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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삼서 강론

저자 지영근 목사



목 차


요한삼서 강론

제1과 요한삼서 강론 (요삼 1:1~15) 49 바로가기

설교보충 1. 신앙 생활을 잘하자 (요삼 1:1~4) 51 바로가기

설교보충 2. 사도 요한의 간구 (요삼 1:2) 53 바로가기

설교보충 3. 영혼이 잘됨 (요삼 1:1~4) 55 바로가기

설교보충 4. 예수 잘믿는 생활 (요삼 1:2~4) 58 바로가기

 

제 1 과 요한삼서 강론 (요이 1-15) 목록으로


가이오에게 보낸 서신 (요삼1-15)

1. 요한 3서는 요한 2서와 비슷한 기회에 사도 요한이 신실한 성도 ‘가이오’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성경에 ‘가이오’라는 이름이 몇 사람 나타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바울의 동역자인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행19:29)와, 바울의 식주인 고린도 사람 ‘가이오’(롬16:23,고전1:14), 그리고 바울을 따라 아시아까지 간 더베 사람 ‘가이오’(행20:4)가 있습니다. 따라서 본서에 나타난 ‘가이오’가 위의 세 사람 중 한 사람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인지는 확실히 알기 어렵습니다.

2. 본서에 나타난대로 ‘가이오’는 요한의 사랑을 받은 자요(1), 축복을 받은 자이며(2,15), 신앙 생활에 칭찬을 받은 자요(3), 기쁨을 전한 자이며(4), 전도자들을 도운 자요(5), 전도자들로부터도 칭찬을 받은 자요(6), 또 복음 사역에 함께 수고하는 자(8)라 하셨으니, 이 가이오의 생활의 미덕만 본받아도 충분한 교훈이 될 것입니다.

3. 2절에 나타난 축복의 말씀은 많이 증언되는 말씀이므로 설교문을 참고하십시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셨으니, 연구하셔야 할 축복입니다.

4. 3절 말씀의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란 말씀은 한 마디로 가이오의 신앙 생활을 그의 측근에 있는 성도들이 사도 요한에게 알렸다는 것입니다. “네게 있는 진리”란 “네가 믿는 예수”란 뜻으로 이해하십시오. 어떤 성도는 예수님을 욕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 생활을 잘하는 성도는 “네가 믿는 예수님이면 나도 믿겠다” 할 정도로 진리 실천을 바로 나타내는 성도도 있습니다. ‘가이오’는 그런 칭찬을 받은 성도입니다.

5. 사도 요한은 그의 제자나 성도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 가장 기뻐하였고, 사명자의 생활에서 그런 보람을 맛보는 것 이상 더 큰 기쁨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사명자에게 그런 기쁨과 만족을 주는 성도가 얼마나 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사역자는 예수님을 닮으려 하여야 하고, 성도는 사역자를 존경하며 본받으려 하여야 할 것입니다. 현실 교회 성도들 중에는 현실적 욕구를 떨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여겨지지 않습니까 ? 가이오와 같은 성도가 되셔야 할 것입니다.

6. 가이오는 무슨 일에든지 나그네된 형제들에게 신실하게 행하였습니다(5). 성도들이 그의 사랑을 받고 교회 앞에서 증언한다고 하였습니다(6). 그 증언한 성도들은 순회 전도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하라”(6)고 하였습니다. 이 뜻은 기도와 물질로 전도자들을 잘 도우라는 뜻입니다.

7. 순회 전도자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이방인들에게 나가서 아무 대가도 없이 전도하였습니다(7). 그러므로 “그들을 잘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셨고(8), 그렇게 할 때에 “그들도 사도들처럼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된다”(8)고 하셨습니다.

8. 아울러 교회 안에서 쓴 뿌리처럼 작용하는 문제의 사람을 경계하라고 하셨습니다.

1)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는 바른 말하는 사도들(요한 일행)을 대접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은 경계의 대상이며, 권면의 대상이기 때문에 잊지 않다가 그곳에 가면 권면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9-10).

2) 그는 악한 말로 요한 사도 일행을 망령되이 폄론하고도 유위부족(만족치 못함)하여, 사역자들을 대접하지 않았고, 접대하려는 성도들까지 못하게 하며, 자기 뜻에 맞지 않는 성도를 교회에서 내쫓는 일까지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이 교회마다 혹 있어서 교역자에게 가시 역할을 할 때가 있습니다.

9. 사도 요한은 가이오에게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고 하셨습니다(11). 또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다”(11)고 하셨으니, 본래 청결한 마음 가짐에서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므로(마5:8) 악을 행하는 자가 하나님을 발견하거나 체험할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선이나 악은 그 마음에 있는 선이나 악에서 밖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마12:34-35).

10. 교회 안에 문제의 인물이 있는 반면에 ‘데메드리오’는 천거할만한 인물이라고 하였습니다(12). ‘데메드리오’가 천거를 받는 내용은 “선을 행하여 하나님께 속한 자”란 11절의 말씀에 연속되는 것입니다. 그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음으로 요한의 일행도 그 증거를 참되이 여겨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다”는 말씀은 성경에 비추어 볼 때 흠이 없다는 뜻입니다. 반드시 두 인물을 대조하여 보시고, 선택을 바로 하는 성도들이 되셔야 할 것입니다.

11. 결론적으로 사도 요한은 더 쓸 것이 많지만 먹과 붓으로 써서 전하는 편지보다 속히 가서 만나기를 바랐고, 그때 만나서 말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4).

12.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하심은 그리스도의 은혜에 근거한 사도의 축복 전달 선포요, 함께 있는 친구들도 문안하였은즉 편지를 받은 ‘가이오’도 여러 친구에게 문안하라고 하였습니다.

교역자들이 희귀하던 시절에 있었던 성도와의 친교적 서신으로 문안 인사와 칭찬과 격려와 전도 사명에 관한 것과 문제의 인물을 경계시킴과 선을 행하는 자를 칭찬하는 말씀들로 교훈을 주셨습니다.


설교보충 1. 신앙 생활을 잘하자 (요삼 1-4) 목록으로


본문에 보시면 ‘가이오’란 성도가 신앙 생활 잘하는 것을 사도 요한이 기뻐하시고 그 이상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1. 성도가 신앙 생활을 잘하셔야 할 이유는,

1) 신앙 생활을 잘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방법이고,

2)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생활이 인생의 최대 목적이며,

3) 또 신앙 생활을 잘하는 것이 성도가 복받는 방법이고,

4) 또 복음 사역자들을 기쁘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 복음 사역자들이 사역을 하는 것은,

1)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거나,

2) 사람의 대접을 받아야 하거나,

3) 인기나 명예를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좋은 믿음의 성도를 양육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도 본문 3절에 보시면, “나는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는 것을 듣는 것 이상 더 즐거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다 진리 안에서 행하므로 복음 사역자를 만족케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3. 신앙 생활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

주일을 지키고, 예배를 드리고, 십일조를 내는 것입니까 ? 그것은 필요하지만 의식에 속하는 것입니다. 실제적 신앙 생활은,

1) 주님을 모시고 주님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묵상하며 예수님을 생각하고 즐거워 하며 예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입니다(요1:12,계3:20).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진리의 말씀으로 가까이 모시고 살되,

2) 주님은 상전이 되시고 자신은 종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요13:13-17). 신앙 생활의 가장 중요한 의미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자신이 종의 위치에 겸손히 서는 것입니다.

3) 신앙 생활은 성경 말씀대로 믿고 행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자기의 감정에 느낌을 위하여, 또 체험을 위하여 아니면 기분이나 축복의 열매를 위하여 하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일치하느냐 안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요5:9,14:6,17:17,시119:165).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않으며,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라”(고전4:6,고후13:8)는 말씀에 부합되도록 사는 것입니다.

4) 신앙 생활은 교회 생활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속한 예수님의 지체요(딤전3:15,엡1:23,골1:24), 피로 사신 교회요(행20:28,엡5:25,히9:12), 은총의 기관이며(사27:3,66:10-12,고후8:1), 연단의 도장(엡4:11,12)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는 신앙 생활을 잘하도록 지도하는 단체이면서 성도의 공동체적 생활을 유효하게 이끌어나가는 기관이기 때문에 교회 생활에 잘 적응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5)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 일서에서 사랑을 강조하시면서 “하나님께로 난 자는 하나님과 그 형제를 사랑하여야 한다”(요일3:9-10) 하셨고, 또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니라”(요일3:10) 하셨으며, 또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주 안에 거한다”(요일3:24,4:4-12,16,20)고 하셨습니다. 만일 사랑 실천이 부족하면서 믿음 생활을 하신다면 다시 신앙을 점검하셔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으로 주님을 모시고, 주님을 상전으로 모셔서 자신을 종으로 삼고, 성경대로 행하며, 교회 생활에 잘 적응하여 사랑 실천을 잘 하는 것이 신앙 생활을 잘 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설교보충 2. 사도 요한의 간구 (요삼 2) 목록으로


사도 요한의 간구 또는 요한의 세 가지 축복이란 제목으로 교훈을 받겠습니다.

1. 사도 요한은 그의 형제 야고보와 함께 갈릴리 바다에서 어업에 종사하다가(눅5:10)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베드로, 야고보와 함께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요13:23,25,19:26,마5:37,17:1,막14:33). 베드로, 야고보와 함께 특별히 예수님을 가까이 따랐고(마17:1,요13:25), 예수님이 별세하실 때 모친 마리아의 부양 문제를 부탁받았고(요19:26-27), 예수님 부활 후에는 오순절 역사에 동참하였으며(행1:12,2:4),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기적을 베드로와 함께 시행하고, 전도에 담대했으며(행3:4,4:1-22), 베드로, 야고보와 함께 초대 교회의 대표자 역할을 하다가(행8:14,25), ‘도미시안’ 황제의 핍박으로 밧모 섬에 귀양을 갔으며, 그 곳에서 요한계시록을 쓰셨습니다. 사도 중에 가장 젊은 사도로 예측되고, 주후 100년 경까지 94세를 살고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2. 사도 요한은 신실한 성도 ‘가이오’를 위하여 축복 기도를 하셨습니다. 가이오는 진리 안에서 행한 성도이고, 그의 신앙 생활로 사도 요한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었으며, 성도들로부터도 사랑에 대한 증거를 받았고,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3,5,8). 축복의 대상은 바로 믿음 생활을 잘하는 성도라는 뜻입니다.

3. 요한의 축복을 위한 간구는 영혼이 잘되는 것과,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1) 영혼이 잘되기를 바라심에 대하여.

① 영혼은 믿음의 좌소로, 썩어질 육체에 비할 때 영원한 생명입니다.

② 따라서 “영혼이 잘된다”는 것은 믿음 생활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③ 영혼이 잘되려면 기도도 필요하지만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잘 공급받아야 합니다. 마4:4에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신 것이 바로 영혼의 양식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하루에 세끼의 식사를 하는데, 그것을 예사롭게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약식을 대할 때마다 영혼의 양식은 그 이상으로 섭취하여야 할 것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 지식이 영혼을 살찌게 하는 줄로 믿으셔야 할 것입니다.

2) 범사가 잘되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① 사도 요한은 범사가 잘되는 문제와 건강을 축복할 때 “영혼이 잘됨 같이”, “영혼이 잘됨에 따라” 성취되기를 소원한 것입니다. 범사의 성공이나 건강보다도 영혼 잘되는 일이 중요한 것은 축복이 믿음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축복을 아무에게나 비는 것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던지는 격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받을 만한 자에게만 복을 주십니다(출33:19,신28:1-14). 따라서 복음 사역자들도 복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성도에게 그가 복받을 그릇 준비에 비례하여 축복하는 것이 합당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하게 해 드리는 신앙이요, 또 하나님의 은혜는 사역자의 축복에 의존하여 주시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사역자의 축복이 부족하여 복을 적게 받을 성도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을 비는 자는 당연히 믿음 생활의 정도에 따라 축복하여야 할 것입니다.

② 범사가 잘됨에 있어서 축복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성실한 노력도 필요합니다. 그것은 정당한 사업을 신용있고 근실하게 하며, 소득의 십일조를 잘 드리는 것입니다. 정당한 사업, 신용, 근실, 십일조, 이 네 가지가 사업 성공의 비결입니다. 이 네 가지를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적으로 시행해 보십시오.

3) 강건하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이 건강은 육체의 건강을 뜻합니다. 이 말씀에서 의문스러운 것은 건강을 범사 다음에 꼽은 것입니다. 영혼 다음에 육체 건강이고, 그 다음이 범사가 아닐까요 ?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분명히 범사를 건강에 앞세우셨습니다. 거듭난 영혼은 성도만 갖고 있는 것이나, 육체는 성도만 가진 것이 아닌 모든 인간이 다 갖고 있는 것입니다. 밥을 먹고 사는 것도 성도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과 동물까지 다 먹고 삽니다. 그런 뜻에서 육체는 보편적인 것이요, 불신자도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건강이 범사보다 중요하다고 내세울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범사가 잘되면 따라서 육신의 건강도 좋아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범사의 지나친 고민으로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허다한 것입니다. 남편이 첩을 얻어서 그에 대한 고민으로 몸이 수척해진 여인을 본 일이 있었고, 시아버지가 자녀들에게 공평한 재산 분배를 하지 않아서 누워 앓는 여인을 본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범사와 건강이 상반된 것입니다. 따라서 영혼이 잘되고 자유를 누리며, 거기에 비례하여 범사와 건강이 잘되기를 간구한 것이 바른 순서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영혼이 잘됨에 따라 범사가 잘되고 강건함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설교보충 3. 영혼이 잘됨 (요삼 1-4) 목록으로


성도들의 신앙 성숙을 위하여 “영혼이 잘됨”이란 제목으로 교훈을 받겠습니다.

1. 영혼이 잘된다는 뜻은 믿음이 성숙하여져서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영혼만 잘되면 범사와 건강도 아울러 성취된다고 믿으셔야 합니다. 시73:23에서 “내가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 손을 붙드셨나이다” 하셨고, 28절에서는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하셨습니다. 영혼이 잘되어 범사가 잘됨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 이 모든 것을 더 받는 것”(마6:33)과 같고, 또 “복있는 자가 되어 무릇 그 행사가 다 형통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시1:1-6).

성도가 복받을 만큼 믿음 생활을 잘하면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신앙 생활을 복받기 위하여 하는 것이 되면 안되고, 복되게 사는 것이 복이요 영광인 줄로 믿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2. 영혼이 잘되어 복받기를 바라는 성도는 매사를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세속의 일보다 신령한 일을 선호하고, 성경(하나님)과 교회를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가 일류 대학에 입학하려고 하였는데, 주일에 구두 시험을 하기 때문에 그 대학을 포기하고 이류 대학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 대학에서 장학생이 되고 유학까지 가는 특혜를 받아 더 유익해진 일이 있었습니다. 또 어떤 성도는 주일 오후에 과외 공부를 하러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어린 아이를 다치게 하여 많은 돈을 치료비로 준 일이 있었습니다. 이 경우에 그 성도는 주일에 세속에 관한 일을 하는 것이 퍽 거리꼈다고 하는 것입니다.

3. 사도 요한은 본문에서 사랑하는 가이오에게 축복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축복할 만한 분이 축복을 받을 만한 성도에게 하였으니까 효력이 많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음 사역자의 기도를 가까이 응답하신 사례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모세의 기도나 엘리야의 기도 등입니다(출32:14). 그러나 사역자의 축복이 부족하여 복을 못받을 성도가 있을까요 ? 에디오피아 내시가 복받을 만한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빌립을 만나게 하셨고, 고넬료 가족이 은혜를 받아야 할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청하게 하셨습니다(행8:26-39,10:5). 성도가 영혼이 잘되는 일만 잘하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4. 어떤 성도의 가정에 가보면 복을 받을 수 없도록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모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배의 분위기조차 형성되지 못한 환경에서 간절함 없이 예배드리는 경우요, 또 어떤 가정은 어려운 우환도 있는데 성경을 찾아 읽지를 못합니다. 시107:20에 보시면,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 하셨는데,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게 하려 하였으나 찾지도 못하는 입장이니 어떻게 성경의 권위와 내용을 심령에 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성도는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 있어서 위문하러 갔고, 약5:15에 근거하여 “혹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였는데, “병 기도에 죄 문제를 거론한 것이 은혜가 안되었다”는 소식을 받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건강하여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죄인인 줄 알고 회개하셔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죄인으로 낮출 줄 모르면서 어떻게 신령한 복을 받겠습니까 ?

5. 하나님께서는 ‘아사’를 유다 나라 6대 왕으로 봉하여 39년을 왕노릇하게 하셨습니다(대하6:12). 그런데 아사 왕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발에 중한 병이 들게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아사 왕이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와 회개를 하지 않고 의원에게 먼저 찾아갔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무시한 태도이지요. 하나님이 그 병을 3년간 고치지 못한채 앓게 하시다가 3년 후에 죽도록 버려 두셨습니다. 그러나 유다 16대 왕 히스기야는 그 반대였습니다(왕하20:1-7). 그도 종처로 고생을 할 때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 병으로 죽을 것이니 유언하고 정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히스기야 왕이 몸을 벽으로 향한채 눈물을 쏟으며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을 맹세하며 사정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즉시로 계시가 이사야 선지자에게 임하여 “내가 히스기야의 눈물을 보았고, 그 기도를 들었으니 너의 병이 낫고, 15년을 더 살 것이며, 앗수르 대적도 하나님이 물리쳐 주신다” 하시고, 그대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6. 영혼이 잘되려면 철저한 회개가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범죄자를 향하여 “매일 분노하시고 칼을 갈으신다”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분노의 결과로 고난당하는 자를 치료해 주신다고 초청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11:28), “이스라엘아 나와 의논하자. 먹같이 검은 죄, 피같이 붉은 죄를 내게로 가지고 와서 해결하자”(사1:18),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시50:15), “그 밤낮 부르짖는 백성의 기도를 듣지 않겠느냐”(눅18:7)라고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환 있는 성도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실 때는 “내가 하나님 앞에 부요하지 못한 것이 무엇인가 ?” 하는 점을 꼭 반성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7. 영혼이 잘되기를 바라는 성도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달란트에 대하여 활용을 잘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 지혜, 지식, 직분이 그렇고, 건강, 물질, 명예가 다 받은 달란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은금 패물을 선물 받아 나오게 하신 것은 광야에서 성막을 지을 때 쓰게 하심이었습니다. 그런데 먼저 그것으로 금 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다가 3,000명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 다음에야 그것으로 성막 제조에 헌납하였습니다. 에스더 왕후는 민족의 어려운 때에 하나님이 쓰시기 위하여 왕후되게 하신 것을 믿고 노력하여 민족을 구원한 일이 있었던 것처럼, 받은 은사 활용에 유의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8. 영혼이 잘되기를 원하는 성도는, 환난 진단을 잘하여 처방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질병, 가난, 비천 등을 큰 환난으로 꼽습니다. 그러나 질병, 가난, 비천이 믿음을 저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에게 가장 큰 환난은 심령이 어두워지는 것이요,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를 멀리하면서도 하나님 아쉬운 것을 못 느낍니다. 출세한 자녀로 만족하고, 저축한 재산으로 만족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실 것인가에 대하여는 민감하지 못한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는 왜 금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여쭈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 슬퍼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마9:14,15)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 멀어지는 것이 가장 문제되는 환난이란 뜻입니다.

영혼이 잘되기를 바라시는 성도님들이여, 영혼만 잘되면 다른 것도 잘될 것입니다. 다만 영혼이 잘되기 위하여 하나님 중심으로 행하고, 말씀과 기도에 힘쓰며, 철저한 회개와, 달란트 활용과, 하나님 가까이 하는 일을 꼭 힘쓰셔서 복되게 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설교보충 4. 예수님 믿는 생활 (요삼 2-4) 목록으로


“예수 잘믿는 생활”이란 제목으로 교훈을 받겠습니다.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자기 제자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말을 듣는 것 이상 더 즐거운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한 사도는 “오직 예수를 잘 믿는 것”, “진리 안에서 진리대로 행하는 것” 만을 가장 큰 소망으로 여기셨습니다. 많은 성도와 많은 전도자들이 전도의 사명을 가지고 “주 예수를 믿으라”(행16:31)고 외칩니다. “예수 믿으라”는 것이 전도의 목적이요, 구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외치는 전도자는 얼마나 예수를 잘 믿는가 ? 자기도 예수를 잘 믿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 보고 “예수 믿으라” 한다면 퍽 부끄러운 일이요, 또 현실 교회의 많은 성도들 중에는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신앙과 일치하지 않는 잘못된 생활로 끌려가는 형편을 볼 때도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마22:37 말씀대로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며, 또 자기의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박고(갈5:24) 현실 정욕과 허탄한 것에 뜻을 두지 않으며(갈6:26), 오직 예수님 만을 왕으로 모시고(요13:13,16), 진리와 사랑을 따라 행하는(고전4:) 성도가 얼마나 되는가 ?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저희들은 예수 잘믿는 일에 대하여 다시 한 번 반성하고 각성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1. 예수를 왜 믿어야 하는가 ?

1) 예수는 하나님이시고,

2) 구세주이시며,

3) 통치자이시고,

4) 심판자이시니까 믿어야 하고, 또

5) 예수 안 믿으면 죄와 함께 멸망받을 뿐 아니라 인간의 본분을 못하는 것이니까 믿어야 하지요.

2. 그러면 또 예수를 믿되 잘 믿어야 할 이유는, 공부를 해도 잘해야 좋고, 농사를 지어도 잘 지어야 좋은 것처럼,

1) 부끄러운 구원을 받지 않고(요일2:28,벧전4:18),

2) 현세에서도 복을 받으며(마6:31),

3) 내세에서도 상급을 받고(마19:29),

4) 하나님께 영광을 많이 돌리는 것이 마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고전10:31,롬11:36,히11:6).

3.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예수를 잘 믿을까요 ? 과연 우리가 예수 잘믿는 방법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요 ?

1) 성도는 변화받은 사람이므로 변화된 상태를 나타내야 합니다. 어떤 의미로 변화된 것입니까 ?

①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가 성령님의 말씀 뿌림(요3:3,벧전1:23)으로 새생명을 얻은 자요(엡2:1),

② 그 영적 세생명과 함께 성령님이 거하시기 때문이요(고전3:16),

③ 따라서 성도로 새롭게 탄생함이기 때문입니다(갈6:15,엡2:15).

마치 돌 감람 나무가 참 감람 나무에 접붙임을 받음 같아서 분명히 새로운 변화가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롬11:17). 변화에 관한 말씀으로, 롬12:2에 보시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토록 하라” 하셨고, 갈6:8에서는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 하시므로 성도가 반드시 신령한 은혜를 사모해야 할 것을 말씀하셨으며, 또 골3:3에서는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고 하셨고, 또 마6:33에서는 “너희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으니, 이 말씀들이 다 성도의 변화된 생활을 교훈하신 말씀입니다.

2) 현실 교회 성도들의 잘못된 부분들을 과감하게 시정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몇 가지를 지적한다면,

① 인본주의를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 하나님 표준, 성경 본위로 믿음 생활을 하지 않고, 사람의 구상과 취미와 체험대로 살려는 것이 잘못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계명과 뜻을 위반하고, 사람의 좋은 생각대로 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쳐서 진멸하라” 하셨는데, 사울 왕은 백성의 소원과 하나님께 제사드릴 목적으로 좋은 짐승들을 남긴 것입니다(삼상15:3,15,21).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 순종아닌 인본주의적 불순종을 좋아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본주의를 배격하는 일은 성경 말씀의 뜻대로만 행하고 사람의 생각을 추가하지 않는 것입니다.

② 물질주의입니다. 물질이 인간 생활에 꼭 필요하고 귀한 것이기 때문에 물질을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려는 잘못된 사상입니다. 사업이 잘되고, 부자되기 위하여 예수를 믿거나, “믿음 생활도 돈이 있어야 잘할 수 있다” 하면서 무슨 일이나 돈을 앞세워 하려 하고, 돈이 많아져야 발전이 있는 줄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반대였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못 섬긴다”(마6:24),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마19:24),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쳐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다”(눅12:5),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롬14:17)고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물질에 대한 지나친 욕심이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신앙 생활은 물질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와 말씀으로 유지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가난하게 예수믿는 방법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직접 가난한 생활로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물이 다 자기의 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물질의 복을 누리실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고, 예배당을 지어 집회하신 일도 없었으며, 산이나 들이나 바닷가에서 집회하셨고, 감람 산에서 기도하시고 주무시셨으며, 마지막 성만찬 때도 12명이 합석하여 모일 장소를 갖고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장소도 빌려 쓰셨던 것입니다. 또 기독교는 핍박 시대에 더 뜨겁게 유지되었으니, 그것은 주후 2,3세기에 있었던 로마 황제의 핍박으로 인한 카타콤의 역사에서 잘 증명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성도의 물질 선호 사상을 없애기 위한 것입니다. 공산주의와 물질은 관계가 깊지만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기독교 세계는 큰 부요를 누리지 않습니까 ?

③ 현실적 향락과 기복주의를 자제해야 합니다. 신령한 은혜에 끌리지 않으면 현실적 향락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에게 이끌리고 말씀에 이끌려야 자동적으로 현실 향락은 좋아 보이지도 않고 하고 싶지도 않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선진 인물들은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자기 중심이나 자기 소욕대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도 그런 교훈을 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전11:1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하셨습니다. 또 현실 향락주의를 경계하신 말씀으로는 고전7:29-30의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말세가 가까워지는 뜻)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는 자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고 하신 의미를 십분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3) 교회 생활에 잘 적응하여야 합니다. 성도가 교회의 성격과 목적을 잘 알지 않으면 적응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피로 값주고 사신 성도의 단체요(행20:28), 예수님의 지체와 소유이며(골1:18,딤전3:15), 진리의 파수와 전파와 교육과 성도의 교제의 덕을 세우게 하신 기관입니다. 성경에서 교회의 성격을 여러 가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혼인 잔치집(요2:1-12,마22:1-14), 종합 병원(요5:1-9,마9:12), 농장과 포도원(마13:1-9,막4:26-29,24:14-30), 연단의 도장(행7:37-38;광야 교회), 평화의 목장(요10:1-18,시23:1-6) 등입니다. 교회의 비유 성격에서 배워야 할 것은, 기쁨과 친교와 사랑 또 범죄자를 용납하고 사랑으로 지도하는 문제, 혹 가라지도 있을 수 있다는 문제, 교회 안에서의 모든 어려움이 다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처럼 연단의 기회를 주시는 것이라는 점, 그런 중에서도 감사와 평화와 소망을 잃지 않아야 할 것을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4) 마지막으로 신앙 생활 잘하는 몇 가지 방법을 더 말씀드리면,

① 예배드리는 일에 무조건 동참하시고(요5:24),

② 성수 주일이 잘 되도록 환경을 조성하시며(고전16:2,히10:25),

③ 성경 공부에 주력하시고(행17:11),

④ 기도 생활을 꾸준히 힘쓰시고(살전5:17),

⑤ 사랑과 봉사로 덕을 세우며(마22:37-39),

⑥ 신령한 은혜에 주력하시고(요6:27,갈6:8,골3:1-3),

⑦ 죽도록 충성하시면(계3:10), 그것으로 예수 잘믿는 목적을 성취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론에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실천하기를 노력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셔서 꼭 예수 잘믿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