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설교


저자 지영근 목사


목 차


먼저 드리는 글 3

제1과 에스라서 (스 1:1~4, 7:6~10) 5 바로가기

제2과 성전재건을 명함 (스 1:1~11) 7 바로가기

제3과 귀환자들의 명단 (스 2:1~70) 9 바로가기

제4과 성전착공 (스 3:1~13) 11 바로가기

제5과 성전재건의 훼방 (스 4:1~24) 13 바로가기

제6과 성전건축을 계속함 (스 5:1~17) 15 바로가기

제7과 성전제도 회복 (스 6:1~22) 17 바로가기

제8과 재건한 성전의 봉헌식 (스 6:13~22) 19 바로가기

제9과 2차 귀환의 역사(1) (스 7:1~28) 21 바로가기

제10과 하나님이 쓰신 사역자 에스라 (스 7:1~10) 24 바로가기

제11과 에스라의 사역 (스 7:27~28) 26 바로가기

제12과 2차 귀환의 역사(2) (스 8:1~36) 28 바로가기

제13과 백성의 죄와 회개 기도 (스 9:1~15) 30 바로가기

제14과 정화운동의 성공 (스 10:1~44) 32 바로가기

제15과 이스라엘의 회개 운동 (스 10:1~12) 34 바로가기

제16과 에스라의 회개 운동(1) (스 10:1~12) 37 바로가기

제17과 에스라의 회개 운동(2) (스 10:1~12) 39 바로가기


먼저 드리는 글


2007년 1월 말경에 이미 집필한 72권의 책을 홈페이지에 수록하고 제 2 단계 집필로서 쓰지 못한 구약 강론을 쓰려고 하던 차에 이미 다른 설교집에 수록된 에스라서를 본문으로 한 설교문이 상당 부분 있었기로 설교로 증언하지 않은 부분을 설교 본문으로 보충하여 에스라 설교집을 완성하였습니다. 저는 설교를 할 때 반드시 본문의 의미를 해석하는 습관이 있으므로 이 글이 설교문이라 할지라도 본문 해석의 성의를 나타냈을 것으로 믿습니다. 따라서 이 글은 설교문이면서 강론을 대신하는 것으로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와 같은 방법으로 계속해야 할 것이 느헤미야, 에스더서, 욥기 등도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2007. 2. 28.


저자 지 영 근

제1과 에스라서 (스 1:1~4, 7:6~10) 목록으로


필자가 집필한 『기독교신앙백과』에 에스라서의 개론이 간략하게 기록되었습니다만, 초신자가 또 한 번 쉽게 이해하실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몇 말씀 더 보충합니다. 에스라서를 공부하실 때는 우선 연대와 시대를 아시는 것이 중요하고 그 다음에 “에스라의 신앙과 사역”에 대하여 교훈을 받으셔야 합니다.

1. 에스라서의 연대는 바사 왕 고레스 원년(스 1:1, 주전 537년)부터 아닥사스다왕 20년(주전 445년, 느 1:1) 사이의 역사를 기록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 기간은 92년쯤입니다. 유다가 바벨론에 망하고 70년 후에 파사국이 바벨론을 정복하자 파사국의 처음 왕인 “고레스”가 유대인에게 해방령을 내렸는데, 그 때가 주전 537년입니다(연대 계산은 연구 재료에 따라 차이가 있음). 그리고 파사 왕조의 역사를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① 고레스(538~530), ② 아하수에로(530~522), ③ 스멀디스(522~521, 4:7, 8, 23의 '아닥사스다'는 스멀디스와 동일인임), ④ 다리오(521~486), ⑤ 아하수에로(크셀쿠스, 486~465), ⑥ 아닥사스다(465~423), ⑦ 아하수에로 2세(423), ⑧ 세킨디아노스(423), ⑨ 다리오 2세(423~404), ⑩ 아닥사스다 2세(404~358), ⑪ 아닥사스다 3세(358~338)에서 헬라의 알렉산더에게 망하였다고 합니다. 이상과 같이 파사국의 왕조 연대를 아셔야 공부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2. 1차, 2차, 3차에 걸쳐서 귀환 역사가 있었는데, 1차는 고레스 원년(주전 537년)이었고, 스룹바벨(총독)과 예수아(제사장)와 느헤미야, 스라야, 모르드개 등을 포함하여 42,360명이 나왔습니다. 그때에 700여명의 노비와 짐승들과 성전 재건에 필요한 물질들을 갖고 나와서 간단히 쌓은 제단에 제사를 드리다가 나온지 2년된 때부터 성전 재건을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느헤미야는 1차에 귀국하였지만 다시 파사로 갔다가 3차 귀환 때에 다시 와서 2차 귀환 때에 온 에스라와 합력하였습니다. 1차에 귀환한 사람들이 성전 재건을 하는데 70년 동안 족보 없이 그 지역에 흩어져 살던 무리들이 성전 재건을 같이 하자 하였을 때, 그들의 신분이 확실하지 않아서 거절하니까 그들이 대적자로 변하여 그 역사를 훼방하고 또 반역할 위험이 있다고 왕에게 진정을 올린즉 결국 다리오 1세 2년에 중단을 명하므로 17년만에 중지되었으나(스 4:23~24) 이렇게 된 것이 모략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다시 허락을 받아 재건을 서두르니 다리오 6년에(23년 후) 필역을 하고 봉헌식을 하였습니다(6:1~15). 그 후 2차 귀환이 아닥사스다왕 7년 1월에 있었으니까(7:7~10, 8:31), 이 때는 주전 458년이고 1차 귀환 때에서 79년이 지난 때였는데, 그때에 에스라(학사 겸 제사장)가 나온 것입니다. 그들도 수가 상당하였고 처음처럼 많은 보물을 갖고 와서 성전 재건에 힘쓴 사람들과 합력을 하였습니다(스 8:1~14). 그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이란 영지 쪽에서 예루살렘까지 여행하는 데는 큰 위험이 따릅니다(직선 거리 약 2,000km). 에스라는 그 이동하는 여행에 대하여 “평탄한 길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지요. 이 기도를 드린 동기는 “왕에게 호위병을 붙여주십사” 하고 부탁하는 일을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이었는데(8:21~23) “하나님의 손이 위에 계시므로 잘 도착하였다”고 하였습니다(7:9, 28). 이것은 에스라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기도의 효력을 믿고 모험 같은 일을 행한 것인데 결국 효력을 본 것입니다. 믿고 시행하면 분명한 응답을 받는다는 뜻입니다(수 3:15~16). 3차 귀환은 2차 귀환 13년 후인 아닥사스다 20년(445년)에 있었는데, 그 때에 느헤미야가 다시 예루살렘에 와서 에스라와 합력하여 성곽 재건과 신앙 정화에 힘을 쓰게 된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에스라의 신분과 정화 사역을 살피는 데서 그의 신앙과 사역의 모범을 배우는 것입니다.

1) 에스라는 아론의 16대 손으로 제사장입니다. 그 조상이 유다국 멸망 때 바벨론에 포로 되어 왔고, 바벨론에 포로 된 때로부터 에스라가 모국 땅에 가게 된 기간은 148년 후인즉 바벨론 시대 20년, 파사 시대 78년이 지나갔으니까 에스라는 파사국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그 조상들로부터 신앙생활을 배운 것입니다.

2) 그는 율법에 익숙한 학자라고 하였습니다. 이 모범은 성도들에게 성경에 익숙할 것을 교훈 하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라” 하시므로 왕의 큰 신임과 사랑을 받는 존재였습니다. 사람의 신용과 사랑을 받는 것도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한다”고 하였습니다.

4)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그 율례와 규례를 백성들에게 가르칠 것을 결심하므로 연구하는 일과 실천하는 일과 교육하는 일을 힘쓴 것입니다.

5) 에스라는 정치적 개혁(부정부패 척결, 7:24~26)과 종교적인 개혁(9:1~4)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하였는데(9장)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많은 백성들의 동조를 받았고(10:1~4), 특히 높은 자들의 부정과 이방 여인을 취한 죄를 정화시키는 역사를 나타낸 것입니다(9:1~2, 10:4~5, 18~44). 참으로 에스라의 신앙과 사역은 대단한 것으로 저희들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제2과 성전재건을 명함 (스 1:1~11) 목록으로

 

1. 구약 39권의 강론을 전부 쓴다는 것은 저로서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체력도 딸리고 실력도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제가 구약 강론 14권을 쓰고 난 다음 여러 가지 신앙문서를 합한 74권의 책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남은 여가에 무엇을 할 것인가? 를 구상하다가 못다 쓴 구약 강론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습니다. 구약 성경 중에 전도서,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등 짧은 성경을 본문으로 한 설교를 기록으로 남긴 것들이 있어서 그 설교에 응용하지 않은 본문을 뽑아 설교문을 기록한즉 전도서 설교집(강론을 대신하는 것)이 완성되었기로 그 추세에 맞추어 에스라서도 기록하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에스라서가 10장인데 이미 기록된 설교가 7편(1:1~4, 6:13~2, 7:1~10, 7:27~28, 10:1~12 등)이 있기로 여기에 설명되지 않은 부분만 뽑아서 설교문을 작성하므로 에스라서 강론을 대신하려고 합니다.

2. 스 1:1~4을 본문으로 한 서론적 설교(에스라서)를 참고 하십시오. 그리고 이 시간에 읽으신 1장의 내용을 요약해 보십시오. “성전재건을 명함”이란 제목이 가장 적절할 것입니다. ① 1절은 “성전을 재건하게 된 과정”이고, ② 2~4절은 “고레스왕의 신앙 고백”이며, ③ 5~6절은 “명령에 복종함”이고, ④ 7~11절은 “성전기명의 환수 이전”에 대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1절에 나타난 성전재건의 과정을 살피면 그 시기가 바사왕 고레스 원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연대에 대하여 서론적 설교에서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연대는 유다 멸망을 주전 606년으로 보고, 70년 후 바벨론이 망하고 고레스가 왕된 원년을 주전 536년으로 보는데 제가 연구한 바로는 유다 멸망이 주전 547년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59년의 차이를 이룹니다(기독교 신앙백과 278p). 이 문제는 성경을 연구하시는 분들이 자유롭게 이해하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이때에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 멸망 당시에 예언하였고, 렘 25:12~13, 29:10에서 70년 후에 회복될 것을 예언한 것)을 응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바사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를 내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뜻은 예언의 확실성을 교훈하시면서 역사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이 바벨론을 패하게 하시고 고레스를 왕되게 하신 후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유대인에 대한 해방과 동시에 바벨론이 훼파한 성전을 재건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언의 성취, 전쟁의 승패, 왕되는 집권, 선민에 대한 해방과 성전재건을 하나님이 섭리하신 것입니다.

2) 2~4절에서 고레스왕은 “여호와를 하늘의 신(가장 높은 신이란 뜻)으로 고백하면서 그 하나님이 세상만국을 자기에게 주셨고, 자기를 명하사(섭리, 또는 계시로 받은 뜻) 예루살렘의 전을 건축하라 하셨으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신이시라 그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하고 축복하였으며, 또 4절에서는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디에 우거하든지 그곳 사람들(유대인 아닌 이방인들)을 물질로 도와주고 또 성전재건을 위하여서도 예물을 즐거이 드리라”고 명령을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고레스가 여호와를 참신으로 믿은 것과 70년 동안 유리하던 선민을 모아 예루살렘 성전재건에 힘쓰게 한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3) 5~6절에서는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 다 일어났고 그 사면 사람들도 각종 물건들과 예물을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왜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이 대표자처럼 되었을까? 하시겠지요. 그것은 예루살렘 지역과 그 주변이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기업지요, 그들이 많이 포로되고 또 많이 돌아왔기 때문이요, 또 제사장들과 레위족이 거론된 것은 그들이 성전 봉사자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6절의 “그 사면 사람들”은 다른 지파 선민들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70년 만에 해방되고 신앙을 되찾는 감격에 대하여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4) 7~11절은 “성전기명의 환수 이전(移轉)”으로 이 부분은 느브갓네살이 성전의 기명들을 바벨론으로 가져간 것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옮김에 대한 말씀입니다(5~6절은 예루살렘이 멸망되었으나 멀리 이민하지 못한 상태에서 70년 동안 예루살렘 주위에 머문 백성들에게 해당하는 말씀임). 7절은 “느브갓네살이 성전기명을 착취하여 바벨론으로 옮긴 후 자기 신당에 두었다”는 말씀이고, 8절은 “고레스왕이 그 물건들을 예루살렘으로 다시 보내기 위하여 고지기(성전기명 보관자)에게 그 물건을 챙겨 유다 목백(유다를 다스리게한 총독) 세스바살에게 넘겨 주었다”는 내용입니다. 9~11절은 그 기명의 종류와 수를 말씀하셨으니 종류는 금반, 은반, 칼, 금대접, 은대접 등 도합 5,400개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 열거된 수를 합하면 2,499개로서 2,901개가 부족한 것은 기타의 수에서 채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유의 지배자시오 역사의 주이십니다. 우리 인간은 그 역사에서 극히 짧은 순간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천지의 지배자이신 하나님만 의지하고 즐거워하셔야 할 것입니다.

 

제3과 귀환자들의 명단 (스 2:1~70) 목록으로



이 말씀의 내용이 깁니다. 이 성경을 읽으신 소감이 어떻습니까? 묻고 싶습니다. 저는 강론할 목적으로 이 말씀을 읽은즉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읽고 난 즉 “어떻게 설명을 드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귀환자들의 명단”으로 정하였습니다. 성경을 읽으실 때 어느 부분을 읽으시든지 진지한 집중 자세로 읽고 묵상하실 것을 권합니다. ① 1~2절은 “지도자 또는 인솔자들의 명단”이고, ② 3~35절은 “일반 백성들의 명단”이며, ③ 35~39, 61~63절은 “제사장들의 명단”이고, ④ 40~42절은 “레위인 명단”이며, ⑤ 43~54절은 “느디님 사람의 명단”이고, ⑥ 55~58절은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이며, ⑦ 59~60절은 “기타의 사람들”이고, ⑧ 64~67절은 “백성, 노비, 짐승의 합계”요, ⑨ 68~70절은 “성전건축을 위한 봉헌”입니다.

1. 1절의 “본성에 이른 자”란 고향으로 온 것을 뜻하고(70절), 2절의 이름들이 지도자가 되는 이유는 63절에 “방백”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알 수 있습니다. 그 이름들은 스룹바벨(다윗자손, 대상 3:19, 마 1:12, 눅 3:27), 예수아(대제사장, 스라야의 손자임, 왕하 25:18~21, 대상 6:14~15, 스 3:2), 느헤미야(느 1:1), 스라야, 르엘라야, 모르드개(에 2:5, 느 7:7), 빌산, 미스발, 비그왜, 르훔, 바아나 라 하였는데 이들의 수는 족속별 통계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2. 그들과 함께 온 일반 백성들의 명단은 3~35절에 기록되었습니다. 조상의 이름을 대표하여 그 자손들의 수를 기록하였는데, 바로스(2,172명), 스바다(372명), 아라(775명), 바핫모압(예수아와 요압자손 2,812명), 엘락(1,250명), 삿두(945명), 삭개(760명), 바니(642명), 브배(623명,), 아스갓(1,222명), 아도니갈(666명), 비그왜(2,056명), 아딘(454명), 아델(히스기야 지손 98명), 베새(323명), 요라(112명), 하숨(223명), 깁발(95명)…아스마렛(42명), 기랴다림, 그비라, 브에롯(743명) 라마와게바(621명), 다른 엘람(7절의 엘람과 구별한 뜻, 1,254명), 하림(320명), 로드, 하딧, 오노(725명), 여리고(345명), 스나아(3,630명)인데, 21~23절과 27~28절은 조상의 이름이 아닌 고향(유다)의 지명을 따서 족속을 표기하였는바 이들은 조상의 이름이나 족보증명을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의 지명으로서 베들레헴(123명), 느도바(56명), 아나돗(128명), 믹마스(122명), 벧엘과 아이(223명) 사람들이 있습니다.

3. 제사장들의 명단으로 예수아의 집 여다야의 자손 973명, 임멜 자손 1,052명, 바느훌 1,247명, 하림 1,017명인데(36~38절), 61~62절을 보시면 말로는 제사장족이라 하나 족보(보계)가 명확하지 않아서 저희를 부정하게 여겨 직분을 행사하지 못하게 한 대상이 있었으니 이들이 하바야 자손, 학고스 자손, 바르실래 자손입니다. 여기의 바르실래 자손은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삼하 17:27, 19:31)의 딸과 결혼하여 장인의 혈족으로 제사장 계열이 됐지만 족보증명을 확실하게 나타내지 못하여 직분 정지를 당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모계 혈족도 인정한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이들의 수는 전체에 포함될 뿐 족속 별로는 나타내지는 않았습니다.

4. 레위인들의 명단으로 호다위야 자손(곧 예수아, 갓미엘 자손 74명, 여기에 이름이 겹치는 것은 같은 집안 사람들일 것입니다), 노래하는 아삽 자손(128명), 문지기 자손 살룸, 아델, 달문, 아굽, 하디다, 소배 자손들 139명이요,

5. 43~54절은 느디님 사람들의 명단인데 이들 조상의 수가 시하 자손, 하수바 자손 등 35족으로 수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느디님 사람이란 기브온 사람들(수 10:12~14, 삼하 21:1~6)처럼 하인족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6. 55~58절에서 솔로몬의 신복(솔로몬 왕실의 역사에서 조상의 이름을 증명한 듯 함) 소대, 하소베렛 자손 등 392명이 있고,

7. 59~60절은 기타의 사람들로 “데멜라, 델하르사 그룹, 잇단, 임멜에서 올라온 것”은 바벨론 지역에서 포로되었다가 온 사람들로 명확한 계보가 없이 귀향민들에게 합류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들도 조상이 있어서 들라야, 도비야, 느고다 자손으로 652명이었지만 계보증명을 받기에는 미흡하였던 것이지요.

8. 64~67절은 “온 회중의 합계가 42,360명이고, 노비는 따로 7,337명이며, 짐승은 말이 736, 노새가 245, 약대가 435, 나귀가 6,720마리라고 하였습니다. 노비를 제외한 수의 합계가 42,360명이라 하였기로 확인된 명수를 합한즉 29,162명이었기 때문에 불명수에 들어간 인수가 13,198명임을 계산해 보았습니다.

9. 마지막으로 68~70절을 보시면 예루살렘에 온 백성들이 성전건축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렸고 또 역량대로 드렸다” 하였으니, 이것이 헌신의 본이라 할 것입니다. 69절의 “다릭”은 바사의 금돈으로 8g중이라 하며, “마네”는 은돈으로 571g이라 하니, 그 가치를 짐작할 수 있으나 이런 것은 시대에 따라 사용가치가 변하는 줄 압니다(눅 19:13~27).

결론적으로 이 말씀에서 받아야 할 교훈이 많습니다. ① 포로해방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성취(스 1:1), ② 조상들이 70년 후의 자손들에게 심어준 신앙교육, ③ 귀환하여 성전을 짓고 믿음 생활을 하려고 결단한 의지, ④ 족보의 중요성이 성도의 신분을 증명한다는 사실 등에서 오늘의 성도들이 교훈을 받으셔야 할 줄 압니다. 혹 저희들이 “나 당대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셨다면 이 말씀이 70년의 역사를 연계하여 기록하신 성령님의 뜻을 받들어 전시대를 참고하시고 후시대의 밑거름이 되는 사명을 다하셔야 할 줄로 아는 것입니다.

 

제4과 성전착공 (스 3:1~13) 목록으로


본문을 읽고 전체적 제목을 “성전착공”으로 정하였습니다. 본문을 살피면 3대지로 나누어 설명함이 좋을 것입니다. ① 1~6절은 “신앙제도 회복”이고, ② 7~9절은 “일을 맡기고 감독함”이며, ③ 10~13절은 “지대를 놓을 때 있은 일”입니다.

1. 신앙제도 회복에 대하여(1~6절)

1절에서 “이스라엘 자손(2장에서 귀환한 사람들)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70년 전에 살던 고향 땅에 거주한 뜻) 7월에 이르러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였다”고 하였습니다. 이 7월은 바벨론에서 귀환한 해(주전 537년)일 것이고, 그때에 모인 것은 성전재건을 서두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따라서 고향에 도착한 것은 그 이전입니다. 2절에서 이들은 먼저 신앙제도의 재활 확보에 힘썼습니다.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느브갓네살이 죽인 대제사장 스라야의 손자임, 학 1:1, 왕하 25:18~21)와 그 형제 제사장들과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그 형제들이 다 일어나(예수아의 형제들은 제사장을 대표하고 스룹바벨과 그 형제들은 방백을 대표함) 하나님의 단을 만들고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번제를 드리려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단을 만든 것”은 성전을 짓기 전에 우선 제단을 만든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로 잘 도착한 일과 성전기공을 함에 있어서 먼저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일과 70년 동안 시행하지 못한 율법제도의 행사를 시행하는 일이 중요하여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우선 단(임시로 만들었을 듯함)을 만들고 각종 제사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3절에서 “열국백성을 두려워 함”은 이방족들의 훼방과 핍박을 우려한 것이고, “단을 그 터에 세운 것”은 본래 단이 있던 자리에 세운 것이며, “열국 백성을 두려워하여 단을 세운 것인가?” 할 때 이는 이방인들의 종교적 행사와 배치되는 것을 의식하면서(이방인들이 그 터를 우상숭배 제단으로 사용했을지도 모름) 정통적 제단을 세우는데 주저하지 않은 뜻으로 이해하심이 좋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조석번제(매일 드리는 제사, 정화의 차원에서, 출 29:38~42, 민 28:1~8)를 드렸고, 4절에서는 “기록된 규례대로(레 23:34~36, 42) 초막절을 지켜 번제를 드리고”, 5절에서 “그 후에는(연속되는 제사) 항상 드리는 번제(조석 제사와 절기 제사임)와 초하루(월삭이라고도 함, 매월 첫날 드림, 민 10:10) 절기의 번제(유월절, 레 23:5~8, 오순절, 레 23:15~21, 나팔절, 레 23:23~25, 속죄일, 레 23:27~32, 초막절, 레 23:33~36)와 즐거이 드리는 예물(감사헌물의 뜻, 출 35:22, 36:3)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6절에서 “그 시기가 7월 1일부터였고, 성전의 지대를 놓지는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성전착공을 위한 신앙적 준비로 제사 제도를 우선 회복한 것이라 할 것입니다.

2. 일을 맡기고 감독함에 대하여(7~9절)

7절에서는 우선 일을 맡기는 것과 재료 운반이 필요하였으므로 석수와 목수(이들은 두로와 시돈의 기술자들임)에게 비용(돈)을 주었고, 그들로 하여금 고레스왕의 명대로(1:3~4, 6:3) 레바논의 백향목을 베어서 바다로 운반하여 욥바항에서 예루살렘으로 운반하게 한 것입니다. 이때는 재료 준비 기간이었고, 실제 착공은 8절에서 “전에 이른지 2년 2월이었으며, 이 공사를 주관한 사람은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다른 형제 제사장들과(2절) 레위인이었고, 또 20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전 역사를 감독하게 하였으며”, 9절에서는 “이에 예수아와 그 아들들과 그 형제들과 갓미엘(레위인 중 거론된 인물, 느 7:43)과 그 아들들과 유다 자손과 헤나닷 자손과 그 형제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감독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착공 시기는 도착 2년 2월이요 주관자는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레위인 감독자들이며, 기술자와 재로는 시돈과 레바논에서 인도해 온 것입니다.

3. 성전지대를 놓을 때 있은 일입니다(10~13절).

10~11절에서 “건축자가 여호와의 전 지대를 놓을 때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레위인)들은 제금(악기)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왕 다윗의 규례대로(다윗이 법궤 옮길 때 한 것, 대상 6:31, 16:4~6, 25:1~2) 여호와를 찬송하며 화답하고 감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주는 지선하시므로 그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고 모든 백성이 전의 지대 놓임을 보면서 큰 소리로 즐겁게 불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섬기게 된 감격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11~12절에서 “제사장과 레위인 족장들 중 여러 노인들은 첫 성전(훼파된 솔로몬 성전)을 본고로 이 전 지대 놓임을 보고 감격하여 통곡하였고, 또 여러 사람은 기뻐하니 즐거운 소리와 통곡소리를 분별치 못했다”는 것입니다. 저희들이 이 부분의 말씀을 읽고 현재 신앙생활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터득해야 합니까? 기독교는 역사적 전통과 수난과 회복을 거듭하면서 지금까지 전승되어 온 것을 알 수 있고,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성전과 제사 제도를 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였는데, 그 근거는 율법입니다. 저희들은 율법과 성전과 제사 제도에서 예수님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율법과 제사 제도로 하나님과 중보자 예수님을 계시 받았지만 우리는 그보다 더 밝은 성경으로 예수님의 생애를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희들은 구약시대의 성도들의 경건성과 헌신성을 그들의 제사 제도를 통하여 배울 수 있고, 또 신앙의 회복과 정화사역을 위하여 노력한 점도 배우셔야 할 줄 압니다.

 

제5과 성전재건의 훼방 (스 4:1~24)목록으로


3장에서 하나님의 전 지대를 놓고 기공식을 잘 하였습니다(3:10~13). 그때는 귀환한지 2년 후였습니다(3:8). 계속 공사를 하는 중에 큰 훼방꺼리가 생겨서 상당기간 고충을 겪다가 결국 13년쯤 후에 아닥사스다왕이 성전 공사를 중지시켰고(19~23절), 그로 인하여 다리오왕 2년까지 중지되었다는 것입니다(24절). 내용을 분류하면 ① 1~3절은 “훼방을 받은 원인”이고, ② 4~10절은 “훼방한 방법”이며, ③ 11~16절은 “훼방자들의 고소 내용”이고, ④ 17~24절은 “왕의 공사 중단 승인”입니다.

1. 훼방을 받게 된 원인에서 훼방자들은 1절에서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라 하였는데, 여기의 “유다와 베냐민”은 바벨론에서 귀환하여 성전을 짓는 대표자들이고(1:5), 이들이 귀환자들의 대표가 된 이유는 그 지파의 수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2:21~22의 베들레헴과 느도바가 유다 땅이고, 2:23~34까지의 아나돗 외 12지역이 베냐민 지파의 땅이므로 그 다수가 입증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적은 누구일까요? 그들은 앗수르 지역에서 이민 온 이방족들입니다. 2절을 보시면 앗수르왕 에살하돈(산헤립의 아들, 주전 661~669년 재위, 왕하 19:37)이 북왕국을 점령하였을 때 그 지역에 자기 백성들을 이주시킨 것입니다(왕하 17:24~26, 29~32). 북왕국은 남방 유다보다 133년이나 먼저 망하였는데 그 후에 또 유다가 망하자 70년 동안을 그 지역에서 원칙없는 종교생활을 해왔던 것입니다. 그러자 귀환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한다 하니까 스룹바벨과 족장들(성전공사 책임자들)에게 나와서 “자신들도 하나님을 구하고 그 땅에 온 날부터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은즉(2절)” 마땅히 성전 건축을 함께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설득력이 있는 말 같으나 허락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선민이 아니기 때문이요(제사 제도가 이방인에게는 허용되지 않았음), 또 오랜 세월 원칙(율법)없는 사이비 종교에 빠져있는 자들이며, 또 고레스왕은 귀환자들에게 명하여 성전을 재건하게 하였기 때문에 합류할 수 없다” 한즉(3절), 갈등과 훼방이 속출하게 된 것입니다. 족보없는 제사장도 직무이행을 못할 만큼(2:62) 정화를 중요히 여기는 때에 혼잡된 신앙인들과 합류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2. 그들이 어떻게 훼방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4~10절). 훼방자들은 고레스의 시대(주전 537~530년)부터 바사왕 다리오 즉위할 때(주전 521~486년)까지 의사들(바사왕궁의 대신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경영을 저희(沮戱, 계획을 꺾음)하고 손을 약하게 하며 건축을 방해하였으니, 이 기간 안에 뇌물 뿐 아니라 송사로 훼방한 것입니다. 송사는 고레스 다음 왕인 아하수에로(크셀크세스, 주전 530~522년)왕 때에 미슬람과 미드르닷과 다브엘과 그 동료들이 유다와 예루살렘(성전을 재건하는 부족들)을 고소하는 글을 올렸고, 고소자들은 대부분 강 서편(요단강)에 거주한 아닥사스다 왕조의 방백들과 다른 성민들로서 뇌물에 설득당한 자들일 것이요(8~10절), 이 글은 아람 문자와 아람 방언으로 진술되었으며(7절, 그 당시에 아람 방언을 사용하였다 함), 이 사건이 아닥사스다왕(스밀디스, 주전 522~521년) 때에 취급되었습니다.

3. 훼방자들의 고소 내용(11~16절)은 초본(고소 내용을 옮긴 것)에 기록된 것으로 그 취지는 “예루살렘 성전과 성곽이 재건되면 그들이 파사국을 반역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며 지대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는데 이것을 마치면 조공을 바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요, 강 서편의 영지가 없어질 것인즉(16절) 역사적으로도 그런 사례가 많다고 한 것입니다(15절). 13절의 “우리가 궁의 소금을 먹는다”는 뜻은 왕과 든든한 결속을 아부하는 뜻으로 말한 것입니다(“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란 말씀이 있음, 민 18:19). 정치의 판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어지럽습니다. 종교문제와 정치세력이 서로 갈등하는 양상인데 이런 어지러운 문제들을 초월하여 신앙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4. 결국 아닥사스다왕은 뇌물을 받고 선민을 모략하며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자들의 진정(고소)을 듣고, 그 역사를 그치도록 명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성전재건은 고레스왕 2년(주전 535년)에 시작하였다가 아닥사스다왕 때에 중지 명령을 받았은즉 13년 만에 중지되었고, 그 사이에는 훼방과 송사문제 등으로 큰 진전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17~24절을 보시면 왕의 조서와 명령으로 역사를 그치게 한 사실이 자세히 기록되었습니다. 20절 중에 “큰 왕이 있어서…잡세와 부세(세금을 부과하는 뜻, 賦稅)를 저에게 다 바쳤다”는 것은 다윗과 솔로몬왕 때에 국권이 융성하여 선민국이 타국으로부터 조공받은 사실을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민들이 조공을 받기는 해도 잘 바치지는 않을 것을 짐작하는 뜻으로 말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중단 계속이 다리오 2년(주전 520년)까지 이르렀으니, 중지된 시기와 중지가 연장된 시기는 1~2년에 불과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성전재건의 훼방은 저희들에게 무슨 교훈을 주십니까? 성전을 계시의 방편이나 예수님으로 모형하였을 때 예수님을 가까이 모시고 그 뜻을 실현하는 일은 많은 장애와 마귀의 역사의 도전을 받는다는 것을 깨달으셔야 할 것입니다.

제6과 성전건축을 계속함 (스 5:1~17) 목록으로


4:23~24에서 아닥사스다왕의 조서로 성전 역사를 중단시켜 다리오왕 2년까지(주전 520년) 방치한 것을 계속 공사로 마친 사실을 본문에 기록하였습니다. ① 1절은 “선지자의 예언이 있음”이고, ② 2~4절은 “성전과 성곽 공사를 마침”이며, ③ 5~17절은 “조사단들의 보고”입니다.

1. 공사 중단을 명하였으나 다시 건축을 서둘러 완공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그 당시에 있던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잇도의 자손, 슥 1:1)가 성전건축을 독촉하는 예언(설교)을 하였고,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그의 예언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1절). 선지자의 증언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은 것은 성도가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것과 같습니다. 그 시대의 성도들이 선지자의 예언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시행한 것처럼 저희들은 성경 66권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은 것입니다(고후 13:8, 수 1:7).

2. 성전과 성곽(예루살렘 성 둘레) 공사를 마친 사실인데(2~4절), 3절의 “마쳤다”는 뜻은 부분 공사를 마친 것으로 아셔야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장애가 없어진 다음에 계속하여 봉헌식을 하였기 때문입니다(6:13~18). 2절에서 “통치자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의 역할과 선지자들(1절)의 도움으로 유다 장로들이 격려를 받아(3절) 협력하므로 상당한 훼방과 항의를 물리치고 공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항의와 훼방은 3절에서 말씀한 대로 “그때에 강 서편 총독 닷드내(바벨론식 이름이라 함)와 스달보스내(파사식 이름이라 함)와 그 동료가 와서 누구의 명으로 이 전과 성곽공사를 마쳤느냐?” 하였으니, 이들은 다리오왕 시대(4:24)에 훼방자들의 고발을 받고 조사하러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따라서 “강 서편 총독”이란 넓은 의미로 볼 때는 유프라데강 서쪽지역을 뜻할 수도 있고, 좁은 의미로는 요단강 서편 유다지역을 뜻할 수 있으며, 또 여기에서 총독이란 의미는 그 지역에서 일어난 일을 조사하여 왕실에 보고하는 책임자라고 보셔야 할 것입니다. 아닥사스다왕의 조서로 공사를 그치게 하여 다리오왕 2년까지 중지되었는데(4:23~24) 그 후에 공사가 또 계속되고 완공되었다는 고발이 들어간즉, 감독자를 보내어 사실을 알아보게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 공사를 잘 진행시킬 수 있었던 것은 스룹바벨 총독과 예수아 대제사장과 선지자들의 설득하는 증언과 장로들의 호응때문이었은즉 이런 단결의 힘이 핍박자들의 훼방을 이기고 공사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조사단들은 그들이 조사하고 들은 말 대로 본국에 고한 후 다리오왕의 답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것입니다(4절).

3. 조사단들의 보고서 내용(초본은 원본조서를 필사한 것을 뜻함)입니다(5~17절). 이 내용은 3절에 기록된 조사단들이 조사한 바를 그대로 왕에게 보고한 내용입니다. “다리오왕은 만안하옵소서(왕에게 문안 예절로 쓴 글)…우리가 유다도에 가서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전에 나가본즉 전을 큰 돌로 세워 벽에 나무를 얹고 부지런히 역사하므로 그 손에서 (공사가) 형통하기로 그 장로들에게 묻기를 누가 너희를 명하여 이 전과 성곽의 공사를 마치게 하였느냐? 묻고, 그 두목(총책임자)을 왕께 알려드리려 하였는데,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 이 전은 옛적에 이스라엘의 큰 왕(솔로몬)이 건축한 것인데 우리 열조가 하나님을 격노하시게 하여 하나님이 갈대아 사람 느브갓네살에게 붙여 헐게 하셨고, 백성들도 사로잡히게 하셨으나 바벨론왕(바벨론을 정복한 왕) 고레스 원년에 고레스왕의 조서로 전을 건축한 것이고, 그때에 고레스왕이 바벨론 신당에 두었던 은금기명(느브갓네살이 빼앗아 간 것들)까지 그가 세운 세스바살 총독에게 내어주면서 이것을 예루살렘 성전에 두도록 그 본처(성전)를 건축하라 하여(1:8~11) 그가 친히 기명을 갖고 와서 전의 지대를 놓고 지금까지 건축하는 중이나 아직 필역하지 못하였다는 말을 들은 대로 보고 하오니 왕이 국고(왕실의 창고에 보관된 물건들의 반출관계)를 조사하여 과연 고레스왕이 그런 조서를 내린 사실이 있는지를 알아보시고 왕의 기쁘신 뜻을 보이소서(전하소서, 하명하소서)” 한 것입니다. 이 역사적 내용을 이해하시는 데는 문제가 없는 줄 압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전개됨에 있어서 이만큼 자세하게 기록된 것은 잘된 일입니다. 이것은 어느 한 개인이 살다가 죽은 역사를 기록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의 선민과의 역사이고, 구원계시를 나타내시는 역사이며, 또 그 구원계시의 한 방편으로서 예수님과 그의 구속사역을 나타내시는 것인데 이것을 유형한 성전과 성전제도로 계시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세상에 탄생하셨을 때 헤롯의 음모를 받으셨고, 또 공생애 중에서도 유대주의자들의 핍박을 받으시면서 구속사역을 하셨듯이 구약시대의 성전과 성전제도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전개를 계시하신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전의 구조와 건립과 제사제도를 다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하시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범죄로 수난을 당한 것이고 이런 모형적 계시는 때가 되매 예수님으로 완전하게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제7과 성전제도 회복 (스 6:1~22) 목록으로


본문을 살핀즉 ① 1~5절은 “고레스왕의 조서 근거”요, ② 6~12절은 “다리오왕의 조서와 명령”이며, ③ 13~18절은 “필역과 봉헌식”이고, ④ 19~22절은 “유월절을 지킴”입니다. 이로서 전체의 내요은 “성전제도 회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헐어진 성전을 지어 하나님께 봉헌한 후 속죄제를 드리고 제사장 제도를 정한 후 유월절을 지킨 것은 회복과 새출발의 의미가 있는 줄 압니다.

1. 고레스왕의 조서 근거(1~5절)

훼방자들의 보고가 있었을 때(4:8~16) 고레스 왕명에 의한 건축이란 정당성을 주장한 만큼(5:1~17) 그 근거를 찾아보게 하였는데(1절), 3~5절에서 메대도(道) 악메다궁(메대국의 도성, 메대파사의 연합군이 바벨론을 멸한 후 고레스왕이 처음 도읍한 곳)의 보물창고에서 두루마리로 된 역사책이 발견되었고, 거기에 기록되기를 “고레스 원년에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전에 대하여 이 전 곧 제사드리는 처소(전에 있던 성전)를 건축하되 지대를 견고히 놓고 고와 광을 60규빗(90자 정도), 큰 돌 세켜에 새나무 한 켜를(이것은 설계의 세부사항임) 놓되 경비는 다 왕실에서 낸다는 것과 느브갓네살이 옮겨온 성전의 기명들도 그곳으로 옮겨 전 안 본처에 두라는 것까지 기록된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선왕의 명에 의한 것이 확실함을 안 것입니다. 전의 넓이를 표기할 때 고와 광만 말하고 장을 말하지 않은 것은 고와 광의 규격에 비례하여 장은 적당히 결정되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이것을 광야의 성막(출 26:1~30)이나 솔로몬 성전(왕상 6:1~10)과 비교할 수 있는 바 광야의 성막은 70평 정도로 예상되지만 확실치 않고, 솔로몬 성전은 장광이 60×20규빗인즉 75평쯤 되므로 광야의 성막과 거의 같다고 할 수 있지만 재건된 성전은 광이 60규빗인즉 광에 비하여 장은 더 넓다고 보아야 하므로 솔로몬 성전보다 더 크게 지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당시에 고레스왕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섬김의 정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다리오왕의 조서와 명령입니다(6~12절).

왕명의 근거가 나타났은즉 6~7절에서 다리오왕은 강 서편을 감독하는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 동료들에게, 또 강 서편(유다 지역을 뜻함)에 사는 아바삭(성전 건립을 훼방한 사람들이 살던 곳인데 확인할 수 없음) 사람들로 하여금 “그 곳을 멀리하여 전 역사를 막지말고 이 전을 본 처에 건축하게 하라”고 명하였고, 또 2차, 3차에 걸쳐 조서를 내렸으니, 2차 조서(8~10절)에서는 “유다 지역에서 거두는 세금으로 속히 그 건축비용을 지급할 것과 하나님께 드릴 모든 수용물(제물과 생활 용품)을 제사장의 요청 대로 영락없이(확실하게) 줄 것과 향기로운 제물을 하나님께 드려 왕과 왕자들의 생명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명령을 하였고, 3차 조서(11~12절)에서는 벌칙을 명하였으니 “누구든지 이 명령을 변개하면 그 집 들보를 빼내어(곧게 세운다는 의미) 저를 그 위에 매달고 그 집으로 거름더미가 되게 할 것이요 만일 열왕이나 백성이 이 조서를 변개하거나 하나님의 전을 헐진대 그 이름을(그 성전에) 두신 하나님이 저희를 멸하시기를 원한즉 신속히 행하라”고 한 것입니다. 다리오왕도 고레스왕 만큼이나 하나님에 대하여 열심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필역과 봉헌식(13~18절)

다리오왕의 조서로 일은 신속히 진행되었고, 또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의 격려가 여전하여 전 건축할 일이 형통하였으며, 다리오왕 6년 아달월(종교적으로는 12월, 그 후 통상력은 6월, 양력으로는 2~3월에 해당한다 함) 3일에 필역하였으니, 고레스 2년(3:8)부터 다리오 6년(주전 515년)까지는 22년의 세월이 지나간 것입니다. 16~17절은 봉헌식 행사의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2세의 뜻)이 즐겁게 봉헌식을 할 때 수소 100, 수양 200, 어린 양 400(합동 제물), 그리고 지파별로 수염소 열 두 마리로 속죄제를 드렸으니, 봉헌은 성전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는 의미이고, 제사는 감사제, 또는 속죄제로 전체, 또는 지파별로 드린 것입니다. 18절에서는 제사직무의 반차(순번)를 세워 제사로 하나님 섬기는 제도를 모세의 법대로 시행하도록 제도를 회복한 것입니다.

4. 유월절을 지킴(19~22절)

1월 14일은 유월절 기일입니다(출 12:1~14, 민 9:1~3, 신 16:1~8). 그 당시에 유월절을 지킨 것은 신앙회복과 함께 새출발의 의미가 있다 할 것이요, 선민들이 이 절기를 지키면서 전체(제사장, 레위인, 자손들)가 몸을 정결케 하고 더러운 것을 버려 스스로 구별하였으니(21절), 이것은 신앙적 의식에 앞서 성결을 도모한 행사입니다. 그리하여 “여호와를 구하는 자(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함)가 다 먹고, 즐겁게 7일 동안 무교절(14일 중 첫 7일)을 지켰으니”, 22절에서 “이는 여호와께서 저희로 즐겁게 하시고 또 앗수르왕(앗수르 지역을 포함하여 통치하는 왕)을 돌이켜 하나님의 전의 역사를 힘있게 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신앙과 신앙의 제도는 원만하도록 회복되어야 하는 사실, 그 표준은 율법이고, 정성은 성결이며, 매사에 좋은 일이라도 역경이 있을 수 있으나 법대로 시행한 일은 훼방을 받아도 속히 회복할 수 있고, 또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뜻과 부합하는 일에 대하여 능히 형통케 하시는 은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원천적 은혜와 능력, 선지자들의 권면, 왕명 시행, 통치자들과 백성들의 단결과 열심 등이 믿음 회복과 발전에 기여한 사실을 꼭 아셔야 할 것입니다.

제8과 재건한 성전의 봉헌식 (스 6:13~22) 목록으로


지금 읽으신 말씀은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나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성전 재건을 마치고 봉헌식을 한 후 유월절을 지켰다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에서 저희들이 받아야 할 은혜와 축복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주전 548년(606년이라고도 함)에 바벨론 국에 멸망된 것은 잘 아시는 일일 것입니다. 바벨론 통치 70년이 되었을 때 메데파사국이 바벨론을 정복하고 고레스왕 원년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해방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에 잡혀 갔던 백성들의 후손들이 다시 고향에 돌아 와서 허물어진 성전을 재건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읽으신 말씀은 고레스 원년에 1차로 해방되어 나온 식구들이 20년 기간을 끌면서 성전을 재건하고 봉헌식과 유월절을 지킨 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첫 번째 고국에 와서 성전 재건에 힘쓴 지도자는 스룹바벨 총독과 에수아란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노력이 있을 때 학개 선지자와 스가랴 선지자가 백성들을 많이 권면하였습니다. 이리하여 성전 재건이 필역된 것이 본문 6장까지 기록이 되었고, 7장부터는 느헤미야 총독과 에스라 제사장이 2차로 귀환하여 사역한 내용이 기록되었습니다. 성경을 실피면 1차 귀환한 사람들이 20년간 성전을 재건한 후에 훼방의 역사가 생기면서 59년간 침체 상태에 머문 기간이 있고, 그 후 2차 귀환한 사람들의 25년간 신앙 정화 운동이 있었습니다. 그 기간만 계산하여도 100년이 넘습니다. 그리고 성전 재건에 협력한 파사국의 왕은 고레스, 다리오, 아닥스사다 왕이 본문 14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명령과 고레스 왕과 다리오 왕과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로 성전 재건 사역을 하게 되었다” 하셨고, 고레스 원년에 명령이 내리고(스 5:13) 다리오 6년에 준공이 되었기 때문에(스 6:15) 그 기간을 20년으로 계산을 하는 것입니다(역사적 연대 연구 필요함).

1. 이스라엘 민족의 성전 재건은 신앙 부흥의 절대적 요소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단일 성전 제도하에 있었기 때문에 성전에서의 제사가 하나님 섬기는 방법이었습니다. 그 이전에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저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바람에 하나님이 징계로 나라와 성전을 훼파시킨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고의 때가 이르러 나라는 회복되지 못하였지만 신앙의 자유를 갖고 성전을 재건하게 되었으니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2. 이 성전을 재건할 때 하나님의 명령과 세 왕의 조서와 협력이 있었고, 또 여기에 따라 강 서편의 총독들도 신속하게 준행해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는 왕과 총독과 제사장들과 백성들, 특히 포로자의 후손들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3. 그리하여 성전 재건을 필역한 후에 모든 계층이 합심하여 봉헌식을 성대하게 하였고, 또 1월 14일이 돌아온 즉 유월절을 지키게 되었는데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사로 잡혔던 자들의 후손들이 함께 유월절 양을 잡고 이방인들의 더러운 것(우상주의)을 버리고 7일동안 지키니 그때에 하나님이 저희에게 즐거움을 주셨고 또 앗수르 왕의 마음을 감동하여 하나님의 전 역사를 하는데 힘있게 하도록 도움을 주었다(22절)고 한 것입니다.

4. 이상의 사실 속에서 저희들이 받아야 할 은혜와 축복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1) 신앙 부흥의 은혜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유를 갖고 성전을 재건하고 이방인들의 더러운 것을 버리고 봉헌식과 유월절을 지킨 것은 바로 그들의 정화 운동이고 신앙 부흥인 것입니다. 저희들도 그들처럼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은혜를 받는 신앙 부흥, 곧 성령충만의 은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노력이 일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회를 주시고(행방됨) 명령을 하셨고, 왕도 명령을 하였고 총독들과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합력하여 힘을 쓴 결과로 일을 성취하게 된 것입니다. 훼방자들로 인하여 상당기간 지연된 적도 있었지만 다시 노력하여 성취를 한 것입니다(스 4:21).

3) 하나님의 은혜가 자손의 대로 계승된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보시면 “사로 잡힌 자의 자손들이 즐거이 봉헌을 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은 조상이 성취하지 못한 것을 후손이 성취하여 은혜받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조상 때는 징계를 받았으나 후손의 대에 은혜를 받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4) 하나님이 즐거움을 주시되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들과 스스로 구별하여 이방사람들의 더러운 것을 버리고 이스라엘 무리에게 속한 자들이 함께 즐거워하게 하신 것입니다. 현실교회에 이런 융화의 은혜가 꼭 있어야 합니다. 잘 믿은 사람이나 못 믿은 사람이나 회개하고 잘 하려고 할 때는 즐거움으로 영입하고 융화하며 합력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교회는 해방 후에 신사참배 문제로 그렇지 못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5) 하나님이 적국의 나라였던 앗수르 왕까지 감화를 주셔서 이스라엘의 성역을 돕게 하시는 은혜가 있었으니 이것은 하나님이 이방인의 도움을 받게 하시는 은혜인 것입니다. 신앙부흥, 하나님과 인간의 역사일치, 대물림의 은혜, 즐거움과 융화의 은혜, 이방인을 감동하시는 은혜가 저희들에게도 있기를 바라서 이 말씀을 증언한 것입니다.

 

제9과 2차 귀환의 역사(1) (스 7:1~28) 목록으로


본문을 읽고 “2차 귀환의 역사”란 제목을 정하였습니다. 1차 귀환의 기록은 1장, 2장에서 충분히 설명한 줄 압니다. ① 1~5절은 “에스라의 신분”이요, ② 6~10절은 “에스라의 귀환 역사”이며, ③ 11~26절은 “에스라가 받은 왕명”이고, ④ 27~28절은 “에스라의 감사와 송축”입니다. 우선 중요한 것은 연대 연구입니다. 에스라가 다른 형제들과 함께(7절) 2차로 귀환한 시기는 아닥사스다왕 7년 5월(주전 458년)이라고 하였습니다(1, 8절). 여기에서 저희들은 우선 포로 이후의 연대 공부가 필요합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성경을 연구하시면서 성경에 해당하는 왕조역사와 연대를 대략 아셔야 하는 것과 그 연대 계산에 있어서 연구자마다 상당한 차이를 나타내므로 적당히 이해하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이스라엘 왕조 역사를 연구 계산하여 유다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 11년을 주전 547년으로 계산하고, 그 내용을 기독교 신앙백과 91번에 게재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가르치는 연대는 주전 606년 경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59년이나 차이가 나지요. 그런 차이가 나는 이유는 왕이 1년 못되게 통치했어도 1년이라 하고, 1년 넘었으면 2년이라고 하는 계산법 때문일 것입니다. 본서를 읽으시면 우선 스 1:1에서 고레스왕이 나옵니다. 그는 주전 537~530년에 재위한 메데파사국의 초대왕이고, 그 원년에 1차 귀환령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명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아닥사스다왕이 나옵니다(스 4:7, 11, 23). 이 왕은 고레스 다음 왕으로 529~ 522년에 재위하였는데, 그를 “캄비세스” 또는 “아하수에로”로도 칭합니다. 그 다음에 다리오왕은 앞의 왕인 아하수에로의 아들로 522~486년에 재위하여(스 4:24~5: 2) 성전을 완공시킨 왕이고, 또 에 1:1에서 아하수에로왕이 나오는데, 이 사람은 다리오 다음 왕으로 486~465년에 재위하였고, 본문 1절에서 또 아닥사스다 이름이 나옵니다. 이 사람은 롱기마누스란 사람으로 465~425년에 재위한 것입니다. 애굽의 “바로”가 대대로 쓰는 왕명인 것처럼 아하수에로나 아닥사스다도 그렇게 통용된 줄 압니다. 이 왕 때에 에스라(458년), 느헤미야(445년, 아닥사스다 20년, 느 1:1)도 있었습니다(박윤선 주석). 따라서 에스라가 귀환한 때는 1차 귀환 후 79년 후이고, 성전 완공 후로는 58년 후가 되는 것입니다. 이상의 재료로서 연대 계산은 충분히 아실 수 있습니다.

1. 에스라의 신분(1~5절)

여기에서 “에스라”는 모세 당시의 초대 대제사장인 아론의 16대손으로 그의 조상을 순차적으로 기록하였으니, 스라야, 아사랴, 헬기야, 살룸, 사독, 아히둡, 아마랴, 아사랴, 므라욧, 스라히야, 웃시엘, 북기, 아비수아, 비느하스, 엘르아살, 아론 순입니다. 여기의 아론, 엘르아살, 비느하스는 모세 당시의 사람이고(민 25:7), 사독과 아히둡은 다윗왕 때의 사람이며(삼하 8:17), 아론부터 에스라까지의 역사는 1,000년이 더 됩니다. 그렇다면 평균 65년을 1대로 잡은 격이 되므로 상당부분은 생략된 족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계보의 취지는 에스라가 아론의 후손으로 제사장의 정통성을 가졌다는 것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2. 에스라의 귀환 역사입니다(6~10절).

이 말씀 중 6, 9절에서 에스라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 받은 특징을 말씀하셨는데, “여호와의 주신 바…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었다”는 것과 또 “모세 율법에 익숙한 학사”, “왕에게 구한 것은 다 받은 자”, 또 10절에서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고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고 예루살렘 온 자”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라가 받은 은혜(신분은 제사장)를 저희들도 사모하셔야 합니다. 율례는 율법으로, 규례는 실천 강령(교회 헌법과 같은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가 아닥사스다왕 7년(458년) 1월 1일(9절)에 이스라엘 자손들과 제사장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 중 몇 사람과 함께(2:43) 바벨론을 떠나 5월 1일에 예루살렘에 도착한 것입니다. 그는 신앙지도의 사명을 갖고 고향에 올라 왔습니다(10절).

3. 에스라가 받은 왕명(11~26절)

이 부분을 보시면 아닥사스다왕의 하나님 중심신앙과 에스라에게 명한 봉사, 협조의 내용이 뛰어나게 주밀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저희들에게 베푸시는 은혜도 그러하실 줄 믿습니다. 11절에서 “여호와의 계명의 말씀(십계명으로 이해함)과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례(제사법, 기타 생활법)의 학사(자격취득, 사람이 인정하는 수준)겸 제사장에게 그가 사명을 갖고 예루살렘에 갈 때 아닥사스다왕이 내린 명령서(조서)의 내용을 옮겨 적은(초본) 대로 기록한다” 하였고, 12절에서는 아닥사스다 자신이 자기를 “모든 왕의 왕(주위의 대국)”이라 하였고, 에스라를 “하늘의 하나님(최고로 높인 뜻)의 법에 완전한 학사겸 제사장이라” 하였으니, 당시의 왕은 에스라를 신앙의 으뜸가는 지도자로 인정, 또는 신용한 것입니다. 조서의 내용을 살피면 13절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다 데리고 가라”, 14절에서 “너는 네 손에 있는(늘 두루마리를 지참한 뜻) 하나님의 율법을 좇아 유다와 예루살렘의 정형(신앙적, 합리성 관계)을 살피기 위하여 왕(아닥사스다 자신)과 일곱 모사(바벨론의 장관들)의 보냄을 받았다” 하므로 합법적 권위로 파송된 뜻을 나타낸 후, 15절에서는 “하나님께 성심껏 드릴 예물(은금)을 갖고 갈 것”과, 16~17절에서는 “(직접 예루살렘에 가지 못하더라도) 바벨론 온 도(지역)에서 백성이나 제사장들로부터 얻을 모든 은금(제물만 보내는 뜻)도 갖고 가서 그것으로 제물을 매입하여 하나님의 전에 제사를 드리고, 또 돈이 남으면 형제가 선히 여기는 대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쓰라”는 것이었고, 19~20절에서는 “하나님 섬기는 일을 위하여 네게 준 기명(2차로 운반한 것)도 하나님께 드리고 또 그 이외에 하나님의 전에서 쓸 것이 있거든 무엇이나 내탕고(왕의 보물 창고, 왕하 20:13)에서 갖고 가서 하나님께 드리라”한 것이요, 21~22절에서는 “강 서편(유프라데강 서편, 즉 팔레스틴쪽을 일컬음)에 있는 고지기(관청의 창고지기)에게도 조서를 보내어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의 학사 에스라가 구하면 신속히 주되 은은 100달란트까지(약 100근), 밀은 100고르(1고르는 425ℓ)까지 기름과 포도주는 100밧(1밧은 4ℓ)까지, 소금은 필요한 대로 주라” 하였으며, 23절에서는 “이를 시행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지 않게 하라” 하므로 하나님을 잘못 섬기면 화를 힘입는다는 사실을 나타냈고, 24절에서는 “제사장을 비롯한 모든 자, 즉 제사와 관련된 일에 섬기는 자들로부터 조공(종주국에게 바치는 물건, 삼하 8:2)과 잡세와 부세(여러 가지 세금을 뜻함, 스 4:13)를 면제하라” 하였으며, 25절에서는 “너는 네 손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네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로 유사(사무관)와 재판관을 삼아 그 지역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무지한 자들을 가르치라” 하였으니, 이는 에스라를 그곳 지방장관과 제사장 사역을 겸하도록 명한 것입니다. 그리고 26절에서는 “형벌 조항을 말씀함에 있어서 왕명을 준행치 않는 자는 누구든지 그 죄를 정하여 사형, 정배(귀양), 가산적몰, 감금하라” 하므로, 하나님 섬기는 일과 신앙으로 복 받는 일을 위하여 주밀하게 성심을 다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에스라의 감사와 송축입니다(27~28절).

에스라는 27절에서 “하나님이 아닥사스다왕의 마음에 하나님의 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주신 것을 감사하였고”, 또 28절에서는 “에스라 자신이 왕과 방백들과 모사들 앞에서 은혜 받게 하신 것과 하나님의 손이 자기에게 있어 힘을 얻게 하시므로 뜻있는 대표자(두목)들을 모아 무사히 예루살렘에 오게 하신 것을 감사, 송축한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도 저희들은 “사람의 마음을 주관하사 선한 뜻을 갖게 하시는 하나님, 또 권세자들로부터 인정과 은혜를 받게 하시는 하나님, 또 에스라를 도우사 능력 있게 하시고 5개월 동안의 여행을 지키셔서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할 것입니다.

5. 결론적으로 7장 전체에서 나타내주신 교훈을 요약한다면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성경은 역사를 중요시 하며, 핵심을 보존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본서가 역사서라는 점과 시대를 명시한 점과 또 에스라 신분의 보존을 위하여 그의 계보를 나타낸 것으로 알 수 있고,

2) 선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범죄하면 징계하시고 징계의 때가 끝나면 다시 은혜를 베푸시는 점입니다.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패할 때가 있고, 권고 받을 때가 있으니,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일이며,

3) 이 때에 하나님은 고레스나 다리오나 아닥사스다왕을 들어 쓰셨고, 그 마음을 감동하사 하나님을 위하여 성도를 돕도록 하신 것과 선민 중에 스룹바벨, 예수아, 에스라, 느헤미야 같은 훌륭한 인재를 만드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특히 본문에서 저희들로 하여금 사모하게 하시는 것은 에스라 같은 신분의 은혜를 받는 일입니다. ① 에스라는 제사장인즉 성직자입니다. 성직이 존귀한 직임임을 아셔야 하겠지요. 따라서 성직을 존귀하게 시행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② 에스라는 율법(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익숙한 학사입니다. 저희들도 성경을 잘 아는 성도가 되셔야 할 것입니다. ③ 에스라는 왕과 방백들의 사랑과 인정을 받았으니 에스라의 청원이면 무조건 허락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권위 있고 신용 있는 일입니까? ④ 에스라는 신앙과 성전 제도에 대하여 바르게 지도할 사명을 갖고 예루살렘에 왔으며, ⑤ 하나님의 선하신 손으로 도움을 받아 무사히 올수 있었으니, 이렇게 하나님의 붙드심의 은혜를 받는다 것이 귀한 것입니다. 저희들도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하나님의 붙드심을 받으며 우리 앞에 장애물이 제거되는 은혜를 받으셔야 할 것입니다(시 73:23, 119:165).

 

제10과 하나님이 쓰신 사역자 에스라 (스 7:1~10) 목록으로


이 시간에는 “하나님이 쓰신 사역자 에스라”란 제목으로 교훈을 받겠습니다. 에스라는 바사왕 아닥사스다 때에 바벨론에서 왕의 신임을 받고 있던 제사장 신분을 가진 유대사람이었습니다. 바사왕 아닥사스다는 메데파사가 바벨론을 점령하고 처음 왕인 고레스와 다리오 다음의 왕이었습니다(스 6:14). 여기의 아닥사스다는 다리오 2세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메데파사의 왕조역사를 명확하게 살피려면 어려움이 많습니다. 첫째는 확실한 설명의 재료가 없고, 한 사람이 두 이름을 쓰는 경우와 비슷한 시대에 같은 이름이 두 사람 이상 있는 경우와 한 이름(바로왕)을 여러 사람이 계승해서 쓰는 경우가 있어서 왕조역사 연구에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또 본문의 주인공인 에스라도 그가 레위지파이고 아론의 16대 손은 확실한데 보통 말하기를 그가 “바벨론에서 출생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 스라야는 바벨론의 침략을 받을 때 피살되었습니다(왕하 25:18~21, 렘 52:24~27). 그러니까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출생했다는 설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혹 그 어머니가 유복자를 데리고 가서 낳았든지 아니면 어린 나이에 끌려 갔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본 제목으로 돌아가서

1. 하나님이 쓰신 사역자 에스라는 아론의 16대 손이었습니다. 이것은 에스라가 제사장 신분이란 뜻이고, 하나님의 성직을 16대를 계승했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에스라의 족보를 상세하게 기록하신 것은 하나님이 16대를 계승시켜 주신 것과 역사성을 확실하게 알리시기 위함입니다. 제사장들도 수난을 겪은 때가 많았습니다. 사울왕이 제사장 85인을 죽인 때가 있었고(삼상 22:18) 여러보암왕 때도 수난을 당하였고(왕상 13:33) 또 바벨론 침략 때도 큰 수난이 있었습니다. 그런 중에서 신앙과 제사장 직위를 지킨 것은 퍽 지조있는 신앙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의 계승과 직분의 계승을 높이 평가하려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2. 율법에 익숙한 학사였습니다. “율법에 익숙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잘 파악한다는 것이요, 성경의 지식이 많아서 가르치기를 잘하는 사람이란 것입니다. 율법에 또는 성경에 익숙하지 않으면 잘 가르치기 어려울 것입니다. 성경지식 많은 것이 신앙의 분량입니다. 믿음의 근거가 성경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3.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시면 에스라의 하는 일을 도와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왕에게 구한 것은 다 받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이방나라 임금도 에스라를 신임하였습니다. 에스라가 왕에게 구하는 것은 왕이 다 수락한 것은 왕도 에스라를 신임하고 하나님도 배후에서 에스라의 일을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신분대로 인정을 받으려면 두 r지 여건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사실대로 자기를 나타내는 것이 있어야 하고 또 하나는 보는 사람이 자기의 색안경을 쓰고 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진실을 나타내지 않으면 남이 자기를 바로 알아 줄 수 없을 것이요, 또 자신이 결백하여도 보는 자가 ,결백치 않을 때는 역시 결백치 않은 관점으로 보기 때문에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의 인정을 다 받으려면 상당 기간 정의의 빛과 증거를 나타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4. 에스라는 세 가지를 결심한 사람입니다. 하나는 율법 연구를 결심하였고, 또 하나는 율법 준행을 결심하였고, 또 하나는 율례와 규례를 자기 백성들에게 가르치기를 결심한 것입니다. 율법 연구 결심, 준행 결심, 가르치는 결심은 참 귀한 것입니다. 제가 한남교회 위임목사직을 다른 임지도 없이 사임한 것은 엄청난 결단이라고 보는 동료자들이 많았습니다. “아주 큰 충격을 받았다”는 목사님도 계셨습니다. 제가 그 일을 결단낸데는 다른 문제들에도 원인이 있지만 성경강해서를 쓰고 설교문을 글로 반포하려는 결심과 또 자유로운 양심 생활을 했으면 하는 소원과 문서(신앙서적) 보급 선교가 목회보다 낫겠다는 판단으로 결심을 한 것입니다. 에스라의 결심이 저의 결심과 꼭 같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결심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살려고 애쓰는 결심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개인은 연약해도 교회는 강해야 하는데 교회 대표자들이 강하지 못하면 교회도 강하지 못하여 여지없이 사랑 아닌 일에 말려드는 것입니다. 율법 준행의 결심이나 사랑의 결심은 귀한 것이요, 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보급해 보려는 것도 역시 좋은 결심입니다. 제가 쓴 신앙 상식이 중국 교포 성도들에게 신앙 교과서처럼 쓰여지는가 하면 그것을 번역 보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퍽 만족하였습니다.

5. 에스라는 예루살렘에 귀향하여 20년 간 있으면서 성전을 재건하였고, 신앙 생활 정화 운동을 벌여 좋은 일을 많이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의 전통을 갖고 직분을 고수한 자, 하나님의 말씀에 익숙한 자, 하나님과 사람(왕)의 인정을 받은 자, 좋은 결심을 가진 자를 귀하게 쓰셨던 것입니다. 이런 것 외에라도 하나님이 쓰시는 자는 겸손한 자, 순종하는 자, 화합을 잘 하는 자, 봉사적인 자, 인내를 잘 하는 자, 양보와 희생정신이 있는 자, 사리를 바로 판단하는 자, 기도하는 자, 연단을 많이 받는 자를 쓰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11과 에스라의 사역 (스 7:27~28) 목록으로


“에스라의 사역”이란 제목 아래 에스라 7장 이후의 말씀을 살피려고 합니다. 에스라서를 읽어보면 역사적 사건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장~6장까지의 내용에서는 바벨론에서 1차 귀환한 사람들(주전 539년, 스룹바벨과 예수아 등)이 황폐된 성전을 어렵게 재건하여 15년(514년) 만에 마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7장~10장까지의 내용은 성전이 필역된 후 56년이 지난 후(458년)에 에스라가 여러 사람들과 함께 2차로 귀환하여 선민들의 깨끗지 못한 부분을 정화하는 사역이 기록되었습니다. 저희들은 이 말씀을 살피면서 하나님이 선민들에게 주신 은혜와 에스라의 개혁운동을 교훈 받게 되는 것입니다.

1. 7장에서 에스라의 신분 설명이 나오는데, 이 사람은 아론의 16대 손이니까 제사장인데 거기에 율법학사라는 직함이 있고, 그 당시의 파사 왕인 아닥사스다 2세의 총애를 받아 “무엇이든지 구하면 허락을 받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이고 율법학자이며 왕의 총애를 받으니까 유력한 입장에 있었습니다. 에스라가 2차로 고국에 간 시기는 아닥사스다 7년(주전 514년)이기 때문에 바벨론 포로 이후 92년 된 때이니까 그는 바벨론 시절에 태어나서 자란 사람(포로 2세)이고, 바벨론에 피난 간 부족들이 하나님 경외하는 종교를 붙들고 나가는 환경에서 율법을 배운 사람입니다.

2. 그 때에 “에스라”는 고국에 가서 예루살렘 성도를 중심으로 신앙을 복구하는 운동을 하여야 한다는 사명을 갖고, 그 허락을 받기 위하여 아닥사스다왕에게 부탁을 하였는데 아닥사스다왕이 그 일에 대하여 더 열심 있는 뜻을 보여준 것입니다. 바벨론 시절에는 숨도 못 쉴 만큼 눌려 살았지만 파사 시대에 와서는 왕들이 여호와 신을 하늘의 하나님(7:12)으로 섬기면서 에스라가 청원한 것 이상으로 협조를 해준 것입니다. 여기에서 제가 강조하는 것은 27절에서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여호와의 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셨다” 하셨고, 또 28절에서는 모든 방백(대신들, 7명, 7:14) 앞에서도 은혜를 얻게 하셨으며, 또 “하나님의 손이 나의 위에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에스라의 힘과 수단으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벌써부터 일을 되게 하셔서 왕의 마음과 방백들의 마음과 에스라 자신을 움직여주신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배후에서 섭리하신 것입니다. 파사 지역은 팔레스틴 땅에서 볼 때 동방 약 3,000km 지역입니다. 거기에서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인과 백성들이 하나님을 공경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온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실이 있을 것을 약 2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셨습니다. 사 41:2에 보시면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켜 의로 불러서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겠느뇨” 하셨고, 또 사 43:5에서는 “네 자손을 동방에서 오게 할 것이라” 하셨는데, 그 예언에 근거하여 선민의 귀환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3. 왕이 에스라에게 허락한 은혜는 “귀향하고 싶은 백성들을 마음대로 데리고 가고, 왕의 내탕고에서 성전 제사에 필요한 것들을 다 갖고 가고, 또 그 지역의 방백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좋은 재판관을 임명하고 율법을 잘 가르쳐서 하나님의 종교를 빛나게 하고, 협력 안 하는 사람은 처벌하라” 하였으니 그 이상 더 바랄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종교 정화에 목적이 있는 만큼 일반 백성들보다 제사장, 레위인, 그리고 느디님 사람(8:20, 레위인을 돕는 잡역자들) 중심으로 귀향자 단체를 모집하였습니다. 모집한 인원이 14부족, 장정만 1,724명이고, 또 레위인 봉사자인 느디님 사람이 220명 도합 1,944명이니까, 그 장정에 딸린 남녀노소를 포함하면 더 많은 수로 예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그들의 여행의 길을 평탄하게 인도 받기 위하여 출발 전에 아하와 강가에서 기도회를 갖고, 그 기도의 목적이 하나님께 평안한 여행을 부탁한 것인 만큼 왕에게 호위병을 요청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포기하였는데 결국 “하나님의 손이 도우심으로 매복자들의 손에서 건져주셨다”고 하였습니다(8:31). 기도로 부탁하였으면 그만큼 믿고 맡기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을 교훈 하신 것입니다(8:21~23).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에 드릴 보물 취급을 엄격하게 잘 하여 그대로 인계하였습니다(8:24~34).

4. 그리하여 4개월만에 목적지에 잘 도착한 후(7:9) 정황을 들은즉, 하나님이 크게 가증하게 여기시는 일이 나타났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도층에서부터 이방 혼인을 예사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의 거룩을 손상하는 일로써 가나안 입국 때부터 엄히 막으신 것이었습니다(9:11, 신 7:1~4). 이때 에스라는 옷을 찢고, 수염을 뜯으며, 금식을 하고, 무릎을 꿇고, 회개를 한즉(9장) 하나님을 인하여 떠는 자들이 에스라 편에 서주었고(9:4), 어린 청소년들이 에스라를 도와서(10:1~4) “이방 혼인한 사람들을 조사하여 그 여인들을 내보내면 소망이 있지 않겠느냐?” 하여 그대로 강하게 시행을 한 것이니 이는 청소년들이 기성 세대를 도전하여 개혁 운동에 앞장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교육의 사명자이고 정화운동의 선구자였습니다. 에스라가 그런 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였을 때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받았던 것입니다.

 

제12과 2차 귀환의 역사(2) (스 8:1~36) 목록으로


본문을 읽어본즉 “2차 귀환의 역사”라 함이 좋고 내용을 구분하면 ① 1~14절은 “귀환자들의 명단과 수”요, ② 15~20절은 “레위인들을 보충함”이며, ③ 21~23절은 “출발전에 기도함”이고, ④ 24~30절은 “성전 기명을 맡김”이요, ⑤ 31~36절은 “도착한 후에 한 일”입니다.

1. 귀환자들의 명단과 수에 대하여(1~14절)

1절에서는 에스라와 함께 귀환한 족장들과 그들의 보계(계통)를 기록하면서 2절에서는 에스라 자신의 계파인 비느하스(아론의 셋째 아들, 엘르아살의 아들임, 7:5)와 이다말(아론의 넷째 아들, 출 6:23) 자손과 다윗(유다 지파) 자손 중 핫르스 족장과 3절에서 “스가냐 자손, 즉 바로스(2:3, 1차 귀환시 2,172명이 귀환하였음) 자손들을 합하여 족보에 기록된 남자만 150명이라” 하였으니, 여기에 딸린 여자는 수에 넣지 않았고, 이 본문에 숫자로 나타난 족장계통이 12족이지만 이것이 12지파별 통계는 아닙니다. 우선 제사장족과 다윗족과 바로스족의 남자가 150명, 바핫못 자손이 200명, 스가냐 자손이 300명, 아딘 자손이 50명, 엘람 자손이 70명, 스바댜 자손이 80명, 요압 자손이 218명, 슬로밋 자손이 160명, 베배 자손이 28명, 아스갓 자손이 110명, 아도니감 자손이 60명, 비그왜 자손이 70명으로 모두 합하면 1,496명과 거기에 딸린 여자들입니다. 여자들을 수에 포함시키지는 않았으나 가족별로 명단 관리는 잘 하였을 것입니다.

2. 레위인 보충에 대하여(15~20절)

그들은 바벨론 성읍을 아닥사스다왕 7년 1월 1일에 떠나(7:9) 3일 동안 아하와 강가(바벨론 서북으로 흐르는 강, 또는 운하라 함)에 와서 다시 인구조사를 한즉 레위자손(제사장 아닌 성전 봉사자)이 하나도 없음을 알고(15절), 16~17절에서 모든 족장들과 명첩한 사람(요야림, 엘라단)을 불러 레위인들이 거주하는 가시바 지역으로 보내어 그곳 족장인 잇도의 형제들에게 부탁하여 그 지역에 사는 느디님 사람(모세 때부터 딸려온 레위인을 섬기는 종들임, 20절 참조)을 데려오라 한즉, 18절에서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으로 레위족 말리의 자손 중에서 18명, 하사뱌와 므라리 자손 중에서 20명을 추가하였고, 또 느디님 사람 220명(도합 258명)을 추가한즉 전체 남자의 수는 1,754명이 된 것입니다. 성전 봉사에 필요한 사람을 구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받았다(18절)”는 말씀이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자신이 받으실 영광을 위하여 소원하게 하시고 또 필요에 따라 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빌 2:13).

3. 출발 전에 기도한 것입니다(21~23절).

기도의 장소는 아하와 강가였고, 기도의 방법은 금식과 스스로 겸비함이며, 기도의 목적은 “어린 것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여행이 되도록 간구한 것”입니다. 5개월의 광야 여행인즉 위험이 없을 수 없을 것이나, 22절에서 에스라는 전에 왕에게 고하기를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베푸신다”고 말한 일이 있었는데, “자신들은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므로 기도로 하나님께 부탁할지언정 적군을 막는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럽게 여겼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23절을 보시면 “금식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니 그대로 이루어주셔서 목적지에 잘 도착하였던 것”입니다. 보호와 인도를 받음에 있어서 인간적 방법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하나님께 부탁하고 기도하는 것임을 알 수 있고 이때에 기도자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구하는 태도를 취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4. 성전 기명을 맡김입니다(24~30절).

그들이 귀향할 때 1차 귀환 시에도 성전 기명을 갖고 가는 명을 받았지만(1:7~11) 2차 때에도 갖고 가는 물건들이 있었습니다. 그 물건을 확실히 취급하기 위하여 제사장 두목 중 12인을 따로 세워 물건들을 인계한 것입니다(24절). 25절에서 기록된 물건들은 왕과 왕실의 방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었고, 그 분량은 은 650달란트, 은기명 100달란트, 금 100달란트, 금잔 20개, 놋그릇 2개를 합한 가치가 1,000다릭(금화 1다릭은 8g 정도라 하나 이 분량의 가치는 확실히 알기 어려움)인데, 29~30절에서 이것을 예루살렘전 골방에 이르러 제사장 두목들에게 확실히 인계하도록 하여 “그 중수대로 인계하였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물질이나 공금은 확실히 취급되어야 함을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5. 도착한 후에 한 일입니다(31~36절).

그들은 1월 12일에 아하와 강을 출발하였는데(도성 출발은 1월 1일, 7:9) 이때에 하나님의 손의 도움을 받아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짐을 받았고(31절), 5개월 만에 예루살렘에 도착(7:8), 3일을 정리한 후 제 4일에 은금 기명을 달아서 확실하게 인계하고 책에 기록하였으며(33~34절), 일제히 번제를 드리고 왕의 조서도 그곳 총독들(전임자들)에게 전달하니 그들이 왕명에 따라 “백성들과 하나님의 전을 도왔다(35~36절)”고 하였습니다. 이때에 사용된 번제물은 수송아지 12, 수양 96, 어린 양 77, 수염소 12마리였습니다.

 

제13과 백성의 죄와 회개 기도 (스 9:1~15) 목록으로


본문을 읽고 “백성들의 죄와 회개 기도”란 제목을 정하였습니다. ① 1~2절은 “백성들의 죄를 알게 됨”이고, ② 3~15절은 “에스라의 회개 기도”입니다. 여기에서 백성들의 죄의 정황이 어떠한 것과 에스라의 회개 자복하는 기도 내용을 살피시면서 많은 교훈을 받으셔야 할 줄 압니다.

1. 백성들의 죄를 알게 됨(1~2절)

앞장의 말씀대로 성전 봉헌식과 유월절을 지키고 새출발을 하려는 중 몇 날이 지난 후에(2일 후에, 1절) 방백들이 에스라에게 고하기를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이방인들)과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헷, 브리스, 여부스 ,암몬, 모압, 애굽, 아모리 사람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그들의 딸을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으로 이방족속과 서로 섞이게(혼혈을 뜻함)하는데 방백이나 두목(족장급)들이 더 심하다(으뜸)”는 것입니다. 여기의 이방족은 출애굽기(출 3:17)에서 다 거론된 족속으로 예루살렘이나 팔레스틴 지역에 거주하면서 그들 나름대로의 우상종교(가증한 일)를 신봉하는 자들인데 그들의 딸들을 가족으로 영입한 사실이 있는 바, 방백들이나 두목들이 앞장서서 시행하므로 혈통적, 종교적 혼합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대한 일이고 또 깜짝 놀랄 일입니다. 이방족과의 혼인을 금할 것은 출 34:16, 신 7:3, 수 23:12~13 등에서 명하신 일이고, 또 신 23:5~6에서는 “그들의 평안과 형통을 평생 구하지 말라” 하셨는데, 이것을 위반한 것입니다. 신 22:10을 보시면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 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물리적 혼합보다 종교적, 사상적 혼합을 경계하신 말씀입니다. 신앙은 순결하여야 하기 때문에 구별하신 것인즉 잡된 혼합은 결코 하여서는 안되는데 그런 범죄를 감행한 것입니다. 여성의 부족을 임의로 보충한 것이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신앙회복과 정화의 차원에서 볼 때 큰 장애가 된 것입니다. 선민적 구별의식이 없으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2. 에스라의 회개 기도(3~15절)

이 말을 들은 에스라는 마음의 큰 상처를 받고 정화 운동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3절에서 “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은 것”은 탄식과 비통에 대한 표현이고(욥 2:8, 42:6, 마 11:21), 4~5절에서는 “이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이 에스라에게로 모여 왔으며 그들도 함께 기가 막힌 자세로 앉았다가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함께 회개 자복하는 기도에 동참한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것이 중요합니다(사 66:2). 그들이 죄를 두려워하여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요, “저녁 제사”는 매일 드리는 제사인 바(대상 16:40, 대하 13:11) 먼저 속죄제를 드리고 회개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순서입니다. 5절 이하에서 에스라는 옷을 찢은 대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 하였으니, 옷을 찢은 것은 마음을 찢은 것과 같고(욜 2:13) 무릎을 꿇음은 낮은 자세를 취함이며,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든 것은 높으신 하나님을 찾는 태도를 나타낸 것입니다. 이때에 기도 장소는 성전 뜰이고,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도 함께 하였을 것입니다.

3. 에스라의 대표기도 내용을 요약하면 6~7절에서 “부끄럽고 낯이 뜨뜻하여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이 넘치고 커서 하늘에 미칩니다. 열조 때부터 범죄가 심하여 하나님이 왕과 백성들과 제사장들을 열왕(앗수르, 바벨론 등)의 손에 붙이사 죽고, 노략을 당하게 하셔서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처럼 된 것 아닙니까?”, 8~10절에서 “그러나 잠깐 은혜를 베푸사 아주 멸망치 않게 하셨고 얼마를(바벨론에) 피하게 하신 후에 우리의 눈을 밝혀 종노릇 하는 중에서 소성함을 받게 하셨으며, 노예로 복역하는 중 바사 열왕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아 그들로 울(의지하는 울타리)이 되게 하셨고, 퇴락한 성전을 수리하게 하셨는데, 그 은혜를 모르고 또 주의 계명을 범하였사오니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라고 한 것입니다. 11~12절은 기도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상기하면서 지키지 못한 계명을 떠올린 내용입니다. 12절의 말씀은 앞에서 말씀드린 “이방인들과의 교제와 통혼을 금하라”는 말씀을 상기한 것입니다(출 34:16, 신 7:3). 백성들이 계명을 잘 지켰다면 “왕성하여 그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으며 그 땅을 자손에게 유전(전달)하여 영원한 기업을 삼게 되리라(12절, 출6:8) 하셨으나 우리의 범죄로 이렇게 된 것이라” 하였고, 그러나 13~14절에서 “하나님은 긍휼이 크시매 죄악보다 형벌을 경하게 하셔서 이만큼 남겨주신 것이온즉 어찌 이 가증한 일을 연속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아주 멸하여 피할 자가 없도록 하시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의로우십니다. 주님이 의로우시고 긍휼을 베푸셔서 우리가 남아 있는 것이온데 또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인하여 한 사람도 주 앞에 감히 설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고 호소하는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신앙은 혼잡하면 안됩니다. 이방인이 미운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잡된 신앙과 사상이 미운 것인즉 성도는 그런 것을 경계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가 되시고 항상 자신을 살피며 회개하는 자세를 끊이지 마셔야 합니다. 특히 이 말씀에서는 회개하는 에스라가 어떤 자세를 취하였는가? 를 유의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다음 과목에 기록되었습니다.

 

제14과 정화운동의 성공 (스 10:1~44) 목록으로


본문을 일고 “정화운동의 성공”이란 제목을 떠올렸습니다. ① 1~17절은 “정화운동이 성공적으로 실현된 과정”을 말씀한 것이고, ② 18~44절은 “회개하고 돌이킨 백성들의 명단”입니다. 선민들이 회개하고 정화해야 할 과제는 이방 여인과의 혼인관계를 끊고 그 여인과 그 사이에서 낳은 소생들을 다 내보내야 하는 일입니다(3, 44절). 작은 결단으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큰 은혜를 받고 큰 결단과 노력이 있으므로 가능할 것입니다.

1. 이 정화운동이 성공적으로 실현된 과정을 살피면(1~17절)

1) 1절에서 “에스라의 통곡하는 기도와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모였다” 하였으니, 이 기도는 개인 기도로 성전 마당에서 시작한 것이고, 기도의 성격은 통회와 자복이었는데, 이때에 남녀와 어린이의 큰 무리가 모인 것입니다. 저는 이 두 가지 사실(에스라의 개인적 자복 기도, 그리고 남녀와 어린이들의 모임)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으신 줄로 압니다.

2) 이어서 에스라의 정화운동에 동조하고 협력하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는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였습니다. 2절의 엘람 자손은 레위 지파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느 12:43, 대상 6:25, 35, 대하 29:12). 그가 에스라에게 말하기를 2~4절에서 “우리가 범죄하였으나 오히려 소망이 있으니 곧 하나님의 교훈대로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의논을 좇아 이방여인과 그 소생들을 내보내기로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시행하면 될 것이니, 당신(에스라)이 그렇게 주장하면 우리는 돕겠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하나님이 성령으로 역사하셔서 협력자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3) 이리하여 에스라는 힘을 얻고 5절 말씀대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대로 시행하자 한즉 뜻있는 백성들이 호응하여 다같이 하나님 앞에 맹세를 하되 회개, 정화의 차원에서 이방여인들과 그 소생들을 내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4) 그 다음 6절에서 에스라는 하나님의 전, 즉 기도하던 처소에서 “일어나 엘리아십의 아들 여호하난의 방으로 들어가서 사로잡혔던 자의 죄를 근심하여 떡과 물을 먹지 않았다” 하였으니, 여기의 금식은 죄를 근심하고 또 회개하는 자들의 처자들을 내쫓아야 하는 문제에 대하여 아픔을 공유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여기의 “여호하난”의 이름은 28절에서 범죄자 명단에도 있기 때문에 그 집에 들어가서 그의 심적 고통을 함께 한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고, 또 한 가지는 여호하난이 엘리아십의 아들인 만큼(6절) 그를 제사장 예수아의 후손으로(느 12:10, 22) 보아 그의 방에 들어가서(성전 옆에 제사장 용도의 방이 있음) 백성들의 아픔을 달래는 의미로 금식 기도를 한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회개는 범죄 사건의 정도에 따라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5) 그 다음에 7절에서는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들(회개할 대상 또는 먼저 귀한한 자들)에게 맹세한 내용(5절)을 공포하였고,

6) 8절에서는 벌칙을 세워 “맹세와 훈시대로 3일 내에(홍보차원에서) 오지 아니하면 재산을 적몰(뺏음)하고, 선민의 회(사로잡혔던 자들의 단체)에서 쫓아낸다”고 한 것입니다. 정화의 방도를 강하게 집행한 것입니다.

7) 3일 되던 날이 9월 20일인즉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온지 4개월쯤 후였고, 그날 성전 광장에 모였을 때 큰 비가 왔으며, 백성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떨었고(9절), 에스라는 모인 무리들에게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 이방여인을 끊으라(11절)”고 설교한즉, 무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라”고 대답을 한 것입니다(12절).

8) 13~14절은 “이 정화운동이 가정해체에 관계되는 중대사이므로 하루, 이틀에 해결할 것이 아닌즉 방백들로 감독자를 세워 절차있게 시행하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떠나게 하라” 하였는데, 15절에서는 “그 일을 반대한 자와 또 반대자를 돕는 자도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회개운동이 강압적으로 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강한 충동을 주었지만 복종은 자유에 맡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9) 16절을 보시면 12절에서 “마땅히 행할 것이라” 한 것처럼 “그대로 하였다” 하였고, 그 조사를 시작한 날이 10월 1일이고 조사를 마친 날이 1월 1일(17절)인즉 3개월의 기간을 두고 정화사역을 전개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상의 아홉 단계를 거쳐 정화사역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신앙은 인정을 초월해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아브라함이 하갈을 쫓아낸 것과 같은 것이지요(창 16:6). 그리고 회개는 범죄상태를 없애는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진정한 회개는 어려울 것이요, 또 하나님이 감찰하시는 범위는 특권층이 제외되지 않는 것입니다.

2. 회개하고 돌이킨 백성들의 명단입니다(18~44절). 이 명단을 기록한 것은 회개할 대상을 주밀하게 조사하고 감찰한 사실과 회개는 철저하게 개인적이어야 함을 지적하신 것과 범죄자는 명예에 상관없이 회개한 사실을 드러내야 할 것과 또 고하의 신분에 차별이 없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제사장(18~19절), 족장(20~22절), 레위족(23~24절), 일반 백성들(25~43절), 그리고 그 자녀들까지(44절) 제외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15과 이스라엘의 회개 운동 (스 10:1~12) 목록으로


이 시간에는 “이스라엘의 회개 운동”이란 제목으로 교훈을 받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단체적으로 회개 운동을 전개시킨 사실에 관한 것입니다.

1. 본문 말씀의 주인공인 “에스라”와 그 시대적 배경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에스라”라는 모세의 형이며 초대 대제사장인 아론의 16대손이고, 그의 아버지는 유다 나라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 왕때에 제사장이었던 “스라야”였습니다(스 7:1, 5~6, 왕하 25:18~21). 시드기야 왕때에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되자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가는 중에 “스라야”와 다니엘도 같이 끌려갔고, 따라서 “에스라”는 바벨론에서 출생하였습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서 자신의 믿음을 지켰듯이 “스라야” 제사장도 그 아들 “에스라”에게 제사장직을 세습시켰음과 동시에 종교적인 율법 교육과 애국 정신에 대한 교육을 잘 시켜서 에스라는 율법 선생, 즉 “학사”(7:6, 10)라는 칭호까지 받았습니다.

2) (이스라엘 나라는 창설된지 120년 만에 두 나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나라가 갈라진 때는 솔로몬 왕의 아들 르호보암 왕때였고, 분리된 나라는 유다와 벤야민 지파를 제외한 예루살렘 북방의 10지파로써 다수가 분리되다 보니까 그것이 북 이스라엘국이 되었고,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남은 지파가 남방 유다 지파로 종교적 정통 국가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북 이스라엘국은 주전 675년에 앗수르에게 먼저 멸망을 당하여 이미 없어졌습니다. 없어진지 127년 후인 주전 548년에 바벨론이 앗수르와 유다를 다 정복한 것입니다.) 바벨론이 70년 동안 유다 민족과 신민국들을 다스리다가 메데 파사 왕조에 멸망되었다는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을 정복한 바사왕 고레스 원년(478년)에 유다 백성들이 파사의 통치를 받게 되면서 은혜를 받고 자유 귀환과 종교제도 복구의 혜택을 힘입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해방되던 해에 스룹바벨 총독과 에수아 제사장과 백성들 42,360명과 거기에 딸린 노비 들과 짐승의 떼가 70년 만에 귀환을 하여 20년간 성전을 재건하다가 이방족의 훼방, 종족 분쟁 등으로 사역을 중단하였는데 이렇게 중단된지 57년 만에 또 3차 귀환이 있었습니다(그러니까 1, 2차 귀환의 간격이 또 77년이 생김). 주전 401년 2차 귀환 때에 나온 사람이 바로 본문의 주인공인 에스라 제사장으로서 남자만 2006명과 거기에 딸린 가족과 재산을 이끌고 약 3500리 길을 걸어서 예루살렘에 당도하게 된 것입니다(3차-13년 후, 느헤미야 중심). 70년 만에 1차로 귀환한 사람들도 감격한 점이 많았겠지만 거기에 또 77년을 보탠 147년 만에 온 사람들은 더욱 감개무량한 점이 많았을 것입니다. 나라의 주권은 어차피 바사국의 통치를 받을지라도 종교의 자유를 잃은 것이 한이었는데 다시 그 자유를 누리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하였겠습니까? 1차에 나온 사람들도 그런 감격에 사로잡혀서 성전을 재건하고 신앙적 생활을 시도하였지만 중간에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갈등이 생겨서 성전 재건을 중단, 방치한 상태였는데 성전 재건은 못할지라도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신앙 생활 만큼은 깨끗하여야 하는데 그것도 그렇지 못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2. 그러면 그 형편이 어떠하였습니까?(스 9장 이하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1) 그들의 신앙이 해이해진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속박과 핍박을 받으며 고향을 그리워할 때보다 고향에 와서 신앙의 자유를 가졌을 때가 오히려 해이해진 것입니다. 돈 있고, 자유 있고, 감시하는 사람 없으면 여지없이 나태하고 탈선하기 쉽습니다.

2) 그들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이방족들과 어울리면서 살았고(9:1), 그들의 가증한 일, 즉 우상 숭배에 이끌리면서

3) 이방인들과 서로 통혼까지 하였는데 여기에 지도자급들이 으뜸 가게 더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거룩은 “구별되다”는 뜻이고, 세속은 “혼돈된다”는 뜻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만 삶으로 거룩해져야 하고 이방인들의 낡은 습관을 따르지 않으므로 순결을 지켜야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혼자 살기 어렵다고 성도로서의 순결을 떠나서 이방인과 혼인하는 것은 망령된 일이요, 하나님께 엄청난 죄를 범하는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범죄를 또 저지를 뿐 아니라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더욱 으뜸 가게 타락하므로 하나님의 노여움을 더욱 사게 된 것입니다. 스 9:9을 보시면 70년 만에 자유를 주셨고, 귀환과 함께 성전 재건의 은혜를 주셨는데도 이를 옳게 감당하지 못하고 혼돈된 지경에 들어갔으니 배은망덕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3. 에스라가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정화 운동을 폈습니까?

1) 에스라 자신은 자기의 동족들이 신앙적 범죄를 저지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비통한 나머지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하나님의 성전 마당에 기가 막힌 상태로 앉았다가 다시 무릎을 꿇고 회개 자복을 하였으니(스 9:3~12) 이는 먼저 지도자 자신이 연대적 책임을 지고 백성들의 죄를 인하여 회개할 책임을 지는 태도인 것입니다.

2) 그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도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모여와서 많은 백성들이 회개하는 기도 대열에 참여하였던 것입니다(스 9:4, 10:1). 기도의 내용을 대략 살펴보면 “백성들이 죄로 인하여 낯이 뜨겁고 부끄러워 얼굴을 감히 들 수 없으며 죄와 허물이 너무 커서 하늘에 미치나이다” 하였고(6절), “과거에도 이런 죄값으로 칼에 죽고 포로되어 부끄러움을 당하였으나 하나님이 은혜로 해방시키셨으니 이 상태를 견고히 유지시키시며(7절) 죄짖는 백성의 눈을 밝히시고 소성케 하셔서 성전을 새로 짖고 나라의 울타리까지 주셨는데 또 주의 계명을 범했으니 무슨 말을 하오리까(8절) 우리의 죄값으로 당한 일이오나 하나님은 죄보다 벌을 경하게 하시는 분이시니 우리의 회개를 보시고 용서하옵소서(13절)”한 후에 교훈을 따르고 명령을 인하여 떠는 자들의 의로움을 좇아 같이 살던 이방 여인들과 그 자녀들을 다 내어쫓기로 작정을 하고 에스라로 하여금 그 일을 강행하도록 주장을 하였던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돌이키는 것이요, 죄악의 찌꺼기와 앙금을 거두어 내는 것입니다. 무형한 죄는 마음으로 돌이킬 수 있지만 행위로 나타난 죄는 행동으로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범죄자들을 색출하는데 성원을 한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10:12) 반대하는 자 또한 만만치 않게 일어나서 정화 운동을 훼방한 일이 있었으나(10:15) 그대로 강행하여 조사 색출하니 212명이나 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그때 마침 하나님이 큰 비를 내리셔서 백성들에게 두려움을 주셨고(10:9), 백성들은 그 비를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깨달으면서(10:14) 그것이 거두어지기를 회개하므로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저희들은 ① 성도의 거룩한 생활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② 거룩을 손상시켜 혼잡된 생활에 들어감이 얼마나 죄악된 일이며 또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인가를 알게 되고, 더 나가서는 ③ 에스라 한 개인의 회개가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에게까지 확대된 일과 ④ 범죄 색출을 과감하게 결의한 일, ⑤ 죄의 요소를 제거하며 ⑥ 반대자의 훼방을 물리치고 정화 운동을 강행한 적극성 있는 정화 운동이 크게 나타난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저희들도 성경적 생활에 정화하여야 할 것들이 없는지를 반성하여 확실하고 용기있게 회개하고 시정하는 역사가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제16과 에스라의 회개 운동(1) (스 10:1~12) 목록으로


이 시간에는 “에스라의 회개 운동”이란 제목으로 교훈을 받겠습니다. 저희들이 이 성경 말씀을 이해하려면 ① 에스라는 어떤 사람이며 ② 그의 환경이 어떠 하였는가를 먼저 아셔야 합니다.

1. 에스라는 바벨론 포로 당시의 제사장으로 있었던 스라야의 아들인데 바벨론 포로 생활 중에 출생하여 그 아버지로부터 율법과 신앙 교육을 잘 받았기 때문에 율법에 익숙한 학사요(스 7:6), 또 제사장이었습니다. 물론 바벨론 포로 시절에는 제사장 노릇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전 478년에 바벨론이 멸망을 당하자 1차 해방령이 내려져 “스룹바벨” 총독과 “예수아” 제사장을 중심으로 많은 백성들이 귀환한 일이 있었고, 그 때로부터 약 79년 후에 또 2차 귀환이 있었습니다. 이 때에 느헤미야 총독과 에스라 제사장의 인솔로 약 1400여명의 백성들이(스 8:1~20) 귀환을 하였습니다.

2. 와서 보니 79년 전에 귀환한 조상들이 온갖 훼방을 무릅쓰고 20년 동안 성전을 재건하였으나 그 후 59년이 지나는 동안 또 믿음이 해이해져서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품위를 지키지 못하고 죄를 범하는 상활에 있었습니다. 에스라는 와서 그런 사실을 목격하게 된 것입니다. 스 9:1~3을 보시면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의 가증한 일(우상 숭배)을 행하고, 이방인들을 취하여 혼인하여 혼잡을 이루는데 여기에 방백들과 두목들이 으뜸이 되게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이 사실을 보았을 때 기가 막혀 옷을 찢으며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에스라의 신분과 그 시대의 정황을 말씀드렸습니다.

3. 본문 말씀에는 무슨 내용이 있습니까?

1) 1절에서 에스라는 백성들과 함께 성전에 엎드려 울고 자복하며 기도하였고, 많은 백성들도 함께 통곡하였는데 그 때에 남녀 어린 아이까지 큰 무리가 모였다고 하였습니다. 범죄의 한도가 차면 하나님의 진노가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회개 운동은 시급하였습니다.

2) 백성 중에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이방인을 취하고 죄를 범했지만 오히려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떨면서 하나님의 법도를 좇으려는 사람들이 먼저 이방 여인들을 내쫓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언약을 세워드리고 율법대로 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백성 중의 한 사람이 회개 운동을 자청하고 나선 것입니다.

3) 그리고 이런 회개 운동은 에스라 제사장이 앞장서서 주장할 일이니 “시작만 하시면 우리가 돕겠다”고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정화 운동은 지도자와 성도(백성)가 협력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4) 그래서 에스라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였던 것입니다(5절). 이 맹세는 결심과 단결의 표현을 나타낸 것입니다.

5) 그리고 “성전에 있는 제사장 여호하난(느 3:1)의 방에 들어가서 금식 기도를 하면서(6절) 장로들과 방백들로 하여금 명령을 발하게 하여 백성들을 3일 내에 예루살렘에 모이게 하고 만일 누구라도 이방 여인을 쫓아내지 않으면 재산을 몰수함은 물론 성민의 총회에서 쫓아내리라고 하니까 백성들이 크게 떨었는데 그 날이 9월 20일이었고, 또 그 당시에 큰 비가 와서 더욱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복하고 회개할 것을 더욱 강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8~12절의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연대가 없는 9월 20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9월은 큰 비가 온 것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우기도 아닌데 큰 비가 와서 이것을 하나님의 진노로 간주해야 할 입장임을 나타낸 것입니다(10, 14절 참조).

결론적으로 저희들은 이 말씀에서 ① 우리의 부족과 잘못들을 반성하시고, ② 지도자와 성도가 일체되어 모이기를 힘쓰시고, ③ 기도하며 회개하기를 힘쓰며 ④ 하나님을 크게 두려워하는 생활이 있어야 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더 겸손하고 더 열심내며 더 회개하고 더 봉사하는 저희들이 되셔야 하겠습니다.

 

제17과 에스라의 회개 운동(2) (스 10:1~12) 목록으로


이 시간에는 “에스라의 회개 운동”이란 제목으로 교훈을 받겠습니다. 회개 운동은 이 세대에 절실한 요구입니다. 바사 왕 아닥사스다 2세가 왕으로 있을 때, 아론의 16대 손이고 스라야의 아들인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가 있었습니다.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에 올라왔다”(라 7:6) 하였는데, 이는 바벨론 땅에 살면서 파사 왕의 통치를 받는 시대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다는 뜻입니다.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귀환한 때는 바벨론이 메데 파사에 망한 지 약 79년 후였습니다. 고레스왕 때에 1차로 귀환한 백성들이(에수아, 스룹바벨) 20년간 잘해보려고 노력을 하다가 핍박자들로 인하여 정화운동을 중단한 채 59년을 미루고 있는 상태였는데, 먼저 온 백성들이 정화운동을 중단한 후 몹시 타락하여 하나님의 진로를 사기에 충분한 입장에 있었습니다. 에스라는 파사 왕조 때 태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사장인 조상들로부터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은 제사장이요 학사였습니다. 에스라의 회개 운동이 어떤 절차로 일어났습니까?

1. 에스라가 귀환하여 백성들의 범죄 상태를 파악하였습니다. 라 9:1~2에 보시면 그 진상 파악 내용이 나옵니다. 으뜸이 되어야 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이방인들을 떠나지 아니하고 가증한 일(우상숭배 등)을 그대로 행하고, 또 이방여인을 아내로 취하여 거룩한 자손이 섞이게 하는데, 모범이 되어야 할 방백들과 두령들이 더 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죄는 우상 숭배나 이방 혼인 뿐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대표로 많은 범죄와 부조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회개를 하려면 우선 죄목과 죄성을 알아야 하고, 기가 막힐 정도로 분함을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3절).

2. 에스라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자복하는 회개를 하였습니다. 9:5~15까지의 말씀이 다 에스라의 회개 기도 내용입니다. 에스라의 회개는 자기의 민족의 죄를 자신의 죄처럼, 연대적으로 책임을 지고 드리는 회개였습니다. 민족이나 단체의 회개운동은 다른 사람들의 죄를 자신의 죄처럼 책임을 느낄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3.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에 엎드려 먼저 죄를 자복하였을 때 많은 백성들이 모여 동참을 하였는데 거기에는 “남녀 어린아이들까지 큰 무리가 모였다”고 하였습니다(1절). 대표자, 지도자의 회개에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데는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어려울 것입니다. 무슨 일이나 큰 무리가 모여 합력하면 힘이 되는 것입니다.

4. 그 때에 백성들 중에서 “스가냐”란 사람이 나와서 “백성들의 힘을 모아 회개의 역사를 이루자”고 단합하는 말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졌으나 회개하면 소망이 있다. 우리 중에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사람들의 의논을 따라 이방여인 아내들과 그 소생들을 다 내보내게 하자. 그리하여 하나님의 언약을 세우고 율법을 시행하자” 하면서 에스라 제사장이 앞장서면 우리도 돕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군중들의 단합 현상입니다.

5. 이 일이 있자 에스라는 “여호하난”의 집에 들어가 금식기도를 한 후(6절) 백성들을 모아놓고 공포를 하였습니다(7절). 공포와 훈시를 받은 대상은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들(1차 귀환한 백성들, 7절)이었고, “누구든지 방백들과 장로들의 훈시를 따라 3일 내에 예루살렘에 오지 않으면 재산을 적몰하고 선민의 회에서 쫓아낼 것이라”(8절)고 한 것입니다. 민주국가에서는 개인적 회개에 자유가 있지만 선민 체제에서는 실권자의 통치로 회개를 강요할 수 있었습니다. 왕이 앞장서면 백성들은 뒤따르는 법인데, 이때는 지도자와 백성들이 주동한 일이었기 때문에 힘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힘에 굴복을 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모여 이방 여인 취한 사람들을 조사하여 그들을 끊어버렸다고 하였습니다(11~12절). 그때에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을 조사한즉 제사장 중에 다섯 사람, 레위 사람 중에 여섯 사람, 찬양하는 사람 중에도 한 사람, 문지기 하는 사람 중에 세 사람, 일반 백성 중에 100명을 헤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6. 이 일이 있을 무렵에 하나님이 큰 비를 내리셔서 온 백성들로 떨게 하였으니, 그때 그 백성들은 그날이 9월 22일인 것을 잊지 않았고(9절), 또 백성들은 큰 비를 만나면서 “우리가 이렇게 회개하오니 이일로 인하여 진노를 떠나게 하소서”(14절) 하므로, 그때의 큰 비를 “하나님의 진노와 회개의 채찍으로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안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과 혼인을 한다고 하여 꼭 믿게 된다는 보장은 없는 것입니다. 다만 성도는 어떤 환경에 있든지 자기의 거룩을 지킬 사명이 있고, 단체적 회개 운동은 지도층에서 솔선한 후 백성들의 호응을 받아야 하며, 또 자연적 재난을 하나님의 진노로 믿고 회개할 수 있어야 할 것을 아울러 교훈 받게 되는 것입니다.

(2007. 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