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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강론

 

저자 지영근 목사



목 차

 

제1과 호세아로 말씀하심 (호 1:1~5) 4 바로가기

제2과 징계와 구원(호 1:6~11) 7 바로가기

제3과 죄와 징벌 (호 2:1~13) 9 바로가기

제4과 회개와 구원의 약속 (호 2:14~23) 12 바로가기

제5과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호 3:1~5) 14 바로가기

제6과 죄와 벌 (호 4:1~10) 16 바로가기

제7과 범죄의 특징과 대응책 (호 4:11~19) 18 바로가기

제8과 경고하시는 하나님 (호 5:1~7) 20 바로가기

제9과 죄와 징계와 회개 (호 5:8~15) 22 바로가기

제10과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 6:1~11) 24 바로가기

제11과 선민의 악과 심판 예고 (호 7:1~7) 27 바로가기

제12과 죄의 성질과 징벌 (호 7:8~16) 29 바로가기

제13과 죄와 벌(1) (호 8:1~14) 32 바로가기

제14과 죄와 벌(2) (호 9:1~9) 35 바로가기

제15과 죄의 결과 (호 9:10~17) 37 바로가기

제16과 다섯 가지 죄와 벌 (호 10:1~8) 39 바로가기

제17과 선민의 죄와 징계 섭리 (호 10:9~15) 41 바로가기

제18과 은혜, 배신, 징계, 긍휼 (호 11:1~12) 43 바로가기

제19과 선민의 희망 (호 12:1~6) 46 바로가기

제20과 은혜와 타락과 심판 (호 12:7~14) 48 바로가기

제21과 선민의 형편 (호 13:1~8) 50 바로가기

제22과 패망을 예고하심 (호 13:9~16) 52 바로가기

제23과 회개와 축복 (호 14:1~9) 54 바로가기

설교보충 1. 호세아의 비유 말씀 (호 2:5~7, 12:10) 57 바로가기

 

제 1 과 호세아로 말씀하심 (호 1:1-5) 목록으로


(먼저 필자가 집필한 기독교신앙백과에 나타난 호세아서 개론을 읽으십시오.)


1. 본문 2절에서 “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하셨으므로 제목을 “호세아로 말씀하심”이라고 정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심”에는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하나님이 호세아로 대언자 역할을 하게 하신 것이므로 호세아의 증언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란 점이고, 또 하나는 ‘비로소’란 의미가 “상당기간 잠잠하시다가 결국 말씀을 주셨다는 뜻”인즉 하나님이 잠잠하신 데는 진노의 의미가 있고 “비로소 말씀하신 것”은 권고의 의미가 있다 할 것입니다.

2. 성경에는 ‘호세아’란 이름이 네 사람 나타납니다.

① 호세아가 여호수아의 본명으로 나타나고(민 13:16),

② 다윗왕 때에 에브라임 지파의 장관이 있었으며(대상 27:20),

③ 이스라엘 국의 마지막 19대 왕이 호세아였고,

④ 본문에 나타난 12 소선지자 중 첫 사람의 이름이 호세아입니다.

‘호세아’란 이름의 뜻은 ‘구원’이라고 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호세아’는 ‘브에리’의 아들이라 하셨으니 이는 역사적인 인물을 소개하신 것일 뿐 그 인물의 배경 설명이 없음을 보아 평민의 한 사람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불러 쓰시는 선지자는 배경상의 특징이 없어도 하나님이 부르시고 쓰시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호세아의 사역 시기는 “유다 왕 웃시아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왕이 통치하던 시대요(이 시기는 이사야가 사역한 시기와 같음), 북왕국의 시대는 요하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왕 된 때”라 하셨으니, 유다 왕으로는 13대 웃시아(52년), 요람(16년), 아하스(16년), 히스기아(29년)의 통치 기간에 사역을 한 것이고 북왕국의 임금으로는 13대 여로보암 2세(41년), 스가랴(6개월), 살룸(1개월), 므나헴(10년), 브가히야(2년), 베가(8년), 호세아(9년에 망함) 때까지 약 60년간 사역을 하다가 북왕국이 앗수르 국에 망하는 것을 보게된 것입니다.

4. 호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한 대상은 북왕국을 상대한 것입니다. 그 증거는 4절에서 “이스라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이라” 하신 말씀에서 예후가 북왕국의 10대 왕이고 “이스라엘 족속”이란 용어가 남방 유다에 대조되는 북왕국을 지칭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선민의 종교적 부패를 음녀에 비유하신 내용도 그 당시 북왕국이 예루살렘을 떠난 상태에서 변질적 종교로 유다보다 더 타락하였기 때문에 역시 북왕국을 상대하는 말씀이라 할 것입니다. 아합왕의 우상숭배가 심할 당시에 엘리야의 정화운동과(왕상 18:38-40) 예후의 혁명이(왕하 9:21-26)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정화되지 못한 만큼 하나님이 호세아를 통하여 죄를 지적하시고 경고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5. 2절에 보시면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아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1) 우선 이 말씀 중 “이 나라가 여호아를 떠나 크게 행음한다” 하심은 북왕국 백성들의 우상숭배를 중심한 죄악상을 “크게 행음하는 음녀의 소행”으로 비유하신 것을 알 수 있으니 ‘음녀’란 본남편을 배반하고 다른 남자를 가까이 하면서 가증 되게 행동하는 여인을 뜻하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형식과 함께 우상을 숭배하는 죄악”을 비유적으로 설명하신 것이요,

2) 하나님이 호세아 선지자로 하여금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하셨으니

ⓛ 이 말씀이 실제적으로 명하신 것인가? 아니면 상징적으로 교훈 하신 것인가? 에 대하여 “만일 호세아가 선지자의 자격으로 음녀와 결혼을 하였다면 누가 그의 예언을 받겠느냐?” 하는 우려를 내세워 상징적 교훈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이내용을 하나님이 실제적으로 명하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이유는 선지자가 방탕하여 나간 자기의 아내를 용서하고 권면하여 다시 맞이하였다고 할 때, 백성들이 그의 아내에 대한 배려를 못마땅하게 여겨 배신할 까닭이 없으며, 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의 행동 계시를 명령하신 사례가 여러 번 있으니 예를 들면, 엘리사가 요아스왕에게 “창 밖으로 활을 쏘게 한 사실”(왕하 13:15-19)과 “예레미야에게 베 띠를 강물 가에 묻으라”는 말씀(렘 13:1-9), 또 아가보 선지가가 바울의 띠로 자기의 수족을 묶은 사실(행 21:10-11) 등입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음란한 아내”(호세아 선지자의 아내란 뜻)란 용어와 그의 이름이 “디볼라임의 딸 고멜”(3절)이란 사실로 그 신분이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부덕한 자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는 미덕도 있지만 성경은 부덕한자의 이름을 숨긴 사례가 없고(아간, 가룟 유다, 아나니아, 삽비라 등), 또 그 당시에 ‘고멜’의 신분과 불륜 사실이 세상에 알려져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이 사실을 실재적 행동 계시로 믿는 것입니다.

② “음란한 아내를 취하면” 그 음녀가 회개하지 않을 때 음란한 자식들(혈통의 불확실)을 낳을 수 있을 것입니다. 형통의 불확실성으로 볼 때 불행한 면이 있겠지만 선지자는 사명을 따라 생활하여야 하므로 그만한 애로를 사랑으로 극복하여야 할 것입니다.

6. 3-4절에서 “호세아가 명령대로 시행하여 아들을 낳은즉 그 이름을 ‘이스르엘’로 지어 주시고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이라” 하셨으니, 여기의 “이스르엘의 피”는 죄 값으로 받는 화를 뜻하고 “예후의 집”이란 이스라엘의 왕실을 뜻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가 폐함”은 19대 호세아왕 9년(B.C. 722)에 앗수르에 의하여 나라가 망할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아들의 이름을 ‘이스르엘’로 짓게 한 뜻이 무엇일까요? ‘이스르엘’은 살육과 패전이 있었던 전쟁터로써 ‘므깃도’ 또는 ‘아마겟돈’으로 일컫는 장소입니다(왕하 23:29, 계 19:19). 예후가 혁명을 일으켜 요람을 죽일 때(왕하 9:24-25), 또 이세벨을 죽이고(왕하 9:33) 아합의 70 아들을 죽일 때(왕하 10:7, 11) 이 장소에서 시행된 만큼 음녀의 자식으로 비유된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죽고 망할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5절에서 “그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신 것은, 호세아 9년에 이스라엘국이 앗수르 군대에 의하여 패하고 망할 때, 그 마지막 전쟁이 그곳에서 끝날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이스르엘’은 갈릴리 호수 서남방 40㎞ 지점이고 북왕국의 수도 ‘사마리아’와는 35㎞ 정도 북쪽에 위치한 곳이므로 그곳이 함락됨으로 북왕국이 망한 결정적 요인이 된 것입니다.

“범죄하고 회개하지 않는 백성은 망한다”는 교훈을 주신 말씀입니다.

 

제 2 과 징계와 구원 (호 1:6-11)목록으로


본문 중의 6절과 8-9절은 “징계에 관한 말씀”이고 7절과 10절, 11절은 구원에 관한 말씀이므로 제목을 “징계와 구원”으로 정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북왕국이 징계로 망하고(그러나 유다는 앗수르의 침략에서 구원하심, 7절) 장차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바를 따라 복음적 구원으로 선민의 남은 자들을 구원하실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1. 징계에 대한 말씀(6, 8-9)

1) “고멜이 또 잉태하여 딸을 낳으매… 그 이름을 호루하마라 하라”(6절) 하셨으니 호세아가 가정 생활을 통하여 자녀 생산을 계속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의 자녀의 이름을 계시 방편으로 쓰셨고 ‘호루하마’의 뜻은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로 하나님이 북왕국을 긍휼히 여기시지 않을 것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같은 6절에서 그 설명을 하셨습니다.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 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민을 긍휼히 여기셨고 여러 차례 죄를 용서하셨으나 결국은 징계로 망하게 하실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이는 선민의 범죄와 완악이 도를 넘었기 때문입니다.

2) “고멜이 호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8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9절) 하셨습니다. ‘로암미’의 뜻은 ‘내 백성이 아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이름을 주신 이유를 설명 하셨으니 곧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때부터 선민을 다스리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선민의 왕이 되셨고 선민을 자기의 백성으로 여겨 통치하신 것인데 때가 되면(호세아 9년에 앗수르에 망하는 때) 통치자와 백성과의 관계를 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선민적 통치는 선민의 나라가 없어질 때 끝난 것입니다, 북왕국은 호세아 9년에 없어졌고 남왕국은 시드기야 11년(바벨론에 멸망)에 끝났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란 의미에 현재 남아있는 뜻은 ‘하나님과 개인적 선민의 뜻’으로만 정용되는 것입니다.

2. 구원에 대한 말씀(7, 10-11)

1) 하나님께서는 북왕국이 망할 것을 예언하실 때, 남왕국이 같은 시기에 망하지 않을 것을 이해시키시기 위하여, 7절에서 “남방 유다국을 긍휼히 여겨 보존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앗수르가 북방 이스라엘국을 먼저 치고 이어서 남방 유다도 함락하려고 하였습니다(사 36:-38:). 그러나 남방 유다는 “긍휼히 여겨 구원하신다” 하셨으니 이는 종교와 도덕의 부패가 북왕국이 더 심하였고 남왕국도 부패 정도가 많았지만 하나님의 긍휼과 메시야 계열의 구원사역을 인하여 상당기간 더 보존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남방 유다는 북왕국보다 136년을 더 지속하였습니다(기독교 신앙백과 275P에 수록된 왕계표 참조).

2) 7절에서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남방 유다)을 긍휼히 여겨 저희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 말씀의 ‘구원하신다’는 뜻은 영적 구원의 의미가 아닌 “앗수르의 침략에서 이적으로 보호해주시겠다는 뜻”입니다. 히스기야왕 때에 남방 유다국이 앗수르의 침략으로 큰 수난을 당하였지만 하나님이 전쟁으로 적을 물리치게 하시지 않고 자연 재해를 통하여 하룻밤 사이에 적군 185,000명을 죽이시므로 유다를 구원 하셨던 것입니다(사 37:7, 36, 왕하 19:35). 그러나 유다도 나중에는 바벨론 에게 망하게 됩니다(왕하 25장).

3) 10절에서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같이 되어 측량할 수도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 하셨으니

① 우선 이 말씀의 의미는 “장차 선민의 남은 백성들을 구원 하신다”는 뜻이며,

②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창 15:5, 22:17, 26:4) 메시야적 구원을 재 언약하신 말씀으로 선민적 구원사역이 후시대에 확장될 것을 예언하신 것이고,

③ 또 “너희는 사신(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라” 하신 것은 선민 통치를 단절하셨던 상태에서 다시 성도 개인과의 관계와 교회와의 관계를 친자관계로 회복시켜 주실 것을 예언하신 것이며,

④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은 하나님이 선민에게 주셨던 지역(팔레스틴)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곳에서 하나님의 통치사역의 모범이 있었고, 멸망의 역사와 구원의 사역이 역시 그 지역에서 나타날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⑤ “전에 저희에게… 그곳에서 저희에게” 하셨는데 전자의 ‘저희’는 징계를 받은 상태이고, 후자의 ‘저희’는 구원받을 대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출현한 성도의 수가 과연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 같지 않습니까?

4) 11절에서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두령을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라”고 하셨습니다.

①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임”은 국가적 분열상태에서 믿음으로 하나되고 유대인이란 선민과 이방인과의 차별이 없어지며, 전체적 범주에서 선민을 구원하실 것을 뜻합니다(이 사실이 사도행전 2:5-13에서 성취됨).

② “한 두령을 세움”은 메시야 그리스도를 중심 한다는 뜻이고,

③ “그 땅에서부터 올라옴”은 구원사역의 발생지가 팔레스틴 땅이란 뜻이요,

④ “이스르엘의 날이 크다”는 뜻은 이스르엘에게 있었던 일과 같은 사망의 역사가 생명과 승리와 부활과 구원의 역사로 변하여 크게 나타날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현실적으로 망하게 하신 후, 영적으로 소망 있게 하실 것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제 3 과 죄와 징벌 (호 2:1-13)목록으로


본문 말씀은 4 대지로 나누어 살필 수 있습니다. 1절 말씀은 “신약시대의 구원 언약(1:10-11)을 재확인하신 말씀”이고, 2절은 “회개를 촉구하신 말씀”이며, 5, 8절은 “북왕국 백성들의 죄악상”이요, 3-4절과 6-7절과 9-13절은 “징벌하시겠다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총 제목을 “죄와 징벌”로 정하였습니다.

1. 신약시대의 구원 언약을 재확인하심(1절)

이 말씀은 앞장 끝에 연결되었으면 좋을 뻔하였습니다. 1:10-11에서 하나님이 선민의 남은 자들에게 메시야의 복음으로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셨지요. 그 약속의 실천은 하나님이 선민과의 관계(하나님의 백성 됨)를 회복해 주시는 것이고, 긍휼의 은총에 해당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내 백성이라는 뜻)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긍휼히 여김을 받은 자)로 이름을 짓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너희 형제 자매”는 누구를 뜻할까요? 첫째는 호세아가 계속 자녀를 생산하였을 경우를 생각할 수 있고, 다음에는 신약적 구원의 대상이 먼 훗날에 나타날 택한 백성들이므로 그들을 지칭한 상태에서 그 언약을 계몽하는 뜻으로 북왕국 백성들(너희 형제)을 대표하여 그렇게 지어 부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의미 있는 이름은 부를 때마다 그 의미를 생각하게 하므로 효력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계시의 내용을 구호 삼아 나타내라”는 뜻입니다.

2. 회개를 촉구하신 말씀입니다(2절).

1)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하셨으니 “너희 어미”는 타락한 백성들을 생산한 조상이나 타락한 종교를 의미하고, ‘너희’는 그 당시의 타락한 백성들이며, ‘쟁론하라’는 뜻은 “범죄의 당사자들과 그 조상들과 통치자들이 다 모여 회개할 것을 거론하라”는 것입니다. 단체적 회개를 위하여 궐기한 사실이 성경에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삼상 6:3-6, 욘 3:5-9, 욜 2:15-17).

2)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 하심은 하나님과 북방 이스라엘국과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처럼 유지하셨으나 때가 되면 그것을 파기하시겠다는 뜻이요,

3) “저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하심은 선민의 우상 숭배하는 죄의 성격을 음녀의 신체노출과 음탕한 행동으로 비유하셨으므로 그런 행위를 모양이라도 나타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음녀가 얼굴의 표정과 가슴을 노출하는 태도로 유혹의 방법을 삼는다면 우상숭배자들은 어떤 형상이나 잡신들에게 숭배의 마음을 주는 것으로 범죄의 발단을 삼을 것입니다. 여하튼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하는 만큼”(살전 5:22) 모든 유혹의 방편과 죄악에서 돌이키므로 회개할 것을 촉구하신 말씀입니다.

3. 북왕국 백성들의 죄악상을 말씀하셨습니다(5, 8절).

1) 5절에서 국가적 우상숭배의 죄악을 지적하셨으니 곧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는 북왕국이 남왕국에서 분리될 때 하나님이 계시로 주신 예루살렘 성전과 성전을 중심한 종교제도를 박차고 자율종교를 세운 일로부터(왕상 12:25-33) 신앙적 음행을 국가가 자행하였고, 따라서 백성들로 하여금 산당 제사는 물론 이질적 종교에 빠져들게 하였으니(유다도 그러하였음, 왕하 16:10-16) 아합왕의 왕비 이세벨이 바알신을 도입한 사실이 그 대표적 소행이라 할 것입니다(왕상 16:30-34).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음”은 국가의 시책에 따라 그 백성들도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져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2) “대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를 따른다” 함은 북왕국의 선민들이 우상숭배와 잡신들을 좋아하여 따르고 숭배한다는 뜻이요, “저희가(이방신들과 우상)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므로 만유의 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망각하고 그것들을 우상이나 잡신들이 주는 줄로 믿고 따르는 타락상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선민들의 죄악은 숭배의 대상과 은혜의 출처를 바꾼 배은망덕죄를 범한 것입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8절에서 설명하셨으니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하나님) 저희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하나님이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잘못 아는 것도 큰 죄악이 되는 것입니다(눅 23:34).

4. 징벌하시겠다는 내용(3-4, 6-7, 9-13절)

선민이 하나님을 떠나고 다른 신이나 우상을 섬기는 것은 가장 큰 죄에 해당하므로 어떤 징벌을 받는다하여도 억울하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징벌은 “회개하지 않을 때 내리신다” 하셨으니 곧 “그렇지 아니하면”(3절)이란 말씀이 그 뜻입니다.

2) “내가 저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저로 광야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 것이며(3절)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4절)”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첩 하갈과 그 소생 이스마엘이 쫓겨난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창 21:9-1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생각하여 그들을 권고해 주셨지만(창 21:17-21) 권고하시지 않을 때는 죽게 것입니다. “그 나던 날과 같게 한다” 하심은 선민의 출현시기, 즉 출애굽(광야) 시절과 방불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떡과 물과 옷감과 기름과 술”을 우상이 준다고 믿은 자들인 만큼 하나님이 그것들을 제하신다면 결국 물과 양식과 의복이 없는 광야에 버려진 것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전쟁에 패하고 쫓겨나면 바로 그런 형편이 될 것이고 “그 자녀들도 긍휼을 받지 못한다” 하셨으니 요즈음 팔레스틴 거민들이 그 후손에 해당한다는 생각을 해보게도 되는 것입니다. “음란의 자식들”이란 북왕국의 백성들이요, 믿음 생활을 음란하듯 자행하는 자들입니다.

3) “하나님이 생존 조건을 없애시므로 그 조건이 우상에게서 오지 않음을 알게 하시고 또 과거에 하나님 안에서 살던 생활이 더 나았음을 알게 하실 것이라” 하셨으니 곧 6-7절의 말씀입니다. 6절에 “하나님이 그 길을 막아…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심”은 생활필수품 등의 생산이나 공급이 안되도록 모든 여건을 막으신다는 뜻이요, “저가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만나지 못할 것”은 타락한 자들이 어려움이 있을 때 자기들의 방법대로 우상주의를 강행하며 거기에 의존하여도 아무런 소득이 없게 하여 결국은 과거의 생활(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할 때의 생활)이 더 나았음을 깨닫게 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7절의 “본 남편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씀이 바로 그 뜻입니다. 모든 성도들도 하나님의 품안에서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은혜로 생활하는 것을 믿고 크게 감사, 만족하며 다른 것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도록 노력하셔야 할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를 생각하십시오(눅 15:17-19).

4) 9절에서는 같은 뜻으로 “생활필수품을 제하신다” 하셨고 “그 시절”, “그 시기”라 하셨으니 이때는 추수 때이기도 하지만 흉년이나 전쟁으로 모든 소산물을 뺏기고 그 후손들이 계속 어렵게 사는 시기를 의미할 것입니다. 또 “이제 내가 그 수치를 그 연애하는 자의 눈앞에 드러내리니 저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10절) 하시므로 타락한 선민들이 섬기는 우상신들 앞에서도 자책을 느낄만하도록 자신들의 초라함을 드러내게 할 것인즉, 하나님 외에는 선민의 흥망을 막을 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5) 11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종교적 제도를 폐하신다” 고 하셨습니다. 곧 “그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모든 희락”은 기쁨 그 자체요, 절기는 유월절이나 맥추절, 수장절 등이며(출 23:14-16), 월삭은 매월 1일에 드리는 의식이고(민 10:10), 안식일은 4계명을 지키는 것이며, 명절은 대속죄일이나 초막절 같은 것입니다(레 25:9, 23:34). 하나님이 이것들을 폐하시려는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이 명하신 법을 즐거움과 믿음으로 시행하지 않은즉 필요하지 않으므로 진노 상 폐하시는 의미도 있고, 또 복음으로 율법의 예언적 의미를 성취하셨을 때 폐지하시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십자가 이후의 성도들은 의문에 속한 계명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요 13:34, 갈 5:1, 골 2:14-16, 히 10:5-9, 요일 2:7-8).

6) 12절에서는 하나님이 그 백성들에게 주셨던 산업(포도와 무화과나무)을 거칠게(황폐하게) 하여 쓸모 없도록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타락한 백성들이 사모하고 연애하는 우상신들(바알신 같은 것)이 주는 것인 줄로 잘못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배신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거나 감사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것을 없애신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7) 13절에서는 “우상숭배자들의 사치성을 지적하시고 바알을 섬긴 시일을 따라 벌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치품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출 33:4). 그러나 우상숭배자들은 그의 신들이 사치품을 좋아하는 줄 알고 저고리와 패물로 장식한 후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바알신(가나안 땅의 토착 종교, 소유, 풍요의 신을 뜻함)에게 향을 사르며 섬겼는데 하나님은 그 시일(범죄 기간과 분량을 의미)을 따라 벌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회개는 속히 할수록 유익하고 완고한 것이나 회개하지 않는 완악은 계속될수록 불행하다는 사실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감찰하심과 징계는 공평하고도 확실한 것임을 믿으셔야 할 것입니다.

 

제 4 과 회개와 구원의 약속 (호 2:14-23) 목록으로


본문 14-17절은 “하나님이 회개의 은총을 주실 것을 약속하신 말씀”이고, 18-23절은 “구원의 은혜를 베푸실 것을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따라서 “회개와 구원의 약속”으로 제목을 정하였습니다. 문제는 어느 때, 누구에게, 어떻게 주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1. “회개의 은총을 주신다”는 말씀(14-17절)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들을 징계하실 때가 있는가 하면 또 권고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권고의 은혜는 그 시대의 타락한 백성들에게 즉시 주신다는 뜻이 아니고(물론 개인적으로 주시는 경우도 있을 것임) 기독교가 개혁의 종교로 변화되는 신약시대에 모든 택한 백성들에게 주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1) 14절 말씀 중 “그러므로”란 접속사가 어떤 말씀과 연결되는 것일까요? 이는 11절의 “하나님이 모든 절기와 명절을 폐하신다”는 말씀과 연결시킬 수 있으니, 곧 종교적 의식이 계시의 목적을 다하므로 폐지하실 것을 약속하셨으므로 그 약속이 실현되는 시기(신약시대)에 믿음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회개시키신다는 뜻이고,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을 바알신으로 바꾸어 이해하는 잘못된 지식(12절) 때문에, 그것을 깨우치실 목적으로 회개의 은사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2) 타락한 선민(선택자)을 회개시키는 방법으로 “내가 저를 개유(깨닫도록 타이름)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한다”(14절) 하셨으니 이 말씀의 “거친 들로 데리고 가심”은 고난과 함께 연단을 주시면서 깨닫게 하신다는 뜻입니다(시 119:71). 또 “말로 위로한다” 하심은 징계하실 때처럼 엄하게 하시지 않고 순하게 교육으로 깨우치신다는 뜻으로 요즈음 불신자들이 완고하고 성도가 범죄 하였을지라도 좋은 설교로 깨닫게 하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3) 징계하실 때는 모든 소산물 공급을 중단하셨지만 회개의 은총을 주실 때는 그렇지 않다고 하셨으니 곧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생필품을 주신다는 뜻)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주신다” 하시므로 아골 골짜기처럼 죽음이 있던 곳(즉, 벌받은 곳)을 구원의 장소로 삼아 희망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또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15절) 하셨으니 역시 하나님이 회개할 자에게 고난과 연단(거기서, 광야)을 주시면서 어린아이를 살펴주시듯(어렸을 때) 하시고, 또 선민을 애굽에서 나오도록 인도하시던 때처럼 필요에 따라 은혜를 주신다(응대)는 뜻입니다. 출애굽 당시에 하나님의 응대는 특별하였습니다(출 13:21, 16:13-36, 신 29:5-6).

4) “회개하는 백성들과 연합의 관계를 이루어 부부처럼 되어 주시겠다” 하셨으니 곧 16-17절에서 “그날에 네가 나를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며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저의 입에서 제하여 다시는 그 이름을 기억하여 일컬음이 없게 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신약성경에는 예수님과 성도들 또는 예수님과 교회를 부부로 비유하신 말씀이 많습니다(마 9:15, 25:1-3, 엡 5:22-33, 계 19:6-9). 하나님께서 범죄자를 징계하시거나 노여움을 발하실 때는 불화 하는 부부처럼 하실지라도 권고하실 때는 다정한 부부처럼 대하시고, 진리로 깨닫게 하셔서 우상이나 잡신들의 이름까지 기억하거나 입에 올리지 않을 만큼 멀리하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절간 근방에도 가지 않는 분이 있다고 합니다. 우상을 멀리하는 뜻이겠지요.

하나님이 섭리적으로 회개할 기회를 주실 때 완악한 자가 쉽게 돌이킬 수 있을 것입니다(겔 36:24-31).

2. 구원의 은혜를 베푸실 것을 약속하신 말씀(18-23절)

1) 하나님께서는 회개의 은혜를 주신 다음에 구원의 은혜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앞서 “평안의 은혜를 주신다” 하셨으니(18절) 곧 짐승의 위협과 전쟁의 위험을 없애어 평안히 눕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들짐승과… 땅의 곤충과 언약을 세우심”은 은혜를 받아야 할 백성들이 다른 동물들로부터 피해를 받지 않도록 섭리하시고 통제하신다는 것이요, “활과 칼을 꺾으심”은 전쟁을 당하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삼상 17:47). 오늘날의 전쟁과 평화와 승패도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2) “연합의 관계와 의와 공변됨과 긍휼을 베푸신다”고 하셨습니다(19-20절). 16절에서 “회개한 자에게 남편처럼 되어주신다”하신 말씀처럼 본 절에서도 “진실함으로 영원히 장가든다”는 말씀으로 확고한 연합을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성도의 신랑이 되시고, 성도가 예수님의 사랑 받는 아내처럼 된 것은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의(죄사함의 복)와 공변됨(공의로운 통치)과 긍휼히 여겨주시는 은총으로 성도에게 임하실 것을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이 시간에도 성도는 하나님과 그런 관계에서 살아가셔야 할 것입니다.

3) “응답의 은혜, 곧 상통하는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21-22절). 20절의 “응한다”는 말씀은 “기도를 들으시고 형통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나는 하늘에 응하고 하늘은 땅에 응한다” 하셨으니 이는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자연계로서 선민들에게 복 되도록 통치하신다는 뜻이요, “땅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함”도 역시 소산에 복을 주심이며, “이스르엘에 응함”은 살육의 장소가 희망의 처소로 변하게 하시겠다는, 다시 말하면 모든 화를 복으로 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신 11:26-28).

4) 구원의 은총을 크게 확대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23절). “내가 나를 위하여”란 구원 사역이 죄인에 대한 긍휼보다도 하나님 자신의 영광에 있음을 나타내신 뜻이고, “저를 이 땅에 심음”은 징계 받은 선민을 현실적으로 형통케 해주시는 뜻이며(정치적 회복, 풍요 등으로), “긍휼히 여김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내 백성 아닌 자들을 내 백성이라” 하심은 선민 또는 이방인 중에서 믿게 된 성도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본래의 선민과 같은 사랑으로 특별 통치 해주시므로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고 말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성도가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모셔야 할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큰 구원의 은총은 신약시대에 이르러 계속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써 본문 23절 말씀을 바울 사도가 롬 9:24-26에서 인용하신 것입니다.

 

제 5 과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호 3:1-5) 목록으로


본문을 살피면 전체적 내용이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 주신 말씀입니다. 1절은 “사랑의 선포”요, 2-3절은 “사랑에 대한 상징적 실천”이고, 4절은 “무종교시대를 거침”이며, 5절은 “복음적 구원”으로 사랑 실천의 결론을 맺으신 내용입니다.

1. 선민에 대한 사랑의 선포로써(1절 상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떡을 먹을지라도 여호와가 저를 사랑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다른 신을 섬김”은 바알신 같은 우상을 섬긴다는 뜻이요, “건포도떡을 즐김”은 그 떡을 우상에게 드리면서 즐거워 한 태도를 의미합니다. 타락한 백성들은 모든 생필품을 우상이 주는 줄로 믿었습니다(2:5). 그런데도 “하나님이 저를 사랑한다” 하신 것은, 죄를 사랑하신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적 사랑(눅 15:10)에 근거하여 죄인을 권고하신다는 뜻입니다.

2. 사랑에 대한 상징적 실천을 명하심(1절 하반-3절)

하나님께서는 선민들의 범죄 성격과 권고하시는 은혜를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선지자로 하여금 음녀를 거두어 줄 것을 명하셨습니다. 1장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음녀’는 타락한 백성들의 상징입니다. 또 실제로 그 같은 타락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중에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또 이르시기를 “연애를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하셔서 은 15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자신을 위하여 그 여인을 사서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행음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좇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나도 네게 그리한다”는 뜻은 호세아도 행음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셔야 할까요? 1:2의 말씀처럼 실제적 명령일까요? 필자는 역시 역사적 사실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의 선행(고멜을 용납한 것과 본문의 사실)으로 선민 죄인들에 대한 사랑의 뜻을 계몽(계시)하시려고 하셨고 호세아가 1차로 고멜을 용납한 것은 호의요 불륜이 아니었으며, 본문의 “음부를 물질로 사서 해방시키고 자기를 위하여 있게 한 것”도 불륜이 아닌, 속박된 창녀를 해방시켜서 그의 범죄를 막아주고 그의 남편이 되어 도덕적 사랑을 베푼 일로 이해함이 좋을 것입니다. 많은 창녀들이 부채로 인하여 포주의 노예가 되어 있다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창녀 같은 타락한 백성들을 따뜻한 은총으로 권고하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호세아가 음녀를 해방시킨 것은 선민을 악의 세계에서 해방시켜 주신 속죄와 구원의 은총을 실질적 모범으로 교훈하신 것입니다.

3. 무종교 시대를 거칠 것을 예언하심(4절)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주도 없고(하나님을 모르는 뜻) 군도 없고(통치자 없음) 제사도 없고(종교의식 없음) 주상도 없고(우상숭배 신앙도 없음) 에봇도 없고(제사의 복이 없음) 드라빔도 없이(서물 숭배도 없음) 지내다가” 하신 것은 상당시간 무종교, 무정부 시대를 거칠 것을 예언하심인즉, 이는 말라기 선지자 이후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약 400년 동안 무종교, 무정부 상태(선민국가에 없는 상태)에서 선민들이 유리할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4. 복음적 구원을 예언하심(5절)

“그 후에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하고 말일에는 경외하므로 여호와께로 와서 그 은총으로 나가리라” 하셨으니, “그 후에 저희가 돌아옴”은 신약시대에 선민의 남은 자들이 하나님을 믿게 될 것을 뜻하고,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함”은 다윗 같은 임금, 즉 메시야를 바라는 뜻이며, “말일에는 경외하므로… 그 은총으로 나감”은 말일, 즉 복음 시대에 출현하신 예수님을 경외하여 구원받은 자들이 있을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그 시대에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제 6 과 죄와 벌 (호 4:1-10) 목록으로


본문을 살피면 이스라엘 자손들(선민)의 “죄와 벌”을 교대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제목을 그렇게 정하였습니다. 1절 말씀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셨는데 여기의 ‘들으라’는 원문 ‘샤마’의 뜻이 엄중한 경고를 뜻한다고 합니다. 마치 대법원의 판결을 들을 때 엄중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요, 또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그 시대의 백성 또는 모든 선민)과 쟁변하신다” 하셨는데 이 쟁변의 뜻은 강하게 추궁하시는 뜻으로 이해하심이 좋을 것입니다. 죄와 벌에 대한 말씀이 혼합되어 있기 때문에 먼저 죄를 살피고 다음에 벌을 살피겠습니다.

1. 죄에 대한 말씀

1) 1절에서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으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 하셨으니 진실 없는 거짓, 인애 없는 냉정함, 하나님과 성경을 모르는 무지가 다 큰 죄에 해당하며,

2) 2절에서는 저주(이기주의만 있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 없음)와 사위(속이는 것)와 살인과 투절(절도)과 간음 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인다”(피 흘리는 폭력이 계속 난무하는 뜻) 하셨고,

3) 6절에서는 “지식 없는 죄”를 지적하셨으니 이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의미합니다(호 6:3).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선지자의 교훈과 율법과 생활을 통하여 성실하게 사모함으로 터득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4) 7절에서 “번성할수록 범죄한다” 하셨음은 범죄가 인구증가에 비례함을 뜻하고,

5) 8절에서는 제사장들의 부패상을 지적하셨습니다. “저희가 내 백성의 속죄 제물을 먹고 그 마음을 저희의 죄악에 둔다” 하셨으니, 이 말씀은 제사장들이 백성들이 가져온 속죄 제물로 양식을 삼고(레 6:24-30) 그 힘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마음을 죄악에 둔다”는 뜻은 마음으로 잘못 생각하는 범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6) 9절에서는 백성들이 하나님이 세우신 성직자(제사장 또는 선지자)을 멸시하는 죄를 지적하셨습니다. “장차는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일반이라” 하셨는데 이 말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그 소행대로 벌하신다”는 말씀에 관련할 때 백성들이 성직자를 멸시한 죄를 지적하신 것이고(4절), 또 한 가지는 예언적 의미로 신약시대에 예수님이 제사장직(중보자)을 수행하시므로 인간 제사장 제도가 폐한즉, 성도 자신들이 다 왕 같은 제사장이 될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벧전 2:9).

7) 또 10절 끝에서는 “하나님 좇기를 그쳤다” 하셨으니 이는 믿음을 저버린 죄를 뜻하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진실, 인애, 하나님 아는 지식이 없는 죄, 저주, 살인, 투절, 간음, 강포가 만행하는 죄, 또 번성할수록 범죄하고, 하나님이 세운 사역자를 멸시하며, 성직자도 부패하고 믿음 떠난 죄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2. 벌에 대한 말씀

1) 3절에서 “자연적 재난을 주셔서 생존조건을 어렵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땅이 슬퍼함”은 가뭄을 뜻하고, 그 가뭄으로 인하여 그 땅에 서식하는 들짐승들과 새들이 쇠잔(줄어 듦)해지고 바다의 고기도 없어진다고 하셨습니다. 바다의 고기는 하나님이 번성을 막으셔서 그렇게 될 것입니다. 4절에서 “아무 사람이든지 다투고 책망하지 말라” 하심은 삶의 어려운 형편이 어느 개인 또는 몇 사람의 잘못 때문에 당하는 것이 아니요, 전체적인 백성들의 죄 값인즉 누구를 지명하여 탓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또 “네 백성들이 제사장들과 다투는 자 되었다” 하심은 백성들이 어려운 환경에 대한 책임을 제사장들에게 돌리고 그들을 원망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즉 전체적으로 회개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2) 5절에서 “백성들과 선지자와 나라까지 망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너는 낮에 거침”이란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밝은 낮에 망하는 일(거침)이 생기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타락한 백성들과 야합 동조하는 선지자들이며, “그들이 밤에 거침”은 연속적인 멸망을 뜻합니다. 또 “네 어미를 멸함”은 범죄하는 백성들을 생산하는 나라를 망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나라가 망하게 되는 근본적 원인은 백성들 거의가 하나님 아는 지식을 버린 점이었습니다(6절). 6절에서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한다“ 하심은 제사장직을 할 수 없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없으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는 지식을 버린 죄로 하나님의 버림을 받고, 하나님의 율법을 잊은 죄로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백성 또는 후손들)을 잊으실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도는 항상 경성하는 생활과 함께 하나님의 기억하신 바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7절에서는 “저희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신다” 하시므로 모든 복을 화로 바꾸시겠다 하셨고,

4) 9절에서는 “소행대로 벌하며 그 소위대로 갚으신다” 하시므로 범죄의 성격과 시일과 분량에 걸 맞는 벌을 내리심이요,

5) 10절에서는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행음하여도 수효가 더하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노력하는 생산의 수단이 다 열매 맺지 못하므로 복이 되지 않을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저희들은 백성들의 범죄 성격과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섭리를 충분히 이해하셔야 할 것입니다.

 

제 7 과 범죄의 특징과 대응책 (호 4:11-19) 목록으로


본문 말씀을 살피면 “북방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의 특징”을 말씀하셨고, 거기에 따른 하나님의 대응책을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제목을 “범죄의 특징과 대응책”으로 정하였습니다.

1. 우선 범죄의 특징을 말씀드리면

1) 행음성이 있는 것입니다. 음행에는 단순한 도덕적 음행이 있고, 우상주의 종교제도와 관련한 음행이 있으며(민 25:1-3), 또 하나님을 떠난 상태를 비유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타락한 선민들에게 이 세 가지 의미가 다 관련 있는 것입니다. 11절에서 “음행이… 마음을 뺏는다” 하셨고, 12절에서는 “저희가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마 5:28) 그 하나님의 수하를 음란하듯 떠났다” 하셨으니 마치 음부가 자기 남편을 피하여 정부와 만나는 것처럼, 마음으로 유혹 받고 음란과 함께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을 떠난 상태를 말씀하셨습니다. 또 13절 하반의 말씀을 보시면 “이러므로(우상숭배와 관련하여) 너희 딸들이 행음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을 행한다” 하셨으니 이는 음녀만 벌하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남자들도 창기와 함께 나가며 음부와 함께 희생을 드리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음행은 여인에게만 해당하는 죄가 아님을 말씀하셨으니 남녀 다 징벌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15절에서도 “북방 이스라엘의 행음”을 지적하셨고, 18절에서도 “저희가 마시기를 다하고는 행음하기를 마지않는다” 하시므로 술과 함께 우상의 제물을 먹고, 이어서 행음하는 죄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오늘날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2) 술 취하는 죄와 방탕하는 죄입니다. 11절에서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마음을 뺏는다” 하셨고, 18절에서는 “그 백성들이 수치를 기뻐한다” 하셨으니, 이 말씀들이 전부 술과 관련된 방탕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술 취하면 수치를 모릅니다.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는 애주가들에 의하여 평가받을 수 있는 포도주의 특징을 구별하여 나타낸 것입니다. 묵은 포도주가 좋다 하지만 새 포도주도 좋은 면이 있을 것입니다.

3) 우상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우상 제단은 산꼭대기에 시설합니다. 그 이유는 그곳에 나무 그늘로 시원함이 있고 경치가 좋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진리 중심이 아닌 자연중심, 물질중심입니다. 13절에 보시면 “저희가 산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분향하되 참나무, 버드나무, 상수리나무 아래서 하니 이는 그 나무 그늘이 아름다움이라” 하시므로 우상종교의 특징이 자연경치중심임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17절의 ‘에브라임’은 북왕국을 뜻합니다(왕상 12:25).

4) 나무에게 묻고 막대기로 점치는 죄입니다. 하나님은 들으시지만 우상은 듣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자들은 우상 앞에 묻거나 부탁하고 점치는 수단으로 지시를 받으니 허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12절에서 “내 백성이 나무를 향하여 묻고 그 막대기는 저희에게 고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막대기가 고함”은 우상 제단 앞에서 막대기를 던져 그 방향에 따라 행동을 정하는 미신적 술수를 의미합니다. 역사의 지배자이신 하나님을 멀리 따돌린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5) 깨닫지 못하는 죄악입니다. 무지 그 자체가 죄악입니다(눅 23:24). 하나님을 우상보다 못한 줄 알고 우상이 복을 주며 자기의 길을 인도하는 줄로 아는 지식은 참으로 큰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한다”(14절)고 하셨습니다.

6) 완강한 죄입니다. 16절에서 “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다”고 하셨습니다. 이 완강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고집이요, 회개하지 않는 완강입니다. 암소의 완강함이 특별한 모양입니다.

2. 하나님의 대응책을 살피면

1) 하나님의 특별 간섭을 푸신다고 하셨습니다. 16절에서 “이제 여호와께서 어린 양을 넓은 들에서 먹이심 같이 저희를 먹이시겠느냐?” 그렇지 않다는 뜻입니다. 성도를 어린 양으로 취급하여 넓은 들에서 먹이시는 것처럼 하지 않으심은 시 23:1-4 말씀처럼 하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17절의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 두라” 하신 말씀도 역시 특별간섭을 안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그 어린 양(북왕국)은 이리(앗수르)의 밥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2) 아주 망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19절에서 “바람이 그 날개로 저를 쌌다” 하심은 전쟁으로 쓸어버리신다는 뜻입니다. 요즈음 미국에는 이변적 기상 현상으로 토네이도(큰 회오리바람)가 40여 곳에나 나타나서 그 지역의 모든 시설들을 없앴다고 합니다. “저희가 그 제물을 인하여 수치를 당함”은 우상숭배가 망하는 큰 원인이 된 것을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3) 그러나 남방 유다는 상당기간(약 120년) 더 권고하신다고 하셨습니다. 15절을 보시면 “이스라엘아 너(북왕국)는 행음하여도 유다(남방 유다국)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 하셨으니 이는 유다를 권고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길갈(북왕국의 우상숭배 장소, 호 9:15, 12:11, 암 4:4, 5:5))로 가지 말며 벧아웬(룻스, 창 28:19 또는 벧엘임, 수 7:2, 북왕국이 자율 제단을 세운 곳, 왕하 12:29)으로 올라가지 말며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라” 하셨으니, 이 말씀은 하나님이 남방 유다를 권고하시는 말씀으로 북왕국 백성들처럼 우상숭배나 헛맹세하는 죄(마 5:33)를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란 뜻이고, ‘벧아웬’은 ‘사악한 집’이란 뜻입니다. 그 장소에서 하나님을 경외하였을 때는 ‘벧엘’이라 함이 합당하나 우상숭배를 할 때는 반어적 명칭으로 ‘벧아웬’이라 함이 좋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유다를 권고하시므로 남방국은 120년을 더 지속하였지만, 북왕국은 하나님의 보호가 떠나므로 호세아왕 9년(주전 675년)에 망하였습니다.

 

제 8 과 경고하시는 하나님 (호 5:1-7) 목록으로


본문을 살핀 결과 “경고하시는 하나님”이란 제목을 정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느꼈습니다. 그 이유는 1절에서 “듣고 깨달을 것”과 “심판이 있을 것임”을 경고하셨고, 또 “백성들의 죄상과 징책 내용”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1. “듣고 깨달으라” 하심(1절)

“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이라” 하시므로 제사장들과 백성들(이스라엘 족속)과 왕족들이 다 듣고 깨달아야 할 것을 조화롭게 표현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사장들이나 왕족들이나 일반 백성들이 다 듣고 깨달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성도는 반드시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셔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듣고 깨달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마 15:10).

2. “너희에게 심판이 있다”(1절 하반)고 하셨습니다.

1) 이 심판의 대상은 북왕국과 남왕국 모두라고 하셨습니다. 5절을 보시면 “그 죄악을 인하여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저희와 한가지로 넘어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북왕국이고, ‘에브라임’은 북왕국의 왕족들이며, ‘유다’는 남방 유다국 전부를 뜻합니다. “야곱의 후손들의 나라가 다 망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2) “심판이 있다”는 말씀은 1절과 2절(내가 저희를 다 징책하노라)과, 6절과 7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① 6절의 “너희가 양떼와 소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저희에게서 떠나셨음이라” 하시므로 범죄한 선민들이 회개할 기회를 놓쳐서 하나님의 권고가 떠났을 때는 양떼와 소떼를 끌고 제단에 나갈지라도 소용이 없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회개도 기회가 있고 하나님도 참으시는 한계가 있습니다.

② 7절 말씀의 “그러므로 새 달이 저희와 그 기업을 함께 삼킨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라가 완전히 망한다는 뜻인데 ‘새 달’이 어떻게 삼키는 것인가가 연구의 과제입니다. ‘새 달’의 원문은 ‘코데쉬’인데 칼빈의 해석에 의하면 ‘짧은 기간’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그러므로) 짧은 기간 내에 적군들에게 망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영문성경과 공동번역에서는 이 ‘코데쉬’에 대한 의미를 나타내지 않았고, 신학자 󰡔델리취󰡕는 이 ‘코데쉬’가 ‘제연의 때’(삼상 20:6, 29, 사 1:13, 14, 매년제, 월삭, 정한 절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우상주의자들이 제사 드리고 즐기는 것이 그들과 그들의 기업을 망하게 한 것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필자는 어떤 해석도 판단 할 수 없습니다.

3) 그 망하는 방법은(북왕국에 대하여) “미스바에서 올무가 되며 다볼에서 크게 패배할 것을 사냥꾼에게 잡히는 짐승으로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3. 백성들의 죄상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선민들의 죄상을 상세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1) 2절 말씀에서 “패역자가 살육죄(폭력과 살인)에 깊이 빠졌다” 하셨고,

2) 3절에서는 “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한다” 하시고 “이스라엘은 이미 더러워졌다” 하셨으며,

3) 4절에서는 “저희의 행위가 저희를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한다” 하시므로 범죄의 정도가 심한 것과 중독성에 이른 것까지 아셨으며

4) 또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하셨으니 “음란한 마음이 있는 것”과 “선민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상태”가 죄와 심판을 가져온 원인인 것까지 말씀하신 분입니다.

5) 5절에서는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증거가 된다” 하시므로 교만한 자들의 인상표현까지 점검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 주셨고,

6) 7절에서는 “저희가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않고 사생자를 낳았다” 하셨으니 “정조를 지키지 않음”은 신앙과 도덕이 빗나간 것이고, “사생자를 낳았음”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사생자는 빗나간 죄의 열매인즉 그 죄 값을 받게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의 성도들에게도 같은 말씀을 주신 줄 압니다. 따라서 이 경고를 받는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숨기려 하지 마시고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자신을 살펴 회개하는 일을 힘쓰셔야 할 것입니다.

 

제 9 과 죄와 징계와 회개 (호 5:8-15) 목록으로


본문 말씀은 “하나님이 호세아를 통하여 남왕국 북왕국 모두에게 죄와 징계를 말씀하신 후 징계 받은 백성들이 회개할 때를 기다린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제목을 “죄와 징계와 회개”로 정하였습니다.

1. 먼저 유다의 죄와 징계에 대한 말씀을 살피면(8, 10절)

1) 10절에서 “유다의 방백들은 지계표를 옮기는 자 같다” 하셨으니 이 뜻은 원칙(하나님의 법도)을 조금씩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표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다 죄입니다. 지계표는 한꺼번에 많이 변하지는 못합니다. 세월을 두고 조금씩, 조금씩 큰 표시 없이 옮기는 것처럼 그렇게 부패하여 가니 결국 징계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2) 유다에 대한 징벌은 같은 10절에서 “내가 나의 진노를 저희에게 물같이 부으리라” 하셨으니 이는 노아 때의 홍수를 연상케 하는 말씀이며 결국 “쓸어버리신다”는 뜻입니다. 그 쓸어버리는 방법에 대하여는 8절에서 미리 말씀하셨는데, 곧 “전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8절 말씀이 남방 유다에게 경고하시는 말씀인 이유는 “베냐민아 네 뒤를 쫓는다” 하신 말씀과 ‘기브아’, ‘라마’, ‘벧아웬’이란 지명이 증명하는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유다 지파와 함께 남방 유다국의 백성이며(왕상 11:13, 32, 12:22-24), ‘기브아’, ‘라마’, ‘벧아웬’은 예루살렘 서북쪽에 근접한 남방 유다 영토지역입니다. 따라서 그곳에서 “나팔과 호각을 불고 깨우쳐 소리침”은 앗수르가 북왕국을 망하게 한 다음 남방으로 밀려올 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남방 유다가 앗수르의 침략을 받았다가 구원받은 때는(사 36:-38:) 히스기야왕 14년으로 주전 729년이고, 북왕국이 앗수르에 아주 망한 때는 호세아 9년인 주전 722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유다가 수난을 겪은 지 7년 후에 북왕국이 아주 망한 것입니다.

3) 12절에서 하나님이 유다에 대하여 벌하시는 내용으로 “유다 족속에게는 썩이는 것” 같고, 또 “젊은 사자 같다”(14절) 하셨으니, 이 말씀은 유다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망할 때 속히 망한다는 뜻이고, 여기의 대조적인 표현으로 북왕국에 대하여는 “좀 같고 사자 같다”(12, 14절) 하셨으니, 이 말씀은 천천히 또 조금씩 먹으므로 시일을 두고 망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사자 같다’는 뜻은 젊은 사자에 비교되는 말씀으로 늙은 사자가 먹이를 천천히 먹는 것을 연상한 것입니다. 북왕국이 남왕국의 수난보다 7년 후에 망할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신 뜻도 있습니다.

2. 북이스라엘의 죄와 징계에 대하여(9, 11-14절)

1) 11절에서 “에브라임은 사람의(잔글씨는 원문에 없는 것으로 이해를 돕기 위하여 보충한 것) 명령 좇기를 좋아한다” 하시므로 신본주의나 계시중심을 떠나 인본주의로 나가는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전통, 또는 정치적, 사회적 수단으로 시행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 북왕국의 사람중심 행위는 자율 제단이나 우상주의에서 충분히 증명됩니다(왕상 12:25-33, 왕하 17:7-12). 오늘의 성도들도 전통에 끌리기 쉬운 점을 경계하시고 오직 성경중심에 서서 자유롭게 생활하기를 힘쓰셔야 할 것입니다.

2) 죄의 상처를 깨달았을 때 “잘못 처방하는 죄”를 지적하셨으니 13절의 “에브라임(북왕국을 일컫는 말씀)이 자기의 병을 깨달으려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으나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왕’에게 사람을 보냈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자기의 병’과 ‘자기의 상처’는 북왕국, 남왕국의 위기를 뜻합니다. 잘못된 죄의 성질을 깨달았다면 마땅히 회개하여야 하겠지만, 회개하지 않고 위기를 해결할 방도로 강적인 앗수르 왕 야렙(북왕국으로부터 조공을 받던 왕으로 티글랏 빌레셋 3세라 함)을 찾아가서 협상을 제의하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13절 하반에서 “저가 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그런 방도로 징계를 피하지 못하도록 섭리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둔한 백성들이 위기의 원인(죄)을 모르고 처방을 잘못하는 죄를 범한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말씀이 9절, 11절, 14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9절에서는 “견책하는 날에 에브라임이 황무할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지파 중에 필연 있을 일을 보였노라” 하셨고, 11절에서는 “학대를 받고 재판의 압제를 당할 것이라”(패전한 백성들이 당하는 수모) 하셨으며, 14절에서는 “나 곧 내가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을 것이라” 하시므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징계를 사람의 힘으로 모면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3. 회개할 때를 기다리심에 대하여(15절)

15절에서 “내가 내 곳(하나님의 하늘 보좌)으로 돌아가서 저희가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기다리실 것이라 저희가 고난을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때를 정하시고 징계하시는 분입니다. 또 징계하시기 전에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리고 고난은 회개와 깨달음을 줍니다(시 119:71, 전 3:1). 이것은 마치 탕자가 고난을 받을 때에 회개한 것과 같고, 탕자의 아버지는 그 아들이 돌아오기를 항상 기다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눅 15:17-24). 이 예언은 개인적 회개로 또는 선민적 일시 회복으로, 더 나가서는 신약시대의 영적 축복으로 성취되어진 일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뜻은 하나님과 화해된 상태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사모하는 성도의 생활을 의미합니다. 그런 생활이 성취된 시기는 성령님의 역사가 나타난 신약시대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제 10 과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 6:1-11) 목록으로


본문 말씀을 살피면 ① “회개와 치료에 대한 말씀”(1-2절), ② “여호와를 힘써 알자”는 말씀(3, 6절), ③ “죄를 감찰하시는 하나님”(4, 7-10절), ④ “징벌하시는 하나님”(5, 11절)에 대한 말씀들이 있습니다. 이 말씀들이 다 중요하지만 하나님을 힘써 아는 성도님 되실 것을 강조하여, 본문 3절에 나타난 말씀대로 “힘써 여호와를 알자”는 제목을 정하였습니다.

호 4:6에서도 “내 백성이 지식(그 지식 : 하나님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는 지식, 진리 아는 지식, 예수님을 잘 알고 예수님 뜻대로 행하며 예수님과 사귀는 친교가 중요함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1. 회개와 치료에 대한 말씀(1-2절)

1) 본문 1-2절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을 예고하신 말씀이고(호 5:15) 또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들이 회개할 때 용서와 생명의 은혜를 주실 것을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한 것은 앞 절 말씀(호 5:15)과 연결된 내용으로,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실 때에 하나님을 멀리하였던 자들이 불신앙과 우상주의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경외할 것을 예고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성취는 후시대에 개인 또는 단체와 민족에게 여러 모양으로 응한 말씀이고 또 응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2) 하나님은 회개할 능력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을 주시지 않으면 인간의 완악으로는 회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겔 36:26-27, 롬 2:4, 딤후 2:25을 참고하십시오. 회개는 하나님을 멀리 하던 상태에서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가는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멀리함은 부모와의 관계 또는 부부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단체 또는 제도상의 신앙생활에서 하나님과의 개인적 영적 관계의 신앙생활을 중요히 여기셔야 하고, 또 그런 상태에 있는지를 점검하셔야 할 것입니다(눅 15:11-24). 2절 하반에서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하신 것은 한 마디로 표현할 때 하나님과의 동행(창 5:24, 6:9)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찢기도 하시고 도로 낫게도 하시며 치기도 하시고 싸매어 주기도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완악한 백성을 징계하시고, 또 회개하였을 때에 회복시켜 주신다는 뜻을, 육체의 상처와 치료로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자신이 완악한 상태에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매를 맞는 중에 있는지, 또는 회개한 후에 치료를 받고 있는 것인지를 민감하게 살펴야 할 것입니다.

4)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선민)를 살리시며 제3일에 우리를 일으키심”은 징계를 받는 성도가 회개하였을 때 하나님이 징계를 거두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과정이 빠를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징계로 “찢으신 것”(1절)은 선민국가의 분열을 뜻할 수 있고 “싸매어 주심”은 신약시대에 교회가 하나됨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틀 후, 3일 후”는 생명의 역사(구원 운동)가 속히 이루어질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세월은 지루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시간 개념은 빠르기만 한 것입니다(시 90:4, 9, 벧후 3:8, 계 1:1).

2. “여호와를 힘써 알자”(3, 6절)

1) 본문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하여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희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반드시 하나님의 모습과 신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징계하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1, 11절), “빠른 시일 내에 살리고 일으키시는 하나님”(2절), “성도가 하나님 알기를 원하시는 하나님”(3, 6절), “새벽 빛 같고 또 이른 비, 늦은 비 같은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3절), “인격적으로 고민하시는 하나님”(4절), “성도의 선행을 감찰하시는 하나님”(4절), “선지자의 증언으로 치시는 하나님”(5절), “의식적 제사보다 인애와 하나님 아는 것을 더 원하시는 하나님”(6절), “죄를 면밀히 감찰하시는 하나님”(7-10절) 등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따라서 성도님들은 성경을 읽으시면서 하나님을 깨닫는 방법을 잘 숙달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되 성경 지식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요 5:39) 믿음과(요 6:69) 친교적 경험으로도 아셔야 합니다(요 1:39). 친교적 경험, 즉 믿음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요 17:3, 마 7:21-23).

3) 하나님을 알되 힘써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사모하고 살피며 배우고 연구하셔야 합니다(시 107:9, 마 7:7, 딤후 3;14, 행 17;11, 벧전 1:10). 마치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간 것처럼(눅 19:4) 마음과 생활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고 전심을 기울이는 열심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새벽빛같이 일정하심”은 진실의 변함이 없으심(딤후 2;13, 일향 미쁘심)이고 “비(겨울비를 뜻함) 또는 늦은 비(봄비, 결실기에 내린다 함)”는 때를 따라 적당하게 주시는 은혜를 의미합니다(히 4:16). 또 6절에서 하나님은 “믿음 없는 의식적인 제사를 원하시지 않고 사랑을 베푸는 인애와 하나님을 가까이 따르고 친교하는 것(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성도는 반드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실행하셔야 합니다.

3. 죄를 감찰하심에 대하여(4, 7-10절)

1) 4절의 “에브라임아…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하신 것은 하나님이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의 범죄에 대하여 어떻게 징책하실 것인가를 반문하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표현을 하신 것은 공의로운 방도를 모르시거나 징책의 방법을 백성들에게 의존하시는 뜻이 아니고 사랑하는 백성들을 징책하심에 있어서 그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시므로(애 3:33) 사랑의 갈등을 느끼시는 표현입니다.

2) 선민의 죄는 “지구성(연속)이 없는 순간적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 같고 쉬 없어지는 이슬 같다”(4절)는 뜻이 바로 반짝하는 순간적 사랑만 할뿐이란 것입니다. 오래가지 못하는 순간적 인애가 칭찬 받지 못하는 이유는 이기주의적 또는 타산적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희생적 사랑은 오래 갈 수 있지만 이기주의적 사랑은 타산에 의존하기 때문에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으면 중단하므로 외식적 사랑의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7절에서 “저희는 아담처럼 약속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다” 하셨으니 이는 선민으로서 하나님께 대한 언약을 어긴 것이고, 그 어긴 태도가 곧 패역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불순종은 곧 패역입니다. 그리고 “아담처럼 약속을 어긴 것”은 아담이 행위계약을 어긴 것인바, 이는 하나님이 선민들과 율법으로 약속하신 것을 선민들이 거역하므로 약속을 위반한 것입니다. 율법에는 축복과 저주가 명시되어 있습니다(출 20:5-6, 신 28:1-68, 30:1-20, 수 1:16-18).

4) 8-9절에서는 ‘길르앗’ 거민들의 사악한 죄를 지적하셨습니다. ‘길르앗’은 요단강 동편 땅으로 갓 지파를 위한 도피성이 있는 곳인데(신 4:43, 수 20:8, 21:38) “그 곳이 행악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취가 편만하다” 하셨으니 이 말씀은 도피성을 시설한 목적(실수로 살인한 자가 억울하게 죽지 않고 공정한 재판을 받게 하는 목적)에 응하지 않고, 고의적 살인자들이 중벌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할 만큼 살인이 만행됨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살인죄는 도피성을 관리하는 제사장들이 더 심하게 범한다는 것입니다(9절).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길(세겜에도 도피성이 있음, 수 20:7)에서 살인하니 저희가 사악을 행하였다”고 하셨습니다. 도피성을 관리하는 제사장들이 청부살인을 감행하고 도피성을 이용하여 피신책을 썼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도 감찰하시고 “사악을 행한다”고 하셨습니다.

5) 10절에서 우상숭배의 죄악을 감찰하시고 지적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이란 곧 행음으로 비유된 우상숭배입니다. “에브라임이 행음한 것”은 왕실의 범죄(왕상 16:30-33)를 뜻하고 “이스라엘이 더럽혀 짐”은 백성들까지 우상주의로 타락한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왕상 18:18-19). 과학이 극도로 발달한 정보화 시대인 지금도 우상주의, 미신주의가 얼마나 많이 팽배되어 있습니까?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편이나 오늘날 우리 민족의 형편도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4. 징벌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5, 11절)

1) 5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저희를 치고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으니 내 심판은 발하는 빛 같다”고 하셨습니다. “선지자들로 저희를 침”은 엘리야가 바알 제사장들을 죽인 사례로 이해할 수 있고(왕상 18:40),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임”은 하나님이 자기의 말씀으로 뜻을 내세워 심판하시는 뜻이며(창 1:3, 사 55:10-11, 왕상 17:1), “하나님의 심판이 발하는 빛 같다” 하심은 하나님이 공의롭고 신속하게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2) 마지막으로 11절에서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다” 하셨으니 이 말씀은 북방 이스라엘이 망하였을 때 남방 유다가 용납을 받고 존속을 한다 하여도 때가 되면 유다 나라도 망할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네게 추수할 일을 정하였다” 하심은 남방 유다에 대한 “심판 계획이 있으시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관한 것입니다. 이 뜻은 하나님의 백성 중 어떤 사람이 대적의 사로잡힘에서 놓여나는 일이 있을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일이 있을지라도 유다의 멸망은 작정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망할 때 특정인들이 대적으로부터 보호받는 경우를 예로 들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렐론에게 굴복하자고 하였을 때 유다의 정치가들은 예레미야를 국가반역자로 몰아 가두고 핍박하였으며, 바벨론 군사는 예레미야를 포로로 끌로 가다가 중도에서 놓아준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애 3:1-26, 렘 40:1-6, 왕하 25:22-30).

 

제 11 과 선민의 악과 심판 예고 (호 7:1-7) 목록으로


본문에는 전반적으로 북왕국의 죄악을 지적하신 말씀(1-3, 5-7절)과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신 말씀(4, 6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 4, 6절 중에 “달궈진 화덕”이란 말씀이 심판을 예고하신 부분이고, 그 이외의 말씀은 다 죄악을 지적하신 내용입니다.

1. 악을 지적하심에 대하여(1-3, 5-7절)

1) 1절에서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난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치료하신다”는 뜻은 하나님이 선민들에게 은혜를 베푸실 뜻을 가지신 것을 의미합니다. 사 1:6에서 백성들의 죄를 상처로 비유하신 말씀이 있고, 출 15:26에서 “치료하시는 하나님”이란 말씀이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의 “치료하시는 뜻”은 범죄한 백성들에 대한 처방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왕국 백성들의 죄를 진단하신즉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났다” 하셨으니 이것은 병(죄)의 증상이 심하다는 뜻인데, ‘에브라임’은 북왕국의 왕족을 뜻하고, ‘사마리아’는 북왕국의 수도로써 지도층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병을 진단한즉 가볍게 치료할 상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같은 1절에서 그들의 죄악은 궤사로 행하는 것(거짓을 일삼음)이고, “안으로 들어와 도적질하고 밖으로 떼지어 노략질한다” 하셨는데, 전자는 왕실과 지도층의 내부적 부패요, 후자는 백성들간에 만행되는 각종 죄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 2절에서 백성들의 죄악이 하나님의 목전에 있고 또 하나님이 심판 계획을 갖고 계시지만 그 백성들은 그것을 알지 못할 만큼 무지하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그 여러 악을 기억하였을 때 저희가 마음에 생각지 아니하거니와 이제 그 행위가 저희를 에워싸고 내 목전에 있다” 하셨으니 “행위가 저희를 에워쌈”은 많은 죄악이 포화상태가 되어가고 있음이요, 또 그 죄들이 “하나님의 목전에 있음”은 하나님이 그 죄를 심판의 근거로 쓰실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3) 3절에서는 왕과 백성들이 함께 부패하여 범죄를 일삼는 악행을 지적하셨으니 “저희가 악으로 그 왕을(즉 백성들이 악한 방법으로 왕을 죄 짓게 한다는 뜻) 그 거짓말로 백성을 기쁘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거짓말로 백성을 기쁘게 함”은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의 뜻을 가리우고, 거짓말로 백성들을 안심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고 백성들을 두렵게 하여 회개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죄와 심판의 뜻을 감추므로 안심시키고 기쁘게 하는 간신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3절의 “저희가 다 간음하는 자라”는 뜻은 왕과 백성들이 일체가 되어 하나님 신앙에서 우상숭배의 신앙으로 돌이킨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4) 5절에서는 왕과 백성들이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서 연락에 빠지는 죄를 지적하셨습니다. “왕의 날”이란 호세아가 이 예언을 할 당시에 왕의 생일이나 취임을 기념하는 날을 의미하고 “그 날에 백성들이 술의 뜨거움을 인하여 병이 남”은 과음 또는 지나친 연락으로 병이 날만큼 방종하는 태도요, “왕이 오만한 자들로 더불어 악수함”은 왕과 백성들이 다 같이 양심의 눈을 감은 상태에서 친교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5) 7절에서는 백성들의 범죄 열성을 “뜨거운 화덕”으로 비유하셨고, 또 뜨거운 열성으로 왕을 죽이고 정변을 일삼는 잘못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달궈진 화덕은 그 뜨거움이 클 것입니다. “저희가 다 화덕 같이 뜨거워졌음”은 범죄의 열심을 뜻합니다. 그 열심으로 “재판장을 삼킨 것과 그 왕들을 다 엎드러지게 한 것”은 왕을 암살하고 왕권을 탈취한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정변 일으키는 죄를 지은 것입니다. 호세아가 이 예언을 하던 기간은 북왕국 13대 여러보암 2세 때(주전 793-753년)부터 북왕국이 망한 후까지였습니다(호 1:1). 여러보암 2세가 죽자 그 아들 스가랴가 왕이 되었지만 6개월만에 신하 ‘살룸’의 모반으로 죽었고(왕하 15:8-10), ‘살룸’은 1개월 왕 노릇하다가 ‘므나헴’에게 죽었으며(왕하 15:13-17), ‘므나헴’은 10년 왕 노릇한 후 아들 ‘브가히야’가 왕이 되었는데 그도 2년만에 ‘베가’에게 죽었고(왕하 15:23-25), ‘베가’는 8년만에 ‘호세아’에게 죽고(왕하 15:30), ‘호세아’는 9년만에 앗수르 왕 ‘살만에셀’에게 패하여 왕국을 끝냈으니(왕하 17:18), 이런 역사가 다 7절의 뜻을 설명하는 예라 할 것입니다. 그런 환난 중에서도 “그 백성들 중에는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7절 끝)고 하셨습니다.

2. 심판 예고에 대하여(4, 6절)

1) 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심판계획을 “달궈진 화덕”으로 비유, 설명하셨습니다.

① 달궈진 화덕은 빵을 굽는 가마인데 항상 달구지 않고 빵을 구울 때에만 달굽니다. 빵 만드는 자가 빵 재료를 반죽하고 발효시키는 동안은 달구지 않다가 준비가 끝나면 달구는데, 이 뜻은 선민의 죄가 심판에 이르도록 분량이 차기까지는 기다리지만 때가 되면 심판계획을 시행하신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범죄 분량과 관련하여 때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편안하다 하여 심판이 멀거나 없는 것은 아니란 것입니다.

② 달궈진 화덕은 고난을 뜻합니다. 빵을 불태워 없앨 수도 있는 고난입니다. 그러나 이 화덕을 유익하게 사용할 때에는 빵을 잘 굽게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징계를 연단과 회개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징계가 임시 괴롭지만 연단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을 누릴 수도 있다”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히 12:11).

2) 6절 말씀도 4절의 말씀을 재설하신 내용입니다. “저희가 엎드리어 기다린다”는 뜻은 백성들이 우상에게 절하면서 잘 되기를 기다린다는 뜻이고(4절 ; 저희는 다 간음하는 자라), “그 마음을 화덕같이 예비함”은 하나님이 백성들의 죄를 감찰하시면서 심판하실 것을 준비하신다는 뜻이요, “마치 빵 만드는 자가 밤새도록 잠”은 빵 재료의 발효 시까지 화덕을 쓰지 않는 기간이 있다는 뜻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맞추시기 위한 기다림인 것입니다. “아침에 피우는 불의 일어남”은 빵 재료가 준비됨에 따라 심판이 나타날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곧 호세아 9년(여러보암 2세 이후 약 30년 후)에 북왕국이 망할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제 12 과 죄의 성질과 징벌 (호 7:8-16) 목록으로


본문을 살피면 대부분의 말씀이 “에브라임의 죄의 성질”에 관한 것이고, 거기에 따른 하나님의 징계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를 말씀하셨습니다. ① 죄의 성질에 관한 말씀은 8-11절, 14-15절에 나타나 있고, ②징벌에 관한 말씀은 12-13절 말씀이며, 16절은 죄와 징계의 뜻을 다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총 제목을 “죄의 성질과 징벌”로 정하고 말씀을 살핍니다.

1. 에브라임의 죄의 성질(8-11, 14-16절)

1) 8절에서 “에브라임은 열방에 혼잡하여 뒤집지 않은 전병 같다”고 하셨습니다(에브라임은 북왕국의 왕실을 뜻하며, 북왕국을 대표하는 뜻임, 왕상 12:25)

① “열방에 혼잡됨”은 선민국 백성의 특성(거룩함)을 상실하므로 이방인인지 선민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신앙과 거룩의 특성을 잃고 이방인의 우상주의에 많이 동화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불신자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거룩을 강조하셨습니다(벧전 1:16).

② “저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라” 하셨으니 이 뜻은 양쪽이 다 온전치 않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전병을 뒤집지 않으면 한쪽은 설익고, 한쪽은 탑니다. 따라서 “성도의 자질도 상실하고 완전한 이방인도 아니란 뜻”이니 크게 타락한 것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2) 위험도 느끼지 못할 만큼 무지한 죄입니다(9, 11절). 무지도 죄인가? 하시겠지만 예수님께서 죄라고 하셨습니다(눅 23:34). 가르쳐도 듣지 않고 믿지 않으므로 무지한즉 당연한 것입니다. 무지한 죄는 여러 가지 이겠지만 9절과 11절에서 크게 두 가지를 지적하셨으니,

① “나라가 이방인에게 그 힘이 삼키운 것을 알지 못함이요”(앗수르의 침략과 간섭에 이끌림이 국권 상실인데도 그것의 애석함을 느끼지 않는 것),

② “백발이 얼룩할 지라도 깨닫지 못하는 것인데”(경험으로 알만한 나이 많은 백성들도 깨닫지 못함), 마치 “에브라임(왕족들)이 어리석은 비둘기처럼 지혜가 없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비둘기는 다른 새들에 비할 때 생명보호책이 약한 동물입니다.

3) 교만한 것입니다(10절). 교만은 하나님의 본질(마 11:29)과 뜻(미 6:8)에 위반되는 것입니다.

①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교만은 그 얼굴에 증거가 된다” 하셨으니 이는 목과 얼굴에 힘을 주고 자신을 과시하는 태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무슨 힘으로 교만을 드러냈을까요? 자신들의 죄는 깨닫지 못한 채 선민이란 특권의식 때문이었겠지요. 그 교만은 하나님의 진노를 야기할 뿐입니다.

② 교만의 또 한 가지 증거는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호세아는 6:1에서도 “여호와께로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10절에서 “저희가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하신 것은 “여러 가지 죄가 있고 또 앗수르로부터 침략과 괴로움을 당하여도”란 뜻입니다. 그쯤 되면 하나님께 회개하고 도움을 청하여야 하지만 교만한 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다”고 하셨고(10절), 16절에서도 “저희가 돌아오나(형식적으로 하나님을 찾는 뜻) 높으신 자(하나님)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니 속이는 활 같다(활이 적중하지 않을 때 목적대로 되지 않는 뜻)”고 하셨습니다. 연약한 성도는 고난이 있어도 기도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히려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고 앗수르로 간다”(11절) 하셨으니 “애굽으로 가는 것”은 앗수르를 물리치기 위한 지원을 청하기 위함이었고, “앗수르로 가는 것”은 침략자들과 협상하기 위함입니다. 끝내 인간적 방법만 시도하며 하나님을 찾지 않은 것입니다.

4)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거절하고 거짓을 말한 것”입니다. 13절을 보시면 “저희가 내게 범죄하였음이라 내가 저희를 구속하려 하나 저희가 나를 거스려 거짓을 말하였다” 하였으니 여기의 ‘구속’의 뜻은 대속에 근거한 용서입니다. 하나님이 대속물(중보자의 십자가)을 통하여 택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나를 거스려 거짓을 말함”은 완악한 자들이 하나님의 구속의 의도를 불신하고 그 뜻을 거짓으로 선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였다”는 말씀은 15절에도 있습니다. “내가 저희 팔을 연습시켜 강건케 하려 하였으나 저희는 내게 대하여 악을 꾀한다” 하셨으니 이 뜻은 범죄하는 선민을 하나님이 징계로 깨우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하여(여전히) 악을 꾀하였던 것”입니다(15절).

5) “외식과 연약의 죄”입니다(14절). “성심으로 하나님을 부르지 않음”은 외식이요, “오직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음”은 안일함과 소극적으로 하나님께 기대를 거는 태도요, “곡식과 새 포도주를 인하여 모임”은 먹는 맛, 또는 생활대책을 위하여 종교행위를 갖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떡 얻어먹는 맛에 따른 자들이 있었습니다(요 6:26). 하나님은 외식과 사명에 대한 소극적 태도도 측정하십니다(삿 5:16-17).

6) “그릇 가는 죄와 폭언”입니다. 16절 중에 “그 방백들은 그 혀의 거친 말로 인하여”란 말씀이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패괴한 자들은 말마다 욕설과 더러운 말을 합니다. 또 13절에서는 “저희가 나를 떠나 그릇 갔음이라” 하셨는데 이것은 정도에서 벗어난 행위를 뜻합니다.

이상으로 혼잡한 죄, 균형이 깨지고 앞뒤가 같지 않은 죄(뒤집지 않은 전병), 교만이 넘치는 죄, 무지하여 깨닫지 못하는 죄, 하나님을 떠나 인간적 방법만 취하는 죄, 그릇 가는 죄, 은혜를 저버리고 거짓말하는 죄, 성심이 없고 외식과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죄, 물욕 등 이기주의를 따르는 죄, 거역하고 악을 꾀하는 죄(14-15절), 폭언하는 죄를 지적하셨습니다.

2. 징벌에 대하여(12, 13, 16절)

13절에서는 “화 있을진져” 하셨고, 12절에서는 “저희가 갈 때에 내가 나의 그물을 그 위에 쳐서 공중의 새처럼 떨어뜨리고 전에 그 공회에 돌려준 대로(선지자가 대중 앞에서 애굽의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을 예고한 뜻, 사 3:1-3, 8:5-8, 36:9, 시 146:3-4) 저희를 징계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애굽으로 도움을 청하러 가는 인간의 방법에 대하여, 그물에 걸리는 새처럼 성사되지 못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애굽의 도움을 못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16절에서 “칼에 엎드러지리니 이것이 애굽 땅에서 조롱거리가 되리라” 하신 말씀의, “칼에 엎드러짐”은 앗수르에게 망하는 뜻이고, “애굽 땅에서 조롱거리가 됨”은 망한 나라의 백성들이 우방국이었던 애굽에서도 멸시 당하는 신세가 될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사 30:3, 5).

 

제 13 과 죄와 벌(1) (호 8:1-14) 목록으로


본문 말씀을 살핀 후 “죄와 벌”이란 제목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에서 북왕국의 죄만 말씀한 구절은 2, 7, 9, 11, 12절이고, 법만 말씀한 구절은 5, 8, 10절이며, 죄와 벌을 함께 말씀한 구절은 1, 3, 4, 6, 13, 14절입니다. 따라서 먼저 죄를 요약하여 살피고, 다음에 벌에 관한 것을 살피겠습니다.

1. 북왕국의 죄

1) 외식하는 죄입니다. 외식은 미움과 표현이 다른 것인데 특히 종교 행위에 진실이 없음을 지적하셨습니다. 2절에서 “저희가 장차 내게 부르짖기로 나의 하나님이여 우리 이스라엘이 주를 아나이다” 할 것이지만 “이미” 신을 싫어 버렸기 때문에(3절) 주를 안다는 부르짖음이 답답할 때 회개하는 마음 없이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찾는 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회개를 동반하지 않는 자의 종교 행위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행위를 13절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내게 드리는 제물로 말할지라도 저희가 고기로 제사를 드리고 먹거니와 여호와는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이제 저희의 죄악을 기억하여 그 죄를 벌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저희가 고기로 제사를 드리고 먹는다”는 것은 화목 제물에 한하여 남은 고기를 제사장들의 음식으로 삼는 것을 뜻하는데 (민 18:8, 11, 소제물도 그러함, 레 2:3, 10, 6:18), 죄를 회개하지 않는 상태에서 제사 의식만 차리므로 하나님이 그 죄를 기억하시고, 그들의 제사 행위를 외식으로 인정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도덕성이 결핍된 종교 의식은 형식에 불과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민의 나라에 왕을 세울 때 선지자를 통하여 세워주셨고 (삼상 15:1, 16:1, 13), 또 “왕권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다”고 하셨습니다(롬13:1). 그런데 북왕국의 선민들은 그 일을 자율적으로 시행하였습니다. 선지자의 지도나 하나님의 계시의 지도를 받지 않은 것입니다. 자율적으로 혁명을 일으켜서 왕을 바꾼 사실이 너무 많았습니다(7:7, 해석 참조). 그래서 4절에 보시면 “저희가 왕들과 방백들을 세웠으나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았은즉 하나님이 모르시는 바라”고 하신 것입니다. 자율 죄 중에 가장 큰 것은 가장 큰 일을 하는 왕을 임으로 바꾸는 일일 것입니다. 14절에도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은 자를 잊어 버렸다” 하시므로 하나님을 의식하거나 의지하지 않는 태도를 취한 것도 역시 뜻을 거역하는 자율 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3) 우상숭배의 죄를 짓는 것입니다. 4절 하반에서 “은금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다” 하셨고 11절에서는 “에브라임(북왕국을 대표함)이 죄를 위하여(속죄 받기 위함이란 뜻)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그 제단이 저로 범죄케 하는 것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북왕국의 여러보암왕은 임의로 제단을 설치하였고 제사 제도도 자기 좋은 대로 시행하였으니 큰 죄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왕상 12:25-33, 해당 성구를 꼭 찾아 확인하십시오). 6절에 보시면 “우상은 이스라엘에서 나고(재료가 생산됨) 공장(기술자)이 만들었은즉 참 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신으로 여겨 숭상하고 의지하였으니 그런 무지한 죄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4)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고 언약을 파하는 죄입니다. 12절에 보시면 “내가 저를 위하여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저희가 관계없는 것으로 여긴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1점이라도 땅에 떨어뜨리면 안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 무관심하거나 설교에 집중하지 않고 말씀 앞에 떨지 않는다면 그도 말씀을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1절을 보시면 “내 무리가 내 언약을 어기며 내 율법을 범함이라” 하셨는데 이 말씀의 언약이란 하나님과 아브라함과의 언약이요(창 15:18, 17:2) 아브라함과의 언약은 그 후손들과의 언약인 것입니다(출 24:3-8). 따라서 율법을 중심한 쌍방의 약속을 선민들이 아무 것도 아닌 듯이 어긴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어김에 따른 징벌이 있을 수밖에 없지요(신 28:1-68).

5) 하나님을 도외시하고 인간을 의지하는 죄입니다. 9절에 보시면 “저희가 홀로 처한 들나귀처럼 앗수르로 갔고 에브라임이 값 주고 연애하는 자들을 얻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선민을 위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앗수르 나라에 사정하여 대가를 주고 생명을 구걸하는 태도를 하나님이 언짢게 여기신 것입니다. 마치 자식이 부모를 거역하고 집을 나간 후에 어려움이 있어도 부모에게 돌아오지 않고 친구에게 사정하여 대가를 주고 겨우 도움을 받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홀로 처한 들나귀”란 통제하기 어려운 대상임을 뜻하고 “값 주고 연애하는 자들을 얻었다” 함은 애정에 의한 친교책이 아닌 돈에 이끌린 애인처럼 되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행복과 희망이 없음을 뜻합니다. 그런 일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함일진대 오히려 화를 자초함이 될 것입니다(10절).

2. 벌에 대한 말씀

이상의 죄들로 인하여 내리시는 벌의 결과는 앗수르에 의하여 나라가 망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 대한 말씀을 살피면,

1) 1절에서 “대적이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선민의 나라, 렘 12:7, 민 12:7)에 덮치는 것”이니 곧 앗수르의 침략을 뜻하고,

2) 3절에서 “대적이 저를 따를 것이며” 하신 것은 침략으로 인한 파멸을 이루게 됨이며(4절), 5절에서는 “사마리아의 우상 제단에서 드리는 송아지 제물이 버리움 같이 된다”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노하실 일로써 그 노가 무리를 향하여 타오르므로 속죄 받기 어렵게 되고(저희가 어느 때에야 능히 무죄하겠느냐) 사마리아의 송아지(우상)도 부숴뜨림 당하게 될 것이라(6절)고 하셨습니다.

3) 그들이 받을 심판이 “죄보다 더 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7절 상반). 하나님은 대부분 행한 대로 갚으시지만(호 4:9, 겔 9:10) 때로는 죄보다 벌을 약하게 하시기도 하고(시 103:10) 또 더 크게 갚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겔 25:17). 여기서는 더 크게 갚으실 것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둔다”는 말씀이 그 뜻입니다.

4) “양식의 복을 없애신다”고 하셨습니다(7절 하반). “심은 것이 줄기가 없으며 이삭이 열매를 맺히지 못할 것이요 설혹 맺힐지라도 이방 사람이 삼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농사가 안 되거나 뺏기는 경우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5) “우방의 기쁨이 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8절에서 “이스라엘은 이미 삼키웠은즉(앗수르에게 국권을 뺏기게 될 것) 이제 열국(앗수르와의 동맹국들) 가운데 있는 것이 기뻐하지 않는 그릇, 즉 버려도 아깝지 않은 그릇처럼 천히 여김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6) “조공을 바쳐 이방국의 도움을 받아도 오래 가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10절에서 “저희가 열방 사람들에게 값을 주었을지라도(앗수르의 요청에 따라 조공을 드림) 이제 내가 저희를 모으리니(하나님이 선민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앗수르 강국을 단합시키신다는 뜻) 저희(선민)가 모든 방백의 임금(앗수르 왕)의 지워준 짐(징용 또는 세금)을 인하여 쇠하게 될 것이라” 하셨고,

7) 따라서 “애굽으로 다시 간 결과”(노예 신세가 된다는 뜻)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13절).

8) 14절에서는 “그들(북왕국)이 (우상을 의지하기 위하여) 전각을 세웠고, 또 남방 유다 역시 인위적 방법으로 생존하기 위하여 견고한 성을 쌓을지라도 하나님이 그 고을들에 불을 보내어(큰 전쟁) 그 성들을 삼키게 하시므로 선민 전체의 나라를 다 망하게 하실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제 14 과 죄와 벌(2) (호 9:1-9) 목록으로


본문을 살피면 1절과 7-9절에서 죄(북왕국, 에브라임)를 말씀하셨고, 2-6절에서는 벌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1, 7, 9절은 징벌 예고의 말씀이 첨부되었습니다. 1절에 보시면 “이방 사람들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하셨고, 7절에서는 “형벌의 날이 이르렀고 보응의 날이 임한 것을 알라” 하셨으며, 9절에서는 “여호와께서 그 악을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실 것이라” 하시므로 죄를 지적하심과 동시에 징벌을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죄에 대한 말씀을 살핀 후 벌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살피기로 하겠습니다.

1. 죄에 대한 말씀(1, 7-9절)

1) 우상 숭배의 죄입니다(1절). “네가 행음하여 네 하나님을 떠난 것과 각 타작 마당에서 행음의 값을 좋아하였다”는 말씀이 곧 우상 숭배의 뜻입니다. 타락한 선민들이 겉으로는 종교 의식을 이행하면서 속으로는 우상을 기뻐하는 행위가 곧 영적 음행입니다. 이런 행위는 곧 하나님을 멀리 떠나는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삼상 16:7, 마 22:37). 또 “각 타작 마당에서 행음의 값을 좋아한 것”은 타작하는 수확을 우상 숭배(행음)의 값으로 믿고 우상신의 은혜로 안다는 뜻이니 하나님이 어찌 노하시지 않겠습니까?

2) 어리석고 미친 선지자의 죄입니다(7-8절). “선지자가 어리석고 신에 감동한 자가 미쳤다” 하셨으니 여기의 “신에 감동함”은 거짓 선지자 자신이 주장하는 것일 뿐, 하나님이 쓰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리석고 미친 자를 쓰시지 않습니다. 어리석고 미친 선지자는 “죄악이 많은 자요 하나님께 대한 원한도 크다”고 하셨습니다(7절). 8절에서도 “ 그 하나님의 전에서 원한을 품었다” 하셨으니 이는 옳지 못한 선지자가 자신들의 죄를 알지 못하고 완악한 마음을 품은 채 감사할 줄 모르며 하나님의 징계하시는 일을 원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에서 원한을 품었음”은 외식적인 제사를 드리면서 감사의 뜻이 없이 실족함과 불만과 원망하는 태도일 것입니다(사 40:37). 본래 하나님의 선지자는 하나님의 파수꾼의 사명을 가지고 진리를 잘 증언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의 심령을 소성시켜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하여 “새 잡은 자의 그물처럼… 성도를 사로잡히게 하고 그물에 덮어씌운 새처럼 잡혀 죽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발람처럼(벧후 2:15-16) 하나님의 뜻을 복종하여 살게 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우상을 섬기게 하므로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8절). 오늘날도 불법과 이기주의와 부도덕과 비진리 운동을 일삼는 사역자가 있다면 그도 미친 선지자의 대열에 있다 할 것입니다.

3) 심히 패괴한 죄라고 하셨습니다(9절). 기브아 시대의 사람들은 몹시 패괴하였습니다(삿 19장). 레위인 나그네의 처를 강간하여 죽게 할 정도였으니까요.

2. 벌에 대한 말씀(2-6절)

1) 1절의 “이방사람들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하심은 징벌의 예고와 함께 기쁨을 거두어 가신다는 뜻이고,

2) 2절에서 “타작마당과 술틀이 저희를 기르지 못하고 새 포도주도 떨어질 것이라” 하시므로 우상신이 준 줄로 아는 토지 수확물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시므로 대적이 들어와서 다 착취해 갈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3) “자기의 땅에 평안히 거할 수 없게 하신다”(3절)고 하셨습니다. 3절의 “여호와의 땅”은 하나님이 선민에게 주신 가나안 땅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지만 그 땅에 거하지 못하고 “에브라임이 애굽으로 다시 가고 앗수르에서 더러운 것을 먹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에브라임’은 북왕국을 일컫는 말씀이고(왕하 12:25) “애굽으로 다시 감”은 조상들이 애굽에서 400년 노예생활을 하였지만 또 피신 차 가게 된다는 말씀이며, “앗수르에서 더러운 것을 먹음”은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 포로 되어 간 자들이 그곳에서 율법이 금한 불결한 음식을 먹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레 11:1-22).

4) “하나님께 경건한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될 것이라”(4절)고 하셨습니다. 경건한 제사의 조건은 신앙, 제단, 제사장, 성결한 제물, 그리고 평화로운 세월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의 다섯 가지 요소가 하나도 구비되지 못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저희가 여호와께 전제를 드리지 못한다” 하심은 전제의 제물인 포도주가 없기 때문이요(2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도 되지 못한다” 하심은 제사의 불완전함과 신앙의 외식성 때문일 것이요, “저희의 제물이 거상(장례식 때 상제가 입는 옷)입은 자의 식물 같다” 하심은 시체 곁에서 먹는 음식이 꺼림칙하고 맛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제물의 준비과정에서 완전치 못함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무릇 그것을 먹는 자는 더러워진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상의 제물을 먹으므로 양심이 더러워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고전 8:7). “저희의 식물을 자기 먹기에만 소용될 뿐이라 여호와의 집에 드릴 것이 아님이라” 하심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정결한 제물을 구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 나라에 포로 되든지 자국에서 전쟁의 수난을 당한다면 합당한 제물 구하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제물의 조건은 첫 소산 또는 흠 없는 가축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대하 31:5, 출 12:5).

5) “명절일과 여호와의 절일(절기)을 지킬 수 없게 될 것이라”(5절) 하셨고

6) “멸망을 피할 수 없게 된다”고 하셨습니다(6절).

① 멸망을 피하는 자들이 앗수르 군사를 피하여 애굽에 갈지라도 “애굽은 저희를 모으고(피난 온 백성을 단속한다는 뜻) 놉(애굽의 수도, 멤피스라 함)은 저희를 장사(죽여 매장함)할 것이라” 하시므로 그 피난이 소용없이 되고, 오히려 죽는 장소가 된다는 뜻이며,

② “피난 갈 때 감추고 떠난 은 보물도 찾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은을 감추고 떠난 장소가 찔레와 가시덩굴로 덮여있기 때문에 혹 돌아온다 하여도 찾지 못할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앗수르의 침략으로 북왕국이 먼저 망할 때 이런 사실들이 다 성취된 것입니다.

 

제 15 과 죄의 결과 (호 9:10-17) 목록으로


본문 10절 말씀은 선민 조상들이 출애굽 당시에 범죄한 사실을 경계의 목적으로 말씀하셨고, 15절 중에서 “저희의 모든 악이 길갈에 있고… 그 행위가 악하며… 그 방백들이 패역하다” 하셨으며, 16절 중에는 “저희가 듣지 않는다” 하시므로 선민의 죄를 지적하신 말씀이 있고, 그 이외의 말씀은 전부 “죄의 결과”에 대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제목을 “죄의 결과”로 정하였습니다.

1. 하나님은 선민 조상들의 과거의 죄악을 경계의 목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10절).

1)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같이 하였으며(광야에서 포도를 만남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남처럼 반가운 일로 여기셨다는 뜻) 너희 열조(출애굽 당시의 선민들)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맺힌 첫 열매를 봄같이(반갑게 여기심)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성도가 하나님 앞에 무흠하게 행하면 하나님은 항상 반갑게 대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2) 그런데 그 백성들이 광야생활이 끝날 무렵에 “바알브올에게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의 사랑하는 우상같이 가증하여졌다”고 하셨습니다. 민 23-25장에서 그 역사적 사실을 말씀하셨지요. 우상은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십니다(겔 7:20). 따라서 “부끄러운(가증한) 우상에게 몸을 드리므로… 가증하여진 것”은 우상숭배에 현혹되어 넘어간 자들을 하나님이 우상처럼 가증히 여겨 벌하신다는 뜻입니다. 발람에게 현혹되어 가증한 일을 행하였을 때 염병으로 죽은 자가 24,000명이었음을 상기하여(민 25:9) 가증한 일을 엄히 경계하게 하신 것입니다(탐심은 우상 숭배임, 골 3:5).

2. 15절과 17절에서 몇 가지 죄악을 지적하셨으니, “모든 악이 길갈에 있다” 하셨고 “그 행위가 악하며… 그 방백들은 다 패역한 자라”(15절) “저희가 듣지 않는다”(17절)고 하셨습니다.

1) “모든 악이 길갈에 있음”은 선민들이 ‘길갈’에서 우상 숭배를 집중적으로 시행한 것입니다. 호 4:15, 17, 암 5:5에 보시면 “우상과 연합한 길갈로 가지 말라” 하셨고, 호 12:11에서는 “길갈에서 수송아지로 제사를 드리며 그 제단은 밭이랑에 쌓인 돌무더기 같다” 하시므로 우상을 섬긴 사실을 말씀하셨고, 암 4:4에서도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왕상 12:29)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길갈’은 여호수아 때에 기념돌을 세웠던 곳이 아니고(수 4:20) 벧엘 북쪽 11㎞ 지점에 있는 지역으로 엘리야와 엘리사가 사역한 곳입니다(왕하 2:1) 그 후에 그 지역은 단과 벧엘처럼 우상 숭배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왕상 12:28-33, 또 다른 ‘길갈’이 있음, 신 11:30).

2) “ 그 행위가 악하며… 그 방백들은 다 패역한 자니라” 하시므로 불순종하고 회개하지 않음을 지적하셨고(16절),

3) 17절에서는 “저희가 듣지 않는다” 하셨으니 “듣지 않는 것”은 듣고 불순종하는 것보다 더 악한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는 죄는 큰 것입니다(호 8:12, 사 28:9-11).

3. 죄의 결과에 대한 말씀입니다(11-17절).

1) 11절에서 “영광이 새같이 날아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영광이 떠나는 방법은 “자녀 생산이 없게된다”는 것입니다. “해산함이나 아이 뱀이나 잉태함이 없을 것이라” 하셨으니, “아이 뱀”이나 “잉태”는 같은 뜻이지만, 이 뜻은 인구가 줄어든 상태에서 상황을 살폈을 때, 해산하는 여인이나, 아이를 배고 있는 여인이나, 잉태할 수 있는 사람이 없게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전쟁으로 남자들이 없어지면 생산도 멈추어질 것입니다.

2) 12절에서 “혹 저희가 자식을 기를지라도 하나님이 그 자식을 없이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할 것이라” 하셨으니 이 말씀은 전쟁 등의 원인으로 큰 살육이 있을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3) 12절 하반에서 “내가 저희를 떠나는 때에는 저희에게 화가 미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사 41:40, 창 28:15, 마 28:20, 시 121:5-6)은 보호를 뜻합니다. 그러나 가증한 일을 행하는 자들에 대하여는 하나님이 외면하시고 떠나시면 하나님의 보호 간섭이 없으므로 마귀의 역사로 인한 모든 시험이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마 12:44-45).

4) 13절에서 “에브라임이 아름다운 곳에 심긴 두로와 같지만(두로는 지중해 변에 위치한 경치 좋고 살기 좋은 곳임) 그 자식들을 살인하는 자에게로 끌어내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선민의 살아있는 자녀들이 대적에게 끌려가 죽게될 것을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5) 14절에서 그때에 “자녀 없음이 덕으로 알고 자녀 생산이 없게 되기를 기도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 난리가 날 때에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라”(마 24:19, 눅 23:29) 하신 것처럼, 자식의 죽는 것을 안 보기 위하여 “청컨대 배지 못하는 태와 젖 없는 유방을 달라”는 넋두리 같은 소원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6) 15절에서 “하나님은 우상 숭배자를 미워하시고 하나님의 집(내 집; 선민 국가)에서 쫓아내시며 다시는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결과로 선민 국가는 아주 없어졌고 이방인이 구원의 수에 대체된 것입니다(롬 11:25).

7) 16-17절에서 “나라가 아주 망하고 없어질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에브라임이 침을 입고 그 뿌리가 말라 과실을 맺지 못함”은 선민 북왕국을 과실나무로 비유하여 그 나무가(앗수르의 침략을 받았을 때) 소생할 수 없을 만큼 타격을 받음으로(그 뿌리가 마름) 과실을 맺지 못할 것으로 설명하셨고, “비록 아이를 낳을지라도 내가 그 사랑하는 태의 열매를 죽임”은 12절의 뜻과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망하는 나라를 붙들지 못하게 될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17절에서는 “저희가 듣지 아니하므로 내 하나님이 저희를 버리시더니 저희가 열국 가운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선민들이 바벨론 포로 이후 세계에 흩어지게 된 것과 선민국이 아주 없어진 것, 그리고 팔레스틴 단체의 백성들이 지금도 나라와 영토가 없이 유리하는 상황을 연상할 때 하나님이 선포하신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 16 과 다섯 가지 죄와 벌 (호 10:1-8) 목록으로


본문을 살피면 1-4절에서 “네 가지 죄”를 지적하셨고, 5-8절에서는 “우상 숭배의 죄와 벌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따라서 제목을 “다섯 가지 죄와 벌”로 정하였습니다.

1. 다섯 가지 죄에 대하여(1-4, 5절)

1) 배은망덕의 죄입니다(1절). “이스라엘이 열매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풍족한 소출을 거두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우상의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아름다울수록 주상(기둥처럼 세운 신상)을 아름답게 한다” 하시므로 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받고 영광은 우상에게 돌리니 배은망덕의 죄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2) 두 마음을 품은 죄입니다(2절). “저희가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죄를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치시며 그 주상을 허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두 마음”은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것입니다. 우상을 하나님이라 하며 섬긴 일도 있었지요(출 32:4).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앙이 없으면 하나님과 잡신들과 우상을 다 섬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에 대하여 “죄를 받을 것이고 우상의 제단과 주상은 파괴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3) 하나님을 무시하는 죄입니다(3절). “저희가 이제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를 두려워 아니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을 무능한 신으로 여겨 무시한 것입니다. 또 “우리에게 왕이 없거니와(왕으로 모셨던 여호와 신을 버렸다는 뜻) 왕이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리요”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버리므로 하나님을 무시한 것입니다.

4) 거짓을 합리화하는 죄악입니다(4절). “저희가 헛된 말을 내며 거짓 맹세를 발하며 언약을 세운다” 하셨는데, 헛된 말과 거짓 맹세는 그 내용이 무엇이든 거짓된 것입니다. 따라서 “언약을 세우는 것”도 거짓 언약입니다. 사실이 아닌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들을 언약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여호와 신은 무능하고 바알신이 더 강하여 그가 은혜를 준다”고 헛된 말을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또 “그 재판”이란 우상 숭배의 헛된 일에 대하여 왕이나 방백들이 합당한 일로 여겨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죄와 불법이 뿌리를 줄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그 상태를 “밭이랑에 돋는 독한 인진(쑥의 일종) 같다”고 하신 것입니다. “밭이랑에 돋은 독한 인진”은 농작물에 큰 피해를 주는 잡초로써 선민을 벌받게 하는 장애요소가 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5) 우상 숭배의 죄입니다(5절). “사마리아(북왕국의 수도)의 거민이 벧아웬의 송아지를 인하여 두려워 할 것이라” 하셨으니 ‘벧아웬’은 벧엘과 인접한 지역(수 7;2)으로 벧엘에서 변화된 이름입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란 뜻이고 ‘벧아웬’은 ‘우상의 집’이란 뜻인즉 벧엘에 우상이 많으므로(호 4:15, 5:18, 10:5)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또 ‘벧아웬’을 ‘아웬’(8절)으로 줄여서 호칭하기도 하였고, 이런 이름의 지역이 다른 곳에 또 두 곳이 있습니다(겔 30:17, 암 1:5).

2. 벌에 관한 말씀입니다(5-8절).

1) 5절에서는 “사마리아 거민이 벧아웬의 송아지를 인하여 두려워 할 것이요 그 백성이 슬퍼하며 그것(우상)을 기뻐하던 제사장들도 슬퍼하리니 이는 그 영광이 떠나감이라” 하시므로 벧아웬에 세워진 송아지상에게 제사한 그들의 우상 숭배가 벌을 받게 하는 근거가 됨을 말씀하셨고,

2) 6절에서는 “그 송아지(벧아웬 등에 있는 금송아지 신상)는 앗수르로 옮겨다가 예물로 야렙왕(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셋 3세라 함)에게 드리게 될 것이라”, 따라서 “에브라임(북왕국의 왕실)은 수치를 받을 것이요, 이스라엘(백성들)은 자기들의 계의(계획과 의논)를 부끄러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3) 결국 멸망이 올 것을 예고하셨습니다(7-8절). “사마리아 왕이 물위의 거품처럼(힘없이) 멸망할 것이요(7절) 이스라엘의 죄 된 아웬(벧아웬)의 산당은 파괴되어 가시와 찔레가 그 단위에 날 것이니(황폐된다는 뜻) 그때에 저희가 산더러 우리를 가리우라 할 것이요 작은 산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고 말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뜻은 북왕국의 백성들이 앗수르 군사들로부터 큰 살육 당할 일을 두려워한 나머지 차라리 산이 무너져 일시에 매장되어 죽는 것을 바라게 될 것이란 뜻입니다.

 

제 17 과 선민의 죄와 징계 섭리 (호 10:9-15) 목록으로


본문을 전체적으로 살필 때 “선민의 죄”를 지적하신 말씀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섭리”가 기록되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선민의 죄와 징계 섭리”로 정하였습니다.

1. 죄를 지적하신 말씀은 9절과 13, 14절입니다.

1) 9절 초두에서 “이스라엘아 네가 기브아의 시대로부터 범죄하였다” 하셨으니 “기브아의 시대”는 호세아 선지자가 이 예언을 할 당시로부터 약 400년을 소급한 사사시대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선민이 범죄하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기억하시고 또 그 범죄에 대한 응징이 보류된 사실도 알고 계신 것입니다. 그 시대의 범죄는 포악과 겁탈과 살인 같은 것이었습니다. 삿 19-20장을 보시면 기브아에서 베냐민족이 레위인의 첩을 죽이므로 선민 총회에서 베냐민족을 크게 도륙한 사실이 있었는데, “무리가 기브아에서 흉악한 족속을 치는 전쟁을 거기서 면하였다”는 말씀은 그 당시의 포악이 베냐민족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베냐민 이외의 족속들이 같이 당했어야 할 동족간의 전쟁을 면하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 포악한 족속들이었으나 베냐민족만 전쟁을 당하고 다른 족속들은 간과되었다는 것입니다(9절). 여기에서 하나님의 징계 섭리가 얼마나 주밀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2) 13절에서는 “선민(너희)이 악을 밭 갈고 죄를 거두며 거짓 열매를 먹었으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하시므로 거짓을 일삼는 죄와 자율주의(네 길)와 자만의 죄(용사의 많음을 의뢰함)를 지적하셨습니다. “악을 밭 갈고 죄를 거두며 거짓 열매를 먹는다”는 뜻은 악과 죄와 거짓을 농사 짓듯이 합리화하며 자행하는 것이요, “네 길”은 하나님의 뜻에 얽매임 없이 자율주의(자기 좋은 대로)로 행동하는 것이며, 또 하나님의 뜻으로 임한 전쟁(삼상 17:47)에 대하여 하나님을 무시하고 회개하지 않으면서 용사(인간의 힘)를 의지하는 오만한 죄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3) 14절에서는 우상 숭배의 죄를 지적하셨으니 “너희의 큰 악을 인하여 벧엘이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하시므로 벧엘의 우상 숭배가 벌받을 원인이 됨을 말씀하셨습니다. ‘벧엘’은 북왕국의 자율종교적 제단이 있는 곳입니다(왕상 12:29-33).

2. 하나님의 징계 섭리에 대한 말씀(10-12, 14절)

1) 하나님은 때를 정하시고 죄의 분량이 충족되었을 때 적당한 방법으로 징계하십니다. 10절의 “내가 원하는 때”란 하나님이 정하신 때요, “저희의 두 가지 죄에 걸릴 때”란 죄의 분량의 한계를 의미하고, “두 가지 죄”란 강포와 변질(하나님을 떠나 우상주의로 간 것)이며, “만민이 모여 저희를 침”은 전쟁으로 치신다는 뜻으로, 곧 앗수르의 침략을 뜻합니다. 앗수르의 침략을 “만민이 모인 것”으로 표현하신 것은 앗수르가 다른 약소국가를 점령한 수 연합군을 모아 전쟁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징계하시기 전에, 즉 평화로울 때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11-12절). 11절의 “에브라임(북왕국의 왕실)은 마치 길들인 암소 같아서 곡식 밟기를 좋아한다” 하셨으니 이 말씀은 북왕국이 전쟁이 없는 시절에 평안한 것을 의미하나, 징계의 때가 이르면 그렇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폭풍 전 고요”란 말이 있듯이 조용한 것이 위기 직전일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아름다운(길들인 암소의) 목에 멍에를 메우고 그 위에 사람을 태우리니 유다가 밭을 갈고 야곱이 흙덩이를 깨뜨리리라” 하신 것은 북왕국이 화평한 시대에 힘들지 않게 살았으나(길들인 암소가 곡식을 밟아 타작하는 것은 힘들지 않음을 뜻함) 그 목에 멍에를 메우고 또 그 등에 사람이 타고 밭을 갈게 한다면 큰 고난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고난을 주실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유다가 밭을 갈고 야곱이 흙덩이를 깨뜨림”은 북왕국이 수난을 당함과 함께 남방 유다와 전체 선민도 강대국의 노예 신세가 될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왕하 17:19-20).

3) 하나님의 징계 섭리에는 반드시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회개할 것을 먼저 촉구하십니다. 12절에서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악을 심고 죄를 거두는 것”의 반대입니다. 의는 공의로운 생활이고, 긍휼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도가 의롭게 살기를 힘쓸 때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을 수 있습니다. “지금이 여호와를 찾을 때”란 징계 직전이므로 하나님이 매를 드시기 전에 “회개하라”는 뜻이요,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하심은 모든 죄악의 근본을 뒤엎어 뿌리까지 뽑아 죄 청산을 잘하라는 말씀입니다. 선민의 범죄 형태는 드문드문 성장하는 잡초를 뽑는 정도가 아니고 만신창이 된 육신처럼(사 1:6) 전체가 잡초로 덮인 광야 같으므로 묵은 땅을 기경하듯 근본적으로 처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의롭다 하시는 은혜)를 비처럼(풍족을 뜻함) 너희에게 내리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4) 하나님이 기다려주시는 때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벌을 내리십니다(14절). “그러므로 너희 백성 중에 요란함(왕을 죽이는 내란 같은 것)이 일어나며 (앗수르의 침략으로) 네 산성(도성을 보호하는 성벽)들이 다 훼파되되 살만(앗수르 왕, 살만에셀 5세, 산헤립 전왕, 주전 727-722년, 왕하 17:3-5, 18:9-13)이 전쟁의 날에 벧아벨(갈릴리 호수 동남방 30㎞ 지점의 도성)을 훼파한 것같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살만’이 벧아벨을 훼파한 기사는 성경에 기록된 것이 없으나 그때의 정황처럼 사마리아가 훼파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선민 백성들의 “어미와 자식이 함께 부서지게 되고… 이스라엘 왕(호세아)은 새벽에 멸절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예언은 주전 722년 호세아 9년에 성취되었습니다(왕하 17:1-6, 18:9-12).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제외됨이 없습니다(마 5:18, 사 55:11).

 

제 18 과 은혜, 배신, 징계, 긍휼 (호 11:1-12) 목록으로


본문에는 네 가지 제목으로 요약되는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요약된 제목은 “은혜, 배신, 징계, 긍휼”입니다. 1-4절에 은혜 주신 내용이 있고, 2, 5-7, 12절이 은혜 배신에 관한 내용이 있으며, 5-6절은 징계에 관한 내용이고, 8-11절은 긍휼에 대한 내용입니다.

1. 은혜 주신 내용에 대하여(1-4절)

1) 1절에서 하나님은 “애굽에 사는 선민들을 아들처럼 사랑하여 그들을 속박된 생활에서 불러내셨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선민이 애굽에 있을 당시)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하나님이 선민을 아들처럼 사랑하셨음)을 애굽에서 불러내셨다”고 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출애굽을 의미하며 또 출애굽 사건은 선민에 대한 최초(어린 시절)의 사랑이며 영적 선민에 대한 구원사역을 뜻하는 것입니다(고전 10:1-4).

2) 또 하나님께서는 “선민들을 어린아이처럼 다정하게 지도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잘못 가는 자들을 선지자들로 하여금 부르게(지도를 뜻함) 하셨고(2절 초), “어린아이를 양육하는 것처럼 걸음을 가르치셨으며(초보적 지도) 또 하나님의 팔로 안아주셨다”고 하셨습니다(3절 초). 하나님의 선민(또는 성도)에 대한 보호의 은총이 이처럼 각별한 것입니다(사 41:10).

3) 4절에서는 “인도자를 보내어 속박과 고난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양식도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다” 하셨으니 전자는 모세, 아론 같은 인간 지도자를 세워주셨음이요, 후자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인도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저희에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같이 되었다” 하심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로의 속박에서(또는 죄와 마귀의 속박에서) 해방되게 하심을 뜻하고, “저희 앞에 먹을 것을 두심”은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 등을 공급하신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체에게 양식을 주시는 분입니다(고후 9:10).

2. 배신에 관한 말씀(2, 5-7, 12절)

1) 하나님이 선민을 아들처럼 사랑하여 애굽에서 불러내시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2절에서 “저희가 점점 (하나님을) 멀리하고 바알(베니게와 가나안인들이 섬기는 태양신)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 절하는 자들이 되었다” 하셨으니 이것은 마음과 생활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므로 하나님이 가장 역겨워하시는 일을 감행한 것입니다.

2) 그들이 하나님을 배신한 이유는 5절 말씀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치료자(고치는 자)임”을 알지 못하였고(3절 하반, 출 15:26), 또 “저희가 애굽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도 모른 채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이 뜻은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시킨 분이 하나님이신데 광야생활이 일시 괴롭다 하여 애굽으로 다시 돌아갈 입장이 아니면 자기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꾸준히 의지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돌아오기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알지 못하는 것이 큰 잘못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3) 심지어는 “계책을 쓰고 결심하면서까지 하나님을 멀리하기 때문에 저희를 부르신 하나님에게로 돌아 오라 하여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6-7절). ‘계책’은 하나님을 떠난 상태에서 인간의 수단을 앞세우는 행위요, “결심하고… 물러감”은 하나님을 강하게 멀리 하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은 순진하고 겸손하게 은혜를 구할지언정 계책을 멀리하여야 합니다.

4) 그뿐 아니라 에브라임(북왕국)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자세까지 나타낸 것입니다. 12절에서 “에브라임은 거짓으로, 이스라엘 족속은 궤휼로 나를 에워쌌다” 하셨는데 여기의 “거짓과 궤휼로 하나님을 에워싼 행위”가 곧 하나님을 대항하는 자세인 것입니다. 렘 12:8-9에 보시면 “내 산업이 삼림 중에 사자같이 되었다” 하셨고 또 “무늬 있는 매가 아니냐”고 하셨지요. 이 말씀도 역시 선민이 하나님을 대항하는 자세인 것입니다. 덧붙여서 말씀하시기를 “유다(남방)도 신실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정함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정함이 없다”는 뜻은 신앙생활이 일정하지 않다는 뜻으로 진리의 노선에서 흔들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 징계에 대한 말씀(5-6절)

그래서 하나님은 “칼이 저희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성문)을 깨뜨려 없이 한 후(6절) 앗수르 사람이 그들의 임금이 되게 하신다(5절)”고 하셨습니다. 이 징계는 결과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4. 하나님의 긍휼에 대하여(8-11절)

하나님은 징계를 계획하시면서도 자기 백성에 대한 긍휼과 구원의 뜻을 여전히 나타내십니다. 이는 마치 철들지 못한 자식을 때리면서도 그의 장래가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심정과 같은 것입니다.

1) 8절에서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소돔성의 주변 도시로 소돔, 고모라 멸망 시 함께 망한 곳, 창 10:19, 신 29:23)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아드마와 인접한 지역으로 역시 함께 망한 곳, 창 14:8) 같이 두겠느냐” 하시므로 선민에 대한 사랑과 약속을 버리시지 않고 지키신다고 하셨습니다. ‘아드마’, ‘스보임’은 소돔과 함께 버리셨지만 선민에 대한 사랑과 약속은 일시적 징계가 있을지라도 상당한 위로와 궁극적으로는 메시야 사역으로 베푸실 은혜를 성취하신다는 뜻입니다. “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한다” 하심은 메시야적 구원의 시기를 촉박하게 기다리시는 사랑의 심정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신다”고 하셨습니다(사 9:7, 합 3:2).

2) 9절에서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발하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하신 말씀은 징계를 주실 지라도 일시적일 뿐 은혜를 베푸실 때에는 노를 발하시지 않을 것인데 이는 하나님의 신성(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임이라)에 근거한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감정과 의지는 한계가 있어서 미움을 사랑으로 변하기 어렵지만 하나님은 뜻과 실천에 대하여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3) 10-11절에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실 때에 큰 구원의 역사가 있을 것을 말씀하셨으니 곧 “여호와께서 (신약시대에 복음의)소리를 발하시면 (선택받은) 자손들이 서편(바다 건너 소아시아 및 구라파 쪽)에서부터 떨며 오되(회개하는 자세) 저희가 사자처럼(사자가 힘있게 먹이를 쫓듯) 하나님께로 올 것이라” 하셨고, 또 “애굽에서부터 새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저희로 각 집에 머물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새와 비둘기는 나는 동물로 교통상의 장벽을 문제시하지 않는 것처럼 모든 난관을 와해시키고 복음이 서방 세계로, 또 전격적으로 전파될 것을 표현하신 말씀이고, 애굽과 앗수르는 완고한 곳이지만 역시 전파의 대상이 되며 “하나님이 각 집에 머무심”은 성도의 가정에 성령님이 함께 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마 28:20, 계 3:20).

이상의 말씀과 관련하여 이 시대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긍휼과 함께 하심과, 복음 전파의 은혜를 더욱 사모하셔야 할 것입니다.

 

제 19 과 선민의 희망 (호 12:1-6) 목록으로


본문 말씀은 4 대지로 나누어 살필 수 있습니다. 1절은 “에브라임(북왕국)의 잘못된 생활”을 지적하신 말씀이고, 2절은 “벌주시는 하나님”을 나타내셨으며, 3-4절은 “야곱이 회개한 사례”를 말씀하셨고, 5-6절은 “희망에 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총 제목을 “선민의 희망”으로 정하였습니다.

1. 에브라임의 잘못된 생활(1절)

1) “에브라임이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간다” 하심은 배부르지 못할 양식을 먹는 것처럼 헛된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득 없는 일이나 비생산적인 일 또는 손해날 일을 할 때가 있지요. 사람이 지혜롭지 못하면 잘못된 일에 참여할 수 있은즉 주의하셔야할 할 것입니다. ‘동풍’은 초목을 해치는 포악을 상징합니다.

2) ‘에브라임’이 헛된 일을 하는 내용은 거짓을 자행하고 포학을 행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강대국을 의지하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거짓과 포학을 더한다” 하신 것은 오늘날 사회처럼 “거짓과 가짜가 난무하여 믿을 것을 찾기가 힘든 세대처럼 되었다”는 뜻이고 ‘포학’ 역시 그런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욕설과 주먹이 앞서고, 여자 폭력배가 있는가 하면, 아이들 세계도 폭력에 시달린다고 하지 않습니까? 새 정부는 이것을 근절시켜야 할 것입니다. 또 “앗수르와 계약을 맺음”은 앗수르가 강국의 입장에서 자주 침략하고 위협을 하니까 그들에게 조공을 바치기로 하고 침략을 저지하는 행위이며(왕하 17:3-4), “기름을 애굽에 보냄”은 앗수르에게 조공 바치는 일을 파하고 애굽을 의지하여 앗수르를 대항하려는 것을 의미합니다(왕하 17:4). 그 계책은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으니(왕하 17:5-6) 선민이 직면한 국난이 하나님의 징벌임을 알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힘으로 극복하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2. 벌주시는 하나님을 나타내심(2절)

1) “여호와께서 유다와 쟁변하심”은 하나님이 남방 유다국의 소행도 감찰하시고 합당하게 대응하신다는 뜻입니다. 범죄자가 고발을 당하면 재판을 받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정죄와 변명이 오고 갑니다. 이와 같이 벌주시려는 하나님과 완고한 백성간에 오고가는 대화가 쟁변입니다.

2) 하나님은 “야곱의 소행대로 벌주시는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야곱의 소행은 일찍이 야곱이 형 에서를 속이고 쫓겨나서 20년간 고생한 사실과 천사와 겨루다가 환도뼈가 위골된 일들을 상기시키시면서 그 자손들(즉 북방 이스라엘)의 잘못된 행위에 대하여서도 그 조상이 벌받은 것처럼 보응하실 것을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소행(소위)대로 벌주시고 보응하시는 분입니다(호 4:9, 렘 21:14).

3. 야곱이 회개하고 복 받은 사실을 말씀하심(3-4절)

1) “야곱이 태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다” 함은 야곱이 에서의 동생으로 출생한 사실과 하나님의 선택에 의하여(롬 9;12-13) 형보다 더 많은 복을 받을 것에 대한 도전의 징조라는 사실입니다.

2) 그런데 “또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다” 하신 것은 창 32:24-32에 나타난 역사적 사건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4절에서 야곱이 “하나님과 힘을 겨룬 것”은 천사로 나타나신 하나님을 몰라보고 저지른 일이요, 환도뼈가 위골된 후 힘을 겨룰 수 없게 되었을 때,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울며 그에게 간구한 것입니다. 여기의 “힘을 겨루어 이겼다”는 뜻은 육체의 힘이 아닌 기도의 간구를 의미합니다. 이때에 하나님이 야곱의 회개와 기도를 보시고 응답하신 사실을 야곱의 승리로 설명하신 것입니다.

3) “하나님이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음”은 야곱이 기도 응답으로 축복 받은 후에(창 33:26-29) 자신이 과거에 아버지의 집을 떠날 때 계시를 받고 서원하였던 장소(창 28:10-22)에 와서 서원한 대로 제단을 쌓았지요. 그때에 하나님이 계시로 말씀하시고 복 주신 사실을 의미합니다(창 35:1-15).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리라” 하심은 야곱처럼 회개하고 야곱처럼 하나님을 체험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선민 단체를 그들의 조상인 야곱의 역사에 비추어 교훈하신 것입니다.

4. 희망에 대한 말씀입니다(5-6절).

선민의 희망은 곧 성도의 희망입니다. 성도가 환난을 벗어나 희망을 성취하려면,

1) 하나님의 약속을 든든히 믿어야 합니다. 5절에서 “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셨으니 이 말씀은 만군을 다스리시는 절대자란 뜻입니다. “여호와가 그의 기념 칭호라”는 뜻은 하나님이 출애굽을 시도할 모세에게 이 이름을 나타내실 때(출 3:15)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베푸신 언약을 영원히 지키신다는 뜻으로 “영원한 이름, 대대로 기억할 표호”라고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기념 칭호”란 성도에게 주신 언약을 변하시지 않는 하나님을 영원히 신뢰하게 하신 것입니다.

2)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세상과 우상을 가까이 하던 생활에서 하나님을 사모하고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시 73:28).

3) “인애와 공의를 지키는 것”입니다. 인애는 사랑 중심이요, 공의는 법을 지키고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4)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여기의 “바라본다”는 뜻은 사 40:31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영원히 변하지 않고, 그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동행하면서, 인애와 공의로운 생활을 힘쓰고, 항상 하나님을 앙망하면, 크게 복이 있고 희망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제 20 과 은혜와 타락과 심판 (호 12:7-14) 목록으로


본문에는 하나님이 선민에게 베푸신 은혜와 은혜를 받고도 여전히 타락한 상황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계획이 기록되었습니다.

1. 하나님이 선민에게 베푸신 은혜(9, 10, 13절)

1) 9절에서 “내가 애굽 땅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하셨으니 이 뜻은 선민을 위하여 은혜를 베푸시던 초기, 즉 출애굽 때부터 이 말씀을 주시는 시기까지(주전 1449-684년) 변함없이 선민의 하나님 여호와의 역할(보호, 인도, 교훈)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뜻은 13절에서 강조하셨습니다. 또 “내가 너로 다시 장막에 거하게 하기를 명절일에 하던 것 같게 하리라” 하심은 하나님의 순간적 징계로 평화를 잃는 경우가 있어도 회개하면 또 평화를 주셔서 평안히 장막에 거하면서 장막절을 지킬 수 있도록 은혜 주실 것을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2) 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충분한 교육과 경고를 하셨으니 10절에서 “내가 여러 선지자에게 말하였고 이상을 많이 보였으며 선지자들을 빙자(내세운 뜻)하여 비유를 베푸셨다” 하시므로 선지자의 증언으로 교육하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에게 말하였고… 선지자들을 빙자하신 것”은 선지자들에게 말씀을 주어 전달케 하신 뜻이고, “이상을 많이 보인 것”은 다니엘이나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상으로 나타내신 것을 뜻하며(단 7:9-8:27, 겔 1:1, 8:1-4), “비유를 베푸신 것”은 선지자가 비유를 들어 교훈하게 하신 것을 뜻합니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의 음행죄를 깨우칠 때(삼하 12:1-6), 에스겔 선지자가 선민들에게 적의 침략을 예고할 때(겔 24:1-5), 특히 호세아가 백성들의 죄를 책망할 때 많은 비유로 증언하신 것입니다(7:4, 8, 8:8, 9:8, 10:12, 13:8, 14:8).

2. 은혜를 받고도 여전히 타락한 상황(7, 8, 11, 12, 14절)

1) 부당하게 재산을 모으고도 정당한 줄 알면서 자만하였습니다(7-8절). 7절에서 “저는 상고(장사꾼)여늘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사취하기를 좋아한다” 하셨고, 8절에서는 “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하면서 재물을 내세워 자만하였고, 또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무릇 나의 수고한 중 죄라 할만한 불의를 발견한 자 없으리라”고 하므로 자신들의 부당한 재물 취득에 대하여 반성할 줄도 모른 것입니다.

2) 우상 숭배의 죄입니다(11절). “길르앗과 길갈이 밭이랑에 쌓인 돌무더기같이 된 것”은 그 장소에 우상의 제단이 만연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돌로 쌓은 우상 제단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돌무더기가 많게 된 것입니다. 길르앗과 길갈의 우상에 대한 것은 호 6:8과 9:15에서 설명하였습니다. “길르앗은 불의한 것이냐 저희는 과연 거짓되도다” 한 번역문을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길르앗이 온통 거짓된 것으로 찼는데도 죄가 없다 하느냐”로 번역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불의와 거짓이 많다”는 뜻입니다. 또 “길갈에서는 무리가 송아지로 제사를 드린다” 하셨는데 여기의 송아지 제사도 우상의 제단에 드리는 이방적 제사이므로 큰 죄에 속하는 것입니다.

3) 12절에서는 “선민의 조상 야곱의 이기주의적 죄악을 상기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옛적에 야곱이 아람들(외삼촌 사는 곳)로 도망한 것은 축복을 가로챈 거짓 술책과 이기주의적 죄로 도망한 것이고 또 외삼촌의 집에서 아내를 얻기 위하여 사람을 섬기고 양을 친 것이 역시 이기주의적 소행인 것입니다. 호세아는 이런 사실을 비유로 하여 당시 백성들의 순수하지 않은 생활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조상의 잘한 것(12:3-4)과 잘못한 것(12:12)을 생각하면서 깊이 반성하라는 뜻입니다.

4) 그러고도 “에브라임의 격노함은 극심하다”(14절) 하셨으니 이는 계속 완고하고 교만하였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3. 심판 계획에 대한 말씀(14절 하반)

“주께서 그 피로 그 위에 머물러 있게 하시며 저의 수치를 저에게 돌리실 것이라” 하시므로 심판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피로 그 위에 머물게 하심”은 전쟁으로 인한 살육 당함이 있을 것이고 그로 인하여 “나라 잃은 백성들의 수치를 당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라 잃고, 자유 잃음은 생존권의 상실과 같은 것입니다. 이 예언은 호세아 9년에 성취되었습니다(왕하 17:1-33).

 

제 21 과 선민의 형편 (호 13:1-8) 목록으로


본문을 살피면 “하나님이 보신 선민의 형편”을 말씀하신 내용(1-2, 6절)과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대한 말씀(4-5절)과 “회개하지 않는 백성에 대한 경고”(3, 8절)의 말씀이 기록되었습니다. 1대지의 내용으로 제목을 정한 후 3대지로 나누어 상고하겠습니다.

1. 하나님이 보신 선민의 형편(1-2, 6절)

1) “권위를 떨치던 에브라임 왕국이 바알을 섬기는 범죄로 망하였다”(1절)고 하였습니다. 1절의 “에브라임이 말을 발하면 사람이 떨었다” 하신 것은 에브라임 지파가 출애굽 당시부터 그의 형 므낫세 지파보다 번성한 사실과(창 48:14, 19, 민 2:18-21) 사사시대에 지도적 역할을 한 일과(삿 8:1-2, 12:1) 북왕국이 분열될 때 여러보암왕이 에브라임 지파인 관계로(왕상 11:26, 12:20) 남방 유다 두 지파(유다와 베냐민, 왕상 12:21-24)를 제외한 전체 선민을 다스리는 권위를 가졌습니다(왕상 12:24). 그리고 그 나라의 왕권은 257년(932-675년)을 유지하였은즉 “말을 발하면 사람이 떨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그런데 그 백성들은 “저가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를 높이더니 바알로 인하여 범죄하므로 망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교만하면 유혹이 오고 범죄하게 마련입니다. 인간의 교만은 그 자체가 자기를 내세우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율적으로 우상(바알)을 선택하는 죄를 범한 것입니다. “망하였다”는 과거형은 “곧 망하게 될 것을 강조하신 예언”입니다.

3) “그들이 숭상하는 우상은 허무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2절). “이제도 저희가 더욱 범죄하여 그 은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만들되 자기의 공교함(자기의 마음대로 도안한다는 뜻)을 따라 우상을 만들었으며 그것은 다 장색(조각 기술자)이 만든 것이어늘 저희가 그것(우상)에 대하여 말하기를 제사를 드리는 자는 송아지의 입을 맞출 것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물질을 이용하여 자기의 고안과 장색의 솜씨로 만든 우상을 숭상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의 “제사 드리는 자가 송아지의 입을 맞춘다”는 뜻은 어리석음에 어리석음을 더하여 우상에게 드리는 제사와 제물에 애착을 느껴 우상 숭배의 강세를 더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범죄자의 마음의 완강함까지 감찰하신 것입니다(삿 1:27, 35).

4) “먹고 배부른 대로 교만하여 하나님 잊는다”(6절)고 하셨습니다. “저희가 먹이운 대로(하나님이 주신대로) 배부르며 배부르므로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인하여 하나님(나)을 잊는다” 하셨으니 배부름(유족함)은 방심을 낳고, 그 방심이 하나님과 은혜를 잊게되는 것입니다. “배부름”은 교육상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부는 교만을, 교만은 하나님을 멀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2. 선민이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은혜를 받았습니까?(4-5절)

1) 항상 함께 하시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하신 것이 그 뜻입니다(이 말씀은 12장에서 설명드렸음). 또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은즉 다른 신을 알지 말 것”(4절)에 대한 말씀은 출애굽 당시부터 십계명으로 교훈하신 것입니다(출 20:3). 다른 신은 많으나 절대 신은 하나님뿐입니다(사 40:18, 25).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 외에는 (다른) 구원자가 없습니다(4절).

2) “하나님은 광야 마른 땅에서 (선민을) 권고하셨다”고 하셨습니다(5절). 광야 마른 땅은 출애굽 당시의 시나이 반도이며 물 없는 사막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40년 동안 먹을 것과 마실 물을 주셨고 의복과 신을 해지지 않게 하시므로(신 29:5) 권고하셨던 것입니다. 선민들은 이런 은혜를 250년 정도 받으면서도 그 은혜를 잊고 우상을 섬겼으니 벌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3. 그리하여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는 백성에 대하여 경고를 하신 것입니다(3, 7-8절).

1) 3절에서 “이러므로 저희는 아침 구름 같으며 쉽게 사라지는 이슬 같고 타작 마당에서 광풍에 날리우는 쭉정이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아침 구름이나 이슬은 쉽게 사라지는 것이고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나 연기도 멀리 사라져 없어지는 것처럼 나라(북왕국)가 속히 없어질 것을 예언하신 것이요,

2) 7-8절에서는 하나님이 선민에게 “사정을 보지 않는 포악한 맹수처럼 대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자 같고 길가에 기다리는 표범”은 그 사냥물에 대하여 사정을 살펴주지 않습니다. 또 새끼 잃은 곰 역시 맹폭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저 없이 물어 죽일 것입니다. 또 “새끼 잃은 곰이 사냥물을 만나 그 염통 꺼풀을 찢고 거기서 암사자처럼 먹이를 삼키는 것처럼(이 말씀은 맹폭성을 의미함) 들짐승(이는 앗수르를 뜻함)이 저희를 찢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북왕국이 앗수르에 의하여 가혹하게 멸망당할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제 22 과 패망을 예고하심 (호 13:9-16) 목록으로


본문 말씀은 전부 패망에 관한 말씀입니다. 여기의 패망의 대상은 9절의 “이스라엘”(유다국에 대조되는 북왕국)이라 하셨고 12절에서 “에브라임”(사마리아를 수도로 하는 북왕국)이라 하셨으므로 북왕국을 의미합니다.

1. 9절에서 북왕국은 “자신들을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대적한고로 패망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패망하였다”는 과거형은 미래의 확실성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또 그 당시에도 자주 있는 앗수르의 침략으로 조공을 바치는 등 왕권의 위세가 쇠약해진 상태였습니다(호 12:1, 왕하 17:1-6).

2. 10-11절에서는 “그 나라의 왕권이 폐하여질 것”을 예언하셨으니 이 왕에 대한 제도는 사울왕을 세울 당시에 선민들이 하나님의 직접 통치(선지자를 통한 지도)를 벗어나 이방인들처럼 “왕의 통치를 받게 해달라”고 청하여 하나님이 분노하시면서 허락하셨는데(삼상 8:19) 그 후 나라가 분열될 때는 여로보암이 다윗의 집을 반역하므로 북왕국이 세워진 것입니다(왕상 11:9-12, 26, 29-33, 12:19). 그러나 후에는 “네 모든 성읍에서 너를 구원할 자 네 왕이 어디 있으며 재판장이 어디 있느냐 (할 정도로) 내가 분노로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할 것이라(과거형은 확실성에 대한 강조임)”고 하셨습니다.

3. 12-13절에서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삭감하지 않으시며 심판도 지체하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에브라임의 불의가 봉함되었고 그 죄가 저장되었음”은 하나님이 치부하신 선민의 죄를 망각하시거나 삭감하시지 않는다는 뜻이고, 따라서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고통)이 저에게 임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어려움은 나라의 전쟁과 패망을 뜻합니다. “저는 어리석은 자식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식은 30세가 넘어도 철들지 않습니다. 불행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니까요. 그러니까 “산문(해산의 고통을 당해야 하는 순간)에서 지체할 것이 아닌 것”처럼 속한 시일 내에 징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4. 14절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속량하여 재앙을 면케 하실 수도 있지만 그들을 벌하신 후에 뉘우치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멸망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는다”는 뜻은 하나님이 선민을 벌한 후에도 “뉘우치시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고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여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하신 것은 속죄자이신 하나님이 (장차 구원 사역을 하실 수도 있고) 벌하시지 않을 수도 있은즉 만일 그들이 멸망 받지 않을 때는(즉 구원을 받는다면)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으며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하고 큰소리 칠 수도 있을 것이나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망과 음부는 최후 징벌을 의미합니다.

5. 15-16절에서는 “선민이 일시 번창하는 것 같아도 결국은 비참하게 망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가 비록 형제 중에 결실함”은 선민 12지파 중에서 보존되어 온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동풍이 오면 그 결실이 떨어질 뿐 아니라 저축을 한다 하여도 약탈을 당하며 없어질 것이라” 하시므로 선민을 식물과 재물로 비유하여 설명하신 것입니다. 농사가 잘 되어도 결실기에 태풍이 불면 다 떨어지는 것처럼, 그렇게 망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동풍’은 식물을 해치는 바람이고 “광야에서 일어나는 여호와의 바람”은 하나님이 광야 쪽으로부터 그 바람(재난)을 보내신다는 뜻이며, 그렇게 될 때는 “그 근원과 그 샘이 마를 것인즉”(생산의 근원이 없어진다는 뜻) 수확도 없게 되고 “보배의 그릇도 약탈될 것이라”(적군에게 뺏기는 뜻)는 것입니다. 16절에서 “이는 사마리아(북왕국의 수도)가 그 하나님을 배반하였기 때문”이요 그 결과는 “형벌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지고 그 어린아이는 부숴뜨리움 당하며 그 아이 밴 여인은 배 갈림을 당하는 비참한 참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선지자가 이런 설교를 하였어도 백성들은 회개하지 않고 예언대로 당하였던 것입니다.

 

제 23 과 회개와 축복 (호 14:1-9) 목록으로


본문 1-3절은 “회개하라”는 말씀이요, 4-8절은 “회개한 백성이 받을 축복”이며, 9절은 “결론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제목을 “회개와 축복”으로 정하였습니다.

1. 회개하라는 말씀(1-3절)

13장 이전의 말씀에서는 죄와 심판을 강조하셨으나 마지막 장에서는 회개와 축복을 말씀하시므로 성도가 어떤 범행과 불행에 처하더라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만 희망스러운 일이요, 또 치료받고 회복 받으며 구원받는 일임을 말씀하셨습니다.

1) 1절에서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호 6:1에서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눅 15:20의 “탕자가 아버지 곁으로 돌아온 것”처럼 하나님을 멀리 하고 세상과 우상을 가까이 한 일에서 떠나서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며 사모하고 의지하는 생활로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2)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다” 하셨는데 이 말씀은 “자신이 불의, 곧 죄 때문에 불행해졌고 또 망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라는 뜻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3) 2절에서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하셨는데 여기의 ‘말씀’은 하나님이 초청하신 말씀입니다.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마 11:28),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3),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사 1:18),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 하신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초청에 근거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와야 할 것입니다.

4)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하라” 하셨으니 이 말씀은 기도로 고백할 내용입니다.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 한 것처럼 하나님은 의식적이고 물질적인 수송아지 제물보다 마음에 있는 뜻을 진실하게 고백하는 입술을 원하시는 것입니다(삼상 15:22). “불의를 제하심”은 용서(죄사함)를 비는 것이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한 것은 하나님 앞으로 돌아온 회개, 그 자체를 선으로 여겨달라는 뜻입니다. 다른 공로는 있을 수 없습니다.

5) 3절에서 “앗수르의 구원(강대국을 의지하는 것)을 의지하지 않으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전쟁으로 승부를 걸지 않는 뜻)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우상 숭배) 하지 않을 것”을 고백하고 “고아가 주께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는 것”처럼 고아 신세 같은 자신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함이 마땅하다는 뜻입니다.

회개는 행동으로 돌이키는 것이지만, 행동은 결과요 시작은 마음에서부터 하는 만큼 마음의 고백과 행동의 돌이킴이 중요한 것입니다. 구원받는 믿음도 그렇습니다(롬 10:10).

2. 회개하는 자에 대한 축복(4-8절)

1) 4절에서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저희에게서 떠났음이라” 하시므로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 대하여 패역을 고쳐주시고 사랑의 강도를 높여주시며 진노를 거두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패역을 고치시는 방법은 성령님의 역사로 새 마음을 주셔서 진리를 복종하도록 이끌어주시는 것입니다(겔 36:26-27).

2) 5-6절에서 “다시 안정되고 발전하는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 뜻은 백성들의 안정과 번영을 백합화와 백향목의 무성함으로 비유하여 설명하신 것입니다. 우선 나무에는 수분이 필요한데 그 수분을 쏟아지는 비로 주시지 않고 아침마다 내리는 이슬로 주시는 것은 비보다 더 안전하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조건이 좋을 때 백합화는 더 잘 퍼지고 레바논의 백향목(백향목은 팔레스틴 땅에도 있지만 레바논에 있는 백향목과 과잣나무가 더 무성함, 왕상 5:6-8)도 뿌리를 더 깊이 줄 수 있은즉 “그 가지는 퍼질 것이고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 같을 것이며 그 향기 또한 레바논 백향목처럼 진동하게 발할 것이라”(6절)고 하셨습니다. 백합화와 백향목은 향기를 발하는 사명이 큰 나무인지라 성도가 믿음으로 번창하여 하나님께 큰 영광 돌릴 것을 “향기 발하는 것”으로 비유하신 것입니다(창 8:21, 출 29:18).

3) 7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 즉 믿음이 더 좋아진다고 하셨습니다. “그 그늘 아래 거하는 자가 돌아올 것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자(회개한 백성)가 하나님과 더 가까워진다는 뜻입니다. 성도가 이웃을 대할 때 가깝거나 먼 관계를 느끼지요. 이웃과 가까운 관계를 반드시 하나님께로 적용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저희는 곡식같이 소성한다”는 말씀과 “포도나무가 꽃을 피우고(열매를 맺은 후) 포도주같이 되어 향기를 발한다”는 말씀은 현실적인 축복보다 영적 축복을 비유하심에 적합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소성’이란 용어가 심령에 적용되고(시 23:3, 19:7) 포도나무와 포도주는 예수님과 그 보혈로 비유하기 때문입니다(요 15:1, 마 26:27-29). “회개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 하셨으니 믿음이 승화되지 않겠습니까?(행 2:38)

4) 8절에서 “우상을 무시하고 멀리 떠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깨닫지 못할 때는 우상이 복을 주는 줄 알았지만 깨닫고 나면 그 어리석음을 뉘우치게 될 것입니다.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지라” 함은 우상을 떠나 상종하지 않을 것을 의미하며, “내가 저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고 할 것이라는 뜻은 우상을 잣나무로 만든 만큼 죽은 나무인데, 회개한 성도 자신을 푸른 잣나무, 즉 산 나무로 비유하여, 죽은 나무로 비유된 우상숭배자들이 산 나무로 비유된 성도들로부터 오히려 덕을 입어야(열매를 얻으리라)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뜻은 우상을 비웃게 될 것을 의미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온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로 좋은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눅 15:22-24).

3. 호세아서 전체의 결론(9절)

호세아 선지자는 본서를 통하여 선민의 죄악을 신랄하게 지적하셨고 또 심판이 있을 것을 강하게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결론 부분에서 회개할 것을 권하셨는데 총 결론에서는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하시므로 스스로 진리를 깨닫는 자가 없을 것을 피력하셨고,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도가 정직하다”는 뜻은 성경(여호와의 도)이 진리(정직한)라는 뜻입니다. 진리는 의인이라야 수용할 수 있다(그 도에 행함)는 것입니다. 여기의 ‘의인’은 사람이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으므로(롬 3:10-12) 오직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믿음으로 난 의”(롬 9:30)를 받은 자라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거듭난 은혜를 받고(요 3:3) 성령님의 역사로 마음을 열어주실 때(행 16:14, 엡 1:17-18)에만 진리를 받고(믿음) 그 도에 행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뜻은 신앙 사역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강조하신 내용입니다(히 12:2, 2:10, 살후 1:10). 꼭 성경 구절을 찾아 확인하십시오. “그러나 죄인(의롭다 함을 받지 못한 자, 갈 3:11, 믿음을 못 가진 자)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 하시므로 그 도(하나님의 진리)를 받지 않음이 죄가 되어 심판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마 21:44). 따라서 우리가 받은 구원은 은혜 중의 은혜임을 더욱 실감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끝)

 

설교보충 1. 호세아의 비유 말씀 (호 2:5-7, 12:10) 목록으로


호세아서 강론 집필을 마치고 이 글을 씁니다. 필자가 호세아서를 선택하여 강론을 한 것은 호세아서에 나타난 비유 말씀들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적절한 비유 말씀을 들어 교훈하시는 소질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몇 가지를 발췌하여 소개한다면

1. “음난한 아내”, “음난한 자식”(1:2)입니다. 이는 그 남편이 사랑하기에 가장 역겨운 대상입니다. 아내가 음난하여 다른 남자의 자식을 낳았다고 할 때 누가 그 여인을 다시 아내로 맞이하겠습니까? 우상을 섬긴 하나님의 백성들이 꼭 그 입장이었으나 하나님의 사랑이 무궁하시므로 “돌아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저희들은 이 사실에서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감읍하셔야 할 것입니다.

2. “연애하는 자”(2:7)란 말씀입니다. 음난한 여인이 다른 남자와 연애를 할 때 그가 “양식과 의복들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본 남편을 버리고 갔지만 하나님이 막으심으로(2:6) 약속대로 실천되지 않았으니 결국은 버림을 당한 셈입니다. 본래 “연애하는 자”란 공식적 부부가 아니지요. 오직 타산과 일시적 재미만 보기 위한 관계입니다. 성도가 세상과 연애를 하면 일시적 재미와 소득도 있겠지만 그것이 자신의 믿음을 망치는 수렁이란 것을 아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3. “쉬 없어지는 이슬”(6:4, 13:2)이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말 속담에 “쟁개비 같다”는 뜻입니다. 본문에서는 인애(하나님에 대한 사랑)가 그렇다 하셨지만 우리는 인애 뿐 아니라 진실과 근검과 인내 등 모든 면에서 쉬 없어지는 이슬처럼 잠깐만 시행할 것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소망까지 꾸준히 시행하는 성도가 되셔야 합니다.

4. “달궈진 화덕”(7:4)이란 말씀입니다. 달궈진 화덕은 뜨거운 것이기 때문에 심판의 도구로 말씀하신 것인데 항상 달궈져 있는 것이 아니고 “빵 만드는 자가 사용하는 화덕”이므로 가루를 발효시키는 동안은 달구지 않다가 구울 때 달구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평안한 것 같으나 발효가 끝나면(심판하실 기한이 차면) 달군다(심판)는 것입니다.

5. “뒤집지 않은 전병”(7:8)입니다. 전병을 잘 구우면 먹는 사람이 행복하겠지요. 이와 같이 성도가 믿음 생활을 잘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데 뒤집지 않은 전병처럼 한쪽은 설익고, 한쪽은 타면, 다 쓸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의 신앙생활에 명분이 모자라거나, 균형을 파하거나, 냄새만 풍기는 식의 생활을 역겹게 보신다는 뜻입니다.

6. “기뻐하지 않는 그릇”(8:8)입니다. 여러분 집에 버리자니 아깝고, 그대로 두자니 장소 차지만 하고, 쓰지 않는 물건이 있지요? 누가 요긴하게 쓴다 하면 줄 것인데도, 달라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성도가 하나님 앞에 부정하면 꼭 그와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요긴하게 여겨 기뻐해 주지 않는 것입니다. 미지근한 상태를 뜻합니다.

7. “값 주고 연애하는 자들”(8:9)입니다. 이 말씀은 북왕국이 앗수르에게 아부하는 태도에서 앗수르가 값을 많이 받으면, 즉 조공을 많이 주고 복종하면 연애하는 자처럼 기뻐해 주는 것입니다. 마치 기생을 사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상 섬기는 것이 그러하고, 현실을 의지하는 것도 그러하며, 오직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오는 것만 확실한 실속이 되는 것입니다.

8. “기브아의 시대”(9:9)입니다. 이 시대는 사사시대이므로(삿 19:22) 호세아 시대로부터 약 330년 전입니다. 그 당시에 베냐민족이 패괴한 짓을 행하고 거의 멸절 당한 일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당시에 패괴함이 베냐민족만 있은 것이 아니고 다른 족속들도 그러한 것을 기억하시고 그들에 대한 죄를 벌하신다” 하셨으니 놀라운 일입니다.

9. “묵은 땅을 기경하라”(10:12)는 것입니다. 이것은 백성들의 죄가 만신창이 된 몸처럼(사 1:5-6) 죄악이 만연된 것을 뜻합니다. 질적으로, 양적으로 전부 부패하였으니 부분 수리가 불가능하므로 “집을 아주 헐고 다시 지음”이 낫다는 뜻입니다.

10. “길들인 암소”(10:11)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순종적이어야 합니다.

11. “아침 구름, 쉽게 사라지는 이슬, 광풍에 날리우는 쭉정이,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13:3)란 말씀입니다. 범죄한 백성이 회개하지 않으면 그들이 누리던 영광이 쉽게 없어질 것을 비유하신 말씀입니다.

12. “기다리는 표범, 새끼 잃은 곰”(13:8)입니다. 기다리는 표범이 먹이를 놓치지 않고, 새끼 잃은 곰은 폭학함이 극에 달합니다. 새끼 잃은 곰이 도로에 있는 고압선 전주에 올라가서 감전되어 죽는 장면을 본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심판의 뜻을 돌이키시지 않을 때, 인간이 어떤 자구책을 쓴다 하여도 하나님이 강하게 하실 것을 표현하신 말씀입니다.

13. “푸른 잣나무 같다”(14:8) 하셨으니 이 말씀은 우상을 마른 막대기로, 성도를 푸른 잣나무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잣나무는 푸르고 향과 열매가 있으며, 또 목재용으로도 좋습니다. 성도의 생활이 그렇게 힘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14.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13:13)입니다. 북왕국이 머지 않아 큰 고통에 처할 것을 비유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벌하시면 그 고통은 크고 당할 수밖에 없은즉, 미리 회개하는 것이 상책이란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