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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론

 

저자 지영근 목사

목 차


먼저 드리는 글 3

 

제1과 선민의 고난과 번성 (출 1:1~22) 6 바로가기

제2과 모세의 80년 생애 (출 2:1~25) 8 바로가기

제3과 선민구원의 시작 (출 3:1~22) 11 바로가기

제4과 모세가 선민을 만나기까지 (출 4:1~31) 15 바로가기

제5과 바로에게 처음 나아감 (출 5:1~23) 19 바로가기

     설교보충 1. 출애굽과정의 교훈 (출 5:1~9) 22 바로가기

제6과 바로에 대한 계속적 대립 (출 6:1~30) 24 바로가기

제7과 뱀 이적과 피 재앙 (출 7:1~25) 28 바로가기

제8과 개구리, 이, 파리재앙 (출 8:1~32) 30 바로가기

제9과 악질과 우박재앙 (출 9:1~35) 32 바로가기

제10과 메뚜기와 흑암 재앙 (출 10:1~29) 34 바로가기

제11과 마지막 재앙의 경고 (출 11:1~10) 36 바로가기

제12과 유월절 행사를 명하심 (출 12:1~27) 37 바로가기

제13과 출애굽 진행 (출 12:28~51) 40 바로가기

     설교보충 2. 바로의 굴복 (출 12:31~34) 42 바로가기

제14과 초태생 구별과 인도 (출 13:1~22) 44 바로가기

     설교보충 3. 하나님과 선민 (출 13:20~22) 47 바로가기

제15과 바로의 추격 (출 14:1~14) 49 바로가기

제16과 홍해를 통과함 (출 14:15~31) 51 바로가기

제17과 선민의 찬양 (출 15:1~21) 53 바로가기

제18과 마라와 엘림 (출 15:22~27) 55 바로가기

제19과 식량문제 해결 (출 16:1~15) 57 바로가기

제20과 만나에 대한 말씀 (출 16:16~36) 59 바로가기

     설교보충 4. 분명하신 하나님 (출 16:17~18) 61 바로가기

제21과 “르비딤”에서 있은 일 (출 17:1~16) 63 바로가기

제22과 가족 상봉과 재판 업무 (출 18:1~27) 66 바로가기

제23과 계명 받을 준비를 명하심 (출 19:1~25) 68 바로가기

제24과 십계명과 제단 건립 (출 20:1~26) 71 바로가기

제25과 백성 앞에 세울 율례(Ⅰ) (출 21:1~26) 77 바로가기

제26과 백성 앞에 세울 율례(Ⅱ) (출 22:1~31) 80 바로가기

제27과 백성 앞에 세울 율례(Ⅲ) (출 23:1~19) 82 바로가기

제28과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 약속 (출 23:20~33) 84 바로가기

제29과 율법을 기록함 (출 24:1~18) 86 바로가기

제30과 성물 제조를 명하심 (출 25:1~40) 88 바로가기

     설교보충 5. 성막(성전)제도의 의미 (출 25:1~9, 히 19:1~10) 91 바로가기

제31과 성막 건립을 명하심 (출 26:1~37) 93 바로가기

제32과 단과 뜰과 등불 (출 27:1~21) 96 바로가기

제33과 제사장의 의복 (출 28:1~43) 98 바로가기

     설교보충 6. 제사장 의복의 의미 (출 28:1~43) 102 바로가기

제34과 제사장 위임식 의례(Ⅰ) (출 29:1~25) 104 바로가기

제35과 제사장 위임식 의례(Ⅱ) (출 29:26~46) 107 바로가기

제36과 남은 시설과 제도 (출 30:1~38) 109 바로가기

제37과 시내산 계시의 결론 (출 31:1~18) 112 바로가기

제38과 백성의 타락과 모세의 기도 (출 32:1~14) 114 바로가기

제39과 모세의 하산과 변고처리 (출 32:15~35) 116 바로가기

     설교보충 7. 금송아지 우상 숭배 사건 (출 32:1~6) 119 바로가기

제40과 하나님이 멀리 하려 하심 (출 33:1~23) 121 바로가기

제41과 계명판을 다시 주심 (출 34:1~35) 124 바로가기

제42과 명령과 실천 (출 35:1~36:7) 127 바로가기

제43과 성막 제조의 완성 (출 36:8~38) 129 바로가기

제44과 성소용품 제조의 완성 (출 37:1~29) 130 바로가기

제45과 뜰에 대한 완성과 통계 (출 38:1~31) 131 바로가기

제46과 제사장 의복을 제조함 (출 39:1~43) 132 바로가기

제47과 역사(役事)를 필하고 영광 돌림 (출 40:1~38) 133 바로가기

 

 



먼저 드리는 글


제가 출애굽기 강론 쓰기를 시작한 것은 2004년 4월쯤으로 기억됩니다. 로마서 강론을 끝으로 신약 27권의 강론을 다 쓰고 나니 퍽 피로를 느낄 때였는데 또 눈에 보이는 것이 약 30년 전에 사용한 출애굽기, 민수기 강론 설교 원고였습니다. 그것을 찢어버리기도 아깝고 또 새로 쓰자니 용기가 나지 않아서 2-3주간 소강상태로 지나다가 하나님이 용기를 주셨고, 또 연구의 재미로운 마음을 주셔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7월 30일 중복으로 가장 더운 날이고, 밀양은 36°, 서울은 34°의 더운 날씨 속에 이 글을 마치니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글을 끝냈을 때 대구에 있는 큰아들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8월 하순쯤 친교대상으로 사귀는 여성을 선보이기 위하여 함께 집에 올 것이라 하면서 자신은 아버지(필자)와 거리감이 있게 살았지만 사귀는 여성은 신앙으로 보나 생활로 보나 아버지와 꼭 같은 사람인즉 마음에 드실 것이요, 그런 여성을 못 만나서 혼기가 늦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평소에 자녀들의 배우자를 위하여 기도한 바가 있는데 이 강론서를 마치자 희망 있는 소식을 들으니 하나님이 좋은 맏자부를 복으로 주시는 것으로 믿으려고 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섭리와 기적의 은혜가 있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큰아들은 착한 면도 있지만 기대에 어긋나는 것이 많은데 어찌 나와 비슷한 사상과 신앙을 가진 여성이 내 아들을 싫어하지 않았는지가 기적이 아니면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어서 민수기 강론을 쓰려고 합니다. 평소에 민수기를 통하여 은혜를 받은 바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계속 힘을 주시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 출애굽기 강론은 깊은 신학 서적이 아니고 성경을 한두 번 읽었으나 잘 이해되지 않아서 아리송한 초신자님들에게 “출애굽기가 이런 뜻이로구나”하는 정도를 이해하실 수 있게 설명 드린 내용이란 점을 유의해 주십시오. 그 정도의 목적으로는 충족하리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현재로 필자의 모든 자료를 홈페이지에 입력하는 문제를 계속 노력하는 중에 있습니다. 완료되지 않았지만 홈페이지 www.ncbc.or.kr을 활용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04. 7. 30.

저자 지영근 목사

 


제 1 과 선민의 고난과 번성 (출1:1-22) 목록으로


지금부터 출애굽기에 기록된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우선 1장 전체를 읽으십시오.

① 1-7은 “애굽에 도착한 선민의 수와 번성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었고, ② 8-14에서는 “애굽의 왕이 선민을 의식하여 괴롭히는 내용”이며 ③ 15-22은 “산파가 선민의 아들들을 출생 위기에서 건진 내용”입니다. 따라서 전체의 내용을 종합할 때 “선민의 고난과 번성”으로 정할 수 있습니다.

1. 애굽에 도착한 선민의 수와 번성에 대한 말씀(1-7절).

1)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있으면서 가나안 땅에서 흉년으로 고생하는 아버지와 형제들의 가족을 애굽으로 초청하여 야곱의 부족들이 다 애굽으로 오게 되었으니(창 45:13. 46:1-27) 이는 야곱의 할아버지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예언하신 바대로 된 것이고,(창 15:13) 또 흉년에 선민을 보존하시기 위한 특별 은혜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이 요셉을 애굽에 보내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창 45:7).

2)애굽에 도착한 이스라엘(야곱)의 아들들의 이름은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레아가 먼저 낳은 아들들), 잇사갈, 스블론(레아가 나중에 낳은 아들들), 벤야민(라헬이 마지막에 낳은 아들), 단, 납달리(라헬의 여종 빌하가 낳은 아들들), 갓, 아셀(레아의 여종 실바가 낳은 아들들), 그리고 가나안 땅에서 오게된 요셉까지 야곱의 혈속으로서의 수가 70명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70명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창 46:8-27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3)그런데 행 7:14에 보시면 요셉이 야곱 가족을 “초청한 수는 75명이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5절의 70인은 애굽에 도착한 야곱의 혈속이라 하셨은즉 배우자나 종은 혈속이 아니니까 숫자에 착오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혈속 이외의 배우자나 종까지 합치면 70명이 훨씬 넘는 수가 애굽에 왔다고 보셔야 할 것입니다.

4)6-7절의 말씀은 “요셉과 그 모든 형제와 그 시대 사람들이 다 죽은 후”이므로 상당한 세월이 지난 후였고, 그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생육이 중다, 번식, 창성하여 심히 강대한 부족으로 온 땅에 가득하였다”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복 주시고 예언하신 대로(창 17:6, 46:3) 성취된 것입니다.

2. 애굽의 왕이 선민을 의식하여 괴롭히는 내용(8-14절).

1)9절에 보시면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나라를 다스리고 선민을 핍박하였는데 그 왕이 누구일까? 하는 것은 역사학자들에게 맡김이 좋을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의 애굽왕은 “투트 모세 1세”(바로)라고 합니다만 연대 계산의 정확한 역사적 근거를 찾기 힘듭니다.

2)애굽왕은 “선민이 번성한 상태에 있고 또 강한 것을 의식하였으며 혹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스라엘 족이 그 대적의 편이 되어 애굽을 이기고 탈출하여 노예 신세를 면하게 된다면 큰일이라” 생각하였고, 어떤 단결 행사도 나타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선민들 위에 감독자들을 세우고 바로를 위한 국고성인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는 일에 무거운 짐을 지게 하여 괴롭힌 것입니다(10-11절).

3)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학대 중에도 여전히 번성하고 창성하므로(12절) 애굽인들이 근심하여 노역을 더 심하게 시켰고,(13절) 심지어는 “생활을 괴롭게 하여 흙 이기는 일과 벽돌 굽는 일과 농사일에까지 책임을 추궁하며 고통을 가중시켰다”고 하였습니다(14절).

3. 산파가 선민의 아들들을 출생 위기에서 건진 내용(15-22절).

1)고역 정도로는 이스라엘 족의 수가 줄지 않음을 안 바로왕이 선민의 번성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히브리인(아브라함의 후손을 뜻함) 산파 “십브라”와 “부아”에게 시켜서 히브리 여인들을 위하여 산파 역할(助産)을 할 때 “남자아이이면 죽이라”고 하였습니다(15-16절).

2)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왕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즉(17절) 왕으로부터 문책을 받게 되었고(18절), 문책을 받을 때 대답하기를 “히브리 여인은 건장하여 산파가 이르기 전에 이미 해산을 하였기 때문이라”(19절)고 하였습니다. 이 대답은 진실이 아닌 핑계에 불과하지만 산파들의 믿음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산파들은 왕명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랐으니 이는 왕명이라도 선과 의와 신앙 양심에 위배되면 불복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하여 당하게 될 핍박은 하나님의 보호 섭리에 맡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호하실 수도 있고(단 6:21-22), 핍박적 고난 또는 장렬한 순교의 길로 인도(행 7:59-60)하실 수도 있습니다.

3)“하나님은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셨다”고 하셨습니다(20절). 하나님은 성도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생명을 걸고 불의를 거절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선민을 번성, 강대하게 하셨고, 또 산파들의 집을 왕성하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21절). 산파들의 행위가 신앙적이고 선하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신 반면에 “바로에게 거짓된 핑계를 한 일”에 대하여는 간과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시 32:1).

4)산파에게 명한 일이 효력있게 실천되지 않자 바로왕은 강경책을 써서 “히브리 여인이 남자를 출생하였을 때는 그를 하수에 던져 없애도록 명을 내렸다”고 하였습니다. 22절에서 “모든 신민”은 히브리인 즉 야곱의 가족을 의미한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바로왕의 악한 행위는 마귀의 역사를 연상할 수 있고, 산파들의 믿음과 용기는 오늘의 성도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며 생명을 걸고 의를 지킴에 있어서 다소간 진실치 않은 표현을 한 것이 정당화 될 수는 없지만 성경은 그 일을 나타내시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의 용기와 믿음을 보시고 복을 내려 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이 선민에게 번성의 복을 주시면 인간의 제재가 효력이 없다는 것과 또 환난과 고난 중에서도 여전히 발전한 것을 알 수 있으며 또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복을 주실 때는 바로같은 강한 악의 역사도 선민의 번성을 막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 2 과 모세의 80년 생애 (출2:1-25) 목록으로


이 본문은 “모세의 80년 생애”에 관한 기록입니다. 따라서 제목을“모세의 80년 생애”로 정하였습니다. 내용을 분류하면 ① 1-9절은 “모세의 출생과 양육 받음”에 대한 말씀이고, ② 10-15절은 “모세의 애굽 왕실의 생활”이며 ③ 16-22절은 “모세의 미디안 광야에서의 생활”이고, ④ 23-25절은 “하나님이 선민을 권면하시기를 시작하심”입니다.

1. “모세의 출생과 양육 받음”에 대하여(1-9절).

1)1-4절에 보시면 “레위 지파중 남녀가 결혼하여 준수한 아들을 출산하였으나 바로의 명을 어기고 석달을 숨겨 키웠지만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으므로 갈대 상자에 역청(아스팔트용 기름)과 나무진을 칠하여 물새지 않는 배를 만든 후 거기에 아기를 담고 갈대 사이 하수에 띄운 후 그 아이의 누이인 미리암(출 15:20)으로 하여금 멀리 서서 지켜보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2)“그때에 애굽 바로왕의 딸 공주가 시녀들과 함께 하수가에 와서 거닐다가 그 갈대 상자를 보았고, 그것을 가져다가 열고 본즉 어린 아이가 우는지라 그가 히브리인의 아이임을 알고 불쌍히 여길 때에 그의 누이 미리암이 바로의 딸에게 유모를 구하여 드릴 것을 청원하여 허락을 받고 아이의 어머니를 유모로 소개하여 젖을 떼기까지 삯을 주고 키우게 하였다”고 하셨습니다(5-9절).

3)이 말씀에서 저희들은 모세 부모의 용단과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 섭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모세가 어려운 때에 출생하였으나 그 부모의 믿음과 용기로(히 11:23) 석달을 키우고 갈대 상자에 넣어 강물에 띄운 것이라든지, 공주 일행이 와서 발견한 것과, 또 그가 히브리인의 아이임을 알고도 불쌍히 여긴 것과, 곁에서 보고 있던 아이의 누이가 유모 알선을 제의하고, 그 아이를 낳은 어머니를 소개하여 키우게 한 사실”은 하나님의 특별 섭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2. “모세의 애굽 왕실의 생활”에 대하여(10-15절).

1)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이 그를 왕궁으로 데려갔고 양자를 삼았으며 그 이름을 “모세”(건져낸 뜻)라고 하였습니다(11절).

2)12절에 보시면 “모세가 장성한 후”란 말씀이 있는데, 이때에 애굽인을 죽이고 미디안으로 도망한 사건이 생깁니다. 그때가 언제쯤일까요? 행 7:30에 보시면 “미디안에서 40년을 지냈다” 하였고, 또 행 7:7에서 “바로왕 앞에 설 때는 80세라”고 하였으므로, 젖먹이는 기간에 유모의 손에서 자란 후 왕궁에 와서 자란 기간까지 40년, 미디안 광야의 생활 40년, 출애굽 노정 40년으로 120세에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신 34:7).

3)모세가 40세 되었을 때 애굽 사람이 형제 히브리인을 때리는 것을 보고 주위에 사람이 없는 기회를 타서 그 애굽인을 죽여 시체를 모래에 감추었는데(11-12절) 이튿날 또 히브리인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그 잘못하는 자(그른 자)에게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한즉 그가 “누가 너를 주재(主宰)와 법관을 삼았느냐”하면서 전날 모세가 애굽 사람 죽인 것을 드러낸 것이었습니다(13-14절).

4)이 사실이 바로에게 알려지자 바로는 국법대로 살인자를 죽이기 위하여 찾았고, 모세는 그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므로(15절) 왕궁 생활 40년을 끝냈습니다.

이상의 과정은 자세한 설명이 없어도 상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디안”은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소생 이름으로(창 25:2) 그 족속들이 사는 지역인바 그 위치는 시내산이 있는 시나이반도 동남쪽으로 추측됩니다. 모세가 그 곳 시내산 밑에서 양을 치다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3:1). 지도상에 나타난 “미디안”은 시내산 지역에서 동쪽에 있는 아카바만을 건너간 아라비아 땅을 지적합니다만 여하튼 모세 당시에는 시내산 근방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3. 모세의 미디안 광야에서의 생활(16-22절).

1)모세가 미디안(이곳은 시나이 반도 동쪽,갈대바다 건너편,현재 아라비아 땅임,삿1:16)에 도착하여 한 우물가에 앉았을 때(15절) 그 곳 제사장 “르우엘”의 일곱 딸들이 그 곳 우물물을 퍼서 양들에게 먹이려 할 때 다른 목자들이 그 딸들을 쫓으며 훼방하였을 때 모세가 도와주므로 속히 물먹이는 작업을 끝내게 하였고(16-17절), 이 사실이 르우엘에게 알려지므로(18-19절) 그 딸들이 모세를 다시 찾아와서 아비의 집으로 인도하여 대접하게 되었습니다(20절).

2)이 때에 모세는 그 집의 일을 도우며 있기를 원하였고, 르우엘 제사장은 딸 “십보라”와 결혼을 시켜 살게 한 즉 아들을 낳아 “게르솜”(나그네됨)이라고 하였습니다.

3)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스러운 것은 “르우엘”의 종교입니다. 또 “르우엘”은 하나님의 친구란 뜻으로, “이드로”(유명함)란 별명도 갖고 있습니다(3:1). 한 사람이 두 개 이상의 이름을 갖는 것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아브람, 아브라함, 야곱, 이스라엘, 에서, 에돔, 시몬, 베드로, 사울, 바울 등). 또 성경에는 “후손을 아들들”로 표기한 곳도 있습니다(시 86:16, 사 45:11 등). 후손과 아들들은 다 같은 뜻입니다. “르우엘”이 어떤 제사장인가? 하는 것은 잘 알기 어렵지만 “미디안”족 조상이 아브라함의 후처의 아들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세가 그 집에서 불편없이 40년을 산 점과 출애굽 노정 중에 “이드로”가 그의 이름의 뜻처럼 하나님을 최고의 신으로 섬기며 모세를 도와준 사실을 볼 때(출 18:9-12) “공통성이 많은 여호와 종교에서 선민과 같은 종교로 일치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4. 하나님이 선민을 권념하시기를 시작하심(23-25절).

1)23절의 “여러해 후”란 모세의 미디안 생활 40년이 지난 후입니다. “그 어간에 모세의 생명을 찾던 왕이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계속되는 고역으로 탄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는데 이 부르짖음과 고통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자손들을 권념하셨다”(23-25절)고 하셨습니다.

2)애굽의 선민들은 고난이 심한즉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뜻으로 부르짖은 것이고,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기도)를 들으시고 권념(은혜를 베푸심)하시게 되었지만 이 사실은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약속하신 예언을 이루어가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400년 후에는 나와야 하니까요(창 15:13-14).

이상의 말씀에서 모세 부모의 믿음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모세를 쓰시기 위하여 특별한 방법으로 보호, 연단, 인도하신 섭리와 약속을 이행하시는 하나님의 진실성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제 3 과 선민 구원의 시작 (출3:1-22)목록으로


본문부터 선민 구원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1장은 “선민의 고통스러운 생활”이고, 2장은 “모세의 80년 생애”요, 3장부터 선민 구원이 시작되는 말씀인데 이 사역은 창 15:16(4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의 예언이 성취되는 일입니다. 내용을 분류하여 상고한다면 ① 1-4절은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심”이요, ② 5-10절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며 ③ 11-15절은 “모세에게 확신과 용기를 주심”이고, ④ 16-18절은 “모세의 할 일을 명하심”이요, ⑤ 19-22절은 “하나님의 섭리적 예고”입니다.

1.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심(1-4절).

1)1절에서 “모세가 그의 땅인 이드로(미디안 제사장. 2:15에서 설명됨.)의 양무리를 치면서 미디안 광야 서편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고 하셨습니다. 이 시기는 모세의 나이 80세 때였으니 상당한 연단이 있은 후에 하나님이 쓰신 것입니다(출 7:7). “이드로”와 르우엘(출 2:18) 그리고 미디안족의 근원과 분포지역 및 종교에 대한 것은 앞장에서 설명 드렸습니다. “호렙산이 광야 서편에 있음”은 모세의 원 거주지가 호렙산 동편 아카바만에 인접한 광야였음을 상상하게 하며, 또 그 산을 “하나님의 산”이라 하신 것은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기 위하여 임재한 곳으로 그 지역을 거룩하게 성별하셨기 때문입니다(5절).

2)2-3절에서 “하나님이 떨기나무가 타지 않는 불꽃 중에 사자로 나타나시니 모세가 이 광경을 목격하였고 타지 않는 불꽃을 보고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까이 갔다”고 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이 자기를 나타내시기 위한 방법임과 동시에 모세의 관심을 이끌어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시는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영으로 존재하신즉 자신을 사람에게 나타내시려면 간접 방법을 쓰셔야 하는데 그 방법이 만물의 역사나 말씀, 또는 사자(천사)를 통한 대리 표현입니다. 대리 표현중 천사보다 더 확실한 표현은 예수님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떨기나무”는 원문의 “세네”이고, 영어로는 Bush인데 크게 자라지 않는 덤불같은 나무라고 합니다. 호렙산 앞 카타리나 수도원 담 옆에 그 나무가 기념목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문제는 왜 그 나무에 불꽃으로 나타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불은 쉽게 발견되는 것이고, 타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말씀 계시를 목적으로 모세의 관심을 끄는데만 쓰신 것입니다. 3절에서 모세는 이 광경을 발견하였을 때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않는고”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모하고 관심 가질 때 나타내 주십니다(시 107:9).

3)4절에서 하나님은 모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셨고 떨기나무 가운데(불꽃중)서 “모세야 모세야” 하시므로 그 이름을 부르셨으며, 모세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고 대답하였으니 이것이 하나님과 인간과의 대화였습니다. 모세 시대에는 완성된 말씀계시가 없었으므로 수시로 주시는 말씀 계시에 의존하였지만 지금은 완성된 성경 계시로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기도로 대화하며 하나님은 항상 성도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2.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신 말씀(5-10절).

1)6절에서 “네가 섰는 땅은 거룩한 땅이니 가까이 하지 말고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땅이 거룩한 것은 하나님이 직접 임재 하시므로 성별 되게 하셨기 때문이요, 또 불순한 세력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간수하시는 뜻이고(하나님의 임재가 떠나신 후에는 거룩하지 않음), “모세를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심”은 인간이 부정하므로 자기를 살피는 기회를 주심이요, “발에서 신을 벗게 하신 뜻”은 깨끗한 장소에 신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인간의 불결성을 나타내지 않도록 성결에 힘쓰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귀인을 만날 때 단정함과 예절을 갖춤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가까이 모실 때도 예절에 앞서 순결이 중요한 것입니다. 또 같은 절에서 하나님은 자기를 소개하실 때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 신분을 알리시는 의미와(딤후 2:13) 그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사실이 유효함을 알리시는 뜻과 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개인적으로 관계를 맺어 통치하신 사실을 상기시키는 말씀입니다. 약 400년 전의 조상과의 관계를 깨우치신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 뵙기를(가까이 대하는 뜻)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운 것”은 놀라운 광경에 접하여 두려워한 태도였습니다.

2)7절에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9절에서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셨다고 하셨음) 그들이 그 간역자(일을 시키는 감독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안다” 하시고, 8절에서 “내가(하늘 보좌에서)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비옥함을 뜻함)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한다”하시므로 선민의 고통을 감찰하시고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바를 이행하실 뜻을 나타내셨고(창 15:16), 또 인도하실 목적지까지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는 6 족속만 말씀하셨으나 신 7:1에서는 “기르가스족”을 포함하여 7 족을 말씀하셨고, 창 15:18-21에서는 10 족속의 지역을 거론하셨습니다. 가나안은 함의 4남이고(창 10:6), 헷과 아모리와 히위는 가나안의 아들입니다(창 10:15-16). 브리스족과 여부스족은 가나안족과 함께 거주하였으나 그 근원을 말씀한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선민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의 지역 설명은 수 1:1-4과 수 15:-20:에 기록되었습니다.

3)10절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나오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바로왕은 애굽의 18왕조 투투모세 1세 쯤에 해당한다고 합니다(기독교 신앙 백과의 출애굽기 개론 참조). 하나님이 뜻을 베푸시고 모세를 쓰시고자 하셨은즉 그 뜻대로 목적을 이루실 것입니다.

3. 모세에게 확신과 용기를 주심(11-15절).

1)11절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목자의 신분일 뿐 능력자가 아니라는 뜻)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였으니 당연한 질문이며 모세가 40년 전에 왕궁에서 살았다는 이유로 바로왕 앞에 설 특권이 있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2)이때에 하나님은 12절에서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시므로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하시면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큰 일도 이룰 수 있음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이 뜻은 “힘으로도 못하고 능으로도 못하되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 되느니라”하신 말씀과(슥 4:6) “너희가 믿음만 있으면....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라”(마 21:21)하신 말씀과 같은 뜻으로 믿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어떻게 함께 하시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보호와 인도의 차원, 또는 능력의 차원으로 쓰시는 섭리에 따라 일할 수 있을 것인데 “모세와 함께 하시겠다”는 뜻에는 이상 세 가지 의미가 다 표함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호렙산과 시내산은 지리적으로 구별하기 어려움. 신 1:1-2, 출 20:1-17)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율법 선포로 계율을 주심)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라” 하셨으니 이는 믿고 순종하면 그 다음에 증거의 결과가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모든 성도들도 먼저 믿고 순종한 후 뒤이어 나타나는 결과로서 확신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시작하여 더 큰 확신에 이르는 것입니다.

3)13절에서 모세가 자기의 동족들에게 이 사실을 고하였을 때 “조상의 하나님 그 분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면 무엇이라 말하리이까” 하였으니 그 당시에 신을 숭배하는 자들이 대부분 신의 이름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바알신, 아세라신도 그 이름임) 예측 가능한 질문이었습니다. 이 때에 하나님께서는 14절에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요”(피조물이 아니란 뜻)....또 15절에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록할 나의 표호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를 살피면 최초부터 노아의 시대까지 “하나님”으로 기록되다가 창 11장 6,8,9절(바벨탑 시대)과 12:1,4(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여호와”란 성호가 나타납니다. 따라서 이 성호는 아브라함에게도 알려진 것이요, 출애굽때 처음 나타내신 것이 아닌 만큼 아브라함이 섬기던 그 하나님을 증명하기 위하여 나타내신 이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호칭은 “야외”로서 언약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고유적 표현입니다. 인간들과 인격적으로 대하시는 하나님이신즉 이름을 나타내심이 필요하였을 것이고, “영원한 이름이 됨”은 하나님이 영원하시기 때문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란 아브라함 때부터 알려진 이름이므로 그 후손들도 반드시 그 하나님을 잊지 않고 잡신들과 구별하여 기억하며 섬겨야 할 것을 교훈하시는 뜻으로 “표호”라고 하신 것입니다.

4. 모세의 할 일을 명하심(16-18절).

1)16절에서 “너는 가서 이스라엘 장로(선민의 원로)들을 모으고 조상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실로 너희를 권고하여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7절의 뜻과 같음), 17절에서 “내가 말하였거니와....올라가게 하리라” 하신 부분은 창 15:16-21의 말씀을 약 500년 후에 성취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어떻게 말할 것까지 자세히 지도하셨고,

2)18절에서 “그들이 네 말을 들을 것이라” 하셨으며,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제사로 섬기는 뜻)을 드리려 하오니 사흘 길쯤 광야로 가기를 허락하소서 하라”고 하였습니다. 요즈음도 이스라엘 민족이 “팔레스틴땅은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주신 땅이라”고 성경을 근거로 주장한다고 합니다. 신의 뜻이라는 명분보다 더 강한 것은 없습니다. 바로에게 청한 근거도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민족의 해방을 목표로 출애굽하는 일을 “3일길 광야에 나가서 희생을 드리려한다”는 명분은 거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 사건은 실제로 가능한 일로서 계획을 고한 것이므로 거짓이라 할 수 없고, 다만 그 이상의 내용을 숨긴 것뿐입니다. 전체의 목적은 단계적으로 청할 것이었으므로 거짓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명하신대로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소질을 이용하시고 노력도 요구하시지만 때로는 기계적으로 순종하게도 하십니다.(마 8:9)

5. 하나님의 섭리적 예고입니다(19-22절).

1)19절에서 모세가 바로에게 요청할지라도 “하나님이 강한 손으로 그들을 치시기 전에는 애굽왕이 자기를 허락지 않을 것이라” 하시므로 그의 강퍅성을 미리 예견하셨고,

2)20절에서 “하나님이 손을 들어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애굽)을 친 후에라야 선민을 보낼 것이라”하시므로 미래의 역사를 예언하셨으며

3)21절에서 “선민이 애굽인들로부터 은혜를 힘입도록 하셔서 빈손으로 나오게 되지 않을 것”과

4)22절에서 “여인마다 그 이웃 및 자기 집에 우거 하는 자(한 집에 사는 애굽인들)에게 은,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그들의 자녀를 꾸미라” 하셨고, 이로서 “애굽인의 물품을 취할 것이라” 하시므로 바로왕의 완악을 단계적으로 꺾으신 후에 선민이 해방될 것과 상당한 재물을 호의적 선물로 받아 갖고 나올 것까지 예언하시고 섭리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성도들의 앞길을 인도하시는 일과 성도의 재물 취하는 일을 섭리하시는 줄로 믿으셔야 할 것입니다(마 6:8,32).

 

제 4 과 모세가 선민을 만나기까지 (출4:1-31)목록으로


출애굽기 4장을 4 대목으로 나누어 살필 수 있는데 ① 1-9절은 “모세에게 능력을 약속하심”이요, ② 10-17절은 “모세에게 증거 대책을 베푸심”이며 ③ 18-23절은 “모세의 출발과 바로에게 할 말을 주심”이요, ④ 24-31절은 “할례와 백성을 만남”입니다. 따라서 이 내용들은 “모세가 자기 백성들을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1. 모세에게 능력을 약속하심(1-9절).

1)1절에서 모세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먼저 자기 동족들에게 알릴 때 그들이 듣지 않을 것(믿지 않고 협력하지 않음)을 염려한즉 하나님께서는 비상한 능력을 보여주므로 그들로 믿게 하실 방책을 주셨으니 곧 지팡이로 뱀이 되게 하는 것과 문둥병이 발하는 것과 하수로 피가 되는 이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2-9절)

2)2절에서 능력을 나타내 주시는 방법의 과정으로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셨고, 모세가 “지팡이니이다” 하였을 때 “그것을 땅에 던지라”하여 던진즉 그것이 뱀이 되어(모세가 놀라) 그 뱀 앞에서 피한즉 또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하셔서 그대로 한즉 다시 손에 잡은 지팡이가 된 것입니다(2-4절). 이 사건의 의미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이적이나 능력을 나타내실 수 있음을 실제로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창조 과정을 연상할 수 있음. 창 1:20-21, 2:19). “지팡이로 뱀이 되게 하신 것”은 이미 갖고 있는 것, 즉 받은 것을 능률 있게 활용하도록 하시는 뜻이요, 그 방도로서는 “있는 것(받은 것) 그대로를 시인하고 하나님의 말씀 따라 순종하는 일”이었습니다. 지팡이의 성격은 양치는 도구요, 신체 의존 기구로서 필요한 것이지만 “던지라”하실 때 던질 수 있어야 하고, 또 뱀꼬리를 잡는 일이 섬뜩한 일이지만 “잡으라”하실 때 잡을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야 할 이유는 그 과정을 통하여 이적을 나타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기계적으로 순종하는 자임을 확인하셨을 것입니다. 지팡이가 능력의 상징이라면 뱀은 사탄의 상징입니다(계 12:9). 따라서 하나님은 능력을 주시는 일과 사탄의 역사를 방치하시는 일을 임의로 주관하실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5절에서 하나님이 이런 능력을 보여주신 목적이 “그들(동족)로 하여금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가 나타나신 사실을 믿게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3)6-7절에서 비슷한 방법으로 “문둥병이 발하는 상태”를 보여주셨으니 이는 8절에서 “처음 이적의 표징을 받지 않아도 둘째 이적의 표징을 믿을 것이라” 하셨고, 또 9절에서는 두 번째 이적도 믿지 않을 때 “하수를 조금 취하여 육지에 부으면 네가 취한 하수가 육지에서 피가 될 것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본래 하나님의 실존을 믿지 못할 때는 이적을 통해서 믿는 경우가 있음을 전제로 나타내주신 것입니다. 지팡이가 뱀이 되고 저절로 문둥병이 발생하며 하수가 피로 변하는 것은 다 하나님의 특별 섭리로 나타내시는 일입니다. 요즈음처럼 의술이 발달한 시대에도 에이즈, 사스, 조류독감 등 희귀한 질병들이 나타나는 것을 볼 때 이것들도 다 하나님의 특별 섭리로 발생하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2. 모세에게 증거 대책을 베푸심(10-17절).

1)10절에서 모세는 자신이 동족을 설득하거나 바로왕 앞에서 말할 때 구변의 자신이 없음을 알았으니 “본래 말에 능치 못하였고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중 하나님의 명을 받은 후에도 그러하다”고 하였습니다.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다”함은 발음에 문제가 있는 듯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지팡이로 능력을 나타내 주셨으나 말의 능력은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명하신 후에도 언어력은 여전히 둔하다”고 한 것입니다.

2)이 때에 하나님께서는 11절에서 “누가 사람의 입을 짓고 벙어리, 귀머거리, 눈 밝은 자 또는 소경이 되게 한 줄 아느냐 나 여호와니라” 하시고,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사람이 건강한 것과 불구된 상태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였음과 “입과 함께 하여할 말을 주신다” 하심은 어려운 상황에서 말의 지혜를 주시는 뜻도 있고(마 10:19), 또 말씀을 계시로 나타내시는 영감의 뜻도 있음을(벧후 1:21, 딤후 3:16) 아셔야 할 것입니다.

3)13-16절에서 모세가 (구변 부족을 이유로)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하였을 때 하나님이 노를 발하시고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의 말 잘 함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나올 것을 확신, 강조하시는 뜻) 그가 너를 볼 때 마음에 기뻐할 것이라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 입에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칠 것이라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 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말을 잘 하도록 하시지 않고 구변에 능한 모세의 형 “아론을 쓰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여러 사람이 받은 은사를 조합하여 쓰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리고 아론이 그 사실을 기쁘게 받아 대행할 것도 아셨으니 역시 그에게 그런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주신 말씀의 영감이 아론에게 전달되면 하나님이 아론의 입과도 함께 하시고, 또 “계시의 말씀 나타내는 자를 하나님 같이 되게 하신다” 하시므로(요 10:35) 말씀 증언자의 권위를 높여 주실 것과 증언하는 말씀(또는 성경 계시)에 오류가 없을 것에 대하여서도 증언하심이 되는 것입니다.

4)17절에서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라” 하셨으니 이 지팡이가 모세가 갖고 있던 것인지(2절) 아니면 20절에서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다” 하였은즉 새롭게 주신 것인지는 상상해 볼 일입니다. 어떤 지팡이 이든지 하나님이 능력으로 쓰시는 것이면 하나님의 지팡이가 될 것입니다.

3. 모세의 출발과 바로에게 할 말을 주심(18-23절).

1)18절에서 모세는 그의 장인 “이드로”에게 애굽에 가도록 승낙할 것을 요청하였는데 이는 예절상 당연한 일이고, 다만 하나님의 선민 구원의 뜻을 말하지 않고 “동족의 생존 여부를 알려한다” 하므로 민감한 문제를 비밀로 하였으니 이것은 정보 유지상 필요하였을 것입니다. 이드로는 모세의 청원에 “평안히 가라”고 승낙하였습니다.

2)19절에서는 “하나님이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생명을 찾던 자가 다 죽었다” 하시므로 모세는 그 아내(십보라)와 아들들(게르솜, 엘리에셀. 출 18:2-4)을 나귀에 태우고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출발하였습니다(20절). 혼자 가지 않고 처자들을 데리고 떠난 것입니다.

3)이 때에 하나님께서는 바로 앞에서 행할 일과 할 말과 될 일을 또 가르쳐 주셨습니다. 행할 일은 21절에서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는 것이었고, 될 일은 “그러나 내가 그의마음을 강퍅케 한즉 그가 백성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요, 할 말은 22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23절에서 이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해방시키는 것)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상당 기간 바로를 강퍅하게 하시는 일과 선민을 “아들 및 장자”로 호칭하신 의미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하나님은 완고한 자를 쉽게 꺾으시는 경우도 있지만(단 5:6, 행 9:8-9) 점차로 또는 단계적으로 유화 시키시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깨달음도 주시고 징벌도 하시며 징벌의 피해를 줄이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족속을 천천히 쫓아내게 하시는 것(출 3:30)도 그런 뜻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과정을 다른 목적으로도 이용하십니다(전 3:1, 마 21:42). 또 하나님이 선민을 “내 아들 내 장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들이란 의미는 하나님과 선민과의 관계를 부자 관계로 나타내신 것이고, 장자의 의미는 하나님의 영광의 기업을 받을 자란 뜻입니다. 따라서 아들은 권속의 의미이고, 장자는 영광을 계승받을 백성이란 뜻입니다.

4. 할례를 받음과 백성을 만남(24-31절).

1)24절에서 하나님이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 죽이려고 하셨습니다. 이 상태는 모세가 생명의 위협을 받은 것을 뜻합니다. 천사가 죽이려 하였는지 혹은 위급한 질병에 처하였는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왜 그런 위험을 주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2)25절에서 이 때에 그의 아내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칼의 용도) 그 아들(게르솜)의 양피를 베어(할례를 행한 뜻)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면서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남편이라”한즉 26절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놓으셨고(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남), “피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짐작컨대 아들의 할례를 십보라가 불순종으로 시행하지 않으려 하므로 하나님이 모세를 치신 듯 합니다. 결국 십보라가 위험을 극복하기 위하여 할례를 시행하였으나 신앙적 갈등(또는 차이)을 인하여 동행을 거절하고, 아내와 두 아들을 장인의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출 18:1-6을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할례는 선민들에게 엄중히 명령되어 있는 것입니다(창 17:10-14, 출 12:44-48).

3)2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있는 아론에게(계시의 말씀으로) 이르시되 “광야에 가서 모세를 맞으라” 하셔서 그가 마중 나와 하나님의 산(호렙산: 출 3:1,5)에서 모세를 만나 입을 맞추었으니 이는 먼저 모세를 부르신 그 장소에서 아론을 만난 것이고, 여기서 모세는 그 동안의 모든 과정을 아론에게 고한 것입니다(28절).

4)29-31절은 “모세와 아론이 애굽에 가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장로들을 모이게 하고(29절) 아론이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신 모든 말씀을 전한 후 백성 앞에서(모세로 하여금) 이적을 행하여 보이니(30절)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선민을 돌아보시고 그 고난을 감찰하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하나님께 경배하였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대로 시행하여 1차로 자기 동족을 일깨워 단합이 된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교훈을 요약하면

1. 하나님이 사명을 주시면 무조건 순종하여야 한다는 점,

2. 하나님은 사명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실 때 당사자의 요청에 따라 주시므로 확신과 용기를 갖고 일하게 하신 점이며

3.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의 입으로 전달되든지 능력 있는 말씀이란 점과

4. 모세 혼자 일하게 하시지 않고 아론에게도 계시와 감동을 주셔서 협력하게 하신 사실을 알 수 있고,

5. 모세를 위협하신 사실에서 두 가지 결과(할례와 아내를 돌려보낸 일)가 나타난 것은 하나님의 사역에 앞서 불신앙과 갈등을 먼저 해결하게 하신 점이며

6. 선민이 이방 세력에서 나올 때 우선적으로 선민의 단합이 있어야 함을 교훈 하신 것입니다.

 

제 5 과 바로에게 처음 나아감 (출5:1-23)목록으로


4장까지는 모세와 아론이 바로왕에게 나아가 말할 수 있는 담력과 내용 등 준비를 시킨 말씀이고, 5장에서는 직접 바로왕과 대면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함과 그 결과에 대한 내용”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총 제목을 “바로에게 처음 나아감”으로 정하였습니다. ① 1-3절은 “하나님의 말씀(뜻)을 전한 내용”이고, ② 4-9절은 “바로왕의 답변”이며 ③ 10-14절은 “더 학대함”이고, ④ 15-18절은 “선민의 패장들이 왕께 호소함”이요, ⑤ 19-21절은 “선민의 패장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항의함”이며 ⑥ 22-23절은 “모세의 기도”입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내용(1-3절).

1)1절에서 모세와 아론이 바로왕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라” 전한즉 2절에서 바로왕이 거절하자, 3절에서 다시 말하기를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사흘 길쯤 광야에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가기를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온역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선민을 “내 백성”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복된 것입니다. “절기를 지킨다”함은 선민의 출애굽이 유월절로부터 시작하였은즉(출 12:43-51), 그 행사를 마음에 두신 말씀이고, “광야에서 희생을 드림”은 출애굽 시초에 주신 유월절 규례가(12:43) 제사의 성격으로 7일 동안 계속 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요(13:6-10), “사흘 길쯤”이란 왕궁 도성에서 광야 쪽으로 떨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출애굽 과정 초기에 반드시 있어야 할 일이므로 그 시작 과정에 있을 일을 요청한 것입니다. “히브리인의 하나님”이란 그들이 아브라함(건너온 민족:히브리의 뜻)때부터 섬기는 하나님을 뜻하고, 그 당시에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복종하지 못할 때 “여호와께서 온역(전염병)이나 칼(전쟁)로 치실 수도 있음”을 믿고 두려워하였습니다(3절).

2)그러나 2절에서 바로왕은 완고하였습니다. “여호와가 누구관데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않으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권세 있는 왕이 430년(출 12:40, 갈 3:17)간 노예로 부리던 백성을 쉽게 놓아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2. 바로왕의 답변(4-9절).

1)4절에서 바로왕은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으로 역사를 쉬게 하느냐 가서 너희의 역사나 하라” 하였고, 또 5절에서 “이제 나라에 이 백성(이스라엘 민족)이 많거늘 너희가 그들로 역사를 쉬게 하는도다” 하므로 백성의 수가 많으므로 그 수의 힘을 믿고 명을 거역하려 한다는 뜻으로 지적한 후

2)6-7절에서 “당일에 백성의 간역자(일을 맡아 주관하는 책임자)들과 패장(인부를 거느리고 감독하는 사람)들에게 명하기를 다시는 벽돌 소용의 짚을 전과 같이 주지말고 그들로 가서 스스로 줍게 하라”, 8절에서 “또 전에 만든 벽돌의 수효대로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 그들이 게으르므로 소리 절러 이르기를....우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자 하나니 9절에서 그 사람들의 고역을 무겁고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 하였으니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한다”함은 간역자들과 패장들이 노역하는 사람들로부터 꾀부리고 쉬기 위한 목적으로 거짓말(광야에 나가 희생을 드린다는 요청)하는 것을 듣지 않게 하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공동 번역은 “눈코 뜰새 없이 일을 시켜 허튼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겨를을 주지 말라”고 번역하였습니다. 후자의 번역보다 전자의 설명이 더 합당하다고 봅니다.

3. 더 학대함(10-14절).

1)이 말씀은 바로왕의 명을 받은 간역자들과 패장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명을 전하고 짚을 주지 않은 상태에서 정량의 벽돌을 만들게 하는 내용입니다. 짚은 흙벽돌을 만들 때 흙과 함께 반죽하여 벽돌을 더 견고하게 하는 것입니다.(10절)

2)그런고로 11절에서 “너희는 짚을 얻을 곳으로 가서 주우라(스스로 짚을 구하여 벽돌을 만들라)” 한즉 12절에서 “백성이 애굽 온 땅에 흩어져 곡초 그루터기를 거두어다가 짚을 대신 하였고”, 13절에서 간역자들은 여전히 독촉하여 당일에 정량을 채우게 한 것입니다. 1883년에 네이빌 교수가 애굽의 라메세스 대제의 조각문을 발견하였는데 거기에 “라메세스가 비돔성을 건축하였다”는 글이 기록되어 있고, 1908년에는 카일 교수가 비돔성의 고적을 발견 그 벽을 깨뜨려 보니 맨 밑 부분은 짚을 섞어 구웠고, 중간부분은 곡초뿌리가 나왔으며 윗부분은 흙으로만 되어져 있었다 하므로 성경의 내용이 진실함을 증명하였다고 합니다.

3)14절에서 “바울의 간역자들(애굽 관원)이 자기들의 세운바 이스라엘 자손의 패장들을 때리며 벽돌 수효를 채우지 못함에 대하여 벌하고 학대를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패장들은 선민 중에서 간역자들이 뽑아 세운 책임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4. 선민의 패장들이 왕께 호소함(15-18절).

1)고역에 처한 패장들은 간역자들의 학대를 못 이겨 왕께 직접 호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5-16절에서 “패장들이 바로에게 어찌하여 종들을 이같이 하시나이까 종들에게 짚을 주지 않고 벽돌을 만들라 하나이다 종들이 매를 맞으오니 이는 왕의 백성(간역자들)의 허물이니이다” 한즉

2)17-18절에서 바로왕은 대답하기를 “너희가 게으르다 그 증거로 너희가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는도다 이제 가서 일하라 짚은 주지 않을지라도 벽돌은 의수히 마쳐야 한다”하므로 간역자들의 독단적 핍박이 아닌 왕 자신의 명임을 말한 것입니다. 따라서 노역자들은 간역자들의 핍박인줄로 오해하였으나 그것이 아님을 확인한 것입니다.

5. 패장들이 모세와 아론께 호소함(19-21절).

1)19절에서 이스라엘의 패장들은 짚을 주지 않으면서 벽돌 생산을 감하지 않는 것을 듣고, 화가 미친줄 알았으며, 20절에서 바로왕을 떠나 나오는 모세와 아론이 길에 선 것을 만나, 21절에서 “너희가 우리로 바로와 그 신하의 눈에 미운 물건(노예를 비하, 비인격화한 말)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화근을 일으켰다는 뜻) 우리를 죽이게 하지 않는가? 하면서 여호와는 너희를 감찰하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일시적으로 순탄치 않은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대로 하였으나 바로의 완악으로 야기된 것인만큼 이 모순에 대하여 동족의 지도자에게 항의함이 마땅하고 문제는 지도자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생긴 것입니다.

6. 모세의 기도(22-23절).

1)22-23절에서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바로왕 앞에서 자신이 기도하는 처소로 온 뜻) 고하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으로 학대를 당하게 하셨으며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습니까 내가 바로에게 주의 이름으로 말함으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치 아니 하셨나이다” 하고 기도로 호소한 것입니다. 기도는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이 아니고, 사실대로 고하는 것임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응답을 주실지 다음 장을 살펴야 하겠습니다.

 

설교보충 1. 출애굽 과정의 교훈 (출 5:1-9) 목록으로


“출애굽 과정의 교훈”이란 제목으로 상고하겠습니다.

1. 출애굽은 세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어내시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의미합니다. 죄인을 선택하여 구원하시는 일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민의 조상으로 선택하셨고(창 12:1-2), 그 후손들이 애굽에서 400년간 살 것과 그 자손들을 4대 후에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창 15:13-16). 그 예언의 때가 되매 하나님이 모세와 아론을 앞세우시고(출 6:26) 바로왕과 애굽 백성들에게 응징하는 능력을 나타내셔서 선민에게 주신 약속을 이행하신 것이 주전 1500년 경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입니다.

2. 중요한 것은 이 역사적 사실이 성경에 기록된 것은 역사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 계시가 포함된 것을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문자를 모르는 우둔한 백성들(옛날 사람들)에게 계시를 주실 때 잘 깨닫게 하시는 목적으로 비유, 상징, 모형적 방법으로 계시하신 일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을 소나 나귀로 비유하신 말씀(사 1:3), 또는 포도나무나 가시나무로 비유하신 말씀(삿 9:7-15),이 있고, 또 요나의 사건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비유하신 것과(마 12:39) 예수님을 어린양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양의 희생으로(사 53:7) 비유하신 것처럼 출애굽도 구별된 백성들이 세속을 떠나는 것으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애굽과 소돔성을 죄악의 도성, 복음을 대적하는 세계로 표현하셨습니다(겔 23:3, 계 11:8). 계 11:8을 보시면 애굽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곳”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민은 애굽 세계를 탈출하여야 하는 것이고, 광야 생활의 연단을 거쳐서 가나안 복지(천국:약속의 땅, 창 26:3, 28:13)에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저희들은 구약의 역사적 사건들을 영적 구원 사역의 계시로 이해하도록 힘쓰셔야 하는 것입니다.

3.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함에 있어서 노력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이고 명령이면 순종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 때에 어려운 명령도 순종하려고 하셔야 합니다. 백성이 왕 앞에 가서 큰 것을 요구하거나 거절당한 요구를 여러 차례 청원하는 것은 화를 자초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 불가능한 일을 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법궤를 메고 강물로 들어서라”는 것이나, “적은 수의 군사로 많은 군사를 대항하여 싸우라”는 것인데 이런 명령은 죽기를 각오하기 전에는 순종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은 순종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어려운 명령이라도 순종하려고 노력할 때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면....내 짐은 가볍다”하신 말씀이 그 뜻입니다(마 11:29-30).

4. 모세와 아론은 만일 하나님의 명령과 뜻대로 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온역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한다”고 한 것입니다(3절). 저는 이 말씀을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무슨 일이나 하나님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온역(질병)이나 칼(싸움)로 치실까 두렵다”는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한다면 주의를 더 하게 되고 어떤 유혹이 있을 때 그것을 피하게 되며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경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평범한 삶 속에서 질병이나 불화가 초래되었을 때 자신의 결함으로 그런 우환이 온 것은 아닌지를 반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반성과 우환의 결과가 맞는 경우도 많은 것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희들은 참으로 위험한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성실하게 사셔야 합니다.

5.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바로왕에게 사명을 이행하였을 때 바로왕은 더 완악해졌습니다. “여호와가 누구관대” 하면서 하나님을 멸시하였고,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을 더 괴롭게 학대한 것입니다. 바로왕의 입장으로 보면 자신과 애굽의 백성들이 벌 받아야 할 죄를 짖는 것이고, 선민들의 입장에서는 바로의 완악이 하나님께로 한 단계 나가는 신앙 연단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왕은 자기의 죄 값으로 재앙을 받고 굴복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이 잘 안 되어서 괴로움을 당한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 사실대로 고하는 기도의 기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시행하다가 안 되었을 때 “믿습니다” 하고 기도하는 것은 바른 생활이 아닌즉 기도로 그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이룸에 있어서 안 되는 일을 구할 때는 반드시 하나님이 방도를 세워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출 5:22에서 모세와 아론이 기도한즉, 출 6:1에서 “내가 강한 손을 더하는 것을 네가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도의 중요한 생활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강한 손을 더하여 나의 일을 도와주시는 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도하실 때 내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구하는지를 먼저 확인하시고, 그 뜻이 하나님의 어떤 섭리로 이루게 하시는가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건을 둘이 들면 가벼움을 느끼는 것처럼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행함에 있어서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 도와주시는지를 감지할 수 있는 믿음 생활을 할 때 큰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상 다섯 가지 대지를 꼭 기억하십시오.

 

제 6 과 바로에 대한 계속적 대립 (출6:1-30)목록으로


앞 장에서 모세와 아론이 1차로 바로왕을 대면하였으나 오히려 완강해진 연고로 고역이 더 심해진 상태에서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께 호소하였습니다. 본문을 살피건데 ① 1-5절은 “하나님이 능력으로 이루실 것을 약속하심”이요, ② 6-9절은 “백성들에게 전할 말씀을 주심”이며 ③ 10-13절은 “백성을 앞세워 일하게 하심”이고, ④ 14-25절은 “르우벤, 시므온, 레위 지파의 족장들”이며 ⑤ 26-30절은 “모세와 아론을 앞장서게 하심”입니다. 따라서 전체의 내용은 “바로에 대한 계속적 대립”입니다.

1. 하나님이 능력으로 이루실 것을 약속하심(1-5절).

1)1절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능력을 나타내심)을 더하므로 그들을 보낼 것이요, 또 강한 손을 더하므로 그들(선민)을 그 땅에서 쫓아내리라” 하셨으니 이는 모세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고, 인간이 노력하므로 책임을 다한 후에 하나님께서 능력을 발동하사 약속하신 일을 이루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뜻을 인간 사역자를 통하여 이루실 때 단번에 성취하지 않으시고 점차로 또는 서서히 이루시는 섭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가나안 땅의 족속들을 천천히 쫓아내시는 섭리와도 같은 것입니다(출 23:30). 자기 백성들의 믿음과 결속과 힘을 키우시는 목적도 있고, 대적의 완악을 그들이 벌받을 근거로 삼으시는 이유도 있으며 또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때를 정하시고 성취하시기 때문입니다.

2)2-3절에서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약 400년 전에 선민의 조상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세 사람에게 하나님이 전능의 하나님(능력의 하나님이란 뜻)으로만 자신을 나타내시고,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지신 하나님으로는 알리지 않으셨다는 뜻인데, 출애굽 시기에 와서 그 이름을 알리신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본문 2절과 8절에서도 “나는 여호와라” 하셨지만 출 3:13-15에서는 이름을 말씀하실 때 “스스로 있는 자,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시고 더 명확하게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출애굽 이전에는 “여호와”란 성호를 알리시지 않았는가?할 때 그렇지 않은 줄 압니다. 창세기 전반에서 하나님 또는 여호와란 호칭이 기록되어 있고, 또 “여호와 하나님”, “하나님 여호와”(창 9:26, 출 20:2)로 기록된 곳도 있으며 창 4:26에서 셋의 아들 에노스가 탄생하였을 때 “사람들이 비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출애굽 이전에 그 성호를 알리시지 않았다는 뜻과 또 출애굽 때에 비로서 알리신 뜻이 무엇일까요? 여기에서 “여호와”란 이름을 부각시키신 의미는 “하나님의 명성과 백성들과의 친밀성 또는 언약을 강조하시는 뜻”이 있는데 전자(알리시지 않은 의미)는 이 사실을 크게 강조하시지 않았다는 뜻이요, 후자(출애굽 때에 알리시는 의미)는 때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셔야 하므로 대적자 바로를 상대로 여호와 성호에 담긴 의미를 크게 나타내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여호와 성호에 담긴 의미는 하나님의 언약의 진실성과 거룩하심과 선민과의 약조를 생각하게 하시는 의미가 있다 할 것입니다.

3)4-5절에서는 “하나님이 가나안땅을 주시기로 그들(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언약하셨다” 하셨으니 이 언약의 내용은 창 13:14-17, 15:18-21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고, 5절에서 “이제....이스라엘의 신음을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실 때가 되매 선민의 신음도 나타났고, 하나님의 언약도 기억되므로 약속하신 일을 이루시게 되는 것입니다.

2. 백성들에게 전할 말씀을 주심(6-9절).

1)6-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먼저 자기 백성을 깨닫게 하실 목적으로 전할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구원 받아야 할 대상들에게도 함께 주시는 소망의 말씀, 곧 전도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① 6절에서 “나는 여호와라(하나님 명성이 높아질 일을 하신다는 뜻)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하셨으니, 이는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의 의미는 신약상으로 볼 때 마 11:28-30에 해당하는 약속입니다. ② 또 “편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한다” 하신 말씀에서 편팔은 선민을 보호하시는 은총이고, 큰 재앙은 애굽을 대적하시는 응징을 의미하며 “구속한다”하심은 속박된 자의 값을 치르고 자유의 몸이 되게 하심을 의미하는 바 이것도(물적 구속, 영적 구속 공히) 하나님이 다 해결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③ 7절에서 “너희(출애굽한 선민들)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어 주신다” 하셨으니 그 당시의 선민이나 오늘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백성된 것과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어주신 사실에 대하여 큰 감동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④ 7절 하반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학대받는 노예) 밑에서 빼내어 주신 것을 알게 될 것이라” 하셨고, ⑤ 또 8절에서는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할 것이라 나는 여호와라”고 가르치게 하신 것입니다.

2)그러나 9절에서 이상의 말씀을 증거한 모세의 설교가 효력을 나타내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백성들)이 마음의 상함과 역사의 혹독함을 인하여 모세를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증거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상처받은 마음과 육체적 고통의 경지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그 심령이 열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안정된 마음이 진리를 수납할 수 있습니다(눅 24:17,41).

3. 백성을 앞세워 일하게 하심(10-13절).

1)10-1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두 번째로 바로왕 앞에 나가 백성을 내보내도록 청하라” 하신즉 모세는 12절에서 “백성들도 자기의 말을 듣지 않거든(9절) 바로왕이 어찌 듣겠습니까? 나는 입이 둔한 자(설득력이 없을 만큼 말을 잘 할 줄 모른다는 뜻)입니다”라고 말하였으니 모세는 아직도 자신감을 갖지 못한 상태를 나타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때는 믿음으로 확실한 기대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네 믿음대로 되라. 마 9:29).

2)13절에서 모세가 의욕을 잃고 부정적 자세를 취하였음에 대하여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과 애굽왕 바로에게 명을 전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실 것이라”하시므로 모세와 아론 대신 그들(14-25절에 나타난 세 지파의 두령들)을 쓰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연약을 나타내자 아론의 협조를 받게 하셨고(출 4:10-16), 또 부족함을 나타내자 세 지파의 두령들과 합력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4. 르우벤, 시므온, 레위 지파의 족장들(14-25절).

필자는 본문에 나타난 세 지파의 족장들만 계보 형식으로 기록된 사실에 대하여 잘 이해하지 못하였다가 위 12-13절을 이해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민의 12지파 중 첫 순위에 속하는 세 지파의 두령들로 하여금 모세에게 힘을 가하도록 명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레위 지파가 제사장의 사역을 도운 것처럼 본문에 나타난 세 지파의 두령들이 모세가 바로를 만나려 하지 않은 연약을 도와준 사람들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레위 지파의 계보를 더 자세히 말씀하신 것은 그 지파의 성전 봉사 사역이 계속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14절, 25절의 “어른”과 14절, 24절의 “족장”은 같은 뜻이고, “연치대로”란 연령 순위란 뜻입니다. 그런데 이 족장들의 명단을 연구함에 있어서 두 가지 난제가 있으니 하나는 계보를 기록한 다른 성경의 내용과 비교할 때 빠진 이름이 있고, 또 다른 이름으로 기재된 점이요, 또 한가지는 애굽에 들어갈 때 또는 애굽 생활 초기에 생존하였던 인물들이 어떻게 400년 후에도 그 이름으로 기록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전자에 있어서 15절의 이름들을 대상 4:24과 민 26:12과 비교하면 “여무엘”이 “느무엘”로, “소할”이 “세라”로 나타나고, “오핫”은 빠져 있으며, “야긴”은 “야립”으로 기록되었고, 19절의 이름도 대상 6:19과 23:21과 비교할 때 “마흘리”가 “말리”로 기록되는 등 몇 가지 다른 점이 있으나 성경에는 1인 2명을 나타낸 기사가 많으므로 전자의 의문에 문제될 것이 없고, 후자에 대하여는 원조의 이름을 앞세워 그 지파의 생존한 족장들을 일하게 한 것으로 보셔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열거한 계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르우벤의 아들들은 하녹, 발루, 헤스론, 갈미이고(창 46:9, 대상 5:3),

2)시므온의 아들들은 여무엘, 야민, 오핫, 야긴, 사울(가나안 여인의 소생)이며(창 46:10, 대상 4:24-27, 민 16:12)

3)레위(137세)의 아들들은 게르손(게르손의 아들은 립나, 시므이)과 고핫(133세), 므라리(므라리의 아들들은 마흘리와 무시이며, 민 3:33, 26:58, 대상 6:19), 고핫의 아들들은 아므람(137세, 대상 6:2,18), 이스할(민 16:1, 대상 6:38), 헤브론, 웃시엘입니다. 레위의 증손자 계열로 보면 아므람이 고모 요게벳을 처로 삼아 아론과 모세를(누이 미리암은 생략됨), 이스할이 고라와 네벡과 시그리를, 웃시엘이 마사엘(레 10:4)과 엘사반과 시드리를 낳았으며 고손자 계열로 아론이 아미나답의 딸 (나손의 누이) 엘리세바를 처로 삼아(민 2:3) 나답과 아비후와(레 10:1,2)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낳았고, 고라가 앗실과 엘가나와 아비아삽을 낳았으며(민 26:11) 레위의 5대손은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이 부디엘의 딸을 아내로 취하여 비느하스를 낳았습니다. 비느하스는 대제사장직을 받았으나 죽음을 당하였습니다(민 20:23-28, 수 24:33). 이 본문에 모세의 아들들이 없은즉 그들은 그 대열에 합류하지 않았음이 확실하고(출 18:6) 이상의 명단 중 생존한 사람이 족장으로 모세를 도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5. 모세와 아론을 앞장서게 하심(26-30절).

1)본문 26절과 7:4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군대”란 용어를 쓰셨으니 이는 선민의 출애굽이 군인 성격을 띄워 통솔하시고 인도하셨음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하여 인도의 명령을 받은 자는 모세와 아론이라”고 하셨습니다. 27절에서는 모세와 아론이 바로왕 앞에 나가 “선민을 내보내라”고 말하게 되었다 하셨고,

2)28-30절에서는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일과 모세가 자신의 연약을 알고 망설인 일들을 간략하게 재설한 내용입니다.

인간은 연약하여도 하나님의 쓰심에 붙잡히면 능히 큰 일도 이룰 수 있음을 나타내주신 말씀입니다.

 

제 7 과 뱀 이적과 피 재앙 (출7:1-25)목록으로


본문을 살피면 ① 1-9절은 “바로왕을 상대하는 대책”이고, ② 10-12절은 “뱀 이적”이며 ③ 13-22절은 “피 재앙”이고, ④ “두 재앙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이 본문의 요지는 바로왕의 마음을 꺾기 위한 계속적인 노력이고, 그 노력 중 “뱀 이적과 피 재앙을 나타내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바로왕을 상대하는 대책(1-9절).

1)1절에서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바로왕 앞에서 신이 되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이 의미는 신 같은 능력자로 나타내주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도 이 사실을 인정하셨습니다(요 10:34-35). 또 “아론을 대언자로 삼으신다” 하셨으니 이는 앞에서 말씀하신 대로의 실천입니다(출 4:14-16). 따라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모세는 아론에게 전한 후, 아론으로 하여금 바로왕에게 말하게 하신 것입니다(2절).

2)3-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실 것과(완악을 방치하시는 뜻) 그에게 하나님의 표징(능력을 나타내시는 일)과 이적(예고하신 재앙들)을 행하실 것을 말씀하셨고, 바로가 쉽게 듣지 않을 것을 아셨으며 “그에게 능력을 더하여(내 손을...더함) 여러 가지 큰 재앙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5절에서 “그 일이 있을 때 비로소 애굽 사람이 하나님을 여호와인 줄 알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여호와인 줄 안다”는 뜻은 절대자 하나님 또는 가장 높은 신으로 인식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그대로 시행하였습니다(6절).

3)7절에서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 “모세는 80세이었고, 아론은 83세라” 하셨으니 모세와 아론의 사역의 시작이 80대부터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고령이라도 쓰십니다. 8-9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바로 앞에서 이적을 보일 것과 모세가 아론에게 명하면 아론이 모세의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하라” 하신즉 10절에서 “그대로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4)11절에서 바로왕은 모세를 능력 나타내는 술객 정도로 인정한 듯하고, 또 그 능력을 자기의 사람들로 대항하게 하는 경쟁의 도장을 삼은 후 “애굽의 박사와 박수를 부르매 그 애굽 술객들로 그 술법을 그와 같이 나타내게 하였으나 12절에서 각 사람이 던져서 생겨진 뱀들을 아론의 지팡이로 된 뱀이 그들의 지팡이(뱀들)를 삼켰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박사는 학문을 많이 한 사람이고, 박수는 남자 무당을 뜻하며 술객은 술사(수 13:32)와 같은 뜻으로 범상치 않은 술법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자들입니다. 요즈음도 무당이나 초혼술, 요술자, 기압술, 차력사 등으로부터 놀라운 능력을 체험할 때가 있는데 바로왕이 그런 부류들을 불러 능력을 대항하게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모세에게 나타내신 능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신적 능력이고, 그 능력에 경쟁한 자들은 술법에 의한 것인바 이 술법에 잡신들의 역사가 있었다고 봄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능력의 규모가 크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시면 마귀의 역사도 크게 나타날 수 있음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욥 1:12, 막 5:3, 눅 11:26, 계 13:13, 엡 6:10-17). 1차 능력 시험에서 바로왕은 패하였습니다.

2. 피 재앙(13-22절).

1)13,22절은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여 그들(모세와 아론)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다” 하셨으니, 이는 7:3-4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2)하나님께서는 바로의 완강함을 아셨고(14절), 15-19절에서 바로왕 앞에서 지팡이로 하수를 쳐서 모든 물(19절, 애굽의 물들, 하수들, 운하, 못, 모든 호수.....애굽 온 땅에와 나무 그릇, 돌그릇에 모두 피가 있으리라)을 피로 변하게 하는 이적을 시행하게 하셨습니다.

3)그 방법은 “아침에 바로에게로 가서 하수가에 나온 왕을 맞이하고 그 뱀 되었던 지팡이를 손에 잡고 바로가 1차 요구를 듣지 않으므로(16절)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기 위하여 이 지팡이로 하수를 치면 물이 피로 변하여 고기가 죽고 악취가 나며 애굽인들이 물 마시기를 싫어할 것이라”(17절)하고, 20절에서 모세와 아론이 바로와 그 신하의 목전에서 그대로 시행하니, 21절에서 “하수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 악취가 나므로 애굽인들이 하수물을 마시지 못하며 애굽 온 땅에 피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4)문제는 이 기적의 역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피로 변한 현상을 수질 오염으로 이해한다 하여도 한계가 있은 즉 하나님의 창조적 또는 물리적 이적의 역사로 믿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입니다. 물이 없으면 백성들이 큰 난관에 부딪힐 것이나, 굴복을 가로 막는 두 가지 여유가 있었으니

5)하나는 22절에서 “술객들도 술법으로 그와 같이 행하였다”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25절에서 “백성들이 하수가를 두루 파서 마실 물을 구한 점”입니다. 하수만 피가 되고 땅 속의 물 근원은 오염되지 않았으므로 여유를 가진 것인데, 문제는 “술객들도 그 같은 일을 시행하였다”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술법이나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여기에서 술객들도 마귀의 초자연적 기적에 의존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23절에서 바로는 한낱 구경꺼리로 여긴 듯이 그 일에 관념치 않고 궁으로 들어갔으며 “이 상태로 7일을 지났다”(25절)고 하였습니다.

요즈음 과학의 힘이 하늘을 찌르는 점을 생각하면서 그 시대에 하나님의 이적에 의한 변괴와 인간의 대항 역시 대단하였음을 실감케 하는 것입니다.

 

제 8 과 개구리, 이, 파리 재앙 (출8:1-32)목록으로


본문 ① 1-15절은 “개구리 재앙”에 대한 말씀이고, ② 16-19절은 “이 재앙”의 말씀이며 ③ 20-32절은 “파리 재앙”에 대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총 제목은 “개구리, 이, 파리 재앙”입니다.

1. 개구리 재앙(1-15절).

1)앞 절에서 “하수가 피되는 재앙”이 있은 지 7일 후에 1절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바로에게 가서 같은 요청을 하고, 2절에서 만일 거절하면 “온 지경을 개구리로 칠 것이라”고 말하게 하셨습니다. 방법은 5절에서 “아론에게 명하여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원문은 손)을 강물과 운하들과 못 위에 펴서 개구리로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라” 하셨고, 그렇게 할 때에 3-4절에서 “개구리가 하수에서 무수히 생기고 바로의 궁과 침실과 침상과, 바로의 신하의 집과 백성에게와 화덕(떡 굽는 아궁)에와 떡 반죽 그릇에 까지 들어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6절에서는 “아론이 그대로 행한즉 개구리가 올라와서 애굽 땅에 덮혔고, 7절에서 술객들도 이와 같이 행하여 개구리로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2)8절에서 “왕은 모세와 아론을 불러 개구리 떼를 떠나게 하면 백성을 보내어 희생을 드리게 할 것이라” 하였고, 9-11절에서 “모세와 아론은 왕과 협의하여 다음 날 하나님께 구하여 개구리 떼가 하수에만 있도록 하나님께 구하여 하나님 여호와의 절대적 권능을 입증하기로 한 후, 12절에서 모세와 아론이 바로 앞을 떠나 모세가 하나님께 개구리에 대하여(개구리 재앙의 중지) 간구하매, 13절에서 하나님이 모세의 말대로 하시니 개구리가 나온 장소(집, 마당, 밭)에서 죽은지라 그것들을 무더기로 쌓은즉 악취가 났다(14절)”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15절에서 “바로는 (여전히) 완강하여 듣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3)여기에서 재앙을 내린 이적의 성격은 앞에 나타낸 이적의 경우와 같다 할 수 있고, 개구리 재앙에서 술객들은 개구리를 이끌어내는 일만 하였을 뿐, 모세처럼 죽이는 일은 하지 못하였으며 또 바로왕은 8절에서 개구리 재앙에 굴복하여 “백성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였지만 그 약속을 쉽게 위반하는 완악을 범하였으니 이것이 곧 진실치 못한 자들의 모범이라 할 것입니다. 다음에 나타낸 이 재앙과 파리 재앙에서도 바로는 여전히 완강하였습니다(19,32절).

2. 이 재앙.(16-19절)

1)16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아론에게 명하여(5절) 모세의 지팡이를 들어 땅에 티끌을 치면 그 티끌이 애굽 온 땅에서 이가 될 것이라” 하셨고, 17절에서 “그대로 시행하니 애굽 온 땅의 티끌이 이가 되어 사람과 생축에게 올랐다”고 하였습니다. 이 이 재앙에 대하여는 아론이 바로왕 앞에서 시행하였다는 말씀이 없은즉 간접적으로 경고하고 시행하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2)18절에서 “술객들이 자기들의 술법으로 이 광경을 재연하려 하였으나 시행하지 못하였고”, 19절에서 “술객이 바로에게 고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라 하였으나 바로의 마음은 (여전히) 강퍅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바로의 마음은 인간적 대항력이 있을 때만 강퍅한 것이 아니라 없을 때도 강퍅하였으니 강퍅 그 자체가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지 않으면(롬 1:24, 겔 36:26) 돌이킬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인간이나 마귀의 능력은 한계가 있어 절대자의 능력에 비교할 수 없음도 나타내 주셨습니다.

3. 파리 재앙(20-32절).

1)20-2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다섯 번째로 파리 재앙 내리실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너(모세)는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바로 앞에 서라 그가 물로 나오리니” 하셨습니다. 바로가 물로 나오는 일은(7:15) 나일강 물에 제사 의식을 이행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되 “내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과 네 집들에 파리 떼를 보내어 애굽 사람의 집집에 가득하고 그들이 거하는 땅에도 그러할 것이라” 하였고,

2)22절에서는 “그 날에 하나님의 백성이 거하는 고센 땅에는 파리 떼가 없게 하여 하나님이 세상 중의 여호와인 줄을 알게 할 것이라” 하셨으며, 23절에서는 “이로써 네 백성과 내 백성 사이에 구별을 두어 표징이 있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섯 번째 재앙은 파리 재앙인데 이 경우의 특징은 지팡이를 사용하지 않은 점과 애굽인들과 선민들이 사는 곳을 구별하여 통치하신 점입니다. 이같은 구별 통치는 출애굽 역사에 계속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선민을 구별 통치하시는 것을 믿으셔야 할 것입니다(출 14:20, 15:26, 신 28:60).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특별 통치에 대한 표징을 체험하심이 좋을 것입니다.

3)2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예고하신 대로 시행하셨고, “애굽 전국이 파리 떼로 인하여 해를 받더라”고 하셨습니다. 이 재앙이 나타났을 때 바로는 25절에서 개구리 재앙이 있었을 때처럼(8:8)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에 모세가 말하기를 25-26절 “선민이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는 것은 애굽인들이 미워하는 일이므로 돌로 칠 위험이 있은즉 3일 길쯤 광야로 가서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할 것이라” 하였고,

4)28절에서 바로가 허락하되 “너무 멀리는 가지말고 너희는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에 모세는 29-30절에서 “내가 왕을 떠나가서 여호와께 기도하리니 내일이면...파리 떼가 백성을 떠나려니와 왕은 이 약속을 다시는 거짓으로 행치 마시오”하고 31절에서 “모세가 바로를 떠나 기도한즉....파리 떼가 그 백성에게서 몰수히 떠났다”고 하셨습니다.

5)그러나 이 때에도 바로는 마음을 완강케 하여 백성을 보내지 않았으니 바로는 거짓을 예사로 말하는 마귀의 상징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요 8:44). 개구리나 이와 파리 재앙은 60년대 이전에는 현실에서도 체험할 법한 일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들도 인간의 화복을 위하여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자연의 재해와 병충해의 재해는 항상 인간들 앞에 위협의 위력으로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제 9 과 악질과 우박 재앙 (출9:1-35)목록으로


본문의 1-2절과 13절은 “모세가 바로 앞에서 선민을 해방시키라는 통상적 요청”을 나타낸 말씀이고, ① 3-12절은 “악질의 재앙”이며 ② 14-26절은 “우박 재앙”이고, ③ 27-35절은 “우박 재앙의 결과에 대한 말씀”입니다.

1. 악질의 재앙(3-12절).

1)2절에서 바로가 선민 보내기를 계속 거절하고 억지로 잡아두면 3-5절에서 하나님의 손이 그들을 쳐서 그들의 생축(말, 나귀, 약대, 우양)에 심한 악질이 있을 것이고, 선민의 생축은 구별되어 죽지 않을 것을 모세로 하여금 말하게 하셨고, 5절에서 “내일 이 땅에서 행할 것이라” 하셨더니 6절에서 “그 이튿날 그대로 시행되었다”고 하셨습니다. 7절에서 “바로왕은 사람을 보내어 이 사실을 확인하였지만 여전히 완강하여 백성을 보내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2)8절에서 악질의 재앙은 다시 독종으로 나타나는 이차적 재앙으로 진행됩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아론에게 풀무의 재 두 움큼을 가지고 모세가 바로의 목전에서 하늘을 향하여 날리게” 하셨고, 9절에서 “그 재가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되어 애굽 온 땅의 사람과 짐승에 붙어 독종이 발할 것이라” 하신 후, 10절에서 “그대로 시행되었다” 하였고, 11절에서는 “술객에게 까지도 독종이 발하여 모세 앞에 서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12절에서 “그러나 모세의 예언대로(출 7:3-4) 바로의 마음은 강퍅하여 듣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2. 우박 재앙(14-26절).

1)14절에서 “이번에는 모든 재앙을 네(바로왕) 마음과 네 신하와 네 백성에게 내려 너로 온 천하에 나와 같은 자가 없음을 알게 하리라”고 예고하셨는데 재앙이 마음에 내려지면 강퍅을 돌이키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15절에서는 “(만일) 하나님이 손을 펴서 온역으로 네 백성을 쳤다면 네가 세상에서 끊어졌을 것이라” 하시고, 16절에서 “내가 너를 세웠음(하나님이 바로를 왕으로 세움)은 나의 능력을 제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였음이라” 하시므로 강퍅한 왕이 존재하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어 하나님을 전파하는 계기로 쓰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2)17-18절에서 “네가 여전히 내 백성 앞에 자고하고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느냐 내일 이 맘 때면 내가 중한 우박을 내리리니 개국 이래로 그 같은 것이 있지 않던 것이라” 하시고, 19절에서 “(내 말을 믿는 자는) 들에 있는 모든 것(사람, 짐승)을 모으라 돌아오지 않은 자에게는 우박이 내려 죽을 것이라”고 예고하게 하셨으니 하나님은 능력을 나타내심에 목적을 두셨고, 불신, 불순종으로 피해를 보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3)20-21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생축들을 집으로 피하게 한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이 있었는데” 22절에서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하늘을 향하여 지팡이를 들게 하셨고, 하나님이 뇌성과 우박과 불을 땅에 내리시니 우박과 불덩이가 맹렬하게 섞여 내려 애굽 온 땅의 사람과 짐승들과 밭의 모든 채소와 들의 나무까지 꺾어지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현상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4)그러나 20절에서 말씀을 믿고 피한 자들과 26절에서 선민이 사는 고센 땅에는 피해(우박)가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선민과 다른 백성을 구별 통치하심이 확실한 것을 믿으셔야 할 것입니다.

3. 우박 재앙의 결과에 대한 말씀.

1)27-28절에서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불러 자신의 범죄를 시인하면서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자신과 그의 백성은 악한즉 하나님께 기도하여 뇌성과 우박을 그치게 하라 내가 너희를 보낼 것이고 다시는 머물지 않게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29절에서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내가 성을 나가자 곧 하나님께 내 손을 향하여 펴면 뇌성이 그치고 우박이 다시 있지 않을 것인즉 세상이 하나님께 속한 줄을 왕이 알 것이라” 하고, 30절에서 “그러나 왕과 왕의 신하들이 아직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 할 것을 안다”고 하였습니다(출 7:3-4).

3)31-32절에 그 당시에 “보리는 이삭이 나왔고 삼은 꽃이 피었으므로 (우박에) 상하였으나 밀과 나맥은 자라지 않은 고로 상하지 않았다” 하시므로 역사적인 사실 그대로를 나타내셨고, 상하지 않은 밀과 나맥으로 그들의 양식을 남겨 두신 것은 백성을 살리는 긍휼의 은총입니다(합 3:2).

4)33절에서는 “모세가 하나님께 손을 펴서 (기도의 뜻) 뇌성과 우박 재앙을 그치게 하였으나 34절에서 바로는 다시 범죄 하여 마음을 완강케 하였으니 그와 그 신하가 일반이었으며(34절) 바로는 여전히 백성을 보내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35절).

선민이 복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자기의 뜻을 거스르는 대상들에게 꾸준히 대항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제 10 과 메뚜기와 흑암 재앙 (출10:1-29)목록으로


본문 ① 1-20절은 “메뚜기 재앙”이고, ② 21-29절은 흑암 재앙입니다. 8회, 9회의 재앙입니다.

1. 메뚜기 재앙(1-20절).

1)1-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완강함과 함께 계속 재앙 내릴 필요를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와 신하들의 완강함은 “그들에게 능력 있는 하나님의 표징을 보이시고 그 사실을 선민 자손에게 전하여 그 일을 시행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려 하신다” 하시고, “모세와 아론으로 하여금 다시 바로에게 나가라” 하셨으니 이 때에 모세와 아론은 재앙 경고를 인하여 7회째 바로 앞에 나가게 된 것입니다. 필자는 열 가지 재앙을 내릴 때 모세와 아론이 몇 번이나 왕 앞에 나갔는가?를 헤아려 보았습니다. 먼저 뱀(7:10), 피(7:20), 개구리 재앙(8:1,6)을 내릴 때 각각 한 번씩 바로에게 갔고, 이 재앙을 내릴 때는 가지 않고 시행했으며 다섯 번째 파리 재앙을 내릴 때에도 찾아갔는데(8:20,24) 그 때에 그 재앙을 없애기 위하여 바로가 불러서 또 간 일이 있었고(8:25), 다음 악질 재앙을 내릴 때도 갔으나(9:1,6) 이어서 독종을 발하게 할 때는 가지 않고 시행하였습니다. 일곱 번째 우박 재앙을 주기 위하여 갔었고(9:13,33), 바로가 이 재앙을 없애달라 하기 위하여 모세를 불렀으며(9:27) 그 다음 메뚜기 재앙 때 또 찾아갔고(10:1), 이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두 번 불려 갔으며(10:8:,18) 아홉 번째 흑암 재앙 때는 바로 앞에 찾아간 일 없이 시행한 후 해결 차 불려갔고(10:24), 마지막 초태생을 죽일 때는 바로에게 알린 일 없이 유월절 준비와 함께 재앙이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본문에 찾아간 것은 일곱 번째 입니다(파리, 우박 때 두 번 불려감). 참으로 끈질긴 대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악과의 싸움도 그런 성격이 있다고 봅니다.

2)3-7절에서는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어느 때까지 하나님 앞에 겸비치 않을 것인가?” 하고 4-6절에서 메뚜기 재앙을 경고하였으니 “메뚜기가 바로의 경내에 (영토 안에) 들어가 땅을 볼 수 없을 만큼 지면을 덮어 우박을 면하고 남은 모든 나무를 먹고 왕과 신하들과 모든 사람의 집들에 가득할 것이라”하고 나온즉, 4절에서 왕의 신하들이 왕에게 고하기를 “계속 함정이 있고 애굽이 망한 상태인즉 속히 허락하라”고 권하였습니다.

3)이 때에 바로는 8-9절에서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절기에 갈 자를 물었고, 모세는 “남녀노소와 우양이라”고 답하였으며, 10절에서 “어린이들까지 보내는 것은 여호와를 너희와 함께 하게 하는 일과 같다”하면서 “그 경영을 악하다” 하였으니, 이 뜻은 “아주 도망하려는 저의”라고 한 것입니다. “여호와를 너희와 함께 하게 함”은 선민이 섬기는 신을 아주 모시고 다 떠나려는 뜻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바로는 어린이를 볼모로 잡아 두려한 듯 합니다.

4)12-13절에서 메뚜기 재앙은 내려졌으며 모세가 하나님의 명에 따라 “손을 애굽 땅 위에 들어 메뚜기가 올라와서...모든 채소를 먹게 하라”고 외쳤고, “하나님께서는 동풍을 일으키셔서 온 낮과 밤에 불게 하시니 메뚜기가 온 지면에 덮이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애굽 전경에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이 남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15절).

5)16-17절에서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 하나님과 너희 앞에 죄를 졌으니 이번만 용서하고 하나님께 구하여 죽음만 떠나게 하라” 하여 18-19절에서 “모세가 바로 앞에서 하나님께 구한즉 하나님이 강한 서풍을 일으켜 메뚜기 떼를 홍해로 몰아 넣으시므로 애굽 온 지경에 메뚜기가 하나도 없게 되었지만” 20절에서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권고하시지 않은 뜻) (여전히)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바로를 권고하시지 않은 뜻은 1-2절에 근거하여 능력의 하나님을 알리시기 위함이었습니다.

2. 흑암 재앙(21-29절).

1)21-23절은 “하나님이 모세로 하여금 고센 땅을 제외한 애굽 전역에(23절) 3일 동안 더듬을 만한 흑암을 주신 내용”입니다. 이 때에는 모세가 바로에게 나가지 않고 하나님의 명에 따라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어 흑암이 있게 한 것입니다. 빽빽한 구름으로 하늘을 막은즉 태양광선이 차단되어 흑암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광명이나 재앙을 구별하여 나타내실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사람간에 서로 볼 수 없었고, 처소에서 낮을 인식하여 일어나는 자가 없을 만큼 어두웠다고 하였습니다(23절).

2)이 때에 바로는 24절에서 모세를 또 불러 “양과 소만 머물러두고 어린아이들만 함께 가라” 하였으니 선민은 보내되 재물은 두고 가게 한 뜻으로, 8:28과 10:9-10에 비할 때 많이 완화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 때에 모세는 25절에서 “왕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제물로 드릴) 희생과 번제물을 주어야 한다” 하였고, 따라서 “생축을 한 마리도 남길 수 없는 것은 그 중에서 취하여 (선별의 뜻) 섬겨야 하기 때문인데 목적지에 당도하기까지 어떤 것을 취하여 섬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강변한 것입니다. 제물 될 우양을 미리 몰고 갔다가 잘못되어 제물에 결함이 생길 수도 있은 즉 전체 중에서 가장 건실한 것을 선별하여 제물로 삼음이 마땅한 것입니다. 26절의 뜻이 그러한 줄 압니다.

3)27절에서 바로의 마음은 여전히 강퍅하여 선민 보내기를 즐겨하지 않았고, “다시는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내 얼굴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28절)고 호통을 친즉, 29절에서 모세는 “왕의 말씀이 옳습니다 내가 다시는 왕의 얼굴을 보지 아니할 것이라” 하고 물러났으니 그 다음 재앙 때는 모세가 왕 앞에 나가지 않고 애굽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제 11 과 마지막 재앙의 경고 (출11:1-10)목록으로


본문 말씀은 애굽의 초태생을 죽이는 마지막 경고의 말씀입니다. 1절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정녕 너희를 다 쫓아 낼 것이라” 하셨으나, 이 뜻은 바로가 흔쾌히 승낙하는 뜻은 아닙니다. 바로는 마지막 재앙에도 강퍅하였고(10절), 계속 추격하기까지 하였으니까요(출 14:5-6).

2절에서 또 하나님께서는 “선민들로 하여금 (애굽) 백성들에게 말하여 남녀로 각각 이웃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셨으니 선민들이 “큰 재물을 갖고 나올 일”에 대하여 이미 예언하셨고(창 15:14), 여행자들이 돈 대신 은금을 갖추어 나오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3절에서 이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다” 하셨고, “또 그 사람 모세가 애굽국에서 바로의 신하와 백성에게 심히 크게 뵈었다” 하셨으니, 전자는 선민이 이방인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도록 섭리하신 일이고, 후자는 신분을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는 하나님이(삼상 2:7) 이방인을 두렵게 하여 모세를 크게 보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수 3:7과 4:14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사람은 다 연약하고 결함이 있어도 하나님이 쓰시면 능력을 주셔서 쓰시는 것입니다(출 4:16).

4-7절 말씀은 모세가 바로에게 나아가 전달한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밤중에 애굽에 들어가셔서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애굽 백성 모두를 뜻함)의 장자까지와 모든 생축의 초태생을 죽이시므로 애굽 전국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을 것이나 선민 자손에게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개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않으므로(조용하게 보호하신 뜻) 구별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8절에서는 “왕의 모든 신하가 내(모세)게 내려와서 내게 절하며 너와 너를 좇는 온 백성은 나가라 한 후에야 내가 나가리라” 하고 노한 어조로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바로가 여러 차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강퍅하므로 모세가 한층 소리를 높인 것입니다.

9절에서 그러나 “바로가 듣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은 애굽 땅에서 기사를 더할 것이라” 하셨으니, “바로가 듣지 않음”은 여러 가지 이적에도 굴복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기사를 더하심”은 계속되는 기사로 바로의 힘을 꺾고 뜻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10절에서 “모세와 아론이 이 모든 기사를 바로 앞에서 행하였으나(열 가지 재앙 모두를 뜻함)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권고하시지 않은 뜻)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나라에서 보내지 아니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완악이 이적과 징벌로 정복되지 않음을 알 수 있고, 완고한 마음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합니다(겔 36:26). 그리고 바로가 선민을 보내지 않은 것은 공식적 승인을 안한 뜻입니다. 따라서 선민의 출애굽은 바로의 허락으로 나온 것이 아니고, 바로가 붙잡지 못하게 하신 후 나오게 하신 것입니다.

 

제 12 과 유월절 행사를 명하심 (출12:1-27)목록으로


본문 ① 1-11절은 “유월절 행사를 명하심”이고, ② 12-13절은 “유월절 시행의 효력”이며 ③ 14-20절은 “유월절 규례”요, ④ 21-27절은 “유월절 시행의 전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유월절 행사를 명하심(1-11절).

1)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유월절 행사를 진행할 것을 명하셨습니다(1절). 그 내용은 “이 달(보리가 이삭이 나오고 삼은 꽃이 핀 때, 9:31 인즉....초여름에 해당함)로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1월)이 되게 하고(2절), 회중(선민)에게 고하여 이르라 이 달 10일에 너희 매인(가족 단위)이 어린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구하기) 위하여 취하되(3절) 그 어린양에 대하여(양고기의 분량을 가늠함)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인수를 따라 하나를 취하며 각 사람의 식량을 따라 어린양의 수를 계산하되(4절) 흠 없고 1년 된 수컷으로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라(5절)”고 하셨습니다(양과 염소는 제물의 가치가 동일함).

2)6절에서는 “(10일에 취한 것을) 14일까지 간직하였다가(14일) 해질 때에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양쪽 문기둥 위)에 바르고(7절)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누룩을 첨가하지 않은 떡)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8절) 날로나 삶아먹지 말고 머리, 정강이,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9절)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10절)”고 하셨습니다.

3)또 11절에서는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하시고,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행사를 진행하는데는 어려운 문제가 없는 줄 압니다. 양이나 염소 한 마리당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의 수를 배분하여 희생물을 정하고, 그 고기를 먹을 사람들이 한 집에 모여 행사하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 행사 방법이 의미하는 바와 전체 행사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 자체는 선민이 영적으로 구원받는 은혜를 실제적 역사를 통하여 상징적으로 계시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불신앙에서 믿음으로 죄사함 받고 구원받는 과정의 상징적 계시란 뜻입니다. 애굽을 불신앙의 세계로, 바로를 마귀의 상징으로, 광야를 믿음 생활, 또는 교회 생활의 과정으로, 가나안 땅을 천국으로 상징하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천국은 십자가의 은혜를 통하여 들어갑니다.

① 그 때를 첫 달로 정한 것은 믿음 생활이 진정한 삶의 의미를 갖는 새 출발이기 때문이며 ② 10일에 선택하여 14일에 잡는 것은 합동 행사인 만큼 준비할 기회를 주신 듯하고, ③ 저녁에 잡은 것은 삶과 죽음의 구별된 역사가 밤중에 시행되기 때문이며 ④ 양과 염소를 희생시킨 것은 그것이 참 속죄 제물이신 예수님의 상징입니다. ⑤ 먹을 분량대로 수를 정한 것은 한정된 속죄의 뜻과 구원자와 구원 대상의 일치를 의미하며 ⑥ 흠 없고 1년 된 것은 중보자의 무흠성을 상징하고 또 제물의 고기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가치의 기준을 뜻하며 ⑦ 수컷은 경제성을 고려함과 동시에 예수님이 남성임을 상징한 듯 합니다. ⑧ 피를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른 것은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신앙을 표현한 것이요(신앙 고백), ⑨ 삶거나 날로 먹지 못하고 반드시 구워먹어야 하는 뜻은 시간 단축과 위생을 차리게 함이며 ⑩ 다 먹을 것과 남겨 두지 않는 뜻은 속죄의 제사가 단번에 완성되었음을 뜻하고(히 7:27, 9:12), ⑪ 허리띠를 띠고 신을 신고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는 이유는 경성을 뜻함과 동시에 곧 탈출할 것이기 때문이요, ⑫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는 것은 가공을 못한 채 급히 먹어야 하는 이유도 있지만 중보자의 고난을 생각하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사실(유월절 행사)은 바로 예수님의 속죄 사역을 상징적 계시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2. 유월절 시행의 효력(12-13절).

1)12절에서 “하나님이 그 밤에 애굽땅에 두루 다니시며 모든 초태생을 다 치시고(죽임) 애굽의 모든 신(이방인들이 섬기는 잡신들)에도 벌을 내리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뜻은 천사의 역할을 통하여 생명을 거두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2)그러나 13절에서 “그 피(설주와 인방에 발린 것)가 너희 거하는 집(믿음의 단체)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되므로 하나님이 그 피를 보실 때에 너희를 멸하지 않고 넘어가실 것이라” 하시므로, “넘어간다”는 뜻으로 유월절이란 용어가 사용된 것입니다. 이 사실은 십자가의 믿음으로 멸망하지 않고 영생 얻음을 뜻하는 것입니다(요 3:16). 유월절 시행의 효력은 심판 받지 않고(넘어감)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3. 유월절 규례(14-20절).

이 유월절 규례는 대대로(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히 10:8-18) 지켜 기념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1)14절의 “기념하고 여호와의 절기를 삼으며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키라”는 뜻은 유월절에 담긴 예수님의 구속 사역에 대하여 주님 오실 때까지 영원히 지키라는 것이고, 선민에게 주신 유월절 규례는 예수님이 오셔서 성취하시므로 그 의식이 폐하여진 것입니다(고전 13:10, 히 8:13).

2)15절에서 “너희는 7일(14-21일)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렇게 하기 위하여) 첫 날에 너희 집에서 누룩을 제하라, 무릇 첫 날부터 7일까지 유교병(누룩을 넣은 발교된 떡)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쳐지리라” 하시므로 순종과 구원, 불순종과 멸망을 확실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3)16절에서는 “첫 날(14일)과 끝 날(21일)에 성회(거룩한 모임의 날)가 될 것과 이 두 날에는(성회의 성격상) 아무 일도 하지말고 각 인의 식물(식사용도)만 갖추라”고 하셨습니다.

4)17-20절은 “유월절과 같은 의미를 무교절(누룩 없는 떡을 먹는 절기)로 표현하신 것과 애굽땅에서 인도해 내신 것을 기념하는 뜻을 나타내신 것(17절)” 외에는 앞 부분에서 하신 말씀을 강조하는 뜻으로 재설 하셨습니다.

4. 유월절 시행의 전달(21-27절).

1)21절에서 모세는 모든 이스라엘 장로를 불러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명령을 시달하였으니, 22절에서 “너희는 나가서 (모인 곳이 실내인 듯) 너희 가족대로 어린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23절에서 “너희는 우슬초(귀알 역할하는 풀, 빗자루 재료 같은 것)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를 찍어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뿌리는 의미”가 결례식 또는 세례식에 보혈의 공로를 힘입게 하는 뜻으로 뿌리는 것과 상통함이 있는 것입니다. 24절에서 “이는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을 치러 다니실 때 그 피 뿌림 있는 문을 넘으셔서(유월의 뜻) 그 집에 들어가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 하셨고, 24-25절에서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영원히 지키되....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도 이 예식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이 예식은 예수님의 속죄 사역이 실현된 후부터 성찬 예식으로 바뀌었습니다(마 26:17-30).

2)26-27절에서는 “유월절의 의미”를 후손들에게 알릴 것을 교훈 하셨습니다. 26절에서 “이후에 너희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유월절 의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 애굽에 있는 선민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신 뜻이라” 한즉, 백성들이 머리 숙여(하나님께) 경배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기까지는 출애굽 준비의 마지막 과정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희들은 이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이 선택받은 자에게 베푸시는 속죄의 영적 은혜가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나타나는 과정을 예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제 13 과 출애굽 진행 (출12:28-51)목록으로


이 본문은 3대지로 나누어 살필 수 있습니다. ① 28-36절은 “큰 호곡과 바로의 굴복”이고, ② 37-42절은 “출애굽 진행”이며 ③ 43-51절은 “잡족에 대한 규례”입니다.

1. 큰 호곡과 바로의 굴복(28-36절).

1)28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명대로 시행하였다”는 말씀이고, 29절은 “밤중에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애굽인과 생축의 초태생을 다 죽이셨다”는 말씀이며 30절은 “바로와 신하들과 애굽 사람이 그 밤에 한 집도 사망에서 제외됨이 없음을 보고 큰 호곡을 하였다”는 말씀이고,

2)31-32절은 “바로가 그 밤에 모세와 아론을 불러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서 떠나 너희 마음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너희 말대로 양과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하였으니 이는 위급할 때 본능적으로 굴복한 것이라 할 것이요, 33절에서 애굽 사람들은 “우리가 다 죽은 자가 되도다” 하고 선민을 속히 내보내려고 하였으므로, 34절에서 “백성이 발교 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무교병으로 준비한 것)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었다” 하였으니 이런 방식으로 출애굽이 시행된 것입니다.

3)35-36절에서는 “선민 자손이 모세의 말(출 11:2-3)대로 애굽 사람에게 은 금 패물을 구하매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으로 선민들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신 즉,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선민들이 애굽인의 물품을 취하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약 500년 전의 예언의 성취이기도 한 것입니다(창 15:14) .애굽인은 선민과의 이별의 아쉬움도 있었지만 속히 재앙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은 금 요구를 자원하여 들어주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민에게 재물 주시기를 원하시면 그런 방법도 쓰실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사 45:3).

2. 출애굽 진행(37-42절).

1)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난 때는 유월절 첫 날 밤이었습니다. 그 날에 피 뿌린 의식과 초태생이 죽는 일과 바로의 허락과(31절) 선민의 출발이 다 있었습니다. 42절의 “이 밤”은 바로 그 날이고,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하나님께서 특별히 역사 하신 날이란 뜻) 대대로 지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40-41절에서 “선민이 애굽에 거주한지 430년(400년이라 한 것은 생략한 표현임. 창 15:13, 행 7:6) 만이요, 430년이 마치는 날에 여호와의 군대(선민을 군대라 함은 하나님이 그들을 군인처럼 연단 시키실 것이기 때문임)가 다 애굽땅에서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3)37-38절에서는 출발지와 출애굽한 백성들의 수를 예상한 내용입니다. 출발지는 “라암셋”이니 이는 요셉 때부터 거주한 고센 땅을 일컫는 것입니다(창 45:10). 그 곳에 국고성을 쌓는 일로 선민이 고역을 치뤘습니다(출 1:11). 그 곳에서 숙곳까지는 가까운 거리이고, 숙곳은 출애굽의 집결지요 출발지이기도 합니다. 나온 수는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60만 가량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민 11:21에서는 “보행자가 60만이라” 하셨은즉 노유자나 병자로 걷지 못하는 사람만 60만 가량에서 제외된 것입니다. 그러나 민 2:32에 보시면 레위인 계수를 제하였고(민 2:33), 20세 이상 싸움에 나갈만한 자를 계수한 수가 603,500명이었으니 선민의 전체적 수를 계산할 때는 603,500명과 레위인 수와 군인 장정 이외의 수를 합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약 200만명으로 추측하기도 합니다.

4)그런데 38절을 보시면 “중다한 잡족도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잡족의 명칭은 이방인(43,49절) 돈으로 산 종(44절), 거류인과 품군(44절), 타국인(48절), 본토인(48절)입니다. 이들은 애굽인으로 함께 나왔거나 여행 중 돈으로 샀거나 합류한 이방인들인 즉 그 수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5)39절에서 “이 때에 출애굽한 군상들은 모두 급히 나온 터라 발교되지 않은 반죽으로 무교병만 먹었다”고 하였습니다. 신앙 생활은 갑자기 시행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행 9:3-15).

3. 잡족에 대한 규례(43-51절).

1)43절에서 “선민이 아닌 이방인은 유월절 의식에 참여할 수 없다(먹지 못함)”고 하셨습니다.

2)그러나 44절에서 “각 사람이 돈으로 산 종은 할례를 받은 후에 먹으라” 하셨으니 본래 종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복종하는 자인즉 “할례로 믿음 고백을 하면 선민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하시므로 여기서부터 이방인 구원의 창구를 열어주신 것입니다.

3)그러나 45절에서 “거류인(잠깐 함께 있다가 갈 사람)과 품꾼(잠깐 일하고 가는 사람)”은 선민 대열에 함께 가는 자가 아니므로 유월절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신약의 교회에는 출석하였으나 신앙 고백과 믿음 생활을 약속하지 않는 사람들과 같은 것입니다.

4)46절에 “한 집에서 먹되(가족과 이웃 단위로 양 한 마리를 같이 먹을 사람의 모임이며 제물 된 고기를 타인이 함부로 먹지 못하는 뜻이 있음)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비택자에게는 해당되지 않음) 뼈를 꺾지 않음”은 그 제물이 예수님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몸에 못 박히셨으나 뼈가 꺾이지 않을 것에 대하여 본문과 시 34:20의 예언과, 실제로 꺾이지 않은 사실이 요 19:31-36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7에서는 “이스라엘 회중이 다 그렇게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5)48절에서 “타국인이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면 그 모든 남자는 할례(신앙 고백과 같은 것)를 받아야 하고(여자는 남자와 한 가족인즉 그대로 따라감) 그는 본토인(선민과 같은 지위)과 같이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49절의 “본토인”은 여행 중 그 지역 사람을 뜻하는데 “그도 이방인과 같은 맥락으로 취급하라”고 하셨습니다.

6)50-51절에서 “선민이 명하신 대로 행하여 출애굽 하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선민의 순종과 이방인의 할례 의식을 통한 합류입니다. 이방인이 할례를 받고 선민 대열에 합류하면 아무 차별을 받지 않습니다.

 

설교보충 2. 바로의 굴복 (출12:31-34) 목록으로


“바로의 굴복”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살핍니다. 바로는 강하고 끈질긴 마귀의 상징이고, 애굽은 불신앙과 우상주의의 근거지입니다. 선민이 그 곳에서 노예가 된 것은 세상주의에 굴복 당한 것이고, 출애굽은 현세적, 영적 생활과 심령의 해방이요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아니면 구원이 성취될 수 없습니다. 보통 알기를 바로가 열 번 재앙에 굴복한 줄 알지만 사실은 열 한 번의 재앙이고, 단계적으로 네 번 굴복하였다가 마지막 재앙에서 완전 굴복은 하였지만 또 병거를 이끌고 홍해까지 추격한 것을 보면 진실한 굴복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라 거짓 굴복만 계속한 것입니다. 바로에게 나타난 재앙의 기사가 7장부터 12장까지 기록되었는데 그 내용을 간략하게 간추려 말씀드리면

1. 첫 번 재앙은 뱀 재앙입니다(출 7:1-16). 모세와 아론이 바로왕 앞에 나가서 시행하였고(7:10), 모세가 아론을 시켜 아론이 모세의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하였으며 술객이 재연하였고, 모세의 뱀이 술객들의 뱀들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완강하였습니다.

2. 두 번째 재앙은 피 재앙입니다(출 7:17-25).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여 모세가 하수가에 나온(나일강 신을 섬김) 바로 앞에 나가서 지팡이로 하수를 쳐서 피가 되게 하였고, 물, 하수, 운하, 호수까지 악취가 나서 백성들이 하수가를 두루 파서 물을 구했는데 술객도 이를 재연하였고, 7일이 지나도록 바로는 여전히 강퍅하였습니다.

3. 세 번째 재앙은 개구리 재앙입니다(8:1-15).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셨고, 모세가 아론에게 명했으며 아론이 바로왕 앞에 나가서(8:16) 강과 운하에 손을 펴서 개구리를 출현시켰는데 이것이 궁과 침실과 침상, 화덕의 그릇에까지 올랐지만 여기서부터는 술객이 재연하지 못했고, 바로도 강퍅하였으며 모세가 기도로 중지시켰습니다.

4. 네 번째는 이 재앙입니다(8:16-19).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셨고, 모세가 아론에게 명하여 모세의 지팡이로 티끌을 쳐서 이가 출현하였는데 이 때는 바로에게 나가지 않고 시행하였습니다. 이가 사람과 생축에 생겼지만 애굽의 술객들은 이 때도 재연하지 못하였습니다.

5. 다섯 번째는 파리 재앙입니다(8:20-32).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셔서 모세가 바로에게 나가 시행하였고(8:20,24), 방법은 기재된 것이 없으며 바로와 신하들과 백성의 집들까지 파리가 많은즉 바로가 모세를 두 차례나 불러(8:25,28) 재앙 제거할 것을 부탁하였고, 이때부터 조금씩 허락하기 시작하였는데 “멀리 가지말고 이 땅에서 제사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기도로 재앙을 중지시켰고, 처음에도 선민이 있는 곳에는 재앙이 없었지만 파리 재앙이 있었을 때 “고센 땅을 구별하셨다”(8:22)는 말씀이 나오고 모세의 기도로 중지시켰습니다(30절).

6. 여섯 번째는 악질 재앙입니다(9:1-7). 모세와 아론이 바로 앞에 나가 시행하였고(9:1,6), 하루 기간을 두고 방법 없이 나타났으며 생축이 죽되 “선민의 것을 구별하신다”고 하셨습니다(9:4).

7. 일곱 번째는 독종 재앙인데(9:8-12) 악질 재앙에 이어서 나타났고, 풀무 재 두 움큼을 날려 시행하였는데 “백성들과 애굽의 술객 까지 독종이 올랐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여전히 강퍅했습니다.

8. 우박 재앙입니다(9:13-35). 모세가 바로에게 나가서 시행하였고(9:13,33), 24시간 후에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어 시행하였는데 이때 예고를 받고 짐승을 보호한 애굽 신하들이 있었으며(9:20) 싹 난 보리와 꽃 핀 삼이 피해를 보았고 밀과 라맥은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를 면했으며 이 때에 바로는 모세를 불러 “하나님은 의롭고 자신은 악하다”(9:27)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바로를 떠나 “손을 펴매 우박이 그쳤다”고 하였으나 또 완강하였습니다.

9. 메뚜기 재앙입니다(10:1-12). 모세가 하나님의 명에 의하여 바로에게 나가 시행하였고(10:19), 손을 땅 위에 든즉 하나님이 동풍을 일으켜 메뚜기를 몰아오므로 능력의 신이신 표징을 보였으며 모든 푸른 것과 태풍에 남은 열매를 다 먹은즉 바로가 모세를 두 차례나 불러(10:8,18) “아이만 남기고 다녀 오라” 하였을 뿐 계속 완강하였고, 모세의 기도로 메뚜기를 물리쳤습니다.

10. 열 번째 흑암 재앙에서는(10:21-29)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듦으로 3일간 흑암이 있었으나 선민의 지역에는 광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강퍅하여 선민 보내기를 즐겨하지 않았고,

11. 마지막 초태생의 죽음은(11:4-10, 12:29-36) 경고한 후 유월절 행사 첫 날 밤에 시행되었으며 이 때에 비로소 완전한 허락을 한 것이 본문입니다. 그리고 11:4,10에 보시면 “모든 기사를 바로 앞에서 행했다” 하셨으므로 전체적으로 경고하고 시행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성경을 주밀하게 살피는 것과 악과의 대결이 이만큼 끈질기고 힘들지만 결국은 하나님과 성도의 승리로 끝난다는 것을 믿고 꾸준히 노력 하시자는 목적에서 입니다. 회개는 속히 할수록 유익한 것입니다.

 

제 14 과 초태생 구별과 인도 (출13:1-22)목록으로


본문을 살피면 4대지로 나누어 교훈 받을 수 있습니다. 영감의 성격상 문장의 순서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내용 중심으로 모아서 분류하면 ① 1-2, 11-13절은 “초태생을 구별하심” 이고, ② 3-7절은 “유교병을 멀리 하라”는 부탁이요, ③ 8-10, 14-16절은 “유월절의 의미를 전승함”이며 ④ 17-22절은 “출발과 인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1. 초태생을 구별하심(1-2, 11-13절).

1)1-2절 말씀은 “선민 중 사람이나 짐승(가축)을 무론하고 초태생은 다 거룩히 (정결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돌리라(드리라는 뜻) 이는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뜻은 애굽의 초태생이 죽을 때 하나님이 선민의 초태생을 살려주신 만큼 그것들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만유의 주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자기의 것(소유주관권)으로 구별 하셨은즉 복종하여야 할 것입니다.

2)11-13절에서는 “하나님이 조상(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대로(창 13:14-17) 너희를 가나안 사람의 땅에 인도하여 그 땅을 주시거든 모든 초태생을 다 구별하여 하나님께 돌리라” 하셨고, 12절 끝에서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라” 하신 것은 생산성 있는 암컷을 보호하시는 뜻과 예수님을 남성으로 보내신 것을 상징하신 뜻으로 여겨집니다. 그렇다고 하여 암컷 초태생은 제외하여도 된다는 뜻인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수컷만 드리라”는 뜻에 무게가 실리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13절에서 “장자만 대속 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3)13절에서는 “대속법”을 말씀하셨는데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양으로 대속 하라” 하셨은 즉 “나귀를 하나님께 바치기 위하여 성전으로 끌고 가지말고 어린양으로 바꾸어 드리라”는 뜻이요, “그렇게 아니 하려면 그 목을 꺾으라” 하셨으니 이는 “죽이라”는 뜻입니다. 대속할 양이 없을 경우에 그러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소와 양과 염소와(민 18:17) 비둘기(창 15:9, 눅 2:24)를 제외한 다른 동물을 제물로 쓴 일이 없습니다. 또 “너의 아들 중 모든 장자 된 자는 다 대속 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을 대속 하는 방법은 민 18:16에 기록되었고, 레 27:1-8 말씀도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2. 유교병을 멀리 하라(3-7절).

1)3절에서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애굽에서....나온 그 날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 말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 곳에서 인도해 내셨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과연 출애굽 사건은 기억하고 기념할 일입니다. 그래서 유월절 절기를 지키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 절기를 지킴에 있어서 유교병을 먹지 말 것을 강조하셨을까요? 유교병은 누룩 성분을 넣지 않은 딱딱한 떡, 즉 고난을 상징하는 떡이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은 예수님의 희생과 고난을 상징적으로 예표 하는 절기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2)4절에서 “아빕월 이 날에 너희가 나왔다”고 하셨습니다. “아빕월”은 새로 시작한 월력으로 1월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태양력으로는 3-4월에 해당한다고 합니다(신 16:1). 그런데 바벨론 포로 이후에는 이 달을 “니산월”이라 하였으니(느 2:1, 라 3:7) 첫 시작이란 뜻이 있는 듯 합니다.

3)5-7절에서는 선민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유월절을 지킬 때 누룩을 멀리 할 것을 거듭 당부하셨으니 누룩은 변질시키는 성분이라 그리스도의 불변성에도 배치되고 또 유교병은 고난을 음미하는데 배치되므로 그렇게 명하신 줄 압니다. “여호와께서 너(선민)를 가나안, 헷, 아모리, 히위, 여부스(생략된 족속도 있음. 기르가스, 브리스. 신 7:1) 사람의 땅 곧 조상들에게 (주시기로)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하다는 뜻) 땅에 이르면 이 예식을 지키되 7일 동안(1월 14-21일) 무교병을 먹고 7일(21일)에는 하나님께 절기를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절기는 시작의 날과 끝 날을 성일로 구별하여 제사를 드리라는 뜻입니다(12:16). 그리고 7절에서는 “7일 동안 무교병을 먹은 다음에 남은 것이 있지 않게 하고 네게 보이게도 말라” 하셨으니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예표 하는 유월절 행사가 완료되었음을 뜻하고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단 번에 성취하신 속죄사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유 1:3).

3. 유월절의 의미를 전승함(8-10, 14-16절).

1)8절에서 “그 날에(유월절을 지키면서) 네 아들에게 보여 이르기를 이 예식은 내가 (지키는 자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을 예상하고 가르친 말씀이지만 실제로 들어간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뿐임)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을(기념하기) 위함이라” 하고, 9절에서 “이것으로 (유월절 규례)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이 뜻은 율법을 늘 몸에 지참하고 눈앞에 보이게 하라는 뜻) 여호와의 율법으로 네 입에 있게 하라(읽으라는 뜻) 이는 여호와께서 능하신 손으로....인도하셨음이니” 10절에서 “연연히 기한이 되면 이 규례를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유월절의 특징은 의미를 기억하는 일과 기념하는 일, 또 배우고 전승하는 일을 중요시 한 것입니다.

2)14절에서 “장래에 (이는 먼 후시대를 뜻함) 네 아들이 (8절에도 ‘아들에게 보이라’ 하셨는데 이는 남성 중심으로 가족을 거느리게 하신 때문임) 묻기를 이것이 어찜이냐?” 하면, 역시 “과거의 출애굽 역사를 상세히 알리라”고 하셨습니다.(14-15절) 15절에서 “하나님이 애굽의 초태생을 다 죽이셨으므로(그 때에 죽임 받지 않은) 선민의 초태생을 하나님께 드리게 하셨으므로 생축의 초태생은 다 하나님께 희생(제물)으로 드리고 사람의 장자는 다 대속 한다”고 하셨습니다(1대지에서 설명하였음). 16절은 9절의 재설 입니다.

4. 출발과 인도에 대한 말씀(17-22절).

1)17절에서 “바로가 백성을 보냈다” 하셨는데 이는 일시적 굴복에 의한 허락일 뿐이요 “하나님이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숙곳에서 서쪽 지중해 쪽으로 북향하는 길)로 인도하시지 않으셨으니 이는 이 백성이 (블레셋 사람과의 충돌로)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되돌아갈까 함이라” 하시므로 하나님은 선민의 앞일을 미리 예견 예방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고,

2)18절에서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 광야 길로 백성을 인도하시매(지도를 보시고 노정을 참고 하십시오)....항오를 지어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항오”란 행렬의 보안적 태세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3)19절에서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취하였으니 이는 요셉이(창 50:25에서) 자손으로 그렇게 하도록 맹세시킨 것이므로 시행한 것이고, 또 하나님의 권고가 있을 것을 축복하였기 때문입니다.

4)20절에서 “그들이 숙곳에서 발행하여(지중해 쪽으로 50㎞ 떨어진) 에담에 장막을 치니” 21절에서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보호와 인도의 뜻)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기적의 현상으로 빛을 나타내심)으로 비취사 주야로 진행케 하시니” 22절에서 “낮에는 구름 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출애굽 노정은 별도로 연구할 과제이고, 하나님은 앞일을 예견하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고,(사 48:17) 구름과 빛도 주시며, 주야로 진행(믿음 생활은 주야가 없음)케 하시는 분임을 아실 수 있습니다. 선민을 보호 인도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성도 개개인을 보호 인도하시는 줄로 믿으셔야 합니다.

 

설교보충 3. 하나님과 선민 (출13:20-22) 목록으로


본문 말씀은 “하나님이 선민 단체를 보호 인도하시는 뜻으로 불기둥과 구름 기둥이 임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간에는 “하나님과 선민”이란 제목으로 말씀드리므로 “하나님과 성도와의 깊고 뜨거운 관계”를 깨닫게 해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1. 선민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구약 시대의 선민의 단체이고, 또 하나는 구원받을 대상 즉 성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의 선민은 아브라함 때에 하나님이 선택하여 야곱의 12지파로 민족 단체를 구성한 것인데, 하나님이 그 선민을 각별히 살펴주셨고, 성도라는 선민도 하나님이 선택하여 구원의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를 삼아 끝까지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민을 사랑하시는 이 는 하나님이 자기의 의지와 주권으로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요 15:16에 보시면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를 택하여 세웠다”고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성도를 죄인 되었을 때 택하셨고,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다 하셨으며(롬 9:11, 5:8, 11:29) 또 싫어버리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시며 구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사 44:9, 요 13:1, 17:21).

2. 하나님은 선민에게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을 이행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들이 약속 받으신 것이 있습니까? 꼭 이행하실 것입니다. 무슨 약속을 받으셨습니까? 천국 보내 주시는 약속, 심판 안 받는 약속, 상급 주시는 약속, 현세에서 복 주시는 약속 등 수없이 많지요. 한 가지 예를 들면 승천하시는 예수님이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또 다시 오리라, 성령님을 보내실 것이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리라” 하신 것이 다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번성할 것이고 애굽에 갈 것이나 다 나오게 하여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게 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약속을 약 500년 만에 지키신 것입니다. 한 민족이 300년 이상(430-80, 총리 기간) 노예 생활을 하였고 강한 왕권이 막는데 어떻게 나옵니까? 사람의 생각으로는 상상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3.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방도를 쓰셔서라도 약속을 이행하시는 것입니다.

1)모세를 죽음의 위기에서 살리시고,

2)왕궁 생활 40년, 목자 생활 40년으로 연단을 주시며,

3)또 지도자로 세우시고,

4)협력자를 세우시며

5)모세를 애굽 백성 앞에 크게 보이게 하시고(출 11:3),

6)열 한 번의 재앙으로 바로왕을 꺾으시며,

7)대적을 강퍅하게 하여 선민을 추격하게 하시고,

8)아주 가까이 추격하지 못하도록 흑암을 주시며,

9)선민에게는 광명과 홍해를 가르는 은혜를 주시고,

10)적군이 홍해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하여 질서 교란과 병거 바퀴를 벗기신 분이시며,

11)선민의 적을 홍해에 수장시키시고,

12)선민 앞에는 불기둥과 구름 기둥을 주셔서 주야로 보호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4. 그렇다면 선민인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셔야 됩니까? 마땅히 “나도 선민인데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보호와 인도를 받는구나”하는 감탄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이름을 손바닥에 새기셨다(사 49:16), 눈동자처럼 지키신다(신 32:10), 암탉처럼 날개 아래 품으신다(마 23:37), 주무시지 않고 지키신다(시 121:4), 환난을 면케 하신다(시 121:7) 등등의 말씀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에 있어서 불기둥, 구름 기둥으로 나타나신 뜻이 무엇입니까? “불기둥”하면 우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뜻이지요. 또 머물 것과 움직일 것과 방향을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구름 기둥은 또 무슨 뜻입니까? 그늘을 주시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선민이 불기둥과 구름 기둥의 인도를 받는다 할 때에 이방인들은 크게 두려워하였을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을 통하여 저희들이 깨닫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과 선민의 관계가 어떠하며(영원 불변의 관계) 하나님이 선민(성도)을 어떻게 대하셨는지를 아셔서 그 은혜가 바로 우리들에게도 나타내 주시는 은혜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은 이상과 같은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서 선민으로 하여금 홍해 바다를 건너게 하신 것입니다. 추격군이 죽고 홍해를 건너니 안심하게 되었고 되돌아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으로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홍해 도강은 영적으로 세례를 의미한다”고 벧전 3:21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노아 때는 물에서 구원받은 자가 8명뿐이었다, 물은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너희를 구원하시는 표인즉 곧 세례라, 육체를 씻는 것이 아니고 선한 양심(믿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시작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의 새 출발입니다. 바로의 권세(불신앙 세력)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얻고, 하나님의 계명에 복종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선민의 역사는 영적 은혜를 계시하시는 방도가 됩니다. 히 4:4에서 “7일은 영원 안식의 모형이라” 하셨고, 히 8:5에서는 “선민의 (제사와) 섬기는 것이 하늘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만나”는 신령한 양식의 모형이 되고(요 6:27-35), “가나안 땅의 입국”은 천국 안식의 모형이 되는 것입니다(시 98:11, 민 14:23). 참으로 하나님은 놀라우신 분입니다. 따라서 저희가 그 분의 택한 백성이 된 것은 바로 이 같은 큰 은혜 아래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제 15 과 바로의 추격 (출14:1-14)목록으로


본문을 살피면 ① 1-4절은 “에담에서 바알스본 맞은 편 바닷가로 이동케 하심”이고, ② 5-9절은 “바로의 군사들이 추격함”이며 ③ 10-14절까지는 “백성들의 부르짖음과 모세의 태도”입니다. 총 제목은 “바로의 추격”입니다.

1. 에담에서 “바알스본” 맞은 편 바닷가로 이동케 하심(1-4절).

1)1-2절은 하나님이 선민을 “에담”에서 “바알스본” 맞은 편 바닷가로 옮겨 장막을 치게 하신 말씀입니다. 고센 땅은 나일강 하류 지역에 속하고, 처음 집결지인 “숙곳”은 그 동북방에 자리하며 “에담”은 숙곳의 서북방 지중해 가까운 지역인데 거기에서 “돌쳐서”란 급하게 방향을 바꾸었다는 뜻으로 다시 동쪽으로 향하여 “바다(홍해를 뜻함)와 믹돌(역시 홍해 근방) 사이의 비하히롯(바알스본앞, 민 33:7) 맞은 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장막은 두 번째(첫 번은 숙곳, 13:20) 친 것입니다. 처음 숙곳에서 장막을 치게 하셨을 때는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인도하셨다가(13:18) 반대 방향인 지중해 쪽 “에담”으로 인도하셨고, 다시 홍해가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지형상 이유가 있었든지 아니면 블레셋 쪽으로 통과 안 하는 이유를 알리시기 위한 교훈의 목적이 있었을 것입니다(13:17).

2)3절에 보시면 바로가 선민의 출애굽 노정을 관찰할 때 “그들이 그 땅에서 아득하여(멀리 떠난 뜻)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고 판단할 입장이라고 하셨습니다. 단체의 행렬을 바다가 인접한 광야 쪽으로 향하는 것은 바로로 하여금 진로가 없는 것으로 여기게 하신 것입니다. 4절에서 “하나님은 바로가 여전히 강퍅심을 발동하여 추격이 있을 것을 아셨고 그 일로 영광을 얻으시며(대적을 파하여) 애굽 사람에게 하나님이 능력의 신 여호와이심을 알게 하실 것이라” 하신즉, “무리가 그대로 행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인도의 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믿고 복종한 것입니다.

2. 바로의 군사들의 추격(5-9절).

1)5절에서 선민의 도망한 것을 알게 된 바로와 신하들은 노예를 잃은 일에 대하여 후회하였고, 그 놓아준 마음을 다시 변하였으며 6-8절에서 “특별 병거 600승과 애굽의 모든 병거를 발하여 장관들이 거느리고 선민의 뒤를 따랐으니 이는 하나님이 강퍅케 하신 일이요 선민은 담대히 나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선민들이 장막 친 곳 가까이 이르게 된 것입니다(9절). 대적이 강퍅해지는 것과 그 군사들이 움직이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인도 섭리에 의한 것입니다.

3. 백성들의 부르짖음과 모세의 태도.(10-14절)

1)10절에서 “바로의 군대가 뒤에 미친 것을 안 백성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었고(호소한 뜻)”, 11-12절에서 또 모세에게 원망하기를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우리가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인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 하더뇨? 하면서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애굽인을 섬기는 것이 낫다 하였으니 처음 나오려 하였을 때도 상당수의 반대 의견이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막상 위기를 맞고 보니 그들은 가장 먼저 불평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고 난관을 만났을 때 원망하는 것이 마땅할까요?

2)12-14절에서는 모세의 신앙적 태도가 나타납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말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너희가 애굽 사람을 영원히 보지 못할 것이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니 가만히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순종하는 믿음도 있었거니와 경험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만큼 하나님이 능히 위험에서 건져 주실 줄로 믿은 것입니다. 14:1에서 “하나님이 그 온 군대를 인하여 영광 얻으실 것과 능력의 하나님으로 나타내실 것을 말씀하신 바가 있었고 그때 무리가 그대로 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위기에 처했을 때 처신하는 태도로 가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 부언할 것은 출애굽의 연대와 출발 노정에 관한 것입니다.

1)출애굽 연대에 관하여 필자는 기독교 신앙 백과 273P에서 성경에 나타난 연대에 준하여 주전 1449년으로 기록한 바가 있습니다만 아가페 출판 성서 지도 40P에 기록되기를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난 때는(출 8:1) 투투모세 3세(1501-1447BC) 때이며 출애굽 당시에는 아멘호텝 2세(1447-1420BC) 제 3년(1445년) 이라고 하였습니다.

2)선민의 출애굽 당시의 출발 노정은 같은 페이지에 기록되기를 “그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뜻은 고센땅(라암셋), 숙곳, 에담. 믹돌, 바하히롯(바알스본) 지점 등을 명확하게 표기할 수 없다는 뜻이요, “가데스 바네아”만 확정적이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연구하는 성도들은 나일강 하류 북부 지역에 고센땅이 있고 고센 땅을 “라암셋”이라 하였으며(창 47:11) 또 그 곳에 국고성이 있다(출 1:11) 하였으므로 왕궁과 고센 땅이 근접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출발 집결지는 “숙곳”이고, “에담”은 숙곳의 서북쪽인즉 지중해 쪽으로 움직였다가 다시 돌쳐서(되돌아온 뜻) “바알스본” 맞은 편 바닷가로 온 것이 홍해 바다에 가까이 접근한 지역으로 이해하심이 좋을 것입니다. 다만 블레셋 쪽을 향하는 듯 하다가 다시 홍해의 동남쪽으로 옮긴 것입니다.

 

제 16 과 홍해를 통과함 (출14:15-31)목록으로


본문 ① 15-18절은 “홍해를 가르게 하심”이고, ② 19-20절은 “흑암으로 애굽군의 추격을 저지하심”이며 ③ 21-28절은 “선민의 도강과 애굽군의 수장”이요, ④ 29-31절은 “믿음이 좋아짐”입니다.

1. 홍해를 가르게 하심(15-18절).

1)15-16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10절에서 백성이 부르짖은 것이나 모세가 방책을 쓰지 않으므로 그 책임을 지우신 뜻) 이스라엘 자손들로 앞으로 나가게 하고 (너는) 지팡이를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바닷물)으로 갈라지게 하라....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하신 뜻은 “호소에 앞서 실천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의 부르짖음은 신뢰의 기도가 아니고 원망의 아우성으로 보는 것이 마땅합니다(11-12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많은 교육과 연단과 체험을 주셨고, 또 17절에서 “군대로 인하여(적군을 없애시므로) 영광 받으실 것”까지 말씀하셨으므로 모세는 그만한 지도력을 갖고 홍해를 향하여 지팡이를 들었어야 할 것입니다. 응용 못하는 신앙은 무능한 신앙인즉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성도답게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며 사는 성도들이 되셔야 할 것입니다.

2)17-18절에서는 “하나님이 애굽군의 마음을 강퍅케 하셔서 선민의 뒤를 따라 들어가게 하시고 (그들의 죽음을 인하여) 영광 받으시며 여호와의 전능하심을 나타내실 것”까지 말씀하셨습니다.

2. 흑암으로 애굽군의 추격을 저지하심(19-20절).

1)19절에서 “이스라엘 진 앞에 행하던 하나님의 사자가.....뒤로 옮겨 행하매 구름 기둥도 뒤로 옮겨가더니 애굽군과 선민의 양쪽 진 사이에 이르러 애굽군 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선민 쪽에는 밤이 광명으로 변하여 추격군이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선민이 홍해 앞에 가까이 있을 때 있었던 일이고, 흑암의 성격은 출 10:21-23에서 있었던 것처럼 서로 볼 수 없을 만큼 어두웠을 것이요, 또 선민이 있는 곳에 밤이 광명으로 변한 것을 보면 태양 빛과 관계없이 초자연적으로 역사 하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2)20절에서 하나님은 선민의 편과 대적의 편을 구별하여 어두움과 광명을 주셨고, 그 방법으로 적군이 선민에게 가까이 이르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3. 선민의 도강과 애굽군의 수장(21-28절).

1)21-22절에서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 민즉 하나님이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셔서 바다가 마른 땅이 되었고, 물이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므로 바다 가운데를 육지처럼 통과하게 하신 것”입니다(29절). 이 사실은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널 때에 위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쌓여 멈춘 것”과 같지 않고(수 3:13), 오직 바람의 힘으로 물을 가른 것입니다. 본래 물은 바람을 타고 다니는 것인즉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2)23절에서 “애굽군이 그 뒤를 좇아 바다 가운데로 들어 왔다”고 하셨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강퍅케 하시는 섭리의 인도를 받은 것입니다(14:4). 24절에서 “새벽에 하나님이 불과 구름 가운데 임재 하셔서 그 군대를 어지럽게 (질서 있는 행렬이 문란해짐) 하셨고 또 병거 바퀴를 벗기셔서 (교통사고를 뜻함) 달리기에 극난하게 하셨으니” 이는 홍해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신 뜻입니다. 여기에서 질서 문란과 교통사고도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3)25절에서 이 사실을 느낀 애굽인 중에서는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애굽 사람을 친다”고 하였으나 돌이킬 수 없었고, 하나님은 26절에서 모세로 하여금 다시 바다에 손을 내밀어 애굽 사람들과 그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시니 물을 거스려 도망하려 하였지만, 27-28절에서 “다 물에 수장되고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4. 믿음이 좋아짐(29-31절).

1)30절에 보시면 “그 날에 선민들은 바다에 떠 있는 애굽 사람들의 시체를 보았고, 또 31절에서 하나님이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과 그 종 모세를 믿었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말씀 위에 서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을 그대로 믿으시란 뜻입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이 가지 않을 때는 하나님이 하시는 큰 일을 체험하여서라도 믿음이 좋아지기를 바라셔야 할 것입니다(요 14:10-11).

 

제 17 과 선민의 찬양 (출15:1-21)목록으로


본문의 내용은 “선민의 찬양”입니다. 하나님께 올린 노래인즉 찬양이 되는 것입니다. ① 1-18절은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노래한 것”이고(1절), ② 19-21절은 “아론의 누이 미리암의 찬양”입니다. 큰 은혜를 체험 하였은즉 감사와 감탄의 찬양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은혜를 받은 성도는 마땅히 찬양을 하셔야 합니다(시 147:1). 본문의 가사 내용을 보면 하나님의 위엄을 높이는 내용(1-3, 11-13절), 선민의 적을 대적하여 그 뜻을 꺾으신 내용(4-10절), 이방인이 떨고 선민에게 기업을 주신다는 내용(14-18절), 미리암이 찬양한 내용(19-21절)으로 되어 있습니다. 약 3500년 전에 선민들이 받은 은혜를 오늘날 성도들이 받은 것처럼(영적으로는 더 큰 은혜를 받았음) 생각하시면서 은혜를 받으셔야 할 것입니다.

1.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의 노래(1-18절).

1)1-3절은 찬송할 근거로써 “하나님은 높고 영화로우시며 대적(말과 탄자들)을 바다에 던지셨으므로 나의 힘과 노래와 구원이시며 나와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고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가사는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과 구원자 되심과 선민의 하나님이심을 강조하였고, 모세가 이 노래를 만들어 백성의 자손들로 부르게 하였을 것입니다.

2)4-10절은 “대적의 뜻을 꺾고 진노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냈으니 곧 9절에서 대적의 뜻은 “선민을 추격하여 재물을 뺏고 탈취물을 나누며 그들로 인하여 마음을 채우고(만족을 느낌) 칼을 빼어 그들을 멸하리라”고 마음먹었지만 10절에서 “주께서 주의 바람을 일으키시매 바다가 그들을 덮어 그들이 흉용한 물에 납같이 잠겼다”는 것이고(4-5절도 같은 뜻임), 6-8절에서는 “하나님의 권능으로(오른손) 원수를 부수시고 영광을 나타내시되 큰 위엄으로 거스르는 자를 엎으셨으니 곧 진노를 발하여 초개처럼 사르시는 분이시요 주의 콧김(작은 힘)에 바람이 일어나고 바다가 그들을 덮으며 큰 물이 바다 가운데 엉긴다” 하였으니 이는 자연을 지배하시고 대적을 쉽게 무찌르시는 하나님의 위엄을 나타낸 것입니다.

3)11-13절은 “절대자 하나님과 구원자 하나님을 찬양한 내용”으로, 11절에서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하므로 거룩과 영광과 위엄에 견줄 대상이 없음을 나타내셨고, 12절은 “오른손을 드신즉 땅이 그를 삼켰으니”....이는 큰 태풍을 하나님의 콧김으로 비유한 것과 같은 뜻이요(8절), 13절에서는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 그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가나안 땅 또는 천국을 비유한 뜻)에 들어가게 하시는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4)14-15절은 “이방을 두렵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열방이 듣고 떨며 블레셋 거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에돔 방백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거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하였으니 여기의 “블레셋”은 지중해 쪽 신광야 북쪽에 있고, “에돔”은 사해바다 남쪽에 있으며 모압은 사해바다 동쪽이고, 가나안은 요단강 서쪽 지역입니다. 그 곳의 거민들이 애굽을 혼내주고 출애굽 하였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몹시 떨었을 것입니다. 열방은 주위의 모든 민족을 뜻합니다. 16절에서는 “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미친즉 주의 팔(능력이 폭)이 큼을 인하여 그들(이방족들)이 돌같이 고요하였으되 주의 사신 백성(하나님이 구속하셨다는 뜻, 즉 애굽에서의 노예에서 해방된 것)이 (홍해 또는 광야를) 통과하기까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열방에 두려움을 주셔서 자기 백성을 보호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5)16-17절은 “기업을 주시고 영원히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찬양” 하였습니다. 17절에서 “주의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기업(영광 받으실 목적의 땅, 영원한 천국을 예표함)의 산에 심으시니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주의 손으로 세우신 처소라”고 하셨습니다. 이 뜻은 선민을 정착시킨(심음) 가나안 땅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다스리시고 영광 받으실 처소이며 또 다스림이 영원 무궁한 천국의 모형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2. 미리암의 찬송(20-21절).

“미리암”은 모세와 아론의 누이이고 선지자입니다.(20절) 강물에 띄워진 모세를 바로의 딸 공주에게 말하여 친모에게 양육 받도록 인도하였고, 한때는 모세를 시기하여 문둥병에 걸린 적도 있었으며(민 12:1-15) 가데스에 진 쳤을 때 죽었다고 하였습니다(민 20:1). 20절에서 “그가 소고를 잡고 모든 여인들과 함께 춤추며 찬송으로 화답하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소고(타악기의 일종)치며 춤을 춘 것이 특징이고, 찬송의 가사는 백성들의 가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능력을 체험하고 위기에서 구원받은 백성들인즉 감사와 찬양이 있음은 당연한 것입니다.

 

제 18 과 마라와 엘림 (출15:22-27)목록으로


본문의 제목은 “마라와 엘림”도 되고, “쓴 물과 단물”도 되며 “역경과 형통”도 됩니다.

1)22절에서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한 것”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따랐을 것이므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음이라 할 수 있고, “그들이 나와서(홍해에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3일 길을 행하였으나 그 곳에서 물을 얻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수르” 광야는 출발 지역에 인접한 광야를 의미합니다. 시나이 반도 지도를 놓고 보시면 홍해 서쪽 즉 스우에스 운하 쪽이 “수르” 광야이고, 지중해와 블레셋 쪽이 “신광야”이며 중앙 지역이 바란 광야이고, 남쪽(뾰족한 곳)이 시내 광야입니다. 수르 광야에서 3일 길을 걸어간 것은 홍해를 남쪽에 두고 중앙의 바란 광야 쪽으로 약 150리쯤 왔다는 뜻입니다. 필자가 89년도에 애굽을 출발하여 버스로 스우에스 운하를 지하도로 통과한 후 1시간쯤 가서 “마라”에 도착하여 30분쯤 걸어간 일이 있었습니다. 사막의 나무만 드문드문 있고 남쪽에 홍해가 바로 앞에 있더군요

2)23절을 보시면 “그 곳에 물이 써서 먹을 수 없었다”함은 깊은 곳에서 솟는 샘이 없고 낮은 웅덩이의 물만 있으므로 그 물이 곧 바닷물에 해당한 듯 합니다. 그래서 그 지역 이름을 “마라(쓰다는 뜻)”라고 하였습니다. 바닷물은 짜기도 하지만 쓰고 쓴 물을 먹으면 배탈이 날 것입니다.

3)24절에서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며...무엇을 먹을까?” 하였으니 이 원망은 출발 후 두 번째 원망입니다(14:11-12). 첫 번 원망은 애굽군의 추격을 인함이었고, 이번에는 물이 없음을 인함인데 그 동안 보호 인도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이 상식적인 도리일 것입니다. 이런 경우를 오늘의 성도들도 당할 수 있은즉 믿음의 처신이 중요한 것입니다.

4)25절에서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다”고 하였습니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하나님께 기도로 하소연 한 것입니다. 이 때에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지시하셔서 (계시로 알려주신 뜻) 그것을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다” 하셨으니 여기의 물이 달아진 경위는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처럼(요 2:8-11) 하나님의 기적으로 믿으면 좋고 또 이 상태를 과학적으로 해석한다면 나무 재료를 물에 넣어 여과 또는 소독을 하여 쓴 물을 중화 또는 제거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해석을 하려면 더 구체적인 합리성을 제시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쓴 물도 달게 하실 수 있습니다.

5)26절에서 “하나님은 그 곳에서 법도와 율례를 정하여 그들을 시험하셨다” 하셨으니 법도와 율례는 전체 율법의 일부를 미리 주신 것이고, “시험하셨다”는 뜻은 실천 시범을 나타내도록 지도한 것입니다. 26절은 곧 “법도와 율례의 내용”입니다. “너희가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귀담아 듣는 뜻)하고 나의 보기에 의(법도를 지키는 성의)를 행하며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청종과 같은 뜻) 또 내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인에게 내린(악질과 독종 등. 9:5-12)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쓴 물 치료의 본을 보여주신 후 계율을 주시고 그 계율에 대한 선민의 정성을 시험하시며 또 질병을 내리지 않으시고 주어진 질병을 치료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건강을 지키시고 또 질병을 치료하십니다. 의술의 혜택 없이 치료받는 질병도 많은 줄 압니다. 의료를 통해서 치료받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으셔야 합니다.

6)27절에서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이 지역을 확인하지 못하였으나 마라에서 시내산 쪽으로 오다 보면 물과 수목이 있는 곳이 있는데 그 곳은 시내 광야 쪽이므로 거리상 문제가 있음) 거기 물샘 열 둘과 종려 70주가 있어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쳤다”고 하였습니다. 물샘이 열 둘인즉 매 지파당 한 곳씩 쓸 수 있도록 하나님이 준비하신 듯 합니다. 또 종려 70주는 약한 자들에게 좋은 그늘을 제공하였을 것입니다. 인간의 여정이나 신앙 생활의 여정에는 이렇게 역경도 있고 그 역경을 인하여 연단도 받으며 때로는 엘림 같은 좋은 은혜도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제 19 과 식량 문제 해결 (출16:1-15)목록으로


본문 ① 1-3절은 “양식 핍절로 인한 원망”이요, ② 4-5, 11-12절은 “하나님의 대책의 말씀”이며 ③ 6-10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함”이요, ④ 13-15절은 “메추라기와 만나를 주신 상태”입니다.

1. 양식 핍절로 인한 원망(1-3절).

1)1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이 엘림을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광야에 이르고 (그때가) 출애굽 2월 15일(출애굽 45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신” 광야는 본문이 설명한대로 짐작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같은 지명이 또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본래 지도상의 신광야는 출발 지역에서 블레셋 쪽을 향하는 지역, 즉 수르 광야 북쪽이기 때문).

2)2-3절에서 백성들은 출애굽 45일 만에 양식의 핍절을 느껴 애굽에서 배불리 먹던 때를 생각하며 “자신들을 광야에서 주려죽게 한다”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으니 이는 세 번째 원망이었습니다(출 14:11, 15:24, 추격이 있을 때와 마라의 쓴 물에서 원망하였음). 양식이 핍절해진 것과 주림을 인하여 원망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됩니다.

2. 하나님의 대책의 말씀(4-5, 11-12절).

1)4절에서 백성들의 원망을 들으신 하나님이(7-9, 12절, 원망 들으신 사실을 네 번 강조하였음) 책망하시지 않은 상태에서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려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두게 하므로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 하나 아니하나를 시험하실 것이라” 하셨고, 5절에서는 “6일에는 날마다 거둔 것의 갑절을 주시므로 (안식일에 먹을 것을) 예비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4절의 “율법의 준행 여부를 시험하신다”는 뜻은 안식일에 휴식하는 여부를 시험하신다는 뜻입니다.

2)11-12절에서는 “하나님이 선민의 원망을 들으셨다 하시고 해질 때는 고기를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게 할 것인즉 이것을 백성들에게 알리라 이로서 하나님 여호와를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자주 자주 “여호와” 성호를 능력의 신으로 나타내셨습니다(출 10:2, 15:26).

3.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함(6-10절).

6-8절은 모세와 아론이 백성들에게, 9절은 모세가 아론에게, 10절은 아론이 백성들에게 각각 전달한 말씀입니다.

1)6절에서 “저녁이 되면 하나님이 너희를 애굽땅에서 인도해내셨음을 알 것이요(모세가 나오게 한 것이 아니라는 뜻), 7절에서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임재의 구름 기둥)을 보리니 이는 하나님이 너희의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관대 너희가 우리를 원망하느냐”, 8절 하반에서 “그 원망은 곧 여호와를 향하여 하는 것이라” 하였고,

2)9절에서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명하기를 여호와께 가까이 나오라 (믿음으로 영광의 구름 앞에 다가오라는 뜻)” 10절에서 “아론이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의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은 임재의 표식인 구름 기둥과 불기둥입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난 것”은 불기둥이 높은 구름 속에 나타난 현상을 의미할 것입니다.

4. 메추라기와 만나를 주신 상태(13-15절).

1)13-14절에서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사면에 있더니 그 이슬이 마른 후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미세한 것이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메추라기를 그 시간 그 곳에 보내신 것이고(왕상 17:4), “지면에 깔린 서리 같이 세미한 것”은 하나님이 특별 섭리로 주신 양식입니다.

2)15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이르되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엇이냐”란 애굽 말은 “만후”이기 때문에 서로 “만후 만후” 하였을 것인데 “만후”를 아람어로 음역하면 “만나”가 된다고 합니다. 70인역에서 출 16:31은 “만후”로, 민 11:6은 “만나”로 번역하였다고 합니다. 만나의 성분이 무엇일까요? 어떤 이는 “벌레가 식물성을 먹고 배설한 것이라” 하지만 그 많은 분량을 배설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고 자연 현상의 어떤 물질이라 하여도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5병 2어 등의 이적을 생각하시면서 “기적으로 주신 신비한 양식”으로 믿는 것이 상책일 것입니다. 다음 과목에서 계속 살펴보시지요.

 

제 20 과 만나에 대한 말씀 (출16:16-36)목록으로


본문의 ① 16, 36절은 “1인당의 분량”이고, ② 17-21절은 “분량의 조화”이며 ③ 22-30절은 “만나와 안식일”이요, ④ 31절은 “만나의 모양과 맛”이고, ⑤ 32-35절은 “만나를 간수함”으로 되어 있습니다.

1. 1인당의 분량(16-36절).

16절에서 “각 사람이 가호별(한 장막의 가족 단위)로 거둘 때 매인당 한 오멜씩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한 오멜”은 “에바”의 십분의 1로 곡식 한 단에서 탈곡한 분량인 2.2ℓ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오멜은 한 되요, “에바”는 한 말로 이해하심이 좋을 것입니다.

2. 분량의 조화(17-21절).

1)17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명대로 시행한즉 많이 거둔 자도 있고 적게 거둔 자도 있었다” 하였으니 이는 한 오멜 도량형이 없는 탓이고, 또 많고 적음은 거두는 자의 심리 작용에 따라 차이가 있었을 것이요, 혹 욕심으로 많이, 또는 양심적으로 적게 거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2)그런데 18절에서 “오멜로 되어본즉 분량대로 적중하였다” 하셨으므로 여기에서 이 기적의 양식을 공평하게 먹도록 하신 뜻과 분량이 축소 또는 확대되는 이적도 나타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곧 부풀려지기도 하고 스러지기도 한 것입니다.

3)19-20절은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고 먹으라” 하셨으며 “(불순종하여) 남겨둔 것은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났다” 하셨고, “모세가 그들에게 노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피의 차이만 나타내신 것이 아니라 보존과 부패에 대한 것도 형편에 따라 주관하셨습니다. “왜 남기지 말라” 하셨을까요? 매일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또 왜 남은 것을 부패 시키셨을까요? 불순종하면 유익이 없음을 알라신 것입니다(만나를 생명의 말씀으로 비유하였을 때, 고전 10:3, 설교자가 설교를 소비할수록 더 주시고 아낄수록 영감이 떠나는 것을 체험합니다).

4)21절에서 만나는 거두는 시간이 있었으니 “아침마다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고 해가 뜨겁게 쪼이면(햇빛의 뜨거움을 인하여) 그것이 스러졌다”고 하였습니다. 이 만나는 온도의 영향을 받는 물질인 듯하고 또 하나님은 만나 주시는 분량과 기회를 정하여 주신 것입니다(사 55:6).

3. 만나와 안식일(22-30절).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받으실 영광과 성도의 복됨을 위하여 안식일을 여유 있게 지킬 수 있도록 특별한 은혜로 배려하셨습니다. 이 때는 시내산에서 베푸신 율법이 있기 전이지만 이 안식일의 제도는 출애굽 때부터 유월절과 관련하여 지켜온 줄 압니다.

1)그래서 22절에서 “제 육일에는 갑절을 거두게 하셨고 23절에서 7일은(내일)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인즉 (미리)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되(요리, 가공하라는 뜻)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간수하라” 하시므로 미리 안식일에 먹을 것을 준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민 11:8에 보시면 “맷돌에 갈고 절구에 찧기도 한다”고 하셨습니다. 24절에서 이렇게 안식일 용도로 준비한 만나 음식은 그 다음 날에도 상하지 않고 보존되게 하셨습니다.

2)25-26절에서 “안식일에는 만나를 주시지 않는다”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7절에서 “7일에 나갔다가 얻지 못한 자들이 있음”을 보고, 28절에서 모세는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율법과 계명)을 지키지 않음에 대하여 책망” 하였습니다. 29-30절은 이 규례의 재설 입니다. 신약 시대에는 안식일 규례가 폐지되었지만 주일 지키는 정신으로 안식일 규례를 준용함이 지혜롭고 하나님께서도 주 영광을 위하여 성주 주일 하는 자에게 상당한 복을 주시는 줄로 믿어야 할 것입니다.

4. 만나의 모양과 맛(31절).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한 일에 대하여 15절에서 말씀드렸고, “깟씨”에 대하여는 이 나무가 땅꽈리처럼 생긴 1년초로써 산초 열매처럼 맺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색깔은 희다” 하였으니 흰 싸래기처럼(쌀 튀긴 가루 또는 진주, 민 11:7) 생긴 것이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다” 하시므로 단 맛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민 11:8에서는 “기름 섞은 과자”라고도 하셨습니다. 아무튼 40년쯤 먹을만 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양식을 주신 뜻은 자기 백성에 대한 양육의 책임과 복종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선민은 경성하고 규례를 지키므로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채소를 먹지 않고 어떻게 살았을까? 하시겠지만 이것은 다니엘이 고기를 먹지 않고도 초췌하지 않은 상태와 같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5. 만나를 간수함(32-36절).

1)3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명하시기를 “이것을 오멜(되, 항아리)에 채워서 너희 대대 후손을 위하여 간수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 광야에서 너희에게 먹게 한 양식임을 그들(후손)에게 보이기 위함이라” 하시므로, 역사의 실물을 남기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보존되는 “만나”는 부패하지 않았습니다.

2)33절에서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 하였으니 여기의 “여호와 앞”이란 지성소에 있는 법궤 안에 넣게 한 것인데(히 9:4) 성경은 언약궤를 하나님의 임재로 상징하였고(수 6:4, 왕상 3:15), 이 말씀은 만나를 처음 먹을 때 기록한 것이 아니라 모세의 말년에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이런 기록이 나타난 것입니다. 34절에서 아론은 그대로 시행하였고, 35절에서 선민은 “사람 사는 땅(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40년 동안 만나를 먹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만나는 수 5:12에서 “정착지 땅에서 생산된 양식을 먹은 그 다음 날”에 그친 기록이 있습니다.

3)고전 10:3에서 “만나를 신령한 식물”이라 하셨으니 이는 이적의 양식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씀(영혼의 떡, 마 4:4), 또는 예수님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계 2:17에서 성도가 천국에 가면 “감추었던 만나를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이 만나는 생명의 떡(요 6:35, 58)이신 예수님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먹도록 노력하셔야 할 것입니다.

 

설교보충 4. 분명하신 하나님 (출16:17-18) 목록으로


이 시간 말씀 드릴 제목은 “분명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세밀하게 약속을 지키시고 모든 일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을 보시면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만 보시지 마시고 세밀한 부분도 보시면서 하나님의 성격을 깨닫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때에 “뭐 그런 것까지 따지냐 적당히 넘어가지”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대부분 세심하지 않고 약속을 성그럽게 지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하나님을 본받아 분명하고 세심하며 규모가 있고 질서가 있으며 적중하고 적당하게 생활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밥을 하면 꼭 먹을 만큼만 하여 다 먹고 찬밥을 남기지 않는 생활이 좋다는 뜻입니다. 시간도 역시 적중하게 쓰고 잘 지키면 좋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고(고전 14:33), 적당한 것을 좋아하셨으며(고전 14:40) 규모를 강조하셨고(롬 2:19, 살전 5:14), 모든 일을 합당하게 하라(빌 1:27)고 하셨습니다. 5병 2어의 기적을 베푸실 때 “50명씩 줄지어 앉히라(눅 9:14)”하신 것을 기억하실 것이고, “남은 조각을 거두어 버리지 않게 하라(요 6:12)”하신 말씀을 기억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자 이시면서도 폐품을 거두셨습니다. 인간은 소비자이면서도 아낄 줄 모르면 그것이 주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규모 있고 적당하게 하시는 분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무거운 짐을 져도 규칙적으로만 살면 건강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규모가 무너지면 금방 무질서와 불행이 찾아온다는 것을 생각하시면서 성경을 연구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말씀은 잘 아시는 내용으로 하나님이 선민에게 양식을 나누어주신 말씀입니다. 만나 먹은 것을 누가 모르나? 하시지 마시고 “그 만나를 1인당 한 호멜씩 거두라” 하셨는데 되가 없이 짐작으로 거둔 것입니다(1호멜은 1되 2홉). 넉넉히 거두는 것은 욕심의 본심이고, 넘치지 않게 거두는 것은 양심의 본심입니다. 갖고 와서 되어보니 더 갖고 온 자도 있고 덜 갖고 온 자도 있었는데 먹으면서 결과를 본즉 적게 갖고 온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고, 많이 갖고 온 사람도 남지 않았으니 여기에 하나님의 주밀 하신 조화가 따랐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런 사실을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출애굽 기사에서 더욱 생생하게 느낀 것입니다. 약 500년 전에 조상 아브라함에게 출애굽이 있을 것을 예언하셨고(창 16:16),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키셨으며 그 약속을 지키시기 위하여 모세를 예비하셨고, 열 한 번의 재앙으로 바로왕을 어거 하셨으며 또 약속의 땅을 주시겠다 하신 것을(창 13:17) 이행하시기 위하여 선민을 출애굽 시키셨으니까 그때부터 보호와 양육과 인도의 책임을 이행하시게 된 것입니다. 개구리 재앙도 “내일 없앨 것이라”(출 8:10, 23, 29) 하셨으면 꼭 그때에 없애셨고, 우박 재앙도 “내일 준다” 하시고(출 9:5, 18) 그대로 하셨으며, 메뚜기 재앙도 “내일 없앤다”(출 10:4) 하시고 그대로 하셨습니다. 양식이 없다고 부르짖을 때 책망도 안 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는데(16:2-5) 아침에는 만나, 저녁에는 메추라기 또 1인당 한 호멜씩, 안식일 전날은 안식일을 위하여 갑절을, 혹 안식일에도 있는가? 하여 나가본즉 없고,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리 않게 조정하셨으며 남는 것은 두 번 못 쓰도록 상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대로 꼭 일용할 양식주의였습니다. 그러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곳 농산물로 대치되었을 때 만나 공급은 그쳤습니다(수 5:12). 얼마나 놀랍습니까? 만나는 비상 양식입니다. 곡식은 온전한 양식이구요. 온전한 것이 있을 때 임시적인 것은 없애시는 규모도 나타난 것입니다. 방언이나 예언이 바로 임시적이고 비상적인 은사입니다. 성경이 완성되지 않았을 때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모든 날 마지막에 예수님으로 계시를 끝내시고(히 1:1), 항상 살아 있는 성경(벧전 1:23)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과 사도의 터 위에 집을 지으라”고 하셨습니다(고전 3:11, 엡 2:20). 고전 13:10에 보시면 “온전한 것(성경)이 올 때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하셨고, 히 8:13에서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항상 살아있는 성경만 소중하다는 것입니다(유3).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은 질서 있게 하신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홍해는 열렸는데 애굽군이 추격합니다. 그래서 선민을 무사히 건너게 하시기 위하여 애굽군에게 흑암을 주셨고(14:19-20), 애굽군이 홍해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시려고 그들의 행렬을 교란(14:25)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기상 조건도 유익하게 해 주십니다.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하게 주신다”고 하셨습니다(레 26:4, 신 11:14, 욜 2:23). 그래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됩니다(히 4:16). 그런데 비가 너무 오고 바람이 너무 불어 태풍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이고, 경고라고 보셔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질서는 죄악의 산물이고, 적당하지 않은 것도 잘못된 결과이며 약속이나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자신의 생활의 나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하신 분입니다. 또 주밀 하십니다. 머리털을 헤아리시는 분이라고 하셨습니다(마 10:30). 질서 있고 적당하게 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라서 이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제 21 과 “르비딤”에서 있은 일 (출17:1-16)목록으로


“르비딤”에서 있은 일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물이 없자 반석에서 물을 내어 먹게 한 일이고(1-7절), 또 한 가지는 아말렉을 격파하고 기념 제사를 드린 일입니다(8-16절). 그래서 “르비딤에서 있은 일”로 제목을 정하고, 4대지로 나누어 살피려고 합니다. ① 1-3절은 “네 번째 원망”이요, ② “반석을 쳐서 물을 냄”이며(4-7절) ③ “아말렉과 싸워 이김”이요(8-13절), ④ “승리를 기념함”입니다(14-16절).

1. 네 번째 원망(1-7절).

1)1절에서 “백성의 온 회중이 하나님의 명에 따라 신광야를 떠났고, 그 노정대로 르비딤에 와서 장막을 친즉 그 곳에 물이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은즉 물 없는 곳으로 인도를 받은 것이요, “르비딤”은 지도상으로 살필 때 시내산 서쪽 약 20㎞ 지점입니다. 시내산은 시나이 반도 남쪽 중앙 지역입니다. 따라서 시내산 지역 가까이 온 것입니다. 그 지역에 물이 없는 것은 사막 지역이기 때문이며, 하나님은 대책이 있으시므로 그 곳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2)2절에서 백성들은 모세와 다투었고, 모세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온 것인데) “왜 나와 다투느냐” 하였으며 모세와 다투는 일 그 자체는 “하나님을 시험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뜻은 모세를 하나님 대행자로 여겨서 모세를 멸시하고 흔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대행한 만큼 모세와의 다툼이 하나님을 시험함이 된 것입니다. 약자가 강자를 시험함은 망령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죽어도 복종심만 가져야 합니다(욥 13:15, 각주).

3)3절에서 “거기서 물이 갈하매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원망의 내용은 짐작할 수 있는 대로 “왜 우리를 나오게 하여 우리와 자녀들과 생축들을 목말라 죽게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원망은 출애굽 후 네 번째였습니다(14:12, 추격 당할 때, 15:24, 마라의 쓴 물, 16:29, 양식 없을 때). 원망은 무익한 것이고(시 78:40), 성도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신뢰가 커야 합니다. 또 어려운 일이 닥쳐도 처음에는 연단으로 감사하고 다음에는 복 되게 하시는 섭리로 믿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신앙에서 그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창 45:7, 사 48:17, 롬 8:28).

2. 반석을 쳐서 물을 냄(4-7절).

1)4절에서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기를(호소한 뜻)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얼마 아니면(지체하면) 내게 돌질 할 것 같습니다”한즉

2)5-6절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백성 앞에 지나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지팡이로)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실 것이라”하셔서 “모세가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반석을 쳐서 물이 솟게 하여 먹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인바 믿음으로 순종할 때 말씀대로 성사됩니다. 모세는 돌질 할 듯한 백성 앞을 믿음으로 지나갔고, 장로들을 대동한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협력하는 뜻도 있겠지만 모든 백성들에게 홍보할 책임이 있다 할 것입니다. 하수를 친 지팡이는 그 자체에 신비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세로 하여금 그렇게 쓰신 것뿐입니다. 물을 솟게 한 반석은 “므리바”에 있었고, 하나님은 호렙산 반석 위에서 모세를 대하여 임재 하셨으며,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므리바와 호렙산 반석은 약간의 거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에서 비도 내리시고 땅을 열어 물도 솟게 하십니다(창 7:11).

3)요 7:38에서 예수님을 생수로, 고전 10:4에서 “반석을 그리스도”로 비유한 말씀을 보면, 반석에서 물을 내신 사건이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을 예표한 계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4)7절에서 “모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로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맛사”는 시험의 뜻이고, “므리바”는 다툼의 뜻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성도에게 능력과 기적을 나타내셔야만 함께 계신 것은 아닙니다. 숨어 계실 수도 있으니까요(사 45:15). 성도는 항상 하나님이 함께 계신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창 28:15, 마 28:20).

3. 아말렉과 싸워 이김(8-13절).

1)8절에서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웠다”고 하였습니다.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좋은 일이 있자 또 어려운 일이 있은 것은, 마라의 쓴 물이 있자 엘림의 단물을 주신 것처럼 시련과 교훈을 주심일 것입니다. 성경에 아말렉 족이 “가데스 지경에 살았다”는 말씀이 창 14:7, 아브라함 시절의 역사에 나오고, 또 창 36:12에서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의 소생이라”(에서의 손자)고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창 36:9-12에 나타난 에서의 계열과, 대상 1:35-36에 기록된 에서의 계열에 차이가 있으니 잘 연구해 보십시오. 문제는 이 아말렉 족이 전자냐 후자냐 하는 것입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창 14:7에서는 아말렉의 조상을 말씀하지 않았고, 그 기록이 역사적으로는 450년 쯤 앞서지만 모세의 기록이 자기 시대에 기록한 것임을 감안할 때, 창 36:9-12에 근거하여 다같은 아말렉(에서의 후손)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 족속들이 “가데스”에서 르비딤까지 가려면 약 140㎞ 동남진 하였을 것입니다.

2)9절에서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군사를 택하여 싸우게 하고, 자신은 내일 지팡이를 잡고 산꼭대기에 서겠다” 하였으니 모세는 이미 지팡이의 신비성과 능력을 터득한 때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10-11절에서 “여호수아는 모세의 말대로 하였고 모세와 아론과 훌(유대인의 전설에 미리암의 남편이라 함)이 함께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지팡이 잡은 손을 든즉 이스라엘이 이기고, 내린즉 아말렉이 이겼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팡이 신호에 따라 능력을 나타내신 때문입니다. “지팡이를 들었다”는 뜻은 오늘의 성도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기도하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노력, 기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 합치된 것입니다.

3)12절에서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로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양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린즉 해가 지도록 그 손을 내리지 않았고”, 13절에서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므로 쓰임이 된 것이고, 아론과 훌은 모세를 도운 자이며 여호수아와 군사들은 일선에서 싸운 자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아론과 훌은 모세의 뜻을, 백성들과 군사들은 아론과 훌의 뜻을 따르므로, 하나님과 사역자와 싸우는 군사가 일체된 것입니다.

4. 승리를 기념함(14-16절).

1)1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 역사를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 기억함이 없게 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영감으로 기록하게 하신 것이 본문(모세5경)이고, 이 사실을 기록하게 하신 이유는 “기념하기 위함”이라 하셨지요. 이 기념으로 후시대의 성도들에게 귀감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여호수아에게 듣게 한 것”은 구전 교육의 필요성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선민의 적을 자신의 적으로 여기셨기 때문에 그 족속을 없애심으로 그 후시대에 “아말렉”이란 이름이 없어진 것입니다.

2)15-16절에서 “모세가 단을 쌓고(제사를 드린 뜻) 그(제단)의 이름을 닛시(하나님은 나의 기란 뜻, 즉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다는 표임)라” 하였고, 16절에서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으니, 이 말씀은 모세가 영감으로 나타낸 것이고, 하나님이 아말렉과 대대로 싸우셔야 할 이유는 “아말렉”은 초기부터 선민을 괴롭힌 하나님의 적이요, 마귀의 상징으로 여기신 때문일 것입니다.

 

제 22 과 가족 상봉과 재판 업무 (출18:1-27)목록으로


본문은 크게 두 대지로 되어 있으니 하나는 “모세의 장인과 처자의 상봉”이고(1-12절), 또 하나는 “장인의 재판 업무에 대한 자문”입니다. 또 이것을 두 대지씩 나누어 상고할 수 있으니 ① 1-6절은 “장인과 처자의 방문”이요, ② 7-12절은 “이드로가 하나님을 찬양함”이며 ③ 13-16절은 “모세의 재판”이고, ④ 17-27절은 “재판 업무에 대한 자문”입니다.

1. 장인과 처자의 방문(1-6절).

1)1절에서 “모세의 장인 이드로”에 대한 것은 2:16-18에서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 선민의 출애굽에 대한 소식과 하나님의 역사 등 모든 소식을 소문에 의하여 듣고

2)2-6절에서 “모세의 가족(아내와 두 아들)을 상봉시키기 위하여 호렙산 근방 광야에(선민의 진 친 곳, 5절) 왔다”고 하였습니다. 모세의 아내의 이름이 “십보라”임과 그의 장자 “게르솜”에 대하여는 2:21-22에 기록이 있고, 차차 “엘리에셀”(하나님의 도우심이란 뜻)은 출생한 기사가 없으나 본문 4절에서 소개되었습니다. “이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는 뜻으로 “엘리에셀”이라 한 만큼, 이 “구원”은 모세가 애굽에서 도망할 때(2:15) 바로를 피하므로 죽지 않게 된 사실을 기념한 것이므로 “엘리에셀”은 게르솜에 이어서 출생한 것입니다.

3)6절에서는 “이드로”가 모세 있는 곳에 가까이 와서 자신과 모세의 아내와 두 아들이 온 것을 모세에게 알렸으니 이들은 모세가 처가에서 애굽으로 데리고 나오다가 중도에서 돌려보냈던 가족들입니다.(2절, 4:24-26에서 돌려보낸 듯 함) 5절의 “하나님의 산 진 친 곳”이란 호렙산 근방을 뜻하고, 호렙산을 “하나님의 산”으로 칭한 것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나실 때와(3:1-5) 아말렉을 칠 때에 임재 하시므로(17:6) 구별하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2. “이드로”가 하나님을 찬양함(7-12절).

1)7절은 “모세가 장인을 맞아 인사한 격식의 기록”이고, 8절은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을 상당하게 고한 사실”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 때에 모세의 장인은 더욱 놀라운 사실들을 자세히 들었을 것입니다.

2)9-12절은 “놀라운 소식을 들은 이드로의 반응”으로 9절에서 “하나님이 선민에게 모든 은혜를 베푸사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신 것을 기뻐하였고”, 10절에서는 “그 사실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리라” 하였으며 11절에서는 “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히 행하는 그들(애굽인들)을 이기셨다” 하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가장 크시고 능력 있는 신이심을 증거로써 깨달았음을 고백하였습니다.

3)12절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제사”인데 이는 감사의 성격으로 드린 듯하고, “번제물과 희생(제물될 양을 뜻함)을 이드로가 가져왔고,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함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서 떡(친교의 잔치)을 먹었다”고 하였습니다.

3. 모세의 재판(13-16절).

1)13절에서 “모세가 (장인을 만난) 이튿날 홀로 재판을 하는데 (재판 받을) 백성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 곁에 선 것을 보고, 14절에서 그 이유를 믈은즉”, 15절에서 “그들이 (모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하나님께 물으려고 오는 고로 16절에서 모세가 양편의 송사를 판단하여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알게 한다는 것”입니다.

2)그래서 모세의 장인은 모세에게 자문하기를 17-18절에서 “한 사람의 기력(건강)을 쇠하게 함이 선하지 않음”을 말하고, 19-20절에서는 “모세가 하나님 앞에 있어 소송을 하나님께 베풀 것(하나님이 하실 일을 대리하는 뜻)과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하나님 뜻대로 사는 법)을 가르침에 충실할 것”을 말하였고, 또

3)21-22절에서는 분담제를 제언하였으니 곧 “온 백성 가운데 재덕이 겸전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 무망(실수가 적고 참신한 인격)하고 불의한 이(利)를 미워하는 자를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삼아 그들로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큰 일은 모세가 (직접) 베풀되 작은 일은 스스로 재판하게 함이....그대에게 쉬우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23절에서 “이드로”는 모세가 선지자임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가하시면”이란 단서를 달았습니다.

4)이리하여 24-25절에서 “모세가 그대로 시행하였다” 하였고, 26절에서 “모세는 어려운 재판만 하고 쉬운 일은 스스로 하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모세의 장인은 고향으로 갔습니다(27절). 모세가 재판을 홀로 맡은 것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시적 지도를 받으려는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재판은 주어진 도리와 법도대로 판단할 것이 많은즉 분담하는 것이 더 이상적입니다.

 

제 23 과 계명 받을 준비를 명하심 (출19:1-25) 목록으로


1-2절을 보시면 “선민이 출애굽한 지 3월이요(신광야에 이르렀을 때는 2월 15일이었음. 16:1), 그들이 르비딤에서 시내 광야에 이르렀고, 광야에 장막을 치되 산 앞에 쳤다”고 하였습니다. 이 산은 시내산 입니다. 필자가 89년도에 그 지역을 순례한 기억이 납니다. 그 곳에 천막형 숙소를 많이 지었고, 그 곳에서 새벽 3시경에 일어나서 시내산을 오르게 되면 6시경에 정상에 도착합니다. 본문 전체의 제목은 “계명 받을 준비를 명하심”이고,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시내산에 세 차례 올라가서 하나님과 대화한 내용인바 ① 1-8절은 “1차 말씀을 받음”이고, ② 9-19절은 “2차 말씀을 받고 준비함”이며 ③ 20-25절은 “3차 말씀을 주심”입니다.

1. 1차 말씀을 주심(1-8절).

1)3절에서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갔음”은 하나님이 시내산 위로 오도록 부르셨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려야 할 말씀을 주셨으니

2)4절에서 “하나님이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셨음과(열한가지 재앙과 군사를 수장 하셨음) 내가 너희를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업어 하나님께로 (믿음의 길) 인도하였음을 보았다” 하셨으니, 이 말씀은 출애굽의 장황스러운 역사를 기억하게 하신 말씀이고, “독수리 날개로 업었다” 하심은 독수리가 그 새끼를 연단 시키면서 위기 직전에 업어 올리는 것처럼 선민을 보호하셨다는 뜻입니다(신 32:11).

3)5-6절에서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하시고 “이 말을 백성들에게 고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세계가 다 하나님께 속한 사실”(통치 섭리 등)을 유의하셔야 하고 “열국 중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는 뜻은 부모가 자식을 살피는 것처럼 특별한 은혜로 보살펴 주실 약속이며 “제사장 나라가 됨”은 영적 축복의 중재자가 됨을 뜻하고, “거룩한 백성이 됨”은 특별히 순결하고 구별된 취급을 받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영적 중재자로써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으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창 12:3, 19:29). 짐승도 주인을 잘 만나면 행복한 것을 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은 곧 하나님이 주인되어 주신다는 뜻입니다.

4)7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하나님이 명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 앞에 진술하였으니” 이것은 곧 진리 증언의 사명을 다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마 4:4)을 다 진술(증언)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5)8절에서 (이 말씀을 들은)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할 것이라” 하므로 증언자의 증언이 크게 효력을 본 것입니다. 모세는 이 사실을 “다시 하나님께 회보하였다” 하였은즉 2차로 산에 올라간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2. 2차 말씀을 받고 준비함(9-19절).

1)8절 끝에서 “여호와께 회보하였다” 하였고, 9절 끝에서도 “백성의 말로 하나님께 고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백성의 말은 “여호와의 명대로 다 행하겠다”(8절)는 내용이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9절에서 “하나님이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으로 듣게 하며 또한 (백성들로) 너를 믿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빽빽한 구름이 임하면 백성들 마음에 공포심도 생기고, 숙연한 자세를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중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는 것을 백성들이 직접 확인하게 하시므로 말씀을 받는 모세의 신분을 하나님의 사자로 믿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백성들에게 뚜렷하게 들렸는지 아니면 소리로만 들을 수 있게 하셨는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요 12:29, 행 9:3-7).

2)10-11절에서 계속 말씀하시기를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 하며 그 옷을 빨고 예비하여 제 3일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제 3일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 시내산에 강림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성결케 하는 방법”은 옷을 빨고 예비하는 것을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을 가까이 모실 때 의복의 단정함이 필요한 것이고, 3일을 “기다리게 하심”은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가는 자로서 경건의 준비를 위한 듯 합니다. 8절에서 순종의 결심을 나타낸 만큼(이는 영적 순결임) 외적 순결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시내산에서 백성의 목전에 나타나신다”함은 모세가 불꽃 앞에 섰던 것처럼(3:2) 빽빽한 구름 가운데 임재하여 백성들 앞에 가까이 오셨음을 보여주시는 뜻입니다.

3)12-15절은 백성들이 접근을 삼가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12절에서는 백성으로 하여금 산에 오르지 못하도록 지경을 정하여 범접하지 못하게 하셨고, 13절에서는 만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 가까이 오는 자가 있을 때는 “손을 그에게 댐이 없이 (즉 사람이 해하지 않아도)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거나 살(독 있는 곤충)에 쐬어 죽임을 당하되 사람이나 짐승을 무론하고 살지 못하리라” 하시고, “나팔을 길게 불거든 산 앞에(까지만) 이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뜻을 나타내실 때 특별한 사역자를 세워 나타내셨고, 모든 백성에게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나팔을 길게 불거든”하신 것은 하나님이 나팔 소리를 들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살전 4:16).

4)15절에서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백성을 성결케 하는 일을 하였고,(10절) (경성하므로) 예비하되 3일을 기다리면서 여인을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부부라도 하나님의 위엄 앞에 나가려고 준비할 때는 경성함이 좋으므로 여인을 삼가게 하신 것입니다.

5)16-19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시는 장엄한 일이 생겼습니다. 16절에서 “제 3일(예비한 때부터 3일임. 11절)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진 중의 모든 백성이 떨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들은 하나님의 임재의 위엄을 나타내신 일들로서(출 3:2) 예수님의 승천과(행 1:9) 재림시의 상태(마 24:30-31, 살전 4:16) 등에서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선민에게 믿음과 경외심을 주시기 위하여 자신의 존재와 위엄을 알리실 필요가 있었다고 봅니다.

6)17절에서 “모세는 하나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백성을 거스르고 진에서 나와 산기슭에 섰더니 18절에서 시내산에 연기가 자옥하며 옹기점 연기처럼 떠오르고 온 산이 (우뢰와 나팔 소리 등) 크게 진동하더니 하나님이 불 가운데 강림하심이라, 19절에서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 모세가 말한 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음성으로 답하심”은 들을 만한 말씀으로 직접 듣게 하신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주시고 기록하게도 하신즉 음성으로 답하실 수 있습니다.

3. 3차 말씀을 주심(20-25절).

1)20절에서 “하나님은 그 산꼭대기에 강림하셨고, 모세를 부르심으로 올라간즉 21절에서 내려가서 내 백성을 신칙(申飭. 다짐하는 것)하라 백성이 돌파하고(저지선을 넘는 것) 나 여호와께로(가까이) 와서 보려고 하다가 죽을까 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왜 인간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면 죽어야 할까요? 그 이유는 어둠(죄 있는 피조물)이 빛(절대자 하나님)을 만나면 소멸되는 것과 같고, 또 피조물은 절대자의 뜻과 명령에 복종하므로 가까이 나가야 하는데 명을 거역하는 방법으로 접근하면 죽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함부로 가까이 못하도록 신칙 하게 하신 것입니다.

2)22절에서 “또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도 그 몸을 성결케 하라 (제사장들도 깨끗지 못하면) 여호와가 그들을 돌격할까 하노라” 하시므로, 성도가 명을 어기면 “죽을까 하노라” 하셨고, 제사장들이 순결치 못하면 “돌격할까 하노라” 하시므로, 그 응징성에 차이가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돌격은 강한 용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에 제사장을 어떻게 세웠는가? 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다른 율법과 함께 시내산에서 계율을 주실 때(28:1) 받았으니까 이 때는 그 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일은 아론을 보조자로 세우실 때 아론을 보조할 제사장도 임시로 세워주셨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3)23절에서 모세는 “산 사면에 지경을 세워 산을 거룩하게 하라(구별된 지역에 접근하지 말라) 하셨은즉 백성이 오르지 못할 것이라” 하였고, 24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가라 너는 내려가서 아론과 함께 올라오고 제사장들과 백성들은 돌파하고....올라오지 못하게 하라 내가 그들을 돌격할까 하노라” 하시므로 25절에서 “모세가 내려와서 (백성들에게) 그대로 고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선지자의 입장인즉 하나님이 주신 말씀대로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제 24 과 십계명과 제단 건립 (출20:1-26)목록으로


본문 말씀은 ① 1-17절까지는 “10계명”이고, ② 18-21절은 “백성이 두려워함”이며 ③ 22-26절은 “제단 건립”의 말씀입니다(우상 숭배 금지에 대한 말씀. 23절은 4-5절의 재설 입니다). 따라서 “십계명과 제단 건립”이란 제목을 정할 수 있습니다.

1. 십계명(1-17절).

1)1-2절은 서론으로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시되(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땅에서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시므로 말씀하시는 하나님 신분과 계명 주시는 근거를 말씀하셨습니다. 말씀하시는 분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 이시고, 계명 주시는 근거는 “애굽땅의 종 되었던 집에서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애굽인의 종, 신앙적으로는 사탄의 종인 상태를 하나님의 종으로 변화시켜 주셨으므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신 것입니다.

2)3절은(제 1계명으로) “너는 나 외에(히브리어 번역은 내 앞에) 다른 신들(히. 하나님)을 네게 있게 말라” 하시므로 여호와 하나님만 절대 유일신으로 모시고 다른 잡신이나 숭배의 대상은 일체 용납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람 중에 존경할 자가 많고 그들이 종교의 교주가 되었다 할지라도 성도의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뿐임을 아셔야 합니다.

3)4-5절은(제 2계명으로) “우상을 만들어 숭상하지 말 것”을, 또 5-6절에서는 “상벌에 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① “너를 위하여(복을 받는 개념) 새긴 우상(숭배를 목적으로 조각한 것)을 만들지 말며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천사 모양 같은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많은 동식물과 자연이 있음)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숭배 또는 의지할 목적으로)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행 17:19). 여기의 “우상을 섬긴다”는 뜻은 인격 없는 것들에게 제물을 드리거나 경배하는 태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조각할지라도 의미를 느끼는 것으로 족할 뿐, 의지, 숭배하는 목적으로 만들면 안됩니다. 십자가 그림이나 조각을 의지, 숭배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것 자체를 보이지 않게 하는 교파도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드라빔(창 31:34)같은 우상을 많이 사용하였으니 이런 것은 우리나라에서 활용하는 부적과 같은 것입니다. 천주 교회에서 마리아 동상을 만들어 절하거나 성자의 유골에 입을 맞춘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렇게 행하고 변명할 수 있는 것인지 이 말씀에 비추어 생각해 보십시오. 신앙적 행위로는 예수님의 은혜만 생각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바울 사도가 십자가만 자랑한 것처럼(갈 6:14), 또 “탐심도 우상 숭배라” 하셨지요(골 3:5). ② 상벌에 관한 말씀에서 “질투하는 하나님이라”하신 것은 영광 받으실 대상이 하나님뿐이심을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사 42:8, 12, 48:11을 읽어보시면 “하나님은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본질적이고 고유적인 속성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게 영광이 돌아간다면 하나님은 노여움을 발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3,4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절에서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상벌주시는 분이고, 이 본문의 상벌은 현세적이며 벌은 경하고(라 9:13) 복은 후하게 주시는 뜻입니다. “3, 4대 아들”이란 말씀이 딸은 제외된 뜻도 되지만 조심스럽게 후손의 뜻으로 이해하셔도 될 것입니다. 그리고 “수천대”는 많은 것을 표현한 어법일 것입니다. 여하튼 대대로 복 받는 방법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4)7절은(제 3계명으로)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성경 보감 1P에 보시면 하나님의 이름 또는 대명사격으로 사용하는 이름이 113개나 됩니다. 그 중에 “여호와, 임마누엘, 예수”가 그 대표적 이름입니다. 성령님은 특별한 이름이 없지만 존칭의 뜻으로 “님”자를 붙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은 하나님의 명예를 손상하도록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2002년 아시안 게임 때 이북에서 넘어온 응원 단원이 “김정일 현수막이 비를 맞는다” 하여 항의한 소동, 또 금강산에 현시된 “천출(天出) 장군 ㅇㅇㅇ를 천한 신분이 출세한 것으로 여긴다는데 대하여 분노한 사실”을 기억합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은 곧 그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과 같은데 이것은 말의 실수로 잘못 일컫는 경우도 있지만 빛 되지 못한 생활로 더럽히는 경우가 더 많은즉 항상 두렵게 여기고 조심하여 그 이름을 영화롭게 할지언정 훼손하면 죄를 짓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란 사람이 속이 상하다 하여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또는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 누가 아느냐?”는 식으로 말을 뱉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식의 말도 하나님의 명예를 손상함이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참람된 말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5)8-12절은(제 4계명으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8절에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신약의 성도들은 구약의 안식일 제도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골 2:16) 성경을 연구하는 차원에서 안식일의 출처와 시작을 알아볼 필요는 있습니다. ① 안식일의 근거는 창 2:1-3에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창조 사역을 끝내시고 쉬셨으며 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다” 하셨지만 그 날을 지킨 역사와 명령은 없습니다. 그리고 노예 생활 400년 동안 지키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따라서 안식일은 출애굽 때에 와서 시작되었다고 보셔야 합니다. 선민의 출애굽 시점은 1월 첫 달입니다(출 12:2). 그리고 유월절 규례에서 부터 안식일 지킨 시작이 나옵니다. 1월 10일에 유월절 양을 취하고(출 12:3) 14일까지는 간직하며(출 12:6) 14일 해질 때 잡는데(14일 해질 때부터는 선민의 풍습상 15일의 시작이 됩니다. 출 12:6, 18) 그러나 날짜보다 7일의 주기(週期)가 중요합니다. 일단 14일 저녁부터 21일 저녁까지는 유월절 기간인데 첫 날과 마지막 날을 성회라 하였고(출 12:16-18), 7일 동안 무교병을 먹으며 지키게 하였지요(출 12:15). 또 “성회에는 아무 노동도 하지말고 각인의 식물만 갖추라”(출 12:16) 하셨은즉 이 첫 날과 마지막 날을 안식일 지킨 날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겨집니다. 현재 사용하는 요일(월,화,수,목....)이 언제부터 도입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구약의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 그리고 동양에서는 하루의 주기를 해질 때가 아닌 0시로 보니까 유월절 양을 희생시킨 14일 저녁이 금요일이 되고 그 다음날이 토요일이 됩니다. 구약의 유월절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고전 5:7, 요 18:28, 19:14). 이 뜻은 요일과 상관없이 유월절 첫 날과 끝 날이 안식일이었다는 뜻입니다. 또 선민은 광야 여행을 하면서 만나를 거둘 때 안식일 성수의 명분을 확실하게 하였습니다. 출 16:25, 30에 보시면 안식일에 만나를 거두지 않았고 백성이 안식을 하였은즉 그때부터 안식일의 주기적 개념이 시작된 것입니다. 특별한 혼란 없이 지금까지 전승해 왔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안식일은 구약 시대에 선민에게만 주어진 계명입니다. ② 안식일을 지키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복된 날, 또는 복 주시는 날로 구별하여 선민에게 복을 주시고 선민으로 하여금 세속적 생활을 떠나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믿음을 키우는 영적 승화의 날로 주셨다고 보셔야 할 것입니다. 이 목적에 대한 것은 주일의 의미와 같습니다. 다만 구약의 안식일이 천국 안식의 모형이라면 신약의 주일은 부활과 영생의 모형입니다. ③ 8-10절에서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법”을 말씀하셨습니다. “기억할 일(8절) 엿새 동안은 일반적인 일(네 모든 일)에 힘쓸 것(9절), 안식일에는 가족과 종과 육축과 객이라도 일하지 말 것(10절)을 명하셨고, 11절에서는 안식일의 근거가 창 2:1-3에 의하였음을 재설 하였습니다.

6)12절은(제 5계명으로) 효도의 계명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면....네게 준 땅에서 네게 준 생명이 길 것이라” 하셨으니 효자에게 장수의 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계명을 엡 6:1에서 더 자세히 말씀하셨습니다(필자가 쓴 절기 설교집 중 효에 관한 설교를 참조하십시오).

7)13절은(제 6계명으로) “살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살인의 성격은 개인적으로 미워하는 상대를 죽이는 것입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형벌이나 전쟁하여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마 5:21-22에서 예수님은 이 율법을 더 엄하게 설명하셨습니다. 즉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에게 욕설을 하여도 공회에 잡히게 되며 미련한 놈이라고 무시하여도 지옥 불에 들어간다” 하시므로 율법은 최종적 범죄를 금하였으나 예수님은 그 범죄의 시작도 살인과 같은 벌(지옥불은 가장 큰 벌을 뜻함)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살인의 씨는 분노와 미움입니다. 청나라의 쾨즈서우(劍子手, 망나니)가 그 직업을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하여 사람 죽이는 연습을 시킬 때 아는 사람을 통하여 사형장으로 가는 길목에 오물찌꺼기를 버려서 망나니에게 미운 마음과 보복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준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분기를 가지고 형장에서 사람을 죽일 때 주저함 없이 죽이므로 집행 목적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이 예화는 분과 보복하려는 마음이 살인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뜻으로 미움도 곧 살인이라는 의미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8)14절은(제 7계명으로) “간음하지 말라”입니다. 간음은 자신의 부부 관계를 무시하고 타인과 또는 독신자가 다른 부부 된 자 중 한 사람과, 또는 남녀 공히 자신의 부부 관계를 무시하고 타인과 불륜 관계를 갖는 죄입니다. 배우자 없는 사람들끼리의 동거는 그들의 혼인 관계가 광고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간음으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독처(혼자 사는 것)를 좋지 않게 여기셨고(창 2:18), 정욕을 해소시키기 위하여 “혼인 또는 분방하지 말라”(고전 7:5, 9)고 하셨습니다. 마귀로 틈타지 않게 하기 위하여 혼인을 권장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계명을 더 엄격하게 해석하여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어도 간음이라”(마 5:28)하신 말씀과 “음행을 피하라”하신 바울 사도의 말씀(고전 6:18)을 유의하시고 또 욥이 “자기 눈과 언약을 맺어 처녀에게 주목하는 일을 경계한 말씀”(욥 31:1)도 참고하셔야 할 것입니다. 요즈음은 점잖은 세계에도 성역이 없이 음행이 난무한다고 하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9)15절은(제 8계명으로) “도적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허락되지 않았거나 자기의 것 아닌 것을 임의로 처리하는 것이 도적입니다. 허락되지 않은 타인의 것, 하나님이 분간하신 십일조를 손대는 것도 도적이요, 타인에게 주어야 마땅한 것을 고의적으로 늦게 주는 것도 그렇고, 사 1:23에서는 조건 없이 공을 세워 주고 사례물을 구하는 것도 죄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는 도적 되지 않도록 노력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신약 시대의 성도는 십일조 도적에서 해방됩니다. 그 이유는 율법적 제도가 폐하여졌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로 성전 제도의 의미가 성취되었고, 따라서 성전 유지 및 레위인의 생활비도 폐지되었습니다. 그 대신 예수님은 물질을 멀리 하셨고, 자신까지 하나님의 뜻에 헌신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의 십일조를 율법 실천 의미로 강조하면 안 되고, 교회 유지비 염출을 인하여 헌금하는 규정으로 여겨야 합니다. 또 그 규정을 어겼다 하여 정죄 하지 말고 다만 충성이 미흡한 자로만 여겨야 할 것입니다. 롬 10:4에서 “그리스도는.....율법의 마침이 되셨다” 하셨고, 또 마 11:13에서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이 (세례)요한까지라” 하신 이유는 예수님이 밝은 계시의 표준이시기 때문에 “온전한 것이 올 때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는 법”입니다(고전 13:10). 필자는 젊었을 때 이런 말씀의 의미를 잘 모르고 어떤 성도가 십일조를 정확하게 환산하는 법을 문의해 왔을 때 그것을 대답하기 위하여 애쓴 경험이 있습니다. 미련하였던 것이지요. 물질을 멀리 하시고 생명과 생애를 바치신 예수님 앞에서 주님의 모범을 따르셔야 할 것입니다.

10)16절은(제 9계명으로)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진실에 근거를 둡니다. 믿는 대상도 진리(참)이시고, 믿는 마음도 참인즉 진실은 신앙인의 기본 마음입니다. 그것을 깨끗한 양심(딤전 3:9)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웃뿐 아니라 모든 역사 앞에 진실하여야 하므로 성도는 거짓말하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고후 11:31, 요일 2:4, 계 21:8). 많은 사람들이 위기에 처하였을 때 진실을 말하여 억울한 사람을 죽게 하는 경우가 있지요. 이 때에 자신이 죽고 타인을 살린다면 그 보다 더 큰 사랑은 없을 것입니다(요 15:13). 진실은 곧 생명입니다. 하물며 거짓 증거로 타인을 손해 보인다면 그것은 큰 죄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11)17절은(제 10계명으로) “이웃의 모든 것을 탐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웃의 모든 것 중에는 “아내, 남종, 여종, 그의 나귀 같은 것”입니다. 그 외에도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이 많겠지요. 탐심은 죄라고 하였습니다(골 3:5). 탐심 자체도 죄이거든 하물며 남의 것을 탐하는 것이겠습니까? 자기에 없으면 남의 것을 포기하고 자신이 받은 것을 감사하며 유익하게 활용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네게 있는 것이 무엇이냐?”하고 물으십니다(왕하 4:2, 왕상 17:11-12, 막 6:38). 성도가 받은 은혜를 알고 감사할 줄 알면 그 은혜가 족하여지고 또 커져서 더 많은 소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족한 줄 알면서(고후 12:9) 분부대로 살면 큰 만족이 있을 것입니다. 남 사는 방법이 내 방법이 아니며 내가 반드시 받을 복도 아님을 명심하십시오(요 21:21-22).

12)여러분 10계명을 잘 이해하십니까? 외우는 것도 좋지만 먼저 종목별로 이해하십시오. 90년대에 군산 개복교회(김종석 목사님)에서 10계명을 가르치는 요약된 교안을 만든 모양입니다. 필자가 그 원본을 본 일은 없으나 1계명은 유일신만 섬기라, 2계명은 우상 섬기지 말라, 3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훼손치 말라, 4계명은 안식일, 5계명은 효도, 6계명은 살인 금지, 7계명은 음행 금지, 8계명은 도적질 금지, 9계명은 거짓 금지, 10계명은 이웃의 것 탐심 금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요약문은 어디까지나 각 계명의 취지를 기억하고 거기에 성경 본문을 붙여 이해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헐뜯는 사람들이 성경 문자대로 가르치지 않고 “요약 문서를 만들었으니 불건전하다”고 지탄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잘못한 사람들입니다. 요약문을 만들지 못한다면 설교도 하지말고 성경 본문만 읽어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교계에는 과민한 율법주의 같은 것이 팽배해 있다고 보셔야 합니다. 또 예를 들면 주기도문이 최고의 기도문이기 때문에 거기에 준하여서만 기도를 하여야 한다고 하는 분도 계십니다. 그 기도문은 예수님이 야외에 모인 무리들에게 축소 요약하여 간단히 가르치신 문장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즉흥적인 교훈이고 따라서 흠 없는 교훈입니다. 예수님께 “더 충실한 문장을 만들어 주십시오” 하였다면 그 보다 많은 내용을 기록해 주셨을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성도가 긴 기도를 드리지 않습니까? 좀 더 생각을 넓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백성들이 두려워함(18-21절).

1)18절에서는 “뭇 백성들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볼 때 멀리 서서 떨었다” 하였고,

2)19절에서는 “모세에게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면 들을 것인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한다(염려된다)”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산으로 가기 직전이었습니다.

3)20절에서 모세는 백성들에게 “두려워 말라 하나님의 강림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계명 지키는 여부로)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고, 21절에서 “백성은 멀리 섰고 모세는 하나님이 계신 암흑으로 가까이 갔다”고 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으로 올라가기 직전의 일을 계명 뒤에 기록한 것이요, 모세가 “하나님이 계신 암흑으로 갔다”함은 구름 덮힌 산으로 간 것을 의미합니다.

3. 제단 건립에 대하여(22-26절).

1)22-23절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말씀으로 백성에게 깨우칠 것을 교훈 하셨습니다. 내용인즉 “백성들이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백성에게 주실 말씀 받는 것을 친히 보았은즉 하나님을 은이나 금신상에 비겨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든 우상이 말하지 않았다는 뜻이요, 2계명의 재확인입니다.

2)24절에서는 제사를 드릴 때 “토단을 쌓고 양과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내 이름을 기념하는 곳(앞으로 지을 성막임)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또 25절에서는 “돌로 제단을 쌓을 때 정으로 쪼면 부정하다”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의 솜씨 그대로를 의존하여 단을 만들라”는 뜻입니다. 이 제단은 골고다 산을 예표 하는 뜻도 있는 듯 합니다.

3)26절에서는 “층계로 내 단에 오르내리지 말라”하심은 단을 높이 쌓지 말라는 뜻으로 수고와 인력을 줄이는 뜻도 있는 듯하고 특히 오르내리는 자(제사장)의 하체 노출이 도덕성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단을 만드는데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였습니다.

 

제 25 과 백성 앞에 세울 율례 (Ⅰ) (출21:1-26)목록으로


본 장의 제목은 1절에 나타난 대로 “백성 앞에 세울 율례”입니다. “율례”란 뜻은 “미스파팀” 판단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민․형사 사건 처리의 기본 원칙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입니다. 본문의 ① 1-11절은 “종에 대한 규례”요, ② 13-17절은 “사형에 해당하는 죄”이며 ③ 18-27절은 “상해죄에 대한 것”이요, ④ 28-36절은 “소로 인한 피해의 보상 규정”입니다.

1. 종에 대한 규례(2-11절).

1)2절에서 “히브리 종을 사면 6년 동안만 섬기게 하고 7년에는 값없이 자유케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히브리 종”이란 선민을 뜻합니다. 아브라함을 “히브리인”이라 하였고(창 14:13), 이스라엘 선민을 그렇게 호칭하였으며(출 1:19) 신약 시대에 벤야민 지파인 바울도 자신을 히브리인이라고 하였습니다(고후 11:22, 빌 3:5). 동족이라도 (상호간) 책임을 못하거나 큰 피해를 주었을 때 그 속전으로 종이 되어야 하는 경우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7년으로 모든 것을 다 갚고 해방하게 하였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법입니다. 3절에서 “그 종이 단신으로 왔으면 7년 후에 그대로 나가면 되고 종으로 와서 주인의 배려로 장가들었으면 아내와 함께 나가되 4절에서 (상전이 아내를 준 것이므로) 대신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없으면 부부 단신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5절에서 “종이 상전과 처자를 사랑하여 자유하지 않기를 원할 때는 재판장에게 가서 사실을 말하고 영구적 종이 된 표로 귀에 구멍을 뚫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종은 자원하는 종입니다. 성도가 율법의 종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유 하는 종 된 것을 예표 하기도 합니다. 성도의 세계에 어찌 종이 있을 수 있는가? 하시겠지만 이런 사실은 예수님도 인정하신 바요(마 10:24-25), 바울 사도의 말씀에도 있습니다(엡 6:5, 골 4:1).

2)7-11절은 여종에 관한 규례입니다. 7절에서 “사람이 그 딸을 여종으로 파는 경우가 있으니 그는 남종처럼 나오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여종도 히브리인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이방 혼인을 금지시킨 상태에서(신 7:3) 주인이 동거할 수도 있고 아들에게 주어 며느리가 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8-9절). 히브리인이라도 어려운 여건에서 딸을 종으로 주어야 할 경우가 있었을 것입니다. 종은 주인의 소유인만큼 여종의 인권과 상관없이 주인이 동침할 수도 있고 누구에게 줄 수도 있습니다. 히브리인인즉 당연히 7년째는 해방되어야 하겠지요(2절). 8절에서 “만일 상전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여 상관치(동침을 뜻한 듯) 아니하면 그를 속신(사오기 전처럼 다시 물리는 것)케 할 수 있으나 그 여자를 속인 결과가 되었을 때는(동침하여 부부 되는 일을 어긴 것) 타국인(이방인)에게는 팔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동족에게만 팔 수 있다는 뜻). 9절에서는 “그 여종을 아들에게 줄 때는 며느리가 된 만큼 딸처럼 대접하여야 하고, 10절에서 만일 상전이 그 여종을 집에 둔 채 다른 여인에게 장가들면 그 여종에게 의복과 음식과 동침하는 책임을 끊어서는 안되며 11절에서 이 세 가지(의복, 음식, 동침)를 시행하지 않을 시는 자유의 몸으로 내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의 “만일 상전이 달리 장가들지라도”한 것은 원문상으로는 “만일 그가 그를 위하여 다른 여자를 취하면”으로 번역하여야 한다 함으로 이 뜻은 아들이 취첩한 것으로 이해하여야 하고, 세 가지 중 동침은 그 여종(본처)과의 동침을 의미하므로 취첩을 승인한 것은 아닌 뜻이 되는 것입니다(창 2:24, 마 19:6, 말 2:15). 성경은 종에 대한 책임과 대우를 성실히 하게 하였습니다.

2. 사형에 해당하는 죄(12-17절).

1)살인에 해당하는 죄는 사람을 쳐 죽인 자(12절), 짐짓 모살한 자(계획적 살인, 14절), 부모를 치는 자(15절), 사람을 후린 자(납치범, 16절), 부모를 저주하는 자(17절)입니다.

2)12절에서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이 절차는 재판에 의하여 사형 처분을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13절에서 계획성이나 고의성 없이 실수로 죽게 한 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을 그의 손에 붙이신 섭리라” 하셨고, “그런 자를 위하여 한 곳을 정하신 것”은 나중에 계율로 주신 도피성(민 35:6)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도피성에 들어간 자는 무법한 보복을 당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정상이 참작되는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모살(계획적 살인)한 자가 덕을 보기 위하여 도피성을 이용하였다면 그는 죽임 당함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비나 어미를 치던지 저주한 자가 죽임을 당하는 것”은 그만큼 부모에 대한 죄를 엄히 다스리신 뜻입니다. 요즈음 사형제도 폐지 운운하는데 이것은 운운하는 사람들이 성경 또는 하나님의 방법보다 앞서려는 무엄한 일이 아닐런지요.

3. 상해죄에 대한 것(18-27절).

1)18-19절은 “사람이 서로 싸웠다” 하였는데 여기의 싸움의 책임은 양편에 다 있다는 뜻이고(죽었으면 살인에 해당하나), 죽지 않고 상해되었을 때는 그 가해자가 형벌은 면하되 그 동안의 손해 비용과 완치 비용은 주라는 계율입니다. 남의 자동차를 일방적으로 파손하였다면 반드시 고쳐주고, 또 고치는 동안 그 차를 사용하지 못한 손해도 배상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피해자가 그것을 사양하면 그는 선한 사람이 되겠지요.

2)20-21절에서는 “주인이 종을 때려 죽었을 경우에는 반드시 형벌(기준을 말씀하지 않았음. 12절과 같은지?)을 받되(이것도 재판에 의함) 매 맞은 종이 즉사하지 않고 1-2일을 버텼을 경우에는 주인이 벌을 받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돈을 주고 사 온 소유(곧 금전)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종은 주인이 때리거나 다시 팔 수는 있으되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3)22절은 “낙태 피해에 대한 상해”입니다. “서로 싸우다가 아이 밴 여인을 낙태케 하고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이 벌금을 청구하고 판결대로 주고 받으라” 하셨고, 23-25절에서는 “낙태 외에 다른 피해가 있으면 거기에 상응하는 피해를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생명의 값은 벌금으로 내되 상해에 대한 것은 공정한 피해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4)26절에서는 “만일 주인의 종(남, 녀)의 한 눈을 쳐서 상하게 하였으면 그 눈 대신 그에게 자유를 줄 것이요, 또 27절에서 이를 쳐서 빠뜨려도 그렇게 하라” 하시므로 종의 인권과 신체 보호에 역점을 두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소로 인한 피해 보상 규정(28-36절).

1)28절에서 “소가 사람을 죽이면 그 소를 돌로 쳐서 죽이고 고기는 먹지 말며 소임자는(우발적 사고인즉) 형벌을 면하나 29절에서 소의 받는 버릇이 있음을 알아 경고를 받고도 단속하지 않으므로 사람을 죽게 하였으면 소와 그 임자까지 죽이라” 하셨고,

2)30절에서 (만일 재판관이) “태만한 소임자에게 속죄금(보상금)을 명하면 그것으로 생명(죽임 당함)을 대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33-34절에서는 “사람이 구덩이를 파고 덮지 않으므로 타인의 소나 나귀가 빠져 죽었으면 구덩이 주인이 잘 조치하여 임자에게 돈을 주고 죽은 것을 가지라” 하셨고,

4)35-36절은 “이 사람의 소가 저 사람의 소를 받아 죽였을 경우에는(우발적 사고에 한하여) 산 소를 팔아 반분하고 죽은 소도 반분할 것이며 받는 버릇이 있는 소임을 알고 단속하지 않으므로 그런 일이 생겼으면 산 소로 죽은 소 값을 주고 죽은 소는 차치하라”고 하셨습니다.

혹 공평치 못한 이의를 제기할 듯도 하지만 하나님의 공의로운 말씀에 복종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제 26 과 백성 앞에 세울 율례 (Ⅱ) (출22:1-31)목록으로


본문도 앞 장에 계속되는 내용으로 대략 8 대목으로 나누어 살필 수 있습니다. ① 1-4절은 “절도 관련 규정”이요, ② 5-6절은 “사고로 인한 피해 보상”이며 ③ 7-13절은 “맡은 물건에 대한 사고 처리”요, ④ 14-15절은 “빌린 짐승의 사고”이며 ⑤ 16-17절은 “혼인 전 동침”이요, ⑥ 18-20절은 “무당과 다른 신 섬긴 자”이고, ⑦ 21-27절은 “약자에 대한 배려”이며 ⑧ 28-31절은 “세 가지 유의 사항”입니다.

1. 절도 관련 규정(1-4절).

1)1절에서 “소를 도적질하여 처분하였을 때는 소 다섯으로, 양을 도적질하였을 때는 양 네 마리로 갚으라” 하셨으니 큰 도적일수록 죄가 큰 것을 알게 하셨고,

2)2절에서 “도적이 뚫고 들어 올 때(밤에) 그를 보고 쳐죽이면 피 흘린 죄가 없으나, 3절에서 해 돋은 후에 죽인 것은 피 흘린 죄가 있으니(재판을 받아야 할 것이요) 도적은 반드시 배상을 하여야 하고 배상할 것이 없으면 그 몸을 팔아 배상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 사고로 인한 피해 보상(5-6절).

1)5절에서 “사람이 밭이나 포도원에서 짐승을 놓아 남의 밭의 작물을 먹게 하였으면 자기 밭의 생산품 중 가장 좋은 것으로 그 분량을 배상하고,

2)6절에서 “불이 나서 가시 나무에 미쳐(잡목이 많은 곳에 불이 붙어) 타인의 낟가리나 거두지 못한 곡식과 전원을 태우면 불 놓은 자가 반드시 배상하라”고 하셨습니다(이런 절차에도 금액량에 문제가 있으면 재판을 청하여 하게 될 것입니다).

3. 맡은 물건에 대한 사고 처리(7-13절).

1)7절에서 “사람이 돈이나 물품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는데 그 맡은 집에서 도적을 맞았다면(봉적) 그 도적이 잡혔을 때는 갑절을 배상하고”, 8절에서 “잡히지 않았을 때는 그 집주인(맡은 자)이 재판장에게 가서 물품에 손댄 여부를 조사 받아(판결대로 처리하되) 9절에서 (나중에) 그 물건(소, 나귀, 양, 의복 등)이 나타났다면 두 편이 재판장에게 나가서(진술하고) 죄 있는 편이 갑절을 배상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확실하게 맡기고 맡아야 함).

2)10-11절에서는 “사람이 짐승을 맡았는데 본 사람 없이 그것들이 상하거나 죽었다면 그 맡은 자가 하나님 앞에 손대지 않은 사실을 맹세할 때 맡긴 자(실제 임자)는 그대로 믿고 맡은 자는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 하셨고,

3)12-13절은 “만일 맡은 것이 자기에게서 봉적된 것이 사실이면(그대로) 배상해야 하고, 짐승이 찢겨진 것이 있으면 그대로 보이고 배상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4. 빌린 짐승의 사고(14-15절).

“이웃에게 빌려온 짐승이 임자가 없을 때 상하거나 죽으면 반드시 배상하려니와 임자가 함께 있는 중 그렇게 되었으면 배상하지 않으며 세를 내어 왔더라도 그러하다”고 하셨습니다.

5. 혼인 전 동침(16-17절).

1)16절에서 “정혼(약혼)하지 않고 처녀를 꾀어 동침하였으면 빙폐(예물, 혼수)를 드려 아내를 삼아야 하고(벌로 다스리지 않는 뜻, 서로의 책임을 묻지 않고),

2)17절에서 “만일 처녀의 아버지가 허락지 않으면 처녀에게 빙폐만큼 돈을 주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6. 무당과 다른 신을 섬긴 자(18-20절).

1)18절에서 “무당은 죽이라” 하셨으니 하나님께 영광되지 않음이요,

2)19절에서 “짐승과 행음하는 자도 반드시 죽이라” 하셨고,

3)20절에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에게 희생을 드리는 자도 멸하라”고 하셨습니다.

7. 약자에 대한 배려(21-27절).

1)22-24절은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그들의 부르짖음이 있을 때 하나님이 들으시고 맹렬히 노하시며 너희(해롭게 한 자들)를 죽이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25절은 “선민 중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거든 그에게 채주처럼 하지말고, 변리(이자)를 받지 말라”고 하셨고(사업적 차대와는 뜻이 다름),

3)26-27절은 “만일 이웃의 의복을 저당 잡거든 해 지기 전에 돌려보내야 할 것은 그가 자기 몸을 가린 것(덮고 자는 용도)이 그것 뿐인즉 덮고 살을 가리게 하여야 한다” 하시므로 가난한 자의 의식주 문제를 우선 배려하게 하셨습니다.

8. 세 가지 유의 사항(28-31절).

1)28절에서 “재판장을 욕하거나 백성의 유사(사무관)를 저주하지 말라” 하셨으니 이는 “존경하라”는 뜻이요, 바울 사도도 인용하셨습니다(행 23:4-5).

2)29절에서는 “추수한 맡물과 처음 난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라” 하셨으니 이는 유월절 초기에 하나님이 초태생을 살려 주신 대가로 구별하셨기 때문입니다(출 13:1-2, 12, 23:19, 34:26, 레 2:12, 민 15:20, 18:13). 30절에서는 “첫 새끼를 구별할 때, 7일을 어미와 함께 있게 하고 8일 만에 드리라” 하셨으니 이는 인정을 베푸신 것과 대속 시행의 기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출 13:13).

3)31절에서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영육의 순결)이 될지니 들에서 짐승에게 찢긴 것의 고기(사체의 고기)를 먹지말고 개에게 던지라”하심은 레 17:15에서도 말씀하신 것으로 순결의 상징적 의미와 위생을 고려하신 것입니다.

 

제 27 과 백성 앞에 세울 율례 (Ⅲ) (출23:1-19)목록으로


본 장 16절까지 율례에 대한 말씀입니다.

1절은 “풍설(유언비어)과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하는 증인(없는 것을 만들어 증언하는 것)이 되지 말라” 하셨고,

2절은 “(다수에 진리 또는 정의가 있는 것이 아닌즉) 다수를 따라 악행하지 말 것”과 “부 정당한 증거를 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으며

3절은 “가난한 자의 송사라 하여 편벽 되이 두호(편들어 보호함) 하지 말라” 하셨으니 재판을 하는데는 가난한 자라 하여도 두호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4절에서는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났을 때 반드시 그 사람께 돌려주므로” 원수 사랑 또는 원수에 대하여 반감 없는 표시를 내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요,

5절에서는 “미워하는 대상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진 것을 보면 빨리 그를 도와 짐을 풀어 주라” 하시므로 4절과 같은 뜻이며

3절과 6-8절은 재판 원리로써 6절은 3절 뜻의 반대 입장으로 “가난한 자의 송사라 하여 공평치 않게(무시하는 뜻) 하면 안 될 것”을 말씀하셨고,

7절은 “거짓을 멀리 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하나님은 악인을 의롭다 하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재판자는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8절은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한즉 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9절은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선민의 과거 애굽 생활을 기억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언덕이 되어 주도록 노력하라는 뜻입니다.

10-11절은 “토지 경작법”으로 “6년 동안 땅을 사용한 후 7년째는 묵혀두므로 땅을 쉬게 하여 토질의 힘도 키우고 저절로 난 것을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는 것이요,

12절은 “짐승이나 종들도 그 가족과 함께 7일에는 휴식하여 숨을 돌리게 하라”는 것입니다. 숨 쉴 틈 없이 계속 일만 하게 하면 피로가 누적되고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을 방지하신 것입니다.

13절은 “다른 신의 이름도 부르지 말라” 하심은 1계명의 정신을 한층 더 다짐하신 말씀입니다.

14-18절은 무교절(유월절), 맥추절, 수장절 지킬 것을 계명으로 주신 것입니다. 무교절은 유월절로써 구속과 해방의 의미를 살려 감사(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 것) 예물을 드릴 것과 맥추절은 첫 열매 거둔 것을 감사하는 뜻이고, 수장절은 년종에 수확한 곡식을 저장함에 대하여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17절의 “남자만....여호와께 보이라”는 뜻은 가부장적 제도를 권장하신 뜻이며 18절의 말씀은 유월절 규례를 재설 하심과 동시에 “내 절기 희생의 기름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 하신 것은 유월절에 잡은 양의 고기를 당일에 먹으라는 뜻입니다. 출 12:10에서 설명 드렸습니다.

19절은 “토지의 처음 익은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라” 하시므로 22:29에서 설명 드렸고,

20절의 “염소 새끼를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라” 하신 뜻은 젖 자체의 영양 파괴도 있지만 잔인한 행동을 삼가게 하여 자비심을 키우는 교훈이라 할 것입니다.

 

제 28 과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 약속 (출23:20-33)목록으로


본문에는 하나님이 모세를 보호하시고 선민을 인도하시되 가나안족을 찾아내시고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을 약속하신 말씀이 기록되었습니다. ① 20절은 “모세를 보호하실 약속”이고, ② 21-26절은 “선민의 책임과 하나님의 은혜”요, ③ 27-30절은 “본토족을 쫓아내심”이며 ④ 31-33절은 “본토족의 처리와 경계”입니다.

1. 모세를 보호하실 약속(20절).

“내가 사자(천사 등)를 네(모세)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로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할 것이라” 하시므로 모세에 대한 신분 보호와 사역 목적을 이루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선택, 섭리하신 일이므로 당연히 그 목적을 이루셔야 할 것입니다.

2. 선민의 책임과 하나님의 은혜(21-26절).

1)선민의 책임은 선민이 삼가 하나님의 목소리(모세를 통하여 전달한 말씀)를 청종하고 그(모세)를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하며(21절) 하나님의 모든 말씀대로 행하여야 하고,(22절) 또 “애굽인들의 신을 숭배하거나 섬기지 말 것과 그들의 소위(잘못된 생활)를 본받지 않음은 물론 그들의 신상들을 다 훼파하고(선민 중에 400년 동안 잠재된 이방 종교의 모든 행태를 버리라는 뜻) 하나님만 섬기라”(24-25절)는 것입니다. 21절에서 (모세를 노엽게 하였을 때) “모세가 백성의 허물을 사하지 않을 것(사하지 못함)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라” 하심은 모세를 노엽게 함이 곧 “하나님께 대한 죄”라는 뜻입니다.

2)선민이 계명을 지키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는데 그 은혜는 “하나님이 선민의 원수에게 원수가 되어 주시고 선민의 대적에게 대적이 되어 주시며(22절) 하나님의 사자가 모세 앞에 가서 모세를 본토족(아모리, 헷, 브리스, 가나안, 히위, 여부스족들)에게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을 끊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23절). 또 25절에서는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시고 병을 제하시며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잉태치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인즉 그 잉태의 날수를 채우게 할 것이라”(24절)고 하셨습니다. 먹는 복, 건강의 복, 생산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3. 본토족을 쫓아내심(27-30절).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선민에게 주실 기업의 땅에 사는 족속들을 어떻게 쫓아내실 것인가를 말씀하셨습니다.

1)27절에서 우선 “하나님의 위엄(권위, 두렵게 하심 등)을 모세 앞에 보내어 선민들이 가야 할 곳의 백성들을 파하시고 너의 모든 원수로 너(선민)를 등지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감정을 대립시켜 본토족을 패하게 하시는 뜻입니다. 가나안 본토족이 선민의 원수 또는 하나님의 원수가 된 이유는 그들이 불신앙 하며 선민의 땅을 임의로 차지하고 선민을 대적한 때문입니다.

2)28절에서 “왕벌로 쫓아내신다” 하셨으니 이 왕벌은 상징적 의미보다 여자적 의미가 더 강한 줄 압니다. 파리, 메뚜기만 많아도 살기 어렵거든 왕벌이 많은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본토족이 왕벌 때문에 거주지를 떠났다는 말씀이 없은즉 점령군의 위세가 왕벌 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릅니다.

3)29-30절에서 하나님은 “본토족을 천천히 쫓아내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성도의 소원을 시일을 두고 이루어주시는 뜻과도 같은 것입니다. 만일 본토족을 일시에 다 쫓아내면 선민이 들어가서 한꺼번에 개발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에 들짐승의 번성과 위험을 주므로 1년을 미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민이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개발하는 뜻)으로 얻을 때까지 천천히 쫓아내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선민의 생활의 앞 뒤 관계까지 살펴 주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4. 본토족의 처리와 경계(31-33절).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지경을 주시는 분입니다(행 17:26).

1)31절에서 “내가 너의 지경을 홍해에서부터 블레셋 까지 광야에서부터 하수까지 정한다”고 하셨습니다. “광야는 아라비아 광야를 뜻하고 하수는 유프라데 강을 뜻한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이 해석은 창 15:18에 근거하였고, 예언의 성취는 솔로몬 시대에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필자가 구상한 바로는 광야를 애굽의 시나이반도(팔레스틴 남단)로, 하수는 갈릴리 바다를 형성하는 헬몬산의 물줄기를 의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지역은 선민이 가나안 땅에 입국하여 분배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2)32절에서는 “너는 그들(이방인)과 그들의 신(다른 신)과 언약하지 말라” 하셨으니 신앙 대상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3)33절에서는 “그들(본토족)이 네 땅(하나님이 주신 땅)에 머무르지 못할 것은 그들이 선민으로 하여금 범죄하게 할까 두렵기 때문이라 네가 그 신을 섬기면 그것이 너의 올무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섬기는 유일신 하나님께 든든히 붙잡혀 있지 않으면 다른 종교의 교리나 아니면 그 종교 행사 형태나 이방인과의 친교적 생활에 동화되어 참된 신앙의 사상과 생활을 흐리게 할 경우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선민으로 하여금 순수한 신앙과 생활의 터를 잡게 하시기 위하여 이방족과의 교제를 멀리 하게 하신 것입니다.

 

제 29 과 율법을 기록함 (출24:1-18)목록으로


본문은 두 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① 1-11절은 “모세가 율법을 기록함”이고, ② 12-18절은 “하나님이 기록해주심”입니다. 모세는 율법을 받기 위하여 여러 차례 시내산에 오르내렸습니다. 처음 올라간 것은 19:3, 두 번째 올라간 것은 19:4-18(24-25절) 본문 1절에서 3차, 13절에서 4차 올라갔습니다.

1. 모세가 율법을 기록함(1-11절).

1)1-2절은 하나님이 모세만 가까이 오게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특정인에게만 계시를 주셨습니다(33:11, 민 12:8). 1절에서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아론의 두 아들, 6:23)와 이스라엘 장로 70인과 함께 여호와께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2절에서 “모세만....가까이 나오고 그들(다른 사람들)과 백성들은 함께 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상당한 거리를 두라”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특정인에게 계시를 주시는 의미도 있고, 가까운 곳에서 백성 중에 거룩을 훼손하는 불상사가 있지 않게 함일 것입니다(레 10:1-2참고). 3절은 모세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고하매 그들이 한 목소리로 응답하여....모든 말씀을 준행 하겠다”고 하였으니 이 사실은 19:8에서도 있었던 일입니다.

2)4-8절에서는 모세가 말씀을 기록하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내용입니다.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였다”는 사실은 참으로 의미 있는 말씀입니다. 이 명령은 17:14에서도 명하셨습니다. 기록은 불변 원칙이고, 보존, 전달에 유익하여 지금도 저희들이 이 말씀을 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 시대에 글이 있었고 종이는 원시적 자료였을 것이며 기록의 분량은 모세 5경이지만 율법 중심으로 시작하여 부분부분 기록하였을 것입니다. 모세는 말씀을 기록한 다음 산 아래에서 단을 쌓았습니다. 단 쌓는 방법을 20:25에서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사 드리는 규례에 대하여는 율법으로 구체적 내용을 받기 전인즉 조상들의 제사(아벨. 창 4:4, 노아. 창 8:20, 아브라함. 15:19, 22:9, 야곱. 33:20) 전통과 상당 부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3)4절에서 “산 아래 단을 쌓고 12지파 별로 12기둥을 세웠으며(창 28:18) 5절에서 청년들을 보내어 번제와 소로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렸으니 여기의 청년들을 보낸 것은 제물을 갖고 오게 한 것이고, 번제는 아주 태워 없앴다는 뜻이며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소로 화목제를 드린 것“은(레 3:1-5에 기록됨)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흠하게 만들기 위한 제사로써 백성들은 이 제사를 드릴 때 회개와 중보자로 인한 죄사함과 성실한 생활을 다짐하여야 할 것입니다.

4)6절에서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을 제단에 뿌렸으니” 이는 중보자의 보혈을 하나님께 드리는 뜻이고, 7절에서 “언약서(3절에 나타난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임)를 백성들에게 읽어드린즉 백성들이 모든 말씀을 준행 한다” 하였으니 이는 선서, 다짐을 하게 한 것입니다.

5)8절에서 모세가 남은 반 분량의 피를 백성에게 뿌리므로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라”고 하였습니다. 이 뿌린 피 의미는 합동 세례식과 같은 의식적 증표가 되게 한 것입니다.

6)9-11절은 그 당시에 사건을 경험한 소감의 말씀입니다. 9에서 “시내산에 올라간 사람들은 모세, 아론, 나답, 아비후, 이스라엘 70장로들이었고(모세만 더 가까이 간 것)”, 가까이 가서 하나님을 본 소감은 “발 아래 청옥을 편 듯 하고 하늘처럼 청명하였으니 말씀 들리는 장소의 광경이 그러하였다”는 뜻입니다. 계 4:2-3에서 “보좌를 베푼 모양”을 말씀한 것과 같은 뜻입니다. 하나님은 불꽃 중에서 또는 구름 기둥, 불기둥으로도 자기의 임재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이 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함께 가까이 접근한 사람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 하셨고(피해가 없은 뜻)”,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다(11절)” 하셨으니 여기의 “본 것”은 16절에 표현한 그 상태를 “하나님 본 것”으로 간주한 것이고, 먹은 것은 화목 제물의 태우고 남은 부분을 잔치 음식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2. 하나님이 기록해 주심(12-18절).

1)12절에서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시내산에 올라와 머물게 하셨습니다. 이유는 “모세로 하여금 백성들을 가르치게 하시기 위하여 율법과 계명을 기록한 돌판을 주시겠다” 하셨으니 여기의 율법은 법리의 뜻을, 계명은 시행을 강조한 뜻으로 말씀하신 줄 압니다. 모세는 잔치한 후(11절) 또 올라가야 하였으므로 이것이 네 번째 간 것으로 헤아릴 수 있습니다.

2)13-14절에서 그 때에 모세는 “여호수아”와 함께 올라갔고(13절), “다른 장로들에게는 기다리게 하였으며 백성들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는 아론과 훌에게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아론과 훌에 대한 말씀은 17:10에서 말씀 드렸습니다(14절).

3)모세가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렸고(15절, 하나님 임재의 영광임), 또 (같은) 영광이 시내산 위에 6일 동안 산을 가렸다가, 7일에 이르러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16절) 하나님의 뜻을 연구하거나 기다릴 때, 7일 쯤 소요하는 것도 괜찮을 것입니다. 7일이 준비의 기간인 듯 합니다.

4)이 때에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백성들의 눈에 맹렬한 불같이 보였고(17절),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여기에서 여호수아는 머물렀음, 모세가 산을 내려오면서 합류함. 32:17) 40일 40야를 산에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에 “금식하였다”는 기록은 신 9:9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 때에 준비 기간 7일과 함께 여호수아와 모세 두 사람이 47일을 금식한 것으로 보셔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돌판에 글씨를 새겨주신 것은 창조적 솜씨로 이적에 의함일 것입니다.

 

제 30 과 성물 제조를 명하심 (출25:1-40)목록으로


본문 ① 1-9절은 “재료 수집과 명령”이요, ② 10-16절은 “궤를 짓게 하심”이며 ③ 17-22절은 “속죄소를 만들라” 하심이고, ④ 23-28절은 “상을 만들게 하심”이며 ⑤ 29-40절은 “등대와 그릇을 만들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총 제목은 “성물 제조를 명하심”입니다.

1. 재료 수집과 명령(1-9절).

1)1절에서는 하나님이 제사 드리는 시설과 용품을 제조하게 하시되 모세로 하여금 백성들로부터 예물(하나님께 거저 드리는 뜻)을 가져오게 하셨는데 “무릇 즐거운 마음(곧 자원하는 헌납)으로 드리는 것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사 드리는 시설(성소, 지성소, 제단, 제물, 제사장, 제사 규례 등)을 만들게 하신 이유를 아는 것입니다. 이 이유는 선민에게 하나님 섬기는 방법을 알게 하시고 모형적 계시로 하늘 성소에 대한 것과(히 8:15) 중보자 예수님의 사역을 계시하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요 1:19). 이 사실을 명확하게 확신하시려면 성경에 기록된 제사법과 제사장의 사역 등을 잘 이해하도록 배워나가셔야 합니다.

2)3-7절은 백성들로부터 받을 예물을 열거하셨는데....성물 제조에 꼭 필요한 것들로써 금, 은, 놋, 청색, 자색, 홍색으로 된 베실과 염소털, 붉은 물들인 수양 가죽, 해달(물돼지)의 가죽, 조각 목재(광야에서 자라는 싯딤 나무로 사 41:19, 그 지역에서는 단단한 가시나무라고 하며 4-5m 자라는데 이것을 조각목으로 번역하였음), 등유(감람유로 사용하였음), 관유(향기름이라고도 함. 제조법은 출 30:22-25, 31:11에, 용도는 출 29:7, 21, 30:26-32에 기록됨. 임직이나 결례용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특별히 제조한 향유임)와 분향용 향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향품, 그리고 또 호마노(보석의 종류)와 에봇과 흉패에 물릴(장직하는) 보석이라고 하셨습니다. 7절의 “에봇”은 제사장이 입는 겉옷(조끼 같은 것)이고, “흉패”는 에봇에 장식하는 기구입니다(28:8-30, 레 8:8). 기구(성소용품)를 만들되 지시하시는 계시에 따라 제조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성소란 명칭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하여 구별된 장소 전체를 의미할 수도 있고, 제단과 마당을 제외한 건립된 장소를 뜻할 수도 있습니다. 이 성소를 성막(26:1), 회막(민 11:16) 또는 증거막(민 9:15), 여호와의 장막(왕상 2:28)이라고도 합니다. 또 이회막에서 지성소를 제외한 곳을 성소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신약 시대의 예배당과는 공통성이 거의 없는 별개의 것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후부터는 성전으로 호칭되었습니다.

2. 궤를 짓게 하심(10-16절).

1)10-11절은 “궤를 만들라” 하셨는데 재료는 조각목(5절)이고, 규격은 길이 2.5규빗(4자쯤, 1규빗을 팔꿈치에서 손끝까지 약 50㎝됨), 폭과 높이 1.5규빗(3자쯤)이므로 큰 뒤주를 연상할 수 있고, 조각목이 굵은 나무가 아니므로 여러 폭으로 조립하였을 것입니다. 11절에서는 정금(조각)으로 안 밖을 싸고 윗가로(모서리) 금테를 두르게 하였고,

2)12-13절에서는 “금고리와 정금으로 싼 채를 만들어 궤의 네 발(아랫부분 양쪽)에 달고, 채를 꿰어 어깨에 멜수 있게 하라” 하셨으며

3)15-16절에서는 “궤를 안치할 때는 채를 꿴 상태로 두고 하나님이 주실 증거판(십계명판)을 그 안에 넣으라”고 하셨습니다. 채를 꿴 채로 두는 것은 운반의 신속성을 위함 같고, 그 안에 넣은 것은 계명판 외에(21절) 만나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도 넣게 하셨습니다.(히 9:4) 이 궤의 명칭은 여러 가지로 증거궤(출 25:22), 언약궤(민 10:33, 계 11:19), 하나님의 궤(삼하 6:4), 거룩한 궤(대하 35:3), 권능의 궤(시 132:8)라고도 하셨습니다.

4)문제는 이 궤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궤 안에 하나님의 인격을 나타내는 말씀과 능력의 상징인 싹난 지팡이와 또 생명의 떡인 만나가 들어 있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이 임재 하신 좌소(보좌)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허공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말씀과 생명과 능력을 생각하면서 한 곳으로 집중하게 하신 뜻일 것입니다. 신약 교회 성도들이 말씀이 선포되는 것을 하나님의 임재로 여김과 같은 것입니다.

3. 속죄소를 만들라(17-22절).

1)17절에서 “정금으로 속죄소(각주, 시은좌)를 만들되 장이 2.5규빗, 광이 1.5규빗인 즉 넓이는 궤와 같은데 높이를 말씀하시지 않았은즉 법궤처럼 높지는 않을 듯합니다.

2)18-20절은 “금으로 날개 펼친 두 개의 그룹을 쳐서 만들어 속죄소 양편 끝에 한 덩어리(첩착)로 연하게 하되 그 얼굴을 서로 대하게(마주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그룹은 천사를 상징하는 조각품입니다. “그룹”에 얼굴이 있는 것은 하나의 인격체처럼 나타나기 때문이고, 날개가 있는 것은 신속한 활동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천사는 항상 하나님 곁에 있고 하나님을 옹위하며 명을 기다리는 영물입니다(히 1:14).

3)속죄소는 21절에서 증거궤 위에 얹게 되어 있고, 22절에서는 속죄소의 용도를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이 거기서 모세와 만나고(모세가 계시를 받는 동안) 두 그룹 사이(역시 속죄소를 뜻함)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모든 말씀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증거궤가 임재의 좌소라면 속죄소는 계시를 주시는 좌소입니다. 따라서 말씀이 은혜의 방편인 것처럼 속죄소를 시은소(은혜 베푸는 장소)라고도 합니다. 각주에 보시면 “속죄소를 시은좌로도 번역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4. 상을 만들게 하심(23-28절).

1)하나님이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게 하신 것은 진설병(떡을 제물로 드리는 것. 레 24:5-9)을 진설하기 위함입니다. “장, 광, 고가 2규빗, 1규빗, 1규빗 반이니 크기가 증거궤보다 약간 작습니다. 정금으로 싸고 금테를 두르고, 4면으로 손바닥 넓이만큼의 턱을 만들고 또 턱 주위에 금으로 테를 만든 후, 금고리 넷을 네 발(상다리) 네 모퉁이의 턱 곁에 달아 금으로 싼 고리에 조각목채를 꿰어 멜 수 있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정성을 사람 섬기는 생활로 나타낸 것이라” 할 것입니다.

5. 등대와 그릇을 만들라(29-40절).

1)29절은 “정금으로 대접과 숟가락과 병과 붓는 잔을 만들라” 하셨으니 이 기명들은 소제(곡식 음식, 출 29:41), 전제(포도주 기름 같은 것, 출 29:40)를 드릴 때 사용되는 기구입니다.

2)31-36절은 “등잔(37절)을 얹기 위한 등대를 만들라”는 말씀입니다. 등대는 정금으로 만들되 밑받침과 밑받침 중앙에 등대(중심 기둥)를 세우고 그 등대 좌우로 3가지씩 올려 윗 부분이 수평이 되도록 일곱 가닥이 되게 하고, 33절의 살구꽃 무늬를 놓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어리로 연결되게 하여 윗 부분에 등잔 놓을 받침을 만드는 것입니다. 34절의 기록은 “등대 줄기에 살구 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는 것”인데 이것은 양쪽 세 줄기 사이 네 곳에(재털이용으로) 붙인 듯 하며, 35절은 “양쪽으로 갈라지는 부분마다 한 꽃받침을 만들어 줄기와 연결되게 하라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3)37절은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취게 하였으니 여기 “앞”이란 주위를 뜻합니다(등잔을 구석에 놓지 않음).

4)39-40절은 “불집게와 불똥 그릇도 정금으로 만들라” 하셨으니 이 기구는 등잔불의 불똥을 자주 떨어 청소하는 기구입니다. “이 모든 기구를 정금 한 달란트(42㎏이라 함)로 하고, 하나님이 보인(말씀 외에 계시로 보여 주신 뜻도 있음) 식양대로 하라”고 하셨습니다(9절). 구약 성전의 모든 기명은 진리이신 예수님을 계시하는 것이므로(요 1:19) 계시의 식양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등불은 항상 밝아야 하고, 진설병은 항상 더운 김이 있어야 하며 향도 끊임없이 피어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제사장은 늘 깨어 있어 그것을 관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등대는 어두운 세상을 오직 그리스도의 빛으로만 밝혀야 할 것을 교훈 하십니다. 그 이유는 다른 빛(창문)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곱 등잔의 의미는 완전한 빛을 의미하는 듯 합니다.(창 33:3, 레 16:19, 14:7, 25:8) (등대의 상상도 부록에 첨부.)

 

설교보충 5. 성막(성전) 제도의 의미 (출 25:1-9, 히 9:1-10) 목록으로


출 25장-27장을 보시면 “성막 건립과 제도”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 기록을 처음 읽으신 성도님들은 “불신자들의 제사 행위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가지시겠지만 하나님은 이방인의 풍습을 답습하시지 않습니다(출 23:32-33, 34:12-13). 어찌 보면 장황스러운 의식 같으나 거기에는 분명히 계시가 있고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요 2:21에서 예수님이 “성전된 자기 육체”라 하셨고, 따라서 하나님, 중보자, 하나님 섬기는 법, 속죄 사역의 예표, 빛 되신 예수님 등을 모형적 교훈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방금 읽으신 말씀의 취지도 같습니다. 1-6절은 섬기는 예법을 말씀하셨고, 7절은 대제사장(예수님)이 피를 갖고 성소에 들어가는 일, 8-9절은 “구약의 제도가 현재까지의 비유라” 하셨으니 이 “현재”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예표 하였다는 뜻이고, “그 예물과 물질적 제사가 양심으로 온전케 하는 것이 아님”은 그 예물(물질)이 변화의 능력을 주거나 실제적 속죄의 제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육체의 예법(모형적 의식)만 되어 개혁할 때(복음 신앙 확립)까지만 맡겨 시행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으로 저희들은 구약 성막 제도의 의미를 대략 알게 된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성경에 기록되대로 세부적 사항의 의미를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25:1의 “예물”은 하나님 섬기는 예로써 즐거운 헌신을 뜻하고, 25:3의 “금, 은, 놋”은 하나님을 섬기는 정성에 속한 만큼 값지게 섬길 것을 그리고 조각목이나 짐승의 가죽이나 향품 등은 소유한 것, 구입할 수 있는 것으로 하는 뜻이며 조립식으로 만든 것은 여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9, 40절에 보시면 “식양대로 하라” 하셨으니 이는 무엇이나 계시에 의존하여야 함을 뜻하고, 증거궤(언약궤, 법궤)는 말씀의 판과 생명의 싹난 지팡이와 만나를 주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함이요, 속죄소(시은소)는 은혜와 계시를 주시는 뜻이며 그룹은 부리는 천사를 대동하심이고(히 1:14), 25:30의 “상 위에 진설병을 항상 있게 함”은 다른 예물과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정성의 표본인 것입니다. 25:31-39에서 보시면 등대 제조법과 사용법이 나옵니다. 등대는 어두움을 밝히는 빛입니다. 7등잔은 완전히 밝혀야 함을 뜻하고, 빛 되신 예수님이 존귀하신 만큼 금으로 아름답게 만든 것이요, 거기에 밑받침이 있는 것은 자주 불똥을 따서 밝은 빛을 내게 하기 위함입니다. 감람유는 당시에 사용한 등유입니다. 기름이 타야 빛을 발하는 것도 성도의 희생적 노력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26장에서는 성소와 지성소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성소의 규격은 장광 40×28 규빗이기 때문에 1규빗을 1.5척으로 계산하면 정확히 70평입니다. 그 사이 서쪽 부분으로 휘장을 막아 지성소를 구별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보좌(천국)을 뜻하고, 성도는 인간의 생활 영역(교회)을 뜻합니다. 성소 천정이 두 폭(5폭 앙장을 붙인 것)으로 된 것을 감안하면(거기에 그룹을 수 놓았은즉)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중간으로 막은 듯 하기도 합니다. 지붕 덮개가 염소털, 수양 가죽, 해달 가죽으로 3겹을 한 것은 더위와 추위를 피하는 목적도 있지만 물 샐 틈 없이 온전하시고 견고한 주님의 속성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조각목으로 띠를 두른 것이나 말뚝에 고정하는 것이 다 견고성을 의미합니다. 지성소를 막은 휘장이 주님 돌아가실 때 찢어져 열렸으니 이는 천국의 문을 예수님이 십자가로 여신 뜻이요(마 27:51), 성소 북편에 상(진설병)이 있고, 남편에 등대가 있어서(26:34-35) 서로 마주 대한 것은 성도의 헌신과 빛된 생활이 있어야 함이고, 향단은 성소 서편, 법궤 있는 앞에 두는데(출 40:5), 그 곳에서 쉼 없이 향을 피우는 것은 성도의 헌신과 빛된 생활로 하나님께 영광 돌림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향내나는 생활을 하셔야 합니다. 출 27장에는 제단과 뜰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제단은 제물을 태우는 곳인 만큼 희생의 제물이 예수님을 모형한 것처럼 제단은 예수님이 희생당하신 골고다를 의미하고, 또 그런 죽음이 있을 것을 예표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성소와 지성소를 막은 휘장이 찢어져 열린 것은 예수님의 중보로 성도가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있는 길을 여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직접 은혜를 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인간 제사장의 중보를 필요로 하였습니다(삼상 1:17). 제단 네 모퉁이에 뿔이 있는 것은 뿔에 피를 바르게 되고(레 8:15) 구원의 뿔이란 말씀이 있으므로(눅 1:69) 예수님의 속죄의 권위를 나타내신 줄 압니다(마 9:6). 마지막으로 상고할 것은 뜰에 대한 것입니다. 이 뜰은 장이 100규빗, 광이 50규빗이므로 1규빗을 1.5척으로 환산하면 312평이 휘장막으로 되어 있고, 그 장소 서편 쪽으로 70평의 성소가 있으며 성소 동편 즉 뜰로 들어가는 입구 쪽에 제단이 있게 되고 제단과 성소 사이에 물두멍(출 30:18)이 놓이게 됩니다. 이 물두멍은 제물과 피를 만진 제사장이 손을 씻는 기구입니다. 이 뜰은 제물을 태우는 곳도 되지만 제물을 갖고 온 성도들이 기도하는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대하 20:5-6). 또 선지자가 가르치기도 하였고(렘 19:4-15), 예수님도 성전 뜰에서 가르치셨습니다(마 21:23, 눅 21:37). 구약의 모든 모형적 계시가 예수님 실상으로 나타나신 만큼 우리는 밝은 계시에 입각하여 주님을 배우고 변화 받는 성도님들이 되셔야 할 것입니다.

 

제 31 과 성막 건립을 명하심 (출26:1-37)목록으로


본문은 성막 건립을 명하신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심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우선 구조 설명을 읽으실 때 그 설계 내용이 마음에 떠올라와야 하고, 다음에는 그렇게 만들게 하신 뜻을 아시는 것입니다. ① 1-6절은 “내부 천정의 설계”요, ② 7-13절은 “천정 위에 덮는 1차 지붕”이며, ③ 14절은 마지막 지붕 덮개이고 ④ 15-25절은 “서, 남, 북편의 널판 기둥”이요, ⑤ 26-30절은 “서남북쪽의 널판띠”이며 ⑥ 31-33절은 “지성소를 구별하는 막”이요, ⑦ 34-37절은 “성소의 시설과 성막문”에 대한 것입니다. 필자는 이 구조를 이해하기 위하여 여러 차례 읽고 구상한 끝에 상당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1. 내부 천정의 설계(1-6절).

1)1절의 “성막을 만들되”하신 것은 전체를 설명하시는 서론이고, “앙장 열폭”이란 천정이나 휘장 또는 천막용 포목입니다. “청색, 자색, 홍색의 가늘게 꼰 베실로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만들라”하신 것은 앙장 매폭에 수놓으란 뜻이 아니고, 5폭씩 붙인 두 쪽(2-6절)에 각각 큰 모양으로 수놓으란 뜻입니다. 서양의 왕궁이나 사원에 가 보면 천정에 큰 그림이 그려있는 것을 연상하십시오.

2)2-3절은 장 28규빗, 광 4규빗의 앙장을 5폭 연하면 전체의 광 폭은 28규빗이 되고, 장은 20규빗이 됩니다. 또 다른 다섯 폭도 한데 붙이면 같은 규격이 된즉, 28규빗×20규빗의 두 개가 되는 셈입니다. 이것을 함께 붙이는 방법은 “50개의 고리를 달고, 갈고리로 연결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두 쪽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건립하고 관리하는데 편리하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천정 전체의 넓이는(두 폭을 합한 것) 28규빗×40규빗인즉(40척×60척) 직사각형 70평이 되는 셈입니다. 그룹을 수놓은 것은 시은소에 두 그룹을 세운 뜻과 같습니다.

2. 천정 위에 덮는 1차 지붕(7-13절).

1)7절에서 “그 성막을 덮는 막, 곧 앙장(지붕 덮개를 뜻함) 염소털로 만들되 11폭을 만들고

2)8-13절에서(염소 가죽을 정교하게 이어서 만든 것) 각 폭의 장이 30규빗(천정 폭보다 2규빗 김), 광은 4규빗이지만 한 폭이 더한즉 4규빗이 더한 것인데, 이것을 5폭, 6폭으로 붙여서 두 쪽을 만들면 천정 재료와 같으면서 폭으로 2규빗, 장으로 4규빗이 남는데 그것을 “모서리 아래로 여미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고리와 갈고리로 중간을 고정하는 것은 같은 방법입니다. 중간 이음새 부분이 같은 위치에 오는데 그 부분을 덮는 것은 마지막 덮개로 합니다.

3. 마지막 지붕 덮개(14절).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또 해달(데카쉼, 바다소)의 가죽으로 그 웃덮개를 만들라” 하셨는데 여기의 규격이 생략된 것은 앞에서 두 번 설명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문제는 지붕이 세 겹이란 것입니다. 염소털, 수양 가죽 또 해달의 가죽입니다. 여기에는 든든한 의미도 있고, 외부(세속)와의 차단을 굳게 하는 교훈의 의미가 있다 할 것입니다(“성막 제도의 의미”란 설교문 참조).

4. 서남북편의 널판 기둥(15-25절).

지붕을 설명하였은즉 당연히 기둥과 벽에 대한 말씀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1)15-16절에서 “조각목으로 널판을 만들되 장은 10규빗(15자쯤)”이니 이는 성막의 높이를 뜻합니다. 광은 1규빗 반이니 2자보다 넓은 판자인데 이만큼 넓은 판자가 한 폭의 나무로 형성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 판을 이어서 해당 규격이 되게 하였을 것입니다.

2)17절에서 모든 판 양 쪽 끝에 “두 개 씩의 촉(돌출 부분)을 만들게 하여 서로 연하게 한다” 하셨으니 아랫 부분의 연결은 은받침에 얹게 되어 있고(19, 21절), 윗 부분의 연결은 성경에 설명된 바 없지만 줄로 매어 고정하든지 갈고리로 고정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출 27:9과 3:18에서 놋 말뚝과 줄이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3)18절에 보시면 “남편을 위하여 20개, 20절에서는 북편을 위하여 20개를, 22절에서는 성막 뒷 쪽 즉 서편을 위하여 6개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동편은 제외 됨). 성소의 장은 40규빗인즉 20개를 붙여 세우면 30규빗 까지만 채우게 된즉 10규빗의 공백을 메우기 위하여 드물게 세웠을 것이고, 폭은 28규빗인즉 6개를 붗여 세우면 9규빗만 채우게 되므로 역시 드물게 세웠습니다.

4)23절에서 성막 뒤 양 쪽 모퉁이는 기둥 몫을 하기 위하여 “두 겹 두께로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23절에서도 “두 모퉁이 편을 다 그리하라” 하셨으므로 네 모퉁이 전부 두 겹 판을 세우고, 25절에서는 “두판×네 기둥” 인즉 겹친 기둥판이 8개이고, 촉이 16개이므로 은받침도 16개가 사용된다고 하셨습니다. 서편의 6개로는 붙인 기둥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5. 서, 남, 북쪽의 널판띠(26-30절).

1)26-27절은 성막 이 편(남쪽), 성막 저 편(북쪽), 성막 뒤 곧 서편을 위하여 각각 다섯 개 씩 쓰게 하셨고, 28절에서 “널판 가운데 있는 중간 띠는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미치게 하고”, 29절에서 “그 널판들을 금으로 싸고 그 널판들의 띠를 꿸 금고리를 만들고 그 띠를 금으로 싸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30절에서 “식양대로 성막을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기둥을 세웠은즉 띠를 두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여기서도 전면 출입구 쪽은 말씀하시지 않았고, 널판의 길이를 말씀 안 하셨으므로 5개씩의 띠로 3면의 상, 중, 하에 돌리되(중간 띠란 말씀에서 상, 하도 추측된 것) 중간 띠는 반드시 3면 끝까지 다 돌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황금으로 쌌은즉 화려하고 견고할 것이며 금고리에 의하여 든든하게 고정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계시된 “식양대로 세우라”는 말씀에서 계시적인 의미를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진리는 견고한 것이고, 값진 것인즉 우리의 신앙도 흔들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고전 15:58).

6. 지성소를 구별하는 막(31-33절).

1)31절에서는 “지성소를 칸 막아 구별할 재료로 장을 만들되(높이는 기둥 길이와 같으니 10규빗이고, 넓이는 28규빗인즉 거기에 맞도록 규격을 만들어야 함)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그룹을 공교히 수놓으라” 하셨으니, 이 수놓은 화폭이 성소 쪽(지성소 반대쪽)을 향할 것이요,

2)32절에서 지성소와 성소 사이의 칸 막을 지점을 말씀하시지 않았으니 활동 무대가 아닌 지성소가 좁아도 상관없을 것이요, 금으로 싼 조각목 기둥 넷을 네 개의 은받침에 세운 후(남북쪽 널판 위에 고정시킨 듯) “금갈고리를 이용하여 네 기둥에 걸어 드리우라” 하셨고,

3)33절에서는 “증거궤(각주. 법궤) 그 장(휘장) 안(지성소)에 들여 놓으라 그 장이 너희를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지성소는 하늘 보좌를 상징하고 성소는 하나님을 섬기는 세계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7. 성소의 시설과 성막문(34-37절).

1)34절에서 “지성소에 있는 증거(법)궤 위에 속죄소를 둠”은 출 25:17에서 설명드렸고,

2)35절에서 “그 장(휘장) 바깥 북편(지성소에서 밖이란 뜻은 성소임)에 상(진설병)을 놓고 남편에 등대를 놓아 상과 마주 대하게 하라” 하셨으며

3)36-37절은 동편 문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막 동편에는 지금까지 아무 시설이 없었는데 이제 말씀을 주십니다. 36절에서 청, 자, 홍색,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짜서(여기에 수놓은 것은 그 형상을 말씀하시지 않았는데 1절과 31절에 따라 그룹을 수놓았을 것으로 사료됨) 장(휘장, 지성소를 구별한 것 같은 것)을 만들고, 37절에서는 “그 문장을 위하여 기둥 다섯을 조각목으로 만들어 금으로 싸고 그 갈고리도 금으로 만들며, 또 그 기둥을 위하여 놋 받침 다섯을 만들라(지성소 휘장을 막는 네 기둥에는 놋 받침이 없음)”고 하셨습니다. 성소나 지성소에는 고정되지 않은 휘장을 들치고 출입하게 되어 있습니다.

4)이상으로 성막 건립을 위한 명령은 끝났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한 가지 미흡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동쪽을 제외한 벽을 막는 시설이 널판 뿐인데 18절을 참조하면 남북 벽이 10규빗이나 공백이 남고, 서벽은 19규빗 공백이 남습니다. 그래서 널판을 드물게 세운다고 하였지요. 따라서 거기에 나타나는 공백을 어떻게 처리하였는지 잘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공백은 통풍용일 것입니다. 혹 1-6절에 나타난 말씀을 3면 담의 휘장으로 해석할 근거가 없는지 혹 그렇다 하여도 그 규격 맞춤이 어렵습니다. 따라서 바람을 통하도록 열어놓은 듯도 합니다. 그렇다면 낮에는 어둡지 않았을 것입니다(성막이 밀폐된 상태요, 등잔불로만 밝히는 줄로 알았으나 여기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행하면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한 조립식으로 운반 편의를 감안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닥 재료는 없은즉 천연적 지반을 그대로 이용하게 하셨습니다.

 

제 32 과 단과 뜰과 등불 (출27:1-21)목록으로


본문의 ① 1-8절은 “단의 건립”이고, ② 9-19절은 “뜰을 위한 담”이며 ③ 20-21절은 “등불 점화”입니다.

1. 단의 건립(1-8절).

1)단은 성소 동편 마당에 있는 제단입니다. 1-2절에서 규격은 장, 광이 각 5규빗, 고 3규빗(1평 보다 넓음)이고, 네모 반듯하며 조각목으로 만들어 놋으로 싸야 합니다. 그리고 단 네 모퉁이 끝에 놋으로 된 뿔이 있습니다. 이 제단은 제물을 불 태울 때 쓰며 제단의 뿔은 제물의 피를 바르거나 도피성 용도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29:12, 왕상 1:50) 이 제단은 골고다의 상징입니다. 여기에서 메시야를 모형 하는 제물을 번제로 태우기 때문입니다.

2)3절에서는 “제단에서 사용되는 용품”을 만들라 하셨는데 “재 담는 통과 부삽과 피 담는 대야, 고기 갈고리, 불 옮기는 그릇인데 다 놋으로 만들라” 하셨고,

3)4-5절에서는 단 내부 중간에 놋 그물(석쇠)을 만들어 안쪽 네 모퉁이에 있는 놋 고리에 꿰어 다는 것입니다. 제단 바닥과 공기 통풍구에 대한 것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4)6-8절은 제단 운반에 소용되는 채를 조각목에 놋을 씌워 궤 양편에 두 개 씩 부착된 고리에 꿰어, 메게 되어 있음이 법궤의 경우와 같습니다. 8절에서 “단을 널판으로 비운다”는 뜻은 놋 그물 외에 담긴 것이 없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2. 뜰을 위한 담(9-19절).

1)9-10절에서 뜰을 만들기 위하여 성소 주위에 사방으로 세마포 장을 두르게 되는데 남쪽 길이 100규빗에 기둥 5규빗, 높이로(18절) 20개를 세우고, 놋 받침 20개로 고이며 옆으로 잇는 가름대는 은으로 하고, 11절에서 북편도 똑같이 하고, 12절에서 서편은 광 50규빗에 기둥 10개로 하여 같은 은받침과 은 가름대를 대게 할 것이요, 13절에서는 동편도 서편과 같은 길이가 되는데, 동편은 문이 있는 쪽이니 만큼 좌우편 각 15규빗씩 중간에 기둥 셋을 세워 합 30규빗을 포장으로 막고, 중간에 남은 20규빗을 문으로 사용하게 하셨습니다(13-15절).

2)16-17절은 문에 대한 말씀인바 청, 자, 홍색,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짠(무슨 수를 놓았는지 말씀하시지 않았으나 그룹을 놓았을 것으로 사료됨) 20규빗(고는 기둥처럼 5규빗)의 장으로 막되 그 사이에 기둥 4개를 놓은 은받침을 고이며, 17절에서 뜰 사면 모두(문까지) 은 가름대와 갈고리를 은으로 하고, 기둥 받침은 놋이 되는 것입니다.

3)18-19절에서는 “종합적 설명과 말뚝에 대한 말씀”으로 뜰의 장, 광, 고가 100×50×5규빗이고, 기둥 받침은 놋이며 모든 기구와 말뚝과 포장 말뚝을 다 놋으로 한다고 하였습니다. 20규빗의 문은 움직이게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 전체의 넓이는 312평이 되고, 동편에 제단이 있는 만큼 성소는 서쪽으로 위치하게 된 것입니다.

3. 등불 점화(20-21절).

1)20절에서 등에 불붙일 기름은 “감람을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쓰게 하셨고, 불은 끊임없이 켜져 있어야 하며

2)21절에서 “아론과 그 아들들로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지성소 쪽에서 밖이라 하였으므로 성소 내부를 뜻함)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간검하게 하라” 하셨는바,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대대로 영원한 규례라”고 하셨습니다.

순결한 기름을 쓰는 이유는 항상 깨끗한 빛을 발하기 위함이며 제사장은 기름을 붓고, 불똥 떼내는 일을 끊임없이 하여야 합니다. “대대로 영원한 규례”란 말씀이 그 시대의 생활에만 해당함이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등불은 곧 그리스도의 영원한 빛 되심을 의미합니다.(시 119:105, 요1:4-5, 마 5:14)

 

제 33 과 제사장의 의복 (출28:1-43) 목록으로


제사장은 대제사장(최초의 사람 아론)과 일반 제사장(아론의 아들들,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으로 나누어집니다. 대제사장의 특징은 제사장의 대표자요, 최고의 권위자이며 직임의 특징으로는 1년에 한 번씩 속죄제일(7월 10일, 레 16:29, 23:26-32)에 피의 제물을 갖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전 민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립니다. 그리고 일반 제사장과 성전의 모든 일을 감독, 봉사하고 또 회계를 주관하며(왕하 12:7-10) 아들에게로 세습합니다(레 21:15-23). 세상을 떠난 후 아들 중 누가 대제사장이 되는지에 대하여는 알 수 없습니다.

문제는 제사장의 의미입니다. 히 4:15에서 한 마디로 중보자 예수님을 모형적으로 대리한 사역자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대제사장(또는 일반 제사장)의 격위를 예수님처럼 생각할지언정 오늘의 목사가 그 위치에 해당하는 줄로 오해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의 중보적 사역을 이행하되 속제죄물은 양으로 하고 제사만 인간 제사장이 드려 예수님의 구속 사역과 중보 사역을 예표로 대행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의 대부분이 대제사장의 의복 제작을 말씀하셨고, 일반 제사장의 의복은 대제사장도 착용할 수 있는 바, 본 장 39-43절에 기록되었습니다. 성직자의 의복이 중요한가? 하시겠지만 완전 계시가 예수님 또는 성경으로 완성되기 이전에는 모형으로 실상을 깨우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의복이나 장식품으로도 교훈(계시)을 주시는 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리 몸치장을 잘 하여도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권위를 밝히지 못할뿐더러 인간의 외식과 교만만 드러나는 것입니다. ① 1-5절은 “제사장 의복을 만들라”는 말씀이고, ② 6-14절은 “에봇을 만드는 법”이며 ③ 15-30절은 “판결 흉패에 대한 말씀”이고, ④ 31-35절은 “겉옷에 대한 말씀”이며 ⑤ 36-38절은 “패에 대한 말씀”, ⑥ 39-43절은 “속옷과 관과 띠”에 대한 말씀입니다.

1. 제사장 의복(1-5절).

1)1절에서 “아론과 그 아들들로 제사장 직분을 행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하라” 하셨으니 이 제사장 임명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히 5:5-6에서 중보자를 임명하신 말씀이 있는데 “너는 내 아들이니....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고 하셨습니다. 완전한 제사장은 하나님이 자기의 아들만 자격이 있어서 세우신 것입니다(히 5:7-10).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입니다.

2)2절은 “네 형(모세에게 주신 말씀)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사장 의복은 구별된 옷이므로 거룩합니다. 지금은 구별된 의복이 없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이는 의복은 영화롭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3)3절에서는 “이 의복을 만들 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로운 영을 받는다” 하셨으니, 이는 성령님의 역사를 뜻하고, “그를 거룩하게 한다” 함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4-5절에서는 의복에 관한 종목을 말씀하셨는데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 하셨고, 재료는 “금실과 청, 홍, 자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과 보석을 사용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재료는 의복으로서는 최고의 재료입니다.

2. 에봇을 만다는 법(6-14절).

1)6절은 5절에 말씀한 재료를 갖고 “에봇” 지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에봇”이란 조끼 같은 겉옷을 의미합니다. 7절에서 “견대 둘을 달아 그 두 끝을 연하게 함”은 양쪽 어깨에 걸치는 견대를 X자 식으로 드리워야 양쪽 끝을 연결할 수 있겠고(입을 때는 위에서 내려씀), 8절에서 “에봇 위에 매는 띠는(견대도 그러함) 5, 6절에서 소개한 재료로 천을 짜서 에봇에 공교히(정교하고 아담하게) 붙여 짜라” 하셨은즉 허리 부분에 내려온 견대를 띠에 봉합하여 몸에 붙게 하라는 것입니다.

2)9-12절에서는 “호마노(보석 종류, 줄무늬가 있음, 제사장 흉패 및 성전 장식에도 사용됨, 대상 29:2) 두 개를 취하여 이스라엘의 12 지파 이름을 순서대로(연치대로, 출생 순위) 6 지파씩 나누어 인을 새기듯 새긴 후 금테에 물리라” 하셨으니 그 금테는 호마노 두 쪽 변두리에 금장식을 하라는 뜻이고(그 금테 장식에 고리를 달아), 13절의 뜻은 “두 에봇 견대에 붙이라”는 것입니다. 12절에서 이렇게 하는 뜻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고 아론이 열 두 지파의 이름을 양 어깨에 메었음을 기념한다”고 하셨습니다(가슴에 품는 뜻도 있음). 13-14절은 “호마노 이름판을 견대에 붙일 수 있도록 노끈과 함께 금테 만드는 법”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사장이 선민의 이름을 어깨에 멘 것은 예수님이 택한 백성의 죄와 복에 관한 것을 책임지시는 뜻입니다.

3. 판결 흉패에 대한 말씀(15-30절).

본문은 “판결 흉패”에 대한 말씀인데 열 두 보석에 12 지파의 이름을 새긴 것이 6-11절 기록된 에봇의 시설을 다시 설명한 것인가?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9-10절에는 두 호마노판에 6 지파씩 12 지파를 양쪽에 기록하여 어깨 띠에 고정시킨 것으로 제사장이 12 지파의 속죄와 축복을 책임진다는 의미가 있고, 본문의 판결 흉패는 베실로 공교히 짠 두 겹으로 된 4방 한 뼘의 크기에 12개의 보석과 함께 12 지파의 이름이 있은즉 같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의 12 지파 이름은 우림과 두밈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분별하는 용도로 사용된 것입니다. 16절의 “두 겹으로 하고 네모 반듯한 것”은 우림과 두밈을 넣는 주머니용이 됩니다.

1)15-16절은 “만드는 법”으로 앞에서 말씀드렸고, 17-21절은 네 줄로 보석을 물리는데 3개씩 네 줄이고, 각종 12개의 보석에 12 지파의 이름을 인 새기듯 새긴 후, 22-28절은 에봇 표면에 부착하는 방법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22-28절에 보시면 “정금 노끈, 사슬, 고리를 이용하여 흉패 위와 흉패 두 끝과 에봇 앞 두 견대의 금테와 에봇 띠 위와 흉패의 고리를 에봇 띠 위에 붙여 떠나지 않게 고정 시키라” 하셨은즉 이는 9,10절에 두 호마노 패 위에 판결 흉패를 연결 부착하라는 뜻입니다.

2)29-30절에는 “그 두 겹으로 된(16절) 판결 흉패 안에 우림과 두밈을 넣어 아론이 하나님 앞에 들어갈 때(성소나 지성소에 들어감을 뜻함) 그 가슴 위에 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판결 흉패란 하나님의 뜻을 살펴 판결하는 기구를 뜻합니다. 판결 흉패에 속한 기구로써 우림과 두밈에 대하여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우림”은 빛이란 뜻이고, “두밈”은 완전이란 뜻인데 이것이 제비 또는 주사위용으로 이용하는 보석인 듯 합니다. 신 33:8에서는 “두밈과 우림”으로 기록되었고, 민 27:21, 삼상 28:6에서는 “우림”만 기록되었습니다. 이 뜻은 두 개 중 하나로 써도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림과 두밈은 복수 용어인즉 그 수를 늘려 여러 개를 넣고 사용할 수 있다는 뜻 같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를 주실 때는 모세에게 일제히 주셨고, 또 그 후 시대에 선지자들에게도 계시하셨지만 제사장이 계시를 받은 사실은 거의 없습니다(삼상 3:4,17). 그런 중에 제사장이 어떤 사건을 결정할 때 기도하고 제비를 뽑게 하여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시는 섭리에 이용된 장치라 할 것입니다(레 8:8, 신 33:8, 라 2:63). 삼상 23:9-12, 28:6, 30:7-8, 삿 20:27, 왕상 2:26에 우림과 두밈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한 사례가 있습니다.

4. 겉옷에 대한 말씀(31-35절).

1)31절에서 “겉옷을 에봇 받침”이라 하셨은즉 에봇을 입는 대제사장만 입어야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청색으로 하라” 하셨으니 청색의 의미를 순결 또는 생명적 역할을 느끼게 합니다. 32절에서 “두 어깨 사이에 머리 들어갈 구멍을 내고 그 주위에 갑옷처럼 깃을 짜서 찢어지지 않게 하고”(붙이지 않고 통째 이어 짬. 요 19:23 참조) 33절에서 “그 옷 가장 자리(발 있는 쪽으로 드리운 곳)에 청, 자, 홍색실로 석류 수를 놓고 금방울을 달되(34절에서) 석류수 한 개와 교대로 달라”고 하셨습니다. 석류의 뜻은 잘 알 수 없으나 35절에서 “방울은 제사장이 성소 내에서 움직이는 동태와 그가 죽지 않은 사실을 알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5. 패에 대한 말씀(36-38절).

정금 패에 인을 새기는 법으로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새겨서 청색 끈으로 관의 이마 쪽에 매어 이 패가 아론의 이마 쪽에 있어서 “선민 자손의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의 죄건을 담당하게 하라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늘 있으므로 그 성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게 되리라” 하셨으니 여기에 “패가 아론의 이마에 늘 있다”는 뜻이 대제사장의 관에만 패가 붙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고, 또 “겉옷”도 31, 35절에서 “아론이 입고...”하신 말씀이 대제사장의 겉옷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37절의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의 죄건을 담당한다”는 뜻은 38절의 “그 성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게 된다”는 뜻과 같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거룩한 예물(여호와께 성결)을 드리고 죄사함(성결의 은혜)을 받게 한다”는 뜻입니다.

6. 속옷과 관과 띠(39-43절).

1)40절에서 “아론의 아들들을 위하여(일반 제사장 용도) 속옷과 띠와 관을 만들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라” 하셨고, 그 재료는 39절에서 “가는 베실로 반포(무늬 있는 포목) 속옷을 짜고, 가는 베실로 관을 만들고 띠에 수를 놓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41절에서 이것은 “아론과 그와 함께 한 그 아들들(전체 제사장)이 사용할 것이라” 하셨고, 또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위임케 한 후 직분을 행하게 하라” 하셨는데 여기의 기름 부어 위임하는 의식은 29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2)42절에서는 “또 그들을 위하여(제사장 전체) 고의(짧은 속바지)를 만들어...하체를 가리라”고 하셨습니다. 43절에서 “성소(제단과 회막)에서 섬길 때 그것들(여러 가지 의복)을 입어야 죄를 지어서(지어도) 죽지 않는다” 하셨으니 이 의복들은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상징함이 틀림없습니다. 성도가 죄를 짓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로 심판 받지 않고 구원 받는 뜻과 같은 것입니다. 또 “이 규례는 그와 그의 후손이 영원히 지킬 규례라” 하시므로 제사장 되신 예수님의 중보 사역이 영원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제사장의 의복은 존귀와 그리스도의 의의 상징이라 할 수 있으니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은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철저히 규례를 따랐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성직자의 성의란 것은 직분 성격도 다르거니와 성경적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사람 앞에 권위 있게 보이기 위한 사람의 수단일 뿐이지요.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사용이 점차 중단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대제사장이 착용하는 것의 특별한 것입니다. “일반 제사장의 용도로 만들라” 하신 것은 41-43절 말씀으로 반포 속옷과 관(패 없는 것)과 띠와 고의(속바지) 뿐이요, 그 이외의 것은 착용을 말씀하신 곳이 없습니다. 혹 생각하기를 방울 달린 겉옷과 판결 흉패가 없는 에봇은 입었을 듯 하고,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붙힌 관도 썼을 것으로 짐작이 갑니다. 그러나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붙인 정금 패가 “아론의 이마에만 늘 있어야 한다” 하셨으니(38절) 제외된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대제사장은 고의, 속옷, 띠, 겉옷, 에봇, 관을 사용하고, 일반 제사장은 고의, 속옷(여기도 방울은 있어야 할 듯), 띠, 패 없는 관만 사용한 것입니다(29:5-9). 본래 대제사장은 예수님 한 분만을 모형한즉 그 한 사람에게만 중요한 의복과 장식을 꾸민 것이 뜻이 있다 할 것입니다.

 

설교보충 6. 제사장 의복의 의미 (출 28:1-43) 목록으로


출 28장은 “제사장의 의복을 만들라”는 말씀이고, 출 39장은 “말씀대로 만들었다”는 말씀이며 40장은 “제사장이 의복을 입고 위임을 받은 후 제사를 드린즉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하였다” 하셨습니다. 강론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제사장은 중보자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예수님의 모형은 대제사장 한 사람이 유일한 모형이고, 일반 제사장은 대제사장을 돕는 자요, 포괄적으로 표현할 때는 제사장을 예수님 모형으로 계시하신 것입니다(히 3:1, 5:4). 따라서 제사장의 직임과 사명은 예수님의 사명과 상통하는 것입니다.

1. 제사장(대제사장을 뜻함)이 특별한 옷을 입어야 할까요? 일반 옷은 몸 보호와 맵시를 위하여 입지만 특별한 옷은 특별한 뜻을 나타냅니다. 법조인이 법복을 입고 왕이 왕복을 입지요. 이것은 권위의 상징입니다. 이와 같이 제사장도 특수한 직임자이기 때문에 그 의복이 구별된 뜻과 권위(중보자로서)를 나타내고, 또 계시의 의미가 있으며 또 한 가지는 하나님 앞에 나가는 예복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성도들은 의복으로 권위 세울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겸손을 차려야 하니까요. 그리고 하나님이 명하신 옷이 있다면 입겠지만 신약 시대에는 그런 옷이 없으므로 믿음의 옷, 순결의 옷을 예복 삼아 입어야 할 줄 압니다(마 22:11-12의 뜻이 그러함).

2. 제사장이 입는 의복은 하체를 가리는 고의와(출 28:42-43) 속옷과 겉옷을 입고 흉패 및 12 지파의 이름을 붙인 에봇을 입은 후 띠를 띠고 관을 쓰되 그 관의 이마 부분에 “여호와께 성결”이란 표식을 붙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위임(임직)을 받을 때 목욕하고 결례(관유 뿌림)로 의복을 성결케 한 후 입고 기름 부음을 받아 임직하되 7일 동안 위임 의식을 갖습니다.

1)고의를 입는 이유는 성소에서 움직일 때 하체를 가리기 위함입니다. 발이나 하체의 노출은 예절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2)그 다음에 속옷이 있는데 이 속옷에는 특별한 장식이 없고, 40절에 보시면 “아론의 아들들을 위하여 속옷을 만들라” 하신 만큼 일반 제사장이 입는 옷으로 여겨야 합니다.

3)대제사장은 속옷, 겉옷을 다 입게 되는데(4절) 겉옷의 특징은 아래 옷단에 금방울을 단 것입니다. 34-35절을 보시면 “제사장이 성소에서 섬길 때 그 금방울 소리가 들려야 죽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또 43절에서는 “그것들을 입어야 죽지 않는다” 하셨으니 전자는 제사장이 성소 안에서 쉼 없이 활동을 하여야 함을 뜻하고, 후자 즉 “그 옷들을 입어야 함”은 의복 착용의 의미가 중요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사장이 성소에서 섬길 때 항상 경성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향이 잘 타고 있는지 떡의 김이 식지 않았는지 등대의 불이 밝게 비취고 있는지에 대하여 성실하게 살피므로 하나님께 섬기는 일과 제사 드리는 일을 봉행 하는 것입니다.

4)에봇에 대한 것인데 이 옷에는 “견대, 12 지파 이름, 판결 흉패”의 의미를 아셔야 합니다. 9절을 보시면 에봇의 중요한 것이 두 호마노 판에 12 지파 선민의 이름을 순서대로 새겨서 에봇 견대에 연결하여 제사장의 가슴에 부착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12 지파(택한 백성을 뜻함)를 가슴에 품는다는 뜻입니다. 사 46:4에 보시면 “내게 품기운 너희여....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요 안을 것이며 구하여 내리라”는 말씀이 있고, 예수님도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 모으려 함 같이 모으려 했다”(마 23:37)는 말씀이 있습니다. 제사장은 메시야의 모형자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슴에 품을 뿐 아니라 견대로 두 어깨에 메는 것처럼 선민의 모든 죄와 문제들을 대신 져 주시는 뜻입니다. “무거운 짐진 자 오라”는 말씀처럼 선민의 문제되는 짐(죄)과 어려운 짐들을 져 주시는 의미로 견대를 한 것입니다.

5)그 다음에 12 지파의 이름판 위에 또 판결 흉패를 붙입니다. 이것은 두 겹으로 된 주머니 위에 열 두 가지 다른 보석에 열 두 지파의 이름을 새겨서 사방 한 뼘 공간으로 부치고, 우림과 두밈을 그 주머니에 넣은 것입니다. 우림은 빛이란 뜻이고, 두밈은 완전이란 뜻인데 이것이 작은 보석 알갱이로 제비를 뽑거나 재판을 할 때 주사위를 던지는 것처럼 쓰는 것입니다. 혹 판결 흉패를 떼어서 기도를 한 후 흔들면 12 지파 중 어떤 지파의 보석 공간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재판을 하거나 중대사를 결정할 때 하나님의 뜻을 받는 기구입니다. 제비를 뽑으니 요나가 당첨된 것처럼 하나님이 제사장에게 간접 방법으로 계시를 주신 것인데 이것은 예수님이 의로우신 심판자임을 계시하는 것입니다. 우림과 두밈의 뜻처럼 예수님은 의롭고 완전하신 재판자입니다(요 5:30).

6)그 다음에는 허리에 띠를 띱니다. 띠를 매기 전에는 의복이 허술하였겠지만 띠를 매고 나면 거뜬해지니까 활동하는데 편리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띠는 든든함을 보이는 것입니다. 딤후 2:19에 보시면 “견고한 터는 섰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구원 사역이 확실하고 견고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7)관을 쓰게 하는데 이 관은 제사장으로서의 완전한 자격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작은 벼슬만 하여도 관을 씁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 중보자를 모형 하는 제사장이겠습니까? 성도들도 존귀의 관을 쓴다고 하셨습니다(히 2:7-9). 그런데 그 관 이마에는 “여호와께 성결”이란 글씨를 썼으니 제사장의 사명이 바로 “성결케 하는 사명”임을 크게 강조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데모하는 사람들도 “하나님께 성결”이란 띠를 두르고 나선다면 큰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이렇게 제사장 의복은 계시의 의미와 교훈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제 34 과 제사장 위임식 의례 (Ⅰ) (출29:1-25)목록으로


29장 중 제사장 위임에 대한 말씀이 37절까지인데, 분량이 많은 관계로 나누어 설명 드립니다. 38-46절까지는 “매일 조석 제사와 하나님의 선민에 대한 다짐의 말씀”입니다. ① 1-4절은 “위임식을 위한 준비”이고, ② 5-9절은 “착의와 기름 부음”이며 ③ 10-14절은 “수송아지로 드리는 속죄제”요, ④ 15-18절은 “수양으로 드리는 속죄제”이며 ⑤ 19-25절은 “다른 수양으로 드리는 결례와 화제”입니다. 이 말씀들은 제사장 임직 절차 중 “착의와 제사에 관한 것”이라 할 것입니다.

1. 위임식을 위한 준비(1-4절).

1)1절에서 “너는 (모세가 명하라는 뜻) 그들(위임 받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하나님을 섬길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여 거룩하게 할 일이 이러하다” 하시므로 “제사장의 직분”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요, “직분을 위임함”은 일을 맡긴다는 뜻이고, “거룩하게 할 일”이란 속죄제와 결례로써 제사장 자신의 신분을 정결하고 구별되게 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이행하는 것이 곧 위임식 의례입니다. 이 속죄와 결례를 의식으로 성취하는 것 같으나 사실은 메시야의 구속 사역으로 성취하는 것입니다.

2)1-4절은 준비할 사람과 물품들이니 ① 사람은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으로 데려다가 먼저 물로 씻기라”고 하셨습니다. 물두멍에서 몸을 씻게 하는 것입니다. ② 제물에 소용될 물품들로 젊은 수소(10절에서는 송아지라 하였음) 한 마리, 흠 없는 수양 두 마리, 무교병(누룩을 넣지 않은 밀가루 떡)과 밀가루로 만든 기름 섞인 무교과자와 역시 밀가루로 만든 기름 바른 무교전병을 광주리에 담아 갖고 오게 한 것입니다.

2. 착의와 기름 부음(5-9절).

1)5-7절은 아론 즉 대제사장에게 착의함이니 속옷(고의도 포함, 28:42), 에봇 받침용, 겉옷(방울 달린 옷)과 에봇(12 지파 이름 붙인 것, 28:9)을 입히고 흉패를 에봇에 달고 띠를 띠운 후 관을 머리에 씌우고 관 앞에 성패(여호와께 성결이란 글씨)를 더하고, 관유를 그 머리에 부어 바르므로(시 133:2) 제사장의 착의가 끝납니다. 기름 부음은 성령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신약 시대에는 안수 의식으로 대행하였습니다(행 6:6, 딤전 4:14).

2)8-9절은 아론의 아들들, 즉 일반 제사장에게 착의함인데 그들에게는 “속옷과 띠와 관을 씌워” 직무를 행하게 하였습니다. 속옷의 옷단에는 방울이 없고, 일반 제사장의 관에는 성패(6절)가 없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 일반 제사장에게 “기름을 부었다”는 말씀이 본문에는 없으나(5-7, 9절 대조) 29절과 30:30에서 “그들이 기름 부음을 받을 것이라” 하셨은즉 제사장은 다 기름 부음을 받아 위임됩니다.

3. 수송아지로 드리는 속죄제(10-14절).

1)10-11절에서 “너는 수송아지를 회막 앞으로(제단 있는 곳)으로 끌어오고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 송아지 머리에 안수할찌며(안수하는 자의 죄를 송아지에게 담당시키는 뜻으로 그리스도의 대속을 상징하는 것임, 사 53:6) 회막문 여호와 앞(제단 앞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식하는 뜻)에서 잡고”, 12절에서 “그 피를(대야에 담아) 네 손가락으로 제단 뿐들에 바르고 남은 피 전부를 단 밑에 쏟으라”고 하셨습니다. 피를 뿔에 바르는 것과 단에 쏟는 것은 하나님께 대속의 제물 곧 생명의 피를 드리는 뜻입니다. 이 뜻은 인간 제사장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희생을 믿는다”는 뜻으로 상징적인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2)13-14절에서 “그 송아지의 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과 간 위에 있는 꺼풀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르고 그 수소의 고기와 가죽과 똥을 진 밖에서 불살라 속죄제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단에서 불태우는 기름과 콩팥 부분은 하나님께 드리는 정신적 헌신(마음을 드리는 것)인 듯하고, 고기와 가죽과 똥을 진 밖으로 갖고 가서 불사르는 것은 육체적 헌신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의 “진 밖”은 예수님이 영문 밖(예루살렘 도성 밖)에서 돌아가신 일의 모형적 계시가 되는 것입니다(히 13:1). 속죄제는 의를 힘입혀 주시는 죄사함의 목적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속죄 제물은 다 쏟고 태웠기 때문에 남은 것이 없으니 이는 예수님이 자신을 완전히 버리심으로 제물이 되신 뜻입니다.

4. 수양으로 드리는 속죄제(15-18절).

1)15-16절에서 “수양 하나를 취하여 안수하고 잡은 후 피를 단 위의 주위에 뿌렸으니” 여기의 절차는 10-11절과 같은 것이고, 피를 뿌린 것만 12절과 차이가 있습니다. 12절의 소의 경우는 피 일부를 제단 뿔에 발랐는데 여기서는 피 전부를 제단 주위에 뿌린 것입니다. 소의 제물과 양의 제물(또는 비둘기 제물)은 소유 정도의 차이를 감안 하셨다고 봅니다(레 1:14, 눅 2:24). 그러나 단 뿔에 바른 것과 주위에 뿌린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는 연구할 과제입니다.

2)17절에서 “수양의 각을 뜨고 그 장부와 다리는 씻어 각 뜬 고기와 그 머리와 함께 두라” 하시므로 고기로 사용할 수 있는 부분들을 따로 두게 하신 것입니다(이 용도는 26절에서 설명하심).

3)18절에서 “그 수양의 전부를 단 위에 불사르라” 하셨으니 이 전부란 껍질 부분뿐입니다. 이것을 태울 때 냄새가 많이 났을 것입니다.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번제요 향기로운 냄새니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라”고 하셨습니다. “번제”란 제물을 요리하는 방법으로 지지거나 굽는 것을 뜻합니다. 제물을 지지고 굽고 태울 때 냄새가 나는데 그 냄새를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향기라” 하셨고, “화제”란 제물을 불로 익히거나 태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물을 들어 흔드는 것은 요제, 들어올렸다가 내리는 것은 거제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 용어는 제물 드리는 목적과 방법을 설명하시기 위하여 쓰여진 것입니다. 속죄제로 쓰일 때 소의 제물은 피와 완전한 희생을 드린 것이고, 이 경우는 피와 향기를 드린 것입니다. 레 4:27-31에 보시면 제사장 아닌 일반인의 속죄를 위하여 수양을 드리는 규례가 있는데 본문이 그 취지에 해당하는 줄 압니다.

5. 다른 수양으로 드리는 결례와 화목제(19-25절).

1)19-20절의 “다른 수양을 취하여 안수하고 잡는 과정”은 앞의 경우와 같은데 20-21절을 보시면 피를 취하여 위임받은 자들의 오른쪽 귓부리에 바르고, 오른쪽 엄지 손과 오른쪽 엄지 발에 바른 후(나머지는) 단 주위에 뿌립니다. 또 “단 위의 피(뿌려진 것)와 관유를 취하여 위임받은 자들의 옷에 뿌려 그 옷을 거룩하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제물을 화목제로 드린 말씀은 28절에 있습니다.

2)“오른쪽 귓부리에 피를 바르는 것”은 아론과 그 아들들의 신분을 성결하게 구별하는 뜻입니다. 몸 전체에 피를 발라야 족할 것이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이므로 그렇게 하신 듯하며 오른 쪽 귀와 손과 발에 바른 뜻은 “듣고 일하고 행하는 사명을 성실하게 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의복에 피와 관유를 뿌린 것은 의복 자체를 성물로 구별하여 성결케 하였다는 뜻입니다(계 19:3 참조). 물론 피나 관유가 인격을 성결케 하는 재료는 아니지만 여기에서 피는 속죄의 보혈을 상징하고 관유는 성령님의 역사를 상징할 때 성직자는 의의 은총과 거룩의 은총을 받은 자이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3)22절에서 “그 수양의 기름과 기름진 꼬리와 그 내장에 덮힌 기름과 간 위의 꺼풀과 두 콩팥과 그것들 위의 기름과(여기까지는 기름진 영양 부분을 뜻함) 우편 넓적 다리를 취하라 이는 위임식의 수양이라” 하시므로 이 부분의 제물은 위임식에 속한 양의 제물이란 뜻입니다. 이것을 처분하는 방법은 25절에서(다른 소제와 함께) 화제로 드리게 됩니다.

4)수양의 부분을 화제로 드릴 때, 23절에서 “여호와 앞에 있는(이미 드려진) 무교병 광주리에서 떡 한 덩이와 기름 바른 과자 하나와 전병(기름에 부친 떡) 하나를 취하고(일부분이란 뜻), 24절에서 그것을 위임받는 제사장들의 손에 주어(그들이 직접) 그것을 하나님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흔드는 것(요제)은 “하나님께 드렸다”는 표식입니다.

5)또 25절에서는 “그것을 그들의 손에서 취하여(요제를 삼은 소제물, 곡물성 제물) 단 위에서 번제물을 더하여 불살라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냄새로 화제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더하는 번제물은 22절에서 “추리고 남은 것”이 될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은 위임식을 위하여 송아지 한 마리와 수양 한 마리를 속죄제의 제물로, 또 수양 한 마리를 부분적으로 화목 제물로 삼되 요제와 함께 화제로 드린 사실입니다. 수양의 남은 부분의 처리는 다음에 계속됩니다.

 

제 35 과 제사장 위임식 의례 (Ⅱ) (출29:26-46)목록으로


본문은 앞 부분의 말씀에 계속되는 내용으로 ① 26-28절은 “제사장의 분깃”이요, ② 29-30, 35-37절은 “제사장직의 계승”이며 ③ 31-34절은 “제물을 먹는 규례”이고, ④ 38-42절은 “매일 조석 제사”요, ⑤ 42-46절은 “선민과의 관계 다짐”입니다. 34절에서 위임식 의례는 끝납니다.

1. 제사장의 분깃(26-28절).

1)26절에서 제사장의 분깃은 수양 한 마리의 가슴 부분과 남은 좌편 넓적 다리(22절)입니다. 27절에서 “이것을 하나님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요제로 흔드는 뜻은 하나님께 먼저 드리는 의미), 또 27절에서 그 제물을 거룩하게(하나님께 드린 것으로 구별함) 하는 뜻이 있습니다.

2)28절에서 “이는 아론과 그 자손(제사장들)에게 돌릴 영원한 분깃이요, 거제물이니...화목제의 희생 중에서 취한 여호와께 드리는 거제물이라”고 하셨습니다. “영원한 분깃”이란 제사 제도가 존속하는 한 그렇다는 뜻이고, “거제물”은 하나님께 드리는 표식으로 “요제”와 비슷한 뜻입니다. 거제는 들어올려 보인 뜻이고, 요제는 들고 흔든 것인데, 27-28절에서 요제물과 거제물을 한 가지 뜻으로 사용하신 만큼 같은 뜻으로 여겨야 합니다.

3)28절에서 “화목제의 희생”이란 용어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앞에서 드린 송아지의 희생은 속죄 제물이고(14절), 두 마리 양 중 한 마리는 전부 불살랐으므로(18절) 역시 속죄제에 부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남은 양 한 마리는 그 기름과 내장 부분을 화제로 하나님께 드리고 남은 고기 부분을 제사장 분깃으로 주어 먹게 하셨으니 만큼 하나님과의 화목을 모형하는 제사가 된 것입니다.

2. 제사장직의 계승(29-30, 35-37절).

1)29절에서 “아론의 성의는 아론 후에 그 아들들(아들들 중 대제사장 될 자)에게 돌릴지니 그들이 그것을 입고 기름 부음을 받아 위임을 받는다” 하셨으며, 이 때에 30절에서 “대제사장이 되는 아들이 회막에 들어가서 성소에서 섬길 때, 7일 동안 계속 입고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인계를 받아 처음 시작한 대제사장은 성소에서 숙직하며 7일을 보내라는 것입니다. 35절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아들들 중 대제사장 되게 하는 선택법이 말씀되어 있지 않습니다.

2)그리고 36절에서 7일 동안 인계 받는 행사로 “매일 수송아지 하나로 속죄하기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고(10-14절)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여 깨끗케 하고 그것에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라” 하셨으니, 여기의 “제단을 속죄하라”는 뜻은 그 제단에서 (과거 전임 제사장 때에) 합당치 않게 제사 드린 일이 있을 것을 우려하여 정화하는 뜻입니다. 그리고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는 것”도 새롭게 구별하고 깨끗이 한 후에 사용하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일을 7일 동안 반복하므로 완전 성결에 뜻을 둔 것입니다. “그리하면 지극히 거룩한 단이 되리니(반복된 제사로) 무릇 단에 접촉하는 것(다른 제물의 순결 문제)이 거룩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비단 깨끗지 못할지라도 거룩한 것(진리, 예수님)에 접촉하면 거룩해질 수 있는 진리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3. 제물 먹는 규례(31-34절).

위임식을 위하여 희생된 두 마리 양 중 한 마리가 화목 제물이 되어 기름 부분과 오른쪽 넓적 다리만 화제로 드리고, 남은 부분은 제사장 분깃이 된다고 하셨습니다(28절). 그래서 그 남은 고기를 먹는 법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1)31절에서 “거룩한 곳(성소안 제단, 뜰)에서 그 고기를 삶고 아론과 그 아들들이 회막문(입구)에서 먹되 광주리에 있는 떡과 함께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광주리의 떡은 2-3절에서 위임식을 위하여 준비한 것으로, 속죄 제물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속죄제는 피의 제물만 쓰기 때문입니다(10-14절). 그런데 그 준비된 떡을 24절에서 “요제를 삼으라” 하셨고(태우지 않는 뜻), 25절에서는 “그것을 그들의 손에서 취하여 단 위에서 번제물을 더하여 불사르라” 하셨은즉 이는 화목제를 드릴 때 약간 화제로 섞어 드린 것입니다(24-25절). 따라서 남은 떡이 있으며 그것과 함께 먹으라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속죄제를 위한 제물은 소제물이라도 다 태우는 것이고(2, 25절). 화목 제물로 준비된 소제물은 요제로 드린 후 먹을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23-24절).

2)33절에서 “속죄물로 사용된 제물은 성물이므로 제사장들은 먹을 수 있되 타인은 먹지 못하며 아침까지 남았으면 그것을 불사르라 이는 거룩한즉 먹지 못할지라”고 하셨습니다. 부패도 문제려니와 매일 드리는 제물이 연속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월절 제물을 당일에 먹는 뜻도 여기에 참고 될 것입니다(출 12:10).

4. 매일 조석 제사(38-42절).

제사장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제단에서 화제로 드린 제물을 말씀하셨으니 “한 어린양에 고운 밀가루 에바 십분의 일(1에바, 22ℓ)과 찧은 기름 힌(3.8ℓ)의 사분의 일을 더하고, 또 포도주 힌의 사분의 일을 전제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소제는 곡물로 드리는 제사이고, 전제는 기름이나 포도주 같은 것을 부어드리는 뜻입니다. 41절의 “그것과 함께 드려” 하심은, 소제, 전제를 피의 제물과 함께 드리라는 뜻입니다. 42절에서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하신 것은 하나님이 수시로 계시를 나타내실 장소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곧 회막문 앞입니다.

5. 선민과의 관계 다짐(43-46절).

43절에서 선민을 만나주실 약속과 영광을 인하여 거룩하게 해 주실 약속을 말씀하셨고, 44절에서는 하나님이 회막과 단을 거룩하게 하시고, 제사장들을 거룩하게 하셔서 직분을 행하게 해 주실 약속과 45절에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며” 46절에서 “그들 중에 거하시고 애굽에서 인도하신 것과 여호와가 그들의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상의 말씀이 곧 하나님과 성도와의 관계를 가깝게 만든 성도의 필수적 생활 상태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 36 과 남은 시설과 제도 (출30:1-38)목록으로


본문에는 7 대지로 나누어 상고할 수 있는 “성소의 남은 시설과 제도”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① 1-6절은 “향단을 만들라”는 말씀이요, ② 7-10절은 “분향과 향단 관리”이며 ③ 11-16절은 “20세 이상 생명의 속전”이요, ④ 17-21절은 “물두멍 제조와 씻음”이고, ⑤ 22-25절은 “관유 제조법”이며 ⑥ 26-33절은 “관유 사용법”이고, ⑦ 34-38절은 “향 제조법”입니다.

1. 향단을 만들라(1-6절).

1)1절에서 분향 할 향단은 조각목으로 장, 광, 고를 1규빗×1규빗×2규빗으로 네모 반듯하게 만들되 2절에서 “그 뿔을 그것과 연하게 하라” 하셨으니, “그 뿔”은 제단 뿔을 연상할 수 있고, “그것과 연합”은 향단 윗면 네 모서리에 부착시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3-4절에 보시면 전후, 좌우면(바닥을 제외한 전체)을 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돌린 후 아래쪽 양편에 금고리 두 개 씩 붙이고, 금으로 싼 조각목채를 양쪽 고리에 꿰어 들도록 만든 것입니다.

2)이 향단을 놓은 장소는 6절에서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 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장 밖이라” 하셨은즉 이는 성소의 서편 중앙 곧 법궤 있는 쪽 휘장 앞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등대는 남쪽에 상은 북쪽에 놓이고 동편은 출입구가 되는 것입니다.

2. 분향과 향단 관리(7-10절).

1)7절에서 “아론이(다른 제사장이 대리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34-38절)을 사르되 등불을 정리할 때(등불을 끄는 뜻) 함께 하라” 하셨고, 또 8절에서는 “저녁 때 등불을 켤 때에도 사를지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성소가 존속하는 동안)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등불은 24시간 켜는 것은 아닙니다. 필자는 처음에 “성소에 창이 없으므로 밤이나 낮이나 등불에만 의존하여 밝힌다”고 배운 일이 있었는데 이번에 그 지식을 교정하였습니다. 본문에서 “아침에 정리하고 저녁에 켠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낮에는 햇빛에 의존하는데 성소 4면의 벽기둥을 조각목으로 세울 때 듬성듬성 세우도록 설계된 것을 알았습니다(26:15-25). 따라서 그 사이로 빛과 공기가 통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 향은 아침저녁으로 등불을 끄고 켤 때 향을 첨부하는데 그 향은 계속 피어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8절의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한다”는 뜻을 제도상 또는 실무상 연속되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2)9절에서는 “그 위에 다른 향이나 다른 제물(번제, 소제물, 전제의 술)을 드릴 수 없고”, 10절에서 “아론이(대제사장을 뜻함) 1년 1차씩 이 향단 뿔을 속죄하되 속죄제의 피로(피뿌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 단이 하나님께 지극히 거룩함”으로 혹이라도 불결하게 사용되었을 것을 우려하여 정결케 하는 의식을 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정결케 하는 의식은 성도가 수시로 회개하여 용서를 받는 생활의 일면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3)중요한 것은 향을 피우는 이유를 아는 것입니다. 성소에서 향을 피는 이유는 하나님께 성도의 믿음과 바른 생활을 흠향하시게 하는 상징입니다. 계 8:3에서는 “성도의 기도를 향과 함께 올린다”는 말씀이 있고, 고후 2:15에서는 “예수님의 인격을 그리스도인의 향기라” 하셨으며 또 “주님께서 자신을 버려주신 사랑과(엡 5:2) 성도가 복음 사역자를 도운 일을 향기로운 제물로(빌 4:18) 말씀하신 곳이 있습니다. 따라서 향기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 나타나는 사랑과 선행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 등대는 어둠을 비취는 생명을, 소제(떡상)는 헌신과 봉사를 의미할 것입니다.

3. 20세 이상 생명의 속전(11-16절).

1)11-12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인구 조사)를 조사할 때 조사 받은 각 사람(이 각 사람은 성인 20세 이상을 뜻함. 14절)은 그 생명의 속전(생명을 보호받는 값)을 드리라” 하셨으니 “이는 그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온역이 없게 하려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의 속전”은 생명을 속하기 위하여 (돌려 받음) 생명값을 내라는 것입니다(딤전 2:5-6을 참고). 15절에서 그 값은 돈이 많고 적음을 상관치 않고 반 세겔(32센트, 600원 정도임)씩 내는 것입니다. 여기의 20세 이상은 전쟁에 출전할 수 있는 장정(남자)을 뜻하고(민 1:20), 인구 조사 자체도 장정만 계수한 기록이 있습니다(민 1, 2장).

2)이렇게 하신 목적은 “그들을 온역에서 보호해주시고(12절)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며(반 세겔을 안 낸 자는 선민 신분의 자격증이 없는 뜻) 또 그 돈을 회막 봉사에 쓰기 위함이라”고 하셨으니(16절) 적은 돈으로 생명 보호와 아울러 아주 큰 혜택을 주시는 은혜라 할 것입니다.

4. 물두멍 제조와 씻음(17-21절).

1)17-18절에서 “놋 받침 위에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어 회막(동문 쪽)과 단 사이에 두고 물을 담으라”고 하셨습니다.

2)19절과 21절에서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회막에 들어갈 때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하라”고 하셨습니다. 희생물을 잡고 피를 뿌릴 때나 외출에서 들어왔을 때, 손발의 불결이 있으면 죽임을 당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순결이 따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20절에서는 “제단 앞에 가서 화제를 드릴 때도 깨끗한 손발로 하여야 한다” 하셨고, 21절에서 “이 규례는 그 자손이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대대로는 후손도 그렇게 하라는 뜻)”라고 하셨습니다.

5. 관유 제조법(22-25절).

상등 향품(최고 품질로 선별함)으로만 하고 액체 물약(감람과(科) 약초의 즙) 500 세겔(13절에서 돈 단위로 쓴 예도 있지만 여기서는 무계 11.42g 또는 1/2온스의 무게를 뜻함. 500세겔은 5.7㎏쯤 됨), 육계(계수나무 껍질) 250 세겔, 창포(일종의 향을 내는 풀) 250 세겔, 계피 500 세겔을 감람유 한 힌(3.8ℓ)과 섞어서 향을 제조하는 법대로 향기름을 만든 것이 곧 관유가 되는 것입니다.

6. 관유 사용법(26-33절).

이 관유는 “두 가지 용도로만 쓰고 다른 용도로는 만들거나 사용하지 못하며 다른 용도로 만들거나 잘못 사용하면 백성 중에서 끊쳐진다”고 하셨습니다(33절). 두 가지 용도란 성도의 모든 기구(회막, 증거궤, 상과 그 모든 기구, 등대와 그 모든 기구, 분향단,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 물두멍과 받침)에 발라 그것들을 지성물로 거룩하게 구별하는 것입니다. 29절에서 “무릇 이것에 접촉하는 것이 거룩하여짐”은 다른 것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의식으로도 쓰인다는 뜻입니다. 또 한 가지 용도는 제사장들을 세울 때(그 머리에) 발라 임직 시키는 의식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왕이나 선지자를 세울 때도 감람유를 붓는 예가 있지만(삼상 10:1, 왕상 1:34, 19:16) 그것은 일반 감람유일 뿐 관유를 부은 것은 아닌 줄 압니다. 구약 시대에 정결케 하는데 세 가지 액체를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는 희생 제물의 피이고, 또 한 가지는 물이며 또 한 가지는 관유입니다. 다 예수님의 보혈의 상징이고(벧전 1:18-19), 또 물과 관유는 성령님의 상징이 됩니다(요 7:38-39, 막 6:13, 고후 1:21).

7. 향 제조법(34-38절).

이 말씀은 향단에서 사용할 향을 특별하게 제조하라는 말씀입니다.

1)여기의 재료는 “소합향, 나감향, 풍자향을 취하고 이 향품들을 유향에 섞되 동일한 분량으로 하며 35절에서 향을 만드는 방법대로 하고 그것에 소금을 쳐서 성결케 하라” 하셨으니 여기의 소금을 치는 이유는 그 향기로 인하여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하는 의미일 것입니다. 밤나무 장작을 태운 숯불은 정신을 혼미케 하기 때문에 자주 소금을 뿌리며 사용한 기억이 납니다. 소금은 요긴한 것이기 때문에 제물용도 되는 것을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2)36절에서 “이 향 얼마를(부분으로 나누어) 곱게 찧어서 회막안 증거궤 앞에 두라” 하셨으니 이는 지극히 거룩한 것이기 때문에 성소 안에 보관하라는 뜻입니다. 37-38절에서는 개인의 사사로운 용도로 만들지 못하게 하셨으니 이는 세속과 거룩을 엄격히 구별하게 하신 뜻입니다. 성도는 모든 일에 향내나는 제물이 되셔야 하고 순결과 거룩에 항상 힘써야 할 것을 교훈 하신 것입니다.

 

제 37 과 시내산 계시의 결론 (출31:1-18)목록으로


본문 ① 1-11절은 “만들 자를 지명하여 성령으로 충만케 하심”이고, ② 12-17절은 “안식일에 대한 강조”이며 ③ 18절은 “친히 기록하여 주심”입니다. 따라서 총 제목을 “시내산 계시의 결론”이라고 하였습니다.

1. 만들 자를 지명하여 성령을 충만케 하심(1-11절).

1)1-2절에서는 하나님이 브살엘(유다 지파 훌의 손자, “우리”의 아들)을 지명하여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일을 맡길 대상을 모세처럼 지명하여 부르시는 분입니다.

2)3절에서 “그 부르신 대상에게 성령(신)을 충만하게 베푸셔서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네 가지의 특수한 의미가 있는지 연구하십시오. 이 네 가지 지혜, 총명, 지식, 재주가 성령님의 역사로 알게 되는 특수한 재질들입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지식에만 역사 하시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진리 사역에도 역사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4-5절에서 성령님이 역사 하시면 “공고한 일을 연구하게 되고 보석 장인의 역할과 목공, 조각의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또 모세에게 아론을 주신 것처럼 “브살엘”에게 “오홀리압”(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을 세워 주셔서 함께 일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6절에서 “무릇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자에게 지혜를 (더) 주셔서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다 만들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시대에 복음 사역에 관한 일도 그렇게 하시는 줄로 믿으셔야 합니다.

4)그리하여 7-11절에서 “앞 장에서 명하신 모든 시설과 기구들을 다 만들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2. 안식일에 대한 강조(12-17절).

이 말씀은 20:8-11, 23:12에서 말씀하신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중요한 뜻은 여러 차례 강조하셔도 합당할 것입니다.

1)안식일 성수에 대하여 13절에서 “자손에게 고하여 이를 것”과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키라”고 강조하신 것과 “나와 너희 사이에 대대의 표징이라(17절에서는 영원한 표징이라 하심)” 하셨고, 13절에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이가 여호와임을 알게 함이라” 하시므로 “대대의 표징”은 안식일을 지키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긴밀하게 의식하도록 하셨으며, 본 절의 “여호와임을 알게 하심”은 안식일을 지키는 자에게 하나님이 더 가까이 오셔서 믿음의 지식 주실 것을 약속하신 뜻입니다. 또 14절에서는 “너희에게도 성일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2)14-16절에서는 “그 날을 범하는 자는 죽일 것과 그 생명이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하셨고, 또 그 날을 “큰 안식일”이라 하신 것은 작은 안식일이 따로 있음이 아니고 안식일 자체를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안식일은 천국의 모형이므로 “영원한 언약 또는 표징이라” 하셨고(16-17절), 17절에서 “하나님도 창조 후에 쉬어 평안하셨음”은(창 2:3) 인간적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피곤치 않으신 분이시니까요(사 40:38, 시 121:4).

3, 친히 기록하여 주심(18절).

모든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나님이 친히 돌판에 쓰셔서 증거판 둘을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계시의 말씀을 친수 기록으로 주신 것은 기록의 의미가 그만큼 크고 중요함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 두 개의 판에 기록된 내용은 계명의 일부인 십계명(신 34:1,28)을 기적으로 기록해 주신 것입니다. 기록은 보존, 명확, 증거, 연구, 교육 등에 유익합니다.

 

제 38 과 백성의 타락과 모세의 기도 (출32:1-14)목록으로


모세가 율법을 받기 위하여 백성들을 떠났던 기간은 40일간이었습니다. 출 24:13-14에서 여호수아와 함께 올라갔고, 24:18에서 40주, 40야를 있었으며 모세가 40주야 금식한 말씀은 신 9:9에 기록되었고, 32:15, 17에서 여호수아와 다시 동행 하였은즉 모세가 율법을 받는 40일 동안 여호수아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 떨어져 있었습니다(19:12, 24, 24:13-14). 이 시기에 여호수아도 자기의 위치를 지키며 함께 금식하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① 1-6절은 “백성들의 타락”이요, ② 7-10절은 “타락을 알려주심”이며 ③ 11-14절은 “모세의 기도”입니다. 타락을 알려주시면서 진멸하려 하신즉 모세가 기도하므로 “뜻을 돌이키셨다”고 하셨습니다.

1. 백성들의 타락(1-6절).

1)1절에서 모세가 40일 동안이나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백성이 아론에게 “일어나라(새로운 방도를 취하자는 뜻)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모세는 여러 날 째 소식이 없지 않느냐”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은 모세가 먹지 못하는 상태에서 여러 날 된 것을 알자 죽은 줄로 여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기가 율법을 받기 전이므로 우상 제조에 대한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였을 것이므로 아론도 백성들의 뜻에 동화되어 따르게 된 줄 압니다. 무지와 인내 부족이 큰 과오를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2)2-4절에서 아론은 여인들(아내)과 자녀들이 착용한 귀 금고리를 가져오게 하였고, 그것을 조각하여 송아지 형상을 만든 후 백성들(그들)이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낸 너희 신이라” 하였은즉 은금이 패물로, 패물이 우상으로 전환된 것을 알 수 있고, 5절에서 “아론이 그 앞에 단을 쌓고 공포하기를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라” 하였으니 이 절일은 유월절 첫 날을 의미하였을 것입니다. 6절에서 “그 이튿날(절일) 그들이 일찍 일어나 쌓은 단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았다” 하였으니 여기에 나타난 제사 제도는 우상 제조와 함께 자율적이며 이방적인 제사로서 하나님이 역겹게 여기시는 범죄로 타락상을 나타낸 것입니다. 지도자와 표준 계시가 없으면 끝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나(고후 13:8)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타락의 심사인 것입니다.

2. 타락을 알려주심(7-10절).

1)하나님은 백성들의 타락상을 곁에서 보신 듯이 알고 계셨고, 그 사실을 시내산에 머물러 모세에게 알리셨습니다. 7절에서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송아지를 부어만들고 그것을 숭배하며....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고 하였다”라고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 당시에 애굽인들은 “오리시스”라고 하는 금송아지를 섬겼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송아지 우상으로 바꾸어 “너희 신이라” 하였으니 얼마나 참람한 짓입니까?

2)9-10절에서 또 이르시기를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라(완악하고 고집이 센 뜻. 행 7:51)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할 것이라” 하시므로 악인을 없애고 순결한 자를 따로 세우실 뜻을 말씀하셨으니 이것은 마치 패괴한 노아 시대를 심판하시고 의인(노아)을 살려 번성케 하시려는 뜻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벌하시고 의롭게 살려는 자를 복 주시는 분입니다(시 1:6).

3. 모세의 기도(11-14절).

1)이제 하나님의 뜻대로 하신다면 많은 백성이 진멸 당할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이때에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11절에서 “어찌하여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인도하여 내신 백성에게 진노하려 하십니까” 또 12절에서 어찌하여 애굽인들이 말하기를 “저희 여호와가 그 백성에게 화를 내려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였다고 좋아하게 하시렵니까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하였고,

2)또 13절에서는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야곱)을 기억하소서 그들에게 맹세하시기를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하였으니 이 약속은 창 13:14-17과 그 이외의 말씀들에서 약속하신 내용을 아뢴 것입니다.

3)모세의 기도 성격은 죄인에게 긍휼을, 하나님의 약속 이행을, 또 대적들에게 통쾌한 소식을 전하지 않기를, 하나님의 계획을 그대로 이루어 영광 받으시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신 9:14-21을 보시면 “모세가 이 당시에 기도 응답을 받기 위하여 40주야를 다시 금식하고 은혜를 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80일을 연속 금식한 셈입니다. 어찌 그 기도를 들으시지 않겠습니까? 14절에서 “이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내리시지 않았다” 하셨으니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시고, 특히 세우신 종의 기도를 들으시며 긍휼을 베푸시고, 또 자신의 언약과 영광을 기억하여 그 뜻을 기도 응답에 나타내주신 것입니다.

4)하나님도 “이렇게 하시겠다는 작정을 변하실 수 있는가”에 대하여 하나님께는 불변한 제정적 섭리(변동 못하는 계획)가 있고, 또 일반적으로 형편에 따라 적당하게 하시는 섭리도 있음을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계획과 선택자에 대한 은혜는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처럼 징계에 대한 계획은 기도나 회개에 따라 변동 처방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는 시급히 회개하고 기도로 용서와 긍휼을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 39 과 모세의 하산과 변고 처리 (출32:15-35)목록으로


① 15-16절은 “모세가 증거판을 갖고 내려옴”이고, ② 17-20절은 “판들을 던져 깨트림”이며 ③ 21-25절은 “진상 파악”이요, ④ 26-29절은 “범죄 주동자 처단”이며 ⑤ 30-35절은 “모세가 하나님께 다시 나아감”입니다. 총 제목은 “모세의 하산과 변고 처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모세가 증거판을 갖고 내려옴(15-16절).

1)15절에서 “모세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증거의 두 판이 그 손에 있고 그 판 양면에 글자가 있더라”고 하셨습니다. 글자는 말씀하신 율법, 곧 십계명입니다(34:1, 28에 나타남).

2)16절에서 “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셨고 글자도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라” 하셨는데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 판을 만드시고 쓰셨는지에 대하여는 이적에 속한 일입니다.

2. 판을 던져 깨트림(17-20절).

1)17-18절에서 모세와 여호수아는 하산 중에 백성의 떠드는 소리와 싸우는 소리를 감지하였으나 결국 노래 소리임을 확인하였고, 19절에서 “진에 가까이 와서 실상(송아지 우상 앞에서 춤추는 것, 이방적 제사 행위)을 파악한 다음

2)19절에서 “모세가 대노하여 손에 든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렸으니” 하나님이 친수로 만들어 주신 계명판을 그대로 던져 깨뜨린 것이 무슨 뜻인가?를 연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노한 끝에 혈기로 던졌을까요? 그렇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모세는 크게 온유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민 12:3). 무슨 다른 이유가 있겠지요. 신 9:16-17을 보시면 “백성이 여호와의 명하신 도를 떠났기로...두 돌판을....깨뜨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백성은 도를 떠났고, 하나님의 진노는 확실하므로 계명을 가르칠 대상이 없게 된 바에는 계명판도 필요 없다고 생각한 듯 합니다. 신령한 뜻으로 해석한다면 “율법이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지만 지킬 능력과 구원 능력이 없으므로 복음이 올 때에 파기될 수밖에 없음을 보이신 계시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롬 10:4).

3)20절에서 돌판으로 금 우상을 부셨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다만 “금송아지를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웠으니”(신 9:21), 이는 철저한 단죄 의식을 갖춘 일이라 할 것입니다. 누가 미운 사람을 응징할 때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다, 또는 간을 뽑아 씹어도 시원치 않다”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으니 이 경우가 바로 우상 숭배를 증오하여 단절을 결심시키는 극단의 방법으로 이행한 것이라 할 것입니다. 성도가 죄를 미워할 때 극단의 처방을 써서라도 범죄를 방지함이 지혜로운 일이요, 율법시대에는 눈을 뽑고 손목을 자르면서까지 죄를 멀리 하였으니까요(출 21:23-25, 마 5:29-30).

3. 진상 파악(21-25절).

1)21절에서 모세가 아론에게 백성과 함께 중죄에 빠지게 된 연유를 물은즉, 22절에서 “백성의 악함”을 첫 이유로 삼았고, 다음에는 23절에서 “그들(백성)이 애굽에서 인도한 신을 만들자” 하였으므로(모세는 오지 않은즉) 24절에서 “아론 자신이 금을 가져 오라” 하였고, 또 그것을 불에 던졌더니(가공하게 하였다는 뜻) 이 송아지가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백성에게 죄를 70%쯤 미루고 자신은 30%쯤 지는 듯이 진상을 말하였지만, 아론은 강하게 반대 설득한 바가 없은즉 아론의 책임도 큰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아론이 발뺌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2)그러나 모세의 주관적 판단이 있은즉 그것은 25절에서 “백성의 방자함이 나타난 사실”이고, 22절에서도 “이 백성의 악함을 아신다” 하였으므로 백성은 악함과 방자함에서 범죄를 주동하였고, 아론은 부득이 따라 간 것이 사실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에 아론이 문책을 받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25절에서 “백성의 방자함 중에 또 아론이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 거리가 되게 하였다” 하셨은즉 책임은 양쪽에 다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론이 지도자 역할을 바로 하였다면 큰 칭찬을 받았을 것입니다.

4. 범죄 가담자 처단(26-29절).

1)26절에서 “모세가 진문에 서서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하나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자)는 나오라 한즉 레위 자손이 나왔으니, 레위 자손에게 그런 용기가 있었음은 그들이 성소에서 하나님 섬김을 위하여 선택 받은 근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2)27절에서 모세는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으니, 곧 “허리에 칼을 차고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가족적 인정을 초월함), 각 사람이 그 친구를(우정을 초월함), 각 사람이 그 이웃(이웃의 인정을 초월함)을 도륙하라”고 하셨다는 말씀을 전하였을 때

3)28절에서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이 날에 백성 중 3,000명 가량을 죽였다”고 하였습니다. 죄 짓는 생명, 영광을 가리우는 인생, 축복을 가로 막는 인생은 하나님의 영광과 뜻 있는 백성들의 발전을 위하여 아낌없이 없애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하나님의 통치 섭리에 속한 것임을 믿으셔야 할 것입니다. 엄벌 규정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4)29절에서 “각 사람이(하나님의 명을 따라 인정을 초월하여) 그 아들과 형제를 쳤은즉 오늘 날 헌신하게 되었고 하나님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하시므로 죄에 대한 강한 응징과 결단이 있을 때 참된 헌신과 축복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이 부분에 대하여 헌신 설교 중 “제 12 과 헌신하게 됨”이란 제목을 참고하십시오).

5. 모세가 하나님께 다시 나아감(30-35절).

1)3,000명 가량의 척결이 있은 다음 날 30절에서 모세는 백성들에게 “큰 범죄 사건이 있었음”을 말하고, “하나님께 올라가 너희의 죄를 속할까 한다” 하였으니 이는 백성들의 범죄에 대한 보응이 3,000명 가량의 죽음으로 끝나기를 바라는 뜻이 있습니다.

2)31-32절에서 “모세는 하나님께로 다시 나아가(시내산에 오른 뜻) 범죄 사건을 슬프게 여기며 큰 죄 범한 것을 자인하고 합의하시면(성부 성자 성령의 뜻이면, 하나님의 섭리에 맞으시면) 그들의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더 이상 징벌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렇게 해 주시지 않으시면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도 제하여 주십시오” 하였으니 만일 징계를 더 하신다면 모세도 같은 죄인이 되어 죽는 벌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3)33절에서 하나님이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또 그런) 죄를 범하면 내가 그리 하리라” 하시고 모세의 기도를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34절에서 “내가 네게 말한 곳(가나안 땅으로 향함)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불기둥, 구름 기둥)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심판의 때)에는 그들의 죄(가중되는 죄)를 보응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35절에서 이 사건은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든 일로 인하여 하나님이 백성을 치신 사건이라”고 하셨습니다.

 

설교보충 7. 금송아지 우상 숭배 사건 (출32:1-6) 목록으로


출 32장은 “금송아지 우상 숭배 사건”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 금식 중 율법의 돌판을 받아 내려오는 일, 그 사이에 아론과 백성들이 타락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한 일, 모세가 대노하여 율법의 돌판을 던져 부순 일, 금송아지를 가루로 만들어 물과 함께 마시게 한 일, 또 타락 행위의 진상을 묻고 하나님 편에 선 자들을 시켜서 우상에 가담한 자 3,000명 가량을 죽인 일, 그리고 또 하나님께 40일이나 금식하고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끝나게 한 일 등입니다.

1. 하나님은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 40일 금식 기도 중에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자세로 받아야 하는가를 교훈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는 기도하는 자세로 또는 사모하고 두려워하며 연구하는 자세로 받아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이 말씀을 돌판에 친수로 기록해 주신 점입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이 말씀을 글과 문서로 주셔서 확실하게 하셨고, 연구 보존하게 하셨으며 또 문서로 널리 보급하는데 편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소리로만 받을 것이 아니라 글로 더 확실하고 신속하게 받는 방법을 쓰셔야 함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3. 백성의 타락입니다. 어떤 타락을 하였습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하나님으로 바꾸되 애굽인들이 섬기는 “오리시스”라고 하는 금송아지 우상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우상이 자기들을 인도한 “여호와”라 하였고, 거기에 제사를 드리고 이방인 식으로 먹고 뛰논 것입니다.

4. 범죄의 원인을 살피면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1)무지입니다. 노예 생활 300년 쯤 하면서 조상의 신앙은 다 잊어버렸고, 애굽의 우상 제도만 익숙한 상태였습니다. 또 그때는 모세가 율법을 교육하기 직전이기 때문에, 옳고 그른 것 자체를 몰랐습니다.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아들도 십자가에 못박지 않습니까?(눅 23:34) 무지는 곧 죄악입니다.

2)지도자가 없었습니다. 무지를 어린 아이로 비유한다면 어린이는 한시도 보호자가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그때 모세의 지도로 행동하다가 모세가 여러 날 내려오지 않자 중심을 읽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모세의 말이 중심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중심은 성경입니다. 교역자의 인도도 중요하지만 위험할 때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거짓 선지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교역자 없이 신앙 생활하실 자신이 있습니까? 반드시 성경만 갖고 믿음 생활을 홀로 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 중심 생활 좋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부패하고 사랑이 식을 때는 그 세계도 뛰쳐나와야 할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를 핍박하는 세력이 있다면 교회도 존속이 안 되니까 의지할 수 없겠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 없는 기회에 타락한 것은 그만큼 신앙의 자립성이 없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3)세속에 물들어 있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출애굽한 선민들이 애굽의 이방적 종교 제도에 물든 상태였으니까요. 백성들은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32:23) 하였고, 아론이 금을 거두어 불에 던진즉 금송아지가 쑥 나왔으니 이것은 우상 제조와 숭배에 익숙함을 보여준 것입니다. 성도는 안 믿는 사람들의 사상이나 생활을 닮으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세속이고 하나님 사랑을 끊는 일입니다(요일 2:15). 무지하고 지도자 없으니까 세속적 습관만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송아지를 만든 것입니다. 어찌나 무지한지 사람이 하나님을 만든 것입니다.

4)금이라는 보석과 장식품(귀고리)이 우상으로 둔갑한 것입니다. 보석 좋아하는 사람 많습니다. 그것이 하나님보다 더 좋아지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또 보석으로 몸 단장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것이 하나님보다 더 좋아지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세욕과) 탐심은 우상 숭배라고 바울은 말씀하신 것입니다(골 3:5).

5. 이런 타락이 어떤 결과를 낳았습니까?

1)모세를 대노하게 하였고, 돌판을 던져 부수게 만들었습니다. 우상 숭배자는 진노를 받아야 하고, 말씀이 통하지 않으므로 필요 없다는 뜻입니다. 계시적 의미로는 율법은 의를 이룰 능력이 없어 끝날 때가 올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또 모세가 율법을 던진 의미는 “이 율법에 의하여 너희가 죽게 되었으니 탄식할 일이라”는 뜻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23:33).

2)진상 규명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백성들이 완악하여 선동을 하였고, 아론은 겁이 나서 따라간 것입니다. 제가 쓴 강론문 제목에 “가담자 척결”이라고 썼지만 사실은 주동자, 선동자 척결이 맞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론이 가담자라도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범죄자들을 척결하였은즉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게 되었고 또 복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3)그러나 그것으로 하나님의 노가 끝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다시 산에 올라가서 40일간 또 금식 기도를 하면서(신 9:15-21) 하나님의 진노가 끝나기를 기도하였고, 응답을 받았던 것입니다. 무지와 세속적 풍습이 죄를 낳았고, 죄는 형제와 친구와 이웃들을 죽게 만든 불행한 일이었음을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제 40 과 하나님이 멀리 하려 하심 (출33:1-23)목록으로


본문 3절에서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한다(동행 거절)” 하신 말씀과, 7절에서 “진과 멀리 떠나도록 특수 장막을 친 일”, 14절에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후에 “내가 친히 가리라 너로 편케 하리라” 하신 말씀이 위 제목을 성립케 합니다. 백성이 하나님을 버렸으므로 하나님도 그들을 버리셔야 마땅하나(삼상 15:23, 마 10:32, 막 8:38, 요 14:23) 백성들에게 자숙의 기회도 주시고, 또 가까이 계시다가 진노를 발하실 것을 방지하시는 뜻으로 멀리 하신 것입니다. ① 1-3절은 “인도하시나 멀리 하심” ② 4-6절은 “백성이 자숙함” ③ 7-11절은 “진과 떨어진 회막”이요, ④ 12-18절은 “모세의 기도와 응답”이며 ⑤ 19-23은 “영광을 가까이 보려함”입니다.

1. 인도하시나 멀리 하심(1-3절).

1)1절에서는 하나님이 모세로 하여금 약속하신 목적지를 향하여 계속 행진할 것을 명하셨고, 2-3절에서는 사자를 앞서 보내서 목적지의 본토족을 쫓아내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시려니와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올라가지 아니 하시겠다” 하셨으니 이 뜻은 가까이 임재 하시지 않고 멀리 계시며 또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나타내지 않으실 뜻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2)왜 그리 하려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목이 곧은 백성(완악하고 고집이 셈)이기 때문에 그들이 중로(여행중)에서 (순간적으로 완악성을 드러낼 때) 진멸할까 염려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뜻은 백성이 크게 탈선하였으나 언약은 지키시고, 완고할지라도 벌을 간과하여 그들의 멸절을 방지하시기 위한 긍휼과 자숙의 기회를 주시는 의미로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2. 백성이 자숙함(4-6절).

1)3,000명의 가족과 이웃이 죽고 하나님이 멀리 계시려 하신즉 자숙의 분위기가 아닐 수 없겠지요. 4절에서 “백성이 이 황송한 말씀(원문적으로는 그 불행한 말씀이라 함)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그 몸을 단장하지 아니 하였으니 이는 3절에서 백성이 목이 곧은즉 순식간에 진멸 당할 것을 염려하여 단장품을 제하게 된 것”입니다. 단장품 착용은 사치나 방종에 가까울 뿐 경건에 속하는 것은 아님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6절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 사건이 있은 때에 호렙산에서부터 단장품을 제한 것입니다.

3. 진과 떨어진 회막(7-11절).

1)7절에서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하였으니” 이 회막은 성막과 제사장 제도를 계시대로 건설하기 전에 모세가 하나님과 대면(계시 받는 상태)하기 위하여 임시로 만든 처소입니다. “진과 멀리 떠나게 한 것”은 백성의 목이 곧은 것과 관련하여(3절)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한 뜻이 있는 줄 압니다. 이 때에 8절에서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다 진 밖으로 나가서 모세가 회막에 출입하는 것을 바라보았고” 또 10절에서는 “구름 기둥이 회막문에 선 것을 보고 각기 장막문에 서서 경배하였다”고 하셨으며

2)9절에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 구름 기둥이 내려오며 거기서 모세와 말씀 하셨는데 11절에서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하나님과 대면하여 말씀하셨고(가까운 사이로 대화하신 뜻), 모세가 진으로 돌아오지만 수종자인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않았으니 그는 회막 지킴이 역할을 한 것입니다. 성도들의 기도하는 자세도 하나님과 이야기하는 것처럼 하심이 좋을 것입니다.

4. 모세의 기도와 응답(12-18절).

모세는 하나님께 대화하듯 기도하였습니다(11절). 12-13절은 모세의 기도이고, 14절은 하나님의 응답이며 또 15-16절은 모세의 기도이고, 17절은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그리고 다음 대지에서도 18절은 기도이고, 19-23절은 응답의 말씀이니 “친구와 이야기함 같다”는 말씀이 실감나고 증명이 된 것입니다.

1)12-13절의 모세의 기도는 “보시옵소서 주께서 나더러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도우미)를 지시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전에 말씀하시기를 이름으로도 너(모세)를 알고 너는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은즉(출 3:12, 19:9) 참으로 그러하시면 원컨대 주의 길(하나님의 뜻)을 내게 보이사 나에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백성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한즉 14절에서 “하나님이 (보낼 자 대신)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는 응답을 하셨습니다. 성도가 주님과 동행하면 평안을 얻습니다.

2)15-16절의 기도는 “만일 주께서 친히 가시지 않는다면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보내지 마십시오”(움직이지 않게 해 달라는 뜻, 이 내용은 16절과 함께 13절 다음에 기록될 것이 순서가 바뀐 듯 합니다.) 16절에서 “주의 백성이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시 86:17 참고)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이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므로 하나님과 동행의 타당성을 역설하였으니, 이 기도에서는 대화의 특징을 드러냈고, 또 친구와 격식없이 이야기 하는 식을 나타낸 것입니다.

3)1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또 응답하셨습니다. “너의 말하는 이 일(은총의 표징, 16절)도 내가 할 것이라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아는 바라” 하셨으니 모세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친근한 것인가를 알게 해 주십니다. 결국 하나님은 모세와 동행하시고 선민을 사랑하실 것을 다짐해 주신 것입니다.

5. 영광을 가까이 보려 함(19-23절).

1)13절에서 모세는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려 주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린 적이 있었는데 본문 19절에서는 “주의 영광(가까이 보는 하나님의 형상)을 내게 보이소서” 하였습니다.

2)19-23절에서 하나님이 응답하시기를 “나의 모든 선한 형상(하나님의 형상은 모양이 아니고 내용임)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선한 뜻을 알리신다는 뜻) 여호와의 이름(하나님의 명예)을 네 앞에(모세의 사역을 통하여) 반포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모세의 사역을 통하여 뜻을 나타내시고 이루시겠다는 말씀입니다.

3)또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신다” 하시므로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에는 차질이 없음을 말씀하시므로 선민에 대한 사랑과 목적에 변함이 없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4)20-23절에서 모세가 주의 영광을 보고자 한 소원에 대하여 “네가 내 얼굴(형상의 얼굴은 없음. 요 5:24)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뜻은 절대자와 피조물은 빛과 어둠의 관계와 같기 때문입니다. 신분의 격위와 본질이 틀리기 때문에 피조물이 절대자 앞에 본질적으로 대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21-23절에서 “보라 내 곁에 한 곳이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섰으라 내 영광이(구름으로)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이것은 하나님이 가까이 하신 표징을 역사로 보여주시는 뜻) 23절에서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인격적 간접 역사)을 볼 것이요 얼굴(본질적 형상)은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형상으로 보거나 만나는 것이 아니고 내용과 역사로 만나는 것입니다. 영광으로 임재 하신 하나님의 손이 성도를 덮으시면(이것을 안수의 근거로 삼는지도 모름) 이는 성령 충만의 은혜를 받는 것과 같은 뜻이 될 것입니다.

 

제 41 과 계명판을 다시 주심 (출34:1-35)목록으로


본문 ① 1-4절은 “돌판을 만들어 오라”는 말씀이고, ② 5-7절은 “하나님 속성을 알리심”이며 ③ 8-11절은 “모세의 기도와 응답의 말씀”이고, ④ 12-27절은 “율법의 재설”이며 ⑤ 28-35절은 “새 계명판을 받고 하산함에 대한 말씀”입니다.

1. 돌판을 만들어 오라(1-4절).

1절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돌판을 처음 것처럼 깎아 만들라....처음 판에 있던 말(28절)을 내가 쓰리니” 하셨고, 또 2절에서는 “아침 전(새벽)에 예비하고 아침에 시내산에 올라와 산꼭대기에서 내게 보이되”, 3절에서 “함게 오르지 말 것과 온 산에 인적을 금할 것과 짐승(양이나 소)도 산 앞에서 먹지 못하게 하라” 하시므로, 4절에서 모세가 그렇게 하였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환경은 홀로 받고 홀로 연구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것이었습니다(왕상 19:12). 성도 여러분 성경 말씀을 혼자 연구하십시오. 또 하나님과의 관계와 생활도 일대 일로 수립하십시오. 신앙으로 느끼는 감정은 곁의 사람도 느끼기 어려운 것입니다.

2. 하나님 속성을 알리심(5-7절).

5절에서 “하나님이 (전과 같이)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구름 기둥으로 된 영광이 세워진 뜻)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임재하사 자신의 이름(신분)을 알리신 사실이고, 6-7절에서 “여호와께서(구름으로) 그의 앞을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하셨으며 “(나는)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벌할 자에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녀손 3,4대까지 보응 하리라” 하시므로, 출 20:5의 뜻을 재언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용서도 하시고, 심판도 하시며 징계도 하시는 분임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아주 용서(대속) 받을 자는 선택받은 자 뿐입니다.

3. 모세의 기도와 응답의 말씀(8-11절).

1)8절에서 모세는(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급히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고, 기도하기를 “주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사오면 주는 우리 중(선민)에 행하시옵소서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이다.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시고 우리로 주의 기업(영광의 목적)을 삼으소서” 하였으니 이 기도는 하나님이 멀리 하시려는 뜻(33:13)을 안 것과, 7절에서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실 바에는 “선민의 악(목이 곧은 것)을 용서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2)이 기도에 대하여 하나님은 응답하셨습니다. 10-11절에서 “보라 내가 언약을 세우나니(증거있는 약속이란 뜻) 아무에게도 행하지 않았던 이적을 너희 전체 백성 앞에 행하므로 너의 머무는 나라 백성이(가나안 본토족) 다 여호와의 소위를 볼 것이다. 내가 너를 위하여 행할 일이 두려운 것이다. 너는 내가 네게 명하는 것을 삼가 지켜라. 내가 네 앞에서 아모리 사람, 헷 사람, 브리스 사람, 히위 사람,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강한 민족인 본토족을 쫓아내시는 일은 크고 두려운 일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도 요단강을 육지처럼 건넜지만 여리고를 치실 때도 능력을 나타내셨고, 본토족들은 두려움에 떨었으며(출 15:15-16) 왕벌의 세례로 견디지 못하게 하셨습니다(출 23:28, 신 7:20, 수 24:12). 모세의 기도에 하나님은 용기와 희망을 부어 주신 것입니다.

4. 율법의 재설(12-27절).

이 부분에서 내용은 길지만 한 말씀도 새롭게 주신 것은 없습니다. 처음 주신 말씀 속에 다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세뇌될 만큼 반복 연구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재설 하신 줄 압니다(신 6:6-9). 말씀을 연구하는 사람도 이 쪽을 연구하면 저 쪽을 잊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수없이 반복하여 읽고 기억하며 마음판에 새겨지도록 복습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12절의 “본토족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는 말씀은 출 23:32-33에, 13절의 “그들의 단과 우상을 헐라”는 말씀은 출 23:24, 신 7:5, 12:3에,

14절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은 출 20:5에 기록되었고,

15절의 그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아야 할 이유는 “그들의 우상에 가담키 쉬운 때문”이며(고후 6:14)

16절의 “통혼금지”는 신 7:3-4에서도 말씀 하셨는바 이 모두가 우상 제도에 현혹 당하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고,

17절에서 “본토족의 신상들을 부어만들지 말 것”은 출 20:4에서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18절의 “3대 절기 계명”은 출 13:3-10과 23:14-16에서

19절의 “초태생을 드리는 규례”는 출 13:2, 12:15, 19에서

20절의 “짐승과 장자의 대속 규례”는 출 13:13에서, 또 “예물 지참”은 출 23:15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21-23절의 안식일 계명과 77절(초실절, 맥추절), 수장절(유월절 포함. 3대 절기임) 계명은 출 23:14-17에 기록되었고,

24-25절의 말씀은 10-11절을 재설 하신 것이요,

26-27절의 “소산의 첫 것을 헌납함” 등은 출 23:16-19에 이미 나타난 말씀들입니다.

5. 새 계명판을 받고 하산함(28-35절).

1)28절에서 모세는 이 때도 40 주야를 금식하였으니 총 금식일이 3차 120일입니다(출 9:18, 25, 신 9:9, 10:10). 그리고 언약의 말씀 10계를 그 판들에 (하나님이) 기록해 주셨습니다(34:1).

2)29절에서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들고 내려올 때 여호와가 말씀하셨음을 인하여 얼굴 표면(꺼풀)에 광채가 났으나 자신은 깨닫지 못하였고, 30절에서 “백성이 모세의 모습을 보았을 때 두려워하였으며” 31-32절에서 “서로 대하게 되자 가까이 접근하게” 되었습니다.

3)32절에서 “모세는 산에서 받은 말씀을 백성들에게 다 말하였고, 33절에서 말한 다음에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웠으며 34절에서 하나님 앞에서 말씀할 때는 수건을 벗었고 나와서는 (또 수건을 쓴 상태에서) 말씀을 전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33절에서 백성이 볼 때는 가리우고 성소에 들어갈 때는 벗은 것입니다.

4)이 얼굴의 광채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가까이 해 주시는 영광의 증표입니다. 그것을 가린 것은 백성들이 두려워하며 가까이 대하기를 주저하기 때문이었으나 하나님께 나갈 때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에 맡긴 것입니다. 백성과 상대하기 위하여 영광의 광채를 가리운 것은 겸손에 속하는 미덕입니다. 요즈음 어떤 사역자에게 그런 영광이 나타난다면 겸손히 가리려고 할까요? 마땅히 가리우고 자신이 평범한 사람의 위치에 서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제 42 과 명령과 실천 (출35:1-36:7)목록으로


① 1-19절까지는 “업무 전달”이고, ② 20-29절은 “물품 헌납”이며 ③ 30-36:3 상반까지는 “책임자에게 물품을 전달함”이고, ④ 36:3-7절은 “물품 헌납을 중지시킴”입니다.

1. 업무 전달(1-19절).

1)1-2절에서 모세가 회중을 모으고 하나님이 행하게 하신 말씀을 전할 때, 먼저 안식일 성수를 강조하였습니다. 이 안식일에 대한 계율은 출 16:5, 21-29, 20:8-11, 34:21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또 강조하신 이유는 성막을 제조하면서 일이 많다하여 어길까 염려하신 때문일 것입니다. “안식일을 거역하는 자를 죽이라” 하신 것은 그만큼 엄한 계명이기 때문이고, 그대로 시행한 예도 있습니다(민 15:32-33). 3절에서 부언하신 말씀은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뜻은 “번거롭게 일하여 음식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미리 준비하든지 그렇게 하지 못하였으면 간소하게 먹으라는 것입니다.

2)4-5절에서는 “성소에 필요한 재료를 그들이 갖고 있는 소유 중에서 드리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만 하라” 하셨으니,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헌신과 헌물의 정신이요, 방법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오늘의 시대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믿음과 감사와 이웃에 대한 사랑일 것입니다.

3)6-9절 말씀은 물품 종목을 총체적으로 말씀하신 것으로 금, 은, 놋, 베실, 염소털, 수양 가죽, 해달 가죽, 조각목, 등유, 향품, 호마노의 각종 보석입니다.

4)10-19절까지는 제품 종류로서 “성막 건립, 증거궤와 속죄소, 상과 등대와 분향단, 번제단과 물두멍 그리고 여기에 딸린 부속품들, 뜰을 만드는 것과 제사장이 입을 의복”입니다.

2. 물품 헌납(20-29절).

1)20-21절에서는 “마음이 감동된 자와 자원하는 자가 와서 모든 쓸 것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왔는데” 22절에서 “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가슴핀과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걸이와 여러 가지 금품을 예물로 드렸고”, 23절에서는 “성막 재료들을”, 24절에서는 “은과 놋과 조각목을”, 25-26절에서는 “마음이 슬기로운 여인들이 손수 실을 만들어서(실을 낳고의 뜻) 물들여 가져 왔으며” 27절에서 “족장(부유 계층)은 호마노와 흉패에 물릴 보석을 가져 왔고”, 28절에서는 “기름과 향품을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2)29절에서 “그들이 모세의 손을 빙자하여 명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품들을 즐거이 드렸다” 하였으니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과 하나님의 명을 순종함은 즐거운 일이 되는 것입니다. “모세의 손을 빙자하였음”은 백성들이 모세를 위하고 협력하는 뜻으로 시행하였다는 뜻입니다. 복음사역자가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 성원해주고 섬기는 것은 곧 복 받을 일입니다.

3. 책임자에게 물품을 전달함(30-36:3).

1)30-35절은 “하나님이 브살엘과 오홀리압을 기술자로 또는 책임자로 쓰신다”는 말씀인데 이 말씀은 31:1-6에서도 예고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물건을 만든다는 것도 성령님의 은혜와 지혜로 성취하십니다. 32절의 “공교한 일을 연구하는 것”, 33절에서는 “보석을 깎아 물리고 나무에 조각하며 여러 가지 공교한(특이한 기술) 일을 하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2)36:1-3절 말씀은 “브살엘과 오홀리압이 책임을 맡고 지혜를 힘입은 후 마음에 원하는 일꾼들을 불러 썼으며 모세로부터 헌납된 물품들을 인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4. 물품 헌납을 중지시킴(36:3-7).

3-7절에서 백성이 아침마다 자원하는 예물을 연속적으로 가져오는 바람에 일하던 사람들이 일을 정지하고 모세에게 와서 “물건이 남는다”고 고하자 “예물을 다시 만들지 말라” 하여 중지시켰으니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쁨과 감사와 자원으로 또 솔선하여 하고 넉넉하게 할 수 있어야 복이 되고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제 43 과 성막 제조의 완성 (출36:8-38)목록으로


8-13절은 “앙장으로 만든 성소 천정의 완성”인바 이 말씀은 26:1-6 말씀을 시행한 내용이고,

14-19절은 “앙장 위의 덮개를 완성한 말씀”인바 이 말씀은 26:7-14 말씀을 시행한 내용이며

20-30절은 “조각목 널판으로 성막 4면의 벽을 두른 내용”인바 이 말씀은 26:15-25 말씀을 시행한 내용이고,

31-34절은 “벽에 띠를 두른 말씀”으로 26:26-30 말씀을 시행한 내용이며

35절은 “지성소를 구별하는 장에 그룹을 수놓은 말씀”으로, 이는 26:31을 시행한 것이고,

36절은 “지성소를 구별하는 장을 세워 막은 것”으로, 26:32을 시행한 것이며

37-38절은 “성소의 동편 문을 만든 것”으로, 26:36-37을 시행한 말씀입니다. 26:35에는 등대와 상의 위치도 말씀하셨으나 본문에는 그 부분이 생략되었습니다.

 

제 44 과 성소 용품 제조의 완성 (출37:1-29)목록으로


본문에는 “법궤와 속죄소와 상과 그 기구와 등대와 등잔과 향단과 관유와 향을 만들었다”는 말씀이 기록되었습니다.

1-5절은 법궤를 제조한 말씀인데 이는 25:10-15 말씀을 시행한 내용이고,

6-9절은 속죄소를 만든 말씀으로 이는 25:17-20 말씀을 시행한 내용이며

10-16절은 상과 상에 속한 기구를 만든 말씀인데 이는 25:23-29 말씀을 시행한 내용이고,

17-22절은 등대를 만든 내용으로 이는 25:31-36의 말씀을 시행한 것이며

23-24절은 등잔과 그 부속품을 만든 내용으로 이는 25:37-39 말씀을 시행한 내용입니다.

25-29절은 향단과 관유와 향품을 만든 내용인바 향단은 30:1-10에, 관유는 30:22-25에, 향은 30:34-36에서 명한 말씀을 시행한 것입니다.

 

제 45 과 뜰에 대한 완성과 통계 (출38:1-31)목록으로


본문에는 번제단과 물두멍 제조와 뜰을 세운 일이 기록되었고(1-20절), 다음에는 건축 및 제조 비용을 기록하신 말씀입니다.

1-7절은 “번제단을 제조한 말씀”으로, 이는 27:1-8에서 명하신 것을 시행한 것이고,

8절은 “물두멍을 만든 것”으로 이는 30:17-21을 시행한 것이며

9-20절은 “뜰을 위하여 사방에 휘장을 쳐서 담을 만든 말씀”으로, 이는 27:9-19의 말씀을 시행한 것입니다.

21-23절은 “재료의 물목을 아론의 아들 이다말이 계산한 사실”과 “브살엘의 주관과 오홀리압의 협조로 조각하고 수놓은 사실”을 말씀하셨고,

24절은 성소 건축에 들어간 금이 성소의 세겔 대로(성소에서 규정한 분량. 1세겔은 11.42g, 0.5온스라 함) 29달란트(1달란트가 3000세겔, 34.3㎏)와 730세겔이고(29달란트 730세겔이란 뜻),

25-26절에서 회중에 드린 은을 조사한즉 성소의 세겔 대로 100달란트와 1,775세겔이며(27-28절), “조사 받은 20세 이상의 장정이 603,550명인즉(민 2:32) 성소의 세겔 대로 매 인에게 한 베가(곧 반 세겔)씩 해당되는 셈이라” 하셨고,

27-28절에서는 각종 기둥 받침과 기둥 갈고리와 기둥머리를 싼 것과 기둥 가름대에 들어간 은 재료가 25절에서 수집된 만큼의 100달란트 1,775 세겔이란 뜻이요,

29절에서는 회막의 문기둥 받침, 놋단, 놋그물 및 단의 모든 기구, 뜰 사면의 기둥과 문장 받침 성막의 모든 말뚝과 뜰 사면의 모든 말뚝에 들어간 놋이 70달란트 2,400세겔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유의할 사항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충분하게 헌납하고 넉넉하게 사용하였으며 금과 은과 놋에 대한 통계가 정확하였다는 점입니다. 또 그것을 장정 인구에 비례하여 매 인당 책임량을 계산한 것은(은 한 베가 곧 반 세겔, 26절) 전체가 단결하여 자기의 책임을 질 때 그만큼 적은 양으로 큰 일을 할 수 있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교회를 섬기는데는 솔선 자원함도 있어야 하지만 공평한 의무 분담도 있어야 할 것을 교훈 하신 것입니다.

 

제 46 과 제사장 의복을 제조함 (출39:1-43)목록으로


① 본문 1-31절까지는 “제사장이 착용할 모든 것을 만든 말씀”이고, ② 33-43절은 “만든 물품들을 모세에게 가져와 확인을 받은 말씀”입니다.

1. 제사장이 착용할 모든 것을 만듦(1-31절).

1-4절은 에봇을 만든 말씀으로 28:6-7의 말씀을 이행한 것이고,

5절은 에봇을 매는 띠를 만든 말씀으로 28:7을 이행한 것이며

6-7절은 호마노에 12 지파 이름을 새겨 에봇 견대에 부착한 것으로 28:9-11을 이행한 것이고,

8-14절은 흉패를 만든 말씀으로 28:15-21의 말씀을 시행한 것이며

15-21절은 퓽패를 에못에 부착시킨 말씀으로 28:13, 22-28을 시행한 것이고,

22-26절은 에봇, 받침, 긴 옷 즉 방울 달린 겉옷을 만든 것으로 28:31-35의 말씀을 시행한 것이며

27-28절은 속옷과 두건과 관을 만든 말씀으로 28:39-40의 말씀을 시행한 것인데, 두건은 본 절에서만 말씀하신 것으로 관 속에 쓰는 모자로 아셔야 합니다.

29절은 띠를 수놓아 만든 말씀으로 28:39을 이행한 것이며

30-31절은 “거룩한 패(여호와께 성결)”를 만든 것으로 28:36-37을 이행한 말씀입니다.

2. 만든 물품을 확인함(33-43절).

35-41절까지는 “그들이 성막(모든 재료)을 모세에게 가져왔으니” 이는 곧 모든 재료와 부속품들입니다. 다시 가공할 것이 없고 맞추면 될 재료와 부품들입니다. 42절에서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모든 역사를 필한즉 43절에서 모세가 다 점검하였고, 하나님의 명대로 되었으므로 그들에게 축복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명령, 전달, 실천, 점검, 축복의 순서를 유의하셔야 합니다.

 

제 47 과 역사(役事)를 필하고 영광 돌림 (출40:1-38) 목록으로


본 장에는 출애굽 제 2년 1월 1일(1, 17절)에 일제히 성막을 세우고 시설을 끝낸 후 제사장을 위임하여 명실공히 역사를 필하고 성막 제도가 출범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1-11절은 “준비된 물품으로 성막을 건립하라”는 명령이고,

12-15절은 “제사장을 위임하라”는 명령인바

16-17절에서 “그대로 시행하였다”는 말씀이며

18-33절은 “성막이 건립된 순서”를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일에 순서도 중요합니다.

34-35절은 하나님의 명령이 성실하게 순종되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으므로 모세가 구름(영광의 표식)에 덮혀 성막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였으니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좁힌 성령 충만이라 할 것입니다

36-37절은 성막 위에 구름이 있었고, 구름이 떠오를 때 발행하고 떠오르지 않을 때는 발행하지 않았으며(이는 말씀 따라 사는 생활을 뜻함. 시 119:105, 고후 13:8)

38절에서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더운 낮에 움직이지 않게 하신 뜻) 밤에는 불이 구름 가운데(높이 떴으므로 행진하게 하신 뜻) 있으므로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선민들은 그들의 여정에서 성소 장막과 생활을 함께 하였으니 이는 오늘의 성도가 성경 계시에 따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동행하는 생활을 교훈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