초기에 많은 악을 행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로 바벨론에 끌려가서 혼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많이 회개한즉 하나님이 다시 돌려 보내주셔서 좋은 정치를 한 것으로 기록되었습니다(대하 33:10~ 13, 23). 그의 모친(곧 히스기야의 왕비)의 이름은 헵시바(나의 기쁨이 그에게 있다는 뜻, 사 62:4)였습니다.

2) 2~7절에서는 그의 죄를 열거하신 말씀인데 “우선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은 뜻) 하나님이 쫓아내셨고 부친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이방사람의 산당을 다시 세웠으며 북왕국왕 아합의 소위(왕상 16:32~33)를 본받아 바알과 아세라 단을 쌓았고 일월성신을 숭배하고 섬겼다”고 하였습니다(2~3절). 그뿐 아니라 4절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전에서 단을 쌓았다” 하였으니, 이는 5절에서 말씀하신대로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단을 쌓은 것”으로 여기의 두 마당은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뜰로서 단 4면에 있는 바깥 뜰(왕상 7:8)과 성막이 있는 안 뜰(출 27:9, 레 6:16)로 구별되는데 여기에 구애받지 않고 우상의 단을 쌓은 것입니다. 또 6절에서 “그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한 것”은 레 18:21에서 금지하신 일이나 왕하 16:3에서 아하스왕도 그렇게 하였으며, 점, 사술, 신접자, 박수까지 신임하여 악을 행하고 하나님의 노를 격발하였다 하였고, 또 7절에서는 “자신이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하나님의 전에 세웠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악은 누구에게도 견줄 수 없을 것입니다.

3) 7절의 “옛적에…하신 부분부터 8절까지”는 하나님의 선민에 대한 약속인바 “선민이 모세의 명한 율법을 지켜 행하면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을 예루살렘과 그 성전에 두시고 그 열조에게 주신 땅에서 유리하지 않게 하신다”(신 4:25, 30:16, 왕상 9:3)고 하셨으나, 9~11절에서 “백성들이 듣지 아니하였고 므낫세의 꾀임을 받아 악을 행한 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열방보다 더욱 심하였으니, 이처럼 가증한 일과 악행이 아모리 사람(가나안족을 일괄한 호칭, 창 15:16, 민 21:29~33)보다도 심하였고, 또 그 우상으로 유다를 범죄케 하였다”고 선지자들(선지자 이름은 밝히지 않았음)을 통하여 말씀하게 하신 것입니다.

2. 징벌을 예고 받고 죽음(12~18절)

1) 그리하여 12절에서 “하나님이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신다” 하셨고,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하셨으니, “귀가 울린다”는 뜻은 재앙의 경고가 강하게 전달 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1:~8:을 읽어보시면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진노하시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의 백성들이 그 경고를 받았을 때에 귀가 울렸을 것입니다.

2) 13절에서는 “사마리아를 잰 출과 아합의 짐을 다림보던 추(사마리아를 훼파할 때 사용한 줄과 추를 뜻함)로 망하게 하신 것처럼 예루살렘에도 그렇게 베푸시고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는 것처럼 유다를 씻어(멸망) 엎으시겠다” 하셨으며, 14절에서는 “하나님이 자기의 기업(선민을 통하여 영광 받으시려고 계획하신 뜻, 창 17:8)의 남은 자를 버려 그 대적의 손에 붙여 노략과 겁탈을 당하게 하실 것인즉, 15절에서 이는 애굽에서 나온 그 열조 때부터 오늘까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그의 노를 격발한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므낫세는 말년에 회개하고 겸비해진 때가 있었습니다(대하 33:23).

3) 16절에서 “므낫세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유다로 범죄케 한 것 외에도 무죄한 자의 피를 많이 흘려 예루살렘 안에 피가 가득하게 하였다” 하셨으니, 이는 몰록에게 아들을 바치는 것 외에 55년의 독재정치에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뜻입니다. 그 중에 이사야도 그 희생자 중 하나로 꼽는다고 합니다. 17절에서는 “그의 남은 사적과 범죄가 유다의 역대지략에 기록되었다”는 말씀이고, 18절에서는 “그가 열조와 함께 자매 그 궁궐 동산(왕하 9:28의 열조의 묘실과는 구별됨) 곧 웃사의 동산(특정인의 묘지를 뜻함)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몬이 18대 왕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이는 히스기야가 15년을 더 사는 중에 므낫세를 낳아 55년이나 악한 정치를 펴므로 후시대에 악을 초래한 결과가 되었다고도 합니다.

3. 아몬왕의 역사(19~26절)

1) 19절에서 “아몬은 22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2년을 치리하였고 그 모친은 욧바(영문표기는 jotbah인데, jotbath로 기록된 곳은 가나의 서쪽 4㎞쯤임)사람 하르스의 딸 므술레멧이라” 하였으며, 20~22절에서 “아몬은 그의 부친 므낫세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또 그 부친이 섬기던 우상을 섬기며 경배하였고 그 열조의 하나님을 버리고 그의 길로 행하지 않았다” 하였으니, 짧은 기간 왕노릇 하면서 죄 짓는 일에만 급급하였던 것 같습니다.

2) 결국 23절에서 그의 신복들이 반역하여 집권 2년 만에 24세 된 아몬을 궁중에서 죽였는데, 24절에서 또 그 국민들이 아몬왕에게 반역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의 아들 8세된 요시야로 대신 왕을 삼았으니 그가 유다 19대 왕이 된 것입니다. 그 시기가 BC. 613년경입니다. 24절에서 “아몬의 행한 바 남은 사적은 유대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었다” 하셨고, 25절에서 “아몬은 웃시야의 동산(18절의 웃사의 동산과 같은 뜻으로 사료됨) 자기 묘실(부왕 므낫세가 묻힌 곳)에 장사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과 그 계명을 지키는 일은 꾸준한 교육과 큰 결심없이는 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상주의와 세속주의가 여전히 팽배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북왕국 왕조는 물론 유다 왕조에 한심한 일이 많은 것 같으나 불신앙의 입장에서 사는 사람들은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불신앙과 우상숭배의 죄가 만연되었을 것입니다.

제 31 과 요시야왕의 초기 역사 (왕하 22:1~20) 목록으로


23장에도 “요시야왕의 역사”가 기록되었기 때문에 본 장의 총 제목을 “요사야왕의 초기 역사”로 정하였습니다. 대지를 분류하면 ① 1~7절은 “요시야왕의 성전 수리”요, ② 8~13절은 “율법책을 발견함”이며, ③ 14~20절은 “여선지 훌다의 예언”으로 나누어 살필 수 있습니다.

1. 요시야왕의 성전 수리(1~7절)

1) 1절에서 “요시야는 나이 8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31년을 치리하였고 그 모친의 이름은 보스갓(수 15:39, Bozkath, 라기스와 가까운 평지라 함, 라기스는 헤브론 서쪽 25㎞쯤) 사람 아다야의 딸 여디다”라 하였고, 2절에서 요시야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였으며 다윗의 길로 행하여…치우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점, 조상의 좋은 모범을 본 받는 점, 그리고 정도로만 가는 생활은 모든 성도에게 다 필요한 것입니다(신 5:32, 수 1:7).

2) 3~7절 말씀은 “요시야 18년(요시야 26세 때)에 므술람의 손자요 아살리야의 아들인 왕궁 서기관 사반을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보내어 성전을 수리하라는 왕명을 전달케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때에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전에 드려진 은(문 지킨 자가 수납한 은인데 이는 여호야다 제사장 때부터 헌금함을 놓고 자유로 봉헌케 한 것임, 왕하 12:7~8)을 계수하여 하나님의 전 감독자에게 전하고, 또 감독자는 그 은을 수리기 자인 공장(工匠)에게 주어 전의 퇴락한 것을 수리하게 하되 목수, 건축자, 미장이에게 주게 하고 다듬은 돌을 사서 수리하게 하였는데, 이때에 저희가 취급한 은(저희 손에 붙인 것)을 계수하지 않았으니 이는 모두가 진실함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의 공금 취급도 이렇게 할 만큼 신용 있게 하고 또 그것을 신용 할 만한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많은 사무적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2. 율법책을 발견함(8~13절)

1) 8절에서 대제사장 힐기야는 (성전 수리공들로부터)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책을(모세 5경, 또는 율법에 대한 것) 받고 이것을 왕궁 서기관 사반에게 주어 사반이 읽었으며, 또 9~10절에서는 “사반이 왕에게 왕명대로 성전을 수리한 일과 또 거기에서 발견한 율법책에 대하여 보고하고 그 책을 왕 앞에서 읽은즉, 11절에서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 옷을 찢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옷을 찢은 것은 몹시 탄식하는 표현이고 요시야가 말씀을 듣고 이렇게 탄식한 이유는 그 율법의 말씀에서 하나님을 바로 경외하지 못하였을 때 벌주신다는 계명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계명은 율법에 많이 있습니다. 우선 출 20:1~7이나 신명기 28장을 읽었다면 두려움을 느끼기에 충분하였을 것입니다. 이때에 대제사장 힐기야나 사반은 율법을 읽고도 충격 받는 느낌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2) 12~13절에서 “또 왕은 대제사장(8절) 힐기야와 서기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야의 아들 악볼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신(侍臣) 아사야 5인에게 명하여 (선지자를 찾아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또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하나님께 물으라” 하였으니, 이 뜻은 하나님의 율법과 백성들의 생활을 대조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화, 복을 내리실 것인지를 알아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열조가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않고 준행하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발하신 진노가 큰 것을 알기 때문에 아울러 은혜를 구하라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이것은 요시야왕이 하나님의 말씀에 크게 민감하였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3. 여선지 훌다의 예언(14~20절)

1) 14절에서 왕명을 받은 다섯 사람이 할하스의 손자요 디과의 아들이며 예복(제사용 예복, 왕하 10:22)을 주관하는 살룸의 처인 여선지 훌다에게 찾아가서 더불어 말하게 되었으니, 이때 그 여선지는 예루살렘 둘째 구역(낮은 지역이라 함, 습 1:10)에 거주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때는 이사야 선지자의 사역시대가 지난 때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왕 때에만 사역을 하였으니까요(왕하 19:2, 20:19).

2) 여선지 훌다는 두 가지 내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왕에게 전달케 하였으니, 한 가지는 15~17절에서 “율법에 기록된 대로 재앙을 내리신다”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18~20절에서 “요시야의 회개와 겸비함을 보시고 그 재앙을 당사자의 눈으로는 보지 않게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요시야가 죽은 다음에 이루시고 요시야로 하여금 그 재앙을 피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사 57:1~2). 16~17절에서 “내가 이곳과 그 거민에게 재앙을 내리되 곧 유다왕의 읽은 책에 (기록된) 모든 말대로 할 것이니 이는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그 손의 모든 소위로서 다른 신에게 분향하므로 나의 노가 격발되었은즉 돌이키시지 않는다” 하셨고,

3) 18~19절에서는 “유다왕 요시야에게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들은 말(율법 낭독에서 들은 것)을 의논컨대 내가 이곳(유대땅)과 그 거민에게 대하여 빈터가 되고 저주가 되리라 한 말(신 11:26~28)을 네가 듣고 마음이 연하여(온유, 겸손, 회개의 마음)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이 요시야의 회개하는 정황을 보시고 그 시대에 내리실 재앙을 연기하셨다는 뜻입니다. 20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로 네 열조에게 돌아가서(죽게 하신다는 뜻)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곳에 내리는 모든 재앙(유다가 망할 때 있을 재앙, 즉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 때부터 시작되어 22년 후에 끝난 것, 왕하 23:34, 25:1~11)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 하였고, “보냄 받은 사자들은 이 사실을 왕에게 복명(復命:사명을 마치고 돌아가서 보고하는 것)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계율은 어김이 없으며 죄값은 반드시 징계로 받고 회개하면 용서 또는 상당기간 연기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은 징벌과 재앙을 피하게 하시는 방법으로 요시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하셨습니다(왕하 23:29).

제 32 과 신앙궐기와 정화사역 (왕하 23:1~20) 목록으로


본 장을 두 번에 나누어 상고하기로 합니다. 본문 ① 1~3절은 “요시야의 신앙궐기”이고, ② 4~20절은 우상숭배의 모든 것을 타파한 “정화사역에 관한 말씀”입니다.

1. 요시야의 신앙궐기(1~3절)

1) 왕하 22:10~20에서 요시야왕이 율법과 훌다 선지자를 통하여 많은 깨달음이 있었으므로 이 사실을 백성들에게 계몽하고 바른 신앙을 갖게 하기 위하여 총궐기하는 내용이 이 부분에 기록된 것입니다. 1~2절 말씀은 “백성들(무론 노소란 모일만한 백성들을 전부 모은 뜻)을 예루살렘 성전마당에 모이게 한 후 그들에게 성전에서 발견한 언약책(율법, 축복과 저주가 약속된 것)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렸다”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도록 증언한 것이요,

2) 3절에서는 “왕이 하나님 앞에서 백성들에게 언약을 세웠으니 그 언약은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발견한 율법책)에 기록된 이 언약(축복을 약속한 말씀)을 이루게 하여야 할 것이라 한즉 백성이 다 그 언약(왕이 제시한 맹세 내용)을 쫓기로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켜 율법에 약속된 축복을 받도록 힘쓸 것을 전 백성으로 맹세시킨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맹세시킨 내용은 신 6:5을 근거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성도들도 믿음생활을 잘 하시려면 매일 반성, 매일 회개, 매일 결심, 매일 새출발을 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2. 정화사역에 관한 말씀(4~20절)

1) 4절에서 “요시야왕은 힐기야 대제사장과 그 다음(버금) 지위의 제사장들과 (성전의) 문 지킨 자들에게 명하여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기명(우상숭배의 제구와 용품들)을 하나님의 전에서 꺼내어 바깥 기드론 밭(성전 동남쪽 성 밖 600m쯤)에서 불사르고 그 재를 벧엘로 가져가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예루살렘 성전이 우상의 제단으로 변해진 것은(솔로몬 때에도 이방종교는 허용되었음, 왕상 11:4~8) 유다왕 여호람이 북왕국 아합왕의 사위로 있을 때부터 여러보암이 벧엘과 단에 설립한(왕상 12:27~33) 자율종교제도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끌어드리기 시작하였는데(왕하 8:17~18) 그후에 요아스왕도 이것을 장려하였고(왕하 13:1~2), 또 아하스왕은 다메섹에 있는 앗수르의 이방 제단까지 모방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개조하였으며(왕하 16:10~16), 그다음 므낫세왕 때에도 예루살렘 성전을 이방적 제단으로 사용하므로(왕하 21:2~11) 결국 솔로몬 성전은 형태만 남은 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시야는 그곳에 있는 우상숭배의 제구들을 다 꺼내어 불살랐는데 왜 그 재를 벧엘로 가져가게 하였을까요? 벧엘은 예루살렘 북쪽 17㎞쯤의 지점인데 이곳은 벤야민 지파 영토에 있고, 최초에 여러보암이 자율제단을 쌓고 스스로 제사를 드릴 때(왕상 12:25~ 33) 하나님의 사람이 “장차 요시야란 왕이 나와서 우상숭배자들을 그곳에서 불사르게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한 곳입니다(왕상 13:2~3). 따라서 벧엘은 타락종교의 원조가 된 것입니다. 요시야가 선지자의 예언을 알고 그렇게 하였을 수도 있고, 또 벧엘이 타락의 근원지이므로 우상의 잔해를 그 근거지로 돌려서 없앤다는 뜻으로 재를 그곳으로 옮기게 한 줄로 압니다. 16절을 참고하시면 요시야가 그 당시의 예언을 알았을 것 같으며, “그 단을 더럽게 한다”는 말씀이 바로 우상의 찌꺼기들을 한 장소에 모아 장사 지내는 의미로 그렇게 한 것이 분명한 줄 압니다.

2) 5절의 말씀은(4절 말씀이 예루살렘 성전 정화이므로) “예루살렘 사면 산당에서 이방적 제사를 드리던 제사장들을 다 폐하였다”는 말씀이고, 6~7절은 4절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말씀입니다. 4절에서는 우상숭배의 기명을 불살랐는데 본 절에서는 “아세라 우상을 불살라 빻아서 그 가루를 평민의 묘(기드론 주위에 공동묘지가 있음)에 뿌렸다”고 하였습니다. 또 7절에서 “미동의 집을 헐었으니 그곳은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짠 처소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미동은 남창을 뜻하고, 아세라는 가나안의 풍요를 준다는 여신이요, 그 여신을 단장할 휘장이 필요할 수 있으며, 또 이방적 제사 행위에 음행이 가미된다는 점을 상상하면(민 25:1~2) 미동의 집에 대한 뜻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8~9절 말씀은 유다 전역에 있는 산당의 제사장들을 불러 예루살렘의 단(요시야가 정화한 곳)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징계를 하고 다만 “형제 중에서 무교병만 먹으라” 하였으니, 이는 유월절 제사에만 참여케 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마치 현실교회가 징계를 할 때 직분은 면직시키고 성찬 참여는 허용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게바(예루살렘 북쪽 12㎞쯤, 이는 유다 지역의 북쪽을 뜻함)에서부터 브엘세바(헤브론에서 7시 방향 45㎞쯤, 유다 지역의 남방을 뜻함)까지 흩어진 산당을 더럽게 한 것”은 훼파하였다는 뜻이고, 또 “성문의 산당들을 헌 것”은 대표적 훼파 사례를 지적한 것입니다. “이 산당들은 부윤(벼슬이름, 왕상 22:26) 여호수아의 (집) 대문 어귀에 있는 것이고 곧 (예루살렘) 성문 왼편에 있었다” 하므로 유다 전역의 산당을 훼파한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4) 10~12절은 “도벳을 더럽게 하고 태양수레를 훼파한 내용”입니다. 10절에서 “왕이 힌놈의 아들 골짜기(여기의 힌놈의 뜻은 알 수 없고, 이곳은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깊은 계곡인데, 일찌기 이방의 몰록신에게 인신제사처로 사용한 곳으로 무덤, 또는 지옥을 상징한다고 함, 수 15:18, 느 11:30, 렘 7:32)의 도벳(태우는 곳,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와 기드론 골짜기가 합하는 위치)을 더럽게 하여(황폐시킨 뜻) 몰록(암몬인의 태양신으로 아이를 불태워 제사한다 함)에게 드리기 위하여 그 자녀를 불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였고”, 11절에서는 “태양신에게 말을 제사하는 일을 제하였으니 곧 여호와의 전 입구 근처에 있는 시종 나단멜렉의 집 곁에 있는 태양 수레(태양신에게 제물로 드릴 말을 운반하는 것)를 불태운 일이며”, 12절에서는 “유다 열왕(아하스 이후의 왕들 중)이 아하스의 다락 지붕을 세운 단들과 므낫세왕이 여호와의 전 두 마당(왕하 21:5 참조)에 세운 단들을 헐고 빻아서 그 가루를 기드론 시내에 뿌려 없앴다”고 하였습니다.

5) 13~14절에서 “예루살렘 앞 멸망산(예루살렘 동쪽의 해발 814m되는 감람산을 가리킨 것으로 그 산에 우상의 단이 많아서 그렇게 호칭한 듯함) 우편에 세운 산당도 훼파하여 더럽게 하였으니 이곳은 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아스다롯(왕상 11:5)과 모압인의 그모스(왕상 11:7)와 암몬 자손의 가증한 밀곰(왕상 11:5)을 위하여 세웠던 것이라 하며”, 15절에서 “(이미 앗수르에 망한) 벧엘과 단까지 가서 여러보암이 세운 단과 산당을 헐고 아세라 목상까지 다 불살라 가루를 만들어 없앤 것”입니다. 그 당시에 북왕국 지역은 앗수르가 점령한 후에 이민 정책을 쓰면서 국경선 관리가 허술하였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유다의 부패 근원지가 벧엘과 단인즉 그 시발지의 정화를 필요로 한 듯합니다. 16절을 보시면 그때에 요시야왕은 직접 벧엘까지 가서 근처의 산에 있는 묘실을 보고(그 묘실의 주인공이 우상숭배자임을 확인하였을 것임) 그 해골을 취하여 벧엘의 단에 불사르므로 “여러보암 당시(약 350년전)에 하나님의 사람이 예언한 말씀대로 이루었다”고 하였습니다(왕상 13:1~2).

6) 17~18에서 요시야왕이 보이는 한 비석의 연고를 물었을 때 그곳 성읍인들이 고하기를 “그것은 북왕국 여러보암 때에 유다의 한 선지자가 벧엘의 단을 향하여 행하신(요시야가 제단을 정화한 일) 일을 예언하러 왔다가 죽은 하나님의 사람의 묘라 한즉 그것은 (의인의 무덤이므로) 그대로 두라 하였기 때문에”, 그 당시에 그를 죽게 한 그 지역, 사마리아에서 온 늙은 선지자가 자기를 그곳에 함께 뭍도록 유언하였은즉(왕상 13:11, 30~32) 그 무덤도 함께 보존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19~20절은 요시야가 약 350년전에 예언한 대로 모든 우상의 단과 제사장들을 죽이고, 유다와 예루살렘과 북왕국 벧엘의 단까지 헐고, 또 그 제사장들의 해골을 벧엘의 단에서 불태워 없애므로 예던도 성취하고 정화사역에 크게 힘쓴 사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노를 격발한(19절) 모든 부정한 일이 발생된지 350년 후에 정화된 것입니다.

제 33 과 요시야왕과 두 아들 (왕하 23:21~37) 목록으로


본문에는 요시야왕의 남은 역사와 그의 두 아들 여호아하스와 엘리야김(여호야김)이 차례로 왕되는 과정이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총 제목을 “요시야왕과 두 아들”로 정한 것입니다. 대지를 나누면 ① 21~30절은 “요시야왕의 남은 역사”요, ② 31~33절은 “여호아하스왕”이며, ③ 34~37절은 “여호야김(엘리야김)왕”입니다.

1. 요시야의 남은 역사(21~30절)

1) 21절에서 왕은 뭇 백성들에게 “발견한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유월절을 지키라” 명하였으니, 이는 그 당시 발견한 언약책이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유월절 규례가 출 12:1~14, 레 23:5, 민 9:1~8, 신 16:1~8에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22~23절은 “사사시대로부터 열왕시대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유월절을 (거국적으로 성대하게) 지킨 일이 없었는데 비로소 요시야왕 18년에 지켰다” 함은 우상종교를 타파하고 새롭게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어서 온 백성들이 출애굽하는 정신으로 변화의 생활을 시작한 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24절에서는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자(신 18:11)와 박수(출 7:11)와 드라빔(창 31:19)과 우상(출 20:4)과 모든 가증한 것(이방종교의 잔재물)을 다 제하였으니 이는 발견한 율법책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하심은 왕이 계속하여 율법을 읽고 연구하면서 2차로 정화운동을 전개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기록된 율법의 말씀을 이루려 한 것”처럼 저희들도 기록된 말씀(성경, 고전 4:6, 9:10, 10:11)을 절대표준으로 아시고 실천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모세의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전무후무하였다”고 하였습니다(25절). 요시야의 아버지 아몬왕(왕하 21:19~20)과 할아버지 므낫세왕(왕하 21:1~16)은 하나님 앞에 특별히 악하였는데 요시야왕과 그의 증조부 히스기야왕은 반대로 하나님 앞에 바른 태도를 취하였으니, 이렇게 선과 악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굴곡있게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따라서 선할 때는 악을 경계하고 악할 때는 선한 것을 내다보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2) 26~27절은 “하나님이 유다를 향하여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시지 않았으니 이는 므낫세(요시야 조부)가 52년간 집권하면서 하나님을 격노케 한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요시야의 선행이 그 아버지 아몬과 할아버지 므낫세의 죄를 속량할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북왕국 이스라엘을 물리치신 것처럼 유다와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리라 하셨던 성전도 다 버리시겠다” 하셨으니, 이 사실은 렘 12:7~13에도 기록된 말씀이요, 28절에서는 “요시야의 남은 사적이 역대지략에 기록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3) 29~30절은 요시야왕의 죽음 기사입니다. 요시야왕 31년에 애굽왕 바로느고가 앗수르왕(성서사전을 보면 요시야 31년은 BC. 605년이고, 그 당시 앗수르왕은 606년까지 우발리트 2세가 왕이었는데, 605년 이후의 왕조역사는 기록이 없음)을 치기 위하여 유프라데 강쪽으로 가면서 유다 영토를 무단 통과하려 하였기 때문에 요시야가 이를 방어하기 위하여 나갔다가 므깃도(갈멜산 서남방 30㎞쯤)에서 전사한즉 예루살렘의 열왕 묘실에 장사하고 그 아들 여호아하스를 왕세워 유다 20대 왕이 되게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요시야왕의 선행이 열조의 죄를 속량치는 못하였으나 자신은 (왕하 22:20에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나라의 멸망을 피하였고(사 57:1) 국방의 임무를 다하다가 죽었으니 이것은 그가 받은 개인의 복으로 여기셔야 하는 것입니다(대하 35:20~27 참고).

2. 여호아하스왕(31~33절)

1) 31절에서 여호아하스는 23세에 요시야왕의 뒤를 이어 유다 20대 왕이 되었으나 불운하게도 석달만 치리하고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그 모친의 이름은 립나(Libnah, 유다의 립나임, 수 15:42, 왕하 19:8) 사람 예레미야의 딸 “하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예레미야는 선지자 예레미야와 같은 시대 사람이지만 선지자 예레미야는 아나돗의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임을 기억하십시오(렘 1:1).

2) 32절은 “여호아하스가 그 열조의 행위대로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니”, 그는 요시야의 아들답지 않게 행동한 것이요, 33절에서 “바로느고가 저를 하맛 땅 립나(Riblah, 지중해변 시돈에서 북쪽으로 200㎞쯤 됨)에 가두어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고 또 유다로 하여금 은 100달란트와 금 한 달란트를 벌금으로 내게 하였으니”, 이는 애굽왕 바로느고가 요시야를 죽인 다음 유다를 정복하려는 과정에서 여호아하스가 복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를 감금하고(죽이지 않겠다는 약조로) 벌금을 내게 한 것으로 사료됩니다(달란트는 무게의 단위로 42㎏, 또는 21㎏ 두 종류로 사용한다고 함). 그러나 애굽으로 끌로가서 죽였습니다(34절).

3. 여호야김(엘리야김)왕(34~37절)

1) 34절에서 바로느고가 여호아하스를 감금한 후 그의 형제 곧 요시야의 다른 아들 엘리야김(하나님이 세우심이란 뜻)을 여호야김(여호와가 세우심)으로 이름을 바꾸어 유다 21대 왕을 세웠습니다. 바로느고가 이름을 바꾼 것은 비슷한 뜻으로 바꾸었는데, 새롭게 애굽에 복종하고 충성하라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끌고가서 죽였으니, 이는 벌금을 내지 않은 이유도 있을 것이지만 여호야김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2) 따라서 여호야김은 35절에서 “작정된 은금과 돈을 줄 수밖에 없었고 애굽왕은 액수를 정하여 국민 각 사람의 힘대로 은금을 늑봉(억지로 뺏는 것)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36절에서 여호야김은 25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11년을 치리하였는데, 그 모친은 루마(Ruma, 지도로 확인하기 어려움) 사람 브다야의 딸 “스비다”라고 하였습니다. 37절에서 여호야김도 여호아하스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니(32절), 국가적으로 계속 용서받지 못할 형편으로만 이끌려 간 것입니다. 유다의 남은 역사는 그 다음 왕으로 3개월 통치한 여호야긴과, 11년 통치한 시드기야의 역사로 종말을 거두게 됩니다.

제 34 과 여호야김과 여호야긴의 역사 (왕하 24:1~20) 목록으로


본문 ① 1~6절은 “여호야김의 역사”이고, ② 7~16절은 “여호야긴 때의 수난”이며, ③ 17~20절은 “시드기야의 역사”입니다. 시드기야왕 때의 역사는 17~20절에 기록이 있으나, 25장에 계속되므로 본 장의 총 제목을 “여호야김과 여호야긴의 역사”로 정할 수 있습니다.

1. 여호야김의 역사(1~6절)

1) 1절에서 “여호야김(요시야의 아들이고 여호아하스의 형제요 여호아하스왕 다음에 유다 21대 왕이 된 후 11년을 치리하였음, 왕하 23:34~36) 시대(이 시대는 주전 617~606년, 또는 568~558년이라 함, 연구자마다 다름)에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유다 전역을 장악한 뜻) 여호야김이 이를 물리칠 힘이 없는고로 3년을 섬기다가 배반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솔로몬 이후 국력이 약해지면서 아람과 앗수르, 또는 애굽의 침략까지 자주 당한터라 퍽 피곤하였을 것입니다.

2) 2절에서는 “하나님이 그 종 선지자들로 하신 말씀같이(왕하 20:17, 21:12~14, 23:27)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어 유다를 멸하려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선지자들의 예언이란 “대적의 침략으로 유다가 망할 것을 예언한 말씀이고, 갈대아(아브라함의 고향과 그 주변 지역을 뜻하며, 바벨론 국가의 민족을 뜻함, 창 11:31)의 부대와 아람, 모압, 암몬의 부대를 말씀하신 것은 동방에서 온 바벨론 군사가 유다 가까운 곳의 아람, 모압, 암몬(애굽의 시나이 반도)을 먼저 점령한 후 그 여세를 규합하여 유다까지 침략한 것을 의미합니다.

3) 3절에서 “이 일이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이 명하신 것(섭리)으로 저희(유다족)를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신 28:36, 왕하 20:17, 사 39:6, 렘 27:8~11에 예언된 바도 있음) 이는 므낫세의 지은 죄(왕하 21:11, 16, 23:26)를 인함이라” 하시므로 므낫세왕이 약 90년 전에 범한 죄값을 그 후시대(여호야김은 므낫세의 증손임)에 갚으시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4절에서는 “므낫세의 범죄 중 무죄자의 피를 흘려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한 사실”을 말씀하셨는데, 이는 왕하 21:16 말씀을 재설하신 것이고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이 “용서하시기를 즐겨하시지 않았다” 하셨으니, 하나님은 용서를 좋아하시고 약간의 구실만 있어도 용서하시려는 분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뜻이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신다”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마 18:21 ~22). 따라서 성도는 용서 받기 위한 회개나 노력을 반드시 힘써야 할 것입니다. 5~6절은 “여호야김의 남은 사역이 열대지략에 기록된 것과 그가 죽으매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유다 22대 왕이 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11년 왕노릇 하는 동안 바벨론의 위협은 있었으나 상당한 조공을 제공하므로(왕하 23:35) 아주 망하지는 않았으니, 이것도 요시야왕의 선행을 인한 하나님의 은혜요, 또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뜻입니다. 성도는 평안할 때 미래의 환난을 내다보면서 많이 회개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개인적 선행과 민족적 범죄를 다 구별하여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2. 여호야긴 때의 수난(7~16절)

1) 7절에서 애굽왕 느고는 여호야김을 세우는 것까지만 위세를 떨치다가 이어 바벨론이 (남쪽) 애굽영토의 일부인 하수(이 지역은 홍해와 갈대하수를 의미함, 따라서 시나이 반도를 점령한 뜻) 북쪽 유프라데 하수까지 당시 애굽왕에게 속하였던 땅(앗수르와 싸워 잠시 점령한 땅으로 추정됨)을 다 취하였기 때문에 애굽을 의지하거나 애굽의 영향을 받을 통로가 끊긴 것입니다. 8~9절은 “여호야긴이 18세에 왕되어 석달만에 바벨론왕에게 포로되어 끌려갔고(15절) 그 모친의 이름은 예루살렘의 엘라단의 딸 느후스다요 여호야긴의 선악에 대한 행사는 그 부친 여호야김을 본받았으므로 하나님 앞에 악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왕이 바뀌었으나 신앙과 도덕성에 있어서 특별한 변화가 없음을 뜻하며, 바벨론의 압박만 더 가속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특이한 점은 8절에서 “여호야긴이 18세에 왕이 되었다” 하였는데, 대하 36:9에는 8세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본을 사본하는 사람이 본문 8절을 쓸 때는 바로 필사하였으나 대하 36:9을 쓸 때는 10수에 해당하는 ʾ (요드)를 빠뜨린 실수때문일 것으로 이해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18세가 맞는 말씀입니다.

2) 10~11절 말씀은 “그때(여호야긴왕이 3개월 재위한 때, 바벨론왕 느브갓네살 8년, 주전 576년쯤)에 바벨론 군사가 예루살렘을 에워쌌으니”, 이는 여호야김의 재위 11년 중 3년만 복종하고 8년 동안은 배반했기 때문일 것이요(왕하 24:1) 이때에 포위한 것은 왕으로 하여금 성문을 열고 항복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2절에서 “유다왕 여호야긴과 그 모친과 신복과 방백들과 내시들이 함께 바벨론왕에게 나가므로 스스로 항복하고 잡히는 신세가 되었고”, 13절에서 “저(느브갓네살)는 하나님의 전의 모든 보물과 솔로몬이 만든 왕궁의 보물을 집어내고 또 솔로몬이 만든 성전의 모든 금기명을 다 훼파하므로 일찍이 선지자가 예언한 하나님의 말씀처럼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은 이사야 선지자와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성취된 것입니다(왕하 20:16~ 17, 렘 20:5, 22:26~28).

3) 14~16절은 바벨론왕이 유다왕과 백성에 대한 포로 및 이민정책을 말씀한 내용으로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방백들과 모든 용사를 합한 1만명과 또 모든 공장(工匠)과 대장장이를 잡아감”으로 비천한 자만 남게 하였고, 또 “여호야긴왕과 왕의 모친과 아내들과 내시와 나라의 권세자들도 잡아 갔으며 그 외에 용사 7천과 공장과 대장장이 1천까지 싸움에 능한 자들을 다 바벨론으로 끌어갔다”고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유다 전역에 권세자나 기술자나 용사될 자를 없게 한 것입니다.

3. 시드기야의 역사(17~20절)

1) 17절에서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끌어 갔은즉) 바벨론왕은 여호야긴의 아자비(여호야김의 형제, 또는 요시야의 아들임) 맛다니야를 왕세우고 이름을 시드기야로 고쳐 유다의 23대 마지막 왕을 삼았습니다. 맛다니야의 뜻은 “여호와의 선물”이라고 하는데 그 이름을 시드기야로 고친 뜻은 “여호와는 정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평민이 왕이 되었으므로 그 신변 변화에 따라 이름을 바꾼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왕하 23:34의 뜻도 같음). 18절에서 “시드기야가 위에 나갈 때 21세였고 예루살렘에서 11년을 치리하였으며 그의 모친은 립나(세 곳이 있으나 가나안 땅의 립나임, 왕하 8:22, 19:8)에 거주하는 예레미야의 딸 하무달이니(왕하 23:31)”, 이는 여호아하스의 어머니인즉 시드기야와 여호아하스가 형제임을 나타낸 것입니다(여호야긴은 고니야란 별명도 있음, 렘 22:24).

2) 19~20절은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 받아 하나님 앞에 악하게 행하였다” 하셨으니, “여호야김이 그 열조처럼 악하였다” 하신 말씀은 왕하 23:37에도 기록되었고,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도 역시 그 부친처럼 악하였다”는 말씀이 왕하 24:9에 기록되었습니다. 나라가 망할 무렵에 한 임금도 죄에 대한 하나님의 마땅하신 응징임을 깨닫고 회개한 사람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20절에서 “하나님이 예루살렘과 유다에 대한 진노를 돌이키시지 않았고 저희를 그 앞에서 쫓아내실 때까지 버려두셨으며 그때에도 시드기야는 바벨론을 배반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재앙을 받을 때 그것이 민족과 열왕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임을 깨닫고 회개하면서 바벨론에 순복하기를 바라셨으나(애 3:1~39, 렘 50:1~5, 17~19, 51:1~6, 60~64) 왕과 백성들은 그렇지 못하였던 것입니다(대하 36:13~16, 렘 52:3). 주권자가 매를 드시면 순순히 맞으면서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주권자의 용서와 회복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제 35 과 선민국가의 종말 (왕하 25:1~30) 목록으로


본문의 총 제목은 “선민국가의 종말”로 정할 수 있습니다. 선민국가의 종말에 대한 말씀은 대하 36:11~21과 렘 40:7~41:8, 52:1~34에도 기록되었습니다. 선민국가의 종말은 2차에 걸쳐 멸망되었으니 1차는 주전 678년경 북왕국와 호세아 9년에 앗수르에 의하여 이질적 종교와 함께 분리된 나라가 망하여 없어진 것이고(왕하 17:1~6), 2차는 그 남은 선민국가, 즉 남방 유다국으로 종교적 정통국가이지만 하나님 경외하는 신앙을 옳게 사수하지 못한 상태에서 주전 555년경(이 연대는 606년이라고도 함, 북왕국 멸망보다 123년 후)에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된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선민국 통치의 뜻을 아주 버리신 것입니다. 70년 후에 파사왕의 배려로 선민이 예루살렘에 귀환하여 성전을 수리하고 하나님 경외하는 제도를 복구하였지만(에스라, 느헤미야서의 역사) 왕권이 독립적으로 복귀된 것이 아니므로 선민국이 새로 탄생한 것은 아닙니다. 또 1948년에 이스라엘 나라의 국호가 탄생하였지만 그것은 야곱의 12지파에게 신앙의 제도와 함께 물려주신 이스라엘 나라를 복귀한 것이 아니고, 종교의 순수성을 떠나고 여호와 하나님과 관계없이 이스라엘이란 이름만으로 이루어진 나라이기 때문에 선민을 창설하셨던 하나님과 신앙적 관계에서 회복된 나라는 아닌 것입니다. 본문 내용을 대별하면 ① 1~7절은 “유다왕조의 종말”이고, ② 8~17절은 “성전, 왕궁파괴와 포로”요, ③ 18~21절은 “유다의 요인 숙청”이며, ④ 22~24절은 “남은 백성에 대한 통치”이고, ⑤ 25~26절은 “복종에 대한 반대 혁명”이며, ⑥ 27~30절은 “여호야긴을 선대함”입니다.

1. 유다왕조의 종말(1~7절)

1) 1~3절에서 “시드기야 9년 10월 10일에 바벨론왕 느브갓네살이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성 사면으로 진을 치고 토성을 쌓았다” 하였으니, 여기의 토성을 쌓은 것은 성이 견고한 중 열지 않고 대항하기 때문에 성을 타고 넘어가기 위하여 쌓은 것입니다. 왕하 24:17~20을 보시면 “바벨론왕이 전 왕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그의 삼촌인 시드기야를 왕세웠으나 (처음에는 복종하고 조공을 바쳤겠지만) 나중에는 배반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바벨론왕이 참고 기다리다가 예루살렘을 함락하려고 온 것입니다. 2절을 보시면 “시드기야 11년까지 에워쌌다” 하였고, 3절에서 “4월 9일에 성중의 기근이 심하여 양식이 지하였다(盡, 다 떨어진 뜻)” 하였은즉 1년 6월쯤 에워싼 것입니다.

2) 4~5절에서 성중의 모든 군사들이 양식을 구할 목적으로 왕을 모신 채 포진된 바벨론 군사들의 감시 하에서 은밀하게 성벽의 구멍을 뚫고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아라바길(사해바다 남쪽이 아라바임)로 가다가 갈대아(바벨론을 뜻함) 군사들에게 발견되어 쫓기게 되자 왕을 모신 군사들이 여리고에서 흩어지게 되었고, 6~7절에서 “결국 왕이 바벨론 군사에게 잡혀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 끌려가서 신문 당하고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목전에서 죽인 후 시드기야의 두 눈을 뺀 후에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갔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립나”는 가나안 땅에 있는 립나가 아니고(왕하 24:18) 팔레스틴 먼 북쪽에 있는 하맛 지역의 “립나”를 뜻합니다(21절). 1년 반동안 포위하고 토성을 쌓다가 결국 시드기야에게 잔인한 보복을 한 것입니다. 렘 27:12~22을 보시면 그 당시에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 왕에게 복종하여 화를 피하도록 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왕이 듣지 않다가 선지자의 예언대로 화를 당하고 나라가 망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왕하 24:3, 렘 23:33, 27:17, 호 4:6 참고).

2. 성전, 왕궁파괴와 포로(8~17절)

1) 8~12절에서 “느부갓네살 19년 5월 7일에 바벨론왕의 신하 시위대장관(경호실장직)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와서 성전과 궁전과 귀인의 집들을 불사르고 성벽도 헐었으며 성중에 남은 자 중 비천한 자들만 남겨 포도원 농부가 되게 하고 그 이외의 항복한 자와 무리들은 다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갔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느부갓네살 19년은 느부갓네살이 여호야김 4년에 왕이 되었기 때문에 여호야김의 남은 기간 7년과 여호야긴의 3월과 시드기야의 11년을 합할 때 19년이 된 뜻이고, 5월 7일은 성을 함락한 4월 9일(2절)의 한달쯤 후를 뜻합니다. 9절에서는 “하나님의 전과 왕궁과 모든 집과 귀인의 집을 불살랐고”, 10절에서는 “예루살렘 4면의 성벽을 헐었으며”, 10~11절은 “비천한 자만 남기고 다 포로로 이끌어갔다”고 하였습니다.

2) 13~17절은 “성전에 있는 금속기명들을 다 가져갔다” 하였는데, 곧 두 놋기둥과 받침들, 놋바다(왕상 7:15~22, 23~27)와 그 이외의 모든 기명들입니다. 이것들은 다 솔로몬 시대에 만든 것이었고, 그 기구들의 놋중수(무게)를 헤아릴 수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금조각은 임의 벗겨준 사실이 있지만(왕하 18:16) 놋은 역시 전쟁무기의 도구로 많이 필요하였을 것입니다.

3. 유다의 요인 숙청(18~21절)

18~19절에서 시위대장관 “느부사라단”이 유다의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전의 문지기 세 사람, 또 성중 사람들 중 군사를 거느린 내시 한 사람, 왕의 시종 다섯 사람, 국민을 초모(불러 모으는 뜻)하는 장관의 서기관 한 사람 등 60명을 잡아서 하맛 땅 립나에 있는 왕에게로 데려간즉, 20~21절에서 “왕이 그들을 다 죽였다”고 하였습니다. 나라와 관련있는 요인들을 다 없앤 것입니다.

4. 남은 백성에 대한 통치(22~24절)

22절에서 유대 땅에 남은 자는 농부들 뿐이었습니다(12절). 바벨론왕이 그들을 사반의 손자요 아히감의 아들인 그달리야로 관할케 하였으니, 이 사람은 예레미야와 뜻을 맞추어 바벨론에 복종할 것을 권한 사람입니다(렘 40:7~10). 그리고 예레미야를 난리통에 보호해 준 일도 있었습니다(렘 39:14). 23절에서 “그달리야”가 유다 방백된 소식을 듣고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느도바(삼하 23:28, 베들레헴에서 5시 방향 5㎞쯤) 사람 단후멧의 아들 스라야와 마아가(삼하 10:6, maacha, 지도상 확인 어려움) 사람의 아들 야아사니야와 그 따르는 자들이 미스바(삿 21:1, 삼상 7:5, 왕상 15:22)로 가서 그달리야에게 나갔을 때, 24절에서 그달리야는 맹세하는 어조로 바벨론에게 복종하면 평안할 것이라고 권면하였으나(렘 40:7~10) 그들은 듣지 않고 그달리야를 죽였습니다(25~26절).

5. 복종에 대한 반대 혁명(25~26절)

25절에서 7월에(8절에서 5월에 예루살렘을 훼파하였으므로 그달리야가 총독된지 몇일 안 되었을 때임) 유다 왕족 엘리사마의 손자요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이 10인을 거느리고(이들은 유다가 망할 때 피신하였던 자들임) 와서 (바벨론에 복종하는 총독) 그달리야를 쳐죽였고 또 그와 함께 미스바(다섯 곳이 있으나 삼상 7:5~16에 해당함)에 있는 유다 사람과 갈대아 사람을 죽이므로 반란을 일으킨 후, 26절에서 “대소 백성들과 군대장관들이 다 일어나서 애굽으로 갔으니 이는 갈대아 사람들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대소 백성들과 군대장관들”은 바벨론 군사들을 피하여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그달리야를 죽인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애국심으로 바벨론에 동조한 그달리야의 무리들을 죽였지만 또 바벨론 군사들이 와서 응징할 것이 두려우므로 애굽으로 도망을 한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렘 41:1~3, 15~16, 43:1~7 등에서 더 자세히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6. 여호야긴을 선대함(27~30절)

1) 27절에서 “유다왕 여호야긴이 사로 잡혀간지(왕하 24:12, 느부갓네살 8년) 37년 곧 바벨론왕 에월므로닥이 즉위한 원년 2월 27일에 옥에 있는 여호야긴을 출옥시켜 선대하였다” 하였으니, 연표에 의하면 느부갓네살이 43년을 통치하였다 하므로(BC. 605~562) 느부갓네살 8년에 37년을 합하면 45년이 된즉, 느부갓네살이 죽고 그 아들 에월므로닥(아멜 말둑으로 추정함, BC. 562~560)의 즉위 때와 비슷합니다.

2) 그러면 에월므로닥이 여호야긴을 선대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세월이 가고 정치가 바뀐 때이므로 민족화합을 위하여 정적을 사면한 뜻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28~30절에서 “여호야긴을 바벨론왕과 함께 있는 다른 소왕국의 왕위보다 높이고 그 죄수의 의복을 바꾸고 일평생 왕 앞에서 먹게 하였고 또 저의 쓸 것을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정수(규정된 공급 물량)대로 종신토록 제공하였다” 하였으니, 이렇게 유다왕을 높이고 섬긴 이유는 유다민족을 의식한 정치적 목적도 있었겠지만 선왕의 폭정에 대한 자성이나 유대인들이 바벨론을 융성시키는데 공을 세운 바가 크므로 그리한 줄 압니다. 이로서 선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 역사는 선민의 완악으로 인하여 불행하게 끝나게 되었습니다(왕하 24:3, 렘 27:17).

(2006. 5. 10 마침)

설교보충 1. 엘리사의 받은 은혜 (왕하 2:7~14) 목록으로


“엘리사의 받은 은혜”란 제목으로 교훈을 받겠습니다. 왕상 19:19~21을 본문으로 하여 “엘리사의 사명적 은혜”란 제목의 설교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엘리사는 사명자 되는 선택의 은혜와 부름을 받는 계기의 은혜와 확실하게 정리하고 사명일로에 나서는 은혜와 선배 엘리야를 끝까지 따르는 은혜, 즉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는 은혜를 받으므로 사명에 임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이 시간에도 거기에 보충되는 말씀을 부언하고 싶어서 말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본문은 2장을 다 읽어야 하지만 엘리사가 받은 은혜 중 가장 큰 부분에 속한 말씀을 읽은 것입니다. 그 큰 부분이란 엘리사가 목표한 엘리야의 영감의 갑절을 받은 내용인데 그것은 엘리야의 승천을 가까이서 목격한 사실입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갑절의 영감을 구한다” 하였고,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하나님이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보면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10절) 하였는데, 엘리사가 그 광경을 목격하였으니까 “승천목격” 바로 그것이 갑절의 영감을 받는 방법이 된 것입니다.

1. 엘리사가 받은 첫째 은혜는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이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으라” 하셨으니까요(왕상 19:16~21).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복 중에서 아셨다”(렘 1:5) 하였고, 세례요한도 모태로부터 은혜를 주신 것을 보면(눅 1:15) 하나님은 그 사역자를 오래 전에 점찍어 놓으시고 때가 되면 불러 쓰시는 줄 압니다. 여기에서 엘리사는 소 12마리를 몰수 있는 전문 농사꾼인데도 쓰신 것을 보면 엘리사의 마음에 있는 기본 자세를 아시고 선택하신 줄 압니다.

2. 엘리사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결단하고 확실하게 엘리야를 따라간 것입니다. 눅 5:1~11을 보시면 베드로가 고기 잡는 이적을 체험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다” 하였는데, 엘리사는 이적 체험도 없이 소를 잡아 제사를 드리고 고향의 식구들과 송별한 후 따라나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직업과 전토와 가족을 버린 것입니다. 확실한 직업을 던지고 사명에 나선 분들이 대부분 성공한 것을 보았습니다. 70년대에 경산읍교회를 시무하신 이만천 목사님이 신학을 하면서 교사로 다시 돌아오지 않으려고 교사 자격증을 불태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헌신적 사명에 확실하게 나선 것이 큰 은혜인 줄입니다. 눅 9:62을 보시면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 하셨는데, 이 말씀의 역사적 근원이 엘리사를 염두에 두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엘리사가 소 12마리를 몰면서 밭을 갈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엘리야 선배를 끝까지 따른 것입니다. 처음 따를 때는 순종하고 수종들기 위하여 따랐습니다. 그 다음에는 수종도 들고 연수도 받는 것입니다. 연수를 많이 받았을 때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너는 여기 머물라” 하셨는데, 그 뜻은 독립, 단독 사역을 해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뜻이 달랐습니다. 독립 사역보다 스승님을 끝까지 모시고 수종들면서 더 많이 배우고 또 영감도 더 받아야 한다는 (욕심같은) 결심 때문에 길갈에도 머물지 않고 벧엘에도 머물지 않았으며 또 여리고에도 머물지 않고 요단까지 따라 가다가 엘리야의 결국을 보게 된 것입니다. 옛말에 “한 우물을 파라”는 속담이 있듯이 엘리사는 엘리야만 따랐고 갑절의 영감을 받는 목적만 위하여 진력하였는데 그것으로 성공을 한 것입니다. 성도들도 자기가 가장 잘 하는 것, 취미로운 것 한 가지만 잘 하여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저의 30년전 설교문에 이솝의 우화가 기록되었는데, 『여우가 고양이에게 묻기를 너는 늑대가 오면 도망하는 방법이 몇 가지나 있느냐? 하니까 나는 나무로 올라가는 것 한 가지 뿐이라 한즉 실은 여우가 자기 자랑을 하려고 물은 것으로 너는 그 한 가지 뿐이면 퍽 궁색하겠다 나는 열 가지도 넘는다 하고 자랑을 하는데 늑대가 온 것입니다. 그래서 고양이는 한 가지 밖에 모르니까 속히 나무로 올라갔는데 여우는 열 가지 중 어느 것을 선택할까 하여 이 방법을 쓸까 저 방법을 쓸까 하고 망설이다가 물려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성도들도 한 우물을 파시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입니다.

4. 엘리사는 엘리야의 승천을 보므로서 갑절의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영감”하면 계시 받는 것도 있고, 이적을 행하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가까이 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도님들도 여러 가지 은혜가 있지만 하나님을 가까이 모신 은혜가 제일 크다는 것을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과의 동행이고, 하나님의 말씀 연구에 깊이 들어가는 은혜인 것입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승천을 보았을 때 그는 부활과 영생이 자기 앞에 있음을 깨달았을 것이니 그 생활인들 얼마나 변화되었겠습니까?

5. 엘리사는 엘리야를 떠나서 돌아올 때 세 가지 이적을 나타냈습니다. 하나는 엘리야의 겉옷으로 요단강을 쳐서 엘리야처럼 육지로 건넌 것이고, 두 번째는 여리고에 와서 좋지 못한 물을 고친 것이요, 세 번째는 벧엘까지 가서 자기를 조롱하는 자들을 저주한즉 하나님이 곰을 보내어 엘리사 조롱한 자 42명을 죽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쓰시는 자를 무시하고 조롱하였을 때 그가 저주한즉 하나님이 동하여 저주를 받게 하셨으니, 그 이상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엘리사는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을 받은 후에 한 우물 파는 식으로 헌신을 잘 하더니 결국 하나님이 큰 사역자로 쓰신 것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설교보충 2. 엘리사가 행한 이적 (왕하 2:8~14) 목록으로


저희들은 엘리야가 많은 이적을 행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이적은 그보다 더 많습니다. 엘리사의 사역기사는 본문부터 기록되었는데, 엘리사의 죽은 기사는 왕하 13:20에서 나오니까 그 기록이 많은데 심지어는 다른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던져 그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아 살아난 일까지 있었으니(왕하 13:21) 대단한 이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문 9절을 보시면 “엘리사가 엘리야의 은사보다 갑절을 구하였고 하나님이 엘리야 부르시는 일을 보면 이루어진다” 하였는데, 결국 엘리야의 승천광경을 보았으니까 엘리사가 더 많은 이적을 행하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모세도 많은 이적을 행하였지만 이 시간에는 엘리사가 행한 이적만 뽑아 살피기로 하겠습니다. 몇 가지나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우선 본문 11절에서 엘리야는 불말과 불수레가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는 장면을 목격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 승천을 본 것과 같은 것입니다. 놀라운 광경을 보는 것도 이적의 체험이니까요.

2. 두 번째로 그는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갖고 오면서 그것으로 요단 물을 치니까 엘리야가 시행한 것처럼 물이 갈라졌습니다(왕하 2:8~14).

3. 그 다음 엘리야가 승천하였지만 어느 곳에 떨어졌는지 내렸는지 모르니까 찾자고 하였을 때 엘리사는 그 승천이 영원한 승천임을 알았기 때문에 가지 말라 하였으니, 이것은 그만큼 영감 이적이 있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4. 여리고의 좋지 못한 물을 물근원에 가서 소금을 넣어 고친 일이 있었고(왕하 2:20~22),

5. 여리고에서 벧엘로 가다가 엘리사를 조롱하는 아이들이 나타났을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한즉 암콤 두 마리가 나타나서 42명의 아이들을 죽인 일이 있었으며(왕하 2:23~25),

6. 요람과 여호사밧이 모압과 전쟁할 때 물이 없어 패하게 되었는데 엘리사가 도랑을 파게하고 그곳에 물이 괴이게 한 후 그 물빛이 햇빛에 반사된 붉은 색을 모압이 사람의 피 색으로 오인케 하여 모압을 치게 한 사실이 있었으며(왕하 3:15~25),

7. 선지 생도의 아내가 빚에 졸려 두 아들을 종으로 주게 되었을 때 집에 있는 기름을 여러 그릇에 붓게 하여 그것을 팔아 빚을 갚고 생활하게 한 일이 있었고(왕하 4:1~7),

8. 수넴 여인에게 신세를 갚기 위하여 “왕이나 군대장관에 부탁할 것을 말하라” 하였을 때 그 여인은 거절을 했지만(왕하 4:13), 그 말이 씨가 되어 10년 이상 지난 후에 결국은 그 여인은 왕에게 부탁하여 기업을 돌려받은 사실이 있었으니(왕하 8:6), 이것은 예언자의 위력을 뜻하는 것입니다.

9. 그 다음에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렸고(왕하 4:18~36), 엘리사가 직접 안 갔어도 그의 지팡이를 아이의 얼굴에 얹어 살리려고 하였다가 그 여인의 맹세 때문에(엘리사를 꼭 모신다는 맹세) 취소한 사실이 있었으며,

10. 음식에 들어간 야등덩굴(들외)의 독을 가루를 넣어 제거한 사실이 있었고(왕하 4:38~41),

11. 보리떡 20개와 채소 한 자루로 100명을 먹이고 남게 한 사실이 있었으며(왕하 4:42~44),

12. 나아만의 문둥병을 요단강물에 씻게 하여 고쳐준 일이 있었고(왕하 5:1~14),

13. 게하시가 거짓말 하여 나아만 장군에게서 사례물 빼낸 사실을 영감으로 알았으며(왕하 5:26),

14. 게하시를 저주하여 나아만에게 들렸던 문둥병을 그와 그 자손에게 붙게 하였고,

15. 학교 건물을 짓기 위하여 나무를 찍다가 빠뜨린 도끼를 떠오르게 하였으며(왕하 6:1~7),

16. 아람왕의 침략계획을 계시를 받아 알아서 왕에게 알려 국방에 도움을 주었고(왕하 6:8~12),

17. 아람이 엘리사를 잡으려 하였을 때 자기 주위에 천사(불말, 불병거)들이 있음을 알고 사환의 눈을 열어 보게 하였으며,

18. 엘리사의 기도로 아람군사의 눈을 어둡게 하여 사마리아 도성으로 인도한 후 다시 눈을 떠 보게 하였고(왕하 6:18~20),

19. 아람의 포위로 사마리아에 기근이 있었을 때 24시간 후에 양식이 생길 것을 예언하였는데 그대로 되었으며, 그 당시 문 지키는 장관이 “그것을 못 믿겠다” 하였을 때 “당신은 보기만 하고 먹지는 못할 것이라” 하였는데 결국 그는 성문에서 인파에 깔려 죽었으니 이것은 엘리사가 앞일을 내다보는 이적을 행한 것입니다(왕하 7:2, 17).

20. 그 다음에 7년 흉년 들 것을 알고 수넴 여인을 피신시킨 일이 있었고(왕하 8:1),

21. 아람왕 벤하닷이 병들었을 때 그 병은 낫겠지만 곧 죽을 것과 하사엘이 아람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침략할 것을 예언하였는데 그대로 성취되었고(왕하 8:11~16, 10:32, 13:7),

22.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한 후 아합의 집을 심판하게 한 일이 사실대로 이루어진 기록이 9~10장 전체에 나타나 있고,

23. “엘리사도 죽을 병이 들었다”고 하였습니다(왕하 13:14). 그때에 북왕국 왕은 예후의 손자 요아스였는데 자주 아람의 침략으로 괴로움이 많았습니다. 요아스왕이 엘리사를 문병가서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한즉 엘리사가 요아스왕의 손에 안찰하고 창밖 동쪽으로 활을 쏘게 하면서 이는 아람에 대한 구원의 살이라”하여 아람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것을 예언하였고(왕하 13:14~25),

24. 그 일이 있은 후 엘리사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 시신을 묘실에 장사지냈는데, 그 이듬해에 그 주위에서 장례 지내는 일이 있을 때 모압적당(도둑떼 같은 것)이 쳐들어와서 장례하던 시체를 황급히 엘리사의 묘실에 던져 그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았는데 살아났으니(왕하 13:20~21)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이적과 생명과 부활의 이적을 믿습니다. 보이지 않는 이적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나타나고 있음을 아셔야 하겠습니다.

설교보충 3. 여리고의 물을 고치심 (왕하 2:19~22) 목록으로


엘리사가 엘리야 승천광경을 보고 돌아왔을 때 “하나님의 영감이 갑절로 주어졌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처럼 세 번의 이적을 나타냈습니다. 하나는 요단강을 가르고 건넌 것이고(왕하 2:14), 또 하나는 여리고에 와서 나쁜 물을 좋은 물로 고친 일이며, 그 다음에는 벧엘에서 자기를 조롱하는 자들을 저주한즉 암콤 두 마리가 나와 42명을 죽인 사실이었습니다(왕하 2:23~24). 요단강이 갈라진 것은 난관극복의 은혜 또는 막힌 길을 열어주시는 은혜의 섭리로 믿으시면 좋고, 또 조롱하는 자를 죽게 한 것은 선지자의 보호, 또는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섭리로 믿으시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나쁜 물을 고치신 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은 고치시는 분이다” 또는 “치료하시는 분이라” 하는 것을 깨우쳐 주시는 줄 압니다. 약 550년 전인 출애굽 때 마라의 쓴 물을 달게 고치신 일이 있었는데 그때에 출 15:25에서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육체의 병 치료만 하시는 것이 아니고 성도의 인격변화나 얽매인 사건에 대하여서도 치료하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물 나쁜 곳이 한 두 곳이 아닐터인데 왜 하필 여리고의 물을 고쳤을까? 하고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여리고는 요단강 서쪽 3㎞쯤에 있는 견고한 이방 성읍이었는데, 여호수아의 군대가 처음 입국할 때 하나님의 이적으로 7일 동안 돌고 나팔 불어서 무너뜨린 성읍이고, 그 여리고 출신 라합이 생명을 걸고 정탐을 숨겨 준 공로도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그 성을 점령하고 예언하기를 수 6:26에서 “누구든지 이 성을 재건하면 기초를 놓을 때 장자를 잃고 성문을 달 때 계자가 죽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뜻은 하나님이 허신 것을 사람이 재건하지 못하게 한 뜻으로 사료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약 520년 후에(아합왕 때임) 히엘이란 사람이 그 성을 재건하다가 여호수아의 예언대로 장자, 계자(말째)가 죽었습니다. 이때에 여호수아의 예언은 “그곳에 사람 살지 말라”는 의미였고, 그 뜻이 그대로 지속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히엘의 아들들이 죽은 후 얼마 후에 하나님이 여리고 물을 고치신 것은 여호수아의 저주를 풀어주신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리고의 물을 고치신 것은 “고치시는 하나님, 풀어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셨다”고 보는 것입니다.

1. 19절을 보시면 “터는 아름다운데 물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이 뜻은 좋아도 쓸 수 없다는 뜻입니다. 경치는 좋으나 물이 나쁜 것은 얼굴은 예쁘나 병이 있고, 몸은 건강하나 성품이 악한 것처럼 근본문제가 잘못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저희들은 이 사실의 이적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자연계를 고쳐주신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자연계를 망칠 수도 있고 고칠 수도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연에 대한 은혜는 은혜대로 믿고 그 믿음에 의지하여 고칠 것은 고쳐야 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런 근거에 의해서 저는 물건을 많이 고치는 편입니다. 여기에 아울러 인격과 신앙과 사명생활에 대한 것도 고칠 것은 고쳐야 할 줄로 아는 것입니다.

2. 물이 나쁘니까 토산품이 익기 전에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물이 담수가 아닌 염수이거나 석회질, 산성질 같은 것이 있는 모양입니다. 아프리카의 물이 귀한 곳에서 누런 흙탕물을 마시는 것을 보고 놀랬습니다. “그런 사람을 우리 집에 데려다가 물만 대접해도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단합하면 한 사람 데려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흙탕물을 먹고 어린 아이들이 많이 죽는다고 합니다. 사람이 생존하는데 있어서 물과 공기와 빛은 근원입니다. 제가 이 근원을 강조하는 이유는 인생의 근원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것이 잘못되었으면 그것부터 고쳐야 할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물이 나쁘면 열매도 떨어지고 사람도 병나니까 근본부터 고쳐야 함은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3. 그래서 그 사실을 엘리사에게 알린즉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갖고 물 근원에 가서 던져 고쳤다”는 것입니다. 여리고에 가면 삭개오의 뽕나무란 것도 있는데, 그 성에서 3㎞쯤 떨어진 곳에 슐탄샘이란 단물샘 근원이 있습니다. 그 샘물이 큰 개울물처럼 나옵니다. 그 지역의 사람들을 그 물이 2,500년 전쯤에 엘리사가 고친 물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그 물을 하나님이 고치셨는데 그 방법을 엘리사에게 명하실 때 왜 새 그릇의 소금을 물 근원에 가서 던지게 하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분명히 상징적 교훈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1) 우선 물 근원에 간 것은 무슨 일이나 기초를 바로 세워야 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약한 기초에 집을 지었다면 다 헐고 기초를 다시 닦아야 하겠지요.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삐뚤게 가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저는 지금도 성경과 일치한 교회를 세우려면 새로 시작하여야 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물 근원에 간 것은 시작부터 잘 해야 새로워질 수 있다는 뜻으로 믿는 것입니다.

2) 고치는 재료가 소금입니다. 소금은 부패방지용이므로 고치는 약인데 소금은 짠 맛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으로 부패를 막는 것이니,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 것입니다. “말씀으로 고쳤다”(왕하 2:21, 시 107:20) 하셨고, “말씀으로 거룩해진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요 17:17) 따라서 소금을 물 근원에 넣은 것은 진리로 기초하여 시작하라는 뜻이지요. 사람이나 사람의 지식이나 전통에 기초하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3) 새 그릇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마 9:17) 하신 말씀처럼 새 것으로 보존을 잘 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좋은 환경을 주시도록 기도하시되 사람이 고쳐야 할 것은 근원부터 성실하게 고쳐 나가는 성도님들이 되셔야 할 것입니다.

설교보충 4. 고쳐야 할 세상 (왕하 2:19~22) 목록으로


어떤 사람은 물건을 쓰다가 조금 고장 나면 아까운 줄도 모르고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 칭찬 같습니다만) 눅 4:40에서 “예수님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하셨기 때문에 많이 고치려고 합니다. 길에 버려진 우산을 고친 것이 수도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고치는 것이 예수님 닮는 것입니다. 제가 이 시간에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신앙 인격도 고치자, 저희들의 가정 문제도 건전하게 고치자, 교회도 성경에 맞지 않는 것이 있으면 고치자” 하는 것인데, 이것도 계속하면서 어찌하면 이 세상을 좀 깨끗하게 고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늘 해보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은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올 때 고생을 많이 하고 7일 동안 열 세 번이나 돌아서 하나님의 기적으로 탈환한 다음에 사람 살 곳을 만들지 않으려고 “누구든지 이 성을 건립하면 터 닦을 때 장자가 죽고 문 달 때에 말째가 죽을 것이라”고 저주를 했던 곳입니다. 그래서 상당기간 폐허되었었습니다(수 6:26). 그런데 사사시대가 450년 지나고(행 13:19) 왕정시대 180년쯤 지난(합 630년) 후 아합왕 때 “히엘”이란 사람이 그 성을 재건하다가 여호수아의 예언대로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왕상 17:34). 그러니까 또 폐허 상태가 되어 사람이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엘리야 시대가 지나가고 엘리사 시대가 되었으니까 또 한 70년 지났겠지요. 그러면 여호수아의 저주 예언이 있은지 700년쯤인데 엘리사가 그곳의 물 근원을 “좋은 물로 고쳤다”는 것은 하나님이 저주를 푸시고 사람이 살만한 고장을 만들어 주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곳의 물이 나빠서 실과가 떨어지고 익지 않았으니 농사도 지을 수 없음은 물론 사람의 위생에도 이로울 수 없는 것입니다. 마치 마라의 쓴 물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고생을 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출 15:23~25). 저는 이 쓴 물이나 나쁜 물을 사람 살기 어려운 이 사회에 비유하는 것입니다. “한국만큼 살기좋은 나라도 없다”고 합니다만 그래도 불안의 요소가 얼마나 많습니까? 교통, 물가, 직장, 물, 생선, 뱀장어, 조개류, 쇠고기, 조류, 유전자콩, 거기에다가 마약, 도박, 사기는 얼마나 많습니까? 여기에서 제일 문제되는 것이 학교 폭력입니다. 군대에 안 가려고 하는 것은 고달파서가 아니라 선임병에게 보대끼는 것 때문일 것입니다. 군인들 세계에 도덕성과 형제애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경찰 세계는 군대보다 나을 것 같은데 거기도 그렇고 방위병 세계도 그렇고 직장 방위병은 더 하다고 합니다. 차라리 현역이 낫다고 하지 않습니까? 자동차 도난이 부지기수이고 자동차 번호판을 씻지 않는 사람들, 길에서 담배를 피워 버리는 사람들, 젊은이가 위 아래 없이 욕하는 일 등 불안요소가 너무 많지 않습니까? 아들, 손자들을 어떻게 중, 고등, 대학을 보내나 하는 것이 걱정 아닙니까? 이런 세상을 어떻게 고쳐야 좋겠습니까? 큰 과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세상의 별같은 인물이 아니니까 아무 힘이 없습니다만 방법이라도 연구해서 하나님께 기도로 부탁해 보았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여리고성에 물이 나쁜 것은 사람 살 여건이 안 된다는 뜻인데, 사회가 악하면 어떻게 그곳에서 살겠습니까? 학교에서 주먹쓰는 아이에게 눈에 나면 전학을 안 하고는 못견딘다고 합니다. 전학을 하면 또 그 학교의 주먹쓰는 아이에게로 연락한다고 합니다. 학교의 선생들을 짐작은 하나 잡지 못하고 당하는 아이는 더 큰 봉변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비밀을 지킨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악이 선을 이기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물을 고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었고, 그 약은 소금(부패하지 않고 영원히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소금을 넣은 곳은 근원에 가서 넣었으니, 그 근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현실적 통치입니다.

1. 대통령이 크게 결심하고 밑으로 밑으로 피라미드 조직처럼 내려가야 합니다. 이것은 공산주의가 이념정치를 하기 위하여 피라미드 조직을 갖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죄와 폭력을 없애기 위하여 그런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6.25전쟁 때 저의 외할머니가 나그네 밥 한끼 주셨다가 혼났습니다. 저의 외숙이 외할머니에게 와서 “그 사람에게 밥 주셨습니까?” 하자 “하도 힘이 없어 보이길래 그랬다” 하시니까 “큰일납니다. 수상한 사람 집에 들이면 안됩니다” 하였으니, 이것은 주위에 감시자가 있고 보고자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조직망이 학교의 학생들 세계에 90%까지 들어가면 10%의 깡패가 폭력을 포기할 것입니다. 전부 감시망이니까 어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감시망이 어른들로 부터 어린 아이에게 이르기까지 얽혀있어야 합니다. 오직 불법과 폭력만 방지하기 위해서 이런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2. 가족 관념을 승화시키는 것입니다. 군대에 신병이 들어왔으면 “나의 고향친구 동생이 왔다”고 생각하든지 아니면 가까운 친척이라고 생각하여 잘 대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기강이 무너지거나 특권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과 배려로 충성을 더 자아내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중, 고등, 대학에도 꼭 있어야 하고 교회가 성도를 가족처럼 대하는 모범을 보여 그것을 사회단체로 승화시키는 것입니다. 가족, 친척이라 하여 금전 문제까지 담을 헐자는 뜻은 아닙니다(그것은 점차로 해야겠지요). 폭력없는 사회, 무절제한 방랑, 음주 같은 문화 습성이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방금 뉴스에서 영어가 얼마나 필요하였으면 영어마을에서는 영어를 말해야만 물건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영어보다 더 필요한 것이 폭력없는 사회가 아니겠습니까?

3. 양극화 해소입니다. 있는 자, 없는 자 사이를 점차 좁히는 것인데, 이것도 정치와 계몽으로 할 일이 아닙니까? 막가파 같은 것이 생기는 것은 양극화 때문일 것입니다. 기도하고 교회가 모범을 보이며 대통령이 나서서 감시망을 만들고 가족 관념과 양극화 해소를 힘쓰면 머지않아 봄바람이 불어 찬바람을 몰아내는 때가 오리라고 믿는 것입니다.

설교보충 5. 빚에 대한 말씀 (왕하 4:1~7) 목록으로


빚 갚는 생활에 대한 설교가 어린이 성경교육자료 127과와 7분설교 9집 79과에도 수록되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또 드리는 이유는 아직도 적자생활을 예사로 알고 행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마이너스 정신을 고쳐보고 싶어서입니다. 꼭 안 써도 될 과소비를 인하여 적자 카드를 사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를 들면 빚을 지면서 생일잔치를 하고 빚을 얻어서 주택을 넓히는 일 같은 것입니다. 또 은행 빚이 조금 싸다하여 겁을 내지 않는 것은 잘못입니다. 제가 그 이유를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이 이 시간 주제입니다.

1. 성도가 빚을 지지 말아야 할 이유가 많습니다. 신 28:12에서 “복 받은 백성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자신은 꾸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나라의 빚이나 개인의 빚은 같은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개인이나 국가가 빚을 지고 있으면 그것을 갚아 나가는 정책을 써야 하는데, 반대로 국민의 빚은 더 많아지고 은행이 돈을 벌기 위하여 빚을 얻어 쓰게 하는 정책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가난하게 살고 절약하라”고 계몽해야 바른 질서가 잡힌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눅 12:59을 보시면 “호리라도 남김없이 다 갚지 않으면 결단코 저기(옥에 가두는 심판)서 나오지 못하리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빚을 못 갚으면 반드시 그 댓가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빚에 대한 설명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빚을 지는 것은 죄와 같고 질병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죄의 값도 사망이고 질병도 못 고치면 죽는 것처럼 빚도 청산을 못하면 불행을 낳는 것입니다.

2. 혹 이 자리에 생활비를 조금씩 꾸어 쓰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저의 설교가 갚을 능력 있는 분들이 적은 금액을 꾸어 쓰는 것을 지적하려는 것이 아님을 아실 것입니다. 문제는 분수를 모르고 되는 대로 살면서 빚을 겁내지 않는 사람들을 계몽하는 것입니다. 혹 말하기를 “갚으면 되지 않느냐?” 하시겠지만 갚을 기회를 못 갖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내일 일을 모르니까요. 어떤 노인이 자기 밭을 분명히 교회 앞에 헌납하고 죽었는데 그 아들이 “그것은 자기가 상속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들이 아버지를 빚쟁이로 천국 보낸 셈이 되겠지요. 그러니까 헌금 약속하고 안 드리는 것도 빚이란 뜻입니다. 원승길 목사님이 봉천교회를 지으실 때 상당기간 돈을 모아서 빚없이 지었는데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만일 그분이 빚을 얻어 예배당을 지으셨더라면 하나님이 “너 내 빚 못 갚고 왔구나” 하시지 않겠습니까? 이런 것을 생각하여 적자인생을 줄이는 노력을 하시라는 것입니다. 저의 아버님이 외상술을 많이 잡수시고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신 후에 “몇몇 술집에 못 갚은 것이 있다” 하여 제가 찾아가서 “갚겠노라” 하고 몇 일 후에 갚은 즉 “못 받을 줄 알았다”고 하더군요. 바로 그런 것이 깨끗지 못한 생활 아니겠습니까?

3. 빚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제 말씀을 들으시면 “그런 것도 있나” 하실 것입니다.

1) 떠안는 빚이 있습니다. 본문의 빚은 죽은 남편이 진 것을 아내가 떠안은 것 같지요. 자식들 빚지게 하고 병원에 가서 돌아가시면 안됩니다. 저의 어머니는 제가 가난한 줄 아시고 병원에 안 가려고 하셔서 지금도 제 마음이 아픈 것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병원에 가실 때는 예산을 하고 가십시오.

2) 자신이 게으르고 절제 못하면서 과소비하는 빚이 있는데 이런 빚이 가장 문제입니다.

3) 남의 신세를 너무 많이 지고 사는 것입니다. 식사 한끼 대접 받았으면 또 갚아야 하는데 대접만 받고 “나는 얻어 먹는 신세이니까” 하고 갚을 마음 없이 사는 것입니다. 아들의 간을 아버지가 받았으니 빚일까요? 아닐까요? 알쏭달쏭하지만 그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살아야 하겠지요. 행 20:35에서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음을 기억하여야 한다” 하셨는데, 이 말씀을 기억하지 않고 받는 것만 복으로 아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따라서 도움 받는 것을 바라면 안되는 것입니다.

4) 사업하는 빚입니다. 이것은 성공할 수도 있지만 위험요소도 많습니다. “빚을 얻어 사업하라”고 시킬 부모가 있겠습니까?

5) 복음전파의 빚입니다. 바울사도가 자신은 복음의 빚진 자라 하셨고(롬 1:14), “복음전파는 부득불 할 일이며 안 하면 화가 미칠까 두렵다”(고전 9:16) 하셨은즉 성도는 모든 이에게 전도의 빚을 지고 있음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6) 사랑의 빚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롬 13:8에서 “사랑의 빚을 지고 있음을 알라” 하셨고, 요일 4:11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이같이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함이 마땅하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사랑의 빚을 지고 사는 것은 전도의 빚을 지고 있는 것처럼 마땅한 사명입니다.

7) 또 있습니다. 롬 8:13을 보시면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육신의 빚을 졌다”는 뜻은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아야 할 자가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산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갈 5:16~18). 성도가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하고 육정을 따라 살지 않아야 함이 의무이기 때문에 그것이 빚이 되는 것입니다.

8) 마지막으로는 자기인생에 대한 빚이 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있겠지요. 엡 2:10을 보시면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다” 하셨고, 골 1:20에서는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도가 선하게 살지 않으면 자기인생 목적을 완수하지 못하는 빚을 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두려운 일인 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살고 부정한 일이나 가치 떨어지는 일을 하지 말며 칭찬 받을 일만 많이 하면서 인생을 마쳐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선지생도의 미망인이 떠안은 빚으로 어려움을 당했으나 선지자의 자문을 받고 자신과 아들들의 순종과 노력으로 빚을 갚은 것처럼 성도님들도 일체의 빚을 지지 않도록 노력하시기를 바라서 이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설교보충 6. 문제와 해결 (왕하 4:1~7, 28~31) 목록으로


“문제와 해결”이란 제목의 설교가 일반설교집 104과(마 9:18~38)에도 있습니다. 이 시간에도 “문제와 해결”이란 주제를 붙인 것은 저희들이 문제를 아는데 힘을 쓰시고, 또 그 문제해결을 위하여 항상 건설적 입장에 서서 노력하시자는 것을 강조하려고 합니다. 본문을 보시면 가정의 문제, 경제의 문제가 나타났고, 선지자를 찾아왔으며 (이들이 선지자를 찾아온 것은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해결해 보겠다는 취지임), 선지자의 지도에 따라 시행하였고,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이적, 특별은혜)가 첨부되어 해결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희들에게도 가정문제, 경제문제가 있겠지만 그 외에도 개인문제, 교회문제, 사회문제가 있을 것이고,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신앙문제, 생활문제 등 복잡한 일들이 많을 것입니다. 구약에서 이적을 많이 나타낸 분이 모세, 엘리야, 엘리사(신약에서는 예수님, 사도들)인데 엘리사가 엘리야의 갑절의 영감을 받은 것처럼 많은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요단강물을 갈랐고(왕하 2:14), 여리고 물을 고쳤으며(왕하 2:22), 조롱하는 자들을 저주하여 곰이 죽이게 하였고(왕하 2:24), 여호사밧의 낯을 보아 전쟁을 이기게 하였으며, 그때에 비가 오고 적군이 착각을 일으켜 패하기도 하였습니다(왕하 2:21~24). 본문에서는 기름의 이적으로 빚진 집의 문제를 해결하였고,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렸으며(왕하 4:35), 음식의 독을 제하고, 보리떡과 채소의 기적으로 예수님의 5병2어같은 능력도 나타낸 것을 볼 수 있습니다(왕하 4:38~44). 이렇게 한 사람의 선지자가 여러 가지 능력을 나타낸 것은 하나님이 전능하신 것을 보여준 것이고, 따라서 성도가 “모든 어려운 문제를 다 하나님 앞에 갖고 와서 해결을 하라”는 의미인 줄로 압니다. 이것을 예수님의 말씀으로 요약하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하신 말씀으로 대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그래서 중요한 것은 문제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을 수 있되 경미한 문제도 있고 중요한 문제도 있습니다. 이것을 안다면 반드시 중요한 문제부터 해결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본문에서 선지자의 미망인이 엘리사를 찾아온 것은 부채와 두 아들이 남의 종이 되는 문제 때문에 찾아온 것인데, 그 일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많을 것입니다. “돈 대신 너는 그 집에 가서 요셉처럼 봉사하라” 하면 그만이지 그것이 무슨 큰 문제입니까? 요즈음도 돈을 벌기 위해서 “네, 네” 하고 복종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중요한 문제를 깨닫자는 것입니다. 아하시야왕이 난간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었는데 “바알세붑에게 병이 낫겠나 물어보라”고 사람을 보냈으니 무엇이 문제입니까? 중상 입은 것은 바알세붑을 의지하는 것만큼 심각한 것이 아니지요. 그는 중대한 것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왕사 1:2~4). 유다의 아사왕은 어떻게 하였습니까?(왕상 15:23, 대하 16:12) 그 왕은 개혁을 많이 한 선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발에 병이 들었을 때 하나님은 의지하지 않고(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의원만 의지하다가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무엇이 문제입니까? 발에 병이 든 것보다 하나님을 의지할 줄 모르고 인간처방만 의지하는 그 공백이 문제이지요. 그렇다면 오늘날 성도들이 자기의 건강문제나 생명문제를 하나님께 맡길 줄 모르고 인간의 과학적 방법에만 의존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그래서 아하시야도 죽었고, 아사왕도 죽은 것입니다. 어차피 인간만 의지하다가 죽을 바에는 하나님만 의지하다가 죽는 것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최후 수단에 한하여 그렇다는 뜻). 그런 의미에서 저희들은 우선 개인적으로 신앙의 문제점부터 발견하려고 하셔야 합니다. 본문의 수넴 여인도 귀한 여인인데 신앙의 문제점이 발견됐습니다. 아들이 죽었을 때 침착하게 처신을 잘 했는데 “엘리사 선지자를 모셔와야만 되는 줄 알고 떠날 때부터 맹세를 하고 떠난 것”입니다. 가 보니 엘리사가 “지팡이만 갖고 가서 아이 얼굴에 얹으라”고 하니까 믿음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지요. 마 8:9처럼 “말씀만으로도 된다”는 백부장의 신앙에 미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 개인에게 중대한 문제는 육체적이거나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신앙적인 면에서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가 얼마나 가까우냐? 하는 것입니다. 이제 문제를 아셨습니까? 그 다음에는 가정적 문제도 있고 교회적 문제도 있으며 더 나가서는 사회적 문제도 있겠지요. 여기에서 문제를 찾을 때도 하나님의 뜻에 위반된 입장부터 찾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사회는 양극화에서 문제를 찾지만 성도의 세계에서는 적어도 도덕성에서 찾고 인생의 가치관에서 문제를 찾아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녀교육도 가치관과 도덕성을 앞세워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2. 해결은 어떻게 하여야 하니까?

1) 본문에서 선지자를 찾아간 것은 하나님께 여쭈러 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노력을 떠나서 복 주시는 분 같으면 “복권을 사라”(하늘에서 만나 주시듯)고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시지 않고 있는 것을 가지고 일하게 하셨습니다. 그 집에 있는 것은 어머니와 두 아들이었고 건강이 있었으며 자기 집이 있었고 기름 한 병도 있었습니다. “그것을 갖고 일하게 하신 것”은 달란트 활용을 최후까지 하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성경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알고 있었더라면 선지자를 찾아갈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야곱은 지팡이만 갖고 객지에 나가서 성공했다. 요셉은 노예로 팔려가서도 성공했으니 하나님을 든든히 의지하고 너희 두 아들은 그 집 일꾼으로 가라. 나는 나 혼자 일하여 돈 벌겠다”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실하게 살면 여인은 좋은 부자 영감을 만났을 것이고(룻 4:10), 두 아들은 그 집 사위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창 29:18~20). 그래서 문제를 근원에서 깨닫고 또 하나님 중심에서 해결하는 방법을 아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신다”(마 6:33)는 말씀도 유의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설교보충 7. 수넴 여인의 미덕 (왕하 4:8~17) 목록으로


수넴 여인의 기록이 37절까지 나타나 있는데 시간절약상 다 못 읽고 말씀을 드립니다. 이 수넴 여인을 “귀한 여인”으로 번역한 것은 귀한 면이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공동번역에는 부자 여인으로 되어있습니다. 성경을 살피시면서 어떤 미덕이 있었는지를 살펴보시면,

1. 8절에서 손님대접(특히 선지자 대접)을 간권하여 시행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하다가 하나님을 대접하였던 것처럼(창 18:1~4) 이 여인도 남을 섬기고 나그네를 대접하며 하나님의 사역자 돕는 일을 사명으로 이행하였으니, 신앙의 미덕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선지자를 바로 알아보는 판단력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9절에서 “우리에게로 지나가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 안다”고 하였으니 바로 안 것이지요. 왕상 22장을 보시면 아합왕과 여호사밧이 아람과 전쟁을 하려고 할 때 400명이나 되는 거짓 선지자를 상대하면서 바른 선지자 “미가야”는 알아보지 못하였고,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도 난간에서 떨어져서 죽게 되었을 때 엘리야 선지자는 몰라보고 바알세붑 선지자에게 물으러 갔다가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왕이라도 믿음이 없으면 선지자를 옳게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수넴 여인은 엘리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지자임을 알았으니 그만큼 영적 식견이 있다는 뜻이지요.

3. 생각이 주밀하였습니다. 이것은 엘리사가 그 여인을 칭찬한 말입니다(13절). 제가 성남신학원에서 소풍을 간 일이 있었는데, 어떤 여학생이 음료수를 권하기로 제가 사양을 했더니 “바람 불 때 여행을 하시면 입술이 마를 수 있기 때문에 잡수어 두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 말을 듣고 “지혜로운 말을 하는구나. 사실이 그러한데” 하고 물을 받아 먹은 일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수넴 여인이 주밀한 것은 선지자에게 꼭 필요한 것을 제공했다는 점입니다. 추울 때 따뜻하고, 더울 때 서늘한(담 위에 있는 방, 10절) 방을 드렸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라 하였으니, 이것은 저같은 사람에게 100%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책상의 높이와 의자의 쿠션이 중요하고, 조명관계가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너무 밝아도 안되고 반사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앉을 때는 낮은 책상이어야 하고 섰을 때는 선 책상이어야 합니다. 허리문제, 기대는 것, 관절 펴는 것이 다 중요합니다. 어차피 봉사를 할 바에는 주밀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4. 남편과 화합해서 사는 여인이었습니다. 중요한 일을 절대로 혼자 해치우지 않습니다. 방을 만들어 손님을 모시는 일입니다. 수넴에서 갈멜산까지 100리길 여행을 할 때 남편의 동의를 받았습니다(9~10, 22절). 부부간에 서로의 주권을 따지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추세로 볼 때는 “경제를 아내가 맡아야 한다” 하지만 수넴 여인은 혼자 돈 쓰지 않았고, 돈을 쓸 때와 집을 비울 때 꼭 남편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 남편은 늙은 사람이었고(14절), 밭에 나가서 일만 하는 사람이었으니(22절) 무시해도 될 것같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여성이 남편보다 젊으면 공주 대접을 받으려 하지만 이 여인은 그렇지 않으므로 부부화합을 잘 한 것입니다.

5. 평범한 생활에서 만족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엘리사가 신세를 갚으려고 게하시를 시켜서 치하를 한 다음에 13절을 보시면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왕이나 군대장관에게 청할 것이 없느냐?” 한즉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할 뿐입니다” 하였으니, 이 뜻은 왕이나 권세자의 특혜가 필요없고, 백성들과 함께 평범하게 사는 것으로 만족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의 국민들의 의식이 이렇게 돌아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가난한 서민을 제치고 돈 있는 사람들이 판교 아파트를 먹겠다고 야단하는 세대에 이 수넴 여인처럼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정부의 신세질 필요가 없습니다” 하는 국민이면 이 여인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것이 될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는 생활의 미덕이 있었던 것이지요.

6. 선지자의 축복으로 아들을 받았는데 몇 년 후에 그 아들이 아버지의 농장에 나갔다가 일사병 같은 것으로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으로 주신 아들인데 데려가셨으니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이 문제를 풀려면 엘리사 선지자를 만나야 할 입장이었습니다. 본문을 살피면 이 여인이 아들의 죽음을 인하여 슬퍼하거나 땅을 친 일이 없고 남편에게도 그 일을 알리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엘리사 앞에 가서도 아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않고 “내가 언제 아들을 달라고 하였습니까? 계집종을 속이지 말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28절)” 하였으니, 여인의 이 태도는 대단히 대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 슬퍼하며 탄식하지 않았고(선지자를 만나 해결하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임), 들에 있는 남편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니, 이는 남편에게 슬픔과 괴로움을 주지 않으려 한 것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구하지도 않았고 축복으로 주신 아들을 왜 데려가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그 일에 대하여 답변할 책임이 생겼습니다. 여인에게 그럴만한 실책이 없다면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셨다”는 대답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지팡이를 갖고 가서 그 아이의 얼굴에 얹으라”(살려주신다는 뜻) 하였는데, 그 여인이 엘리사를 모셔오기로 하나님께 맹세를 하였기 때문에 그 맹세를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엘리사가 동행해 준 것입니다. 그 여인이 맹세만 안했더라면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였을 것입니다.

7. 따라서 “맹세를 지키는 신앙도 그의 미덕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설교보충 8. 맹세와 은혜 (왕하 4:28~31) 목록으로


본문을 읽고 “맹세와 은혜”란 제목으로 묵상하였습니다. 수넴 여인은 믿음이 좋은 여자로 선지자를 잘 대접하고 범사에 만족을 느끼고 감사하며 살았는데, 엘리사 선지자가 은혜를 갚기 위하여 구하지도 않은 축복으로 아들을 낳게 해 주었습니다. 그 여인의 남편이 늙었을 때 받은 아이이기 때문에 퍽 귀한 선물이 된 것은 사실인데 그 아이가 자라다가 죽은 것입니다. 축복으로 받은 아이가 죽었으니 놀랍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 여인은 수넴에서 갈멜산까지 100리길을 달려가서 엘리사 선지자에게 호소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출발을 하면서 “엘리사 선지자를 꼭 만나야 하고 또 무슨 일이 있어도 모시고 와서 아이를 살려 달라고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할 것을 맹세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맹세는 상대방에게 강하게(변함없도록) 약속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말로 약속하고 하나님께는 기도로 약속을 하는 것인데, 이 약속을 받는 사람이 믿기 어렵다 하면 더 강한 입장을 취하여 믿도록 하는 것인데, 거기에 증인을 세우기도 하지만 그 증인도 사람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없다 하면 하늘로도 맹세하고 땅으로도 맹세하다가(마 5:34) 가장 불변자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두고 맹세를 하는 것입니다. 여기의 하늘이나 땅이나 하나님을 증거로 맹세하는 이유는 그 대상의 불변성과 능력(하늘의 재앙, 땅의 재앙, 하나님의 심판)에 의존하는 신앙 때문인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내가 그 약속을 안지키면 땅이 꺼져 죽어도 마땅하다”, 또는 “하나님의 벌을 받겠다” 했을 때, 그것이 곧 약속을 힘있게 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백성이 임금에게 “아무날 찾아뵙겠습니다” 하고 맹세를 했다면 아버지가 죽었어도 장례 날짜를 물리고라도 왕을 뵈어야 하겠지요. 왕에게 전화하여 “임금님과 약속은 했는데 어제 그만 부친이 별세하셔서 미루어야 되겠습니다”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맹세의 대상이 높은 분일수록 취소를 못하는 것이고, 취소하면 무례죄가 되어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수넴 여인이 엘리사에게 “내가 언제 아들을 달라고 구했습니까?” 하니까 엘리사는 그 아이가 죽은 것을 알고 “내 지팡이를 내 줄터이니 급히 갖고 가서 그 아이의 얼굴(중요한 부분)에 놓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간편한 방법을 일러준 것입니다. 믿고 그대로 시행하면 될 것인데, 맹세가 걸립니다. “선생님 저는 이 일로 선생님을 뵈러올 때 무슨 일이 었어도 선지자님을 모셔와야 할 것이라고 하나님 앞에 맹세를 했으니 어찌합니까?” 한즉, 선지자도 이 맹세를 풀 길이 없어서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맹세는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 앞에 맹세하고 지키지 않으면 그는 거짓된 사람이니까 상대할 수 없을 것이고,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을 속인다면 벌을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 맹세를 받으셨으면 “왜 지팡이를 얹으라는 말을 하게 하셨을까?” 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요? 그러나 이 문제는 계시에 가리워진 부분이고 엘리사의 은사에 속한 명령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계시가 가리워졌다”는 것은 27절에서 “그 아이 죽은 것을 하나님이 숨기셔서 선지자가 몰랐다” 한 것으로 알 수 있고, “은사에 속한 것”이란 뜻은 하나님이 이적 행할 능력을 많이 맡기셨기 때문에 선지자가 그 중에 하나를 명한 것 뿐입니다. 그러니까 수넴 여인이 맹세한 것을 선지자가 알았더라면 “지팡이만 갖고 가라”는 말을 안했을 것인데 그것까지 하나님이 숨기셨기 때문에 인간적 착오가 발생한 것입니다. 여기서 아쉬운 것은 수넴 여인이 꼭 선지자가 와서 아이에게 손을 대야만 살줄로 안 제한된 신앙이 문제입니다. 마 8:8의 백부장처럼 “말씀만 하옵소서” 하는 신앙이 있었더라면 애당초 그런 맹세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맹세는 엄중한 것인만큼 잘 지키는 성도가 되셔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마 5:33~35)고 하였지요. 이것은 거짓이 팽배하던 시대에 자주하던 것을 진실되게 살기를 힘쓰면서 맹세 안 해도 진실을 인정받도록 하여 맹세없이 살라는 교훈입니다. 그 다음의 문제가 은혜에 관한 것인데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지팡이를 얹으면 죽은 아이가 산다 하였는데 맹세 때문에 수넴까지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도착할 무렵에 선지자의 허락도 없이 먼저 지팡이를 갖고 와서 그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아무 효력이 없었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해 보아도 당연한 일입니다. 엘리사가 명한 그 당시의 조건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시간이 다릅니다. 엘리사가 여인에게 명했을 때 “말도 인사도 하지 말고 급히 하라” 하였는데, 엘리사가 행장준비 하는 시간을 끌었을 것이니까 지연된 것이 사실이고, 또 그 여인에게 시킨 일과 게하시의 한 일이 다르지 않습니까? 믿음이 있는 자의 안수(기도)와 믿음 없는 자의 안수가 다른 것입니다. 성경에 “믿음으로 구하고 정욕으로 구하지 말라”(약 4:3, 5:15)는 말씀도 있지 않습니까? 게하시의 신앙은 그 여인의 신앙에 비할 때 견줄 바가 못됩니다. 우선 게하시는 아이를 살리고저 하는 믿음에 앞서 엘리사의 말이 맞나, 안 맞나, 되나, 안 되나 시험해 본 것이니 그것은 순수한 믿음이 아니고 곧 하나님을 시험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은혜가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5장에 보시면 엘리사가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을 고쳐주고 사례물을 거절했을 때, 게하시는 탐심을 갖고 뒤쫓아가서 “선생님이 은과 옷이 필요하다 하십니다” 하여 사례물을 편취하고 문둥병이 걸린 사람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대조하여 수넴 여인은 어떠하였습니까? 선지자에게 방을 제공하고 생활비를 다 봉사하고도 사례물을 구하거나 축복을 바라거나 청탁하라는 것도 일체 거절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그 여인이 그 믿음으로 지팡이를 놓았다면 은혜를 주셨을 것입니다. 이렇게 은혜는 믿음따라, 그릇따라, 기회따라 합당하게 주신다는 것과, 또 하나님은 은혜 줄 자에게만 주시고 긍휼도 베풀 자에게만 베푸시는 분임을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출 33:19).

설교보충 9. 두 가지 은총 (왕하 5:1) 목록으로


이 시간에 드리려는 말씀의 제목은 “두 가지 은총”인데 하나는 일반은총이고, 또 하나는 특별은총입니다.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에 대하여 이해 못하실 성도가 계실까 하여 말씀드립니다. 저의 일반설교집 50과에 보시면 “두 가지 섭리”란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시면 단 3:17~18을 본문으로 하여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왕에게 말하기를 “왕이 우리를 풀무불에 넣으시면 우리 하나님이 건져주실 것이고 안 건져주셔도 절하지 않을 것이라” 하였는데, 여기의 건져주시는 것은 이적이고 특별은총입니다. 그러나 안 건져주시면 불타죽겠지요? 그것은 일반섭리로 내버려 두신 것인데 믿음으로 따지면 이적을 믿는 신앙보다 일반섭리를 믿고 죽을 각오를 하는 것이 더 귀하다는 뜻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그러면 “두 가지 은총(일반은총, 특별은총)”과 본문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시겠지요.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방나라 아람을 그 대적에게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나아만 장군을 들어 쓰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앗수르 군대가 아람을 쳐들어 왔을 때 하나님이 아람을 보호하시기 위하여 나아만 장군에게 힘을 주셨고,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저희들이 이 말씀을 보시면 금방 깨달을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은 선민만 그렇게 하시는 줄 알았는데 이방인들에게도 그렇게 하셨다” 하고 하나님의 통치섭리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선민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처럼 이방인(비택자)에게도 꼭 같이 주시는가? 할 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왕이 자기 가족과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 같지 않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 아닌 자는 일반은총으로만 통치를 받는 것이고,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인 만큼 일반은총 외에 특별은총 하나를 더 받게 되는 것입니다.

1. 일반은총은 모든 인류와 만물이 다 같이 받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은총이라 하고 또 다른 말로 표현하면 보편적 은혜(다 받는다는 뜻)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마 5:45을 보시면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시고 또 비도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자연의 은총인데 의인, 악인, 또는 성도, 비성도에게 다 일반적으로 주셔서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라에서도 믿는 자 안 믿는 자의 차별없이 꼭 같이 대하니까 국가, 사회의 은혜, 즉 교육받는 환경이나 먹고 사는 환경도 다 같은 일반은총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뜻으로 하나님은 세계의 모든 인류와 나라들을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이 망하고 고레스가 왕 되는 것도 하나님이 하신 것이고, 또 이스라엘의 여러보암이 죽고 그 아들 나답이 왕 되는 것도 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인데 거기에는 은혜가 있고 저주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즈음 좋지 못한 황사가 몰려오는데 하나님이 역풍을 주시면 또 물러가겠지요. 성도나 불신자가 다 이런 은총의 혜택을 받는 것입니다.

2. 특별은총이란 무엇입니까? 이것은 한 마디로 표현하여 불신자나 이방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에게만 해당됩니다.

1) 신령한 복입니다. 이 신령한 복은 하나님을 알고 죄사함 받으며 하나님의 자녀된 특권을 누리고 심판을 면한 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고 늘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은총인데 이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면 성령님의 은혜로서, 거듭난 은혜로서 성경과 교회를 주신 은혜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큰 축복인데 이 축복은 불신자들과는 관계가 없고 성도들에게만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은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성도들을 특별하게 취급해 주시는 은혜입니다. 성경에서 그런 말씀을 살피면 사 4:10에서 “내가 너를 택하였으므로 싫어 버리지 않는다” 하셨고(롬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음), 출 6:7에서는 “너희를 내 백성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될 것이라” 하셨으며, 창 28:15, 46:4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고 어디로 가든지 지키며 또 야곱이 애굽으로 가면 따라간다” 하셨고, 신 32:10에서는 “호위하시고 보호 인도하시며 눈동자같이 지키신다” 하셨으며, 또 사 49:16에서는 “이름을 손바닥에 새기시고 늘 주목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젖 먹이는 어미는 아이를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사 49:15) 하셨고, 또 “주무시지도 않고 지키시며 암탉이 병아리를 모음같이 품어주신다”는 말씀도 있지요(시 121:3, 마 23:37). 문제는 하나님이 늦게 낳은 외아들처럼 관심있게 통치하신다는 뜻입니다. 이 은혜가 얼마나 귀합니까?

3)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 제가 강조하는 것은 성도가 그런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체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 있는 줄 알고, 하나님은 멀리 계시다가 교회에 와서 주여 주여 할 때 잠깐 만나 뵙고, 또 멀리 가시는 분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시 139:1~5, 10을 보시면 “하나님은 성도를 감찰하시고 앉고 서고 행하는 것과 눕는 것과 마음의 생각까지 통촉하시며 또 전후를 두르시고 바다 끝에 가도 거기 계시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여러분들이 다 그런 은총 속에 사십니까? 하나님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인데(시 73:28), 하나님이 우리를 가까이 해 주시고 또 성도가 하나님을 가까이 따르면 하나님이 더 가까이 와 주십니다(약 4:8). 성도가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는 맛을 알 때 특별은총의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에 불타고 기도에 갈망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만 가시면 하나님의 특별섭리로 형통하게 하시는 것을 체험하실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도 많이 받으실 것입니다. 사 65:24을 보시면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기적만 특별은총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기적도 비택자에게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일반은총은 다 주시는 것, 특별은총은 성도에게만 주시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자기의 자녀들만 특별하게 취급하시니까요.

설교보충 10. 나아만이 받은 은혜 (왕하 5:1~19) 목록으로


지금 읽으신 말씀은 소설같은 내용이기 때문에 사건을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신앙과 관련하여 무엇을 깨닫고 어떤 면에 은혜를 받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에서 신앙적으로 관계되는 내용을 발췌해 보겠습니다.

1. 아람나라가 이방나라이니까 선민 이스라엘과 다른 점이 있는 것입니다. 선민은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의 기업으로 세우셔서 특별통치를 하시는데, 그 백성들이 신앙을 멀리하고 하나님 앞에 벌 받을 일을 하니까 하나님이 자주 때리시는 대상입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처럼 아주 멀리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또 선민이 아닌 이방국은 선민처럼 영광의 대상으로 통치하시지는 않지만 그들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니까 일반은총을 베풀어 백성이 살도록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1절을 보시면 “하나님이 이방국 아람을 그 대적의 손에서 건져주셨고 그 나라를 건지실 때 나아만을 구국 공신될 만큼 하나님이 쓰셨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이방국에 대한 것도 주관하시고 섭리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아만이 구국 공신이 되다 보니 그 나라 왕에게는 기둥같은 존재가 된 것입니다.

2. 하지만 그는 문둥병 환자였습니다. 그 당시의 문둥병은 못 고치는 병이요, 온갖 불행의 원인이 되는 점에서 죄와 같다고 비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람과 이스라엘은 국경이 인접한 관계에서 일시 평안할 때도 있었지만 서로 싸울 때가 더 많았습니다. 하루는 나아만의 집에 있는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붙들어 와서 하녀로 쓰는 어린 딸이 그 주모(나아만의 처)에게 “우리 주인이 이스라엘에 계셨다면 병을 고치실 수 있었을 텐데요” 라고 말을 건넨 것입니다. 그 주모는 하녀에게 그 말을 하게 된 동기 등을 더 자세히 물었을 것이고, 하녀는 엘리사 선지자의 이적 행하는 능력에 대하여도 말을 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소녀가 엘리사로부터 큰 능력을 체험한 것은 아닐지라도 소문으로 듣고 엘리사에 대한 지식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 덕분에 한마디 한 것이 나아만에게는 구세주 같은 복음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구원 받는 복음도 그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아이의 말 한마디가 필요한 자에게 복음이 되는 것처럼 십자가의 도도 구원 받을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거전 1:18). 따라서 전도는 아무리 큰 나팔을 불어도 수요자가 없으면 소용없고, 세미한 음성으로 말을 해도 구원을 갈망하는 자는 듣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3. 나아만이 병 고치기 위하여 이스라엘에 가겠다고 왕에게 말을 하니까 왕은 너무 다행스러운 일이라 이스라엘 왕에게 친서와 예물까지 겸하여 휴가를 주게 되었고, 나아만은 병졸들을 대동하고 이스라엘 나라에 와서 자기 나라 왕의 친서를 전달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여호람왕은 병 고칠 능력도 없는데다가 자주 침략하는 나라의 왕이 어려운 청탁을 해왔기 때문에 그것을 전쟁구실 잡는 일로 생각하여 깊은 번민에 빠졌는데, 이 소식을 들을 엘리사가 “나아만을 자기에게로 보내라”고 통지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아만은 왕을 만난 후에 또 선지자를 만나러 가게 되었는게 가면서 생각하기를 “한 나라의 임금 다음 가는 장관이 가니까 분명히 선지자가 나와서 영접을 하고 또 신의 이름을 부르며 손으로 몸을 만져 고쳐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막상 선지자의 집에 도착한즉 선지자가 영접 나오지도 않았고 사환만 나와서 “요단강물에 일곱 번 씻어 나으라”고만 하는 것입니다. 그의 목적이 “병 낫는 것”이니까 “병 나으라”는 말만 들어도 정신이 날 것인데 그의 마음이 교만과 자기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즉시 불평을 토하고 복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교만, 불평, 불순종, 그리고 자기 생각은 은혜 받는 마음이 아니지요. “다메섹의 강물이 요단강물보다 낫지 않으냐?” 하였으니, 하나님이 물을 약으로 쓰시겠습니까? 믿음과 순종이 중요한 것이지만 기독교를 모르는 사람은 거기에 익숙하지 않은 것입니다.

4. 그런데 힘든 산 언덕을 넘었으니 그것이 곧 함께 온 부하들의 권면에 자존심을 누른 것입니다. 먼데서 왔고 왕이 보냈으며 목적이 병 고치는 것인즉 “고치라”는데 순종해야 할 것 아닙니까? 했을 때 정신을 차리게 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적을 상실하고 자기 정욕과 교만에 얽매이는 줄 압니다. 이때에 나아만처럼 기회를 얻어서 겸손한 마음 갖는 일을 회복하여야 할 것입니다. 겸손과 순종의 믿음을 갖는다면 일곱 번 아니라 그 이상도 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만이 말씀대로 순종한즉 병이 나았습니다. 크게 놀라고 기뻤을 것입니다.

5. 그래서 변화된 마음을 갖고 엘리사에게 와서 예물을 드리려 하니까 받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또 놀랐을 것입니다. 아마 예물을 받았더라면 덜 놀랬을 것입니다. 그 순간에는 “이스라엘의 여호와만 참 신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그 하나님을 경외하기로 결심하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또 나아만은 신을 섬기되 마음으로 섬기고 양심적으로 섬겨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흙을 갖고 간 것은 여호와가 이스라엘 땅 위에만 계신 줄 알았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모시고 가는 뜻으로 그렇게 청한 줄 압니다. 또 그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표이기 때문에 “선민국을 괴롭히지 말라”는 뜻으로 갖고 가게 하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또 용서를 구하기를 “늙은 벤하닷왕이 림몬(암몬의 신상)에게 몸을 굽힐 때 자기는 왕의 몸을 부축할 책임이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일 뿐 림몬신을 숭배하지는 않을 것이라” 하므로 양심에 관한 부분까지도 민감한 반응을 나타낸 것입니다. 나아만은 하나님의 은혜로 육체와 도덕성과 신앙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의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설교보충 11. 게하시의 불행 (왕하 5:20~27) 목록으로


“게하시의 불행”이란 제목입니다. 게하시는 엘리사의 사환이면서 문하생으로 선지자 공부도 하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게하시의 물질탐심과 그의 말로의 불행을 생각하면 구약의 아간이나 신약의 가룟유다, 또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게하시가 엘리사의 사환으로 있으면서 가난하게 살았을 것은 의당하나 엘리사가 굶기거나 헐벗게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게하시가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 돈이나 의복의 탐심을 가진 것은 보통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도나 복음사역자나 또 복음사역 지망생이 처음부터 사명에 나설 때 현세욕을 다 버리고 세례요한처럼 현실을 초월하지 못하면 누구나 재물의 욕심을 저버릴 수 없는 것이 현실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게하시의 불행도 경계해야 하겠지만 현실교회의 사역자들도 엘리사가 사례물을 멀리 한 것처럼 기도와 교훈과 은혜는 전달하되 사례물이나 감사헌금 같은 것을 선호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 말씀을 상고하는 것입니다.

1. 게하시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선지자의 사환은 선지자 지망생 중 한 사람입니다. 엘리사가 사명과 거리가 먼 사람을 사환으로 쓰지는 않았을 것인즉 믿음과 사명의 뜻을 나타낸 사람일 것입니다.

1) 그렇다면 게하시는 물욕이나 사치에서 떠나 있었어야 하는데 그것이 미흡하였습니다. 요즈음 교회가 현실문화의 바람에 보조를 맞추어 가고 있는 줄 압니다. 예배당도 현대식 건물로 바꾸고, 성도의 생활도 사치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도 있으며, 복음사역자들도 현실사치에 못 따라가면 하나님의 사역을 못하는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표준의식이 사라지고 세속의 풍조를 시급하게 따라가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현세적 사치와 지나친 물욕을 억제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주님과의 동행이란 점을 나타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2) 게하시가 엘리사를 가장 가까이 모신 자로서 엘리사를 닮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사가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주고도 사례물을 받지 않는 것은 그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나타난 것이고, 자신은 아무 공로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거저 받아서 그것을 사욕 목적에 이용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사 1:23에서 “사례물을 구하지 말라” 하셨고, 마 10:8에서는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게 하고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하셨고, 딤전 6:5에서는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한다” 하시므로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는 것을 마음의 부패와 진리를 떠난 행위로 말씀 하셨습니다.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복음사역자를 섬기는 차원에서 돕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요, 사역자가 “많은 헌금을 해야 은혜가 임한다” 하거나, “은혜를 받았으니 마땅히 감사헌금을 해야한다”는 식으로 은사를 돈과 흥정하거나 상품화하는 경우를 경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면서 조건적 또는 사후 대가적 행위가 교회나 신앙인에게 나타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행 8:13을 보시면 “시몬이 세례를 받고 성도가 되었는데 돈을 주고 성령을 사서 능력자 역할을 하려 하다가 악독한 자로 판명된 일”이 있습니다(행 8:22). 교회는 결코 물질로 은혜를 흥정하거나 헌금에 부담 갖게 하는 기관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3) 게하시가 거짓을 꾸민 것입니다. 나아만이 많은 예물을 갖고 와서 엘리사에게 전하려 하였는데, 엘리사가 그것을 거절하자 그 기회에 엘리사를 빙자하여 거짓을 꾸몄으니, 곧 두 사람을 데리고 나아만을 좇아가서 “우리 선생님이 에브라임에서 두 생도가 왔는데 은 한 달란트와 옷 두벌을 주라고 하십니다” 하였으니, 선지자를 모독한 일이고 참으로 가증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선지자의 사환으로서 이런 일을 한 것은 벌 받을 일이지요. 나아만은 그것도 모르고 은 한 달란트를 갑절로 더하여 주었으니 이 잘못된 책임을 누가 져야 할까요? 예를 들어서 나아만이 “게하시에게 속았다”고 고발을 한다면 그 책임을 게하시 혼자 져야 할까요? 아니면 진실치 못한 사환을 둔 엘리사에게도 책임이 있을까요? 속은 사람은 죄가 없으나 속인 자와 그 측근들은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자신이나 주위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게하시와 같은 문제의 병을 고쳐 나가자는 뜻입니다. 등잔 밑이 어두운 문제도 고쳐야 하겠지요. 물욕과 현세욕 표준을 닮지 않는 것 거짓을 감행하는 일을 크게 경계하여야 할 것입니다.

2. 게하시는 선지자의 징계선포에 의하여 “나아만의 문둥병을 계승 받아 자식까지 계대한다” 하였으니 일벌백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벌이 두려우면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멀리 있던 이방인 나아만은 문둥병 때문에 은혜를 받았으나 가까이 있던 선민 게하시는 성한 몸으로 선지자를 모시고 있었지만 현세적 욕심을 떨치지 못하여 망한 사실을 유의하셔야 할 것입니다. 미국에서 고고학적 사본을 방영하면서 유다의 복음이 나타났는데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한 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명에 의하여 구속사업을 도운 자라”고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진실을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너 하는 일을 속히 하라”(요 13:27, 마 26:50) 하셨으니까요. 그러나 사탄이 들어가서 한 것은 죄의 책임이 유다에게 있고, 예수님은 유다가 계획한 것을 속히 하라고 하신 것뿐입니다. 설명이 다르다 하여 성경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빈치코드란 영화가 예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것은 기독교의 대적행위일 뿐 성경의 진실성을 뒤집는 것은 아님을 아십시오. 게하시가 엘리사를 배반하고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것처럼 믿음을 해하는 것이나 성경을 흔드는 세력도 바로 우리 주위에 있음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설교보충 12. 위기 중의 은혜 (왕하 6:24~33) 목록으로


“위기 중의 은혜”란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하겠습니다. 본문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위기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었고, 다음 7장에서는 은혜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었습니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의 위기는 여호람(아합의 아들)왕 때에 사마리아 왕도가 기근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이 기근이 있게 된 이유는 아람왕 벤하닷이 사마리아 도성을 차지하기 위하여 그 성 전체를 포위하였기 때문에 양식 공급이 안 되니까 그 선민이 큰 기근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나귀 머리 하나에 은 80세겔이고, 합분태(밀가루, 겨 같은 것) 조금에 은 다섯 세겔 정도가 되어 도저히 양식 변통이 안되니까 나중에는 내 집, 네 집의 아이를 삶아 먹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굶어 죽은 아이를 삶아 먹었을 것임). 왕에게 호소한즉 속수무책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치 타이타닉호가 서서히 물로 내려가는 것처럼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지경이 된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선민이 왜 이런 지경이 되었을까요? 본문 앞부분에 보시면 아람 군대가 엘리사를 먼저 없애고 사마리아를 점령하러 왔을 때 엘리사가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다 포로로 잡은 후에 먹여서 돌려보낸 일이 있은 후 상당기간 침략을 안했다(18~23절)고 하였는데, 또 침략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방족들로 하여금 선민을 괴롭게 하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람왕의 부친인 아합왕과 모친 이세벨이 하나님께 악을 행하므로 저주 받은 사실이 있는데(왕상 21:22~29), “그 집이(왕실과 자손들) 여러보암의 집과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하신다” 하셨으니, 후시대에 좋은 일 기대하기가 어렵고 또 여호람왕 자신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했습니다. 괴로우면 회개하는 척하고 또 어떤 때는 선지자를 핍박하여 죽이려 하는 이중생활을 하였으니, 그런 태도는 복 받을 입장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기근에 처한 것은 아람의 침략때문인데 아람이 침략하는 것은 왕실의 죄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그리하여 어찌되었습니까? 선지자에게 물어 보았을 것이고, 선지자는 “죄 때문인즉 깊이 회개해야 하나님이 권고하실 것이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30절을 보시면 “여호람왕이 속에 굵은 베옷을 입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속에 입은 베옷을 겉옷으로 가리웠는데 너무 비통하여 겉옷을 찢는 바람에 속옷이 드러난 것인데, 이것은 속으로 회개하는 표시를 낸 것입니다. 왕과 백성들이 다 굵은 베옷을 입고 하나님께 자복해야 좋을 것이지만 왕의 체통을 살리려고 그렇게 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욘 3:5을 보시면 니누웨 도성 전체가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한 사실과 하나님이 재앙을 면케하신 사실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여호람의 회개는 너무 소극적이고 회개 그 자체를 부끄럽게 생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형통할 길은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엘리사 말대로 회개하고 기다려도 소용없으니 차라리 엘리사를 죽이고 아람에 항복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엘리사를 죽이려고 신하들을 앞세워 보내고 자기도 뒤따라오게 되었는데(32절) 이렇게 극도에 달했을 때 엘리사 선지자가 입을 열게 된 것입니다.

4. 무슨 말을 하였습니까? “(오래 기다렸는데) 앞으로 24시간 후에 사마리아성 안으로 양식이 공급될 것입니다. 고운가루 한 스아(7되, 14ℓ), 보리 두 스아(14되)에 한 세겔(64센트) 할 것입니다” 하였으니, 이는 양식이 싸게 공급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왕과 같이 온 장관이 하는 말이 “하나님이 하늘에서 창을 내신들(하늘에서 쏟아주시지 않는 한) 이런 일이 있겠느냐?” 하면서 믿지 않을 때 엘리사가 말하기를 “당신은 눈으로 볼 것이나 먹지는 못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예언이 24시간 내에 어떻게 성취되는 가를 살피셔야 하겠지요.

5. 사마리아 성문 어구(문둥병자는 성 안에 못 들어가고 사람을 피하여 밖으로 돌아야 함, 레 13:45)에 문둥병자 네 사람이 성 안에 들어가도 굶어죽고 나가도 굶어 죽을 바에는 아람 진영에 찾아가서 항복하고 죽이면 죽고 안 죽이면 거기서 얻어먹는 것이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여 최후결단으로 아람 진영에 찾아간즉 군인들이 다 버려두고 도망한 흔적뿐인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거기에 있는 것으로 먹고 마시며 은금과 의복을 챙겨 자기들 처소에 감추었는데 그곳에 군량미 남은 것이 많으니까 “이것을 사마리아 도성에 알려 같이 살아야 할 것 아닌가? 만일 이것을 우리만 알고 그들에게 알리지 않는다면 우리가 벌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전 9:16)하여 밝기 전에 그 사실을 사마리아 성에 알렸으니 이것이 바로 전도자의 전파사명을 뜻하는 것입니다. 아람군이 도망한 것은 그날 어둡기 전부터 하나님이 그들의 귀에 큰 병거와 군대와 말의 소리를 듣게 하셔서(엘리사를 호위한 불말, 불병거가 소리를 낸 듯 함) 애굽과 헷왕국의 지원군이 오는 줄로 착각하고 황급히 도망한 것인데 이스라엘왕은 그 사실을 모르고 분명히 다른 곳에 가서 매복하여 성을 진격해 올 것으로 짐작하고 정탐을 보내본즉 사실이 아님을 알고 아람군의 진영에 접근하여 양식을 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믿지 않고 비방한 장관은 눈으로 확인은 했지만 몰려 들어가는 백성들의 발에 밟혀 죽으므로 먹지 못하고 엘리사의 예언대로 된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을 통해서 위기의 원인과 상태를 말씀드렸고, 여호람왕의 회개의 태도도 말씀드렸는데 하나님께서는 결국 은혜를 베푸셔서 위기를 극복하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천군만마가 소리를 발하는 이적도 베푸셨고 적군이 착각을 일으켜 도망하게 하셨으며 중요한 것은 문둥이 네 사람을 쓰셔서 소식을 전하게 한 것이요 문둥이가 용기를 갖고 아람진영에 갈 수 있었던 것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 있었기 때문에 “죽기 않으면 살기”란 각오에 의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은혜는 믿음으로 받고 의심하는 자는 받지 못하며 예언은 틀림없이 성취되고 복음은 누가 전해도 은혜에는 변화가 없음을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설교보충 13. 유다왕 요아스 (왕하 12:17~21)목록으로


본문을 강론하면서 본문에는 유다왕 요아스의 기사가 간단하게 기록되었고, 이 사실에 대한 기록이 역대하 24:15~27에 더 자세히 기록되었기 때문에 설명을 보충하는 의미로 말씀을 드립니다. 요아스는 유다의 14대 왕인데 7세에 왕이 되었고 40년을 통치하였으며 왕될 때도 특별한 사연이 있었고 죽을 때도 특별한 사연에 의하여 죽은 것이 다른 왕과 다른 점이라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많은 교훈을 주시는 줄 압니다. 북왕국의 예후가 혁명을 일으키는 바람에 유다의 12대왕 아하시야와 왕자들이 거의 다 죽었는데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가 남은 왕자들을 다죽이고 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왕자의 혈통이 다 없어질 뻔 하였는데,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한 살된 조카요 왕자인 요아스를 빼내어 7년 동안 성전에서 숨겨 키웠습니다. 여호세바의 남편이 당시에 충성스런 대제사장 여호야다였기 때문에 그 일이 가능하였습니다. 여호야다는 기회를 보고 있다가 7년이 되었을 때 반역을 일으켜 아달랴를 죽이고 7세된 요아스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요아스가 어리니까 고모부되는 여호야다가 섭정하듯 하였을 것입니다. 왕이 어렸을 때는 여호야다의 지도를 받아 정직하게 행하였는데(대하 24:2) 요아스가 성인이 되고 늙은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130세에 죽은 다음부터 신하들이 여호야다를 이방신 섬기는 쪽으로 끌어드렸습니다(대하 24:17~18). 이렇게 된 것은 요아스가 하나님 섬기는 신앙에 든든하지 못한 점도 원인이지만 요아스의 대비되는 여호람의 왕비 아달랴가 우상주의자로 6년간 실권을 잡고 있을 때 우상주의에 따라가는 신하들이 정권교체가 되면서 여호야다와 대립상태를 나타낸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하 24:7을 보시면 “아달랴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전의 모든 성물을 바알에게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전이 훼손되고 퇴폐된 것인데 요아스는 자신이 그 성전에서 7년을 숨어 자란만큼 성전의 애착이 있어서 수리를 하라고 명하였지만 레위사람들이 고분 고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늙은 제사장 여호야다에게 강한 명령을 내려서 수리를 하였지만 기명복구는 못했습니다(왕상 12:9~14). 여기에서 저희들은 정치적 알력이 종교에 미쳤고, 또 종교의 힘이 정치를 좌우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달랴는 아합왕과 이방여인 이세벨 사이에서 낳은 딸입니다. 그가 여호람의 왕비가 된 것은 남매가 결혼했다는 뜻입니다(대하 21:6). 그리고 여호람이 죽으니까 그 두 사이에서 낳은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는데(대하 22:2) 왕자들이 예후에게 다 죽는 바람에 자기가 스스로 왕될 생각을 하고 남은 왕자들을 또 죽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아달랴의 명예욕도 있지만 종교적, 정치적 알력이 깔려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야다의 하나님편 세력과 아달랴의 이방종교 세력이 대립되어 있고, 서로의 실권기회를 엿보다가 여호야다가 죽으니까 그 기회에 우상주의자들이 왕의 입장을 꺾은 것입니다. 왕이 우상주의자들에게 눌려서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떠나니까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 선지자가 그것을 책망한 것입니다. 대하 24:19~22을 보시면 “하나님이 요아스왕을 자기에게로 돌이키게 하시려고 선지자들을 보내어 저를 경계하게 하셨으나 듣지 않자 그 다음에 하나님의 신이 여호야다의 아들 제사장을 감동하시매 저가 백성 앞에 높이셔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고 스스로 형통치 못하게 하느냐 너희가 여호와를 버린고로 여호와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였으나 무리(우상주의자들)가 함께 꾀하여 왕명을 좇아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스가랴를 돌로 쳐 죽였는데 이때에 스가랴는 죽으면서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며 죽었고, 요아스는 그런 일로 여호야다의 은혜를 배반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요아스는 평안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는데 1년 후에 아람왕 하사엘이 침략하여 모든 방백을 다 죽이고 왕궁에 들어오려하자 요아스가 싸우다가 부상 당한즉(대하 24:24~25) 왕궁과 성전에 있는 모든 금을 다 주어서 하사엘을 돌려보냈으나(왕하 12:18) 결국은 신하들이 모반하여 병든 요아스를 침상에서 죽여 끝낸 것입니다. 본문 21절에서는 요아스를 쳐서 죽인 신복이 “시므앗의 아들 요사갈과 소멜의 아들 여호사바드”라 하였는데, 대하 24:26에서는 “암몬여인 시므앗의 아들 사밧(요사갈과 대조)과 모압여인 시므릿(소멜과 대조)의 아들 여호사밧(여호사바드와 대조)이라”고 하였으니 이 차이는 1人2名으로 근거했거나 아니면 문자번역에 따라 호칭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대상 24:24에서 “하나님이 요아스를 버려 아람사람으로 하여금 요아스를 징벌하셨다” 하신 것이고, 또 25절에서는 “적군이 부상당한 요아스를 버리고 간 것을 그 신복들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로 인하여 모반하고 침상에서 죽였다”고 한 것입니다. 요아스의 신복들은 먹고 살기 위하여 왕을 섬기고 우상에 절을 하면서도 “왕이 여호야다와 그 아들들을 배신한 일에 대하여는 잘못이다” 하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도 그러하거든 하물며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시겠습니까? 예수님도 이 일을 거저 넘기시지 않았습니다. 요아스와 예수님은 800년간 차이가 있지만 예수님은 마 23:35, 눅 11:51에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사이에서 죽인 바라갸(여호야다 또는 여호세바의 별명)의 아들 사가랴(스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간다” 하시므로 그 당시에 요아스의 범죄에 대한 심판이 다 끝난 것이 아니고 후시대에 나누어 징벌하신 점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요아스의 연약과 타락과 심판에 대하여 또는 종교와 정치가 갈등하는 양상을 연구하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설교보충 14. 히스기야에 대한 통치 (왕하 18:1~8, 20:1~7) 목록으로


히스기야왕에 관련된 설교를 많이 들으셨을 것입니다. 왕하 18:~20:에 히스기야왕에 대한 역사가 기록되었는데, 곰곰이 묵상하면 하나님의 통치에 대하여 많은 교훈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유다 17대 왕으로(BC. 695~724) 아버지 아하스왕과 할아버지 요담왕을 통해서 또 그 이상의 조상을 통해서 세상에 태어났고, 또 왕이 된 것도 그런 세습의 덕을 본 것입니다. 어느 사람이나 조상의 전통을 부인할 수 없듯이 히스기야도 그러한 것입니다. 다윗은 히스기야의 13대 조상이고 약 300년 전의 할아버지인데 그가 하나님 앞에 복 받을 일을 하였고, 또 하나님의 축복을 약속받은 것이 있기 때문에(삼하 7:8~13) 히스기야가 300년 후에 13대조 할아버지의 덕을 보았다는 사실이 왕하 19:34에 기록되었습니다. 거기에 보시면 히스기야왕이 앗수르의 침략으로 큰 궁지에 빠져 기도를 하였는데 하나님이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고 구원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1. 그러니까 300년 전의 조상의 덕이 그 후손에게 미쳤다는 사실이 명확해진 것이요, 이 말씀은 출 20:6에 기록된 “계명 지킨 자의 복을 수천대까지 베푸신다”는 말씀과도 일치하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조상의 악도 참고되어야 하겠지요. 출 20:5에서 “조상의 악을 3, 4대 미치게 하신다” 하셨으니까 그것도 참고가 되는 것입니다. 북왕국 7대왕 아합과 이세벨의 죄는 대단한 것이었고, 그 아들 아하시야와 요람이 다음 왕을 계승했으나, 하나님이 예후에게 “혁명을 일으켜 그들을 엎으라”고 하셨지요(왕상 19:16~17, 왕하 9:6~10). 예후가 요람을 치려할 때 요람이 “평안이뇨?” 하고 물은즉 예후가 답하기를 “네 어미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은데 (그의 아들인 네가) 어찌 평안하겠느냐?” 하고 그를 죽였습니다. 이것은 사울의 죄로 요나단이 죽은 것처럼 어미의 죄로 아들이 죽은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희들은 “나는 선한데 왜 안 되며 저는 악한데 왜 잘 되느냐?” 하는 말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저 “조상의 탓도 있고 덕도 있다”고 생각하시고 자신만 잘 하면 되는 것입니다.

3. 18장을 보시면 히스기야왕은 잘 한 것이 많습니다. 모세 때부터 보존하였던 놋뱀까지 부셔버렸으니까요. 그래서 어찌되었습니까? 히스기야왕이 우상타파한 것은 적은 일이고, 6절을 보시면 “하나님과 연합하여 모세의 계명을 지킨 것이 큰 일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7~8절을 보시면 “하나님이 함께 해 주셨고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으며 앗수르도 배척하였고 블레셋도 쳤으며 나라가 견고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의롭게 행한 만큼 복을 받은 것입니다.

4. 그런데 왜 앗수르가 강성하여 침략을 하였을까요? 그것은 히스기야의 탓은 아닐 것입니다. 그 선왕 때부터 조상과 백성들이 지은 죄값이 넘쳤기 때문입니다. 왕상 17:17~18을 보시면 “유다도 하나님의 율례를 지키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이 온 족속을 버리사 노략군의 손에 붙이신다” 하셨고, 또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가 범죄한 내용이 왕하 16:1~4에 나타났는데 심지어는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일”까지 권장 하였으니까 그 죄가 얼마나 큽니까? 그러니까 히스기야 한 사람의 정의로는 속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왕이나 민족의 죄를 감안하여서도 벌을 하시는 것입니다.

5. 그래서 앗수르가 싸움을 안 하고 예루살렘을 차지하려고 “대문을 열고 항복하라”고 조여올 때 히스기야가 어떻게 하였습니까? 적국사신의 편지를 성전에 갖고 가서 펴 놓고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그 기도가 왕하 19:14~19에 기록되었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앗수르가 접근을 못하고 쫓겨갈 것을 예언하셨는데(왕하 19:20~28), 왕하 19:20을 보시면 “기도하는 것을 들으셨다” 하셨고, 왕하 19:27~28에서는 “앗수르놈들의 교만이 너무 미워서 쫓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히스기야의 기도만 들으셔서 대적을 물리치신다면 앗수르 군사들이 풍문을 듣고(풍문, 왕하 19:7~9, 구스왕 디르하가가 군사를 이끌고 유다를 도우러 온다는 소문) 돌아가게 하실 수도 있는데, 그들이 워낙 하나님을 멸시하고 오만한 태도를 취하니까 하나님이 하룻밤 사이에 185,000명을 죽게 하시지 않았습니까?(왕하 19:35) 그러니까 기도응답도 통치에 참고가 된 것이고, 또 앗수르의 오만한 죄도 참고가 된 것입니다.

6. 그러면 20장으로 넘어와서 히스기야가 왜 병들어 죽게 되었을까요? 아무래도 히스기야왕이 하나님의 능력보다 왕궁의 보화와 군사력을 많이 의지한 것 같습니다. 앗수르가 강성하였지만 유다를 괴롭히지 못하였을 때 바벨론 사신이 병문안을 왔는데, 그 당시 바벨론은 앗수르를 견제하기 위하여 연합세력을 규합할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예물을 갖고 병문안 와서 어느나라, 어느나라 군사력을 모으면 앗수르를 대항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을 계산하려니까 모든 보화와 군사력을 다 보여준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와 신앙으로 앗수르를 견제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은금을 자랑하고 군사를 의지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병으로 때리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가 멀어지는 데는 교만이 무섭고, 또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이 큰 문제라는 것을 꼭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권세나 과학이나 기술을 의지해도 하나님처럼 의지하시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죽게 되고 앗수르의 위협이 있을 때, 히스기야가 벽을 향하여(누워기도한 듯)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의롭게 살려고 애썼는데요” 하고 기도한즉 하나님이 또 그의 눈물을 보셨고, 그가 의롭게 살려고 애쓴 것을 아시기 때문에 그의 병을 고쳐주시고 15년을 더 살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통치는 여러가지 문제가 종합되어 나타난다는 사실과 화 받을 일을 만회하고 복 받는 방법은 오직 “의를 행하는 것뿐”임을 믿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설교보충 15. 요시야왕의 말씀 발견 (왕하 22:1~13) 목록으로


요시야왕은 히스기야왕의 증손자이고 유다 19대 왕으로 8세에 왕이 되어 31년 재위하였으며(BC. 605~574) 왕 된지 8년 후인 16세 때에 “비로소 하나님을 구했다” 하였고(대하 34:3), 정화사역을 많이 하였으며, 왕 된지 18년 되었을 때(26세) 성전을 수리하도록 명한 것 때문에 성전 어느 곳에 감취었던 율법책을 발견하여 그것을 읽고 회개를 하므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망하는 재앙을 보지 않도록 데려가신 사실이 있습니다. 요시야의 정화사역은 열왕기하 23장 전체에 기록될 만큼 대단하였으나, 그것으로 민족의 죄를 속량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시야가 죽은 후, 그 아들의 대부터 바벨론에게 시달리다가 22년 후에 나라가 망했는데 요시야는 그 이전에 애굽과의 전쟁에서 명예롭게 전사하였으니(왕하 23:29) 이는 그가 선하였기 때문에 31년간 왕노릇 잘 하고 하나님이 화액전에 명예롭게 데려가시므로 복 받은 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사 57:1). 이 시간 말씀 드리려고 하는 것은 “요시야왕의 말씀 발견”입니다.

1.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그 나이 26세 되도록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요시야의 할아버지 므낫세 때에 하나님 경외하는 제도를 우상의 제도로 바꾸면서 제사장들을 죽이고 핍박하니까 한 두 권쯤 있는 율법책을 성전 어느 곳에 감추고 죽거나 다 흩어진 것입니다(왕하 21:1~7, 16). 그러니까 성전은 우상의 제단으로 바뀌고 율법책도 없이 살다가 성전을 수리한 덕분에 하나님의 말씀을 찾게 되었고, 그 말씀을 읽을 때 옷을 찢을 정도로 깨닫고 회개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율법책을 발견한 힐기야 대제사장과 왕 앞에서 율법을 읽은 서기관 사반은 옷을 찢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성경을 보고 가슴을 치며 뜨거움을 느끼는 성도가 있고, 성경을 읽어도 덤덤한 성도가 있으며 아주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불교방송도 많이 듣는 편인데, 그들에게는 불경만 있고 성경은 없습니다. 그리고 도덕적인 교훈은 다 좋은데 하나님 교훈은 전혀 없습니다. 저는 이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일과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 속에 넣는 일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요시야왕은 그 아버지 아몬과 할아버지 므낫세 때부터 성경 없이 살다가 다행하게도 성전수리를 하는 중에 율법책을 발견했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에디오피아 내시가 병거 위에서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이 빌립을 보내셔서 깨우쳐 주셨고, 또 고넬료가 경건생활을 잘 하므로 하나님이 베드로를 보내신 것처럼 요시야왕도 정화운동에 열심이니까 하나님이 그 성경을 발견하게 하신 줄 압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성경을 받으셨습니까? 지금은 성경이 흔하여 예배당에 가도 진열된 것이 있고, 성경을 펴지 않아도 스크린에 나오고 있지요. 그러나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떤 문헌을 보니까 1880년대에 우리나라에 성경이 들어올 때 밀수로 반입하였다는 글을 본 일이 있습니다. 1876년에는 죤 로스 선교사와 죤 매킨타이어 선교사가 만주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한국인 서상륜, 이응찬, 이성하, 백홍준, 네 분의 세례교인을 얻고 그분들이 1882년에 쪽 복음서로 번역을 하고, 1887년에 신약을 번역하였는데 이것을 조선 땅으로 들여오려할 때 그 당시 쇄국정책시기이니까 조사가 심하여 성경을 창호지에 써서 노끈을 꼬고 그 노끈으로 멜방을 만들어 들여왔다는 것입니다. 또 독일 선교사 뮌헨돌프가 6,000권을 인천항으로 밀반입했다는 것입니다. 80년대에 일본에서 중국으로 성경을 보낼 때 소포로 홍콩을 거쳐가기도 하고 중공화물선에 올라가서 물건에 끼워 보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는 성경이 너무 흔하여 버려질 지경이 아닙니까? 일단 여러분들은 성경책을 다 가진 분들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마음 속에 발견되고 마음에 꽂혀야 하는데 느낌이 어떻습니까? 여러분 기독교 TV 방송을 많이 들으세요. 듣다보면 아는 설교 하시는구나 할 때도 있지만 큰 깨달음을 주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여호야김은 요시야왕의 아들로 자기 형제 여호아하스가 먼저 왕 되었다가 석달만에 애굽에 끌려가 죽고(왕하 23:30~34) 그 다음 왕(21대)이 되었는데 하나님 앞에 합당치 못한 일을 하니까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글로 적어 왕 앞에 읽게 한즉 왕이 자기 뜻에 맞지 않는다 하여 그 자리에서 칼로 베어 화로에 태운 일이 있었습니다(렘 36:20~26). 이러니 유다 왕조가 남아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 다음 시대에 바벨론에게 망하였습니다. 한번은 기독교 TV를 보니까 “소중한 사람들의 단체”를 운영하는 가난한 목사 부인이 노숙자에게 담요도 덮어주고 밥도 먹이는 봉사를 하는데 모아놓은 돈 없이 그런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 가지 소원 중 한 가지가 중고트럭을 구입하는 것인데 어떤 독지가가 새 트럭을 사주었고, 또 누가 소원을 말하라 하여 다른 암 환자의 수술비를 대주었으며, 또 누가 필요한 것을 말하라 하여 복지시설 건축비 반을 부담하므로 작은 봉사를 하면서 소원이 다 성취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또 듣게 된 것은 수원 어떤 교회의 목사님 설교인데 저도 그 말씀에서 새로운 교훈을 받았습니다. 그 설교는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되자”는 제목으로 요 6:1~15에 나타난 5병2어의 기적에 대한 설교였습니다. 음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5,000명 이상인데 나눠주는 음식은 어린아이가 내놓은 적은 음식으로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모아서 나누어 준 것이 아니고 자기 먹을 것을 포기하고 나누었을 때 하나님의 이적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내용에 깜짝 놀란 것입니다. 자선사업에 성공한 사람들이 다 그렇게 했습니다. 또 불교방송의 어떤 스님의 설교에서 어떤 유명한 중이 부잣집에 다니면서 시주를 걷지 않고 절간에서 얻어먹는 거지들에게 시주하라하니까 그 이유를 물은즉 “너희들이 복 받아 거지 면하라고 그런다” 하여 그들이 구걸해 온 돈으로 조금씩 시주를 하고, 절간 짓는데 봉사를 했는데, 10년 후에 거지로 남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기도하시고 많이 사모하시며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가슴에 와 닿는 말씀이 많기를 바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