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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론


저자 지영근 목사

 

목 차


먼저 드리는 글 3 바로가기

 

제1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계 1:1~3) 7 바로가기

     설교보충 1. 읽고 듣고 지키는 자 (계 1:1~3) 10 바로가기

     (부록) 계시록 장명가 13 바로가기

     설교보충 2. 계시에 대한 지식 (계 1:1~3) 15 바로가기

제2과 처음이요 나중이신 예수님 (계 1:4~8) 19 바로가기

제3과 계시록 계시의 시작 (계 1:9~20) 21 바로가기

     설교보충 3. 금촛대 (계 1:20) 24 바로가기

     설교보충 4. 요한이 은혜를 받음 (계 1:9~20) 25 바로가기

제4과 에베소 교회에 주신 말씀 (계 2:1~7) 26 바로가기

     설교보충 5. 죽도록 충성하라 (계 2:10) 28 바로가기

제5과 서머나 교회에 주신 말씀 (계 2:8~11) 30 바로가기

     설교보충 6.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계 2:10) 33 바로가기

     설교보충 7. 죽도록 충성하라 (계 2:8~11) 35 바로가기

     설교보충 8. 교회들에게 주신 말씀 (계 2:9~11) 38 바로가기

제6과 버가모 교회에 보내신 말씀 (계 2:12~17) 41 바로가기

     설교보충 9. 흰 돌을 주시는 뜻 (계 2:17) 44 바로가기

제7과 두아디라 교회에 주신 말씀 (계 2:18~29) 46 바로가기

제8과 사데 교회에 주신 말씀 (계 3:1~6) 48 바로가기

     설교보충 10. 죽은 자를 일깨움 (계 3:1~3) 50 바로가기

제9과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말씀 (계 3:7~13) 52 바로가기

제10과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신 말씀 (계 3:14~22) 55 바로가기

     설교보충 11. 신앙 생활의 비유 (계 3:14~16) 58 바로가기

     설교보충 12. 라오디게아 교회의 형편 (계 3:14~22) 61 바로가기

     설교보충 13. 예수님과 함께 삶 (계 3:20~22) 62 바로가기

제11과 하늘 보좌의 광경 (계 4:1~11) 66 바로가기

제12과 인봉한 책을 떼심 (계 5:1~14) 70 바로가기

제13과 예수님이 다섯째 인까지 떼심 (계 6:1~11) 74 바로가기

제14과 여섯째 인을 떼실 때 나타난 계시 (계 6:12~7:17) 77 바로가기

제15과 일곱째 인을 떼심 (계 8:1~13) 81 바로가기

제16과 다섯째 천사의 나팔 계시 (계 9:1~12) 85 바로가기

제17과 여섯째 나팔 중 마병대의 재앙 (계 9:13~21) 89 바로가기

제18과 먹어야 할 작은 책 (계 10:1~11) 92 바로가기

제19과 여섯째 나팔의 마지막 계시 (계 11:1~14) 95 바로가기

제20과 일곱째 나팔 계시의 시작 (계 11:15~19) 99 바로가기

제21과 사단과 진리 운동의 대결 (계 12:1~17) 101 바로가기

제22과 한 짐승의 정체와 활동 (계 13:1~10) 106 바로가기

제23과 새끼 양같은 짐승의 활동 (계 13:11~18) 109 바로가기

제24과 144,000의 새 노래 (계 14:1~5) 112 바로가기

제25과 세 천사들의 외침 (계 14:6~12) 115 바로가기

제26과 의인과 악인의 심판을 예고하심 (계 14:13~20) 118 바로가기

제27과 진노의 일곱 대접을 넘겨 주심 (계 15:1~8) 121 바로가기

제28과 마지막 일곱 대접 재앙 (계 16:1~21) 123 바로가기

제29과 큰 음녀의 받을 심판 (계 17:1~18) 128 바로가기

제30과 바벨론이 심판을 받음 (계 18:1~24) 133 바로가기

제31과 성도의 승리를 찬송함 (계 19:1~21) 137 바로가기

     설교보충 14. 어린 양의 신부 (계 19:6~8) 141 바로가기

제32과 천년 왕국과 사단의 종말 (계 20:1~15) 144 바로가기

     설교보충 15. 천년왕국설 (계 20:1~7) 148 바로가기

제33과 새 예루살렘의 모습과 생활 (계 21:1~8) 152 바로가기

제34과 새 예루살렘의 모습 (계 21:9~27) 155 바로가기

제35과 천국의 실상과 계시의 목적 (계 22:1~10) 158 바로가기

제36과 계시록의 결론 (계 22:11~21) 160 바로가기

     설교보충 16. 일한대로 갚아 주심 (계 22:12) 163 바로가기

     설교보충 17. 광명한 새벽별 (계 22:16) 166 바로가기

 

 



먼저 드리는 글목록으로


요한계시록 강론을 출판하게 되어 큰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요한계시록 강론이 출판되어야 할 이유는 이 말씀이 신약 성경의 마지막 말씀이고 또 미래에 대한 예언 즉, 말세의 형편과 심판과 내세에 대하여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반드시 밝혀지고(빌2:16) 증거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1:2).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다 증거 해야 할 사명도 있고(마4:4,계1:2) 또 “이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22:10) 하셨으므로 더욱 증거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가 목회 하는 중에 요한계시록을 본문으로 한 설교문과 강론문을 다시 정리한 것이 본서입니다. 제가 이 계시록 강론서를 집필할 때 평신도 중심으로 가장 알기 쉽게 표현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 종류의 원고를 종합 정리하는데 일정한 질서가 없어서 고민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용기를 주셔서 어렵게나마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정리하기 전에 “요절 연구”(요절 주석과 설명)라는 75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탈고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끌어 주신 은혜에 붙잡혀 밤낮없이 매달려 끝낸 것입니다. 집필을 마치면서 두 가지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나는 “집필한 원고를 한 페이지도 분실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니, 그 이유는 분실된 원고가 있다고 가상할 때 한 장도 재생시킬 능력이 없을만큼 능력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96년 7월 27일(토) 새벽에 “요절 연구”에 대한 집필을 끝냈지만 여전히 “요한계시록을 또 써야지” 하는 의욕에 차서 하루 종일 그것을 구상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다음날 주일 낮 예배를 마치고 귀가한 후부터 계시록 강론 정리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 작업이 조금이라도 싫증이 나면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감동하시고 힘과 지혜를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붙잡혀서 이용된 것이라고 생각하여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많은 증언자들이 이 계시록 강론서를 집필하신 줄 압니다. 저도 증언자이기 때문에 졸서이지만 집필을 안할 수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술은 유명한 학자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아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학자는 아니지만 30여년의 목회 경력의 열매도 남겨야 하고 또 필자의 신앙과 지식에 못 미치는 평신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문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어느 성경을 공부하시든지 그 성경의 개론이 서론에 첨부되지만, 제가 집필한 “기독교 신앙백과”에 성경 66권의 개론이 게재되어 있기 때문에 “꼭 그 책을 구입하여 보시라”는 뜻에서 개론 설명을 생략하였습니다. “기독교 신앙백과”에는 성경 개론을 포함한 기독교 신앙 상식 280종이 수록되어 있으므로 초신자님들에게 좋은 안내서가 될 것입니다. 또 설명 드리는 과정에서 불비한 내용과 혹 왜곡된 내용이나 틀린 글자가 나올지라도 본의가 아님을 이해하시고 잘 지도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이 책을 읽으시는 성도님들에게 은혜가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1996. 7. .


저자 지 영 근

 

 

제 1 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계 1:1-3)목록으로


1. 계시는 “아포카륍피스”(ἀποκάλυψις)라는 단어로서 “감취어진 것을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는 나타난 것도 많지만 감취어진 것도 많습니다. 물질적으로 감취어진 것을 찾는 것이 발견이라면, 영적으로 감취어진 것을 나타내시는 것이 계시입니다. 하나님 자신에 관한 것이나 영적인 비밀은 하나님이 열어 보여 주실 때에만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이미 정하신대로 필요한 만큼의 비밀을 성도들에게 계시하셨습니다(고전2:7).

2.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말씀에는 비밀을 나타내시는 계시의 권세가 예수님께 있고 또 계시의 내용이 여러 가지이지만 그 중심은 예수님을 나타내는 데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보시는 분들은 성경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는 일에 주력하셔야 합니다. 마11:27에서 “하나님은 모든 것(즉, 계시권)을 아들에게 주셨고.....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3.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하여 계시를 전달하십니다. 성령님 만이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시기에(고전2:10) 성령님의 감동으로 전달하시는데(벧후1:21), 이 사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고전2:7).

본문에 나타내신대로 계시 전개의 순서는 예수님이 천사에게 지시하시고, 천사가 사도 요한에게 영감(음성, 환상, 지혜의 깨달음 등)으로 전달하고, 사도 요한이 받은 계시를 교회의 사역자들을 통하여 증거되게 하셨습니다.

4. 하나님은 구약 시대에도 계시를 주셨습니다.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주셨다”(히1:1-2) 하셨는데, 그 방법도 역시 신약 시대와 같았습니다(출28:29-30,삼상10:20,욘1:7). “하나님과 예수님은 하나라”(요10:30) 하신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계시라도 예수님과 뜻을 같이 하신 것을 알 수 있고, 이와 같이 신약의 계시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여 나타내셨다”고 하셨습니다(요12:49,14:26,고전2:10,11,딤후3:16). 신약 시대에 와서 특별한 계시 방법은 예수님의 출현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그 출현을 근거로 인류에게 주신 계시는 성문화된 말씀 곧 성경 뿐입니다.

5. 그렇다면 계시록이 완성된 이후에도 계시를 또 주실까요 ? 신약 시대에 이르러 표준 계시(성경 계시)가 끝난 다음에는(유3) 더 주시지 않으므로(계22:18) 새로운 계시를 받는 문제에 대하여는 관심을 둘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미 주신 성경 말씀만을 충족한 것으로 믿고(요21:25) 그 말씀의 뜻을 깨닫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엡1:17). 만일 현 시대에도 하나님이 계시를 주신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 날까요 ? 계시 받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요, 기도 중에 느끼는 환상, 음성, 꿈 등이 다 계시로 변할 것입니다. 결국 기독교 세계는 무질서해 지고 성경의 권위는 인정되지 않을 것입니다.

옛날에 있었던 이야기 몇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어떤 목회자가 “계시를 받는다” 하니까 성도가 그 목회자에게 “무슨 직업을 가져야 좋겠느냐”고 물었더니 기도한 후에 “도시에 가서 고무신 장사를 하라” 하여 그 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 어떤 교회에서는 목회자에게 찾아가서 “보리 수확을 할까요, 포도를 따서 판매할까요”라고 질문을 하였는데, “보리를 더 여물도록 두라” 하여 두었다가 큰 비가 와서 손해를 보았고, “포도를 속히 따서 팔라” 하여 팔았으나 그 후에 포도 값이 올랐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어떤 성도는 계시받는 00에게 “아궁이의 불 길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하니까 “죄가 있어서 그렇다” 하여 “무슨 죄인지 알려 달라” 한즉 “며느리를 구박하였구먼” 하면서 “안수 받고 가라” 하여 안수를 받고, 갖고 간 쌀을 감사의 뜻으로 전했더니, 그는 “용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또 어떤 여성도는 계시를 받기 위하여 기도하다가 비오는 소리를 듣고는 자기 집에 널어 놓은 빨래 거둘 생각을 하면서 기도하였는데 그 생각이 자기를 지배하자 결국 기도를 중단하고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에 밖에 있던 성도가 “무슨 지시를 받고 나오느냐” 하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빨래를 먼저 걷고 와서 기도하라”고 지시하셨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며, 또 어떤 가정의 부인은 산 기도를 하는 중에 “자기 아이가 한강에 물놀이를 하러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는지라 그것이 염려되어 아이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던 중 “네 아이가 한강에 빠져 죽었다”는 계시를 받고 한강에 가서 물어 본즉 “그런 일이 없다”고 하니까 “내 아이 떠내려 갔다”고 통곡하며 집으로 돌아 갔는데, 얼마 후에 그 아이가 집으로 들어 왔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일들이 잘못된 신앙 세계에서 자주 일어난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기적이 일어나고 병든 자가 일어서도 성경적이 아니면 동요하지 않는 성도들이 되셔야 합니다.

6. 이 계시록의 내용 중 거의가 미래에 있는 일이며, “반드시 속히 될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계시록의 예언은 사도 요한 이후 시대에 있게 될 것은 물론 예수님의 재림과 천국에서 있을 일까지 말씀하신 것인데, 여기에 “속히 될 일”이란 말씀이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 것인지 아셔야 합니다. 1:19에서는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속히 된다”는 의미는 3절(22:10)의 “때가 가깝다”는 말씀과 관련하여,

1) 우선 세월이 빠르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2) “때”라는 단어인 “카이로스”(χαιρός)가 시기를 뜻하는 말씀이기 때문에 말세라는 시기는 이미 도래한 것이며(때가 가까움:3절),

3) 예수님이 말세를 지향하시면서 만유를 통치하시는 속도가 영적으로 분주하고 빠를 것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22:12).

따라서 초대 교회 당시의 말세의 촉박한 관념은(살전5:12) 오늘의 성도들에게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세지말을 사는 성도들은 재림의 시기도 더 촉박하고, 내일을 기약하며 살 수 없는 점을 생각하여(약4:14) 순결과 근면을 일삼아야 할 것입니다.

7. 요한은 자신이 받은 계시를 다 증거하였습니다(2절).

1) 받은 계시는,

① 하나님의 말씀이니, 자신이 받은 계시 전부를 뜻하고,

② 예수님의 증거이니, 4복음에 관한 말씀이며,

③ 자신이 본 것은 계시록의 말씀입니다.

2) 요한은 하나님의 종이요, 증언의 지시를 받은 만큼(1절) 충성된 증인의 사명을 다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증언하려면 다 연구하고 다 확신하여 다 나타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할 성도들이(마4:4) 성경 말씀을 골고루 살피려 하지 않는다면 말씀에 대한 불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8.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3절)고 하셨습니다. 이 뜻은,

1) 하나님의 말씀이 읽혀지고 들려지며 지켜져야 할 것을 명령하시는 동시에,

2) 그렇게 하는 것이 복받는 방법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원문대로 읽으면 “이 예언의 말씀들(λόγους)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들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시므로, 말씀이란 λὀγος를 복수로 사용한 것이 요1:1의 말씀과 대조가 됩니다. 요1:1의 말씀은 예수님의 유일성을 나타내었고, 본문의 말씀은 성경의 전체성을 나타내었기 때문에 어떤 학자는 “이 예언의 말씀이란 계시록 뿐만이 아니고 성경 전체를 의미한다” 하였고,또 읽는 자는 한 사람이고, 듣고 지키는 자들은 여러 사람이므로 초대 교회 당시에 성경책이 부족하였으므로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한 사람의 두루마리 성경의 낭독을 들었음을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성경책이 사치할 정도로 많아졌습니다. 아무쪼록 많이 읽고 듣고 지켜서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또 성경 말씀에 붙잡혀 있는 그 자체가 복인 줄로 여기시기 바랍니다(눅10:42).

3) 요한계시록에는 “복이 있다”는 말씀이 일곱 번 나옵니다.

① 성경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의 복(1:3),

② 주 안에서 죽는 자의 복(14:13),

③ 깨어 의의 옷을 입고 벌거벗고 다니지 않는 자의 복(16:15),

④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초청 받은 복(19:9),

⑤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복(20:6),

⑥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의 복(22:7),

⑦ 두루마리를 빠는 자의 복(22:14)입니다.

요한계시록과 관련하여 더 많은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설교보충 1. 읽고 듣고 지키는 자 (계 1:1-3)목록으로


이 시간에는 본문 말씀 3절에 근거하여 “읽고 듣고 지키는 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본문 3절 말씀은 짧은 말씀이지만 여러 가지의 교훈을 주십니다. 즉,

① 이 예언의 말씀이란 무엇입니까 ?

② 읽는 자도 복이 있고,

③ 듣는 자도 복이 있으며,

④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도 복이 있다.

⑤ 그리고 때가 가깝다고 하신 것입니다.

1. 마지막 말씀인 “때가 가깝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

1) 이 말씀의 뜻은 분명히 “세상의 말세가 가깝다”,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의 때가 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2) 그런데 이 말씀은 약 2000년 전에 주신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이 주후 100년경에 기록된 말씀이니까 거의 1900년 전에 주신 말씀이며, 2000년이 되었어도 종말이 오지 않고 있으니 어떻게 2000년도 넘는 미래가 있는데 “때가 가깝다”고 하실 수 있는가 ? 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따라서 “때가 가깝다”는 뜻은,

① 신약 시대를 말세로 구분하는 초대 교회 성도들의 인식이 그러한 것이었고,

② 예수님께서 재림의 시기를 말씀하시지 않으면서 “도적같이 오신다”고 하셨으니까(마24:43,눅12:39) 어느 때 오실 지 모르는 것이므로 예수님의 재림을 대비하는 성도는 항상 때가 가까운 줄로 알고 대비하면서 준비해야 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③ 또 “때가 가깝다”는 말씀은 성도가 경성하고 대비하기 위한 교훈의 표현만이 아니고 실제로 말세를 향하여 만유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성취 속도가 빠른 것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4) 그렇다면 저희들의 때는 더 촉박해졌습니다. 따라서 저희들의 삶의 때가 짧고 주님의 재림 속도가 빠른 줄로 믿고 살아가셔야 할 것입니다.

2. 이 예언의 말씀이 무엇이냐 ? 하는 것입니다.

1) 어떤 사람은 “이 예언의 말씀”이니까 이것은 요한계시록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요한계시록을 많이 읽고 암기한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외운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 예언의 말씀이란 요한계시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 전체를 뜻하는 것입니다.

2) 그 이유는,

① “예언”이란 말씀이 말세를 계시하는 뜻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 선포를 나타낼 때도 예언이라고 하기 때문이요(고전14:29,딤전4:14,고전12:10),

② 이 “예언의 말씀”이란 단어가 한 가지를 나타내는 단수가 아닌 여러 가지를 나타내는 복수이기 때문이요(말씀을 λόγος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복수 λόγους로 사용했음),

③ 본문 2절에서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와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다” 하시고, 이 “예언의 말씀”이라고 하셨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구약과 예수님의 말씀인 복음서와 자기 같은 사도들이 받은 말씀까지 포함시키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예언의 말씀은 성경 66권을 의미합니다.

3. “복이 있나니” 하시므로 복받는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서는 복받는 방법을 세 가지로 말씀하셨고, 또 쉬운 방법부터 순서대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람은 복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몸보신이 된다고 하면 뱀도 잡아먹듯이 “복 받는다” 하면 그 자존심 강한 사람들이 목석에도 절을 하니까요. 그런데 어떤 성도들은 “스스로 복받는 노력”은 잘 안하고 꼭 교역자나 부흥강사가 복을 가져다 주는 줄로 아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남이 가져다 주는 복은 적고 내가 받는 더 복이 많다고 아셔야 합니다. 그 방법이 바로 성경을 읽어서 복받고, 말씀을 들어서 복받으며 또 말씀을 지켜서 복받는 것인데, 말씀을 지켜서 복받는 것이 가장 어렵고 말씀을 들어서 복받는 것은 훨씬 수월하며 또 말씀을 읽어서 복받는 것이 가장 쉽다는 사실을 알려 드립니다. 왕하 3장에 나타난 수넴 여인은 선지자를 잘 대접하여 아들을 낳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 대접은 식사만 대접한 것이 아니라 서늘한 방에 침대와 책상 그리고 촛대까지 두어 봉사하였습니다. 요즈음 그런 목적으로 서늘한 방 한 칸 제공하려면 2,000만원은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안해도 얼마든지 복받는 방법이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시1:1-3,마6:33,요삼2).

1) 성경을 읽어서 복을 받는 것입니다. 땀흘려 복받는 분량보다 읽어서 받는 분량이 훨씬 많습니다. 성경도 읽어서 복받고, 설교집이나 성경 강론문도 읽어서 은혜받는 성도가 되셔야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① 성경의 최종 계시가 문자와 글로 표시되어 완성된 것이기 때문이며,

② 성경 말씀 이상 더 확실한 은혜는 없기 때문입니다. 글씨를 쓰고 도장을 찍은 것이 확실한 것처럼 기록한 것은 말로 증언한 것보다 더 확실한 것입니다. 따라서 기록된 말씀은 확실하며, 가감이 없고, 보존이 가능하기 때문이요,

③ 바울 사도께서는 엡3:3에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계시를 대강 기록하였으니 너희가 이것을 읽으면 내가 깨달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너희도 알 수 있으리라” 하시므로 읽어서 깨닫고, 읽어서 은혜받는 사실을 말씀으로 입증해 주신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롬13:12-14 말씀을 읽다가 회개하는 은혜를 받았고, 또 어떤 사람은 엡4:27을 읽는데 그 소리를 듣고 도적이 왔다가 도망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습니까 ? 따라서 “복 받으시라”고 드리는 읽을거리(성경과 기독교 신앙문집)를 많이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을 잘 안 읽는 분들은 은혜에 뒤떨어지게 됩니다.

2) “듣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읽는 자는 단수이고, 듣는 자들은 복수로 표시되었습니다. 이것은 옛날에 성경문집이 희귀할 때 한 사람이 읽고 여러 사람이 들은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읽으려면 책이 있어야 하고, 들으려면 증거자가 있어야 합니다. 책은 사서 보면 되지만 듣기 위하여 증언자를 세우는 것은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듭니다.

요즈음 부흥회는 대부분 목요일 새벽에 마친다고 합니다. 그러면 새벽 세 시간, 낮 두 시간, 저녁 세 시간 도합 여덟 시간 집회를 하고 사례는 보통 담임 목사 한 달 생활비를 드리며, 강사님의 숙식비까지 포함하여 계산한다면 설교 한 시간 사례가 약 30만원 이상의 비용에 달합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비싼 설교를 들어 은혜 받으려 하지 마시고 성경과 설교문서를 읽으셔서 은혜를 받으시라는 것입니다. 듣는 것이 예배의 경건이고 복이기 때문입니다. “듣는 귀와 보는 눈은 하나님이 주신다”(잠20:12) 하셨고, “귀 있는 자는 들어라”(계2:11) 하셨으며,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다”(잠28:9)고 하셨습니다. 아무쪼록 성경 말씀과 신앙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고 듣고 지키셔서 복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의 목표는 성경 말씀에 취하고 끌려야 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록) 계시록 장명가목록으로


<참고> 한국 초대 교회 고 이기선 목사님은 계시록을 읽으시고 다음과 같은 장명가를 지어 찬송가(변찮는 주님의 사랑과../날 빛 보다 더 밝은 저 천국) 가사에 맞추어 부르셨습니다. 이런 고인의 자료가 없어지지 않기 위하여 수록하였습니다.


작사 : 고 이기선 목사(찬송가 214, 291곡)


1. 밧모섬 축복의 주의 날 요한이 계시를 받았네

읽고 듣고 행하는 자들 주 안에 복있는 자로다

<후렴> 주님이 오신다 흰 예복 입고서 맞으라

주님이 오신다 등 불을 켜 들고 맞으라

2. 에베소 사랑을 잃었고 서머나 환란을 당한다

버가모 세속화 되었고 두아디라 이세벨 용납

3. 사데는 실상이 죽었고 빌라델비아 문 열렸네

라오디게아 미지근해 회개 문 열고 주 맞으라

4. 영광의 하늘 문 열렸네 찬란한 그 보좌 보인다

네 영물 이십 사 장로들 찬송과 경배를 드리네

5.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 인봉한 일곱 인 떼겠네

천지와 만물도 화답해 존귀와 영광을 돌리네

6. 흰 말과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들이 나오네

순교자 수효가 다찬 후 진노의 큰 날이 오도다

7. 십사만 사천명 인친 후 보좌 앞 큰 무리 찬송해

큰 환란 중에서 보혈로 그 옷을 씻은 자 뿐일세

8. 칠 나팔 큰 소리 들리네 땅에도 바다도 물 샘도

해에도 달에도 별에도 하늘도 큰 재앙 내리네

9. 황충과 마병대 나오니 사망도 피하여 없겠네

하나님 인친 자 되어서 우상과 죄악을 이겨라

10. 힘있는 큰 천사 내려와 남은 때 없다고 고하네

요한이 작은 책 먹은 후 예언할 새 사명 받았네

11. 두 증인 예언을 필한 후 부활해 하늘로 올리고

일곱째 나팔을 불으니 영광의 나라가 오겠네

12. 아이를 보좌로 올린 후 마귀는 땅으로 쫓겼네

사단이 대 분을 발하니 땅 위에 큰 환란 있도다

13. 바다와 땅에서 나오는 두 짐승 큰 권능 얻었네

믿음과 인내를 가지고 짐승과 우상을 이겨라

14. 시온산 십사만 사천명 어린 양 모시고 노래해

믿음의 정절을 지키고 흠이 없는 자들 뿐이라

15. 불 섞인 유리 바닷가에 승리의 노래가 들리네

칠 천사 칠 대접 받으니 성전에 연기가 차도다

16. 칠 대접 큰 재앙 나리네 깨어서 제 옷을 지키고

벗고 다니지 않는 자들 주 앞에 복있는 자로다

17. 대 음녀 심판을 받는다 짐승과 나라도 망하네

어린 양 승천하시리니 만왕의 왕 주 예수로다

18. 죄악성 바벨론 망한다 주님의 백성들 나오라

저 죄에 참여치 말고서 그 받을 재앙을 면하라

19. 어린 양 혼연이 열리니 신부는 세마포 입었네

만왕은 흰 군대 다리고 원수를 싸워서 멸하네

20. 사단은 무저항 갇힌 후 천년 왕국이 이뤄졌네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 복있고 거룩한 자로다

21-1. 새 하늘 새 땅이 보인다 눈물과 사망이 없는 곳

둘째 사망을 이긴 자들 하나님 장막에 거하네

21-2. 황금 보석으로 꾸민 집 해와 달이 쓸 데 없는 곳

만국 영광 존귀 가지고 그 백성 기업을 얻겠네

22-1. 보좌 앞 생명강 흐르고 생명과 다달이 맺히네

보혈로 그 옷을 씻은 자 영생 복락을 누리겠네

22-2. 영광의 계시가 끝난 후 예수 친히 증거한 말씀

진실로 속히 오리로다 아멘 주 예수여 옵소서

 

 

설교보충 2. 계시에 대한 지식 (계 1:1-3)목록으로


계시에 대한 지식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본문에 “계시”란 말씀이 있습니다.

1) 이 계시란 뜻은 “감추인 비밀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계시란 말의 히브리어 “까랕”(תלג)은 “가리운 것을 벗긴다”는 뜻으로, “하나님이.....그에게 나타나셨다”(창35:7) 할 때 “나타남”이란 의미로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또 본문에 나타난 헬라 말로는 “아포카륍피스”(ἀποκάλυψις)로 “벗기는 것”, “열어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롬1:19과 고전4:5에서 “나타난다, 명시한다, 표명한다”(manifest)는 뜻으로 “파네로시스”(φανέρωσις)란 말이 비슷한 의미를 나타냅니다.

2)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는 계시는 사람의 추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비밀을 공개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전혀 알 수 없는 비밀을 하나님에 의하여 나타내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자신에 관한 비밀, 영적인 일에 대한 비밀 또는 미래의 비밀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3) 이런 비밀을 나타내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입니다. 본문에서도 ,

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하셨고,

② “하나님이 그에게 주셨다” 하셨으며,

③ 또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지시하셨다”고 하셨습니다.

4) 하나님은 이런 지시를 하실 때에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 즉, 꿈이나 환상이나 말씀 등으로 하셨고, 모든 날 마지막에 예수님의 직접 출현으로 계시를 끝내셨으며(히1:1), 또 이것을 성경으로 모아 주셨습니다(엡3:3,딤후3:16).

5) 하나님께 속한 비밀은 하나님이 계시해 주시지 않으면 나타날 수 없고 또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열어 깨닫는 영감을 주시지 않으면 전달받을 수 없습니다(벧후1:21). 전달된 계시를 보존해 주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딤후3:16과 벧후1:21에 나타난 “감동”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전달받는 은혜를 뜻하고, 엡1:17의 “계시의 정신”이란 이미 주신 계시를 잘 연구하여 깨닫는 지혜를 의미하며, 히1:3에서는 하나님이 만물과 함께 계시의 말씀도 보존하신다고 하셨습니다.

6)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의 계시를 깨달으려면,

① 하나님이 나타내 주시는 계시가 있고,

②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거듭난 성도가 있어야 하며,

③ 그 거듭난 성도에게 영감과 지혜의 정신을 주셔서 알게 하시고,

④ 읽고 연구하여 깨달으며 지켜서 복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계1:3).

저희들은 이런 은혜 아래에서 계시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배우게 된 것을 감사하셔야 할 것입니다.

2. 그러나 이 “계시에 대한 견해”에는 여러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1) 자연신론자들은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 사역을 믿으면서도 성경 계시는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에 관한 것을 만물과 자연 법칙에 담아 주신 다음에는 더 이상 간섭하시거나 나타내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자연 만물 외에 다른 계시를 더 주셔야 한다면 이는 창조 자체가 불완전하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성경을 부인한 것입니다.

2) 범신론자들은 “만물이 곧 하나님이고, 만물의 운동이 곧 하나님의 활동이라” 하므로 만물을 하나님의 표현으로 여기고, 만물을 초월하는 하나님을 더 알려고 하지 않으므로 이들도 성경에 접근하지 않습니다.

3) 범신론적 관념론자들은 만물이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는 것은 사실이나 하나님은 만물 속에 내재하여 계시기 때문에 “내재하신 하나님과 만물을 동일시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들은 신학이 발전하는 과정상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학설들입니다.

4) 그런데 현대의 신학을 상당히 오염시킨 또 하나의 신학이 있으니 곧 위기 신학의 계시적 개념입니다. 위기 신학이란 신정통주의자라고도 하고 칼 바르트의 신학이라고도 합니다. 1886년 5월 10일 스위스 빠셀에서 출생한 칼 바르트가 제창한 신학설인데, 이 사람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서 그의 사상이 많이 유포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1968년 12월에 83세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 1년 전인 67년도에 미국의 연합 장로교파와 세계의 W.C.C. 운동의 협력으로 “새 신앙고백서”를 제작하여 정통 신학의 성경관을 크게 오염시켰습니다. 그가 주장한 내용 중에 성경관(계시관)이 바르지 못한 것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① “영원 세계에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시간 세계의 인간에게 나타날 수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계신 영원하고 신령한 세계는 속된 현실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의 권위 보존을 위하여 시간 세계에 임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영역인 영원 세계에 있을 때에만 권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훌륭한 사람이라도 높은 자리에 앉을 때에만 권위가 있다”는 말과 같은 것인데,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도성인신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생각하면 이해되지 않는 말입니다.

②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 세계에 거하며 인간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 대상으로 받는다면 이것은 하나님을 절대자로 모시는 것이 아니고 상대자로 모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렇게 격하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좋은 것 같으나 실은 인간에게 접촉하는 계시를부인하기 때문에 정통이 아닌 새로운 정통이라 하여 “신정통주의”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으로 주어져서 그 말씀이 역사 세계의 인간과 함께 계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행20:32,계1:1-3).

③ 하나님은 말씀을 주실 때에 하나님의 영원한 영역과 인간의 시간적 영역의 경계점에 오셔서 말씀을 주시는데 그가 말씀을 선포하실 그 순간에 한하여서만 말씀의 권위를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순간이 지나가면 말씀의 효력도 없고 계시가 지속되지 않으므로 계시를 받는 기회는 순간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이 순간을 놓치면 하나님의 계시를 놓치는 것이므로 인간이 계시없는 위기에 처할 것을 염려하여 이 신학을 위기 신학이라고 명칭한 것입니다.

④ 하나님이 순간에 주시는 계시를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받을 때에만 말씀 계시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시는 시간 세계에 머무를 수 없으며 믿지 않는 자에게도 접근되지 않고 또 간접적으로 받을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저희들은 인간들에게 “이미 주신 말씀” “머물러 있는 말씀” “글자로 나타난 말씀”을 믿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의 입에서 다시 나와야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이미 독자적 신임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엡3:3에서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알 수 있으리라” 하셨고, 살전2:13에서는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의 주이신 예수님이 인간 세계에도 오셔서 사셨는데 어찌 말씀을 주시지 못하겠습니까 ?

⑤ “계시와 성경을 같은 것으로 알면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계시는 멀리서 바라 보며 기다리게 하는 상태이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는 말씀이라고 한 것입니다. 마치 계시가 “어떤 사건”이라면 성경은 “그 사건의 참된 기록”과 같다 하여 구별을 하였지만 성경은 이것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계시는 곧 그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계1:1).

⑥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이 정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주관성에서만 가능하고 객관적 성립은 있을 수 없는 것이어서 개념의 대상은 물론 진술의 대상도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로마교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보통 인간들에게는 감취어 있다”는 주장보다 더 심한 주장으로 성경의 명백한 계시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조 7항에서 “하나님은 명백한 계시로서의 성경을 주셨다”고 하셨습니다(신30:11,시19:8-9,119:105,130,잠6:23).

⑦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시기에 완성적으로 주신 것이 아니고 언제 어떤 경우에나 주실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또 “단번에 주신 도리”(유3)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는 주장하기를 만일 하나님이 말씀을 계속 주시지 않는다면 이는 인간이 하나님의 입을 막는 것과 같고, 또 “성경 66권 만으로 충족하다”고 한다면 이것도 “인간이 하나님을 성경 속에 가두는 것과 같다” 하여 성경의 완성과 충족성을 부인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바르트의 성경관이 잘못된 것은,

1. 계시와 성경을 구별하는 점과,

2. 계시가 역사 세계에 임하지 않는다 함으로써,

1) 말씀의 영감을 부인함은 물론

2) 인간이 간직할 수도 없고,

3) 연구의 대상이 될 수도 없으며,

4) 개념의 상상이나 진술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 따라서 바르트가 주장하는 성경관은 우리의 견해와 다른 것으로,

1) 하나님이 자신의 영역(무한 세계)과 인간의 영역(시간 세계) 사이에서 인간에게 말씀하실 때 그 순간에 한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될 뿐이고,

2) 또 인간이 그 말씀을 받음에 있어서 수시로 주시는 그의 말씀을 신적 권위로 수납할 때 그 수납하는 순간에만 하나님의 말씀이며,

3) 또 말씀의 주이신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자신을 나타내신 것도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계시이지만 인간 편에서 볼 때는 계시가 될 수 없다고 함으로써 예수님과 영감으로 받는 계시 전달까지 부인한 것입니다.

4) 따라서 현재 가지고 있는 성경은 “그 말씀을 주실 당시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는 증거의 책일 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성경관은 극히 잘못된 것임을 아셔서 경계하시고 우리가 믿는 성경관의 지식을 확실하게 가지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제 2 과 처음이요 나중이신 예수님 (계 1:4-8)목록으로


이 말씀은 ① 소 아시아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게 하신 예수님의 신분에 대한 말씀(4-5)과, ②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 돌려지기를 기원하는 내용(6)과, ③ 구름을 타고 오실 예수님에 대한 말씀(7)과, ④ 영원히 계시며 또 장차 오실 전능하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8)으로 분류하여 상고할 수 있으며, 제목을 “처음이요 나중이신 예수님”(21:6,22:13)으로 정하였습니다.

1. 소 아시아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게 하신 예수님의 신분을 말씀하심에서(4-5),

1) 예수님은 사도 요한에게 이 사실을 명하셨습니다. 11절에 보시면 계시의 말씀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저희들은, ① 예수님이 말씀으로 교회를 관리, 지도하신다는 사실과, ② 계시로 주신 말씀을 기록된 책이나 서신으로 전하신 것과, ③ 또 이 서신을 사역자들을 통하여 각 교회 성도들에게 증거하게 하셨고 또 성도들끼리도 서신 상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고루 나누게 하셨습니다(골4:15,살전5:27). 요즈음도 문서로 진리를 전달하면 많은 내용을 펼칠 수 있고 또 성도의 많은 시간을 절약하게 될 것입니다.

2) 말씀을 보내시는 예수님은, ①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며 장차 오실 이요, ② 예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분이며, ③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시고, ④ 은혜와 평강의 근원자이시고, ⑤ 피흘림의 속죄제로 성도를 그들의 받을 죄책에서 해방시켜 주신 분이며, ⑥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영광을 위하여 성도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⑦ 그리고 사도 요한이 성도들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하였고(5), 또 예수님에게는 영광과 능력이 있기를 소원하였습니다.

3) 이상의 말씀에서 “보좌 앞의 일곱 영”은 완전한 영, 순결한 영(슥3:9,5:6)으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나타내신 것이며, 예수님은 땅에서 충성된 증인으로 자기의 사명을 다하시고 부활하셔서 땅의 임금들인 모든 권세자의 지배자가 되셨다고 하셨습니다. 성도가 받는 모든 은총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성취됨을 아셔야 하며,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음”에 대하여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성도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으셨을 뿐 아니라 왕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존귀와(벧전2:9)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는 친교를 가지게 하시는 대상으로 삼으셨다는 뜻입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 보좌에서 계속적인 중보 역할을 하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4)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분이라고 4절과 7절에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행1:9-11에 보시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제자들이 보는 중에 하늘로 올리우셨고 구름이 가리워 보이지 않았으며.....나중에는 올라가심을 본 그대로 오실 것이라”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본문 7절에서도 역시 “구름을 타시고 오시는데 모든 사람이 보게 될 것이고 그를 찌른 자도 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다시 오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처럼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사람들 즉, 성도나 악인, 심지어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의 영혼까지 주님의 재림을 다같이 목격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번개같이(마24:27) 불 꽃 중에(살후1:18) 또 나팔 소리와 함께(살전4:16) 나타나심은 땅위에 살아남은 자들이 일시에 볼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때에 모든 족속이 그 심판의 두려움 때문에 애곡할 것이요, 7절 초두에서 “볼지어다” 하시므로 이런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과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그대로 꼭 있어져야 하기 때문에 “아멘” 함으로써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강한 의미를 붙이게 된 것입니다.

5)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알파(α)와 오메가(ω)로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하신 자”(8)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역사적 존재로, 전능자로, 재림주로 또 심판자로 영원히 계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알파(α)는 신약을 기록한 헬라어의 첫 자요, 오메가(ω)는 끝 자입니다. 이것으로 만유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는 예수님의 영원성과 절대성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① 지상의 교회를 관리하시며 그 사역자들에게 말씀을 전달케 하여 교훈하시는 주님과,

② 하나님 보좌에 계셔서 성령님의 역사와 함께 중보하시는 예수님과,

③ 십자가의 공로로 구속하시고 은혜와 평강을 주시는 분이심과,

④ 장차 재림하여 심판주가 되시고 영원히 영광받으실 예수님을 계시하신 말씀입니다.

 

 

제 3 과 계시록 계시의 시작 (계 1:9-20)목록으로


이 말씀의 내용을 구분하면,

① 계시를 받은 요한의 형편(9)

② 요한이 받은 명령(10-12),

③ 요한에게 보여 주신 예수님의 모습(13-16),

④ 계시를 기록하라 하심(17-20)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총 제목을 “계시록 계시의 시작”이라고 정하였습니다.

1. 계시를 받은 요한의 형편(9).

1) 먼저 계시를 받게된 요한 자신을 소개하였습니다. 여기의 계시를 받게된 요한은 사도이지만 자기의 직위를 감추고 “너희의 형제”라 하였으니 사도의 겸손과 사랑과 친근함을 나타낸 것이며,

2) “예수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한 자라”고 하였으니,

① 예수님의 환난에 동참함은 예수님이 당하신 환난과 일맥상통하는 핍박을 체험한 것이며,

② 예수님의 나라에 동참함은 그리스도의 백성이란 입장을 떠나지 않았음이며,

③ 참음에 동참한 뜻은 예수님이 인내하신 것처럼 자신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고난을 참은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3)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 섬에 있었으니,

①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라 함은 하나님의 뜻대로 산 것을 의미하고,

② 예수님의 증거를 인하여라 함은 복음을 전파한 증언의 사명을 다한 것입니다.

③ 그런 일들로 인하여 도미시안 황제(A.D.81-96)의 핍박을 받아 밧모 섬에 귀양을 갔던 것입니다. 밧모 섬은 그 당시 로마 영지였으나 지금은 헬라 영지이고, 에게해 남쪽 중앙에 위치한 작은 섬입니다.

이 말씀에서 저희들이 교훈을 받고, 사도 요한처럼 믿음과 사명과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위하여 주님이 당하신 고난에 동참하는 일을 은혜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2. 요한이 받은 명령에 관한 것입니다(10-11).

1) 요한이 계시를 받던 날은 주일(주의 날)이었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같은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뜻을 위엄찬 나팔 소리같은 음성으로 나타내 주셨고, 요한으로 하여금 성령의 감동으로 그 음성을 듣게 하신 것입니다. 요한은 겸손하였고 사랑이 충만하였으며(요일4:11),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 만큼 계시를 받는 자로 써 주신 것입니다. 계시를 받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가까이 해 주시는 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성경을 연구하는 것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생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한이 주일에 계시를 받은 것이나 바울 사도가 매주일 첫 날에 연보를 거둔 것은(고전16:2) 사도들이 주일에 경건한 생활을 하였음을 나타내 주신 것이며, 이것이 신약 시대의 성수 주일의 근거가 된 것입니다.

2) 들려진 음성은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명령이었습니다.

① 여기에서 계시의 순서가 듣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10-11) 발전한 것을 알 수 있고, 또 더 발전하여 기록하게 하셨고, 그 기록을 각 교회에 전달되게 하신 것입니다.

② 여기에서 지정해 주신 교회는 소 아시아에 산재한 일곱 교회이지만 이는 그 지역의 대표적 교회들입니다. 그 당시에 골로새, 막네시아, 드로아, 히에라폴리스에도 교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일곱 교회는 세계 교회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세계적 교회를 상대하기 때문입니다.

3. 요한에게 보여 주신 예수님의 모습에 대하여(12-15).

이때에 사도 요한은 그 웅장한 음성을 더 자세히 들으려고 몸을 돌이켰다가 대단히 황홀하고 두려운 예수님의 모습을 신비한 경지에서 목격하게 된 것인데, 그 모습을 요한이 본대로 옮겨 보면 “일곱 금 촛대를 보았고 그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머리와 머리털의 희기가 양털과 눈 같고, 그의 눈이 불 꽃 같으며, 발은 풀무에 단련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 같으며, 오른 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는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았다”고 하였습니다. 왜 예수님이 자신을 이상과 같은 모습으로 보여 주셨을까요 ? 순서대로 그 의미를 살피면,

1) 일곱 금 촛대를 본 것은 세계 교회를 대표하는 교회들을 보여 주심이요,

2) 일곱 금 촛대 사이에 계신 것은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그 교회들을 두루 관리하심을 뜻하고,

3) 인자 같으신 이란 요한이 하늘 보좌에 계신 예수님을 처음 보므로 황홀스럽게 보여진 때문이요,

4) 발에 끌리는 옷과 가슴에 금띠를 띤 것은 제사장의 의복과 왕복(금 띠)을 입으셨음을 뜻하고,

5) 그 머리털이 흰 것은 성결성을 나타내심이요(사1:18),

6) 그 눈이 불 꽃 같으심은 전지성과 통촉하심이 풍부함을 나타내심이며,

7) 그 발이 빛난 주석 같음은 붕괴될 수 없는 예수님의 터전과 그 나라가 견고함을 뜻하는 것이요,

8) 음성이 큰 물소리 같음은 그 말씀의 권위가 웅장하고 능력 있음을 뜻함이요,

9) 오른 손에 일곱 별을 잡으신 것은 복음의 모든 사역자들을 능력으로 주관하시는 것을 보여 주심이요(20절에서 일곱 별은 교회 사역자라 하셨고, 오른 손은 힘있는 손을 뜻함),

10)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온 것은 사람의 심령 골수를 쪼개고 죄악을 일깨워 주시며 회개를 촉구하시고 정죄 심판하시는 말씀 사역이 칼날 같음을 나타내심이고(히4:12),

11) 얼굴이 태양 빛 같이 광채를 내는 것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 모습은 예수님의 본질과 능력과 사역을 따라 역사하심을 교훈받게 하신 것입니다.

4. 계시를 기록하라는 명령을 받음에 대하여(17-20)

1) 요한은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을 때 너무 황홀한데 놀라서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었다” 하였으니 이것은 “정신이 나갔다”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인간적 연약과 계시의 황홀경 때문에 크게 두려워하면서 겸손을 보인 태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겔1:28에 보면, 에스겔이 계시를 받을 때에도 “엎드려 말씀을 들었다” 하였고, 단8:17에서도 다니엘이 계시를 받을 때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하였으며, 사6:5에서 이사야는 계시를 받으면서 “나는 죄가 많고 입술이 부정한 자라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탄식을 한 것처럼 사도 요한도 그렇게 두려워 하며 겸손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죽은 자 같이 된 것”은 정신을 잃은 상태가 아닌 인간성이 잠재됨과 동시에 두려움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2) 이때에 예수님께서 두려워하는 요한을 위로하시고 계속 말씀을 주셨습니다.

① “오른 손을 먼저 어루만져 주시고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라” 하셨으니, 이는 1:8의 말씀을 거듭 강조하셨음이요,

② 예수님 자신이 돌아 가셨다가 부활하신 바로 그 예수님이요 세세토록 살아 계신 분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모신 자는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③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셨다” 하심은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써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깨치신 분이기 때문에 그 권세로 사망과 음부에 처한 자를 구원해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통령에게 특사의 권한이 있어서 사형 집행 직전의 죄수라도 살릴 수 있음을 연상하면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서 “사망”이란 거듭나지 못한 상태(엡2:1)나 영혼과 육신의 갈림 상태 또는 심판 아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도 그런 형편에서 중생과 부활과, 심판을 면하여 주시는 것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또 “음부”는 헬라어로 ‘하데스’(ἅδης)요, 히브리어로는 ‘스올’인데(욥3:13,사14:9,겔32:28), 이 말이 구약에서는 선한 자나 악한 자가 다같이 갈 수 있는 저승(죽음의 건너편)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창37:35, 박윤선 주석 p.55), 신약에서는 “회개치 않은 영들이 죽음 후에 가는 곳”으로 해석이 됩니다(행2:27이나 눅16:23).

따라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란 심판 받을 자를 구원하실 능력이 주님께 있음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네가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하시므로 요한계시록을 기록하도록 명하셨고, 또 “네가 본 것은 오른 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하셨으니, 이 말씀은 예수님이 자기의 사역자들을 별처럼 귀히 여기시고 비밀리에 붙잡고 쓰시되 자기의 뜻과 교회를 위하여 쓰신다는 것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설교보충 3. 금촛대 (계 1:20) 목록으로


이 금 촛대는 지상의 교회를 의미한다고 하셨습니다. 지상의 교회를 왜 금 촛대로 비유하셨을까요 ?

1. 등대는 불빛을 높이는 기구요, 빛은 진리이신 예수님이며 그의 말씀입니다. 어두운 성소를 순금 등대 불이 밝게 하는 것처럼(출25:31-40) 교회는 어두운 세상을 진리로 밝힐 사명이 있음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성소 안의 순금 등대는 일곱 가닥으로 되어 있고 항상 밝게 하기 위하여 항상 불똥을 떼며 간검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출27:23). 교회가 빛 되어야 함은 곧 성도가 빛 되어야 함을 뜻합니다(마5:4).

지상의 유형 교회는 건물이 있어야 좋고, 사람도 있어야 하고 또 조직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외형적 형태가 진리 자체는 아닙니다. 진리는 외형적 조직 속에 들어 있는 성도의 영혼이요 신앙이며 말씀입니다. 등대가 등대 불을 비추는데 필요한 것처럼 지상의 유형 교회가 진리를 높이고 비추는 역할에 필요하기 때문에 지상의 교회 형태를 금 촛대로 비유하셨습니다.

2. 금 촛대로 교회의 고귀성과 불변성을 상징하셨습니다. 금은 귀금속의 일종입니다. 구약 성전을 비추는 등대는 순금으로 쳐서 만들었습니다. 순금이란 값지고 불변한 금속이기 때문에 지상의 유형 교회일지라도 역시 주님의 교회요 주님이 피로 값주고 세우신 것이므로(행20:28) 귀하지 않을 수가 없고, 또 순금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교회가 하나님의 보호에 의하여 든든히 보존되는 것을 비유적으로 교훈하신 것입니다. 교회가 혹 연약해 지는 것을 느끼실지라도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도록(마16:18) 붙들어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믿고 의지하셔야 할 것입니다.

3. 금 촛대는 기름 분량에 따라 불빛을 내게 됩니다. 자동차는 기름을 많이 태울 때 힘을 내지 않습니까 ? 금 촛대가 일곱 가닥이라도 기름은 한 군데서 공급이 되고, 그 기름 공급의 분량에 따라 불빛이 더하기도 하고 덜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그리스도를 비추는 역할을 많이 하시려면 기름 같은 성령의 역사가 충만하셔야 하고, 이 성령 충만이란 성경 지식, 사랑의 실천, 인내와 기도로 나타나게 됩니다. 성경 지식이 빈약하면 성령 충만에 앞서지 못하는 줄로 아셔야 하고, 사랑의 실천을 넉넉하게 못하여도 그러하며, 또 인내와 기도가 부족하여도 역시 성령 충만에 미급하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말씀과 사랑과 인내와 기도가 넉넉하면 왜 교회가 발전하지 않겠습니까 ? 또 이런 것들이 부족하면 그 부족을 채우지 못하는 성도가 부흥의 불을 끄고 있음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지상의 교회가 정금같은 등대가 되기 위하여 진리와 사랑과 기도의 빛을 더 밝혀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명예는 예수님의 명예요, 이 사실은 성도의 영광이기도 합니다. 아무쪼록 이 시대의 교회가 금 촛대의 사명을 다하는 주님의 지체가 되도록 노력하는 성도들이 되셔야 하겠습니다.

 

 

설교보충 4. 요한이 은혜를 받음 (계 1:9-20) 목록으로


요한이 받은 은혜.

1.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 것입니다(9절). 믿음을 지키고, 사랑을 실천하며, 내세의 소망을 예비하기 위하여 고난을 받고, 특히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를 인하여 고난을 받음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함이요 복된 일입니다(마5:11-12).

2. 사명을 받는 은혜입니다(11). 요한이 받은 사명은 “계시의 말씀을 써서 여러 교회에 보내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필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글로 쓰고 책을 만들어서 반포하는 것과 성격이 같은 것입니다. 말로 증언하는 것은 증언의 내용이 없어지기 쉬우나 글로 전하고 남기는 것은 오래도록 남습니다. 요한이 예수님으로부터 “말씀을 기록하여 전하라”는 사명을 받은 것은 큰 은혜입니다.

3. 예수님을 보는 은혜입니다. 삭개오를 생각하여 보십시오(눅19:3). 또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보고도 기뻐하였습니다(눅2:34). 요한이 예수님의 모습을 본 것은 뜻있는 일이었습니다. 요한은 초림하신 예수님도 보았지만 승천하셔서 하늘에 계신 예수님을 또 보았습니다. 그 예수님은 중보자 제사장의 모습과 심판자 왕의 모습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제사장은 성도에 대한 중보를, 왕은 모든 세계의 통치와 악인에 대한 심판을 시행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하게 하실 것입니다. 저희들도 성경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는 은혜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요한이 본 예수님의 모습 중에,

1) 제사장과 왕의 모습은 성도에 대한 구원과 악인에 대한 심판을 깨닫게 하며,

2) 그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드신 모습은 자기의 사역자를 붙잡고 주관하심을 나타내 주신 것이며,

3) 죄우에 날선 검이 그 입에 있으심은 구원과 심판을 말씀으로 성취하시는 뜻을 나타내 주신 것이요,

4)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심은 구원과 멸망을 임의로 주관하심을 나타내 주신 것이요,

5) “계시를 기록하여 교회에 보내라” 하신 것은 진리의 문서 전도를 명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고난에 동참하고, 사명을 받고, 예수님을 알게 되는 것을 큰 은혜로 여기는 성도가 되십시다.

 

 

제 4 과 에베소 교회에 주신 말씀 (계 2:1-7) 목록으로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주신 말씀”이며, 본문을 분류하면, 말씀을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1)과,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 대한 칭찬(2-3,6), 책망과 회개를 촉구하시는 말씀(4,5)과 회개를 안함에 대한 결과(5) 그리고 승리적 생활의 결과(7)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① 에베소는 소 아시아 서부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 에게해를 건너 유럽을 연결하는 관문이며 우상의 전각인 아데미 신전이 있었고, 우상 숭배와 미신, 부도덕 등의 죄악이 많은 곳이었으며, 기독교에 대한 핍박도 심하였다고 합니다.

② 이 곳에 복음이 전파된 것은 사도 시대에 바울의 선교 사역으로 성취되었습니다(행18:19). 행19:1-20에서 성령님의 역사가 나타난 사실과 바울 사도의 3년간의 목회 사역이 있었고(행20:31), 또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 올 무렵에는 장로들이 세워져 있었습니다(행20:17). 디모데는 초대 감독을 하였고(딤전1:3),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사역을 하였으므로(행18:19,24:26) 약 30년의 연륜이 지난 다음인 주후 100년경에 요한을 통한 예수님의 멧세지를 전달받게 된 것입니다.

③ 이 편지를 받을 당시 에베소 교회의 형편은 이 교회에 주신 말씀으로 알 수 있습니다.

1. 에베소 교회에 말씀을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1)은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로 다니시는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1)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잡으심은 세계 교회를 대표하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사역자를 의미하므로 역시 일곱 별은 세계 교회의 사역자들을 의미합니다. 또 오른 손은 힘있는 손을 뜻하므로 주님이 자기의 사역자들을 든든히 붙잡고 주관하심을 의미합니다.

2) 일곱 금 촛대는 일곱이라는 수가 완전을 뜻하기 때문에 전체 세계 교회를 의미하고, 이 교회들은 다 예수님이 자기의 피로 값주고 세우신 성도들이며(행20:28), 그 사이로 다니심은 교회와 성도들을 두루 살피시기 때문입니다.

2.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 대한 칭찬의 말씀(2-3,6)으로,

1) 행위와 수고와 인내가 있었음을 칭찬하셨으니, 행위는 진리(계명)의 실천이요, 수고는 사랑과 봉사이며, 인내는 핍박 등을 견뎌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2)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음”은 최대한의 순결을 위하여 범죄자들을 엄하게 책망, 경계한 것을 뜻하고,

3)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드러낸 것은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이나 외식자들의 부당성을 지적하여 드러낸 것으로, 그 표준은 성경 말씀과 사도들의 모범에 근거하였고, 이와 같은 뜻으로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한 일에 대하여”서도 칭찬을 하셨습니다. “니골라 당”이란 “이긴 자의 당”이라는 뜻으로, 그 당시에 있었던 이단의 단체입니다. 교회 안에는 자주 이단 사상이 유포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늘 주의하셔야 할 것입니다.

4) 또 참고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하였으니, 이것은 예수님께 돌릴 영광을 위하여 인내와 근면에 각별히 힘쓴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 잘하는 일이 있었던 반면에 부족한 점도 있었으니, 책망하신 말씀(4)과 회개를 촉구하신 말씀(5)을 볼 수 있습니다.

1) 책망의 내용은 “처음 사랑을 잃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거나 특히 인적 교제와 관련되는 문제를 공의롭게 해결하다 보면 사랑을 소홀히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마24:12). 예수님은 이 문제를 크게 지적하셨습니다. 은혜가 많을 때는 사랑이 뜨겁다가도 다시 은혜가 약해지면 사랑도 식어지는 경향이 있으니 이런 점도 주의하셔야 합니다.

2)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사랑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이 부족해진 성도들은 그 원인을 진단하여 용기 있게 회개하고 처음과 같은 사랑을 회복하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흔히 사랑이 미움으로 변할 때는 진실에 문제가 있거나 욕심이 작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하튼 모든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도록 힘쓰셔야 할 것입니다.

4. 회개를 안함에 대한 결과(5)는 예수님이 오셔서 “촛대를 옮기신다” 하셨으니, 이는 주님의 교회를 폐쇄하신다는 뜻입니다. 성경과 사역자만 있고 사랑이 없다면 진리만 있고 실천은 없는 죽은 믿음의 세계와 같아서 교회의 명분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5. 그러나 “이기는 그에게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신다” 함은 믿음과 사랑의 승리자에게 무제한의 영적 축복으로 타락 전의 에덴 동산을 연상할만큼 복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사랑을 동반하는 믿음을 반드시 가지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말씀에서 예수님의 모습과 교회의 형편을 밝히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① 진리의 편지를 써서 사역자에게 주시는 모습,

② 성도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감찰하시는 모습,

③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성도가 인내하고 근면하는 모습을 보시고 만족하시는 표정,

④ 사랑이 없음을 책망하시는 모습,

⑤ 회개를 촉구하시는 모습,

⑥ 회개하지 않을 때 엄하게 다스리실 것임을 경고하시는 모습,

⑦ 승리자에게 영광을 주실 것을 약속하시는 모습 등이요, 또 교회의 모습은 교리를 잘 따져서 진리성을 밝히는 데는 열심이 있으나 처음 사랑을 잃음에 대한 것은 생각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형편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설교보충 5. 죽도록 충성하라 (계 2:10)목록으로


1. 무엇에 충성해야 할까요 ?

1) 자신이 예수를 믿는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요6:28-29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했을 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 하시므로 예수를 잘 믿는 것이 성도의 본연의 자세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내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일에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2) 자신을 진리에 굴복시키는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고후13:8에서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하셨고, 또 고전4:6에서는 “기록한 말씀 밖으로 넘어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충성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기의 의지를 굽혀 복종하는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은 순종, 하나님이 고향을 떠난 순종, 이삭이 제물된 순종이 다 충성에 근거한 것입니다.

3) 충성은 한 주인만 섬기는 것입니다. 마6:24에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으니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한 임금만 섬기는 신하가 충신인 것처럼 하나님께만 소망을 걸고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주님만 섬겨야 할 것입니다.

40 맡은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고전4:1에서 “그 맡은 자들에게 충성을 구한다”고 하셨습니다. 맡지 않은 일도 충성해야 하지만 순서상으로 먼저 할 일은 맡은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맡았습니까 ?

① 만물의 영장이라는 도덕성을 지닌 인생의 본분을 맡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으로 태어났으니까 사람답게 사는 일을 맡았다는 것입니다.

② 사람 중에서도 성도의 신분을 가졌으니 성도의 본분을 맡은 것입니다.

③ 성도가 되고 보니 교회를 통해서 특정 직임을 맡은 것도 있습니다.

④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 대한 직임도 있습니다.

2. 어떻게 충성해야 할까요 ?

1) 받은 은사대로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업는 것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고후8:12). “므나나 달란트” 밑천을 주시고 “그것으로 장사하라”고 하시는 분입니다(마25:14,눅19:13). 다른 사람처럼 충성하려 하지 마시고 내가 받은 은사대로 자연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2) 자원함과 감사와 기쁨으로 하는 것입니다. 억지로 하는 충성은 빛이 나지 않습니다.

3) 겸손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충성을 자랑하거나 사람이 알아주기를 바라거나 어떤 특혜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말없이 충성하는 것입니다.

4) 독자적 충성이 중요합니다. 단체적 충성도 귀하지만 단체 행사에 뜻이 맞지 않을 때는 자기 분량대로 개인적 충성을 하면 될 것입니다.

5) 구원을 얻게 하는 영적 사역에 더 충성하여야 합니다. 고전10:31-33을 보시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며.....모든 사람의 유익을 구하되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 하시므로 모든 유익 중에 영적으로 구원 얻게 하는 유익이 더 필요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충성의 순서가 영적인 면이 우선이고 육신적인 면이 그 다음이 되는 것입니다.

6) “죽도록 충성하라” 하신 말씀처럼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역경없이 쉽게 하는 충성도 있겠지만 영광을 포기한 상태에서 많이 희생하고 자신이 쇠하여지도록(요3:30) 충성하라는 뜻입니다. 마치 운동 선수가 금메달을 따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처럼 충성해야 할 것이요,

7) 끝까지 하는 것입니다. 목적의 결과가 나오기까지 중도에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셔야 할 것입니다.

 

제 5 과 서머나 교회에 주신 말씀 (계 2:8-11)목록으로


이 시간에는 서머나 교회에 주신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본문을 살피겠습니다.

1. 본문 초두에 “서머나 교회”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1) “서머나”라는 지역은 소 아시아 서해안 에베소에서 북쪽으로 약 140리(57km) 지경에 있는 상업 도시였습니다.

2) 그 곳에 교회가 설립된 경위는 확실한 문헌이 없어서 알 수가 없으나 소 아시아 지역의 일곱 교회 중 하나로, 역경 중에서 신앙 생활을 하며 칭찬을 받은 교회였습니다.

3)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을 통하여 그 교회에 말씀을 주실 당시 그 교회는 많은 핍박으로 환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책망 받음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당시는 로마 황제의 10대 박해(54-305) 중 2대, 3대 박해(도미시안, 트라야노,81-117년)를 받던 어간이었고, 또 기독교를 핍박하는 유대주의자들이 정치적 세력과 결탁하여 정치 사회적으로 오는 화근을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 씌어 핍박을 가하였습니다.

4) 본문 성경이 기록된지 약 50년 후의 일이지만 서머나 교회는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교회로 역사에 장식되었습니다. 주후 156년에 순교한 서머나 교회의 “폴리갑”이라는 감독은 사도 요한의 제자로서 86세에 화형으로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그가 서머나에서 12번째의 순교자라고 하니 그 이전의 핍박받은 정황을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5) 폴리갑 감독의 순교 사화는 저희들에게 감명 깊은 내용을 전하여 줍니다. 폴리갑은 화형에 처해지기 전에 먼저 나이 10여세의 소년 “챠만익”을 맹수에게 던져 뜯기게 하였는데, 그는 믿음으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을 감수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핍박자들은 “이것이 폴리갑 감독의 유혹과 설득에 의함이라”고 하면서 86세의 폴리갑을 죄인처럼 심문하며 “이제라도 살려 줄 것이니 예수를 저주하라”고 할 때 그는 말하기를 “내가 86년간 주를 따랐으나 주께서 나를 해롭게 하신 적이 없거늘 내가 어찌 나의 왕, 나의 주를 모독하리요” 하니 재판관이 더 듣지 않고 황형을 선고하였습니다. 그러자 폴리갑은 또 말하기를 “금세의 일시적인 불보다 내세의 영원한 불이 더 두려우니 속히 결행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형리가 그 몸에 불을 붙이는데 화염이 그를 뒤덮으나 그 몸에 불이 붙지 않아서 결국은 칼로 그 몸을 쳐서 분소(焚燒)시켰다고 합니다. 또 그때에 빌라델비아 교인 11명도 함께 화형을 받으면서 찬송하며 장엄하게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2. 이런 교회에 주님이 어떤 말씀을 주셨습니까 ?

1) 말씀 주시는 예수님의 신분을 알리시되 “처음이며 나중이며 죽었다 살아나신 이”라 하셨으니, 이 말씀은 “역사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며 죽음을 이기신 분으로 영원히 살아계셔서 선악간에 심판하실 것을 믿게 하시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도 서머나 교회 성도들처럼 핍박을 받고 돌아가셨지만 여전히 살아 계신 것을 보고 핍박과 환난이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자요 거룩하신 분이지만 예수님도 핍박을 받으셨고 핍박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여 영원히 계시고 공의롭게 끝을 맺는 심판자이심을 깨달아서 주님을 인하여 핍박받는 성도가 큰 안위를 받고 희망을 가지라는 교훈을 주신 것입니다.

2) 모든 실상을 아시는 주님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의 형편을 잘 아신다”고 하신 것처럼 서머나 교회의 형편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9절 말씀을 보시면, 모든 성도들의 ① 환난도 아시고, ② 궁핍도 아시며, ③ 그러나 실상 부요한 것도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환난은 외부로부터 당하는 고난이고, 궁핍은 핍박으로 말미암아 당하는 물질적 타격이요, “실상 부요한 자”라는 것은 겉으로는 고난스러운 것 같으나 신앙적으로, 영적으로는 핍박을 견딜만큼 믿음이 오히려 크게 부요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또 ④ 자칭 유대인이라고 말하는 자들의 훼방이 어떠하다는 것도 주님은 아시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의 회”라고 밝히신 것입니다(고후6:10). 왜 자칭 유대인이라는 자들이 사단의 회일까요 ? ① 자칭이란 말 속에 외식과 거짓이 있고, ② 유대인이란 우월감을 갖는 교만이 있으며, ③ 그들이 교회와 성도를 훼방하니 사단의 회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 성도들이 신앙적으로 오는 환난과 궁핍을 당하면서도 그것을 이기고 실상 부요한 생활을 한 것처럼 저희들도 신앙 생활 때문에 당하는 환난이나 가난 정도를 의연하게 이길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성도가 가난을 각오하고 예수믿으려고 한다면 예수 못 믿을 자가 없고 또 가난해 지지도 않을 것이며 또 죽음을 각오하고 믿는다면 역시 더 잘 믿고 형통하기도 하며 오히려 영생과 상급을 많이 받게 될 것입니다.

3) 이상과 같은 형편의 성도들에게 예수님은 권면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①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열심있는 성도가 핍박을 받고 화형당하는 것을 볼 때 자기들이 받을 환난을 예측하며 두려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장차 받을 고난이 또 있지만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고 부탁하신 것입니다.

② 미래를 아시는 예수님께서 그들이 계속 핍박당할 일을 아시고 예고해 주셨으니 그것이 곧 10절 말씀의 “장차 너희 중에 또 몇 사람을 옥에 던져 10일 동안 시험을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의 10일이란 길지 않은 기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환난은 결코 길지 않다는 것을 아셔서 인내로 대비하는 성도님들이 되셔야 하겠습니다.

③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셨습니다. 충성의 방법과 목표를 “죽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이 “죽도록”이란 말씀은 “죽을 때까지 하라”는 시간의 한정만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저희들이 하나님께 충성하기를 죽을 때까지 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직자 정년 제도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죽도록 충성하라” 하셨으니까 정년제를 실시하면 안된다고도 합니다. 죽을 때까지 충성해야 하니까요.....그러나 이 “죽도록”이라는 말씀은 충성의 시한부만 말씀하는 것이 아니고 충성의 방법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자기를 죽게 하는 방법으로 또는 자기를 쇠하게 하는 방법으로 자기를 망하고 희생하게 하는 방법으로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충성에 개인적 이기주의가 따르면 감히 충성한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또는 밀 알처럼 희생과 죽음을 당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조건적으로 충성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복받기 위하여 충성하는 것입니다. 복이란 것은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도 복인데 그런 것을 복으로 여기지 않고 현실적인 것만 복으로 여겨서 현실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충성하는 것은 진정한 충성이 아닐 것입니다.

④ 예수님께서는 죽도록 충성하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약속하셨습니다. 현실 상급을 바라며 충성한다면 기복주의 신앙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생명의 면류관은 내세에서 주시는 것입니다. 마25:21에 보시면 “적은 일에 충성하였어도 많은 것을 더하여 주신다” 하셨는데, 죽도록 충성한 자의 받을 상급이야 더 크지 않겠습니까 ? 생명의 면류관이란 승리자에게 주시는 영원한 칭찬이요 영광을 의미합니다.

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이 교회에 주시는 말씀은 아무나 듣지 못합니다. 특히 완악하여 회개하지 않는 성도는 이런 말씀이 자기의 말씀으로 와 닿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 받을 자에게 “듣는 귀와 보는 눈”을 주시고(잠20:12) 또 “귀를 깨우치사 알아듣게 하셔야 한다”고 하셨습니다(사50:4-5,행16:14). 설교를 모든 성도가 다 의미 있게 받지 못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인 것입니다.

⑥ 마지막으로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다” 하셨으니, 첫째 사망은 영과 육의 분리 즉, 죽음을 뜻하므로, 둘째 사망은 영원한 지옥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의 승리자만 그 곳을 면하게 될 것입니다.

 

 

설교보충 6.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계 2:10)목록으로


예수님께서는 많은 환난을 당하며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는 서머나 교회 성도들에게 죽도록 충성할 것을 권면하셨습니다. 충성은 환난과 궁핍 속에서도 할 수 있는 것임을 말씀하셨고, 충성의 목표는 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죽도록 하는 것이며, 이것을 잘하는 자에게는 생명의 면류관(하늘의 상급)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저희들도 충성을 잘 하시려면,

1. 주님의 의도를 파악하셔야 하겠습니다. 종이 주인의 뜻을 모르면 충성할 수 없으니까 주인의 뜻, 주인의 의도, 주인이 바라시는 것을 잘 파악하셔야 할 것입니다. 엡5:17에서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하셨고, 충성이란 원문 “피스토스”(πιστός)의 뜻도 “진실”인데, 참과 진실은 주님뿐이시기 때문에 주님을 아는 것이 곧 진실과 그 뜻을 아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2. 무조건 복종하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기 전에 내가 주님의 뜻에 복종하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히3:5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사환은 상급자의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고 복종하는 종의 대우를 받는 위치입니다. 저희들은 흔히 내 소원과 내 기분을 따라서 일 하려는 마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떠한 고난을 겪어도 주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 유익하고 또 내가 볼 때 발전이 없는 것 같아도 주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을 믿으셔야 할 것입니다. 순종이 곧 충성이 됨을 믿으셔야 합니다.

귀신병 들렸다가 고침 받은 사람이 사명적인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으나 예수님이 거절하셔서 따르지 못하였지만 그는 자기 고향에 돌아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이히 여김을 받으므로 전도의 효력을 얻었습니다(막5:20). 그리고 빌립 집사는 사마리아에서 성공적 전도를 하다가 성령님의 지시로 가사로 내려가는 광야로 갔는데 마침 그 곳으로 지나가는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전도하여 아프리카 전도의 도화선이 되게 한 것은(행8:38) 다 순종으로 얻은 전도의 열매를 입증합니다.

어떤 연하 엽서에서 백민석씨의 시를 읽고 감명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시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무엇이나 얻을 수 있는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했으나

나는 약한 몸으로 태어나 겸손에 복종하는 것을 배웠노라

(또) 큰 일을 하기 위하여 건강한 몸을 구했으나

도리어 병을 얻어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부를 얻어 행복하기를 간구하였으나

나는 가난한 자가 됨으로써 오히려 지혜를 배웠노라

한 번 세도를 부려 만민의 찬사 받기를 원했으나

세력 없는 자가 되므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고

생을 즐기기 위해 온갖 좋은 것을 바랐으나

하나님은 내게 생명을 주사

온갖 좋은 것을 즐길 수 있게 하셨노라

내가 바라고 원하던 것은 하나도 받지 못하였으나

은연중에 나는 희망하던 모든 것을 얻었나니

나는 부족하되 내가 간구하지 않은 기도까지 다 응답되었으며

이제 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충족한 축복을 입었노라


하였으니, 이 시는 필자에게 너무 큰 감동을 주었으며, 상당 부분 필자의 생활과 상통함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자기 소원이 충족되지 않은 중에서도 주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 충성이고 또 축복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3. 작은 일을 크게 여겨 충성해야 합니다. 마25:21에서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일로 네게 맡긴다”고 하셨습니다. 작은 일이란 시간을 지키는 일 부터 휴지를 줍는 일, 적은 금액의 헌금, 냉수 한 그릇 주는 봉사(마10:42)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은 귀하게 여기시고 작은 일을 성실하게 할 수 있는 자에게 큰 일도 맡기는 것입니다. 겨자씨의 성장과(마13:31-32) 한 알의 밀이 떨어짐(요12:24)도 역시 작은 일에서부터 크게 되는 것을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4. 환난 중에서도 믿음과 사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환난과 궁핍 중에서 믿음과 사명을 지켰고,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았을 때 이삭을 제물로 드리는 순종을 하셨으며(히11:17), 마게도냐 교회도 환난과 극한 가난 중에서도 풍성한 연보를 하는 충성을 보였습니다.

5. 자기의 직책 수행을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런던의 워커 미술관에는 충성이란 두 개의 그림이 있는데, 하나는 로마 봄베이 도시에 화산이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이 도성을 탈출하지만 그 성문지기는 자기 생명이 화산과 관계없는 사람처럼 성을 빠져나가는 사람을 침착하게 안내하는 그림입니다. 또 하나는 짐을 싣고 구덩이에 빠진 수레를 끄는 소가 주인의 채찍을 맞으며 필사적으로 수레를 끌어내려고 노력하는 장면의 그림입니다.

결론적으로 저희들은 충성의 사명과 방법을 잘 알아서 하나님이 보실 때 인정하시도록 충성을 잘 함으로써 생명의 면류관을 얻도록 결심, 노력하셔야 하겠습니다.

 

 

설교보충 7. 죽도록 충성하라 (계 2:8-11)목록으로


oo 교회 임직식을 맞이하여 “죽도록 충성하라”는 제목으로 교훈을 받겠습니다.

1. 하나님은 은사와 직분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이나(고전12:4) 한 성령님이 각 사람에게 자기 뜻대로 주시고(고전12:11) 따라서 누구에게나 다 주시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고전12:29). 바울 사도가 귀한 사도였지만 무명의 사역자인 아나니아로부터 안수를 받았습니다(롬1:1,행9:12). 이 사실은 신약 교회의 모든 직분을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임직을 받는 분들은 직분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감사하셔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왜 이런 직분을 주실까요 ?

1) 우선 앞장 서서 책임을 지고 일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요(고전12:7),

2) 교회의 기반을 든든히 세우기 위함이요,

3) 경건 훈련의 방편이 되어서 모범적 생활과 봉사를 더 배우게 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모든 직임자는 자신이 충성하는 줄로 여길 것이 아니라 충성하는 자로 인정받기 위하여 연단받고 시험을 받는 위치에 있음을 잊지 마셔야 할 것입니다.

4) 죽도록 충성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하면 “충성하라”고 주신 것이요, 개인의 명예나 교회의 요람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미련한 성도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교회의 직분을 명예로 알고 탐하기도 하고, 받고는 교만하며 나가서는 주장하는 자세까지 취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마20:25-28에서 “세상의 집권자는 권세를 부리지만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려면 종이 되어야 하며,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고 자기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3. 하나님이 칭찬하실 만한 충성된 역군이 되시려면,

1) 믿음의 역군이 되셔야 합니다.

① 믿음이란 성경의 바른 지식을 소유하는 것이고,

② 그것을 풍성하게 아는 것이며,

③ 성경 말씀을 충실히 이행하는 생활입니다.

성경 지식을 잘못 이해하거나 엉뚱한 주장을 하거나 사이비한 기독교인들과 동화되거나 성경을 찾지도 못하는 형편이 되거나 말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그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니(히11:6) 어찌 충성을 하겠습니까 ? 그래서 믿음을 갖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바른 신학 사상과 덕을 세우는 실천이 필요한 것입니다.

2) 지혜로워야 합니다. 지식이 아는 것이라면 지혜는 세상을 옳게 사는 비결입니다. 이 지혜가 있으면,

① 겸손하고,

② 예절이 바르며 규모가 있고,

③ 화평을 유지하며,

④ 진실하며,

⑤ 자기를 책임지며,

⑥ 칭찬 받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겸손과 예절과 규모와 진실 등이 부족합니다. 영국의 수상 처칠은 퍽 겸손하고 규모 있는 사람으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한 번은 처칠 수상이 미국을 방문하여 백악관 옆을 거닐다가 바쁜 시간에 청소부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회담 시간이 지연되자 비서가 수상을 인도하면서 무슨 담화를 청소부와 나누셨습니까 ? 한즉, “청소부의 말이 너무 지혜로워서 그와 대화를 계속 하는 중에 더 지혜로운 말이 나오기를 바라고 대화를 계속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윗 사람이라도 아랫 사람의 말을 존중할 것을 교훈하는 예화가 되는 것입니다. 또 한 번은 처칠 수상이 영국 국회에 국정을 보고하러 가는데 시간이 급하여 과속을 하다가 교통 순경에게 잡혔습니다. 운전수가 교통 순경을 보고 “뒤에 앉은 분이 처칠 수상이신데 시간이 급하다”고 하니까 교통 순경의 말이 “당신이 시간 급한 것과 나와는 관계가 없고, 나는 과속을 지적할 뿐이며, 뒤에 앉은 분이 처칠 수상님 비슷하기는 하나 수상님 차가 과속을 할 이치가 없으니 거짓말 마시오” 하고 의연히 딱지를 떼고 보냈다는 것입니다. 처칠 수상이 그 교통 순경에 대하여 감탄을 하였습니다. “저렇게 충실한 교통 순경이 다 있나” 하여 내무부 장관에게 즉시 1계급 특진을 시키라고 명령을 하달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내무부에서 통지가 오기를 “경찰이 과속차 단속한 공로로 특진되는 규정이 없어서 못한다”고 하여 두 번을 망신당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렇게 지혜로운 사람은 겸손하고, 규모 있고, 법이 그렇다 하면 복종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데, 이런 일들이 교회 직분 생활에서도 많이 적용이 된다는 것을 아셔서 매사에 합리적인 생활이 되도록 노력하셔야 할 것입니다.

3) 봉사적이고 희생적이어야 하겠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이 곧 자기 입장에 손해가 되다 못해 죽기까지 하라는 뜻입니다.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세례 요한은 요3:30에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하셨고, 바울 사도도 행21:13에서 “결박과 죽음을 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간다”고 하신것과 같은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의무로 한 일을 봉사를 한 줄로 아는 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일 예배, 예배 헌금, 감사 헌금, 십일조, 자기가 사용하는 성전 건축 헌금 등입니다. 이런 것은 다 의무요 봉사가 아닙니다. 봉사는 마땅히 안해도 될 입장에서 자기의 것으로 남을 돕는 것이 봉사일 것입니다. 사명자들도 충성하면서 명예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많은 대접을 받으면 오히려 하늘의 상급이 준다는 것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4) 마지막으로 내세의 소망을 걸고 인내로 견디며 충성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에게는 내세의 소망밖에 없습니다. 현실을 떠나는 것이 아쉬우면 그는 하나님과 먼 관계의 사람일 것입니다. 이 세상은 수렁과 같아서 더 살수록 죄에 빠져 들어가기 때문에 죄를 두려워하는 성도는 환멸을 느낄지언정 결코 애착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혹 충성하는 성도에게 현세적 축복이 적어질 때는 더욱 현실을 소극적으로 기대하고 내세의 상급을 사모하라는 하나님의 섭리로 믿으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부르실 때를 촉박하게 기다리면서 성실하게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하신 말씀을 더욱 깊이 음미하시면서 복된 생활을 결심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보충 8. 교회들에게 주신 말씀 (계 2:9-11)목록으로

(84년 4월 16일 황동 노회 개회 설교)


황동 노회 64회 정기 노회를 맞이하여 “교회들에게 주신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교훈을 받겠습니다.

1. 교회들에게 주신 말씀에 대하여,

1) 이 말씀을 주신 예수님이 자기를 “처음이요 나중이라” 또 “죽었다가 사신 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창조와 보존과 통치와 끝맺음과 심판을 다 행사하시는 절대자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저희들은 절대자의 말씀을 받고 있으며,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분의 말씀을 듣고 있으므로 저희들도 예수님처럼 자신이 죽고 그리스도로 다시 사는 확실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자기의 말씀을 교회의 사자인 복음 사역자를 통하여 주셨습니다.

① 이것은 복음 사역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깨닫고 실천한 후에 성도들에게 전달하여야 할 사명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② 또 이것은 복음 사역자가 먼저 자기 심령을 위하여 필요한만큼 말씀의 공급을 받은 다음에,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③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복음 사역자가 설교 준비 아닌 일에 쫓기다가 말씀 전체를 증거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 못하여 말씀의 한 부분을 감추면서 증언 한다든지(딤후2:9) 또는 어떤 명분을 위한 증거로 또는 자기 사상을 펼치기 위한 증거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또 때로는 성경의 권위보다 사람의 경험을 앞세워 감동 받는 자료를 증거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복음 사역자는 마치 구약 시대의 제사장이 먼저 자신을 위하여 제물을 드리는 것처럼 항상 자기의 순결을 위한 자기 개혁에 노력하셔야 할 줄로 믿습니다.

④ 만일 복음 사역자가 자기 개혁과 사명에 힘쓰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 우선 장로님 부흥사가 나오고, 평신도 부흥 운동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또 목사가 설교하면 귀를 기울이지 않고 연예인 전도사나 가수 집사가 설교하면 교인들이 귀를 기울이기 때문에 목사는 뒷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현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 혹 교인들이 “우리 교회도 부흥회 합시다”라고 하면 담임 목사가 “얼마나 내게 은혜를 못 받으면 저들이 다른 목사의 설교를 듣고자 하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지 않습니까 ?

작년 9월 총회 때 대구 서현 교회 마당에서 평신도가 완장을 차고 다니면서 “목사님, 장로님들 회개하시오”라고 외친 일이 있었습니다. 참 선지자의 외침이 없을 때는 하나님이 누구의 입인들 못 여시겠습니까 ? 나귀의 입도 여시고 돌들도 소리 지르게 하실 것입니다(민22:28,마3:9).

⑤ 저희들은 마땅히 들을 귀를 가지고 누가 외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교만과 정욕과 이기주의적인 자세를 버리지 못한 채 자신들을 깨우치시는 말씀을 외면하지는 않습니까 ? 이런 일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2. 서머나 교회 형편이 어떠하였습니까 ?

1) 그 교회는 환난과 궁핍이 있었고, 악한 자들의 훼방과 더불어 더 큰 핍박이 예고된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현실 교회가 환난과 궁핍을 당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저는 신앙적 핍박으로 환난 받는 것도 없고, 대체적으로 잘살기 때문에 궁핍이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는 환난과 궁핍이 있었으니만큼 예배당도 초라하고 생활도 어려우며 교역자도 고생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부요한 자니라” “실상은 부요한 자라” 하셨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 차라리 오늘의 교회가 그런 궁핍과 환난을 당하면서라도 믿음의 부요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께 더 영광될 일이 아니겠는가 ?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불신자들의 말을 곁에서 들어보면 “돈은 교회에 많다. 예배당을 잘 짓는 것을 보아라. 목사 직업이 괜찮다. 돈 주고, 집 주고, 자동차 주고, 매일 대접받고 얼마나 좋으냐”고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불신자들이 목사를 성직자로 보지 않고 직업인으로 보는데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눈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성직자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진데 있습니다. 목사는 목사 같아야 하고, 교회는 교회 같아야 하는데 목사는 직업인 같고, 교회는 사교장 같이 전락한 것은 아닌지요 ? 아직도 저희들이 허탄한 것에서 탈피하지 못하였다면 우리의 영적 상태는 가난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2) 현실 교회 형편을 가만히 보면 실상 부요한 자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이 적고, 또 경건하게 살려고 노력하여 핍박받는 자도 거의 없으며 오히려 허탄한 것들을 대단한 것으로 여기면서 “명예, 권세, 물질, 현세적 안일”을 얻으려고 시간과 물질을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전도사가 교회에서 배척을 받아 나온 후 노동법과 관련하여 퇴직금 받는 법을 문의해 온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당신이 교회 들어갈 때에 어떻게 계약하고 들어갔느냐 ?”고 반문하였습니다. 바울 사도의 신앙처럼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또 내가 한 일이 많을지라도 내가 한 것이 아니요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 하신 것이라”(고전15:10)는 사명을 가진다면 퇴직금을 문제 삼지 못할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신앙과 충성 때문에 고난을 받았고 부요해졌지만 현실 교회는 허탄한 것들 때문에 믿음을 판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3. 주님이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

1) “아신다”는 것입니다. 환난, 곤고, 핍박, 위험, 믿음이 있고 없는 여부까지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시고 심판하실 주님께서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신다는 것은 일면 두렵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겠지요.

2)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환난, 핍박, 비천, 궁핍도 역시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만 가진다면 무엇에든지 담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사람의 인정을 못 받는 것이나 가난과 비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3)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죽도록”은 삶을 피하거나 고행주의를 힘쓰라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다만 십자가의 정신으로 충성하라는 뜻입니다. 십자가는 최대의 겸손, 최대의 순종, 최대의 고난과 희생이요, 예수님은 이것을 알아주지 않는 세계에서 감당하셨고 또 자원하는 제사가 되기 위하여 고통 중에서도 입을 열지 않으시고 참으신 것입니다. 성도가 십자가 정신으로 충성하고 자기가 살도록 충성하지 않기 위하여 항상 세례 요한처럼 자기는 쇠하여도 주님과 교회는 영광되고 흥하는 목적으로 처신하여야 할 것입니다. 아무 때에라도 자기보다 유력한 사람이 나타나서 하나님의 교회를 잘되게 할 수만 있다면 기쁘게 물려주고 나오는 것이 충성된 일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것을 잘못하면 복음 사역자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막는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4)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다” 하셨으니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죽도록 충성했다면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나 그렇지 못하고 마귀와의 신앙적 싸움에서 이기는 정도라면 지옥의 형벌을 면할뿐”이란 뜻으로 아셔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딤전6:11-16의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하면 영생을 얻고 주님이 나타나실 때 책망 받을 것이 없다“는 말씀과 비슷한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죽도록 충성하면 상급이 있지만 겨우 이기는 정도이면 지옥만 면한다는 뜻입니다. 복음 사역자는 하나님이 특별히 가까이 해 주시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2:1) 마귀를 이기는 정도에서 뛰어나 충성하는 역할을 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현실 교회 사역자들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을 폭넓게 상상해 본다면,

① 개혁파 신학을 깊이 연구하여 널리 보급함으로써 신학자의 입에서만 주장되는 칼빈주의가 되지 말고 평신도까지 바른 신학 사상을 무장케 하라고 하실 것입니다.

② 그릇된 신학 사상을 강하게 배격하고 신앙적 순결을 지켜 나가라고 하실 것입니다.

③ 은혜의 방편을 신학적으로 잘 정비하여서 올바른 방법으로 은혜를 받고, 은혜를 받은 것이 어떤 것인지를 바르게 깨우치라고 하실 것입니다.

④ 목사, 장로가 성직을 받을 때 교회 헌법을 지키기로 서약을 했으면 반드시 잘 지키라고 권면하실 것입니다(시15:4).

⑤ 하나님이 죽일 기계를 만드시고, 화살을 시위에 먹이시기 전에(시7:12,13) 속히 한국교계가 부조리를 해결하는 기계를 만들어서 먼저 부조리 방지에 힘을 쓰고 하나님 앞에서 늘 떨면서 섬기고 포악하지 말며 화평과 질서를 유지하라고 하실 것입니다.

⑥ 세속적이고 허탄한 일을 힘있게 배격하고 먼저 자기 개혁에 힘쓰며 서로 양보하고, 사랑하고, 단결하라고 하실 것입니다.

⑦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21:15) 하신 말씀을 기억하면서 동료자의 인정에 끌려 죄에 동참하지 말고 주님과 교회를 더 사랑하고 진리대로 사는 독자적인 생활을 확립하라고 하실 것입니다.

 

 

제 6 과 버가모 교회에 보내신 말씀 (계 2:12-17)목록으로


본문 말씀에는, ① 버가모 교회에 나타내 보이신 예수님 (12)과, ② 그 교회 형편을 잘 아시는 주님(13-15)과, ③ 책망(14), ④ 회개하지 않을 때 입의 검으로 싸우시고(16), ⑤ 이긴 자에게 상급 주실 약속(17)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버가모 교회에 보내신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버가모 교회”는 소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 하나로 바울 사도의 2차 전도 노정에서 “버가모”로부터 약 70km 북쪽인 “앗소”와 “드로아”와 또 버가모에서 약 200km 남쪽인 “에베소”를 방문하였으므로 그 어간에 버가모에도 복음이 전파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버가모에는 사단의 위가 있는 곳이라 하셨는데, 여기에는 다른 지역과 달리 로마 황제를 숭배하는 신전이 있었고 또 “아에스클라피우스”(Aesclapius)란 뱀신의 전각과 로마 올림푸스의 최고신인 쥬피터와 쓰스(Jupiter, Zeus) 신당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상주의는 표면적으로 이단성을 드러내지만 현대의 불건전한 운동은 음성적 행사로 순결한 성직자들을 유인합니다. 기독신보 323호에 보시면 어떤 이단 교파가 정통 교파의 사역자를 유인하여 보수적 계파의 성직자들을 세계 관광에 초청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회에 이단 사설을 설파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무료 여행에 따라간 사람들은 결국 어리석은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여하튼 유혹과 핍박이 많은 세계 즉, 버가모 교회와 같은 실정에서 믿음과 사명을 지킨 것은 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승리한 성도들에게 “흰 돌”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1. 버가모 교회에 말씀을 주신 예수님은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12).

1) 이것이 어떤 뜻일까요 ?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친 검으로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그것은 폭력의 검이기 때문입니다(마26:52).

2) 예수님이 가지신 검은 육을 치는 검이 아니고 사람의 심령 골수를 쪼개는 “말씀의 검”을 의미합니다. 엡6:17에서 마귀를 대적하는 전신갑주의 공격 무기로 제일 가는 것이 성령의 검인데,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셨고, 히4:12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예리하여 영과 혼과 관절과 및 골수를 찔러 쪼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의 말씀의 권능으로 창조와 통치와 구원과 심판을 하십니다.

3) 특별히 본문에서 나타내신 말씀의 검은 버가모 교회 성도들의 잘못된 신앙에 대하여 그것을 찌르시고 헤치셔서 바르게 정화하실 목적으로 말씀의 검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보신 것입니다. 그 말씀은 대단히 위력 있는 능력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고로 저희들도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과 증거의 능력을 받아서 말씀으로 부조리를 정화하는데 앞장 서셔야 할 것입니다. 말씀의 위력을 가지는 것이 곧 예수님을 닮는 일일 것입니다.

2.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의 형편을 익히 아신다고 하셨습니다(13-15).

1) 버가모 지방이 우상 숭배의 중심지로서 사단의 위가 있는 것과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큰 곤욕을 치르면서 순교당할 때 그것을 목격한 성도들이 그 무서운 광경을 보면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사실을 다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2) 저희들은 이 사실을 볼 때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입장이 이렇고 저런 것을 구태여 고하거나 설명할 필요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안팎의 형편을 더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그 지역은 로마 황제를 숭배하는 신전을 비롯하여 각종 동물 신을 섬기는 신상에 이르기까지 많은 신당의 본산지여서 우상 숭배가 심하였기 때문에 그만큼 불신앙적이고 마귀적인 역사가 심한 지역임을 예수님이 다 알고 계셨습니다. 또 그 당시에 “안디바”라는 충성된 사역자가 그 곳에서 죽임을 당하였는데 (전설에 의하면) 그는 버가모 교회의 명성 높았던 감독으로 핍박에 의해 가마 솥에 들어가 소살(燒殺)되었다고 합니다. 그 때에 그것을 목격한 성도들이 크게 위축될 줄 알았지만 여전히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사실 또한 소상하게 잘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3. 버가모 교회 성도들의 잘못된 점을 책망하셨습니다(14).

“두어가지 책망할 것이 있으니 곧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발람의 역사는 민22-25장에 나타나 있습니다. 발람은 이방의 왕 발락을 유익하게 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이 저주 선포를 막으시므로 그들을 유혹하여 범죄케 하므로 망하게 만드는 간접적 궤휼을 쓴 것입니다. 그것이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우상의 제물을 놓고 음란한 여인들을 모아서 음식과 정욕에 주린 백성들을 범죄케 한 것입니다. 그 당시에 니골라 당이란 단체가 발람의 사상을 답습하여 전파하고 유혹하였는데, 그 유혹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잘못된 사상에 유혹당하는 성도가 있은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너무 잘 아시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 앞에 자랑할 필요도 없으며, 자신의 고난에 대하여서도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심을 믿을 것이요, 혹 자신의 어리석음을 하나님이 모르시는 줄로 착각하지 마셔야 할 것입니다.

4. 회개하지 않을 때는 예수님이 말씀의 검을 가지고 속히 오셔서 그 니골라 당과 직접 싸우신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교회에 은근히 침투하여 약한 성도들을 유혹하는 이단자들은 다 예수님의 대적일 뿐만 아니라 임박한 심판이 그들에게 준비되어 있음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16절에 보시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 사역자의 편이 되셔서 말씀의 검으로 이단자들과 싸우는 선봉장이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5. 이긴 자에게 상급을 주시는데, “감추었던 만나와 새 이름이 새겨진 흰 돌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17).

1) “감추었던 만나”란 무엇인가 ? 여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단순하게 이해하고 지나가는 것이 가장 현명합니다. “만나”란 구약 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먹었던 은혜의 양식이었습니다. 요6:48에서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신데 그 떡은 만나보다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감취었던 만나”는 예수님의 은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 만나는 구약 시대에는 계시적으로 감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예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신약 시대에 나타나신 예수님이라도 은혜 받지 못한 자에게는 감취어 계시나 은혜를 받은 자에게는 나타나 계신 것입니다. 따라서 신앙의 승리자에게는 천국에서 새로운 은혜를 많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2) “흰 돌”은 명예로운 기념표를 뜻하는 것이니까 신앙을 승리로 이끌어간 성도의 공력을 영원토록 기억해 주시는 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돌 위에 새 이름이 기록되어야 할 것이고(새 이름=신앙을 승리로 이끌었을 때에 받는 기념 칭호임), 그 이름 즉, 자신의 공력에 따른 명예와 칭찬은 “받는 자 외에는 모른다” 하시므로 자기의 공력에 대한 상급과 칭찬은 오직 주님과 자신만이 알고 누리는 특권인 것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두 사람이 같이 천국에 갔어도 각각 상급이 다를 때는 자기 분복대로 누릴 따름이요 하늘의 상급을 서로 나누어 누릴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설교보충 9. 흰 돌을 주시는 뜻 (계 2:17)목록으로


버가모 교회에서 신앙적 승리를 이룩한 자에게 “흰 돌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흰 돌의 뜻이 무엇일까요 ?

1. 흰 돌은 성결의 표입니다. 흰옷과 세마포 또 흰 양털(1:13)등은 다 성결의 상징입니다. 유대인의 풍속에 어떤 사람이 상당한 증거도 없이 죄인으로 몰려서 죄인의 취급을 받다가 도중에 무죄가 떨어졌을 때는 판사가 흰 돌에 그의 이름을 새겨 줌으로그것으로 무죄의 증거를 삼아 죄인으로서의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의 흰 돌은 성결의 뜻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짓고 사형 직전에 왕에게 청원을 하기를 내가 막대한 보화를 왕에게 전하고 죽겠다 하니 거기에 호기심을 가진 왕이 사형집행을 잠시 중단하고 그 보화를 받게 되었는데, 그 보화는 “죄 없는 사람이 심어서 더 큰 보화를 거두는 씨앗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이 그것을 심어 보려 하다가 자기도 죄 없는 아닌고로 왕의 대신에게 주었더니 왕의 대신도 역시 죄없는 자가 못되어 형조 판서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역시 죄없는 자가 못되어, 결국 그 “씨앗 보화”를 심을 자가 없어서 임자에게로 되돌려 왔다는 것입니다. 이때에 사형수는 “왕도 총리도 형조 판서도 다 죄인인데 왜 나만 죽어야 하느냐?”고 항의를 하여 할 수 없이 그를 석방시키고 그에게 흰 돌을 주어 사죄의 표를 삼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렇게 죄를 피할 수 없는 세계에서 우리가 예수님의 의의 공로로 성령으로 인쳐 주시는 표를 받고 천국의 자유로운 시민이 되었다는 것은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2. 승리의 트로피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높은 벼슬을 받는 사람은 마패를 받는 법이고, 전쟁을 치른 장군이 개선을 하여 돌아오면 왕이 흰 돌에 그의 이름을 새겨서 영광의 기념품으로 주는 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전통은 오늘에도 많이 시행되고 있지 않습니까 ? 따라서 천국에서 받는 흰 돌은 마귀와의 영적 전투에서 싸워 승리한 성도에게 주님이 주시는 승리자의 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벧전2:5,6).

3. 상 받을 표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보시면 “승리자에게 감취었던 만나의 축복을 주시면서 그 흰 돌에 새 이름을 새겨 주셨고 또 그 이름은 받는 자 외에는 알지 못한다” 하셨으니 이것은 분명히 남 모르게 자기의 행한 공력에 따라서 받는 상급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히11:6에서 “하나님은 상을 주시는 분”이라 하셨고, 계2:23,20:12에서는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신다“ 하셨으니 각 사람의 행위는 그 행한 자 외에는 다른 사람이 알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흰 돌은 천국에서 누릴 수 있는 상급의 표라 할 수 있습니다.

4. 재회의 표가 되는 것입니다. 마22:12에서는 예복을 입지 않은 자와, 마25:8에서 “등불을 예비하지 못한 자”가 쫓겨나는 부끄러움을 당하였습니다. 따라서 천국에서도 성도와 악인에게 각각 인을 치고(7:2,9:4) 분별하여 취급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흰 돌을 주신 것은 천국에서 예수님을 재회할 수 있는 입장권을 표시한 것입니다. 당연히 이 표를 가진 성도는 영광의 자리에 갈 수 있고 임의로 예수님과 교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덴마크에 대대로 보존되는 보물이 있는데 그것은 1940년의 황태자의 피묻은 손수건이라고 합니다. 1940년에 덴마크가 독일의 침략을 받았을 때 그 황태자가 직접 출전하여 머리에 부상을 입고 손수건으로 그 상처를 막고 싸우다가 전사하였고 그 나라는 구출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후 그 나라 국민들이 그 손수건을 보면서 모든 국난을 타개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 피묻은 손수건이 덴마크를 행복하게 발전시키는 표가 된 것처럼 예수님은 신앙의 승리자에게도 흰 돌과 같은 명예로운 기념품을 주심으로 재회의 약속을 해 주신 것입니다.

 

 

제 7 과 두아디라 교회에 주신 말씀 (계 2:18-29)목록으로


이 말씀은,

① 두아디라 사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18),

② 두아디라 교회의 형편을 잘 아심에 대하여(19),

③ 두아디라 교회 성도들의 잘못을 지적하시는 내용(20)과,

④ 회개를 촉구하시며 징벌을 예고하시는 내용(21-24)과,

⑤ 권면하시는 내용(25,29)과,

⑥ 믿음의 승리자에게 약속하시는 상급(26-27)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 말씀을 가지고 “두아디라 교회에 주신 말씀”이란 제목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두아디라는 소 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가까이 있는 지역에 위치하였으며, 이 지방에는 남신과 여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의 풍습과 사신(邪神)의 감동으로 예언하는 여선지자가 있었으며, 염료 공업이 발달하여 그 곳 출신인 루디아가 자주 장사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행16:14,15). 루디아가 빌립보 지역에서 바울 사도를 자기 집에 모시고 전도한 사실을 볼 때 그의 고향인 두아디라도 루디아와 바울 사도의 영향을 받아 복음이 전래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두아디라 교회 사자에게 말씀을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으니, 이 모습은 1:14,15에서도 나타납니다. 불꽃같은 눈은 철저한 관찰을 뜻하고, 발이 주석 같음은 공간의 제한 없이 신속한 출동력을 뜻하며, 하나님의 아들은 절대자, 심판자의 모습을 보이신 것입니다.

2. 두아디라 교회의 형편을 잘 아심에 대하여(19). 그들의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와 나중 행위가 처음보다 많은 것을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불꽃같으신 눈은 바른 성도의 믿음과 행위, 또 처음 행위와 나중 행위를 비교하여 판단하시고 감찰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형편에 대하여 무엇을 모르시겠습니까 ?

3. 두아디라 교회에 잠재한 잘못을 지적하시고 책망하신 말씀입니다(20). 그것은 거짓 선지자 이세벨의 유혹에 빠져 우상과 음행에 유혹 당한 종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발람이 이스라엘 백성을 유혹한 사례와 같은 것입니다(14). 구약 시대에 있었던 이세벨과 관련 지울 사항은 아니요(왕상16:31), 다만 이름이 동일할 뿐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확실하지 않은 교회와 증언 또 신분을 알기 어려운 사역자들이 많이 있음을 유의하셔야 합니다. 성도가 잘 모르고 잘못된 계통에 들어가면 자유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4. 회개를 촉구하시며, 회개하지 않을 때 징벌을 예고하신 내용입니다(21-24). 예수님이 그의 사역자들을 통하여 잘못을 지적해 주시고 “회개하여 생명을 얻어라”(행11:18) 하셨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며 감사한 일입니까 ?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만하며 굽힐줄 모르고 회개하지 않는 완악이 도사리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

1) 예수님은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회개할 기회란 잘못을 일깨워 주시는 기간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음은 완악이요, 하나님의 분노를 더 크게 쌓는 일이 됩니다.

2) 결국 회개하지 않았을 때 질병으로 침상에 던지시고 죄를 함께 지은 자들도 큰 환난에 처하시며 그의 자녀들까지 사망으로 죽이신다고 하셨습니다. 심판자의 심판은 주권적이고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종합하여 하시고 미래까지 섭리하시는 만큼 그의 심판에 문제를 제기할 피조물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3) 두아디라 교회에 남아 있으면서 이 교훈(예수님의 권면)을 받지 않는 자들은 회개하지 않는 자일 뿐 아니라 사단의 깊은 계교도 알지 못하는 자들이므로 그들에게는 회개와 지식 터득이 급선무이기 때문에 다른 직임이나 충성을 요구, 시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24). 따라서 충성자는 바른 신앙의 정립이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5. 권면하시는 내용입니다. 25절에서는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굳게 지키라”는 말씀과, 29절에서는 “신령한 귀를 열어서 주님이 교회에 주시는 말씀을 잘 들으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만큼 듣고 깨닫는 신앙이 중요한 것입니다(롬10:17,마15:10).

6. 믿음의 승리자에게 주시는 상급의 약속입니다(26-27).

1) 26절의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자”란 올바른 신앙을 갖고 사명을 수행한 자요, 그들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 하신 것은 예수님의 심판석에 동참하는 특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심판자는 유일하신 예수님 뿐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천사를 판단하는 특권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고전6:3). 하나님께서는 심판권을 다 아들에게 주셨고(요5:22), 예수님은 철장으로 질그릇을 깨뜨려 부수시는 것처럼 악인에 대하여 응징하실 것입니다.

2) 신앙의 승리자에게 “새벽별을 주신다” 하셨으니, 이 새벽 별(계22:16)은 민24:17에 근거하여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으로 봅니다. 예수님을 새벽 별 또는 “아침의 별”(ἀστέρα τὸν πρωϊνόν)로 상징하신 것은 예수님은 진리이시요, 의의 빛 곧 태양 같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상의 말씀을 깊이 이해하여 믿음과 사랑과 봉사에 힘쓰고 잘못한 교훈을 앞장서서 경계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제 8 과 사데 교회에 주신 말씀 (계 3:1-6)목록으로


이 말씀에는 사데 교회에 보내신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용을 구분하면,

① 편지를 보내시는 예수님의 모습(1),

② 사데 교회 성도들의 행위를 판단하심(2),

③ 회개를 촉구하시는 말씀(2-3)과

④ 합당한 자에게 주시는 칭찬과 상급에 관한 말씀(4-6)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데 교회는 소 아시아의 헬무스(Hermus)강 유역에 있으며, 모직과 염색업이 발달하였고, 부요, 사치, 음란 등 세속성이 많은 도시였다고 합니다. 이 교회는 몇 사람을 제하고는 책망만 받으므로 현실 교회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1. 말씀을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1).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1:4,20에 나타난 대로 “완전하시고 충만하신 성령 사역의 주관자가 되시고(요14:16), 모든 교회의 사역자들을 주관하시는 이심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2. 사데 교회 성도들의 행위를 판단하심에 대하여(2).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1) 예수님께서 그들의 행위를 살피시고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 하셨으니,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음”은 물량주의(사람, 물질, 사업 등)로 볼 때 손색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요즈음은 예배당이 크고 사람이 많이 모이며 사회 사업을 열심히 하는 단체들이 있습니다. 이 단체의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온전하려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믿음의 성도이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의 수는 많고 목소리는 크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복종하는 성도가 아니라면 역시 그 행위는 신앙적으로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내적 신앙은 죽어 있으면서 외부적으로만 과시하는 것은 마치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부인하는 형편과 같은 것입니다(딤후3:5). 성도의 생활은 매사에 믿음 안에서 합당하여야만 할 것입니다(4).

3. 회개를 촉구하시는 말씀에서(2-3).

1)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된 것을 굳게 하라” 하셨으니 이는 깨닫지 못하며 침체되어 가는 외식적인 신앙의 상태와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상태를 잘 깨달아서 신앙의 등불이 아주 꺼지기 전에 속히 기름을 쳐서 회복시키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 남은바”라는 것은 인정받지 못하는 미약한 신앙을 의미하는 것으로 마치 기름이 달아서 꺼져가는 등불처럼 생각하시면 이해가 잘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남은 요소 그것이 아주 없어지기 전에 속히 일깨워서 합당한 신앙 생활을 회복하라는 것이요,

2) “네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함을 찾지 못하였다” 하셨으니, 여기의 행위의 온전하지 못함은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그렇다는 뜻입니다. 4절에 보시면 사데 교회 안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몇 명이 있는데 그들은 합당한 자이므로 천국에서 흰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다닐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의 온전함이란 하나님의 뜻대로 합당하게 행한 자를 의미합니다.

3)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를 생각해 보라”고 하셨으니, 이것은 처음 예수님을 믿고 은혜 받았을 때의 노력과 감화 받은 상태를 다시 연상하여 그 당시와 같은 성실한 형편을 회복하라는 것이요,

4) “지키어 회개하라”는 말씀은 행위의 온전함을 이룩하도록 변화시키라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을 말과 형식으로 때우려 할 것이 아니라 순결 보존과 실천 행위를 병행하라는 말씀입니다.

5)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주님이 도적같이 이르러 징계하실 것이니 어느 시에 임하실 것인지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3). 인간은 죄와 심판을 경고 받고도 미련하고 완악하여 오래 회개치 않다가 뜻밖의 재난을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일 일깨지 않으면”이란 말씀은 “생각하고 지키라”(3)는 말씀과 함께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이 상태가 늘 지속되어야 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는 항상 경성하고 항상 회개하면서 항상 말씀을 지켜야 하는데 만일 그렇지 못하면 도적같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도적”이란 상당한 피해를 주려고 예고 없이 졸지에 임하셔서 때리실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4. 합당한 자에게 주시는 칭찬과 상급에 관한 말씀입니다(4-6).

1) “그 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 몇 명”은 순결하게 믿음을 지킨 자로서 역경에서 신앙을 지킨 승리자인데 예수님은 몇 명까지라도 기억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실 교회에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가 몇 명이나 될까요 ?

2) “그들이 흰옷을 입고 다닌다” 하셨으니, 여기에서의 흰옷이란 성결을 뜻하는 영광의 예복을 입는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다닌다”는 것은 마치 신하가 궁궐에서 왕과 다니는 영광을 누리는 것처럼 주님과의 그런 동행과 교제와 영광을 맛본다는 것입니다.

3) “그 이름을 생명 책에서 흐리지 않으심”은 하나님 앞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시기 위함입니다. 별은 어두워도 반짝이는 것처럼 성결하게 믿음을 지킨 성도는 스타와 같이 천국에서도 인정받게 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저희들은 사데 교회의 외형주의와 자만에 빠진 교만과 영적 무지를 경계하고 합당한 자로 인정받도록 행위의 온전함을 기하여야 할 것입니다.

 

 

설교보충 10. 죽은 자를 일깨움 (계 3:1-3)목록으로


본문을 가지고 “죽은 자를 일깨움”이란 제목으로 교훈을 받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데 교회 성도들에게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된 것을 굳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1. 죽음의 종류와 표현들에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1) 죽음이라면 모든 사람들이 먼저 육체의 죽음을 생각합니다. 이 죽음은 죄값으로 받으며(창2:17,3:19,히9:27), 혼이 떠나는 것(행5:10), 땅의 장막 집이 무너지는 것(고후5:1), 육신이 티끌로 돌아가는 것(창3:19), 영혼을 찾아가시는 것(눅12:20), 잠자는 것(살전4:13) 등으로 표현하셨고,

2) 영적 죽음이 있으니 이것도 죄값으로 받으며(창2:17), 하나님을 피하는 것(창3:8,엡4:18), 허물과 죄로 영혼이 죽은 것(엡2:1), 신앙의 기능을 상실하는 것(요3:3), 또는 성령이 없는 자(유1:19), 영적으로 무지하며(사9:2), 육신의 생각만 하고(롬8:6), 죄와 허물가운데서 행하고(엡2:1,골2:13) 위선적으로 생활하는 것(계3:1,2)으로 표현되었습니다.

3)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에 가는 것을 죽음이라 하셨으니,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는 것(살후1:9), 마귀와 영원히 합하는 것(마25:41), 영원한 불 못에 가는 것(계19:20), 어두운 곳에 가는 것(마25:30), 둘째 사망(계2:11), 저주와 형벌(요5:29,마25:46), 파멸(롬9:22), 멸망(벧후2:12) 등으로 표현하셨습니다.

4) 그러나 사데 교회 성도들이 “살았다 하는 믿음을 가졌으나 죽은 자라”는 뜻은,

① 우선 말로만 믿고 실천력을 상실한 것(약2:17),

② 믿음의 역사인 사랑의 실천력을 상실한 것(살전1:3)을 의미하고,

③ 물량주의는 과시되었으나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가 멀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과 성도 자신과의 영적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모임과 제도에 참석하고 교회적 봉사 의무가 신앙의 전부인 줄로 아시면 안될 것입니다.

5) 죽은 시체는 숨쉬지 않으며 몸이 차고 감각이 없으며 활동하지 않습니다. 어떤 임금이 애마(愛馬)가 병들었을 때 누구든지 “말이 죽었다”는 말을 할 때는 중벌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말을 살리려고 힘을 다했으나 결국 말이 죽자 임금에게 보고하기를 “말이 숨쉬지 않은지가 3일이 되었고, 눈을 감은지가 3일이 되었으며 먹지 않고 활동을 하지 않은지가 3일이 되었습니다”라고 한즉, 임금이 “그러면 내 말이 죽었단 말이냐”고 했을 때 “그런 줄로 안다”고 하여 중벌을 면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희들은 이 예화에서 신앙적으로 죽은 자가 어떤 자 인지를 생각해 보셔야 할 것입니다.

① 신앙인은 기도의 호흡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는 쉬지 않고 해야 합니다(삼상12:23,살전5:17). 쉬지 않고 기도하는 생활과 방법이 무엇인지를 터득하셔야 합니다.

② 신앙인은 말씀의 눈을 떠야 합니다.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는 어린아이라고 하셨습니다(히5:13). 성경 말씀을 하나님 대하듯 하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③ 신앙인은 말씀의 감각이 민감하여야 하며 사랑의 촉감도 강해야 합니다. 시체는 감각도 없고 차기만 합니다. 죽은 자는 배고픈 것도 모르고 먹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말씀을 갈망하고 사랑의 실천을 갈망하여 목마른 자같이 하여야 합니다.

④ 신앙인은 모든 일에 활동적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혹 죽은 상태는 아닙니까 ?

2. 너는 일깨어 남은바 죽게된 것을 굳게 하라 하셨은즉 자신들을 깊이 반성하여 잠자는 생활에서도 깨어나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도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엡5:14). 기도의 호흡을 회복하고 말씀의 맛을 알도록 집중하며 말씀과 책망에 민감하고 사랑 실천에 능하며 악을 멀리하는데 용기있는 성도들이 되셔야 하겠습니다.

 

 

제 9 과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말씀 (계 3:7-13)목록으로


“빌라델비아”는 형제 우애라는 뜻으로 소 아시아 일곱 교회 중 사데 교회 동남방 약 100리쯤에 위치하였습니다. 현재 터키 영지 서부 지역을 소 아시아 지역으로 부르지만 사실상 그 지역 북쪽 부분은 무시아 도이고 중간 부분은 리디아 도이며 남방은 루기아 도입니다. 따라서 빌라델비아는 리디아 도의 수부가 됩니다. 토지가 비옥하고 포도 생산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7절에서 “말씀을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나타내신 후 계속 편지의 내용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8-13) 내용을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본문을 살피면서 그 교회의 형편과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살펴야 하겠습니다.

1. 말씀을 주신 예수님의 모습(7)은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라 하셨고, “그 분이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1) 여기의 “거룩하심”은 예수님의 완전하시고 순결하신 신성을 표현하신 것이고,

2) “진실하심”은 이 원문이 ‘피스티스’(πίστις:참 믿음의 뜻)가 아닌 ‘알레디노스’(ἀληθινός)이기 때문에 거짓의 반대가 아닌 실제의 모습을 나타내신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3)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것”은 다윗의 왕국으로 비유된 천국 문을 열고 닫는 권한과 통치권을 가지셨음을 나타내신 것이요, 다윗의 열쇠를 천국의 열쇠로 보는 이유는 다윗이 메시야의 모형적 인물로 계시되었고(시22:1,겔34:23), 또 다윗의 왕국인 예루살렘이 천국의 모형으로 계시되었기 때문입니다(21:2).

4) “다른 이가 열고 닫지 못함”은 그 권세가 예수님께만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만이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요14:6).

2. 예수님이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에게 어떤 말씀을 주셨습니까 ? (8-13)

1)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자가 없다”(8)고 하셨습니다. 이 열린 문은 천국 문이 활짝 열렸다는 뜻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은 다 구원받을만한 믿음이 있었습니다(행14:9). 사데 교회처럼 몇 명만 있는 것이 아니라(4) 모든 성도가 다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원의 천국 문을 활짝 여셨다는 뜻입니다. 구원의 주(히2:10)께서 여신 문은 다른 이가 닫을 수 없습니다(롬8:33,34).

2)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① 이 말씀의 “너”는 빌라델비아 교회 사역자를 지적한 말씀이지만 그는 모든 성도들의 대표자이므로 역시 모든 성도들의 행위를 대표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성도의 행위를 감찰하시고 평가하셨습니다.

② 예수님의 평가는 천국 갈 믿음을 가졌는가 ? 받은 은혜의 분량은 얼마인가 ? 그가 감당해야 할 책임 분량은 얼마 만큼이며 노력은 얼마나 하는가 ? 또 그가 어떤 환경에 있는가 ? 등을 다 감찰하여 아시는 것입니다.

③ 그리고 받은 은혜의 능력이 적은 것을 가지고 성실하게 노력하여 역경 중에서도 예수님의 이름과 믿음을 배반하지 않았다고 칭찬해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이 성도에게 주신 달란트 분량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거기에 알맞는 영광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2) 충성된 사역자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교회의 암적 요소와 같은 거짓된 자들을 변화, 굴복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9). 그들은 “자칭 유대인이라”(정통을 자랑하는 말) 하지만 실상은 거짓된 자들이요 사단의 회였습니다. 이런 암적 요소가 교회 안에 있을 때 그 교회 사역자가 얼마나 고충스러웠겠습니까 ? 주님이 그 사역자를 사랑하여 거짓된 자 몇 명만 굴복시켜도 교회는 활기를 띠게 될 것입니다. 몇 사람만 변화시키고 나머지는 그대로 두시는 모양이나 거기에도 주님의 섭리가 있습니다(마13:29).

4)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리라”(9) 하셨으니 복음 사역자가 주님께로부터 이런 인정을 못 받으면 자격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임을 이방 사람들이 다 알고 인정하였습니다(창39:3). 성도들 개개인이 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사랑하시는 줄을 확신하고 체험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5) “예수님의 인내의 말씀을 지킨 고로 예수님이 장차 온 세상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에 그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케 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10).

① 여기의 “인내의 말씀”이란 인내하면서 지켜야 할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성도가 성경적으로 살려고 할 때 인간의 정욕을 포기하고 인내와 용기와 희생이 따르지 않으면 안됩니다.

② 그래서 장차 모든 인간들에게 내려질 시험의 때를 면케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저희들이 평안한 것은 어려운 시련의 기회를 하나님이 면케 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인내의 말씀을 지킬 때 주님도 모든 시험을 면케 해 주시며 그 성도에게 평강을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6)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11) 하셨습니다.

① 주님이 속히 오신다는 말씀은 자주 하신 것입니다(1:3,2:16,11:14).

② “네가 가진 것”이란 인내의 말씀을 애써 지키는 믿음의 요소입니다. 그것을 굳게 잡아 사단이 그 상급을 짓밟지 못하도록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7) 믿음 생활을 승리로 이끈 자에게 하나님께서 상급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는데(12),

①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심”은 특별한 자로 인정해 주심이요,

② “결코 다시 나가지 않음”은 영광을 영원토록 누리게 하심이요,

③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예수님의 새 이름(천국에서 쓰시는 새 이름)을 그이(믿음을 지킨 성도들) 위에 기록하심”은 소유권 확보(등기 문서)의 의미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광 받는 은총을 확고하게 주신다는 뜻입니다. 현실 세계에서 자기의 소유를 확고하게 하려면 등기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영생과 하늘 상급의 확고한 보장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말씀에서는,

① 칭찬만 받은 교회,

② 적은 은혜로 많은 노력을 하는 교회,

③ 믿음을 지키는 성도에게 모든 장애를 물리쳐 주시는 하나님,

④ 승리자에게 기둥이 되는 존귀와 지위를 붙들어 주시는 은혜와 영구히 보호해 주시는 약속이 주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신 것과,

⑤ 또 적은 은혜를 받은 자도 노력만 하면 큰 소망이 있다는 교훈도 잊지 마셔야 하겠습니다.

 

 

제 10 과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신 말씀 (계 3:14-22)목록으로


라오디게아”는 소 아시아 부르기아 도의 수도로서 현재는 터키 영토 안에 있는 지역입니다. 이 도성은 주후 250년경 수리아의 왕인 안티오커스가 건설하여 그의 아내 라오디게아의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이 라오디게아 지역은 고대 사회에 있어서 교통의 중심지였고, 동부 아시아로 통행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물물 교환이 임의로웠고 따라서 많은 유대인들이 살았습니다. 그리고 상업의 중심지로 부유층이 많고 의류 제조업이 성행하여 사치는 물론 의학적인 특수한 조예가 있어서 (제욱시스나 필랄레테스 학파에서는) “코루티온”이라는 안약과 귀약을 생산하여 각국에 수출하는 자랑거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히에라볼리(골4:13)와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곳에 교회가 선 것은 골2:1에서 바울 사도가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를 염려한 일이 있고 또 그 지역이 골로새와 아주 가까운 것을 보아서 바울 사도의 전도를 받은 식구들이 그 곳에 교회를 세웠음은 물론 바울의 지도를 받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제 3세기의 작품인 “사도 시대 헌장”이라는 책에 보면 “아킵보가 라오디게아 교회 주교였다”고 하였는데, 골4:17에서 바울 사도는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이루라” 하심으로써 아킵보의 목회상 어려움을 지혜롭게 극복할 것을 경고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 때는 본문 말씀에 해당하는 일이 있기 전이었고, 본문 말씀은 약 30년 후이었습니다.

이상의 말씀을 구분하면,

① 말씀을 주시는 예수님의 나타나신 모습(14),

② 라오디게아 교회의 형편(15-17),

③ 권면의 말씀(18-19),

④ 예수님과의 연합을 강조하시는 말씀(20-22)으로 되어 있습니다.

1. 말씀을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대하여(14), ① 아멘이시오, ② 충성되신이시오, ③ 참된 분이시오, ④ 증인이시오, ⑤ 창조의 근본자라고 하셨습니다.

1) 그 분은 “아멘”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멘이라는 뜻은 “모든 일을 자기 뜻대로 성취하시는 분”입니다. 기도할 때에 아멘하는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믿고 바랍니다” 하는 뜻인 것처럼 예수님은 무엇이나 원하시면 이루실 수 있는 저능하신 분이심을 나타낸 것입니다. 엡1:11에서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신다” 하셨고, 마8:2에서도 “주님이 원하시면 (문둥병)도 깨끗해 질 수 있나이다”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내가 원하노니 개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그대로 깨끗해 졌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뜻만 있으면 성취하실 수 있는 능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2) 충성된 분이심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신 분이시며(빌2:8),

3) 참되신 분이심은 진실 되고 거짓이 없은 분(요14:6,롬3:4)이시며,

4) 증인이심은 계시의 주이시며(1:1,요1:18,14:9), 선지자적 증언자시요,

5) 창조의 중보자이심은 예수님이 곧 만물의 창조자라는 뜻입니다(요1:3).

이상의 말씀에서 저희들은 뜻을 성취하시는 예수님을 의지하면서 진실을 지키고, 복음적 증인의 사명에 충성을 다해야 할 것을 교훈받을 수 있습니다.

2. 라오디게아 교회의 형편에 대한 말씀입니다(15-17).

1) 예수님은 그들의 행위를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행위대로 갚으시는 주님이십니다(2:23). 예수님은 성도의 행위를 표면적으로만 보시지 않고 동기와 목적과 방법 그리고 심성과 믿음까지 보셔서 완전한 평가를 하실 것입니다(삼상16:7).

2) 예수님은 그 곳 성도들이 신앙 생활에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한 것을 지적하시고, 차든지 더웁든지 할 것이요 만일 미지근할 때는 “입에서 토하여 내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성도의 신앙 생활을 음식으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음식은 차지도 않고 더웁지도 않으면 변질되기 때문에 반드시 차든지 더웁든지 하여 변질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여야 합니다. 변질된 음식이면 입에서라도 토하여 내어야 하는 것처럼 옳지 못한 신앙도 하나님을 역겹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신앙이 미지근하다는 뜻은 변질성이 있다는 뜻이며 또 미온적임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은 그렇지 않은지요 ?

3) 또 그들은 “스스로 부요한 줄로 착각한다”고 하셨습니다. 현실적으로 부요한 것이 신앙의 부요에서 비롯된 줄로 착각한 모양입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현실적으로 잘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엇으로 어떻게 부요한척 하였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4) 예수님께서 보실 때는 곤고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상태라고 하셨으니, 이렇게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이 보시는 표준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① 성도가 회개하지 않거나 하나님을 멀리하면 곤고하고 가련할 것이요,

② 믿음이 약하면 하나님이 가난할 것이며,

③ 말씀 지식이 부족하면 영적 안목이 어두울 것이요,

④ 말씀대로 실행하지 않았으면 벌거벗은 사람처럼 수치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령한 은혜에 대하여 어두운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3. 여기에 대하여 예수님은 합당한 권면을 하셨습니다(18-19).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케 하고 안약을 사서 발라 보게 하며.....책망하여 징계하노니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1) 금은 믿음을, 불은 연단을 뜻하므로 “불로 연단한 금”은 세련된 신앙을 의미하고(벧전1:7),

2) “흰옷을 입어라” 하셨으니, 이것은 회개하고 죄사함 받으므로 성결해지는 것입니다. 더러운 죄악의 수치를 깨끗게 씻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 옷을 벗고 새옷을 입은 사람처럼 “의롭다”는 인정(칭의:稱義)을 받으라는 것이요(사6:10,창3:21),

3) “안약을 사서 발라 보게 하라” 하신 것은 말씀과 성령의 은혜로 신령한 눈을 떠서 믿음의 찬란한 세계를 바라 보라는 뜻이며, 이 세 가지를 다 사라고 하신 것은 사55:1에서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돈 없이, 값없이 거저 받는 은혜)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값은 예수님이 주셨으니까 값주고 산 의미가 있고, 우리는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4) “열심 내며 회개하지 않으면 책망하고 징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징계는 사랑하는 자에게 또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것처럼(히12:7) 예수님도 징계하십니다. “책망하시고 징계 받을 대상을 사랑한다” 하실 때 ‘필레오’(φιλέω)를 사용하셨고, 믿음 있는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를 사랑한다 하실 때는 ‘아가페’(ἄγάπη)를 사용하셨습니다. ‘필레오’는 우정적 사랑이요, ‘아가페’는 신적 사랑이라고 합니다. 저희들은 예수님의 아가페적 사랑의 실천을 열심 내어 노력하셔야 하겠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열심을 내어 영적 가난을 회복하는 것만이 징계를 면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4. 예수님과의 연합적 생활을 강조하셨습니다(20-22). 20절은 연합적 생활의 방법이요, 21절은 상급을 전제하신 강조의 말씀입니다.

1) “예수님이 문밖에 서서 두드리신다” 하심은 전도와 권고의 말씀이 심령에 전하여지는 것이고,

2) “그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연다” 함은 믿음으로 예수님(진리)을 영접하여 자기의 주로 모시는 것이며,

3) “그로 더불어 먹고 마신다” 함은 예수님의 뜻에 따라 연합된 생활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과의 연합된 생활은 신앙 생활의 승리를 뜻하는 것입니다.

4) “이기는 그에게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좌에 함께 앉으심처럼 예수님의 영광의 보좌에 함께 앉도록 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영광에 동참함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승리하여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신 것처럼 저희들도 승리하여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는 영광을 누리셔야 할 것입니다.

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2:7)

 

 

설교보충 11. 신앙 생활의 비유 (계 3:14-16)목록으로


본문 말씀을 가지고 “신앙 생활의 비유”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구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복음서에서 49종의 비유 교훈을 주셨는데, 마13:13에서 비유 교훈을 하신 목적은 “우둔한 자로 하여금 쉽게 깨닫도록 하시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도의 신앙 생활을 무엇에 비유하여 교훈을 주셨는가 ? 할 때,

1. 음식물을 취급해야 하는 것처럼 할 것을 교훈 하셨습니다. 본문 15절에서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그 신앙 생활이 차지도 더웁지도 않은즉 차든지 더웁든지 해야 할 것이라. 만일 차지도 않고 더웁지도 않아 미지근한 상태에 있으면 내가 너를 입에 넣었다가 음식이 상하였거나 맛이 없어서 뱉는 것(토함)같이 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1) 음식이란 잘 만들기도 해야 하지만 차든지 더웁든지 해야됩니다. 김치국물이 미지근해 보세요. 맛이 나는가 ? 또 찌개 국물이 미지근해 보세요. 맛이 나는가 ? 또 냉면이 미지근하거나 곰국이 미지근해 보세요. 이렇게 되면 맛도 안나고 , 식성 까다로운 사람은 잘 먹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냉면이나 김치는 차야 되고 찌개나 곰국은 뜨거워야 되는 것입니다.

2) 음식이란 미지근하면 변질하여 오래 보존을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냉동하거나 자주 끓여야 부패를 방지하게 되는데 만일 성도의 신앙이 이렇게 미지근하면 그런 신앙 생활은 하나님과 이웃에게 좋은 맛도 줄 수 없거니와 쉽게 부패하여 변질하는 것입니다.

3) 이것이 성도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 한 마디로 말씀드려서 신앙 생활의 나태를 떠나 열심을 내야 할 것을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본문 19절을 보시면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에 예수를 믿고 은혜 받을 때는 다 열심을 냅니다. 그런 열심을 지속시켜 나가야만 신앙 생활의 맛을 더 알게 되고 믿음이 약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마치 자전거가 달려가야만 넘어지지 않는 것처럼 신앙 생활도 음식물을 취급하듯 미지근한 것을 피하고 열심을 내야만 발전이 있는 것입니다.

2. 어린아이처럼 조심하여 철저하게 취급해야만 유익하다고 하셨습니다. 막10:15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선대하라”는 말씀을 하실 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처럼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여기에 하나님의 나라는 성도의 신앙 생활을 의미하는 것이고, 어린아이처럼 받들어야 한다는 것은 그 신앙 생활을 갓난아기를 양육하듯 조심성 있게 안전하게 잘 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취급하기가 어렵습니다. 갓난아기는 만지고 들기도 어렵고 음식을 적당하게 먹이는 것도 어려우며 심술을 내면 잘 달래는 수밖에 없고 병이 나도 어른보다 더 취급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어린아이 셋만 키우면 다 의사가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린아이는 취급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잘 받들어 모셔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도 잘 받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믿음이 좋은 것 같으나 쉽게 무너지는 경우를 봅니다. 이런 것은 다 어린아이처럼 연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벧전3:7에 보시면 “아내는 연약한 그릇이라”고 하셨습니다. 조심하여 상대하라는 뜻입니다. 또 엡5:15에서는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처럼 행동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생각하시면서 믿음 생활도 어린아이 취급하듯 하시기를 바랍니다.

3. 투쟁하고 싸우는 것 같으니 전쟁이나 운동 경기처럼 일사각오로 달려 들어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마10:34에서 “예수님은 세상에 검을 주러 오셨고 한 가정 안에서도 信 不信 간에 싸우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또 바울 사도는 엡6:10에서 신앙 생활을 “마귀와 악에 대한 전쟁으로 비유”하셨고, 고전9:24과 딤후2:5에서는 “운동 경기”로 비유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싸움이나 운동 경기는 결사적으로 행하여야 하고 또 일사각오로 덤벼야만 승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싸움과 운동은 열심 정도가 아닌 결사적이어야 합니다. 마11:12에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느니라” 하신 것도 역시 돌격적으로 용감하게 생활하여야 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신앙 생활을 야구 경기에 비교한 일이 있었습니다. 타수가 안타를 쳐주어야만 주자가 달려가고 점수를 얻는 것처럼 성도가 원수 마귀에 대한 전투적 방비를 잘해야만 평화의 신이 찾아 오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싸움은 죄와 마귀에 대한 싸움이요, 그 무기는 말씀으로 무장한 믿음인데, 싸울 때는 반드시 전투하는 자세로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4. 집을 짓는 건축과 같은 것입니다. 마7:24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같이 지혜로운 자라” 하셨고, 고전3:10에서는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견고한 터를 닦은 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값진 재료를 써서 불이 나도 타지 않도록 지어야 잘 짓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다 신앙 생활의 집을 잘 지어야 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집은 공력을 들여서 지어야 합니다. 든든한 기초, 최고의 재료, 최고의 기술로 지어야 하는 것처럼 믿음 생활도 ① 견고한 예수님과 그 말씀에 기초하고, ② 온갖 지혜와 열성을 기울이며, ③ 자기의 가장 좋은 것들로 하나님께 살신 봉사(殺身奉仕) 함으로써 환난의 불에도 타지 않고 넘어지지 않으며 정금같이 더 빛나는 믿음 생활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 생활을 공력 들여 해야 하기 때문에 집짓는 일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5. 나무가 자라는 것으로 비유하셨습니다. 마13장에 “씨 뿌리는 비유”가 있고, 막4:26에서는 더 자세한 교훈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는 중에 씨가 자라되 그 어떻게 자라는 것을 알기 어려우나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다음에는 충실한 곡식이라. 그 다음에 주인이 낫을 댄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씨를 심어 열매를 거두는 것과 같다”고 비유를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또 무슨 교훈이 있습니까 ?

1) 믿음은 씨뿌림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이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싹은 중생의 새생명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요,

2) 믿음이 스스로 자라는데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키워주시기 때문이요,

3) 믿음은 나무처럼 적당한 시간을 두고 싹과 이삭과 열매의 단계로 자라야 된다는 것이요,

4) 결실의 목적이 주인으로 하여금 거두시게 하는데 있음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은,

① 좋은 씨를 심는 것 같으므로,

② 성심껏 가꾸어야 하고,

③ 하나님이 자라게 해 주시는 것이며,

④ 연단을 받으며 단계적으로 자라야 하고,

⑤ 신앙 생활로 맺은 영광의 열매는 주님만이 거두시도록 해야 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신앙 생활은,

① 음식물을 취급하는 것과 같고,

② 어린아이를 다루는 것 같으며,

③ 운동 경기나 싸움에 임하는 것과 같고,

④ 집을 짓는 것과 같으며,

⑤ 나무를 가꾸는 것과 같음을 잘 이해하셔서 우리의 믿음 생활이 더 원만해지도록 힘을 쓰셔야 할 것입니다.

 

 

설교보충 12. 라오디게아 교회의 형편 (계 3:14-22)목록으로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실 때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시라”고 하셨으니 예수님이 이런 모습을 보여 주신 이유는,

1) “아멘”하는 신앙이 부족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멘은 진실과 성취를 의미합니다. 기도를 마칠 때 아멘이라고 하는 것은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는 뜻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아멘이라 하신 것은 진리에 대한 복종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성취를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2) 충성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죽기까지 충성하신 분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의 신앙이 미지근하였으니 충성인들 잘하였겠습니까 ? 충성된 성도, 충성된 교회가 되라는 뜻으로 충성된 예수님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3) “참된 증인”이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의 사명은 증거에 있습니다. 진리 보존, 진리 해석, 진리 증언입니다. 교회는 진리 증언자에 대하여 최대한 협력하여야 하고 또 증언자는 증언의 사명을 확실하게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4) 열심 없는 교회, 신앙적 역사가 미지근한 교회임을 지적하셨습니다. 교회는 진리 증언에 확실하고, 또 뜨거운 맛이 있어야 합니다. 이 뜨거운 것은 과격이나 기분을 뜻하지 않습니다. 확실하고 분명하게 책임을 다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5) 물량주의, 외식주의에 도취하여 자만하는 교회였습니다. 현실 교회는 물량주의에 이끌려 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 많은 재정, 많은 사업, 큰 예배당으로 가치 판단을 하지만 성도 개개인의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사는 생활에 가치를 두어야 할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물량적으로 넉넉하여 “부족함이 없다”고 자만하였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가련하고 가난함을 탄식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가 긴밀하지 않으면 다 가련한 신세인 줄로 아셔야 할 것입니다.

5)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에게는 자신들의 영적 비참함을 깨닫는 것이 없었고 현실적인 부요로 만족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연단된 신앙이 미숙하였고, 성결이 부족하였으며, 신령한 은혜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있었습니다.

6) 따라서 다시금 마음 문을 열고 진리의 말씀을 받아서 신령한 은혜의 경지로 돌입하여야 할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자신과의 영적 관계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셔야 할 것입니다.

7) 또 예수님이 창조의 근본이신 것처럼 창조자의 은혜를 힘입어 창조적 발전을 이루어 보이지 않는 중에서 믿음이 자라가야 할 것입니다.

 

 

설교보충 13. 예수님과 함께 삶 (계 3:20-22)목록으로


이 시간에는 “예수님과 함께 삶”이라는 제목으로 교훈을 받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만사가 해결되고 노후 보험만 있어도 든든히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예수님과 함께 살아야 된다”고 믿으셔야 합니다. 옛날에 어떤 임금이 아름다운 왕비에게 빠져서 나라가 어지러울 정도로 정사를 돌보지 않자 중신들과 백성들이 방책을 세웠습니다. “우리 나라 임금님은 사람을 왕비로 맞이한 것이 아니고 변신한 여우를 데리고 살고 있다”라는 소문을 전국에 퍼뜨려 놓고 중신들이 왕에게 말하기를 “백성들이 모두 여우 왕비라고 말하니 우리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변신한 여우를 내 쫓으십시오”라고 하니까 왕은 할 수 없이 왕비를 내 보내면서 “ 네 소원은 무엇이든지 들어줄 것이라”고 한즉 그 여인이 집과 돈을 구하지 않고 “내가 한 가지 소원하는 것은 임금님을 데리고 궁궐 밖으로 나가서 사는 것”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임금님을 모시고 살면 어디서나 행복할 수 있음 같이 저희들은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입니다.

1. 지금 읽으신 본문 말씀은 바로 “예수님과 함께 삶으로 행복하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말씀에서,

1) 예수님은 인류에게 찾아 오셔서 영접을 받고 함께 사시기 위하여 문을 두드리는 분이라“ 하셨고,

2) 인류가 그 예수님을 영접하면 “영접하는 자와 함께 살아 주시겠다” 하셨으며,

3) 또 더불어 “잡수시겠다”(먹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들어오시는 것은 좋은데 누구의 것으로 함께 잡수시겠다는 것이냐”고 할 때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므로 주님의 것으로 나누어 주시고 함께 잡수신다는 뜻입니다.

4) 그리고 또 본문 말씀에 “먹는다”는 뜻은 아침(아리스톤)이나 점심(아크라티스마)을 간단히 드시겠다는 뜻이 아니고 ‘데이프나인’(δειπνείν)이라는 정찬(저녁 식사에 해당함)을 잡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데이프나인’이라는 “먹는다”는 말씀은 성찬 예식을 명하실 때도 사용하셨습니다(눅22:20,고전11:25).

5) 그러니까 “더불어 잡순다”는 말씀은 간단히 식사만 하신다는 것이 아니고 유대인들이 저녁 식사를 흠뻑 즐기고 또 휴식(취침)에 들어가는 것처럼 주님이 함께 즐거워해 주시고 또 성찬을 먹는 것과 같은 신령한 복도 아울러 주실 것임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6)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생활을 잘한 성도에게는 신앙의 승리자라는 명예와 함께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예수님과 함께 앉아서 영광을 누리는 특권도 함께 나눌 것이라고 하시면서,

7) “귀 있는 자는 성령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셨으니, 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기로 “귀 있는 자만 들으라”고 하셨을까 하시겠지요 ? 그러나 이 귀는 심령이 열려진 자의 신령한 말씀을 듣는 믿음의 귀 즉, 지혜자의 귀를 의미합니다.

2. 이상의 말씀에서 저희들은 예수님과 함께 사는 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에 대하여 연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 예수님과 함께 사시려면 우선 예수님을 바로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로 아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① 믿음으로 아는 것이고(요3:3,6:69),

② 친교로 아는 것입니다(요1:39,눅5:4-8).

㉠ “믿음으로 안다”는 뜻은 성경을 진리로 믿고 예수님을 하나님과 구세주로 믿는 것입니다. 만일 성경을 진리로 믿지 않거나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으면 그것은 예수님을 신용하지 않고 의심의 대상으로 인정하는 것이므로, 예수님에 대한 다른 사실도 알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 또 “친교로 안다”는 것은 예수님 당시에 안드레가 요한과 함께 예수님이 계신 곳에 가서 함께 거한 사실이 있었고(요1:49), 또 베드로도 예수님과 같이 고기를 잡으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된 일이 있었습니다(눅5:49). 이것이 곧 예수님을 친교로 아는 방법입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으니까 우리는 성경 말씀과 함께 함으로써(즉, 성경을 사랑하고 배우고 실천함으로써) 예수님과 친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성경으로 예수님과 친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과 예수님이 나를 알아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을 확신할 때 그 앎이 바른 앎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분을 알고 복음적(구원자)이며 친교적인 앎을 이해한 다음에 ,

2) 그 예수님을 영접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문 밖에서 두드리시는데 영접하지 않으면 예수님과 상관이 없게됩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모시고 모시지 않음에 대한 실례가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가다라의 거민들이 예수님을 모시지 않았고(막5:17),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일이 있었으며(눅9:53) 또 예루살렘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요1:11). 그러나 마태나 삭개오나 향유를 부은 마리아 같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큰 기쁨으로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혹 우리도 예수님을 영접하려고 하는데 우리 집에 오시지 않으니까 못하는 것이 아니냐 ? 하시겠지요. 여기에 대하여 마10:40을 보시면 “복음 전도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자요, 선지자요 의인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지자와 의인과 소자를 영접하는 것도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 하셨고(마18:5), 또 마25:40에서 의인들이 “우리가 언제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까 ?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대접한 일이 없습니다”라고 하였을 때 “너희는 내가 주리고 병들고 갇혔을 때 또 벗었을 때 돌보았으니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하셨습니다. 또 악인들이 “언제 예수님이 우리 집에 굶주린 자로, 병들고 헐벗은 자로 오신 일이 있었습니까 ?” 하였을 때, 역시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라”고 하시므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방법을 확실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따라서 저희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방법은,

① 일단 성경을 진리로 믿어야 하고,

② 그 다음에 예수님을 마음 속에 나의 왕, 나의 구세주로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③ 그리고 그 예수님의 이름으로 전도자나 소자나 환난 당한 자를 잘 선대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그 성도의 생활 방식이 변화의 양상을 띠게 되는데 즉, 자기 중심에서 예수님 중심으로, 특권층 중심에서 소자 중심으로, 이기적인 생활 방식에서 봉사적인 방식으로 변화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예수님이라면 꼼짝을 못합니다. 오죽하면 롯이 천사로 찾아온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셨는데 악한 비류들이 와서 예수님을 해치려고 하였을 때 “나의 두 딸을 너희에게 줄 터이니 마음대로 하고 내 집에 오신 손님을 해하지 말라” 하였으니 그 정성이 얼마나 컸습니까 ? 꼭 이런 방식으로 예수님을 마음에, 가정에, 교회에 영접하셔야 할 것입니다.

3) 예수님을 영접했으면 함께 생활하셔야 합니다. 남녀가 결혼을 하면 부부가 되어 서로 의합하여 잘 사는 것을 봅니다. 혼자 살던 사람이 둘이 살 때 서로 뜻을 맞추고 협력하며 살지 않습니까 ? 이와 같이 예수님과 나도 뜻을 맞추어 살아야 하는데 누가 누구의 뜻을 따라야 하느냐 하면 나는 예수님의 피조물이고 예수님의 종이니까 자신이 종이 되고 예수님은 상전이 되셔서 절대 가부장 제도의 가족처럼 살아야 합니다. 연합의 의미로는 부부와 같지만 위계 질서로 볼 때는 군신과 같고 주종 관계와 같음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산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인 성경을 나의 생활 헌법으로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가장 존귀한 상전으로 모시고, 내가 예수님의 뜻대로 복종하기만 하면 모든 은총을 예수님으로부터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는 나로 더불어 먹고 나는 그로 더불어 먹으리라“는 말씀입니다.

땅과 씨앗과 물과 햇빛을 주어서 먹게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또 내가 수고하여 거둔 소득일지라도 그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면 하나님은 더 많은 소득을 복으로 주실 것인데, 이는 마치 씨뿌려 더 많은 것을 거두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사는 자는,

① 나를 죽이고 예수님의 뜻을 따라 복종해야 하고,

② 상당한 예산을 드려 한 식구 생활을 예수님께 바쳐야 합니다. 그것이 곧 성미, 감사 헌금, 십일조, 구제, 봉사입니다. 예산 없이 한 식구가 더 살 수는 없으니까요.

③ 나 혼자의 예수님이 아니고 온 가족의 예수님이 되도록 모셔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 생활의 합심과 자유를 누릴 수 있겠지요.

④ 항상 주님을 의식하면서 말씀과 기도에 힘을 쓰시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시겠는가 ?를 잘 살펴서 행하셔야 하며,

⑤ 예수님만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자기 영광을 피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을 잘 영접하여 받는 축복에 대한 말씀을 보면,

마11:28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셨고,

시51:15에서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고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할 것이라” 하셨으며,

창28:15에서는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줄 것이라” 하셨고,

요1:12에서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하셨으며,

시92:13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집에 심긴 자는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무쪼록 예수님을 든든하게 또 풍성하게 잘 모시고 사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라서 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 11 과 하늘 보좌의 광경 (계 4:1-11)목록으로


본문 말씀에서 “하늘 보좌의 광경”을 계시하셨습니다. 인간은 육신의 눈으로 현실 세계만을 보지만 성경은 하늘의 신령한 세계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경에 “천국에 갔다”는 말씀이 몇 곳에 있으나(눅16:19,23:43,고후12:2) 천국의 광경을 말씀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천국의 광경을 계시하셨고, 그 계시의 방법을 지상 세계의 관측 용어로 표현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치 태양 빛을 달빛으로 반사 받는 것과 같으며, 또 한가지는 계시록에서 말씀하시는 내세의 형편을 자세하게는 말씀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천국의 광경을 대체적으로 간결하게 말씀하신 이유는 땅 위의 개념으로 천계를 묘사하는 것이 완전한(구체적) 표현이 못되며 또 천국을 사모의 대상으로 동경하다가 그곳에 가서 밝히 보는 것이 더 즐거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경이 계시해 주신 천국을 표면적으로 알고 구체적인 것은 계속 동경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며, 성경에 없는 것을 상상과 체험으로 천국을 이해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내용을 구분하면,

① 계시를 받는 과정(1),

② 하늘 보좌에 앉으신 이의 모양(2-3),

③ 보좌 주위에 앉은 24 장로들(4),

④ 보좌 앞의 일곱 영(5),

⑤ 바다와 네 생물들의 찬양(6-9),

⑥ 24 장로들의 경배(10-11)로 되어 있습니다.

1. 계시를 받는 과정(1).

1) “이 일 후에 하늘에 열린 문을 보았으니”라는 말씀에서 “이 일 후”는 앞의 계시가 있은 후요, “하늘의 열린 문”은 천국의 광경을 장소적 도성의 개념으로 나타내 주신 것이므로 들어가는 문을 보여 주신 것이요,

2) 처음에 들은 것과 같은 나팔 소리 같은 장엄한 음성으로(1:10) “이리로 올라 오라, 이후에 마땅히 될 일을 네게 보이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볼 때 천국은,

① 공간적 장소를 가지고 있음과,

② 출입하는 문이 있으며,

③ 내용을 가진 영계의 음성이 있고,

④ 지상에서 될 일들을 계획하고 명하는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박윤선 목사님은 “천국의 위치는 말하기 어려우나 공간적 장소를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며 또 규모가 있고 질서가 있는 곳이라고 하셨습니다(계시록 주석 p.122).

2. 하늘 보좌에 앉으신 이의 모양(2-3).

1) 요한은 성령에 감동하여 하늘 보좌에 앉으신 이를 보고 감탄하여 “보라” 하였습니다. 성도들도 계시의 말씀을 볼 때 감탄이 있어야 합니다.

2) 거기에 보좌를 베풀었고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계시며, 그 모양은 벽옥과 홍보석같고 녹보석같은 무지개가 그 보좌에 둘린 것 같았다“고 하였습니다.

① 여기에서 “.....것 같더라”라고 한 것은 그의 표현 방법이 불충분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바와 같이 천국은 영계이기 때문에 그 영계의 모습을 지상 세계의 용어로 표현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또 물체에 관한 것은 설명하기 쉽지만 영적인 것은 설명하기가 더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계시록을 통하여 보는 천국은 역시 “그런 것 같다”고 아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것은 계시가 불완전하다는 뜻이 아니고 그 전달 수단이 적절치 않다는 뜻입니다. 고전13:12에서도 “세상에서는 거울을 보는 것처럼 희미하게 보나 그 때에는 확실히 안다”고 하셨습니다.

② 그 보좌에 앉으신 이는 예수님이십니다(11).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 앉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천국에도 장소가 있으며 통치의 보좌가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③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같고 홍보석같다는 것은 예수님의 모습이 그렇게 빛나고 영광스럽다는 뜻이요, 또 이 보석들의 의미는 가장 귀한 것으로 표현한 것일 뿐 아니라 그 색으로 예수님의 특성을 나타낸 것입니다. 따라서 벽옥은 수정같이 맑은 보석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성결을 상징하고, 홍보석은 붉은 색으로 영광과 심판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붉은 색은 불빛을 연상하게 하며, 불은 빛나는 것이고 태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④ 또 “녹보석같은 무지개가 둘린 것”은 보석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찬란한 광채로 하나님의 보좌의 영광스러움을 나타낸 것입니다. 일찍이 노아에게 “홍수로 인한 멸망이 없다”는 증표로 무지개를 나타내 보이신 일이 있었으므로(창9:13) 계약을 실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을 증표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3. 보좌 주위에 앉은 24 장로들에 대하여(4). “24 보좌가 예수님 보좌에 둘려 있고 그 보좌에 24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고 하셨습니다. 24란 수는 열 두 지파와 열 두 제자를 합한 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12 지파는 선민의 대표수요, 12 제자는 충성된 제자들입니다. 따라서 24 장로들은 구원받은 백성 중에서 충성된 종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흰옷을 입은 것은 성결한 생활과 속죄 받은 증표요, 금 면류관을 쓴 것은 충성됨으로 받는 상급을 의미합니다. 누구든지 성결하게 살면서 충성을 잘하면 그와 같은 보좌에 앉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막10:40에서 “주님의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4. 보좌 앞의 일곱 영에 대하여(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1)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온 것”은 하나님의 악인에 대한 진노와 심판하심을 위엄 있게 표현한 것이고,

2)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하셨으니 성령님이 일곱 영으로 나타내 보이신 것은 충만하신 능력으로 역사하심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3) 천국을 보여 주신 계시에서 성령님을 상징으로 보여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 하나님이 영으로 계심같이 성령님도 형체가 없으신즉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일곱 등불은 구약의 성막 시설(출37:23)에서 모형적 계시를 도입한 것이며, 성령님의 완전한 사역을 계시하시기에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입니다.

5. 바다와 네 생물의 찬양에 대하여(6-9).

1)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바다란 해양을 뜻함이 아니고(21:1) 구약 성전의 제단 옆에 제사장이 손을 씻기 위하여 설비한 넓은 폭의 물두멍을 의미하는 것으로(출30:18), 솔로몬의 성전에서도 이 물두멍을 바다로 칭하였습니다(왕상7:33). 이것이 그 곳에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의와 성결을 상징하기 위함입니다. 천국에 모인 백성들이 다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었음을 항상 기억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7:14).

2)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앞뒤에 눈이 가득한 네 생물이 있으니 첫째 생물은 사자같고 둘째는 송아지 같으며 셋째는 얼굴이 사람같고 넷째는 날아가는 독수리같다”고 하였습니다. 또 네 생물 모두 여섯 날개를 가졌으며,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함을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① 이 네 생물은 다 천사를 표현하신 것입니다. 천사도 영물이므로 어떤 모양을 취한 것은 항상 변형할 수 있으며, 또 그 모양에서 상징적 의미를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② 사자는 용기와 힘의 표상이고, 송아지는 충성과 희생의 표상이며 사람 모양은 지혜를, 독수리는 영적 생명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앞뒤(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한 것은 일시에 만사를 빈틈없이 감찰하시는 통찰력을 나타낸 것입니다.

4) 각 생물에 여섯 날개가 있는 것은 영계의 천사들의 활동 능력과 질서를 보인 것입니다. 사6:2에 보시면 “스랍들은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발을 가리었으며, 또 그 둘로는 날며 창화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천사들의 날개 역할은 자기의 얼굴을 가리우는 겸손의 활동과, 발을 가리우는 생활의 절제와, 날며 창화하는 영광 사역을 맡았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밤낮 쉬지 않고 영광과 존귀와 감사와 찬송을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께 돌리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거룩과 전능하심과,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 영원히 계시며 또 장차 오실 자이심”을 찬양의 내용으로 구성하였습니다.

6. 24 장로들의 경배에 관한 말씀입니다(10-11).

1) 10절에서 “24 장로들이 네 영물들과 함께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경배(영광)를 드렸으며, 이때 자기의 면류관을 주님께 던진 것”은 자신이 받을 영광을 마땅히 주님이 받으셔야 함을 나타내 보인 것이요,

2) 11절에서는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요 섭리자(주의 뜻대로 있음)이시므로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홀로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다”고 나타낸 것입니다. 천국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가장 중요하게 실천하는 곳임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우리의 지상에서의 천국 생활도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돌리는 생활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 12 과 인봉한 책을 떼심 (계 5:1-14)목록으로


5장의 말씀을 구분하면,

① 인봉한 책을 가지신 하나님(1),

② 책을 펼 자가 없음에 대한 탄식(2-3),

③ 책을 펴시기에 합당한 예수님(4-7),

④ 예수님이 책을 취하실 때 천사들과 만물들이 찬송함(8-13)이라 할 수 있고, 총제목을 “인봉한 책을 떼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1. 인봉한 책을 가지신 하나님(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고 하셨습니다.

1) 4:2-3에서는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을 계시하셨는데, 이 말씀에서 책을 가지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그 책을 펴실 수 있는 분이 예수님으로 설명되기 때문입니다(5).

2) “오른 손에 책이 있다”는 것은 대 주재권을 가지신 힘있는 손에 붙잡혔다는 뜻이요, “책”은 미래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책입니다.

3) “안팎으로 썼다”는 것은 책의 내용이 앞뒤에 충분히 기재되었음을 의미하며,

4) “일곱 인으로 인봉된 것”은 비밀이 완전하게 보장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상당 기간(계시록을 주시는 이전 시기) 비밀에 두셨지만 때가 되면 합당한 분에 의하여 그 인봉을 떼게 하셔서 계시를 전개하여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계시의 전개자도 되시고 집행자도 되시는 것입니다(히1:1,요8:22).

2. 책을 펼 자가 없음에 대한 탄식(2-3). 2-3절에서 “힘있는 천사가 큰 소리로 외쳐 그 책의 인을 떼어 펼만한 합당한 자를 찾았으나 하늘과 땅, 땅 아래에도 능히 그렇게 할 자가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① 여기의 “힘있는 천사”란 영계에 명령 계통이 있음과 천사들 중에도 통솔자가 있음을 나타내신 것이요,

② “그가 외쳐 책의 인봉 뗄 자를 찾은 것”은 계시 전개의 방식을 문답으로 나타내어 “인간 세계에는 합당한 자가 없고 오직 하나님의 어린 양만이 그 책을 펴실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역설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 전개는 문답식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시청각적이고 모형적인 것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할 것입니다(렘13:1~,마12:39-40).

③ 그러나 “하늘(천국) 세계나 땅 위(현상 세계)에나 땅 아래(죽은 자의 세계) 어느 곳에도 피조물 중에서는 합당한 자가 없었다” 하였으니 이는 모든 계시 전개가 오로지 예수님을 통해서만 주어진다“는 사실을 재확인하신 것입니다. 마10:22에서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는 말씀도 이 사실을 미리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3. 책을 펴시기에 합당한 예수님(4-7).

1) 사도 요한은 비밀의 책을 반드시 펼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는데 합당한 자가 나타나지 않음을 알고 “크게 울었다” 하였으니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지 않는 일에 대하여 안타까운 심정을 가진 것이고, 이 사실이 영적 감동에 의하여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말씀)이 자신에게나 세상에 열려지지 않는 것은 큰 불행임을 알아서 울 수 있는 성도들이 되셔야 할 것입니다.

2) 그러던 중 장로 중 하나가 “울지 말라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책의 인을 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① “장로 중 하나”란 말씀에서 “한 사람”이란 용어를 나타내시지 않은 것을 보면 구원받은 하늘의 백성들이 완전한 인간적 요소에서 초월한 상태에 있음을 알 수 있고(눅20:34-36),

②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는 예수님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시고(마1:1), 다윗은 유다 지파입니다(마1:3-5). 그런데 “유다 지파의 사자”란 말씀이 使者가 아니라 獅子(짐승의 왕)로 표기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창49:9에서 유다를 사자 새끼로 예언한 말씀에 따른 것이요, 사자는 짐승의 왕으로 승리자의 표상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다윗의 뿌리”란 말씀도 다윗의 근원자 되심을 뜻하며(마22:45), 인간적으로는 그의 자손도 되는 것입니다(사11:1,10,마1:1,롬1:3).

③ “그가 이기신 것”은 사망과 마귀의 권세를 깨치시고 부활 승천하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세상을 이긴 자만이(요16:33) 하나님의 계시를 전개시킬 자격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마11:27).

3) 6절에서는 승리자 예수님을 말씀하실 때 “하나님의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서신 어린 양”이라 하셨고,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으며,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① 여기에서 예수님을 “어린 양”으로 표현한 것은 역시 희생의 제물을 연상케 하는 구약적인 표현이요(창22:7,출12:3),

② “그 어린 양이 서있음”은 천상에서의 꾸준한 활동 자세를 나타내신 것이며,

③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음”은 사도 요한이 계시를 받을 때 그렇게 느낀 것이요,

④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심”은 완전한 권세(일곱 뿔)와 완전한 감찰(일곱 눈)을 뜻함과 동시에 이는 성령님의 완전하신 사역을 겸전하셨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4) 그 예수님이 인봉을 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책을 취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4. 책을 취하실 때 천사들과 만물들이 찬송함에 대하여(8-14), 8-14절의 말씀은 어린 양이 책을 취하실 때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신 것으로 4대지로 구분하여 설명을 드릴 수 있습니다.

① 네 생물과 24 장로들의 기도와 찬송이고(8-10),

② 많은 다른 천사들의 찬송이며(11-12),

③ 모든 만물의 찬송이요(13),

④ 네 생물들과 장로들의 화답송이 있었습니다.

1) 네 생물들과 장로들의 기도와 찬송에 대하여.

8절 이하에 보시면 어린 양이 책을 취하실 때에 네 생물과 24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는데, 그 금대접에 담긴 향은 바로 성도의 기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새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의 가사가 9-10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① 그러니까 어린 양이 책을 취하여 인을 떼시는 일은 하나님의 계시를 전개시키는 일로도 귀하거니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시행하는 일이므로 크게 영광스러운 일임을 알 수 있고,

② 천상 세계에서의 구원받은 성도와 영물(靈物)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즐거워하며 찬송하는 일이 그의 직무임을 알 수 있습니다.

③ 그리고 또 그들은 거문고 소리와 향 대접을 드렸으니, 거문고는 기술적인 음악을 뜻하고, 금대접의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하셨으니까 “기도를 향이라” 한 것은 하나님이 성도의 기도를 향기처럼 감미롭게 흠향하신다는 뜻이요, 또 귀한 기도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인 만큼 값진 금그릇에 담겨져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천상에서도 성도의 기도는 값지게 취급된 것입니다.

땅에서도 찬송, 기도, 말씀이 예배의 삼 요소인 것처럼 하늘에서도 말씀의 계시와 찬송과 기도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요소가 되어 있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④ 그리고 천상의 찬송은 구원이 완성된 세계에서 부르는 새로운 찬송이며, 그 가사는 인을 떼시기에 합당하신 예수님,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 중에서 구속하신 백성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수님, 구속된 백성을 나라와(천국 백성), 제사장(하나님과 직접 교제)을 삼으신 예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었고, 또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리라” 하셨으니 이 말씀은 성도가 지상에서 왕노릇 함이 아니라 내세에서 주님과 함께 왕노릇할 것이란 예언의 말씀입니다. “왕노릇”이란 주님의 영광에 동참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20:4).

2) 많은 다른 천사들의 찬송에 관한 말씀입니다(11-12).

11절에 보시면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천천만만의 천사의 음성이 하나님을 찬송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 천천만만의 천사는 하나님이 두루 쓰시는 영물들로서 지상의 성도를 보살피게도 하시고(마18:10,히1:14),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게도 하는 등(마4:11,사6:2) 여러 가지 용도에 필요한 피조물들인데 이 피조 영물들이 하나님께 찬송을 하는 것입니다. 그 가사는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는 내용으로 오직 영광과 권위를 예수님께만 돌리는 내용으로 찬송을 한 것입니다.

3) 13절에서 모든 만물의 찬송이 있었으니(13절),

① 이 만물들은 새롭게 된 세계의 만물을 의미합니다(21:5).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늘의 만물을 표현할 때 세상의 전체 공간을 표현하는 용어로 사용한 것입니다. “만물의 찬송”이란 인격이 아닌 것의 찬송을 포함하는데, 이는 영적 세계에서 생각할 수 있는 일입니다.

② 그 만물들은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어린 양에게 돌리라” 하였으니, 인간의 타락으로 피곤하여진 만물 세계를 천국에서 회복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롬8:22,히2:8,전1:8).

4) 네 생물들과 장로들의 화답송으로(14), 그들도 엎드려 함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천국은 성부 하나님과 예수님이 함께 왕노릇 하며, 구원받은 백성들과 천사들과 만물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세계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제 13 과 예수님이 다섯째 인까지 떼심 (계 6:1-11)목록으로


6장과 7장은 첫째 인으로부터 여섯째 인까지 떼심으로 나타나는 계시의 내용입니다. 다섯째 인까지 떼신 내용을 본문에서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첫째 인을 떼심(1-2).

1-2절에는 첫째 인을 떼실 때에 나타난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1) “어린 양이 일곱인 중 하나를 떼셨다” 함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계시가 전개되는 과정을 설명하신 것이고,

2) 네 생물 중 하나는 “사자 같은 첫째 생물”이며(4:7), 그가 우뢰와 같은 소리로 “오라”하여 보았다 하였으니, 이 우뢰 소리는 영물의 장엄한 소리를 표현한 것이고, “오라”는 뜻은 하나님의 섭리를 계시로 나타낼 것이니 주의하라는 뜻입니다.

3) “흰말을 탄 자가 활을 가지고 면류관을 받았으며 이기고 또 이기려는 상태”를 본 것입니다.

① “흰 말”은 싸움의 상징이요, 말의 색깔이 흰 것은 의와 성결로 싸우는 것을 뜻하고,

② “활을 갖고 싸운다”는 것은 말을 탄 무사가 사용하는 무기로서 신앙적 무기의 상징이요,

③ “면류관을 받았음”은 그 말탄 자의 승리를 뜻하며,

④ “또 이기고 이기려 하였음”은 이미 승리하였고 또 계속 승리할 것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4) 그렇다면 이 싸움의 성격과 말탄 사람은 누구를 의미할까요 ?

① 이 싸움의 성격은 복음과 정의의 입장에서 마귀의 역사를 상대로 싸우는 믿음의 싸움이요, 그 무기는 말씀과 믿음이며,

② 백마를 타신 분은 십자가로 승리하시고 또 마귀를 심판하실 예수님이심을 알 수 있으니, 예수만 승리자이시기 때문입니다.

③ 또한 예수님과 연합한 성도들도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믿음과 정의를 위한 승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을 나타내 주신 것이요,

④ 계속 있을 환난 중에서 믿음을 지킨 성도들에게 최후의 승리가 있음을 전제하여 계시하신 것입니다.

2. 둘째 인을 떼심(3-4).

1) 첫째 인으로부터 넷째 인을 떼실 때까지는 첫째 생물부터 넷째 생물까지 각각 자기의 차례대로 계시 전개에 대하여 자기 책임에 따라 안내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는 그 생물이 음성을 발하여 사도 요한을 “오라”고 인도하여 계시 내용을 보게 한 것입니다. 따라서 천국에도 질서가 있고 책임 분담이 있으며 천사들은 항상 섬기는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고전14:33,히1:14).

2) 두 번째 인을 떼실 때 나타난 계시는 “붉은 말을 탄 자가 나온 것인데 그가 땅의 화평을 제하는 허락을 받고 서로 죽이게 하며 큰 칼을 받은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① 붉은 말은 피와 전쟁을 상징합니다. 말탄자가 땅의 화평을 제하는 허락을 받고 서로 죽이기 위하여 큰 칼(전쟁의 무기)을 받은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계시를 받은 이후 시대에 하나님의 섭리와 허락에 의하여 땅 위에 많은 전쟁과 환난과 살생이 있을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② 문제는 어느 때의 전쟁과 환난을 뜻하는 것이냐 ? 하는 것입니다. 이 전쟁은 주후 100년과 130년 사이에 일어난 58만명의 유대인 살해를 예언한 것이라고도 하고, 주후 185-284년 사이에 있은 로마의 내란을 뜻한다고 하지만 전쟁이란 그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세상 끝날까지 계속 있는 것이기 때문에(마24:7-8) 말세에 있을 전쟁과 환난과 죽음을 예언한 것으로 해석함이 가장 좋을 것입니다.

3. 셋째 인을 떼심(5-6).

1) 셋째 인을 떼셨을 때는 “검은 말을 탄 자가 손에 저울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검은 색은 슬픔과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

리고 그 말을 탄 자가 저울을 가진 것은 양식의 핍절로 인하여 기근의 현상과 양식 거래의 인색함이 있을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2) 또 네 생물들 사이에서 나는 듯한(생물들이 날개가 있으므로) 음성으로 들리는 말이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되이나 감람유나 포도주는 해치 말라”고 한 것입니다.

① 여기의 밀 한되나 보리 석되가 각각 한 데나리온의 값이 나간다는 것은 곡식의 값이 비싸져서 식량난에 처할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데나리온”은 로마의 은전 이름으로 예수님 당시에 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마20:2). 하루 품삯으로 밀 한되나 보리 석되를 사야 하는 것은 양식이 퍽 귀함을 뜻합니다(요즈음 하루 5만원의 품값을 받으면 쌀 한말 반의 값이 됨).

② 기근이 따르는 중에도 “포도주와 감람유는 해치지 말라”고 하신 뜻은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하나는 포도주와 감람유를 은혜의 상징으로 해석하여(눅10:34,약5:14,사55:1) “신앙적 신령한 은혜를 여전히 유지시킨다”는 뜻이요, 또 한 가지는 포도주와 감람유를 서민의 기본 식품으로 해석하여 “기근 중에서도 연명할 수 있는 양식의 여유를 남기게 하는 뜻”이라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신앙의 명맥은 이어졌고, 기근으로 죽은 자도 많았으나(마24:8) 인류가 전멸되지는 않았으므로 위의 두 가지 해석이 다 뜻이 있는 것입니다.

4. 넷째 인을 떼심(7-8).

1)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움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하셨습니다. 청황색은 사상의 혼란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색깔로 사상을 표현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공산주의 세계에서는 빨간 색을 선호합니다. 청황색은 색상의 혼란을 뜻하는 것으로 사상의 부조리로 많은 피해가 있을 것을 예언하신 것이요,

2) “그 탄 자의 이름이 사망이며 음부가 그 뒤를 따르고 저희가 땅 1/4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 죽이더라”고 하셨습니다.

① “그 탄 자의 이름이 사망”임은 많은 인류를 죽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요,

② “음부가 그 뒤를 따름”은 죽은 시체를 무덤에 쓸어 넣을 것을 예언하심이요,

③ “땅의 1/4의 권세를 얻었음”은 권세 규합의 범위를 뜻함이요,

④ “검으로 죽임”은 직접 살생함이요,

⑤ “흉년으로 죽임”은 전쟁 중 기근을 당하게 하여 죽게 함이요,

⑥ “사망으로 죽음”은 온역(‘다나토스’는 죽음 또는 온역으로 번역됨)으로 죽음이요,

⑦ “땅의 짐승으로 죽임”은 사상이 다른 자를 처형하는 방법입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 로마의 사형법에 의하여 성도가 짐승에 찢겨 순교한 일이 있습니다만 말세에는 짐승에 죽을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 짐승을 적그리스도의 모형으로 해석하여 이단자들과의 싸움에서 많이 죽을 것을 보였다고 해석하는 이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세에는 정치적, 종교적 사상의 차이로 많은 불안과 갈등과 공포에 쌓일 뿐 아니라 전쟁, 흉년, 전염병, 짐승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할 일들이 있을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5. 다섯째 인을 떼심(9-11).

1) 이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또 그것을 증거하다가 핍박으로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의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서 예수님께 신원하는 광경”을 보여 주셨습니다. 믿음의 순교자들과 핍박받은 성도들의 억울함을 푸는 기회는 반드시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음”에 대하여 순교자들의 영혼이 부활하기 전이므로 형체가 없었을 것이나 그 세계가 영계이므로 영혼을 볼 수 있었을 것이며, 제단은 향단을 의미합니다(5:8,출40:5,대하26:19,히9:23).

2) 순교한 영혼들은 큰 소리로 대주재 예수님께 “우리의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렵니까” 하고 심판을 속히 해 주실 것을 호소한즉,

3) 예수님이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아직 잠시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① 예수님은 신원하는 성도들을 각각 위로 하셨습니다.

② 흰 두루마기를 주신 뜻은 성결과 영광을 상징하는 예복입니다. 그 예복을 입고 주님의 영광의 자리에 동참하는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③ 그리고 “잠시동안 쉬되 다른 종들과 형제들이 그들처럼 순교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라” 하셨으니, 여기의 “잠시”란 천국의 시간 개념으로 천년을 하루처럼 또는 하루를 천년처럼 여길 수 있는 기간을 의미하고(벧후3:8), 또 순교자의 수는 하나님의 섭리상 작정된 수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예언의 성취는 다 예언 이후 시대에 있을 것과 마지막 심판 때에 있을 일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 14 과 여섯째 인을 떼실 때 나타난 계시 (계 6:12-7:17)목록으로


여섯째 인을 떼어 계시를 나타내시니 여러 가지 광경이 나타났습니다. 이 사실을 다섯 대지로 구분하여 살피기로 합니다.

① 지진으로 인한 자연 재해에 대하여(6:12-17),

② 바람을 통제함에 대하여(7:1),

③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심에 대하여(7:2-8),

④ 큰 무리의 찬송에 대하여(7:9-12),

⑤ 흰옷 입은 자들의 출처와 받을 상급에 대하여(7:13-17).

1. 지진으로 인한 자연 재해에 대하여(6:12-17).

이 말씀에는 큰 지진과 해가 총담(검은 자루)같이 검어짐과, 온 땅이 피같이 됨과 하늘의 별이 사정없이 떨어짐과 하늘이 말리듯이 떠나감과 땅과 섬이 옮겨짐과 땅 위의 강한 자들이 두려워하며 어린 양의 진노하시는 얼굴을 피하려고 애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으나 사실 그대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상징적으로 해석하면 천체의 변화를 권세자의 탈락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단8:10에서 지상의 왕을 하늘의 별로 상징한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시대에는 정치계의 대변동으로 큰 권세자가 죽던가 아니면 대권을 잃기도 하고 충신과 역적이 서로 바뀌기도 하며, 권세와 향락을 누리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의 바위틈으로 숨어 들어가 환난을 피하려고 애를 쓰는 사실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여기의 종들은 천민이지만 권세자들을 섬기던 자들임으로 함께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해가 총담같이 검어짐”은 권세가 꺾임을 뜻하고, “달이 피같이 됨”은 대권이 꺾일 때 그 다음 권세자들도 힘없이 떨어지는 상태를 묘사한 것입니다. 이리하여 “하늘이 말리고 산과 섬이 옮겨짐”은 권세의 변동으로 인하여 삶의 환경이 크게 달라질 것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2) 또 이 예언을 여자적(如字的)으로 해석한다면, 하나님이 말세에 현상 세계를 정리하여 없애실 때(벧후3:10-11)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말세에는 지진도 처처에서 발생한다고 하셨습니다(마24:7).

① 지진이 있고 화산이 폭발하면 햇빛이 차단되므로 땅이 총담처럼 검어질 수 있고(총담은 장막이 드리운 것처럼 어둡다는 뜻), 또 태양열 그 자체도 열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② “온 달이 피같이 됨”은 달이 태양의 빛을 받지 못하여 밝고 흰 색갈이 붉어지는 것을 의미하며(태양 빛도 석양이 될 때는 붉어짐),

③ 하늘의 별들이 선 과실 떨어지듯 떨어짐“은 만유인력의 변화 등으로 천체가 좌소를 잃고 이리저리 변동됨을 뜻하고,

④ “하늘이 종이축처럼 말려 떠나가는 것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지는 과정에서(벧후3:10,11,계21:1,사34:4) 있을 수 있는 일이요,

⑤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기는 것도 지진 등 천재지변으로 가능하며,

⑥ 이런 일이 있을 때 지상에서 고난받으며 사는 인간들은 죽는 것을 원통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나 의인을 괴롭히며 유족하게 살던 인간들은 바위틈이나 굴에 들어가서 죽음을 피해 보려고 할 것입니다.

⑦ 그 때 환난을 당하는 자들이 “산과 바위에게 우리에게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하였으니, 그들은 자기들의 당하는 환난이 대주재 예수님의 진노임을 알고 산과 바위가 자기들에게 방패가 되어 피할 길을 모색하였지만 17절에서 “진노의 큰 날에 누가 능히 서리요” 하신 것처럼 마지막 진노에서 피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시139:12).

2. 바람을 통제함에 대하여(7:1).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서서 땅으로 부는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땅과 바다와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고 하셨으니,

1) “네 천사”는 계시 과정에서 협력하며 또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는 사역자요,

2) “땅 네 모퉁이"는 동서남북으로, 세상 전체를 의미하고,

3) “땅으로 부는 사방의 바람”은 전쟁을 상징한 것으로 렘49:36-39에서 나타내 주셨습니다. 전쟁을 바람으로 표현한 것은 태풍같은 바람이 많은 피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4) 그러나 네 천사들이 그 바람을 붙잡아 불지 못하게 함은 전쟁을 억제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행함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악한 자들은 전쟁으로 위협하여 호전적 자세를 취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천사들로 하여금 이것을 통제하시는 것입니다.

5) “바다나 땅이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심”은 필요한 인간을 보호하신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바다나 땅”은 세상을 의미하고, “나무”는 사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삿10:18,19).

6) 이렇게 전쟁을 억제하시는데는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2-3,마24:22).

3.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심에 대하여(7:2-8).

1) 2절에 보시면,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① “하나님의 인”이란 구원의 보장을 뜻하는 표식으로 복음적 신앙의 확립을 뜻하고,

② “천사가 해돋는데로 부터 올라온 것”은 빛이 있는 곳에서 사역을 하다가 온 것이며,

③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천사”는 그들도 그 사명을 받았으나 집행하는 시기에 대하여는 다른 천사를 통하여 전달받게 된 것이며,

④ 이때 다른 천사가 “하나님의 종들에게 인치는 작업을 끝내기까지 중지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 사실은 6:11의 순교자의 수가 차기까지 기회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 사실에서 하나님은 전쟁과 순교자와의 관계를 조정하여 통치하심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2) 그 때에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114,000명이요, 지파별 수는 유다, 르우벤, 갓, 아셀, 납달리, 므낫세, 시므온, 레위, 잇사갈, 스불론, 요셉, 베냐민 지파에 각 12,000명씩이라고 한 것입니다.

①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전체 선민의 대표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나타난 144,000명의 수는 6:11에 근거한 작정된 순교자의 수요, 요한이 계시를 받을 당시에 12지파에 한정된 순교자의 수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후 이방인들 세계에서 순교한 수에 대하여는 이 계시에 포함되지 않은 것입니다.

어떤 해석은 12,000에 대하여 수 ‘12’는 하나님의 수 3과 사람의 수 4를 곱하여 된 것이고 거기에 충만의 수 10을 세 번 곱한 것으로 선민의 충만수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또 어떤 이단 교파에서는 그 144,000의 수가 구원받은 자 전체의 수라 하면서 그 수에 든 자만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12지파에 한정된 순교자의 수(6:11)란 뜻이 합리적입니다. 그 이외에 구원받은 큰 무리에 대한 말씀은 다음 대지에서 설명됩니다.

② 그런데 이 내용 속에 “에브라임” 지파와 “단” 지파가 없습니다. 여기에서 에브라임 지파가 빠진 것은 그의 아버지 요셉 지파로 불려진 때문이요, “단” 지파가 빠진 것은 그 지파가 동족에 대한 적대자의 지파로 전락한 사실과(창49:17,신33:22,렘8:16) 또 기업 점유상으로도 어려움이 있었고(수19:47,삿1:34,삿18:7-10), 삼손을 배출한 후(삿13:2) 그 지파의 종적은 나타나지 않았기에 순교자를 배출하지 못한 것으로 봄이 좋을 것입니다.

4. 큰 무리의 찬송에 대하여(7:9-12).

1) 9-10절에 보시면 “이 일 후에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찬송하였다”고 하였습니다.

①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헤아릴 수 없음”은 세상 전체(5:9)에서 누구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는 뜻이요,

② “흰옷을 입었음”은 의와 성결을 뜻하고(1:13,4:4), “종려 가지를 든 것”은 기쁨을 뜻하는 현세적 축하의 표현이며(요12:13), 하나님의 보좌 앞과 어린 양 예수님 앞에서 큰 소리로 찬송하되,

③ 그 가사는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의 어린 양에게 있다” 하므로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송할 때(10) 모든 천사가 보좌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며(11)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12) 하였으니, 이 가사의 특징을 살펴 보면, 아멘으로 시작하여 아멘으로 끝난 점과, 모든 영광과 존귀를 하나님께 돌린 점과, 성도와 천사들 간의 찬송이 화답송으로 조화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 흰옷 입은 자들의 출처와 그들이 받을 상급에 대하여(12-17)

1) 여기서는 계시의 방법이 대화의 형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장로 중 하나가 사도 요한에게 이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어디서 왔는지 아느냐?”고 질문하였을 때, 사도 요한은 유기적 영감법(자신의 의지가 영감에 이용됨)에 의하여 “당신이 아실 것이라” 하였더니 그가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것이라”(14절)고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① 요한이 말로 질문하지 않았으나 나타나야 할 계시이므로 장로가 자문 자답하여 알려준 것입니다. 여기에서 영계의 언어는 말로 표현되지 않아도 뜻이 통하고 알게 되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시19:1-4에서 천국의 무언 통화에 대하여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②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이란 특정 시기, 특정 환경에서 구원받는 자 일부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구원받은 성도를 총칭하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성도가 신앙 생활을 함에 있어서 보편적 고난이 따르기 때문입니다(요6:33,행14:22).

③ “그들은 다 어린 양의 피로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이라” 하시므로 십자가의 공로로 죄사함 받고 성결한 의의 옷을 입게된 것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2)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찌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5-17절).

① 그들은 하나님 보좌 앞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게 되었고,

② 그의 성전(보좌)에서 밤낮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특권을 행하게 되었으며,

③ 하나님이 그들 위에 장막을 쳐주심은 하나님이 오셔서 가까이 동거해 주심이고,

④ 주림과 목마름이 없음은 물론 태양열의 뜨거움에도 상하지 않는 등 아무런 해됨이 없으며,

⑤ 보좌에 계신 예수님이 친히 목자가 되셔서 생명수 샘(영혼을 만족케 하는 하늘의 양식)으로 인도하여 족하게 하시고,

⑥ “하나님이 저희의 모든 눈물을 씻어 주사 위로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믿음과 사명을 위하여 눈물을 흘린 자가 이런 위로를 받게될 것입니다.

따라서 천국은 죽음이나 고난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지킨 자가 큰 상급을 받고, 위로를 받으며, 찬송으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곳이요 아무런 괴로움이 없는 곳임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제 15 과 일곱째 인을 떼심 (계 8:1-13)목록으로


8장 초두에서 일곱째 인을 떼시매 일곱 천사가 각각 나팔을 받고 일곱 나팔을 불게 하시므로 재앙을 전개시키는 말씀이 9장까지 계속됩니다. 8장의 말씀을 구분하면,

①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예비하기까지의 과정(1-6),

② 첫째 나팔 재앙(7),

③ 둘째 나팔 재앙(8-9),

④ 셋째 나팔 재앙(10-11),

⑤ 넷째 나팔 재앙(12-13)의 순서로 계시가 전개됩니다.

1.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예비하기까지(1-6).

1)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동안 고요”하였으니(1), 이것은 조용한 환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환난이나 돌변적인 사고가 없이 평온한 세계를 뜻합니다. 지금 계시를 받는 요한이 고요한 하늘을 보고 있는데, 그는 계시로 천상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하늘의 고요함을 지상의 좋은 날씨로 오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천상 세계의 고요함과 평온함은 지상 세계에 아무런 영향력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시기는 한시간도 못되는 반시간이었으니 이것은 짧은 시간을 뜻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짧은 기간동안 지상 세계를 평온하게 내버려 두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개인이 범죄를 하여도 짧은 기간 가만히 두시고, 민족과 세계가 죄를 범하여도 짧은 기간동안 가만히 두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어떻게 하실 것인가 ? 반시가 지난 다음에는 나팔 재앙이 내려질 것이니까 고요한 기간을 주시는 것은 그 기회에 깨닫고 회개하고 복음을 전하며 기도하고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2) 2절에서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가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천사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3) 3-4절은 다른 천사가 향연과 성도의 기도를 하나님께 열납시키는 내용입니다. 이 향연과 기도를 올리는 제사가 있은 후 천사가 나팔을 받았으므로, 성도는 나팔 재앙이 시작되기 전 고요한 때에 향연과 기도를 마땅히 올려야 할 것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성전에는 두 개의 제단이 있었는데, 하나는 성전 밖에 있는 번제단이고 또 하나는 성전 안 지성소 앞에 있는 향단입니다. 번제단에서는 짐승의 제물을 불태우는 곳이고, 향단에서는(출37:25-29) 관유와 향품을 태워 향기로운 연기를 올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향을 태우는 의미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 향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십자가의 공로가 성도의 기도와 함께 하나님께로 상달됨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필자는 이 향기의 뜻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의 믿음과 옳은 행실로 이해하였습니다. 그 이유로 십자가를 예표하는 제단은 번제단으로 구별되어 있고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로 완전한 제사가 열납된 것이며, 향단은 그와 성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천국에서 지상에 있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과 기도를 향연처럼 항상 받으시고 영광을 느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향연이 부족할 때 진노하실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성도는 고요하고 자유로운 때에 더많은 믿음의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천사들은 그것을 하나님 보좌에 전달하기 위하여 항상 대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천사가 향로에 있는 불을 담아 땅에 쏟으매 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났고 이어서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시작하더라”(5-6)고 하셨으니,

① “향로의 불”은 향을 태워 향연을 올리기 위함“인데 그것이 진노의 불로 쏟아진 것은 하나님께 올리는 향(옳은 행실)과 기도가 부족한 탓이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열심 있는 세계에서 기도를 많이 하는 것 같지만 성경은 전체적으로 평가하신 것이고, 또 열심 기도가 있어도 믿음과 사랑이 동반하지 않을 때는 그 기도의 비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율법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의 기도는 가증하다“고 하셨습니다(잠28:9,사1:15). 지금도 천사는 성도의 향을 기도와 함께 올리기 위하여 대기하고 있을 것입니다.

②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상징한 것이요 또 그것을 “땅에 쏟은 것”은 그 진노가 이미 시작된 것을 의미합니다. “향을 피워 올린 불이 진노의 불로 바뀐 것”(5절)은 십자가의 도에 굴복하느냐 안하느냐에 따라 구원의 능력도 되고 진노도 됨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고전1:18).

이상의 말씀에서 지상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 보좌에서의 통치에 의한다는 사실과 잠시 고요한 것 같으나 환난이 올 것이요, 고요할 때 향연을 많이 올려야 할 것과, 그것이 부족할 때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날 수도 있으니 이는 성도가 하나님께 돌릴 영광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때문입니다.

③ “나팔”은 사건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민10:3-10에서 그렇게 사용하였습니다. 나팔은 모임을 명할 때나(민10:5-7), 절기 때나(민10:10), 전쟁이 있을 때(삿6:34) 또는 주님이 재림하실 때(살전4:16) 등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알리는 목적으로 부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 적절하게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2. 첫째 나팔 재앙에 대하여(7).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을 때 “피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쏟아지니 땅의 1/3이 타서 사위고 수목과 각종 푸른 풀의 1/3도 타서 사위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땅 위에서 일어날 사건들을 천상에서 보여 주신 것으로,

1) “천사가 나팔을 불었다”는 것은 사건을 전개시키는 신호라고 하였는데, 어떤 학자는 “전쟁 시작의 경보라”고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일곱 가지 나팔이 전부 전쟁과 관련된 것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 있으니까 “전쟁 경보”라기 보다는 “계시 사건의 전개 신호”라고 깨닫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2) “피섞인 우박과 불이 땅에 쏟아졌다” 한 것은 지상에 있을 전쟁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우박과 불”은 하나님의 진노의 상징이라고 합니다(사28:2-17,시18:13). 또 “피섞인 우박과 불”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전쟁에서 우박같이 쏟아지는 화력에 많은 생명이 피흘려 죽임을 당할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피해의 범위가 땅과 수목의 1/3인데, 땅은 의로운 성도의 거처가 아닌 죄인들의 거처를 뜻하고, 수목과 풀은 귀인과 평민을 뜻한다고 합니다(7:3). 그런데 그 범위가 땅 1/3인만큼 전체적으로 다 진노하시는 것이 아니고, 특별한 곳 1/3의 범위에서만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3. 둘째 나팔 재앙에 대하여(8-9).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바다의 1/3이 피가 되고 바다 중의 생명 있는 피조물과 배의 1/3이 죽고 깨지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1) “불붙는 큰 산”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적그리스도의 국가(렘51:25,암7:4)를 상징하고,

2) 바다는 세상 열국을 뜻하며(계17:15),

3) 바다의 1/3이 피가 되었다는 것은 지상의 모든 생명체의 1/3이 죽임 당할 것을 뜻하며(출7:20,21),

4) 배의 1/3도 깨졌다고 하였으니, 이 배는 교회를 상징한 것으로 1/3의 교회가 무신론자들의 핍박이나 자체의 부패로 인하여 훼손될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둘째 나팔의 의미를 다시 정리하면, 장차 말세에 권세 있는 무신론적 국가가 일어나서 열국과 전쟁을 일으켜 열국의 모든 생명 1/3을 죽이고 또 교회를 박해하여 1/3을 훼손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교회의 훼손은 유형적 훼손을 뜻하는 것일 뿐 영혼의 구원적 훼손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4. 셋째 나팔 재앙에 대하여(10-11).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같이 타는 ‘쑥’이라는 큰 별이 하늘에서 강과 물 샘에 떨어지니 물의 1/3을 쑥이 되게 하여 많은 사람을 죽이더라”고 하였습니다.

1) 여기에 “쑥”이란 것은 먹으면 죽는 쓴 독을 가리키는 것이고,

2)(횃불같이) 타는 큰 별은 크게 활동하는 타락한 교역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것은 이 세상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단 현상을 뜻하는 것입니다. 신29:18이나 히12:15에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을 “쑥 또는 쓴 뿌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름을 가진 자가 “횃불같이 타는 큰 별”로, 물 샘에 떨어졌으니까 이것은 그들의 이단 사상을 별같은 인기로 사람의 마음 깊숙이 물들여서 그 이단의 독으로 많은 신자를 죽일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라고 다 믿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참된 선지자는 쓴 물을 달게 하는 역할을 할지언정 쓰게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5. 넷째 나팔 재앙에 대하여(12-13).

1) 넷째 천사의 나팔은 “해와 달과 별의 1/3이 해침을 받아 그만큼 비취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① 여기의 해와 달과 별은 종교적(단12:3) 정치적 지도자(사13:10,계6:13-15)를 뜻하는 것입니다.

② 그들이 해침을 당함은 어떤 다른 세력, 뇌물이나 현실 정욕 등 타락성에 유혹되어 공의와 신뢰성을 상실함으로써 의의 빛을 드러내지 못할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③ 밤이나 낮이나 공의를 실현해야 될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이 여러 가지 부패의 원인으로 빛을 내지 못할 것을 예언하셨는데 그 범위도 1/3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정치계나 종교계의 지도자 세계에서 정의성을 상실할 때 그 세상은 암담할 것입니다. 밝아야 할 세상이 1/3쯤 어두울 것이니 밤인들 어떠하겠습니까 ? 어떤 전직 권세자는 사업가로부터 자금을 받고도 “뇌물은 단 한푼도 받은 적이 없다”고 법정에서 최종 진술을 하면서 버티지 않았습니까 ?

2) “공중을 나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① 여기의 독수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한다고 합니다(마24:28). 신28:29에 보시면 “원방의 한 민족이 독수리의 날음같이 와서 너를 칠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함과 동시에 독수리가 느닷없이 신속하게 날아 와서 병아리를 채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이 그렇게 홀연히 임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② 그 독수리가 화 있을 것을 세 번이나 외친 것은 세 가지 나팔 재앙이 계속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또 계시의 과정에서 독수리가 뜻을 전한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런 재앙들이 이 세상에 있게 되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수목까지 무릇 생명 있는 모든 것이 피해를 보는데, 우선 하나님의 긍휼에 의하여 1/3만이 피해를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신자는 물론 신자들에게까지도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피해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택한 성도들의 영적 생명과 구원에 관한 신앙은 보호를 받을 뿐 아니라 넉넉히 견뎌지도록 하나님이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이상의 재앙들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각처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말세가 가까워지는 시기에 더욱 많을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다 인류의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로 나타나는 것임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이때에 성도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마10:28) 믿음과 정의를 지키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제 16 과 다섯째 천사의 나팔 계시 (계 9:1-12)목록으로


이 말씀에는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붊으로 나타난 계시”를 기록하셨습니다. 본문을 구분하면,

① 무저갱에서 나오는 연기로 햇빛과 공기가 탁해짐(1-2),

② 연기 속에서 황충이 나와 하나님의 인 맞지 않은 자를 해함(3-6),

③ 황충들의 모양을 설명함(7-11),

④ 다음에 계속될 화를 예고함(12)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무저갱에서 나오는 연기로 햇빛과 공기가 탁해짐(1-2).

1)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아 가지고 나타났다”고 하였습니다.

① 성경에서 “별”은 권세 있는 사역자를 의미하는데(마24:29), 그런 권세 있는 사역자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졌으니만큼 그것은 타락한 천사나 마귀를 뜻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② 그리고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으니, 무저갱은 “깊은 곳”이라는 뜻으로 사단을 가두어 벌하는 곳을 의미합니다(창1:2,시71:20,계17:8,눅8:31). 그러니까 그 타락한 천사가 무저갱에 갇혀 있는 마귀를 끌어내어 일을 시키는 것이고 이것을 실행시킬 수 있는 권세(즉, 열쇠)를 떨어진 별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가지고 내려온 것입니다.

③ 하나님은 자기의 섭리에 따라 지상에 환난을 주시고자 하실 때에 마귀를 그 이용물로 삼으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마귀를 이용하여 욥을 시험케 하신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2) “그 떨어진 사역자가 무저갱을 연즉 그 구멍에서 큰 풀무 같은 연기가 올라와서 해와 공기를 어둡게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① “풀무 같은 연기”는 옹기점 연기나 화산 같은 연기를 연상하면 될 것입니다. 많은 분량의 연기가 나오면 공기가 탁해짐은 물론 햇빛도 어두워질 것입니다.

② 여기의 해와 공기는 진리와 생명을 뜻한다고 보셔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빛으로 표현되고 공기는 생명의 제일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저갱에서 나오는 맹렬한 연기 때문에 햇빛이 흐려지고 공기가 탁해졌으니 그 맹렬한 연기란 바로 사단의 세계에서 나오는 거짓 교훈과 악한 사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세계는 풀무 불같은 거짓 교훈과 악한 사상이 많이 떠돌고 있어서 해와 공기 같은 진리의 전파를 많이 훼방하고 있고 또 오염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아야 할 택한 자들은 결코 그 오염된 거짓 교훈에 따라가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혼탁한 연기에 미혹되는 자는 비택자일 것이고, 참된 성도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에 의하여 미혹되지 않도록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고전1:8,빌1:19).

③ 저는 이 말씀의 뜻을 여자적으로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서울에도 오존 경보가 자주 일어나고 석유 가스 등으로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공기가 탁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물리적 사건으로 공통성 있는 신령한 계시를 나타내시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누룩으로 나쁜 사상의 오염을 나타내고, 황충의 떼로 전쟁을 계시하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2. 연기 속에서 황충이 나와 하나님의 인 맞지 않은 자를 해함(3-6).

1) “무저갱으로부터 나온 연기에서 황충들이 나왔고, 그 황충들(7)이 땅에 있는 전갈과 같은 권세를 받았다”(3)고 하였습니다.

① 무저갱에서 연기가 나온 것은 마귀의 역사로 나타나는 잘못된 사상들이요, 그 사상들의 차이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황충은 영적으로 전쟁하는 자의 상징으로 계시된 것입니다.

② 그 황충이 “땅에 있는 전갈과 같은 권세를 받은 것”은 전갈이 꼬리로 쏘며, 또 전갈에 쏘이면 사흘간 고통을 당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전갈의 권세”란 정면으로 물지 않고, 뒤에서 쏘는 적이며, 죽이는 권세가 아닌(5) 매우 괴롭게 하는 권세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그 황충에게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고 하셨습니다.

① 우선 이 말씀에서 사단의 역사가 하나님의 통제를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욥1:12).

②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을 해하지 말 것”은 죽이지 않고 괴롭게만 하는 재앙이므로 생명체의 보존을 위하여 식물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③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않은 자만 해할 것”은 불신자들과 외식하는 교인들이 타격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 맞은 자는 진실한 성도를 의미하며, 진실한 성도는 영적, 신앙적 타격이 아닌 것이면 넉넉히 극복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현실적 축복에 타격이 와도 성도는 그런 것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황충의 피해에는 참 성도가 제외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황충 자체는 영적 전쟁의 대적자로 거짓 교사나 이단자를 의미하므로 불신자나 참 신자를 상대하지 않고 확신이 없는 자나 외식하는 교인들만 유혹하여 그들에게 큰 피해를 줄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3) 그러나 그들(인 맞지 않은 자)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달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이 전갈이 사람을 쏠 때 괴롭게 함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① 이 황충의 피해는 괴로움만 주고 죽게 하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정신에만 큰 타격을 주고 육체에는 큰 타격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물질이 풍요한 세계에서도 자족하지 못하는 정신적 결함과 일치할 수도 있습니다.

② 전갈에 쏘이면 죽을 수도 없으며, 아프고 괴로운 것처럼 죽지 못해 사는 인간 세계의 각박함이 나타날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③ 그 기간을 다섯 달로 말씀하신 것은 특정 사건이나 특정 기간으로 연계할 수 없고 다만 황충의 활동 기간을 그 환난의 기간으로 깨닫게 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따라서 다섯 달은 길지 않은 시일일 것입니다.

4) “그 때에 사람들은 죽기를 구하여도 죽을 수 없으며 괴로움만 당할 것이라”(6) 하셨으니, 이는 육체의 건강에는 큰 해가 없고 정신적 병폐만 커질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3. 황충들의 모양을 설명하심에 대하여(7-11).

1)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들 같다” 하셨으니, 이것은 전쟁하는 말들이 용기 있고 늠름하게 다니는 것처럼 현세주의자들의 현실적 세력을 과시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세주의자들은 하나님께 영광될 일도 아닌 물건이나 사건을 가지고도 큰 권세가 있는 듯이 교만한 자세를 취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런 자세를 스포츠에서 많이 발견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일에 대하여서만 뜨거워져야 할 것입니다.

2) “그 머리에 금같은 비슷한 면류관을 썼으니” 이는 참 면류관이 아닌 가짜 면류관을 쓰고 승리의 왕인 듯이 자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동안은 성직자들 중에도 몇 사람이 가짜 박사에 현혹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진짜 박사인들 성직자에게 필요하겠습니까 ?

3) “그 얼굴이 사람의 얼굴 같음”은 인간적 지혜를 과시함을 뜻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참 얼굴이 아닌 비슷한 것이므로 역시 인간적 수단에 근거한 지혜를 뜻하는 것입니다.

4) “여자의 머리털 같은 것으로 단장한 것”은 남성 명사로 표현되는 ‘디아볼로스’(διάβολος)란 마귀가 여성 명사로 표현된 황충(아크리스:ἀκρίς)으로 변장한 것입니다. 역시 간사한 속임수입니다. 속은 남자인데 겉은 여자로 꾸몄을 때는 상당한 거짓과 외식이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또 머리털은 부드러운 미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짓자들의 행동이 분수와 체통을 넘어서서 부드러운 비단결처럼 교활하게 행동할 것을 뜻한 것입니다.

5) “그 이빨이 사자의 이 같음”은 황충이 교활할 때는 머리털처럼 부드러워도 자기의 뜻이 성취되지 않아 대결을 할 때는 사자의 이처럼 잔인, 맹폭할 것을 뜻한 것이요,

6) “철 흉갑같은 것이 있음”은 이기적 방패로서, 자기는 남에게 손해를 끼쳐도 자기는 손해를 입지 않기 위하여 든든한 방비를 취하고 있음을 뜻하며,

7) “그 날개들의 소리가 전쟁으로 달려가는 병거 소리 같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앞에서 설명드린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들처럼 이단자들의 무서운 활동과 용기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가 위장 전술가들인 것입니다. 그들이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들 같고 그 날개 소리가 우렁차 보이고, 강한 이빨에, 철 흉갑에, 사람의 얼굴에, 여자의 머리털에, 금 면류관을 썼지만 이것이 다 “그런 것 같은 것일 뿐” 진실로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모양과 속의 실(實)이 같지 않음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또 그들이 권세를 가졌으나 이마에 인 맞지 않은 자들만 해하고, 또 육체의 생명에 관계없이 상당한 기간만 외식자들의 영적 신변에 큰 타격을 준다는 것인 만큼 진실한 성도들 개인은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말씀에 붙잡힌 참 성도들은 거짓 교훈에 동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8) “저희에게도 임금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요 히브리 음으로‘아바돈’이요 헬라 음으로는 ‘아볼루온’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이단이나 사단의 세계에도 상당한 명령 체계와 조직을 가지고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거짓된 무리들의 왕은 사단이고, 사단은 거짓의 아비(요8:44)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바돈’이나 ‘아볼루온’이란 뜻은 파괴자, 멸망시키는 자란 뜻이어서 사단의 이름 자체가 그의 성격을 잘 설명해 준 것입니다.

4. “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아직도 화 둘이 남아 있다”(12)고 하셨습니다.

한 가지 화는 마병대가 죽는 것이요(10:16-18), 또 한 가지는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 짐승이 전쟁을 일으켜 죽는 화인 것입니다(11:7). 이 뜻은 다음에 설명됩니다.

결론적으로 이상의 말씀에서 저희들에게 주시는 교훈은,

① 사단의 역사가 아무리 강해도 그들은 위장 전술일 뿐이요, 제한된 능력의 역사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허용되는 범위를 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② 다섯째 나팔에서 보여 주시는 계시는 외식자들을 유혹하는 거짓 교사들의 역할이기 때문에 성경적 신앙에 든든히 서 있는 성도 즉, 하나님의 인 맞은 자는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지만 확신 없는 교인들이 그런 유혹을 받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요, 누구나 신앙의 정상에 오르지 못하면 자유를 만끽하지 못하며(요8:32), 외식자 같은 인정도 받게될 것이요, 항상 현세적 욕구 불만에 싸여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봅니다. 이런 것도 하나님의 섭리로 나타내 주시는 징계요 경고일 것입니다.

③ 그러나 성경 중심, 십자가 중심으로만 나가고 다른 것들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는 성도는 유혹 받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진리와 소망은 오로지 성경에만 있는 줄 아십시오.

 

 

제 17 과 여섯째 나팔 중 마병대의 재앙 (계 9:13-21)목록으로


본문 말씀은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나타난 나팔 재앙 중 여섯째 나팔이 불리울 때 나타난 계시의 일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섯째 나팔의 계시는 11:14까지 기록되었습니다. 본문 말씀에서 전체적 내용의 제목을 잡는다면 16절에 나타난 “마병대의 재앙”이라고 정할 수 있습니다. 장차 큰 전쟁으로 많은 살상이 있을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대지를 구분하면,

①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줌에 대하여(13-14),

② 마병대로 변신한 천사들의 역할(15-18),

③ 말들의 힘이 그 입과 꼬리에 있음(19),

④ 죽지 않고 산 자들이 여전히 회개하지 않음(20-21)으로 나누어 상고할 수 있습니다.

1.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줌에 대하여(13-14).

1) 13절에서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붊으로써 계시가 전개될 때 들으니 “하나님 앞 금단 네 뿔에서 음성이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① 여기의 “하나님 앞 금단”은 지성소 앞에 있는 향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출37:25-27). 지성소는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하며 향단은 그 보좌 앞 성소에 있는 것이고, 그 향단에는 향을 피움과 동시에 번제단에서 희생된 제물의 피를 제사장이 갖고 들어가서 그 향단의 네 뿔에 바르게 되는 것입니다(레16:18). 따라서 향은 성도의 선행과 기도를 의미하는 것이고(8:3-4), 향단 뿔에 바르는 피는 예수님의 속죄의 공로를 통하여 하나님께 열납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② “그 금단 네 뿔에서 음성이 나왔다”는 의미는 속죄 공로를 동반한 기도의 응답으로 주시는 계시를 뜻합니다. 이렇게 십자가의 공로를 동반한 향기로운 행위와 기도라야 하나님께 상달되고 또 응답을 받습니다.

2) 14절에서 “그 때에 여섯째 나팔 가진 천사가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고 하더란 것입니다. 여기 유브라데 강은 이스라엘 영토에서 볼 때 앗수르에 인접한 국경선이기 때문에 바벨론이나 앗수르가 과거에 이스라엘 나라의 적대국이었던 것처럼 하나님이 어떤 적대국(인류에게 재난을 줄 수 있는 나라)에 결박해 놓았던 네 천사(땅에서 활동하는)를 풀어줄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 적대국이 어느 나라인지는 모르나 평소부터 세상에 재난을 주려고 하는 것을 하나님이 막으시고 통제, 결박하셨기 때문에 환난을 일으키는 활동이 지연되었지만 정한 시기에 와서는 그것이 풀려서 재난을 주는 활동을 하게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이 유브라데 강을 여자적으로 해석하여 바로 그 곳이 “제 3차 세계 대전의 시발지”라고도 합니다만 더 합리적인 해석은 과거 선민에게 재난을 주었던 적대국의 경계선인 것을 연상하여 “장차 있을 인류의 적대국”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2. 마병대로 변신한 천사들의 역할에 대하여(15-18).

1) 유브라데 지역에서 놓임을 받은 네 천사들은 “하나님이 작정하신 연월일시에 땅의 사람 1/3을 죽이기로 예비된 자들이라” 하셨고(15),

2) “그 천사들은 2 만만의 마병대로 변신하였다”고 하셨습니다(16).

① 여기의 “변신”이란 뜻은 천사의 역할로 그만한 병력과 무기들이 모집되었다는 뜻입니다.

② 그리고 “2 만만”은 일찍이 세계 전쟁에 동원되었던 군인 수보다도 훨씬 많은 수를 뜻하는 것이며(그 당시까지 만만을 동원한 전쟁이 없었음),

③ “마병대”란 것은 사람 죽이는 전쟁의 도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마병대가 전쟁의 주무기였으니 마병대같은 것을 전쟁의 주무기(사람 죽이는 기구)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앞으로는 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전쟁의 무기가 얼마든지 다양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3) “이같이 이상한 가운데 그 말들과 그 탄 자들은 불빛과 자주 빛과 유황빛 흉갑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으며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① 여기의 “이상한 가운데”란 환상 가운데 본 것(엔 테 호라세이;ἐν τῇ ὁράσει)이란 뜻입니다.

② “그 말들과 탄 자들이 불빛, 자줏빛, 유황빛 흉갑을 두른 것”은 그 색깔로 전쟁의 성격을 표시한 것으로, 불빛은 전쟁을(6:4), 자줏빛은 살육을, 유황빛 흉갑은 무기와 방패들을 의미하며 상당하게 준비된 전쟁으로 큰 살육이 있을 것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③ “말들의 머리가 사자의 머리 같음”은 그만큼 맹폭하고 무자비함을 뜻하며,

④ “그 입에서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온 것”은 그 말을 탄 자가 불빛, 자줏빛, 유황빛 흉갑으로 무장한 것처럼 말들도 상당한 화력 무기를 장착했다는 뜻입니다. 이 무기들은 현대식 전쟁의 무기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4) 이런 전쟁과 무기들로 사람의 1/3이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8).

3. 말들의 힘이 그 입과 꼬리에 있음에 대하여(9).

“말들의 힘은 입과 꼬리에 있고 그 꼬리는 뱀같으며 또 꼬리에도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더라”고 하였습니다.

① 입은 말의 정면에 있고 꼬리는 후면에 있으니, 입으로 해하는 것은 노골적으로 피해를 주는 전면적인 전쟁이고, 꼬리로 해하는 것은 사상전, 경제전, 스파이전 처럼 이면적으로 하는 전쟁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② “꼬리가 뱀 같다”는 것은 뱀이 아담을 꾀인 것처럼 거짓으로 간교하게 행동하는 것이고,

③ “꼬리에 머리가 있다”는 것은 뱀같이 행하는 꼬리의 행사를 주동하는 두목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사태가 있을 때는 전면 전쟁과 이면 전쟁이 맹렬하게 있을 것이며, 그 중에 이면 전쟁은 상당한 배후 세력을 가지고 간교하게 속여서 큰 피해를 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피해는 인류 1/3이 죽는 상태를 빚어낼 것입니다.

4. 죽지 않고 산 자들이 여전히 회개치 않음에 대하여(20-21).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을 회개치 아니하더라”고 하셨습니다.

1)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자”란 죽음의 위험한 형편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모든 자로서 현재 살아 있는 인간들도 제외되지 않음을 아셔야 할 것이요,

2)“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하지 않음”은 바로 우상 숭배의 죄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귀신을 숭상하거나 금, 은, 동, 목, 석 우상에게 절하는 것이나, 살인, 복술, 음행, 도적질 등의 죄를 회개하지 않더라 하셨으니 환난이나 죽음이 성도에게는 회개의 촉진제가 될 수 있어도 악인들에게는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비택자는 회개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상의 말씀을 한 번 더 정리해 보면, 하나님 보좌 금단에서의 섭리적 명령을 따라 장차 환난을 줄 적대국에 결박되어 있던 천사를 놓음으로 어떤 적대국가를 통하여 마병대의 역할 같은 큰 전쟁이 일어날 것인데, 이 전쟁은 과학 무기를 쓰는 전면 전쟁과 사상적 전술 등을 쓰는 이면 전쟁으로 나타나서 인류 1/3이 죽게될 것입니다. 그 연월일시는 하나님 만이 아시고 이런 일이 있어도 땅 위의 인간들은 우상 숭배와 온갖 부도덕의 죄를 회개하지 않을 것이란 것입니다. 어떤 나라가 바로 그 적대국일 것이냐에 대하여 지적할 수는 없지만 세계적으로 여기저기서 상당한 전운이 감돌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기 때문에 저희들은 항상 회개하고 정결하게 살다가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

 

 

제 18 과 먹어야 할 작은 책 (계 10:1-11)목록으로


이 10장의 말씀은 여섯째 나팔 재앙에 계속되기는 하지만 내용상으로는 재앙이 아니고 “말씀 증언에 관한 내용”입니다. 작은 책(2,9), 기록하려 함(4), 하나님의 비밀(7), 먹어야 함(9), 꿀같이 닮(10), 예언(증거)하여야 함(11) 등의 말씀이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은 4대지로 구분하여 살필 수 있습니다.

① 계시를 전개시키는 천사의 거동이요(1-3),

② 요한이 기록하려고 했으나 거절당함이요(4),

③ 하나님께 대한 천사의 맹세와 계시에 대한 경고요(5-7), ④ 요한이 천사의 손에 있는 책을 받아 먹음에 대한 말씀(8-11)의 순서로 살펴 보겠습니다.

1. 계시를 전개시키는 천사의 거동에 대하여(1-3).

1)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았다”고 하셨습니다(1).

① “힘센 다른 천사”는 앞에서 나타난 천사가 아닌 다른 지위 높은 천사를 의미함이고,

② 그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왔음”은 영광을 나타내면서 강림한 것이요,

③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은 것”은 천사에게서 나타나는 영광의 광채가 구름에 부딪쳐서 반영되는 특수한 무지개로서 그(정관사) 무지개는 영광의 표시도 되고 언약의 진실성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④ 또 그 “얼굴이 해 같은 것”은 의와 성결을 뜻하고,

⑤ “그 발이 불기둥 같은 것”은 사명 활동(심판)의 위대성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2) “그 천사가 손에 작은 책을 들고 오른 발, 왼 발로 각각 바다와 땅을 밟고 사자의 부르짖음처럼 외치니 일곱 우뢰가 발하였다”고 하였습니다(2-3).

① “천사가 손에 든 작은 책”은 5:1에 나타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 있었던 그 책으로 후일에 될 일과 심판과 천국에 대한 생명록입니다.

② “그 책을 가진 천사가 바다와 땅을 밟은 것”은 세상 전체에 임할 내용을 뜻하며,

③ 또 사자의 부르짖음처럼 큰 소리로 외쳤으니 그 소리가 웅장하여 보는 자의 주목을 끌게 하였고 이 천사가 “외칠 때에 일곱 우뢰가 그 소리를 발한 것”은 천사가 큰 소리로 내용을 전달할 때 일곱 우뢰가 각각 특색 있는 음조로 들린 것인데, 이 우뢰 소리는 원문의 뜻을 참고할 때 내용을 동반한 소리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영광을 힘입은 힘있는 천사가 손에 펼쳐진 책을 들고 와서 땅과 바다를 밟고 그 내용을 세상에 펼치려고 외치는데, 그 외치는 소리가 일곱 우뢰처럼 들렸다는 뜻으로 요약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요한이 기록하려고 했으나 거절당함에 대하여(4).

“일곱 우뢰가 발할 때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기록하려 한즉 다시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말하시기를 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1) 사도 요한이 이 말씀을 들어 기록하려고 한 것은 진리를 보존하고 전파하려는 자의 마땅한 방법이었습니다. 모든 증언자가 자기가 증언한 것을 기록해야 할 것입니다.

2)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고 하셨으니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

① 계시의 말씀을 밝힐 때가 있다는 뜻,

② 성도가 스스로 연구하여 깨달으라는 뜻,

③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아야 하는 뜻도 있으니(마7:6), 이는 계시록의 말씀을 받고도 종시 회개치 않는 자가 있음을 보아 알 수 있는 것입니다(9:20,21,22:11).

어떤 계시는 인봉해 놓았다가 나타내어야 할 시기에 공개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삼층천의 계시를 보고도 14년간을 말하지 않다가 14년 후에 특별히 말해야 할 경우가 오자 비로소 말씀하신 예가 있었습니다(고후12:1-4). 사람의 말도 들었다고 하여 무조건 전달해야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천사의 계시도 사도 요한만 알면 되고 그것이 기록될 성격은 아니며, 또 그 당시에 즉시 공개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인봉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저희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나 사람의 말이라도 발표되는 순서와 시기가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께 대한 천사의 맹세와 계시에 대한 경고(5-7).

바다와 땅을 밟고 나타난 천사는 하늘을 향하여 오른 손을 들고 맹세하였는데 맹세의 대상인 하나님을 “세세토록 살아계신 자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라 하였고, 맹세의 내용은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들에게 전하신 복음처럼 이룰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1) 천사가 하나님께 대하여 맹세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명령받은대로 실천에 옮길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하나님을 신용하시게 하는 것이 아니고 이 계시를 받는 성도들로 하여금 확실하게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2)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이신데, 이것을 하늘과 땅과 바다 등으로 구별하여 말씀한 이유는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를 깊이 보거나 구체적으로 보면 볼수록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의 크심을 실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동물의 왕국이란 TV를 보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하여 항상 감탄하곤 합니다.

3) 계시록의 예언들이, 복음의 약속이 성취된 것처럼 지체됨이 없이 그렇게 성취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4. 요한이 천사의 손에 있는 책을 받아 먹음에 대하여(8-11).

1)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있는 책을 취하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8).

2) 그리하여 천사에게 “그 책을 달라” 하였더니, 책을 주면서 “갖다 먹어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고 한 것입니다.

① “이 책을 먹는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 이것은 말씀을 증거자가 먼저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렘15:16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얻어 먹는다”는 말씀이 있는데, 마치 배고픈 자가 음식을 구걸하여 먹듯이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갈망하여야 되고 특히 증거자는 먼저 자신이 먹고 소화시키듯이 깨달은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나타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먹는다는 것은 “깨닫는다”는 비유적 표현입니다.

② 왜 입에서는 달까요 ? 이것은 성경 말씀을 연구하는 자가 그만큼 말씀에 희열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며 진지한 취미를 느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필자는 이 글을 쓰면서 희열을 느끼고, 목회를 중단한 상태에서 말씀에만 붙잡혀 있는 것입니다. 휴식도 싫고 올림픽 스포츠도 관심밖에 있습니다. 이유는 말씀이 꿀 같기 때문입니다. 복음 사역자가 말씀에 붙잡히고 설교를 준비하는 것은 마치 요리사가 좋은 음식을 만들고 재단사가 좋은 의복을 만들며 조각가가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과 같이 흥미로운 것입니다. 설교자는 설교를 준비하다가 감사에 취할 때가 있고, 기쁨에 취할 때가 있으며 때로는 또 감격하여 눈물에 취할 때가 있으니 이것이 곧 단 맛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

③ 그런데 “배에서 쓰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 증거자가 말씀을 깨달아 받은 다음에 먹는 것을 소화시키듯이 실천하고 증거를 해야 하는데, 말씀을 증거하는데는 쓴맛과 같은 고난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 증거자에게 노력과 피곤이 따르고,

㉡ 핍박 중에서도 생명을 걸고 전파해야 할 때가 있고,

㉢ 더군다나 계시록의 내용은 재앙에 관한 심판의 내용이니만큼 이 말씀이 성취될 때는 적그리스도에게 재앙이 있고, 성도에게 수난이 있는 것이므로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헤롯 왕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쓴 일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그런 고충을 당했습니다(애3:19). 그런고로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질 때는 달지만 그것을 실천하고 전파할 때와 그 말씀대로 재앙을 당할 때는 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3) 요한이 천사의 말대로 그렇게 하였더니 말씀 그대로였습니다. 성도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입에 꿀 같음을 느낄 때 하나님과 실제로 가까워지고 있음을 체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또 실천의 쓴맛을 맛보면서 용기 있게 실천해야 함은 물론이요, 핍박을 받으면서라도(쓴 맛) 진리는 증언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4) 천사는 또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할 것이라”고 하였으니 이는 세계의 모든 족속이나 권세자들에게까지 이 예언의 말씀이 계속 전파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언이란 증언을 뜻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들은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에 이끌리며 말씀을 민감하게 깨닫고, 실천하며 증언하는 사명을 다하셔야 할 것입니다.

 

 

제 19 과 여섯째 나팔의 마지막 계시 (계 11:1-14)목록으로


본문에서는 “여섯째 나팔에 속한 마지막 계시"가 기록되었고, 내용을 분류하면,

① 성전과 제단과 경배자들을 책망함(1-2),

② 두 증인의 사역(3-6),

③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의 형편(7-10),

④ 두 증인의 부활과 승천(11-12),

⑤ 큰 지진이 있음과 셋째 화를 경고함(13-14)으로 나누어 살피겠습니다.

1. 성전과 제단과 경배자들을 책망함에 대하여(1-2).

1) 1절에서 “천사가 사도 요한에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면서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살펴야 할 것은 지팡이 같은 갈대의 의미와 성전 안에서 경배하는 자를 척량하는 의미가 무엇이냐를 아셔야 할 것입니다.

① “지팡이 같은 갈대”는 척량하는 도구로 사용된 것이지만 그것으로 척량하지 않은 곳에는 짓밟히는 피해가 있었으므로 그 반대의 의미인 하나님의 권고의 은총 또는 보호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지팡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때 모세의 손에 잡혀진 도구로서, 양을 인도하고(시23:4) 보호하는데 쓰는 도구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팡이가 갈대 형식으로 되었다는 것은 척량하는데 가볍게 사용할 수 있는 편의를 주는 도구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하튼 이 지팡이 같은 갈대는 권고의 은총을 베푸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②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은 척량 즉, 보호의 대상으로서 신약 시대의 교회를 통한 진리 운동의 단체인 교회로 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진리 운동의 단체입니다. “성전 안에서의 경배”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로서 신약 시대의 교회가 진리 운동을 통하여 하나님께 경배와 영광을 돌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③ “척량한다”는 의미는 길고 짧은 분량을 잰다는 것이 아니라 모세가 지팡이를 든 것처럼 보호해 주신다는 뜻으로 보셔야 됩니다. 그 이유는 지팡이 같은 갈대 자체가 보호와 인도의 도구이기 때문이고 또 2절에서 밝히신 바와 같이 척량을 받지 않은 바깥쪽은 이방인들에게 짓밟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척량의 뜻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능력으로 상당한 기간동안 성도와 교회와 복음 운동을 붙들어 주시는 은혜를 예고하신 것입니다.

2) “성전 밖 마당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척량하지 말 것이요 저희는 마흔 두 달 동안 거룩한 성을 짓밟으리라”고 하셨습니다.

① “성전 밖을 척량하지 말라” 하신 것은 불신 세계를 권고하시지 않는다는 뜻이요, 그들로 하여금 거룩한 성(교회)을 짓밟도록 허용하신다는 뜻입니다. 성전 밖 마당은 성전 주변이지만 신앙 세계가 아님을 뜻하며 성전에 접근한 것으로 볼 때 외식적인 신앙 세계도 포함될 것입니다. 버린 자는 방관하시고 구원의 대상은 권고하여 보호하신다는 뜻입니다.

② “성전 밖을 이방인에게 주셨다”는 뜻은 그들로 하여금 불신앙적 영역으로 허용하셨다는 뜻입니다. 눅4:6에서 “천하 만국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마귀가 넘겨 받았다”는 표현을 하신 것과 상통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간섭 없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범위 안에서 마귀의 지배를 따라 현실적으로 행동하면서 진리 운동을 훼방할 수 있습니다.

③ “성전 밖의 세계를 이방인에게 붙여 그들로 하여금 거룩한 성인 교회와 진리 운동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게 한다”고 하셨으니, 이것은 불신앙적 핍박자들의 진리 운동에 대한 핍박을 일정 기간 동안 허용하시는 것이며, 마흔 두 달(42개월)이란 3년 반의 기간으로 복음 전파가 허용되는 신약 시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말세는 구약 시대에 대조한 신약 시대를 의미합니다(행2:17,고전10:11). 그런데 이 시기를 42개월(1260일=30×42)로 표현하신 의미는 알기 어렵습니다. 신약 시대를 두 시대로 나누어 복음 전파가 허용되는 전반기와 허용되지 않는 후반기 또는 이방인의 때(눅21:24)라고 합니다. 따라서 복음이 전파되는 말세 전반기에 참된 신자는 영적으로 보호를 받으나(1) 불신자들과 외식하는 자들은 완전히 이방인의 세력에 포함되어 복음의 대적자가 될 것입니다. 그들은 농장에 있는 가라지와 같아서(마13:27-30) 불신자나 다름없이 마흔 두 달 동안 교회를 짓밟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성전밖에 있는 자는 불신자와 외식하는 교인들이 다 포함되는 세계입니다.

2. 두 증인의 사역에 대하여(3-6).

1) 4절에서 “하나님이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어 저희가 굵은 베 옷을 입고 1,260일을 예언할 것이며 이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하셨습니다.

① 두 증인은 두 감람나무, 두 촛대, 또 10절에서는 선지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고 전도의 사명을 가진 신약 시대의 교회를 뜻하는 것입니다. 두 증인, 감람나무를 구약에서는 모세와 엘리야 또는 스룹바벨과 예수아 등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음에 말씀하시는 내용들과 전체적으로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모세나 엘리야의 사명을 가진 신약 시대의 교회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입니다.

②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셔서 굵은 베 옷을 입고 1,260일을 예언하게 하심”은 지상의 교회에 권세를 주셔서 “진리의 능력 발휘와 성령님의 역사와 권징권을 행사하게 하신 것”을 의미합니다(딤전3:15,마16:19). 또 ”굵은 베옷을 입은 것은 성도들의 죄를 탄식하며 회개를 힘쓰는 사명이요 1,260일은 앞에서 말씀드린 마흔 두달의 기간이요, 그 기간동안 전도의 사명으로 예언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③ 그런데 4절에서는 이 전도의 사명을 가진 교회를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로 비유하셨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구약 슥4:14의 의미를 인용한 것인데, 감람나무 기름은 성령을 의미하고 두 촛대의 빛은 복음을 뜻하며, 촛대의 불은 감람나무 기름이 연료가 되어 빛을 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전도의 사명을 이행하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된다는 것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렇게 기름이 없이는 불을 붙일 수 없고, 전도는 성령님의 능력에 의존하여야 하며, 이것을 의존하는 방법이 곧 기도의 빛된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2) 5절에서 교회가 복음 사명을 다하는 기간 중에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으니,

① 이방 세력이나 거짓자들이 하나님의 교회와 진리 운동을 해하고자 할 때는 저희 입 즉, 두 증인(교회)의 입에서 능력(불)이 나타나서 그 핍박의 역사를 누르고 이기게 하실 것이요, 핍박자들이 죽임을 당하여 패하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성령으로 교회를 붙드셔서 복음이 전파되어 택한 자들을 구원하시는 동안 복음의 대적자들을 패하게 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② “입에서 불이 나왔다”는 뜻은 일찍이 모세나 엘리야도 입으로 불을 뿜은 일이 없으므로 상징적 의미로 해석하여 말씀의 불같은 역사를 의미합니다.

3) 또 6절에서 “여러 가지로 비상한 능력을 행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언하는 날 동안 하늘을 닫아 비오지 못하게 한다” 하신 것과 또 “물을 변하여 피가 되게 하며 아무 때든지 원하는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친다”고 하셨는데 이것도 역시 “입으로 불을 뿜는다”는 말씀이 능력적 권위를 상징한 것처럼 교회가 불법한 자들이 받을 재앙을 상당하게 주관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모세가 권위를 힘입고 이스라엘을 인도할 때 물을 피가 되게 하였고(출7:20), 엘리야가 능력으로 역사할 때 그의 기도가 없으면 비가 오지 않은 것처럼(왕상17:1) 하나님께서 말세에도 그와 비슷한 권위를 교회로 하여금 기도를 통하여 나나낼 수 있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3.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의 횡포에 대하여(7-10).

1) 교회의 증거 사역이 마칠 무렵은 주님의 재림 직전이며 “이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짐승이 올라와서 저희(지상의 교회)로 더불어 전쟁하며 이기고 저희를 죽일 것이라”(7)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이긴다”는 뜻은 핍박으로 육체를 죽인다는 뜻입니다.

① “마귀가 짐승 모양으로 나타난 것”은 마귀의 현실주의 운동이 짐승같은 생활과 일치하기 때문이요, 교회의 전도 사역이 끝날 무렵에 교회의 신령한 사역자들을 핍박하여 죽이고 또 교회가 현실주의에 빠져 영적으로 죽게될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② 따라서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다”(8)는 것은 순교자의 시체가 노상에 방치되는 현상이기도 하며 또 지상의 교회가 생명을 잃고 죽은 시체처럼 영적으로 무력한 상태에서 순교자의 신앙을 성원하지 않는 교회적 침체를 예언하신 것입니다.

③ 따라서 그 살벌한 세계가 영적으로 소돔같고 애굽같으며 또 주님이 돌아가신 곳인 골고다 같이 된다고 하셨습니다(8).

2) 9절에서 “백성들과 족속들과 나라와 방언(全人類;계5:9)이 순교자들의 죽은 시체를 30일 동안 구경하며 장사지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본격적인 핍박 시대(적그리스도 시대)인 후 3년 반에 들어 서면서 순교적 신앙을 외면해야 할만큼 가혹한 핍박을 받게 된다는 뜻이며,

3) 10절에서 짐승에 속한 자 즉, 적그리스도의 무리들이 순교자의 죽음을 보고 또는 교회의 타락을 보고 기뻐하여 서로 축하의 예물을 보낼 것인데 그 이유는 그 동안 복음의 증인들로부터 많은 책망과 도전을 받은 일에 대하여 보복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후 3년 반 기간에 들어서면서 복음의 성도들이 순교를 당하고 교회의 기능이 일시 황폐된 것 같으나,

4. 두 증인의 부활과 승천으로 궁극적 승리를 차지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11-12).

1) 이것은 3일 반 후(즉, 핍박 시기인 후 3년 반이 지난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서 일어선다” 하였으니, 이는 예수님의 재림 전에 있을 성도들의 육체적 부활을 예고하신 것이고,

2) 악인들 앞에서 성도의 부활이 이루어질 때 악인들이 하나님의 창조적인 능력을 구경하고 크게 두려워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3) 그 때에 12절에서 “하늘의 큰 음성을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광경을 그들이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행1:9,11,살전4:17).

5. 큰 지진이 있을 것과 셋째 화가 또 있을 것을 경고하신 말씀입니다(13-14).

1)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1/10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7,000이며 남은 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라” 하셨으니,

① 지진으로 성 1/10과 7,000이 죽는 것은 지상의 남은 악인들이 거의 죽을 것을 뜻하며(왕상19:18), 이 말씀은 19:17-21에 다시 반복 강조됩니다.

② 남은 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은 지상에서의 최종 심판을 면한 자들인 만큼 죽은 악인들(성 1/10과 7,000)에 비하여 최후까지 남은 자들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상의 교회가 외부적으로는 쇠할 수 있으나 택한 백성들의 신앙은 내적으로 여전히 보존되며 결국은 승리할 것이므로 항상 순교자적 각오와 승리의 확신 속에서 인내를 지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2) 마지막 14절에서 셋째 화가 있을 것을 또 경고하셨습니다.

 

 

제 20 과 일곱째 나팔 계시의 시작 (계 11:15-19)목록으로


본문 말씀에서 일곱째 천사의 나팔 계시가 시작됩니다. 이 나팔 계시의 내용은 14장까지 계속됩니다. 15장부터는 “일곱 대접 재앙”에 관한 말씀이 나오기 때문에 일곱째 나팔 계시는 일곱 대접 계시의 서막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구분하면,

① 그리스도의 나라의 출현을 선포함이요(15),

② 24 장로들의 경배와 찬송이요(16-18),

③ 하나님의 성전이 열림(19)이라 할 수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의 나라의 출현을 선포함(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세상 나라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1) 이 세상 나라는 마귀의 유혹이 있는 지상의 나라로 예수님의 나라가 천국에서 이루어지기까지 마귀의 판도로 허락되어 있었습니다. 눅4:6에서 “천하 만국의 영광은 마귀가 하나님께로부터 허락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자기의 뜻대로 원하는 자에게 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2) 그러나 마귀의 활동 무대인 세상 나라는 없어지게 되었고(벧후3:12), 새 하늘과 새 땅이 천국에서 펼쳐졌는데(계21:1) 그 세계가 바로 그리스도의 나라요 예수님이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는 나라입니다(요18:36).

3) 그 나라는 바로 성도들이 누려야 할 아브라함의 본향이기도 한 것입니다(히11:16). 이 나라는 세상 끝 날에 성취될 것이며, 그 시기가 가까울 것이기 때문에 예고하신 것입니다.

2. 24 장로들의 경배와 찬송에 대하여(16-18).

1) “하나님 앞, 자기 보좌에 앉은 24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였으니”,

① 그들이 하나님 보좌 가까이 있음과,

② 얼굴을 바닥에 댈 만큼 겸손의 표현을 나타낸 것과,

③ 경배란 겸손과 복종과 찬양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찬양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왕되심을 감사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축하하는 내용입니다.

① 예수님이 영원히 계시고, 하나님이 되시며, 전능하심을 성도가 감사함이며,

② 예수님이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되 하나님의 권위를 거역하는 이방인들에 대하여 진노하시며 죽은 자들도 다시 부활시켜 심판하시고(행24:15)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킬 것과,

③ 종들과 성도들을 무론 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일에 대하여 감사와 찬양을 올린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성전이 열림에 대하여(19).

장로들의 감사와 찬송이 있을 때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렸고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였으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①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렸음”에 대하여. 계21:22에 보시면 “하늘에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성전이 되시므로 별도의 성전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에 나타난 “하늘의 성전”은 모두가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고, 또 구약 시대의 지상의 성전을 염두에 두어 진리를 깨우치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성전 문이 열려짐”은 하나님 자신을 더 밝게 계시하심을 뜻하며,

② “그 안에 언약궤가 보였다” 한 것은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약속하신 모든 언약을 밝히 실현하실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성전 문이 열릴 때 하나님을 보는 듯이 진리를 깨달아야 하고, 언약궤를 보실 때는 하나님의 약속의 진실성을 더욱 믿는 성도들이 되셔야 할 것입니다.

③ “언약궤가 보일 때 번개, 음성, 뇌성, 지진, 큰 우박이 있더라”고 하셨으니 이 번개, 음성, 뇌성, 지진, 큰 우박 등은 모두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때려 부수고 악인을 벌하시는 심판의 몽둥이를 보여 주심으로 악인의 심판을 언약하신 대로 확실히 이행하실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제 21 과 사단과 진리 운동의 대결 (계 12:1-17)목록으로


위의 본문 말씀을 읽고 “사단과 진리 운동의 대결”이라고 총제목을 정하였습니다. 내용을 구분하면,

① 하늘의 큰 이적(해를 입은 한 여자;1-2),

② 하늘의 또다른 이적(큰 붉은 용;3-6),

③ 하늘의 전쟁(미가엘과 용의 싸움;7-9),

④ 그리스도의 승리를 찬송함(10-12),

⑤ 용과 여인의 싸움(13-17)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하늘의 큰 이적에 대하여(1-2).

1) “하늘의 큰 이적은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고, 그 여자의 발 아래 달이 있으며, 그 여인의 머리에는 열두 별이 있는 면류관을 쓴 것”을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① 여기의 “큰 이적”이란 11장까지의 계시를 본 것보다 더 경이롭게 여겼음을 뜻하며,

② “해를 입은 한 여자”는 신약 시대의 교회를 뜻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선민의 단체입니다. 이 단체는 출애굽 때부터 조직적으로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에는 선민의 단체를 교회로 명칭하지 않다가 신약 시대에 와서 “광야 교회”란 명칭으로 구약 시대의 교회를 지칭하였습니다(행7:38). 그러다가 예수님이 성도의 단체를 “교회”라 하신데서부터(마16:18) 명칭이 부여된 것입니다. 왜 교회를 여성형으로 표현하셨을까요 ?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 “교회”라는 단어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가 여성 명사인 때문이요,

㉡ 여인이 생명을 생산시키는 것처럼 전도의 열매를 생산할 사명이 교회에 있기 때문이요,

㉢ 예수님을 신랑으로, 성도와 교회를 신부로 비유하신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마25:1,고후1:2,엡5:23,계19:7).

③ 그러면 또 “해를 입었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 이것은 빛으로 둘러싸인 상태를 나타낸 것이며, 그 의미는 예수님의 의를 흠뻑 힘입고 교회가 빛의 사명을 받았다는 뜻입니다(마5:14).

④ “그 발 아래 달이 있음”은 요셉이 꿈을 꾸었을 때 “해와 달과 별이 그에게 절을 했다”(창39:9) 한 것처럼 달을 발 아래 둔 것은 그 여인(교회)의 승리적 자세를 보여 주신 것이요,

⑤ “그 머리에 열두 별의 면류관을 쓴 것”은 택한 백성(12지파)에 대한 구원적 영광을 나타낸 것입니다.

2) “그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었다” 하셨으니 이는,

① 신약의 교회가 구원받을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의 사명이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성도의 변화와 육성(신앙적 교육)을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갈4:19) 하셨고, 시126:5에서는 “울며 씨를 뿌리고 기쁨으로 거둔다” 하셨으니 이것이 다 교회에 주어진 해산하는 수고와 같은 전도의 사명을 뜻하는 것입니다.

② 교회는 구원받을 생명에 대한 생산과 육성의 사명이 있습니다. 그런고로 성도들이 이 계시로 나타난 여인을 보면서 교회의 참 사명을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2. 하늘의 또다른 이적에 대하여(3-6).

1) “또다른 이적”이란 “큰 이적”에 비례한 말씀이요, 계시 전개의 과정이 이적이란 뜻입니다.

2) 한 큰 붉은 용이 있었고, 그 용의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며 일곱 머리에 일곱 면류관을 각각 쓴 것입니다(3).

① “한 큰 붉은 용”은 교회와 진리를 대적하는 원수 사단을 나타낸 것입니다. 12:9에서도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한다” 하셨습니다. “큰 것”은 힘의 위용을 뜻하고, “붉은 것”은 충혈된 맹수의 눈처럼 죽이는 싸움을 상징한 것입니다.

② “그 용의 머리가 일곱”임은 진리를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의 나라(지상의 왕국)를 뜻합니다. 이 나라들을 역사적 증거에 의하여 “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대 바사, 헬라, 로마”라 하고 나머지 한 나라는 말세에 반기독적 대적이 되는 모든 국가를 통칭한다고 합니다(17:9-13).

③ “그 용에게 열 뿔이 있음”은 앞에서 말씀드린 일곱 나라 왕들의 권위와 다른 세가지 반기독적 권위를 포함한 것이라 합니다. 역사적으로 적그리스도의 국가가 있었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고 또 말세에도 그런 국가들이 종교적, 정치적 이념의 차이로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추가하여 경제력이나 이단적 종교의 힘이나 인간들이 추구하는 현세적 향락의 힘이 반기독교적 운동에 합세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용의 뿔은 곧 진리를 대적하는 세상적인 힘을 뜻하는 것입니다.

④ “일곱 머리에 각각 면류관을 쓴 것이 있음”은 사단 자신들의 영광을 뜻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영광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지만, 사단은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알며 거짓과 죄와 진리 대적하는 일과 자율주의로 사는 일을 그들의 영광스러운 면류관처럼 여길 것이요, 자기들이 최고의 왕인줄로만 안다는 것입니다.

3) “그 꼬리가 하늘의 별 1/3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하셨고, 또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려고 하였으니”

① “용의 꼬리의 힘”이란 배후의 힘 또는 남은 힘을 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사단은 머리에 치명타를 맞았으므로(창3:15) 당연히 꼬리의 남은 힘으로 역사한 것이요, 또 입으로 무는 것이 정면적 싸움이라면 뒷부분의 꼬리로 해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이면적, 사상적 싸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② “그 힘으로 하늘의 별 1/3을 땅에 던졌음”은 천사를 타락시키고 또 훌륭한 기독교 사역자들을 타락시키는 일을 행한 것입니다. 그 수가 1/3에 해당함은 이 예언이 응하는 그 시대의 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③ “용이 여자가 아이를 해산했을 때 그 아이를 삼키려 한 것”은 사단이 성도를(또는 여인이 낳은 아들) 해하여 진리 운동과 믿음 생명을 쇠퇴시키려는 것이요, 또 불신앙적으로 유혹하거나 죽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4) “여자가 아들을 낳았는데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였고 그 아이를 하나님 앞 보좌로 올려 갔다”고 하였습니다(5).

① “그 여자가 아들을 낳았다 하셨음”은 구약의 교회가 예수님을 탄생시키고 또 신약의 교회가 복음을 나타냄을 뜻하고, 사단이 그 아이를 죽이고자 했으나 믿음의 주이신 예수님은 장차 철장으로(큰 권능으로) 만국을 다스리실 분이시기 때문에 영원히 죽으실 수 없는 고로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의 보좌로 가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② 여기에서 “여인이 낳은 아들이 하나님 보좌 앞으로 올려 가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여인”을 마리아로 해석해야 좋았겠지요. 그러나 마리아는 성도를 양육하는 교회의 사명자가 아니기 때문에 6절 말씀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낳았는데 왜 교회가 낳은 것처럼 설명하였는가 ?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의 교회는 곧 예수님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구약 교회는 예언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또 구속 사역의 역사로 예수님을 탄생시킨 것입니다(사66:7,미5:2). 그러나 이 계시는 과거에 있은 메시야의 출현만 보여 주신 것이 아니라 교회의 역할로 탄생한 (전도의 사역으로) 성도의 부활과 승리도 예언하신 것입니다.

5)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여 1.260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예비하신 곳이 있다”고 하셨습니다(6).

① “여자가 광야로 도망한 것”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광야에서의 연단의 생활처럼 신약의 교회 생활이 곧 믿음을 연단하는 도장과 같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교회적 단체 생활을 신앙적으로 잘 적응한다면 좋은 믿음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② 그 기간이 1,260일임은 3년 반의 기간으로 마흔 두달과 같은 뜻이며(11:3), 상당한 짓밟힘을 받으면서(계11:2-3) 복음 전파가 가능한 신약 시대를 의미합니다. 이 기간은 신약 교회가 존속되는 역사적 과정으로 추리할 수 있는 년수의 해석입니다.

③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예비한 곳”이란 지상 교회 중심의 생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시23:1-3).

3. 하늘의 전쟁 곧 미가엘과 용의 싸움에 대하여(7-9).

1) “하늘에서 미가엘 천사의 단체와 용(사단)의 단체가 싸우나 용이 이기지 못하여 있을 곳을 얻지 못하더라”(7-8)고 하셨습니다. 이 “하늘의 전쟁”이란 천사와 마귀와의 싸움을 뜻하는 것입니다. 천사 편에는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고, 마귀는 용과 그의 사자들인데, 여기에서 미가엘은 “누가 하나님과 같으리요”라는 뜻을 가진 이름의 천사의 대장으로 하나님의 뜻을 실현시키려고 마귀와 싸우는데 결국은 마귀가 천사를 이기지 못하여 하늘에서 있을 자리를 찾지 못하고 땅으로 내어 쫓겼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대행자인 천사를 이길 수 없습니다.

2) “하늘에서 있을 곳을 얻지 못한 사단은 그의 사자들과 함께 땅으로 쫓겨나 온 천하를 꾀인다” 하셨으니(9), 온 천하란 인격이 있는 생명체로서 대상에 제한이 없이 유혹하고 넘어뜨리며 악을 꾀한다는 뜻입니다.

4. 그리스도의 승리를 찬송함에 대하여(10-12).

1) 10-12절 사이에서 “하늘에서 들린 큰 음성의 내용”에 관한 것인데, 이것은 24 장로와 영물들의 찬송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 사업이 성취되고 또 하늘에 있던 마귀가 지상으로 쫓겨감으로 천상 세계에 큰 즐거움이 있음을 나타낸 말씀입니다.

①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다” 하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구원을 성취하시고, 마귀에게 심판의 능력을 보이시고, 예수님의 나라와 권세를 떨치셨다는 것이요,

②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밤낮으로 형제를 참소하던 마귀가 벌받을 것을 알고(12) 쫓겨났으므로 기쁘다는 것입니다.

③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긴 것”은 성도가 십자가의 도를 증거하여 마귀로부터 받는 핍박을 이겼다는 뜻이며, 그들은 생명을 아끼지 않고 죽기까지 싸워 승리하였으므로 하늘에 있는 자들은 즐거워하라(11)고 하였습니다.

2)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가 있을 것이니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 크게 분 내어 땅으로(성도가 있는 곳) 내려 왔기 때문이라(12)고 하였습니다.

① 땅과 바다는 현실 세계로서 하늘에서 패한 사단의 전용 활동 무대가 되므로 화가 있게된 것이요,

② “마귀도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안다”는 것은 말세의 비밀을 다 알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의 표정과 자신이 거역한 죄를 알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꼬리의 힘으로 시한부를 버티는 상황입니다.

③ 마귀도 자기의 때를 촉박하게 여기거든 하물며 성도이겠습니까 ?

5. 용과 여인의 싸움에 대하여(13-17).

1) “용이 자기가 땅으로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였음”은 사단이 하늘에 있을 때는 천사와 싸웠으나 땅으로 쫓긴 후에는 교회와 진리 운동을 핍박할 것을 말씀하심이요,

2)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고 광야에 나가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 두 때 반 때를 양육 받았다” 하셨으니,

① 여기에 “여자가 받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는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말씀의 능력과 권고의 은총이요(11:1) 또 연단의 능력을 뜻하며(출19:4),

② “광야에 나가 뱀의 낯을 피함”은 현실 교회가 현실 세계에서 사단의 역사를 피하고 이기도록 연단을 받으며 노력함을 뜻하고,

③ 한 때 두 때 반 때를 양육 받음은 교회가 존속되는 신약 시대 전체를 의미합니다(11:3).

3) “뱀이 여자 뒤에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떠내려가게 하려 한 것”은 사단이 교회 배후에서 교회의 생명을 죽이려고 그 본질을 변케 하는 그릇된 현실주의 사상이나 제도 등을 유포시켜 교회에 위기를 조성하는 마귀의 역사를 뜻하고,

4) 이 때에 “땅”이 입을 벌려 그 토한 강물을 삼키므로 여자를 떠내려가지 않도록 보호한 것은 하나님께서 교회의 사명을 다하여 구원 계획을 성취하시도록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보호해 주시는 섭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마16:18).

5) 이때 용은 자기의 계획이 쉽게 성취되지 않음을 알고 여자(교회)에 대하여 크게 분노하였고, 그 여자의 남은 자손인 후시대의 성도들 즉,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복음적 사명을 다하려고 애쓰는 성도들과 계속 대결하기 위하여 바다 모래 위에 섰다(17)고 하였습니다. “바다 모래”는 용의 싸움터인 현실주의 세계를 뜻합니다. 따라서 마귀는 세상 끝날 이 다하고 자신이 결박되는 그 날까지 교회와 성도와 진리 운동을 교묘한 방법으로 거슬려 행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① 구약 교회가 연단과 수난을 당하며 메시아를 출현시켜 신약 교회를 탄생하게 한 점과,

② 천상 세계의 천사들의 승리로 교회와 성도들에게 궁극적 승리를 주신 것과,

③ 마귀가 자기의 남은 때가 적은 것을 알고 교회를 핍박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로 보호를 받으며 사명을 다하는 일과,

④ 마귀의 역사는 세상 끝나는 날까지 계속 역사하고 있음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에게 더욱더 분발할 것을 교훈해 주시는 것입니다.

⑤ 사단의 활동 무대는 현실주의 세계입니다. 현실주의에서 오는 문화나 인본주의 전통들이 무분별하게 기독교 생활에 접목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것을 예민하게 감찰하고 분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제 22 과 한 짐승의 정체와 활동 (계 13:1-10)목록으로


일곱째 나팔 계시에 연속되는 내용으로, 본문은 “한 짐승이 나타나는 계시”입니다.

① 출현하는 짐승의 정체(1-4)와,

② 짐승의 활동 상황(5-10)을 말씀하셨습니다.

1. 한 짐승이 출현함(1-4).

1)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① 이 짐승은 12:3에 나타난 “한 붉은 용”(옛 뱀, 마귀, 사단;12:9)과 대조할 수 있습니다. 용은 하늘을 무대로 활동하는 마귀의 원형적 상징이고, 짐승은 부수적 상징으로 용의 명령을 땅에서 시행하는 사단 역할의 수행자입니다.

② “짐승”은 인격이 없고 먹는 것만 압니다. 비이성적 행동의 대표란 뜻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잘못 살 때 “짐승 같다”라고도 합니다. 따라서 이 짐승이 교회와 성도를 해할 때 비인격적이고 현실적이며 물질주의적으로 나타날 것을 예상할 수 있고, 따라서 적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2) “이 짐승은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며 그 뿔에 열 면류관이 있었으며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일곱 머리 열 뿔”은 12:3에서 말씀한 용의 정체와 공통성이 있는 것으로 아시면 됩니다. 다만 세 뿔에 세 면류관이 더한 것 뿐입니다. 현실주의자들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성의 자랑”(요일2:16) 같은 것을 면류관처럼 숭상하지 않습니까 ? 짐승의 영광은 바로 그런 점에 있습니다.

또 “참람된 이름이 있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교만과 오만한 태도를 나타낸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적 그리스도의 국가나 왕을 하나님보다 더 높이면서 “자기가 하나님이라” 하는 교만한 태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3) “그 짐승은 표범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으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고 하셨습니다.

① 그 짐승 모양이 표범 같은 것은 사납고 무서운 것을 나타냄이고,

② 발이 곰같음은 한 번 덮치면 놓지 않는 것을 뜻하며,

③ 또 사자의 입과 같다는 것은 잔인하고 힘차게 삼켜 멸망시키는 위력을 표현한 것입니다.

④ 그러면 이 짐승에게 이런 권세를 준 자가 누구냐 ? 할 때, 2절 하반에 보시면 사단의 원흉인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왕권)와 큰 권세(지상의 세력)를 그에게 주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4절에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와 성도를 훼방하는 짐승으로 상징된 적그리스도는 사단의 원흉인 용으로부터 지상 권세를 받고 세상을 무대로 하여 대단히 무법하고 잔인하게 활동하는 마귀의 세력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4) “그 짐승의 일곱 머리 중 하나가 상하여 죽게된 것 같더니 그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기며 짐승을 따른다”고 하였습니다.

① 일곱 머리 중 하나가 상한 것은 적그리스도 국가 중에 한 나라가 쇠한 상태에 있다가 다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 또 전체적 적 그리스도 세력의 일부가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일곱 머리 중 하나를 특별히 구별하기가 어려우므로 포괄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과거에는 공산주의 소련이나 핵 전쟁, 중동 사태, 세계 통화 기금의 운영 등으로 어떤 우려를 지적하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태가 변하기 때문에 특정 사건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② 이때에 온 땅의 인류들은 그 사실(짐승의 세력이 다시 일어난 것)을 기이하게 여기며 관심을 가지고 따르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의 짐승의 세력이란 정치 세력이나 물질 문명의 세력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마귀의 역사에 매력적이고 필수적이며 능력적인 것이 없으면 관심을 끌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정욕적인 관심거리를 부각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현세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길 것은 창조자를 기억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물질, 명예, 섹스, 관광, 스포츠 등을 가장 우상시하는 입장이 아닙니까 ?

5)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2,4) 그 세속적 권위에 이끌린 사람들이 용과 짐승에게 경배하며 “누가 이 짐승 같으며 누가 더불어 싸우리요” 하였으니(4),

① 세속적 권세의 출처는 사단이요,

② 용을 숭배함은 반 기독적 행위이고,

③ 짐승을 숭상함은 현실주의(인간 정욕에 끌리는 자율주의) 숭상이며,

④ “누가 이 짐승을 대항하리요” 한 것은 물질 권위주의로 치닫는 인간의 심리를 표현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질 문명을 최고의 소망으로 알고 있지 않습니까 ? 물질로 행복을 추구하려 하지만 생활은 더 피곤하고, 맛있는 음식으로는 쇠고기보다 더 좋은 것을 만들지 못하고 있으니 문명이 최고의 행복은 아닐 것입니다.

2. 짐승의 활동 상황에 대하여(5-10).

1) 5-6절에서는 “짐승이 말로 훼방하는 활동”을 말씀하셨습니다.

① 5절에서 “그 짐승은 큰 소리로 외치는 말과 하나님을 모독하는 참람된 말을 하면서 42개월간 일할 권세를 받았으니”, 여기의 42개월은 신약 시대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 시기에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므로 성도에게 핍박을 준다는 것입니다.

② 또 입을 벌려 망령된 말로 하나님을 훼방하고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과 하늘에 거하는 자들까지 훼방하였으니(6), 이것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천국을 불신하며 성도와 구원의 은혜를 증오하는 태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2) 7-8절에서,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더라”고 하였습니다.

① “짐승의 현실주의적 세력이 큰 힘을 발휘하여 세계를 상대로 성도와 싸워 이기게 됨”은 많은 성도들이 진리 중심에서 떠나 현실주의에 물들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현실을 사는 성도들이 자기가 믿음 생활을 승리로 사는 것인지 패배하고 있는지를 판단하셔야 할 것입니다(약4:4,요일2:15-17).

②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되지 않은 자들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로 당연히 짐승에게 경배할 것입니다. 짐승은 물질주의의 상징입니다(16:2,19). 그 때에 성도들이 짐승의 유혹을 받아 상당 부분 끌리게 되고 비택자들이 짐승에게 경배함은 짐승이 유혹하는 현실주의를 신앙적으로 수용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 9-10절에서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에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라고 하셨으니,

① 하나님의 말씀과 신령한 믿음에 관한 말씀은 신령한 지혜의 귀를 가진 자라야만 듣고 깨달을 수 있으니, 이 믿음 세계의 지혜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 할 것이요(욥36:10),

② 사로잡히는 자는 짐승의 활동에 유혹 당하는 자들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폭력으로 의인을 핍박하는 자들이며, 그들은 다 자신들의 죄에 비례되는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 말씀이 곧 “칼에 죽는다”는 뜻입니다(출21:24).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은 분명한 것이어서 성도를 사로잡는 적그리스도의 무리들은 사로잡힐 것이요, 성도를 칼로 죽이는 자들은 마땅히 죽을 것인즉,

③ 이런 엄중한 심판을 믿는 성도는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다”(10)하신 말씀에 따라 어떤 사단의 유혹이나 핍박에서도 인내로 이기고 믿음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제 23 과 새끼 양같은 짐승의 활동 (계 13:11-18)목록으로


이 말씀의 대의는 “새끼 양같은 짐승의 활동”으로, 용으로 표현된 적그리스도 밑에서 새끼 양으로 표현된 거짓 선지자의 거짓된 종교 운동이 있을 것에 대하여 예언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구분하면,

① 새끼 양의 정체(11-12),

② 이적을 행함(13-15),

③ 인치는 사역(16-17)으로 나누어 살필 수 있습니다.

1. 새끼 양의 정체에 대하여(11-12).

1) “두 뿔이 있는 새끼 양 같은 것이 땅에서 올라와 용처럼 말하더라”고 하였습니다.

① 순양이 아닌 것은 새끼 때부터 뿔이 난다고 합니다. 따라서 새끼 양은 양 같으면서도 양이 아닌 상태로 가장된 것을 의미한즉 기독교인 같으면서도 참 성도가 아닌 거짓 선지자를 의미합니다.

② “그가 땅에서 올라온 것”은 거짓 선지자의 소재가 하나님이 아님을 뜻하며, 따라서 인간 자율주의 세계에서 출처된 마귀의 종임을 뜻합니다. 그의 활동 무대도 역시 땅이요 하늘이 아닌 세속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③ “그가 용처럼 말한 것”은 용으로부터 권세를 받아 짐승이 말한 것처럼(4-5) 큰 소리로 참람되게 말하는 것이니 거짓과 하나님의 진리에 어긋나는 인기 있는 말들인 것입니다. 용처럼 말하는 것은 거짓과 현실주의와 이단적 교리들입니다. 현실성을 많이 강조하는데도 문제가 있음을 감지하셔야 할 것입니다.

2) 그 새끼들이 먼저 나온 짐승처럼 모든 권세를 행하고 땅에 거하는 자들로 그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는데 그 짐승은 죽게된 상처가 나은 자러라“고 하였습니다.

① 여기에서 “죽게된 상처가 나은 짐승”이란, 3절에서 이미 설명한 것입니다. 그리고 새끼 양은 그의 권세와 활동 목적을 짐승에게서 받은대로 일치하게 이행하는 것입니다.

② 짐승이 적그리스도의 모형이요 불신앙적 세상주의를 앞세우는 운동이라면 새끼 양은 똑같은 목적과 방법으로 행하되 양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이므로 거짓 선지자 또는 기독교를 가장한 이단 운동, 기독교를 가장한 세속주의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③ 이런 여러 가지 방법들로서 땅에 거하는 사람(성도가 아닌 비택자)들을 유혹하여 그 짐승(세속주의, 유물주의)을 경배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2. 이적을 행함에 대하여(13-15).

1)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여....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13-14)고 하였습니다.

① 여기의 짐승은 이미 설명 드린 것이지만 “그가 칼에 상하였었다” 함은 전쟁의 패배로 쇠약한 상태에 있었다가 다시 회복한 반기독 국가와 사상을 의미할 것입니다.

② “불을 던진 일”에 대하여, 성경에는 사단이 불을 던진 예가 없으나, 왕상18:38,왕하1:9-10,사13:20,출9:23,민16:35에서 엘리야와 하나님의 사자와 모세는 그런 이적을 행하였습니다. 욥1:16에서는 사단이 욥에게 재앙을 내릴 때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렸다”고 하시므로 사단이 욥에게 재앙을 주게 하시면서도 “불은 하나님이 내렸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사단이 불같은 이적을 행한 것은 거짓된 이적으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신13:2,마24:23,25,마7:22 등은 역시 그런 사실을 경계시켰습니다. 따라서 사단에게는 이적도 있으며 거짓 이적도 있다는 것을 꼭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③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함은 사단의 거짓된 증언을 통하여 현세주의, 물질주의를 우상화시키는 잘못된 운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현세주의의 팽배는 기독교의 적인 줄로 아셔야 할 것입니다(약4:4).

2) 15절에서,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①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우상으로 말하게 함은 현세주의로 인간의 세속적인 어려운 문제들을 잘 해결해 준다는 것입니다. 짐승의 우상은 현세주의입니다. 현세주의 우상이 말한다는 것은 그만큼 활동력과 성취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돈이면 다 해결된다”는 말이 이런데서 쓰이는 것입니다. 살전2:9에 보시면 “사단의 역사를 따라 거짓 이적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또 무지한 자들로 하여금 인간 우상이나 물질 우상을 따르게 하고, 그 우상이 말을 하면 그것을 절대의 권위로 받아 복종케 하는 그런 능력을 시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필자는 어떤 종교인이 기합술로 환자의 몸을 뜨겁게 하고 잠이 오게도 하는 것을 본 일이 있습니다. 사단은 기적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얼마든지 속임수의 기적을 나타내기도 할 것입니다.

② 거짓 선지자의 활동은 거짓 교훈과 거짓 기적을 유포하여 사람들을 이끌어 적그리스도를 따르게 하는 것인데 이때에 따르지 않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는 것입니다. 정치적 사상의 차이로도 죽이는 일이 많거든 하물며 종교적 차이이겠습니까 ? 3. 인치는 사역과 666에 관한 것입니다(16-17).

1) 짐승의 사역으로 적그리스도의 횡포를 자행하는 자들이 모든 자(작은 자, 큰 자, 부자, 빈궁한 자, 자유자, 종들)의 오른 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그 표가 없는 자에게는 매매를 금지하는데, 그 표는 짐승의 이름과 그 이름의 수라고 하였습니다.

① 이것은 반 기독적 행위의 방법으로 믿음의 세계를 핍박하기 위하여 자기들끼리만 물질 거래를 하는 경제적 핍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카타콤 역사에서는 기독교인들끼리의 양식 공급을 위하여 “익두스”(물고기)란 물고기 표식을 암표로 보이고 거래한 사실도 있었습니다.

② 오른 손이나 이마(잘 보이는 곳)에 반 기독주의의 표시로 인을 치고 일방적 거래를 하겠지요. 전쟁만 일어나도 매점 매석 행위가 나타나지 않습니까 ? 기독교인들을 핍박할 때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

③ 그 암표는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고 하였으니 짐승은 현실주의, 유물주의이므로 그런 세계에서 어떤 상징의 표를 만들어 인을 쳤을 것입니다.

2) 그런데,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①짐승의 수는 곧 사람의 수요, 그 수는 666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수는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바코드 번호 6.6.6.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짐승의 활동을 표시하는 현실주의, 인간주의의 상징적 암호 숫자로 아시면 됩니다.

② 숫자로 표기되는 문자를 나열하여 어떤 황제의 이름을 나타낸 설도 있고(박윤선 목사 주석), 6수가 인본적 수이므로 세 개를 중복한 666은 인본주의적 수라 하기도 하고, 또 종교개혁자들은 “천주교를 뜻한다”고도 하였다 합니다.

③ 6은 인간, 6은 세상, 6은 물질. 그리하여 인본주의, 현실주의, 물질주의를 한데 합친 적그리스도적 활동을 표상한 암호라고 생각하는 것이 필자의 견해입니다(기독교 신앙백과 180번을 참고하십시오).

성도는 말세에 경제적 궁핍을 각오하고 신앙 생활을 하신다면 시험을 이기는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제 24 과 144,000의 새 노래 (계 14:1-5)목록으로


이 말씀의 제목을 “144,000의 새 노래”라고 정하였습니다.

1. 본문 1절에 보면, “내가 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도 요한이 천국의 광경을 보았다는 뜻입니다. 또 2절에서는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하였습니다. 렘13:1-7에서는 예레미야가 친히 계시를 받으면서 체험한 사실(베띠의 썩음)을 기록하였습니다. 이렇게 계시의 전개에는 “보는 것, 듣는 것, 체험하는 것”이 있습니다.

2.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144,000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다”(1)고 하셨습니다.

1) 예수님을 어린 양이라 하신 것은 5:6에서 설명 드렸고, 구약 시대부터 모리아 산의 어린 양(창22:7), 유월절 어린 양(출12:5) 등으로 십자가에 희생하신 예수님을 상징하였기 때문입니다.

2) 어린 양이 보좌 앞에 144,000명과 서 계신 것은 하나님 보좌를 향하여 144,000명의 찬양대를 지휘하시는 자세로 서 계신 것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또 그 주위에는 “네 생물들과 24 장로들도 있었다”(3) 하였으니 그들도 144,000명과 함께 찬양에 합세하였을 것입니다.

3) “시온 산”은 예루살렘을 찬양하는 말로서 지상의 예루살렘이 유형 교회의 중심지였듯이 천성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를 지상의 예루살렘으로 빗대어 그 영광스러움을 의인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시온산은 예루살렘 서남방에 있는 산입니다(마21:5,요12:19,롬9:32).

4) 144,000명은 7:4에서 이미 설명하였습니다. 한 지파를 제외한 각 지파에 12,000명씩 모여진 수로 이마에 인 맞은 구원받은 종들(7:3)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수에 맞도록 한정적으로 인을 치셨고 또 인을 치시기까지 환난을 잠재우시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이 수를 상징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요한이 계시를 본 그 시기에 천국에 참여한 종들(종들의 구분은 하나님께서 어떤 기준을 정하셨을 것임)의 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선민 제도는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으로 끝났기 때문에(마28:19,요2:19-20), 그 이후부터 쓰시는 종들의 수는 계시하시지 않았습니다(엡3:5). 어떤 사람들은 144,000의 수를 맞추기 위하여 “12지파×12사도×1000이라” 하였는데, 이는 12지파의 내용과 1,000을 곱하는 의미가 선명하지 않으므로 불합리하다 할 것입니다.

5) 본문에서 이 사람들의 신분에 관한 말씀을 더하여 주셨으니, 인 맞은 것 외에도 새 노래를 배워 부를 자, 더럽히지 않고 정절이 있는 자, 어린 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는 자,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신약 이전 구약의 선민으로서 처음 인 침을 받은 종들이란 뜻), 하나님과 어린 양에 속한 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3-5).

6)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 쓴 것이 있음”은,

① 7:4에서 인을 칠 때 “예수님” “여호와”라고 표를 하여 요한으로 하여금 볼 수 있게 하였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천국에는 그런 표가 없어도 식별이 가능하겠지만 요한으로 하여금 보게 하시고 또 지상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인 침의 사역을 나타내시기 위함일 것입니다. 24 장로의 분별이 있고 144,000의 분별이 있듯이 구원받은 무수한 성도들에 대한 식별도 있을 것입니다(7:9).

② 적그리스도나 비택자들이 그의 오른 손이나 이마에 666이라는 짐승의 표를 갖고 있었던 것처럼 구원받은 성도들도 예수님과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 침을 받은 표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믿지 않는 식구들의 이마에는 보이지는 않으나 무신론적이고 유물주의적이며 인본주의적 표가 붙어 있는 것이요, 믿는 성도에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받은 표가 붙어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또 이 표는 영적으로 인쳐진 것이기에 이 세상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천국에서는 완전하고 더 확실하게 나타날 줄로 아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뜻을 냄새로 표현하셨습니다(고후2:15-16)

3. 저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를 때 그 노래는 그들만 배우고 부를 수 있었으며 많은 물소리, 큰 뇌성, 거문고 타는 소리처럼 웅장하게 들렸다(2-3)고 하였습니다.

① 여기의 “새 노래”란 요한이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노래란 뜻이요,

② “그들만 배우고 들을 수 있음”은 영적 세계의 지혜와 깊이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에 대하여 믿음의 정도에 따라 느끼는 바가 각각 다른 것과 같은 것입니다.

③ “많은 물소리, 큰 뇌성, 거문고 타는 소리 같은 것”은 웅장한 조화 있는 연주의 소리를 들린대로 표현한 것으로 천국의 찬송 소리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4. 중요한 것은 144,000명이 어떤 신앙 생활을 한 자들인가 ? 하는 것입니다(4-5).

1) 그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않은 자들입니다. 이것은 음행을 뜻함이 아니고 세상주의의 강한 유혹을 뜻한다고 합니다. “여자”란 단어 ‘구나이콘’(γυναικών)은 “여자들”이란 뜻으로 세상주의의 대표국인 바벨론을 음녀로 비유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17:5). 성도가 세상주의로 흘러가면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2) 정절이 있는 자들입니다. 이것은 믿음을 변절치 않음을 뜻합니다. 정절이란 말은 ‘팔데노이’(παρθένοι)로 처녀란 뜻이 있고, 처녀성 곧 믿음의 정절을 지킨 것을 의미합니다.

3)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라가는 자입니다. 이것은 무조건 말씀에 복종하여 죽음에까지 갈 수 있는 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어디로 인도하든지”란 말씀은 주님이 갈 곳을 예고하시지 않은 채 “가자” 하시면 무조건 따라가는 자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그런 순종으로 하나님을 따랐습니다.

4) 거짓말이 없는 자입니다. 믿음과 진실은 일치하기 때문에 성도와 거짓은 함께 있을 수가 없는 것이요, 따라서 “믿는다” 하면서 거짓말을 밥먹듯 하면 그 믿음이 의심스럽다고 보셔야 할 것입니다.

5) 흠이 없는 자입니다. 죄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흠이 없게 된 자라는 뜻입니다(엡5:26-27).

결론적으로 ① 천국은 믿음의 정절과 진실과 순종과 속죄로 흠없이 된 자가 들어가는 것이요, ② 성도는 하나님이 만물 중에 최초로 수확하신 기업이며, ③ 144,000명처럼 하나님이 쓰시는 종들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가 특별하신 것과, ④ 성도의 이마에는 보이지 않는 인이 쳐져 있다는 사실과, ⑤ 성도가 천국에 가면 예수님과 천사들과 함께 즐거운 찬송을 부른다는 사실을 믿으셔서 그 세계를 진실로 동경하여야 할 것입니다.

 

 

제 25 과 세 천사들의 외침 (계 14:6-12)목록으로


이 말씀에는 “세 천사의 증언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구분하면,

① 첫째 천사의 외침(6-7),

② 둘째 천사의 외침(8),

③ 셋째 천사의 외침(9-11),

④ 결론(12)으로 되어 있습니다.

1. 첫째 천사의 외침(6-7).

6절에 있는 “다른 천사”는 11:15에 나타난 “일곱째 나팔을 분 천사가 아닌 다른 천사”를 뜻하는 것이요, 그 다른 천사는 첫째, 둘째, 세 번째로 각각 나타났습니다. 또 그 천사는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에게 전파될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날아가면서 외쳤습니다. 천사들은 영물이니까 날아갈 수도 있고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라와(국가) 족속과(종족) 방언(문화권), 백성(모든 인류), 땅에 거하는 자들”은 세계 인류를 뜻하며, 그 천사가 “영원한 복음을 가진 것”은 복음 자체가 영원한 것일 뿐 아니라 그 복음이 지상 세계에 전파되어 영원한 은혜를 받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첫째 천사는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엄위하시고, 우리를 감찰하시며,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두렵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심판하실 시간이 가까이 이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두렵게 생각하면서 경외를 하시는지요. 시119:120에 보시면 “주를 두려워하므로 떨며 또 내가 주의 판단을 두려워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천사의 외침은 지상으로 연결되는 외침이요, 지금 우리들에게도 교훈을 주시려고 외친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늘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겠습니다.

2)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은 모든 피조물의 본분이요 특히 성도의 의무인 것입니다. 또 본문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는 심판의 때가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하시므로, 심판의 날이 가까우니 더욱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여야 영광이 돌려질 것 같습니까 ? 폐일언하고 성경대로 살면 영광이 돌려지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믿고 실천하는 것이 믿음 생활이니까요.

3)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창조자를 경배하라”고 외쳤습니다. 여기에 경배는 예배를 뜻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기 때문에 마땅히 피조물로부터 경배를 받으셔야만 합니다. 특히 구속함을 받은 성도는 항상 예배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2. 둘째 천사의 외침(8).

1) 이 천사는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외친 것입니다. 여기에 “무너졌다”는 말을 과거형으로 두 번이나 쓴 것은 무너짐의 확실성과 심각성을 강조한 어법입니다. 그러면 “큰 성 바벨론”은 도대체 무엇인가 ? 에 대하여 본문에 보시면, “그 바벨론은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라”고 설명하신 것입니다. 바벨론의 멸망을 확실성 있게 강조하셨고, 세상주의, 물질 우상주의, 향락주의가 망할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계17:5에 보시면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바벨론은 세상, 물질, 향락, 우상주의 같은 세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 그 바벨론을 “큰 성”이라고 한 것은 바벨론주의가 그만큼 세상에 확장되었다는 뜻입니다.

2)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라”는 것은, 바벨론의 세상주의가 다른 나라에까지 미쳐진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 방법이 마치 음녀가 그 상대방을 넘어뜨리기 위하여 독한 술을 먹여 실신케 한 다음에 그를 정복하는 것을 비유로 설명하신 것입니다.

3. 셋째 천사는 또 무엇을 외쳤는가 ?

1) 그는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고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여기에 “이마나 손에 짐승의 표를 받았다”는 말씀은 계13:17에서 이미 설명된 말씀으로 앞에 있는 큰 성 바벨론과 대동소이하지만, 이것은 특히 적그리스도의 무리를 지적하신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실 것이라” 하셨으니, 이것은 적그리스도의 무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엄하게 받을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여기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는 것”으로 비유하신 것은 유혹 받는 자가 독한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다가 쓰러져 죽는 것을 연상케 하신 것입니다. 술은 약용으로 조금씩 먹는 것만 유익하고(딤전5:23) 그 외에는 전부 취하고 비틀거리며, 벗김 당하고 죽는 목적에 쓰여지기 때문에 “섞인 것이 없는 부은 포도주를 먹는다”는 것은 심판의 강도가 큰 것 즉, 동정의 여지가 없이 독한 술에 쓰러질 것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3) 그들이 심판을 받는 형편은, 거룩한 천사들과 어린 양 예수님 앞에서 심판을 받고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니, 이는 마치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연상케 하는 것이며,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감으로 마지막 심판의 고난은 끝이 없으므로 밤낮 쉼을 얻지 못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지옥의 고통은 영원한 뜨거움의 고통이란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막9:47-49).

4. 결론의 말씀입니다(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믿음과 사랑과 인내로 순결을 지킨 성도들에게 자기들의 수고와 믿음을 인하여 고난받은 사실을 큰 보람으로 느낄 때가 올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① 영원한 복음의 전파(모든 전도 사역)는 천국에서 주님의 지시로 나타난다는 점과,

② 전도자가 먼저 영원한 복음을 자기의 것으로 소유한 다음에 온 세계로 전파해야 함과,

③ 바벨론으로 상징된 현실주의는 결국 큰 심판을 받으며,

④ 믿음과 인내로 신앙을 지킨 성도가 크게 행복할 것과,

⑤ 포도주 같은 달콤한 현실적 유혹에 빠져 비틀거리지 말아야 할 것과,

⑥ 지옥의 형벌은 뜨거움의 고통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임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제 26 과 의인과 악인의 심판을 예고하심 (계 14:13-20)목록으로


본문 말씀은 세 대지로 나누어 살필 수 있습니다.

①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의 복됨을 일깨우심(13).

② 의인을 곡식으로 비유하여 거두심(14-16).

③ 악인을 포도 수확으로 비유하여 틀에 넣고 밟으심(17-20).

이상의 말씀은 의인과 악인을 심판하실 것을 보여 주신 계시입니다.

1.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의 복됨에 대하여(13).

1) “이 말씀을 기록하라” 하신 것은 의미와 보존과 증언에 더 유익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기록된 말씀(성경, 강론문, 설교문, 교육 문서 등)의 중요함을 알고 문서로 은혜 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① 주 안에서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 안에서 죽는 것도 역시 중요합니다. “주 안에서 죽는다”는 뜻은 믿음 생활을 잘하고 주님의 품 안에서 영혼의 부름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혹 죽을 때에 육체의 아픔이 있다 하여 불행한 표정을 갖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믿는 성도가 죽음에 앞서 고통을 많이 받는 것은 성령님께서 그가 고통받는 시기에 모든 죄를 회개케 하시고, 형벌의 고통이 어떠할 것과, 그 고통을 받지 않게 하시기 위하여 고난받으신 주님의 십자가를 기억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고통스럽게 죽은 사람이나 평안히 죽는 사람이나 다 예수님의 인도로 천국 가는 것임을 믿으셔야 할 것입니다.

② 주 안에서 죽은 자가 복이 있는 이유는 천국에서 저희의 수고를 그치고 안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성령님께서 재확인하시는 증언을 하신 것은 성도로 하여금 더욱 확신있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③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신 것은 “행한 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상급 받을 일 즉, 고난을 인내한 일” 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또 믿음으로 구원받는 성도가 천국에서 안식을 하고 상급을 받게 되면 생전에 고난을 받고 인내한 수고가 다 갚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희의 행한 일”이란 구원을 받도록 믿음을 가진 것과 상급을 받도록 충성한 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 의인을 곡식으로 비유하여 거두심(14-16).

이 말씀은 구원받은 성도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곡식 수확 장면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14절에서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다”고 하셨습니다.

1) 여기의 “흰 구름이 있다”는 것은 예수님 보좌의 영광을 상징함이요, 그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 같으신 이”가 앉으신 것은 곧 예수님을 뜻하는데, 그 예수님이 사람의 아들 같으신 이로 희미하게 표현된 것은 부활 전에 요한이 본 모습과 다른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2) “그 머리에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 이한 낫을 가지신 것”은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 주님이 영광 받으실 왕이시며, 영광의 소득을 거두시는 분이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 영광의 소득이란 심판과 구원을 통하여 받으시는 영광이기도 한 것입니다. 낫은 곡식을 거두는 기구요, “거둔다”는 뜻은 구원받을 백성들을 천국으로 모으시는 뜻도 있고, 거기에 앞서 타작(심판)의 뜻도 있는 것입니다.

3)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서 낫을 휘둘러 땅의 곡식을 거두라 하여 곡식을 거두신 것”은 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온 것을 보아서 하나님의 뜻(심판의 때가 된 것;마24:36)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낫을 휘둘러 곡식을 거두신 것은 구원받을 성도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구원하실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 악인을 포도 수확으로 비유하여 틀에 넣고 밟으심(17-20).

1) “또 다른 천사가 하늘 성전으로부터 이한 낫을 가졌다” 하였으니, 여기에 특이한 것은 성도들을 천국으로 수확하실 때는 예수님이 직접하셨으나 악인들을 포도로 비유하여 거두실 때는 천사가 거두게 된 것입니다(17).

2) 18절에서 “불을 다스리는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그 이한 낫을 가진 천사에게 “포도가 익었으니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고 크게 외쳤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불을 다스리는 천사”란 향단의 수종드는 일을 하는 것이며, 이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 돌릴 사항을 전달하는 역할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천사에게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한 것이고, 그 전달을 받은 낫을 가진 천사는 땅의 포도를 거두어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졌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땅의 포도는 악한 자들을 의미하고 그것을 “진노의 포도주 틀에 던졌다”는 것은 포도를 압착시켜서 포도주를 빼내는 것으로 지옥의 형벌 받을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포도가 익었으니...거두라” 하심도 심판의 때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그 때를 알리신 것입니다.

3) 천사들이 포도를 거두어 포도주 틀에 던진즉 “성 밖에서 틀이 밟혀 피(포도즙)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1,600 스다디온에 퍼졌다”고 하였습니다.

① 악인에 대한 심판을 포도즙 짜는 것으로 상징하셨고, 악인에 대한 심판은 거룩한 곳 밖에서 시행하시되 악인의 피(심판받는 뜻)를 포도즙 흐름으로 상징하였습니다.

② 그 피의 흐름이 말굴레까지 닿았음은 피흐름의 두께가 말의 재갈을 먹인 머리 부분까지 찼다는 뜻이요, 길이로는 200마일(800리에 해당함)까지 흘렀다는 것은 그 피흘림의 분량으로 보아 심판이 장엄하고 무서운 것임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저희들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은,

① 성도의 내세 축복이 지상에서의 모든 고난과 인내를 넉넉히 보상받을 수 있다는 점이요,

② 성도에 대한 구원은 예수님이 직접 곡식을 거두신 것처럼 보장하여 주시는 점이요,

③ 악한 자의 심판은 예수님이 천사의 손에 맡겨 포도주를 밟아 짓누르는 것처럼 빈틈없고 사정없이 영원토록 심판을 가하시는 점입니다.

어떤 이는 “1,600 스다디온”이란 그 거리를 영원한 고난으로 해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16이란 수는 고난의 4수를 제곱한 것이고, 거기에다가 완전을 뜻하는 10의 제곱인 100을 곱한 수이기 때문에 영원한 고난을 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굉장히 방대하게 흘러가는 그 핏자국의 분량으로 영원한 심판을 의미하는 것으로 믿으셔도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제 27 과 진노의 일곱 대접을 넘겨 주심 (계 15:1-8)목록으로


계시록 8:1부터 14장까지는 일곱 나팔에 대한 계시가 전개되었고, 15장부터 19:10까지 “일곱 대접 재앙”의 말씀이 계속됩니다. 15장의 말씀은 그 서론이고, 16장부터 진노의 일곱 대접 재앙이 땅에 쏟아집니다. 이 재앙은 지상에서의 악인들에 대한 마지막 재앙이라고 본문 1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구분하면,

① 일곱 천사의 마지막 대접 재앙을 예고하심(1),

② 핍박을 이기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늘에서 하나님을 찬송함(2-4),

③ 진노의 일곱 대접을 천사들에게 넘겨주심(5-8)이라 할 수 있습니다.

1. 일곱 천사의 마지막 대접 재앙을 예고하심에 대하여(1).

1절 말씀에서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라”고 하셨습니다.

1)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이란 앞에 있었던 계시 광경에 비교한 말씀이요, 이 계시도 하나님의 이적의 역사를 통하여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일곱 천사가 그 일곱 대접 재앙을 지상에서의 마지막 재앙이며 하나님의 마지막 진노란 사실을 나타내셨으므로, 그 재앙의 실현과 함께 종말이 올 것입니다.

2. 핍박을 이기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늘에서 하나님을 찬송함에 대하여(2-4).

1) “불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은 하나님의 보좌 앞의 장소를 묘사한 말씀으로, 붉은 무늬를 포함한 맑고 투명한 것으로 하나님의 의와 구원을 상징하고, 불 섞인 무늬는 진노의 심판을 상징하여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2) 그 장소에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찬송하는 자들”이 있었으니 이들은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666)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① “하나님의 거문고”란 천국에서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악기를 뜻합니다. 특수한 악기일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이 본대로 인간의 악기를 이름하여 묘사한 것입니다.

② 이 악기를 사용하여 하나님께 찬송하는 자들은 다 신앙의 승리자들이었습니다. 짐승의 유혹, 우상의 유혹, 666 수의 유혹 등에서 벗어난 자들이니 짐승의 유혹이란 불신앙적 행위에 따름이요, 우상의 유혹이란 하나님보다 세상의 것들을 더 중요하게 여겨 이끌리는 것이요, 666 수의 유혹이란 인본주의, 육체의 정욕, 현실의 정욕 등에 이끌림을 뜻합니다. “여기에서 벗어났다”는 뜻은 거룩한 생활을 지키기 위하여 그런 유혹에 깊이 빠져들지 않은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③ 찬송하는 자들의 가사는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라 하였는데, “모세의 노래”는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과(출15:2,3,6) 하나님의 왕권과(출15:8) 하나님의 거룩을(출15:11) 찬송한 의미의 노래란 뜻이요, “어린 양의 노래”란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칭송하는 노래란 뜻입니다. 3-4절에 나타난 가사 중 “주의 길이 의롭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다”는 말씀이 어린 양의 구속 사역 부분을 찬송한 것입니다. 그리고 “전능하심” “기이하심” “만국의 왕되심” “거룩하심” 등은 다 하나님의 능력과 왕권과 거룩하심을 찬양한 내용들입니다. 찬송은 성부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님과 성령님이 다함께 받으셔야 할 영광의 예배입니다.

④ 가사의 마지막 부분에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한다”는 말씀은 “구원받은 성도가 다 하나님 보좌에 모여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악인들이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심판을 받는 날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

3. 진노의 일곱 대접을 천사들에게 넘겨 주심(5-8)에 대하여.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의 증거의 장막인 성전이 열렸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보좌가 열리는 것을 구약 시대의 장막 성전으로 상징하여 보여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렸다”는 것은 지성소와 성소 사이의 휘장이 열리면서 하나님의 보좌인 지성소가 나타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보좌가 있는 성전 문이 열리더니 하나님 보좌를 근위하는 네 생물(4:6) 중 하나가(이것도 천사임) 맑고 빛난 세마포 옷에 금띠를 띤 일곱 천사에게 진노를 가득히 담은 일곱 대접을 전달하였으니, 이것은 지상의 환난이 하나님의 보좌에서의 명령과 천사들의 집행 과정을 통하여 나타난다는 사실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2) 이때에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고 하였습니다.

① 성전 안에 연기가 찬 것은 곧 하나님의 능력과 진노의 위엄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② 그리고 또 한가지는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아무도 그 성전에 들어갈 자가 없다”고 하셨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하시는 일을 아무도 간섭하거나 가까이 나아가 막지 못할 것을 나타내신 말씀인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하나님이 악인에 대한 진노와 구원 얻은 자의 영광에 대한 것을 미리 알려 주신 것은, 구원받을 자에 대한 긍휼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들은 그 영광에 참여하기 위하여 짐승같은 무신론주의, 우상같은 현실주의, 666과 같은 인간 정욕주의를 피하여 이기고 신령한 복에 집착하여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셔야 할 것입니다.

 

 

제 28 과 마지막 일곱 대접 재앙 (계 16:1-21)목록으로


이 말씀에서는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담긴 일곱 대접을 쏟으라”는 명령과 함께 일곱 천사가 순서대로 대접을 쏟으므로 땅 위에 재앙이 내려질 것을 예언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재앙들은 마지막 때 전에 땅 위에서 있어야 할 것들이며, 죄인들이 현세에서 마지막으로 받을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모든 재앙을 받는 대상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만 받을 것으로 아시면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서도 바르게 살지 못하여 진노의 대상이 되다가 마지막에 회개할 성도들도 많이 있음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눅13:4-5에서 “실로암 망대가 무너진 사고로 18명이 죽었을 때 그런 불행을 당하지 않은 자들이 죄가 없어서 무사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옳게 살지 못하는 성도들도 다 악인들과 함께 진노의 대상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문을 구분하면, 2,3,4,8,10,12,17절의 구분으로 일곱 천사들이 각각 진노의 대접을 쏟은 사실을 기록하셨습니다.

1. 첫째가 대접을 쏟음(2).

첫째 재앙은 육신과 피부에 질환이 있을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2절 말씀에서 “악하고 독한 헌데가 났다” 하셨으니 이런 질환은 의술로 쉽게 낫는 병이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재앙으로 주시는 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런 재앙을 받는 대상은 “짐승의 표를 받고 우상에게 절하는 자들이니까, 이것은 마치 출애굽 당시 애굽인들에게만 재앙이 내려진 것처럼 하나님과 성도를 대적하던 무리들만 받는 재앙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죄악이 관영되고 회개치 않는 세상이 될수록 고칠 수 없는 병들이 만연할 것을 확신하여야 할 것입니다.

2. 둘째가 대접을 쏟음(3).

둘째 재앙은 바다가 피가 되어 바다의 생물들이 죽는 재앙입니다. 인간들은 바다의 생물에게서 받는 혜택이 클 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고 현세 연락에만 급급하는 사람들이 바다를 통한 통상활동을 통해서 사치와 향락에 젖어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계18:10-13에 보시면 바벨론이 강성한 것이 바다와 무역의 덕택이었는데, 18:17에 보시면 “그것도 일식간에 망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따라서 악인들이 재앙을 받을 때 바다 밖으로 멀리 피할 수도 없고 바다에 있는 자연적 혜택은 물론 무역을 통하여 얻는 유익도 받지 못할 것을 예고해 주신 것입니다.

3. 셋째가 대접을 쏟음(4-7).

1) 셋째 재앙은 강과 물 근원이 피가 되는 재앙으로 악인들이 물을 먹지 못하여 피를 먹으며 죽는 재앙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이런 재앙은 출애굽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저희들이 한가지 상상하실 것은 “그 당시에 의로운 성도가 있었다면 바다와 강물이 피가 되는 재앙을 의인이 어떻게 감당하였겠는가 ?”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재앙이 있을 시기에는 의로운 성도가 희귀할 때일 것이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많아도 여전히 사고와 재앙들이 따르고 있음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2) 또 하나님은 악인의 죄를 징계하실 때 의인과 함께 연대적으로 고난을 받게 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민족이 죄를 범하여 흉년을 주시니까 그 흉년으로 말미암아 엘리야 선지자나 의인들이 한가지로 고난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11:13에 보시면 “지진의 재앙으로 죽고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며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고 하시므로 말세의 재앙 초기에는 다소간 회개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14:7).

그러나 12:13에서 “용이 (교회와 성도를 상징하는) 여자를 핍박한다” 하셨고, 13:7에서는 “짐승이 마흔 두 달 권세로 성도와 싸워 이긴다” 하셨으며, 또 14:4에서는 “그 때에 성도는 어린 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간다” 하셨는데, 그 “따라간다”는 것은 순교의 죽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13:17에서 성도의 표를 가진 자에게는 이미 생활 필수품이 금지되었고, 14:13에서는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다” 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품에 들어가 수고를 그치고 쉰다”고 하셨기 때문에 성도의 지상 세계는 순교적 죽음으로 이미 끝난 후이고, 또 대접 재앙이 있을 당시는 회개의 역사를 바라거나 고무하는 시기도 아니기 때문에 어떤 재앙을 만나도 악인들은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9:20-21과 본문 16:9,11에서 ”종시 회개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3) 따라서 “회개와 용서도 시기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 고후6:2의 말씀대로 “지금은(교회시대)은혜를 받고 구원의 날”이지만 나팔 재앙과 대접 재앙이 내릴 때는 회개의 은혜를 주시는 때가 아닌 것을 아셔야 합니다. 셋째 대접 재앙에서 물의 근원이 피가 되어 악인들이 피를 마시게 되니까 “물을 관리하는 천사가 말하기를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심판이 의롭다”고 찬사를 보내었습니다. 그 이유는 악인들이 의인들의 피를 흘렸으니만큼 그와 비슷한 방법으로 피를 먹는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징벌은 죄와 비슷한 성질로 주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시18:24-27). 요셉을 멸시한 형들이 낮은 위치에 처하게 된 것이나, 아버지를 속인 야곱이 아들들에게 속은 것도 다 그 실례입니다.

4) 7절에 보시면 “천사의 말이 있은 후에 또 제단이 말하기를 ”역시 하나님의 심판이 참되고 의롭다“ 하였으니 이 ”제단이 말했다“는 뜻은 순교의 제물된 영혼들이 기도하던 곳(6:9,10)이므로, 그 곳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목격하는 순교자들과 핍박받은 성도들의 찬사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4. 넷째가 대접을 쏟음(8-9).

1) 넷째 재앙은 “태양이 권세를 받아 태양열로 사람을 태우는 재앙”이라고 하셨습니다. 18:12에서 “해와 별이 빛을 감한 예가 있었고, 시121:6에서는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않는다“고 하셨는데, 여기서는 태양계가 접근하였던지 태양열이 과해졌든지 그 뜨거움에 사람이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연계로 인간을 벌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이 사실은 요즈음 나타나는 ‘엘리뇨 현상’으로, 기후가 더워지면서 이해를 돕기도 합니다.

2) 그러나 본문 9절에서 “태양열에 사람들이 태워져도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그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영광을 돌리지 않더라”고 하셨으니 절대자요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모르는 어두운 심령은 역시 깨달음이 없는 것입니다.

5. 다섯째가 대접을 쏟음(10-11).

1) 이 때는 천사가 대접 재앙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어두워지고 사람들이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혀를 깨물며 하나님을 훼방하면서 저희 행위를 회개하지 않은 것입니다.

① 짐승의 보좌란 사단의 우두머리를 뜻하고,

② 그 나라가 어두워짐은 사단의 상급 지위에 혼돈과 싸움이 있다는 뜻이요,

③그 때에 인간들에게는 종기 같은, 혀를 깨물 만큼 아픔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어려운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 중에 혀를 깨물 만큼 아픔을 느끼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2) 악인들은 이를 가는 아픔을 느끼면서도 그 재앙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11).

6. 여섯째가 대접을 쏟음(12-16).

1) 12절에서 여섯째 천사가 그 재앙의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았다 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유브라데 강은 어떤 의미를 뜻하는가 할 때에 이 강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실 때(창15:18) “애굽 강부터 큰 강 유브라데까지라” 하시므로 선민 지역과 이방 지역을 경계선으로 하는 지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 시대에는 이 강이 선민과 이방 세계를 가늠하는 경계가 될 수 있었지만 복음이 사방에 퍼진 신약 시대에서는 다만 하나님의 백성과 이방인 모두 흩어져 있기 때문에 이것을 특정 지역으로 설명할 수가 없고 다만 하나님의 백성과 이방인 또는 적그리스도와의 경계 장벽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합당한 것입니다.

2) 그 대접을 유브라데에 쏟으니까 그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다 하셨으니, 여기에 “강물이 마른 것”은 교통 수단이 안 좋은 옛날을 생각하면 강에 다리가 놓인 것처럼 왕래의 길이 터진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왕래의 길은 바로 선민 세계와 이방 세계를 혼합 일치시키는 길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정치적, 사상적으로 각 민족들이 고유한 입장을 견지해 보려고 하지만 브라데의 강물이 마른 다음부터는 선민의 나라와 이방 종교의 나라가 서로 국교적 교통이 열리므로 사상적 침투의 길도 열려질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까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도 열려지는데, 이 동방은 이 계시를 받은 곳인 유대 땅에서의 동방이니까 아시아 쪽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동방의 왕들과도 교류가 되어 사상적 혼란은 물론 전쟁이 예비되게 된다는 것입니다.

3) 13절에 보시면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나왔는데, 14절 초에서 “그 영은 귀신의 영”이라 하며, 또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그 더러운 귀신의 영의 역사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왜 “더러운 영”을 개구리에 비유하였을까요 ? 이 개구리는 출8:6에서 애굽을 심판하실 때에 재앙으로 내려진 것으로 소란함과 죽음과 추악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귀신의 역사는 언제나 어지럽고 소란하며 죽음과 추악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런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나타나고, 지상의 왕들로 하여금 전쟁을 예비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악령들이 지상의 왕들로 하여금 전쟁을 예비하도록 만들 때 “용의 입, 짐승의 입, 거짓 선지자의 입을 사용하였다” 하였으니, 용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의 상징물로 인간의 최고 숭배자요, 짐승은 현실주의, 물질주의요, 거짓 선지자는 이단 종교의 대변자로 역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의 어지러운 작당을 허용하셔서 말세에 전쟁이 있도록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4) 그 전쟁이 일어나는 장소가 어디인가 ? 할 때, 그 전쟁하는 왕들이 모이는 장소는 “아마겟돈”이라 하였으니, 이 말은 ‘하르므깃도’란 말로 구약 성경 사5:19,왕하9:27 등에 나타난 지명이요 전쟁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므깃도란 전쟁터에서 바락과 드보라가 가나안 왕을 멸한 때도 있고, 예후가 혁명을 일으켜 아하시야 왕을 죽인 예도 있으며, 애굽왕 바로느고가 요시야 왕을 죽인 예도 있는 전쟁의 격전지요, 또 유브라데 강이 악한 자들과의 교통을 의미하는 것처럼 므깃도(아마겟돈)라는 장소도 역시 말세에 있을 전쟁의 격전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5) 그 다음에 15절을 보시면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하시므로 예수님의 재림이 뜻밖에 임할 것을 말씀하셨고, 그 때에 벌거벗고 수치를 보이는 자는(회개치 않는 자) 큰 화를 입을 것이나, 깨어 옷을 입고 경성하는 자(믿음으로 경성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마겟돈의 전쟁이 악인에게 화를 주고 의로운 성도에게 구원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여섯째 대접 재앙은 지구상에 최후 전쟁이 있을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어느 때 전쟁이 일어나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시27:1-3에서 “여호와는 나의 구원이요 생명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원수가 오고 군대가 일어나며 전쟁이 있어도 내가 오히려 안연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7. 일곱째가 대접을 쏟음(17-21).

1) 일곱째 천사가 일곱째 대접을 공기가운데 쏟으니 자연계에 재앙이 나타났습니다. 대접 재앙이 공기에 쏟아진 것은 공중의 권세 잡은 악령들에게 환난 제공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며, “되었다” 하신 것은 “지상 심판의 최종 절차를 끝내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 이때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지진이 있었으니 이런 자연적 재해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 “음성이 들린 것”은 인간들이 당하는 고통의 신음 소리를 들려주신 것일 것입니다.

3) “큰 성이 세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며 죄악의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가 되어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는다”(19)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주의를 표방하는 바벨론(현실주의 생활)이 완전히(세갈래로 갈림) 파멸되고 그와 같은 성질의 만국의 도성들도 다함께 진노를 맛보게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주의자들의 불신앙적 행위를 그의 심판을 위하여 기억하신다고 하셨습니다.

4) 이 때에 섬과 산악이 없어지고 또 한 달란트(100근으로 계산함)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려 피해를 당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계속 훼방하더라“고 한 것입니다.

① 섬과 산악이 없어지는 것은 인력으로도 가능하지만 지진으로 인한 결과로 충분히 상상할 수 있고(벧후3:10,11),

② 큰 우박은 큰비가 얼면 우박이 될 것인데 이것도 기상 이변이 일어나면 충분히 있을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세에는 전쟁, 지진, 우박 등의 피해로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있을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③ 구원받지 못할 자는 어떤 재앙이 내려도 회개하지 않습니다(21). 영생 주시기로 작정된 자만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행13:48).

5) 이 말씀을 통하여,

① 무신론, 유물주의, 우상주의, 이단 사상 등의 풍조가 유브라데 강의 물이 마름같이 서로 교제되고 신앙 세계와 합류되어 혼잡해질 것을 예측할 수 있고,

② 이러한 혼합 세계가 이루어지면서 큰 전쟁이 예비되고,

③ 마지막 때에는 자연계의 재앙까지 겹쳐서 세상의 끝날이 오고야 말 것인데, 이 때에 성도는 지상에 소망을 두고 산 자가 아닌만큼 영원한 피난처이신 주님에 의하여 구원받게 됨은 큰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벧후3:10-12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무쪼록 확실한 신앙과 정결한 생활로 생애를 마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제 29 과 큰 음녀의 받을 심판 (계 17:1-18)목록으로


17:1에서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하셨으므로 제목을 그대로 정하였습니다.

본문을 살피면 세 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① 음녀의 정체에 대한 설명이요(1-7),

② 음녀가 탄 짐승의 정체요(8-13),

③ 음녀가 망하는 과정의 말씀입니다(14-18).

1. 음녀의 정체(1-7).

1) 이 음녀는 “물 위에 앉은 큰 음녀”라고 하였으니, 여기의 “음녀가 앉은 물”은 15절에서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라” 하였으므로, 물은 온 세상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5:9,7:9,10:11,11:9,13:7,14:6). 그리고 음녀가 그 위에 앉은 것은 음녀의 활동 무대가 온 세상이라는 뜻입니다(1).

2) “이 음녀는 땅의 임금들과 뜻을 맞추어 음행하였고 또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였으니 세상의 영광을 한 몸에 지닌 왕들과 유족한 자들이 그 음녀와 더불어 세상적, 육체적 즐거움을 만끽하였는데, 왕들은 음녀를 차지하는 즐거움을, 땅에 거하는 자들 즉, 세상적 향락에 목적을 두고 사는 자들은 음녀의 포도주(향락적 즐거움의 차이를 말함)를 먹고 취하는 등의 세상 영광에 도취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음녀를 가까이 하는지 상상해 보십시오(2).

3) 이 음녀는 붉은 빛 짐승을 탔다고 하였습니다(3).

① 이 계시는 사도 요한이 성령의 감동으로 광야에 나가 그 곳에 있는 붉은 빛 짐승을 탄 것을 본 것입니다. 이 짐승에 대하여는 13:1-10에서 말씀한 내용과 공통성이 있습니다. 본문에 특이한 것은 “광야에 있는 짐승”과 “붉은 빛 짐승”, 또 “음녀가 그 짐승을 탔다는 사실”입니다. 그 짐승에게 참람된 이름이 있는 것은 13:5의 “참람된 말을 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고, 일곱 머리 열 뿔도 역시 공통입니다(13:1).

성경에서 “참람되다”는 용어는 “예수님이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을 때 핍박자들이 그것을 참람한 말로 여겼듯이(마26:65), “마귀 자신이 자기가 하나님이요 자기보다 더 큰 자가 없다”고 하며 자기를 하나님보다 더 높이는 망령된 사상을 묘사한 것입니다.

② 따라서 광야에 있는 짐승은, 짐승이 사는 근거지를 뜻하므로 바다가 지역적 한도를 뜻한다면 광야는 지역적 특색있는 활동 무대를 뜻하는 것입니다. 계21:10에서 새 예루살렘의 광경을 산 위에서 보여주신 것과 대조가 됩니다. 따라서 산 위를 신령한 세계로 비유한다면 세속의 세계를 광야로 비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광야는 메마르고 황막하며 짐승이 들끓는 곳으로 마귀의 세계를 비유하기에 알맞은 것입니다.

③ “붉은 빛”이란 원문상으로 12:3의 “한 붉은 용”의 색과 같은 뜻이 아니라고 합니다. 용의 붉은 색은 살기(殺氣)를 뜻하는 ‘퓰로스’(πυρρός)이고, 짐승의 붉은 색은 ‘코키논’(κόκκινον)으로 호화로움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본질과 목적과 방법에 공통성이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붉은 색은 5:4의 “붉은 말”과도 상통함이 있는 포악과 전쟁과 죽임의 싸움을 표방하는 뜻이 있고, 또 “그 짐승을 탔다”는 뜻은 목적을 같이 하고 서로 협력하는 관계임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④ 또 이 음녀는 18절에서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셨으므로 임금의 지위가 유지되는 방편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음녀는 향락적인 형태만 취하는 것이 아니라 왕의 지위를 유지시키는 군사력을 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4) 그 여자는 “자줏빛 옷과 붉은 빛 옷을 입고 패물로 꾸미고 가증한 물건과 음행의 더러운 것이 가득한 금잔을 가졌다”고 하였습니다(4).

① 음녀는 사람을 유혹하는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현실적 매력은 명예, 사치, 물질 등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교회 안에도 그런 것들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성직자가 명예를 가지려고 하고, 교회가 먹는 것과 사치를 좋아하며, 재정을 신앙의 척도로 판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나 성도가 진리 아닌 것으로 매력있게 하여 사람을 끌려고 하든지 또 성도가 진리 아닌 것에 매력을 느껴 끌려 온다면 그것은 참된 신앙이 아님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② 세상주의는 지금도 금잔에 술을 가지고 권하는 음녀처럼 인간들을 유혹합니다. 그 금잔 속에 들어있는 술이 무엇입니까 ? 4절에 보시면 “그 속에는 가증한 것들과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다”고 하셨으니 이것이 곧 술 한잔을 먹고 취하여 옷까지 벗김을 당하고 쫓겨나게 되는 요소가 그 잔 속에 담긴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온갖 실수와 범죄가 술 한잔, 여색(女色), 물욕, 명예욕, 사치 등에서 빚어진다는 것을 아셔서 크게 조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5) 5절에서 “그 이마에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는 글이 기록되었다고 하였습니다.

① 비밀이란 음녀가 과거에 없었던 일을 비밀스럽게 나타내고 역사한다는 뜻이며,

② 큰 바벨론이란 세상주의의 표상적 국가로 짐승의 정체를 대변한 것이요,

③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란 범죄와 유혹의 원흉이란 뜻입니다.

6) “이 여자가 성도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하였다”(6)는 것은,

① 성도와 증인들을 그만큼 핍박하고 넘어 뜨렸으며 죽였다는 뜻이요, 또 성도는 그의 유혹에 이끌려 생명같은 믿음을 피를 뽑아 주듯이 주었을 것입니다.

② 요한은 그 음녀가 성도의 피에 취하는 것을 보고 기이히 여긴즉 천사는 “그 짐승의 비밀을 알리겠다”고 하였습니다(7). 마귀는 성도의 피(타락하는 생명)를 먹고 취합니다. 기쁨을 느낀다는 뜻입니다. 성도는 성령으로 기뻐하고(눅10:21), 말씀에 취하는 기쁨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시119:103).

2. 음녀가 탄 짐승의 정체(8-13).

1) 8절에 보시면 “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핍박이 있을 때 있었다는 뜻이요, 사도 요한이 이 계시를 받는 기간과 성령님이 강하게 역사하시고 신약의 교회가 존속되는 기간에는 통제당한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전”은 핍박의 때이고,“시방”은 복음의 자유의 때입니다.

2)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짐승(사단)을 무저갱에 일정 기간 가두셨기 때문입니다(20:1-3). 그러나 때가 되면 하나님의 섭리로 풀려나서 비밀스런 역사를 나타낼 때(7)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은 그것을 보고 대단히 기이히(호감을 가짐) 여기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신령한 일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들은 세상의 어떠한 상품만 보아도 기이히 여기고, 가지고 싶어하는 것처럼 짐승의 비밀도 현실주의를 부각시키는데 충분할 것이요, 그런 것을 소망하는 불신자들이 기이히 여겨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것은 과학 만능주의에서 주는 기이함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성도는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신령한 은혜가 아닌 것은 무엇이나 크게 즐거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3)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깐동안 계속하리라”(9-10) 하였으니,

① 지혜는 성경의 비밀(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요,

② 짐승의 일곱 머리를 “일곱 산”이라 하였음은 일곱 왕의 도성을 뜻하고,

③ 망한 다섯 나라는 애굽, 앗수르, 메대, 바사, 헬라 나라요,

④ 현재 있는 나라는 그 당시의 나라인 로마요,

⑤ 장차 있다가 잠깐동안 계속할 나라는 신약 시대에 복음을 거스리는 전반적인 국가들을 총칭하여 말씀하신 것으로 보셔야 할 것입니다. 잠간이란 한 세월을 뜻합니다(히10:37).

4) 11절에서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하신 말씀에서,

①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졌다”는 것은 마귀의 역사하는 방법에 있어서 한동안 예수님과 교회를 핍박하다가 잠시 멈춘 상태를 의미하며,

② 그 짐승이 “일곱 중에 속한 여덟째 왕이라” 함은 앞에서 설명드린 일곱 왕들 중의 한 계열에서 나타날 왕이란 뜻이요,

③ 결국 그의 나라는 멸망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로마 다음에 나타난 적그리스도의 국가란 기독교를 적대시 하는 이단적 국가나 공산주의 국가를 연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5) 12절에서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동안 받을 것이요,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하신 것은,

① 뿔은 권세를 뜻하므로 열 뿔은 열 나라의 왕을 뜻합니다.

② 그들이 나라를 얻지 못하였음은 이 계시를 주시던 때에 없었던 것이므로 이후의 신약 시대에 나타날 나라란 뜻이요,

③ 임금은 아니나 임금처럼 일시 권세를 받음은 경제적 또는 군사적 통치권을 의미할 것입니다.

④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준다”는 것은 경제 연합체 또는 군사 연맹 등으로 짐승의 활동을 위하여 규합하는 상태를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나라들을 세계적으로 열 나라로 꼽아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뜻을 거스리고 현실주의로 치닫는 일에 세계의 인류는 최대한 관심을 가지고 기이히 여기며 호응할 것입니다. “한 뜻”이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짐승의 국가들이 갖는 반기독주의적 연합을 의미할 것입니다.

3. 음녀가 망하는 과정의 말씀(14-18).

1) 저희(반기독주의 국가)가 어린 양(복음적인 성도)으로 더불어 싸우지만 어린 양 예수님은 부활의 승리자시오 만주의 주, 만왕의 왕이시므로 당연히 이기실 것이요, 또 예수님과 연합된 진실한 성도들도 반드시 승리한다고 하셨습니다(14). 성도는 현실적으로 패배자 같을지라도 실제로 승리를 취하는 것이요, 속 마음으로도 만족과 기쁨을 만끽하는 것입니다(고후6:4-10).

2) 16절에서 “네가 본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

짐승과 음녀는 같은 계통입니다. 포주와 창녀의 관계와 같다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한 것은 귀신이 서로 싸워 자기 나라를 망친다는 말씀처럼(마12:25), 서로 모순되는 내분으로 망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치 유물주의를 숭상하는 공산주의가 결국 가난으로 붕괴되는 것과 같은 원리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귀를 멸하게 하실 때 그들이 내분으로 자멸당하게 하심을 뜻합니다.

3) 17절에서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저희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셔야 할까요 ?

①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자기 뜻은 하나님의 섭리)을 저희(짐승주의자들)에게 주셔서 하나님의 한가지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저희 음녀의 나라를 세상주의자들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의 말씀(말세 예언)이 응하기까지 하신다는 것입니다.

② 하나님께서는 말세에 많은 환난이 있을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나팔 예언과 대접을 쏟으신 예언이 그것입니다. 이 환난이 성취되는 방편으로 마귀의 역사를 이용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욥에게 고난을 주실 때 마귀에게 맡기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목적이 성취된 후에는 마귀가 패하고 자멸당해야 할 것입니다.

③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이란, 비유를 들면 막5:10에서 “군대 귀신이 자기의 살 길을 위하여 돼지 떼에게로 들어가게 되기를 원하여 예수님이 허락하셨는데, 이 사실은 예수님이 마귀의 뜻을 따르신 것이 아니라 그 돼지 떼를 귀신들린 사람으로부터 쫓아내시는 방법에 일치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방법으로 마귀를 쓰시기도 하시고 패하게도 하시는 것입니다.

말세에는 인본주의, 현실주의, 물질주의가 팽배해지고, 여기에 따라 동질성 있는 적그리스도 국가들은 상당 부분 강성해질 것입니다. 무신론적 국가가 아닌 기독교적 국가라도 음녀와 같은 현실주의 활동을 막지 못할 것이요, 나중에 그들이 서로 동맹하여 자기들의 세상 권세로 짐승같이 행하는 역할에 동원할 것이나 결국은 자승자박되고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가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제 30 과 바벨론이 심판을 받음 (계 18:1-24) 목록으로


18장의 말씀은 네 대지로 나누어 살필 수 있습니다.

① 바벨론의 멸망 선포와 성도에 대한 권면이요(1-4),

② 바벨론의 죄악과 멸망에 관한 말씀이요(5-10),

③ 바벨론의 상고들이 애통함(11-19)과,

④ 성도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심(20-24)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총 제목은 “바벨론이 심판을 받음”이라고 정할 수 있습니다.

계시록에서 악에 대한 상징으로 용(뱀), 짐승, 음녀, 바벨론, 왕, 상고들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이 표현의 대상은 다 죄악과 관계가 있고,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현실적 생활의 죄악을 나타내는데 적합한 표현들입니다.

용은 하늘을 무대로 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상징이므로 사단을 비유, 상징한 것이고, 짐승은 세상을 무대로 하여 활동하는 용의 부하요, 음녀는 짐승을 타고 실제로 사람을 유혹하는 유혹의 매개체요, 바벨론은 왕과 함께 국가적 세력을 가지고 지상을 무대로 하여 음녀와 짝하는 죄악 세계를 일컫고, 상고들은 물질로 인한 사치와 향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1. 바벨론의 멸망 선포와 성도에 대한 권면(1-4).

1) 1-2절에 보시면 “영광의 광채를 발하는 권세 있는 천사가 힘있는 음성으로 바벨론의 멸망을 두 번이나 무너졌다” 하였으니, 여기에 “두번씩이나 무너졌다”는 말씀을 과거형으로 쓴 것은 그 무너짐이 확실하고도 강할 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어법입니다.

2) 바벨론이 무너지는 방법은 “현실주의가 끝난다”는 뜻으로 18장 이전의 각종 재앙으로 설명하신 것입니다. 큰 성 바벨론이 어떤 곳인가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2-4). 이 사실은 현실적 바벨론을 옛날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느부갓네살의 바벨론 왕국에 비교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① 바벨론은 귀신이 만행하는 처소요,

② 각종 더러운 것들이 모이는 곳이며,

③ 더럽고 가증한 새들도 모이는 곳이 되었다 하였으니, 이것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죄악이 관영되는 세계를 묘사한 것입니다. 그곳에 심판의 죽음들이 임할 때 그 시체를 뜯어먹기 위한 새들도 날아들어야 하는 곳이 되었다는 것입니다(마24:28).

3) 또 3절에서는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인하여 만국이 심판을 받아 무너지게 되니 이는 땅의 왕들이나 땅의 상고들(왕족들이라 함,23절)이 세상주의인 음녀와 더불어 음행하고 사치하고 치부하였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서 세상의 향락에 취하여 산 부유층의 불행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4) 4절에서 “성도는 그런 죄악과 생활에 참예하지 않으므로 악인들이 받아야 할 재앙을 받지 말라” 하셨으니, 이는 악인들이 이 재앙을 현실에서 받게될 때, 성도가 사치와 향락에 붙잡혀 있으면 같은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이므로 이것을 피하여야 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2. 바벨론의 죄악과 멸망에 관한 말씀(5-10).

1) 죄는 하늘에 사무치고 하나님은 악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십니다(5). “하늘에 사무침”은 하나님의 심중을 상하게 한다는 뜻이요 또 하나님은 악인의 불의한 일을 심판을 위하여 기억하시는 것입니다.

2) 6절에서 하나님은 그가 준대로 주시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시며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주신다 하셨으니,

① “그가 준대로”란 악인이 성도를 괴롭게 한 대로 그 분량을 따라 심판하심이요,

② “그의 행위대로”란 역시 악인의 다른 악한 소행대로 갑절을 가산하여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③ “그의 섞은 잔에 갑절이나 섞어 주심”은 하나님의 진노를 포도주 마시는 일로 비유하신 상태에서(16:20,마26:42) 긍휼없는 심판을 진짜 원액의 포도주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포도주를 판매하는 사람은 남을 속여 이득을 보기 위하여 포도주에 물을 타서 희석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희석시킨 포도주는 하나님의 긍휼로 인내하시거나 인간이 징계를 피하는 자처럼 생활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도 아시기 때문에 갑절의 원액을 부어 완전한 심판을 가하신다는 뜻입니다.

3) 그들은 하나님 대신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고 “사치 향락을 즐겼으며(7) 심지어는 여황으로 앉고 과부가 아닌 자처럼 애통당할 일이 없다”고 교만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른다” 하셨으니(8), “하루동안”이란 오래 기다리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즐거움을 오래 맛보지 않은 상태에서 재앙이 내려 사망과 애통과 흉년과 불사름 당하는 일이 있게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들은 전쟁으로 빚어지는 결과임을 예측할 수 있고 이렇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강하시기 때문에 아무도 그 환난을 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4) 9,10절에서는 졸지에 당하는 환난과 멸망으로 악인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말씀하셨으니, 곧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세상 문명(자기들이 누리던 세상 향락)들의 불타는 연기를 보고 울고 가슴을 치며 그 고난이 무서워 성밖에 멀리 서서 크고 견고한 바벨론 성들이 일시간에 망하였구나, 결국은 심판이 이르렀구나 하면서 애통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3. 바벨론의 상고들이 애통함(11-19).

바벨론의 상고들이란 23절에서 “땅의 왕족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왕족이 아니면 유족한 향락을 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무신론적 부유한 왕족들이 너무 많습니다.

1) “땅의 상고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세상의 상품들을 살 자가 없게 되어 그를 위하여 운다”(11)고 하였습니다. “그를 위하여”란 그들의 인생 취미를 계속 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요, 이렇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이 주시는 재난 때문인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살이의 시설이 좋아도 자신의 몸에 질병이 있으면 누릴 수 없는 것처럼 향락을 누릴 자들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2) 그들이 취급하던 상품들은 12-13절에서,

① 금, 은, 보석, 진주(보석류),

② 세마포, 자주옷감, 비단, 붉은 옷감(의류),

③ 향목, 상아, 진수, 청과 옥으로 만든 각종 기명(고급 가구),

④ 계피, 향료, 향과 , 향유, 유향(화장품류),

⑤ 포도주, 감람유, 고운 밀가루, 밀과 소와 양(식품류),

⑥ 말과 수레(거마 장비, 자가용류),

⑦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돈으로 인권을 사서 사람을 상품화하는 행위)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일곱 가지 종류를 종합해 보면 세상주의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게 하는데 이것이 바로 좋은 집, 좋은 가구, 좋은 옷, 좋은 화장품, 좋은 음식, 자가용 그리고 고용인까지 두어 향락적 안일주의에 빠져 사는 것입니다. “유족하게 산다”는 그 자체가 큰 죄가 아닐 것이나 다만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것만으로 최고의 소망을 삼음으로 전능자를 멸시할 때 그것이 심판받을 큰 죄악이 되는 것입니다.

3) 14-19절에서 상고들이 좋아하던 것들이 떠나고 일시간에 망하여 애통할 것을 경고합니다.

① 먹는 것(영혼이 탐하는 과실)과 입는 것(빛난 것들)으로 낙을 삼았으나 그것들이 다 없어지게 되고(14),

② “바벨론을 인하여 치부한 이 상품의 상고들”(물질주의를 낙으로 삼던 자들)이 재난을 무서워하여 향락적 입장에 가까이 오지 못하며 울게 되고(15),

③ 큰 도성 바벨론(물질 향락주의)이 일시에 불탈 때(18) 그 안에 있는 좋은 옷감들과 보석들이 없어지게 되고(16), 이런 것들을 수송하고 장사하던 선장, 선인, 선객들이 불타는 도성을 멀리 서서 보며 애통할 것이며(17), 아까워하며 탄식한다고 하였습니다(18).

④ 또 그들은 티끌을 머리에 뿌리며 애통하고 바다를 왕래하며 장사하여 모은 상품으로 치부하였으나 일시간에 망한 것을 탄식할 것이라(19)고 하셨습니다.

6.25 때 월남한 가족이 부산 국제 시장에 자리를 잡고 수년동안 장사를 하여 큰돈을 벌고 귀한 상품으로 추석 명절에 팔기 위하여 모든 자본을 상품화하였는데 불이 나서 모두 타게 되었습니다. 그 주인이 “일억아, 일억아” 하며 미친 사람처럼 외쳐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집 아들 일억이가 그 점포에서 불타 죽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의 총재산 모은 것 일억원어치가 하룻밤 사이에 없어지진 것입니다. 그가 재산을 적게 모았어도 하나님을 잘 공경하였더라면 그것들이 불타도 크게 탄식하지 않을 것입니다.

4. 성도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신 내용입니다(20-24).

1) 20절에서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였으니 이 장면은 천상에 올라온 고난받은 성직자들을 위로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위로 받아야 할 이유는 지상에서 사명 생활을 할 때 세상주의자들로부터 핍박을 받고 물질이나 향락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상태에서 고난을 받은 사역자들의 신원(억울함의 호소)을 심판으로 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

2)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진 것”(21)은 맷돌로 바벨론 같은 세상을 때려 부수는 상징적 계시입니다. 이런 계시의 방법은 구약 시대에도 있었습니다.(렘13:1-9).

3) 따라서 “악기로 풍류 소리를 내는 자들과 사치품을 만드는 세공업자들도 보이지 않게 되고 잘먹기 위하여 맷돌질하는 소리나 등불을 켜고 밤중까지 연락하는 신랑 신부의 음성도 있지 않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22-23).

4) 23절에서 “상고들은 땅의 왕족들인데 그들이 복술로 만국을 미혹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상고들이 왕족인 것은 귀족 세계에서만 부요와 향락이 있었기 때문이요, “복술로 만국을 미혹한 것”은 현세주의자들이 인간의 심리 근성을 이용하여 다양한 현세적 상품들을 만들어서 만국의 인류를 유혹하여 끌려오게 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5) 24절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근거는 선지자들과 성도들의 땅 위에서의 죽음(순교)과 고난을 보셨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말씀에서는 순교자의 피에 근거한 하나님의 공의의 실현과 성도에 대한 위로와 악인들에 대한 멸망과 세상주의의 종말을 예언해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깊이 음미한다면 성도가 한층더 세욕을 멀리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황금 보석, 황금 목걸이, 황금 열쇠, 금메달들은 다 인간이 좋아하는 것들이었는데, IMF 바람이 살짝 부니까 삽시간에 그것들이 버려질 물건들로 변하는 것을 보셨지요. 이것은 현세적 가치관이 무상함을 뜻하는 것이며, 작은 변화에도 동요가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말세에는 이런 현상들이 자주 나타날 것이요, 세세토록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진리 뿐임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벧전1:25).

 

 

제 31 과 성도의 승리를 찬송함 (계 19:1-21)목록으로


이 말씀의 내용을 살피면 네 대지로 나누어 살필 수 있습니다.

① 승리의 찬송이요(1-8),

② 참된 말씀을 기록하라 하심(9-10),

③ 승리자 예수님의 출현(11-16)과,

④ 짐승의 패배(17-21)입니다.

1. 승리의 찬송에 대하여(1-8).

1) 하늘의 찬송은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처럼 웅장하였고, 가사를 통하여 찬송하는 의미를 나타냈으며, 여기에서 찬송한 허다한 무리는 구원받은 성도의 영혼들일 것입니다.

① 구원(구원 베푸시는 은혜)과 영광(영광 받으실 특권)과 능력(전능하심)이 하나님께 있음을 찬송하였고(1),

② 하나님의 심판이 참되고 의로우신 것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자들(큰 음녀)을 심판하시고 피흘린 종들의 억울함을 갚아 주시는 것을 찬송하였으며(2),

③ 전능하신 하나님이 만유를 통치하심에 대하여 찬송하였고(6),

④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을 함과 그 아내(신부, 성도)가 예비된 것을 찬송하였습니다(7). 여기의 “어린 양의 혼인”이란 부활하신 예수님과 부활체로 변화받은 성도들이 공중에서 만나고 영원히 함께 천국에서 거하게 됨을 뜻하는 것입니다(마25:1-13,살전4:16-17).

2) 3절에서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간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한 것으로 소돔성이 유황불로 연소될 때처럼(창19:28) 세세토록 고통받는 지옥을 연상케 한 것입니다.

3) 4-5절에서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들의 경배”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들은 허다한 무리의 대표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도 역시 하나님의 심판에 만족을 표명하여 감사하는 뜻으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를 하면서 “아멘 할렐루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아멘 할렐루야”의 뜻은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만족하게 여기는 감사와 영광의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보좌에서 음성이 들리는데, “하나님의 종들과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 대소하고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 음성은 하나님의 보좌에 근위한 “천사의 소리”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는 확실하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심판을 목격하지 못하여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있었지만 그 때에는 모든 답답함을 시원스럽게 풀어 주시는 날이므로 “아멘과 할렐루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4) 6-8절 말씀에서 찬송 소리의 웅장함과(1)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것과 어린 양의 신부가 예비된 것에 대하여는 앞에서도 설명 드렸지만, 8절에서 그 어린 양의 신부들에게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신 것은 그 성도들의 옳은 행실의 표라고 하신 것입니다. 더운 여름철에 깨끗한 세마포를 입을 사람은 신선처럼 사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천국에서도 특별하게 복된 형편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것은 성도의 옳은 행실로 받을 수 있는 상급입니다(엡2:8,롬9:16).

2. 참된 말씀을 기록하라 하심에 대하여(9-10).

1) 9절에서 “천사는 사도 요한에게 받은 계시의 기록을 명”하였습니다. 성경이 기록되는 절차는 먼저 계시를 나타내시고, 다음에 천사를 통하여 성경 저자에게 기록할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기록된 말씀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니까 확고하게 믿으셔야 할 것입니다. 또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성도가 복이 있음은 더 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2) 10절에서 성경 기록의 명령을 받은 사도 요한이 성경 기록을 전달하는 천사에게 경배하려 한즉 그 천사의 말이 “나는 너와 네 형제들처럼 예수님의 증거를 사명 받은, 같은 종이니 내게 경배하지 말고 하나님께만 하라” 하므로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사도 요한은 계시를 받는 성령 충만한 가운데서도 천사에게 경배하는 실수를 범할뻔 하였으니 이는 두려움과 황홀함 속에서 천사를 하나님으로 착각한 모양입니다. 따라서 “은혜가 많은 중에도 무지와 유혹의 역사가 틈탄다”는 것을 잊지 마셔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도 경배의 대상이 되지 않음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3) 또 그 천사는 “예수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증거”는 “계시 사역”을 의미하고 그 계시 사역은 대언의 영이신 성령님이 하시는 것임을 나타낸 말씀입니다. 따라서 경배를 받을 수 없는 천사가, 전달은 하여도 그 말씀은 대언의 영이신 성령님의 지도에 의한 것임을 표명한 말씀입니다.

3. 승리자 예수님의 출현에 대하여(11-16).

1) 11절에서 하늘이 열리면서 “충신과 진실이란 분이 백마를 타고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11)고 하였습니다.

① 충신과 진실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충신이시고 참된 분이십니다. 예수님만 참이요 진실하심을 믿어야 합니다(요14:6). 그런데 이 진실은 ‘알레디노스’(ἀληθινός)로 구주의 뜻이 있다고 합니다.

②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실 때 악을 응징하시게 되는데 악한 자들이 예수님의 응징을 굴복하는 자세로 받으려 하지 않을 때는 쳐서 이기셔야 할 것입니다.

③ 백마는 싸움에서 이긴 자를 상징합니다(6:3).

2) 12절에서 “백마를 탄 분의 눈은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으며 또 그 이름 쓴 것은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피뿌린 옷을 입었으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① “그 눈이 불꽃같음”은 사랑과 구원의 은총을 나타내실 표현에 반대되는 표정으로 악한 대적을 무찌르실 심판자의 표정을 나타내신 것이요,

② “그 머리에 면류관이 있음”은 홀로 영광 받으실 왕이심을 나타내신 것이요(4:10),

③ “예수님만 아시는 은밀한 이름 쓴 것이 있음”은 설명되지 않은 신적인 이름이 쓰여진 것인데, 이것은 계시로 밝혀 주시지 않았으니까 “감추어진 이름”으로 아셔야 하며,

④ “피뿌린 옷을 입으셨음”은 “육체의 피를 흘린 싸움의 용사”라는 뜻 보다도 “대적을 무찌르시는 심판주의 상징적 표현”으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63:1-6에서 “심판자의 심판하시는 일을 포도주 틀을 밟아서 피와 같은 진액을 짜내는 것으로 비유”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피뿌린 옷을 입으신 것은 대적을 짓밟는 심판자의 모습을 표현하신 것이요,

⑤ “그 이름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심은 예수님이 본래 말씀으로 계시던 분이기 때문입니다. 요1:1,14에서 태초에 말씀으로 계시던 분이 도성인신하심으로 사람이 되셨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3) “하늘의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랐음”(14)은 예수님이 자기와 합력할 천군 천사를 거느린 모습이요,

4)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와서 만국을 치며 철장으로 저희를 다스리시며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고 그 옷과 다리에 만왕의 왕, 만주의 주라는 이름이 기록되었다”(15)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11절의 백마를 탄 예수님(충신과 진실)이 무장한 상태를 표현한 것입니다.

① “그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온 것”은 말씀의 검으로 싸우신다는 뜻이요,

② “만국을 치며 철장으로 다스림”은 악인들과 싸울 때 용맹을 나타내심이요,

③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으심”은 13절의 피뿌린 옷을 입으신 사실에서 설명드렸고, 또 14:19-20에서 “심판의 포도주 틀”로 비유하여 말씀하신 내용과 같은 뜻입니다.

④ “그 옷과 다리에 만왕의 왕, 만주의 주”란 이름이 기재된 것은 주님의 신분과 권위 및 사역을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4. 짐승의 패배에 대하여(17-21).

1) 17절을 보시면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 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공중의 모든 새들을 모아 사람과 짐승(말)의 시체의 고기를 먹게 하신다는 뜻이요, 그 때에 죽은 자들은 왕들로부터 장군들과 자유자들과 종들에게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이들은 다 예수님과 그 군대와 더불어 싸우다가 패하여 죽은 시체들입니다(19). 이것은 지상에서 의로운 전쟁과 악한 전쟁의 대결 양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의로운 전쟁은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는 쪽이고, 악한 전쟁은 하나님의 심판의 매를 맞는 짐승편이 될 것입니다.

3) 이 싸움에서 “짐승과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가 패하고 잡힌다”고 하였습니다(20). 그들은 짐승의 표를 받고 우상에게 절하던 자요 또 그렇게 되도록 이적으로 미혹한 자들입니다. 이적으로 미혹한 결과가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된 것도 유의할 사항입니다.

4) 이 둘이(짐승과 거짓 선지자) 산채로 유황불에 던지우고 그 나머지는 말탄 자의 입으로 나온 검에 죽으니 역시 그 시체를 새들이 먹었습니다. 여기의 “검”은 실제로는 사람을 죽이는 무기이고, 또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의 권위를 뜻하는 상징적 의미도 있습니다(히4:13).

결론적으로 이 말씀은 예수님과 마귀의 싸움이 마지막 때에 지상 세계에서 나타날 것과 예수님이 승리하실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설교보충 14. 어린 양의 신부 (계 19:6-8)목록으로


이 시간에는 “어린 양의 신부”라는 제목으로 교훈을 받겠습니다. 계시록 19장은 이 세상의 마지막 심판 때에 악인들이 벌을 받고 의로운 성도가 큰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읽으신 본문 말씀에서는,

1. “성도가 누릴 영광”을 지상에서 누리는 결혼의 즐거움으로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은 좋은 신랑, 좋은 신부가 이상적인 결혼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그보다 더 즐거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세의 천국 생활의 즐거움을 이상적 결혼 생활밖에는 달리 묘사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2. 본문 7절을 보시면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예비되었으니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혀서 신랑을 맞이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① 어린 양은 예수님을 의미하고,

② “혼인 기약이 이르렀다”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할 때가 되었다는 뜻이요,

③ “그 아내가 예비되었다”는 것은 믿음 있는 성도들이 신랑되신 예수님을 대망하면서 준비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④ “그에게 세마포를 입히라”는 것은 신부가 면사포를 입어야 하는 것처럼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이해야 할 성도는 자기의 옳은 행실로(즉, 거룩한 생활로) 옷입듯 해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는다”는 뜻이 바로 성도의 성결과 옳은 행실이라고 말씀해주셨기 때문입니다.

3. 성도의 현세의 생활은 마치 좋은 신부가 좋은 신랑과 약혼을 하고 혼인날을 기다리면서 준비하다가 혼인날이 되었을 때 자기를 더 아름답게 단장하기 위해 미장원에 가서 단장을 잘하고 혼인 예식을 한 후 즐거운 생활에 들어가는 것처럼 세상 끝날에 악인이 심판 받을 때에 성도는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이하여 천국 생활의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같은 사실을 비유로 주신 말씀이 “아가서”입니다.

4. 기독교 생활의 기쁨을 혼인집 즐거움으로 비유하신 말씀은 아가서 뿐만 아니라 막2:19, 고후11:2, 엡5:22-27, 마22장과 25장에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22장은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 비유”이고, 25장은 “열 처녀가 신랑을 맞으려고 등불을 들고 기다리는 내용”이며, 엡5:22은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를 부부의 연합”으로 말씀한 것이고, 막2:19은 “혼인집 식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 부족함이 없다”는 말씀이며, 고후11:2은 “바울 사도가 성도를 정결한 처녀처럼 단정하게 키워서 그리스도께 중매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신앙 생활의 기쁨이나 천국 생활의 즐거움은 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신혼 부부의 기쁨보다도 더 즐거운 복임을 믿고 체험하셔야 할 것입니다.

5. 그러면 또 예수님을 어린 양으로 비유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 하실 것입니다.

1) 양은 유순하고 깨끗한 동물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겸손과 성결을 나타내심에 알맞은 동물입니다. 예수님을 동물로 비유한 것은 안됐지만 그렇다고 하여 타락한 인간으로 예수님을 비유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양은 깨끗하고 순결한 동물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부터 양으로 예수님을 예표하는 제물로 쓰게 하셨습니다. 창4:4의 “양의 새끼로 첫 새끼를 드린 이삭의 제물”, 창22:13에서 “아브라함이 이삭 대신에 드린 수 양의 제물”, 출12:5에서 “유월절에 희생된 어린 양”, 레3:6의 “화목 제물”이나 레16:9의 “아사셀 양”이 전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예표하는 것이었습니다.

사53:7에서는 “예수님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 같고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어린 양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다 구약의 말씀이요, 신약 성경 요1:29에서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향하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을 보라” 하셨고, 벧전1:19에서 베드로 사도는 “흠없고 점없는 어린 양이라” 하셨으며, 사도 요한도 계5:6에서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 하늘 보좌에 서셨다” 하므로 예수님을 어린 양으로 비유하였습니다.

저희들은 예수님을 어린 양으로 비유하신 말씀에서 저희들의 착한 성품이 먼저 양을 닮고 다음에 주 예수님을 닮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구약 시대의 제사법에서 양이 희생의 제물이 된 것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에 돌아가심을 예표하였다”는 사실은 더 말씀드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6.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다”는 뜻이 무엇인가 ? 할 때 성경은,

1) 성도의 지상 생활을 처녀의 결혼 기간으로 비유하였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마25:1-13의 열 처녀 비유 교훈에서 나타내주셨습니다. 또 성경은 신랑되신 예수님이 보내주신 편지와 같고(고후3:3), 교회 생활은 천국 백성(즉, 예수님의 신부)을 단장시키는 도장과 같은 것입니다.

2) 그리고 혼인 잔치는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공중으로 휴거되는 때에 성취되어 천국에서 영원히 동거하게 되는 것입니다(살전4:17). 혼인 기약의 때가 바로 그 때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성경으로 예수님을 희미하게 보지만 그 때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본다 하셨고(고전13:12), 그 때가 바로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죽은 성도의 몸이 부활하며 살아남은 성도가 다 변화되어 예수님의 부활체처럼 신령하고 영화로운 몸이 되어,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고 영원한 천국을 누리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해주신 것입니다(고전15:51-52,고후5:10,살전4:16-17). 그 때가 바로 혼인 기약의 때가 되는 것입니다.

7. 그 때가 되면 신랑되신 예수님이 자기의 약혼자를 찾아 만나게 되는데 성령으로 인을 친 증표를 가진 신부를 찾게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신부될 것을 소망하는 성도들은 증표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 증표가 무엇일까요 ? 약혼한 남녀가 헤어지면서 깨어진 거울 쪽을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만나서 맞추듯이 증표 검사를 하시는데 그 증표는,

1) 하나님이 허락하여 깨끗한 세마포를 입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마포는 죄사함 받고 성령의 은혜를 입은 자를 의미합니다.

2) 하나님은 이런 자에게 미리 “인을 쳐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세마포 옷은 성결을 상징하는 것이고, 인침을 받은 자라야 성결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데, 이 인침의 뜻이 무엇입니까 ?

① 중생 및 내주의 은혜가 바로 인침입니다. 중생은 성령님의 내주입니다. 이 사람들이 본문 8절의 “허락하심을 입은 자들이고 하나님을 참되시다”고 믿는 자들이며(요3:23), 지상의 환난을 이길 자들인 것입니다(계7:4). 그들은 신앙의 지조와 승리가 있어서 “항상 진실하며 어린 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고 도중 하차하는 자들이 아닌 것”입니다(계14:4-5).

② 확신을 갖게 하시는 믿음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이 일을 위하여 인치시는 작업을 하십니다. 엡1:13, 고후1:22을 보시면 “성령님이 인을 쳐서 약속을 보증하신다” 하셨고, 롬4:11에서는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치신다” 하셨습니다. 이것은 성도에게 성령님이 내주하셔서 성도로 하여금 “택하심을 굳게 믿고 실망하지 않도록 믿음을 붙드시는 역할을 하시는 것”입니다(고후1:10). 저희들에게는 항상 그 “인침의 표”가 믿음으로 간직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계14:4에서 “정절이 있는 자”이어야 한다는 말씀도 그 뜻입니다.

8. 마지막으로 신랑을 맞이할 인침을 받은 성도는 아름다움을 간직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형하는 이삭의 아내된 리브가(창24:16)와 예수님을 예표하는 솔로몬 왕의 연인 술람미가 “아름다웠다”(아2:10) 하신 것처럼 인침을 받은 성도는 신앙적 아름다움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부로 비유된 솔로몬의 연인의 아름다움을 묘사하신 말씀에서(아4:1-5) 그 어여쁨을 여섯 가지로 표현하였습니다.

① 비둘기 같은 눈매(유순한 성품의 소유자),

② 길르앗의 살진 염소 무리들 같음(꼴을 잘먹고 살진, 윤기가 나는 털, 영혼의 양식인 말씀을 잘먹고 성경 지식에 살진 영혼을 의미함),

③ 입은 홍색 실같고(언어의 미덕),

④ 뺨은 석류쪽 같으며(기쁨의 표시),

⑤ 목은 망대같다(의지가 굳은 것을 의미),

⑥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노루 새끼같다는 것은 사랑의 향기를 나타내는 생활로 신부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것입니다. 신부의 아름다움은 바로 그의 신앙과 생활의 미덕임을 아셔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어린 양의 신부는 바로 저희들입니다.

① 저희들은 신부로서의 아름다움을 보존하여야 합니다.

② 저희들은 성령으로 인침 받은(성령님이 보증하시는) 신부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믿음의 지조와 생활의 본분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③ 예수님의 재림을 대망하고 천국의 즐거움이 더할나위없이 좋은 세계란 것을 믿고 소망하는 성도님들이 되셔야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무엇이든지 “좋지 않다”는 부정적인 말을 합니다. 제가 그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 세상에는 좋은 것이 없으니까 아주 좋은 것을 갖고 싶거나 누리고 싶으면 천국에 가서 찾아야 할 것이니 빨리 세상 떠날 준비나 하시요”라고 말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좋은 것을 찾는다는 것은 퍽 어리석은 일임을 아시고, 아주 좋은 것을 찾을 때는 그런 것이 천국에만 있는 줄로 믿으셔야 할 것입니다.

 

 

제 32 과 천년 왕국과 사단의 종말 (계 20:1-15)목록으로


계시록 20장을 네 대목으로 나누어 살피겠습니다. 위의 말씀은,

① 사단의 결박과 해방에 관한 말씀(1-3),

② 성도가 누릴 천년 왕국에 대한 말씀(4-6),

③ 잠간 놓인 사단의 역사(7-10),

④ 사단과 악인의 최종 심판(11-15)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총제목을 “천년 왕국과 사단의 종말”이라고 정하였습니다.

1. 사단의 결박과 해방에 관한 말씀(1-3).

1) 하나님은 천사를 통하여 사단의 활동을 통제하십니다. 무저갱은 마귀와 악령들의 감옥입니다. 마귀와 그 추종자들(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최종 멸망처가 “불과 유황못”이라 하신 것을 보면(10) 무저갱은 사단의 감옥일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2) 본문의 말씀에서 “하나님이 천사로 하여금 사단의 원흉인 용(옛 뱀, 마귀)을 결박하여 천년동안 무저갱에 가두고 인봉하여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생각할 문제가 많습니다.

① 하나님이 무저갱을 주관하시고 마귀를 임의로 속박 또는 해방시키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귀를 속박할 때 마귀 왕과 부하 대상을 임의로 정하실 수도 있고, 또 자유하는 마귀의 활동을 부분적으로 통제하실 수도 있습니다(욥1:7,12). 본문에서 사단(용)을 가두신 것은 짐승이나 음녀를 가두신 것이 아닌 것처럼 사단의 왕만 가두신 것이요 그 부하들까지 가두신 것은 아닙니다.

② 따라서 사단이 갇힌 상태를 완전 무죄 시대로 볼 것이 아니라 사단의 대장이 갇혔으므로 사단의 능력적 활동이 약화되고 따라서 유혹의 역사도 약해지는 상태를 나타낸 것으로 보셔야 할 것입니다. 또 이런 상태는 성령님의 강한 역사로 사단의 힘이 어거됨과 동시에 은혜의 역사가 나타나고 존속되는 시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③ 그렇다면 이 시기는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공포를 떨치던 사단이 큰 상처를 입고 결박당하는 신세가 된 것을 뜻하고, 그 때부터 성령님의 역사가 크게 나타나셔서 신약의 교회를 형성함과 동시에 전도의 역사와 은혜의 역사를 나타내시게 된 것입니다.

④ 천년이란 시기를 지상 세계에서의 무죄 시대로 해석할 수 없는 이유는 지상에서는 죄와 유혹이 없는 시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말세가 될수록 불법의 역사와 죄악의 역사가 심하다”고 성경이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마24:12,딤전4:1-3,딤후3:1-5).

3) 3절에서 “그 후에 반드시 잠간 놓인다”는 뜻은 교회 시대가 끝날 무렵 즉, 세상이 끝나기 전에 잠시 놓인 상태에서 마귀의 발악으로 핍박과 환난의 역사를 심하게 나타낼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패배하고 유황못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10). 하나님께서 마지막 직전에 사단의 왕을 잠시 풀어 쓰시는 것은 이 세상의 마지막 심판 작업(악인을 응징하시고 참 성도를 선별함)에 마귀를 이용하시기 위함입니다(욥1:8-12,잠16:4).

2. 성도가 누릴 천년 왕국에 대한 말씀입니다(4-6).

1) 4절에 보시면 “천국 보좌에 앉은 자들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예수님과 더불어 왕노릇하는 것”을 의미하며, 또 주님의 심판권과 영광권(榮光圈)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예수님의 재림 때에 “같이 심판한다”는 말씀은 고전6:2,마19:28,눅22:30 등에도 나타나 있고, 성도가 그 심판권을 행사하며 권위와 영광을 누리는 자체가 곧 왕노릇인데, 이에 대한 말씀이 딤후2:12과 벧전2:9에 나타나 있습니다. 성도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과 연합된 자이기 때문에 현세에서도 왕같은 제사장이요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예수님의 재림 후에는 그 심판석에 앉아 주님과 함께 세상을 심판하므로 더욱더 왕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2) 4절 끝에서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동안 왕노릇할 자가 있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으므로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① 사도 요한은 계시를 통하여 천국에서 왕노릇하고 있는 자들을 본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다가 순교한 자들이었고 또 지상에서 큰 핍박을 견디며 짐승과 우상(세상주의)에 타협하지 않으므로 믿음의 지조를 지킨 거룩한 성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지상에서 고난을 당하며 사명을 다하고 믿음을 지킨 성도들이 천국에 가서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왕노릇함이 당연한 것입니다. 여기의 천년은 무궁한 세계를 의미합니다.

② “그들이 살아서”란 뜻은 그들의 영혼에 부활체를 힘입은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순교자들과 믿음의 지조를 지키고 죽은 자들이 그 영혼만 천국에 가 있는 것도 산 것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서”라는 단어 ‘에제산’(ἔζησαν)은 “몸으로 부활한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요한이 본 계시는 그들이 몸과 함께 천국에 살아 있으며 왕노릇하는 것을 본 것입니다. 그들이 먼저 부활할 수도 있겠지만 또 영적 계시로도 그렇게 나타날 수 있을 것입니다.

③ 문제는 천년이란 기간입니다. 이 천년은 천년 왕국 시기와는 달리 천국의 일정한 시기를 뜻합니다. 지상의 천년은 “마귀의 왕이 갇히므로 마귀의 유혹이 약화되어 복음이 전파되는 교회 시대”라 하였는데, 천국의 천년도 그 기간에 준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 시대가 끝나고 주님이 지상에 재림하여 심판하실 때까지 하늘 보좌에서 먼저간 영혼들(특히 순교자들)이 안식하며 왕노릇함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3) 5절에서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하심은 불신앙으로 죽은 자들이 그 천년 기간 안에 부활(심판의 부활;행24:15)하지 못하며, 따라서 첫째 부활인 주님 재림시에 성도가 부활할 때 함께 부활하지 못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4)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며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하리라”고 하셨습니다(6).

① “첫째 부활”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성도가 지상에서 변화되고 무덤에서 부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영화의 완성자들이며,

②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지 못함”은 마귀가 죄나 심판과 관련하여 그들을 더 이상 괴롭히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공중에서 재림의 주를 영접하고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③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된다”는 것은 24 장로들이나 천사들처럼 하나님과 예수님께 섬기며 영광 돌리는 일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땅 위에서도 “왕같은 제사장이라”(벧전2:9)고 하였습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여러 가지 제사로 하나님을 섬기듯 속죄의 제사가 끝난 후에는 모든 성도가 예배와 생활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④ “천년동안 왕노릇 함”은 사단과 악인들을 부활케 하여 심판하시는 때까지 특정한 기간이 있음을 뜻합니다. 이 특정 기간은 천국의 시간이므로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을 수 있으므로(벧후3:8) 그 기간을 예측할 필요가 없습니다. “왕노릇”은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함을 뜻합니다.

3. 잠깐동안 놓인 사단의 역사(7-10).

1) “천 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고 하였습니다.

① “천년 기간”은 천국에서의 천년과 또 지상의 교회 시대를 의미하였으므로 세상 종말과 함께 교회 시대가 끝나려는 무렵 사단이 놓여 마지막 발악을 할 때 땅 위의 남은 성도는 확고한 믿음을 가진 자만 견디게 될 것이요 또 사단의 역사로 곡과 마곡이 미혹되어 싸움을 결의하고 교회와 성도를 대적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② “곡과 마곡”은 정관사 용법에 의하여 단일 명사이며, 따라서 한 나라 즉, 적그리스도의 단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의 나라가 열이라도 뜻을 모으면 한 나라, 한 단체의 형태가 될 수 있습니다. 또 “곡과 마곡”은 창10:2과 겔38:1-6과 39:1-3에도 나타나는 지명인데, 이는 이스라엘 북부 지역으로 선민의 원수 나라를 뜻합니다. 9:13-18의 여섯째 나팔 재앙에서 유브라데 강가에 결박한 천사가 놓여 2 만만의 수를 이루고 땅의 사람 1/3을 죽인다는 말씀과 상통하는 뜻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곡과 마곡”은 유브라데 지역을 의미하며, 인류 역사 최후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의 국가나 단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2)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단체)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한다”고 하셨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권력과 물력 또는 과학의 힘까지 동원하여 성도의 순결한 생활을 해치고 교회를 파괴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최후에는 하나님이 하늘의 불로 소돔성을 멸하시듯 악의 세계를 불태우실 것입니다.

3) 그리고 성도를 미혹하던 하나님의 원수 마귀를 그 추종자 짐승(세상주의자들)과 거짓 선지자들까지 함께 불과 유황못에 던져 영원한 심판을 가하시고 완전히 격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는 부활한 악인들도 함께 벌을 받는 최종 심판의 때입니다. 지옥은 마귀와 악인이 함께 가는 불못이요 밤낮 괴로움만 당하는 영원한 형벌의 장소입니다.

4. 심판의 결론(11-15).

11-15절의 말씀에는 최종 심판에 대하여 결론 짖는 내용을 말씀하셨습니다.

1) 11절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보좌”를 말씀하셨습니다.

① 크고 흰 보좌에 앉으신 분은 예수님이요, “크고 흰 보좌”는 위엄과 성결을 뜻하고,

②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음”은 보좌만 계시되었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유리 바다가 있듯이 새 하늘과 새 땅도 있을 것입니다(4:6,15:2,21:1,18).

2) 그 때에 12절에서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앞에 섰다” 하였으니, 이는 최후 심판을 받기 위하여 악인들이 부활하여 심판 받는 장면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3)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심판의 책은 생명록과 행위록입니다. 생명록은 구원받은 자의 명단이고, 행위록은 각자의 행위를 따라 심판하실 근거의 책입니다. 생명록에 있는 성도는 지옥에 가는 심판을 받지 않으며(요8:24), 행위록에 따라 상급에 차별 있는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마25:21,벧전4:18,약3:1). 악인도 차별 없이 지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생명록에 없으므로 지옥에 가되 그의 행위에 따라 차별 있는 형벌을 받게되는 것입니다(요19:11,히10:29,벧후2:10).

4) 13절에서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①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줌”은 무덤 없는 죽은 자의 부활을 뜻하고,,

② 사망과 음부가 죽은 자들을 내어 줌은 무덤 있는 죽은 자의 부활을 뜻합니다. 그래야 인류 전체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③ 그들은 다 각자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기 때문에 그 심판은 공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종 심판에는 단체적인 것은 없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개인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단체 중에서라도 자기의 할 사명이 있음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5) 14-15절에서 “사망과 음부는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이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운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악인이 지옥에 가되 사망과 음부인 악인의 거처까지 불못에 던지운다는 것을 뜻합니다. 비유하면 시체의 관들까지 또는 뱀을 가두었던 그릇까지 불못에 던지므로 악의 모습과 흔적까지 없앰을 뜻하는 것입니다. 사망과 음부는 악인의 영이 고통당하는 임시 구치소같은 장소를 뜻합니다. 구원받은 영혼은 천국에서 안식하다가 부활과 심판 후에 모든 구원 절차가 완성되고 악인의 영혼은 음부에서 고난을 당하다가(눅16:23) 부활한 후 심판을 거쳐 영원한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둘째 사망입니다(14).

 

 

설교보충 15. 천년왕국설 (계 20:1-7) 목록으로


위 본문 말씀에 근거하여 “천년왕국설”이라는 제목으로 뜻을 상고하겠습니다.

1. 천년왕국이란 사단이 없고 죄가 없으며 고통이 없는 낙원 세계에서 예수님과 더불어 성도들이 천년동안 낙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가 영원한 천국에서 성취되는 것이라면 논할 여지가 없지만 그 이전의 어떤 세계에서 누릴 수 있는 복을 주셨음에 대하여 살피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연구학설 세 가지가 있어서 그것을 소개하고 바른 이해를 하시도록 말씀드립니다.

2. 이 천년왕국 세계를 가능케 하는 성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계20:2에서 “하나님이 사단을 일천년동안 무저갱에 가두어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단이 갇히면 그 기간에는 사단의 본격적 활동이 중지되거나 위축될 것입니다. 중지되느냐 위축되느냐에 따라서 해석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① 중지된다면 무죄 시대를 연상해야 할 것이요,

② 위축된다면 어느 정도의 범죄 활동이 있지만 그 반대로 믿음과 교회의 역할이 가능함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2) 천년이란 기간을 천년 그대로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특정 시기를 말씀하는 상징적 표현으로 볼 것인가에 대하여 역시 연구 방향이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3) 4절에 보시면 “이마와 손에 그의(짐승)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동안 왕노릇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강론문에서는 이미 천국간 성도가 누리는 상태로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살아 있으면서 사단의 유혹이 없는 세계에서 고난이 없이 자유를 누린다는 뜻이라고 할 때 이 사실은 사단의 1천년 결박으로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4) 사11:6-9에 보시면, “그 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의 의미를 곡해하여 천년왕국의 무죄한 생활로 해석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신약 시대에 있을 성령 충만의 생활을 비유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천년왕국 기간을 교회 시대로 해석한다면 성령 충만의 신약 시대를 예언한 말씀과 상통하는 면도 있지만 알지 못하는 성도들이 이 말씀을 무죄한 특정 시대로 해석하여 천년왕국을 동경하는 것은 바른 이해가 아니기로 말씀을 드립니다.

3. 위의 천년왕국에 대한 말씀을 해석하는 차이에 따라 세 가지 학설로 나누어집니다.

1) 후천년설입니다.

① 후천년설의 뜻은 “예수님의 재림이 천년왕국 후에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결국은 예수님 재림 전에 이 세상이 마귀 없는 지상 낙원으로 천년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② 마귀를 가두는 시기와 방법을 연구함에 있어서 시기는 재림 전, 후시대를 뜻하고, 방법은 하나님의 자연 은총(인간 문명의 발달)과 성도의 복음 운동(빛된 생활)으로 마귀를 이김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귀가 갇히는 것은 세상의 문명과 복음의 힘에 밀렸다는 뜻이지요. 위의 주장에서 전자는 자유주의라 하고 후자를 보수주의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③ 그러면 이 두 가지 견해가 성립될 가능성이 있을까요 ? 우선 자유주의 사고 방식을 검토할 때 요즈음 물질문명이 좋아져서 편리한 것이 많음은 사실이지만 인간의 경쟁이 계속되기 때문에 바쁜 일과 마음쓰는 일이 점점 증가되어 차라리 원시적 생활로 단순하게 살아가는 세계를 동경할 형편도 있지만, 여하튼 인간의 교육이나 사회 혁명 또는 의술에 의한 질병 제거 등 사회적 방법으로 그런 세계가 성취될 수 있다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또 보수적 견해는 천년왕국이 말세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고 복음시대 전부를 의미하는데, 복음시대의 마지막에는 복음의 융성으로 은혜로운 천년시대가 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학설은 신신학과 사회적 복음주의 계통에서 주장할 뿐 바른 견해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많이 보급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④ 또 보수적 견해가 합당치 않은 이유는 예수님의 말세관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24:6-14,21-22,눅18:21,25-28,딤후3:1-13 등에서 “말세에는 화평이 없고 환난 중에서 예수님을 맞이한다”는 말씀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또 눅18:18에서 예수님은 “말세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하셨는데, 말세에 복음 운동이 잘되어서 죄를 짓지 않고 천년이나 낙원 시대가 지상에 있게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말세가 될수록 어려운 시대를 맞이한다는 대비적 신앙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⑤ 이런 학설이 나오게 된 배경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세대주의란 학설입니다. 세대주의는 하나님이 6일 간에 만물을 창조하셨고 7일에 안식하셨은즉 “하루가 천년같다”는 벧후3:8에 근거하여 이 세상을 칠천년으로 한정하고 또 일곱 시대로 구분합니다. 일곱 시대의 구분은,

㉠ 타락전 아담의 무죄 시대요,

㉡ 타락 후부터 노아 홍수까지 양심 시대요,

㉢ 홍수부터 아브라함을 부르시기까지 하나님의 직접 통치 시대요,

㉣ 아브라함을 부르신 때부터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시기까지 언약의 시대요,

㉤ 율법을 주신 때부터 예수님의 성역 시작까지 율법 시대요,

㉥ 예수님의 성역부터 천년왕국 전까지 은혜 시대요,

㉦ 그 다음이 천년왕국 시대요, 그 다음이 세상을 벗어나는 영원 천국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대주의의 특징은 그 일곱 시대에 따라 하나님의 구원적 통치 방법이 달라서 “은혜 시대”(현재)에는 십자가로 구원하시지만 율법 시대에는 율법의 행위로 구원하시고, 양심 시대는 양심적 생활에 따라 구원하시고, 언약 시대에는 언약으로 구원하신다 하므로 십자가 구원의 은총을 전 인류에게 국한시키지 않고 복음 시대에만 국한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대주의는 이단설이나 진배가 없는 것입니다. 또 그들의 말대로라면, 인류 역사의 한도를 6,000년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서기 2,000년대부터는 천년왕국이 도래한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모두가 성경적이 못됨을 아셔서 경계하셔야 합니다.

2) 전천년설입니다.

① 전천년설은 예수님의 재림이 천년왕국 전에 있어서 재림하신 예수님과 더불어 지상에서 천년간 무죄한 낙원시대를 살게된다는 것입니다.

② 이 경우에 사단이 갇힌 것은 죄를 용납하지 않는 결과로 이해하게 되고 또 재림하신 예수님이 땅 위에서 의로운 성도들과 함께 사시는 것이 마치 에덴 동산같은 세계를 동경하게 하는 것입니다.

③ 이 때에 지상에 있는 사람들은 악인들이 재난으로 죽고 없으므로 의인들만 남게 되고 또 예수님의 재림 때에 무덤에서 부활한 성도들도 같이 와서 살게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가운데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말하기를 “예수님이 재림하여 부활한 자와 변화된 성도를 공중에서 영접하여 지상으로 오시면 그 도읍지는 예루살렘이 되고, 그 때에 유대인의 남은 자들을 구원하시며(롬11:26-27;유대인 혈통의 남은 자로 해석하지만 ‘온 이스라엘의 구원이란 세계 중에서의 택한 백성을 의미함), 사단과 악한 자들을 응징하셔서 평화의 세계를 만드시는데, 그 평화의 세계에 대한 예언인 사2:4,11:6-9,미4:3-4 등이 성취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의 성경은 천년왕국을 그런 의미로 예언하신 것이 아니요 신약 시대의 성령 충만한 세계를 비유적으로 예언하신 것임을 앞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

④ 이 학설에 의문을 갖는 성도들은 계시록에 나타난 여러 종류의 숫자(삼년 반, 144,000, 666) 중에서 본문의 천년만 여자적으로 해석할 수 있느냐 하면서 숫자 해석에 일관성이 없음을 지적하기도 하며,

⑤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때는 부활한 성도와 변화된 성도가 합하지만 다시 세상에 내려와서는 그 때에 남아있는 자 중 회심하는 유대인들을 모아서 또 합한다고 하였으니 그 때에 죽음을 맛보았던 변화된 성도와 죽음을 맛보지 않았던 육체적 성도가 어떻게 조화될 것이냐고 할 때 상당한 의문을 가지게 합니다.

⑥ 또 예수 님이 재림하신 후 즉시 심판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나타내신 말씀에 비할 때(마25:31-33) 전 천년설은 예수님의 재림 직후의 심판이 있은 후 또 천년왕국에 살았던 사람들을 심판하셔야 하는 번거러운 절차에 설명이 없어서 의문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천년설을 적당하게 정리하여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3) 무천년설입니다.

① 무천넌설이란 천년왕국이 없다는 뜻이 아니요 후천년설이나 전천년설같은 천년간의 지상 낙원은 없고 “예수님 초림부터 재림 때까지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성도의 생활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초림부터 시작되었고(막1:15), 낙원 천국은 재림으로 시작되기 때문에(마13:24-30,눅23:43) 그 사이인 교회 시대가 천년왕국의 시기이며,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생활이 곧 천국 생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눅17:21).

② “사단을 가둔 뜻”은 예수님의 부활로 사단의 무기인 사망을 꺾으셨으므로 사단이 치명적 상처를 입고 상당 기간 강한 활동이 통제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사실이 사단의 감금으로 나타나고 사단의 강한 역사가 통제되는 기간에 신약의 교회 활동과 은혜의 역사가 나타나서 성도들이 은혜를 받고 주님과 더불어 신앙의 왕국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③ “사단이 천년 후에 잠깐 놓임”은 말세지말에 있을 환난 역사에 이용되고, 이어서 심판을 받기 위하여 나오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해석은 어거스틴과 칼빈 등 많은 신학자들이 지지한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저희들은 현실 천국과 내세 천국을 연결하는 상태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곳이 천국이며, “천국은 이미 지상에 임하였다”고 하셨습니다(마12:28,막1:15,눅17:21). 따라서 사단의 역사가 없는 곳이 내세의 천국인 줄로 아셔야 합니다(20:10,22:5,15).

 

 

제 33 과 새 예루살렘의 모습과 생활 (계 21:1-8)목록으로


이 말씀을 구분하면,

① 새 예루살렘의 계시(1-2),

② 위로의 말씀(3-5),

③ 이긴 자와 진 자에 대한 선포의 말씀(6-8)으로 나눌 수 있고, 총제목을 “새 예루살렘의 모습과 생활”로 정할 수 있습니다.

1. 새 예루살렘의 계시(1-2).

1) 사도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처음 보았던 하늘과 땅과 바다는 있지 않았으니(1),

① 여기의 새 하늘과 새 땅은 지상의 세계에 비할 때 완전히 다른 새 세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새롭다”는 의미의 단어 ‘카이논’(καινόν)이 품질이나 종별상으로 다른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천국은 현실에 비할 때 모든 것이 새롭고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② 이 때에 요한이 처음 보았던 하늘과 땅을 살펴 보았는데 이것은 지상의 하늘과 땅을 생각한 것이 아니고, 4:2-6에 나타난 “처음에 본 하늘의 보좌”를 생각하였지만 그런 것이 아니더라고 한 것입니다. 이 사실은 영계의 천국이 현세와는 성질상으로 다를 뿐 아니라 천국 세계 자체도 무궁한 변화와 새로움을 나타내는 세계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2)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셨습니다(2).

① 여기에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천국)에 있는 도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곳을 거룩한 성이라 하신 것은 죄가 없는 거룩한 세계이기 때문이요,

② 또 “새 예루살렘”이라 하신 것은, 예루살렘이 선민 이스라엘을 통한 영광과 통치의 중심지로 천국의 모형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고 다윗의 왕국이 있던 곳은 천국의 모형이었습니다.

③ 그리고 그 세계가 “하늘로부터 하나님께로 내려왔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런 세계를 구원받은 자들에게 친히 제공해 주신 의미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3)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 하셨으니, 이것은 천국이 아름답고 완벽함을 뜻하는데 그 완벽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손색이 없을 만큼 완벽하다는 것입니다. 신부가 결혼식에 나가기 위하여 몸을 단장할 때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을 만큼 최고의 아름다움을 보이도록 단장한 것처럼 천국이 아름답게 보여진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주신 위로의 말씀입니다(3-5).

보좌에서 나온 말씀은 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5절 이하의 말씀은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고, 본문의 위로의 말씀은 천사를 통한 증언입니다(3).

1)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인간의 장막이라고 한다면 천국은 하나님의 장막인데, 구원받은 인간을 하나님의 장막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장막에서 함께 살게 하신다는 것이요, 그렇게 되면 성도가 지상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이라”(창17:7,출20:2) 하신 것처럼, 천국에서는 하나님의 집에서 함께 사는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2) 그 때에 하나님이 “고난 당한 모든 성도의 눈물을 씻어 주신다” 하였으니, 이는 충분히 위로를 주신다는 뜻이요, 또 그 곳에는 사망이나 애통함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있을 수 없는 곳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만물을 새롭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땅을 디디고 코로 숨쉬어야 하는 지상의 세계가 아닌 영의 세계를 새롭게 만드신 것입니다.

3) 이때에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이 이 말씀을 기록하도록 명령하셔서 요한은 기록하게 되었고, 기록된 말씀이 성경으로 전달되어진 것입니다.

3. 이긴 자와 진 자에 대한 선포의 말씀(6-8).

1) 6절에서 “다 이루었다” 하셨는데, 무엇을 다 이루셨다는 뜻일까요 ? 창 2:1에서는 “천지 만물이 다 이루었다” 하셨고, 요19:30에서는 “구속 사업을 고난으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본문에서의 “다 이루신 것”은 천국 건설을 다 끝내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결혼을 약속한 가족을 위하여 그들이 살 좋은 집을 완성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다 준비하셨으므로 피조물인 성도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살기만 하면 됩니다.

2) 또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하셨으니 이것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시작하시는 주(主)요, 모든 것을 끝내는 주라는 뜻입니다(1:8).

3) “하나님이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6-7)고 하셨습니다.

① 지상에서는 인간들의 목마름(부족함, 욕구 불만 등)이 있으나 천국은 모든 것을 채워주시는 곳이기 때문에 부족이 있을 수 없습니다.

② 생명수 샘물이란 천국의 생명체들에게 그 욕구를 채워주시는 은혜를 뜻합니다.

③ 이런 은혜는 “이긴 자”에게 주십니다. “이긴 자”는 마귀의 유혹에 대하여 승리한 자를 뜻하므로 곧 신앙의 지조를 지킨 자를 뜻합니다.

④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특권을(요1:12) 약속대로 누릴 것입니다. 요1:12에서는 “자녀의 권세”라 하셨지만 천국에서는 성의 구별이 없으므로(눅20:34,35) 영광의 특권과 상속을 받는 아들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4) 8절에서는 천국의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둘째 사망인 지옥에 갈 자들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① 두려워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자들이요(6:15-17, 18:15-19),

② 믿지 않는 자들이요,

③ 흉악한 자들(행실이 옳지 않고 합리적이 못됨)이요,

④ 살인자들(생명을 경시함)이요,

⑤ 행음자들(육신을 죄의 도구로 사용함)이요,

⑥ 술객들(미신과 사교자들)이며,

⑦ 우상 숭배자들과,

⑧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도가 믿음 생활을 하면서도 이상과 같은 종류의 죄를 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모든 죄에서 사함을 받고 구원도 받습니다. 성도가 이상과 같은 시험을 받을 경우에 연약하여 한 번쯤 범할 수는 있지만 계속 범하지는 않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범죄는 믿음 밖에서 회개할 줄 모르며 범죄를 일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한다” 하셨으니, 이는 둘째 사망이요, 마귀와 함께 가는 지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20:10).

이상의 말씀에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세계와 충분한 위로와 충만한 은혜의 만족이 성도에게 있을 것을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제 34 과 새 예루살렘의 모습 (계 21:9-27)목록으로


이 말씀의 내용을 구분하면,

① 계시를 전개하시는 과정(9-10),

② 예루살렘 성의 광채와 열두 문(11-14),

③ 금 갈대로 성곽을 척량함(15-17),

④ 성곽의 재료(18-21),

⑤ 새 예루살렘의 영광스러운 장면(22-27)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총제목을 “새 예루살렘의 모습”으로 정하였습니다.

1. 계시를 전개하시는 과정(9-10).

이 계시의 전개는 “일곱째 대접 재앙을 가진 천사”의 증언과 안내로 시작되었고(15:1,16:17), “어린 양 예수님의 신부될 자를 보이리라”(9)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이 계시에서 보인데가 없으므로 26절에서 들어오는대로 들어온 자들이 보게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재앙을 계시한 천사는 또 사도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도 보여 주었습니다. 이 장면은 환상을 통한 계시로 보게된 것이고 천국을 보여주시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2. 예루살렘의 광채와 열 두 문에 대하여(11-14).

1) 그 곳은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보석처럼 밝고 빛나는 세계라고 하셨습니다(11). 이 세상은 태양이 없으면 밝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태양 빛이 없어도 하나님 자신의 영광의 빛으로 항상 밝기 때문에 “밤이 없다”(25) 하였고, 그 빛의 아름다움은 지극히 귀한 보석(벽옥, 수정)의 빛깔처럼 맑더라고 한 것입니다. 요1:5에서 “예수님을 빛이라” 하셨으니까 이 빛은 영적 세계를 밝히시는 영광의 광채인 것입니다. 약1:17에서도 “하나님은 빛들의 아버지시요,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고 하셨습니다. 그 영광의 광채가 천국을 밝히실 수가 있었고, 그 밝음의 세계에 있는 모든 물질 전부가 보석이기 때문에 그 광채가 더욱 황홀한 것을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12절에서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으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이름 쓴 것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① 높은 성곽은 천국 세계의 웅장함과 공간적 경계를 계시하신 것이고,

② 열 두 문은 열두 지파의 상징으로, 선택받은 백성이 들어갈 수 있음을 표시한 것이며,

③ 문에 열두 천사가 있음은 보호하고 인도하는 천사와의 상부 상조를 나타냄이요,

④ 문들 위에 열두 지파의 이름이 있음은 성도들의 출입하는 분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확실한 자격과 명분에 의하여 들어가고 영광을 누리는 좌석제가 확실함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3) “열두 문이 동서남북에 세 문씩 나뉘어 있고, 열두 기초석 위에 성곽이 있으며 각 기초석 위에 12 사도의 이름이 있다”고 하셨습니다(13-14).

① 열두 문이 사방으로 세 개씩 분산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에서의 행렬과(민2:3), 에스겔이 본 도성의 계시와(겔48:30-35) 예루살렘 도성의 모형을 연상케 하여 천국이 완전한 도성임을 나타내 주신 것이며,

② 열두 기초석 위에 성곽이 있고, 그 기초석에 12 사도의 이름이 있음은 사도적 신앙으로 구원받고 사도적 신앙으로 교회가 설립된 것처럼(엡2:20) 천국도 그러한 것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3. 금 갈대로 성곽을 척량함에 대하여(15-17).

계시를 말하는 천사가(9), “새 예루살렘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갈대를 가졌더라”(15) 하셨고, 척량한즉 그 성은 정방형(正方形)으로 장광고(長廣高그)가 같으며, 전체 둘레의 길이는 12,000 스다디온이요, 성곽의 길이는 144 규빗이요,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고 하였습니다.

1) 이 도성의 장광고를 척량한 것은 그 규모를 알게 하기 위함이요,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는 뜻은 요한이 계시를 보면서 짐작한 것과 천사의 척량이 같았다는 뜻입니다. 11:1에서 “갈대 지팡이로 척량한 것”은 지상의 교회와 성도를 보호하는 의미가 있으니 본문의 금 갈대는 천국의 규모를 계시하기 위한 목적에서 잣대로 사용된 것입니다.

2) 그 성이 정방형에 고가 같은 것은 완전성과 균형성을 나타낸 것이요, 또 사면에 세 성문이 있는 것은 안정감과 질서와 미관을 나타낸 것입니다.

3) 성의 길이가 12,000 스다디온인 것은, 1 스다디온이 약 180m라 하므로 약 2,000km이고, 또 성곽 척량 수치는 144 규빗으로(1규빗은 약 50Cm) 약 70m의 길이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 난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성의 둘레와 성곽의 길이를 구별하는 점이요, 또 하나는 “성의 장광고가 같다”는 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곽도 성의 둘레를 뜻합니다. 18절에 보시면 성의 재료와 성곽의 재료가 다르고, 19절에서 성곽의 기초석이 각색 보석으로 꾸며진 것입니다. 여기에서 성은 도성의 둘레를 뜻하나 성곽은 사면에 세 성문을 건설한 성루같은 모형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입니다. 또 성곽을 척량할 때(17) 길이인지 높이인지를 구별하기 어려우나 장광고가 같다(16)는 말씀에서 높이를 나타내셨은즉 144 규빗은 한 면 거리 2,000km 사이에 포함되는 성곽의 길이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또 한 가지는 그 도성의 고가 장광과 같은 2,000km라는 뜻이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상상을 초월하는 영계의 도성이니까 계시대로 이해하여야 하며 그 규격을 그림으로 상상해 보십시오. 한 면의 길이는 성곽 길이의 약 300배가 됩니다.땅을 딛고 사는 현세적 생활은 평면적으로 살지만, 영계는 위치와 공간이 있을지라도 입체적으로 살 수 있고, 공간을 초월할 수 있을 것이므로 도성의 장, 광, 고가 같음에 대하여 오히려 합리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4) 그 길이가 12,000 스다디온인 것과 성곽이 144 규빗인 것은 12 수 또는 144,000의 수와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관계가 있다면 선민과 사도들과 충성된 성도들의 뜻을 담았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12 지파는 선민이요, 12 사도는 신앙의 표준이며, 144,000은 정결한 성도들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4. 성곽의 재료입니다(18-21).

“성곽은 벽옥, 성은 정금, 맑은 유리같고, 성곽의 기초는 각색 보석으로 꾸몄고, 열두 기초석이 다 특색있는 보석으로 되었으며, 열두 문은 다 한 진주요, 길은 유리같은 정금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성곽의 재료와 성곽 기초의 재료가 다르고, 열두 문의 재료는 다 진주요, 길은 유리같은 정금길이니 지상에서 생각하는 최고의 재료, 최고의 시설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 가지 보석이 나타내는 교훈의 의미가 있겠지만 통일성에 문제가 있어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천국은 값지고 안전하며 화려하고 깨끗한 곳임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5. 새 예루살렘의 영광스러운 장면입니다(22-27).

1) 22절에서 “성은 있으나 성전이 없음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곧 성전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요4:23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예배당을 성전으로 알고 또 예배당에 와야 하나님을 만난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요, 예수님을 성전으로 알고 성경 말씀으로 예수님을 어디서나 교제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셔야 할 것입니다.

2)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하나님의 영광이 빛이 되고 예수님이 등불이 되시기 때문이라”(23)고 하셨습니다. 어두움은 죄악의 그늘입니다. 천국은 어두움이 없고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그 세계를 밝히는 곳입니다. 따라서 밤이 없고 성문을 닫는 일도 없습니다(25).

3) 24절에서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 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만국에서 구원받은 왕같은 성도들이 다 한 처소인 천국으로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가지고 들어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 돌릴 영광이란 지상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생활한 선물 보따리일 것입니다. “만국의 영광과 존귀”(26)도 만국에서 생활한 영광스러운 활동입니다.

4) 27절의 말씀은 21:8의 뜻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천국에는 확실한 성도(생명책에 기록된 자)만 가는 곳입니다. 위장술로 들어가거나 무엇에 첨부되어 들어가는 비공식 구원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예수 믿는 생활을 확실하게 하셔야 할 것을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천국은 영적 세계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최고로 값지고 행복한 무궁 세계임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제 35 과 천국의 실상과 계시의 목적 (계 22:1-10)목록으로


이상의 말씀을 구분하면,

① 천국의 실상(1-5)과,

② 계시를 주시는 목적(6-10)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천국의 실상과 계시의 목적”이라고 정하였습니다.

1. 천국의 실상(1-5)

1) 1절에 보시면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 강물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고 하셨습니다.

① 강은 경치상으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인간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는 요긴한 자연의 축복입니다. 역사의 문명지나 현대의 도시가 강을 접하고 있는 것은 그만한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사는 세계에 산이나 나무나 강이 없다고 가정해 보세요. 굉장히 삭막할 것입니다. 천국은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에 강물이 있습니다. “그 강물은 맑고 그 물이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른다”고 하신 것입니다.

② 그러면 이 생명 강물의 의미가 무엇인가 ? 할 때,

㉠ 천국 세계의 아름다운 풍경의 하나요,

㉡ 그 물을 “생명강수”(生命江水)라 하셨으므로 영적 생명의 양식을 공급하는 은혜요,

㉢ 그 물이 하나님 보좌로부터 나왔은즉 맑고 성결한 것이요, 따라서 생명 공급의 근거가 되시는 예수님이심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창2:10에 보시면 죄없는 에덴 동산에도 강물이 있었고, 겔47:1-5에서도 영적 세계에 생명강수의 역할이 있을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또 요7:39에서 “성령님의 역사”를 생수의 역할로 비유하여 설명을 하신 것입니다. 천국은 영계(靈界)이기 때문에 물이나 나무 열매를 꼭 육체적으로 먹어야만 사는 곳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강물은 생명강이고 나무는 생명 나무이니,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시는 천국의 양식일 뿐 아니라 영생하며 기쁨을 누리는 만가지 은혜의 요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 또 그 강물이 길 가운데로 흐르는 것은 풍경미와 함께 죄우에 있는 생명과를 맺게 하기 위함입니다.

2) 2절에 보시면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나무들이 열두 가지 실과를 맺은 것은 하나님과 천국 백성들을 기쁘게 함이고, 그것이 “달마다 맺히는 것”은 열매없는 계절이 없다는 뜻이요, “그 잎사귀가 만국을 소성시킨다”는 것은 모든 백성들의 영혼을 힘있게 한다는 뜻입니다. 창2:9에 보시면 에덴 동산에도 생명 나무가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창3:22에서 그 생명 나무 실과를 따먹으면 영생을 하는데 타락한 자가 영생할까 하여 화염검으로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천국의 생명 나무도 생명강수와 함께 영생을 주시는 요소를 뜻하며, 그것이 천국에서 개방되어 있음을 보이신 것입니다. 따라서 생명강수와 생명 나무는 천국의 풍치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백성에게 무궁한 은혜인 영생을 보장하는 축복의 시설이라고 보셔야 하겠습니다.

3) 3절에서 “다시 저주가 없고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며 그의 종들이 그의 얼굴을 보며 섬기고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① “다시 저주가 없음”은 유혹과 죄가 용납되는 세상과 같지 않음이요,

②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음”은 생명강수의 근원처에 있다는 뜻이며, 하나님의 거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생명수를 만끽하는 성도들과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성도들이 말씀과 성령님과 함께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③ “그의 종들이 그의 얼굴을 보며 섬기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얼굴을 밝히 보며(고전13:12) 주님의 뜻에 따라 행동함을 뜻하고, 천국에서의 섬김이란 수고가 아닌 영광돌리는 경건 행위를 뜻합니다.

④ “그의 이름이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하심은 본래부터 성령으로 인침을 받고 간 영혼들이기 때문입니다(엡1:13,딤후2:19,계7:2-3).

4) 5절에서 “그 곳은 밤이 없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시며 세세토록 왕노릇 하심이라” 하신 말씀은 11:15과 21:23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2. 계시를 주시는 목적에 대한 말씀입니다(6-10).

1) 신실하고 참된 말씀임을 믿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 말씀은 6절에서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하셨고,

2)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천사를 보내어 계시하게 하신 것입니다. “속히 될 일”이란 말세의 도래를 뜻하는 것으로, 성도가 쉴사이 없이 준비하고 깨어 있으라는 뜻이요, 1:1-3에서도 설명을 드렸습니다.

3) “이 말씀을 지키게 하시기 위함”입니다(7). 성경은 “읽고 듣고 지켜서 복받게 하시기 위하여 주셨다”고 1:3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4) “이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하신 것은 “쉽게 밝혀서 널리 증언하라”는 뜻입니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것도 이 말씀에 복종하기 위함입니다(10).

결론적으로 8절에서 이 계시를 받는 요한이 계시를 전달하는 천사에게 경배를 하려고 엎드렸을 때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이 책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된 종이니 내게 경배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라” 하시므로 천사나 구원받은 성도들이 다 하나님 앞에서는 종이란 사실을 알 수 있고, 히1:14에서 천사는 “구원 얻을 후사들을 섬기는 존재”라고 하셨은즉 천국에서도 역시 그런 존재로 아셔야 할 것입니다.

 

 

제 36 과 계시록의 결론 (계 22:11-21)목록으로


위의 말씀을 분류하면,

① 예수님의 상벌(賞罰) 시행과(11-15),

② 교회를 통한 구원의 초청과(16-17),

③ 계시의 말씀에 대한 책임(18-19), 그리고

④ 전체의 결론(20-21)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총제목을 “계시록의 결론”으로 정하였습니다.

1. 예수님의 상벌 시행에 대하여(11-15).

1) 11절에서는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하시므로 말씀이 전파될 때 악한 자는 여전히 그 말씀을 받지 않으므로 불의와 더러움이 계속되고 또 의로운 자나 거룩한 자는 그 말씀을 받아서 거룩을 이루어 나가는 일이 세상 끝날까지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될 때 거듭난 자는 깨달으며 회개하고 큰 은혜를 받으나 비택자로 영의 눈을 뜨지 못한 자는 여전히 죄악에 머무는 일이 말세까지 있을 것이나 전파의 사명은 게을리 할 수 없다는 것이요,

2) 12절에서 “예수님이 속히 오셔서 각 사람의 일한대로 상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상은 예수님이 주시고 각자에게 주시며 각자의 일한대로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13절의 말씀은 1:8에서도 언급하신 말씀입니다.

3) 14절에서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는 복이 있다”하셨으니 이것은 이 세상에서 철저하게 회개하는 생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천성에 들어가서 천성 문을 통과하고 신령한 은혜의 공급처인 생명 나무에 나가기 위해서 회개한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천국의 은혜는 지상에서 철저히 회개하므로 거룩한 생활을 할 때 이것이 두루마기를 빠는 것이요 천성의 복을 받는 방법인 것입니다. “천성 문을 통하여 들어갈 권세를 얻음”은 회개의 공로가 아닌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만 회개는 믿음 있는 자의 증표이기 때문에 회개를 천국을 통과하는 권세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생명 얻는 회개”란 말씀도 있습니다(행11:18).

4) 그러나 15절을 보시면 “구속받지 못한 불결한 자(개들), 살인자들, 우상 숭배자들, 거짓말을 좋아하며 말을 지어내는 자들”은 다 성밖에 있으므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21:8,27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성밖, 지옥으로 쫓길 자는 종시 회개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2. 교회를 통한 구원의 초청(16-17).

1) 16절에서 “예수님은 교회들을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보내어 이 말씀들을 증거하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교회들을 위하여 말씀이 증거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보존과 증거의 사명이 있으며, 말씀이 성도들에게 공급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든든하게 하는 것입니다(행12:24).

2) 16절에서 예수님은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다윗의 뿌리”라고 하신 것은 다윗의 근원자요 다윗의 조상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의 자손”이란 것은 다윗의 조상이요 근원자이신 예수님이 또 다윗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을 가리켜서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하신 것은,

① 민24:17에서 별을 왕으로 상징한 말씀이 있는 만큼 예수님의 왕적 영광을 표현하심과 동시에,

② 새벽별은 아침의 밝은 새 세계를 예고하는 별이므로 신천신지의 세계를 예고해 주시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저희들은 알파와 오메가(Α Ω)되시고, 다윗의 뿌리와 자손이 되시며, 새벽별이 되신 예수님을 깊이 대망하셔야 할 것입니다(설교문 참조).

3) 17절에서 “성령과 신부가 말하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와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셨으니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요한에게 계시될 때 천국에 계신 성령님과 신부(교회)도 역시 그 증거의 말씀을 다시 화답하여 재연하는 상태를 묘사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하늘과 땅의 모든 교회는 물론 성령님과 천사들과 모든 사역자들이 뜻을 모아 증거해야 될 말씀이란 뜻입니다.

3. 계시의 말씀에 대한 책임입니다(18-19).

계시의 말씀에 대한 책임은 가감을 피하여 보존 증거하는 것입니다.

1) 18,19절에서 “이 예언의 말씀인 계시록의 내용을 가감하면 치명적인 벌을 받을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계시록만 하나님의 말씀인가 ? 할 때에 모든 성경이 다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전체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전체는 가감할 수 없는 말씀이고, 그것을 가감하는 징벌은 계시록에 기록된 재앙을 받거나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는 벌을 받으니, 이것은 구원받고 안 받는 문제를 가름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완성되었습니다. 이 완성이란 의미는 성경에서도 말씀하셨지만(히1:1,유3) 또 “가감할 수 없다”는 말씀이 증명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말씀의 한 점을 가감하여도 그것이 큰 죄가 되어 구원을 받지 못하는가 ? 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는 것은 일 점이건 몇 마디이건 예수님을 거짓말하시는 분으로 인정하여 부인하는 것이므로 큰 죄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 생활을 잘 하려는 성도는 오직 성경 66권의 권위만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생명록의 이름을 빼거나 책에 기록된 재앙을 더한다” 하심은 구원받지 못하게 됨을 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반드시 절대 무오한 진리로 믿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잘 알지 못하면 무심코 성경을 가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초의 인류인 아담이 “정녕 죽으리라” 하신 것을 “죽을까 하노라”로 감하였고(창2:17,3:3), “먹지 말라” 하신 것을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셨다 하므로 가(加)하였습니다(창2:17,3:3). 성경의 어느 부분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신화라 하거나 또 어느 부분의 말씀만 필요하다 하는 것도 역시 성경을 제함이 되는 것이요 성경 말씀 외에 다른 계시를 믿으려 하는 것도 말씀을 가하려는 잘못이 되는 것입니다.

4. 전체의 결론(20-21).

1) 20절에서 이 계시를 받은 요한은 “주님이 속히 오신다”는 약속을 받았을 때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므로 주님의 약속이 속히 성취되기를 기도하게 되었고,

2) 21절에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 것이라” 하시므로 최종 사도의 마지막 축복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때의 교회의 형편과 마지막 시대에 있을 환난과 적그리스도의 세상주의와 성도들이 당하는 수난과 믿음을 지키며 투쟁하는 성도와 마지막 세상에 있을 재앙들과 공의로운 심판과 천국과 지옥, 성도의 최종 승리와 영광 그리고 말씀에 대한 사명들을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설교보충 16. 일한대로 갚아 주심 (계 22:12)목록으로

(임직식 설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1. 하나님이 주신 교회의 직분을 최고로 사랑하고 효과적으로 봉행(奉行)하여 그로 인한 상급이 있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하십시오. 어떤 사람에게 직분을 맡기려 하니까 “할 사람이 없으니까 억지로 떠맡긴다” 하면서 자기를 붙들어 이용하므로, 이용당하는 줄로 알고, 대단하지 않게 여기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받아도 별 것이 아니고, 안 받아도 서운하지 않은 생각에 머무른 것입니다. 성도가 예수님과 교회와 직분을 사랑하지 않으면 복되지 않음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어떤 감리교 여성도 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 영감님에게 장로 직분 주신 것이 너무도 감사하여 영감님이란 호칭과 장로님이란 호칭을 비교해 볼 때 장로의 직분이 너무도 귀하고 사랑스러워서 자기 집에서도 “여보, 영감님” 하지 않고 “장로님”으로만 부른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장로님은 그 교회에서 그 직분으로 덕을 세웠고 또 그 당시에는 축복을 받았으니까 지금도 많이 받았을 줄로 믿는 것입니다.

마태는 자기가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것이 감사하여 즉시 큰 잔치를 배설하였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이 자기 집에 유하시겠다”는 말씀에 감사하여 뽕나무에서 급히 뛰어 내렸고 자기의 재산을 바쳤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자기를 “사람 낚는 어부되게 하시겠다” 하실 때에 주님께 쓰임 받는 것이 너무도 귀하여 배와 그물 그리고 가정까지 버리고 즉시 따라 나섰습니다. 어떤 나귀 주인은 예수님이 “자기의 나귀를 쓰시겠다” 하실 때에 너무도 감사하여 이유를 묻지 않고 드렸습니다. 바울 사도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 딤전1:12에서 “주께서 나를 충성되이 여기사 직분을 맡겨 주셨으니...전에는 내가 알지 못하고 주를 훼방하였으나....이제는 정말 잘해야 되겠다” 하고 결심을 하면서 직분 수행을 잘하며 총력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직분과 책임을 귀중히 여길 줄 알고 사랑할 줄 아셔서 선한 목적과 선한 방법으로 직분 성취와 축복을 침노해 나가는 분들이 되셔야만 할 것입니다.

2. 마11:19을 근거로 하여 볼 때 “여인이 낳은 자녀 중에 요한보다 더 큰이가 일어남이 없다” 하신 이유를 아셔서, “세례 요한처럼 위대해지는 표준을 두고 행하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성경에 모세, 엘리야, 베드로, 바울, 다니엘 등 훌륭한 분들이 많은데 요한이 가장 위대한 자로 인정받은 이유는 순결과 겸손과 의가 충만하였고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한 사명에 충성하였기 때문입니다. 끝내는 주님을 위하여 욕된 것만 짊어지고 희생적인 생활만 하다가 순교를 당하니 예수님은 그의 짧은 생애에서 그 생활과 사명의 비중을 달아보실 때에 가장 위대하게 보시지 않을 수 없었는고로, 저희들도 사명을 가진 자들로서 요한과 같은 정신과 생활로 충성하셔야만 칭찬을 받게될 것입니다.

3. 시24:24에 근거하여 “진실된 종들이 되어야 할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시24:24에 보면 “여호와의 성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가, 그는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않고 거짓 맹세치 않는 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사업을 선전하기 위하여, 또는 성직이 명예이니까, 또는 그것을 가짐으로써 유익할 수도 있으니까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혹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뜻을 허탄한데 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대로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 앞에서 거짓말을 한 것보다 하나님 앞에 맹세한 것을 더 경홀히 여기며 자기의 정욕을 따라 마음대로 행하는 자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오직 허탄한 것과 부정한 것과 이기적인 것에 뜻을 두지 않는 직분자가 되셔야만 할 것입니다.

4. 약4:14에 근거하여 “현재에 충성하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약4:14에 보시면 “내일 무슨 일을 하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하셨으니, 내일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현재 주신 은혜와 형편에서 있는대로 충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란 것입니다. 내일은 나의 날이 될련지도 의문이고 또 그 때에 나의 충성이 필요할련지도 의문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현재가 중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생일 잘 먹자고 사흘을 굶으면서 “나는 내일 무엇을 할 것이기 때문에 현재에 무엇을 못한다” 하는 핑계를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예배당 터를 헌납하고 등기를 안 넘겨준 상태에서 그 자손들이 다시 뺏어간 사례가 많은 것입니다. 이것이 다 현재 확실하게 충성하지 않은 연고입니다. 어떤 구제심 많은 성도는 눈길을 가다가 추워서 떠는 거지가 옷을 구걸할 때 자기 겉옷을 벗어 주었으면 되었을 것인데 더 잘 구제하려고 “우리 집이 저 산너머인데 뒤에 오면 좋은 옷을 한 벌 주겠다”하고는 집에 와서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찾아가 보니 자기 집에 거의 오다가 얼어 죽었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 충성자가 현재에 충성하고 또 균형성 있는 봉사를 해야 할 것을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5. 벧전5:3에 근거하여 “직분자가 모든 일에 양무리의 본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믿음과 겸손과 덕을 세우는 것과 사랑과 봉사와 예배와 기도에 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녁 예배에 못 나오는 직원들이 크게 각성하셔서 처음 믿는 식구들에게 본이 될지언정 부끄러움이 되지 않도록 힘쓰셔야 할 것이요,

6. 계2:10에 의하여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살고자 하는 목적에서 자신이 쇠해지는 방법으로 충성을 하셔야 그 충성이 더 값있고 더 큰 상급과 축복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른다는 말씀이 곧 죽도록 고난과 희생을 당하면서 충성하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7. 마지막으로 교회 헌법 4장 4조에 의하여 “목사가 교회에서 청빙을 받고 노회의 위임을 받았으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그 교회를 종신한다”는 법규에 대하여 비단 목사 뿐 아니라 누구든지 직분자로 피택을 받았을 때 2/3 이상의 찬성으로 임직이 된 자는, 그 2/3 이상의 찬성 때문에 자기의 직분 시무가 가능했다는 것을 깨달아서 항상 전교인의 2/3 이상의 찬성과 협력 속에서만 시무할 것이요, 1/3 이상이 시무를 원치 않을 때는 건설적인 방법을 모색하여 직분자와 성도간에 사랑이 경색되는 분위기를 만들지 않도록 하셔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2/3 이상이 환영을 하는데도 약속을 저버리고 자유 행동을 취하는 것도 부당한 일인 것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일한대로 상을 주시는 분입니다. 천국에는 개인상만 있고 단체상은 없습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여러분들은 누구나 다 하나님 앞에서 복음 전파와 교회 발전을 위하여 충성할 사명이 있는 것을 아셔서 이상과 같은 교훈들을 잘 적용하여 복된 직분 수행과 각종 충성이 있기를 기대하여 이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설교보충 17. 광명한 새벽별 (계 22:16)목록으로


이 시간에는 “광명한 새벽별”이라는 제목으로 본문 말씀을 상고하겠습니다. 지금 읽으신 말씀은 짧은 1절이지만 전체 내용의 제목을 잡는다면 “예수님의 신분과 사역”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16절 전반부는 예수님의 사역을 네 가지로 말씀하셨고, 후반부는 예수님의 신분을 세 가지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1. 논리적인 순서로 먼저 예수님의 신분을 살펴보시면, 본문 하반부에서 예수님은,

① 다윗의 뿌리요,

② 다윗의 자손이요,

③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하셨습니다.

1) 다윗의 뿌리란 무엇이며 또 예수님을 왜 다윗의 뿌리라고 표현하셨을까요 ?

① 다윗의 뿌리라는 뜻은 나무와 열매가 뿌리로부터 나오는 것이니까 쉽게 말씀드려서 예수님은 구약의 다윗 왕을 세상에 보내신 분이란 뜻입니다. 뿌리 없는 나무가 있을 수 없듯이 예수님의 역사가 아니면 다윗도 세상에 있을 수가 없고 다윗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다 그런 것입니다.

② 다윗은 아브라함의 14대손이고, 유다 지파 이새의 여덟째 아들인데 그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에는 목동으로 있다가 다음에는 대적을 치는 장군이 되었고, 나중에는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윗의 뿌리이시기 때문에 다윗이 그런 인물로 세상에 태어나서 일하게 된 것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입니다.

③ 그러면 왜 예수님을 다윗의 뿌리라고 말씀하셔야만 했을까요 ? 이것은 초대 교회 당시에 많은 이단자들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만 알고 만유의 주 하나님으로는 믿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은 마1:1의 말씀처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 하여, 그의 인성(人性)만 믿고 신성(神性)은 믿으려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성도는 예수님을 믿되 그 분은 다윗의 탄생과 그 생애를 지배하신 하나님이시오 또 우리의 생명과 만유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으로도 꼭 믿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④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만 알고 다윗의 주로는 알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마22:41-45에서 시110:18을 인용하여 “예수님이 다윗의 주가 아니면 다윗이 왜 예수님을 주라고 하였겠느냐”고 반문하셨던 것입니다.

⑤ 다윗은 일찍이 예수님의 모형적인 인물로 지목되었었고 또 그의 후손으로 메시야가 탄생할 것을 약속받았던 사람입니다. 그것은 삼하7:12-16,시132:12 등에서 예언 되었고, 또 다윗이 그리스도의 모형이란 것은 시2:7,22:1에서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시22:1을 보시면 다윗이 외치기를 “내 하나님, 내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셨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외치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와 같은 내용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윗은 메시야의 모형적 인물이요, 그의 목자 생애는 예수님의 선한 목자직을 예표하고, 골리앗을 죽여 이스라엘의 승리를 위하여 싸운 생애는 마귀를 쳐부수는 예수님의 구속 사실의 모형이며, 다윗의 왕직은 예수님의 왕되심을 모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약의 다윗은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한 사람이지만 그 다윗을 보내신 분이 바로 예수님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① 예언의 주인공도 되시고,

② 생명의 주관자도 되시며,

③ 만유의 통치자이시고,

④ 구원자 하나님이신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다윗의 뿌리”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사11:1 참조).

2)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확실한 인성을 믿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즉, 다윗의 뿌리도 되시고 그 자손도 되시니까 예수님이 인성과 신성을 겸전하신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을 구약에서 예언하신대로 예수님은 그 계통인 요셉의 가정에 태어나셨습니다. 이렇게 세상에 오신 것은 마태복음 1장에서 족보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희들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도 믿어야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확실히 믿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도성인신(道成人身)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추앙을 받던 신학자 칼 바르트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죄인의 세계에 계시지 않고 인간 세계와 차원이 다른 높은 곳에 계시기 때문에 죄인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직접 교제를 갖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신분과 사람의 신분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죄인들을 상대하신 것을 인정치 않는 말입니다. 이런 면에서도 현대 신학은 큰 위험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구원받을 성도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겸전하게 믿어야 하기 때문에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란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3) 예수님은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하셨습니다.

① 성경에는 복음 사역자나(계1:16) 천사들이나(욥38:7) 정치가(단8:10)를 별에 비유한 말씀이 있고, 민24:17에서는 예수님을 별로 상징하였으며, 마2:9에서는 예수님 탄생 당시에 별이 안내 역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② 그러면 왜 예수님을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하셨을까요 ?

㉠ 별은 빛을 발하기 때문입니다. 사9:2에서 “예수님은 흑암 중의 빛이라” 하셨고, 엡5:14에서는 “예수님도 빛을 비취시는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어두움 같은 절망과 고난 위에 희망의 빛을 주시는 분이란 것입니다. 따라서 광명의 새벽별이신 예수님을 모신 성도에게는 어두움이나 절망같은 것이 결코 있을 수가 없음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 별은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 역할을 합니다. 어디로 갈까, 어떻게 살까, 무엇이 바로 행하는 것인가 ? 하는 인생의 참된 삶의 길을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14:6에서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라” 하시므로 인도자 되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들이 성경대로 사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별 빛같은 인도를 받는 것임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 광명한 새벽별은 밝아오는 아침을 예고하여 소망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합니다. 롬13:12에 보시면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 하셨는데, 누가 우리를 이 암울한 세대에서 또 종말이 가까워 오는 세대에서 일깨워 줍니까 ? 오직 예수님만이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면서 일깨워 주시는 것입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운다”고 하시면서 인생을 일깨워 주시는 분인 것입니다(막1:15,마3:10). 이렇게 예수님이 어둠에 처한 인생들에게 소망을 주시고 길을 인도하시며 일깨워 주셔서 구원해 주시기 때문에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 그런데 주석을 보면 이 “광명한 새벽별”은 ‘ὁ ἀστὴρ ὁ λαμπρὸς ὁ πρωϊνός’로서 “그 별이요 그 광명이요 그 아침이라”고 번역이 되기 때문에 영어 성경에서는 새벽별을 아침별이라고 번역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침별”은 태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태양을 아침별로 표현한 것은 빛과 길과 새 희망을 더 밝게 깨닫도록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따라서 저희들은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믿으시고 ,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큰 희망을 가지고 밝은데로 걸어가며 죄악과 환난을 이기고 어두움과 나태에서 깨어나는 역사가 있어야 할 것을 교훈해 주시는 것입니다.

2.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역은 또 무엇입니까 ?

1) “나 예수는” 하시므로 예수님은 계시의 말씀의 주인으로 그 사역자를 통하여 말씀을 주시는 분임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사도 요한이 기록하셨지만 실제로 말씀을 주신 분은 예수님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계1:1의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란 말씀에서도 나타난 것입니다. “나 예수는 여차여차히 말씀하시고 명령하시는 분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저희들은 예수님이 나타내 주신 성경 말씀을 귀중하게 받으셔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천금(天金)보다 더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은 교회들을 위하시는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교회를 자신의 피로 값주고 사셨으며(행20:28), 교회를 자기의 지체라 하셨으니(엡5:23) 어찌 위하지 않겠습니까 ? 따라서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는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는 일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손해되는 일을 행하면서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코 그리스도를 위하는 자가 아니란 것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자기의 사자를 보내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세상으로, 바울 사도를 이방 지역으로, 또 사도 요한에게도 말씀을 주셔서 소 아시아 교회로 보내신 것입니다. 이 사실은 오늘의 성도들이 교회로 파송하신 복음 사역자들을 하나님의 사역자로 모시라는 뜻입니다.

4) 또 예수님은 사역자들에게 은사를 주셔서 말씀을 가르치게 하시는 분입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교사,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분들이 그러한 사역자들인 것입니다(고전12:8,28,엡4:11,12).

결론적으로, 저희들은 예수님의 새벽별 되신 뜻과 계시 사역에 대하여 교훈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계시의 주인이시고 교회를 위하여 말씀을 보내시며, 사역자를 보내시고, 또 그에게 가르치는 은사를 주시는 분이시며, 또 광명의 아침별인 태양 빛처럼 성도들에게 희망을 주시고, 갈 길을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