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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 강론




저자 지영근 목사



목 차


제1과 서론과 장로 세움에 대한 교훈 (딛1:1~9) 바로가기

제2과 교회 안의 꾸짖을 대상들 (딛1:10~16) 바로가기

제3과 계층별로 권면하심 (딛2:1~10) 바로가기

제4과 하나님의 구원과 양육 (딛2:11~15) 바로가기

제5과 지도자의 방침과 구원하시는 과정 (딛3:1~7) 바로가기

제6과 권면과 결론 (딛3:8~15) 바로가기

     설교보충 1. 이단과 구원파에 대하여 (딛3:10~11) 바로가기

 

 

제 1 과 서론과 장로 세움에 대한 교훈 (딛 1:1-9) 목록으로


“디도”는 어떤 사람이며 또 바울 사도와 디도와의 관계, 그리고 바울이 이 편지를 디도에게 전달하신 시기와 동기에 대하여는 <기독교 신앙백과>의 성경 개론 부분인 제251번 650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딛3:12).

본문 말씀은 두 대지로 나누어 “서론” 부분(1-4절)과 “장로 세움에 대한 교훈”(5-9절)으로 나누어 살필 수 있습니다.

1. 서론은 발신자의 사도된 목적과 수신자에게 보내는 축복입니다(1-4절).

1) 1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 하시므로 하나님께는 종의 신분으로, 그리스도께는 사도의 신분으로 자신의 입지를 생각하셨고,

2) 바울 자신을 사도로 세우신 목적은 “택한 백성들에게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가지게 하는 말씀(복음)을 전하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구원의 은혜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만 주십니다. 또 이 은혜는 사역자들의 증언을 통하여 믿음을 가지게 하시고, 가르침을 통하여 경건함(하나님을 경외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을 가지게 하시며 따라서 영생의 소망까지 가지게 하십니다.

3) 2절에서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아주 오랜 창조전) 계획하여(엡1:4) 이를 성취하실 것을 예수님께 약속하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뜻은 영원 전에 삼위의 하나님이 합의하신 계획이란 뜻입니다(창1:26).

4) 이 뜻이 예수님 때에 이르러 전도로 나타내시게 된 것입니다(마4:17,막1:14-15). 그리고 또 전도하는 사역을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예수님이 바울 사도께 맡기신 것입니다(3절). 바울 사도에게는 사도직에 포함하여 맡기셨지만 저희들에게는 직분 사명(행21:8,딤후4:5) 외에 평신도적 사명으로도 주셨습니다(마5:14-15,요1:40-46).

5) 바울 사도는 이 편지를 “같은 믿음을 따라 된 참 아들 디도에게 보낸다”(4절)고 하셨습니다. “같은 믿음”이란 믿음의 본질과 믿음을 가지게 된 원인이 하나님께 있음이 같으므로 정통적 동질성을 인정하신 말씀이며, “참 아들 됨”은 “디모데”를 참 아들로 여기신 사실과 같습니다(딤전1:2).

6) 4절에 나타난 축복의 말씀은 딤전1:2에 나타난 말씀의 뜻과 같습니다.

2. 장로를 세움에 대한 교훈(5-9절).

1) 바울이 디도를 그레데(지중해 중앙에 있는 큰 섬)에 머물게 하신 이유를 두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5절). 바울은 로마 감옥에 1차로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후 각처로 전도 순행하시던 중 디도를 그레데 섬에 머물러 사역하게 하신 것입니다.

2) 디도로 그곳에 머물게 하신 이유는 그 지역 교회들의 부족한 일들(10-12절)을 바로 잡게 하고, 각 성의 교회마다 장로들을 세워 교회를 다스리도록 명하셨기 때문입니다(5절). 여기에서 말씀한 장로는 현실 교회의 치리 장로와 같은 성격으로, 7절에서는 감독 또는 청지기라고도 하셨습니다. 신약 시대의 장로를 세운 시초는 행14:23부터이고, 장로, 감독, 청지기는 다 같은 뜻으로 직무상의 성질에 따라 표현한 명칭입니다.

3) 장로로 세울 수 있는 자격에 대하여 열세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7-9절).

ⓐ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이는 크게 나타나는 결함(죄와 부덕)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요,

ⓑ 자기 고집대로 하지 않아야 합니다. 융화성이 있고 겸손해야 한다는 뜻이요,

ⓒ 급히 분내지 않아야 하니, 이는 성격이 온유하고 인내성이 있어야 함이요,

ⓓ 술을 즐기지 않아야 하니, 이는 술 취하는 방탕성이 없어야 함이요,

ⓔ 구타하지 않아야 하니, 이는 폭력성이 없어야 함이요,

ⓕ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않아야 하니, 이는 직업이 건전할 뿐 아니라 부당한 재물에 뜻을 두지 않으므로 물질 생활의 결백을 뜻하며,

ⓖ “나그네를 대접하여야 하니”, 이는 이웃 봉사의 모범을 뜻하며,

ⓗ 착한 일 하기를 좋아하고,

ⓘ 근신(자기를 살피며 존절함)하며,

ⓙ 의롭게 행하며,

ⓚ 거룩(순결)하며,

ⓛ 절제(분수를 지킴)하며,

ⓜ 미쁜(진실한) 말씀을 그대로 지키는 자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미쁜 말씀을 그대로 지키는 자”라는 말씀을 깊이 음미하셔야 할 것입니다. 요즈음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말씀하신대로) 지키지 않고 취사선택하여 지키는 경향이 얼마나 많습니까 ? 장로 자격에 대한 말씀은 딤전3:1-7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4) 이와 같이 장로의 자격을 엄히 적용하여 세우는 이유는,

① 능히 바른 교훈으로 다른 사람을 권면하고,

②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9절). 교회 안에는 수준 미달의 교인들이 많은 중이들을 가르치고, 책망하며 잘 지도하려면 그만한 순결과 모범과 지식과 권위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장로의 책임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복음의 사역자된 책임자가 자격 있는 장로를 세워야 하는 점, 그리고 장로의 필요성과 자격과 책임이 무엇인가를 유의하셔야 할 것입니다. 교인 단체는 반드시 성경적이고 또 사무적인 일에 대하여 민주적인 통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제 2 과 교회 안의 꾸짖을 대상들 (딛 1:10-16) 목록으로


“그레데 인”들은 질적 수준이 낮은 사람들로 추측됩니다. 그들 중에 문제가 많았고, 그 중에는 복음을 대적하는 유대인들 중에 할례당(할례를 주장하는 집단;행11:2-3)이 더욱 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신앙을 현실 추구의 이득으로 삼으려 하거나 외식하는 신앙 생활 또는 이단적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복음적 성도들과 함께 있을 때 나타나는 부조리를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대상들은 질서 없는 “그레데 교회” 안에 있는 무리들입니다.

본문 말씀을 구분하면,

10-12절은 “그레데 교회의 교인들 세계에서 나타나는 잘못들”이요, 13-14절은 “문제점들에 대한 지도 방침”이요, 15-16절은 “거룩한 자들과 거룩치 못한 자들의 분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교인들 세계에서 나타나는 잘못들(10-12절).

1) 복종하지 아니함이니, 이는 성경 말씀과 지도자의 말을 불순종함이요,

2) 헛된 말로 속임이니, 이는 거짓말을 예사로 하며 말의 책임을 지지 않는 일이요,

3) 마땅치 않은 것을 가르치며 더러운 이를 취하고 집들을 온통 엎드려 치는 자들도 있었으니, 이는 유익이 없고 덕되지 않는 일들을 가르쳐 가정을 물질적 또는 윤리적으로 파괴시키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요즈음도 잘못된 선전에 돈을 뺏기고 불순한 사상에 사로 잡혀 가정을 어렵게 만드는 일들을 보게 됩니다.

4) 12절에서 “그레데 인” 중의 선지자(그레데 사람으로 말씀 사역하는 종)가 말하기를 “그레데 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 선지자가 바울에게 보고한 내용입니다.

① 이 판단은 “그레데” 선지자의 증언이므로 더욱 믿을만 하고, 바울도 “이 증거가 참되다”고 하셨습니다(13절).

② 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였으니 사실을 왜곡하거나 사실 아닌 것을 믿고 있을 때는 역시 거짓말을 더하게 될 것입니다.

③ 또 그들은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쟁이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짐승은 포악하여 사정없이 잡아 먹고 배부르면 만족하고 잠만 자는 것처럼 인간이 분별없이 이권에 개입하고 노력하지 않으며 진실하지 않고 인정이 없으며, 포악하며 먹기를 탐하는 방탕형의 사람들이 많은 상태이었으니, 교회로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디도”의 사역적 책임이 중하였습니다. 성도는 진실하고 온유, 겸손하며, 근실하고 현실 집착이 소극적이어야 할 것입니다(요일2:15).

2.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지도하신 방침은(13-14절),

1) 바울 사도는 디도 사역자로 하여금 잘못하는 자들을 꾸짖으라고 하였습니다. 진실한 성도는 죄와 관련하여 책망을 받을 때 겸손하게 듣고 회개할 것입니다. 그러나 완고한 자는 자기의 부족이나 실수를 인정하려 하지 않거나 지도자의 책망을 거부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그래서 복음 사역자가 책망의 힘을 잃고 문제를 싸 않은채 목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엄히 책망하라”고 하셨습니다.

2) “저희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케 하고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자들(유대주의 지도자들)의 명령에 따르지 않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① 복음 사역자가 성도의 믿음(교리적 신앙)을 온전케 하기 위하여 성경을 열심히 가르쳐야 합니다. 가르침과 배움이 일치하지 못하고, 무지함이 죄가 되어 문제가 커지고 있습니다.

②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를 듣거나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는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는 등의 율법주의적 주장일 것이요,

③ “진리를 배반하는 자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 특히 할례당원이나 거짓 교사들의 명령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복음적 지도를 받는 성도들이 되게 할 것을 지도하신 것입니다.

3. 거룩한 자들과 거룩치 못한 자들의 분별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15-16절).

1) 한 농장에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것처럼 현실 교회 안에도 참 성도와 외식하는 교인들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마13:25-30). 이 경우에 외식하는 자들은 참 성도의 연단의 대상, 교육의 대상, 사랑의 대상, 자아 반성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필요에 의하여 이런 외식자들을 상당 기간 용납하시는 것입니다(잠16:4).

2)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깨끗함이란 거룩한 생활로서의 순결을 뜻합니다. 이 순결은 곧 마음의 순결이고 상대방을 바라보는 깨끗한 눈과 같은 것입니다. 이런 성도는 이웃을 색안경으로 보지 않으며 우상의 제물 같은 것도 믿음 안에서 더럽게 여기지 않습니다(고전8:4-6). 따라서 순결한 성도는 모든 환경에 대하여 긍정적 입장을 취하고 모든 환경을 깨끗한 목적에 활용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3) 그러나 반대로 “더러운 자(거룩에 힘쓰지 않는 자),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다”고 하셨으니, 이는 “저희의 마음과 양심이 더럽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15절). 마음이 깨끗지 않으면 모든 사물을 볼 때에 역시 사욕과 깨끗지 못한 마음의 시각으로 보기 때문에 깨끗지 않게 보일 것이며, 따라서 부정적 시각으로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같은 사건을 접하였을 때 착한 사람의 판단과 악한 사람의 판단이 다른 것과 같은 것입니다.

4) 외식자들은 “(말로는)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한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여 “입으로 시인하고 내용을 강조하지만 거품만 나타낼뿐 실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키지 않는 자는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이고(요14:23) 또 죽은 믿음의 소유자입니다(약2:17). 따라서 자기의 말과 행위가 맞지 않는 외식자들은 하나님이 보실 때에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않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문제는 성도 자신이 그런 대열에 서있지 않은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교회 안에 잠재되어 있는 악의 요소들에 대하여 깊이 탐지하고 이단의 요소와 외식과 부도덕 행위들을 정화시키는 차원에서 노력하는 성도들이 되셔야 할 것입니다. “디도”와 같은 많은 복음 사역자들이 이런 짐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셔야 할 것입니다.

 

 

제 3 과 계층별로 권면하심 (딛 2:1-10) 목록으로


본문 1절에서는 “복음 사역자가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말하라” 하셨고, 3-10절에서는 늙은 남자, 늙은 여자, 젊은 여자, 젊은 남자, 종들에게 그들의 실상에 따라 권면하신 말씀입니다.

1. 복음 사역자는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말하여야 합니다(1절)

증언자가 가장 죄짓기 쉬운 것이 말의 실수입니다(약3:1-2). 따라서 진리를 증언할 때 교리에 어긋남이 없이 증언하여야 할 것과 성경에 없는 말씀을 있는 듯 부가하거나 성경에 있는 말씀을 없는 듯이 증언에서 빼거나 하는 것이 위험한 일이며, 성경 중심 사상보다 자신의 견해를 앞세울까 두렵고, 개인적 오해나 사랑을 해치는 표현으로 말에 실수될까 두렵습니다. 따라서 가급적 성경 본문을 이탈하여 증거하지 않음이 좋고, 증언 자료를 기록하여 3-4차 검토함이 필요합니다. 이런 일에 예민하지 못하여 실수를 많이 하면, “증언자로서의 사명을 잘하였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2. 각 계층별로 권면하신 말씀입니다(1-10절).

1) 2절에서 “늙은 남자는 절제, 경건, 근신, 믿음, 사랑, 인내에 온전케 하라”고 하셨습니다. 절제는 분수를 지키는 것이요, 경건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존절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며, 근신은 항상 자기를 살펴 조심하는 것이고,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견고히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대인 관계를 원만히 함이고, 인내는 어려움을 잘 참는 것입니다. 늙은 남자일수록 이런 책임에 나태하여질 수 있을 것입니다.

2) 3절에서 늙은 여자들도 늙은 남자와 같이 (이와 같이) 모든 행실이 거룩한 중 “참소하지 말 것과 술의 종이 되지 말 것과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참소는 이웃 간에 사랑과 신뢰를 해치는 이간질 같은 언행이요, 술의 종이 됨은 술취한 상태에서 부도덕한 언행을 하지 말 것을 교훈한 것입니다. 또 “젊은 여인들을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4절).

3) 4절에서 “젊은 여인들은 늙은 여인들로부터 가르침을 받되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근신하며, 순전하며(착하고 진실함),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남편에게 복종하라” 하셨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5절). 이 말씀에서 젊은 여인들은 자신들의 미덕과 사명이 어떤 것인지를 꼭 알고 시행하셔야 할 것입니다. 특히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으므로 불행한 상태에서 기독교를 명예롭게 하지 못하였다면 그 책임이 남편을 거역한 여인에게 있음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4) 6-8절에서 젊은 남자를 권면하셨습니다. 젊은 남자는 “근신하며 범사에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고 교훈의 부패치 않은 것(바른 교훈 및 합당하게 적용되는 교훈)과 경건에 관한 교훈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는 말과 신앙과 교훈과 모범을 나타내야 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젊은 남자는 가정의 중심 역할을 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 사명을 다할 때 복음의 대적자들로부터 “악하다”는 비판을 면하게 될 것입니다(8절). 성도의 작은 약점이라도 대적자들에게는 크게 보이고, 그것이 성도의 위신을 추락시키며, 나가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구실을 주게되는 것입니다.

5) 9-10절에서 “종들은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며 상전을 기쁘게 하며 거스려 말하지 말고 (부당한 이득을 챙겨) 떼어먹지 않으며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여 범사에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상전과 종의 신분을 인정하셨습니다. 종이 된 것도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따라서 종이 그 주인에게 잘하여 종의 사명을 다 한다면 이로써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종이 상전에게 복종할 때 하나님의 교훈이 빛난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여겨 모든 성도가 복종을 미덕으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① 증언자가 유의할 점과,

② 남녀노소 및 종에게 주시는 합당한 교훈을 깊이 인식하셔야 할 것입니다.

 

 

제 4 과 하나님의 구원과 양육 (딛 2:11-15) 목록으로


이 말씀의 11절과 14절은 “하나님이 구원을 베푸시는 은혜”를 말씀하셨고, 12-13절은 “경건한 백성으로 양육하시는 은혜”를 말씀하셨으며, 15절에서는 “복음 사역자의 권위와 사역에 대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1. 하나님이 구원 베푸시는 은혜에 대하여(11,14절).

1) 11절에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하셨는데, 이 “모든 사람”은 세상 인류 전부를 통칭하시는 말씀이 아니고 “하나님의 택하신 모든 백성”(엡1:4,요17:9,행13:48,살후1:2,고전10:5)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택자에 한하여 구원하시며 인류를 다 구원 못하는 책임을 성도에게 지우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2) “은혜가 나타나” 하신 말씀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나 “양육하시는 일”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타내 주신 것임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수고도 하나님의 은혜 섭리 안에 있습니다.

3) 14절에서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셨다” 하심은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죄책을 대신 짊어지시고 자신을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내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는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택한 백성들을 그들의 모든 불법한 죄악에서 용서받도록 건져 주신 것입니다. 이로써 죄인들이 심판을 면하게 된 것입니다.

4) 그리고 또 모든 부패성(계속 범죄할 수 있는 악의 요소)을 깨끗게 하여 하나님의 뜻을 복종하는 “선한 일에 열심내는 선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셨으니(14절) 은혜로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은 계속 말씀과 기도로 더욱 성결에 임하고(딤전4:5) 하나님의 뜻을 복종하여 착한 일에 힘쓰는 백성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경건한 백성으로 양육하시는 은혜”에 대하여(12-13절).

1) 구속의 은혜는 궁극적 구원의 시작이고, 양육은 성화(인격 및 생활의 순결)의 과정이며, 구원의 완성은 영화(부활)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성도를 양육하시되,

① “경건치 않은 것(하나님의 뜻을 떠나 행하는 모든 것)과 이 세상 정욕(육체와 현실에 집착하는 것)을 다 버리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다 버린다”는 뜻은 현실 정욕에 미련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로 기울어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사는 성도를 원하십니다(요일2:15).

②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살아가도록” 양육하십니다. “근신”이란 항상 자기를 살펴 바로 잡는 태도요, “의로움”은 합법을 따르는 태도요, “경건함”이란 믿음 안에서 취하는 태도입니다.

③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남을 기다리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성도로 하여금 영원한 천국과 주님의 나타나심과 주님이 주실 상급을 기다리면서 준비하는 자세로 살아가도록 양육하신다는 뜻입니다. 부모의 뜻과 교육의 목적대로 자라나는 자녀가 있다면 그는 크게 효도하는 자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구원을 받고 또 양육을 받되 세상적 정욕에서 떠나 의롭고 경건하게 살면서 선한 일에 열심하고 내세를 사모하는 성도로 키우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든 성도가 꼭 그렇게 양육되어야 할 것입니다.

3. 복음 사역자의 권위와 사역에 대한 말씀입니다(15절).

1) 복음 사역자는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권위가 있어서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무엇으로 권위를 인정받아야 할까요 ? 경건한 생활과 말씀 지식 그리고 하나님이 세워 주신 직분으로 권위를 세워야 합니다. 말씀 지식과 경건 생활이 미흡하면 힘있는 사역자로 인정하여 존경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경우에 성도들은 복음 사역자의 능력에 미치지 못하면서도 권위가 미약한 사역자를 존경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의 교만이겠지요. 여기에서 분별성이 부족한 사람들은 현실적인 권위나 자신을 과시하여 인정을 받으려 하는가 하면 그것을 알아 주는 대상도 있습니다. 이런 일은 대단히 잘못된 일입니다. 복음 사역자의 권위는 경건과 지식과 직분에 있으며, 이것은 과시하여 나타낼 일이 아님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마12:19,고전13:4). 혹 성도가 복음 사역자를 업신여긴다면 하나님이 주신 직분까지 업신여김이 되어 하나님의 섭리를 거역할 우려가 있은즉 주의하여야 할 것입니다.

2) 복음 사역자는 “증언하고 권면하며 책망할 책임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① 증언할 것은 15절에서 “이것을 말하라” 하셨는데, 그 말씀이 바로 11-14절에 나타난 구원의 복음과 양육의 교훈입니다.

② 증언하였으나 잘 지켜지지 않을 때 권면하셔야 합니다. 증언이 보편적 대상을 상대로 한 것이라면 권면은 특정인을 상대로 한 것입니다.

③ “책망하라” 하셨으니 복음 사역자가 증언하고 권면하였는데도 성도가 순종하지 않을 때는 책망하여야 하며, 그 이상으로 징계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히12:5-7).

이상의 말씀에서 저희들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를 깨닫고 또 하나님의 양육하시는 은혜와 목적을 따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하셔야 할 것입니다.

 

 

제 5 과 지도자의 방침과 구원하시는 과정 (딛 3:1-7) 목록으로


이 말씀에서는 “복음 사역자의 지도 방침”(1-2절)과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과정”(3-7절)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저희들은 신앙 지도자의 자세와 목표를 배울 수 있고 또 하나님이 우리를 어떤 상태에서, 어떤 근거로 또 어떻게 구원하시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1. 복음 사역자의 지도 방침에 대하여(1-2절).

1) 1절에서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복음 사역자가 교인들을 “그렇게 하도록 지도하라”는 뜻입니다. 문제는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정사란 ‘알카이스’(ἀρχαίς)로 통치자, 치리자들을 뜻하고, “권세 잡은 자들”은 ‘에쿠시아이스’(ἐξουσίαις)로 세력자들을 의미합니다. 이 용어가 눅20:20에서는 통치자, 총독의 권세로 말씀할 때 사용하셨고, 고전15:24에서는 “멸망 받을 권세와 능력”이라 하시므로 악의 세력에 대하여 사용하였으며, 엡1:21에서는 “세상 권세와 능력”이라 하시므로 악의 의미를 배제한 상태로 사용하셨고, 벧전3:22에서는 영계의 권세자를 나타내셨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교회적, 사회적 또는 영적 권위에 복종하는 성도가 되게 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도 세금을 내셨고(마17:24-27), 바울 사도가 롬13:1-2에서 말씀하신 뜻과도 상통함이 있는 것입니다. “복종”은 무조건 행함이요, “순종”은 의지적으로 행함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성도의 세계는 신앙적 지도에 대한 복종과 순종이 있을 때 더 사랑스러워 질 것입니다.

2)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예비하는 자가 되도록 지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선한 일”은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것입니다. “예비한다”는 뜻은 사명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것입니다. 딤후2:21-22에서 성도를 그릇으로 비유하시고 “자기를 깨끗게 할 때 주인의 쓰심에 예비함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자기 원대로 정결함을 지키는 것이 선한 일에 예비하는 태도입니다.

3)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하셨으니, 이 말씀은 “어떤 과격한 일이 있어도 대인 관계를 사랑으로 유지하도록 지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성도 간에 훼방하거나 다툴 필요가 없고 잘못에 대하여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한 태도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정의를 감추는 것은 관용이 아닙니다. 관용받을 자는 마땅히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시인하며 변화의 태도를 취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도는 정의를 실현할 책임과 아울러 형제를 사랑할 책임이 있음을 아셔서 두 가지를 다 시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형제와 어떤 문제로 대립이 있을 때 합법을 주장할지언정 훼방은 하지 말며, 법리적 사리에 승복함은 물론 다투지 말 것이며, 관용성 있게 대하고 상대방이 완고할지라도 온유한 태도를 나타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여야 합니다(2절 끝).

2.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과정에 대하여(3-7절).

이 말씀은 관용성 있는 태도를 취하여야 할 이유를 설명하시면서 주신 말씀입니다..

1) “우리”란 자신들도 과거에 악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구원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요, 진리를 순종치 않은 자요, 악에 대하여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향락에 종노릇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다”고 하셨습니다(3-4절). 이상의 악독에 대하여 낱낱이 점검해 보시면서 그런 악독이 우리 자신들에게 있지 않은지를 반성하셔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이상과 같은 죄인들을 “오직 그의 사랑에 근거하여 구원의 은총을 주셨다”고 하셨습니다(5절).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사랑으로 불쌍히 여기심)으로 구원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란 믿음을 가진 다음에 의롭게 행한 일을 의미합니다. 믿기 전에는 의로운 행위가 있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믿고 의를 행할 것을 예견하시지 않고 무조건 사랑하여 구원하셨다는 뜻입니다(롬9:11).

3) 사랑에 근거하여 그 택한 자들을 구원하시는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5-7절).

① 중생의 씻음입니다. 이 말씀은 거듭나는 은혜를 뜻하며,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에게(엡2:1) 영적 새 생명을 부여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신생하게 하시는 것입니다(요일3:1-2,9). 이때에 “씻어 주신다”는 뜻은 불신앙적 범죄를 용서하시고 불신앙적 악의 요소를 없애 주심으로 믿음으로 새 출발하게 하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요13:10). 또 “거듭났다”는 사실은 믿음과 함께 죄사함 받고 구원을 확보하였다는 뜻이므로(요17:9,12) 죄를 씻어 주심이 되는 것입니다(벧전1:22).

②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주십니다(5절). 이 말씀은 성령의 내주하심과 풍성하게 역사하심으로 성도를 변화되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님은 주님이 보내 주신 것입니다(요16:6,7,행1:4-5). 다시 말하면 거듭난 다음에 신앙 인격으로 변화되어 변화로운 생활을 하도록 성령님이 감동하시고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③ 은혜로 죄사함 받아 의롭게 되고 영생하는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후사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7절). 후사란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의 동반자를 의미합니다.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 “씨뿌림과 자라게 함과 거둠”의 단계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과정도 크게 나누면 중생, 성화, 영화의 단계로 구원하십니다. 이 사실은 본문의 중생의 씻음과 새롭게 하심과 후사되게 하심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죄인들을 사랑하사 은혜로 구원해 주신 사실을 깊이 감사하며 권위에 복종하는 성도, 사랑하는 성도가 되시고, 성령님의 새롭게 지도하시는 은혜를 힘입어 예수님의 거룩을 닮는 성도들이 되셔야 하겠습니다.

 

 

제 6 과 권면과 결론 (딛 3:8-15) 목록으로


본문의 8-11절 말씀은 바울이 디도 사역자에게 권면하시는 말씀이요, 12-15절은 결론의 말씀입니다. 이 결론 내용에서 만남을 위한 부탁(12절), 구제를 위한 부탁(13절), 배움에 힘쓰라는 부탁(14절)과 문안과 축복으로(15절) 끝을 맺으셨습니다.

1. 복음 사역자 “디도”에게 권면하신 말씀(8-11절).

1)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8절)고 하셨습니다. “이 여러 것”이란 7절에서 소개된 하나님의 구원 사역 등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진실하고 아름다운(미쁘다) 복음이요,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복음 사역자는 구원의 복음을 확신한 다음 굳세게 증언하여야 할 것입니다. 진리를 굳세게 증언함으로써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조심하여 선한 일을 하게 하기 위함이라”(8절) 하시므로 증언의 결과는 믿는 자에 한하여 반드시 선행으로 나타나야 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2) 다섯 가지 피할 것을 권면하셨습니다(9-11절). 이 다섯 가지 피할 것은 어리석은 변론, 족보 이야기, 분쟁, 율법에 대한 다툼과 이단에 속한 사람을 교제하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① 성도는 어리석은 변론을 피하여야 합니다. 어리석은 변론은 신앙적 유익이 없는 변론들입니다. 결심없이 시간적 소모를 가져 오는 변론을 피하여야 할 것입니다.

② 족보 이야기를 피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족보 이야기는 성경 연구상 필요하여 이야기 한 것이 아니고 유대주의자들(아브라함의 자손이란 명분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함)의 잘못된 사상을 펼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족보 이야기가 무익한 것입니다(9절).

③ 분쟁을 피하라고 하셨습니다. 사상의 대립이나 이해 관계의 대립이 있다 할지라도 다투고 분쟁하는 태도를 피하면서 관용, 양보 또는 법으로 해결하도록 노력하셔야 할 것이요,

④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여야 합니다. 율법에 대한 다툼은 율법을 해석함에 대한 차이 또는 율법을 잘 지키고 못 지키는 데서 비롯되는 차이 등으로 다툼을 초래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지만 그런 문제들이 다툼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닌즉 지혜를 써서 해석을 일치할 필요가 있고, 또 율법을 지키는 문제는 각자의 양심대로 할 것이니까 역시 다툼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⑤ 이단에 속한 사람들과의 교제를 피하라고 하셨습니다(10절). 그들을 무조건 피하기 전에 “한 두 번 훈계하고 멀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단자가 한 두 번 훈계를 듣지 않을 때는 그 이단 사상에 깊이 잠식된 상태이기 때문에 멀리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11절에서 이단자들은 “부패하여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는다”고 하셨습니다. 이단은 구원 문제에 관한 도리를 왜곡하여 구원 받을 소망이 없도록 주장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런 문제를 연구하실 때는 현재 이단으로 규명된 단체들이 무엇을 잘못 주장하여 이단이 되었는지를 알아 보시면 될 것입니다. 대체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교리, 십자가를 통한 속죄 교리, 내세 교리, 심판 문제, 의와 성결에 대한 문제 등의 왜곡으로 생겨집니다. 그들이 부패한 것은 진리 분변을 못하기 때문이요, “스스로 정죄한 자”란 뜻은 진리를 잘못 해석하여 자신이 자신을 정죄받게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이단은 큰 죄악입니다. 따라서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는다”고 하셨습니다.

2. 결론에서 주신 말씀(12-15절).

1) 만남에 대한 부탁으로(12절), “아데마”나 “두기고”를(두 사람 중 누구 한 사람을) 네게(디도) 보낼 것이니 만나고(그로 대신 교회를 지키게 한 후) 그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고 하셨습니다. 이 경우 그 당시에 바울 사도가 “니고볼리(고린도의 서북쪽)에 머물러 계셨다는 의미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바울이 다른 곳에서 사역을 하시는 중에 이 편지를 보내시고 니고볼리에 가셔서 과동할 뜻과 함께 그곳에서 디도를 만나려고 계획하신 것입니다(12절).

2) 구제를 위한 부탁입니다. 13절에서 “교법사(율법을 가르치는 선생) 세나와 및 아볼로를 급히 먼저 보내어 저희로 궁핍함이 없게 하라” 하셨으니 이는 그 당시에 예루살렘과 유대 지역이 흉년에 처해 있어서(고전16:1-4) 이미 구제 사업이 이방 지역에서 펼쳐지고 있었고(고후8:10-14), 디도로 하여금 그 일에 힘쓰도록 권하신 사실도 있었습니다(고후8:4-6). 따라서 “저희로 궁핍함이 없게 하라”는 말씀은 마게도냐와 아가야(고후9:1-4) 및 니고볼리 지역에서 속히 구제금을 거두어 유다 지역 백성들의 궁핍을 덜어 주라는 뜻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니고볼리 지역이 마게도냐 서쪽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3) 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우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좋은 일”은 13절과 관련한 구제 사업입니다. 구제 사업도 배우고 힘쓰며 연습할 때 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헌금도 연습하면 습관이 되어 더 잘할 수 있습니다(딤전4:7).

4) 문안과 축복입니다. 15절에서 먼저 사도 바울과 함께 있는 동역자들이 디도에게 문안하였고 “믿음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너도(디도) 문안하라” 하시므로 뜻과 사명이 통하는 성도들끼리의 문안 교제를 말씀하신 후 “은혜가 너희 무리들에게 있을지어다” 하시므로 축복하시고 결론을 맺은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성도가 피해야 할 일들과 구제(선한 일)에 힘쓰고 문안으로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복음 사역자의 축복을 귀하게 여기는 성도들이 되셔야 할 것입니다.

 

 

설교보충 1. 이단과 구원파에 대하여 (딛 3:10-11) 목록으로


본문에서 “이단자들을 한 두 번 훈계한 후 멀리하라”고 하셨습니다.

1. 이단의 일반적 상식.

1) 성경에 이단 또는 이단자란 명칭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 있습니다. 즉, 이단(본문), 다른 교훈(히13:9), 적 그리스도(요일2:22), 양의 가죽을 쓴 이리(마7:15), 거짓 선지자(마7:15), 가만히 들어온 자(유4,갈2:4), 불법자(마7:23), 누룩(마16:6,12,막8:15) 등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2) “이단”은 다른 교훈을 하는 자(히13:9),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갈1:8) 또는 처음과 끝이 다른 자란 뜻입니다. 이단이란 원문 “하이레시스”(αἵρεσις)는 “독자적 견해”, “자유로운 선택”을 뜻하며, 보편성과 공통성에 반대되는 뜻으로 이 용어가 학파, 종파(행5:17,26:5), 편당(고전11:19), 이단(벧후2:1)을 뜻할 때 사용되었고, 종교적 특수한 주장이나 색다른 종파를 분별하거나 범종교에서 특정 교파를 구별할 때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3) 이단의 본질적 규정은 구원받을 수 없도록 주장하는 교리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과 삼위일체에 대한 잘못된 주장, 대속의 진리 부인, 천국과 지옥 부인, 성경관에 대한 잘못, 계시에 대한 잘못된 견해 등 많은 것을 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정리하면,

① 역사적 기독교의 보편적 진리를 거부하거나 왜곡하는 것이며,

② 성경 내용의 명백하고도 자명한 교훈을 부정하거나,

③ 성경의 기본적 교리(사도신경 같은 내용)를 잘못 해석하거나,

④ 성경의 내용 및 권위를 가감하는 잘못 등이라 할 것입니다.

4) 성경에서 이단을 경계하도록 교훈하신 말씀은 갈1:6-10, 골2:8, 벧전5:8, 벧후2:1,3:4, 요일4:1-3, 요이7, 딛3:10-11 등에서 말씀하셨고,

5) 이단 출현의 역사는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파, 사두개파, 헤롯파(누룩)였으며, 사도 시대 후에는 에비온파, 그노시스파, 아리우스파 등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포교된 대표적 이단파는 여호와의 증인파, 안식교파, 박태선교, 통일교, 구원파 등이었으며, 그 외에도 사이비 종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한동안 구원파의 이단 운동이 기성 교회 성도들에게 큰 혼란을 주며 목회자들을 괴롭힌 일이 있었습니다.

6) 이단의 특성은 종파마다 다르지만 대동소이한 점이 있습니다. 확실한 정체를 알리지 않는 점, 공개 취재에 응하지 않는 점,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인 듯이 선전하는 점, 성경보다 주관적 체험을 앞세우는 점, 개인의 체험을 교리화하고 교주를 신격화하며 불륜의 여론이 많고 은혜의 교리,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하고 다른 구원설을 주장하며 말세론을 고조하여 위기의식을 조성하고 때로는 기적을 앞세워 선전하기도 합니다.

2. 구원파에 대하여(문헌 발췌).

1) 구원파의 교주는 권신찬(목사)입니다. 그는 51년에 장로회 신학을 졸업한 후 경북, 대구 등지에서 교회 사역을 하다가 61년에 통합측 경북 노회에서 목사가 되었으나 그 이듬해부터 선교사에게 재침례를 받고 이단을 전하므로 경북 노회에서 제명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사위인 유병언씨가 복음주의적 극동방송국(인천) 부국장으로 있고, 권신찬씨가 전도 과장으로 있으면서 이단적 교리를 전파하였다고 합니다. 그후 그 방송을 흥미있게 듣는 사람들이 1년 1차 모여 동지를 규합하였고, “한국평신도 복음선교회”란 이름으로 광고하여(81,11,21) 총회를 구성하였는데 그때 총회장은 변우섭이요, 임원은 강윤호, 김진호, 조민수 등이었고 이들은 다 목사 아닌 의사, 교수, 사업가라고 합니다.

이단 교회의 핵심 멤버는 권신찬과 유병언과 정행덕(사업가)이었다고 합니다. 82,12,6에 “기독교 복음침례회”란 명칭으로 정체를 드러냈는데, ”기성 교회에는 구원이 없고 자기들 교회에만 구원이 있다“고 하면서 죄사함과 구원의 확신을 강조한데서 ”구원파“란 명칭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약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유혹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2) 구원파의 잘못된 주장은,

① 깨달음의 교리를 펼치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롬8:1)는 말씀을 심판의 차원에서 이해하지 않고 순결을 포함하여 이해하는 과오를 범하는 것입니다. 정죄함이 없은즉 심판을 받지 않는 줄로만 믿어야 하는데 자신의 부패성까지 다 없어진 것으로 믿도록 강요하여 죄없는 의인이란 의식을 가지도록 만들어 기쁨을 가지게 하며, 그것을 깨달은 날을 신생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빚을 지고 고민하였으나 돈있는 형님이 빚을 갚아 주면 부채에서 해방되는 것처럼 죄와 상관없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속죄의 도리를 정죄와 심판을 면하는데 국한시키지 않고 순결에까지 확장시켜서 “죄 없으니까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죄와 심판을 면하는 죄사함을 받았어도 여전히 부패성은 남아 있기 때문에(롬7:19-24,요일1:8) 죄(부패성)가 있는 자신임을 의식하여야 하고, 이것을 없애는 것은 돌이키는 회개와 말씀과 기도로 성화시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요17:17,19,딤전4:5).

②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가 성도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신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죄의 담당은 어디까지나 심판을 면하게 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도의 인격 자체를 깨끗게 하신 것은 아닙니다. 성도의 인격을 깨끗게 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거룩하게 하시는 사역으로, 말씀과 기도로 성취시키다가(시119:9,엡5:26) 영육의 분리 즉, 죽음과 함께 완성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죽지 않고는 성화가 완성될 수 없습니다. 고후7:1에 보시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데서 자신을 깨끗게 하자”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믿음 생활을 하는 중에서 육신은 육신대로 죄의 도구가 되지 않게 하고, 영은 영대로 깨끗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요, 이것을 성취하는 방법은 말씀과 기도의 역할로 죄를 멀리하는 것이며, 죽음을 맞이할 때 죄의 도구가 되었던 육체가 소멸되고 영혼은 유혹이 없는 세계로 가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순결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천국에는 더러운 자가 가지 못합니다(계21:23-27). 그러나 세상을 떠난 구원의 영과 부활한 몸은 갈 수 있으니까(눅23:43) 성도의 죽음이 곧 성화의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파의 잘못된 주장은 “믿음의 인격과 생활 속에 죄가 없다”는 것이요, 있는 것은 사단의 짓이요 성도의 책임이 아니며 따라서 회개할 일도 아니라 하여 자기 속에서 역사하는 죄악까지 사단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것입니다. “내가 범죄하는 것이 아니고 사단이 한 것이므로 책임이 없다” 한다면, 바울 사도가 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라”고 탄식을 하였겠습니까 ? “내 속에서 역사하는 죄악”은 자신이 사단의 유혹을 용납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롬7:19-25). 롬7:25에서 바울도 그 책임을 통감하셨습니다.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긴 것”은 자신이 자기의 부패성(육신:살크;σἀρξ)으로 죄의 법을 섬겼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믿음 생활 중의 죄의 책임을 자신이 져야 하는 것이며, 따라서 성경은 “항상 두려워 함으로 너희의 구원(성화)을 이루라”고도 하셨습니다(빌2:12).

③ 이상 외에도 신빙성 없는 주장을 하는 것이 많습니다. 구원받은 확증을 언제 받았느냐 함이 중요하다 하며 그 난자를 자기의 신생일로 알고 있으면 회개할 필요도 없고 교회 조직에 의한 생활도 필요없으며 성경 공부만 강조하고 헌금, 새벽 기도, 직분 등으로 교인을 속박해서도 안된다고 합니다. 신학을 거부하였고, 체계적인 성경 해석을 안하며 말세의 날을 유대인 독립년도(1948년)에 한 세대 40년을 더한 1987년이라 하였고, 자기들만 알고 있으면 되며 예수님이 남산에 오신다는 주장을 하였다고 합니다.

④ 그들의 포교 방법은 대체로 구원의 확실한 대답을 못하는 초신자들을 유혹하지만 현실 기성 교회에는 오래된 교인들도 구원의 확신과 과정에 대하여 대답 못하는 성도가 있으며 심지어는 교역자들과도 토론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누구와도 토론과 유혹의 기회를 가지려 하며,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 언제 거듭났습니까 ? 지금 죄인입니까 ? 의인입니까 ?”하는 식으로 대화를 시작하여 이에 대한 성경적 명확한 대답을 못할 때는 여지없이 자기들의 교리로 설득하려 합니다. 그들이 모이는 교회는 교회라 하지 않는 집회소이며, 예배 의식에 얽매임이 없이 성경 공부만 열중케 하고, 헌금, 십일조 등을 하지 않으며, 회비, 봉사비 명목으로 희사금을 거두고, 삼우 트레이닝, 신용협동조합 등 10여 기업체를 운영하여 활동자금비, 친교여행비 등에 쓴다고 합니다. 계급 의식이 없이 다 형제로 대하며, 직분 조직도 없고 성수 주일 강조나 회개 기도도 없으며 개인 기도나 대중 합심기도를 경시하고 신도간의 교제가 곧 예배라 하며, 예배란 용어 대신 집회란 용어를 쓰고, 성경 공부만 시키며 기성 교회를 전면 부정하도록 설득한다고 합니다. 한번 그 단체에 들어가서 합류한 다음에는 임의로 빠져 나오기 어렵다 하며, 사고 방식과 가치관까지 달라져서 일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⑤ 이 종파는 한국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퍼지고 있으며, 재력과 함께 외국에도 진출한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모든 성도들은 이런 유혹에 현혹되지 않기 위하여 구원의 도리에 확신을 가져야 하며 자기 믿음을 성경적으로 정립하여야 합니다. 이단은 한 두 가지 중요한 교리가 다르고 여러 가지는 기성 교회보다 더 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엇이나 한 가지 한 가지 주장과 태도를 성경적으로 대조하여 그 타당성과 부당성을 가려야 할 것이며, 타당성 있는 일까지 지적할 필요는 없고 부당한 요소를 배제하지 않으면서 한 집단으로 행동한다면 그 단체원들이 다 이단자에 포함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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