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론 | 신약강론 | 설교집 | 교육자료 | 교회정치,기타 베드로전서

베드로전서 강론


저자 지영근 목사

목 차


먼저 드리는 글 3

베드로전서 강론

제1과 영원한 기업을 주심 (벧전 1:1~9) 7 바로가기

제2과 복음의 증언과 믿음의 성실함 (벧전 1:10~17) 10 바로가기

제3과 구원의 진수(珍髓) (벧전 1:18~25) 12 바로가기

제4과 성도의 존귀와 사명 (벧전 2:1~10) 15 바로가기

설교보충 1. 신령한 집에서의 생활 (벧전 2:1~5) 18 바로가기

설교보충 2. 예배드리는 자의 마음 (벧전 2:5) 20 바로가기

설교보충 3. 성도의 존귀와 특권 (벧전 2:9~10) 22 바로가기

제5과 성도의 생활 (벧전 2:11~25) 23 바로가기

설교보충 4. 고난의 종류와 극복 (벧전 2:19~21) 26 바로가기

제6과 부부의 도와 일반적 사랑 (벧전 3:1~12) 28 바로가기

설교보충 5. 사라의 미덕 (벧전 3:5~6) 31 바로가기

설교보충 6. 이웃을 대하는 덕행 (벧전 3:8~12) 32 바로가기

제7과 성도의 생활과 구원의 사역 (벧전 3:13~22) 34 바로가기

제8과 십자가의 고난과 성도의 경건 (벧전 4:1~11) 37 바로가기

제9과 고난의 종류와 하나님의 심판 (벧전 4:12~19) 40 바로가기

제10과 장로들과 젊은이들에게 권면하심 (벧전 5:1~6) 42 바로가기

설교보충 7. 겸손할 것 (벧전 5:5~6) 44 바로가기

제11과 일반적 권면과 결론 (벧전 5:7~14) 47 바로가기

설교보충 8. 염려를 주께 맡기라 (벧전 5:7) 49 바로가기

설교보충 9. 근신하라, 깨어라 (벧전 5:8~9) 52 바로가기

설교보충 10. 마귀의 유혹 (벧전 5:8~9) 54 바로가기



먼저 드리는 글


베드로전후서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집으로 출판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 강론집은 필자가 목회할 당시에 이미 설교한 것을 모은 것입니다. 본래 이 강론집을 공동 서신 전체에 합본하려고 하였으나 분량이 많아짐에 따라 새로운 서문을 또 쓰게 되었습니다.

필자는 본래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사명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고(빌2:16), 자세히 설명하며(눅24:27),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행5:20)는 말씀에 입각하여 말씀 증언에 충실해 보려고 노력한 것이 이와 같은 강론집 몇 권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필자는 기성 교회 목회를 30년 하였지만 예수님 닮은 성도를 많이 양육하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저의 목회적 능력에 한계가 있었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성경을 사랑하는 일에 끌리게 하셨기 때문에 말씀을 밝히고, 몇 권이라도 글로 남기는 것이 성직을 맡은 사명에 더 유익할 것으로 믿고 출판하게 된 것입니다.

이 책의 특징은 학문적으로 깊이 연구하지 못한 것과, 평범한 성도가 보실 수 있도록 평범하게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나 읽으실 때는 필자가 한 글자라도 뺄 수 없어서 기록하였다는 점을 감안하셔서 주밀하게 읽으시고, 주밀하게 묵상하시면 상당한 은혜를 받으시리라고 믿는 것입니다.

강론문을 기록한 다음 평소에 설교한 내용들이 있어서, 베드로 전서를 본문으로 한 설교 10편과, 베드로 후서를 본문으로 한 설교 11편을 첨부하였습니다. 현재까지 집필된 강론집은 창세기, 마태복음, 사도행전 그리고 디모데 전서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탈고되었는데, 다른 교육 재료들을 포함하여 더 많은 강론집을 남겨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많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1998. 3. 26.


저자 지 영 근


베드로전서 강론

제 1 과 영원한 기업을 주심 (벧전 1:1-9) 목록으로


위의 본문을 읽고 내용을 구분한다면,

① 1-2절 말씀은 베드로 전서의 서론이요,

② 3-4절 말씀은 영원한 기업을 주심에 대한 말씀이요,

③ 5-6절 말씀은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능력으로 보호하신다는 말씀이며,

④ 7-9절 말씀은 연단을 받게 하시면서 구원을 베푸신다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전체의 제목을 “영원한 기업을 주심”이라고 정할 수 있습니다.

1. 서론(1-2).

1) 이 말씀을 기록하여 전달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라고 하셨습니다(베드로 전서의 개론을 공부하시려면 필자가 집필한 <기독교 신앙백과> 255번을 참조하십시오). 베드로는 예수님이 불러 세우신, 예수님을 위한 예수님의 사도라고 하셨습니다(눅5:3-11).

2) 이 편지(말씀)를 전달 받은 대상은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에 흩어져 사는 성도들이었습니다. 위의 지명(地名)들은 현재 터키 영지에 해당하는 지역들로, 본도는 동북쪽, 갈라디아는 중앙, 갑바도기아는 동쪽, 아시아는 서쪽, 비두니아는 서북쪽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그 당시는 로마 통치 구역으로 예속되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주전 65년경 로마에서 본서를 기록하여 “실루아노”(5:12)로 하여금 전달케 하였습니다.

3) 이 말씀을 받아야 할 성도들을 “흩어진 나그네”라 하였으니, 베드로 사도는 인생을 나그네로 표현하기를 좋아하였고(1:17,2:11), 아브라함도 그런 신앙으로 생활하였습니다(히11:13). 성도가 자기의 인생을 나그네로 여기지 않는다면 세상을 떠날 때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현실은 잠시 지나가는 여정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은 “미리 아심을 따라” 구원받을 대상을 선택하셨습니다. 2절 초두에 “미리 아심을 따라” 하셨고, 말미에서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미리 아셨다”는 것은 택한 백성이 세상에 태어날 것을 미리 아셨다는 뜻일 뿐 그의 선행이나 믿음 가질 것을 아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만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대상을 무조건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엡1:4,롬9:11-13).

5) 또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셨다” 하심은 거듭난 성도만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성도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6) 하나님이 구원의 대상을 선택하신 이유는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심과 순종함과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①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심은 성령님의 역사를 통하여 거룩하게 하심이니, 이 “거룩”의 뜻은 “구별된 자로 세우심” 또는 “하나님 편에 귀속시킴”의 뜻도 있지만, 더 중요한 뜻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내적으로 순결해짐”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때에 성령님은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거룩해지도록 역사하시는 것입니다(요17:17,16:13,딤전4:5). 하나님의 선택의 큰 목적은 순결한 백성을 만드시려는데 있습니다.

②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백성이 되게 하려 하셨으니 택함을 받은 성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함”을 중요한 사명으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어느 부모가 순종하지 않는 자식을 원하겠습니까 ? 예수님도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셨다 하셨고(히5:8), 디모데는 바울에게 순종하기를 “자식이 부모에게 하듯 하였다”(빌2:22) 하였으니, 성도가 진리에 순종할 줄 모르면 구원받는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고후13:8).

③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 하셨으니, 이는 십자가를 믿음으로 죄사함 받고 영생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택의 목적은 예수님을 닮게 하시고, 순종하게 하시며, 십자가로 속죄하여 영생을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7) 축복으로 서론을 마치셨습니다. 축복의 내용은 은혜와 평강이 성도들에게 있기를 기원하신 것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이요, 평강은 은혜를 받은 결과로 누리는 복을 의미합니다.

2. 영원한 기업을 주심에 대한 말씀입니다(3-4).

1) 3-4절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에 의하여 성도에게 영원한 기업을 주신 것과 그 기업의 성격 및 목적을 말씀하셨습니다.

2) 구원의 경륜은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의 긍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에 구원하시는 것이요,

3) 구원을 하시는 방법으로 속죄제와 중보자가 필요하셨습니다. 죄를 거저 용서하실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이셨고(살후1:6,7), 따라서 대속제는 영원한 아들을 인간을 대표하여 죄짐을 지게 하시므로 이 사실이 십자가로 나타난 것이며,또 영원한 중보자가 되시기 위하여 부활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의 방편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4) 이렇게 구원의 방편을 세우신 다음에 구원하시는 최초의 방법으로 구원 받을 대상을 거듭나게 하셨으니, 이 거듭남은 “허물과 죄로 죽은 영”을 다시 살려 주신 뜻이요(요3:3,엡2:1), 이렇게 살려 주신 근거는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다시 죽을 몸으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영원히 계실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따라서 “그 부활의 능력으로 거듭났다” 하심은 생명의 영원성을 뜻하는 것입니다.

5) 그리하여 썩지 않고, 더럽지 않으며, 쇠하지 않는 하늘에 있는 영원한 기업을 주시게 된 것입니다. “산 소망”이란 항상 살아 있고 영원한 소망이란 뜻입니다.

모든 육체는 썩어지고, 더러워지며 쇠하여집니다. 그러나 천국의 영원한 기업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산 소망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이와 같은 구원의 경륜을 펼치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만큼 모든 성도는 그 하나님께 찬송과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3.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능력으로 보호하신다”고 하셨습니다(5-6).

1) 5절의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이란 신약 시대에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신약 시대는 구약 시대에 비할 때 말세에 속하며, 오순절 당시에 강림하신 성령님도 “말세에 주시는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욜2:28,행2:17).

2) 하나님은 성도에게 주시는 구원을 “확실하게 받도록 보호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는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구원받아야 할 자는 어떤 경우에서라도 하나님이 보호해 주십니다. 그래서 거듭난 성도는 궁극적 구원을 믿게됩니다.

3) 6절 말씀은 많은 성도들이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여 잠깐 근심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크게 기뻐해야 할 것은 시험은 연단으로 끝나고, 하나님은 능력을 베푸사 믿음을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시험과 환난은 항상 계속되는 것이 아니며, “성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행14:22). 환난과 시험은 연단의 필수적 도구입니다.

4. 연단을 받게 하시면서 구원을 베푸심(7-9).

1) 믿음의 시련은 불로 연단한 금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7절에서 불로 연단 받은 금도 달아 없어질 수 있지만 시련 받은 믿음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시련 받은 믿음은 예수님 재림하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금을 불로 연단함같이 믿음은 시련(환난)으로 연단함 받습니다. 환난 중에서 믿음을 지킨 성도들은 주님의 영접을 받을 때 더 칭찬해 주시고, 더 영광스럽게 여겨 주시며, 존귀한 성도로 인정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평안한 믿음 생활보다 시련 받는 믿음 생활이 훨씬 더 복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8절에서 성도는 예수님을 육안으로 볼 수 없지만 마음 속으로 동경하며 사랑합니다. 성경으로 계시된 예수님은 참으로 흠모할만한 분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는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말씀으로 깨닫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보는 것은 아는 것이요, 믿음은 보지 않고 말씀 내용으로만 아는 것입니다(히1:1).

3)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을 받습니다(9). 구원은 믿음으로 받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므로 예수님을 더욱 기뻐하게 됩니다. 구원이란 영혼만의 구원일까요 ?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한다”(고후7:1) 하셨으므로 영혼의 구원은 육을 제외함이 아님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육이 유혹의 근거가 되고, 범죄의 도구가 되며, 흙으로 돌아갈 때는 일시동안 무익하지만(요6:63), 부활할 때는 영과 함께 영화로운 몸이 되는 것입니다.


제 2 과 복음의 증언과 믿음의 성실함 (벧전 1:10-17) 목록으로


이 말씀 10-12절에는 “선지자들의 증언의 성실함”을 말씀하셨고, 13-17절에서는 “성실한 증언에 따라 믿음의 성실함을 가지라”는 교훈입니다. 따라서 제목을 “복음의 증언과 믿음의 성실함”으로 정하였습니다.

1. 복음의 증언(10-12).

1) 신약 시대에 나타난 복음(그리스도의 초림과 십자가와 부활)에 대하여,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은 부지런히 연구하고 살펴서 증언하였다고 하였습니다(10). 10절의 “이 구원에 대하여”란 신약 시대에 나타난 복음의 의미하고, “너희에게 임한 은혜”란 구원의 복이 그 시대의 성도들에게 은혜로 임한 것을 피력하신 것이며, “예언하던 선지자들”은 구약 시대에 메시야 약속에 대하여 예언한 것을 의미하는데, 그 내용들은 <기독교 신앙백과> 89번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메시야의 초림을 예언한 선지자들도 나타난 계시의 말씀들에 대하여 구체적인 내용들을 더 알기 위하여 부지런히 연구하고 살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오늘의 복음 사역자들이 성경을 바로 해석하려고 연구하며 노력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2)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이 내주하여 장차 오실 메시야의 받으실 고난과 고난 후에 얻으실 영광에 대하여 계시를 주사 미리 증거케 하셨으니, 이는 “십자가와 부활”을 예고하셨다는 뜻입니다. 십자가의 예언은 이사야 53장에서 구체적으로 예언하셨고, 요나의 사역을 통하여서도 예언하셨습니다(마12:39). 부활에 관한 것도 요나서와 시16:10에서 예언하셨습니다. 그 당시의 선지자들은 메시야 사역의 예언을 하면서 그때가 언제쯤일지에 대하여 연구하였다고 하였습니다(11). 하나님의 계시에는 숨겨진 면도 있으니, 예를 들면 초림의 날짜와 재림의 날짜 등입니다. 또 계시의 내용은 연구로 밝혀질 것도 있고, 예언의 성취와 함께 시대가 흐르므로 나타나게 되는 것도 있습니다(벧후1:19).

3) 구약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연구하고 전파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섬김이요, 이러한 수고는 메시야를 영접해야할 신약 시대의 성도들을 위함입니다. 이런 사실까지 “계시로 알게되었음”은 베드로가 구약을 연구하여 깨달았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복음 사역자들(당시의 사도들)이 이 사실을 전파하게 된 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시행한 것으로 이 사실은 오순절 당시의 역사를 증언한 것입니다. 또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한다”는 말씀은 베드로가 영감을 통하여 깨달은 사실로서 “구속함을 받지 않는 천사들도 진리에 대하여 사모하고 연구하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이랴” 하는 뜻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성도는 성경 말씀을 깊이 사모하고 상고하는 습관이 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12).

2. 성실한 증언에 따라 “믿음의 성실함을 나타내라”고 하심(13-17).

1) 13절에서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주님이 나타나실 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라라” 하셨으니, 이 말씀은 내세에서 받을 상급을 위하여 믿음 생활을 착실하게 하라는 권면입니다. “허리를 동이라”는 뜻은 뛰는 자의 준비 자세를 뜻하고, “근신”은 자기의 언행을 각별히 주의함이요, “주 재림 시에 가져올 은혜”는 상급을 뜻하는 것으로, 상급을 은혜라 하심은 성도에게 상급받을만한 믿음과 생활도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상급을 공로에 의한 대가로 여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2) 14-15절에서 생활의 변화를 나타내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① 생활의 변화를 받으려면 먼저 자신이 순종하는 자식처럼 되어야 합니다. 여기의 “순종하는 자식”이란 부모나 스승의 교훈을 겸손하게 신종(信從)하는 태도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순종하는 자식처럼 무조건 복종하는 태도로 받아야 하며,

② “이전에 알지 못하고 행한 사욕”을 본 삼지 말고 돌이켜 떠나야 합니다. 이것이 곧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것”과 같은 것이요(골3:9),

③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16절의 말씀처럼 성도를 부르신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레11:44). 따라서 성도들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받아 모든 행실에 거룩하여지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3) 본문에서는 거룩해지는 방법을 간단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분이시며, 너희가 그 분을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17)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아버지는 공의로우시니 인생 나그네의 생활을 두렵게 조심하여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한 자를 구원하신 첫째 목적이 자기를 닮는 거룩한자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의 거룩이 중요합니다.

① 거룩의 뜻은 그리스도를 닮는 순결이요,

② 거룩해지는 힘은 말씀과 기도요(요17:17,딤전4:5),

③ 거룩의 방법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입니다(22). 따라서 말씀, 기도, 순종이 거룩을 성취하는 방법입니다.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기도로 순종할 힘을 구하며, 말씀에 자기의 사상과 생활을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제 3 과 구원의 진수(珍髓) (벧전 1:18-25) 목록으로


이 본문 말씀의 총제목을 “구원의 진수”라고 정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주신 구원의 은혜는 무한히 값지다는 뜻입니다. 내용을 구분해 보면,

① 18-19절은 구속의 대가(代價)로 그리스도의 보혈을 말씀하셨고,

② 20-21절은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경륜을 말씀하셨으며,

③ 22절 말씀은 구원받은 결과로서의 거룩함과 사랑이요,

④ 23-25절은 구원의 시작으로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신 사실을 기록하셨습니다.

1. 구속의 대가는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18-19).

1) 이 말씀에서 인간의 죄를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이라 하셨고, 그 행실(죄)의 대가는 사망 뿐이지만(롬6:23), 이것을 구속하심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보혈)를 쓰셨으니, 그리스도의 신분이 존귀하심에 따라 보혈을 통한 구속의 은혜가 귀한 것입니다.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은 조상의 죄책이 후손에게로 전가된 사실도 포함하면서 범죄의 습성이 후손에게로 유전되듯 전승하는 것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구속”이란 대가를 받고 면죄하심을 뜻하며, 그 대가가 그리스도의 보혈인즉 “흠없고 점없는 어린 양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되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제단에서 드리는 희생 양은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흠없고 점없는 어린 양을 드렸기 때문에(레3:6-7) 예수님의 순결하심을 제물의 깨끗함으로 비교하여 설명하신 것입니다. 이 보혈의 값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의 생명을 대신한 것이므로 그 가치가 영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피가 보배로운 것은,

① 영원하신 하나님의 독생자의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이요(창9:4,레3:17),

② 또 순결하고 거룩하기 때문이며(19),

③ 그 피의 보상이 아니면 다른 것으로 속죄할 제사와 제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정모혈을 받지 않고 성령으로 잉태되어 출생하신 것도 역시 인간의 더러운 피를 받지 않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한 사람으로 오셨지만 인간의 부정한 것은 하나도 받지 않은채 거룩한 인간으로 오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보혈(생명)이어야만 구속의 제물이 될 수 있음은 영원한 생명의 가치로 보상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3) 따라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영원한 생명이시며, 거룩한 피의 소유자이시기 때문에 속죄 제물이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피는 생명에 고난을 합친 것이요, “피가 깨끗하다”는 뜻은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대속의 제물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원한 생명의 피와 고난과 완전한 순종이 필수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만 대속자, 중보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경륜(20-21).

1) 그리스도를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요3:16에서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영광주신 하나님”이란 말씀도 그 뜻입니다(3절 참조).

2) 그리스도를 보내실 일에 대하여 “창세 전에 미리 알리신 바 되었다”는 뜻은 하나님의 구원 경륜이 창세 전에 예정된 사실로 계시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먼저 계획하시고, 그 다음에 선택하시고, 그 다음에 창조하신 순서로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엡1:4-5,창1:26).

3)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신 이유는 “그리스도로 하여금 십자가와 부활을 성취하게 하셔서 그 공로를 통한 구원의 영광을 선택한 자에게 주시고,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께 두도록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성도는 구원받는 것을 영광으로 알며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4)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주”(히12:2)시며 “믿음을 주시는 분”(눅17:5)이시고 거듭나게 하시는 능력도 예수님의 부활에 근거한 때문입니다(1:3).

3. 구원을 받은 결과로서의 거룩함과 사랑(22).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하여 성취됩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예수님을 보내셨고 또 거듭나게 하셔서 믿음을 갖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진리(성경)를 믿는 것입니다. 성도가 믿음을 가질 때 어떤 결과가 나옵니까 ?

1) 진리에 대한 순종입니다. “믿으면 순종하게 된다”는 것은 실제적 경험으로도 알 수 있지만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있는 말씀”으로 믿기 때문입니다(눅1:37). 성경에 대한 순종의 의도와 노력이 없는 신앙은 외식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2) 진리의 순종은 영혼을 깨끗케 하는 성화를 성취한다고 하셨습니다. 2절에서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이란 말씀이 있습니다. 성령님은 진리를 순종케 하여 거룩을 이루어 주십니다.

3) 거짓없이 형제를 사랑함에 이르게 됩니다. 성도가 사랑을 신속하게 이행하지 못함은 거룩을 일시에 성취하지 못함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더하여질수록 사랑의 실천이 성취되는 경험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제도적인 사랑이나 체면 세우는 사랑에서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는 생활로 발전해야 할 것입니다. 진리에 대한 순종의 경향이 믿음의 실체를 증명하는 것처럼 사랑 실천의 열망으로 자신의 믿음의 실체를 확인하셔야 할 것입니다.

4. 믿음으로 거듭나게 하심에 대하여(23-25).

1) “거듭남”은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영적 생명을 다시 살려 주시는 것이요(요3:3,엡2:1), 구원의 시작으로 성령님이 인간에게 제일 먼저 역사하시는 일이요, 또 내주하시는 것입니다.

2) 성령님의 거듭나게 하시는 사역을 “항상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신다” 하셨으니, 이 방법은 성경을 영감으로 주시고 증거하게 하셔서 성경을 진리로 믿게 하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진리로 믿는 것이 믿음 발생의 시작이요 증거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이 “썩어질 씨가 아니라” 하심은 변질 없이 영원히 살아 계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식물의 씨앗은 썩으므로 새로운 싹을 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변질도 없이 생명의 본질과 능력을 영원토록 보존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사40:6,8과 마24:35에서 이미 예언하신 것입니다(24-25).

4) 모든 육체는 일년생 풀처럼 오래 가지 못하며, 인간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처럼 기간이 더 짧지만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계시니 그 말씀이 곧 복음이요 예수님의 인격입니다. 복음은 구원의 소식이며, 이 소식은 말씀으로 계신(요1:1) 예수님이 나타내 주셨습니다.

5)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에 대하여(23).

①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다”는 뜻은 능력 있게 활동하심을 뜻하며,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십니다(요1:1). 이것은 마치 권세 있는 자가 명령을 하면 모든 부하들이 움직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②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있다”는 뜻은 하나님 존재의 불변하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믿는 자 속에도 거하시고(롬8:16,살전2:13), 기업도 주십니다(행20:32).

③ 하나님의 말씀을 “썩지 않는 씨앗”이라 하심은 영원한 생명체임을 비유하신 것으로, 성경 말씀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떡으로(마4:4), 지팡이로(시23:4), 검으로(엡6:17,히4:12), 방망이로(렘23:29), 생수로(잠25:25), 좋은 소식으로(잠25:25), 꿀로(시119:103), 씨앗 등으로(23절) 비유하신 것입니다.

④ 하나님의 말씀을 씨앗으로 비유하셨을 때 그 씨앗을 심을 옥토를 연상하게 됩니다(마13:8). 따라서 말씀의 밭은 마음이고(약1:21), 착한 마음이며(딤전1:5,19), 깨끗한 양심이며(딤전3:9,딤후1:3), 거듭난 심령(요3:3,마16:17)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나 경험이나 전통이나 은사는 때에 따라 변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금생과 내세에서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만큼 세세토록 있는 말씀만 믿고 의지하는 신앙을 가지셔야 합니다.


제 4 과 성도의 존귀와 사명 (벧전 2:1-10) 목록으로


이 본문 말씀을 살피면,

① 1-5절까지는 “무엇을 하라”는 말씀이 있고,

② 6-8절 말씀은 “믿어야 할 말씀”이며,

③ 9-10절은 “성도의 존귀”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기의 “할 것과 믿을 것”은 사명에 속하므로, 제목을 “성도의 존귀와 사명”으로 정하였습니다. 1절은 버릴 것, 2절은 사모할 것과 자랄 것, 3절은 맛볼 것, 4절은 나올 것, 5절은 세워질 것과 될 것입니다. 따라서 먼저 믿을 것을 말씀드리고, 다음에 존귀와 사명에 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믿을 것(6-8).

1) 6-8절에 보시면,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 사도께서 구약의 기록을 진리로 믿고 인용한 것입니다.

2) 베드로 사도께서 인용한 말씀은 “십자가를 신뢰한 자와 거부한 자의 결국”을 말씀하신 내용으로,

①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28:16을 인용하신 것으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건축에 비유하여 예수님을 “모퉁이 돌”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원 사역을 건축에 비유하신 말씀은, 엡2:22,4:24에도 있습니다. 여기의 모퉁이 돌은 건축상 요긴한 기초석(基礎石)을 의미하며, “시온에 두셨음”은 예루살렘에서 구속 사역을 하실 것을 뜻하고(마21:5,요12:19,롬9:32), 저를 믿는 자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음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결코 구원에 실망하지 않을 것을 역설적으로 강조하신 것입니다.

②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하심은 시118:22을 인용하신 것으로, 유대인을 건축자로, “버린 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한 것이요,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심”은 하나님이 그의 죽으심을 구속의 제물로 받아 구원 사역에 요긴하게 쓰시기로 섭리하신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③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심은 사8:14을 인용하신 것으로, 예수님을 거스리거나 대항하는 자들이 결국은 자기를 파쇠하게 될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21:44에서 “이 돌들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 부딪히고, 거치는 존재가 되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만, 결국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구세주가 되어 승리하신 것입니다.

3) 이렇게 된 일이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고 8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하나님의 구원 섭리의 실현임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2. 성도의 존귀에 대한 말씀입니다(9-10).

이 말씀에서 성도의 존귀를 다섯 가지로 말씀하셨으니, ① “택하신 족속”, ② “왕 같은 제사장들”, ③ “거룩한 나라”, ④ “그의 소유된 백성”, 그리고 ⑤ “긍휼을 얻은 자”입니다.

1) “택하신 족속”이란, 하나님의 뜻과 필요에 의하여 선택받은 자인만큼 그 은혜가 귀하고,

2) “왕 같은 제사장들”은, 그리스도의 중보를 힘입어 성도 개인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자격자로서, 그 존귀가 왕과 같다는 뜻이며,

3) “거룩한 나라”란, 하나님의 천국 백성으로 천국 건설의 요소가 됨을 뜻하고,

4) “그의 소유된 백성”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께 소속된 특혜자란 뜻이며, 그리고

5) “긍휼을 얻은 자”는, 선택의 근거를 말씀하신 것으로, 본래 마귀의 백성이었고, 긍휼을 힘입을만한 공로(의)가 없으나 하나님이 무조건 어두운 죄악 세계에서 불러 내어 진리의 빛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긍휼을 베풀어 주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성도의 존귀는 왕 같은 존재요, 하나님의 긍휼은 말로 헤아릴 수 없으며, 이런 은혜를 받은 성도들에게 요구하시는 부탁이 있음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부탁입니다(1-5).

1) 버릴 것입니다(1). “모든 악독, 모든 궤휼(간사스럽게 속이는 것), 외식, 시기,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악독은 선으로, 궤휼은 진실로, 외식은 실제로, 시기는 이웃 사랑으로, 비방은 칭찬으로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2) 사모할 것입니다(2).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고 신령한 젖으로 비유하셨으며, 사모하는 표현을 젖을 먹으려고 갈망하면서 우는 배고픈 갓난 아이들에게 어머니가 젖꼭지를 그 입에 대었을 때 정신없이 빨며, 헐떡거리며 삼키는 것을 연상하게 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을 멀리하는 성도가 크게 반성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자라가는 것입니다(2).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하셨습니다. 성도의 믿음이 자라야 할 것은 고전3:1-7과 히5:13-14에서도 강조하셨습니다. “구원에 이르도록”이란 뜻은 성장한 믿음이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고, 구원을 완성할 때까지 계속 성장하라는 뜻입니다. 믿음의 성장에는 말씀 지식과 실천과 연단이 필요합니다.

4)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라는 것입니다(3).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맛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깨달으라는 뜻입니다. 바울 사도는 롬8:35에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하셨고, 고후5:14에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구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충격을 받은 성도는 그 맛을 본 것입니다. 술이나 담배도 맛본 자가 중독이 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을 맛본 자가 이끌리지 않겠습니까 ?

5) 예수님께 가까이 나오는 것입니다(4). 사람의 버림을 받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으나 택함 받은 메시야이시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께로 가까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① 본문에서 예수님을 “산 돌”이라 하신 것은 “영원히 살아서 행동하시는 불멸의 존재”란 뜻입니다.

② 예수님 앞에 가까이 나가는 것이 우리의 신앙 생활이요 예배입니다.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이 교통하며,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으시는지를 늘 점검하는 생활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이 점검은 성경의 지식 여부, 순종 여부, 회개 여부 그리고 충성 여부에 좌우되는 것입니다.

6)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라”(5)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9절 말씀과 관련이 있습니다. “신령한 집”은 천국이요, 지상의 교회입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하신 것은 “예수님처럼”이란 뜻입니다. 모퉁이 돌 위에 다음 벽돌이 연결되듯이 예수님과 연합되고, 예수님을 닮고, 본받아서 하나님 나라 확장에 귀한 사명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7)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5)고 하셨습니다. 제사장은 중보자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게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인간 제사장이 그 역할을 하였으나,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이 제사를 완성하시고(히7:27,9:12), 하나님 우편에서 직접 중보자가 되어 계시기 때문에(히12:2), 성도가 하나님께 나가는 역할을 직접 하게 된 것입니다. 전도는 믿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께로 나가게 함이요, 기도와 예배는 자신이 직접 하나님께 나가는 것입니다. 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역할이 바로 거룩한 제사장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왕같은 제사장이라”(9)고 하신 것입니다.

설교보충 1. 신령한 집에서의 생활 (벧전 2:1-5) 목록으로


본문에서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1. 집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1) 가정의 주택입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처럼 살면서 장막 집에 거하였습니다(히11:9). 그러나 예수님은 집을 갖지 않으셨습니다(마8:20).

2) 영혼의 장막 집이 있으니, 고후5:1에 보시면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다” 하셨고, 욥19:25에서도 “나의 이 가죽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의 육신을 영혼의 장막 집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3) 죽은 시체의 거하는 무덤을 욥30:23에서 “정한 집”이라 하셨고,

4) 신령한 집이 있으니,

① 천국의 영원한 집이요(고후5:1),

② 지상의 교회 단체를 하나님의 집(딤전3:15), 그리스도의 집(히3:6)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는 영혼의 집(육체), 가족의 집, 교회의 집을 갖고 있고, 장차 영원한 집으로 옮길 것입니다.

2. 신령한 집인 교회와 천국은 어떤 성격을 갖고 있을까요 ?

1) 성도의 단체를 의미하고, 신앙적 집합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엡2:22에서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하시므로 믿음의 성장에 따라 집이 지어지고, 이 집에 하나님이 거하신다고 하셨습니다.

2) 신령한 집은 세속과 구별됩니다. 거룩이란 뜻에 구별과 성결의 의미가 있습니다. 신령한 집에서는 신령한 것만 사모하고, 신령한 진리의 기둥과 터만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사모하는 현실의 복을 신령한 집에 와서 누리려는 목적을 가급적 피하여야 할 것입니다. 현실 교회는 세속과 구별이 없음에 문제가 있습니다.

3) 신령한 집은 영원히 존속되는 것입니다. 성도의 영혼이 지상에서 천국으로 이어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3. 신령한 집과 예수님과의 관계는,

1) 예수님이 자기 피로 사신 집(교회)이라 하셨고(행20:28),

2) 예수님이 그 집의 소유자라 하셨으며(딤전3:15),

3) 또 예수님이 머리되신 연합체(몸)라고 하셨습니다(엡1:22,5:23-25).

4. 이 집을 세우는 방법에 대하여,

1) 본문 4,5절에 보시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진다“ 하셨고,

2) 또 벧전3:6에서는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하셨으며,

3) 또 엡2:21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지어져 가느니라” 하시므로 예수님과의 연합과 성령 안에서의 생활이 신령한 집을 짓는 방법임을 말씀하셨습니다.

5. 성도가 이 신령한 집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

1) 악독과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려야 하며(1),

2) 신령하고 순전한 젖 즉, 신령한 말씀만 사모하여야 하며(2),

3) 합2:20에서 “하나님이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가 그 앞에서 잠잠하라” 하심처럼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도 성도들은 말을 삼가야 하며,

4)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5) 하셨으니, 이 말씀은 성도와 하나님과의 관계 즉, 신령한 교제가 중요함을 뜻하는 것이요,

5) 성도간의 사랑의 교제도 중요함을 말씀하셨습니다(시133:1,행2:43-47).


설교보충 2. 예배드리는 자의 마음 (벧전 2:5) 목록으로


본문에서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산 돌”은 예수님을 뜻합니다. 또 “신령한 집”은 믿음의 단체입니다. 하나님은 신령한 제사를 받으시고(요4:24), 제사장은 하나님께 직접 예배드리는 성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신령한 예배를 드리는 자의 마음에 대하여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1. 믿음의 마음입니다.

본문에 보시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린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제사를 드릴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중보로 예배가 상달된다는 뜻이요, 예수님을 중보자로 모시는 것은 바로 성도 자신의 믿음입니다. 십자가의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께 나갈 수도 없고 또 하나님이 기뻐하시지도 않습니다(히11:6).

2. 감사의 마음입니다.

히13:15에 보시면 “항상 감사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하셨고, 또 빌4:6에서는 어떤 기도의 소원이 있을 때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아뢰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피조물된 인생이 “살고 있다”는 자체가 은혜일진대 죄사함 받고 영생하는 은혜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 또 시50:14에서도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높으신 이에게 서원을 갚으라”고 하셨습니다. 감사의 마음이 떠나면 안됩니다.

3.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시34:18에서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신다” 하셨고, 시51:7에서는 “하나님이 상한 심령을 구하시고, 상하고 회개하는 마음을 받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아니하셨고(히11:4), 세리의 기도를 들으셨으며(눅18:14), 용서를 무한정으로 하시는 것이(마18:22) 다 회개하는 마음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4. 기쁜 마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빌4:4에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하셨고, 느8:1에서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 하셨으며, 또 시37:4에서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 하셨고, 또 시100:2에서는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는 기쁨의 마음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5.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기도자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 “사모하는 마음을 갖고 나와야 된다”는 말씀이 성경에 많이 있습니다. 시27:4에 “주를 앙망하며 그 전(殿)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하셨고, 애3:25에도 “무릇 기다리는 자나 사모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라” 하셨고, 마7:7에서도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 하시면서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갈급함처럼 갈급하고(시42:1)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처럼 기다리며(시130:6), 갓난 애기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는 것같이(벧전2:2)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에 임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주의 법도를 사모하고(시119:40),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며(딤후4:8), 더 큰 은사를 사모하면서(고전12:31) 주님의 전에 나와 엎드릴 때에 하나님은 그런 마음을 가장 귀히 여겨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갈망하는 마음을 갖되,

① 말씀의 은혜,

② 죄사함의 은혜,

③ 말씀 순종의 은혜,

④ 사명을 수행하는 은혜,

⑤ 더 나가서는 하나님의 일을 고난으로 감당하는 은혜 등을 갈망하셔야 하는 것입니다(롬10:17,막7:14,계13:9).

6.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반대로 “교만한 자는 대적하여 물리치신다”고 하셨습니다(벧전5:5).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 사울이 겸손할 때 왕이 되게 하셨고, 교만할 때 죽게 하셨습니다(삼하10:22,16:1,미6:7). 성도가 교회에 나오는 것은 하나님께 나오는 것이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며 또 하나님 앞에서 처신하는 것이기 때문에 겸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순수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를 비우는 마음(마5:3), 허탄한데 뜻을 두지 않는 마음(시24:4), 청결한 마음(마5:8),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갈5:24)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가지셔야 합니다(막10:14,마18:1-4). 천국에서는 어린 아이같은 자가 크다고 하셨습니다.

8. 복종의 마음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거역하는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자와 같다”는 말씀을 기억해 보십시오(삼상15:22-23). 순종이 없으면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지 못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9. 헌신하는 마음입니다.

성도는 창조적인 의미에서 볼 때 하나님의 것입니다. 몸과 마음과 생명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우리 중에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자기의 생활을 하나님의 뜻에 맡길 때 자기의 생활 취미까지 포기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무조건 따라갈 수 있도록 헌신하여야 할 것입니다.

예배드릴 때마다 믿음, 감사, 회개, 기쁨, 갈망, 겸손, 순결, 복종, 헌신 등의 마음 가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설교보충 3. 성도의 존귀와 특권 (벧전 2:9-10) 목록으로


1. 성도는 존귀한 백성입니다.

택하신 족속, 왕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라 하셨으니 참으로 존귀한 백성입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이 솔로몬의 지은 성전에 쓰여질 때 귀한 것이 되었습니다. 성도가 천국 건설에 쓰여지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인 것입니다. 패전당한 월남의 피난민이 한국 백성이 되려 했을 때 받아 주지 않았고, 재미 동포가 미국 시민권을 얻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 따라서 천국의 시민, 하나님께 소유된 백성이 되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이겠습니까 ?

2. 본래 인간은 타락 상태에 있었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었습니다(롬6:23,엡2:3).

항상 죄 가운데 행하며 세상 풍속을 좇고, 마귀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삶으로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일으켜서 하늘의 시민 자리에 앉혀 주신 것입니다(엡2:3-6). 다시 말하면 진노의 대상이 영광의 대상으로 바뀐 것입니다(롬3:23,렘12:10).

3. 하나님은 존귀를 주시는 분입니다(대상16:27,시8:5,삼상2:7-8).

하나님은 요셉과 모세와 사울과 어부 베드로를 존귀하게 하셨습니다. 노력을 통하여 존귀해지게도 하시고(사11:2,단1:20,5:11), 은혜로 존귀를 받게도 하시는 것입니다(출15:16,대하17:10,단5:18-21). 이때에 하나님이 받으시는 영광은 신령한 믿음의 존귀를 통하여 받으시는 줄로 아셔야 합니다. 시16:3에 보시면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즐거움이 저에게 있다”고 하셨습니다. 믿음 좋은 성도를 보실 때 하나님은 존귀한 성도로 여기시는 것입니다(마8:10).

4. 성도가 받는 툭권이 무엇입니까 ?

1) 죄사함 받고 다시는 정죄받을 수 없는 의인의 특권입니다(롬8:33,34).

2) 하나님의 자녀되는 특권입니다(요1:12). 이 자녀되는 특권에 따라가는 것은,

① 기도의 특권(아버지께 기도함;마6:9),

② 교제의 특권(눅15:20-24),

③ 천국 상속의 특권(요3:16)이 있는 것입니다. 존귀와 특권의 은혜 받은 것을 크게 감사하며 충성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성도가 받는 특권으로 궁극적 구원과 특별한 보호 통치를 받는 것이 있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 5 과 성도의 생활 (벧전 2:11-25) 목록으로


이 말씀은 세 대지로 나누어 살필 수 있는데,

① “성도의 도덕적 생활”(11-12)과,

② “국가에 대한 책임”(13-17), 그리고

③ “종(섬기는 자)의 책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의 생활”이란 제목을 정할 수 있습니다.

1. 성도의 도덕적 생활(11-12).

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하심으로써 성도에 대한 사도의 사랑을 피력하셨고, 인생을 나그네처럼 알아야 할 것을 자주 강조하셨습니다(1:1,17). 나그네는 본향에 대한 소망을 갖는 자이고, 행인은 지나가는 특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따라서 인생은 나그네요, 세상살이는 행인처럼 지나가는 것을 생각하여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하셨습니다(11). “영혼을 거스린다” 함은 자기 속의 부패성이 죄의 성향으로 기울어짐을 뜻합니다. 여기에 대한 표현을 바울 사도께서 잘 나타내셨습니다(롬7:19-23). “영혼”은 롬7:22.23의 “속 사람”과 “마음의 법”이요, “육체의 정욕”은 “지체 속의 다른 법” 즉, “죄의 법”(롬7:23)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속 사람은 거듭난 영혼으로 성령님의 뜻을 따르려는 편이고, 육체의 정욕은 마귀의 뜻을 좇으려는 자기의 부패성(악한 생각)을 의미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 둘이 서로 대적한다”(갈5:17)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인격 속에서 두 개의 정신적 요소가 대립, 갈등하며 싸우는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된 그리스도의 인격에 사로 잡혀 옛 사람의 소욕을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다(롬8:12-14,갈5:24). “육체의 정욕”은 육체적 소욕인 식욕, 정욕, 안일주의, 향락주의와 함께 현실적 명예욕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령한 복을 추구하기 위하여 그런 것들을 허탄한 것으로 여기며 멀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갈5:26).

3) 특히 “믿지 않는 이방인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에게 행실을 선하게 나타내라”고 하셨습니다(12). 이것은 성도의 빛의 사명이요, 선으로 악을 이기는 생활입니다(마5:14,롬12:21). 이방인들은 종교와 도덕의 차이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 차이로 인하여 성도를 악하게 여기고 비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고로 생각이 변할 때는 성도의 빛된 생활에 대하여 바른 판단과 호감을 가지게 되고, 그로 인하여 성도의 본을 받게 되며 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성도와 거리감을 갖는 이방인이라도 하나님의 권고의 은총이 나타나면 변화되고, 성도의 선행을 흠모하여 돌아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므로 성도는 모든 이에게 선행을 나타내어야만 합니다.

2. 성도의 국가에 대한 책임(18-25).

이 말씀은 국가의 제도나 실권자에 대하여 성도의 취할 태도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취지의 말씀은 롬13:1-4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1) “인간에게 세운 모든 제도”는, 크게는 국가의 헌법이고, 적게는 사회 단체의 법들을 의미합니다. 성도는 이런 법을 존중하고 그 통치자인 실권자에게 순복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권세의 출처와 목적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롬13:1,4).

2) 국가의 제도와 권세를 하나님이 섭리적으로 베푸신 이유는, 선행을 장려하시고 악을 제어하시기 위함입니다(14절,롬13:4). 그런 의미에서 방백들은 국가를 통하여 주어진 권세로 선행자를 포상(상주는 것)하고 악행자를 징벌합니다. 이것이 곧 선을 장려하고 악(무식한 말)을 제어하는 것입니다(15).

3) 여기에서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자유를 남용할 우려가 있습니다. 즉, “죄사함 받은 의인이고 하나님의 백성인즉 아무에게도 속박되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으로 하나님이 제정하신 국가의 규범을 벗어나려고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세운 국가의 규범을 거역하는 것이 곧 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16)고 하셨습니다. “악을 가리움”은 악을 못본척 하는 일에 자유를 쓰려는 것입니다. 성도는 악에 대하여 민감하고, 악을 제거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혹 국가가 선이 아닌 제도를 만들거나 시행할 때도 그것을 못본척하면 안됩니다.

4) 성도는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하셨으니, 반드시 기억하고 실천하셔야 합니다(17절,고전10:32,33).

3. 섬기는 자(종)의 책임에 대하여(18-25).

1) 성도가 누구의 수하인이 되었다고 하면 상관을 두렵게 여겨 잘 순종하여야 합니다. 상관 중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선과 관용이 풍부한 사람도 있고, 그 반대로 까다로운 사람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 양쪽 다 만족하도록 잘 복종하고 섬기라는 것입니다(엡6:59,딤전6:1-2,딛2:9).

2) 악한 상전으로부터 애매하게 고난을 받을 경우에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생각하며 슬픔을 참으면 아름답지만(은혜롭지만), 죄가 있어서 매를 맞는 것은 당연할 뿐이요 칭찬스럽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고 고난을 당한 경우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입니다(20).

3) 하나님이 성도를 부르신 목적이 그런 생활을 하게 하시기 위함이요, 그리스도께서 본을 보이신 것도 역시 그런 목적이라고 하셨습니다. “본”이란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심입니다(21). 성도는 상당하게 억울함을 당하면서도 참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4) 종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모범에 관한 말씀입니다(22-24,빌2:7).

①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면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 입에 궤사를 담지 않으셨고,

② 욕을 받으셨으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셨으며,

③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도 아니하셨고,

④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자기의 일을 부탁하셨으며,

⑤ 친히 십자가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고 하셨습니다.

5) 이는 십자가를 믿는 성도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같이 되고, 의에 대하여 산 자처럼 살아야 할 것입니다.

6)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성도(너희)가 나음을 얻은 것”은 사53:5의 인용으로, “주님의 십자가로 죄사함의 치료를 받게 하심”이요(24), 길 잃은 양처럼 소망 없는 자에게 “구원의 길을 인도”하심이며, 그로써 주님이 영혼의 목자와 감독이 되시고, 성도는 그의 양이 되어 구원을 받게된 것입니다(25).

결론적으로 성도는 모든 사람에게 덕을 세우고, 나라의 법을 잘 지키며, 선행의 모범자가 되고, 악을 미워하며, 억울함을 잘 참으면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부탁하는 생활을 잘하셔야 할 것입니다.


설교보충 4. 고난의 종류와 극복 (벧전 2:19-21) 목록으로


1. 본문에 보시면 세 가지 고난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애매히 고난을 받는 것”이고, 둘째는 “죄 때문에 받는 것”이며, 셋째는 “선을 행하고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1) 이 말씀을 18절과 관련을 시킨다면 주인과 사환 사이에서 발생하는 고난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종이 책임을 다하였는데도 주인이 포악하여 종을 징책하였을 경우에 슬픔을 당하게 되는 것이고, 다음에는 종이 잘못하므로 포악한 주인으로부터 매를 맞는 경우이며, 또 한 가지는 종이 선한 일을 하였는데도 주인이 악하여 종을 핍박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에 주인이 당하는 괴로움은 경미할 뿐이고, 약한 자가 당하는 괴로움이 많지만 이 경우에도 죄가 있어서 매를 맞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나님 앞에 아름답고 유익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성도는 애매한 고난이나 선행으로 고난을 받을 때 하나님을 생각하며 슬픔과 고난을 참아야 할 것입니다.

2) 이런 고난 문제는 주님과 종 사이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유를 알 수 없이 발생하는 사고, 자신의 과오로 받는 시벌(施罰), 또는 믿음 생활이나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선을 행하고도 핍박을 받는 경우일 것입니다.

2. 고난을 여러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정신적 고난과 육체적 고난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본문의 “슬픔을 참는다”는 말씀은 정신적 고난을 뜻하고, “매를 맞는 것”은 육체적 고난입니다. 정신적 고난은 염려와 고민, 슬픔, 억울함, 두려움, 불만족 등이요, 육체의 고난은 피로, 아픔, 질병, 죽음, 굶주림 등입니다.

2) 고난을 받게 되는 원인에 의하여 구분할 수 있습니다.

① 자기의 심술과 죄로 당하는 고난입니다. 이 사실은 20절에서도 말씀하셨지만, 인간에게 미친 모든 고난이 인간의 타락으로 받게 되었음은 이미 아는 사실입니다(창2:17,3:16,17). 가인이 살인을 하고 유리한 것(창4:12), 야곱이 험악한 세월을 산 것(창27:43,47:9), 요나의 고난(욘1:17), 선민의 70년 포로 생활(단9:2-7) 등입니다.

② 의롭게 행하고 핍박을 받는 고난입니다. 이 경우에 큰 상급이 있다고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마5:11-12). 그 외에도,

㉠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행14:22),

㉡ “우리의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롬8:17),

㉢ “우리가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지니 피곤치 않으면 때가 되매 이루리라”(갈6:9) 하셨고,

㉣ 히11:36-38에도 정의를 위하여 고난 당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③ 또 헌신을 잘한 실례로서 “주님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상속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마19:29), 이같은 충성된 헌신은 고난이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④ 하나님의 연단으로 주시는 고난이 있습니다. 의인이 의외로 고난을 당하는 경우(시73:1-19,렘12:1,5),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신 이유(고후12:9)는 다 연단과 겸손과 감사를 일깨워 주시려 한 것이요,

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시는 고난입니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된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고 하셨습니다(요11:4).

⑥ 영계의 특별한 섭리로 당하는 고난입니다. 이것은 욥의 경우입니다(욥1:6-12).

3. 이런 고난을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

1) 우선은 인내하여야 합니다. 고난은 참고 견디므로 유익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있을 때 무조건 떨치려 하기 전에 참고 견디므로 고난에서 받는 유익을 내다볼 중 알아야 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주신 고난의 뜻을 알아야 할 필요도 있는 것입니다.

2) 회개하여야 합니다. 죄가 있어서 당하는 고난은 유익이 없기 때문입니다(20). 죄를 범한 상태에서 회개하지 않으므로 받는 징책의 고난이 있을 수 있고 또 회개하면 징계로 주신 고난을 없애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욘3:9,마9:5,약5:15).

3) 불필요한 고난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지혜롭지 못한 생활에서 끌어들이는 것들이 많습니다. 지나친 사치와 낭비를 하거나, 안해도 될 일을 행하고 부채에 시달리는 고난을 당할 경우 또는 과욕에 의한 고민 같은 것들입니다. 자신의 부주의로 건강 관리를 잘못하는 경우들이 없도록 주의하셔야 할 것입니다.

4) “고난이 연단과 소망을 주신다”는 말씀을 확신하시고 새로운 깨달음과 생활을 터득해 나가는 것입니다(롬5:3). 바울 사도는 자신이 변화된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셨습니다(고전15:10). 모든 성도의 변화된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런 변화의 은총을 주실 때 고난을 통하여 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필자는 청년기에 부친의 연약한 생활 때문에 크게 각성하여 건설적 생활을 더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오랜 후에 깨달았습니다. 부친의 비건설적인 생활이 아니었다면 저는 그 반대로 건설적 생활을 강하게 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고난의 종류를 아시고, 고난을 신앙으로 극복하는 믿음이 있을 때 큰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겠기로 이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제 6 과 부부의 도와 일반적 사랑 (벧전 3:1-12) 목록으로


이 말씀은 부부의 도와 일반적 사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으로,

① “아내의 도리”(1-6)와,

② “남편의 도리”(7), 그리고

③ “성도의 일반적 사랑에 관하여”(8-12) 말씀하셨습니다.

1. 아내의 도리(1-6).

1) 아내들은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되 “이와 같이 순복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란 2:18-19에 나타난 “사환이 주인에게 복종한 것”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먼저 복종할 것을 기록한 말씀은 엡5:22과 골3:18에도 나타나 있습니다만, 본문에서는 더 자세히 말씀하셨습니다. 사환은 주인에게 복종할 때 애매히 고난을 받으면서도 “슬픔을 참으며 인내하면서 아름다움을 나타냈다”고 하셨습니다.

2) 아내의 아름다운 복종은 부부의 화목에도 효력이 있지만, 도를 순종치 않는 남편을 복음으로 설복하여 구원을 얻게 하는데도 유익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믿음이 거듭남으로 나타나지만, 전도의 과정에서 복음이 믿지 않는 남편의 마음에 전달될 때 아내의 신앙의 덕이 큰 감화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1). 신앙의 아름다운 덕은 감동과 교화를 줍니다.

3) 2절의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하신 말씀은, 아내들이 그들의 남편들에게 취하는 태도로서 “남편을 두렵게 여기며 정결함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정결한 행위”는 복종과 단정함입니다.

4) 3-4절에서, 아내의 미덕은 “외모의 단장보다도 마음가짐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외모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패물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이요, 마음의 단장은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않을 것으로 하는 것”입니다.

① “마음의 숨은 사람”이란 자기의 인격적 성품이 마음 속에 잠재되어 있음이니, 이는 넓은 마음을 뜻하며,

②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이란 평온한 사랑의 미덕, 차분한 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심장을 모신 지혜로운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을 “썩지 아니할 것”이라 하심은 불화의 변질성을 나타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도 “값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4). 믿음이 값진 것인 것처럼 좋은 마음도 값진 것입니다.

5) 5절에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다” 하시므로 많은 믿음의 여성들이 남편에게 순복한 사실을 말씀하셨고, 또 순복은 곧 여성의 단장이라고 하셨습니다. 순복함으로 단장한 여성들이 많았을 것이지만, 그 중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모범적 여성으로 칭찬하였습니다.

6)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며 복종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사라는 주 하나님께 하듯 남편에게도 한 것입니다(6).

7) 그러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므로 그의 딸이 되었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 이것은 사라의 미덕을 칭찬한 말씀으로, “선을 행함”은 4절에 나타난 마음가짐대로 시행함이요,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않음”은 마음이 넓고 침착하며 지혜롭기 때문에 상당히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않음을 뜻하며, “그의 딸이 되었음”은 모든 성도들이 사라의 마음과 생활을 나타낼 때 사라의 신앙 계통을 이어받는 그의 딸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과 현실의 문화를 대조해 볼 때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의 여성들은 성경대로 살아야 합니다.

2. 남편의 도리(7).

“남편된 자들은 지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하라” 하셨으니, 이 지식은 부부 생활에 필요한 지식들로, 여자의 성격과 체질과 생활 습관을 잘 아는 것이 필요한 중,

1) “여성은 더 연약한 그릇”이란 사실을 알아야 하니, 이는 신체적 체질이 연약할 뿐 아니라 정신적 지구력이나 이해의 폭도 남자와 다른 점이 있음을 뜻하며,

2)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라”는 뜻은 인권이나 신령한 복을 남녀의 차별 없이 영원히 함께 누릴 것을 알아 귀히 여길 것이요,

3)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심”은 부부간에 서로의 이해 부족이나 갈등, 불화 등으로 화목이 깨어질 때 신앙적 바른 자세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게 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타인과의 불화도 화해하고 하나님께 나가야 하거든(마5:23,24), 하물며 부부이겠습니까 ?

3. 성도의 일반적 사랑에 대하여(8-12).

1) 8-13절은 이웃 사랑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이란 성도의 대인 관계에 있어서, 이방인에 대한 것(2:12), 정치적 실권자에 대한 것(2:13), 주인에 대한 종의 책임(3:18-25), 부부에 대한 것(3:1-7),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반적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2) 성도의 사랑의 실천은 “이웃과 마음을 같이 하고, 체휼하며(어려운 이웃의 심정을 체험하는 것),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한 것이라” 하셨고(8),

3)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않으며, 도리어 복을 빌므로 부르심을 입은 목적과, 유업으로(계대를 의미함) 복받게 하시려는 목적을 이루시게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원수를 갚는 것 대신 복을 빌고, 누구에게나 선을 행하는 것이 부르심의 목적이요 유업으로 복받는 방법이란 뜻입니다(9).

4) 이런 교훈은 구약의 시34:12-15에도 있다고 본문 10-12절에서 인용하셨습니다. 시34:12에 보시면,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하셨는데, 본문 10절에서는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라 하셨으니 그 뜻이 같고, 시34:13에서는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지어다” 하셨는데, 본문에서는 “네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라” 하셨으니 역시 같은 뜻이며,시34:14에서는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하셨는데, 본문 11절에서는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쫓으라” 하셨으니 같은 뜻이요, 시34:15에서는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하셨는데, 본문 12절에서는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으니 역시 같은 뜻입니다. 여기에서 베드로가 구약 성경에 능숙함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5) 이웃에게 열심히 선한 일만을 행하면 아무도 해할 자가 없을 뿐 아니라(13) 성도로 부르신 목적과 유업으로 복받게 하시는 목적을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설교보충 5. 사라의 미덕 (벧전 3:5-6) 목록으로


이 시간에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미덕”에 대하여 교훈을 받겠습니다. 사라에 대한 성경 말씀은 창18장과 히11:11 그리고 본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1. 사라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여인이었습니다.

본문 5절에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 중에 사라도 해당되는 사람”이라고 하셨고, 특히 사라가 하나님께 소망을 둔 것은 “늙어 단산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잉태하는 힘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라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었던 것입니다.

2. 손님 접대를 잘한 여인이었습니다.

창18:6에 보시면 아브라함이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초청하여 대접을 할 때에 사라가 그 수종을 들었습니다. 집에서 부인이 손님 대접할 마음이 없으면 그 집은 손님 대접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롬12:11-13에 보시면 바울 사도께서는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라” 하셨습니다. 손님 대접은 신앙의 좋은 미덕이 되려니와 축복을 받는 좋은 방법도 되는 것입니다.

3. 남편 앞에 순복으로 자기를 단장하는 여인이었습니다.

본문에서 사라는 “남편을 주라 칭하고 존경하면서 순복하므로 자기를 단장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남편을 주라 칭하는 것은 최대의 존경일 것입니다. 사라는 순복하므로 자기를 단장하였는데, 이것을 본문에서는 “선을 행하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화장이나 의복으로 자기를 단장하려고 하지만 진짜 값있는 단장은 순종일 것입니다. 이렇게 사라는 남편에게 최고의 존경과 순종으로 자기를 단장한 여인이었습니다.

4. 두려운 일에 놀라지 않는 침착한 여인이었습니다.

본문 6절에서 “두려운 일에 놀라지 않으므로 그의 딸이 된다”는 말씀은 곧 마음이 깊고 넓으며 침착한 신앙의 어머니가 곧 사라라는 뜻입니다. 성도가 두려운 일에 놀라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는 믿음과 또 섭리에 복종하는 신앙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칠 때 사라가 개입되지 않았습니다만 혹 그같은 두려운 일을 알았다 하여도 침착한 신앙으로 견뎠을 것입니다. 한 가정의 주부는 그 가정의 신앙과 화평과 건강의 주역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처럼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손님을 잘 대접하며, 남편에게 순복하고, 화평을 도모하며, 두려운 일에 놀라지 않는 귀한 신앙의 소유자가 되셔야 할 것입니다.


설교보충 6. 이웃을 대하는 덕행 (벧전 3:8-12) 목록으로


베드로 사도는 이 말씀에서 이웃을 대하는 덕행 아홉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1. 마음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타인의 인격과 의사를 존중하며, 자기를 양보하면서 뜻을 맞추어 따라가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의 의견 차이가 있어도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려는 뜻으로 따라가야 합니다(롬12:6,빌2:2).

2. 체휼하는 것입니다.

체휼은 어려움을 당한 상대방의 입장을 자기의 입장으로 생각하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상당한 동정이 갈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고를 체휼하셨습니다(히4:15-16).

3.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기의 형제는 성도와 이웃을 자기의 가족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특히 교역자를 자기의 가족으로 여기지 못하는 결함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마12:50,엡2:19).

4.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연약한 자와 환난 당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미운 자와 죄인들과 원수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발전해야 할 것입니다(마5:44,롬9:15,약1:27).

5. 겸손한 자입니다.

겸손은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며, 그와의 경쟁 대열에서 양보하고, 이웃에게 우선권을 먼저 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6.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꼭 그렇게 하셨습니다. 벧전2:21-23에서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셨느니라. 저는 죄를 범치 않으시고,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않으시고, 고난을 받되 위협하지 않으시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악과 욕이 올 때 침착하게 변화로운 태도를 취하여야 할 것입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다고 하셨습니다(롬12:19).

7. 도리어 복을 비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수를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무지하고 악하며 손해를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하나님이 깨우쳐 주시고 또 선해지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마5:44).

8. 악한 말과 궤휼한 말(궤휼=거짓말)을 안하는 것입니다.

혹 악한 말은 아니지만 덕이 안되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덕이 안되는 말”은 이해의 폭이 넓은 사람들에게는 별일이 없지만 자기 편견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해와 불화의 소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말의 실수를 줄이도록 각별히 노력하셔야 합니다(약1:19,3:1-6).

9. 화평을 만들기 위하여 기도하고 교제하며 화목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께서 강조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살전5:15에서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하셨고, 고전10:32-33에서 “누구에게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저희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 하셨고, 또 예수님은 “화평을 만드는 자(화평케 하는 자;마5:9)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이상의 아홉 가지 덕행에 힘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제 7 과 성도의 생활과 구원의 사역 (벧전 3:13-22) 목록으로


이 말씀을 “성도의 생활과 구원의 사역”이란 제목 아래 살피기로 하겠습니다. 13-17절은 “성도의 생활”에 대하여 말씀하셨고, 18-22절은 “예수님의 구원 사역의 과정”을 말씀하셨습니다.

1. 성도의 생활에 대하여(13-17).

13절에서는 “열심으로 선을 행하여라”, 14절은 “의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여도 두려워하지 말라”, 15절은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을 예비하여 증언하되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할 것”과, 16절은 “선한 양심을 가질 것”에 대하여, 17절은 “선행으로 고난을 받음이 악행으로 고난받음보다 낫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1) 성도는 선행만 하여야 합니다. 선행자에게는 대적할 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13). 선행자를 괴롭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 섭리에 의한 악인들의 행동일 것입니다(욥1:12,2:6).

2) 성도가 의롭게 살려고 노력할 때 의롭지 못한 자들로부터 미움과 핍박을 받을 수 있으나, 이는 복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5:11). 악인은 육체적 생명이나 현실적 고난을 두려워하지만 성도는 그런 것을 두려워 하여서는 안되며, 또 소동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14).

3) 그리고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 자기의 왕으로 섬기고, 예수님을 닮아 거룩하여지며,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구원의 도리와 진리의 말씀을 항상 예비하여야 합니다(15). 이는 “설교 말씀을 항상 준비하여야 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또 진리를 증언할 때는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증거해야 합니다. 모든 증언과 언어는 예비하여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입니다.

4)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양심만을 나타낸다면 성도의 선행을 비방하던 자들도 나중에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16).

5) 선을 행하므로 고난받는 것이 복된 일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일진대, 악을 행하므로 벌받는 것보다 분명히 나은 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17).

2. 구원의 사역에 대하여(18-22).

18-22절 말씀에서 18절은 “십자가와 부활 즉, 복음에 관한 말씀”이요, 19-20절은 “전도에 관한 말씀”이며, 21절은 “세례에 관한 말씀”이고, 22절은 “중보에 관한 말씀”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1)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다”고 하셨습니다.

① 선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신 분은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예수님은 이것을 모범으로 행하셨습니다.

② 예수님은 의인으로 불의한 자의 죄값을 대신하여 돌아가셨고,

③ 예수님은 영원하신 분이라, 한 번 죽으심으로 충분한 속죄제가 되실 수 있습니다(히7:27,9:28).

④ 예수님이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심은 선택받은 불의한 백성들의 죄를 전체적으로 대신 짊어 지시고, 그 택함받은 자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⑤ 또 예수님은 육체로 죽임을 당하셨으나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이는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성령님에 의하여 그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뜻입니다(롬8:11).

2) 19절과 20절은 연결된 내용으로, 전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역사적으로 난제였다고 합니다. 천주교와 루터교에서는 19절의 뜻을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영이 부활하시기 전에 지옥에 있는 영혼들에게 전도한 내용”이라고 해석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돌아가시자 “낙원으로 가셨다”는 말씀은 있어도(눅23:43), 지옥으로 가셨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전도의 주역이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①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의 뜻은 ‘어거스틴’의 해석을 인용할 때, “예수님이 성령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도하셨다”는 뜻입니다. 여기의 “전파하시니라”라는 의미의 단어 ‘에케루켄’(ἐκήρυξεν)은 과거형입니다.

② 20절의 그들은(옥에 있는 영들) 과거 노아의 날, 방주를 예비할 당시에 예수님의 영의 역할로 전도를 받았고,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셨으나 순종하지 않으므로 결국 옥(지옥)에 있는 영의 신세가 된 것이요, 그 당시 전도를 받고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는 여덟명 뿐이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노아 시대에도 전도하셨습니다.

③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뜻은 방주가 물에 떠오르므로 구원선의 역할을 잘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3) 21절은 노아 가족의 구원과 세례를 관련하여 설명하신 내용입니다.

①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신약 시대에 물로 세례를 받게 하신 것이 구원받은 표가 된다는 뜻이요(마28:19), 이 경우에 물은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하여 죄씻음 받은 은혜를 나타내지만(히10:22,엡5:26,시51:7),

② 또 물 속에 장사지내는 것을 옛 사람을 죽이는 일로도 상징하셨습니다. 노아 시대에 물에 잠겨 죽은 자들과 방주로 산 자들이 있었고, 또 출애굽 때에도 홍해에서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이 있었으니(고전10:22), 여기의 죽음은 옛 사람을 주님의 십자가와 함께 못박음이요, 삶은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삶을 뜻하는 것입니다(롬6:3,갈5:24,골2:12).

③ 노아의 여덟 가족이 물의 심판을 면하고 살아난 것은 성도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고 영생함을 예표한 것이며(요5:24), 이렇게 구원받은 사실을 세례로 인을 친 것입니다.

④ 세례 의식의 뜻은 “구원받은 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물로 몸을 씻는 표현을 한다고 하여 육체의 때를 씻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하셨으니, 어디까지나 정신적이고 신앙적인 의미를 상징한 것이란 뜻입니다.

⑤ 따라서 세례를 받은 성도는 반드시 자기의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4) 예수님이 부활하여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면서 천사들과 권세자들과 능력들을 주관하시는 것은 성도를 위한 중보 사역을 모든 천사들(권세자들과 능력)을 부리시면서 영원히 시행하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22).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심은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중보 사역을 계속 하시며(히6:20), 천사들을 주관하여 성도들을 섬기게 하시는 사역을 계속하시기 위함입니다(히1:14). 예수님의 중보가 아니면 성도들이 하나님께로 향할 수 없는 것입니다(요16:23,24)


제 8 과 십자가의 고난과 성도의 경건 (벧전 4:1-11) 목록으로


본문 말씀 1절은 “십자가에 대한 말씀”이요, 2절 이하는 “십자가를 믿는 성도의 생활”을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를 믿는 성도의 생활은 육체의 정욕을 좇지 않아야 하고(2),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치 않아야 하며(3-4), 하나님께 직고하고(5), 복음을 전파하여야 하며(6), 기도하고 사랑하셔야 할 것(8)을 교훈하셨습니다. 7-11절은 “말세를 기다리는 성도의 생활”을 말씀해주셨습니다. 따라서 총제목을 “십자가의 고난과 성도의 경건”으로 정하고, 첫 대지는 “십자가와 관련된 생활”(1-6)로, 둘째 대지는 “말세를 기다리는 성도의 생활”(7-11)로 나누어 상고하겠습니다.

1. 십자가와 관련된 생활(1-6).

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하심은, 그리스도께서 죄를 대항하여 싸우시고 타협하시지 않은 관계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목적은 속죄에 있지만,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과정은 죄와 타협하시지 않은 결과입니다. 따라서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하심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기까지 죄와 상관하시지 않은 것처럼 성도들도 그런 방패(갑옷)의 자세를 가지라는 말씀입니다(1). 즉, 죄와 타협하지 않고 대항하는 것입니다.

2)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은, 죽은 자가 세상과 단절됨 같이 죽은 육체가 죄와 단절됨이요, 나가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사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롬6:2에서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는 자신이 주님과 함께 죄에 대하여 죽은 자처럼 알아야 할 것입니다(1).

3)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하심은 성도가 세례를 받음으로 인침을 받은 후로는 자기 중심이나 자기의 정욕대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기 육체의 남은 때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 성도는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만을 살펴서 그 뜻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빌5:10,17).

4) 하나님의 뜻 중에 하나는 성도의 거룩함입니다(살전4:3). 따라서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버려야 할 것”이요, 이방인으로 있을 때 자유롭게 행동한 것을 족한 줄로 알고 끝내야 할 것입니다(3). 극한 방탕과 같은 이방인적 생활에서 거룩한 생활로 변화되었을 때, 함께 방탕하던 자들은 이상하게 여겨 비방하겠지만(4),

5)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게 될 것”입니다(5). “저희”는 비방받으며 경건하게 산 성도이고,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려고 예비하신 분은 예수님이시며, “산 자와 죽은 자”는 모든 인류를 뜻하고, “직고한다”는 뜻은 성도가 예수님께 공의로운 심판을 직접 소청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6)“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6)고 하셨습니다. “죽은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음”은 노아 시대의 사람들처럼 이미 죽은 자들에게도 그들이 살아있을 때 복음을 전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 복음의 소식을 전혀 알지 못하고 죽은 자들은 구원 섭리에서 제외된 자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롬9:13,21).

“육체의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 산다”는 뜻은 복음을 받은 자가 다 육체의 죽음을 맛보지만 영으로 구원받는 일은 성취된다는 뜻입니다. 육체는 죽어도 영으로는 구원받고, 부활의 영광을 주시기 위하여 전파하신 것입니다(롬8:9-10).

2. 말세를 기다리는 성도의 생활(7-11).

1)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다”고 하셨습니다. 이 성경이 기록될 당시인 약 2,000년 전에도 세상을 마지막 때로 여긴 것은 구약 시대를 옛 시대로, 예수님 시대를 중간 시대로, 교회 시대를 마지막 시대로 구분하였기 때문이며, 또 자신의 죽을 날과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모르기 때문에 말세의 촉박감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이루시고 끝내신다”(롬9:28) 하셨고, 또 예수님 당시에도 노아 시대처럼 부도덕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었습니다(눅17:26). 예를 들면, 도시 집중(창4:17), 성윤리 문란(창4:17), 물질주의(창4:20), 향락주의(창4:21), 강포주의(창4:22), 혼잡과 무질서(창6:2) 등이었으며, 이런 사실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한 것입니다.

2)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또 다른 증거는,

① 도덕성이 퇴폐하는 사례(딤후3:1-5),

② 복음 사역자들의 타락하는 사례(사56:9-12),

③ 미혹하며, 전쟁의 소문이 있는 일(마24:5-6,슥13:8),

④ 사치와 향락(사3:16,4:1),

⑤ 지식의 발달과 빠른 왕래(단12:4),

⑥ 젊은이들이 방백에 오르고, 노인을 업수히 여기는 일(사3:5) 등이며, 이런 사실들이 이 시대에 많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 이런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라고 하셨습니까 ?

① 정신을 차리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신앙적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필요한 인물로 살고 있는지, 영광을 돌리는지, 신앙 생활을 잘하는지 등등에 대하여 일깨워야 하며,

② 근신하며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근신은 자신의 연약한 점을 파악하여 보충하는 일에 힘쓰고, 자신의 연약을 앎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기 전에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하여 또 성령님의 도우심을 위하여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③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미지근하게 사랑하거나 특별한 대상만 선택하여 사랑하지 않고 모든 이를 뜨겁게 사랑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랑이 허다한 죄를 덮는다” 하심은 사랑이 죄를 방조하는 뜻이 아니고 죄인을 사랑하여 그의 죄를 관대하게 용서해 줌을 뜻하는 것입니다.

④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는 것입니다. 원망없이 하는 뜻은 기쁨과 자원함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대접은 이웃 사랑의 좋은 방법입니다.

⑤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처럼 봉사하라고 하셨습니다(10-11). 선한 청지기는 자기의 뜻은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전달할 뿐이며, 봉사를 하여도 자기의 힘으로 하지 않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고 있음을 나타내며, 모든 일에 자기의 영광은 포기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린다고 합니다. 하나님께만 영광과 권능이 세세토록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항상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남은 때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고, 경성하고 기도하며 전도하고, 선한 청지기처럼 헌신하는 생활을 실천하셔야 할 것입니다.


제 9 과 고난의 종류와 하나님의 심판 (벧전 4:12-19) 목록으로


이 본문 말씀의 전체적 제목을 “고난의 종류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정할 수 있는데,

① “시련의 고난”(12),

②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고난”(13,14,16),

③ “범죄로 인한 고난”(15), 그리고

④ “고난의 성격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17-19)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고난의 종류와 하나님의 심판”이란 제목이 가장 적절합니다.

1. 고난의 종류(12-16)

1) 시련으로 주시는 고난이 있습니다.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은 고난의 목적을 시련(연단)에 두고, 불로 금속을 연단함 같이 고난을 주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의인에게 고난을 주시는 사례가 렘12:1,5에 나타나 있고, 또 고후12:7-10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육체의 가시로 인한 고난 때문에 겸손과 능력의 유지와 역경 중의 감사를 맛보게 되었고, 또 롬5:3-4에서는 “환난이 인내를, 인내가 연단을, 연단이 소망을 주시기 때문에 즐거워 하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어떤 경우로 인한 고난이든지 고난 당하는 원인을 알려 하기 전에 우선 연단받게 된 것을 감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즐거워 하여야 합니다(13).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경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는 일”(14)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는 일(16),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받는 일“(19)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는 일”은 전도 사역상 받는 핍박이고,“그리스도인으로 고난 받음”은 성도이기 때문에 이방인들로부터 핍박 또는 고독을 느끼게 함이요, “하나님의 뜻대로 받는 고난”은 무슨 일이나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살려 하다가 당하는 고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고난들에 대하여 즐거워 해야 할 이유는,

① 재림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상급으로 즐거움과 기쁨을 주시기 때문이요(13),

② 영광의 영, 하나님의 영 즉, 성령님이 함께 해주시기 때문이며(14),

③ 고난으로 인한 부끄러움 이상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기 때문입니다(16).

따라서 이상과 같은 건설적인 고난에 대하여는 부끄러워 할 것이 아니라(16) 오히려 즐거워 하고(13), 복된 것으로 믿으며(14), 믿음과 인내로 잘 감수하여야 할 것입니다.

3) 범죄로 인한 고난이 있으니, 이런 고난은 칭찬스럽지 못하다고 하셨습니다(2:20). 그래서 15절에 보시면, “살인, 도적, 악행, 불필요한 남의 일 간섭” 등으로 고난을 자초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 고난은 죄로 인한 것도 있지만 현실적 생활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이나 과욕과 허례 의식 등으로 자초하는 고난도 있은즉 이런 것들을 적당히 피하여야 할 것입니다.

2. 고난과 관련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17-19).

여기에 대하여 살후1:6-7에 보시면, “너희로 환난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취지의 말씀이 본문에도 있습니다.

1) 17절에서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하실 때가 되었다” 하심은 하나님의 집인 천국에서 지상의 교회들에게 고난 주실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이 고난은 징계로 주시는 것도 있고, 연단으로 주시는 것도 있으며, 섭리로 주시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예측은 신약 시대에 신앙적 지도자들의 잘못들로 인하여 신약 시대의 교회가 수난을 당하고, 많은 성도들의 순교가 있을 것을 예고하심일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사실을 불신자들이 받을 심판과 비교하여 “성도들도 지상에서 이와 같은 취지로 고난을 받거든 하물며 복음을 불순종하는 자들의 마지막 심판이 어떠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2) 18절에서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않은 자와 죄인이 어디에 서겠느냐” 하셨으니, 여기의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지상에서 징계의 매를 자주 맞을 만큼 연약한 믿음으로 겨우 구원받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신앙의 자유가 없는 환난 시기에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믿고 의롭다 함을 받은 자도 지상에서 징계로 고난을 받았으니 불신자 즉, 경건치 않은 자와 죄인의 받을 벌이 어떠하겠느냐 ? 고 하신 것입니다.

3) 따라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은 자들은 항상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 하나님께 부탁하여야 할 것입니다(19). 이 말씀에서는,

①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 할 것과,

② 성도가 고난을 하나님의 섭리로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을 것과,

③ 항상 선을 행할 것과,

④ 자기의 영혼을 미쁘신 하나님께 부탁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제 10 과 장로들과 젊은이들에게 권면하심 (벧전 5:1-6) 목록으로


본문 1-3절은 “장로들에게 권면하신 말씀”이요, 4-6절은 “젊은이들에게 주신 권면의 말씀”입니다.

1. 장로들에게 주신 권면의 말씀(1-3).

1) 신약 교회의 장로들의 기원과 충성에 대하여는 본인이 집필한 <교회헌법연구>의 65문과 <기독교 신앙백과> 265번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① 베드로는 “함께 장로된 자라” 하시므로 사도직과 장로직을 겸하였음을 알 수 있고,

②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라” 하심은 십자가와 부활을 직접 본 자로서의 증인의 자격을 말씀하신 것이요,

③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라” 하심은 구원과 상급을 확보한 상태를 고백한 것입니다.

2) 2절에서 “장로들은 그들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의 장로는 신약의 목회자를 뜻하는 것입니다. 딤전5:17에 보시면 다스리는 장로(치리 장로)와 가르치는 장로(교사)로 말씀하셨는데, 이런 직분을 감독이라(딤전3:2,딛1:7) 하였고, 치리와 교훈을 겸한 자를 목사(엡4:12)로 표현하였습니다. 따라서 양무리를 치는 목회 사역자를 권면한 것입니다.

3) 권면의 내용은,

① “부득이 함으로 하지 말라” 하셨으니, 이 말씀은 복음 사명 아닌 것에 기인하거나 뜻을 두지 말고 오직 사명감에 의하여 착수하라는 뜻이며,

②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행할 것”은 사명의 길을 가는 과정에서 불의한 일이나 억지로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요,

③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 것”은 가룟 유다처럼 사명과 물질을 함께 타산하지 말고 오직 사명으로만 달음질하면서 그때그때 주시는 물질의 복으로 살아갈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복음 사역이 물질 소득의 방편이 되거나 물질 소득에 얽매여 복음 사역에 피해를 주어서는 안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에 대한 감사와 영광을 받으셔도 성직자는 축복과 교훈에 대한 사례를 요구할 수 없음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마10:8,고전15:10,벧전4:11).

④ “즐거운 뜻으로 하라” 하셨으니, 항상 감사와 만족과 보람을 느껴야 할 것이요, 따라서 취미에 끌림도 있어야 합니다.

⑤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지 말라” 하셨으니, “맡기운 자들”은 목회자를 초빙한 성도들이며, “주장하는 자세를 피할 것”은 명령하기 전에 잘 교화시켜 “자원하는 순종과 봉사를 하게 하라”는 뜻이며(몬8-9,고후8:10),

⑥ “양무리에게 본이 되라” 하셨습니다. 장로는 목사나 치리 장로나 다함께 교인의 모범자이므로 기도와 헌금과 성경 지식과 예배와 가정과 봉사와 생활에 모범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4) 장로가 자기의 사명을 잘 감당하였을 때 목자장이신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상급을 “시들지 않는 면류관”이라 하신 것은 사람이 만들어 주는 꽃다발 같은 것이 아닌 영원히 누릴 영광의 은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 젊은이들에게 권면하신 말씀(5-6).

1) 젊은 자들은 장로의 다스림을 받는 성도들(평신도)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교회의 감독자들에게 잘 순복하여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고 순복하려는 준비 자세가 확립되어 있어야 합니다. “허리를 동임”은 예수님이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것을 연상하게 하신 것입니다(요13:4). 어느 단체나 어른이 많으면 혼란해집니다. 교회의 어른은 예수님 뿐이어야 하고, 목사가 예수님을 닮고 장로가 목사를 닮으며, 성도들이 장로를 닮아 사는 식으로 질서가 잡혀야 합니다. 지도층이 본을 보이지 못할 때 본을 보이지 못한 만큼 복종하지 않는 사례가 있습니다.

3)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교만한 자를 하나님이 대적하시니 얼마나 무섭습니까 ? 여기의 “대적하시고, 은혜를 주신다”는 말씀이 원문상 현재형이기 때문에 즉각 대응하시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또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 큰 노력이나 밑천을 드려야 한다고 하셨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 겸손으로 은혜를 받는 방법은 성경에만 있습니다.

4) 젊은 성도들이 겸손과 봉사에 꾸준하면 능하신 하나님이 높여 주시고, 귀하게 쓰실 때가 있다고 하셨습니다(6). 존귀와 중임과 중직을 늦게 받는다 하여 결코 손해되지 않음을 믿으셔야 할 것입니다. 겸손에 대하여는 다음 설교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설교보충 7. 겸손할 것 (벧전 5:5-6) 목록으로


1. 겸손할 이유는,

1)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자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함은 당연한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높아도 자기보다 더 높은 자 앞에서는 겸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자기의 “있고 없는 것”이 하나님께 달렸으니 마땅히 겸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천사들도 피조물된 탓으로 하나님 앞에 발을 가리우며 겸손하였고(사6:2), 천국의 성도들도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영광만 돌리며 겸손하였다고 합니다(계4:9-11). 원인자 앞에서 결과된 존재는 마땅히 겸손하여야 할 것이요,

2) 인간의 모범자이신 예수님이 겸손하였기 때문입니다(벧2:1-11). “예수님은 온유, 겸손하였고, 자기를 들레지 않는 분이라”고도 하셨습니다(마11:29,12:9). 하나님의 아들도 겸손하였는데 하물며 인간 피조물이겠습니까 ? “죤 뮐러”는 말하기를,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인데, 이 사랑은 겸손을 뿌리로 하여 피어난 꽃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사랑은 겸손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겸손 없는 사랑은 실천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3) 인간은 범죄하였고 또 범죄 가능성이 잠재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죄지은 사람의 머리에 용수(추자)를 씌웠습니다. 죄지은 사람은 푹 엎드려 있습니다. 고개를 들지 않지요. 그것이 겸손의 표현입니다. “죄인이 벌을 받을 때 판사 앞에서 죽어도 죄를 안 지을 것이니까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는 용서 받고 나가서 또 죄를 짓습니다. 저희들도 죄사함 받았다고 하여 절대로 교만하면 안됩니다. 언제 또 유혹 받고 죄에 넘어질지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주여, 나를 붙들어 주십시오, 나는 연약한 자입니다” 하고 겸손해야만 할 것입니다. 또 회개하고 죄사함 받은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계속 겸손하여야 할 것입니다.

4) 교만하면 하나님이 대적하시고 겸손하면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겸손하면 자기를 낮추게 되고, 자기의 연약을 아는 입장에서 기도하게 되며, 겸손하면 사람에게도 사랑을 받게 되고 또 하나님은 그런 자를 찾아서 능력을 베푸시기 때문에 겸손한 자가 은혜를 더 받게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약속입니다.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임을 믿으셔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계획적으로 겸손하셔야 할 것입니다.

5) 하나님이 겸손한 자의 헌신을 원하시므로 하나님의 쓰임을 받기 위하여 겸손하셔야 합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이 대적하시기 때문에 교만한 봉사는 하나님 앞에 상달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앞에서 인간의 뜻을 내세우던 베드로에게 “사단아 물러가라”(마16:23)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교만한 자의 충성이 하나님께 상달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저는 양재열 장로님의 미담을 들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장로님은 새한 교회의 장로님이십니다. 옛날에 자기의 생활비 오륙만원으로 사실 때 매월 전도비, 구제비, 헌금을 합쳐서 50만원씩 바쳤다는 것입니다. 그 돈은 인쇄소를 하여 번 것인데 “자신이 경영하는 인쇄소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으로 벌어서 하나님께 드렸을 뿐이라”고 하시며 겸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자기의 고향 정읍에서 자기 집을 팔아 예배당을 짓고 마굿간에서 살았으며, 아들에게 신문 배달을 시키고, 매일 성전에서 기도하고 눈물을 뿌리시더니 하나님께로부터 그런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겸손하게 하나님을 섬겨야 하나님도 영광을 받으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상으로 겸손의 이유 다섯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2. 어떻게 하는 것이 겸손한 것입니까 ?

1)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늘보다 높고, 햇빛보다 밝은 분이십니다. 그 예수님 안에서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빌3:9에서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처음에는 예수님을 잘 모르고 대하다가 나중에 예수님이 자연을 지배하시는 천지의 주재시란 사실을 알았을 때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하며 겸손하게 자복한 사실이 있었지요(눅5:3-8). 이와 같이 주 안에서 자기를 발견하면 주대(主大), 아소(我小)가 되어서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요,

2)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나는 예수님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라 그는 흥하셔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셨고, 또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좇으라”(마10:38)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부인할 줄 아는 것이 겸손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자기의 명성을 나타내려고 자기의 신상까지 세우고 “나의 능력, 나의 권세, 내가 건설한 도성, 나의 영광....” 하다가 하루 아침에 왕위가 떠나고 정신병자가 되지 않았습니까(단4:30-31)? 이렇게 교만은 자기를 망치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가 40일 금식 기도를 한다 하여 그의 친구가 무슨 목적으로 40일 금식 기도를 하느냐 ? 하니까,

① 교회 부흥되고,

② 나라 통일 되고,

③ “다방에서 접개부 역할을 하는 딸을 회개 시켜 달라”고 하는 것이라 하였을 때, 그의 친구가 권면하기를 “그 기도 제목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① 파리를 잡아 주시고,

② 쥐새끼를 잡아 주시고,

③ 당신 자신을 때려 잡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여 이번에 당신이 “꼭 죽어 돌아와야 할 것이라”고 권면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성도는 그 권면을 달게 받지 않고 다른 기도만 하여 자기는 죽어 돌아오지를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오자 마자 병들어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죽기 전에 “송, 송....하더라”는 것입니다. “송송이 무얼까” 송권사가 권면한대로 안해서 내가 죽는다는 뜻이라는 이야기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는 사람일수록 자기를 못 죽이는 이가 많은 것을 일깨우는 예화입니다.

3) 죽기까지 복종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도 예수님의 겸손 모범에 나타나 있습니다. 빌2:5-8에 보시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자신과 상관없이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

4) 세상의 욕심을 피하여야 합니다. 세상의 욕심을 갖는 사람이 거의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자기의 출세나 잘사는 것을 과시해 보려는 사람은 결코 겸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세상 일에 경쟁하고, 현실적인 것에 욕심을 갖고 자랑하려는 심리가 있으면 스스로 교만한 자인줄 알고 회개하여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시간에는 겸손할 이유가 다섯 가지와, 겸손한 방법 네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불평 없이 복종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으며, 현실에 욕심부리지 마시고 마치 속없는 사람처럼 되는 것이 겸손이요, 어린 아이처럼 되는 천국에서의 큰 자인 것입니다(마18:1-4).

하나님은 그런 성도를 귀히 보시고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을 꼭 믿으시기를 바라서 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 11 과 일반적 권면과 결론 (벧전 5:7-14) 목록으로


이 본문 말씀은 7-10절까지 “일반적 권면의 말씀”이요, 11-14절은 “전체의 결론”입니다. 일반적 권면이란 장로들과 젊은이들에 대한 권면에 비할 때 일반적이란 뜻입니다. 또 이 말씀은 이 강론문에서는 간략하게 설명드리고, 자세한 교훈을 설교문으로 대치합니다.

1. 일반적 권면(7-10).

1)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고 하셨습니다(7). 그러나 “회개 못하는 염려”는 자신이 근심하고 회개하도록 노력하셔야 합니다(고후7:10).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염려는 “현실적 염려”를 뜻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것들입니다(마6:25-34). “염려를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이 권고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염려를 자기가 안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성도는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할 때 노력하면서 하여야 합니다.

필자가 95년 9월 중순에 전임지 교회를 사임하고 사택을 비우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홉 식구가 거처할 전세 주택을 구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교통이 좋고 활동 전망이 나은 곳의 순서로 집을 얻으려고 다녔으나 헛수고만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하나님, 저는 어느 곳으로 가도 괜찮습니다. 지금까지는 저의 목표로 거처 방향을 살폈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적당한 주택을 얻게 하시는 곳이 저의 갈 곳인 줄로 믿겠습니다” 하고 노력한 결과 첫 번째 소개된 집을 계약하였는데, 참으로 유익하고 편리한 위치의 집을 얻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 예화에서 맡기는 것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권고가 어떻게 나타나 주시는지를 깨달으시고 그런 체험을 많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2) “근신하고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8).

① 근신은 자기의 신앙적 취약점을 보완하는 것이고, “깨어 있음”은 신앙의 활동에 잠자지 말라는 뜻입니다. 자전거는 움직여야 쓰러지지 않는 것처럼 신앙 활동도 그렇습니다.

② 성도가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할 이유는 성도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에게 명절이 있고 휴가가 있지만, 마귀는 명절도 없고 휴가도 없으며 여름에 피서도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3) “믿음을 굳게 하여 마귀를 대적하라”고 하셨습니다(9).

① 믿음을 굳게 함은 하나님을 든든히 의지하는 것이요,

② 마귀를 대적함은 불의(죄)를 박차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잘하는 성도는 신앙 생활에 큰 승리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③ 그리고 피곤을 느낄 때는 “세상에 있는 모든 형제들이 마귀와 싸우기 위하여 동일한 고난을 받은 것을 알고 인내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앞 사람의 뒤를 따르는 것이 편리한 것처럼 고난의 극복도 그런 유익이 있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하는 것입니다(10).

①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를 부르신 분이며, 또 예수님을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분입니다.

② 그 하나님이 현실에서 잠깐 고난받는 성도들을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는 것을 확신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성도의 궁극적 구원을 선포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온전케 하심”은 성화의 완성을 뜻하고, “굳게 하심”은 믿음의 불변을 뜻하며, “강하게 하심”은 마귀를 대적할 때 주시는 힘이며, “터를 견고케 하심”은 내세의 영광을 보장하시는 말씀입니다.

2. 결론에 대한 말씀입니다(11-14).

1) 결론 부분 첫 줄과 끝 중에서 하나님께 대한 영광과 성도에 대한 평강을 선포하셨습니다(11,14). 이 선포는 그리스도를 대리한 사도적 선포입니다. 즉, 축도와 같은 성격입니다.

① 하나님께는 권력(주권)이 세세 무궁토록 있으시기를 선포하였고,

②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평강을 선포하셨습니다. 이 선포의 효력은 하나님이 선포자를 인정하시는 만큼 응답하시고 허락하실 것입니다.

2) 이 편지의 전달자인 베드로의 신실한 형제 ‘실루아노’를 천거하였습니다. ‘실루아노’를 신실한 형제로 믿고, 그가 전달한 베드로 전서는 간단한 글이지만 “하나님의 감동으로 주신 은혜의 진리임을 알아서 그 말씀의 은혜에 굳게 서라”고 하신 것입니다. 글로 전달한 서신이 은혜의 말씀이요 성경인 것처럼 성도들도 성경 말씀에서 직접 은혜를 받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3) 흩어져 있는 성도간의 문안과 친교를 권장하셨습니다. 우선 새롭게 만난 ‘실루아노’와 친교를 갖고, 또 베드로가 계신 곳에 있는 “바벨론의 교회들과 신앙의 아들 마가도 함께 문안한다”고 하셨습니다. 친한 사도들이 만날 때 포옹을 하고 입맞춤을 하는 것은 반가움과 인사의 문화입니다. 문제는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어떤 것인가 ? 하는 것입니다. 바벨론은 글자대로 해석한다면, 현재 이락의 영지이어야 하지만 베드로가 이 서신을 발신한 곳이 로마일 것이므로 죄악 많은 로마를 지칭한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성경은 죄많은 도성을 바벨론이라고 하였습니다(계18:2,10,14). 깨어 있어 시험에 들지 않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보충 8. 염려를 주께 맡기라 (벧전 5:7) 목록으로


본문 말씀에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권고”란 “돌보아 주신다”는 뜻입니다.

1. 염려에는 여러 가지 대상과 종류가 있습니다.

1) 자기를 위한 염려와 다른 사람을 위한 염려가 있고, 또 현실 생활을 위한 염려와 신앙 생활을 인한 염려가 있습니다. 성도들에게는 생활을 위한 염려와 신앙 또는 교회를 위한 염려도 상당하게 있습니다.

2) 이런 상황에서 염려할 것과 안할 것을 잘 구분하셔야 할 것입니다. 자기 변화를 위한 염려나(고후7:10) 교회의 발전을 위한 염려는 바울 사도께서도 하셨고(고후11:28) 권장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생활의 염려는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마6:25-33). 인간 이하의 야생 동물들이 먹고 살아나가는 것을 염려하지 않으면서 여전히 번식을 잘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하나님이 인생들도 그렇게 양육해 주실 준비가 있으시리라고 믿어야 할 것입니다.

3) 성도가 염려 안해도 될 일을 염려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공부를 잘 못하거나 출세를 못하는 일들입니다.

지난 주일(90년 말) MBC TV에서 “세상 사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가재규’씨의 생활을 보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 사람은 노동자였지만 참으로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옳게 알고 복음 사명을 목표로 노력하는 것을 보았을 때 감동이 컸습니다. 우리의 사는 목적은 출세에 있지 않기 때문에 높아지지 않는 것으로 염려할 필요가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염려에서 해방되고 행복을 누리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2. 성도가 꼭 염려해야할 일이 있을 때 그것을 “다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보통 맡기지 않고 아주 맡겨 버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시37:5에서는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정오의 빛같이 밝혀 주실 것이라” 하셨고, 또 사48:17에서도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여호와로라” 하셨으며, 롬8:28에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느니라” 하셨으니, 이것들이 다 하나님께 맡기고 부탁할 때 잘되게 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특히 시37:5에서는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하셨는데, 이 “이루신다”는 말씀은 주님이 “자기의 뜻대로 영광스럽고 유익하게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계획이나 사람의 뜻이 하나님보다 지혜롭거나 더 유익하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왜 성도의 염려를 맡아 주실만 할까요 ?

1) 하나님은 진실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외에 진실한 분이 없다”는 말씀은 요14:6과 롬3:4 등에서 말씀하셨습니다.

① 미국의 평론가 ‘제임스 럿셀’(1819-1891)은 말하기를 “진리는 항상 교수대 위에 있고, 허위는 보좌에 있다. 그러나 교수대 위에 있는 진리가 미래를 다스린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배후에서 그 진리를 지키신다” 하였고,

②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워’는 “세상에 제일 안전한 것은 진리 뿐이라” 하였으며,

③ 영국의 평론가 ‘러스킨’은 “인생의 새 출발은 진리 추구에서부터이다‘ 하였고,

④ 일본의 ‘하천풍언’은 “신자의 제일 큰 무기는 진실이라” 하였으며,

⑤ 영국의 ‘처칠’은 “진실은 인간이 보유한 가장 귀한 소유물이라”고 하였고,

⑥ 렘5:1에서는 “예루살렘 거리에 진리를 구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도 진실 아닌 것과 약속 위반이 많이 나타나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진실이 왜곡되는 세계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염려를 맡아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을 상대로 진실을 찾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생활을 하심으로써 그 세계에서 진실과 참의 가치를 소득하시는 분들이 되셔야 하는 것입니다.

2) 우리 인간은 자기 목적을 자기 뜻대로 성취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직업 선택, 돈벌이, 공부 잘하는 것, 명예로워지는 것, 결혼 상대자를 구하는 것 등 자기의 뜻대로 되는 것이 얼마나 있습니까 ? 아들 딸 낳는 것도 뜻대로 못하지 않습니까 ? “인간 만사가 사람의 뜻대로 안된다”는 예화로 ‘정규오’ 목사님의 증언을 옮기면, 어떤 부부가 맏 딸을 낳았습니다. 딸 하나야 살림 밑천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로 족하니 더 낳지는 말자” 하여 ‘지일’(止一)로 작명하였는데, 두 번째 또 딸을 낳고 “연거푸 원치 않는 딸을 둘이나 낳으니 괴상한 일이라” 하여 ‘괴이’(怪二)로 작명하였고, 세 번째 또 딸을 낳고 “항상 딸만 낳는구먼” 하고 ‘항삼’(恒三)이라고 지었습니다. 네 번째 또 딸을 낳고 매우 분하고 원통하여 ‘분사’(憤四)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다섯 번째 또 딸을 낳으니까 기가 막히고 웃음이 나와서 ‘소오’(笑五)라고 지었습니다. 여섯 번째 또 딸을 낳고 “참 별일도 다 많다” 하여 ‘별육’(別六)이라 짓고, 일곱 번째 아들을 기대하였는데 또 딸을 낳으니까 “이제 이 딸들을 키워 시집 보내려면 나는 망했구나” 하는 생각에서 ‘망칠’(亡七)이라고 이름 지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만큼 자기 뜻대로 안되는 인생이니까 차라리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상책일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3) 사랑의 하나님이 “맡아 처리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시37:5,50:15,잠16:3,마11:28,사48:17,롬8:28,벧전5:7 등에서 하나님께 “구하고 부탁하고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에 나타난 요셉의 생애나 출애굽기에 나타난 모세의 생애는 다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한 대표적 사례가 아닙니까 ? 인간 세계는 사랑의 한도가 있기 때문에 혈연지간, 형제지간이라도 어려움을 맡아 주려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은혜와 사랑을 가지시고 우리의 염려스러운 짐을 맡기라고 하셨으니 얼마나 다행하고 감사하며 희망스러운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4.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성도는 현실적으로만 맡기지 말고 영원한 내세를 지향하면서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현실 안에서 해결해 주실 수도 있지만 영원까지 연기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나 많은 순교자들이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것 아닙니까 ? 욥13:15을 보시면 “하나님이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의뢰하리니 (장차)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변백할 것이라” 하셨고, 욥19:26에서도 “내가 이 가죽이 썩은 후에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볼 것이라” 하므로 고난 중에서 내세까지 소망을 가졌던 것입니다. 민23:19에서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므로 식언치 않으시고 후회가 없으신즉 그 말씀하신 바를 꼭 실행하시는 분이라” 하셨고, 욥이나(욥1:21) 하박국 선지자나(합3:16-19) 바울 사도(롬8:35) 등도 고난 중에서 끝까지 하나님을 즐거워 하고 소망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바라고 영원까지 소망을 두는 자는 이 세상에서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고(고후4:9), 무명해도 유명한 것이며, 징계를 받는 자 같아도 죽임 당하는 자가 아니요, 없는 것 같아도 모든 것이 있는 자라”(고후6:9-10)고 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는 자신의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고 항상 낙관적으로만 살아가셔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염려를 주께 맡기는 성도는,

① 우선 기도를 생활화 하셔야 할 것이요,

② 현실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그런 일들을 다 하나님의 뜻에 맡길 것이며,

③ 신령한 복의 가치를 깨닫고,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생활에 열중하시면,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자기의 뜻에 따라, 유익하게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설교보충 9. 근신하라, 깨어라 (벧전 5:8-9) 목록으로


성도의 경성하는 생활을 위하여 “근신하고 깨어 있을 것”을 교훈하셨습니다.

1. 근신함에 대하여.

1) 근신이란 국어 사전에서 “조심하는 생활” 또는 “자기의 과오를 반성하며 행동을 삼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저희들도 신앙 생활의 취약점을 반성하면서 근신하여야 하겠습니다.

2) 많은 성도들의 신앙적 취약점은,

① 성경 지식이 부족한 것,

② 게으른 것,

③ 기도 안하고,

④ 예배 시간에 빠지며,

⑤ 성수 주일을 못하고,

⑥ 현세욕이 강하며,

⑦ 혈기, 고집, 욕심, 교만, 명예욕 등을 못버린 상태,

⑧ 급하게 말하여 말에 실수하는 일,

⑨ 이웃을 의심하고 미워하며 훼방하는 일,

⑩ 사랑하지 못하는 일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

⑪ 이해성이 부족하고, 생각하는 관점을 바꿀 줄도 아는 넓은 마음도 필요한 것입니다.

근신하는 성도는 항상 자기의 약점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교회의 재산이나 인간적 권위 또는 직분의 권위를 사랑의 가치보다 더 귀하게 여겨 사랑을 상실하면서도 물질이나 권위주의에 빠져들기도 하지만 성도들은 진리와 사랑의 권위를 최대한 존중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3) 마귀는 휴식을 취하지 않으며, 추우나 더우나 굶주린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마귀로 틈타지 못하게 하셔야 합니다. 취약점을 보완하는 것이 근신의 방법입니다.

2.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1) 겔3:17을 보시면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파수꾼을 세웠다”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 “파수꾼”은 교역자를 의미하지만 교역자는 교회의 파수꾼은 될 수 있어도 성도의 개인 심령과 가정의 파수꾼까지는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 개인과 가정의 파수꾼은 여러분 자신이 하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2) 파수꾼과 군사는 비슷한 뜻이 있습니다. 딤후2:3에서 성도를 “군사로 다니는 자”라 하셨고, 엡6:11에서는 “신앙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 하셨으며, 본문 8절에서 “우리의 대적은 마귀라” 하셨고, 또 딤전6:12에서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라” 하셨으니 계획과 작전을 잘하여(눅14:31,임금의 작전 계획) 마귀의 유혹을 이겨야만 신앙 생활의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는 파수꾼처럼 경성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3) 밤에 문 단속을 안하고 주무시는 분은 거의 안 계실 것입니다. 또 건강을 위한 단속을 하고 경제를 위한 방책을 마련하는 것처럼 신앙 생활을 위한 경성도 그와 같이 필요한 것입니다.

4) 신앙 생활의 경성은 하나님과 자신 또 자신과 대인 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① 하나님과의 관계는 말씀 실천과 기도와 충성으로 유지하고,

② 대인 관계는 모든 사람과 사람의 유대를 갖는 것입니다. 성도가 나태하여져서, 말씀 묵상과 기도를 게을리하며, 또 말씀 실천을 못하고, 충성된 생활을 안하면 결국 하나님과의 친밀 관계가 멀어져서 하나님의 관심 밖으로 멀어지다가 나중에는 징계의 매까지 맞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관심 속에 붙잡히는 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 깨어 사는 생활입니다.

③ 마26:41에 보시면,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성도가 일깨어 기도하지 안을 때 시험에 들기 쉽다는 뜻이요, 또 시험은 기도로만 물리칠 수 있습니다. 어떤 성도의 가정은 대단히 어려운 시험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기도를 힘쓰려 하지 않고 다른 성도의 기도에만 의존하려는 성도가 있습니다. 시험이 있을수록 말씀 은사에 대하여도 민감해져야 할 것입니다(시107:20). 성도가 깨어 기도하여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주님의 재림이 밤에 도적처럼 오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마24:43,살전5:2,벧후3:10,계3:3,16:15).

5) 전도자가 경성할 것에 대하여 주신 말씀을 살피면,

① 눅12:36에서 “주인이 혼인 잔치에 갔을 때 대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밤 2경, 3경이라도 문을 열어 줄 수 있도록 대기하라” 하셨고,

② 마8:22에서 “부친의 장례 치를 일이 생겨도 생명을 구원하는 복음 전파의 의미가 더 크다는 것을 알아서 그것을 먼저 시행하여야 한다”고 하셨으며,

③ 눅12:42에서는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처럼 예비하라” 하셨고(벧전3:15),

④ 겔3:17에서는 “파수꾼의 사명을 가지고 진리 보수와 교회의 순결 보존과 이단 방비 등을 위한 파수꾼의 역할을 잘할 것을 말씀하셨으며,

⑤ 또 진실하고 근면할 것과(욥8:5), 전심을 기울일 것과(대하16:9), 죽도록 충성할 것(계3:10)을 말씀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모든 성도는 항상 자신의 취약점에 근신하면서 하나님과의 신앙의 관계, 사람과의 사랑의 관계, 성도로서의 책임과 사명의 관계, 여러 가지 유혹을 피하는 문제, 핍박을 이기며, 이단을 방비하고 환난을 견디는 문제에까지 항상 경성하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설교보충 10. 마귀의 유혹 (벧전 5:8-9) 목록으로


마귀는 항상 성도 개인과 교회 단체를 유혹합니다. “우는 사자처럼 삼키러 다닌다”고 하셨습니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교회의 순결 보존을 위하여 “마귀의 유혹”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도의 대적이 무엇인지를 깨달으셔야 할 것입니다.

1. 성도 개인을 유혹함에 대하여.

1) 현실적 욕심으로 유혹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는다”는 말씀을 기억하시지요(약1:5) ? 자기의 취미대로 살려는 욕심, 다른 사람이 하는대로 따라가려는 욕심, 현실적인 욕심 등을 죽이지 않으면(갈5:24) 안됩니다. 성도는 자기를 부인하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갖도록 힘쓰셔야 할 것입니다(마16:24,창13:9).

2) 성도가 나태해지도록 유혹합니다. 성도의 나태란 신앙에 깨어 있지 않는 것입니다. 항상 긴장하는 태도로 꾸준히 신앙 생활을 하지 않으면 마귀는 거기에 와서 불신앙과 세속의 바람을 더 힘있게 불어 넣는 것입니다. 나태는 곧 마귀의 손에 자기의 고삐를 주는 것입니다.

3) 안일과 향락으로 유혹합니다. 하나님이 ‘벨사살’ 왕을 죽이실 때도 그렇게 하셨습니다(단5:3-4,30). 안일과 향락은 신앙을 흐리게 한다는 것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안식일에 오락을 금지시킨 이유와(사58:3,13), “지혜자의 마음이 연락하는 집에 있지 않고 초상집에 있다”는 말씀(전7:1-4)과, “평안하다 할 때에 해산의 고통이 임한다” 하신 것처럼 주님의 재림의 경우도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향락에서 멀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2. 교회에 대한 유혹으로,

1) 이단이나 불건전한 신학 사조에 끌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유혹의 방지를 위하여 “바른 신앙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고(마16:18), “성도의 신앙을 진리로 거룩하게 만들라”(요17:17)고 하셨습니다. 신22:9-11에서도 “포도원에 두 종자를 뿌리지 말고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밭갈지 말며 양털과 베실로 섞어짠 옷을 입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혼합된 것이나 혼란한 것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순수하고 깨끗한 것만 좋아하시니까 성도들도 단순하고 깨끗하게 사셔야 할 것입니다(호7:8). 또 신약에서도 “사두개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마16:6,막8:15). 따라서 교회는 잘못된 증언이나 이방적 신앙 습관을 용납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2) 불법을 시행하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법과 질서는 거리의 신호등과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법이 교회의 순결을 지키는 신호등인 것입니다. 또 성경은 불법을 죄라 하셨고(요일3:4), “불법이 성하면 사랑이 식는다”(마24:12)고 하셨습니다. 또 “불법을 행한 자는 주님이 모르신다”(마7:23) 하셨고,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고전14:40). 법을 가르쳐야 할 사람들이 가르치지 않거나 또 자신에게 불리하다 하여 감추는 일이 있다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칼빈 선생님은 그의 <기독교 강요> 4권 12장에서 교회의 권징에 대하여 상세히 강조하셨습니다. 모세는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의 제도를 두고 매일 성내에 앉아서 들어오는 송사를 즉각 처리해 줌으로써 민중의 질서와 안녕을 도모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의 권징 실태는 너무도 소극적이기 때문에 신앙의 규모와 의의 기강이 서지 못하는 형편이니 이런 것은 바로 주님의 교회를 해치는 대적 행위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3) 사랑을 해하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단결도 안됩니다. 사랑은 은사의 최고 축복이요, 모든 은사의 구슬들을 꿰어 주는 줄과 같아서 사랑을 해치면 교회를 가장 유익하게 해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작은 불법에서부터 큰 싸움에 이르기까지 사랑을 없애려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사랑이 은사의 최고의 축복인 것을 명심하셔서 무슨 희생과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랑에 금이 가는 일을 삼가도록 노력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의 잘못을 지적할 때도 성경과 사랑과 기도를 근거로 하여 결코 사랑에 금이 가지 않는 방법으로 지적하고 교훈하여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깨진 그릇을 잘 때운다 하여도 안 깨어진 것만 못하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따라서 사랑을 해치는 마귀의 유혹에 교회가 동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4) 성직자의 부패입니다. 이 글을 쓰는 자신도 성직자이며, 항상 자신의 부패성과 연약을 탄식합니다. 바울도 자신을 탄식하셨습니다(롬7:22-24). 들리는 말에 의하면 “실력 없는 목사가 많다”, “목사의 자질이 부족하다”, “은혜가 없다”, “교회를 구멍 가게로 한다”, “배척을 받아도 나가지 않는다”, “놀고 먹으며 다니기를 좋아 한다”, “재산이 많다”라고 합니다. 사56:10-11에서는 “소경같이 무지하고 벙어리 개처럼 짖지 못하는 몰지각한 목자들이니 삼림의 짐승들이 와서 삼켜버리라”는 말씀이 있고, 겔34:1에서는 “양을 잡아먹으며 자기만 기르는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현실 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잘못된 점, 특히 기복 신앙과 비정통 신앙은 성직자들의 잘못된 지도의 결과요 따라서 교회가 속화된 것도 역시 성직자의 책임입니다. 마귀는 성직자들의 그런 점을 부추기고 있는 것입니다.

5) 전통을 따르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주의, 초대교회주의가 인간주의, 전통주의로 변질되어 있습니다. 2,000년 전통이 교회의 기초가 아니고 성경과 사도들의 신앙 생활이 기초란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많은 교인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예배당을 숭상하고, 많은 교인들이 성경보다 재미있는 설교를 좋아 하며, 많은 교인들이 예수님보다 인간 목사를 더 좋아합니다. 이런 것들이 다 전통의 영향을 막지 못한 현실 목회의 헛점인 것입니다. 마귀는 그런 것을 부추기는 것입니다.

6) 성도로 하여금 무관심에 떨어지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우선 성도 자신이 은혜를 못 받거나 회개를 못하여도 관심이 없고, 전도, 봉사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강조할 때는 약간 힘쓰지만 지구력이 약한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무관심은 불의에 대하여 지적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일을 못 지켜도, 예배 시간에 늦어도, 설교할 때 졸고 은혜를 못 받아도 여전히 고치지 못하는 것은 역시 무관심 때문입니다. 이런 중에서 교회는 생기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습기가 있으면 곰팡이가 생기고, 깨끗지 못하면 파리가 오는 것처럼 성도들도 순결하지 못하거나 경성하지 않으면 마귀의 유혹이 옵니다. 이상에 말씀드린 개인과 교회의 유혹을 잘 피하고 이기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