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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후서 강론


저자 지영근 목사



목 차


제1과 격려의 말씀 (살후 1:1~12) 27 바로가기

제2과 말세에 대한 지식 (살후 2:1~12) 30 바로가기

제3과 감사와 부탁과 축복 (살후 2:13~17) 33 바로가기

제4과 결론의 말씀 (살후 3:1~18) 35 바로가기


제 1 과 격려의 말씀 (살후 1:1-12) 목록으로


데살로니가후서의 본문을 살피시려면 먼저 개론을 참고하심이 유익합니다. 본인이 집필한 󰡔기독교신앙백과󰡕의 개론을 수록한 부분에서 “데살로니가후서”를 참고하십시오. 본 장을 살피면 4대지로 나눌 수 있고 총 제목이 “격려의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1-2절은 “서론과 축복”이고, 3-5절은 “감사와 칭찬에 대한 말씀”이며, 6-10절은 “하나님의 공의 실현에 대한 말씀”이고, 11-12절은 “사역자들의 소원과 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서론과 축복(1-2절)

이 말씀의 1절은 발송자와 수신자를 기록한 말씀으로, 전서의 서론과 같은 내용이요, 2절의 축복하신 말씀에서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란 말씀이 전서에 비할 때 부가되었습니다. 이 말씀에서 바울 사도의 편지 쓰시는 격식이 거의 일정함을 알 수 있습니다. 3-5절에 나타난 감사와 칭찬의 말씀도 역시 전서의 내용과 비슷한 것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축복은 성도의 자격과 지도자의 자격으로 할지라도 복을 주시는 근원자는 하나님과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그 근원자를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명시하신 줄 압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아버지이신즉 복을 주실 것이고, 예수님은 구원자요 중보자이시므로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축복의 근원자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2. 감사와 칭찬에 대한 말씀(3-5절)

1)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하여 감사와 칭찬을 아끼지 않음은 전서(1:3)에서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말씀하신 바와 같이 본문에서는 “믿음이 더욱 자람과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과(3절) 핍박과 환난 중에서 믿음을 인하여 참는 것(인내)”이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자랑할 일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전서를 보내실 때의 칭찬하였던 일들이 계속되어 더 성장하므로 여러 교회에까지 자랑할 수 있게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성도들에게 칭찬하셨습니다.

2) 5절에서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라 하셨으니 여기의 ‘이는’ 하신 것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참신한 믿음의 처신(믿음, 사랑, 인내)을 뜻하고 그 사실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믿는 믿음의 증표란 뜻입니다. 심판을 믿지 않는 사람은 신앙의 참신한 행위를 나타내기 어렵습니다. 또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신 것은 바울이 성도들의 미덕을 칭찬, 격려, 권장하는 목적이 그들의 성화를 더욱 진전시켜 천국(현세, 내세)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히 여김 받는 성도들이 되게 함”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거룩(성결)을 가장 합당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벧전 1:16).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는다” 하심은 성도가 천국의 깨끗한 회원이 되기 위하여(성화 되기 위한 목적으로) “고난을 받으며 인내하는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공의 실현에 대한 말씀(6-10절)

1)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성도들이 이를 믿음으로 극복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믿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이 없다면 누가 고난을 참으려 하겠습니까? 그래서 바울 사도는 핍박을 참고 견디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6-7절에서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즉 핍박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믿음을 인하여)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공의로 설명하신 내용은 상선벌악으로 심판하시는 것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완전하게 공의를 나타내시는 때는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입니다. 이때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세상 끝날로, 살전 4:16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강림하실 때 “불꽃 중에 나타나심”은 모세 때에 가시떨기 불꽃 중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연상할 수 있고(출 3:2) 또 불로 세상을 태우시는 역사를 나타내시면서 강림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벧후 3:10에서도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진다”고 하셨습니다.

3) 이때에 하나님의 공의가 시행되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은 자들에게 형벌을 주실 것인즉(8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을 것이라(9절)” 하셨으니 이는 곧 악인(불신자)들이 받을 형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마 24:48-51, 계 20:7-10). 9절 말씀의 “이런 자들”이란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은 자들이요 그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난다”는 것은 그 동안은 악인들이라도 하나님의 일반 은총을 힘입어 생존하였지만, 심판 때에는 주의 얼굴과 그 힘의 영광조차 가까이 못하고 모든 은혜와 단절되므로 하나님과의 완전 결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4) 10절에서 “그날(마지막 때)에 (주님이)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 기이히 여김을 받으시리라” 하셨으니 “성도들에게 영광을 얻으심”은 전체적 성도와 영화를 끝낸 상황에서 그 이전과 달리 더 큰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마지막 이전에는 구원받을 성도가 다 모이지 못하였고, 또 부활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주께서 강림하실 때는 구원 사역이 완성되므로 영광이 더 큰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 자에게 기이히 여김을 받는 것”도 그 이전에는 영화가 없다가 부활로 영화 되고 전체의 성도가 공중에서 회집할 때 예수님과 앞서간 성도들과 천사들까지 만나니 그 광경이 얼마나 찬란하고 기이하겠습니까? 본문은 그것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5) 10절 끝에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하신 말씀은 믿음이 능동적으로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에 의하여 수동적, 또는 불가항력적으로 믿어짐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감동에 의하여 믿어지는 신앙인지를 확인하셔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므로 자기 마음에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 )안에 기록한 것은 논리상 연결되지 않고 따로 주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은혜로 받아진다는 말씀은 요 3:3, 고전 12:3, 마 16:17, 히 12:2에도 있습니다.

4. 사역자들의 소원과 기도(11-12절)

사역자들은 자신들의 간절한 소원을 항상 드리는 기도로 나타냈으니

1) 성도를 하나님이 부르신 목적에 합당한 자 되게 하시기를 바라는 것이고(11절),

2) 모든 선을 기뻐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며(11절),

3) 믿음의 역사를(살전 1:3) 능력으로 이루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고(11절),

4) 주 예수님의 이름이 성도들로부터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 은혜를 더 받는 것이며(12절),

5) 성도들도 그 안에서 (영광 돌리는 세계에서) 영광(기쁨)을 얻게 되도록 기도하신 것입니다.

이 기도는 오늘의 성도들이 현실적으로 잘 되기를 부탁하는 기도와는 성질이 다릅니다. 저희들도 현실의 복을 뒤로 하고 신령한 복과 영광 돌리는 목적을 위하여 기도하실 수 있도록 노력하셔야 할 것입니다. “부르심에 합당한 자”란 믿음과 인내로 온전케 된 성도를 뜻하고(히 5:14, 10:22), “선을 기뻐하는 성도”는 악을 모양이라도 버리는 자를 뜻하며(살전 5:22), “믿음의 역사”는 매사를 신앙적 또는 성경적으로 능력 있게 시행하는 것이요,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심”은 성도의 사랑스러운 교제 속에서 주님이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시 133:1). 마땅히 성도들도 그 세계에서 누리는 기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제 2 과 말세에 대한 지식 (살후 2:1-12) 목록으로


본문을 살피면 4대지로 내용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1-2절은 “말세 상황에 대하여 주의를 주시는 말씀”이고, 3-4, 9-10절은 “말세에 나타날 사탄의 역사”요, 5-7, 11-12절은 “사탄의 역사를 조정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말씀이고, 8절은 “사탄의 최종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전체의 제목은 “말세에 대한 지식”입니다.

1. 말세 상황에 대하여 주의를 주심(1-2절)

1) 1절 말씀에서 “우리가 너희에게 구한다” 하심은 주의를 주시는 말씀이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하신 것은 마지막 날에 예수님이 공중에 재림하여 모든 성도를 한 곳에 모으시는 사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사실은 대단히 장황스러울 것입니다(살전 4:16-17).

2) 그런데 또 그때를 모르기 때문에 쉽게 동심할 수도 있고, 또 두려워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동심’이란 말세에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하여 믿음이 흔들리거나 과격하고 지나치게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고, “두려워 함”은 “세상이 끝나고 천지가 개벽한다”는 데 대하여 두렵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3절 초두에서 “누가 아무렇게 말하여도 미혹되지 말라” 하셨으니, 이 뜻은 침착하고 의지력 있게 행동할지언정, 조급하게 동심하거나 두려워할 일로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3) 2절 말씀에서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는 편지로나” 하신 것은 “주의 날이 임박하였다”고 교훈하는 근거를 의미하는데, “영으로”란 뜻은 “영적으로 계시 받은 것”을 뜻하고, “말로”란 누가 그렇게 증언한 것을 뜻하며, “우리에게 받았다는 편지”란 사도들의 글을 인용하여 나타낸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도 “밤의 도적을 만난 것처럼 당할 것이라”(마 24:43) 하셨고, 바울도 그렇게 강조하셨으며(살전 5:1-3), 사도 요한도 “때가 가깝고 속히 오신다”(계 1:3, 22:20) 하셨으니, 그런 교훈에 근거하여 어느 시대에나 임박한 재림으로 믿고 준비하여야 함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2. 말세에 나타날 사탄의 역사(3-4, 9-10절)

1) 3절 하반에서 주 재림 전에 사탄의 큰 역사가 먼저 있을 것을 말씀하셨고, 그 사탄의 역사는 “배도하는 일, 불법의 사람으로 나타나는데 그들은 멸망의 아들이요 그들이 나타나기 전에 주님은 이르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재림 영접에 동심하기 전에 사탄의 역사들에 대항할 준비가 우선적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배도하는 일”은 진리의 왜곡인 바, “헤 아포스타시아”( )로 “특수한 배도 사건”을 의미한다 하며, “불법의 사람”은 죄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항상 있겠지만 말세에는 더 심하다는 뜻입니다.

2) 4절에 보시면 사탄의 정체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저는 대적하는 자라” 하시므로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을 대적함이요, 또 하나님보다 자기를 높이려는 인간으로 나타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범사에 일컫는(모든 것을 통치, 주관하심) 분으로 마땅히 숭배를 받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사탄은 “그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한다” 하였으니, 요즈음으로 말하면 큰 이단자요, 보편적으로 말하면 교회 강단에서 진리를 왜곡 증거하면서 천사처럼 대우받는 위선자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앉음”은 교회를 빙자한 권위를 나타내는 것인바 교회는 사람을 높이는 기관이 아님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말세에 여기저기에서 많은 교주가 나타날 것입니다.

3) 9절에서 사탄의 역사는 악한 자로 임하는데 양의 가죽을 쓴 이리처럼 나타나겠지요(마 7:15). 또 그들은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9절)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한다” 하셨고,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으므로 구원을 얻지 못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사탄의 유혹을 피하거나 이기게 되지만, 진리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자, 즉 비택자들은 믿는 모양을 나타내더라도 결국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사탄의 역사가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 또는 불의의 속임수로 나타남은 사람이 속아넘어가기 좋을 만큼 권위 있는 역사를 나타낸다는 뜻입니다. 이는 마귀도 비상한 능력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마 7:22, 계 13:13). 지금도 성경을 옳게 증거하지 않으면서 기적을 선호하는 세계가 있음을 아실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는 진리를 따르고, 기적을 따르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마 12:39, 눅 16:31).

3. 사탄의 역사를 조정하시는 하나님의 섭리(5-7, 11-12절)

1) 바울 사도께서는 5절에서 자신이 데살로니가에 계실 때 사탄의 유혹(이 일)에 대하여 이미 말씀하신 것을 상기시키셨습니다. 이 내용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2) 6절에서 하나님은 “사탄(저)으로 하여금 저의 때(필요한 때; 잠 16:4)에 역사하게 하시려고 막으시는 분이심을 성도들에게 알렸다”고 하셨습니다. 사탄의 역사도 하나님의 통치 섭리 안에 있음을 아실 것입니다. 사탄이 아담을 유혹할 때도 하나님은 이 사실을 아셨지만 허용하셨고, 사탄을 욥에게 보내실 때도 상당하게 통제하셨으니까요(욥 1:12). 하나님은 지금도 그렇게 통제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임의로 활동할 수 있다면 성도는 더 큰 환난에 처할 것이고 하나님은 절대자가 아닐 것입니다.

3) 7절에서 “불법의 비밀은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한다”고 하셨으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고 있음”은 하나님의 허용범위 안에서 사탄의 역사가 쉬지 않음을 뜻하고, “막는 자가 있음”은 하나님이 성도의 믿음을 위하여 악의 역사를 통제하시는 뜻이며,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란 통제하시는 정도를 필요에 의해 해제하시는 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계 20:3에서 “용을 천년동안 가두었다가 잠깐 놓으신다”고 하셨지요. 이 말씀도 하나님이 교회시대에 복음을 위하여 사탄의 역사를 통제하시지만, 마지막 때에 잠깐 놓으심으로 주 재림 전에 있을 환난의 예언을 응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4) 11-12절에서 “유혹은 심판 받을 대상에게 역사하도록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구원받기로 작정된 성도가 유혹을 받아 넘어가면 안되겠지요(행 13:48). 그러나 불신자이든지 혹은 외식적으로 믿던 성도는 구원받을 자가 아니므로 유혹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혹을 저희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11-12절). 성도는 진리 안에서 견고하고, 외식자는 말씀에 기초함 없이 우유부단한 것입니다.

4. 사탄의 최종 심판에 대하여(8절)

8절에 보시면 “그때에 불법자가 나타난다” 하셨는데, 이 때는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때를 뜻하고, 그때에도 여러 가지로 마귀의 역사가 심할 것을 예언하신 것이요, “주 예수께서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심”은 심판자 예수님이 말씀의 능력으로 저를 불못에 던지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창 1:3, 마 8:8).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심”은 예수님의 재림 시에 심판이 있고, 그 심판으로 “사탄의 세계가 끝난다”는 뜻입니다. 사탄이 심판을 받는 구체적인 내용은 요한계시록 20장에 자세히 기록되었습니다.

제 3 과 감사와 부탁과 축복 (살후 2:13-17) 목록으로


본문을 보시면 13-14절은 “바울 사도의 감사 내용”이고, 15절은 “사도의 유전(모범)을 지키라”는 부탁이며, 16-17절은 “축복”으로 되어 있습니다.

1. 바울이 감사한 내용(13-14절)

바울이 감사한 내용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받게 된 사실(주님이 받으실 영광을 함께 누리는 뜻)에 대하여 항상, 또 마땅히 감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1) 13절에서 “주의 사랑하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케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 얻게 하신 것을 감사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의 ‘선택’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최초 실천으로 인류를 다 구원하시지 않음을 알 수 있고(요 15:16), 그 다음에 “성령의 거룩케 하심”은 성령님의 역사로 성도의 인격과 신분을 성결하게 만드시는 일(깨끗한 신부로 단장함; 엡 5:26-27)이며, “믿음으로 구원 얻게 하심”은 구원의 방도를 포괄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2) 14절에서 “이를 위하여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엡 1:4) 우리 복음(사도들이 증거한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롬 10:14-1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구원받은 성도들과) 함께 얻게(누리게) 하려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도들이 증거한 복음(물건으로 말하면 정품을 뜻함)으로 믿게된 것이요, 또 하나는 구원사역을 이루신 예수님의 영광을 함께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계 13:21). 하나님의 사랑과 선택을 받아 믿음을 갖고 주님이 받으실 영광을 함께 누릴 것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자신과 자신의 증거로 믿게된 성도들의 행복에 대하여 감사하신 것입니다.

2. 사도의 유전을 지키라는 부탁입니다(15절).

“이러므로 (감사할 일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실 것이므로, 14절)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은혜 받은 자와 은혜 받을 자는 마땅히 사명이 따릅니다. 그 사명은 사도의 유전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도의 유전이란 사도가 증거한 교리와 생활을 기본으로 그것을 본받는 것입니다(엡 12:20). 잘못된 전통, 즉 사도 아닌 자들이 세운 전통은 지킬 필요가 없으니 이런 것들은 인본주의입니다(마 15:6-9, 갈 1:8-17). 인본주의가 표준이 되는 현실을 잘 개혁하는 성도들이 되셔야 합니다. 사도들은 말과 편지로 가르쳤습니다. ‘말’은 오늘의 설교에 해당하고 ‘편지’는 하나님의 계시(성경) 내용의 전달 수단입니다. 편지뿐만 아니라 녹음이나 영상 매체로 전달되는 것은 좋은 현상입니다. 문제는 전달되는 내용을 진리로 받는 자의 믿음에 따라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미자립 교회에서 설교자 대신 큰 교회 또는 유명한 목사님들의 영상 비디오로 대신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또 그런 일을 경건의 위반되는 일로 여기면 안 될 것입니다. 전통적 방법(강단에서 설교자가 증언하는 설교)만 고수할 것이 아니라 잘 준비되지 못한 설교보다 유명하고 내용 좋은 설교문을 사회자가 읽어서 전달하는 예배 방법이 더 좋을 것입니다(골 4:16).

3. 축복입니다(16-17절).

1) 축복의 근원자는 “예수님과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이분들은 성도들에게 사랑과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시는 분이시며,

2) 그 하나님께서 “성도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축복”을 하신 것입니다. “마음의 위로”는 고난을 받아도 가치관의 확립으로 보람을 느끼기 때문에 마음가짐에 따라 위로가 될 것이며, “선한 일과 말을 굳게 함”은 성도들의 전도사역에 변함이 없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선한 일”은 사랑이고, ‘말’은 증거입니다. 핍박을 견디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사명에 흔들리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울 사도는 그런 것을 원하여 축복하신 것입니다. 축복 기도와 축도는 차이가 있습니다. “원하노라”(기도의 뜻)와 “있을 찌어다”(전달)를 구별하시면 됩니다(고후 13:13, 갈 6:18, 엡 6:23).

제 4 과 결론의 말씀 (살후 3:1-18) 목록으로


본 장은 본서의 마지막 장이므로 “결론의 말씀”이라고 총 제목을 정하였습니다. 내용별로 살피면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2절은 “복음 사역자들을 위한 기도의 부탁”이고, 3-4절은 “주님과 성도에 대한 신뢰”요, 6-15절은 “규모 없는 자들에 대한 경계”이고, 5, 16-18절은 “축복과 결론”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복음 사역자들을 위한 기도의 부탁(1-2절)

1) “종말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실 정도로 복음 사역자들이 성도의 기도로 도움 받기를 청하셨습니다. 복음 사역자들이라 하여 기도를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강한 것이 아니요, 오히려 복음적 사명으로 보나 핍박의 위험을 감안할 때 기도가 더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신앙생활에 덕을 세울 수 있는 여력으로 사역자들을 도와줄 것을 부탁한 말씀입니다. 사역자들과 교인들의 기도의 상부상조가 있을 때 하나님도 기뻐하시고(시 133:1) 은혜를 더 주실 것입니다.

2) 부탁하는 기도의 내용은 두 가지였으니 하나는 “말씀의 활성화를 위한 것”이고, 또 한 가지는 “환난에서 건짐 받는 것”이었습니다.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 하셨는데, 여기의 “주의 말씀이 달음질한다”는 뜻은 말씀(진리) 전달이 핍박을 어기고 능력 있게 잘 전파되고, 또 받는 성도들이 기쁨과 이해로 재미있게 잘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찬을 어떻게 차려주든지 음식을 잘 먹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익숙하지 못하면 찾지도 못하고 이해도 못하는 답답한 형편이 있지요. 그런 것은 달음질하는 것이 아닙니다. 증언자가 항상 말씀이 마음속에 충족되고 듣는 성도들은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이라” 하였을 때 그 의미를 쉽게 터득하는 상태요, 또 이해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까지 포함되어야 하겠지요. 시 145:15에 보시면 “주의 명령이 땅에 보내지매 그 말씀이 속히 달린다”고 하셨고, 살전 2:13에서는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고 하셨으며, 또 행 19:20에서는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며 세력을 얻으니라” 하신 것처럼 말씀의 전파와 깨달음과 순종의 역사와 믿음의 부흥이 “말씀의 달음질”로 성취됨을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한 것은 핍박자들의 무법하고 악한 소행에서 건짐 받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3) 기도 부탁에 이어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셨으니 이 뜻은 “구원은 다 받는 것이 아니요 선택자에 한하여 믿음을 갖게 하신다”는 의미인데, 왜 기도 부탁에 이어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택한 백성만 하나님의 특별 은혜의 대상이기 때문에 기도로 받는 은혜의 특혜가 성도들에게만 있음을 알리신 것인 줄 압니다. 즉 “믿음은 모든 자의 것이 아닌 성도들만의 것이므로 성도에게만 기도의 특권이 있은즉 하나님께 영광 돌릴 책임도 성도들에게만 있음을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2. 주님과 성도에 대한 사도의 확신입니다(3-4절).

1)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하신 것은 진실하신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부르신 자에 대하여 믿음을 붙들어주실 것을 확신하는 말씀으로, “궁극적 구원”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신 것이요,

2) 또 “너희에 대하여는 우리의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한다” 하신 것은 바울 사도(신앙의 지도자)와 성도간에 신뢰로 뭉쳐있음을 확신하시므로, 성도들이 바울 사도의 지도에 따라 복종하고 치우치지 않을 것을 신뢰로써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따라서 성도가 주님을 믿듯이 교인들은 사역자들을 믿고, 사역자들도 교인들을 믿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3. 규모 없는 자에 대한 경계(6-15절)

1) 데살로니가 교회의 출석자 중에 규모 없이 행하는 자들(사도의 본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규모 없는 행동은 “도무지 일하지 않으면서 일만 만드는 것” 이었습니다(11절). “일하지 않고 일만 만든다”는 것은 일하는 것을 싫어하거나, 말세의 강박관념으로 일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인데, 이로 인하여 가난해진즉 다른 사람에게 누가 되니 게으름 그 자체의 죄악성을 계몽하여야 하는 일까지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2) 바울은 그런 자들에게 교훈하고 또 본을 보인 일이 있었습니다. 10절에서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고 교훈하신 일이 있었고, 또 바울사도는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오직 수고하고 주야로 일을 하시므로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7-8절). 사도들(복음 사역자들)이 이렇게 하신 것은 양식을 달라 하여 대접받으실 권리가 없어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9절). 사도들은 재산징발권이 있었고(몬 1:9), 수고의 삯을 받을 권리도 있으며(고전 9:6-11), 또 선생의 대접을 받아야 할 윤리적 특권도 있지만(갈 6:6) 일을 하신 것은 오직 본을 보이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9절).

3) 그런 사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들리는 말에 의하면 도무지 일하지 않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11절) 그들은 “사도들의 유전(사도들의 모범을 전승시켜야 할 것)을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서 떠나야 한다”고 명하신 것입니다. 이 명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신 것이고(6절), 또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2절). 곧 주님의 뜻을 받들어 시행한 명령이란 것입니다. 12절에서는 “종용히 일하여 자기의 양식을 먹으라고 권하셨다” 하셨고, “떠나라”는 명령은 성도들에게 주신 것입니다(6, 12절). 경건하고 규모 있게 살아야 할 성도들이 일하지 않고 일만 만드는 자들과 동화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성도들도 놀기를 좋아하거나 비생산적 생활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가까워지면 안될 것입니다.

4) 14-15절에서는 경건한 성도가 “규모 없이 행하는 자들을 떠나는 일”에 대하여 설명하셨습니다.

① 우선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으니(13절) 이는 율법주의를 대항하는 선행에 비할 때(갈 6:9), 생활대책의 안전을 강구하는 선행의 의미를 함축한 것입니다.

② 14절에서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이는 그리스도의 명령임)을 순종치 않으면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친구가 될 수 없음)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일하지 않고 타인에게 누를 끼치는 것이 부끄러운 일임을 알게 하라”는 뜻입니다. 15절에서 그러나 그들도 “원수는 아닌즉 형제처럼 권면하라”고 하셨습니다. 한 교회 안에서 친구처럼 친교 하지 않는 권면의 대상으로 여기란 뜻입니다.

3. 축복과 결론입니다(5, 16-18절).

1) 말씀 중간에도 축복의 말씀을 하셨습니다(5절).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신다” 하셨고, 또 16절에서도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 주시기를 원하신다” 하셨으며, 또 17절에서는 축도의 의미로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 찌니라”라고 하셨습니다.

2) 여기에서 예수님은 “마음을 인도하시는 분”이시고(엡 3:17, 빌 4:7),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를 실천할 수 있게 하시는 분이며, 또 “평강의 주”(요 20:21)로서 때마다 일마다 평강을 주실 분이시며, 모든 성도와 함께 하시는 분(마 28;20, 요 14:23, 계 3:20)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주님이 그러한 은혜 주시기를 축복한 것입니다.

3) 결론에서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적이기로 이렇게 쓴다” 하셨고(17절) 또 한번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 지어다”(18절)라고 축도 하신 것입니다. 축도는 청중 앞에서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멀리 있는 성도들에게도 기도해주듯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축복자 곁에 있는 성도에게만 전달되는 것은 아닙니다. 먼데 있어도 믿음의 교제로 축복을 전달 받을 수 있고, 또 가까이 있어도 신앙적 장벽이 있으면 전달되지 않는 것입니다(마 10:11-13). “편지의 표적”이란 뜻은 전체의 내용을 다른 사람으로 대필케 하신 만큼 그 마지막에 바울 사도가 사인을 하므로 친히 보낸 것임을 입증하였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