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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공부

(부록 : 인물중심설교)

 

저자 지영근 목사

목 차

성경인물공부

 

제1과 아담, 하와 (딤전 2:13~14) 9 바로가기

제2과 가인, 아벨, 셋 (창 4:1~8) 10 바로가기

제3과 에녹, 므두셀라, 라멕 (창 5:21~27) 11 바로가기

제4과 노아 (창 6:9~12) 12 바로가기

제5과 데라, 아브람, 나홀, 하란 (창 11:24~28) 13 바로가기

제6과 셈, 함, 야벳 (창 9:18~19) 14 바로가기

제7과 아브라함(1), 사라 (창 12:1~3) 15 바로가기

제8과 아브라함(2) (창 22:18) 16 바로가기

제9과 놋 (창 11:27, 12:4) 17 바로가기

제10과 이스마엘, 이삭 (창 16:15, 21:1~8) 18 바로가기

제11과 아비멜렉, 비골 (창 21:22~23) 19 바로가기

제12과 엘리에셀, 리브가 (창 15:2, 24:15) 20 바로가기

제13과 그두라, 에서, 야곱(1) (창 25:1~4, 22~26) 21 바로가기

제14과 야곱(2) (창 28:15) 22 바로가기

제15과 야곱(3) (창 28:15) 23 바로가기

제16과 야곱의 직계가족 (창 29:15~30) 24 바로가기

제17과 르우벤, 시므온, 레위 (창 29:31~35) 25 바로가기

제18과 유다 (창 49:9~10) 26 바로가기

제19과 단, 납달리 (창 30:3~8) 27 바로가기

제20과 갓, 아셀 (창 30:9~13) 28 바로가기

제21과 잇사갈, 스블론 (창 30:16~21) 29 바로가기

제22과 요셉(1) (창 30:22~24) 30 바로가기

제23과 요셉(2), 벤야민 (창 35:16~21) 31 바로가기

제24과 바로, 십보라, 부아 (출 1:15~22) 32 바로가기

제25과 아므람, 요게벳 (출 6:18~20) 33 바로가기

제26과 아론, 미리암 (출 6:20, 민 26:59) 34 바로가기

제27과 모세(1) (출 2:1~10) 35 바로가기

제28과 모세(2) (신 34:1~8) 36 바로가기

제29과 여호수아 (출 33:11) 37 바로가기

제30과 훌, 갈렙 (출 16:8~13, 수 14:6~15) 38 바로가기

제31과 옷니엘 (삿 3:7~11) 39 바로가기

제32과 에훗, 삼갈 (삿 3:15~31) 40 바로가기

제33과 드보라 (삿 4:1~5) 41 바로가기

제34과 기드온(1) (삿 6:11~15) 42 바로가기

제35과 기드온(2) (삿 8:22~28) 43 바로가기

제36과 돌라, 야일, 입다 (삿 11:1~3) 44 바로가기

제37과 입산, 엘론, 압돈 (삿 12:8~15) 45 바로가기

제38과 삼손 (삿 13:2~7) 46 바로가기

제39과 미가 (삿 17:1~6) 47 바로가기

제40과 어떤 레위인 (삿 20:1~7) 48 바로가기

제41과 룻기의 사람들 (룻 1:1~5) 49 바로가기

제42과 엘가나, 한나, 브닌나 (삼상 1:1~3) 50 바로가기

제43과 엘리, 홉니, 비느하스 (삼상 1:12~17) 51 바로가기

제44과 사무엘, 요엘, 아비야 (삼상 7:1~6) 52 바로가기

제45과 사울과 주변 인물들 (삼상 9:25~10:1) 53 바로가기

제46과 다윗과 주변 인물들 (삼상 16:6~13) 54 바로가기

제47과 사울이 죽은 후의 인물들 (삼하 2:8~11) 55 바로가기

제48과 다윗왕 때의 사람들 (삼하 8:15~18) 56 바로가기

제49과 므비보셋, 밧세바 (삼하 9:1~8) 57 바로가기

제50과 압살놈, 암논 (삼하 13:1~4) 58 바로가기

제51과 아히도벨, 후새 (삼하 16:15~19) 59 바로가기

제52과 환난중의 인물들 (삼하 17:24~29) 60 바로가기

제53과 세바, 리스바 (삼하 20:1~3, 21:7~9) 61 바로가기

제54과 블레셋과 다윗의 장수들 (삼하 21:15~22) 62 바로가기

제55과 다윗과 말기의 사람들 (왕상 1:1~11) 63 바로가기

제56과 솔로몬 (왕상 3:1~3) 64 바로가기

제57과 솔로몬의 대적자들 (왕상 11:14~25) 65 바로가기

제58과 무명 선지자 (왕상 13:1~10) 66 바로가기

제59과 솔로몬 다음의 왕들 (왕상 14:19~31) 67 바로가기

제60과 아사왕 때의 인물들 (왕상 15:8~24) 68 바로가기

제61과 아합왕과 주변 인물들 (왕상 16:29~34) 69 바로가기

제62과 엘리야와 엘리사 (왕상 19:19~21) 70 바로가기

제63과 여호사밧 때의 인물들 (왕상 22:1~9) 71 바로가기

제64과 벤하닷, 하사엘, 나만 (왕상 15:16~21, 왕하 5:1~6) 72 바로가기

제65과 아하시야, 여호람 (왕하 1:1~4) 73 바로가기

제66과 예후, 여호나답 (왕하 9:17~28) 74 바로가기

제67과 두 여인 (왕상 17:8~16, 왕하 4:8~16) 75 바로가기

제68과 아달랴, 요아스 (왕하 11:1~21) 76 바로가기

제69과 여호아하스와 요아스 (왕하 13:1~9) 77 바로가기

제70과 아마샤와 아사랴(웃시야) (왕하 14:17~22) 78 바로가기

제71과 여러보암과 스가랴, 살룸, 므나헴 (왕하 14:22~29) 79 바로가기

제72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하 15:1~7) 80 바로가기

제73과 히스기야 (왕하 18:~20:) 81 바로가기

제74과 브가히야, 베가, 호세아 (왕하 15:21~28) 82 바로가기

제75과 므낫세, 아몬, 요시야 (왕하 21:1~23:29) 83 바로가기

제76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왕하 23:31~24:17) 84 바로가기

제77과 시드기야 (왕하 25:1~30) 85 바로가기

제78과 이스라엘의 열왕 86 바로가기

제79과 역대상 인물 공부(1) (대상 1:1~2:17) 87 바로가기

제80과 역대상 인물 공부(2) (대상 2:18~55) 88 바로가기

제81과 다윗의 자손들 (대상 3:1~24) 89 바로가기

제82과 유다와 시므온 지파 (대상 4:1~43) 90 바로가기

제83과 르우벤, 갓, 므낫세 자손들 (대상 5:) 91 바로가기

제84과 레위 지파 사람들 (대상 6:) 92 바로가기

제85과 여섯 지파의 후손들 (대상 7:) 93 바로가기

제86과 벤야민, 에훗, 사울의 자손들 (대상 8:) 94 바로가기

제87과 1차 귀환자들의 이름 (대상 9:1~34) 95 바로가기

제88과 다윗을 도운 용사들 (대상 12:) 96 바로가기

제89과 다윗의 용사들 (대상 11:) 97 바로가기

제90과 법궤 옮길 때의 사람들 (대상 15:) 98 바로가기

제91과 다윗 시대의 인물들 (대상 18:~21:) 99 바로가기

제92과 솔로몬 때의 중요 인물들 (대상 23:~24:) 100 바로가기

제93과 선지자들의 이름 알기 101 바로가기

제94과 예수님의 계보 (마 1:1~17) 102 바로가기

제95과 예수님 당시의 인물들(1) 103 바로가기

제96과 예수님 당시의 인물들(2) 104 바로가기

제97과 사도행전의 인물들(1) 105 바로가기

제98과 사도행전의 인물들(2) 106 바로가기

제99과 편지서의 인물들(1) 107 바로가기

제100과 편지서의 인물들(2) 108 바로가기

(부록) 인물중심설교

 

제1과 아담과 하와(1) (창 1:27~28) 110 바로가기

제2과 아담과 하와(1) (창 3:1~24) 113 바로가기

제3과 가인과 이벨 (창 4:1~8) 116 바로가기

제4과 셋, 라멕, 에녹 (창 4:16~26, 5:21~24) 119 바로가기

제5과 노아 (창 6:9~22) 122 바로가기

제6과 노아와 그 후손들 (창 9:18~29, 11:1~9) 125 바로가기

제7과 아브라함(1) (창 12:1~9) 127 바로가기

제8과 아브라함(2) (창 12:1~9, 13:1~18) 129 바로가기

제9과 아브라함(3) (창 14:17~24) 131 바로가기

제10과 아브라함(4) (창 17:1~8) 134 바로가기

제11과 아브라함(5) (창 17:9~14) 136 바로가기

제12과 롯 (창 19:1~38, 벧후 2:7~8) 138 바로가기

제13과 아브라함(6) (창 20:1~18) 141 바로가기

제14과 아브라함(7) (창 21:1~8) 143 바로가기

제15과 아브라함의 두가지 대사 (창 23:1~20) 146 바로가기

제16과 이삭 (창 26:1~11) 149 바로가기

제17과 에서와 야곱 (창 25:21~34) 151 바로가기

제18과 야곱(1) (창 29:1~23) 153 바로가기

제19과 야곱(2) (창 29:1~14) 156 바로가기

제20과 야곱(3) (창 30:1~8) 159 바로가기

제21과 야곱(4) (창 32:1~33:20) 162 바로가기

제22과 야곱(5) (창 34:13~31) 165 바로가기

제23과 요셉(1) (창 37:1~11, 39:16~23) 167 바로가기

제24과 르우벤과 유다 (창 37:18~36) 170 바로가기

제25과 요셉(2) (창 41:1~13, 38~43) 173 바로가기

제26과 요셉(3) (창 42:1~8) 175 바로가기

제27과 야곱과 요셉 (창 47:23~31) 177 바로가기

제28과 모세(1) (출 2:1~10) 179 바로가기

제29과 모세(2) (출 2:11~25) 181 바로가기

제30과 모세(3) (출 4:27~31) 185 바로가기

제31과 모세(4) (출 13:17~22) 187 바로가기

제32과 모세(5) (출 14:10~31) 189바로가기

제33과 모세(6) (출 15:1~21, 시 90:1~7) 191 바로가기

제34과 모세(7) (출 15:21~27) 193 바로가기

제35과 모세(8) (출 16:1~11) 195 바로가기

제36과 모세(9) (출 17:1~7) 197 바로가기

제37과 모세(10) (출 18:1~12) 199 바로가기

제38과 모세(11) (출 19:1~24) 201 바로가기

제39과 모세(12) (출 32:1~16) 203 바로가기

제40과 모세(13) (출 32:30~35, 33:1~23) 205 바로가기

제41과 모세(14) (출 34:27~35, 민 3:1~10) 207 바로가기

제42과 모세(15) (민 4:1~20) 209 바로가기

제43과 모세(16) (민 8:1~13) 211 바로가기

제44과 모세(17) (민 10:1~10) 213 바로가기

제45과 모세(18) (민 11:1~3, 23~30) 215 바로가기

제46과 모세(19) (민 12:1~3, 9~16) 217 바로가기

제47과 모세(20) (민 13:25~33) 219 바로가기

제48과 모세(21) (민 15:32~41) 221 바로가기

제49과 모세(22) (민 16:1~11) 224 바로가기

제50과 모세(23) (민 17:1~13) 226 바로가기

제51과 아론(1) (출 7:10~13, 28:1~3) 228 바로가기

제52과 성소에서 섬기는 자들 (민 18:1~32) 230 바로가기

제53과 모세(24) (민 20:1~13) 232 바로가기

제54과 모세(25) (민 21:1~9) 235 바로가기

제55과 발람(1) (민 22:1~35) 237 바로가기

제56과 발람(2) (민 25:1~28) 240 바로가기

제57과 발람(3) (수 13:22~23) 242 바로가기

제58과 모세(26) (민 3:40~51, 26:1~4) 245 바로가기

제59과 모세(27) (민 29:1~16) 248 바로가기

제60과 모세(28) (민 30:1~9) 250 바로가기

제61과 모세(29) (민 32:1~5) 252 바로가기

제62과 모세(30) (민 34:1~6, 36:1~4) 254 바로가기

제63과 모세(31) (민 34:1~12) 256 바로가기

 

 

 

 

 

 

 

 

 

 

 

 

 

 

 

 

 

 

 

 

 

 

 


먼저 드리는 글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성경을 처음 읽으시는 분들이 성경의 역사적 줄거리를 쉽게 배울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선 인물의 이름을 알고 그의 행적을 익히는 것이 중요한 순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먼저 읽으신 후에 이 글을 읽으시면 이해가 빠를 것이고, 또 이 글을 읽으신 후에 성경을 읽으셔도 유익하리라 믿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성경을 알게 하기 위하여 읽도록 권하시라는 뜻도 있습니다. 성경 인명 사전에 자세히 나와 있지만 이 글은 성경에 기록된 순서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글자나 연대 문제에도 미흡함이 있겠지요. 그리고 “인물중심설교”란 제목으로 설교한 재료가 있어서 그것을 부록에 첨부하였습니다. 참고하시는 성도님들에게 성경 지식 터득에 도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2006. 8. 5.


저자 지 영 근

 

제 1 과 아담, 하와 (딤전 2:13~14) 목록으로


1. 여러분 “아담과 하와”가 누구인지 다 알지요? 하나님이 5일 동안 만물을 창조하시고, 6일 되는 날에 창조하신 인류의 시조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인류의 조상이 되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입니다(창 1:26~27, 2:21~22).

2. 그런데 “아담”은 다른 이름이 없지만 “하와”(창 3:20)는 “이와” 또는 “이브”라고도 합니다. “이와”(딤전 2:13)는 헬라식 발음이고, “이브”는 영어식 발음입니다. 예수님도 영어식으로 발음할 때는 “지져스”라고 합니다.

3.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직접 만드시고, 생기를 넣어 창조하셨기 때문에 마치 물건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생겨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이 세상에서 배꼽이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또 배꼽이 없는 사람이 계셨다고 합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롬 5:14에서 “아담은 오실 자, 예수님의 표상이라”하시므로 상당한 공통점을 말씀하셨습니다. 죄없는 공통점, 배꼽없는 사람이 그 공통점입니다.

4. 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과 셋 등 많은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모범적 시조가 되기 전에 하나님의 계율을 어기므로 타락자가 되었고, 그 타락의 대가로 자신들과 모든 인류 후손들에게 정죄와 부패성과 심판의 대상이 되는 불행을 안겨주었습니다. “정죄”란 조상의 죄책이 후손들에게 미친 것이고(롬 5:12), 부패성이란 정신적 범죄의 근성이 전가된 것이며(고전 7:14) 심판의 대상이란 모든 인류가 원죄와 자범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되었음을 뜻합니다(창 2:17, 요 3:16).

5. 아담과 하와가 범죄할 때 하와가 먼저 유혹을 받아 범죄하였고, 또 아담을 유혹하여 범죄하게 하였지만 그 책임을 가장인 아담이 대표로 지게 되었습니다. 아담은 930세를 살았고, 성경은 가부장(家夫長) 제도로 시작하였습니다.

 

 

제 2 과 가인, 아벨, 셋 (창 4:1~8) 목록으로


이 시간에는 가인, 아벨, 셋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1. 가인과 아벨과 셋은 다 아담의 아들들입니다. 가인은 큰 아들, 아벨은 그 다음의 아들, 셋은 아벨이 죽으므로 그 대신 하나님이 주신 아들입니다. 그 사이에 다른 아들들과 딸들도 낳았을 것입니다(창 4:14).

2. 가인은 농사를 지었고, 아벨은 목축을 하였는데 그 두 사람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인은 농산물로 제물을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받으셨을까요? 하늘에서 불이 내려 그 제물을 태우셨을 것입니다(삿 6:21, 왕상 18:38).

3. 그런데 왜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을까요?

1) 가인의 제사에는 중보자에 대한 신앙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농산물도 제물이 될 수는 있습니다(레 6:14~23). 그러나 중보자 예수님을 상징하는 피의 제사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 모든 죄인들은 직접 하나님께 나갈 수 없고, 반드시 예수님의 중보를 통해서만 나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기도를 드릴 때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려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 제사 드릴 때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희생시켜 피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이 그것을 드리지 않은 것은 믿음 없는 헛된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4.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인이 아벨을 미워하고 시기하여 동생 아벨을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그래서 아벨은 최초의 순교자가 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가인을 책망하셨고, 가인이 죽임 당하지 않기를 소원한즉 하나님이 보호해 주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창 4:9~15).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 앞을 떠났고(창 4:16),

5. 하나님께서는 아벨이 죽은 대신에 셋을 출생시켜 주시므로 셋이 선민의 계열이 되고, 가인은 불신자의 계열이 된 것입니다. 셋은 912세를 살았습니다.

 

제 3 과 에녹, 므두셀라, 라멕 (창 5:21~27) 목록으로


이 시간에는 성경에 나타난 인물로 에녹과 므두셀라와 라멕에 대하여 배우겠습니다. 만일 이 세 사람에 대하여 잘 모른다면 성경을 거의 모르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1. 에녹은 아담의 7대손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365세에 산채로 하늘로 올라간 사람입니다.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예수님처럼 승천하였을 것입니다. 므두셀라는 에녹의 아들로 인류 중 가장 오래 산 사람입니다. 몇 살을 살았을까요? 969세를 살았습니다. 므두셀라가 세상을 떠나던 해에 노아(므두셀라의 손자) 홍수가 일어났습니다. 또 라멕은 므두셀라의 아들이고, 노아의 아버지로 777세를 살았습니다.

2. 지난 시간에 아벨이 죽은 대신에 출생한 셋이 아담의 아들로 선민 계열임을 알았습니다. 셋은 “에노스”(3대)를 “에노스”는 게난(4대)을, “게난”은 “마할랄렐”(5대)을, “마할랄렐”은 “야렛”(6대)을 낳고, 야렛이 7대 인간 에녹을 낳은 것입니다. 또 에녹은 “므두셀라”(8대)를 낳고, “므두셀라”는 “라멕”(9대)을 낳았습니다.

3. 그런데 아담의 큰 아들 가인의 계열에도 “에녹”이란 사람과 “라멕”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가인”이 “에녹”을 낳았다 하였으므로(창 4:17) 그 “에녹”은 비택자 계열의 3대 인간이며 그는 “성을 쌓았다”고 하였습니다. 최초의 도시 건설이고, 최초의 집합 단체를 구성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 에녹(3대)의 4대손이 “라멕”입니다. 그러니까 이 “라멕”은 아담의 6대손자이고, 비택계열의 7대 인간이 됩니다. 라멕은 처음으로 두 아내를 거느린 가정 파괴인이 되었습니다.

4. 우리는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우리 시대에 예수님이 오시면 에녹처럼 들려 올라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므두셀라”처럼 장수 영생하는 은혜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제 4 과 노아 (창 6:9~12) 목록으로


1. “노아”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노아 홍수란 말을 기억하지요? 노아는 라멕의 아들로 10대 선민입니다. 노아의 직계 선조들도 다 선민 계열이지만 하나님은 노아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셨고,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용납하실 수 없을 만큼 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창 6:5).

2. 노아는 은혜를 힘입고 세 가지를 실천하였는데 ① 의롭게 행한 것이고, ② 완전하게(거의 완벽하게) 행하였으며 ③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더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사람들은 너무 악하여 하나님이 노아의 여덟 식구와 또 노아의 가족에게 필요한 각종 동물 한 쌍씩만을 제하고 모든 사람들과 동물들을 죽이기로 작정하셨습니다(죽이기로 작정된 자들은 구원받지 못함).

3. 그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명하셨습니다. 그 방주의 크기는 길이가 150m쯤이고, 폭이 80m쯤이며 높이가 15m쯤인데 3층으로 된 큰 배입니다. 노아는 인력을 동원하여 120년 동안 그 배를 만들면서 하나님이 그 배를 쓰실 때를 기다린 것입니다.

4. 그런데 노아 600세 되던 해에 하나님이 노아의 가족들과 한 쌍의 모든 동물들을 다 태우라 하셔서 먹을 것과 함께 방주로 들어갔는데 하나님이 방주의 문을 닫으셨고(창 7:16), 7일 후에 폭우로 홍수가 나며 물이 온 땅에 창일하여 방주는 물 위에 뜨고 산까지 물에 잠겼습니다. 방주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들과 다른 동물들이 다 죽은 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5. 노아는 1년 17일 만에 방주에서 나와서(창 7:4, 10, 8:14~19)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의 가족만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고, 노아는 부인과 셈, 함, 야벳, 세 아들과 그의 자부들이 있었으며 950세를 살고 세상을 떠난 제 2의 조상이었습니다.

 

제 5 과 셈, 함, 야벳 (창 9:18~19) 목록으로


1. 셈과 함과 야벳은 노아의 아들들입니다. 10대 인간인 노아는 다시 인류의 시조가 되었고, 인류의 번성은 셈과 함과 야벳의 자손들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을 살리신 후에 그 가족들에게 생육 번성하는 복을 주셨고, 모든 생물을 다스릴 것과 산 동물까지(피를 제하고) 식물 삼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창 9:1~4). 아담 때부터는 식물만 양식으로 주셨다가(창 1:29~30) 노아 홍수 이후에 동물성 식물을 허용하신 것입니다.

2. 셈과 함과 야벳에 대한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노아가 처음 포도원을 경영하였으므로 포도주를 많이 마신 후 취하여 벌거벗은 상태로 장막 안에 있을 때 둘째 아들 “함”이 들어와서 그 광경을 보고 다른 두 형제인 셈과 야벳에게 알렸더니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의복으로 앞을 가린 상태로 뒷걸음질하여 노아에게 가서 그 하체를 덮어드렸습니다. 그 후 노아가 술이 깨었을 때 그 사실을 알고 함에게 저주를 하였습니다. 함은 아버지의 수치를 드러낸 아들이었고, 다른 두 형제는 그 수치를 가리워드린 아들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함은 불효하였고, 셈과 야벳은 효도를 한 셈입니다.

3.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분으로 축복과 저주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함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이 되라”하였고, “셈의 하나님을 찬양하라” 하였으며 “야벳은 창대하여 셈의 장막에 거하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창 9:20~27). 그 결과로 함의 후손은 미개한 족속이 되었고, 셈의 후손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메시야(구원자, 예수님) 계열이 되었으며 야벳의 후손은 물질, 문명의 복과 신령한 복을 다 받게 되었습니다.

 

제 6 과 데라, 아브람, 나홀, 하란 (창 11:24~28) 목록으로


지난 시간에 “노아” 까지 배웠습니다. 노아는 10대 인류의 시조였지요. 노아의 아들들은 셈, 함, 야벳이지만 선민의 계열인 셈의 후예를 살피면 셈(11대), 아르박삿(12대), 셀라(13대), 에벨(14대), 벨렉(15대), 르우(16대), 스룩(17대), 나홀(18대), 데라(19대), 아브람(20대)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데라는 아브람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면 나홀과 하란은 누구일까요? 나홀과 하란은 데라의 아들들이고, 아브람의 동생들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선민의 조상으로 선택하여 복주실 것을 언약하실 때 “아브람”이란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개명해주셨습니다(창 17:4~5). “아브람”은 “큰 아버지”란 뜻이고,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란 뜻입니다. “데라”는 아브라함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유명한 분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민의 조상으로 선포하시기 전에 갈대아우르에 거주하는 “데라”가 가족을 이끌고 가나안 지경으로 가기 위하여 고향을 떠나 중간 지역인 하란에 도착하여 살았으니 이는 분명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고향을 떠났다고 여겨지는 것입니다.(창 11:27~31) “데라”가 갈대아우르에서 하란으로 떠날 때 큰 아들 아브람과 아브람의 처 “사라”, 둘째 아들 나홀, 나홀의 처 밀가, 그리고 셋째 아들 하란은 아들 놋과 딸 밀가를 남기고 갈대아우르에서 죽었기 때문에 데라는 그 손자 손녀만 거느리고 나왔는데 그의 손녀 밀가는 둘째 아들 나홀의 처, 즉 자부가 되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인류 초기에는 근친 결혼이 있었습니다. 데라는 205세에 하란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시간에는 데라, 아브람(아브라함), 나홀, 하란, 그리고 하란의 아들 놋, 하란의 딸이며 나홀의 처가된 밀가에 대하여 공부하였습니다.

 

제 7 과 아브라함(1), 사라 (창 12:1~3) 목록으로

 

1. 아브라함은 주전 2000년경에 갈대아우르에서 데라의 큰 아들로 태어나 사라와 결혼하고 부친과 함께 하란에서 살다가 75세때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여 서자 이스마엘을 낳고 13년 후인 100세 때에 90세된 사라와의 사이에서 적자 이삭을 낳은 후 파란 만장한 생애를 살고 175세에 세상을 떠난 노아의 10대 후손, 아담의 20대 후손입니다.

2. 하나님은 아브라함 75세 때에 선민의 조상됨과 그의 후손에게 복주실 것을 약속하시고, 가나안 땅으로 갈 것을 명하시므로 부인 사라와 조카 놋, 그리고 남녀 종들과 함께 가나안 땅에 와서 정착하는 중 이방족의 침략에서 놋을 구출한 일(창 14장), 소돔성이 멸망받는 일(창 19장), 그랄 왕국에 거한 일(창 20장),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은 일(창 21장), 이삭을 제물로 바친 일(창 22장), 메시야 언약을 받은 일(창 22:18), 이삭을 혼인시킨 일(창 24장), 사라가 죽은 후 후처 “그두라”를 취하여 자녀를 낳은 일이 있고(창 23:1, 25:1~4), 175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창 25:7).

3.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본래 이름이 “사래”인데(창 11:29) 그 나이 90세 때에 하나님이 자녀를 생산하지 못하는 그에게 후사주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이름을 “사라”(공주)로 개명해주셨습니다(창 17:15). 사라는 일찍이 자신이 생산하지 못함을 알고, 아브라함에게 애굽여인인 여종 하갈을 첩으로 주어 “이스마엘”이란 서자를 얻은 후 13년 만에 자신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90세에 적자 이삭을 낳은 것입니다(창 15:4~5, 18:9~15). 서자 이스마엘이 나이 어린 적자 이삭을 희롱하므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내쫓았으니(창 21:12) 이는 비택자에게 신령한 기업이 없음을 상징한 것입니다(갈 4:28~31). 그 후 이스마엘은 애굽 여인과 결혼하여(창 21:21) 오늘의 아랍계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사라는 이삭을 혼인시키기 전에 127세를 살고 죽었습니다(창 23:1).

 

제 8 과 아브라함(2) (창 22:18) 목록으로


이 시간에는 “아브라함”의 특수한 면 몇 가지를 상고하겠습니다.

1.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선민의 조상입니다. 아브라함 이전에는 누구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을 주신 일이 없었으나 아브라함 75세 때와 99세 때에 그런 언약을 주셨습니다(창 12:1~2, 17:7).

2.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큰 복을 주실 언약을 받았습니다.

1) 자손이 번성할 복(창 12:2)

2) 영원한 구원의 언약(창 17:7)

3) 그의 후손에서 메시야를 보내실 언약(창 22:18)

4) 복의 근원의 언약입니다(창 12:2). 복의 근원이 되는 언약이란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선대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고 아브라함을 저주하거나 해롭게 하는 자에게 화를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3.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셨습니다. 롬 4:11에서도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란 말씀이 있습니다. 창 15:6에서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 하셨고, 예수님도 잘못하는 자들을 경책하실 때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요 8:39~40)하시므로 그를 본삼을 것을 교훈하셨습니다. 따라서 모든 성도는 아브라함처럼 믿고 구원을 받아 아브라함의 품으로 가야 할 것입니다(눅 16:22).

4. 아브라함은 순종의 모범자입니다. 75세 때에 두 번째 고향인 하란을 떠나는 순종과(창 12:4) 서자 이스마엘과 그의 어미를 내쫓는 순종과(창 21:10~14) 100세에 얻은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순종하므로(창 22:1~19) 하나님을 놀라시게 하였고, 더욱 큰 인정을 받고 복주실 것을 약속받았습니다.

5. 아브라함은 선택받은 조상이요, 많은 축복을 약속받은 자이며(자손번성, 영원한 구원, 메시야 언약, 복의 근원) 또 믿음의 조상이라 하셨는데 그에게는 상당한 순종과 봉사(창 18:1~8)헌신도 있었음을 아셔야 합니다.

 

제 9 과 놋 (창 11:27, 12:4) 목록으로


“놋”은 아브라함의 조카입니다. 아브라함의 막내동생 “하란”이 고향인 “갈대아우르”에서 놋을 낳고 죽었으며 놋의 어머니 기록은 성경에 없습니다. 본토에서 하란으로 이거할때까지는 조부와 삼촌들 밑에서 살다가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올 때, 놋도 함께 와서 상당기간 아브라함의 집에서 양육 받다가 각각 관할하는 종들과 짐승들이 많아지자 아브라함이 분거시켰는데, 그때 놋에게 먼저 비옥한 땅을 선택하게 한즉 놋은 소돔성이 있는 비옥한 들을 택하여 떠났습니다(창 13:5~13). 그후 주위에 있는 여러 부족들간에 전쟁이 있었는데 그 전쟁에서 소돔, 고모라 왕이 패전하자 놋의 가족들도 포로가 되었는데(창 14:1~12), 이 소식을 헤브론에 살던 아브라함이 듣고(창 13:18), 자기 집에서 연마한 318명의 군사로 그 대적들을 친후, 놋의 가족과 함께 다른 백성들과 재산을 회복해 준 일이 있었습니다(창 14:13~16).

그 후에 그 지역 성읍들의 거민들은 타락하였고 놋은 그 나름대로 의를 지키려고 노력하였으며(벧후 2:6~8), 하나님이 그 도성을 멸하시려 할때,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놋을 멸망의 대상에서 제외시키셨습니다(창 19:29). 말씀을 좇아간 아브라함을 따라 간 놋이 아브라함의 덕을 입은 것입니다. 그래서 소돔, 고무라, 아드마, 스보임(창 14:8, 호 11:8)이 멸망될 때, 놋과 그의 두 딸만 구원을 받았습니다(창 19:12~29).

“놋”에게는 부인과 두 사위도 있었지만 그들은 구원의 방도를 의심하고 주저하다가 멸망되었고, 소알성으로 도망한 놋은 인종이 없는 곳에서 그 딸들의 계책으로 취중에 두 딸과 동침하게 되어 큰 딸에게서 모압을, 작은 딸에게서 “암몬”을 낳아 모압족, 암몬족의 조상이 되게 하였습니다.

 

제 10 과 이스마엘, 이삭 (창 16:15, 21:1~8) 목록으로


1.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서자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브람”이란 이름으로 있을 때, 또 하란에서 75세에 가나안 지경으로 와서 10년이 지났을 때(창 16:3), 그의 아내 사라가 생산하지 못함을 알고, 그의 여종 “하갈”과 동침하게 하여 낳게 한 서자입니다(창 16:1~2, 15). 하나님께서 그에게도 번성하는 복과 큰 나라를 이룰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창 17:20). 따라서 오늘의 아랍국들의 원조가 된 것입니다. 그가 14세 되었을 때 적자 동생 이삭이 출생하였는데(창 17:25), 그가 어린 이삭을 희롱하므로 그의 어미와 함께 쫓겨난 후 애굽 여인과 결혼하여 12지파의 조상이 되었고(창 21:8~21, 25:13~16), 137세를 살았습니다(창 25:17). 이 사실은 선민과 비선민 또는 택함 받은 자와 아닌 자의 결국을 예표해 주는 계시적 의미가 있습니다(갈 4:21~31). 선택받은 자가 아니면 영원한 기업이 없다는 뜻입니다.

2. 이삭은 아브라함의 적자요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을 받은 선민계열의 자손입니다. 이스마엘이 출생하였을 때, 하나님이 적자 주실 것을 약속하셨고(창 17:15~22), 그 약속대로 아브라함 100세, 사라 90세에 생산의 은혜를 받았습니다(창 21:1~7). 이 이삭은 메시야 언약의 모형자입니다. 다시말하면 예수님을 계시하는 모형적 인물이란 뜻입니다. 이삭이 출생할 때 하나님의 약속과 기적에 의하여 출생한 점과 아브라함의 독자인 점, 또 그가 모리아산에서 제물된 일(창 22:1~19) 등이 예수님의 경우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손으로 인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받는다” 하셨으니(창 22:18), 이 말씀은 “그의 계열에서 메시야를 보내신다”는 뜻입니다. “이삭”이란 이름의 뜻은 “웃는다”는 뜻입니다. 이 이름은 그의 부모가 100세, 90세의 늙은 나이에 생산한다는 계시를 받았을 때 “웃었다”는 일로 그런 이름을 주셨습니다(창 17:17, 18:12). 이스마엘과 이삭(야곱)의 계열은 지금도 화목하게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 11 과 아비멜렉, 비골 (창 21:22~23) 목록으로


1. “아비멜렉”은 “그랄”의 왕입니다. “그랄”은 가데스와 술 사이에 있는 왕국으로 블레셋 족속으로 구성되었습니다(창 20:1~2, 21:34).

2. “비골”은 그랄왕국의 군대장관입니다(창 21:32). 우리가 이 두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여야 할 이유는 아브라함과 이삭이 그 왕국에 가서 거주한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돔, 고무라가 멸망될 당시에 놋과 그의 두 딸이 생존하였지만, 그 후 아브라함과 다시 만난 기사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헤브론에서 살던(창 13:18) 아브라함이 남방지역인 그랄왕국 땅으로 이주하였습니다. 이주한 이유는 기록에 없으나, 흉년에 양식을 따라 또는 비옥한 지역을 따라 옮겼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창 26:1). 아브라함은 그곳에 가서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라는 그의 아내 이지만 이복누이이기도 합니다(창 20:12). 그 아버지 데라의 후처에게서 낳은 딸일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내를 누이라 한 이유는 그랄왕 아비멜렉이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뺏을까 두려워 하였기 때문입니다. 과연 아비멜렉은 그대로 시행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의 계시로 책망을 받고 취소한 후 화해하고 얼마동안 그곳에서 잘 살았습니다.

3. 그런데 그후 이삭의 시대에도 흉년이 들어서 이삭의 가족들(리브가, 에서, 야곱 등)이 또 그랄에 갔었고 역시 아브라함처럼 아내를 누이라고 하였으나(리브가는 이삭의 외삼촌 나홀의 딸이므로 누이도 됨, 창 24:15), 아내임이 알려졌어도 어려움은 당하지 않았습니다. 아비멜렉과 비골은 그 당시에도 그랄의 왕과 신하로 있으면서(창 26:26) 아브라함과 이삭과 평화조약을 맺었던 당사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백성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위험이 있을 때 거짓말을 하시지 않았습니다(요 18:6~8).

 

제 12 과 엘리에셀, 리브가 (창 15:2, 24:15) 목록으로


이 시간에는 “엘리에셀”과 “리브가”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1. “엘리에셀”은 다메섹 사람으로 아브라함의 심복같은 늙은 종입니다(창 24:2). 아브라함은 그에게 모든 소유를 맡겼고, 후사가 없었을 때, 그를 상속자로 지명하려고 하였으나(창 15:2), 나중에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적자 이삭의 배우자를 물색하려고 하였을 때 그를 메소보다미아(하란지역)로 보내어 자기의 동생 나홀의 손녀중에서 자부감을 구해오도록 부탁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창 15:2에 나타난 “엘리에셀”이 창 24:2에 나타난 늙은 종과 같은 사람인지에 대하여는 짐작으로 아는 것입니다. 유력한 심복과 종이 “엘리에셀”외에는 나타난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엘리에셀은 주인 아브라함의 부탁을 성실히 이행하기 위하여 기도하면서 주인의 고향땅으로 갔고, 그때 하나님이 순적하게 인도하시므로(창 24:12), 주인의 자부될 소녀를 쉽게 만났으니 그가 바로 “리브가”였습니다. 따라서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재산과 중대사를 맡았던 신앙있는 늙은 종이었다고 아시면 됩니다.

2. “리브가”는 이삭의 아내로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손녀딸입니다. 리브가의 아버지는 브두엘이고, 그 오라비는 “라반”이었습니다. 리브가의 아버지 브두엘과 오라비 라반은 엘리에셀의 말을 듣고,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적자 이삭의 아내가 되도록 허락을 한 후 그의 오라비와 어머니가 10일쯤 유숙한 후에 가도록 하였으나(창 24:55), 아브라함의 종이 지체할 수 없다 하였고, 리브가도 그뜻에 따르기를 원하여 즉시 함께 와서 이삭의 아내가 된 것입니다. 이삭의 어머니 “사라”는 그 이전에 세상을 떠났고, 이삭은 40세 때에(창 25:20) 아내를 맞이하므로 위로를 받았습니다(창 24:67).

 

제 13 과 그두라, 에서, 야곱(1) (창 25:1~4, 22~26) 목록으로


1. “그두라”는 아브라함의 후처이고, 그로부터 시므란, 욕산, 므단, 미디안, 이스박, 수아 6형제를 또 낳았으므로 이스마엘과 이삭까지 모두 8형제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두라”를 맞이한 것이 이삭의 결혼 전인지 후인지 모르나 성경의 기록은 이삭의 결혼(24장) 후로 되어 있습니다. “사라”는 127세에 세상을 떠났고(창 23:1). 이삭은 40세에 결혼하였으므로(창 25:20) 어머니를 여읜지 3년 만에 결혼한 것입니다.

2. 에서와 야곱은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서 출생한 쌍둥이 아들들입니다. 에서는 먼저 나온 자로 그 기질이 사냥꾼 되기에 적당하였고, 야곱은 나중 나온 동생으로 가정에서 어머니를 돕는 기질이었습니다. 이삭이 이 두 아들을 낳은 때는 60세였으므로(창 25:26) 결혼 20년 만에 낳은 것입니다. 그 이전의 생활은 성경에 기록된 것이 없습니다. 에서와 야곱이 출생하였을 때 아브라함(조부)은 160세 였고, 손자들이 15세 되었을 때 세상을 떠났으며 3부자들이 함께 2차로 그랄에 간 것입니다(창 26장)

3. 에서와 야곱 중 하나님은 야곱을 선민으로 택하셨습니다(롬 9:12~13). 그리고 에서는 아버지의 사랑을, 야곱은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는데 아버지 이삭이 늙었을 때 선지자적 권위로 장자에게 축복하려는 의도를 알아챈 리브가가 거짓된 위장술로 야곱을 장자로 속여서 축복을 받게 하였고, 이 사실이 알려지자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 하므로 그 어머니가 야곱을 하란의 외가로 피신하게 하여 야곱이 그 곳에서 20년간 고생하며 자수성가를 하였고, 20년 후에 고향으로 돌아와 에서와 화해하고 아버지 이삭을 만났으나 그때 리브가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습니다. 에서는 많은 가족들을 이끌고 세일 지역(아랍땅)으로 갔고, 야곱은 열 두 아들들과 함께 하나님의 뜻대로 가나안땅에 정착하였습니다(창 33장).

 

제 14 과 야곱(2) (창 28:15) 목록으로


야곱이 그 형의 진노를 피하여 밧단 아람(하란, 창 28:2, 10)으로 갈 때 그 나이가 40세 쯤이었습니다(창 26:34). 가진 것 없이 집을 떠나(창 28:18, 32:10) 여행할 때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며 복주실 것을 계시로 나타내 주셨고, 야곱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 돌릴 것을 서원하였습니다(창 28:18~22). 야곱은 작은 할아버지 “나홀”의 손자인 “라반”의 집에 도착하여 그 집에서 양치는 자로 살게 되었으니 라반은 외삼촌도 되고, 6촌 형제도 됩니다. 외할아버지는 브두엘입니다(창 24:50). 그 곳에서 외삼촌의 딸과 결혼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외삼촌의 둘째딸 라헬을 연연하여 그와 혼인할 약조로 7년을 봉사하기로 하고 결혼하였는데 라반이 큰 딸 레아를 아내로 삼게 하자 또 7년을 봉사하기로 약조한 후 7일 후에 라헬까지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창 29:16~30). 그때 “레아”는 생산을 잘 하여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를 낳았지만 라헬은 생산하지 못하므로 불안한 마음과 시기하는 마음 때문에 자기의 여종 “빌하”를 통하여 단과 납달리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레아”도 자기의 여종 “실바”를 통하여 자녀를 더 갖겠다 하여 실바에게서 “갓”과 “아셀”을 낳았습니다. 그 후에 레아가 또 잇사갈과 스블론을 낳았고, 맨 나중에 라헬이 요셉과 벤야민을 낳으므로 야곱은 열 두 아들의 아버지요, 12 지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이들을 양육하면서 번성한 가축들과 종들의 떼를 몰고 20년 후에 고향에 돌아와 에서와 화해하고 이삭과 함께 살다가 흉년이 들자 요셉의 초청으로 130세에(창 47:9) 애굽에 갔고, 애굽에서 17년을 평안히 살다가 147세에 세상을 떠나니 유언대로 선영에 장사지냈습니다(창 47:27~30, 50:29~33). 여기의 선영이란 사라가 “기럇아르바”에서 세상을 떠났을 때 아브라함이 “헷” 족속으로부터 막벨라굴을 사서 묘지로 사용한 곳입니다(창 23:1~20).

 

제 15 과 야곱(3) (창 28:15) 목록으로


지난 시간에도 야곱의 생활 역사를 공부하였습니다만 이 시간에는 야곱이 복받은 일을 다섯 가지로 상고하겠습니다.

1. 야곱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하여 된 일입니다. 에서와 야곱은 한시에 출생한 쌍둥이 형제인데 하나님이 야곱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은 야곱이 출생할 때와(창 25:33) 이삭이 축복할 때와(창 27:27~29) 또 야곱이 여행 중에 있을 때(창 28:15) 하나님이 선포하시고 복을 주신 것입니다(롬 9:12~13). 우리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으므로 성도가 된 것을 감사하셔야 합니다.

2. 노력을 아끼지 않은 사람입니다. 외삼촌의 집에 가서 20년 동안 노력할 때 “눈붙일 겨를이 없었다” 하였고(창 32:40), 또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하였습니다(창 47:9) 야곱은 노력하여 자수성가한 사람입니다. 노력없는 성공은 거의 없습니다(계 22:12).

3. 화해를 힘쓰는 사람입니다. 야곱에게는 네 여인에게서 낳은 열 두 아들이 있었지만 화목한 가정을 영위하였습니다. 그리고 형 에서와 불화한 것을 늘 가슴 아프게 여겨오다가 20년 만에 자기의 소유 절반 가량을 선물하면서(창 32:7~18) 형과 화해를 하였습니다(창 33장).

4.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을 어김없이 이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집을 떠날 때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오게 되면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고 하였습니다(창 28:20~22). 그 약속대로 “벧엘”에 가서 제단을 쌓았습니다(창 35:1~7).

5. 야곱은 인생 말년에 평안한 생활의 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성장하였을 때도 평안하게 살았겠지만 흉년이 들어 애굽으로 갔을 때 애굽에서 17년간 요셉의 효도를 받으며 살다가 평안히 하나님께로 간 것입니다(창 50:33).

 

제 16 과 야곱의 직계 가족 (창 29:15~30) 목록으로


1. 야곱의 직계 가족을 노아부터 살피면 다음과 같습니다(창 11:10~26).

노아 ⇒ 셈 ⇒ 아르박삿 ⇒ 셀라 ⇒ 에벨 ⇒ 벨렉 ⇒ 르우 ⇒ 스룩 ⇒ 나홀 ⇒ 데라 ⇒ 아브람(아브라함) ⇒ 이삭 ⇒ 야곱

따라서 노아는 아담의 10대손, 아브람은 20대손, 야곱은 22대손입니다.

2. 아브라함의 아내는 사라이며 이복 누이도 됨(창 20:12).

이삭은 60세에 야곱을 낳았고(창 25:20~26), 180세를 살았으며(창 35:28), 리브가는 야곱의 귀향전에 별세한 것으로 추정됨(창 27:13).

 





야곱 40세쯤 집떠남. 20년만에 돌아옴(창 26:34, 27장, 28장)

야곱의 1처 “레아” ⇒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창 29:31~35)

2처의 종 “빌하”(창 29:15~30) ⇒ 단, 납달리(창 30:1~8)

1처의 종 “실바” ⇒ 갓, 아셀(창 30:9~13)

1처 “레아” ⇒ 잇사갈, 스블론(창 30:19~21)

(딸) 디나(창 34:1)

2처 “라헬” ⇒ 요셉(창 30:22~24), 벤야민(창 35:16~18)

“라헬”은 벤야민을 낳고 죽으니 야곱이 베들레헴에 장사함(창 35:19~20).

 

제 17 과 르우벤, 시므온, 레위 (창 29:31~35) 목록으로


1. 르우벤은 야곱의 장자로(창 29:32) 요셉이 양치는 그의 형들을 만나러 갔을 때 그의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공모하자 르우벤이 “그의 생명을 상하지 말자”고 제의하여 구덩이에 넣는 것으로 그치게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생명을 위기에서 살린 것입니다(창 37:18~23). 그러나 아비의 첩 빌하와 통간하였고(창 35:22), 이 사실을 안 야곱이 그를 장자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족보상 명의만 기록하고 특권은 주지 않았습니다(대상 5:1). 자녀들이 장자된 만큼 번성하지 못하였고(민 1:20~46), 출애굽 당시에 그의 후손인 “다단, 아비람, 온”이 작당하여 모세를 반역한 일이 있었으며(민 16:1~35) 요단 동편 땅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수 13:15~23).

2. 시므온은 야곱의 둘째 아들입니다(창 29:33). 그는 그의 아버지와 함께 살 때 이방족 “세겜”이 여동생 “디나”를 강간한 연고로 그의 족속을 학살하므로 야곱에게 큰 근심을 주었고(창 34:25~30), 그의 지파의 인구가 출애굽 당시에 59,300명이던 것이 가나안 입국시에는 22,200명으로 줄었으며(민 1:22, 26:14) 모세가 마지막으로 축복할 때 르우벤, 시므온, 잇사갈 지파는 제외되었습니다(창 33장).

3. 레위는 야곱의 셋째 아들입니다. 그의 자매 디나가 세겜에게 강간당하였을 때 시므온과 함께 살육에 가담하였습니다(창 34:25~27). 레위에게는 “게르손과 고함(고핫, 창 46:11)과 므라리” 세 아들이 있었고(출 7:16), 137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출 6:16). 이 지파의 아들들이 출애굽 당시부터 성직에 임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미리암과 아론과 모세가 그의 후손이고(민 26:59, 출 4:14), 모세는 대선지자였으며 아론은 대제사장이며 그의 후손이 제사장직을 세습받았고, 그 대신 기업은 받지 않은채 다른 지파의 십일조로 살았습니다(민 18:21). 신약의 시므온과 세례요한도 그 지파의 사람입니다(눅 2:25~35, 눅 1:5~10).

 

제 18 과 유다 (창 49:9~10) 목록으로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로 메시야 계열의 조상입니다(창 29:35). 요셉의 여러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 넣은 상태로 죽이려 할 때 그를 상인들에게 팔자고 제의하였으니(창 37:26~27) 이는 그를 살리고저 한 의도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이 애굽에서 총리가 된 후 형제들과 양식을 사러 애굽에 갔을 때 요셉이 벤야민을 인질로 가두려 하자 자신이 대신 인질될 것을 청한 일이 있었습니다(창 44:18~33). 그 일이 있자 요셉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여 자신을 나타내었지요(창 45:1~3). 유다는 가나안 사람 즉 이방인 수아의 딸과 결혼하였고, 그 사이에서 “엘과 오난과 셀라”를 낳았으나(창 46:12) 장자 “엘”은 하나님 앞에 악하여 죽임을 당하였고(창 38:7), 차자 “오난”은 죽은 형의 후사를 위하여 형수와 동거하면서도(계대결혼) 생산을 거절(피임)하므로 하나님이 그도 죽이셨습니다(창 38:8~10). 그리하여 자부 “다말”이 홀로 남게 되었는데 “어린 막내 아들 셀라가 자라기까지 기다리라”는 약속을 하고도 또 그 아들이 죽을까 하여 계대 결혼을 시키지 않았습니다(창 38:11). 그 후 유다도 상처하여 홀로 살던 중, 창녀에게 접근하자 자부 다말이 창녀로 변장하여 시부 유다를 유혹하였고, 유다는 자부를 창녀로 오인한채 동침하여 베레스와 세라를 쌍둥이로 낳게 되었습니다(마 1:2). 이렇게 하여 출생한 “베레스”가 메시야 계열이 된 것입니다. 유다 지파는 인구가 가장 많았고, 모든 일에 선봉 지파가 되었으며(민 1:27, 2:9) 가나안 남방의 넓은 개간지를 기업으로 받았습니다(수 14:6~15). 갈렙과(민 13:6) 다윗도 그 지파에 속한 사람입니다(마 1:2~5). 창 49:10에서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않는다”는 야곱의 예언이 곧 왕통과 메시야 계열됨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제 19 과 단, 납달리 (창 30:3~8) 목록으로


1. “단”은 야곱의 2처 라헬의 여종 빌하의 몸에서 다섯째 아들로 출생하였습니다(창 30:6). 야곱이 “단”에 대하여 예언할 때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라”(창 49:17) 하였고, 또 모세는 축복하기를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새끼라”(신 33:22) 하셨으니, 이 예언은 단지파가 다른 족속을 침략할 것과 용맹성이 있음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지파의 인구는 유다지파 다음으로 많았고, 기업은 예루살렘 서쪽 지중해와 인접한 땅이었으나(수19:40~47), 그 지역에 거주하는 원주민을 완전히 토벌하지 못하게 되자 일부족이 북방(헬몬산 북쪽)으로 올라가서 “라이스”를 점령하고, 그 지역을 “단”이라 칭하니, 이 지역이 팔레스틴의 북단경계가 되었습니다. 또 그곳은 물산이 풍부하고 침략을 받지 않은 평안한 땅이라고 하였습니다(수 19:47, 삿 18:7~10, 29). 그런데 특기할 사항은 계 7:5~8에서 인 맞인 자의 수를 지파별로 12000명씩 헤아릴 때 단지파가 빠진 것입니다. 이것은 그 지파가 천국 기업을 받지 못하였다는 뜻입니다. 삿 18장에 보시면 그 지파가 본래 기업의 땅에서 북쪽으로 올라간 다음 강도짓을 하고 자율적 종교를 세운 일이 있음을 인하여 신앙의 명맥에서 떠난 것 같습니다. 어떤 이단자는 이 단지파가 한반도에 와서 단군의 시조가 되었다는 말을 한 일도 있었으나, 근거없는 주장을 하는 것부터 경계하셔야 합니다. 사사시대에 “삼손”이 지파의 후손입니다(삿 13:2, 24).

2. “납달리”는 야곱의 여섯째 아들로 라헬의 여종 빌하의 몸에서 “단” 다음에 출생한 아들입니다(창 30:8). “바락”장군이 이 지파의 사람이며(삿 4:6), 가나안땅 정복시에 수고하였고(삿 5:18), 갈릴리 서북쪽 중앙지역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수 19:32~39).

 

제 20 과 갓, 아셀 (창 30:9~13) 목록으로


1. “갓”은 야곱의 첫째부인 레아의 여종 실바의 몸에서 일곱 번째 출생한 아들입니다. 옛날에는 자녀생산을 투기심과 경쟁으로 시행하였습니다. 그 당시는 인구도 희소하였지만 노동력과 인력이 생계와 권위의 수단이었습니다. 이 지파는 르우벤지파와 므낫세반지파와 함께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전에 요단강 동편 땅을 먼저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그들은 목축의 분량이 많았기 때문에, 먼저 초원을 기업으로 받고 전쟁에는 함께 임하였습니다(민 32장). 이 지파는 기업을 먼저 받을 때, 법을 세우고 공의를 시행한 지파라고 모세가 축복하였습니다(신 33:21).

2. “아셀”은 실바의 몸에서 “갓” 다음에 출생한 여덟 번째 아들입니다(창 30:53). 야곱은 이 아들의 미래를 예언할 때 “그의 식물이 기름져서 왕의 진수를 공궤할 것이라”(창 49:20) 하였고, 모세는 축복하기를 “아셀은 다자한 복을 받으며 그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 발이 기름에 잠길 것이라 그의 문빗장은 철과 놋이 되고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더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신 33:24). 이 예언대로 아셀지파는 가멜산이 있는 지중해 쪽의 땅을 기업으로 받았는데(수 19:24~31), 그 땅이 대단히 비옥하므로 예언과 축복이 응하였습니다. 눅 2:36에 기록된 여선지자 “안나”가 이 지파의 딸입니다.

※ “아셀지파가 받은 복”을 사모합시다(창 49:20, 신 33:24).

1. 기름진 것으로 왕을 섬기는 복(교역자나 부모도 섬겨야 함)

2. 다자한 복을 받음(혈육의 자손과 신령한 자손의 번성임)

3. 그 형제에게 기쁨이 됨(형제와 이웃간에 화목하게 삼)

4. 그 발이 기름에 잠기는 복(소출이 많고 재물이 넉넉하여짐)

5. 문빗장이 철과 놋이 되는 복(든든하게 보호 받는 은혜)

6. 사는 날을 따라 능력이 더하는 복(모든 일에 발전하고 형통함)

 

제 21 과 잇사갈, 스블론 (창 30:16~21) 목록으로


1. “잇사갈”은 레아가 다섯 번째로 낳은 야곱의 아홉째 아들입니다. 레아가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를 낳고 그 사이에 빌하와 실바의 생산이 있었으며, 계속하여 잇사갈과 스블론을 또 낳았습니다. 그리고 딸 “디나”도 낳았습니다(창 30:18~21). 야곱은 “잇사갈”에 대하여 예언하기를 “양무리 사이에 꿇어 앉은 건장한 나귀라”고 하였고(창 49:14), 모세는 축복하기를 “산에서 의로운 제사를 드리고 바다의 풍부한 모래에 감추인 보배를 흡수할 것이라” 하였는데, 전자는 지도자의 배출을 뜻하고 후자는 신앙과 재물의 복을 의미합니다(신 33:19). 이 지파가 받은 기업은 갈릴리 호수 남쪽 중앙부의 땅이며(수19:17~23), 드보라 사사가 바락장군과 함께 가나안왕 야빈과 싸울 때 이 지파에서 방백들이 나와 큰 도움을 주었으므로 야곱의 예언이 응하였습니다(삿 5:15, 창 49:14).

2. “스블론”은 레아가 여섯 번째로 낳은 야곱의 열 번째 아들입니다(창 30:18~20). 야곱은 그에 대하여 예언하기를 “배를 매는 해변에 거할 것이라”(창 49:13) 하였고, 모세는 축복하기를 “나감을 기뻐하라”(신 33:18) 하였으니, 이는 자기들의 기업의 땅에서 밖으로 나가 성공할 것을 예언하신 듯합니다. 그런데 갈멜산과 시돈지역, 즉 해변은 아셀지파 기업에 속하였고(수 19:24~48), 실제로는 해변 안쪽, 즉 아셀지파와 잇사갈지파의 땅 사이에서 기업을 받았습니다(수 19:10~16). 따라서 야곱의 예언은 그들의 기업의 땅을 예언한 것이 아니라 활동무대(항구를 통한 무역)를 예언하심일 것입니다. 이 지파의 사람으로는 “요나”선지자가 있습니다. 요나의 아버지는 “아밋대”이며(욘 1:1), 그의 고향이 “가드헤벨”인데 이 지역이 스블론지파의 기업의 땅에 속한 성읍이기 때문입니다(왕하 14:25, 수 19:13).

 

제 22 과 요셉(1) (창 30:22~24) 목록으로


1. “요셉”은 야곱의 애처 라헬이 오랫동안 생산하지 못하다가 태어난 열한번째 아들입니다. 동명이인이 많지만 순서대로 공부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상당한 이유로 요셉을 편애한즉 그 형들이 그를 미워하고 시기하였다가(창 37:3~11) 양을 치는 광야에서 심부름차 온 17세된 요셉을 구덩이에 넣었다가 애굽으로 가는 상인들에게 은 20을 받고 팔았습니다. 애굽에 팔려간 요셉은 애굽왕의 시위대장인 “보디발”의 집 종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잘 있던 중 보디발 부인의 유혹을 뿌리친 연고로 겁탈하려 하였다는 누명을 쓰고 2년간 옥살이를 하였습니다. 감옥에서 바로왕의 꿈을 해석한 연고로 출옥한 후 애굽총리가 되었고, 꿈에 본 내용대로 7년 풍년과 7년 흉년이 들었을 때, 가나안 땅에는 양식이 핍절하였으나, 야굽에는 양식을 비축하였으므로 백성들과 이웃국민들에게 공급하였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두차레 양식을 사러 갔다가 요셉이 자기를 나타내어 알게 되었고, 또 가나안에 있는 모든 가족들을 애굽으로 초청하여 요셉의 권위와 명성이 있는 동안 잘 살게 하였습니다. 요셉이 고향의 가족을 만난때는 총리된 기간 13년, 풍년 든 기간 7년, 흉년든 기간 3년쯤 잡으면 23년 후인즉 40세쯤이었습니다. 야곱은 130세에 애굽에 가서 17년을 살고 147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17년은 요셉이 아버지와 함께 산 기간이요, 또 야곱이 요셉과 함께 산 기간입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아스낫”을 부인으로 삼아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낳고 자기의 시신을 조상의 묘역에 장사지내도록 유언하고(창 50:24~46) 110세에 세상을 떠나니 세월이 지난후 출애굽 때에 그 일이 실현되었습니다(출 13:19, 수 24:32).

2. 요셉이 형제들에게 버림당한 일, 은 20에 팔린 일, 억울함과 고난당한 일, 형제를 구원한 일, 영광에 오른 일 등이 예수님의 생애와 비슷하여 그를 메시야 모형인물로 여기기도 합니다.

 

제 23 과 요셉(2), 벤야민 (창 35:16~21) 목록으로


1. 요셉에 대한 남은 이야기를 더 공부하겠습니다. 맏형 르우벤이 장자의 특권을 상실하자 장자에게 주는 갑절의 기업이 요셉에게 돌아갔습니다(대상 5:1, 신 21:16~17). 그래서 요셉의 기업은 그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두 기업 두 지파가 되었고, 그 두 지파가 받은 땅은 요단강 동서 중앙지역(므낫세)과 요단강 하부 서편지역입니다(수 16:1~17:18). 야곱은 요셉에게 “번성과 승리의 복을 에언하였고, 그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난다”(창 49:22~24) 하였으니, 이 목자는 에브라임의 후손 여호수아를 뜻할 것입니다(민 13:8, 16). 야곱은 요셉에 대하여 예언하기를 “샘곁의 무성한 가지요 그 가지가 담을 넘었다” 하였고, 모세는 축복하기를 “자연이 보물되는 복과 용맹을 떨치며 번성할 것”을 축복하였습니다(신 33:13~17).

2. 벤야민은 야곱의 열두째(막내) 아들이고, 요셉의 친동생입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의 외삼촌집에서 20년을 살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형과 화해하고 서원한대로 벧엘에서 제단을 쌓고(창 33:10, 35:1~5), 헤브론 쪽으로 남하다가 베들레헴에서 라헬이 벤야민을 낳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 이유로 요셉과 벤야민이 야곱의 사랑을 더 받게 된줄 압니다(창 35:16~21). 야곱은 벤야민에 대하여 “물어 뜯는 이리라”하였고(창 50:27), 모세는 벤야민이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을 것”을 축복하였습니다(신 33:12). 벤야민은 그 형들이 애굽으로 양식을 사러 갔을 때, 인질이 되기도 하였으나 그당시에는 그의 형들이 그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일만큼 변화된 상태였고(창 43:34), 이 지파의 기업은 현 예루살렘 지역입니다(수 18:11~28). 사사시대에 이 지파의 자손이 레위인의 첩을 강간하여 죽게한 일 때문에, 다른 지파들이 그 악을 제하기 위하여 이 지파를 도륙한즉 자라나는 후손에게 아내될 여인이 없자, 길르앗과 실로에서 처녀 600명을 취하여 혼인하게 한 사실로 예언이 응하였습니다(삿 19:~20:). 사울왕과 모르드개와 바울사도가 이 지파의 후손입니다(삼상 9:1, 에 8:2, 롬 11:1).

 

제 24 과 바로, 십보라, 부아 (출 1:15~22) 목록으로


출애굽기 1장에서 세사람의 이름이 나오는데 그들이 곧 바로와 십보라와 부아입니다.

1. “바로”는 “큰집 또는 태양의 뜻”으로 애굽왕을 통칭하는 존칭입니다. 왕을 호칭할 때 동양에서는 황제, 천자(중국), 천황(일본)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애굽의 바로왕은 네명이 있었습니다.

1) 아브라함때의 바로왕입니다. 아브라함이 애굽에 갔을때 바로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취하려하다가 혼난 왕입니다(창 12:15~20).

2) 요셉이 총리되었을 때의 바로왕입니다(창 46:27, 47:6~11). 그는 요셉을 알게 되어 나라정치에 큰 도움을 받았고, 야곱과 요셉의 가족들에게도 후한 대접을 하였습니다.

3) 모세 출생당시의 바로왕입니다. 이 왕은 이스라엘 민족의 번성을 두려워하여 “출생하는 남자아이를 다 죽이라”고 히브리 산파에게 명하였던 사람입니다(출 1:15~16).

4) 출애굽 당시의 바로왕입니다. 모세가 출애굽 사명을 받고 이 왕 앞에 서서 하나님의 명을 전달하였고, 그가 강퍅한 태도를 취하자 열가지 재앙을 당하게 하였으며, 결국 그는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허락하였고, 또 추격하다가 그들이 다 홍해에서 죽음을 당하였습니다(출 8:~10:, 12:36, 14:5~20).

2. 십보라와 부아는 모세의 출생당시에 히브리인 간호사였습니다. 이들은 “히브리인의 남아를 죽이라”는 바로왕의 명을 받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여 왕명을 거역하였습니다. 그리고 죽이지 않은 이유를 물었을 때 “미리 해산을 잘 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저희들은 악을 대항하는 용기를 배울 수 있고, 또 하나님이 그런자의 편이 되어 주신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악은 생명을 걸고 대항하여야 할 일인 것을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물론 거짓은 죄입니다.

 

제 25 과 아므람, 요게벳 (출 6:18~20) 목록으로


1. 출애굽기를 읽으면서 배워야 할 인물은 모세입니다. 모세를 알려면 먼저 그 뿌리를 알아야 하겠지요. 아므람은 레위의 둘째 아들 고핫의 넷째 아들입니다. 출 2:1에 보시면 “레위족 중 1인이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모세를 낳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부모에 대한 설명은 출 6:14~25에 기록되었습니다. 레위는 게르손, 고핫, 므라리 세 아들이 있었고, 둘째 아들 고핫은 웃시엘, 헤브론, 이스할, 아므람 네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넷째 아들 아므람이 그의 고모(고핫의 누이, 출 6:20) 요게벳과 혼인하여 아론과 모세를 낳은 것입니다. 따라서 아므람은 레위의 손자요, 모세와 아론의 아버지이며 137세를 살았습니다(출 6:20). 모세가 출생할 당시에는 레위족에게 제사장직을 주지 않았습니다.

2. “요게벳”은 모세의 어머니입니다. 모세의 형은 아론이고, 또 누이는 “미리암”이니까 그의 어머니도 되지요. 이 “요게벳”에 대한 내용은 출 6:20에서 “아므람이 그 아비의 누이(고핫의 누이) 요게벳을 아내로 취하여 아론과 모세를 낳았다”고 하였습니다. 요게벳을 유명한 인물로 여기는 것은 그가 모세의 유모가 되어 모세를 양육할 때 그에게 하나님을 깨우쳐 주는 교육과 자기의 민족이 하나님의 선민된 것과 하나님의 백성된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에 대한 교육을 잘 시켰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타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와 또 디모데의 어머니 유니게처럼 교육적 어머니로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또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낳아 기를 때 왕명에 의하여 하수에 던져야 하는 것을 지혜롭게 하여 갈대 상자에 넣어 띄웠고, 그 어린 아이의 생명을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공주를 보내어 그를 건지게 하셨고, 양육할 유모를 구하자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곁에 섰다가 모세의 생모 요게벳을 유모로 소개하여 양육하게 된 것입니다.

 

제 26 과 아론, 미리암 (출 6:20, 민 26:59) 목록으로


1. 아론은 모세의 형입니다. 모세가 80세에 소명을 받았을 때 아론은 83세였습니다(출 7:7).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출애굽 사명을 맡기실 때 모세가 입이 둔하다 하며 사양한즉 하나님이 말 잘 하는 아론을 대변인으로 세우셔서 모세와 함께 일하게 하셨습니다(출 4:10, 15).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는 기회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모세와 동행, 동사하였고, 하나님이 아론과 그의 후손들에게 제사장직을 맡게 하시므로 최초의 대제사장이 되었습니다(레 8:12~13). 그의 처는 유다의 5대손 암미나답의 딸(나손의 누이) “엘리사바”였고(대상 2:10), 그에게서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아다말 네 아들을 낳아 제사장직을 세습하였으나(민 26:59) 나답과 아비후는 제사를 잘못 드려 일찍 죽었습니다(레 8:12~13, 10:1~7). 아론은 모세의 사역을 도울 때 잘한 일도 있지만 잘못한 일도 많았습니다. 잘한 일은 모세가 바로왕 앞에 설 때 같이 있었고(출 7:10, 20, 8:8, 25). 모세의 기도를 도왔으며(출 17:12) 70 장로를 통솔하여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영광을 본 일이 있었습니다(출 24:9~11). 잘못한 일은 백성들의 청에 따라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고(출 32:4), 미리암과 함께 모세를 시기 원망하였으며(민 12:1) 또 반석의 물을 낼 때도 모세와 함께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훼손하였습니다(민 20:10~11, 신 32:50). 그는 123세에 호르산에서 모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민 20:25~28, 33:39). 모세가 120세에 죽었으므로 같은 해에 모세보다 조금 먼저 죽은 것입니다.

2. 미리암은 아론과 모세의 누이입니다(민 26:59). 애굽의 공주가 모세를 건진 후 유모를 구할 때 자기의 어머니를 소개하였고(출 2:4, 8),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건넜을 때는 영감을 받아 노래한 선지자였습니다(출 15:20). 아론과 함께 모세를 시기하고 원망하였다가 문둥병에 걸렸었고, 모세의 기도로 나았으며(민 12:1~15) 출애굽 말기, 이스라엘 민족이 “가데스”에 진쳤을 때 아론과 모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민 20:1).

 

제 27 과 모세(1) (출 2:1~10) 목록으로


1. 모세는 레위 지파에 속한 아므람과 요게벳 사이에서(출 2:1, 7:20) 가장 어려운 시기에(주전 1529년경) 애굽에서 태어났습니다. 요셉이 총리할 때 그 가족들이 흉년을 피하여 애굽에 가서 살다가 노예족으로 전락되었고, 모세가 태어날 무렵에는 애굽왕이 히브리인 남자 아이들을 하수에 버려 죽이도록 명한 때였습니다. 그때에 출생한 모세를 부모가 그대로 버리지 않고 갈대상자에 넣어 나일강 물에 띄웠는데 하나님의 인도 섭리로 애굽의 공주가 수욕하러 나왔다가 이를 발견하고 건져서 유모에게 양육 맡겨 양육케 하다가 자란 후에 자기의 양자를 삼아 왕궁으로 인도한 것입니다(출 1장).

2. 왕궁에서 40년 있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으나 자신이 히브리인이요, 신민이란 의식을 늘 갖고 있던차 애굽군인이 히브리인 노예를 학대하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여 애굽 군인을 죽인 일이 있었는데 나중에 히브리인이 자기의 살인한 사건을 누설하므로 죽음을 면하기 위하여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였고, 그 곳에서 이방 종교 제사장 르우엘(이드로: 출 3:1)의 집에 양치는 목자로 거주하며 그의 딸 “십보라”와 혼인하고, 또 40년을 지냈습니다(출 7:7).

3. 모세가 80세 되었을 때 하나님이 계시와 능력을 나타내셔서 모세를 부르셨고, “애굽에서 430년 노예 생활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해방시키는 지도자 역할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창 15:13, 출 12:40, 갈 3:17).

4. 그리하여 모세는 형 아론과 함께(출 4:10~18) 바로왕 앞에 가서 “하나님이 그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대로 가나안 땅을 주시기 위하여 인도하신다”는 뜻을 말하였고, 바로왕이 거절하는 것을 하나님이 재앙으로 굽히게 하였으며 결국 허락을 받아 선민을 해방시키기에 이른 것입니다. 따라서 모세는 출애굽의 인도자가 된 것입니다.

 

제 28 과 모세(2) (신 34:1~8) 목록으로


1. 모세의 기록은 출애굽기, 민수기, 신명기에 나타나 있고, 창세기와 레위기(이상을 모세 5경이라 함)와 시편 90편을 기록하였습니다. 모세는 출애굽 노정에서 40년 동안 선지자의 자격으로 선민의 인도자 역할을 하였으며 하나님께 가장 밀접하게 쓰임 받은 종입니다. “게르솜”이란 아들을 두었고(출 2:22), 120세에 모압땅 느보산(비스가 봉우리)에서 세상을 떠났으나 무덤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신 34:1~7). 모세의 무덤이 있다면 베드로의 동상보다 더 많이 참배할 뻔 하였습니다.

2. 모세는 처음 부름받을 때 세 번 이적 체험을 하였고(뱀, 문둥병, 피), 그 다음 바로왕 앞에 설 때는 열 가지 재앙을 나타냈으며(피, 개구리, 이, 파리, 악질, 독종, 우박, 메뚜기, 흑암, 초태생) 홍해를 가르는 이적(출 14:21)과 만나, 메추라기, 반석의 물을 먹게 한 일, 의복과 신발이 닳지 않는 등(출 16장) 많은 이적을 나타내었고, 또 전쟁에 승리하는 일(출 17:11~12, 민 31:1~8) 반역하고 불평하는 자들을 물리친 일, 발람의 거짓 유혹으로 어려움을 당한 일 등 많은 고생도 하였습니다(민 16:1~35, 21:1~9, 22:~25:).

3 그 중에도 모세는 율법을 받아 반포한 것이 가장 큰 일이었습니다. 절기 규례, 성막 제도, 제사장 임직과 제사법, 또 형법과 여러 가지 민법들을 반포하였고, 자기의 사명이 끝날 무렵에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워(민 27:18:23) 기업 분배할 일을 지도한 후(민 33:50~34:) 가나안 땅을 바라보기만 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신 34:4).

4. 학자들은 모세를 율법의 대표자요, 그리스도의 모형자라고 합니다.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 가지 못하므로 율법에 구원 능력이 없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후 그 대신 메시야를 예언하였다고 합니다. 또 출생시에 수난당한 일, 40일간 금식한 일과 목자된 일과 택자만 구원하는 일과 변화의 모습을 보인 일 등이 예수님과의 공통점이라고 합니다.

 

제 29 과 여호수아 (출 33:11) 목록으로


이 시간에는 “여호수아”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1.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 “눈”의 아들입니다(민 13:8). 그의 본명은 호세아인데 모세가 “여호수아”로 칭하였으니 “여호와의 구원”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여호수아는 본래 모세의 수종자로 등장하였으나 나중에 12정탐의 한 사람이 되었고(민 13:8), 갈렙과 함께 가나안 땅 정복에 대한 의욕적 보고를 하였고, 나중에 모세의 후계자가 되어(민 14:30,38, 27:16~23) 모세가 죽은 다음에 가나안 땅 정복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수 1:1~9).

2. 창 49:24에서 야곱이 열두 아들의 미래를 예언할 때 “요셉으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난다”고 하였는데 참 목자이신 예수님은 유대 지파에서 출현하셨으므로 요셉지파에서 나온 목자는 요셉의 둘째 아들 에브라임 지파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일컫는 말씀으로 여겨집니다. 여호수아나 예수아(대상 24:11, 대하 31:15)나 예수(마 1:21)가 다같은 뜻의 이름이므로 그리스도를 모형한 인물이 되고, 또 가나안 땅을 직접 정복한 사역을 한 만큼 메시야의 모형자가 된 것입니다.

3. 여호수아의 활동도 모세보다 못하지 않을 만큼 대단하였습니다. 본래 모세의 수종자로 시작하여 자신의 위치를 잘 지키는 사역자였으며(출 24:12~18, 33:11) 아말렉과 싸울 때 선봉장이 되었고(출 17:8~10), 가나안 땅을 정탐할 때 갈렙과 함께 긍정적 보고를 하여 원망하는 무리에 가담하지 않았으며(민 13:~14:10) 모세가 죽은 후에 요단강을 육지처럼 건넌 후 여리고성 탈환의 작전을 세워 승리하였고, 성물을 도적한 아간을 처치하고 가나안 땅 여러 성읍을 점령하여 각 지파에게 분배하였으며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성실하게 섬길 것을 교훈한 후 110세에 세상을 떠나 “딤낫세라”에 장사되었습니다(수 24:1, 14, 19, 20).

 

제 30 과 훌, 갈렙 (출 17:8~13, 수 14:6~15) 목록으로


이 시간에는 “훌과 갈렙”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1. “훌”은 아론과 함께 사역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초기에 아말렉의 침략을 받았을 때 모세가 여호수아로 출전케하고, 산에 올라가서 지팡이 잡은 손을 들었을 때 전쟁에 승리가 있었습니다(출 17:9~12). 여기에서 “지팡이를 들었다”는 뜻은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기도의 상징적 행동이었습니다. 그때 모세의 손이 피곤하여지자 아론과 훌이 양편에서 그의 팔을 부축해 주므로 기도를 계속하게 한 것입니다. “훌”의 족보는 성경에 기록이 없으나 아론과 함께 일한 것을 볼 때 레위지파로 추정되고, 또 미리암의 남편이라는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2. 갈렙은 여호수아와 견줄만한 유다 지파의 족장이요, 여분네의 아들입니다(민 13:6). 출애굽 2년 후에(민 10:11) 바란 광야에서 모세가 12지파별로 정탐을 뽑을 때 유다 지파의 대표자로 뽑혀 40일간 정탐을 한 후 여호수아와 같이 가나안 정복의 의욕적인 보고를 하므로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까지 들어간 사람입니다(민 13:30, 14:30). 그 다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기업을 받을 때 큰 역할을 하여 어려운 지역을 점령하고 자기 지파의 땅을 넓게 분배 받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갈렙이 여호수아와 함께 정탐 보고를 온전하게 하였을 때 모세가 기뻐하여 “그 땅에 들어가서 네 발로 밟는 땅은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는 예언적 허락을 하였은즉(신 1:36, 민 14:24) 자신의 나이가 85세이나 건강하여 전쟁할 수 있은즉 그 땅을 취하게 해달라 하여 여호수아의 허락을 받고 산지 헤브론 땅을 취하여 기업을 삼게 된 것입니다. 그 전쟁 때 “기럇세벨”이란 성읍을 취하는 자에게 자기의 딸 “악사”를 아내로 준다는 상급을 내걸고 싸웠는데 그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그 성읍을 취하여 그를 사위로 삼았습니다. 대단히 용기있는 장수였습니다.

 

제 31 과 옷니엘 (삿 3:7~11) 목록으로


이 시간부터는 “사사”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1. “사사”란 뜻은 “크리테스”(κριτής)란 말로 심판자 또는 재판자란 뜻입니다. 그런데 이 뜻을 가진 사사가 재판만 한 것이 아니고, 적국에게 점령당하거나 침해를 당한 어려움에서 대적을 쳐서 이기는 선봉자 역할을 한 구국투사였습니다.

2.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 사사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 시대는 여호수아가 죽은 다음부터 사울왕이 최초의 임금 된 때까지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 시기는 주전 1357년 경부터 1036년경까지 약 320년 간이 됩니다. 선민 시대는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되었고, 이삭과 야곱의 시대, 애굽 400년 시대, 광야 40년 시대를 지나서 사사 시대가 이르렀고, 사울왕이 세워지므로 끝난 것입니다.

3. 사사 시대를 시작하는 때에 여호수아가 죽었는데(수 24:29, 삿 2:8) 여호수아도 사사 역할을 하였고, 또 끝나는 때에 사무엘 선지자와 그의 두 아들인 요엘과 아비야도 사사역할을 하였습니다(삼상 8:1~2). 여호수아나 사무엘도 사사란 성경이 있는 줄 압니다.

4. “옷니엘”은 사사 시대에 최초의 사사였습니다. 그는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이고, 또 갈렙의 사위입니다 갈렙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유다 지파의 기업을 삼을 때 드빌 거민이 사는 “기럇세벨” 성을 쟁취한 공로로 그의 딸 “악사”를 아내로 받아 사위가 된 사람입니다(수 15:14~17). 그런데 여호수아가 죽자 백성들은 몹시 타락하였으니 다른 신과 우상을 섬기고 사사의 말도 듣지 않으며 이방인의 딸들과 통혼하여 거룩을 훼손한즉(삿 2:11~3:6) 하나님이 메소포타미아왕 구산 리다사임에게 8년을 붙쳐 어려움 당하게 하셨다가 옷니엘을 사사로 세워 나라를 구출하고 40년을 평안케 하신 것입니다(삿 3:7~11).

 

제 32 과 에훗, 삼갈 (삿 3:15~31) 목록으로


지금 읽은 본문에는 “에훗”과 “삼갈” 두 사사의 역사가 기록되었습니다.

1. 첫 번째 사사 옷니엘이 있을 때 나라가 40년간 태평하였으나 그가 죽으매 백성들은 또 하나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게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압왕 “에글론”을 강생케 하셨고, 그가 암몬족과 아말렉족과 합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18년동안 괴롭게 하였을 때 그 백성들이 하나님께 구원을 청하였고, 하나님이 에훗 사사를 들어 대적을 치게 하셨습니다.

2. 에훗은 벤야민 지파 게라의 아들이요, 왼손잡이 용사였습니다. 그가 단검을 몸에 숨기고 모압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치러 가서 “은밀한 말을 왕에게 고할 것이라”하여 왕을 다락방으로 유인한 후 왼손으로 다리에 숨긴 칼을 뽑아 왕을 깊히 찔러 죽인 후 이스라엘 진영으로 도망하여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어 의병을 따르게 하였고, 추격하는 모압군들을 요단강 나루에서 무찌른즉 그때에 죽은 적국의 용사가 1만명 가량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저희들이 배울 것은

1) 사사가 죽고 없을 때 백성들은 타락하였고,

2) 하나님의 백성들이 타락하면 하나님이 이방국을 강성케 하여 선민국을 치게 하여 괴로움을 주시며(삿 3:12)

3) 괴로움 받은 백성들이 회개하고 기도하면 또 사사를 세워 나라를 구출해 주시는 통치 섭리를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게서는 에훗의 승리가 있은 후 모압을 80년 동안 선민 수하에 강복시켜 주셨습니다.

3. “삼갈”은 에훗 다음에 출현한 사사로서 소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이므로 이스라엘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한 자였습니다. 이 사실은 에후가 죽은 후에 백성들이 또 타락하였고, 또 블레셋의 침략을 받아 괴로운 중에 회개하고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의 응답과 구원의 역사로 이루신 일이었을 것입니다(삿 2:31).

 

제 33 과 드보라 (삿 4:1~5) 목록으로


1. 에훗사사가 죽은 후에 백성들이 또 악을 행하여 하나님이 20년동안 가나안왕 야빈왕의 학대를 받게 하셨습니다. 야빈왕은 시스라장군과 철병거 900승을 갖고 있는 강한 군주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개하며 기도한즉 하나님이 드보라, 여선지자를 사사로 일으키셨고, 또 드보라는 바락장군을 내세워 의병과 함께 전쟁하게 하였으며, 이때에 하나님이 기손강에서 홍수로 야빈의 철병거를 떠내려가게 하여 승리를 주셨습니다.

2. “드보라”는 에브라임지파 여인이요(삿 4:5), 랍비돗의 아내이며, 또 선지자요 사사로서 재판을 하던 여인이었는데, 그가 하나님의 쓰심으로 구국의 사명을 받고 바락장군과 합세하여 1만명의 용병을 모집한 후, 야빈왕 및 시스라의 군사와 싸울 때 하나님이 큰 승리를 주셨습니다. 이로 인하여 그땅에 40년간의 평화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삿 4:12~16, 5:31).

3. 드보라 사사의 역사를 공부할 때 반드시 다음의 인물들도 기억하셔야 합니다.

1) 가나안왕 “야빈”과 그의 장군 “시스라”를 기억하실 것이며,

2) 드보라가 기용하여 함께 사역한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장군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3) 시스라가 패배하여 도망한 후, 은신처에 들어갔으나, 그 집에 사는 헤벨의 아내 야엘이 시스라를 잠자게한 후 그의 몸에 말둑을 박아 죽이므로 최종 승리를 거두게 한 헤벨과 야엘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헤벨은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으로 그 아내 야엘과 함께 “게데스” 지경에 살았는데(11절), 야빈과 화평한 사이라 시스라가 그 집으로 피신을 하였지만 그집 여인 야엘이 하나님의 백성을 도와 시스라를 죽인 것입니다. 그래서 드보라는 그 여인을 크게 축복하였습니다(삿 5:24).

 

제 34 과 기드온(1) (삿 6:11~15) 목록으로


1. 드보라사사 다음데 사역한 사사가 기드온입니다. 기드온은 므낫세지파의 사람 요아스의 아들로 자기를 “제일 작은자”라고 하였습니다(삿 8:32). 드보라의 태평시대가 지난후, 백성들이 또 악하여지므로 하나님이 미디안의 손에 붙여 7년을 고난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백성들의 호소를 들으시고 기드온 사사를 일으키신 것입니다.

2. 기드온이 곡식을 감추기 위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할 때 하나님이 그를 부르셔서 제물을 불로 태우신 표징(삿 6:21)을 보였을 때, 기드온은 용기를 내어 그 동리에 있는 바알신의 단과 아세라 목상을 찍어 없애고 그 장소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즉 사람들은 그를 여룹바알(바알과 다툼)이라 하였고, 하나님의 신이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삿 6:30~32, 34). 그 후에 기드온은 또 하나님께 표징을 구하여 타작마당에 던진 양털에만 이슬이 오게 한 일과 반대로 양털에만 이슬이 오지 않게 한 이적을 체험하고 더욱 큰 힘을 얻었습니다(36~40절).

3. 기드온은 미디안과 싸우기 위하여 32000명의 의병을 모집하였으나, 하나님이 300명의 정병만 쓰게 하셨고, 그들에게 나팔과 항아리와 항아리 속에 감춘 횃불을 준비하게 하신다음 잠자는 시간을 틈타 기습작전으로 도륙하였습니다. 별안간 나팔소리와 항아리 깨지는 소리를 내고 횃불을 밝히자 적군들은 스스로 치고 싸우므로 자멸을 당하게 하였고, 또 에브라임 지파의 출동으로 미디안의 두 장수 오엡과 스엡을 죽였습니다(삿 7:25).

4. 기드온의 역사에서 배울점이 많습니다.

1) 기드온이 겸손하므로 하나님이 쓰신 점과(삿 6:15),

2) 체험적 신앙으로 큰 확신을 갖고, 우상을 타파한 용기와,

3) 정병만으로 싸운 점입니다.

4) 나팔은 진리의 선포와 항아리는 부셔야 할 마귀의 상징이며, 횃불은 정의의 깃발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 35 과 기드온(2) (삿 8:22~28) 목록으로


1. 기드온이 300명의 군사로 미디안 군사를 쳐부순 일과 늦게나마 에브라임 지파의 도움을 청하여 그들의 손으로 두 적장 오렙과 스엡을 죽였는데 에브라임 사람들이 처음부터 함께 출전하지 않은 것을 불평하자 “두 적장을 죽인 공로가 더 크다”고 치하를 하여 그들의 불평을 평정하였습니다(삿 8:1~3).

2. 그리고 미단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할 때 숙곳 사람들과 브누엘 사람들이 돕지 않고 격려해주지 않았는데 기드온이 두 왕을 사로잡은 후에 협력하지 않은 방백들을 벌 준 일이 있었습니다(사 8:4~17). 또 백성들이 기드온을 왕삼으려 하였으나 기드온은 하나님이 다스리실 것을 말하고 사양한 후 사사의 위치에만 있었습니다(삿 8:22~23).

3. 그러나 대적으로부터 탈취한 패물들로 에봇(제사드릴 때 입는 옷)을 만들어 백성들이 그것을 숭배하므로 범죄의 올무가 되게 하였고, 40년간 태평하였습니다.

4. 기드온은 처첩이 많았고, 처에게서 낳은 아들이 70명이요, 첩에게서 낳은 아들 “아비멜렉”이 있었습니다(삿 8:29~31). 기드온이 죽자 백성들은 또 타락하였고, 그때 아비멜렉이 형제 70인을 죽이고 스스로 군림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외가인 세겜에 가서 “자기 혼자 다스리는 것이 좋으냐 아니면 70인(본처의 아들들)이 다스리는 것이 좋으냐”고 물어 1인 정치의 필요성을 깨닫게 한 후 깡패들을 동원하여 70형제를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삿 8:33~9:6). 그 때 말째 아들 “요담”은 그곳에서 피하여 아비멜렉을 저주하였습니다(삿 9:7~15).

5. “아비멜렉”의 통치 3년에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고, 배반한 쪽의 장수 가알(에벳의 아들, 삿 9:26)과 아비멜렉의 장수 스불(삿 9:30)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으나 아비멜렉이 한 여인의 맷돌에 맞아 죽으므로 하나님의 보복을 받았고, 또 요담의 저주도 응하였습니다(삿 9:56~57). 이렇게 하여 그의 3년 통치는 끝났습니다.

 

제 36 과 돌라, 야일, 입다 (삿 11:1~3) 목록으로


1. 기드온과 아비멜렉 다음에 “돌라”라는 사사가 있었습니다. 돌라는 잇사갈 지파 부아의 아들로 23년간 사사 역할을 하였고, 자세한 내용은 없습니다. 아비멜렉은 구데타로 정권을 잡은 자요, 사사가 아닙니다.

2. “돌라”가 죽은 후에 “야일” 사사가 일어나서 길르앗에서 23년간 통치하였고, 그에게 아들 30명이 있었는데 다 각각 한 성읍과 나귀 하나씩을 갖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삿 10:1~5).

3. 야일이 죽은 후에 백성들은 또 타락하였고, 하나님이 진노하시니 블레셋 자손과 암몬 자손에게 18년간 학대를 받게 되었으며 백성들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구원을 청한즉 하나님이 “입다” 사사를 일으키신 것입니다. “입다”는 길르앗의 아들이고, 므낫세의 손자 길르앗이 있었는데(민 26:29) 그 지파의 족속들이 사는 장소를 “길르앗”이라 하였을 것이므로 입다를 므낫세 지파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삿 12:1). 입다는 그 아버지 길르앗과 기생 사이에서 출생하여 적자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쫓겨난 상태에서 잡류들과 합류하여 살았습니다. 그때 암몬족의 침략이 있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싸움에 앞장 설 것을 청하였고, 이기면 두목을 삼겠다고 하였습니다. 입다가 암몬왕과 싸울 것을 결심하고 먼저 사자를 보내어 그들의 침략의 부당성을 전하였으나 듣지 않았고, 또 아모리왕 시혼에게 싸움의 길을 열어줄 것을 청하였으나 역시 거절 당하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모리족을 먼저 쳐서 승리한 후, 또 하나님께 서원하고 전쟁하여 승리를 하였습니다(삿 11:29~33). 서원의 내용은 승리 후 돌아올 때 자기를 먼저 맞이하는 자를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마침 이기고 돌아올 때 무남독녀 처녀딸이 아버지를 맞이하므로 그 서원을 이행하고 6년간 사사 역할을 하였습니다(삿 12:7). 그가 딸을 번제로 드린 문제는 창 22:13로 이해함이 좋을 것이며 그 딸은 독신(나실인)으로 살다가 죽었습니다.

 

제 37 과 입산, 엘론, 압돈 (삿 12:8~15) 목록으로


1. 입다 다음의 사사는 입산이었습니다. 입산은 베들레헴 사람으로 유다지파에 속하였고, 그는 아들 30명과 딸 30명이 있었는데, 딸들은 타국으로 시집보냈고, 아들을 위한 며느리들을 역시 타국에서 데려왔다고 합니다. 국제혼인을 시행한 일에 대하여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7년간 사사역할을 하고 죽으므로 베들레헴에 장사되었습니다.

2. 입산 다음에는 스블론 지파의 사람 엘론이 사사가 되었고, 그가 1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리다가 죽으매 스블론 땅 아얄론에 장사되었습니다(아얄론은 단지파경내에도 있음, 수 19:42, 21:24).

3. 압돈은 엘론 다음의 사사였습니다. 압돈은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입니다. “비라돈”은 에브라임 지역이며(15절), “실로” 위에 있은즉 압돈도 입다처럼 에브라임 지파사람입니다(삿 11:1, 12:4). 압돈은 아들 40명과 손자 30명이 있었는데, 그들에게 어린 나귀 70필을 주어 각각 타게 하였고, 8년간 사사역할을 하다가 죽은즉 에브라임 땅 아말렉 사람의 산지인 비라돈에 장사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공부한 사사들의 이름을 순서대로 다시 살펴본다면, 옷니엘, 에훗, 삼갈, 드보라, 기드온, 돌라, 야일, 입다, 입산, 엘론, 압돈, 그리고 다음에 공부할 삼손까지 13명입니다. 그러나 그 외에도 사사된 자들이 있었습니다. 광야시대에 모세가 임명한 사사들이 있었는데(민 25:5), 확실하게 나타난 사사는 “비느하스”(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였고, 이때에 여호수아 같은 용사들도 사사로 임명을 받았으리라고 예측합니다. 또 사사시대 말기에 엘리 제사장도 사사였으며(삼상 4:18), 사무엘이 그의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야에게 사사를 임명하였습니다(삼상 8:1). 따라서 사무엘도 사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행 13:20). 사사들 중에도 타락한 자들이 있었습니다(삿 2:16~17, 삼상 8:1~3).

 

제 38 과 삼손 (삿 13:2~7) 목록으로


1. 사사 압돈이 죽은 다음 백성들이 타락하므로 하나님께서 40년동안 블레셋 손에 붙이셨다가 마지막으로 “삼손”사사를 일으키셨습니다. 단지파의 “마노아”란 사람이 아내의 잉태를 위하여 기도하고 응답받으므로 삼손을 낳은후 그를 나실인으로 양육하였습니다. “나실인”이란 포도주와 독주를 금하고 머리를 깎지 않으므로 성별되게 키우는 것입니다. 마노아는 기도의 응답을 받을 때 자기의 아내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고,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즉 제단의 불꽃과 함께 하나님의 사자가 승천하였으며(삿 13:8~20), 그후 삼손에게는 하나님의 신의 감동이 있었습니다.

2. 삼손은 장성하자 장사의 힘을 발휘하였고, 블레셋족이 사는 딤나에 가서 블레셋 여인을 취하였으니, 이는 계책으로 블레셋족을 멸하려는 뜻이었습니다. 그후 블레셋족들과 수수께끼를 하여 지는자가 베옷 겉옷 각각 30벌을 주기로 하였는데, 블레셋족이 그 대답을 삼손의 처를 꾀어 알아냈으므로 브레셋 도시인 아스글론에 가서 30명을 죽인 후 수수께끼의 약속을 이행하고 비밀을 누설한 아내를 처가에 버렸습니다.

3. 그 후에 다시 처가에 가서 아내를 보려한 즉 장인이 그의 처를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하므로 여우 300마리를 취하여 그 꼬리에 횃불을 달아 곡식 밭을 불사른 후, 그 딸과 아비를 불살라 죽이고 유대땅 에담에 거하자 블레셋 사람들이 유다를 상대로 진을 치고 “삼손을 내놓으라”하므로 삼손을 새줄로 결박한 후 넘겨주었으나, 줄을 끊고 나귀의 턱 뼈로 블레셋군 1000명을 죽인 일이 있었습니다(삿 15장). 그후 20년간 사사 생활을 하였는데,

4. 또 블레셋 지역 가사에 가서 “들릴라”란 여인을 얻었고, 그가 삼손의 힘이 머리털에 있음을 알고 그가 잠든 사이에 머리를 깎자 힘이 없어져 붙잡히는 신세가 되었으나, 나중에 머리가 자라면서 다시 힘이 소생하여 극장 기둥을 빼므로 3000명 가량의 블레셋족과 함께 죽는 결과를 나타냈으니(삿 16장), 그는 이방 여인을 취한 것과 그 여인에게 비밀을 알린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제 39 과 미가 (삿 17:1~6) 목록으로


1. 여기의 “미가”는 미가 선지자가 아닌 사사시대의 에브라임 지파에 속한 사람인데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어서 기억하려고 합니다. 미가는 그 어미의 은돈 1100을 도적질 하였다가 어미로부터 저주를 받았는데 뉘우치고 돈을 돌려드리자 그 어미가 감동을 받고 아들을 복되게 하기 위하여 은 200짜리 신상을 만들어 자기 집에 세우고, 또 한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워 그 신상을 숭배하였고, 그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로 알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왕이 없었고, 백성들마다 자율적으로 행하였으니 이는 계시 종교에 역행함이었습니다(삿 17:6). 그러자 레위인 한 소년이 거처없이 다니다가 미가의 집에 간즉 그 집에서 레위족 소년을 영접하여 제사장을 시키고, 더욱 만족히 여기며 복받기를 사모하였으니 레위족이라도 아론의 후손이 아니면 제사장이 될 수 없으나 그래도 다른 지파 사람보다는 더 낫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2. 그 후에 단 지파는 에브라임 지파 서남편의 땅을 기업으로 받았으나(수 19:40~48) 토지가 협소하여 5명의 용사가 원정차 다니다가 미가의 집에 가족 제단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제사장 소년을 꾀어 “한 가족의 제사장이 되지 말고,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라” 한즉 이를 좋게 여기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 후에 단 지파의 원정 대원들이 팔레스틴 북단 라이스 지역에 이르러 그 곳이 살기 좋고 점령하기 좋은 땅임을 판단한 후 자기들 지파의 용사 600명과 함께 “라이스” 지역을 점령하기 위하여 가면서 미가의 집에 들려 강도처럼 임하여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제사장 소년까지 뺏어 간 후 “라이스”에 이르러 그 지역을 점령하고, 그 신상을 세운 후 그 소년을 제사장으로 세웠으니 그 소년은 레위 지파 모세의 후손인 듯 하고(삿 18:30), 사로잡히는 날(바벨론 포로)까지 그렇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단 지파나 미가의 종교적 소행은 하나도 옳은 것이 없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서 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단 지파는 천국의 명단에 들지 못하였으니(계 7:5~8) 종교와 신앙은 모든 면에 정의로워야만 할 것입니다.

 

제 40 과 어떤 레위인 (삿 20:1~7) 목록으로


1. 사사기 마지막 부분에 어떤 레위인의 잘못된 일로 큰 불상사를 초래한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레위인이 에브라임 지역에 살면서 유대땅 베들레헴 여인으로 첩을 취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그 첩이 음행을 하고, 남편을 떠나 친정으로 갔는데 넉달 후에 남편이 그를 다시 영접하기 위하여 처가에 간즉 그의 장인이 융숭하게 대접하고 여러 날을 머물게 하는 바람에 기일을 늦추어 첩을 데리고 저녁에 출발하여 여브스(예루살렘, 삿 19:10)에 왔는데 그지역은 이방인들이 거주하므로 벤야민 지역인 기브아에 와서 한 노인의 영접을 받고 유숙하게 되었는데 그 날 밤에 그 지역의 비류들이 그 노인의 간청을 물리치고 레위인의 첩을 욕보여 죽이자 그 레위인은 그 시신을 갖고 와서 열 두 덩이로 나누어 사방(12지파)으로 보낸즉 온 지파가 다 깜짝 놀랐습니다.

2. 그러나 벤야민 지파를 제외한 전 지파가 일제히 미스바(수 18:27, 호 5:1)에 모여 이 사실로 벤야민 지파를 문책한 즉 벤야민 지파가 이에 맞서자 연합 지파에서 40만명의 군사가 싸우고저 할 때 벤야민 지파의 군사가 먼저 연합군 22000명을 죽였고, 또 다음 싸움에서 18000명을 죽인즉 연합군 측이 크게 당황하여 금식하고 제사를 드린 후 하나님으로부터 승리의 약속을 받고 전쟁하여 25100명을 죽인즉 겨우 600명을 남기고 벤야민 측이 패하였습니다. 이때에 이스라엘 여러 부족들이 벤야민 지파 남자에게 딸을 주지 않기로 하나님 앞에 맹세한즉(삿 21:18) 이로 인하여 벤야민족이 멸종될 것을 슬프게 여겨 하나님께 화목제를 드리고(삿 21:1~7), 다시 의논하여 용사 12000명으로 하여금 길르앗(요단강 동편 땅으로 당시에 이방족이 거하였음)에서 처녀 400명을 취하여 벤야민의 남자들과 혼인하게 하였으나 그래도 부족하여 “실로에 가서 무도하러 나오는 여인들을 탈취하여 아내를 삼으라” 하였으니 이는 맹세한 자들이 여인을 줄 수 없는 것을 변측적으로 뺏어가게 한 것입니다(삿 21:18~23). 한 사람의 잘못과 몇 사람의 범죄가 큰 전쟁으로 비화된 것입니다. 미국의 테러 사건을 연상하게 됩니다.

 

제 41 과 룻기의 사람들 (룻 1:1~5) 목록으로


룻기에는 룻과 관련된 이름 10명이 나타나 있습니다(사사시대임).

1. “엘리멜렉”입니다. 엘리멜렉은 룻의 시아버지로 유다 베들레헴 사람인데 흉년으로 인하여 가족들을 데리고 이방땅 모압에 가서 살다가 그 아내 “나오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2. “나오미”입니다. 나오미는 룻의 시모로 남편과 두 아들이 죽었을 때 크게 깨닫고 자기를 따르는 둘째 자부 “룻”을 데리고 고향에 돌아와 어렵게 살면서 자부 “룻”을 근족 “보아스”와 혼인케 하여 행복한 생활을 하게 하였고, 그 사이에서 “오벳”을 낳으니 오벳은 다윗의 조부입니다.

3. 말론은 룻의 시숙(남편의 형)입니다. 그의 아내는 “오르바”인데 모압여인이었고, 일찍 세상을 떠나니 그의 처 “오르바”는 친정으로 갔습니다.

4. “기룐”입니다. 룻의 남편이며 나오미의 둘재 아들인데 역시 형처럼 일찍 세상을 떠나므로 그 집은 시모와 두 며느리만 남게 되었습니다.

5. “오르바”입니다. 앞에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나오미의 큰 자부이고, 룻과는 동서 지간입니다. 과부되자 시모의 권고를 받고 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6. “룻”입니다. 기룐의 처요, 나오미의 둘째 자부로 역시 모압여인인데 과부된 후 시모의 “친정으로 가서 편안히 살라”는 강한 권고를 뿌리치고, 홀로된 시모를 따라 유대땅에 와서 효도하다가 “보아스” 남편을 만나 행복을 찾게 되었고, 그 사이에서 “오벳”을 낳으므로 이새와 다윗 등 자손을 보았습니다.

7. “보아스”는 엘리멜렉 가문의 근족으로 나오미가 룻을 그의 아내되도록 중매하여 가정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8. “오벳”입니다. 보아스와 룻 사이의 아들로 다윗의 조부이고,

9.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이며 룻의 손자입니다.

10. 따라서 “다윗”은 룻의 증손자가 되고, 예수님의 계열상의 조상이 됩니다.

 

제 42 과 엘가나, 한나, 브닌나 (삼상 1:1~3) 목록으로


1. “엘가나”는 에브라임 지파 사람으로 사무엘의 아버지입니다. 그는 두 아내를 취하였는데 첫째 아내는 “한나”이고, 둘째 아내는 “브닌나”입니다. 브닌나는 자녀를 생산하였으나 한나는 무자하였는데 엘가나는 한나를 “브닌나”보다 더 사랑하여 제사를 드릴 때마다 한나에게 갑절의 제물을 주고, 한나가 무자하여 괴로울 때마다 크게 위로하였습니다.

2. 한나는 엘가나의 첫째 부인인데 그가 자녀를 생산하지 못한 중에 둘째 부인 “브닌나”가 자녀를 생산한 상태에서 한나를 격동케 하자 괴로움을 느끼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서원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서원의 내용은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면 그를 성별되게 키워서 하나님께 헌신하도록 드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나가 성소에 나가 기도할 때에 제사장은 엘리와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집무하고 있었습니다(삼상 1:3, 9). 한나는 기도할 때 자기의 심정을 엘리 제사장에게 알렸고, 축복을 받은 후 하나님의 응답으로 아들을 낳았고, 그 이름을 “사무엘”이라 하였습니다. 사무엘을 낳은 후 젖뗀 후에 하나님께 서원한대로 사무엘을 제사장이 시무하는 성소에 보내어 제사장을 섬기게 하였고, 아울러 감사제를 드렸으며 봉사도 하였습니다(삼상 2:18~19). 엘리 제사장이 그 부부의 성심과 봉사를 인하여 축복한즉 하나님이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낳도록 은혜를 주시므로 한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린 대신 더 많은 자녀를 받게 된 것입니다.

3. 브닌나는 엘가나의 둘째 아내입니다. 그는 첫째 동서인 한나가 자녀 생산을 못할 때 자신이 자녀를 생산한 사실을 근거로 자녀 없는 한나를 슬프게 하였습니다. 그 대가로 남편의 사랑을 한나만큼 받지 못하였습니다. 신분의 고하를 무시하거나 교만을 나타낸 그 행위는 남편의 사랑을 스스로 거절한 일이 된 것입니다.

 

제 43 과 엘리, 홉니, 비스하스 (삼상 2:12~17) 목록으로


1. “엘리”는 사무엘이 출생할 당시에 나이 많은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한나”가 아들을 낳기 위하여 기도할 때 축복하였고, 그 축복과 기도가 응답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제사장직을 세습하는 두 아들, 홉니와 비스하스가 있었는데 이들은 불량자로서 제물을 갈취할 뿐 아니라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음행하는 악을 범하여 아비에게 근심을 주고 영광을 가리웠으며(삼상 2:16, 22)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여 “그 가족들이 일시에 죽을 것”을 예언하였는데(삼상 2:29~36) 그 예언대로 블레셋 군대의 침략을 받아 법궤를 뺏기고 두 아들도 죽임을 당하였으며(삼상 4:11, 22) 엘리 제사장이 이 소식을 듣자 98세에(사사생활 40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사장과 제사 제도의 부패가 나라를 망친 결과가 된 것입니다.

2. 홉니와 비스하스는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입니다. 그들은 제사장의 아들이므로 성소에서 아버지를 도우며 제사장직을 경건하게 수련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좋은 제물만 갈취하여 먹는가 하면 성소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음행하는 죄까지 범하므로 대적의 침략을 받게 되었고, 그의 아버지까지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3. 그들이 성소에서 언약궤(법궤)를 지키고 있을 때 블레셋 군인들이 몰려와서 그들을 죽이고 언약궤를 뺏어간 후 그것을 자기들이 섬기는 다곤 신당에 두었는데 다곤 신상의 형체가 파손되어 7개월 만에 다시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려보낸즉 기럇여아림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엘리아살”로 하여금 법궤를 지키게 한 후 20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 무렵에 비스하스의 처가 임산하게 되어 아들을 낳았는데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뜻으로 그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하였습니다(삼상 7:1~2).

제 44 과 사무엘, 요엘, 아비야 (삼상 7:3~6) 목록으로


1. “사무엘”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 구함”이라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 “한나”가 하나님께 구하여 받은 것을 기념한 이름입니다.

2. 사무엘은 에브라임 지파 라마다임소빔에서 엘가나와 한나 사이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제사장을 수종들며 성소에서 자랐습니다.

3. 사무엘이 태어난 시기는 엘리제사장이 마지막 사사로 일할 당시였고, 엘리 제사장과 그의 두 아들이 함께 죽은 후 그 뒤를 이어 사사 역할을 하다가(삼상 7:6) 몸이 늙자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야에게 사사직을 맡겼으나(삼상 8:1~3) 그들이 부정한 정치를 하므로 백성들이 이방인들처럼 “왕을 세워달라”하여 사울왕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4. 엘리 제사장 가족이 멸망되고, 뺏긴 법궤가 아비나답 집에 20년간 머물렀을 때 사무엘 선지자가 백성들을 “미스바”에 모으고 회개 운동을 일으킨 후 블레셋과 싸웠을 때 하나님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큰 우박을 내려 패하게 하시고, 평화를 누리게 하셨습니다(삼상 7:14). 그 후에 사무엘의 아들들이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므로(삼상 8:1~3) 백성들이 왕을 원한즉 하나님이 사무엘로 하여금 “사울”을 왕삼게 하셨으나 사울왕이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겸비하지 않으므로 다시 그가 버림당할 것을 예언하였고, 다시 왕의 후계자 될 사람을 하나님의 지시로 찾아가서 기름을 부으니 그가 곧 이새의 아들 다윗입니다. 사무엘은 늙었을 때에 자기의 다스림이 정당하였음을 백성들에게 말한 후 백성들로부터 인정을 받았고(삼상 12:1~4),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 쉬는 죄를 짓지 않겠다”(삼상 12:23)하였으며 의의 도로 행할 것을 권면한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삼상 25:1).

5. 요엘과 아비야는 사무엘의 아들입니다. 사무엘은 두 아들에게 사사직을 맡겼는데 그들은 사무엘처럼 공의롭지 못하였습니다(삼상 8:1~5). 자식이 그 아버지의 성실함을 닮거나 본받지 않았습니다.

 

제 45 과 사울과 주변 인물들 (삼상 9:25~10:1) 목록으로


1. 사울은 사사시대가 끝난 후 왕정 시대에 이르러 초대왕이 된 사람입니다. 사울이 왕되는 일과 그 다음 다윗이 왕되는 일에 사무엘 선지자의 기름 붓는 역할(왕 될 자를 미리 예언하는 의식)이 있었고, 사무엘은 사울왕의 통치 시기에 사울왕의 잘못을 책망 또는 버림당할 것을 예언한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2. 사울왕의 주변 인물들을 열거한다면 그의 조부는 베냐민 지파 “아비엘”이고, 아버지는 “기스”이며 아들은 요나단과 리스위(아비나답, 삼상 31:2)와 말기수아와 “이스보셋”(삼하 2:8~10)이며 딸은 메랍과 미갈입니다(삼상 14:49~50). 사울왕의 초대 군대 장관은 그의 숙부 “넬”의 아들 “아브넬”이고, “아브넬”의 아비는 “넬”인데 이는 사울의 삼촌입니다(삼상 14:51).

3. 여기의 한 사람을 더 첨부한다면 암몬왕 “나하스”를 기억하여야 합니다. 암몬왕 “나하스”는 사울이 기름 부음을 받고 왕이 되기 전에 백성들이 사울에 대한 인망을 갖지 않았으나 그때에 “나하스”의 침략이 있었고, 사울은 하나님의 큰 감동을 받아 6만의 군사를 모집하여 큰 전공을 세우므로 지지받는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삼상 11:6~13, 12:13~14).

4. 그리고 사울이 통치할 당시에 다윗이 등장하고 블레셋의 침략에서 나라를 구할 때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죽이고 이긴즉 그때부터 요나단과 다윗은 친구가 되었고, 사울왕은 둘째 딸 “미갈”을 다윗에게 주어 사위를 삼고도 백성들의 인기가 다윗에게로 기우는 것을 시기하고 우려하여 여러 차례 다윗을 죽이려 하였지만 죽이지 못하였고, 결국은 자신과 아들 요나단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전사하므로(삼상 31:1~6) 그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그 다음에 다윗이 왕이 된 것입니다.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 한 일과 다윗이 여러 곳으로 피하다가 아히멜렉 제사장이 있는 곳에 가서 은신한 일과 사울의 신하요, 목자 장인 “도엑”이 이를 고발하여 사울이 제사장 85인을 죽인 사실도 있었습니다(삼상 21:1, 22:18~19).

 

제 46과 다윗과 주변 인물들 (삼상 16:6~13) 목록으로


1. 사울왕의 후계자를 지정할 때 사무엘이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 갔고, 그 곳 장로들이 연석한 자리에서 “하나님께 제사하러 왔다”하고 다윗의 아버지 이새로 하여금 모든 아들들을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습니다. 다윗의 아버지는 “이새”로써 야곱, 유다, 베레스, 헤스론, 람, 아미나답, 나손, 살몬, 보아스, 오벳, 이새로 이어지므로 이새는 야곱의 10대손이고, 아담의 32대손입니다. 이새에게는 여덟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는 엘리압, 둘째는 아비나답이고, 셋째는 삼마라 하였고(삼상 17:12~14), 그 중간의 아들들의 이름은 대상 2:13~15에 기록되었으며(다윗을 일곱째 아들로) 여덟째 막내 아들이 다윗이었습니다(삼상 16:6~13). 사무엘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사울왕의 후계자로 지목하여 놓은 것입니다.

2. 그 당시에 블레셋 장수로 골리앗이 있었으니 그의 키가 6규빗 한 뼘이요, 놋 투구, 어린갑을 입고, 놋 단창을 메었으며 창날은 철 600세겔이라고 하였습니다. 대단한 장수이지만 다윗은 물맷돌 하나로 그를 죽이고, 대적을 제압하여 승리를 하였습니다. 다윗은 이 일로 왕이나 백성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삼상 17:45~49).

3.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당시에 사울왕의 군장은 “아브넬”이었습니다(삼상 17:55). 아브넬은 사울왕의 삼촌 “넬”의 아들입니다. 그가 골리앗을 죽인 다윗을 왕 앞에 인도하였고, 아브넬이 왕을 잘못 호위하는 것을 다윗이 책망했으며(삼상 26:12~16) 사울과 요나단이 죽자 그는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 세워 다윗과 싸우기도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다윗의 군대 장관은 “요압”이었는데 요압이 자기의 동생 아사헬을 아브넬에게 가까이 보냈다가 죽임을 당하였고, 아브넬은 왕궁에 침입하여 사울왕의 첩을 간통하기까지 하였습니다(삼하 3:6~34).

4. 사울의 딸 중에는 메랍과 미갈이 있었습니다. 사울이 먼저 전쟁에 승리한 다윗에게 “메랍”을 아내로 주려 하였으나 다윗이 사양한즉 그를 므홀랏 사람 아드리엘에게 주고 그 다음에 미갈이 다윗을 좋아하므로 아내로 삼게 되었습니다(삼상 18:17~29).

 

제 47 과 사울이 죽은 후의 인물들 (삼하 2:8~11) 목록으로


1. 사울왕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죽자 유다 사람들은 자기 지파의 장수인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여 헤브론에서 7년 반 동안 왕노릇하게 하였고, 또 그 사이에 사울왕의 군장 “아브넬”은 사울왕의 넷째 아들 “이스보셋”을 “마하나임”에서 왕으로 추대하여 양측이 서로 대립하게 되었습니다(삼하 2:1~4, 11). 이때에 이스보셋의 군장은 아브넬 외에 림몬의 아들 바아나와 레갑도 있었습니다(삼하 4:2, 5).

2. “이스보셋”의 군장 아브넬이 죽은 사울왕의 첩 “리스바”와 통간하였는데 이 사실을 “이스보셋”이 책망하자 “왕을 세워 준 공로를 모르고 배신하였다”는 이유로 “이스보셋”의 머리를 가지고 다윗에게 귀순하므로(삼하 3:7~21) 사울왕조의 뿌리를 뽑았으나 “아브넬”은 다윗의 군장 요압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아브넬이 요압의 동생 아사헬을 죽인 복수였습니다(삼하 3:27~30).

3. 요나단의 아들로는 절둑발이 아들 “므비보셋”이 있었는데 왕실이 몰락되자 그의 유모가 5세된 “므비보셋”을 안고 도망하다가 떨어뜨려 불구자가 되었고, 사울왕가의 유일 생존자였는데 다윗왕이 친구 요나단의 아들이므로 그를 선대하였습니다.

4. 다윗은 여러 처첩에게서 낳은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1) “아히노암”에게서 장자 “암논”을

2)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서 차자 “길르압”을

3) 그술왕 달매의 딸 “마아가”에게서 “압살롬”을

4) “학깃”에게서 “아도니야”를

5) “아비달”에게서 “스바댜”를

6) “에글라”에게서 “이드르암”을(삼하 3:2~5)

7)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에게서 “솔로몬(여디디야)”을 각각 낳았습니다(삼하 12:24~25).

5. 다윗이 헤브론에서 7년 반을 도읍하고, 여브스족(예루살렘)을 쳐부신 후 그 곳을 다윗성으로 정하여 도읍할 때 두로왕 “히람”이 백향목과 목수, 석수를 보내어 왕궁 건축에 협력하였습니다(삼하 5:11). 다윗의 자녀는 앞에 소개한 자 외에도 또 있습니다(삼하 5:13~16).

6. 사울의 사위인 메랍의 남편이 바실래의 아들 “아드리엘”인 것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삼상 18:19, 삼하 21:8).

 

제 48 과 다윗왕 때의 사람들 (삼하 8:15~18) 목록으로


1. 다윗이 다윗성에 도읍한 후 아비나답의 집에 있던 법궤를 옮겨오다가 아비나답의 두 아들 웃사와 아효 중 웃사가 법궤에 손을 댓다가 하나님의 진노로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법궤를 가드 사람 “오벳에돔”의 집에 3개월간 두었는데 그 집이 복을 받았고, 다시 다윗성으로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삼하 6:1~23).

2. 다윗왕 때에 “나단”이란 선지자가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도 하였고, 또 다윗이 범죄하였을 때 책망을 하기도 하였습니다(삼하 7:1~29, 12:1~15).

3. 다윗왕은 블레셋을 강복시켰고, 르홉의 아들이요, 소바의 왕인 “하닷에셀”과 싸워 이긴즉 하맛왕 “도이”가 그의 아들 “요람”을 다윗왕에게 보내어 문안하였으니 이는 하맛왕을 괴롭히는 하닷에셀을 제하였기 때문입니다(삼하 8:1~14).

4. 다윗은 공과 의로 정치하는 중 스루야의 아들 “요압”으로 군장을 삼았으니 “스루야”는 “아비가일”과 함께 다윗의 자매입니다(대상 2:16~17). 그리고 “스루야”는 세 아들이 있었으니 곧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입니다. 아사헬은 이스보셋의 군사와 싸우다가 그의 군장 아브넬에게 피살되었습니다(삼하 2:18, 3:27). 그리고 “아비가일”의 남편은 “예델”이며 그의 아들은 “아마샤”입니다(대상 2:17).

5. 또 다른 “아비가일”은 “나발”의 아내였으나 나발이 죽자 다윗의 처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삼상 25:14, 39~42).

6. 성경에서 다윗이 이새의 여덟째 아들이란 말씀이 삼상 16:10~11, 17:12~14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대상 2:15에서는 “일곱째로 다윗을 낳았다” 하셨으니 연구의 과제가 되는 것입니다.

7. 또 다윗왕 때에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史官)이었고, 아히둡의 아들 “사독”과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은 제사장직에 있었으며 “스라야”는 서기관이었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지방장관이었습니다. 어떤 성경에는 “아히멜렉”과 “아비아달”이 바뀌어 기록된 경우도 있으니(삼하 8:17, 46, 삼상 22:20) 그런 것도 지적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제 49 과 므비보셋, 밧세바 (삼하 9:1~8) 목록으로


1. “므비보셋”은 요나단의 아들로 그의 본명은 “므립바알”인데(대상 8:34) 사울왕가가 몰락되었을 때 그 유모의 실수로 두 다리를 절게 되었고(삼하 4:4), 다윗왕이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자기의 상에서 함께 먹는 특권을 주고, 사울의 남은 기업과 종들도 주었습니다.“므비보셋”에게는 젊은 아들 “미가”가 있었고(삼하 9:12), 후손도 많이 퍼지게 되었습니다(대상 8:34~40).

2. “시바”란 사람이 또 있었으니 이는 사울의 사환으로 다윗왕이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의 종이 되게 하였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죽이려 한 사울왕의 아들이지만 다윗과는 친구요, 또 요나단이 다윗을 보호하려고 애를 쓴 공로를 인정하여 다윗이 그 의리를 지킨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왕가에 대하여도 원수 갚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암미엘의 아들 “마길”이 있었으니 이는 “므비보셋”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3. 다윗이 모압과 소바를 정복하였을 당시에 암몬왕은 “나하스”였는데 그가 죽고 그 아들 “하눈”이 왕이 되자 다윗은 나하스왕의 죽음을 조상하기 위하여 사신을 보냈으나 암몬 방백들이 이 사신들을 정탐으로 인정하여 수염을 깍고 의복을 자르는 수모를 준 다음 전쟁을 걸어왔다가 다윗의 군대 장군 요압과 아비새의 군대에게 패하였는데 그 패한 군사들이 과거에 패전한 소바왕 하닷에셀과(삼하 7:3, 12) 연합하여 또 싸웠지만 역시 패하자 다윗에게 화친을 청하고 섬기므로 안정된 시기를 맞이하였습니다.

4. 그 다음에 나타난 인물이 “밧세바와 우리아”입니다. 밧세바는 우리아의 아내로 아름다운 여인이었고, 우리아는 다윗을 위하여 충성하는 군인이었는데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하여 잉태된 사실을 알자 우리아를 휴가오게 하여 아내와 동침케 하려 하였으나 우리아가 충성심으로 거절하자 결국 치열한 전쟁에 앞세워 죽게 하였습니다. 우리아는 “헷” 사람이라 하였고, 밧세바는 엘리암의 딸로써 다윗의 일곱째 아내가 되어 솔로몬을 낳았습니다(삼하 12:24~25).

 

제 50 과 압살롬, 암논 (삼하 13:1~4) 목록으로


암살롬은 다윗왕의 셋째 부인 “마아가”에게서 낳은 아들이고, 또 그의 누이 “다말”이 있었습니다. 암논은 다윗왕의 첫째 부인 “아히노암”에게서 낳은 다윗의 장자입니다. 이 암논에게는 친구 요나답이 있었는데 “요나답”은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므로 서로 사촌간이 됩니다. 이 네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하여 그들과의 사건을 살펴보면(삼하 13:~14:) 암논이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취하지 못하여 고민하는 것을 요나답이 알고, 그 방책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방책이란 “병든체 하면서 부왕께 청하여 다말로 하여금 자기를 수종들도록 허락을 받은 후 그 기회를 이용하라”고 한 것입니다. 결국 그 방법대로 행하여 다말에게 청혼한즉 다말은 왕의 허락을 받아 혼인을 하자고 하였으나 암논이 그 절차를 못 참고 다말을 강압적으로 취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안 압살롬이 암논을 미워하며 보복할 기회를 찾다가 2년 후 자기의 양털 깎는 경사스러운 날에 형제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고 신복들로 하여금 암논을 죽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은 도망하여 그술왕 암미훌의 아들 “달매”에게 의존하여 피신을 하였는데 3년 후에 다윗의 군대 장관 요압이 다윗왕과 압살롬간에 화해를 이루기 위하여 방책을 써서 상복 입은 한 여인으로 하여금 다윗왕의 뜻을 묻게 되었습니다. 그 방책은 “두 형제의 싸움에서 하나가 죽었는데 동리 사람들이 그 남은 살인자 아들마저 죽이겠다 하니 어찌 두 아들을 다 잃을 수 있습니까?”한즉 다윗이 “그럴 수 없다”고 대답을 하자 요압이 압살롬을 오게 하였으나 왕이 2년 동안 그를 보려 하지 않으므로 부왕에 대한 반감으로 역모를 하게 되었고, 그의 역모가 승리하지 못하였지만 형제간의 살인과 이 역모의 사건은 다윗왕이 우리아를 죽인 범죄 이후에 일어난 불상사임을 유의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압살롬은 아들 셋과 딸 “다말”을 낳았고, 다윗왕과의 역모 전쟁에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삼하 18:14). 다윗은 이 사실을 크게 슬퍼하였습니다(삼하 18:33).

 

제 51 과 아히도벨, 후새 (삼하 16:15~19) 목록으로


“아히도벨”은 다윗의 모사(참모 또는 정책 위원)이고, 후새는 다윗의 친구입니다(삼하 15:12, 16:16). 다윗왕의 아들 압살롬이 형 암논을 죽이고, 그술왕에게로 도망하였다가 3년 후에 다윗의 군대 장관 요압의 중재로 돌아왔으나 왕이 보려하지 않다가 2년 후에 상면하였는데 그때부터 압살롬은 역심을 품고 헤브론으로 가서 4년 동안 자기 세력을 규합하여 다윗의 왕궁을 침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600명의 군사를 데리고 도망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는데 이때에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이 언약궤를 가지고 피난 행열에 동행하려 하였으나 다윗왕이 이를 만류하였습니다. 그러자 다윗의 모사 “아히도벨”은 다윗에게 전세가 불리할 줄 알고 압살롬이 왕될 것을 예견하여 지조를 굽히고, 압살롬에게 귀순하였는데 다윗의 친구 후새는 끝까지 다윗을 따르려 하였으나 다윗이 만류하여 성안에서 유익하게 행할 것을 권면하였고,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귀순한 소식을 듣고 “그의 모략을 어리석게 해달라”고 기도한 후 후새로 하여금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라”고 부탁하였습니다(삼하 15:31~34). 그 당시 예루살렘에는 두 제사장의 아들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요, 또 한 사람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이었습니다. 다윗은 이 두 사람에게 정보를 전해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그 후에 “후새”도 압살롬에게 위장 귀순을 하였는데 압살롬이 “아히도벨”과 “후새” 두 사람을 불러 작전 계획을 물었을 때 “아히도벨”은 다윗의 피곤한 틈을 타서 속히 진격할 것을 권하였고, “후새”는 다윗이 지혜로운 장수인 만큼 벌써 요새를 구축하였을 것이므로 군비를 증강하여 계획적으로 진격할 것을 권하므로 다윗에게 도망할 시간의 여유를 주려고 한 것입니다. 이때에 압살롬은 자기가 패하는 후새의 모략을 택하므로 다윗을 죽지 않게 하였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로 된 것입니다(삼하 17:14). 아히도벨은 자기의 모략이 제외되자 자살하였습니다(삼하 17:24).

 

제 52 과 환란 중의 인물들 (삼하 17:24~29) 목록으로


1. “환란 중의 인물들”이란 압살롬이 다윗을 반항하여 싸우고 다윗이 왕궁을 떠나 피난 중에 있을 당시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다윗이 왕궁을 떠날 때 “잇대”와 그의 따르는 무리들이 다윗을 돕기 위하여 따라나섰습니다. 다윗은 그를 만류하였으나(삼하 15:20~21) 그가 충성심을 갖고 따라와서 다윗을 도우니 다윗이 압살롬과 대항하여 싸울 때 군대 각 1/3씩을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맡겨 싸우게 하므로 반역군들을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삼하 18:1~2, 6~14).

2. 다윗이 초라한 모습으로 왕궁을 떠나 피난갈 때 “시므이”가 돌을 던지며 다윗을 비난한 일이 있었습니다(삼하 16:5~8). 이 “시므이”는 사울의 집 족속 게라의 아들로 다윗이 사울의 왕위를 찬탈한 것으로 오해하고 비난을 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본 다윗의 군장 아비새가 죽이려 한즉 다윗이 말하기를 “그의 저주는 하나님이 시켜서 하는 것이다 아들도 아버지를 죽이려 하는데 하물며 베냐민 사람이겠느냐 그의 저주 까닭으로 하나님이 선으로 내게 갚으시리라”(삼하 16:9~12)하였으니 이 말에는 다윗의 반성하는 의미와 하나님의 섭리를 믿음과 넓은 용서의 아량이 있음을 교훈받게 하신 것입니다. 시므이는 끝내 죽이지 않았습니다(삼하 19:21~23).

3. 압살롬은 자기의 군장을 “아마사”로 정하였으니 이 아마사는 다윗의 두 자매 스루야와 아비갈 중 아비갈의 아들입니다(25절). 그러니까 압살롬에게는 고모의 아들이고, 다윗에게는 조카입니다. 결국 근친간의 싸움이 된 것입니다.

4. 다윗이 피난갈 때 그의 군사들에게 양식을 제공한 봉사자들이 있었으니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길르앗 사람 “바실래”가 있었습니다. 소비는 암몬왕 나하스의 후손이고, 또 나하스의 딸 아비갈은 아마사의 어미이며 “마길”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감추었던 사울의 친족이고, “바실래”는 늙은 거부로 군비를 보조하고 그 공훈을 아들 김함이 받게 하였습니다(삼하 9:4, 10:1~2, 17:25, 19:31~39). 정변이 일어났을 때는 명분과 세력을 판단하여 줄을 잘 서야 할 것을 교훈받을 수 있습니다.

 

제 53 과 세바, 리스바 (삼하 20:1~3, 21:7~9) 목록으로


1.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을 진압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당시에 반란을 일으킨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벤야민 지파 비그리의 아들 “세바”였습니다. 다윗이 왕권을 잡았지만 벤야민 지파의 왕권(사울)이 유다 지파(다윗)로 돌아간 일에 대하여 벤야민 지파에서 불만을 품은 자가 있었음이 사실이요, 또 다윗이 왕위에 오를 때도 12지파 중 유다 지파가 앞장서므로 다른 지파들이 소외감을 갖게 되므로 화합에 문제가 있었습니다(삼하 19:40~43). 그런 중에 압살롬의 난으로 왕권이 흔들린 틈을 타서 세바가 자기의 무리들을 규합하여 반역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평정군에 밀려 아벨성읍에 은신하였으나 그 성읍의 한 여인의 중재로 싸움없이 세바의 머리를 내어주므로 죽게 되었습니다(삼하 20:14~22).

2. “리스바”란 여인은 아야의 딸로 사울왕의 첩이 되어 두 아들을 낳았으니 곧 알모니와 므비보셋(요나단의 아들도 므비보셋임)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사울왕의 딸 메랍(동생 미갈은 다윗의 처임)은 므홀랏 사람 바실래(길르앗 사람 바실래도 있음, 이 사람은 80된 거부로 다윗이 피난갈 때 공궤한 공로로 그 아들 김함에게 벼슬을 받게 하였음, 삼하 19:31~39) 사이에서 아들 “아드리엘”을 낳았고, 또 그에게서 손자 다섯을 보았습니다. 여기에서 사울의 두 아들 알모니와 므비보셋과 외증손자 5명이 사울왕의 죄로 다 죽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 시대에 3년 기근 든 것이 여호수아가 죽이지 않기로 맹세한 기브온족을(수 9:3~21) 사울왕이 죽인 까닭으로(삼상 22:18~19) 임하였기 때문에(삼하 21:1~6) 사울의 후손을 죽여 하나님의 노를 풀어드리려 한 것인데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다윗이 살려주기로 맹세하였으므로 그 남은 자손 7명을 죽이게 된 것입니다. “리스바”가 두 아들의 죽음을 인하여 슬퍼한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이 그를 위로하는 뜻으로 사울과 요나단 등 죽은 자들에 대한 장례를 치르게 하였습니다. 맹세를 위반한 죄는 하나님이 후시대에라도 벌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시 15:4).

 

제 54 과 블레셋과 다윗의 장수들 (삼하 21:15~22) 목록으로


1. 다윗이 세바의 난을 평정한 후에도 블레셋과의 전쟁은 계속 되었습니다. “블레셋”은 현재 욥바와 가사 지역인데 다윗 왕때까지 끈질긴 대적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함의 둘째 아들 “미스라임”의 7 아들 중 여섯째 “가슬루힘”과 말째인 “갑도림”의 후손이 블레셋족이라고 합니다(창 10:6~14, 암 9:7). 이들이 가나안족의 대표족이었는데 이 블레셋이란 발음이 Philistia로 또 현재 “팔레스틴”으로 전승되어 이방족의 대표가 된 것입니다.

2. 사울 왕때에는 그 족속의 장수로 “골리앗”이 있었는데 이를 다윗이 물맷돌로 죽였지요(삼상 17:4~11, 45~49). 그런데 다윗 왕때에 또 네 명의 장수가 있었으니 ①“이스비브놉”으로 300세겔의 놋창을 들고 나온 장대한 자였으나 다윗의 군장 “아비새”가 그를 죽였고, ② “삽”이란 장대한 자인데 후사 사람 “십브개”가 그를 죽였으며 ③ 골리앗(다윗이 죽인 장수)의 동생 “라흐미”가 있었는데 그는 베틀채 같은 창을 들고 나온 자였으나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이 그를 죽였고, ④ 키가 크고 매손가락과 발가락이 여섯씩 붙은 장대한 자인데 이는 다윗의 형 “삼마”의 아들 요나단(사울의 아들도 요나단이 있음)이 죽였습니다. 그러니까 블레셋의 장수는 골리앗 외에 이스비브놉, 삽, 라흐미(골리앗의 동생), 또 손발가락 여섯씩 있는 자가 있었고, 이들을 죽인 다윗의 장수는 아비새와 십브개와 엘하난과 요나단이었습니다.

2. 그 외에도 다윗을 돕는 용사는 많았습니다. 군장의 두목으로 “요셉 밧세벳”과(“아디노”라고도 함) 도대의 아들 “엘르아살”과 아게의 아들 “삼마”가 있었고, 또 30인의 장수와 37인의 장수도 있었습니다(삼하 23:8~9).

3. “아라우나”는 여부스(예루살렘)에 타작 마당을 갖고 있었는데 다윗이 “갓” 선지자의 지시로 그 곳에서 제사를 드리려고 할 때 그 장소를 제공하였으나 다윗은 “값없는 제사를 드리지 않겠다”하고 은 50을 그에게 준 후 그 곳에서 제사를 드리므로 재앙을 그치게 한 사실이 있었습니다(삼하 24장).

 

제 55 과 다윗 말기의 사람들 (왕상 1:1~11) 목록으로


다윗 말기의 사람들이란 다윗왕이 늙고 세상 떠날 당시를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설명드리는 인물들은 “아비삭”을 제하고는 다 앞에서 거론하였습니다.

1. “아비삭”은 수넴의 동녀(童女)인데 다윗왕이 늙어서 취한 아내이지만 동침하지는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의 아들 중 학깃이 낳은 넷째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 된 것을 선포하였으나 용서를 받았지만 이 여인을 자기의 아내로 달라는 망발을 했다가 솔로몬왕에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왕상 2:15~25).

2. 다윗왕이 세상 떠나기 직전에 아들 중 솔로몬으로 왕 세울 것을 그의 어미 밧세바에게 약속한 일이 있었는데(왕상 1:13) 아도니야는 그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알 수 없으나 부왕의 군대 장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여 솔로몬을 제외한 형제들을 자기 집에 모으고 자기를 옹위하는 세력들과 함께 잔치를 하면서 스스로 왕된 것을 선포하였습니다(왕상 1:7, 25). 그러나 그 자리에 제사장 사독과 나단 선지자와 장군 브나야는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아도니야의 측근들만 반역을 한 것입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솔로몬의 어미 밧세바(본래 다윗의 신하 우리아의 처인데 우리아를 전선에 보내어 죽이고 자기의 처를 삼았음. 삼하 12:10)로부터 듣고 제사장 사독과 나단 선지자와 브나야 장군을 불러 솔로몬의 대관식을 이행하게 하였습니다(왕상 1:38~39).

3. 아도니야는 반역죄를 짓고 죽기를 각오하였으나 솔로몬이 “선한 일을 하라”고 용서하였지만 서모를 처로 달라는 바람에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왕이 되어 자기를 반역한 아비아달 제사장을 파면하고 사독에게 제사장 전권을 주었으며 반역에 가담한 요압도 과거의 잘못을 깨닫게 하고(삼상 17:57, 26:12~16, 삼하 3:6~34) 죽였습니다. 그리고 요압 대신 “브나야”를 군대 장관으로 세웠습니다(삼하 23:22).

4. 다윗이 솔로몬에게 권력자를 경계할 것과 의리를 지킬 것과 공의의 재판할 것을 권면하고 죽으니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으로 7년,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 33년을 통치한 것입니다.

 

제 56 과 솔로몬 (왕상 3:1~3) 목록으로


1. 솔로몬왕은 다윗왕의 아들 중 한 사람입니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 중심으로 왕노릇할 때(그 당시 사울왕은 길갈에서 다른 지파들을 상대로 왕노릇하였음. 삼상 11:14~15, 13:8) 암논(아히노암), 길르압(아비가일), 압살롬(마아가), 아도니야(학깃), 스바댜(아비달), 이드르암(에글라)을 낳았고,(삼하 3:2~5) 7년후 예루살렘에 와서 또 열 두 아들을 낳았는데 살렘, 삼무아, 소밥, 나단, 솔로몬(밧세바), 입할, 엘리수아, 네벡, 야비아, 엘리사마, 엘랴다, 엘리벨렛입니다. 솔로몬은 이 아들 중 다섯째입니다.

2. 솔로몬이 왕된 것은 그의 어미 밧세바의 역할도 있었겠지만 솔로몬 자신이 그만큼 지혜가 뛰어났기 때문일 것입니다(왕상 4:34). 솔로몬의 역사를 살피면 애굽왕 바로의 딸과 결혼하였고(이것은 이방 혼인이지만 개종하였을 것임), 하나님을 잘 경외하며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는 성전을 짓지 않은 때이므로 벤야민땅 기브온에 있는 산당에서 제사드렸으며 1천번제로 지혜를 구하여 받았고(왕상 3:4~15), 그 이상의 부와 영광도 전무후무할 만큼 받았습니다. 재판을 잘 하였으며(왕상 3:16~28) 이웃 나라와도 화친하였습니다(왕상 5:1~12).

3. 솔로몬왕은 자신이 왕된지 4년(출애굽한지 480년, 왕상 6:1)에 성전 건축을 시작하여 7년 만에 완공하였고, 또 13년 동안 왕궁도 지었습니다(왕상 6:37~7:1). 솔로몬은 바로의 딸 외에도 다른 이방국 여인들(모압, 암몬, 시돈, 헷)을 사랑하였고, 후비 700, 빈장 300을 두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이었으며 나중에 이방 여인들의 설득으로 우상에게 제사드리는 일까지 하였고(왕상 11:1~8), 하나님이 두 번이나 경고해주셨지만 지키지 않으므로 결국 나라의 분열을 예고하여 한 지파만 그 아들에게 주신다고 하셨습니다(왕상 11:9~13). 또 그 무렵에 반역자가 일어났으니 소바 사람 “르손”이 수리아왕이 되어 대적을 하였고,또 신복 “여러보암”이 대적자가 되었을 때 세상을 떠나니 40년 통치를 하고 그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습니다(왕상 11:23~43).

 

제 57 과 솔로몬의 대적자들 (왕상 11:14~25) 목록으로


솔로몬왕이 늙었을 때 이방 나라 여인들을 왕비로 삼고 그들의 꾀임에 빠져 우상주의(아스다롯, 밀곰, 그모스, 몰록)에 넘어간즉(왕상 11:1~8) 하나님이 두 번이나 권면하셨지만 듣지 않자 나라의 환란과 분열이 있을 것을 예고하셨고(왕상 11:9~13), 그 후부터 솔로몬왕에게 대적자가 생겼습니다.

1. 하나님이 에돔왕 “하닷”을 일으켜 솔로몬을 대적하게 하셨습니다(왕상 11:14). “하닷”은 다윗왕 때에 어린 왕으로 애굽에 망명하여 바로왕의 왕비 다브네스의 아우를 아내로 삼아 “그누밧”을 낳았고, 세월이 지난 후에 솔로몬의 대적자가 된 것입니다(왕상 11:17~22).

2. 두 번째 대적자는 “르손”인데 이 사람도 “하나님이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왕상 11:23). “르손”은 소바 사람 “엘리아다”의 아들로 다메섹에서 수리아 왕조를 건설하고, 솔로몬을 대적하였으며

3. 에브라임 지파 “느밧”의 아들 “여러보암”이 솔로몬을 대적하였으니 이것도 하나님의 섭리로 된 일입니다(왕상 11:31). 여러보암은 큰 용사이고, 솔로몬왕의 심복이었으나 당시 선지자인 “아히야”를 통하여 나라가 2:10으로 분열할 것을 알았고(왕상 11:29~30), 솔로몬을 대적하다가 애굽으로 망명하여 애굽왕 “시삭”의 보호를 받고 솔로몬이 죽을 때까지 있다가 르호보암왕 때에 돌아와서 열 지파의 왕이 되었습니다. 왕상 11:29~32에 보시면 “열 지파를 여러보암에게, 한 지파를 솔로몬에게 주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의 한 지파는 유다 지파를 뜻하고, 유다 지파에 포함되는 다른 지파는 계수에 들지 않는 레위 지파와(민 1:47~54) 유다 지파의 영토에 인접한 벤야민 지파가 있고(왕상 12:23), 또 “남은 백성”(왕상 12:22~24)이란 명목으로 유다 지파에 머문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것을 통합하여 두 지파라고 합니다.

4. 다윗왕 말기와 솔로몬왕 초기에는 “갓” 선지자가 있었고(대상 21:1~12), 솔로몬왕 말기에는 “스마야”란 선지자가 있어서 르호보암 왕국이 분열할 일에 대하여 예언하게 하셨습니다(왕상 12:21~24).

 

제 58 과 무명 선지자 (왕상 13:1~10) 목록으로


북방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여러보암”은 단과 벧엘에 자율 제단을 세웠습니다. 이것은 자국민으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자율 제단은 하나님의 계시에 따른 제단과 제사 제도가 아니고 사람 생각대로 세운 것입니다(왕상 12:25~33).

1. “여러보암”이 세운 제단에서 분향하려 할 때 하나님의 보낸 사람이 나타나서 “다윗의 집에 요시야란 사람이 나와 그 제단을 훼파할 것이라”(왕하 23:15~16)한즉 왕이 그 선지자를 잡으려고 손을 내밀 때 단이 갈라져 재가 쏟아지고, 또 그의 손이 말라 거두지 못하게 되자 그 선지자에게 사정하여 다시 손이 회복된즉 그 선지자에게 사례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이 “아무 것도 먹지 말고 왔던 길로 가지 말라”고 명하심에 따라 예물을 거절하고 다른 길로 간 사실이 있었습니다. 이 선지자는 무명으로 보내심을 받아 여러보암의 이질적 종교를 책망한 것입니다.

2. 그런데 벧엘에 늙은 무명 선지자가 또 한 사람 있었습니다. 이 선지자가 벧엘에 와서 왕에게 예언한 선지자의 사실을 알고 그를 대접하기 위하여 초청하였을 때 “먹지도 말고…다른 길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사양한다한즉 자기도 선지자인데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당신을 대접하라”는 계시를 받았으므로 그대로 실행한다고 거짓을 말한즉 그 말을 믿고 들어가 대접을 받았습니다. 잠시 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나타나 그가 하나님의 명을 어긴 죄로 죽을 것을 말씀하였는데 그 후에 사자가 나귀를 타고 가는 그 선지자를 죽이고 그의 시체와 나귀는 해하지 않았습니다. 늙은 선지자는 자기의 잘못으로 다른 선지자를 죽게 한 일에 대하여 슬퍼하면서 그 시체를 장사지내주고 자기도 죽으면 “그 곁에 묻으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3. 늙은 선지자는 벧엘에 온 다른 선지자를 대접하기 위하여 거짓 예언을 한 것이 큰 잘못이었고, 거짓 예언을 받은 한 선지자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말씀과 그 늙은 선지자의 말이 상충됨을 따지거나 살피지 않은채 행동하다가 큰 불행을 당한 것입니다. 선지자나 말씀을 선포하는 사역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하게 나타내는 일과 그대로 시행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왕상 13:11~34).

 

제 59 과 솔로몬 다음의 왕들 (왕상 14:19~31) 목록으로


솔로몬 후 시대의 인물들을 살핀다면 우선 솔로몬왕의 계승자 “르호보암”과 그 다음 계승자 “아비얌”과 르호보암왕때 나라를 분국시킨 에브라임 지파의“여러보암”왕과 그의 계승자 “나답”을 들 수 있고, 그 시대의 선지자로는 “아히야”가 있었습니다.

1. 르호보암은 암몬 여인 “나아마”에게서 낳은 솔로몬의 아들로(왕상 14:21) 솔로몬이 죽은 다음 41세에 왕이 되어 17년을 왕노릇 하였는데 원로의 뜻보다 소장파의 뜻을 따라 강경책을 쓰다가 백성들의 반감을 일으켰고, 여러보암이 그 틈을 타서 반역하여 나라를 분열시켰습니다(왕상 12:1~19).

2. 르호보암왕 5년에 애굽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침략하여 왕궁의 보물과 수비병들의 금방패까지 가져간 일이 있었습니다(왕상 14:25~28).

3. 르호보암왕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아비얌”이 왕이 되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아비살롬”의 딸 “마아가”이었고, 아비얌은 3년 왕노릇 하고 죽었습니다(왕상 15:1~8).

4. “아비얌”이 죽었을 때는 북왕국 여러보암왕 20년이었고, 아비얌의 아들 “아사”가 왕이 되어 41년을 치리하였는데 “아사”는 바른 신앙과 정치를 나타냈습니다(왕상 15:9~15).

5. 북방왕 “여러보암”은 “아비야”란 아들이 있었으나 그가 병이 들자 그 어미가 왕비인 신분을 숨겨 변장하고 “아히야” 선지자를 찾아가서 그 아이에 대하여 물었을 때 선지자는 즉시 그가 왕비임을 알았고, “여러보암의 죄로 그가 죽을 것이나 그 집안에서 그만 선한즉 그가 죽은 후에 열조의 묘실에 들어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왕상 14:1~13). 따라서 “아비야”는 죽고 여러보암이 22년 통치 후 죽은즉 다른 아들 “나답”이 왕이 되었으나 남부조간의 싸움은 계속 되었고(왕상 15:6, 16), 나답이 왕된지 3년에 잇사갈 족속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왕이 되니 에브라임 지파 여러보암의 왕조는 25년(여러보암 22년, 나답 3년)만에 끝나고, 잇사갈 지파에게로 돌아갔습니다. “바아사”가 왕될 때는 유다왕 “아사” 3년이었고, “바아사”가 북왕국을 24년을 치리하였습니다(왕상 15:33). 남왕국 “아사”(6대), 북왕국 “바아사”(3대)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제 60 과 아사왕 때의 인물들 (왕상 15:8~24) 목록으로


1. 아사왕은 유다국 6대 임금입니다. 유다 정통국은 사울, 다윗, 솔로몬, 르호보암, 아비얌, 아사왕으로 이어집니다. 아사왕은 정화운동(우상 타파)과 정직한 정치를 하므로 41년을 치리하였습니다(왕상 15:9~15). 그런데 대하 16:21에 보시면 “아사왕이 발에 병이 들었을 때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의원에게만 의지하였다가 3년 만에 그 병으로 죽었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아사가 죽은 후에 아들 “여호사밧”이 왕이 되었습니다(왕상 15:24).

2. 아사가 유다왕이 되었을 때 북왕국 바아사왕이 유다 영토에 라마성을 건축하는 침략을 하자 아사왕이 다메섹에 거한 아람왕 벤하닷(헤시온의 손자, 다브림몬의 아들)에게 보물과 함께 사신을 보내어 바아사의 침략을 막아줄 것을 요청하였고, 아람왕이 북왕국의 성을 치므로 바아사가 유다 침략을 중단한 일이 있었습니다(왕상 15:16~22).

3. 유다왕 아사 2년에 여러보암의 아들 “나답”이 북왕국의 두 번째 왕이 되었으나 아사 3년에 잇사갈 지파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왕이 되었고(왕상 15:25~30), “바아사”는 여전히 여러보암 왕조의 죄를 계승하다가 24년 만에 죽으니 그때가 유다왕 아사 26년이요, 그의 아들 “엘라”가 네 번째 왕이 되었고, 2년간 왕노릇 하였습니다(왕상 15:28, 16:8).

4. “엘라”는 왕이 되었지만 2년 만에 신복 “시므리”가 반역하여 왕이 궁내 대신 아르사의 집에서 마시고 취하였을 때 “엘라”왕과 왕족을 다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었습니다.

5. 그러나 다른 군대 장관 “오므리”가 이 사실을 알고 시므리를 대항하자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스스로 왕궁에 불을 지르고 왕된지 7일 만에(왕상 16:15) 죽었는데 그 반역을 정돈하는 사이에 북왕국의 백성들이 “오므리”파와 “기낫”의 아들 “디브니”파로 갈라졌고, 오므리파가 디브니파를 이기므로 오므리가 6대 왕이 되니 그때가 아사왕 31년이었습니다. 오므리는 “디르사”에서 6년을, “사마리아”에서 6년, 합하여 12년을 다스렸습니다(왕상 16:21~23). 사마리아 성은 이때에 건축되었는데 오므리왕이 “세멜”로부터 그 땅(사마리아산)을 사서 성을 건축하고 세멜의 이름을 따서 “사마리아”라고 하였으며 그도 악한 왕에 속하였습니다(왕상 16:24~28).

 

제 61 과 아합왕과 주변 인물들 (왕상 16:29~34) 목록으로


1. 아합왕은 북왕국 7대 왕입니다. 여러보암, 나답, 바아사, 엘라, 시므리, 오므리 다음입니다. 아합은 오므리의 아들로 유다왕 아사 38년에 왕이 되어 22년간 사마리아에서 왕노릇 하였고, 가장 악한 왕으로 알려졌습니다.

2. 아합왕의 왕비는 “이세벨”인데 그는 시돈왕 “엣바알”의 딸입니다. 왕을 설득하여 이방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게 하였고, 하나님의 선지자를 핍박한 악한 왕비입니다(왕상 18:4). 엘리야 선지자와 신앙적으로 대결하다가 패하였고, 나봇의 포도원을 잔인한 방법으로 뺏어 왕에게 바친 일이 있었으며(왕상 21:14) 나중에 정치 혁명가 에훗에게 죽임 당하였습니다.

3. 아합왕 때에 벧엘 사람 “히엘”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약 535년 전에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점령한 후 “누구든지 그 성을 재건한다면 기초를 놓을 때 장자가 죽고 문을 세울 때 다음 아들이 죽을 것이라”(수 6:26)는 예언을 마음에 두지 않은채 여리고성을 건축하다가 그 예언대로 맏아들 “아비람”과 말째 아들 “스굽”을 잃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선지자의 예언이 이렇게 무섭고 확실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삼하 21:1~9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음).

4. 아합왕 때에 선지자 엘리야가 사역한 것과 아합왕의 궁내 대신 “오바댜”가 이세벨의 선지자 학살을 피하게 하기 위하여 우상주의를 배격하는 선지자 100명을 숨겨 보호한 일이 있었고(왕상 18:1~6), 또 그는 엘리야 선지자의 소식을 왕께 고하는 일도 하였습니다(왕상 18:7~16).

5. 또 유명한 인물은 엘리야와 엘리사를 들 수 있습니다. 이 두 선지자는 다 북왕국 상대로 일하였는데 엘리야는 아합왕과 아하시야왕 때에(왕하 1:4), 엘리사는 그 다음 왕인 여호람왕 때에 사역하였습니다.

6. 아합왕 때에 아람왕 “벤하닷”이 32왕을 규합하여 북왕국 수도인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항복을 요구하였으나 1차 침략에 패한 후(왕상 20:16~21) 2차 침략하였을 때도 패하여 벤하닷이 포로되었으나 아합이 죽이지 않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어긴 것이 되어 아합이 그 목숨을 대신하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왕상 20:22~43).

 

제 62 과 엘리야, 엘리사 (왕상 19:19~21) 목록으로


1. “엘리야”는 그 이름의 뜻이 “나의 신은 여호와”란 뜻이라고 합니다. 그의 고향은 “디셉”이고, 아합왕 때에 선지자 역할을 하였는데 유명한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그의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오지 않는다” 하였고, 그릿 시냇가에서 까마귀를 통하여 떡과 고기를 먹다가 시냇물을 마신즉 그때부터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왕상 17:1~7). 사르밧 과부로부터 떡 한 조각을 대접받고 그 집에 양식이 떨어지지 않게 하였고, 또 그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린 일도 있었으며(왕상 17:8~24) 아합왕이 섬기는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대결하여 하나님이 참 신이심을 증명하고, 그들을 다 죽였으며 그의 기도로 비가 온 일이 있었고(왕상 18:20~46), 이세벨이 그를 죽이려 할 때 하나님께 죽음을 청한 일도 있었으나 하나님이 위로 하셨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왕 세울 것과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후계자 세울 것을 명받고, 그대로 시행한 후 바람을 타고 승천하였습니다(왕상 18:1~18, 왕하 2:11).

2. “엘리사”는 그 이름의 뜻이 “하나님의 구원”이라고 합니다. 엘리사의 고향은 “아벨므홀라”로 그의 아버지는 “사밧”이었으며 열 두 겨리의 소를 몰고 밭을 갈다가 엘리야의 인도로 제자가 되었고(왕상 19:19~21), 엘리야와 격리될 때 갑절의 영감을 구하였으며 자기 옷을 찢고 엘리야의 겉옷을 취하여 그것으로 요단 강물을 친즉 물이 갈라져 건넜습니다(왕하 2:6,15~16). 엘리사의 한 일들을 살피면 물을 고쳐 열매를 맺게 하였고, 대머리라고 놀리는 아이들을 저주하여 곰의 먹이가 되게 하였으며(왕하 2:19~25) 마른 땅에 개천을 파게 하고 물이 괴이게 한 일과(왕하 3:15~20) 선지자 생도의 집에 기름의 이적을 나타내어 빚을 갚게 하였고(왕상 4:1~7),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려주었으며 음식에 독을 제거한 일(왕하 4:38~44), 나만 장군의 문둥병을 고친 일(왕하 4장), 물에 떨어진 도끼를 떠오르게 한 일(왕하 5:1~7), 아람 군사의 눈을 어둡게 한 일(왕하 6:18) 등이 있었고, 마지막에 병들어 죽었으며(왕하 13:14) 어떤 시체를 그의 묘실에 던진즉 엘리사의 뼈에 닿자 회생한 일도 있었습니다(왕하 13:20~21).

3. 엘리사의 사환은 “게하시” 였습니다(왕하 5:22~27).

 

제 63 과 여호사밧 때의 인물들 (왕상 22:1~9) 목록으로


1. 여호사밧은 아사의 다음 왕으로 유다국 7대왕입니다(왕상 15:24). 여호사밧이 유다왕이 되었을 때 35세였고, 북이스라엘 왕은 아합이 4년째 왕노릇할 때였습니다(왕상 16:29, 22:41). 그 무렵에 아람과 북왕국과도 전쟁이 없었고, 또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과도 전쟁이 없었으나 아합왕이 여호사밧왕에게 아람이 점령한 “길르앗라못을 회복하기 위한 싸움을 하자”하였을 때 두 나라는 같은 종족이므로 협력하여 아람을 상대로 싸울 뜻을 갖고 승부에 대한 것을 선지자에게 묻기로 하였습니다. 먼저 아합왕이 선지자 400인쯤을 모으고 물은즉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또 한 사람의 선지자가 있었으니 그는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였습니다. 그래서 그에게도 물은즉 그의 대답은 그 반대였습니다. 그의 대답은 “거짓말하는 영이 아합을 꾀어 죽게 하도록 유혹하였는데 많은 선지자들이 거기에 유혹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지자의 말이 다르자 거짓선지자의 대표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유다 마지막 왕도 시드기야임.)가 “미가야”의 뺨을 치고 아합왕의 신하인 “아몬”과 “요하스”에게로 끌고 가서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할 때 아합왕이 변장을 하고 싸웠지만 아람군의 화살을 맞고 죽으니 그 피를 개들이 핥으므로 “미가야”의 예언이 맞았고, 엘리야 선지자의 예언도 성취되었습니다(왕상 21:19, 22:1~40).

2. 북왕국의 아합왕 다음은 “아하시야”입니다. 아합왕은 22년간 통치하였는데 왕후 이세벨과 합동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결국 아람군에게 죽임을 당하였고(이세벨은 에후에게 죽었음. 왕하 9:30~37),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8대왕이 되어 2년간 다스리다가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죽으니(왕하 1:1~4) 그의 형제 “여호람”이 다음 임금이 되었습니다(왕하 3:1). 유다와 북왕국의 왕조를 정리하면 유다왕 아사 38년에 아합이 즉위하였고, 여호사밧 17년에 아하시야가 즉위하였으며 여호사밧 18년에 여호람이 왕되어 12년을 다스렸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재위 년수는 해수이므로 실제 기간은 그 이하입니다.

 

제 64 과 벤하닷, 하사엘, 나만 (왕상 15:16~21, 왕하 5:1~6) 목록으로


1. “벤하닷”은 아람왕으로 헤시온의 손자요, 다그림몬의 아들입니다. 북왕국 “바아사”가 유다를 침략하였을 때(유다땅에 라마성을 건축, 왕래를 막음.) 이를 물리칠 힘이 없는 아사왕이 벤하닷에게 예물을 보내며 원조를 청하였을 때 벤하닷이 이를 듣고 이스라엘을 쳐서 유다의 적을 물리친 일이 있었습니다. 14년쯤 지난 후 북왕국에 아합왕이 통치할 때 벤하닷이 북이스라엘을 두 차례나 침략하였으나 아합왕은 한 선지자의 계시를 따라 승리를 확신하였고(왕상 20:13), 벤하닷을 포로하였는데 벤하닷이 사정하므로 그를 놓아주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어긴 바 되어 “아합왕이 그 생명을 대신 할 것이라”고 예언하였고(왕상 20:34~42), 아합은 그 예언대로 다음 전쟁 때에 화살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 다음 전쟁은 아합이 왕된지 22년 된 때이므로 바아사왕 때부터 연대를 계산하여도 40년쯤 되니까 “벤하닷”이란 이름을 1세, 2세로 나누어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벤하닷은 그의 신하 하사엘에게 암살당하였습니다(왕하 8:7~15).

2. 하사엘은 벤하닷의 신하로써 하나님의 예언대로 벤하닷을 죽이고 아람왕이 된 사람입니다. 엘리야가 “다메섹에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하라”는 계시를 받았으니(왕상 19:15) 하나님은 이방왕을 세우는데도 직접 역사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후 엘리사 때에 벤하닷이 병들자 신하 하사엘을 시켜서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 병이 낫겠는지를 물었습니다. 이때 선지자는 “병은 낫겠지만 정녕 죽으리라”고 하였는데 하사엘이 또 “어찌하리이까”하고 물은즉 “하나님이 네가 왕될 것이라고 하셨다”하자 즉시 이불을 씌워 왕을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된 것입니다(왕하 8:7~15). 하사엘은 그 후에 이스라엘과 싸워 요단 동편 땅을 뺏었습니다(왕하 10:32~33, 13:22).

3. “나만”은 아람 나라 벤하닷왕의 군대 장관으로 이스라엘에 사는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와서 요단 강물에 일곱 번 몸을 씻고 나음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왕은 여호람이었습니다(왕하 3:1).

 

제 65 과 아하시야, 여호람 (왕하 1:1~4) 목록으로


1. 성경에 “아하시야”란 인물이 두 사람 있는데 한 사람은 유다국 여호람왕의 아들로(어머니는 아달랴) 유다 9대왕이 있습니다. 이 사람 “아하시야”는 또 다른 두 이름을 가졌으니 곧 “여호아하스”라고도 하고(대하 21:17, 22:1), “아사랴”라고도 한 것입니다(대하 22:6). 예루살렘에서 1년간 왕노릇 하고 북왕국의 혁명자 에훗(10대왕)에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대하 22:6~9). 그런데 또 한 사람은 북왕국왕 아합의 아들이요, 아합왕을 계승한 8대왕이 “아하시야”입니다. 전자는 840년경에 1년간 왕노릇 하였고, 후자는 850년경에 2년간 왕노릇 하였으므로 정확하게 구별하셔야 합니다. 이 사람은 유다왕 여호사밧 17년에 아합왕이 죽으므로 왕이 되었으나 부덕한 일로 일찍 죽었는데 아들이 없으므로 그의 형제(아합의 다른 아들) 여호람이 다음 왕이 되었습니다(왕하 1:16~17, 3:1). 아하시야가 죽게 된 이유는 그가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었을 때 자기의 생사 문제를 하나님께 묻지 않고 이방신 “바알세붑”에게 물었다가 엘리야 선지자로부터 책망을 받고 죽을 것을 예언 받은대로 침상에서 죽고, 그의 아들 “여호람”이 다음 10대왕이 되었습니다. 믿는 성도가 자기의 미래 문제를 하나님께 부탁하지 않고 다른 대상에게 묻는다면 벌을 받을 것입니다.

2. 성경에는 “여호람”이란 인물도 두 사람이 있는데 이 이름은 “요람”이라고도 하며 두 사람 다 왕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유다 8대왕이고, 또 한 사람은 북왕국 9대왕입니다. 유다왕 여호람은 “여호사밧”왕의 아들로 왕하 8:17, 24에서는 “여호람”(여호와는 존귀하심)으로 마 1:8에서는 “요람”(여호와는 바르심)으로 기록되었고, 또 북왕국 9대왕 “여호람”은 왕하 3:1에서 “여호람”으로, 왕하 8:16, 28, 9:14에서 “요람”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또 “아하시야”의 별명 중 “여호아하스”는 북왕국 11대왕 “여호아하스”(왕하 13:1~9)와 이름이 같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면밀히 기억하여 성경 공부에 혼돈이 없도록 숙달하시기 바랍니다. 아하시야가 “여호아하스와 아사랴”의 이름을 가진 것은 유다왕에 해당합니다.

 

제 66 과 예후, 여호나답 (왕하 9:17~28) 목록으로


1. 열왕 시대에 두 사람의 “예후”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하나니의 아들 선지자로,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북왕국 3대왕 바아사를 꾸짖었습니다.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으나 여러보암의 죄를 떠나지 않으므로 그를 심판하실 것을 예언한 선지자입니다(왕상 16:1~4).

2. 또 한 사람은 님시의 손자요, 여호사밧(유다국 7대왕도 여호사밧임)의 아들로 북왕국 10대왕입니다. 그는 아합의 아들 여호람의 신하였는데 선지자의 예언대로 여호람을 죽이고 왕이 된 사람입니다. 아합왕이 유다왕 여호사밧과 합세하여 아람과 싸우다가 죽었고(왕상 22:29~38), 그의 아들 아하시야를 왕 세웠는데(왕상 22:40) 2년 못 되어 난간에서 떨어져 죽으니까 그의 형제 여호람을 왕 세웠는데(왕하 1:17) 그때도 여전히 아람과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승천하고 엘리사 시대가 이르렀을 때 엘리야의 예언대로(왕상 19:16, 왕하 9:1~10) 왕이 되는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요람왕이 아람왕 하사엘과 싸우다가 창상을 입고, 유다왕 아하시야와 함께 “이스르엘”에 있을 때 병거를 몰고 가서 두 왕과 요람왕의 어미 이세벨을 죽였고(왕하 9:18~26,30~37), 또 아합의 70 아들들이 사마리아에서 수련을 받을 때 그 선생들로 하여금 왕자들을 죽여 머리를 가져오게 하였으며(왕하 10:1~11) 또 아합 왕궁으로 문안하러 가는 유다의 왕족 42인도 죽였고(왕하 10:12~14), 또 “자신이 바알을 섬기러 간다”고 속여 무리들을 동원한 후에 자기의 정예 부대 80인을 동원하여 바알신을 섬기는 무리들을 거의 다 죽였으니 이런 일들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왕권에 대하여 응징하는 도구로 쓰임이 되었고, 하나님은 그 일로 예후의 왕위를 4대를 계승하게 하셨습니다(왕하 10:30).

3. “여호나답”은 예후가 혁명 운동을 할 때에 예후의 협력자로 영입된 사람입니다(왕하 10:15~17). 그는 “겐”족속 “레갑”의 아들로 예후를 돕는 자가 되었습니다(대상 2:55). 그의 아들은 “요나답”인데 그는 그 후손들에게 포도주와 농사와 장막 아닌 주택을 금할 것을 유언하여 바벨론 포로시까지 지키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렘 35:5~19).

 

제 67 과 두 여인 (왕상 17:8~16, 왕하 4:8~16) 목록으로


1. 북방 이스라엘의 아합왕 때에 엘리야 선지자가 사역을 하였는데 그 당시에 가뭄이 계속 되고, 온 땅에 흉년이 들어 기근이 심하였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먹을 것 없는 엘리야 선지자를 “시돈땅의 사르밧으로 가서 유하라” 하셨고, 그 곳의 어떤 과부로 하여금 엘리야를 공궤하도록 섭리하셨습니다. 그 후에 엘리야가 사렙다에 가서 나뭇가지 줍는 여인을 만났고, 그 여인에게 약간의 물과 떡 한 조각을 청하였는데 그 여인은 “집에 남은 가루 한 움쿰과 기름 한 병으로 떡을 만들어 자기와 아들이 마지막으로 먹고 죽기 위하여 나무를 줍는다”고 하였을 때 “두려워 말고 그것으로 먼저 나를 대접하고 그 후에 너와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그리하면 비오는 날까지 가루와 기름이 다 하지 않을 것이라”한즉 그대로 시행하고 그대로 성취하므로 이 사실을 “복음 사역자를 접대하면 복주신다”는 하나님의 섭리로 권장하여 복음 사역자들이 대접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미 제도도 여기에 근거하였습니다(마 10:40).

2. 북 이스라엘의 요람왕 때에 엘리사 선지자가 사역을 하였는데 선지자가 수넴에 이르렀을 때에 귀한 여인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이 여인은 선지자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고 강권하여 대접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선지자를 더 잘 대접하기 위하여 남편의 허락을 받고 담 위의 작은 방과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시설한 후 엘리사 선지자가 그 곳에 올 때마다 평안히 유숙하게 한 것입니다. ① 담 위에 시설된 조용하고 서늘한 방,(추운 곳에서는 따뜻한 방)② 편안한 침상, ③ 책상, ④ 의자, ⑤ 촛대(조명 시설)는 옛날이나 오늘이나 복음 사역자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엘리사는 그 대접을 받고 “그의 생각이 주밀하다”고 칭찬한 후 “왕이나 군대 장관에게 부탁할 것이 있으면 말하라” 하였으나 그 여인은 “백성들과 함께 거하므로 불편이 없다”고 사양하였으니 그만큼 검소한 여인이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그 집에 아들이 없음을 알고 아들 얻는 축복을 하였습니다. 복음 사역자에게 감동을 주고 유쾌하게 하는 봉사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딤후 1:16~18).

 

제 68 과 아달랴, 요아스 (왕하 11:1~21) 목록으로


1. “아달랴”란 이름이 성경에 네 사람 나오지만(본문, 대상 8:26, 스 8:7, 에 9:8) 이 시간에 공부할 “아달랴”는 유다국 10대 여왕입니다. 유다국 9대왕 “아하시야”가 북방 이스라엘왕 요람과 친교를 맺은 상태에서 혁명가 에훗에게 죽임을 당하자(왕하 9:24~29) 그의 어미되는 아달랴(8대왕 여호람의 왕비)가 세습할 왕자들을 다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으니 성경에 나타난 초대 여왕이 된 것입니다. 이 “아달랴”는 북방 이스라엘 7대왕 아합의 딸이고, 또 6대왕 오므리의 손녀인데(왕하 8:26) 남북 왕국이 친교하는 사이에 아합왕이 유다왕 여호람에게 딸 아달랴를 주어 사위를 삼은 것입니다. 따라서 “아달랴”의 어미는 이방 여인 시돈왕의 딸 이세벨이니(왕상 16:31) 이세벨은 악한 왕비로 바알을 섬기고 선지자를 핍박하였으며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뺏은 여인인즉 그의 피를 받은 “아달랴”도 악의 요소가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달랴”는 왕이 죽자 왕자들을 죽이고 왕이 되었지만 7년째 되었을 때 정통왕을 세우는 혁명이 일어나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여기의 정통왕이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의미하는데 요아스는 아달랴가 왕자들을 죽일 때 그 누이 “여호세바”의 보호로 피신되었고, 제사장 “여호야다”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6년 동안 보호하다가 군사들을 동원하여 아달랴의 세력을 꺾고 7세된 요아스를 11대 왕으로 세운 것입니다.

2. 요아스는 누이 여호세바의 도피로 죽음을 면하였고, 여호야다의 보호와 정화 운동으로 왕이 되어 40년 왕노릇을 하였는데 여호야다의 자문을 받을 때는 좋은 정치를 하였으나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타락하였고, 그의 타락성을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지적하자 그를 성전 뜰에서 죽이는 악을 범하였습니다(대하 24:20~22). 결국 신복들(요사갈과 여호사바드)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의 아들 “아마샤”가 다음 왕이 되었습니다. 여호야다 제사장은 왕위를 정통화 시킨 것 뿐 아니라 “바알” 세력을 타파하는데도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왕하 11:18~18). 이 당시에 바알 제사장은 “맛단”이었습니다.

 

제 69 과 여호아하스와 요아스 (왕하 13:1~9) 목록으로


1. “여호아하스”는 북왕국 10대왕인 예후의 아들로 예후의 다음 왕이 된 사람이요(11대), 요아스는(남왕국의 11대왕도 요아스임) 여호아하스의 아들로 북왕국 12대왕이 된 사람입니다. “여호아하스”는 17년간 사마리아에서 왕노릇을 하면서 우상을 처치하지 않는 등 악을 행하여 하나님이 아람왕 하사엘과 그의 아들 벤하닷의 손 붙여 괴로움을 당하게 하신 일이 있었고, 그 시대에 아람의 지배를 받아 나라가 쇠하여진 상태에서 세상을 떠나매 그 아들 “요아스”가 왕이 된 것입니다.

2. 요아스는 유다왕(11대) 요아스가 37년 왕노릇 할 당시에 이스라엘 왕이 되어 6년을 왕노릇하면서 악을 행하였고, 그가 죽은 후에 아들 여로보암(2세)이 왕이 되었습니다(왕하 14:16). 요아스가 북왕국의 왕으로 있을 때 엘리사 선지자의 사역이 있었고, 아람과의 전쟁이 자주 있었습니다(왕하 13:14~25). 요아스가 왕된지 2년 때에 남왕국은 아마샤가 요아스 다음 왕이 되었는데 두 나라 간에 전쟁을 하게 되었고, 북왕국이 승리하여 많은 전리품을 취한 일이 있었습니다(왕하 14:8~14).

3. “요아스”는 두 인물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한 사람은 유다 11대왕으로 9대왕 아하시야의 아들인데 아하시야가 죽자 그의 모친 “아달랴”가 왕족들을 죽이고 10대 왕이 되었으나 고모인 “여호세바”가 왕자인 요아스를 숨겼고, 아달랴왕 6년만에 제사장 “여호야다”의 힘으로 아달랴를 죽이고, 요아스를 왕 세운 후 여호야다가 섭정을 하므로 좋은 정치를 하게 하였으나 여호야다가 죽자 요아스왕이 타락하므로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일깨워 권면한즉 그를 성전 뜰로 끌어내어 돌로 쳐 죽게 하므로 배은망덕 하는 죄를 범하였습니다(대하 24:20~22). 그 후 1년 만에(대하 24:15~24) 아람왕 하사엘의 침략을 받아 보물을 주어 보낸 일이 있었고, 재위 40년 되었을 때 신복 요사갈과 여호사바드에게 피살되니 그 아들 아마샤가 12대왕이 되었습니다.

4. 남왕국 요아스왕의 재위 년도는 주전 831~791년이고, 북왕국 요아스왕의 즉위 년도는 주전 809~795년입니다.

 

제 70 과 아마샤와 아사랴(웃시야) (왕하 14:17~22) 목록으로


1. 아마샤는 유다 12대왕(802~796)이고, 아사랴는 13대왕입니다(796~744). 아마샤의 아버지는 요아스왕인데 요아스는 그의 할머니 “아달랴”왕을 여호야다 제사장이 6년만에 파하고, 홀로 살아남은 요아스를 왕세워 정통을 회복시켰습니다. 그런데 요아스는 정치 말년에 악정을 하다가 신복들(요사갈, 여호사바드)에게 피살되고, 그의 아들 아마샤가 25세에 왕이 되어 29년간 왕노릇 하였습니다. 아마샤는 그의 부친을 죽인 자들만 죽이고, 범인의 존비속은 죽이지 않으므로 율법을 지켰고(신 24:16), 연좌제를 폐지하였습니다(왕하 14:5~6). 에돔을 쳐서 취한 후 북왕국(요아스왕)을 대적하다가 오히려 패하여 북왕국의 속국이 되었다가 백성들이 북왕국을 모반한 연고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왕하 14:8~20).

2. 아마샤왕이 죽은즉 유다 백성들이 그의 아들 “아사랴”로 13대왕을 삼았으니 이 아사랴는 “웃시야”란 이름을 함께 쓴 사람입니다(왕하 14:21, 15:13). “아사랴”란 이름은 왕하 15장에서 네 번(1, 3, 6, 23절) 기록되고, 그 외에는(왕하 15:1, 30, 대하 26장) 웃시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아사랴의 이름만 기억하고 웃시야로 사용함이 좋습니다. 웃시야는 16세에 왕이 되어 유다왕 중 가장 오랜 기간인 52년간 재위하였습니다. 웃시야가 왕될 때 북왕국에는 여러보암 2세가 왕노릇 할 때였고, 또 웃시야가 장기 집권하는 동안(796~745년) 북왕국에서는 스가랴,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까지 다섯 왕이 교체되었습니다(왕하 15장). 웃시야왕은 엘랏(왕하 14:22, 엘롯, 대하 26:2, 아카바만에 있는 애굽과 이스라엘의 국경선)을 건축하였고, 웃시야의 어머니 이름은 “여골리야”입니다. 웃시야 왕 때에 “스가랴”란 선지자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자문할 때에 정직하였으나 블레셋 도성들을 점령하고 해자(물웅덩이)를 많이 파서 방위를 하고 농사를 장려하였으며 국권이 든든해지자 교만해졌고, 국력이 좋을 때 용사 족장이 2600명이요, 수하 군사가 307,50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망령된 마음이 들어서 제사장이 집행하는 제사를 자기가 드리려 하자 제사장 아사랴는 용맹한 제사장 80명과 함께 만류하였으나 듣지 않았고, 결국 문둥병의 징벌을 받아 죽으니 그 아들 “요담”이 다음 왕이 되었습니다(대하 26:1~23).

 

제 71 과 여러보암과 스가랴, 살룸, 므나헴 (왕하 14:22~29) 목록으로


1. 69과에서 요아스에 대하여 공부하였는데 그 요아스는 북왕국 12대 왕을 뜻하고(유다 11대왕도 요아스임), 그 요아스 16년(유다왕 아마샤 15년)에 그의 아들 여러보암이 북왕국 13대 왕이 된 것입니다. 북왕국 첫 왕의 이름이 여러보암이기 때문에 그 왕과 구별하기 위하여 여러보암 2세로도 칭합니다. 이 사람은 사마리아에서 41년간 위에 있으면서 초대왕 여러보암처럼 악하였지만(24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아주 없애신다고 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보암왕을 통하여 북왕국의 뺏긴 영토를 찾게 하시므로(27절) 그 당시에 유다와(하맛) 앗수르에게 뺏겼던 영토를 회복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보암 다음 왕은 그의 아들 스가랴(왕하 15:8~12)인데 이 사람이 자기 아버지처럼 죄를 떠나지 않으므로 하나님이 그를 죽게 하셔서 6개월만에 죽었습니다. 스가랴가 죽게 된 경위는 무정부 상태처럼 나라가 무질서 한 틈을 타서(왕하 14:26)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모반하여 백성들 앞에서 쳐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었다 하였으니 스가랴는 14대왕, 살룸은 15대왕이 된 것입니다. 여러보암의 아들 스가랴가 왕된 때는 유다 웃시야(아사랴)왕 38년이었고, 6개월 왕노릇하다가(왕하 15:8) 살룸에게 모반 당하므로 그때는 유다 웃시야왕 39년이 되는데 살룸은 한 달 통치하고 또 죽었습니다(왕하 15:13). 살룸이 죽은 이유는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또 모반하여 죽이고 왕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살룸은 15대왕으로 1개월 왕노릇하였고, 므나헴이 16대왕이 되어 10년을 치리하였는데 그도 악하게 행하므로 앗수르왕 불의 침략을 받았고, 그 침략을 저지하기 위하여 부자의 돈을 토색하여 불에게 주면서 자기 왕권을 유지하였습니다(왕하 15:17~22). 여기에서 여러보암과 스가랴는 세습되었지만 살룸의 아버지 야베스와 므나헴의 아버지 “가디”의 신분은 알 수 없습니다.

 

제 72 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하 15:1~7) 목록으로


위 본문에는 요담의 아버지 아사랴(웃시야)의 기록이 있고, 아사랴가 유다 12대왕 아마샤의 아들로 16세에 왕이 되어 52년간 치리할 때 정직한 면도 있었으나 말년에 분향하는 죄를 짓고 문둥병이 들자 병 중에 있다가 죽으므로 그 아들 요담이 14대 유다왕이 된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 웃시야가 52년 장기 집권을 하였으므로 그가 죽은 시기는 북왕국 18대왕 베가 2년이 됩니다(왕하 15:32). 요담의 어머니는 사독의 딸 여루사이고, 요담은 25세에 왕이 되어 16년을 다스렸으며 정직한 면도 있었으나 산당은 제하지 못하였고, 하나님의 전 윗 문을 건축하였습니다. 그가 죽은즉 그의 아들 아하스가 15대 유다왕이 된 것입니다(왕하 15:32~36). 아하스가 유다왕이 된 때는 북왕국 18대 베가왕 17년이었고, 20세에 왕이 되어 16년을 다스렸습니다(왕하 16:1~2). 이 사람은 악하여 이방 종교를 다시 이끌어 들였고, 이런 연고로 아람왕 르신의 침략을 받아 웃시야왕이 회복한 엘랏을 다시 뺏겼습니다(왕하 14:22, 16:3~6). 북왕국과 아람의 침략으로 견디기 어렵게 되자 앗수르왕 “디글랏 빌레셋”에게 복종을 표하고 예물을 보내어 원조를 구하였으며 결국 앗수르왕이 아람왕 르신을 죽이므로 형통하였는데 그는 다메섹에 가서 앗수르의 이방 제단을 좋게 보고 그 식양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개조시켰으니 큰 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가 죽은즉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아하스는 유다 15대왕이고, 히스기야는 16대왕입니다(왕하 16:7~20). 히스기야의 어머니는 스가리야의 딸 아비라이고, 25세에 왕이 되어 29년을 위에 있었으며 그가 왕될 때는 북왕국 19대(마지막 왕) 호세아왕 3년에 해당합니다(왕하 18:1~2). 히스기야왕은 모세와 방불할 만큼 하나님과 연합하였고, 광야의 유품인 놋뱀을 부쉈으며 앗수르의 침략을 하나님의 기적에 힘입어 막은 전쟁의 역사가 있습니다. 29년을 치리하고 죽은즉 그 아들 므낫세가 다음 왕이 되었습니다(왕하 20:19~21).

 

제 73 과 히스기야 (왕하 18:~20:) 목록으로


히스기야왕은 유다 16대 왕으로 29년 재위하면서 많은 역사를 남겼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하여 우상 제하는 일을 감행하였고, 백성들이 모세의 놋뱀을 숭상한 것 때문에 그것을 부수어 놋조각(느후사라단)으로 변조시켰으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연합하였으며 계명을 잘 지켜 형통하였다”고 하였습니다(왕하 18:3~7). 아하스왕 때부터 앗수르의 지배 받던 것을 배척하여 독립하니 큰 공을 세운 것입니다. 그 일로 인하여 히스기야 4년(북왕국 호세아 7년)에 앗수르왕 살만에셀이 북왕국 사마리아를 진격하여 2년 수개월 만에(햇수로는 3년) 북왕국을 함락시키고(그때가 히스기야 6년, 북왕국 호세아 9년임), 이어서 8년 후(히스기야 14년)에 앗수르왕 산헤립이 다르단, 랍사리스, 랍사게 세 장군을 앞세워 예루살렘을 포위하였습니다. 히스기야가 이런 어려움을 당한 것은 자기의 선행으로 조상들과 백성들의 죄값을 속죄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때에 히스기야왕 밑에는 궁내 대신 엘리야김(힐기야의 아들)과 서기관 셉나와 사관 요아(아삽의 아들)가 있었으나 어찌할 수 없었는데 히스기야왕이 처음에는 은금으로 적을 제어하다가(왕하 18:14~16) 적군의 모독하는 편지를 성전에 갖고 가서 하나님 앞에 펴 보이고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때에 이사야 선지자가 그 중재 역할을 하였지요. 그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전군 185,000명을 죽이므로 패하게 하셨습니다. 산헤립은 패전하여 고국에 가서 니느웨에 거하다가 신하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에게 모반 당하여 죽었고,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 왕이 되었지요(19:34~37). 이 일이 있은 후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데려가시려고 경고하셨는데 히스기야가 더 살기를 기도하여 15년을 더 살도록 약속하셨고, 그 증표로 종처를 낫게 하시고 또 해그림자를 10°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히스기야가 더 사는 동안에 바벨론왕 므로닥 발라단의 방문이 있었고, 또 3년 후에 므낫세가 태어난 것입니다(20:1~21:1).

 

제 74 과 브가히야, 베가, 호세아 (왕하 15:21~28) 목록으로


므나헴은 모반자 살룸을 죽이고 북왕국 16대 왕이 되어 10년을 재위하다가 죽은즉 그 아들 브가히야가 대를 이어 17대 왕이 되었는데 이때는 유다왕 웃시야 50년이었습니다. 브가히야는 2년간 재위하며 악을 행하였는데 그의 장관 르살랴의 아들 베가가 반역하여 브가히야왕과 그의 신하 아르곱과 아리에까지 죽이고, 왕이 되니 베가는 북왕국 18대 왕이 된 것입니다. 이때는 유다왕 웃시야가 죽던 해였고(왕하 15:27), 그도 악한 왕으로 20년 통치하였는데 그때에도 앗수르왕 티글랏 빌레셋의 침략을 받아 고난을 겪었습니다. 결국은 왕위 20년 되던 해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반역하여 그를 죽이고, 왕이 되니 북왕국의 19대 마지막 왕이 된 것입니다(왕하 15:29~31). 호세아가 왕된 때는 유다왕 16대 아하스 12년입니다(왕하 17:1). 또 호세아가 왕된 후 그도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사마리아에서 6년을 다스렸을 때 앗수르왕 살만에셀이 침략한즉 막을 길이 없자 조공을 바쳤는데 애굽왕 “소”에게 사자를 보내고(애굽의 자원으로 앗수르를 대항하려 한 뜻) 앗수르에 바치던 조공을 끊은즉 앗수르왕이 호세아 6년부터 9년까지 사마리아를 에워쌌다가 결국은 호세아를 잡아 가두고 사마리아를 점령하니 이로써 북왕국은 약 261년만에 끝난 것입니다. 이는 그들의 죄값이라고 하셨습니다(왕하 17:1~18). 왕은 총 19명인데 여러보암부터 호세아까지 계승 방법과 재위 년수를 살피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여러보암(주전 939년쯤 에브라임 지파, 22년) ② 나답(아들, 2년) ③ 바아사(앗사갈, 혁명, 24년) ④ 엘라(아들, 2년) ⑤ 시므리(혁명, 7일) ⑥ 오므리(혁명, 2년) ⑦ 아합(아들, 22년) ⑧ 아하시야(아들, 2년) ⑨ 여호람(형제, 12년) ⑩ 예후(혁명, 7년) ⑪ 여호아하스(아들, 17년) ⑫ 요아스(아들, 16년) ⑬ 여러보암(아들, 41년) ⑭ 스가랴(아들, 6개월) ⑮ 살룸(혁명, 1개월) ⑯ 므나헴(혁명, 10년) ⑰ 브가히야(아들, 2년) ⑱ 베가(혁명, 20년) ⑲ 호세아(혁명, 9년)가 됩니다.

 

제 75 과 므낫세, 아몬, 요시야 (왕하 21:1~23:29) 목록으로


므낫세는 히스기야왕이 생명 연장을 받은 후 3년 만에 낳은 아들로 히스기야가 15년을 더 살고 죽자 12세에 유다 17대왕이 되어 55년을 다스린 왕입니다. 유다왕으로는 최장기 집권자로 문제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였다는 것입니다(왕하 21:1~2). 이방 종교의 나쁜 것은 다 끌어 들였고, 열방보다 더 악한 상태에 있었습니다(왕하 21:3~9). 예루살렘을 그릇 씻어 엎듯이 멸망케 하시겠다는 선지자의 경고도 무시했고, “무죄한 피도 많이 흘렸다”고 하였습니다(왕하 21:10~17). 그래서 성경 연구자들은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데려가신다 하셨을 때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는 것이 더 앞 날을 복 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유다 백성들이 55년간 폭군이요, 우상주의자의 통치를 받은 것입니다. 그가 죽은즉 궁궐 동산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몬”이 22세에 유다 18대 왕이 되어 2년을 다스리게 된 것입니다(왕하 21:18). 아몬의 어머니는 욥바에 사는 하루스의 딸 므술레멧인데 아몬이 그 부친 므낫세의 악에서 떠나지 못하므로 신복들이 그를 왕궁에서 죽였고, 국민들이 그 반역자들을 또 죽인 후 그의 아들 요시야를 왕세운즉 요시야가 8세에 유다 19대왕이 된 것입니다. 요시야가 성장하기까지 제사장이나 그의 어머니나 대신들이 대신 정치를 하였을 것입니다. 아몬을 죽인 신하는 마치 박정희 대통령을 죽인 김재규처럼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혁명에 성공하지 못한 것이지요(왕하 21:19~36). 요시야는 31년간 위에 있으면서 성전을 수리하였고, 율법책을 발견하여 정화 사역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 당시 대제사장은 힐기야였고, 서기관은 사반이었으며 아히감, 악볼, 아사야 같은 대신들이 있었고, 선지자는 훌다요, 성전의 시종은 나단멜렉이었습니다. 요시야왕이 선하므로 하나님이 평안히 묘실로 갈 것을 약속하셨는데(왕하 22:20, 23:26) 결국 애굽왕 느고와 싸우다가 전하였지만 이는 나라의 화액을 피하는 복된 죽이었습니다(왕하 22:~23:29, 사 57:1).

 

제 76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왕하 23:31~24:17) 목록으로


여호아하스는 요시야의 아들로(그의 어머니는 예레미야의 딸 하무달임) 23세에 유다 20대왕이 되었으나 그의 행위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였고, 애굽왕 바로느고가 저를 하맛땅 립나에 가두므로 3개월만에 폐위되었습니다. 이것은 요시야왕이 애굽과의 전쟁에서 죽고 패배한 일과 또 여호아하스가 애굽에 잘 복종하지 않은 때문이었습니다. 애굽왕 바로느고는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폐한 대신 요시야의 다른 아들 엘리야김(모친은 브다야의 딸 스비다)을 왕으로 세우니 그가 25세에 유다 21대왕이 되었고, 그의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고쳐불렀으며 폐위된 여호아하스를 애굽으로 끌어갔는데 그는 거기서 죽었습니다. 여호야김은 백성들로부터 재산을 거두어 애굽왕에게 주고 11년을 다스렸습니다. 여호야김도 여전히 하나님보시기에 악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왕 느브갓네살이 올라온즉(애굽은 바벨론을 대항하지 못한채 물러섰고) 여호야김은 역시 국권이 약하므로 3년동안 바벨론을 섬기다가 배반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민족의 죄와 왕들의 죄를 용서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야김이 죽은즉 그 아들(모친은 엘라단의 딸 느후스다) 여호야긴이 18세에 왕이된즉 그가 유다 22대왕이 되었습니다. 애굽은 바벨론을 두려워하여 다시 나오지 못하였고, 여호야긴은 예루살렘에서 3개월간 다스리면서 바벨론 포위에 항거하다가 바벨론왕 8년에 항복한즉 바벨론왕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점유, 훼파, 약탈하고 왕과 왕궁의 모든 신복들과 보물들과 장인들까지 다 바벨론으로 이끌어 간 것입니다. 이때는 주전 566년경이었습니다. 느브갓네살은 천민들만 남은 땅에 여호야긴의 삼촌(여호야김의 형제) 맛다니야를 시드기야로 이름을 고쳐서 왕을 세우니 그가 23대 유다 마지막 왕이 된 것입니다.

 

제 77 과 시드기야 (왕하 25:1~30) 목록으로


시드기야의 본 이름은 맛다니야인데 바벨론왕이 그를 왕 세우면서 그 이름을 시드기야로 고쳐 부르게 한 것입니다. 스드기야의 모친은 예레미야의 딸 하무달(여호아하스의 모친인즉 시드기야는 여호아하스의 형제임)이요, 시드기야는 21세에 왕이 되어 11년을 다스렸습니다.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배반한즉 시드기야 9년부터 11년까지 바벨론 군사가 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므로 기근에 쇠약해졌고, 은밀히 성벽에 구멍을 뚫어 왕을 도피시켰으나 갈대아 군사들에게 붙잡혔습니다.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가 보는 앞에서 죽였고, 시드기야도 눈을 빼인 후 바벨론으로 끌려갔으니 이때는 느브갓네살 19년입니다. 이 땅시에 바베벨왕의 신하는 느부사라단이었고,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은 스라야, 부제사장은 스바냐인데 그들도 다른 요직인들과 함께 다 사로잡혀갔고, 남겨 놓은 사람은 사반의 손자요, 아히감의 아들인 “그달리야”를 방백으로 세운 것입니다. 그달리야는 “바벨론을 섬기며 평안히 살자” 하였으나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단후멧의 아들 스라야와 마아가 사람 야아사니야는 듣지 않았습니다. 그달리야가 방백된지 두달되었을 때에 엘리사마의 손자요 느다니야의 아들인 이스마엘이 10인을 거느리고 와서 그달리야를 죽이고 애굽으로 도망하였습니다. 11년 전에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갔던 여호야긴은 37년이 지난 후(유다가 망한 후 26년)에 바벨론왕 에월므로닥 즉위 원년에 그를 출옥시켜 선대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망한 나라의 왕에게 괴로움을 주어보았자 민심의 손해만 된즉 그렇게 한 줄 압니다. 이 내용들은 다 성경 본문에 있는 것이지만 “성경의 인명을 익히자”는 뜻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이로써 유다 나라도 주전 554년 경에 종말을 당한 것입니다.

 

제 78 과 이스라엘의 열왕 목록으로


사사 시대가 끝난 다음 사울이 처음 왕이 된 때는 보통 연구한 방법대로 그 연대를 주전 1052년으로 추정합니다.

1. 벤야민 지파 사울이 왕되어 40년,

2. 사울이 33년 왕노릇할 때 유다 지파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를 상대로 하여 7년 6개월 왕노릇하고 사울이 죽자 예루살렘에서 33년 왕노릇하였으므로 두 왕의 재위 년수는 73년입니다. 그리고 사울이 죽자 사울의 군장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세워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통일 왕국을 건설하는 어간에 잠시 왕되었다가 레갑과 바아나에게 죽임당한 일이 있었습니다(삼하 2:8~9, 4:5~12).

3. 통합왕국 7년 후에 솔로몬이 40년 왕노릇하고 죽자

4.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되었을 때에 북왕국이 갈라져서 에브라임지파 여러보암이 초대왕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정통국은 유다국이 되었고, 북왕국은 이스라엘국이 된 것입니다(북왕국 왕조 역사는 74과 참조). 르호보암은 17년 재위하였고,

5. 그의 아들 아비얌이 3년,

6. 그의 아들 아사가 41년,

7. 그의 아들 여호사밧이 25년,

8. 그의 아들 여호람이 8년,

9.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1년(여호아하스라고도 함. 왕하 8:24~29, 대하 22:6은 아사랴),

10. 그의 어머니 아달랴가 6년,

11.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가 40년,

12. 그의 아들 아마샤가 29년,

13. 그의 아들 아사랴(웃시야, 마 1:8, 왕하 15:1)가 52년,

14. 그의 아들 요담이 17년,

15. 그의 아들 아하스가 16년,

16.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29년을 다스리는 중 히스기야 6년에 북왕국은 261년만에 끝났고,

17. 그의 아들 므낫세가 55년,

18. 그의 아들 아몬이 2년,

19. 그의 아들 요시야가 31년,

20.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3개월,

21. 그의 형제 엘리야김을 여호야김으로 바꾸어 11년,

22.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3개월,

23. 그의 삼촌 시드기야가 11년을 통치하고 바벨론에게 망한즉 사울왕부터 시드기야까지 합하면 총 년수가 507년입니다(1년 미만은 계산하지 않았음). 르호보암때부터 북왕국이 시작되어 히스기야 6년에 끝난 것과 정통 선민국은 507년, 비정통국은 261년임을 기억하십시오.

 

제 79 과 역사상 인물 공부(1) (대상 1:1~2:17) 목록으로


1장, 1~4절은 아담부터 노아의 세 아들(셈, 함, 야벳)까지 11대 선택 계역이고, 5~7절은 야벳의 아들들과 손자들 이름이며 8~16절은 함의 아들들과 손자들인데 특히 함의 아들 가나안의 아들들이 시돈, 헷, 여부스, 아모리, 기르가스, 히위, 알가, 신, 아르왓, 스말, 하맛인즉 이스라엘 선민과 적대 관계에 있는 이방족이 대부분 함의 후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17~27절은 셈부터 아브라함까지의 계보이고, 28~31절은 아브라함의 서자 이스마엘의 계열로 느바욧, 게달, 앗브엘, 밉삼, 미스바, 두마, 맛사, 하닷, 데마, 여둘, 나비스, 게드마로서 드문 드문 나타난 이름이을 알 수 있으며 32~33절은 아브라함의 첩 그두라에게서 낳은 아들들의 이름이 있으니 곧 시므란, 욕산, 므단, 미디안, 이스박, 수아요, 욕산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미디안의 아들은 에바, 에벨, 하녹, 아비다, 엘다아인즉 이스마엘과 이삭을 합하여 8남임을 알 수 있습니다. 34절은 이삭과 에서와 야곱이고, 35~43절은 에서의 아들들로써 엘리바스, 르우엘, 여우스, 얄람, 고라이며 또 그들의 자손들을 기록하였습니다. 43~50절에는 선민이 애굽에 있는 동안 에돔(이스마엘 후손) 땅을 다스린 왕 등을 열거하였으니 곧 브올의 아들 벨라, 세라의 아들 요밥, 데만 사람 후삼브닷의 아들 하닷, 사믈라, 르호봇 사람 사울, 악볼의 아들 바알하난 또 그 다음은 하닷이었습니다.

2장, 1~2절은 야곱의 12 아들, 3~4절은 유다의 세 아들, 에르, 오난, 셀라(이들의 어머니는 수아의 딸 유다)인데 에르와 오난이 죽자 에르의 처 다말이 유다와 동침하여 쌍둥이로 베레스와 세라를 낳은 일, 5~15절에서는 유다의 아들 베레스로부터 헤스론, 람, 암미나답, 나손, 삼마(살몬, 마 1:4), 보아스, 오벳, 이새로 이어지며 이새의 일곱 아들은 엘리압, 아비나답, 시므아, 느라넷, 랏데, 오셉, 다윗이요, 16~17절에서 딸들은 스루야와 아비가인이며 다윗이 여덟째가 되지 않고(삼상 16:10~11) 7형제가 된 것은 이 기록 당시에 한 사람이 죽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 80 과 역사상 인물 공부(1) (대상 2:18~55) 목록으로


8~17절은 유다 계열 중 유다의 손자 헤스론에서 다윗으로 연결되는 계보이고, 18~20절은 헤스론의 또 다른 아들의 계열로써 갈렙, 에셀, 소밥, 아르돈, 훌과 브사렐이 기록된 중 훌과 브사렐은 출 17:10, 31:2에 나오는 사람이지만 갈렙은 연구 대상입니다. 그러나 2:49에서 갈렙의 딸이 악사라 한 것을 보면 또 출애굽때의 인물이 됩니다. 본문 18절에서 갈렙을 헤스론의 아들이라 한 것과 갈렙이 여분네의 아들인 것의 차이가 문제인데(민 13:6) 이것은 헤스론의 자손을 아들로 기록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혹자는 에서의 손자가 그나스이고(창 36:4, 11), 갈렙의 동생이 그나스이므로(삿 1:13) 갈렙 가문이 에서 곧 에돔족에서 유다 지파로 귀화했다고도 하지만 귀화된 사람이 어찌 유다 지파의 족장이 될 수 있겠습니까?(민 13:2, 6) 따라서 갈렙의 아버지가 헤스론이냐 여분네야 하는 것은 성경에 후손 또는 손자를 아들로 표기한 사례까 있은즉 거기에 따라야 할 것입니다(마 1:8, 웃시야는 요람의 4대손임. 4:13참조). 21~24절은 헤스론과 마길(므낫세의 장자, 창 50:23)의 딸 사이에서 낳은 아들 스굽과 스굽의 아들 야일(므낫세의 아들도 야일임, 민 32:41)을 낳으니 야일이 외가의 고장인 길르앗(요단 동편) 땅에서 23 성읍을 갖고 산 사실과 그술과 아람(마길의 자손)이 다 뺏은 기록입니다. 유다 지파 헤스론의 아들 야일이 외가쪽에서 번성하는 것을 그 족속이 투기하여 막은 것입니다. 24절에서 “헤스론이…죽은 후에 그 아내 아비야가 그로 말미암아 아스훌을 낳았다”한 것은 유복자란 뜻이요, 그 유복자 아스훌에게서 드고아가 출생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사람 이름과 지명이 같은 것이 많습니다. 드고아는 아모스 선지자의 고향이요(암 1:1), 길르앗(22절)과 갈렙, 에브라다(24절), 기럇여아림(52~53절)도 역시 지명도 됩니다. 사람의 이름으로 그 지역을 표기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25~49절까지는 헤스론의 후손을, 50~55절까지는 갈렙의 자손들과 그 족속들인데 여기에서 유다족이 크게 번성한 것과 소라, 야베스, 겐족속(55절) 등 생소하지 않 이름들도 있습니다.

 

제 81 과 다윗의 자손들 (대상 3:1~24) 목록으로


1. 1~4절은 다윗이 헤브론에 7년 6개월을 거하며 유다 지파 중심으로 왕위에 있었는데 그때 낳은 일곱 아들들이 있었으니

1) 암논(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 소생)

2) 다니엘(갈멜 여인 아비가일, 나발의 처)

3) 압살롬(그술왕 달매의 딸 마아가)

4) 아도니야(학깃)

5) 스바댜(아비달)

6) 이드르암(에글라)이요,

2. 5~9절은 예루살렘에서 33년 왕위에 있으면서 낳은 아들들로써 암미엘의 딸 밧수아의 소생으로 시므아, 소밥, 나단, 솔로몬인데 여기의 “암미엘의 딸 밧수아”는 삼하 11:3에서 “엘리암의 딸 밧세바”로 되어 있은즉 이렇게 부녀의 이름이 달라진 것은 역대상이 후시대에 기록되면서 글자의 발음을 달리 하였거나 이름을 달리하여 호칭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입할, 엘리사마, 엘리벨렛, 노가, 네벡, 야비야, 엘리사마, 엘랴다, 멜리벨렛이 있었고, 또 딸로서는 다말이 있었으며 또 다른 아들들도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름이 열거된 아들이 19명, 딸 1명 외 무명 아들들입니다.

3. 10~16절에서 솔로몬의 아들들은 르호보암(그의 아들)→아비야(아비얌, 왕상 15:1)→아사→여호사밧→요람→아하시야→요아스→아마샤→아사랴(웃시야)→요담→아하스→히스기야→므낫세→아몬→요시야→요하난과 여호야김(본 이름은 엘리야김, 왕하 23:34)과(아들 여호야긴도 있고, 왕하 24:6) 시드기야(본 이름은 맛다니야, 왕하 24:17)와 살룸이요, 또 여호야김의 아들 중에도 여호야긴이 있는데(왕하 24:17) 이 이름을 본장 16절에서는 “여고냐”라 하였고, 또 요시야의 끝 아들은 시드기야입니다.

4. 17~24절에서는 시드기야 11년에 나라가 망하고 왕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때에 여고냐(여호야긴)의 아들은 스알디엘, 말기람, 브다야 외 4인이요, 브다야의 아들들은 스룹바벨과 시므이요(여기에서 스룹바벨은 스알디엘의 조카임을 알 수 있음, 대상 3:17~19, 마 1:12), 연결된 대수대로 기록하면 여고냐→스알디엘→스알디에의 형제 브다야→스룹바벨→하나냐→르바야→스가냐→느아랴(22절, 부자 합하여 6인)→엘료에네→호다위야 외 6형제까지 9대를 기록하였습니다.

 

제 82 과 유다와 시므온 지파 (대상 4:1~43) 목록으로


1절에서 유다의 아들 베레스(창 38:29, 자부 다말에게서 낳음, 쌍둥이 동생은 세라), 헤스론, 갈미, 훌, 소발을 기록하였으니 베레스와 세라 이외의 아들들은 다른 여인과의 사이에서 출생하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창 38:1~11을 보시면 유다가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과 동침하여 엘과 오난과 셀라를 낳았은즉 이들은 먼저 낳은 아들이고, 또 다말에게서 2명, 또 다른 아들 4명이 기록되었습니다. 유다의 자손을 자세히 기록한 이유는 그 지파가 메시야 계열이고 또 만이 번성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메시야 계열은 베레스의 계열이고, 베레스의 다른 형제 헤스론의 자손은 2:8~41절에서 소개되었습니다. 2절은 소발의 후손이고, 3~4절은 에담의 후손이며 5~6절은 아스훌의 자손이고, 7~8절은 헬라와 고스의 자손들이며 9~10절은 야베스가 복받은 말씀이요, 13~15절에서는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과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갈렙의 자손들을 열거하였으니 이들은 모세 당시의 인물들임이 분명합니다. 21~24절에서는 유다의 아들 셀라의 자손들도 기록되므로 유다 족속의 명단이 끝났는데 22절에서 “이는 다 옛 기록에 의지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역대 상하는 포로 후시대의 기록이요, 에스라가 그 저자라고 합니다. 열왕시대에도 자주 전쟁을 치뤘고, 바벨론에게 망한 후 특별한 사람들만 족보를 보존하였다가 70년 후에 남은 자들만 모여서 지파 별로 족보 내력을 수집하여 대략 정리한 줄 압니다. 출애굽 시대로부터 약 850년 후의 산물입니다. 동명이인도 있고, 족장 이름이 지명으로 변한 것이 대부분이며 자손을 아들로 표기하여 건너 뛴 것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대상 3:17~18, 마 1:12~13을 대조해 보십시오). 이 사실은 포로 후시대에 건너뛰면서 정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록의 목적은 오직 선민의 규합에 있었을 것입니다. 24~38절은 시므온 지파의 자손들을 기록한 것이고, 39~43절은 그 지파가 간직한 조상들의 역사를 간단히 남긴 내용입니다. 히스기야 왕때에 세력을 떨쳤다고 하였습니다(41~43절).

 

제 83 과 르우벤, 갓, 므낫세 자손들 (대상 5:) 목록으로


1. 르우벤은 야곱(이스라엘)의 장자입니다. 그런데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로 돌아간 것은 르우벤이 서모와 통간하였기 때문입니다(창 35:22, 49:4). 여기의 명분의 뜻은 탁월하지 못한 것입니다(창 49:4). 다시 말하면 축복과 발전을 적게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로 돌아간 것은 그의 출세와 공로가 있음을 인하여 갑절(므낫세, 에브라임)의 기업을 준 것입니다(신 21:17). 2절에서 “족보에는 명분대로 기록할 것이 아니라”는 것은 순서를 바꾸지는 말라는 뜻입니다. 3절에서 “주권자(메시야)가 유다로 말미암아 났을지라도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 있다”는 것은 유다에게 메시야 계열이 약속되었어도 장자의 명분은 요셉이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요셉은 야곱의 모든 자손들에게 큰 공로자이기 때문입니다. 르우벤의 아들들은 하녹, 발루, 헤스론, 갈미요(3절), 그 자손 중에 요엘도 있었으니→(그의 아들은) 스마야→곡→시므이→미가→르아야→바알→브에라니인데 브에라니는 두목으로서 앗수르에 잡혀갔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형제는 여이엘과 스가랴 등이었습니다.

2. 11~17절은 갓 자손이니 조사 당시의 족장은 요엘이었고, 조사 근거는 유다왕 요담과 이스라엘왕 여러보암(1세인지 2세인지 알 수 없음) 때에 기록된 족보라 하였고(17절), 부스→야도→여시새→미가엘→길르앗→야로아→후리→아비하일→족속 형제로는 미가엘, 므술람, 세바, 요래, 야간, 시아, 에벨…사밤, 야내, 사밧이라 하였고, 또 구니→압디엘→아히가족도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3. 23~24절은 요단 동편에 자리 잡은 므낫세 반 지파의 자손들로 그 족장은 에벨, 이시, 엘리엘. 아스리엘, 예레미야, 야디엘입니다. 이는 포로 이후 조사 당시에 있었던 족장들만 기록한 것입니다. 이들은 북왕국에 예속되었다가 25~26절에서 그들이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한 죄로 앗수르왕 불의 침략과 또 앗수르왕 디글랏 빌레셋의 침략으로 북왕국과 함께 망하였습니다.

 

제 84 과 레위 지파 사람들 (대상 6:) 목록으로


1~15절은 레위 아들(게르손, 그핫, 므라리) 중 제사장 곧 그핫(고핫, 출 6:16)의 자손으로 아므람(형제 이스할, 헤브론, 웃시엘)→아론(모세, 미리암)→엘르아살(형제, 나답, 아비후, 이다말)→비느하스→아비수아→북기→웃시→스라히야→므라욧→아마랴→아히둡→사독→아히마하스→아사랴→요하난→아사랴→아마랴→아히둡→사독(7~8, 11~12절은 조상의 이름을 3대 재연한 것임)→살룸→힐기야→아사랴→스라야→여호사닥(바벨론에 잡혀감)으로 레위부터 26대 제사장 계열을 기록하였고, 16~30절은 게르손의 아들(립니, 시므이) 또 므리리와 그핫의 다른 아들들의 기록으로 므라리→말리(형제 무시)→야핫(형제 립니→시므이→웃사→시므아→학기야→아사야)→십마→요아→잇도→세라→여아드래가 있고(29~30절), 사무엘의 아들들은 요엘과 아비야(삼상 8:1~2)라 하셨으며 31~38절에서는 다윗 당시에 찬양을 주도한 헤만의 족보를 기록하셨으니 이는 레위→그핫→이스할→고라→에비아삽→앗실→다핫→스바냐→아사랴→요엘→엘가나→아마새→마핫→엘가나→숩→도아→엘리엘→여로함→엘가나→사무엘→요엘→헤만으로 이어지고, 39~43절은 헤만의 형제 아삽이 헤만의 우편에서 직무를 맡은 중 그는 레위의 아들 게르손의 계통임을 말씀하셨으며 44~48절은 므라리의 자손이 헤만의 좌편에서 직무를 맡은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49~53절은 제단 업무를 수행한 아론의 자손들을 재차 열거한 것이고(1~15절), 54~70절까지는(54절의 아론의 자손 곧 그핫 족속이란 그핫의 손자가 아론이므로 제사장족을 뜻함) 그핫 자손의 거주지요, 71~76절은 게르손 자손의 거주지이며 77~81절은 므리리 자손의 거주지를 명시한 말씀입니다. 레위 지파는 성전 주위에도 있었지만 요단강 동서지역에 도피성을 세 곳씩 두었으므로 그 지역에 레위 지파 사람들을 파견하였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제 85 과 여섯 지파의 후손들 (대상 7:) 목록으로


1. 1~5절은 잇사갈의 아들들(돌라, 부아, 야숩, 시므론)이니 4형제중 돌라의 아들들은 웃시, 르바야, 여리엘, 야매, 입삼, 스므엘로 다 족장이며 용사이고, 웃시의 아들들은 이스라히야이며 (그의 아들들은) 미가엘, 오바댜, 요엘, 잇시야로 이들도 족장이요, 용사들이라고 하였습니다.

2. 6~12절은 벤야민의 아들들(벨라, 베겔, 여디아엘)로써 벨라의 아들들은 에스본, 우시, 웃시엘, 여리못이리요, 다 족장이며 용사라 하였고, 베겔의 아들들은 스미라, 요아스, 엘리에셀, 엘료에네, 오므리, 여레못, 아비야, 아나돗, 알레멧이니 다 족장급 용사이며 여디아엘의 후손들은 빌한, 여우스, 베냐민, 에훗, 그나아나, 세단, 다시스, 아히사할로 역시 다 족장급 용사들입니다(12절의 “일”은 7절의 이리임).

3. 13절은 납달리의 아들들로서 야시엘, 구니, 예셀, 살룸이니 이들은 빌하의 손자들입니다(창 46:24, 민 26:48~49).

4. 14~19절은 므낫세 아들들의 계보입니다. 므낫세 처의 소생은 아스리엘인데 여기에서 아스리엘의 후손은 기록되지 않았고, 이 후손들이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서편으로 나간 계열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므낫세의 첩은 마아가(훕빔과 숩빔의 누이)인데 거기에서 길르앗과 슬로브핫이 출생하였고, 길르앗의 아들은 세레스와 베레스요, 세레스는 울람과 라겜을 낳았고, 울람의 아들은 브단이요, 길르앗의 누이 함몰레겟은 이스훗과 아비에셀과 말라를 낳았고, 19절의 “스미다”(계열을 알 수 없음)의 아들들은 아히안, 세겜, 릭히, 아니암이요, 차자 슬로브핫은 딸들만 있었습니다(민 36:2~7).

5. 20~27절은 에브라임의 자손들로 수델라, 브리아가 있고(딸은 세에라), 수델라→베렛→다핫→엘르아다→다핫→사밧→수델라요, 브리아→레바(레셉)→델라→다한→라단→암미훗→엘리사마→눈→여호수아가 됩니다.

6. 30~40절은 아셀의 아들로 임나, 이스와, 이스위, 브리아이고, 딸은 세라요, 브리아의 아들들은 헤벨과 말기엘이 있고, 또 그 아들들도 있습니다.

 

제 86 과 벤야민, 에훗, 사울의 자손들 (대상 8:) 목록으로


1. 1~5절은 벤야민 자손으로 아들들은 벨라, 아스벨, 아하라, 노하, 라바요, 벨라의 아들들은 앗달, 게라, 아비훗, 아비수아, 나아만, 아호아, 게라, 스부반, 후람이라 하였고,

2. 6~28절은 에훗의 아들들인데 이 에훗은 삿 3:15~31에 기록된 사사이며 아들로 웃사, 아히훗, 사하라임이 있고, 사하라임은 두 아내 후심과 바아라를 내보낸 후 다른 아내 호데스에게서 요밥, 시비야, 메사, 말감, 여우스, 사갸, 미르마를 낳으니 다 족장들이며 또 아내 후심에게서 아비둘, 엘바알을, 엘바알은 에벨, 미삼, 세벳, 브리아, 세마를 두었고(17~18절, 다른 아들도 있음), 브라아는 아히요, 사삭, 여레못, 스바댜, 아랏, 에델, 미가엘, 이스바, 요하를 낳았고, 19~21절에서 시므이도 벤야민 자손으로 야김, 시그리, 삽디, 엘리에내, 실르대, 엘리엘, 아다야, 브라야, 시므랏이 있었고, 22~25절은 사삭의 아들들로서 이스반, 에벨, 엘리엘, 압돈, 시그리, 하난, 하나냐, 엘람, 안도니야, 이브드야, 브누엘이며 26~28절은 여로함의 아들들은 삼스래, 스하랴, 아달랴, 야아레시야, 엘리야, 시그리인데 이들은 다 당시에 족장들이며 예루살렘에 거한 사람들이었습니다.

3. 29~40절은 사울의 계보입니다. 사울의 근거지는 기브온이고, 조상은 여이엘(대상 9:35)입니다. 여이엘은 아내 마아가에게서 압돈과 술과 기스와 바알, 나답, 그돌, 아히오, 게셀을, 또 (다른 아내) 미글롯에게서 시므아를 낳았으니 이들이 예루살렘에 거하였다고 하였습니다. 33절의 “넬”은 사울의 조부인데 원조상 기브온 사이에서 생략되었고(삼상 14:50은 숙부로 되어 있으니 어느 것이 바른 것인지를 알 수 없음), 넬→기스→사울이요, 나단, 말기수아, 아비나답, 에스바알이요, 요나단→므립바알(므비보셋을 뜻함, 대상 9:40)→미가→비돈, 멜렉, 다레아, 아하스, 여호앗다요, 여호앗다는→알레멧→아스마윗 시므리요, 시므리는→모사→비느아→라바→엘르아사→아셀→아스리감, 보그루, 이스마엘, 스아랴, 오바댜, 하난이라 하였고, 아셀의 아우 에섹→울람, 여우스, 엘리벨렛이며 이들 중 울람의 아들들은 다 큰 용사라고 하였습니다.

 

제 87 과 1차 귀환자들의 이름 (대상 9:1~34) 목록으로


이 명단은 느 11:4~18에도 기록되었으나 그 명단이 똑같지 않으므로 기록합니다. 1절에 “열왕기에 기록된 것”은 성경 열왕기의 뜻이 아닌 역대 지략 같은 책일 것이며 두 곳의 기록이 약간 상이한 것은 조사 자료, 시기, 목적에 따라 달라진 것으로 사료됩니다. 또 자손을 아들로 표기한 경우도 있으니까요(삼상 14:50, 대상 8:33, 마 1:12, 대상 3:18~19). 2절을 보시면 “먼저 그 본성으로 돌아와서 그 기업에 거한 자들과 제사장들 레위인들 느디님 사람들의 명단이라” 하셨는데 여기의 “느디님”이란 아람어 음역으로서(성전에서 봉사하는) 잡역 또는 막일군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런 이름은 포로 후의 기록에만 있으므로 그때부터 노예로 생겨진 단체로 아셔야 합니다. 공동 번역이나 영문 번역에서는 “막일군”으로 번역되었습니다. 또 3절에서는 유다, 벤야민, 에브라임, 므낫세 자손들로서 예루살렘 거주자라고 하였습니다. 4절에서 유다의 아들 베레스 자손으로 바니→이므리→오므리→암미훗→우대가 있고, 5절의 “실로 사람”은 실로의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일 것이요, 아사야와 그 아들들이 있고, 6절의 세라(베레스 형제, 창 38:30) 자손 중 여우엘과 그 형제들이요, 7절에서 베냐민 자손 중에 살루(핫스누아→호다위아→므술람)요, 8~9절은 여로함(27절)의 아들로 이브느야와 미그리의 자손이니 이브니야→르우엘→스바댜→므술람이고, 미그리→웃시→엘라와 그 형제들이라고 하였습니다. 10~13절은 제사장들로서 여다야, 여호야립, 야긴, 아사랴(이히둡→므라욧→사독→므술람→힐기야→아사랴)와 또 아다야(말기야→바스훌→여로함→아라야)와 마아새(임멜→므실레밋→므술람→아세라→아디엘→마아새)니 이들은 다 그 집의 족장들이요, 전의 일을 수종들 재능자라고 하였습니다. 14~17절에서 레위 사람으로 스마야(하사뱌→아스리감→핫술→스마야)와 박박갈, 헤레스, 갈랄, 맛다냐(아삽→시그리→미가→맛다냐)와 오바댜(여두둔→갈랄→스마야→오바댜)와 베레갸(엘가나→아사→베레갸)요, 문지기에는 살루, 악굽, 달몬, 아히만과 그 형제(고라→에비아삽→고레→살룸)이라고 하였습니다.

 

제 88 과 다윗을 도운 용사들 (대상 12:) 목록으로


다윗이 사글락(블레셋 땅)에 있을 때는 집권하기 전이며 사울의 추격을 피하여 다닐 때입니다. 그때에 다윗은 가족들과 함께 400명의 군사를 갖고 있었다가 그 곳에서 나올 때는 600명으로 늘었는데(삼상 22:2, 23:13, 27:2) 그 당시에 이방족에서 귀순한 자들도 있었으니 그들이 곧 그렛 사람 블렛 사람들이고(삼하 8:18, 왕상 1:38, 왕하 15:18), 사울을 섬기던 용사들도 귀순하여 다윗을 도왔으니

1. 사울의 동족인 벤야민 지파에서 온 사람은 그 당시 두목이었던 아히에셀과 요아스(기브아 사람)와 스마아의 두 아들과 여시엘과 벨렛(아스마웻의 아들), 브라가, 예후(아나돗 사람), 이스마야(30인의 두목), 예레미야, 야하시엘, 요하난, 요사밧(그데라 사람), 엘루새, 여리못, 브라야, 스마랴, 스바댜(하룹 사람), 엘가나, 잇시야, 아사렐, 요에셀, 야소브암(이상은 고라 사람), 요엘라와 스바댜(그돌 사람 여로함의 아들)이었고,

2. 갓 지파에서 돌아온 용사는 역시 두목으로 있던 에셀과 오바댜와 엘리압과 미스만나, 예레미야, 앗대, 엘리엘, 요하난, 엘사밧, 예레미야, 막반내 11명으로 이들이 1000명을 관할하던 장관들이었으며 그때에 33인의 두목 아마새가 충성을 맹세하므로 군대 장관을 주었다고 하였습니다(16~18절).

3. 19~20절에서 “므낫세 지파에서도 왔으니 아드나, 요사밧, 여디아엘, 미가엘, 요사밧, 엘리후, 실르대로 이들은 천부장들이었습니다.

4. 사울이 죽고 나라를 다윗에게 돌리려 할 때에 사울왕 편에 있던 군사들이 헤브론에 와서 다윗을 전체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할 때 모인 군사들의 수가 다음과 같으니

1) 지파를 초월하여 먼저 온 군사들이 6,800명,

2) 시므온 지파에서 7,100명,

3) 레위 지파에서 4600명, 아론집의 족장들과 함께 한 자들 3,700명, 사독과 그 족속의 장관 22명, 사울의 동족 중에서 3,000명, 에브라임 지파에서 20,800명, 므낫세 지파에서 18,000명, 잇사갈 지파에서 200명, 스블론 지파에서 50,000명, 단 지파에서 28,600명, 아셀 지파에서 40,000명 그리고 요단 동편(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서 120,000명이 왔은즉 이 수를 합하면 다윗의 기본 군사 외에 추가된 군사가 302,822명입니다.

 

제 89 과 다윗의 용사들 (대상 11:) 목록으로


다윗이 여부스(예루살렘)를 점령하고 천도할 당시의 용사들을 살피면 가장 큰 두목으로 아비새(요압의 아우요, 다윗의 누이인 스루야의 아들임, 20절)가 있었고, 그 밑에 30인의 두목으로 세 사람이 있었으니 한 사람은 야소보암(학몬 사람, 창으로 300인을 죽임)과 엘르아살(아호아 사람 도도의 아들, 보리밭 가운데서 블레셋 사람을 죽임)과 이스막야(12:4)입니다. 그 다음에는 브나야인데 이 사람은 여호야다의 아들이고, 30인 보다는 귀하며 3인 보다는 못한 중 시위 대장을 하였으며 모압왕 아리엘의 두 아들을 죽였고, 또 함정의 사자를 죽인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군중의 큰 용사들로는 아사헬(요압의 아우), 엘하난(베들레헴 사람 도도의 아들, 엘르아살의 형제, 12절), 삼훗(하롤 사람), 헬레스(볼론 사람), 이라(드고아 사람, 익게스의 아들), 아비에셀(아나돔), 십브개(후사), 일래(아호아), 마하래(느도바), 헬렛(느도바 사람 바아나의 아들), 이대(벤야민 자손 기브아의 리배의 아들), 브나야(비라돈), 후래(가아스), 아비엘(아르바), 아스마웻(바하룸), 엘리아바(사알본), 기손 사람 하셈의 아들들, 요나단(하랄 사람 사게의 아들), 아히감(하갈, 사갈의 아들), 엘리밧(울의 아들), 헤벨(므게랏), 아히야(블론), 헤스로(갈멜), 나아래(에스배의 아들), 요엘(나단의 아우), 밉할(하그리의 아들), 셀렉(암몬), 나하래(베롯, 요압의 병기 잡은 자), 이레, 가렙(이델), 우리아(헷), 사밧(알래의 아들), 아디나(시사의 아들)와 그 종자 30인(르우벤 자손), 하난(마아가의 아들), 요사밧(미덴), 웃시야(아스드랏), 사마와 여이엘(아로엘 사람 호담의 아들), 여디아엘(시므리의 아들), 요하와(여디아엘의 아우), 엘리엘(마하위), 여리배와 요사위야(엘라암의 아들), 이드마, 엘리엘, 오벳(모압), 야아시엘(므소바)로 46명의 병사와 생략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30인의 두목”(11절)은 30명의 장군들을 거느린 두목이란 뜻이요, “30 두목 중 세 사람”(15절)은 30명의 장군들 중 세 사람을 뜻하며 “3인의 두목”(20절)은 야소보암, 엘르아살, 이스막야(12:4) 3인을 거느린 두목(아비새)이란 뜻입니다.

 

제 90 과 법궤 옮길 때의 사람들 (대상 15:) 목록으로


다윗이 오벳에돔의 집에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기록이 삼상 6:12~23에 기록되었으나 그 당시의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 본문에 자세히 있기로 기록합니다. 처음 옮기려 할 때의 집합수는 3만이었으나(삼상 6:1) 실패하였고, 다시 옮길 때는 아론 자손과 레위 자손을 모으니 그핫족 우리엘과 그 형제 120명, 므라리족 아사야와 그 형제 220명, 게르솜족 요엘과 그 형제 130명, 엘리사반 자손 중 스마야와 그 형제 200명, 헤브론 자손 중 엘리엘과 그 형제 88명, 웃시엘 자손 중 암미나답과 그 형제 112인(합 770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제사장은 사독과 아비아달이었고, 레위 사람으로는 우리엘, 아사야, 요엘, 스마야, 엘리엘, 아비나답을 불러 법궤 옮기는 일을 맡겼습니다. 그 당시에 노래(찬양)와 악기로 즐거운 소리를 내게 하였는데 여기에 참여한 사람이 헤만과 그 형제 중 베레야의 아들 아삽과 므라리 자손 중 구사야의 아들 에단을 앞에 세웠으며 그 다음에는 스가랴, 벤, 아시엘, 스미라못, 여히엘, 운니, 엘리압, 브나야, 마아세야, 맛디디야, 엘리블레후, 믹네야, 오벳에돔(문지기)과 여이엘을 세웠는데 이때에 헤만과 아삽과 에단은 놋제금을 쳤고, 스가랴부터 브나야까지는 비파를 탔으며 맛디디야부터 아사시야(마시엘, 20절)까지는 수금을 탔다고 하였습니다. 레위 사람 족장 그나냐는 노래에 익숙하여 찬양 인도를 하였고, 베레갸와 엘가나는 법궤 앞에서 문을 지켰으며 제사장 스바냐, 요사밧, 느다넬, 아미새, 스가랴, 보나야, 엘리에셀은 나팔을 불었으며 오벳에돔과 여히야는 베레갸, 엘가나처럼(23절) 법궤 앞에서 문을 지켰다고 하였습니다. 이들이 다 세마포 겉옷을 입었었고(27절), 크게 찬양하며 법궤를 메어 운반하였는데 그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의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심중에 업신여겼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법궤를 지정된 성소에 안치한 후 하나님을 섬기고(제물봉헌) 찬송하며 감사하는 책임을 주었으니 그 두목은 아삽이요, 다음은 스가랴, 여이엘, 스미라못, 여히엘, 맛디디아, 엘리압, 브나야, 오벳에돔(여두둔의 아들, 16:38), 여이엘이라고 하였습니다(대상 16:1~6).

 

제 91 과 다윗 시대의 인물들 (대상 18:~21:) 목록으로


다윗왕 때에 다윗을 대적한 이방왕은 소바의 하닷에셀(대상 18:3)이었고, 그의 군대 장관은 소박이었으며(대상 19:16) 다윗이 그들을 물리치자 하맛왕 도우(도이, 삼하 8:9)가 그의 아들 하도람(요람, 삼하 8:10)을 보내어 사례하였고, 이 당시에 암몬왕은 나하스였으나 그가 죽자 그 아들 하눈이 왕이 되었고, 다윗은 그 누이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아비새가 있으므로 대적을 치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그 당시 군대 장관은 요압, 대장은 아비새였습니다(대상 18:15, 19:11).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 아히둡의 아들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비멜렉은 제사장, 사워사는 서기관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블렛 사람을 관할하였으며 다윗의 아들들은 대신이 되었습니다(대상 18:14~17).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후 왕이 되어 블레셋과 싸울 당시에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도 베틀채 같은 창을 가진 자였고, 또 장대한 자로 십브개가 있었는데 이들을 대항하여 싸운 장수는 야일의 아들 엘하난이 그들을 죽였고, 또 6손가락, 6발가락을 가진 킨 큰 자를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인 요나단이 죽이므로 승리한 일이 있었습니다(대상 20:4~8).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하고 선견자 갓을 통하여 세 가지 재앙 중 온역을 선택하여 7만명이 죽었을 때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제사를 드린즉 “하나님이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사자를 명하여 칼을 꽂게(재앙중지) 하셨다”고 하였습니다(대상 21:1~30). 여기의 “여브스”는 예루살렘과 같은 지역입니다(대상 11:4). 다윗이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제사 드리려 할 때 오르난이 “제사드릴 기지(터)와 제물과 화목(나무)을 드리겠다”한즉 다윗은 “값없는 제사를 드릴 수 없다” 하면서 그 기지 값으로 금 600세겔을(삼하 24:24에는 타작 마당과 소 값으로 은 50세겔이라 하였는데 이 금액으 lck이는 사무엘상 기록은 제사 드릴 당시의 값을 치른 것이고, 대상 21:25의 기록은 제사 드린 후에 그 장소를 사서 유적으로 남긴 비용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상 22:1)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속죄제의 값을 드리지 않지만 예배를 드릴 때 감사의 정성으로 예물(구제비나 섬기는 의미)을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제 92 과 솔로몬 때의 중요 인물들 (대상 23:~24:) 목록으로


다윗은 죽기 전에 솔로몬으로 왕을 삼고 그 당시의 요직들을 계속하였습니다(대상 23:1~6, 24). 제사장은 30세 이상으로 계수하였는데 성전 사무원 24,000명, 재판관 및 유사 6,000명, 문지기 4,000명, 찬양대 4,000명이었고, 레위인직은 20세 이상으로 족장급들만 기록하였는데 레위의 아들은 게르손, 그핫, 므라리요(대상 6:1), 게르손의 아들은 라단, 시므이이며 라단의 아들은 여히엘, 세담, 요엘이고, 시므이의 아들은 슬로밋, 하시엘, 하란, 야핫, 시나, 여우스, 브리아입니다. 그핫의 아들은 아므람(아들은 아론, 모세), 이스할(아들은 슬로밋), 헤브론(아들은 여리야, 아마랴, 아하시엘, 여가므암), 웃시엘(아들은 미가, 앗시랴)이고, 므라리의 아들은 마흘리, 므시이며 마흘리의 아들은 엘르아살과 기스인데 엘르아살이 딸만 있고, 아들이 없이 죽자 그 동생 기스가 형수에게 장가드는 계대결혼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대상 23:22). 그리고 무시의 아들은 마흘리(삼촌 이름과 같음), 에델, 여레못입니다. 그 다음 24장에서는 아론 자손의 반차(성전 봉사를 위한 조편성)를 기록하였습니다. 아론의 아들은 4명인데 그 중 나답과 아비후가 일찍 죽었고(레 10“1~2), 엘르아살과 이다말만 남았는데 레위부터 솔로몬의 시대까지는 500년쯤의 세월이 흐른 뒤이므로 그때 계수(조사)한 사람들은 다 몇십대 후손들입니다. 그 대표적 후손에 엘르아살의 후손으로는 사독이고, 아다말의 후손으로는 아히멜렉인데 이 두 계열 중에 사독의 계열이 많이 번성하여 24 반차중 16 반차의 족장을 사독 계열이 맡고, 아히멜렉 계열에는 8 반차의 족장을 준 다음 거기에 딸린 반차 대원은 계열의 분별없이 나누어 24 반차로 제비를 뽑아 편성하였습니다. 대상 25:1~19에서 제비 뽑은 반차의 족장 이름을 열거하였는데 1)여호야립 2) 여다야 3) 하림 4) 스오림 5) 말기야 6) 미야민 7) 학고스 8) 아비야 9) 예수아 10) 스가냐 11) 엘리아십 12) 야김 13) 훕바 14) 예세브압 15) 빌가 16) 임멜 17) 헤실 18) 합비세스 19) 브다히야 20) 여헤스겔 21) 야긴 22) 가물 23) 들라야 24) 마아시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이름과 제도를 기록한 이유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제 93 과 선지자들의 이름 알기 목록으로


선지자는 하나님이 말씀을 계시하여 증언자로 쓰신 사람입니다. 아담과 노아 그리고 모세 당시의 70장로(민 11:24~25)는 계시는 받았으나 쓰시지는 않았으며 사울왕과(삼상 10:11) 느부갓네살(단 4:31)은 하나님이 그들의 행위를 통제하시기 위하여 계시를 주셨고, 또 성경에는 거짓 예언자들로 바람이나(민 22:5, 유 11) 그나야의 아들 시드기야(왕상 22:24) 같은 이도 있었습니다(렘 23:32). 선견자나 선지자는 같은 의미입니다(대상 29:29). 아브라함도 선지자였고(창 20:7), 모세(민 12:8, 신 34:10), 미리암(출 15:20), 기드온(삿 6:12~13)과 다른 사사들 중에도 계시를 받은 사람이 여럿이며 다윗도 선지자이고, 다윗 때에 나단(삼하 7:2), 갓(삼하 24:11)이 있었고, 또 열왕 시대에 아히야(왕상 14:12), 예후(왕상 16:7), 엘리야(왕하 18:22), 엘리사(왕하 6:12), 스마야(대하 12:5), 잇도(대하 13:22), 니믈라의 아들 미가야(왕상 22:8)가 있었습니다. 또 아삽과 여두둔도 선견자라고 하였습니다(대하 29:30, 35:15). 성경을 기록한 16명의 선지자가 있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 백과(284p)의 내용을 요약하면 주전 840~653년경의 선지자로 요엘, 요나, 호세아, 아모스, 이사야, 미가가 있고, 주전 666~600년경까지에 나훔, 하박국, 스바냐가 있었으며 유다의 멸망과 포로 기간인 주전 585~548년경에 예레미야, 다니엘, 에스겔, 오바댜가 있었으며 파사 시대의 선지자(주전 478~450년)로는 학개, 스가랴, 말라기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다 성경을 기록한 분들입니다. 훌륭한 선지자는 계시도 받고 교훈의 전도자도 되어야 하며 기록을 남긴 것도 훌륭합니다. 신약 시대에는 선지자의 사역을 사도가 대신 하였지만 예수님은 선지자의 으뜸이시며(마 21:11) 예수님 출생 당시에 제사장 시므온과 안나 할머니도 선지자였고(눅 2:25~26, 36), 사도 시대에 빌립의 딸들(4명)과 아가보란 사람도 예언을 하였은즉(행 21:9~10) 선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94 과 예수님의 계보 (마 1:1~17) 목록으로


예수님의 계보는 마 1:1~17, 눅 3:23~38 강론에서 설명드렸지만 여기서는 이름을 숙달하는 의미로 기록합니다.

1. 우선 마태복음의 족보에서는 아브라함 이전의 계보가 없은즉 눅 3:34~38을 인용합니다. 그 순서는 아담→셋→에노스→가이난(게난)→마할랄렐→야렛→에녹→므두셀라→레멕(라멕)→노아→셈→아박삿(아르박삿)→가이난(창 10:24에서 가이난을 건너뛰었음)→살라(셀라)→헤버(에벨)→벨렉→르우→스룩→나홀→데라→아브라함으로 이어지고,

2. 마 1:1~16에 근거하여 (아브라함)→이삭→야곱→유다→베레스→헤스론→람→아미나답→나손→살몬→보아스→오벳→이새→다윗→솔로몬(눅 3:31은 솔로몬의 형 나단으로 이어짐, 대상 3:5)→르호보암→아비야→아사→여호사밧→요람→웃시야(아사랴)→요담→아하스→히스기야→므낫세→아몬→요시야→여고냐(여호야긴, 왕하 24:6)→바벨론으로 이거하여 스알디엘→스룹바벨(대상 3:18, 스알디엘은 브다야를 낳고 브다야가 스룹바벨을 낳은즉 손자가 됨)→아비훗→엘리아김(여호야김, 왕하 23:34)→아소르→사독→아킴→엘리웃→엘르아살→맛단→야곱→요셉→예수님으로 이어집니다.

3. 그러나 누가복음에 나타난 족보는 다윗의 아들 나단의 계열로 이어졌기 때문에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왜 달라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마태가 기록한 족보는 혈통 계열대로 기록한 것이고, 누가의 기록은 요셉의 족보계열로 기록한 것입니다. 보통 아들이 없으면 양자를 들입니다. 선민들에게는 계대 결혼의 제도를 주셨기 때문에(신 25:5) 그 일이 더욱 가능하였습니다.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이 마태의 족보와 누가의 족보에 다 있는 것은 그 실예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친 요세의 이름도 양쪽에 다 있은즉 이는 요셉이 헬리의 집(눅 3:23)으로 계대 양자를 갔다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누가의 족보는 요셉의 양자 족보를 기록한 것입니다. 누가의 족보가 마태의 계보보다 수가 더 많은 것은 마태의 계보상에 상당 부분 생략된 것이 있다는 증거요, 그렇다고 하여 누가의 족보에는 생략이 전혀 없는 것이라고 믿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제 95 과 예수님 당시의 인물들(1) 목록으로


예수님 시대의 인물들은 많지 않은 편이어서 복음서를 2~3회 읽으면 대략 알게 되지만 이 글을 읽으면 더 잘 기억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계보상의 아버지는 요셉, 잉태 출산한 어머니는 마리아요, 그의 동생들(마리아와 요셉 사이에서 낳았다고 믿기는 어려움, 요셉이 마리아의 잉태로 조용히 끊고 헬리의 자부에게로 계대 결혼을 하였기 때문)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입니다(마 13:55, 막 6:3은 유다, 시몬으로 되어 있음). 예수님 시대의 관료들로 예수님 출생시의 로마 황제는 아구스도 가이사였고(눅 2:1), 사역 당시의 황제는 디베료 가이사였으며(눅 3:1) 예루살렘 총독은 본디오 빌라도였고(눅 3:1), 갈릴리 분봉왕은 헤롯이었고(눅 23:6~7), 헤롯의 동생 빌립이 이두매와 드리고밋의 분봉왕이었으며 루사니아는 아빌레네의 분봉왕이었습니다(눅 3:1). 예수님 탄생 당시의 헤롯은 대헤롯이라 하여 사역 당시 갈릴리 분봉왕 헤롯의 아버지입니다(마 2:1). 이두매의 분봉왕 빌립의 처는 세례요한을 죽인 헤로디아이고, 또 예수님 사역 당시의 대제사장은 실무자로 가야바였고, 또 은퇴자요, 가야바의 장인인 안나스가 있었습니다(눅 3:2).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출생한 (세례)요한이 있었고, 그의 부모는 제사장 사가랴와 아론의 자손 엘리사벳이며(눅 1:5) 그는 예수님을 소개한 사명을 끝내고 순교하였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는 베드로(본 이름은 시몬, 마 10:2, 수리아 말로 게바, 요 1:42, 아버지는 요한 또는 요나라 함, 마 16:17, 요 21:17), 안드레(베드로의 형제), 야고보, 요한(이 두사람도 형제요, 세베대의 아들임, 보아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이 있음, 막 13:17, 세베대의 아내는 살로메인데 예수님의 이모로 짐작함, 막 15:40, 16:1, 요 19:25, 마 27:56 비교),빌립, 바돌로매, 도마(디두모, 요 20:24), 마태(레위, 세리, 알패오의 아들, 막 2:4), 야고보(알패오의 아들), 다대오(야고보의 아들 유다, 셀롯인 열심당원, 눅 6:15~16), 시몬(사나안인), 유다(가룟, 시몬의 아들, 요 6:71), 전도 초기에 나다나엘과 빌립이 전도를 받았고(요 2:47), 니고데모도 변화를 받았습니다(요 3:1, 7:50, 19:39).

 

제 96 과 예수님 당시의 인물들(2) 목록으로


예수님 탄생 당시에 경건한 제사장 시므온이 있었고(눅 2:28~35),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과부된지 84년 된 노인, 눅 2:36)가 예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전도 사역을 하실 때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눅 8:3) 수산나와 다른 여자들도 섬겼으며 일곱 귀신에서 해방되고, 예수님을 잘 섬기다가 부활의 주를 처음 본 막달라 마리아가 있었고(눅 8:2, 막 16:9),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죽었다가 산 사람)와 그의 누이 마르다, 마리아가 있었으며(요 11:1, 눅 10:41~42) 거지 나사로도 있었습니다(눅 16:20).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가 뽕나무 위에서 예수님을 영접하였고(눅 19:2),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죽음에서 살리셨으며(막 5:22, 눅 8:41) 디메오의 아들이고 소경 거지인 바디매오가 눈뜸을 받았고(막 10:46),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있던 여인들 중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가 있었으며(요 19:25) 그 외에 초기부터 수종들었던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세베대의 아내, 살로메, 예수님의 이모로 추정)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후 잡히실 때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친 일이 있었고(요 18:10),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구레네 사람 시몬(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웠으며(막 15:21)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장례에 참여한 사람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청하여 받은 니고데모가 준비한 향품과 세마포를 제공하였고(요 19:39~40), 무덤을 제공한 사람은 아리마대 요셉이었습니다(마 27:57, 눅 23:50~51, 요 19:38). 이 요셉은 니고데모와 함께 관원(공회원, 요 3:1)이었는데 예수님을 정죄하려 할 때 옳다 하지 않았고, 드러나게 예수님을 따르지 않다가 나중에 나타나 봉사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가족들과 관원들, 탄생시의 경건한 사람들, 제자들, 섬긴 여인들, 은혜 받은 사람들, 장례 때에 있던 이들로 기억하실 수 있습니다.

 

제 97 과 사도행전의 인물들(1) 목록으로


사도행전은 누가의 기록이라고 합니다. 행 16:10, 17의 “우리”란 당사자는 바울과 누가를 의미합니다. 누가는 의원선교사이며(골 4:14) 누가복음의 저자도 됩니다(눅 1:3, 행 1:1). 누가는 사도행전을 기록하여 당시 유명한 사람 데오빌로(하나님을 사랑함의 뜻)에게 전하였고, 가룟유다가 죽은 대신 맛디아를 사도로 보충하였으며 그 당시에 바사바(유스도라 하는 요셉, 행 1:23)도 추천하였으나 제외되었습니다. 당시 제사장은 안나스 가야바, 요한, 알렉산더요(행 4:6), 사도 외에 새로 등장한 인물로 구브로 출신 요셉을 사도들이 바나바(권위자)로 이름을 고쳐 불렀고, 이 사람이 변화된 사울(바울)의 안내자 역할을 하였으며 바나바와 바울도 사도가 되었습니다(행 14:4). 사울이 변화될 때 아나니아 선지자의 기도가 있었고(행 9:17), 사울이 바울된 것은 선교사 파송 때부터였습니다(행 9:1, 13:1, 9). 존경받는 교법사 가말리엘이 있었고(행 5:34), 이단자 드단이 있었으며(행 5:36) 돈으로 능력을 사려한 사마리아 마술사 시몬(행 8:9~10)도 있었습니다. 7집사로는 스데반(순교, 행 7:59~60), 빌립(선교, 행 8:26~40),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가 있었습니다.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가 있었고(행 8:27), 욥바의 다비다(도르가, 행 9:36)가 죽었으나 베드로가 살렸으며 가이사랴의 백부장은 고넬료(행 10:1), 흉년을 예언한 아가보 선지자(행 11:28), 마가복음의 저자요, 바나바의 생질인 마가(골 4:10)는 누가와 함께 선교 사역에도 힘쓴 사람입니다. 마가 집의 소녀 로데(행 11:13), 헤롯왕(대헤롯의 손자, 아그립바 1세로 야고보 사도를 죽였고 완악하였음, 행 12:2)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가 있었고, 바울과 바나바를 청하여 말씀을 들은 구브로 총독 서기오 바울이 있었으며(행 13:7) 가이사랴에 주둔한 유대 총독은 벨릭스(행 23:24)요,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예루살렘에 주둔한 천부장으로 바울을 호송하였습니다(행 23:26). 또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변사 더둘로가 바울을 고소하였고(행 24:1), 벨릭스 총독 다음 사람은 보르기오 베스도(행 24:27)요, 그 당시 로마 황제는 “글라우디오”였습니다(행 18:2).

 

제 98 과 사도행전의 인물들(2) 목록으로


행 15:15의 시므온은 시몬 베드로요(벧후 1:1), 바사바라는 유다는 사도회의 연락책이었고(행 15:22), 바나바와 선교에 동행한 자는 그의 생질 마가요한이며 바울은 실라와 동행하였습니다(행 15:39~40). 더베와 루스드라에서 칭찬받는 성도 디모데(모는 유대인, 부는 헬라인, 행 16:1)가 있고, 두아디라에서 빌립보로 자주 장사한 루디아(행 16:14), 데살로니가에서 전도 받다가 봉변당한 야손(행 17:5~7), 헬라에서 믿게 된 사람 디오누시오와 다마리가 있었고, 본도 출신 유대인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행 18:2), 고린도의 성도 디도유스도, 고린도의 회당장 그리스보와 소스데네(행 18:7~8), 경오가 바른 아가야 총독 갈리오(행 18:12),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한 유대인 율법학자 아볼로(행 18:24~26), 에베소에서 서원을 경영한 두란노(행 19:9),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행 19:14)와 귀신 쫓는 시늉을 한 그의 일곱 아들, 바울을 돕고 바울이 고린도에서 마게도냐로 보낸 에라스도(행 19:22), 고린도에 거주한 은장색 데메드리오와 은감실 경영자 아데미(아데미는 여신의 이름이기도 함, 행 19:24, 27), 핍박을 안돈시킨 에베소 사람 원로 알렉산더(행 19:33), 바울 사도를 도운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행 19:29, 27:2),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마더(행 20:4), 더베인 가이오, 아시아인 두기고, 에베소인 드로비모(행 21:29)가 다 바울을 도운 자이며 드로아에서 집회 중에 떨어져 죽었다가 살아난 유두고도 있습니다(행 20:9). 또 행 28:7에 보시면 바울이 벨리데섬에 들어가서 보볼리오의 열병을 고쳐준 사실도 있지요. 이렇게 사도행전의 인물들은 많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사도들과 집사들 또는 순교한 스데반과 야고보, 바울과 바나바의 이방 선교를 도운 사람들과 그 열매 맺은 인물들, 그 당시의 관원들과 이단자들을 기억하시면 될 것입니다.

 

제 99 과 편지서의 인물들(1) 목록으로


로마서에 인용된 구약의 인물들은 아담,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 다윗, 엘리야, 이사야, 호세아요, 예수님도 나타냈고(롬 6:6), 아브라함은 다른 서신에도 자주 나옵니다. 로마서 16장의 문안 대상으로 많은 인물들이 나옵니다. 겐그레아 일군 뵈뵈는 천거를 받고 로마서를 전달한 여성이고, 생명을 걸고 섬긴 브리스가(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수고한 자 마리아, 친척이요, 함께 갇힌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먼저 믿은 헤로디온과 누기아, 동역자로 암블리아, 스다구, 무르바노, 아리스불로의 권속,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베나, 드르보사, 버시, 주 안에서 택함 받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곧 나의 어머니), 아순그리도, 블레곤, 허메, 바드로바, 허마와 함게 있는 형제들, 빌롤로고, 율리아, 네레오, 올름바(이들은 로마의 성도임), 동역자 디모데, 야손, 소시바더, 더디오, 가이오(온 교회식 주인),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가 있습니다. 고린도 전후서에는 형제 소스데네. 수세자 그리스보, 가이오, 스데바나가 있고, 아볼로, 게바, 바나바, 디모데, 브드나도, 아가이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저희 집에 있는 교회), 디보데와 함께 편지 전달한 자 실루아노(고후 1:19), 디도, 다메섹왕 아레다가 나타나며 갈라디아서에는 바나바, 디도, 게바, 야고보(갈 2:1, 11~13)만 나타납니다. 빌립보서에는 바울, 디모데(빌 1:1), 같은 마음 갖도록 권면 받은 유오디오와 순도게(빌 4:2), 도움의 대상 글레멘드(빌 4:3), 편지 전달자 에바브로디도(빌 4:18), 빌립보에 있는 관리(가이사의 집사람) 몇 사람이 있었으며(빌 4:22) 골로새서에서는 빌레몬의 종 오네시모(나중에 변화됨, 골 4:9), 아리스다고, 마가(바나바 생질), 유스도(예수), 그리스도 예수의 종 에바브라(4:12), 데마, 사랑 받는 누가와 눔바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있었고(골 4:14~15), 데살로니가 전후서에는 바울이 편지를 함께 전달케 한 실루아노와 디모데의 이름만 있습니다(살전 1:1, 살후 1:1).

 

제 100 과 편지서의 인물들(2) 목록으로


디모데 전서에는 인명이 거의 없고, 디모데 후서에서 교회 안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부겔로, 허모게네(딤후 1:15), 후메네오, 빌레도(딤후 2:17),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있으며(딤후 4:14) 덕을 세우는 인물로서는 오네시보로(딤후 1:16)가 있습니다. 특이한 기록은 얀네와 얌브레(딤후 3:8)인데 그들은 출애굽 당시 모세를 대적한 인물로 구약에는 이름이 없으나 바울 사도가 영감으로 알게 된 줄 압니다(출 7:11). 바울과 동역한 사역자들로서 세상을 사랑하여 사명을 떠난 데마(딤후 4:10), 갈라디아로 파송된 그레스게, 달마디아로 파송된 디도가 있고(딤후 4:10),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냈으며(딤후 4:12) 누가는 바울과 함께 로마에 있었고(딤후 4:11), 마가를 데리고 올 것과(딤후 4:11) 드로아 가보의 집에 있는 겉옷을 가져오라 하셨고(딤후 4:13), 딤후 4:19~21절에서는 디모데를 통하여 문안을 전해야 할 대상으로 브리스가 부부, 오네시보로의 집, 고린도에 체류한 에라스도, 밀레도에서 병든 드로비모 또 으블로, 부데, 리도, 글라우디아가 있습니다. 디도서에서는 동역자 바데마와 두기고(딛 3:12), 교법사 세나와 아볼로(딛 3:13)를 말씀하였고, 빌레몬서에서는 빌레몬과 그의 집에 있는 골로새교회(몬 1~2), 자매 암비마, 군사 아킵보,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또 갇히지 않은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에게 문안하신 말씀이 있습니다(몬 23~24). 히브리서에 인용된 인물은 아브라함, 모세, 예수님, 여호수아, 아론, 멜기세덱, 레위, 유다, 이삭,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아벨이요, “디모데가 놓인 것을 알라”(몬 13:23)하시므로 디모데도 갇힌 일이 있음을 알 수 있고, 야고보서에는 아브라함, 이삭, 라합, 욥의 인내란 말씀, 엘리야의 이름이 있고, 베드로전후서에서는 대필자 실루아노, 내 아들 마가(친했다는 뜻), 노아, 브올의 아들 발람이 기록되었고, 요한 3서에서는 서신을 받은 가이오, 으뜸 되려는 디오드레베, 이정을 받은 자 데메드리오가 있으며 유다서에는 야고보의 형제 유다, 가인, 발람, 고리가 있고, 계시록에는 충성된 증인 안디바, 발람, 발락, 이세벨, 다윗, 단 지파를 제외한 11지파의 이름이 있습니다(계 7:4~8).



(부록) 인물중심설교

제 1 과 아담과 하와(1) (창 1:27~28) 목록으로


앞으로 인물중심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았는가?를 공부하는 것은 바로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배우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인간들과 관계를 가지셨고, 그 사람이 하나님께 어떤 태도를 취하였느냐?하는 점이 오늘의 성도들에게 교훈도 되고 경계도 되는 것입니다. 또 인물중심으로 성경을 연구하면 친근감도 있고 재미도 있을 것입니다.

우선 이 시간은 창 1:~2:을 근거로 성경의 최초의 인물인 아담과 하와에 대하여 살펴 보겠습니다.

1.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창조를 받았습니다.

1) 언제 창조하셨습니까? 6일 창조 마지막 날에 지으셨습니다. 창조 5일에는 공중의 새와 물고기를 창조하셨고, 창조 6일에 땅의 생물과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필요한 만물을 먼저 지으시고 맨 나중에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2)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셨고 또 그 사람이 인류의 시조가 되었으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자요, 아버지이시며 또 인생의 주가 되심을 알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먼저 남자를 지으시고 그 이름을 “아담”이라고 부르셨는데(창 2:19, 3:9) “아담”의 뜻은 사람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무엇이냐”고 할 때 하나님의 창조와 통치 및 교제의 관계를 살피면 “모든 피조물 중에 하나님을 가장 많이 닮고 하나님이 가장 가까이 해 주시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 된 것입니다.

4) 하나님이 “아담”을 지으신 과정을 살피면 먼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창 2:7)고 하셨습니다. ①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는 뜻은 “흙에 포함된 요소로 몸의 재료로 쓰셨다”는 뜻이요 ② “지으셨다”는 뜻은 “몸의 형태를 만드셨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창 2:7에서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하셨으니까 몸의 형태를 만드신 것이요, 어느 정도 예술의 솜씨를 내셨는가?하는 점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③ “생기”란 하나님이 넣어 주신 생명을 의미하는데 이 생명에는 신앙적 영적 생명이 있고, 또 육체와 관계를 맺는 육체적, 정신적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④ 그리고 그것을 “코에 불어넣었다”는 뜻은 “생명을 주어 산 사람(생령)이 되고 호흡하게 하신 뜻”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5) 또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육체가 없으시니까 이 형상은 도덕적 형상을 의미하고 하나님의 고유 속성인 거룩과 의와 선을 인간의 속성에도 전달해 주신 것입니다. 거룩은 순결성(무흠)을 뜻하고, “의”는 정의성(죄 안되는 것)을 의미하며 “선”은 봉사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현재 인간에서 범죄성을 뺀 순결한 사람을 지으신 것입니다.

6)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만물을 다스리고 만물에 이름을 주며 혼인할 수 있는 성인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창 1:18, 2:19,24).

7) 이렇게 남자를 지으신 다음에 같은 날 “하와”도 지으셨습니다. 창세기 2장을 보면 “하와”를 지으신 기사 이전에 여러 가지 말씀이 나오지만 창 1:28에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하셨고, 창 2:1에서 “만물이 6일 안에 다 이루니라”고 하셨으므로 하와를 창조한 기사가 같은 날에 있은 사건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와”란 뜻은 생명 또는 산 자의 어미란 뜻입니다(창 3:20).

8) 하나님이 하와를 지으실 때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신 후 그 자리를 살로 대신 채우셨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실 때의 차이점을 생각한다면 ①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았고(딤전 2:13) 하와가 그 다음이며 ② 아담은 자연적 흙에서 육체의 요소를 취하셨지만 하와는 아담의 갈빗대로 육체의 요소를 취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흙과 갈빗대가 다른 것인가?”할 때 흙의 요소에서 몸이 되었고, 몸속에 갈빗대가 있는 것이니까 흙과 갈빗대는 같은 요소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남녀의 육체가 죽었을 때 아무 차별없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창 3:19). ③ 그렇다면 여자의 몸을 남자의 갈빗대로 만드신 의미가 무엇인가?할 때 여기에는 신체적 의미가 아닌 도덕적 의미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담이 하와를 아내로 취할 때 “이는 내 살중의 살이요, 뼈중의 뼈라”고 고백하므로 자기가 준 몸의 요소를 되찾은 것처럼 말한 것은 아내를 소중한 자기 몸처럼 생각할 것과 아내는 남편의 가슴에 안기므로 사랑받는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④ 그리고 아담과 하와를 지으실 때 같은 점은 성경기록에 생략이 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한 것과 생기를 불어 넣은 점이 되는 것입니다. ⑤ 이리하여 하나님은 남녀 성인 한 쌍을 자기의 형상대로 지어주셨고, 부부제도를 통하여 인류 생활이 시작되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복과 책임을 주셨습니다.

1) 복은(창 1:18) ① 생육번성하는 것과(28절) ② 식물성으로 먹을 것을 주신 것입니다(29절). 식물성 음식이란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식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동물성 식물을 허락하시지 않았습니다(창 9:3). 그리고 동물들에게도 푸른 풀을 식물로 주셨습니다(창 1:29~30). 이것은 최초의 동물들이 다 풀먹는 동물들이었음을 의미하고, 동물 세계에 약육강식이 생긴 것은 타락 이후에 변질된 생태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③ 살기 좋은 에덴 동산에서 살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2) 인간에게 주신 책임은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것이었습니다(28절). 사람이 생물을 다스리려면 그만한 수고와 책임이 따르고, 다스림받는 동물들은 다 순한 동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가 모든 동물을 한 쌍씩 방주에 넣을 때도 동물들이 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창 6:19). 따라서 맹수가 생긴 것은 후시대에 변질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인간은 타락 전부터 수고의 책임을 받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계율을 주셨습니다.

1) 이 계율은 모든 인류에게 주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2) 하나님이 계율을 주신 의미는 창조자와 피조물 간에 신분상의 구별을 짓고 인간이 창조자를 의식하며 또 계율을 잘 지키므로 복을 받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3) 그 계율의 내용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대신 “다른 생명 나무의 열매는 임의로 먹으라”고 하셨습니다(창 2:9, 16~17). ①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는다”는 뜻은 하나님의 뜻을 복종하므로 복받게 됨을 뜻하고 ②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선과 악을 작정하는 권세”는 하나님의 고유 권한입니다. 따라서 “선악과를 먹었다”는 뜻은 하나님의 권위를 침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어긴 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③ “그것을 먹었을 때 정녕 죽게 된다”는 뜻은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타락하였을 때 죽음이 올 것을 경고하신 것인데 이 죽음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는 영적 죽음이고, 또 하나는 영육이 분리되는 육체의 죽음이며 셋째는 영원한 심판을 받아야 하는 지옥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계율을 받은 아담과 하와는 그 계율을 엄히 잘 지켰어야 할 것입니다. ④ 이 계율을 신학적으로 “행위계약”이라고 합니다. 이 “행위계약”은 하나님과 인간간의 상호 계약이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하신 상태에서 맺은 것이기 때문에 이 계약 준수 여부에 따라 축복과 저주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가정 출발을 허락하셨습니다.

1) 하나님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은 좋지 않다”(창 2:18)하시고 “돕는 배필”로 여자를 지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부부생활에서는 반드시 아내가 남편을 도와야 하고 부부를 떠난 공동체적 입장에서는 남녀가 서로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고전 12:28, 엡 5:28).

2) 하나님이 아내를 남편에게로 이끌어 오셨으니(창 2:22) 이것은 중매와 성혼을 섭리하여 주시는 것이고,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라”한 것은 남편이 아내의 집에서 살도록 하신 것인데 이 제도는 교리가 아니기 때문에 그 후시대에 아브라함은 자기의 자부를 데려오기도 한 것입니다. 문제는 “부모 자식간 보다 부부지간이 더 가깝다”는 뜻입니다.

3) 그리고 “연합과 한 몸을 이룬다”는 뜻은 정신적, 육체적, 생활적 일치를 뜻하고

4) “두 사람이 벌거 벗었으나 부끄럽지 않음”은 수치를 모르는 무죄 시대의 특성인 동시에 자연스러운 부부생활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교훈받을 것은 ①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하나님의 소유물이란 점과 ② 하나님은 인간을 자기와 가장 가까운 교제의 대상으로 지으신 점과 ③ 창조자와 피조물을 엄히 구별하시기 위하여 계율을 주신 점과 ④ 인간이 계율을 지킴으로 행복하고 거스리므로 불행한 점과 ⑤ 인간을 마지막에 창조하여 모든 생필품을 허락해 주신 점과 ⑥ 부부일신 제도하에서 행복을 누리며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신 점 등을 교훈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무죄시대의 아담과 하와의 생활을 깊히 사모하셔야 할 것입니다.

 

제 2 과 아담과 하와 (2) (창 3:1~24) 목록으로


1. 아담과 하와의 가정생활이 계속되는 중에 이들이 범죄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1) 그 유혹의 경위는 사탄이 고등동물로 활동하는 뱀을 이용하여 먼저 여자를 유혹한 것입니다. 사탄이 여자를 먼저 유혹한 것은 마치 맹수가 약한 짐승을 먼저 사냥하는 것처럼 여자를 연약하게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벧전 3:7에서 “아내는 연약한 그릇이라”고 하셨으니 육체가 남자보다 연약한 것은 사실이고 또 유혹을 받을 때 의지를 굽히는 정신이 남자보다 약한 점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2) 뱀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율에 대하여 의문을 갖도록 “하나님이 참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더냐?”고 질문하였을 때 하와는 그 계율에 대하여 확실히 모르는 대답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하셨는데 하와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다”고 대답하였으니 계율의 지식이 부족한 것도 문제이지만 없는 계율을 부가하고(만지지 말라), 엄한 계율을 감축(죽을까 하노라)시키므로 진리를 가감한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는 것은 거스리는 일이며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이 빈약한 것은 그만큼 하나님을 멀리하는 태도와 같은 것입니다.

3) 이 때에 사탄은 하와의 진리 실력이 부족한 것을 틈타서 본격적으로 유혹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죽을까 하노라 하신 말은 거짓말이다 결코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져서 너희도 하나님처럼 지혜로워지고(선악분별), 또 하나님처럼 높아질까 하여 그렇게 하신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였을 때 하와는 그 거짓말을 분별할 능력이 없었고, 오히려 그럴듯하게 여긴 것입니다. “그럴듯하게 여겼다”는 뜻은 하나님의 계율을 어기고 사탄의 말을 듣는 것이 더 좋게 여겨진 것을 의미하고, 성경본문에서는 “보암직하고 먹음직하며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다”는 말씀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4) 결국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사탄의 말을 선택하여 계율을 어긴 것입니다. “실과를 따먹었다”는 뜻이 곧 계율을 어긴 것입니다.

5) 그리고 그것을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하므로 다른 사람에게 죄를 전가시킨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가 계율을 어기고도 속히 죽지 않는 상태를 보았을 때 사탄의 말이 맞는 줄로 착각하였을 것이요, 따라서 아내의 권면을 비판없이 받아 이행하므로 죄를 범한 것입니다. 신임하는 대상이라 하여 범죄의 유혹이 없을 수 없음을 유의하여 항상 주의하고 두드려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성경은 “품에 있는 아내도 믿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미 7:5).

2. 따라서 범죄의 결과가 임하였으니

1) 그들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는 지혜의 눈이 밝아진 것이 아니고 인간적 지혜, 즉 하나님의 뜻을 떠나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지혜가 밝아진 것이고

2) 또 “자기들이 벗은 몸으로 있는 것을 두렵게 여긴 것”(7, 10절)은 본래 무죄상태에서 벗은 부끄러움을 몰랐던 것인데(창 2:25) 그것을 부끄럽고 두렵게 여겼으니 이는 죄의 결과로 수치와 공포가 생긴 것이며

3) 여기에 따라 “무화과 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수치를 가린 것”도 인간의 방도를 따른 것이지만 무화과 나무 옷은 곧 마를 것이므로 완전치 못한 인간의 대책을 의미하며

4) 또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낯을 피하고 나무 사이에 숨었으니 이는 “정녕 죽으리라”하신 말씀에 따라 영적 죽음이 임하여 하나님을 피하고 멀리하는 결과를 나타낸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거듭나지 못한 자들이 복음을 듣고도 하나님 앞으로 나오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등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5)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끈질지게 두 남녀를 추적하여 대화를 하신 것입니다. 저희들은 여기서 “죄인을 찾아오신 하나님, 대화를 원하시는 하나님”(사 1:18), 또 “죄를 문책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6) 하나님이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하셨을 때 아담은 대답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주신 여자가 먹으라 하여 먹었다”고 핑계하며 죄책을 전가시키려 하였고, 또 하와에게 “어찌하여 그렇게 하였느냐?”하셨을 때 하와 역시 “뱀이 자기를 꾀었다”고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타락한 인간에게 두 가지 완악이 드러나는데 하나는 범죄에 대하여 쉽게 시인하지 않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힘써 다른 대상에게 떠넘기는 것입니다.

7) 이 사실을 아신 하나님은 먼저 뱀을 저주하셨고, 그 다음에 아담과 하와에게도 범죄로 인한 대가를 받게 하신 것입니다. ① 우선 뱀에게 하등동물로 도태시키는 선포를 내리신 후에 ② 아담과 하와에게는 사탄과 원수가 되어 서로 대결하되 성도가 사탄과 싸워 이길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창 3:15에 보시면 “여자와 뱀이 원수되고 뱀은 여자의 발꿈치를 상하나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담과 하와를 여자의 후손으로 표현한 것은 여자의 후손인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후손이라 하여 다 성도는 아니니까요. 따라서 사탄은 성도를 핍박하고 대적하지만 머리에 치명적 상처를 받는 것은 뱀이기 때문에 결국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으로 사탄이 패하고 성도가 승리할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최초 인간인 아담과 하와는 구원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8) 그러나 타락한 인간에게도 예언대로 죽음에 이르는 조치를 선포하셨습니다. 먼저 여자에게 ① 잉태의 고통과 해산하는 수고를 주셨고 ② 또 여자가 남편 밑에서 남자를 사모하며 그의 다스림을 받게 하셨으며 ③ 그 다음에 남자, 여자 공히 수고의 대가로 먹고 땀 흘리며 살다가 육체의 죽음을 맛보고 그 몸이 흙으로 돌아가야 할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또 이런 일들과 관련하여 자연계도 거칠어지게 된 것입니다(18절).

3.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아담에게 가죽옷으로 수치를 가리워 주시면서 생명과 따먹는 자유를 통제하셨습니다.

1) 하나님이 무화과 나무 옷대신 가죽옷을 입혀 주셨으니 이 “가죽옷”이란 범죄의 수치와 공포를 만회시켜 주신 의복으로 영구적인 의복이며 또 짐승(양)이 희생된 결과로 지어진 옷이기 때문에 이것으로 메시야 구속의 예표를 삼으신 것입니다.

2) 그리고 범죄 전에 임의로 먹게 하셨던 생명과를 임의로 먹지 못하도록 천사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셨습니다. 생명과를 먹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과 권고의 은총을 받는 복음적 신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류를 다 구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통제하셔야 하고 또 타락한 인간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다”(22절)는 것은 인간이 선악을 가름하는 자율권을 임의로 결정하면서 하나님의 자율권처럼 남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 그래서 인간의 행복 추구권을 상당하게 억제하시려고 에덴에서 쫓아내셨고, 또 근본 토지를 갈게 하시고, 영생의 길도 택한 백성으로 한정하신 것입니다. 22절에 보시면 “타락한 인간이 생명 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여 에덴 동산 지경에서 내보내셨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이 전적 타락의 교리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비택자에 한하여 구원과 신령적 은혜를 통제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는 생명과를 임의로 먹을 수 없게 되므로 전적 타락의 상태를 설명한 뜻이요, 따라서 하나님이 거듭남과 함께 신령한 복을 주셔야만 생명과를 먹을 수 있는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4) 결국 아담은 이런 통제 속에서 구원의 은혜를 받고(창 3:20~21) 가인과 아벨과 셋 등 자녀들을 낳고 살다가 10대 손자 노아 56세 때에 930세를 살고(창 5:4)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담은 ① 타락의 시조요 ② 범죄와 죄책을 후손들에게 전가시킨 조상이며 ③ 그가 범죄한 동기는 진리의 확신성 없는데서 유혹을 받았고 ④ 유혹을 받을 때 참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했으며 ⑤ 죄를 시인하지 않는 완악과 전가시키려는 핑계 등 온갓 좋지 않은 모범을 다 나타낸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육체의 조상인 아담을 본받지 말고 제 2의 아담인(롬 5:14) 예수님을 본받고 의지하셔야 할 것입니다.

 

제 3 과 가인과 아벨 (창 4:1~8) 목록으로


이 시간에는 “가인과 아벨”에 대하여 말씀을 상고하겠습니다.

1. 가인은 아담의 큰아들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성인으로 창조되고 부부생활로 인생을 시작하였으니까 자녀를 낳게 된 것입니다. 보통 결혼할 수 있는 나이는 20세쯤이므로 아담과 하와도 20세쯤의 성인으로 지음 받았을 것입니다. 가인 다음에 또 아벨을 낳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몇 살에 가인과 아벨을 낳았다”는 명시가 없는 점입니다. 이들은 선민계열이 아니기 때문에 연대를 중요시하지 않은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가인과 아벨을 낳은 후에 성경에 등장하지 않은 자녀들이 생산되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창 4:17에서 가인도 결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2. 가인은 농사짓는 직업을 가졌고, 아벨은 양을 치는 직업을 가졌습니다. 이 두 직업은 다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창 2:17에서 “아담이 수고하여 소산을 먹는다”하셨고, 또 창 3:23에서는 “에덴 동산에서 나와서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셨다”하셨으니까 가인이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 받은 것이므로 자연스럽고, 아벨이 양을 친 것도 농업의 일종으로 토지를 가는 것보다 더 취미로운 직업이었을 것입니다. 곡식이나 양젖이 양식을 삼는 일에 서로 필요하였을 것입니다. 인류는 시작부터 직업을 갖고 살았습니다.

3. 두 형제가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는데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만 받으신 것입니다.

1) 두 형제가 제물을 드린 시기는 “오랜 세월이 지난 때”였으니까(3절) 믿음의 발생이 어릴적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고 특정한 시기에 성령의 역사로 시작된 것입니다. 오늘날도 믿음생활이 연속되는 경우도 있지만 오랫동안 잠재한 상태에 있다가 어떤 시기에 와서 회개하고 시작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2) 이 때 가인은 땅의 소산(농산물)으로 제물을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물을 드렸는데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만 받으신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받으셨을까요? 계속되는 기사에서 노아의 제물(번제)은 축복의 말씀으로 받으셨고(창 8:20~21), 또 그 후에 아브라함의 제물을 불로 응답하신 사례가 있음을 보아서(창 15:17) 이 두 가지 중 한 가지 방법으로 응답을 나타내셨을 것입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응답을 받으신 이유와 안 받으신 이유를 살피는 것입니다. ① 아벨의 제물은 “첫 새끼”란 점과 “영양이 집합된 기름”이란 점이 정성드린 제물이고, 또 아벨은 형을 대항하여 싸우지 못할 만큼 포악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구속의 은혜를 모형하는 피의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대한 계시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가죽 옷을 입혀주신 의미를 아담이 얼마나 잘 깨닫고 그것을 자녀들에게 계몽하였는지 잘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갖는데는 구속적 은혜가 필수적 요건이기 때문에 응답된 제사에는 구속의 은혜를 믿는 신앙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벨의 제사에는 신앙과 정성과 착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② 그런데 가인은 어떠하였습니까? 소산으로 제물을 드렸는데, “소산” 그 자체가 제물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제사법에도 곡식을 드리는 “소제”가 있고, 또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예물”도 있기 때문입니다(레 6:14, 출 23:19, 느 10:35). 그런데 가인의 제물에는 “처음 익은 열매(소산)”란 설명이 없음을 보아서 정성없는 제물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제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물을 드리는 자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합하지 않으면 거절하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 1:13~16에서 “헛된 제물을 갖고 오지 말라…내가 받지 않을 것이니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손에 피가 가득하다”는 뜻은 “미움과 시기와 포악과 살인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포악한 근성이 제물 응답 실패와 함께 즉시 나타난 것을 보면 가인은 나쁜 성품의 타락성을 그대로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한 근성이 가인에게 많이 전가된 것입니다(벧전 1:18,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 또 가인이 피의 제사를 드리지 않은 것은 구속적 신앙이 없었던 결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가인의 제물을 안 받으신 이유는 “신앙성과 회개와 정성” 이 세 가지가 없었기 때문이며 이런 형태는 비택자나 외식자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는 현상입니다.

4.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가인의 살인 절차를 살펴보면

1) 분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부당한 것을 분하게 느끼는 것은 잘 하는 것이지만 정당한 것을 분하게 느끼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제물을 안 받으신 것은 정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정당한 일에 대하여 안색이 변할 정도로 분을 느꼈습니다. 왜 이런 분이 일어났을까요? 욕심, 시기, 미움, 포악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반성은 전혀 없고 동생이 잘 되는 것을 싫어하고 심지어는 하나님도 원망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책망을 받고도 오히려 범죄를 결심하였습니다. 자기의 제물 응답이 안 됐으면 먼저 자기 반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분히 여긴 것은 하나님을 거스리는 태도인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네가 왜 분히 여기고 안색을 변하느냐?”고 물으셨는데 가인은 대답하지 않는 완악을 나타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가인의 속에 “죄의 소원”이 있음을 지적하시고, “네가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에 엎드릴 것이다 죄의 소원이 네게 있으니 너는 죄를 다스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죄의 근성을 돌이키지 않는 자에게 죄의 지배자가 되도록 내버려두신 것입니다(롬 1:28). “죄가 문에 엎드린다”는 뜻이 곧 죄를 지배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가인은 “죄의 소원이 자기에게 있다”는 하나님의 경고를 들었을 때, 8절에서 “그 사실을 아벨에게 고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아벨아 하나님이 나를 죄의 지배자라고 하셨으니까 너도 그런 줄 알아라”하는 식으로 공갈을 치고 아벨을 죽일 결심을 한 것입니다.

3) 그래서 들에 있을 때 동생 아벨을 서슴지 않고 돌로 쳐서 죽인 것입니다. 최초의 인간이 그만큼 타락하였으니 오늘날 “막가파”가 생긴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요, 범죄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류가 사는 것은 하나님의 기적적 보호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4) 가인은 하나님의 책망을 받았을 때 아담보다 더 완악하였습니다. 아담은 핑계만 하였지만 가인은 거역하고 거짓말하고 반항하고 또 회피하였습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할 때에 “내가 죽였습니다”하지 않고 “내가 알지 못합니다”한 것은 거역이고 거짓입니다. 또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한 것은 회피입니다. 완악한 자는 이렇게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거짓말하며 회피하고 반항하는 것입니다.

5) 그 후에 하나님이 사실을 지적하시고 벌을 가하시니까 회개하지도 않고 살려달라고만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핏소리가 땅에서 내게 호소한다”하시므로 살인한 사실을 지적하셨고, 그로 인하여 “네가 밭을 갈아도 효력이 없을 것이며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 것이라”(12절)고 하셨습니다. “땅에서 피한다”는 뜻은 “범죄자가 도망 다니는 것”을 연상하시면 될 것입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징벌 선포를 받았을 때 “죄벌이 너무 중하다”(13절)고 하였으니 역시 회개하지 않는 태도인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는 하나님과 떨어져서 유리하며 살 것인데 만일 자기를 만나는 자가 동생을 죽인 살인자라 하여 죽일 것인즉 죽지 않도록 은혜를 달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6) 이 때에 하나님께서는 비택자인 죄인이라도 세상에 살도록 용납을 하셨습니다. “너를 죽지 않게 할 것이다 너를 죽이는 자가 있으면 7배의 벌을 받게 할 것이다”하시고 그가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표를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① 왜 살인자를 용납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1차적 징계를 가하셨고, 또 마지막 심판이 있으니까 많은 죄인들이 그때를 인하여 용납받는 것처럼 내버려두신 것입니다. ② 또 “가인을 죽이면 왜 7배나 벌을 준다”고 하셨을까요?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고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요 14:6, 롬 12:9) 인간이 심판자를 자처하는 것은 큰 죄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은 선민만 세상에 살게 하신 것이 아니고 비택자나 악인도 섭리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③ 가인을 죽지 않게 하는 “표”는 어떤 것일까요? 여기의 “표”는 “어떻게 하신다”는 내용의 암시요, 상징입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니 내가 너희를 구원할 것이라”는 표를 할례와 세례로 주셨습니다. 국민된 표는 주민등록증인데 그렇다면 살인자 가인이 보호받을 수 있는 표는 무엇일까요? 성도의 세계에서 통할 수 있는 것은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니 살인하지 말라, 원수 갚지 말라, 심판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계율이고, 믿지 않는 세계에서 함부로 사람을 죽일 수 없는 계율은 인권과 사회적 법률제도 또는 자기의 방어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원리와 사상을 인류들에게 펼쳐서 무질서하게 살인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일반적 보호 섭리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④ 그런데 가인은 에덴 동편 “놋”(유리함) 땅에 와서 성을 쌓고 그 이름을 “에녹성”이라고 하였으니 유리하는 자가 성을 쌓은 것은 자기 보호를 위한 수단입니다. 그것이 나중에는 바벨탑으로 이어졌습니다. 따라서 아담에게 표를 주신 의미에는 “자구책”도 포함이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저희들은 응답받는 제물에 대한 것과 악인의 근성과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 섭리를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악인의 근성을 정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제 4 과 셋과 라멕과 에녹 (창 4:16~26, 5:21~24) 목록으로


이 시간에는 “셋과 라멕과 에녹”에 대한 말씀을 상고하겠습니다.

1. 먼저 “셋”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죽은 “아벨”을 대신하여 주신 아들입니다. 아담의 아들로서 선민계열이 이어져야 하기 때문에 이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아담은 처음 “가인”을 낳았을 때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창 4:1)고 하였습니다. 본문 25절을 보시면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하였으니 여기의 “씨”란 뜻은 둘째 아담인 예수님을 탄생시킬 계보의 씨를 의미하는 것입니다(눅 3:38). 26절에 보시면 “셋이 장성하여 ‘에노스’를 낳았고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하였습니다. 이 뜻은 제3과에서도 말씀드린바와 같이 희귀한 선민 중에 신앙활동이 처음부터 있은 것이 아니고 생애 도중에 은혜를 받고 믿음 활동이 나타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최초의 인간이라 하여 오늘날 성도들처럼 모태 신앙으로 커서 꾸준히 예배드리고 주일 지키는 것처럼 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셋”은 메시야 계열의 연결 역할만 하였습니다. 특별한 신앙행위가 나타나 있지 않지만 “선민의 계열”이라는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택자 계열을 말씀하실 때는 연대관계를 나타내지 않으셨지만 “셋”은 아담이 “130세에 낳았다”고 명시하셨고, 선민계열을 말씀하실 때는 계속하여 연대를 짚을수 있도록 기록을 하셨습니다.

2. “라멕”에 대한 것입니다.

1) “라멕”은 비택자 가인 계열의 대표적 인물로 아담의 6대손입니다. 그 중간에는 에녹, 이랏, 므후야엘, 므드사엘이 있지만 이들도 역시 비선민 계열의 연결 역할만 하였고, 7대에 와서 불신자적 특징을 드러내는 인물이 나타난 것입니다.

2) 그 특징으로 “라멕”은 두 아내를 취하므로 최초의 조상 아담의 일부일처제를 파괴하였습니다. 일부일처제의 제도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라멕이 두 아내를 거느린 것은 하나님의 계율과 가정의 윤리를 동시에 파괴한 것입니다.

3) 그런데 거기에서 낳은 자녀들이 다 세속적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첫 아내 “아다”에게서 낳은 아들은 “야발”인데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장막에 거하여 육축을 친다”는 뜻은 짐승을 집에 가두어 놓고 먹이는 축산을 뜻하는 것입니다. 농사 짓는 일보다 재물 모으는 일이 더 능률적이었을 것입니다. 돈은 불신자들이 더 잘 버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그리고 둘째 아들은 “유발”인데 이 사람은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수금과 퉁소를 좋아하는 것은 바로 세속적인 향락을 좋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노래방에 잘 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그런 취미와는 거리가 멀어야 할 것입니다. 다음 두 번째 부인 “씰라”에게서는 “두발가인”을 낳았는데 이 사람은 동철로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생명을 죽이는 창, 칼, 화살, 올무 같은 것을 잘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런 날카로운 기계는 사냥에만 쓰는 것이 아니고 전쟁에도 씁니다. 이렇게 비택자 라멕의 후손은 평화에 반대되는 역할을 하는 조상이 된 것입니다.

4) “라멕”은 6대조 할아버지 가인을 본받아 살인을 하였습니다. 23절에 보시면 “나의 상함과 창상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다”하였으니 상함과 창상을 당한 것은 자기의 몸에 받은 상처일지라도 그것으로 인하여 소년을 죽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어떤 소년이 과실로 “라멕의 몸에 상처를 가하였다”할 때 그 보복으로 그를 죽이면 안되지요. 제가 운전을 하다가 부주의로 앞 차의 밤바를 살짝 밀었는데 20대 운전사 아이가 내려와서 가혹한 욕을 하는 것을 듣고 너무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악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큰 보복을 당할 수 있으니까 항상 주의하셔야 합니다. 라멕이 살인을 했을 때 두 아내가 “벌받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염려하였을 것입니다. 그때 “라멕”이 말하기를 “두 아내여 내가 사람을 죽였지만 6대조 할아버지 가인도 그 동생을 죽였을 때 하나님이 그를 해롭게 하면 7배의 벌을 준다고 하셨다 아마 나를 해롭게 한다면 77배의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하고 큰 소리를 친 것입니다. 이것이 곧 회개하지 않는 자의 자만하고 오만 불손한 태도인 것입니다. 이 라멕은 오래 못살았을 것입니다. 두 아내 거느린 일과 포악이 그 수명을 단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에녹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창 5:21~24). 에녹은 셋의 계열이고 라멕이 가인의 5대손이면 에녹은 셋의 5대손입니다. 대수는 같아도 셋이 가인보다 100세쯤 어렸기 때문에 시대적으로 선민의 계열이 100년쯤 뒤떨어졌을 것입니다. 셋으로부터 에녹 사이에는 “에노스”와 “게난”과 “마할날렐”과 “야렛”이 있었습니다. 그들도 특별한 신앙의 기록이 없이 선민 계열의 가교 역할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담을 포함한 7대에 와서 하나님과 동행한 인물이 나온 것입니다. 21절에 보시면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300년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1) 에녹도 65세 전에는 믿음생활이 뜨겁지 않았으나 65세 되어 “므두셀라”를 낳은 다음부터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뜨거워진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성령충만의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늙어서 받는 은혜를 사모하여야 하겠습니다.

2)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생활을 어떻게 하였을까요? “영”으로 계신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는 것입니다. 마음에 모신 하나님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앉든지 서든지 다니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눕든지 잠든 시간을 빼고는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고 즐거워하며 경외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행하였을 것입니다. 저희들도 되도록 세속주의에 마음을 뺏기지 말고 말씀묵상과 기도와 순종과 사명에 힘쓰는 생활로 주님과 동행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데려가셨다”는 뜻이 무엇일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동행한 자를 복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있는 에녹을 “신령한 몸으로 변화시켜 천국으로 데려가셨다”는 뜻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도 그런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도 역시 신령한 몸으로 같은 성질의 부활체일 것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죽음을 맛보지 않은 것도 큰 은혜이려니와 부활에 대한 계시의 모범자가 되었고, 또 천국의 영광을 몇 백년 앞당겨 누리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악인의 계열은 다분히 세속적이면서 죽음으로 달려가고 의인은 세속을 멀리하므로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달려간다는 사실을 라멕과 에녹의 생활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제 5 과 노아 (창 6:9~22) 목록으로


이 시간에는 “노아”에 대하여 교훈을 받겠습니다. 노아는 아담의 나이 884세 때에 가인의 후손이 아닌 셋의 후손 라멕의 아들로 태어났고 따라서 아담 이후 10대에 해당하는 사람입니다. 노아는 500세 이전에 자녀를 생산하지 못하였다가 500세가 된 후부터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습니다. 노아가 500세 되도록 자녀 생산을 못한 것은 하나님이 막으셨기 때문이요, 딸은 낳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1. 그리고 노아가 살던 당시에 죄악이 많이 관영되었습니다(5절). 그 죄악의 내용을 보면

1)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간에 구별없는 혼인이 있었으니(창 6:1~4) 이것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선민을 뜻하고 “사람의 딸들”은 비선민을 뜻하는데 요즈음으로 말하면 성도가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거룩하심 같이 성도들도 거룩하라”(벧전 1:16)하셨고, “그리스도와 마귀가 어찌 조화되며 신자와 불신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성도;고전 6:19)과 우상이 어찌 일치되겠느냐”(고후 6:15~16)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옷을 입지 말고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라”(신 22:10~11)고 하시므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엄격한 구별을 교훈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런 분별을 못하니까 크게 노하신 것입니다.

2) “인간들의 마음과 생각과 계획이 처음부터 항상 악할 뿐이었다”(5절, 8:21)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 지은 것을 한탄하시고 근심하신 나머지 결국은 지면에 있는 모든 생물체를 120년 후에 쓸어 버리시기로 작정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탄하시고 근심하셨다”는 뜻은 섭리적 계획의 후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자율적으로 타락한 상태를 못마땅하게 여기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판을 작정하시고 120년을 기다리신 것은 “오래 참으시면서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벧전 3:20). 이 기간은 오래 참으시는 기간도 되고 또 노아가 방주를 짓는 기간도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물심판을 하시려고 작정하셨을 때 노아의 가족만큼은 모든 악인 중에 의로웠기 때문에 은혜를 힘입혀 주신 것입니다. 8절에 보시면 “노아는 은혜를 입었다”고 하셨습니다.

1)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음에 대하여 네 가지 미덕이 있었습니다. ① 의인이요 ② 완전한 자이며 ③ 하나님과 동행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방주를 짓도록 명령받은 다음에 나타난 사실로 ④ 온 가족으로 더불어 120년동안 순종을 잘 한 것입니다. 따라서 노아는 가족의 일치와 순종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또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한 것은 에녹의 사례와 같은 것이고 순종을 잘 한 것은 오랜 기간 방주를 짓고 방주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사실이며 가족을 잘 다스린 것도 역시 방주 짓는 과정에서 불순종한 가족이 없이 잘 합력한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2) 그러면 하나님이 노아의 의로운 생활을 보시고 은혜를 베푸신 것인가?할 때 노아의 의가 구원받을만한 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받을 의는 완전 결백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롬 3:10). 따라서 노아의 의는 악인들의 범죄에 비할 때 뛰어날 만큼 의로웠던 것이고 하나님은 그런 자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현실적인 축복(죽음에서 건짐받는 것)은 인간의 의가 절대적 요건이 됩니다만 영생 구원의 복을 주시는데는 참작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가족을 구원하시는 방도로 방주를 짓게 하셨습니다.

1) 창 6:13~16에는 방주 짓는 명령과 방도를 말씀하셨고, 창 6:22과 창 7:5에서는 노아가 “명대로 다 준행하였다”는 말씀을 두 번 강조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순종이 뛰어났다는 뜻입니다. 산 위에 큰 배를 만들되 120년 가까이 끌면서 조선작업을 한 것은 보통 순종이 아닙니다. 따라서 노아는 순종을 생활로 여긴 것입니다. 그리고 다 완성되었을 때 지상의 생물들 암수 한 쌍씩과 또 먹을 것을 싣고 자기 가족들이 함께 들어가는 것까지 다 순종한 것입니다. 맑은 날씨에 산에서 배를 만드는 작업을 120년 가까이 한 것이나 배를 다 만든 다음 비오기 한 주간 전에 입주를 완료하고 1주간을 기다렸으니까 믿음도 대단하고 순종도 대단한 것입니다. 이 순종이 끝났을 때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그를 닫아 넣었다”(창 7:17)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닫아 넣으셨다”는 뜻은 노아 가족의 구원으로 끝내시고 더 이상 입주할 수 없게 하신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2) 그때는 노아 600세였고, 2월 17일부터 40일간 비가 왔으며 땅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150일이 되자 하나님이 바람을 불게 하여 구름과 물을 걷히게 하셨으며(창 8:1) 그 배는 하나님의 바람에 떠다니다가 아라랏 산에 닿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배의 정착할 곳을 인도하셨고, 노아는 하나님의 인도 섭리에 맡겼으며 배가 땅에 닿고 물이 걷히므로 1년 7일만에 땅을 디디게 된 것입니다.

3) 노아는 땅에 내리자 단을 쌓고 정결한 짐승과 새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습니다(창 8:20). 이 제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과 감사의 제사였을 것입니다. 이 때에 하나님은 제물의 향기를 흠향하시고 이미 약속한(창 6:18) 언약을 말씀하셨습니다(창 9:1~17).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주신 언약은 ① 사람으로 인하여 다시 땅을 저주하지 않을 것이라(창 8:21)는 것과 ② 땅이 있는 동안 심음과 거둠과 추위, 더위의 계절과 낮과 밤이 쉬지 않을 것이라(창 8:22)는 말씀과 ③ 노아의 가족들에게 아담 때처럼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실 것”과(창 9:1) ④ 모든 생물을 노아의 손에 붙여 주시고 그 당시에 모든 채소가 다 없어졌으므로 “산동물을 식물로 삼으라”고 하신 것과(창 9:3) ⑤ “고기를 먹되 피는 먹지 말라”(창 9:5)하신 것입니다. 피는 생명이므로 인권과 모든 생명을 귀히 여길 것과 또 그리스도의 보혈로 속죄의 은총 주실 것을 계시하시는 뜻으로 피를 삼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이후에는 상징적 의미로서의 피를 삼가야 할 이유는 끝나게 되었습니다(히 8:13). ⑥ 그리고 이상과 같은 내용을 언약으로 주신 것을 증명하는 뜻으로 “무지개를 나타내 보이신다”(창 9:13, 16)고 하셨고, 또 “하나님은 자기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는 분이라”(창 9:16)고 하셨습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저희들은 ① 노아가 은혜를 힘입은 의미(악인에 비할 때 완전함) ② 노아의 의로움과 완전함과 동행함 ③ 그리고 뛰어난 순종과 인내 ④ 가정화합 ⑤ 하나님의 인도 섭리에 자기의 생애를 맡기는 신앙 ⑥ 하나님이 흠향하실 만한 제사를 드리는 신앙 ⑦ 제 2의 모범적 조상이 된 사실 등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제 6 과 노아와 그 후손들 (창 9:18~29, 11:1~9) 목록으로


이 시간에는 “노아와 그 후손들”이란 제목으로 교훈을 받겠습니다.

1. 노아의 마지막 기사에서 ① 노아의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으로 말미암아 인종이 번성한 것과 ② 노아가 농업을 시작한 사실과 ③ 포도주를 과음하여 실수한 사실 ④ 또 효도와 관련하여 세 아들들에게 예언한 사실이 기록되었습니다.

1) 노아가 농업을 시작한 것은 조상 “아담이 근본된 토지를 갈았다”하신 것처럼(창 3:23) 당연히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본문의 “농업”이란 표현은 “포도나무를 심었다”는 표현과 비교할 때 농사의 기술이 상당히 발달한 것을 의미합니다. 또 포도주를 만들어 먹은 것도 음식 가공의 기술이 있었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2) 그런데 노아가 포도주를 과음한 상태에서 하체를 드러낸 것은 큰 실수였습니다. 이 사실에서 인간은 단정한 생활을 하여야 하고, 단정한 생활을 해하는 과음도 문제이며 아들들에게 하체를 드러낸 것과 “함”이 아버지의 수치스러움을 형제에게 고한 사실이 다 잘못에 해당하는 행동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따라서 노아는 과음과 단정하지 못한 태도와 하체를 보인 일이 잘못한 것인데 하체를 드러낸 일이 잘못이란 점은 타락 이후부터 벗은 몸을 수치스럽게 여겼고, 또 하체나 벗은 몸이 음행성의 동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이 사실을 발견한 “함”은 아비의 수치를 다른 형제에게까지 알리면서 스스로 가리워 드릴 체를 하지 않았고, 다른 두 형제는 아버지의 수치를 목격하지 않고 덮어드리기 위하여 옷을 갖고 뒷길질하여 가리워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벧전 4:8). 상습적이 아닌 우발적 범죄는 잘 가리워주고, 재범하지 않도록 주의시키는 것이 잘 하는 일입니다(갈 6:1).

2. 노아의 실수와 관련한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1) 노아의 도덕적 실수에 대한 하나님의 문책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하나님은 노아를 책망하지 않을 수도 있고, 책망의 내용이 생략되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이 많은 노아의 실수인고로 간과하셨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들을 문책하신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2) 노아는 잠이 깬 후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가나안은 함의 아들이니까 함의 후손을 저주한 것입니다. 불효와 관련이 없는 셈과 야벳의 종이 될 것을 예언으로 저주한 것입니다. 창 10:1~20에 보시면 함의 후손들이 가나안 지경과 아프리카 쪽으로 퍼져 나간 것을 알 수 있고, 그 지역들은 흑인들이 사는 곳으로 대부분 미개한 지역임을 알 수 있으니 노아의 예언이 성취된 것도 중요하려니와 아비에게 불효한 죄값이 그 후손들에게 가혹하리만큼 나타난 것을 볼 때 불효의 죄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쉽게 표현할 때 하나님께 효도하면 영생과 상급을 받고 부모에게 불효하면 현세에서 가장 비천해지며 또 부모에게 효도하면 현세의 복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3) 셈에 대하여는 “셈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하였으니 이 말씀은 셈이 신령한 복을 받아 하나님을 경외하고 선민의 조상이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선민된 아브라함이 셈의 후손이요, 메시야 계열로서 복을 받았고, 셈과 함께 아비의 수치를 가리워 효도한 야벳 역시 “창대한 복을 받으며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한다”하셨으니 여기의 창대한 복은 현실의 복이고, “셈의 장막에 거함”은 셈이 섬기는 하나님을 함께 경외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또 셈족은 아시아 동쪽으로, 야벳족은 서북쪽(유럽과 서양)으로 흩어졌습니다.

4) 중요한 것은 노아의 예언입니다. 하나님이 노아를 예언자로도 쓰셨고, 또 노아에게 축복과 저주권을 주신대로 하나님이 함께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축복 아닌 저주가 영구적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상당 기간 그렇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출 20:5에 보시면 “죄를 갚으실 때는 3,4대까지, 은혜를 베푸실 때는 수천대까지 하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징벌에는 기한이 있고, 은혜에는 기한이 없습니다. 영생의 은혜이니까요. 오늘에 와서 함의 계열이라 하여 노예 생활이 계속 되거나 복음의 길이 가리운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노아의 예언대로 상당 기간을 노예와 같은 신세로 살았습니다. 인류의 두 번째 역사가 시작되는 입장인만큼 은혜를 받은 노아는 하나님 다음가는 권위를 가졌다고 보아도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10장에서 노아의 세 아들에 대한 후손들과 그들이 살던 지역을 말씀하셨는데 “그들이 다 열국 백성들로 나뉘었다”(창 10:32)고 하셨습니다.

3. 마지막으로 노아의 후손들이 서로 서로 멀리 흩어지게 된 경위를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곧 바벨탑의 역사입니다(창 11:1~9). 처음에 노아의 아들들은 한 가지 언어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손들이 동방으로 옮겨 시날평지에 왔을 때 벽돌과 진흙으로 높은 대를 쌓았습니다. 애굽에 피라밋이 있고, 압록강 건너에 장군총이 있는데 그것이 무덤이기는 하지만 높이 쌓았다는 뜻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이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자기들의 이름을 나타내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았고(출 20:1~7), 또 “땅에 충만하라”(창 8:1)하셨는데 그 반대로 행하니까 하나님이 자기의 뜻을 거역하는 일을 금지시키기 위하여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니 그들이 쌓던 작업을 중단하게 되었고, 따라서 언어가 통하는 세계들끼리 따로 흩어지게 된 것입니다. 노아의 후손들은 노아가 120년간이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생활을 잘 본받지 못하였습니다. 또 “성과 대를 쌓고 흩어짐을 면하자”한 이유는 창조자 하나님을 의지함보다 인간의 힘을 의지하여 보려는 과시요, 교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사는 인간들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다만 인간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겸손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원하시는 것입니다(미 6:8).

이상의 말씀에서 저희들은 ① 노아의 실수와 ② 그 아들의 불효와 효도에 따른 예언과 ③ 그 후손들의 인간 과시로 하나님의 제재가 가하여졌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제 7 과 아브라함(1) (창 12:1~9) 목록으로


아담의 아들 셋의 계열로 20대에 “아브라함”이 출현합니다. 연대로 따지면 주전 2169년이고 아담으로부터 계산하면 1948년입니다. 20대 계열을 말씀드리면 아담,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 라멕, 노아까지 10대이고, 노아부터 셈, 아르박삿, 셀라, 에벨, 벨렉, 르우, 스룩, 나홀, 데라, 아브라함까지 또 10대입니다. 아브라함은 데라의 장자이고, 동생은 나홀과 하란이 있었는데 하란은 롯과 밀가와 이스가를 낳고 고향인 갈대아우르에서 죽었습니다(창 11:28).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민의 조상으로 지목하셨지만(창 12:2~3). 갈대아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게 하신 것은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때부터였습니다. 그래서 “데라”가 두 아들, 며느리와(아브라함, 하란, 사라, 밀가: 밀가는 하란의 딸, 롯의 누이) 손자 “롯”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오기 위하여 하란에 도착하여 상당기간 살았습니다. 그러나 “데라”는 205세에 하란에서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여행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데라”의 가족이 머물러 살던 곳을 “하란”이라고 한 것은 죽은 셋째 아들의 이름을 기념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1. 이 일이 있은 후에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이 직접 아브라함에게 주어졌습니다.

1)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명령은 “본토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 내가 명령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땅은 남방의 가나안 땅이었지만 “거기의 어떤 땅을 주신다”는 구체적인 약속은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이 갈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다”고 하였습니다(히 11:8). ① 하나님의 명령이면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아브라함의 신앙이었습니다. ②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 무조건 순종하는데는 그만한 믿음과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고 그때 그때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체험을 하였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도 꼭 필요한 것이 무조건 순종하는 신앙과 순종하는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③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갔다”고 하였습니다(창 12:4).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였는데 “말씀을 좇아갔다”는 뜻은 순종에만 마음을 두고 형편에는 마음을 두지 않은 것입니다. “남쪽으로 가라”하셨으면 남쪽으로 가는 길이 없어도 무조건 가는 신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길이 없는데 어떻게 갑니까?”한다면 그것은 순종에 이유를 붙이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이유를 묻지 않고 순종하는 생활을 하였고, 하나님은 그런 믿음 가진 자를 만족하게 여기셨습니다. 순종만 잘 하면 하나님이 그 다음 일을 책임지실 줄로 믿어야 할 것입니다.

2) 저희들은 아브라함의 순종과 관련하여 두 가지 유의할 것이 있습니다. ① 아브라함이 선민의 조상으로 선택을 받고 믿음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75세 때부터란 점이요 ② 또 한 가지는 그의 조카 “롯”이 말씀 순종하는 아브라함을 따르므로 그도 복을 받았고,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두 번이나 역경에서 구출을 받은 것입니다. 한 번은 전쟁포로에서 구출을 받았고(창 14:14~16), 또 한 번은 소돔의 멸망에서 구출을 받은 것입니다(창 19:16~23). 성도는 늙어갈수록 하나님을 더 가까이 따라야 하고 또 세상쪽으로 가까이 가는 이웃을 멀리하고 말씀에 끌려가는 성도를 가까이 할 때 은혜를 더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베푸신 복이 무엇인가?하는 것입니다.

1) “창대하여 큰 민족이 되게 하시겠다”하였고(창 12:2)

2)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하셨으니(창 12:2) 이 말씀은 메시야 약속의 근거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메시야 약속은 아담때에 한 번 나타내셨고(창 3:15) 또 아브라함때에 확실한 약속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3) “아브라함을 존귀하게 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가까이 계셔 주시면 존귀해 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밉게 여겨 저주하는 자를 하나님이 저주하시고 아브라함을 사랑하여 축복하는 자를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하셨으니 이 말씀이 곧 아브라함을 존귀하게 하시고 특별히 보호해 주시는 은총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 때에 가나안 본토족들이 여러 차례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은 그들을 진멸하셨고,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그 땅에 살게 하셨습니다.

4) 아브라함이 말씀 따라 순종하여 가나안 땅 “세겜, 모레”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하나님이 “그 땅을 그와 후손들에게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창 12:7). 여기에서 순종이 우선이고, 축복의 약속은 그 다음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5)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받은 그 곳에서 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노아가 제사를 드린 뜻과 같은 것입니다. 이 제사의 뜻은 감사와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는 뜻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아브라함은 ①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고 ② 순종을 잘 하였으며 ③ 말씀따라 행하였고 ④ 순종 후에 약속을 받되 메시야의 약속, 보호, 인도, 존귀, 창성하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⑤ 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을 때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일과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는 일을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 8 과 아브라함(2) (창 12:1~9, 13:1~18) 목록으로


아브라함이 처음 가나안 땅에 도착하여 장막을 치고 제단을 쌓은 곳은 벧엘과 아이 사이였습니다(창 12:8). 그 지역은 예루살렘에서 50리쯤 북방이었습니다.

1. 그런데 12:9에 보면 “아브라함이 그 곳에서 점점 남방으로 옮겼다”고 하였으니까 예루살렘쪽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이 유의했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따라 움직이는 일을 계속하여야 하는 것이고, 또 창 12:8에서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하신 말씀을 유의하여 그 땅(즉 벧엘과 아이 지경)을 떠나지 말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점점 남방으로 옮겨가면서 심한 기근을 만났고, 그 기근을 피하기 위하여 더 남방으로 내려가다 보니 약속의 땅은 멀어지고 이방인의 땅인 애굽땅에 도착한 것입니다. 약속의 땅을 등지고 이방인의 땅에 도착한 것은 하나님과 거리감이 있고, 이방인 또는 세속을 가까이 하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광야에서도 40년을 먹이셨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혹 흉년을 만난다 해도 하나님의 특별섭리를 믿고 약속의 땅을 떠나지 않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정성인데 잠시 흉년이 들었다 하여 애굽으로 간 것은 결국 물질과 인본주의를 의지한 자유행동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 일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2. “이방나라 왕이 자기의 아내를 뺏기 위하여 자기를 죽일 수도 있다”는 공포에 사로 잡히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우르에서 하란으로, 하란에서 가나안 땅으로 오는 장기 여행 중에서도 공포감을 느꼈다는 말씀이 없었는데 약속의 땅을 멀리하고 이방땅에 들어갈 때에 두려움을 느낀 것입니다. 신 2:4에 보시면 “이방족들이 선민을 두려워 할 것이라”하셨고, 수 1:9에서는 “적병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바로왕이 나를 선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의 생각을 지키시는 하나님께서(빌 3:7) 아브라함의 마음을 평강의 마음으로 붙들어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두려움을 갖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육신과 마음의 건강을 다 붙들어 주시는 분입니다. 환란이나 원수의 칼 앞에서도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시 27:1~3)

3.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거짓말을 계획한 것입니다. “아내를 아내라 하면 애굽의 바로왕이 남편인 자신을 죽이고 아리따운 아내를 뺏을 것인즉 차라리 누이라 하여 아내를 뺏길지라도 생명의 안전을 기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창 20:12에 보시면 사라는 사실상 아브라함의 이복누이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아내된 이복 누이를 아내라 하지 않음은 아내를 뺏길 가능성이 있는 위험한 거짓말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거짓으로 안전을 꾀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도가 고지식하게 살 것을 교훈하셨습니다. “너희는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하신 말씀이 그 뜻입니다(마 5:3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신변위험을 의식하여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4.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 애굽왕이 아리따운 여인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사라를 자기 아내로 데려왔습니다. 자기 땅에 온 남편없는 아리따운 여인이었기 때문에 왕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거짓말의 보응이 즉시 나타난 것입니다. 거짓말의 보응으로 아내를 뺏기고 그대신 바로왕의 후대함과 짐승과 노비 등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요즈음도 지조와 진실을 굽히고 적당하게 대접받으며 평안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것이 다 인간의 연약인줄로 아셔야 할 것입니다.

5. 그런데 하나님이 바로왕과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 재앙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나 바로가 아브라함의 아내를 취한 것이 잘못임을 깨닫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환란과 계시로 바로왕을 깨우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왕이 아브라함의 거짓됨을 책망하고 아내를 돌려주어서 아내와 물질을 받고 나오게 되었으니 한번 거짓말을 한 실수로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 왕으로부터 씻지 못할 수치를 당한 것입니다.

6. 그런 일을 당하고 다시 “벧엘과 아이 사이(즉 먼저 가나안 땅에 도착하여 장막을 치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던 곳)에 와서 다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창 13:1~4)하였으니 이것은 아브라함의 실수의 원상 회복이요, 회개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아브라함과 조카 놋의 소유 가축이 많아져서 그 지역이 협소하여졌고, 양측 종들간에 다툼이 일어나 분거하지 않으면 안될 입장이 되었으니 이것은 그 땅을 떠났을 때 흉년과 수치를 당하였으나 회개하고 그 땅에 다시 돌아오므로 재물이 더하여지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7. 그래서 아브라함은 조카인 롯과 분거하기로 작정을 하고 “롯에게 먼저 살 곳을 택하여 가라”고 한 것입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주인인 자신이 먼저 살 자리를 차지하고 그 다음 적당한 자리를 정하여 조카를 내보낼 것이지만 아브라함은 조카에게 먼저 좋은 것을 택하도록 기회를 준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브라함에게는 믿음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다”는 뜻은 “어려운 환경에 처해도 하나님이 자기를 인도하시고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고, “사랑이 있었다”는 것은 “자기보다 남이 더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가짐”인 것입니다. 즉 조카를 자기의 아들처럼 사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권을 받은 놋은 사양하지 않고 물이 넉넉한 소돔 고모라 지역을 택하여 갔으며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그대로 거하게 된 것입니다(창 13:1~13).

아브라함도 인간인지라 가난(흉년)과 진실에 약함이 있었으나 회개하였고, 그때 그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을 떠나지 않았을 때 축복을 받았습니다. “약속의 땅을 떠나지 않는다”는 뜻은 하나님의 뜻에 붙잡혀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놋”(이웃)에게 우선적으로 사랑을 베풀었지만 여전히 발전하는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눅 6:38). 아브라함이 놋을 보낸 후 “헤브론”땅에 거하였을 때 하나님은 보이는 땅을 다 그에게 주실 것과 그 자손을 번창시켜 주실 것을 약속하시자 아브라함은 또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창 13:14~18).

 

제 9 과 아브라함(3) (창 14:17~24) 목록으로


1. 아브라함이 헤브론에 정착하여 살 때에 재물만 더하여진 것이 아니라 대적을 물리칠 수 있는 세력도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집에서 318명의 정병을 두고 통솔하는 병권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부족으로 형성된 시날왕, 엘라살왕, 엘람왕이 연합하여 소돔, 고모라, 아드마, 느보임, 벨라 왕국을 쳐서 이기므로 소돔, 고모라 성이 수난을 당하였고, 거기에 사는 조카 롯의 가족과 재물 등도 약탈당하여 끌려가는 입장을 알게 되었을 때 아브라함이 자기의 병정들과 함께 적군을 추격하여 대적들을 물리치고 조카의 가족들과 다른 포로들과 재물들을 다 찾아온 것입니다. 그 때에 “멜기세덱”이란 사람이 살렘왕과 제사장직을 맡고 있었는데 그가 전쟁에 이기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마중나와서 축복을 하였고, 아브라함은 전리품으로 얻은 소득의 1/10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멜기세덱”이란 인물은 왕직과 제사장(중보자) 직임을 겸한 인물로써 일찍이 아브라함때에 “메시야”의 모형자로 출현한 계시적 인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아담이나 다윗도 그런 인물임. 롬 5:14, 시 22:1). 그 때에 소돔왕이 “사람만 돌려주고 모든 전리품은 가져가라”고 하였을 때에 아브라함은 “그런 방법으로 치부하지 않겠다”하고 자기와 동행한 세 장수에게 줄 사례비만 제하고 다 돌려주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의 약한자를 돕는 용맹과 재물에 대한 청렴성을 배울 수 있으며 또 “롯”은 자신이 물질적으로 살기 좋은 점만 선호하여 소돔, 고모라 성을 택하였지만 사실 그 지역의 거민들은 대단히 악하였으며(창 13:13)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악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평화의 위협을 받은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가 선택을 할 때 물질중심으로 선택하는 것은 항상 위험이 있음을 아셔야 하고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는 백성과 가까이 하는 것을 경계하셔야 하는 것입니다(창 13:13).

2. 그 후에 하나님의 계시가 있었습니다(창 15:1~21).

1) 그 계시는 이상 중에 말씀으로 주셨고

2) 내용은 “두려워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두려워말라”하심은 위로의 말씀이고, “방패”란 뜻은 보호자가 되심이며 “지극히 큰 상급”이란 “지극히 큰 상급을 아브라함에게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나이가 100세 가까이 되었기 때문에 “상급을 받는다”는 뜻이 자기에게는 현실적으로 큰 의미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무자함을 말씀드리고 자기가 받을 상급이 있다면 하나님이 자식을 주시지 않으신 만큼 종 “엘리에셀”에게 주셔야 할 것이라고 하였더니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별을 보게 하시면서 “네 몸에서 날 자가 후사가 되고 네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또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그 믿음”을 의롭게 여기셨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믿음은 행동이상으로 귀한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3) 그런데 하나님께서 또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에게 업으로 주시기 위하여 갈대아우르에서 불러내셨다”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그 사실을 확증할 만한 증표를 구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 증표로 “3년된 암소와 암염소와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하여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짐승제물을 쪼개어 놓고 비둘기 제물은 쪼개지 않은 상태로 드렸는데 그 제사가 속히 응답되지 않고 시간을 끌 때 솔개가 내려와서 그 제물을 먹으려 하였고 아브라함이 그 솔개를 쫓았으며 또 응답이 있기 전에 아브라함이 잠든 사이에 하나님의 계시가 임한 것입니다. 그 계시가 임한 상태는 캄캄함과 두려움이 임하는 상태에서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00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내가 그 섬기는 나라를 징치할 것이요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올 것이요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며 네 자손은 4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올 것이라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은 관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가 될 때 그들을 쫓아낼 것이라”하시고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타는 불꽃이 제물에 임하여 응답을 하신 것입니다. 이 예언은 출애굽기에서 다 성취된 것입니다.

4) 그러나 이 말씀에서 생각해야 할 부분들이 많습니다. ① 하나님의 약속(가나안 땅을 업으로 삼도록 주신다는 내용;창 14:7)을 증표에 의하여 믿으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100세에 자식을 주실 것과 그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번성할 것과 또 가나안 땅을 업으로 주신다”는 것인데 아브라함이 그 약속을 믿었으면서도 그 믿음의 증표를 구할 만큼 넉넉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증표나 체험을 통하여 믿지 말고 무조건 마음으로 믿는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② 제사 응답이 더디 된 이유가 무엇인가?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하나는 비둘기 제물을 쪼개지 않은 것입니다. 즉 격식에 어긋난 것입니다. 레 1:17에서 “비둘기도 쪼개되 아주 찢지는 말라”고 하셨습니다. 율법의 제사법은 아브라함 후시대에 주신 것이지만 아브라함에게도 그런 지시를 하셨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비둘기 제물은 너무 작으니까 거기에 비중을 두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불로 응답하실 때 쪼갠 고기 사이로만 응답의 표를 나타낸 것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둘째는 제사 응답이 더딜 때 아브라함이 깊이 잠이 든 것입니다. 제물을 놓고 잠이 든 것은 정성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③ 그런 이유로서 그 후손들을 400년(4대)간 애굽에 보내어 노예로 징치하신 것은 너무 하신 일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 사실은 노아의 경우로 대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노아는 자기 실수에 대한 자식의 불효를 인하여 둘째 아들을 형제의 종의 종이 되게 하셨습니다. 불효의 죄값으로 수천년 종노릇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실수는 사람에 대한 잘못이 아니고 하나님을 의심한 것이며 하나님께 불효를 저지른 죄이니까 “함”의 자손에 비할 때 결코 가혹한 것은 아닙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 기회에 종노릇하는 생활을 체험하게 하신 뜻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비천한 자의 신세를 동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④ 그리고 400년간의 기간을 두신 것은 가나안 족의 죄악이 관영하여 분량이 차기까지 기다리시는 기간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선민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정성이 얼마나 탁월하여야 하는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온 인류가 죄인이 되었고 노아의 실수로 함족이 불행해졌으며 아브라함의 연약으로 그 후손이 400년간 노예 생활을 해야 하는 문제는 비중있는 성도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도가 바로 그런 존재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연약과 실수는 바로 우리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아셔서 조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제 10 과 아브라함(4) (창 17:1~8) 목록으로


1. 창세기 16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여종과 동침하여 아들을 얻는 내용이 나옵니다. 부인이 늙어서 생산할 수 없게 되자 자기의 여종과 동침하여 후사를 얻도록 종용합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거한지 10년 되었을 때에 후사가 꼭 필요한 입장에서 본부인이 “여종과 동침하여 후사를 얻으라”하니까 사양하지 않고 애굽여인 하갈을 취하였고 하갈이 잉태를 하자 여주인을 멸시하였는데 이 사실이 아브라함에게 알려지자 아브라함은 여주인에게 “첩을 문책하라”하였고 결국 첩된 여종이 여주인의 학대로 인하여 도망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술”이라는 광야 샘곁에서 그를 만나주셨고, 하나님의 사자가 하갈에게 이르기를 “① 너는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복종하라 ② 네 자손도 번성하여 수가 많아질 것이다 ③ 네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④ 하나님이 네 고통을 들으셨다 ⑤ 네 아이는 들나귀처럼 사람을 치고 모든 사람도 그를 칠 것이며 동방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한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하갈은 자신이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뵈었다”하고 본 집으로 다시 돌아가서 여주인에게 복종하고 아브라함 86세 때에 아들을 낳으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하였습니다.

2. 이상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아브라함의 신앙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섭리는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그의 서자에게도 복을 주신 것입니다. 복은 꼭 선한 자에게만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복의 성질에 따라 다르지만 악인들에게도 은혜를 베푸십니다. 아브라함이 첩을 얻지 않아야 하는데 인간이 그런 과오를 범하였어도 하나님은 그의 자손들을 번성하도록 섭리하셨고, 또 주인의 학대를 받고 도망한 하갈을 사랑으로 권고하시므로 아브라함을 선대하신 것입니다. 86세에 낳은 아들이니까 서자라도 그 아비된 아브라함이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은 선민만 사는 세계가 아니고 빛과 어두움이 교차되는 것처럼 선민과 비선민이 함께 사는 세계를 만드셨으니까 악의 씨도 번성하게 하시고 또 필요하면 비택자에게라도 계시를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던 것입니다(단 4:4~5).

2) 아브라함의 신앙과 태도가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① 무자한 것을 서운하게 여기던 중 본처가 “취첩을 하라”하였을 때 거절하지 않은 것이 연약한 태도입니다. “본래 일부일처로 부부를 짝지어 주셨은즉 두 여인을 둘 수 없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또 “자식을 얻는 것보다 하나님의 계율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고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도 이루어 주실 수 있다”고 믿어야 할 것입니다. 처음에 종을 후사로 정하려 했을 때 하나님이 “네 몸에서 날 자가 후사가 된다”고 하셨는데(창 15:1~4) 본처가 늙어서 잉태할 수 없음을 알자 후사를 얻기 위하여 사람의 방법을 쓴 것입니다. 이때에 만일 아브라함이 죽은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첩을 얻지 않았더라면 더 큰 칭찬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런 아쉬운 점이 우리들의 생활에서도 많이 나타난다는 점을 기억하셔서 상황따라 믿음으로 행하는 성도들이 되셔야 할 것입니다. 성도는 항상 모든 것이 신앙적으로 되어지기 위하여 손해도 감수하고 때로는 모험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② 16:6에서 여종이 잉태하고 여주인 사라에게 거스리는 태도를 취했을 때 “여종은 여주인 수중에 있으니 좋은대로 행하라”하여 내쫓게 하였는데 아브라함의 이런 처신은 “과하고 무례한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자의 권고로 다시 돌아오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기 자식을 잉태한 만큼 여종을 잘 타이르고 여주인에게 복종하여 집을 나가지 않도록 하였어야 할 것입니다. ③ 아브라함은 여종이 아들을 낳았을 때 그 이름을 “이스마엘”로 지었으니 이것은 첩이 계시받은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표준계시인 성경만 믿습니다. 그러나 계시를 주시던 시대에 하나님의 계시가 다른 사람 또는 비택자에게도 나타난 사실이 있었음을 아셔야 하고 또 누가 받은 계시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이면 잘 복종하는 것이 잘 하는 일일 것입니다. ④ 12절에 보시면 “그 손(이스마엘)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도 그를 칠 것이라”하셨는데 이 예언은 오늘날도 중동지역에서 성취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그 후 아브라함의 나이 99세 때에 하나님의 계시가 또 임하였습니다(창 17:1~8).

1)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셨습니다. 저희들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행하는 독자적 입지를 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결코 사람을 의식하는 습관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안 될 것입니다.

2) 또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워 그의 자손들이 번성하여 열국의 아비가 될 것과 대대로 후손과 영원한 언약을 맺고 아브라함과 그 후손의 하나님이 되시며 또 가나안 일경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신다는 약속을 하시고 그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개명하여 주셨습니다. ① 하나님은 같은 언약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받는 성도가 진리를 마음판에 새겨서 명심하고 실천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② 또 아브라함을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신다”는 뜻은 믿음의 원조 또는 모범자도 되고 많은 후손을 번성시키신다는 뜻이요 ③ “그 후손들과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맺는다”하신 것은 언약의 성격이 유한한 것이 아닌 영원한 복을 약속하신 것이니까 이는 메시야의 복과 영생의 복을 의미하고 ④ 또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신다”하심은 성도 개인 개인을 상대해 주시는 하나님의 광대성과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특별히 상대해 주신다는 약속이며 ⑤ 이름을 아브람(큰 아버지)에서 “많은 무리 또는 열국의 아버지”란 뜻으로 “아브라함”이라고 개명케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창 17:5 이전에는 “아브람”으로 사용하다가 창 17:5 이후부터 “아브라함”이 된 것을 기억하셔야 할 것입니다. 이름을 개명해 주신 뜻은 개명 자체가 복받는 방법이 아니고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아브라함의 연약하였던 점, 비택자를 두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선민과 관련한 비택자의 권고, 영원한 구원의 언약, 개인적으로 상대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등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제 11 과 아브라함(5) (창 17:9~14) 목록으로


1. 창 17:9~14에 보시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할례받을 것을 명하셨습니다.

1) 할례란 하나님이 선민에게 주신 언약의 증표인데(11절) 선민의 아들들이나 또는 돈으로 산 종들이라도 선민의 집에 함께 사는 자이면 다 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게 하셨습니다. 할례의 의식은 생식기의 살점을 베어내는 포경수술과 같은 것입니다.

2) 이것을 행하게 하신데는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①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고(언약은 창 17:1~8에도 기재되었음) ②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게 하기 위함입니다. 창 17:9에 보시면 “너와 네 후손은 대대로 내 언약을 지키라”하시고 언약의 증표로 할례를 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에게 복주신다는 내용들입니다. 그러나 이 복은 노력없이 받게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의 복은 노력없이 믿음으로 받지만 다른 복은 노력하고 싸워서 얻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지만 선민이 그 땅을 전쟁으로 차지하게 하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언약을 지키라”는 뜻은 하나님이 언약하신 내용대로 성취되도록 노력하되 할례받은 표식을 볼 때마다 각성할 것을 촉구하신 것입니다. ③ 몸에 문신 새긴 사람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들이 문신을 새길 때 무슨 목적이나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문신을 등에 새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것은 자기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기억 못할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식기의 살점을 벤 것은 하루에 몇 번씩 소변을 볼 때마다 또는 성생활을 할 때마다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④ 그리고 할례의 대상은 선민의 아들들이지만 이방인이라도 선민의 집에서 함께 사는 사람은 선민과 똑같이 언약의 백성이 되게 하신 것이고 또 이 사실은 이방인 구원의 예표이기도 한 것입니다. ⑤ 그리고 난지 8일만에 할례를 하게 한 것은 어릴 때부터 언약의 백성임을 인치는 목적이 있고, 또 어릴 때 할례하는 것이 아픔을 견디는데 유익한 이 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⑥ 또 이 언약의 증표를 남자에게만 시행하게 하신 것은 “남편이 아내를 다스리라”(창 3:16)는 명령과 함께 남자 위주의 가장제도를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⑦ 구약시대의 할례 의식은 신약시대의 세례의식으로 교체되었습니다. 이 의식을 간소화시키신 이유는 예수님의 구속사역이 실제로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사건 이전에는 피흘리는 상징이 필요하였지만 그 사건이 있은 후에는 피흘리는 의식을 죄씻는 의식으로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저희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을 깊이 간직하고 그 성취와 영광 목적을 위하여 항상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내 사라를 통하여 “이삭”이란 아들을 주실 것을 약속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1) 본래 아브라함의 아내 이름은 “사래”였는데 그 나이 90세 때에 창 17:15에서 사라(여주인)로 개명해 주시고 그가 이삭(웃음)이란 아들을 낳고 열국의 어미가 되며 민족의 열왕도 그에게서 날 것이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창 17:15~16).

2) 이때 아브라함은 중심에 웃으면서 “90세 된 아내가 어떻게 생산을 한다는 것인가?”하고 의문을 나타내면서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합니다”(창 17:18)하였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앙한 것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히 11:11, 롬 4:17). 이때 하나님께서는 “정녕 네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이삭(웃음)이라고 하여라 내가 그의 후손과 영원한 언약을 세울 것이요 이스마엘에게도 복을 주어 큰 나라가 되게 할 것이라”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받고 그의 나이 99세요, 이스마엘의 나이 13세 때에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시행하였습니다(창 17:24 ~27). 따라서 할례(세례)는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고 순종하는 뜻으로 인을 치는 것입니다.

3. 아브라함은 나그네를 대접하는 봉사를 하는 중에 천사로 나타난 하나님을 대접하고 큰 은혜를 받은 사실이 있었습니다(창 18:1~15).

1) 아브라함은 가장 더운 정오에 장막문에 앉아서 나그네 영접을 시도하였는데 마침 세 사람이 맞은 편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그 앞에 나가서 사정하여 초청하고 영접한 후 발을 씻게 하고 유쾌한 마음으로 쉬게 하였으며 또 소를 잡고 버터와 우유로 요리를 하여 정성껏 대접을 하였는데 그들이 말하기를 “당신의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고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장막 뒤에 섰던 사라가 이 말을 듣고 자기가 노쇠한 것을 생각하면서 웃었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직접 말씀하시기를 “사라가 이 말을 듣고 웃었지만 하나님께 능치 못하심이 있겠느냐 내가 기한이 되면 네게로 올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2) 여기에서 하나님은 성도의 일거수 일투족까지 감찰하시는 것을 알 수 있고 아브라함은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하나님을 접대하고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3) 아브라함이 받은 복이 또 있습니다(창 18:16~33). 그것은 아브라함이 세 사람을 전송하는 중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은 천하만민이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하시고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도를 지키고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기 위함이라 하시면서 소돔,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커서 그 죄악을 확인하러 가는 중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때에 아브라함은 소돔에 자기의 조카가 살고 있고 또 소수의 의인이 있을 터인데 “하나님이 그 의인들을 살피시지 않으면 어찌 하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도로 여쭈었더니 하나님(그 사람들)께서는 의인 10명만 있어도 그 성을 멸하시지 않겠다고 하신 것입니다(이 부분에서 아브라함이 기도한 내용은 기도백과에 수록됨). 이 사실에서 아브라함은 의인이 악인과 함께 멸망받지 않을 것과 소수의 의인을 인하여 다수의 악인이 용납되는 섭리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4) 이렇게 성도가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면 하나님의 깊은 뜻과 비밀도 알 수 있도록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저희들은 ① 아브라함이 할례를 시행한 의미와 ② 나그네를 접대한 봉사와 ③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는 일과 ④ 의인을 위하여 기도한 사실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제 12 과 롯 (창 19:1~38, 벧후 2:7~8) 목록으로


창세기 19장에는 “롯”이 소돔, 고모라 멸망시에 구출받는 내용이 있고, 또 성경 다른 곳에도 롯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1. 롯은 아브라함의 막내 동생 하란의 아들인데 누이로 “밀가”와 “이스가”가 있고, 밀가는 작은 삼촌 나홀의 처가 되었습니다(창 11:29). 처음 고향을 떠날 때는 할아버지 데라의 인솔로 갈대아우르에서 “하란”까지 왔는데 그 때에 롯의 두 삼촌인 아브라함과 나홀과 자기 남매들도 같이 왔습니다.

2. 하란에서 얼마쯤 살다가 할아버지 데라가 세상을 떠났고, 큰아버지 아브라함이 75세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나안 땅을 향하여 남쪽으로 갈 때에 “롯”이 하란에 머물지 않고 아브라함을 따라온 것이 귀한 신앙인 것입니다. “하란”이란 장소는 죽은 아버지의 이름을 기념한 곳이고 그 곳에 작은 삼촌 나홀이 자기의 매부가 되어 살고 있으니 인정상으로 볼 때는 마땅히 누이가 있고 매부삼촌이 있는 곳에 머물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 따라 움직이는 아브라함을 따라서 제 2의 고향을 떠난 것은 큰 결단이요, 신앙위주의 행동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인정보다 신앙을 앞세우는 태도를 취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창 12:4).

3. “롯”은 복받은 아브라함을 따라온 덕분에 많은 재물을 모으고 성공하였습니다(창 12:5). 성도들도 신앙의 사람과 동업을 하면 잘 성공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삼촌과 자신이 분거를 하게 될 때 삼촌의 양보에 사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만큼 아량이 넓지 못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를 자기 자식처럼 양육하여 독립하도록 한 밑천을 주었고, 또 분거할 때는 조카를 더 잘 되게 하기 위하여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네가 먼저 좋은 땅을 차지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에 롯도 아량이 넓었다면 “내가 삼촌의 덕으로 이만큼 성공하였으니 삼촌이 먼저 좋은 고장을 택하시면 나는 그 다음을 택하여 가겠습니다”라고 말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롯”은 물질욕에 사로 잡혀서 그런 마음을 갖지 못했고 물이 넉넉한 요단들을 따라 먼저 소돔성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그 지역이 물질적으로 유익이 있으나 죄악이 많은 고장이어서 다른 왕국의 침략을 받았고 패배하여 완전히 망하게 된 것을 아브라함이 구출해 주어서 다시 기업을 회복하고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창 14:13~16).

4. 그 후에 두 천사가 소돔성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때는 아브라함이 세 사람의 나그네를 접대하고 그들로부터 “의인 열 사람만 있어도 소돔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은 후였습니다. 그 때 “롯”이 성문에 앉았다가 사람의 모습으로 들어오는 두 천사를 사정하여 자기 집으로 초대하고 음식을 접대하고 유숙하도록 하였는데 이같은 나그네 접대의 정성은 아브라함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유숙처없이 다니는 나그네를 접대할 수 있는 정성과 시설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5. 그런데 그 날 저녁에 나그네로 와서 유숙하는 천사들을 해하려는 남녀노소의 무리들이 와서 롯의 집을 에워싸고 유숙하는 손님을 음행의 도구로 삼기 위하여 내놓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때에 “롯”은 너무 민망하고 황급한 중에 “처녀인 자기의 두 딸을 줄 터이니 집에 오신 손님을 해하지 말라”하였지만 그들은 듣지 않고 문을 부수며 덤벼들었다고 하였습니다. 롯이 딸을 희생시키는 것은 동정할 일이지만 유숙하는 손님을 위하여 그렇게까지 배려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 때에 두 천사가 롯을 자기 집으로 끌어들이고 횡포하는 무리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흩어지게 한 후 “우리는 하나님이 이 성을 멸하도록 보내신 사자인즉 네게 속한 가족들을 모두 성밖으로 이끌어 내라”고 한 것입니다. 이 때에 롯에게는 자기의 처와 두 딸과 정혼한 두 사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소돔성을 탈출하라고 알렸더니 두 사위는 그 말을 농담으로 들으면서 끝내 순종하지 않았고, 롯의 처와 두 딸도 쉽게 나오려 하지 않는 것을 천사들이 이끌어내 주었으니 이렇게 한 것은 “하나님이 인자를 베푸셨기 때문이라”(창 19:16)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머물거나 뒤를 돌아보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을 면하라”하였는데 롯은 도망할 힘이 없고 산이 먼고로 가까운 성을 가리키며 “내가 산까지 도망하기 어려운즉 저 작은 성에 피신할 것이니 저 성을 보존해 주십시오”하였을 때 천사들은 롯을 살리기 위하여 “그 작은 성을 멸할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롯의 처와 딸들이 주저할 때 인자를 베풀어 끌어내 주셨고, 또 멀리 도망할 수 없다고 사정하였을 때도 그 작은 성의 멸망을 제외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그 후 해돋을 무렵에 유황불이 비같이 내려서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등 주위 성읍들을 다 불태우셨는데 그때 롯의 아내는 도망하던 중 하나님의 말씀을 망각하고 뒤를 돌아본 탓으로 소금기둥이 되어 죽게 된 것입니다(26절).

6. 이상의 말씀에서 저희들이 배울 수 있는 것은

1) 롯의 신앙과 그 가족의 신앙에 큰 차이가 있었고, 또 롯의 신앙과 아브라함의 신앙과도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창 19:29에 보시면 롯도 의로운 점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멸망의 지역에서 내 보내셨다”하셨으니 이 말씀은 롯보다 아브라함의 신앙이 더 귀한 것을 의미하고, 또 “롯”이 물질위주로 선택한 지역이 결국은 멸망의 대상이 된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2) “롯”은 믿음이 연약한 가족 때문에 고생을 하였으니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었더라면 가족을 다 잃을뻔 한 것입니다. 이 사실에서 성도는 온 가족이 다 믿음 발전에 힘쓰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은혜로 구원해 주셨어도 인간의 의지적 노력이 있어야 함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3) 두 사위는 불신자의 모형이고 또 전도를 받고도 안 믿는자를 뜻하며 롯의 처는 믿다가 낙심하는 자의 모형이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롯은 겨우 구원받은 자의 모형이 되었으니 부끄럽게 생각하여야 할 것입니다.

4) 마지막으로 롯은 두 딸과 세 식구만 남게 되었는데 그 지역이 다 황폐되고 주위에 인종이 없음을 안 두 딸이 아버지에게 술을 먹인 후 교대로 동침하여 큰 딸은 암몬을 낳고, 작은 딸은 모압을 낳아 암몬족과 모압족의 조상이 되게 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음행의 자손이었을지라도 “아르”란 땅을 기업으로 주어 살게 하셨습니다(신 2:9). 이것은 범죄한 자들에게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시 50:5, 합 3:2).

마지막으로 베드로 사도는 “롯이 무법자들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고 마음 상한 일이 있었음”을 영감으로 기록하였고, 하나님도 롯이 그 세계에서 의롭게 행한 것을 인정하여 “의로운 롯”이라 하셨으니 죄악 세계에 살면서 롯만큼만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여도 하나님이 인정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제 13 과 아브라함(6) (창 20:1~17) 목록으로


1. 아브라함이 적자 생산할 약속을 받고 또 소돔 고모라에서 롯이 구출 받은 후에 아브라함은 또 한 번 시험에 빠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롯과 분거하여 살던 헤브론 곧 마므레 지역에서(창 13:18) 점차 남방으로 이주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 땅에 까지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랄 왕국은 가나안 남쪽이고 애굽의 북쪽이며 시나이반도(델타 지역이라 함) 서북쪽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왜 아브라함이 두 번째 실수를 하는가?하는 것입니다. 창 12:7~10에 보시면 기근으로 인하여 약속의 땅을 떠나 애굽으로 갔다가 큰 어려움을 겪고 다시 헤브론 땅에 와서 생업의 발전도 있었고, 소돔성의 롯도 전쟁 중에 구출해 준 일이 있었는데 왜 그 지역으로 또 옮겼을까?하는 것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었을 것이고, 목축업에 초장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처럼 애굽까지는 가지 않았고, 그 길목쯤 갔다가 “그랄” 땅을 디디게 되었을 것입니다. 가축의 초장따라 움직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과거에 이방땅에 갔다가 어려움 당한 일을 생각한다면 각별히 주의하였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입니다. 어느 사람이나 항상 자기의 건강을 돌보듯이 성도는 신앙생활을 생각하여야 하고, 특히 지역을 옮기거나 다른 대상을 가까이 할 때는 그 세계에서 신앙생활에 불편이 없겠는지를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가급적이면 예배당도 가까운데 있는 것이 좋고 성도의 친교도 빈번한 것이 좋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랄 땅에 우거하였을 때 “그 나라에도 ‘아비멜렉’이란 왕이 있고, 그는 이방인으로써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을 것인즉(창 20:11) 자기의 아내를 뺏기 위하여 자기를 죽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복누이이기도한 자기의 처를 누이라고만 하자”고 약조를 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안 아비멜렉 왕은 즉시 사라를 자기 아내로 취하였는데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 현몽하여 “네가 그 여인을 인하여 죽을 것이다 그 여인은 다른 사람의 아내니라”고 일깨우시자 아비멜렉은 겁이 나서 “나는 아브라함이 그를 누이라 하여 깨끗한 마음으로 취하지 않았습니까?”한즉 “네가 깨끗한 마음으로 행한 것을 알기 때문에 범죄를 막은 것이다 그는 선지자의 아내인즉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를 죽일 것이다”하여 왕이 사라를 포기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또 한 번 이방왕에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이방왕은 아브라함을 보통사람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재물도 주고 노비도 주었으며 화해를 하고 그 땅에 살게 하였는데 하나님은 그 이전부터 아비멜렉의 생산을 막으셨다가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위하여 축복한 다음부터 아비멜렉의 처첩들을 치료하여 생산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저희들은 많은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1) 우선 성도는 고난을 이기는 지구력이 있어야 합니다. 잠깐을 인내하지 못하여 신앙적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소간 물질의 손해가 있고, 가난할지라도 신앙의 유익을 위하여 잘 견디고 물질의 덕을 인하여 영적 손해를 당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2) 아브라함은 자신이 아내를 누이라고 속일 때 과거의 그런 경험을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죽음을 겁내지 않았거나 “진실을 지킬 때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다”는 것을 믿었다면 두 번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죽음을 겁내지 않을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진실을 지키면 분명히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진실을 생명처럼 귀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이기적 목적을 위하여 사람을 이모 저모로 속이는 세상에서 진실을 지키는 것이 성도의 구별된 점임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소는 미끄러진 자리를 다시 딛지 않지만 사람은 자주 실수하는 연약이 있습니다.

3)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같은 연약도 이해하셨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라의 몸에서 언약의 아들이 탄생하여야 하기 때문에 그 몸을 보존하시는 차원에서 보호해 주신 것이라고 보아야 하며

4) 또 하나님은 이방왕 아비멜렉의 고의적 범죄가 아닌 것도 살펴 주셨습니다. 만일 고의적 범죄라면 즉시 죽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전한 마음으로 취첩한 것을 아시기 때문에 경고로 깨우치신 것입니다.

5) 그런 과정에서 아브라함은 재산을 모았고, 그랄 땅에서 우거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정당한 도움을 받은 것인가?할 때 마치 고의적으로 자기의 몸을 다치게 하고 치료비를 물리는 격과 비슷하게 된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나의 실수로 말미암은즉 속죄의 변상을 받을 수 없다”고 하여야 할 것이고, 그래도 상대방이 은혜를 베풀겠다고 할 때는 사양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6)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피해를 받게 될 때 그 잘못이 어디에 있던 간에 가해자 측(즉 아비멜렉왕)이 생산을 못하도록 미리 조치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귀히 여기시고 사랑하는 아브라함을 해롭게 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섭리인 것입니다. 창 12:3에서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를 뺏는 것은 저주에 해당하니까 하나님도 그를 저주하여 생산의 문을 닫으셨다가 화해한 후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것을 풀어주신 것입니다.

7) 오늘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하나님이 자기의 배경이 되어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재록 목사는 그것이 지나쳐서 탈선하였지만 반드시 하나님은 나의 편,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시 35:1~9의 다윗의 시를 소개하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방패와 손방패를 잡으시고 일어나 나를 도우소서 창을 빼사 나를 쫓는 자의 길을 막으시고 또 내 영혼에게 나는 네 구원이라 이르소서 내 생명을 찾는 자로 부끄러워 수치를 당케 하시며 나를 상해하려는 자로 물러가 낭패케 하소서 저희로 바람 앞에 겨와 같게 하시고 여호와의 사자로 저희를 따르게 하소서 저희가 무고히 나를 잡으려고 그 그물을 웅덩이에 숨기며 무고히 내 생명을 해하려고 함정을 팠사오니 멸망으로 졸지에 저에게 임하게 하시며 그 숨긴 그물에 스스로 잡히게 하시며 멸망 중에 떨어지게 하소서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 구원을 기뻐하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제 14 과 아브라함(7) (창 21:1~8) 목록으로


1. 아브라함이 그랄 땅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이삭”이라 하고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시행하고 아브라함 100세, 사라 90세에 아들 낳음을 인하여 크게 기뻐하고 웃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웃게된 것은 “이삭”이란 이름의 뜻으로 예언된 사실이고(창 17:19) 이삭의 젖뗄 무렵에 큰 잔치를 하였습니다.

2. 그런데 그 무렵에 14세쯤된 서자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희롱하였는지 모르나 여주인 사라는 그것을 참지 못하여 여종과 서자를 내쫓도록 아브라함에게 권하였고, 아브라함은 고민을 하던 차에 “그대로 시행하라”는 계시를 받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 푸대만 짊어지워 내쫓았습니다. 여기에는 혈육간의 인정을 생각하지 않는 가혹한 면도 있으나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여야 하는 것과 또 “종의 아들은 내 아들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한다”는 계시적 의미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사실은 바울사도가 갈 4:28~31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에 보면 하나님의 선민을 자유자로 (주인의 자녀) 비택자를 종의 자녀로 비유하여 종의 자녀가 기업을 얻지 못하므로 영적 축복의 특권이 없음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스마엘도 현실적으로는 큰 민족이 될 것을 예언하셨지만(창 17:20) 신령한 복의 특권이 없음을 예표하는 뜻으로 기업없이 내쫓은 것이라 하겠습니다(창 21:10). 여기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계 혈통을 중요시하게 되었고 아버지가 자유자라도 어머니가 종이면 그 자손도 종이 되고, 아버지가 이방인이라도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그 자식도 유대인의 호적에 오르는 전통이 생겼습니다.

3. 그리하여 쫓겨난 모자가 “브엘세바” 광야에 이르러 물과 양식이 떨어지자 방성대곡하였는데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고 하갈을 위로 하셨고, 그의 눈을 밝혀 샘물을 찾게 하시니 그로 인하여 생명을 구하고 그 모자가 바란 광야에 가서 살면서 그 곳에서 애굽여인과 결혼을 시키고 살게 된 것입니다(창 21:21).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서자에게도 기도 응답과 함께 살 길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성도의 자녀들도 다 신령한 복 받기를 원하지만 이삭처럼 신령한 복을 받는자가 있는가 하면 또 이스마엘처럼 그렇지 못한 자도 있음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4. 아브라함이 “그랄” 땅에 거할 때 그랄왕 아비멜렉과 군대 장관 비골이 찾아와서 평화조약을 맺자고 사정하였습니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무시할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알았고(창 19:7), 또 정예 부대를 가진 세력가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양쪽의 종들이 우물과 관련한 가축 사육 문제로 자주 다툼이 있어서 큰 싸움이 벌어질 우려도 없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평화조약을 맺고 그 지역에서 살다가 블레셋 땅에서도 여러 날을 지내고 동쪽 “브엘세바” 지역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창 21:33, 22:19).

5. “브엘세바” 지역은 본 거주지인 헤브론에서 남쪽으로 120리쯤 되고 예루살렘은 북쪽으로 80리쯤 되는 거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브엘세바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200리 길이 됩니다.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있을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1)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무슨 시험을 주셨는가?하면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 데리고 가서 번제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저울질 하시는 시험도 있지만(창 22:1)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대한 계시의 의미도 있었습니다. 그 계시의 의미란 모리아 산이 예루살렘 지역이고 번제의 제물된 이삭이 예수님을 모형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계시하시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복종할 생각을 하였고, 또 하나님이 자기를 시험하시는 뜻이 있다고 믿었을 때 더 잘 순종하려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아내에게도 말하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서 나무를 쪼개어 두 사환에게 지우고 200리 북쪽 모리아 산까지 3일 길을 가서 두 사환을 산 밑에 머물게 하고 이삭만 데리고 올라 가서 단을 쌓고 이삭의 몸에 칼을 찌르려 한 것입니다. 그 때 아들 이삭의 나이가 이스마엘이 장가든 이후이기 때문에(창 21:21) 어린 나이는 아니었습니다. 이삭은 장성하여 40세에 결혼하였고, 그 아들 에서도 40세에 결혼한 것을(창 25:20, 26:34) 표준하면 25세쯤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만일 30세쯤 결혼을 했다면 17세쯤의 소년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결박하고 죽이려 했을 때 반항할 수 있는 나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반항의 기사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사실은 이삭이 십자가의 제물되신 예수님의 모형자란 것입니다. 예수님이 33세에 반항없이 자원하는 태도로 희생의 제물이 되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요 10:17, 18). 그리고 모리아 산이란 장소가 예루살렘 지역이니까 거기에도 공통점이 있습니다(창 22:2, 대하 3:1).

2)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리기 위하여 노력한 상태를 살펴보면 ① 우선 아들을 제물로 드리는 일에 고민한 흔적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② 그리고 아내나 이삭이나 종들에게 “이삭을 제물로 드린다”는 계획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훼방을 받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③ 아침 일찍 일어나서 나귀의 안장을 준비하고 나무를 쪼개는 등 출발 준비를 서둘렀고 ④ 3일을 여행한 후 목적지에 가까이 왔을 때 두 사환에게 “너희는 여기 머물러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창 22:5)고 하므로 자신과 아들이 같이 돌아올 것을 말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아들을 죽여도 살려 주시는 방도가 있을 것을 믿었고, 이 사실을 히브리서 기자도 그렇게 증언을 하였습니다(히 11:19). ⑤ 두 종을 떨어진 장소에 머물게 하고 두 부자가 칼과 불과 장작을 가지고 목적지로 갈 때 이삭이 묻기를 “불과 나무는 있는데 제물은 어디 있습니까?”하니까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하였는데 그의 말대로 수풀에 걸린 수양 한 마리를 준비해 주셔서 그것으로 대신 번제를 드렸으니(창 22:7~8, 13) 이 “준비하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메시야를 준비하신 예언이 되었고, “대신 번제를 드린 사실”도 예수님이 대속의 제물되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여하튼 아브라함은 순종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부활을 믿으면서 아들을 칼로 찔러 각을 떠서 번제를 드리려 하였으니 독하다 할만큼 의지가 굳은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6. 하나님은 이 사실로 인하여 아브라함의 믿음과 의도를 충분히 시험하셨고,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진실하게) 경외하는 줄을 알겠다”(12절)하셨으니 저희들도 매사에 하나님의 시험을 받으면서 살고 있음을 아셔야 하고, 그런 시험에 늘 통과하여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성도들이 되셔야 할 것입니다. 수양으로 대신 번제를 드린 후에 하나님의 사자가 두 번째 나타나서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번성하게 할 것이며 대적의 문을 얻게 하고 또 네 씨로 천하만민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현실적인 번성과 함께 메시야의 복과 승리의 복을 아울러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몇 차례 거듭된 약속을 받고 다시 “브엘세바”로 돌아갔습니다(창 22:16~19).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그 뜻을 복종하며 인정과 사랑을 받고 또 맹세로 복받을 약속을 받으니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제 15 과 아브라함의 두 가지 대사 (창 23:1~20) 목록으로


창세기 23장에서는 아브라함이 그의 처가 죽으므로 장사 지내는 내용이 기록되었고, 창세기 24장에서는 아브라함이 그의 늙은 종에게 자부를 구해오도록 부탁하여 종이 자부될 신부를 구해오는 내용이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장례문화와 혼사문화를 나타내 주었고 특히 혼사문화에 있어서 종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사실을 주목할 수 있습니다.

1.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릴 때는 “브엘세바”에 살았지만(창 22:29) 그 후에 다시 헤브론(기럇아르바)으로 올라 왔고, 헤브론에서 살 때 그 아내가 127세에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그 당시의 장례문화는 시신을 굴에 넣고 굴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장례나 혼인을 치르라”는 계시가 없었고, 따라서 전통문화대로 이행을 한 것입니다. 그때까지 아브라함은 가족의 매장지를 준비하지 않았다가 아내가 세상을 떠나므로 그가 살고 있는 지역의 본토족속인 헷족속에게 매장지를 사려고 하였더니 헷족속들이 말하기를 “아브라함은 자기들 고장에서 하나님의 방백(촌장대우를 받음)과 같은 사람이니까 좋은 매장지를 값없이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거저 받는 땅에 장사하기를 원치 않았고, 결국 말벨라굴의 소유자인 “에브론”에게 정당한 가격인 은 400을 주고 많은 중인들로 증거를 삼은 후 사라의 시신을 그곳에 매장한 것입니다. 이런 일을 통하여 아브라함은 본토주민을 지도하는 나그네족이었음을 알 수 있고, 장례절차는 신앙에 어긋남이 없는한 문화적 전통을 따랐으며 매장지가 없을 때 거저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을 사양한 것은 거저 받아 쓰는 것이 이웃에게 덕을 끼치는 일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장례 방법은 계명에 없는한 특정방법을 고수할 필요가 없고, 또 문화란 시대와 개성에 따라서 변한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는 장례문화를 간소화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시신숭배와 정령숭배사상을 갖고 과장된 장례식으로 재물과 시간을 낭비하지만 잘 하는 일이 아닙니다. 다만 고인의 경력에 알맞도록 간소하게 할 것을 권장하여야 할 것입니다. 명령과 교리는 그대로 이행하지만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하는 문화는 표준시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2. 사라의 신앙적 특징을 살핀다면

1) 남편을 하나님처럼 섬긴 열녀입니다. 벧전 3:6에서 “사라가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으니 사라는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며 복종하였다” 하셨고,

2) 히 11:11에서 “사라가 나이가 늙어 단산하였으나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줄 앎으로 잉태하는 힘을 얻었다”하시므로 사라가 90세의 늙은 몸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여 아들 낳을 것을 믿고 생산을 하게 된 것이 사라의 모범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장가 보내기 위하여 늙은 종에게 부탁하고 늙은 종이 그 일을 성취할 때 하나님이 역사해 주신 사실과 특별한 의식없이 혼인하게 한 사실을 24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1)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이 40세 되었을 때에(창 25:20) 같은 집안의 딸로 며느리를 얻으려 하였습니다. 그래서 먼저 살던 하란으로 종을 보내면서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자손으로 자부를 구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40세였는데 자신이 늙은 몸인지라 직접 가지 못하고(창 24:1) 자기 집 재무를 맡은 늙은 종에게 자부감 구해오는 일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그 늙은 종은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인데(창 15:2) 그도 신앙이 좋았습니다. 늙은 종이 자부감을 데려오면 모든 가족이 무조건 받아야 하는데 그것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범사에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고, 또 “하나님의 사자가 잘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창 24:7). 그래서 늙은 종에게 자기 부족의 딸 중에서 데려올 것과 아들 이삭을 그 곳에 데리고 가지 말 것을 약속하는 서약을 받고 보내게 되었습니다.

2) 여기에서 아브라함의 신앙적 특징이 나타나는데 하나는 이방혼인을 피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삭으로 하여금 약속의 땅을 벗어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창 24:6~7).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순결과 구별을 원하시기 때문에 아브라함도 그 뜻에 따라 이방혼인을 피한 것이고, 또 아들을 하란 땅에 데리고 가지 않게 한 것은 “하나님이 맹세로 주신 가나안 땅을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만일 이삭이 장가들기 위하여 하란에 갔다가 신부가 그곳에서만 살겠다 한다면 거기에 끌릴 염려가 없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두 가지는 아브라함의 믿음 행위에 속한다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3) 그래서 늙은 종 엘리에셀이 약대와 선물을 갖고 하란 땅에 가서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가 하란 땅 우물곁에 있습니다. 저녁 때인즉 잠깐 후면 여인들이 물을 길러 나오는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아브라함의 자부될 자를 잘 만나게 해 주십시오. 제가 물 길러 나온 한 소녀에게 물을 청했을 때 사람먹을 물만 주지 않고 약대가 먹는 물까지 주는 딸이 있으면 그가 하나님이 주인의 자부될 자로 주시는 줄 믿겠습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한 소녀가 왔는데 예쁘기도 하고 선뜻 물을 제공한 후 약대를 위하여 물을 깃는 것입니다. 또 신분을 물은즉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손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과연 형통하게 인도하시는구나”하고 그에게 선물을 주고 유숙처를 부탁하여 그의 집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 집은 경건한 집안이라 손님 대접을 잘 하였는데 아브라함의 종은 음식을 먹기 전에 자기의 용건을 성취하여야 하므로 사실을 말하고 허락할 것을 부탁한 것입니다. 그 때에 그 딸의 집에서도 그 일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 허락을 한 것입니다. 종이 기도하고 시행한 일이요, 또 기도대로 성취된 일인만큼 거절할 수 없었고, 또 “리브가”도 선뜻 순종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천만인의 어미가 되라”는 축복을 받고 종을 따라와서 혼인예식의 절차없이 이삭의 거처로 들어가 가정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4) 이 말씀에서 저희들은 아브라함과 그의 종과 이삭과 리브가의 신앙적 태도를 교훈받을 수 있습니다. 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믿고 중대사를 종에게 맡겼습니다. ② 종도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은 사람이라 모든 일을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행하였고 기도의 응답에 힘입어 섭리적으로 잘 된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③ 그리고 이삭은 효자라 아버지 뜻대로 또 종이 데려온 여인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 아내로 취하였습니다. ④ “리브가”는 고향과 친정을 미련없이 버리고 남편을 택하여 떠난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비유하고 종은 성령님을, 이삭은 예수님을, 리브가는 성도를 비유하여 교훈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뜻하시는 분이고 성령님은 중재역할을 하십니다. 특히 성도는 리브가처럼 아름답고 근면하며 봉사적이고 세속(친정)을 멀리하면서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을 교훈하시는 뜻도 있는 것입니다.

4. 아브라함의 말년의 생활과 죽음입니다(창 25:1~10).

1) 아브라함은 137세에 사라가 죽었고, 140세에 자부를 맞았으며 그 다음에 “그두라”라는 후처를 맞이하여 여러 자녀를 또 낳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소유를 이삭에게 주었고, 다른 아들들에게는 적당하게 주어 이삭을 떠나 동방으로 가서 살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이삭의 후손들을 가나안 땅에 남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 아브라함은 175세에 기운이 진하여 세상을 떠났으니 “기운이 진하여 죽었다”는 뜻은 특별한 병으로 죽은 것이 아님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삭과 야곱도 그렇게 죽었습니다(창 35:29, 50:33). 아브라함이 세상을 떠났을 때 이스마엘과 이삭이 그 어머니 사라의 무덤이 있는 “막벨라”굴에 장사하므로 아브라함의 생애가 끝난 것입니다. 성경에 아브라함만큼 표준 인물로 등장한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브라함을 표준 인물로 거론하신 바가 있었습니다(요 8:39~40). 가정을 갖고 사는 성도로써 가장 많은 생활의 모범을 남긴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일시적 연약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만큼 믿음이 크고 담대하였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을 신앙의 조상으로 모시고 아울러 사라와 엘리에셀의 신앙도 본받아서 좋은 믿음을 육성시켜야 할 것입니다.

 

제 16 과 이삭 (창 26:1~11) 목록으로


성경에 이삭의 신앙생활에 관한 내용이 아브라함이나 야곱만큼 많이 기록되지 않았지만 ① 이삭이 소년 시절에 번제의 제물이 되었다는 사실(창 22:1~14) ② 40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결혼하고 ③ 60세에 두 아들을 낳은 사실(창 25:21~26) ④ 아버지 아브라함의 경우와 꼭 같이 흉년을 피하여 “그랄”에 가서 아내를 누이라 하고 책망을 받은 일(창 26:1~11) ⑤ 그랄에서 거부가 되고 그랄왕과 평화조약을 맺은 일(창 26:12~33) ⑥ 나이가 많아졌을 때 두 아들에게 축복한 일(창 27장) ⑦ 야곱을 외가에 보내고 20년만에 만난 후 180세에 세상을 떠난 일(창 28:1~4, 36:29~30) 등을 살필 수 있습니다.

1. 우선 이삭의 생활을 살필 때 중요한 것은 이삭이 “메시야 예수님의 모형자”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에는 아담과 멜기세덱과 이삭과 다윗과 요나가 예수님의 모형자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롬 5:14에서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하셨고, 히 7:1~3에서 “멜기세덱은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다”하셨으며 시 22편에서 다윗의 생애가 예수님과 비슷한 사실을 말씀하셨고, “요나”도 물고기에게 먹혔다가 다시 나온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상징한다”고 증언하셨습니다(마 12:40). 그러면 이삭이 예수님과 공통되는 점이 무엇입니까?

1) 예언으로 탄생한 점 2) 이적으로 출생한 것 3) 독생자인 점 4)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아들이란 점 5) 번제의 제물이 되었다는 점 6) 선지자 역할을 한 점 등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삭도 신앙의 유명한 인물에 속하는 것입니다.

2. 이삭은 부친이 별세한 후 헤브론에서 남쪽으로 약 200리 떨어진 “브엘라해로이”로 와서 살았고(창 25:11) 혼인한지 20년 만에 기도의 응답으로(창 25:21) 에서와 야곱 쌍둥이를 낳았습니다(창 25:23~26). 그리고 그의 이복형인 이스마엘은 열두 방백의 조상이 되어 가나안 땅 동남방에 퍼져 살다가 137세에 기운이 진하여 세상을 떠났습니다(창 25:12~18).

1) 그런데 이삭이 “브엘라해로이”땅에서 흉년이 들었습니다. 창 26:1에 보시면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는데 이번에 또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첫 번째 흉년은 아브라함이 벧엘에서 남방으로 옮겼을 때 들었고(창 12:8~10) 이번에는 이삭이 애굽땅 가까운 “브엘라해로이”로 온 다음 흉년을 주셨으니 그 동기와 방법이 아브라함의 경우와 꼭 같은 것입니다. 이삭이 이주한 것은 유목민의 생활을 하다보니 목초따라 이동한 것이지만 약속의 땅을 고수하는 신앙에서 먹을 것 문제로 유동한 결과가 된 것입니다. “그랄”은 “브엘라해로이”에서 서북쪽 200리쯤 되고 헤브론에서는 서쪽 100리쯤 되는 “가사” 남쪽입니다.

2) 이삭이 출생하기 전에 아브라함도 그 곳에 가서 아비멜렉 왕에게 “아내를 누이라”하였다가 책망을 받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은 일이 있었고, 그 곳에서 이삭을 낳은 후 브엘세바(헤브론)로 와서 블레셋왕 아비멜렉 왕과 평화조약을 맺고 살았던 일이 있었습니다(창 20:~21:). 그런데 아들이 성장하여서도 그 곳에 갔고, 옛날에 있던 왕과 비골장군도 그 때까지 살아 있은 것을 보면 그들은 퍽 늙은 나이였을 것이 짐작됩니다.

3) 이때에 이삭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 계시는 “애굽에 가지 말고 내가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은혜를 너와 네 자손에게 줄 것이니 네가 하늘의 별같이 번성하고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얻을 것이요 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잘 지켰기 때문이라”(창 26:1~5)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렇게 이삭은 아버지로 인한 축복의 덕을 힘입어 형통한 일이 많았습니다.

4) 그런데 그 곳 사람들이 같이 있는 여인이 누구냐?하였을 때 아내라고 하면 자기를 죽일 것 같아서 누이(사실은 숙부의 손녀)라고 속였다가 결국 아내임이 발각되었고, 이 일이 속히 알려지지 않았더라면 아비멜렉왕에게 아내를 뺏길뻔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역사는 반복하는 법이고 역사연구의 필요성을 알게 되며 부전자전이란 속담이 다 헛된 말은 아니란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또 어떤 경우에서나 거짓말은 수치를 당하지 않는 경우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진실을 생명보다 귀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5) 이삭은 그랄에 있는 동안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할 만큼 농사의 소득을 얻었는데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하여 아브라함 때에 판 우물을 메우는 등 여러 차례 훼방을 하여 그랄 골짜기로 피신하여 거주한 일이 있었고(창 26:17) 우물을 세 번이나 파야할 만큼 훼방받는 생활을 하다가 다시 “브엘세바”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이 그랄에서 블레셋 족의 훼방을 받은 것은 하나님이 이삭으로 하여금 그 곳을 떠나게 하신 섭리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4. 이삭이 브엘세바에 왔을 때 또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있었고 거기서 제단을 쌓고 정착하였는데 이삭이 괴로움을 받다가 떠났다는 사실을 그랄왕 아비멜렉과 비골장군이 알고 찾아와서 자기들이 “평화조약을 지키는 원칙으로 평안히 보냈은즉 자기들을 해하지 말라”하면서 “이삭이 그의 섬기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고 증언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성도와 함께 하시면 “대적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해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신 28:7, 시 121:5~6). 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실을 이방인들이 알고 두려워한 것은 하나님의 보호섭리가 큰 것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가 생활하는 중에 어떤 지역에서 불편이 있다면 이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하시는 섭리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5. 마지막으로 이삭은 선지자였습니다. 말씀의 계시도 받았고(창 26:2~5) 두 아들이 태어날 계시도 받았으며(창 25:23) 또 두 아들에게 축복한 것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창 27장). 그 후에 이삭은 야곱을 밧단아람에 사는 처가로 보냈고(창 28:1) 처가의 딸 중에서 며느리를 맞이하게 하였으며 20년 간 야곱과 격리된 생활을 하다가 야곱이 귀향하여 만난 후 18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① 이삭을 하나님이 계시의 인물로 쓰신 일 ② 특별한 간섭으로 보호, 인도하신 일 ③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복 주심으로 이방인들에게까지 인정을 받은 일은 자랑스럽고 복된 생애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제 17 과 에서와 야곱 (창 25:21~34) 목록으로


1. 에서와 야곱은 선지자 이삭의 기도 응답으로 출생하였습니다. 이삭이 결혼한지 20년이 되도록 생산을 못하다가 결국 그의 나이 60세에 기도 응답으로 두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리브가”가 잉태하였을 때 두 아이가 태중에서 서로 싸우므로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니 하나님이 리브가에게 계시로 말씀을 주셨습니다. “두 국민과 두 민족이 태중에 있으니 복 중에서부터 나뉘었는데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여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21~23절). 여기에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쌍둥이의 탄생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는 것이고 두 사람이 두 민족되는 것과 동생이 형보다 강하여 형의 족속이 동생의 족속을 섬기게 되는 사실도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후천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도 있지만 씨는 바꿀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작정 섭리가 그러하면 그 섭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대로 야곱은 에서보다 강성해지는데 이 “강성한다”는 의미는 현실적 강성함과 영적 축복의 의미를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2. 롬 9:13에서 “하나님이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이 의미는 “하나님이 야곱을 선민의 계열로 택하셨다”는 뜻입니다. 성경 어디를 보나 하나님은 인류를 다 구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선택하실 주권이 있습니다. 그리고 “에서를 미워하셨다”하신 것은 무조건 미워하신 것이 아니고 그의 불신앙에 근거하여 미워하셨거나 또는 선택받지 못한 상태를 미움의 대상으로 표현한 말씀일 것입니다. 야곱이 무슨 의가 있어서 선택받은 것이 아닌 것처럼(롬 9:11) 우리도 의가 없지만 하나님이 선택해 주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감사하며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에서처럼 선민대열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3.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인생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경영이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이 만세전부터(엡 1:4) 태어날 인생에 대하여 그의 길을 작정하시면 그 인생은 하나님의 작정하신 설계대로 그려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야곱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에서는 그 길에 들어 서지 않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노력은 얼마큼 허용되며 자기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한계는 어느 정도냐?고 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르지 못하는 범위 안에서만 노력의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고 믿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30평 건축 허가를 받았으면 30평을 더 지을 수는 없고 그 대신 30평 안의 내부구조를 얼마나 잘 시설하느냐가 인간의 노력 범위에 속한 것이라고 비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섭리하시되 인간의 영역과 한계를 정하시는 분이고 인간의 노력을 섭리에도 쓰시고 또 인간의 자유 영역을 개발하게도 하신다는 것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4. 에서와 야곱에 대한 섭리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살펴 보겠습니다.

1) 먼저 에서가 태어날 때는 그 피부가 붉고 갖옷(털사람)같은 체질로 태어났고, 야곱은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났는데 여기의 갖옷같은 체질은 야생적 체질을 뜻하고, 발꿈치를 잡은 것은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으려는 천성적 성품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모태에서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이(사 44:2)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2) 그들이 자랄 때 같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으로 활동하고 야곱은 조용한 성품으로 장막에 거하였는데 사냥꾼이 되는 것은 포악성과 관련이 있고, 집에서 부모를 돕는 것은 효도와 신앙에 관계가 있어서 역시 택함받은 자와 택함받지 못한 자의 특징있는 생활을 나타내게 된 것입니다.

3) 그런데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중요시 하였는데 에서는 그 반대로 그것을 중요시하지 않은 것입니다.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와 함께 집에서 팥죽을 쑤었고, 에서는 들에 나가 사냥을 한 후 시장한 상태로 돌아와서 속히 죽 먹기를 바랬는데 야곱이 그것을 속히 주지 않고 그 기회를 이용하여 “장자의 명분으로 자기에게 죽을 사 먹으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계책이었습니다(호 12:12). 이때에 에서는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냐?”하면서 쉽게 장자의 명분 포기를 맹세하고 팥죽을 받아먹은 것입니다. 장자는 아버지 가문의 대를 잇고 갑절의 기업을 받는 특징이 있으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한 언약을 계승받는 특권이 장자에게 따르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것을 중요시하여 장자의 명분을 뺏은 것입니다. 일찍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야곱이 계승할 것을 계획하셨는데 그 계획이 야곱의 신앙과 활동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4) 야곱이 장자의 명분을 귀하게 여긴 것은 갑절의 재물 상속보다도 조상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축복의 계승자가 되려는 의욕을 가졌던 것처럼 성도들도 신령한 복의 가치를 추구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택자 에서는 장자의 명분은 물론 신령한 복에 대한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오직 한 순간에 배부른 것만을 제일로 여겼으니 이것이 곧 육신과 물질 중심의 불신앙적 발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5. 결론적으로 선택받은 야곱은 거룩한 백성되는 길로 나갔고, 선택받지 못한 에서는 신령한 복을 떠나는 길로 나간 것입니다. 따라서 신앙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고 또 성령님의 역사에 의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옛 속담에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따라서 택한 백성은 택한 백성의 길을 가고 택함받지 않은 자는 믿음에 들어 올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말씀하시기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살후 3:2)고 하셨습니다.

 

제 18 과 야곱(1) (창 27:1~23) 목록으로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지라 가족들과 함께 사는 생활을 하면서 부모의 신앙생활을 배웠습니다. 따라서 부모를 떠나 사는 사람보다 부모와 함께 사는 생활이 신앙과 인격성장에 더 유익함을 아셔야 합니다.

1. 이삭이 늙었을 때 장자 승계를 선호하여 큰 아들 에서에게 축복할 것을 계획하였는데 이 사실을 안 리브가는 그 축복을 야곱이 받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여 결국 에서에게 베풀려한 축복을 야곱이 가로채는 형식으로 받게 하는 사건이 나타납니다. 이 시기는 야곱이 아주 어릴 때 일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이 기록된 순서로 보면 에서가 40세에 결혼한 다음이기 때문에 그 시기도 40세 후로 보아야 합니다.

2. 여기에서 자연스럽지 못한 방법으로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챈 경위는 속임수의 책임을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가 지고 함께 공모하는 방법으로 그렇게 성취한 것입니다(창 27:1~40). 아버지 이삭은 에서에게 축복하려 하였는데 어머니 리브가는 둘째 아들 야곱이 받도록 위장술을 쓰고 거짓을 말한 것입니다. 축복은 선지자의 사명이 있는 이삭이 합니다. 그런데 리브가는 이삭을 설득할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곱과 공모하여 야곱을 에서로 위장하게 하고 또 야곱으로 하여금 자신이 에서라는 거짓말을 하게 하여 이삭이 야곱을 에서로 알고 복을 받게 한 것입니다. 이때 야곱은 그렇게 하는 것이 거리껴서 거절하려 하였지만 그 책임을 어머니가 지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의지를 굽히고 욕심에 끌려간 것입니다(창 27:13). 이만큼 축복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들도 복을 사모하는 열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리브가는 남편의 의도를 불순종하였고, 또 남편을 속였으며 야곱도 아버지의 의도를 거역하였고,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그래서 받은 것은 축복이었는데 이삭은 눈이 어두웠으므로 야곱을 에서로 알고 축복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축복을 받는 것은 야곱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축복이 속임수로 가로채는 자에게도 전달될 수 있느냐?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은 속지 않으시니까 결코 전달될 수 없겠지요. 하나님은 야곱에게 축복하는 것을 뜻하셨기 때문에 복을 받는 대상이 야곱이므로 속임수로 전달된 복을 그대로 허락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 복은 하나님의 작정대로 받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만일 우리들에게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하는 것입니다.

1) 여러분이 리브가의 입장이라면 남편을 설득할지언정 속임수를 쓰거나 저주를 자청하지 않아야 할 것이고

2) 또 여러분이 야곱의 입장이라면 어머니의 권면을 거절하고 아버지를 속이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형님이 복을 많이 받아야 한다고 하여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축복을 양보하는 것은 형제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여도 하나님의 은혜는 풍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기로 작정된 복이면 자기가 받게 된다는 것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창 49:12~20).

3. 이로 인하여 에서는 야곱을 미워하게 되었고 또 죽이려 하자(창 27:41) 이삭과 리브가는 야곱을 하란의 외삼촌 집으로 피신하게 한 것입니다. 사냥꾼 기질을 가진 형이 종용하게 장성한 동생을 죽이려고 하는 위험은 적은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모는 형의 노기가 풀릴 때까지 피신시키는 것을 좋게 여겼고, 또 야곱도 그렇게 순종하였으며 그 기회에 에서처럼 이방결혼을 하지 말고 하란에 가서 동족 결혼을 하도록 부탁을 하고 축복하여 보낸 것입니다.

1) 여기에서 폭력성 있는 사람을 피하여 사는 것이 좋다는 점과 환경이 변함에 따라 그 나름대로 유익을 도모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야곱의 피신은 생명의 안전도모와 결혼상대를 구하는 일과 또 외삼촌 집과 자기의 산업을 일으키는 역할을 아울러 도모한 것입니다.

2) 야곱은 집을 떠날 때 “지팡이만 갖고 떠났다”(창 32:10)고 하였습니다. 이 지팡이는 짐승의 위험을 막는 도구일 뿐 그 이상의 의지는 못됩니다. 이런 처지에서 야곱은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성도가 고립되는 위치에 있게 되는 것은 신앙에 좋은 경험이 됩니다. 인간 배경이 없고 돈 없는 입장이 되었다면 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상황에서 더 가까이 인도해 주시는 것을 체험하실 것입니다.

3) 야곱이 단신으로 “브엘세바”를 떠나서 외가 고장인 “하란”으로 갈 때 그 거리가 2000리쯤 되는 험한 노정입니다. 가는 도중에 유숙처가 없어서 맨땅위에 돌벼개를 베고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계시가 꿈중에 나타난 것입니다. ① 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는 축복의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킨다”, “너를 이끌어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네게 허락한 뜻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야곱이 얼마나 기쁘고 든든하였을까요?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계셨고, 야곱은 말씀으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은 하나님이 야곱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고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는 모든 성도들에게도(곧 나에게도) 주신 것입니다. 롬 10:12에서 “주님은 모든 성도의 주라”하셨고, 딤후 4:8에서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 상급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은혜, 지켜주시는 은혜,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은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시는 은혜”가 얼마나 귀합니까? 저희들도 꼭 이 은혜를 사모하셔야 하겠습니다. ② 그때 야곱은 하나님이 함께 계신 것을 인하여 두려움을 느꼈습니다(창 28:17).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그 곳을 하나님 만나는 성전으로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곳이 성전입니다. 그래서 그 곳에서 제사를 드리고 그 곳 이름을 벧엘(하나님의 집)이라고 한 것입니다. 벧엘은 예루살렘에서 약 50리 북쪽에 있는 지역입니다. 그러니까 목적지까지 200리쯤 가다가 그런 체험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자신이 고향에 돌아오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섬길 것이요, 계시를 주신 그 장소를 하나님의 전으로 삼아 제사를 드리고 또 소득의 십일조도 하나님께 드릴 것이라”고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섬긴다”는 뜻은 “자기 혼자 섬기는 하나님처럼 섬기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십일조 제도는 아브라함 때부터 제단 봉사에 쓸 수 있도록 제사장에게 드린 헌금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제사장이 나타난 사실은 없지만 멜기세덱같은 인물이 아브라함 때도 있었으니까 십일조 헌금은 누가 취급하든지 제단 설립 등에 사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저희들이 교훈받을 수 있는 것은 ① “축복은 축복대로 성취되고 죄는 지은대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속임수로 축복을 받은 것 때문에 20년간 나그네 신세로 고생을 하였고, “리브가”는 야곱을 보낸 후 그의 역사가 없는 것으로 보아 일찍 세상을 떠났으며(창 25:23, 27:5~28:5, 31:41, 롬 9:12) 야곱은 고생하면서 복을 받았습니다. ② 야곱은 고생을 하였지만 고독 중에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되었고, 계시의 말씀으로 큰 위로와 격려를 받았으며 말씀의 계시가 곧 하나님의 임재임을 믿었습니다. ③ 따라서 더 큰 희망을 내다보고 용기있게 발걸음을 재촉하게 된 것입니다.

 

제 19 과 야곱(2) (창 29:1~14) 목록으로


1. 앞 과목에서 야곱이 외로운 여행을 할 때에 하나님의 계시를 체험한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창 28:10~22). 인간이 외로울 때 하나님이 가까이 와 주신다면 더 반가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외로울 때에 영으로 존재하신 하나님이 말씀으로 나타나셨으며 꿈을 통하여 계시를 주셨고, 야곱과 항상 함께 하실 것과 지켜주실 것과 인도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으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제가 이 시간에 강조드리고 싶은 것은 바로 성도가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말씀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을 체험한 것처럼 우리도 성경말씀을 접할 때 곧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으로 느끼고 또 성경에 나타난 말씀이 곧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믿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고도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를 뜨겁게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드시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임재와 나타나심으로 믿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주의하실 것은 성경 말씀이 아닌 다른 것(꿈이나 누구의 계시)을 하나님의 지시로 믿으시면 안됩니다. 야곱이나 요셉이 꿈으로 계시를 받았을 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이 성경을 기록하시기 위하여 특별히 주신 것일 뿐 성경을 다 주신 후에는 성경에 의존하여 살도록 하셨기 때문에 계속 지시하시는 계시나 영감을 별도로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히 1:1, 유 3, 엡 2:20, 3:5~6, 계 22:18~19).

2. 야곱은 하나님의 인도를 체험합니다(앞에서도 말씀으로 임재하신 것을 체험하였음).

1)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약 2000리 길을 여행하여 하란 지경에 가까이 도착하였습니다. 야곱은 “하란”에 사는 자기의 외삼촌 라반의 집을 찾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마침 그 주위에 양떼와 우물이 있는 것을 보고 그 곳에 가서 목자들에게 물어본 것입니다. “당신들은 어디서 온 분들입니까?”하고 물으니 “하란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작은 할아버지 “나홀”의 이름을 대면서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십니까?”하니까 바로 라반의 딸이 양떼를 몰고 그 우물로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라반의 딸 “라헬”을 만나고 그의 안내로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서 반가운 상면을 하게 되었으니 이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신 바는 없지만 하나님이 인도하셨고, 만나게 하셨으며 또 야곱을 반갑게 영접하도록 하셨기 때문에 야곱의 생활이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성도들도 그렇게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다 그런 체험을 하셨을 것인데 그것을 하나님의 인도로 알지 못하는 것이 잘못입니다.

2) 그 다음에 야곱은 그 집에서 보수를 받으며 일을 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취직을 한 셈입니다. 여러분들도 야곱처럼 인도를 받으면 취업을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야곱이 외삼촌 집에 한달을 있으면서 그 집 일을 도와 주었더니 외삼촌이 그때부터 “품삯을 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때 야곱은 7년 봉사한 품값으로 둘째딸 “라헬”을 자기의 아내로 달라고 청하여 쉽게 허락을 받았고, 7년동안 수고를 하였지만 라헬과 연애를 하는 것 때문에 “7년을 수일처럼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근면, 성실이 자기의 무기였습니다. 그때 그의 외삼촌은 야곱이 한달동안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고 그를 일꾼으로 썼습니다. 하나님은 근면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욥 8:5~7). 야곱은 “품값을 주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의 부모가 부탁한 결혼 문제를 생각하여 “그의 둘째딸 라헬을 배우자로 달라”하였고, 그 대가로 7년동안 수고하는 노력도 즐거움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여자가 귀한 세계에서는 상당한 대가를 주어야 하는 것이 그 시대의 관행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인도를 기적적으로 체험한 것이 아니고 일반은총에 따라서 취직도 하고 배우자도 선택하였으며 일하는 것을 낙으로 여기고 생활한 것입니다.

3. 야곱의 결혼과 자녀 생산에 대한 말씀을 살피겠습니다. 야곱이 외삼촌 집에서 7년을 봉사했을 때 약속대로 결혼을 하였는데 아침에 깨어보니 큰 딸 “레아”와 잠을 잔 것입니다. 이것은 외삼촌 라반이 큰 딸을 먼저 시집보내려는 관행과 두 딸을 다 야곱에게 주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야곱이 어떻게 사람을 분별하지 못하고 밤을 지냈을까?하는 의문은 갖지 않아도 됩니다. 그 이유는 어두운 밤에 큰 딸을 먼저 장막 안에 있게 하고 피곤한 야곱이 잠자리에 들어가서 대화없이 잠을 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침에 그 사실을 알고 항의를 한즉 “관행에 의하여 그렇게 하였으니 7일만 더 채우면 둘째딸을 줄 것인즉 그 후에 또 7년을 봉사하라”고 하여 야곱은 그대로 순종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라반은 두 여종인 실바와 빌하를 두 딸에게 각각 종으로 주었습니다. 여기에서 저희들은 믿음의 모범자인 야곱이 일부다처제에 응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됩니다. 일부일처제는 아담때부터 시행된 것인데 가인의 6대손 라멕때부터 그 제도가 깨졌으나 라멕은 비택자였습니다. 그리고 선민 계열에서는 취첩한 사례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노아나 아브라함이나 이삭이 두 아내를 거느린 일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죽었을 때 재가한 기록이 있습니다(창 25:1). 그런데 야곱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는 일부일처제에 대한 확고한 교육을 받지 못한 점과 또 한 가지는 자기가 사는 지역의 관행을 따라 순종한 때문이었습니다. 즉 외삼촌이 알아서 인도한대로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자녀 생산을 경쟁적으로 하다보니 두 아내의 여종까지 아내로 삼아서 열 두 아들과 딸 하나(창 34:19, 25)를 낳게 되었습니다. 인력을 힘과 재산으로 알던 시대이기 때문에 아내를 많이 얻을 수 있는 여건이 되므로 그대로 따라 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야곱의 무지와 연약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문제를 간과하셨습니다(시 32:1). 그런 사례는 다윗왕에게도 나타납니다(삼하 12:8~9). 그런데 또 문제되는 것은 야곱의 네 처에게서 출생한 열 두 아들이 다 하나님의 선민이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야곱의 첩의 아들들을 부정한 씨로 여기시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보통 인간이 죄중에 출생한 것이나(시 51:5) 야곱의 첩의 자손들이 죄악중에 출생한 것이 같은 것인데 하나님은 죄중에 출생한 모든 사람 중 야곱의 열 두 아들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잠 16:4에 보시면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따라서 일부다처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지만 하나님께는 간과하시는 은혜가 있고, 또 죄인을 선택하시는 섭리가 있음을 깨달을 때 의문을 풀 수 있는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저희들은 야곱이 살아온 생애 속에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가 있고 그의 근면과 낙관적 생활이 있으며 또 무지와 연약도 나타나고 하나님의 간과와 선택의 은혜가 나타난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제 20 과 야곱(3) (창 30:1~8) 목록으로


1. 야곱이 처음에는 두 아내만 거느렸으나 나중에는 여종들까지 첩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첫 부인 레아가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네 아들을 낳았으나 둘째 부인 라헬은 야곱의 사랑을 받는 입장에 있었지만 하나님이 잉태하지 않게 하셔서(창 30:2) 그때까지 생산을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라헬은 “레아”에게 투기하는 마음을 갖고 자기의 여종 빌하와 동침하여 자녀 낳기를 원하였고, 야곱은 그대로 행하여 빌하에게서 “단”과 “납달리”를 낳았는데 첫 부인도 이것을 본받아서 자기 여종 “실바”를 남편에게 주어 그에게서 “갓”과 “아셀”을 낳게 하였습니다. 두 여인이 자녀 낳는 경쟁을 벌인 것입니다. 야곱은 선민 계열에서 일부일처주의를 위반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생산을 귀히 여기던 시대인 만큼 여인들끼리 경쟁을 한 것인데 야곱은 거기에 따라 호색인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2. 한번은 큰 아들 “르우벤”이 “합환채”란 풀을 구하여 그의 어머니인 레아에게 전달하였는데 이 합환채란 나무를 가지면 “부부의 금슬이 좋아진다”는 전설적, 미신적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 사실을 안 라헬이 언니에게 “남편 야곱을 일시 양보하는 조건으로 그 합환채를 달라”하여 교환을 하였는데 그 일로 레아가 야곱과 동침하여 “잇사갈”을 낳았고, 또 그 후에 “스블론”과 딸 “디나”를 낳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잉태케 하시면 합환채같은 미신적 신념이 없어도 여전히 생산을 잘 합니다. 그러나 라헬이 즉시 생산을 하지 못한 것을 보면 성도는 근거없는 약이나 전설을 믿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레아에게서 6남 1녀, 빌하에게서 두 아들, 실바에게서 두 아들 모두 10남 1녀를 낳은 다음에 하나님은 라헬의 태를 여셔서 “요셉”을 낳게 하신 것입니다(창 30:22). 따라서 잉태하고 생명을 출생시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3. 요셉이 출생하였을 때 품삯제도가 생겼습니다. 그러니까 품삯을 두 아내의 값으로 포기한 14년이 지났을 때였을 것입니다. 그때에 라반은 “얼마를 받으면 좋겠는지 말하라”고 야곱에게 물었고, 야곱은 자기가 와서 하나님의 은혜로 외삼촌의 짐승의 떼가 많아진 것과 또 자기의 노력이 성실하였던 것을 말하고 품삯을 정할 때 “양은 점이 있거나 검거나 아롱진 것으로 염소는 점이 있거나 아롱진 것으로 달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그런 양과 염소가 많이 생산된 것입니다. 이것은 성실한 자에게 주시는 대가이고 또 야곱에게 약속하신 은혜를 하나님이 실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흑암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그의 원하시는 자에게) 주시는 분이라”(사 45:3)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자기 몫의 짐승을 번성케 하기 위하여 방법을 썼는데 하나는 근면이었고, 또 하나는 강건한 양으로만 교배를 시킨 것이며 또 한 가지는 아롱진 양끼리 교배를 할 때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쁘라다나스, 버짐나무)의 껍질을 벗겨 아롱진 모양을 나타낸 나무를 보게 하므로 아롱진 새끼를 배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물학이나 유전공학적 연구로 입증되어야 하지만 “그렇게 한 후에 아롱진 것이 많이 나왔다”고 하셨으니까 그대로 믿어야 할 것입니다. 혹 생각하기를 “야곱이 지나친 욕심을 부린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만 야곱의 욕심에 앞서 라반이 품삯을 열 번이나 변한 사실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창 31:7). 하나님의 은혜로 야곱의 몫이 많아지고 주인인 라반의 재산이 적어지자 라반은 야곱의 소유가 자기의 것보다 적어지게 하기 위하여 품삯규정을 수없이 변형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야곱도 가능한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였던 것입니다. 창 31:12에 보시면 “야곱이 라반으로부터 억울함 당하는 일을 하나님이 보셨다”하였고, “하나님이 그 일로 인하여 더욱 야곱의 몫이 많아지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창 31:11~12). 하나님은 억울한 입장도 보시는 분입니다.

4. 그리고 그 때에 즈음하여 하나님이 야곱에게 고향으로 갈 것을 지시하셨습니다(창 31:13). 그때는 야곱이 외삼촌 집에 있은 지 20년 되었을 때였고, 자기 품삯을 모은 지 6년 만이었습니다(창 31:38). 그러니까 하나님이 “내가 너와 함께 있어…너를 이끌어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창 28:15)하신 약속을 시행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두 아내와 의논하여 동의를 얻고 나올 계획을 할 때 두 아내도 자기의 아버지가 자기들에게 인색하게 한 것을 지적하면서 모든 자식들과 재물을 이끌고 나오기로 한 것입니다. 가족들과 자기의 재물을 갖고 나오는 것은 정당한 일인데 두 가지 잘못한 점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는 라헬이 자기 아버지의 드라빔을 훔친 것이고, 또 한 가지는 20년 만에 나오면서 주인 외삼촌에게 인사없이 도망쳐 나온 것입니다(창 31:15~20).

1) 라헬이 아버지의 드라빔을 훔친 것은 아버지의 흉계로 손해 본 재산의 일부를 보충하려는 뜻이 있었을 것입니다. “드라빔”은 금속으로 만든 우상인데 거기에 종교적(미신) 의미와 권위나 상속권을 부여하는 의미가 있고, 또 금속 자체로도 재산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나중에 그것을 찾으려는 아버지에게 끝까지 거짓말을 하면서 내주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자기 아버지의 불공정성에 대한 항의였지만 결코 잘 한 일도 유익한 일도 아닌 것입니다.

2) 그리고 야곱이 인사없이 도망한 것은 그 책임이 야곱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야곱의 재산이 증식되자 라반의 아들들은 “자기 아버지의 소유를 뺏었다”하였고, 라반도 야곱에 대하여 안색이 좋지 않을 정도로 경색되어 있었기 때문에(창 31:1~2) 편안하게 나오게 되지 못할 것을 예측하여 라반이 양을 몰고 먼 곳으로 간 사이에 나온 것입니다. “불법이 성하면 사랑이 식는다”(마 24:12)고 하셨습니다. 야곱이 정당하게 얻은 재산에 대하여 외삼촌 집에서 투기하였고, 품삯을 열 번이나 조종하였는데도 야곱의 것이 많아졌으면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믿고(창 31:9~12) 축하할지언정 미워하거나 투기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였기 때문에 야곱이 조용히 나오려고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야곱이 더 잘하려고 한다면 외삼촌이 있을 때 인사를 하고 상당한 예물을 드리고 나왔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의 욕심이 앞서는 만큼 덕을 세우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3) 야곱이 떠난 지 3일 후에 라반은 “드라빔”도 함께 없어진 것을 알고 7일을 추격하여 길르앗 산에까지 와서 만났는데 그 날 밤에 하나님이 라반에게 현몽하여 “선악간 말하지 말라”는 계시를 주셨으니 이것은 하나님이 야곱을 “평안하게 보내시는 인도의 섭리”였습니다. 그래서 라반은 자기가 “야곱을 해롭게 할 능력이 있으나 하나님의 계시로 인하여 해롭게 하지 않는다”(창 31:29)하였고, 드라빔만 찾으려 했지만 라헬이 그것을 숨기고 모른다고 하는 바람에 찾지 못하고 두 딸에 대한 부탁과 송별 의식만 갖추고 헤어지게 된 것입니다. 대적자의 마음을 유화시키는 섭리가 하나님께 있음을 믿으셔야 할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야곱의 생애는 꾸준한 근면과 재물을 모으는 지혜로운 노력이 있었고, 생명 번성의 의욕과 함께 다처주의에 끌려간 사실, 재산 증식으로 인한 투기의 세계에서 갈등하며 산 것과 거기에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다 결백할 수 없습니다. 오직 근면하고 정직한 중에서 하나님의 보살핌의 은혜를 힘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 21 과 야곱(4) (창 32:1~33:20) 목록으로


이 시간에는 야곱이 귀향하는 과정에 있었던 일을 살피겠습니다. 우선 20년 동안 부모를 떠난 상태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성공한 야곱의 인내와 근실함을 칭찬하여야 할 것입니다.

1. 야곱이 귀향할 것을 결심하였을 때 그 당시의 형편도 떠나야 좋을 형편이었습니다. 자립할 만큼 재산이 형성되었고, 외삼촌 집에서는 야곱의 재산이 증가함과 동시에 자기 집 재산이 줄어드는 것을 염려하여 퍽 불안한 눈치였습니다. 따라서 야곱이 그 집에 더 있으면 이웃에 부담을 주는 결과가 되니까 하나님께서도 “떠나라”는 지시를 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그쯤 되면 헤어지라”는 지도의 뜻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동거의 경우나 동업의 경우에도, 노사관계나 교회와 교역자 관계에서도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야곱이 도망치듯 나와서 외삼촌을 만난 곳은 길르앗 산으로 그 곳은 요단강 동편이고 하란에서 1500리 쯤 남하한 곳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외삼촌과 작별인사를 하고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는데”(창 32:1~2) 야곱은 그들을 하나님의 군대로 알고 그 장소를 “마하나임”이라고 이름하였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천사)들을 보았을 때 하나님의 군대가 자기를 도와 주실 것을 믿었을 것입니다. 저희들도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의 약속을 나 자신에게 주신 것으로 믿고 기도하셔야 할 것입니다.

3. 야곱이 그 곳에서 또 100리 쯤 남하하여 얍복강에 이르렀을 때 세일땅 에돔(사해바다 서남쪽)들에 있는 에서에게 종을 보내어 야곱의 귀향을 알리고 “형으로부터 은혜 받기를 원한다”는 전갈을 보냈습니다. 얍복강에서 에서의 거처인 세일땅(에돔)까지는 약 350리 떨어진 곳인데 그 곳까지 사람을 다녀오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에서가 400인을 거느리고 마중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에 야곱은 두렵고 답답하였습니다(창 32:7). 형이 400인을 거느리고 오는 것이 위세를 뽐내며 해롭게 하기 위한 느낌이 들었고, 힘으로 대항할 입장이 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집 떠난 동기가 형의 축복을 가로챈 죄 때문이었는데 그 죄의 감정이 20년 동안 누적된 것인지, 해소된 것인지 알 수 없는 형편이고, 또 집을 떠날 때 그의 어머니 리브가가 “형의 감정이 해소되면 사람을 보내어 오게 할 것이라”(창 27:45)고 하였지만 그런 소식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오는 것이니까 불안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화해는 속히 하고 죄의 감정은 즉시 풀어야 하는데 20년이나 끌었으니 상처가 클 것입니다.

4. 그래서 야곱은 두 가지 방법을 쓰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선물을 전하고 형의 감정을 풀게 한 후 용서를 비는 것이었고(창 32:20) 그것이 안 될 때는 방어를 하면서 안전지대로 피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짐승과 종들을 두 떼로 나누어 서로 떨어지게 한 후 앞에 있는 떼는 선물로 쓰고 뒤에 있는 떼는 방어용으로 쓰기로 하고 그 뒤에 자기 가족들을 있게 하고 얍복강을 건너게 한 다음 자신만 얍복강을 건너지 않은 상태에서 홀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이 때 야곱이 홀로 남은 이유는 기도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기도는 고독한 입장에서 드릴수록 간절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어떤 건장한 사람이 야곱에게 나타났는데 야곱은 그를 물리치기 위하여 씨름을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여 환도뼈(응치뼈)가 상했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이 천사임을 알아 보게 되고 그에게 회개하며(호 12:4) 축복을 간청한 것입니다. 야곱이 두렵고 답답한 마음을 가졌을 때 건장한 사람이 나타나니까 그 천사를 에서가 보낸 자객 즉 자기를 해할 사람으로 착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천사는 출발 당시 자기가 본대로 하나님의 군대 역할을 하는 수행자였습니다. 여기에서 성도는 착각을 삼가야 하는데 마음의 안정과 담대함이 없이 두렵고 답답한 심정을 가지면 착각을 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 때 그 하나님의 사자가 “네가 나를 이겼다”는 뜻으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개명해 주었고, 야곱은 그 곳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다”는 뜻으로 그 지역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이겼다”는 의미는 그의 회개와 기도 때문에 하나님이 야곱을 도와주시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을 돌보시기 위하여 그의 사자를 항상 성도에게 수행케 하신다는 것을 믿고(마 18:10) 항상 의지하며 기도에 깨어 있는 성도가 되셔야 할 것입니다. 야곱은 그때부터 한쪽 다리를 절었다고 하였습니다. 야곱의 입장에서 한쪽 다리를 절게 된 것이 그가 약해진 것인가?할 때 그것이 자기의 힘으로 하나님을 물리치다가 당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항하거나 거스릴 힘이 없어지고 겸손하게 굴복하며 기도의 자세를 취할 수 있게 된 것이므로 오히려 강하여 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교만을 꺾으시려고 약점을 주시기도 합니다(고후 12:7). 그러니까 성도는 자기의 약점이 있을 때 그것을 겸손의 기회로 삼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여 은혜를 받는 입장을 취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5. 결국 야곱은 400인을 거느리고 오는 에서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에서를 만날 때 화해가 잘 될 것을 확신하는 쪽이 컸습니다. 그러나 약간의 우려도 있었기 때문에 야곱의 뒤에 여종과 그 아들들, 레아와 그 아들들, 라헬과 요셉 순으로 행렬을 세우고 에서에게 가까이 가서 일곱 번 절을 한 것입니다. 동생이 살인죄를 범하였다 하더라도 일곱 번 절하면서 용서와 화해를 청하면 유화되지 않을 형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의 마음을 돌이켜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반드시 있었을 것입니다(신 28:7). 다행스럽게도 에서는 야곱을 반갑게 얼싸 안았고, 일시에 모든 불화가 녹아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야곱은 가족들 인사를 시키고 예물을 전한즉 에서가 사양하였지만 야곱은 용서받고 화해된 것을 감사하는 뜻으로 꼭 받도록 하였습니다. 이 때에 야곱이 에서에게 취한 태도를 보면 일곱 번 절만 한 것이 아니고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한다”하였고, 화해된 후에는 “형님 얼굴을 본즉 하나님 얼굴을 본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형제간의 불화는 그만큼 심령의 문을 막았다가 연 결과가 된 것입니다. 용서를 베푼 사람은 용서받는 자에게 하나님같은 존경을 받아 마땅한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렇게 상면과 화해가 있은 다음에 에서가 동생을 안내하려 하였으나 야곱의 가족들이 휴식을 취하여야 하기 때문에 에서는 세일(예루살렘 서남)로 가고, 야곱은 숙곳(요단강과 얍복강이 인접된 부근)에 잠시 쉬었다가 “세겜”(요단강 중간 서쪽)에 와서 은 100개로 땅을 사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제단의 이름을 “엘 엘로헤 이스라엘”(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중요한 교훈은 예절과 화해가 중요하고 어떤 경우에 하나님이 자기를 도와 주시는가를 깨닫는 문제라 하겠습니다.

 

제 22 과 야곱(5) (창 34:13~31) 목록으로


야곱의 가족들이 세겜 땅에 머물러 있었을 때 야곱의 딸 “디나”가 그 동리의 여자들을 만나러 나갔다가 그 지역에 사는 족장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고 그 집안으로부터 청혼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세겜의 집안에서는 남의 딸을 강간한 잘못을 무마하기 위하여 “상당한 예물을 주고 서로 통혼도 하며 자기들의 지역에서 함께 사는 것을 허락하는 조건으로 청혼을 해 왔지만 야곱은 이방족들과 통혼할 마음이 없었을 것입니다.

1. 그렇다면 강간의 피해를 본 측이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이런 형편에서 성도의 생활 원리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1)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시고도 가만히 계셨고(마 26:53) 스데반도 죄없이 죽임을 당하고도 용서를 구하였으니까(행 7:60) 하나님의 공의에 부탁하고(롬 12:19) 세겜에게는 잘 권면하고 용서하는 것이 제일 잘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딸이 포악한 남자들을 가까이 한 잘못도 반성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2) 그러나 두 번째 방법도 또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가해자가 스스로 죄의식을 느끼고 위로금의 의미로 보상을 한다면 그 보상을 받았다 하여 잘못될 것이 없는 것입니다.

3) 그런데 또 세 번째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해자가 죄를 뉘우친다 하더라고 피해가 너무 커서 상당한 보상을 원하였을 때 타협되지 않으면 법에 의존하여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옛날 구약 시대에도 재판관들이 있어서 억울한 사람들의 재판을 해 주었습니다. 악한 사람들은 피해를 과장시켜서 적당량 이상을 갈취하기도 하지만 성도는 진실한 보상만 받아야 하고 또 법에 의존하여 공정하게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과한 일로 비판하거나 비난하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야곱은 아무 손을 쓰지 않았습니다.

2. 그런데 범법한 세겜 측에서 청혼을 해 왔을 때 야곱은 나타나지 않고 그 아들들만 나타나서 “할례받지 않은 자들과 통혼할 수 없으니 모든 남자가 우리처럼 할례를 받으면 할 것이라”고 속였을 때 세겜 측에서는 혼인도 해야 하고 또 할례받은 부족들과 통혼하는 것을 좋게 여겨서 일제히 할례를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족의 남자들이 할례의 상처로 누어 있는 사이에(시므온과 레위가) 침략하여 하몰과 세겜은 물론 그 부족의 모든 남자들을 다 도륙한 것입니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할 때 야곱의 자녀들이 아버지의 허락도 없이 지나친 원수 갚음을 한 것은 큰 잘못인 것입니다. 야곱은 그 일로 인하여 가나안족과 브리스족의 보복이 있을까 두려워하였지만(창 34:30) 하나님의 은혜로 후환이 없었습니다(창 35:5). 다만 “하나님의 백성을 해롭게 하면 몇 배의 벌을 받는다”는 경종을 울린 것입니다.

3. 그 일이 있은 후 야곱은 세겜에서 벧엘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벧엘로 가는 길은 예루살렘 언덕 쪽으로 가는 남쪽 방향입니다. 야곱은 20여년 전 집을 떠났을 때 그 곳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면 다시 그 곳에 와서 단을 쌓을 것과 소득의 십일조 드릴 것을 서원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 서원을 지킨 것입니다(창 28:20~22). 서원은 지켜야 합니다(시 15:4). 창 35:3에 보면 “환란 날에 응답하시고 함께 하여 주신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단을 쌓기 전에 그 가족들이 갖고 있던 이방 신상과 보석, 귀걸이들을 전부 거두어 상수리 나무 밑에 묻었으니 이것은 일종의 회개요, 정화운동을 뜻하는 것입니다(창 35:3~4). 그 일이 있은 후 하나님께서 그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셔서 세겜족을 멸하고 난 다음이지만 그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도록 해 주셨고(창 35:5), 하나님이 또 한 번 복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이 바로 생육과 번성이요, 가나안 땅을 주실 것과 그 후손에게서 왕들과 메시야가 탄생할 것을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야곱이 버린 이방 신상은 우상이고 귀걸이는 재물인데 그것을 버렸을 때 하나님의 간섭이 더 크게 나타난 것을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현실적 의지의 대상을 외면할 때 하나님이 더 가까이 해 주시는 것을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라 8:21~22).

4. 야곱이 벧엘을 떠나 에브랏에 이르렀을 때 라헬이 베냐민을 낳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에브랏”은 베들레헴의 옛 이름이고(창 35:19, 48:7) 목적지인 헤브론까지 약 반쯤 되는 지역입니다. 그래서 라헬을 베들레헴에 장사를 지냈는데 또 그 당시에 큰 아들 “르우벤”은 서모인 빌하와 간통을 하여 집안에 불미스러운 오점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큰 아들 “르우벤”이 받은 장자의 특혜를 요셉에게 돌려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갑절로 기업을 주고 에브라임은 족보상의 장자만 되게 하였습니다(대상 5:1).

5. 이상과 같은 여정을 거쳐서 이삭이 사는 고향 헤브론에 도착을 한 것입니다. 야곱이 집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어머니 리브가를 만났어야 하는데 아버지 이삭만 생존한 중에 있고, 어머니 리브가는 성경에 나타나지 않음을 보아서 야곱을 축복받게 할 때 “저주는 내게로 돌린다”(창 27:13)고 한 말대로 세상을 일찍 떠났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야곱의 타향 살이가 끝나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고향 땅에 머물러 살게 된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선민 야곱의 가정도 어려운 일이 많았습니다. 딸이 강간을 당하고 한 부족을 죽인 일, 라헬이 여행 중에 죽은 일, 아들이 서모를 범한 일입니다. 그 중에서도 믿음의 서원을 지키고 정화운동을 일으키며 감사의 제단을 쌓는 일을 잊지 않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야곱과 함께 하셔서 대적을 두렵게 하여 접근하지 못하게 하시고 축복의 언약을 주셨으며 약속대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하셨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선민이라 하여 시련이 없을 수 없음과 정결하게 살지 못하였어도 여전히 보호해 주셨고, 야곱은 순간 순간 회개와 정화를 힘쓰면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은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제 23 과 요셉(1) (창 37:1~11, 39:16~23) 목록으로


야곱의 생애가 끝나지 않았으나 창세기 37장부터는 요셉의 기사가 나오기 때문에 제목을 요셉이라고 정하였습니다. 창세기 36장에서는 에서가 세 아내(아다, 오홀리바마, 바스맛)를 취하고 거기에서 다섯 아들을 낳은 것과 그 후손들이 크게 퍼져서 여러 부족을 형성하는 내용이 나옵니다(창 36:1~30). 그리고 부족을 다스리는 제도로써 왕을 세워 다스린 것이 이방족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군왕 정치를 시작한 민족이 바로 에서족이 살러간 에돔에 거한 부족이었습니다(창 36:31~39). 처음에는 에서가 야곱의 부족과 함께 그 아버지의 터전인 헤브론 지역에서 살다가 그 지역이 좁은 것을 알고 에서가 먼저 그 땅을 포기하고 세일산(사해바다 서남방)쪽으로 갔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을 약속하심에 따라 섭리적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창 36:6~8).

1. 에서를 내보내고 야곱이 가나안 땅에 거할 때부터 요셉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1) 요셉은 야곱의 열한째 아들이고 또 사랑하는 부인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나이가 어리고 또 어머니를 잃었기 때문에 야곱이 요셉을 더 생각한 것은 자연스런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을 집안에 있게 하였고, 채색옷도 입혔습니다. 요셉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자기 형들의 잘못을 보면 그것을 아버지에게 고하였고(창 37:2) 그로 인하여 형들의 미움과 시기를 받으면서 살았습니다. 형제의 죄를 아버지에게 고하는 것은 범죄 방지와 교훈을 위한 건설적 방법일 뿐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형들은 동생이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더 받는다 하여 시기하고 미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리고 어머니 없는 동생을 사랑하였어야 할 것입니다.

2) 그런데 17세 때에 요셉이 계시의 꿈을 꾸었습니다. ① 이 꿈은 꾸고 싶어서 꾼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계시의 목적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 꿈 내용은 “형제의 곡식단이 요셉의 곡식단에게 절을 하는 광경이요, 또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요셉에게 절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계시의 핵심은 “부형들이 요셉에게 굴복하고 사정하게 될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여기의 해와 달과 별, 그리고 곡식단은 계시 방편에 비유적으로 이용이 된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그 꿈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요셉을 시기하였으나 야곱은 그 꿈 이야기를 마음에 두었다고 하였습니다. ② 하나님이 이 내용을 왜 확실한 말씀으로 주시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요셉이 말씀 계시를 받을 만큼 성숙하지 않았고, 또 꿈을 통하여 느끼는 것만큼의 비젼을 가질 것과 시기하는 형들의 노골적인 미움을 받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3) 요셉은 아버지의 심부름을 잘 순종하다가 애굽의 노예 신세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다른 아들들이 세겜으로 목양원정을 갔기 때문에 그들의 안전 여부와 동태를 살피기 위하여 요셉으로 하여금 그 곳을 다녀오게 한 것입니다. 헤브론에서 세겜까지는 약 800리 쯤 되는 거리였습니다. 요셉이 세겜에 가서 형들이 있는 곳을 물은즉 그 곳에서 500리 쯤 더 떨어진 “도단”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까지 또 간 것입니다. 그런데 형들은 요셉을 보자 미워하여 죽이고 구덩이게 묻으려 하였다가 채색옷을 벗기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장사꾼들을 만나 은 20개를 받고 팔았습니다. 그리고 양피 묻은 채색옷을 아버지에게 보여 짐승에게 물려 죽은 것처럼 속였습니다. 그 아버지는 요셉의 죽음을 믿고 애통하였고, 요셉은 애굽의 노예 시장을 거쳐 애굽왕 바로의 시위대장집의 노예로 팔려 갔습니다.

2. 요셉이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시무할 때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고, 요셉을 형통하게 하시므로 그 주인 집까지 복을 주셔서 소유가 더 풍성해졌다고 하였습니다.

1) 하나님이 요셉을 형통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야곱의 사랑을 받은 아들이고, 요셉 자신도 신앙성이 강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은 사람(형들)으로부터 소외된 신앙인을 특별히 가까이 해 주시는 것입니다.

2) 요셉의 신앙성이란 부모에게 순종하고 효도하는 것과 하나님의 계시에 민감한 것, 또 정의심이 강한 것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어느 성도든지 말씀에 민감하고 정의감이 투철하면 하나님이 가까이 해 주실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신 큰 증표는 요셉이 죽음의 위험이 있었을 때 섭리적 방법으로 죽지 않게 하셨고, 또 요셉과 함께 사는 주인 집에도 복을 주신 것입니다. 복받기를 바라는 성도는 롯이 아브라함을 가까이 한 것처럼 요셉같은 신앙의 사람을 가까이 함이 좋은 것입니다.

4) 하나님이 섭리적으로 요셉을 죽지 않게 하신 것은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가도록 연고를 만드시는 점도 있고, 또 요셉이 죽임 당하려 할 때 구덩이에 넣게 한 것도 하나님이 그를 살리시기 위하여 “르우벤”의 마음을 감동하며 그렇게 제의하게 하신 것이고, 또 유다가 애굽으로 가는 상고들에게 팔도록 제의한 것도 역시 요셉을 살림과 동시에 야곱의 가족들의 훗날을 예비하신 것입니다(창 45:7).

3. 요셉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범죄 유혹을 물리침으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일입니다. 애굽왕의 시위대장 집에서 종노릇을 하는 중 그 주인 여자가 동침하기를 유혹하였을 때 28세의 젊은 나이로 그 유혹을 강하게 거절한 것입니다. 그 때에 옷벗김을 당하고 도망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이 일이 탄로나자 애굽 여인은 “요셉이 겁탈하려 하였다”고 뒤집어 씌우므로 감옥에 들어간 것입니다. 성도가 살다보면 이런 억울함을 당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 때 요셉은 자기의 누명벗을 때가 있기를 기다리면서 감옥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전옥으로부터 죄수 관리하는 책임을 맡아서 성실하게 일을 하였으니 성도는 어떤 환경에서든지 자기의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하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성도의 생애가 평안하면 좋겠지만 하나님은 연단과 축복을 받게 하시기 위하여 시련을 주시기도 합니다. 요셉이 일찍 어머니를 잃은 것과 형들로부터 미움과 시기와 버림을 당한 것과 또 노예가 되고 누명을 쓰고, 감옥 생활을 하게 된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형통하게 하실 때는 모든 일이 다 전화위복으로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시련의 기간을 인내로 견디며 어디서나 성실하였고, 가장 어려운 유혹을 이김으로써 그것이 그의 생애의 전환점을 맞게 된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간 요셉은 인생의 길로 볼 때 바닥을 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시면 얼마든지 희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정의롭게 살기 위하여 육체의 정욕과 현세욕을 강하게 떨칠 수 있었던 요셉의 용기를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제 24 과 르우벤과 유다 (창 37:18~36) 목록으로


창세기 37장 하반부에 르우벤과 유다와 요셉과의 관계에 대한 기사가 있고, 38장에는 유다의 범죄에 관한 기사가 있습니다. 르우벤은 야곱의 장자이고, 유다는 넷째 아들인데 “르우벤”은 아버지의 침상을 범한 죄 때문에 장자 기업의 특권을 뺏겼고, 유다도 자기의 며느리와 동침하는 죄를 범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 지파에게 후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 후한 은혜란 메시야 계열의 조상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요셉의 역사가 진행되는 중에 르우벤과 유다의 역사가 나오기 때문에 살피고 지나가려는 것입니다.

1. 르우벤에 대하여

1) 르우벤은 야곱의 장자인 만큼 효도에 대한 것이나 형제에 대한 모범, 그리고 가문 계승에 대한 것 등 맏아들로써의 책임이 많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서모 빌하와 동침하는 잘못을 범하였습니다. “르우벤”이 음행죄를 범한데는 환경상의 문제도 있습니다.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결혼을 하고 20년 만에 집에 오는 중이었으니까 그때 르우벤의 나이는 20세 쯤 되었을 것입니다. 한창 방탕하기 좋은 나이였고, 아버지 야곱은 부인을 넷이나 거느렸기 때문에 집안 단속이 잘 안 되는 사이에 여행 중에 젊은 서모와 불륜관계를 가졌던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된 야곱이 퍽 민망하였을 것입니다. 야곱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침묵하였는데(창 35:22) 자기를 반성하면서 덕을 세우기 위하여 말을 하지 않다가 세상 떠날 무렵에 열두 아들의 장래를 예언하면서 그 일을 유감스럽게 거론하였고(창 49:1~4) 결국 장자의 특권을 르우벤으로부터 요셉에게로 돌려주었던 것입니다(대상 5:1). 그래서 르우벤이 갑절의 분깃을 받아야 할 것이지만 결국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각각 한 지파의 몫을 하게 된 것입니다(민 1:32~35).

2) 르우벤은 동생들이 요셉을 죽이려 할 때 요셉을 살려 돌려 보내려고 노력을 하였으나 그가 자리를 뜬 사이에 동생들이 요셉을 미디안 상고들에게 팔아 버리므로 탄식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동생들이 요셉을 팔고 그가 입었던 채색 옷에 양피를 묻혀서 짐승에게 잡혀 죽은 것처럼 아버지를 속이는 일에 가담하였습니다. 르우벤은 동생들이 “요셉을 죽여 땅에 묻자”고 하는 것을 “생명을 해하지 말고 구덩이에만 가두자”고 제안하여 직접 죽임당할 일을 피하게 하였으니 이것은 요셉에게 인정을 베푼 일이 되었지만 여기에는 요셉을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보호섭리가 있었던 것입니다(창 37:21~24). 하나님은 그런 방법으로 자기의 백성을 보호하십니다. 그러나 르우벤이 동생들과 더불어 아버지를 속인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동생들이 저지른 죄를 은닉해 주기 위함인데 그것은 참으로 옳지 못한 잘못인 것입니다. 오히려 그 동생들을 설득시켜서 아버지 앞에 자복하도록 노력하였어야 할 것이고, 만일 동생들이 듣지 않을 때는 은밀하게라도 아버지에게 사실을 고하였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연약한 면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3) 르우벤은 희생적이고 모험적인 용기가 있었습니다(창 42:37). 앞의 사건은 요셉의 나이 17세 때였지만 르우벤이 모험적 용기를 나타낸 때는 요셉의 나이 40세 가까이 되었을 때이므로 거의 20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습니다. 요셉은 30세에 애굽에서 총리가 되었고, 총리된 후에 7년의 풍년이 지나고, 또 흉년이 2년째된 때였습니다(창 45:6). 애굽에서 양식을 구해온 후 두 번째 양식을 구하러 갈 때는 반드시 “벤야민을 데리고 가야 한다”는 약속과 함께 시므온을 인질로 잡히고(창 42:24) 돌아와서 “벤야민과 함께 가겠다” 한즉 야곱이 쉽게 승낙하지 않으니까 “르우벤”이 말하기를 “만일 벤야민을 데리고 오지 않으면 나의 두 아들을 죽이소서”하였으니 과격한 말이지만 책임과 희생적 용기를 보인 태도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말을 유다도 하였습니다(창 42:9).

2. 유다에 관한 내용입니다.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이고, 역시 레아의 소생인데 하나님이 메시야를 유다지파를 통하여 보내셨고, 이 유다지파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정통국가와 성전제도를 바벨론 포로시까지 이어나가게 하셨습니다. 유다지파가 신령한 복에 대하여 선택을 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것입니다.

1) 유다는 요셉이 구덩이에 들어 있을 때 “그를 아주 죽이지 말고 애굽으로 가는 미디안 상고들에게 팔아서 돈을 받자”는 제의를 하였습니다(창 37:26~29). 형제들이 그 제의를 좋게 여겨 결국 은 20개를 받고 팔았습니다. 형들은 모두 열 명이었으니까 은 두 개씩 나누어 가졌을 것입니다. 유다는 요셉을 죽이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하였겠지만 이 경우도 르우벤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섭리적 작용이 있었습니다(창 45:7).

2) 흉년을 극복하기 위하여 2차로 양식을 사러 갈 때 “벤야민을 데리고 가라”는 허락을 야곱이 하지 않자 유다가 말하기를 “벤야민을 데려오지 않으면 나에게 그 죄를 물으소서 내가 그 몸을 담보하리이다”(창 43:9)하였고, 또 애굽에서 요셉이 벤야민에게 도둑의 누명을 씌우고 벤야민을 종으로 삼겠다고 하였을 때 유다가 나서서 요셉이 감동될 만큼 변론한 사실이 있었으며(창 44:16~33)

3) 마지막으로 유다에 대한 특별한 사건은 창세기 38장의 내용입니다. ① 이 사건은 유다의 나이가 50세 쯤 되었을 때 있었던 사건으로 추정됩니다. 유다는 야곱이 밧단 아람에 가서 결혼하여 네 번째로 출생한 아들이고, 요셉은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20년 만에 돌아올 무렵에 낳았기 때문에(창 30:23~25) 그 연령 차이가 15년 쯤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이 애굽에서 총리된 것이 30세 이지만 7년 풍년 기간과 흉년 기간을 합하면 약 40세 쯤에 형들과 상봉하게 된 것이므로 상봉할 당시의 유다의 나이는 약 55세 쯤 되었겠지요. 그 나이이면 막내 아들이 장성한 때쯤 될 것이고, 이 사건이 애굽에 가기 직전에 일어난 사건이 될 것입니다. ② 계대 결혼이란 과부된 형수나 계수에게 그 남편의 형제가 장가 들어 혈육을 이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다가 세 아들을 낳고 큰 며느리 다말이 과부가 되자 둘째 아들로 계대 결혼을 시켰다가 실패하고 셋째 아들이 장성하면 계대 결혼을 시키겠다고 약속을 하였는데 셋째가 장성하였어도 계대 결혼을 안 시키니까 다말이 창녀로 변장하여 시아버지 유다와 동침하는 기회를 만든 것입니다. 그때 둘째 아들 “오난”이 형의 자손을 낳아 주려 하지 않은 것을 “하나님이 악하게 여겨 죽이셨다”(창 38:7)하신 것을 보면 근친 결혼이나 계대 결혼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고, 또 오난이 죽은 형을 위하여 자손을 낳아 주어야 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싫어한 것은 경제적 이득을 위하여 두 가문 만들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일 오난이 형의 가문을 이어준다면 역시 자기의 아들이 출생하는 것인데도 그것을 원치 않은 것을 보면 핏줄보다 경제적 여건을 더 중요시 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그를 악하게 여기신 것은 그의 불순종과 이기주의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③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당시 다말이 시부로 인하여 쌍둥이인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는데 베레스가 메시야 계열을 잇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 기록이 마 1:3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즈음도 경건한 세계에서는 불륜관계를 큰 죄로 여깁니다. 그런데 메시야 계열에서도 유다의 불륜관계나 라합과 룻, 즉 이방여인까지 포함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어떤 죄이든지 또 어떤 대상이든지 상관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예표로 보여 주신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르우벤은 형으로써의 선도적 역할자가 못 되었고, 잠시 요셉에게 인정만 베풀었을 뿐이며 진실의 힘도 약하고 이성욕 억제도 약하여 득보다 실이 많은 인생을 살았고, 유다 역시 정의심과 용기를 일시적으로 나타냈으나 역시 생활의 절제가 부족하여 창녀를 상대하였고, 자부와 동침하는 과오까지 범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메시야 계열로 쓰신 점에 대하여는 하나님의 무조건 선택에 의한 긍휼이라고 밖에는 더 생각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 두 사람에게 부정적 면이 많이 나타났지만 살아가면서 변화를 받았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변화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제 25 과 요셉(2) (창 41:1~13,38~43) 목록으로


요셉이 17세에 애굽으로 팔려 왔고, 28세까지 노예 생활을 충실히 하다가 범인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함없이 요셉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1. 요셉이 은혜받은 형편을 보면

1) 죽음을 면하게 된 것

2) 노예가 되었지만 주인집에 발전이 있어서 요셉이 들어온 후부터 집안이 형통한다는 칭찬과 함께 필요한 인물로 취급을 받은 점

3) 부인의 겁탈이 있을 때 용기있게 물리친 것도 하나님의 큰 은혜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4) 감옥에 들어가서도 감옥의 일을 맡고 견딜만한 환경을 주신 것입니다.

2. 반대로 요셉이 어렵게 된 일을 살피면

1) 고향을 떠났고

2) 노예 신세로 전락하였으며

3) 죄없이 누명을 썼고

4) 감옥에 까지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5) 감옥에 있을 때 왕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두 관원장이 들어와서 그 두 사람이 각각 꿈을 꾸고 고민하던 차에 요셉에게 꿈 해석을 받은 일이 있는데 그 꿈대로 다 성취가 된 것입니다. 떡을 제공하는 관원장은 3일 만에 죽었고, 포도주를 제공하는 관원장은 3일만에 복직을 하여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요셉은 나가는 관원장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말하고 나가서 자기를 구해주도록 부탁을 하였으나 그 관원장은 그 부탁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작은 희망마저 없어진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노예되고 죄인되고 감옥살이에서 나올 희망까지 없어졌다는 것은 인생으로 말할 때 바닥을 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죽음 빼고는 더 낮아질 일이 없게 되었습니다. 어느 인생이나 최하로 낮아지면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해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가장 높아졌으면 내려 갈 일만 남겠지요.

3. 2년이 지나고 요셉이 30세 되었을 때였습니다.

1) 이 때에 바로왕은 너무 충격적인 꿈을 꾸었고, 애굽의 많은 술객들과 박사들을 동원하여 꿈 해석을 하게 하였으나 해석하는 사람이 없자 과거에 술 관리를 맡은 관원장이 그제서야 요셉을 기억하고 꿈 해석자로 요셉을 바로왕 앞에 세우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꿈해석을 하고 또 그 꿈대로 될 일에 대한 대책까지 제의를 하므로 일시에 바로왕의 신임과 총애를 받고 바로왕 다음가는 애굽의 총리가 되므로 하루 아침에 성공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2) 여기에서 저희들은 깨달아야 할 점이 많습니다. ① 요셉이 인생의 바닥을 쳤은즉 올라가게 되더라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성공하려면 바닥으로 내려가서 새롭게 시작하는 순서가 필요하다는 점이요 ② 하나님이 요셉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 때를 정하시고 또 반드시 연단을 주신 다음에 허락하시는 점입니다. 이 사실에서 성도는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고 고난 받는 일을 연단으로 여기며 연단받는 일이 소망스러운 일이란 것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③ 하나님이 요셉을 성공시키기 위하여 여러 사람과 사건을 동원시켰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라면 아버지가 심부름을 보냈고, 르우벤과 유다와 형들이 요셉을 팔았으며 미디안 사람과 이스마엘 사람이 애굽으로 데리고 갔고, 시위대장과 그 부인이 감옥에 보냈으며 꿈해석 받은 두 관원장의 역할을 경유하여 바로왕을 만나 성공을 한 것입니다. 현실적 성공은 높은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쉽게 성취됩니다. 그리고 사건은 심부름 하고 미움받고, 팔리고 종노릇 하고 누명쓴 일과 감옥생활 한 것이 전부인데 이런 일들은 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고도 하나님이 인도하시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요셉이 심부름 가고 미움 받고 팔리고 종노릇 하고 누명쓰고, 감옥에 간 것이 다 어려운 생애였지만 그것이 요셉에게는 성공의 길잡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낙관하며 소망을 갖고 자기 생활에 충실할 때 때가 되면 성공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④ 그러나 요셉이 성공한 결정적 은혜는 꿈해석의 계시를 받은 것입니다. 꿈해석의 계시를 안 받았으면 아무리 여건이 좋아도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을 섭리적으로 인도하셨고, 요셉은 신앙생활을 늦추지 않았으며 또 꿈해석하는 계시와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요즈음은 아이디어 시대라고 합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착상하고 개발한 사람은 다 성공하였습니다. 이 아이디어를 어디서 받아야 합니까? 요셉처럼 우리도 새로운 계시를 받아야 합니까? 그래서 점쟁이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런 계시를 아무 때나 누구에게나 다 주시지 않습니다. 성경이 기록될 때는 많이 주셨지만 성경 기록을 끝내신 다음에는 성경에 의존하게 하시고 새로운 계시를 더 주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요 21:25, 엡 3:4~5). 그러니까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성공하기 위하여 아이디어를 깨닫는 방법은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고 성경계시, 곧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4. 요셉처럼 성공하기를 소원하십니까? 저의 교회 장로님 아들 이름이 요셉인데 이름만 요셉으로 지었다고 요셉처럼 성공하겠습니까? 그렇지 않겠지요. 요셉처럼 살아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을 모시고 낮은데 처하고 봉사적 생활을 하며 근면하고 기도하고 성경공부 잘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민감하게 느끼면서 죄는 강하게 물리치고 열심히 살면 그것이 성공의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총리되고 장가가고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를 가졌기 때문에 7년 양식을 저축한 후에 그것으로 전 국민이 흉년을 이겨나가게 하였던 것입니다.

 

제 26 과 요셉(3) (창 42:1~8) 목록으로


1.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고 흉년이 들었을 때 애굽백성을 살게 하면서 모든 토지까지 양식으로 바꾸어 주므로 모든 토지를 왕실의 소유로 삼아 주었습니다. 땅을 나라가 소유하도록 정치를 한 것입니다(창 47:20~26) 7년 풍년이 든 후에 애굽과 그 인근 지역인 가나안 땅까지 흉년이 들었는데 애굽 민족은 비축된 양식으로 흉년을 해결하지만 가나안 땅에 사는 야곱의 식구들은 양식이 떨어져서 벤야민을 제외한 열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내어 양식을 사오게 하였습니다. 이 때는 요셉과 헤어진지 20년이 훨씬 넘은 때이므로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만나서 “양식을 팔라”고 사정할 때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았지만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2. 이때 요셉은 형들에게 자기를 알리기 전에 형들이 어느 정도 변화된 인격을 가졌는가?를 탐지해 보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만일 변화되지 못한 인격 그대로 있다면 톡톡히 혼내주고 교육을 시키려고 하였을 것입니다.

1) 그래서 그들을 “정탐이라”고 몰아 붙였습니다. 만일 형들이 정탐이 아니면 아닌 증거를 댈 때 자기들 가정의 일과 그동안 생활한 형편을 다 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형들이 자기들을 소개할 때 “우리는 정탐이 아닙니다. 우리는 독실한 자입니다. 우리는 12형제인데 하나는 없어졌고, 열두째 동생은 아버지와 함께 있습니다.”라고 대답한즉 요셉은 “그들의 말에 진실이 있는지를 볼 것이라”(창 42:16)고 하였습니다.

2) 그래서 3일을 가두었다가 둘째 형 시므온을 인질로 잡고 양식을 팔면서 그들 모르게 양식값을 자루에 그대로 넣어 주고 다음에 양식을 사러 올 때 반드시 말째 아우 벤야민을 데려 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너무 심하게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타국에 입국한 사람들인 만큼 그만한 조사는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갈 때 르우벤이 만류한 사실도 알게 되었고(창 42:21~32) 객점에서 돈이 발견되었을 때 그것을 야곱에게 사실대로 고한 후 다시 반납하게 된 것은 양심의 많은 변화를 나타낸 것이고 따라서 “독실하다”는 주장을 상당하게 증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그런데 야곱이 벤야민을 보내려 하지 않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형들에게 보냈다가 죽게 한 것(없어짐) 때문에 다른 아들들을 신뢰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벤야민을 쉽게 내주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아들들은 벤야민을 데리고 가야만 독실함도 증명하고 양식도 사오며 또 시므온을 해방시킬 수 있게 되니까 강하게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유다가 나서서 자기 자식의 생명을 걸고 보증을 하겠다(창 43:8) 하면서 간청하는 바람에 야곱이 벤야민을 보내므로 다시 열한 형제들이 애굽에 가서 요셉을 만나 벤야민도 보여주고 양식값도 돌려준즉 요셉이 형들의 진실성을 확인한 후 돈을 되돌려 주었습니다.

4) 그리고 요셉이 시므온을 나오게 한 후 형제들을 다 자기 집으로 청한 즉 형제들이 예물을 전하고 절하므로 요셉의 꿈이 이루어지게 되었고(창 37:5~9) 요셉은 형제의 순서대로 식탁에 앉게 하여 음식을 베풀었는데 형들이 말째 동생 벤야민에게 취하는 태도를 보기 위하여 벤야민에게 다섯배의 음식을 주었는데도 형들은 벤야민을 시기하거나 욕심을 부리거나 미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동생을 선대하는 사실을 확인한 후 두 번째 양식을 보낼 때 형제들 모르게 벤야민의 자루에 양식 값을 받은 돈과 요셉의 은잔을 넣어 보낸 후 멀리 가기 전에 다시 쫓아가서 도둑의 누명을 씌우고 붙들어 온 후에 은잔과 돈이 발견된 자루의 임자인 벤야민만 종이 되어야 한다 하고 돌려 보내려 하지 않은즉 유다가 강하게 사정하고 또 자신이 벤야민 대신 인질이 되겠다고 자청한 것입니다. 창 44:16~33에 보시면 벤야민이 인질로 잡히는 것 때문에 유다가 대신 인질이 될 것을 자청하면서 강하게 변론한 것이 메시야적 중보사역과 일맥상통하여 유다가 메시야 계열이 되는 은혜를 받은 것으로 예측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이 과정에서 요셉이 감동을 받고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자기를 알리게 된 것입니다.

1) 요셉의 형들은 놀랍고도 한편 두려웠을 것입니다. 할 말을 잃고 있을 때 요셉이 오히려 위로하면서 “나를 애굽에 보낸 것은 형들이 아니라 흉년을 극복하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고 설명하였으니(창 45:7) 여기에서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신앙과 함께 형들의 죄를 용서하고 위로하는 넓은 아량의 소유자임을 나타내 보인 것입니다.

2) 믿음은 여러 특징이 있습니다. 사랑이 많은 믿음, 지식이 많은 믿음, 기도를 잘 하는 믿음, 봉사를 잘 하는 믿음, 기적을 믿는 믿음, 성경의 권위를 믿는 믿음 등이지만 그 다음에 “섭리를 믿는 믿음”이 귀한 것을 아셔야 합니다. 또 자기를 죽이려 한 형들의 죄를 용서할 뿐 아니라 그들을 먹여 살리려 한 것은 예수님의 사랑에 버금가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예수님의 모형자로도 계시된 것입니다.

3) 그 다음에 요셉은 가나안 땅에 사는 모든 가족을 애굽으로 초청하고 흉년에 자기 가족을 다 책임질 것을 약속한 것입니다. 야곱이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꿈꾸는 것 같았겠지만 선물과 수례가 온 것을 보고서야 확신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살았으니 내가 죽기 전에 그를 보리라”하고 애굽으로 갈 것을 결심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야곱은 요셉을 잃은지 22년 만에 아들 상봉의 기회를 맞게 되고, 또 요셉의 성공을 볼 뿐 아니라 자기 아들들도 철이 들고 변화된 모습을 보게 되었으며 또 야곱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애굽에서 객이 된다”고 예언해 주신 말씀이 응하는 것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아들이 열 둘이라도 그 중 11명의 아들이 양식 해결을 하지 못하였으나 열한 째 아들 한 사람의 성공으로 70명 가족들의 살 길이 열리는 것을 체험한 것입니다. 또 요셉은 자기의 가족들(하나님의 선민)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이 자기를 섭리적으로 쓰신다는 사실을 알고 자기의 사명을 다하게 된 것입니다.

 

제 27 과 야곱과 요셉 (창 47:23~31) 목록으로


1. 야곱이 요셉의 초청으로 모든 가족들과 생축과 재물을 이끌고 애굽으로 갔습니다.

1) 애굽 땅의 고센 땅까지 요셉이 마중 나가서 부자가 상봉하였고, 야곱은 “지금 죽어도 가하다”(창 46:30)는 고백을 하였으니 야곱은 소원 성취를 다한 것입니다. 우리도 각자의 사명과 소원을 다 성취한 상태에서 “오늘 세상을 떠나도 거리낄 것이 없다”는 고백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셔야 하겠습니다.

2) 그 다음에 요셉은 다섯 형을 바로에게 인사 시켰고, 바로왕은 목축하기 좋은 고센 땅을 그 가족들에게 주었으며 또 그 곳에 있는 “라암셋”이란 성읍도 함께 주었습니다(창 47:11). 그리고 유능한 자들로 하여금 바로의 짐승을 주관하게 하였습니다.

3) 그 다음에 야곱이 바로왕에게 축복하였고, 바로왕이 야곱에게 나이를 물었을 때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이니 조상들 만큼 살지 못하였으나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창 47:9)고 고백하였습니다. 130년 동안 살면서 고생스럽게 살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애굽에 와서 요셉의 부양을 받는 동안 17년은 가장 평안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야곱은 요셉이 어릴 때 가나안 땅에서 요셉과 17년을 살았고, 또 노년기에 애굽에서 요셉과 17년을 살았습니다. 따라서 113년을 요셉없이 산 것입니다. 가나안 땅이 약속의 땅이라도 요셉없이 사는 동안 험악한 세월을 보냈고, 애굽이 이방땅이라도 요셉과 함께 살 때 행복하였습니다.

4) 요셉은 그리스도의 모형도 됩니다. 성도가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으로 만족하며 예수님의 돌보심을 받으면 어느 곳에서나 행복함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과 야곱은 다 성도의 모형입니다. 요셉도 그렇습니다. 이들의 생애를 살펴보면 신앙의 우월성도 나타나지만 연약도 나타납니다. 또 하나님의 특별간섭으로 형통하는 것도 있지만 여전히 힘들고 고생스럽게 살면서 가정의 어려운 문제들까지 경험하며 산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의 성도들의 생활도 다 그렇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연약 중에 은혜를 깨닫고 고난 중에 희망을 가지며 인내하면서 점차 성장하고 항상 죄악 세상을 대항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오늘의 성도들의 생활 임을 아셔야 하겠습니다.

2. 야곱은 임종시에 몇 가지 시행한 것이 있습니다.

1)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야곱의 소유로 정하여 그 아버지 명의로 기업을 얻게 하였습니다(창 48:5~6). 이것은 가나안 땅에 이미 차지한 땅을 주는 의미도 있지만(창 48:22) 르우벤이 받을 장자의 갑절 기업을 요셉에게 주는 의미가 더 큰 것입니다(대상 5:1). 그래서 요셉의 두 아들이 여호수아 때에 가나안 땅에서도 갑절의 기업을 받았습니다.

2) 라헬의 무덤이 에브랏(베들레헴)에 있는 것을 말하였으니(창 48:7) 이것은 무덤 보존이 필요함을 나타낸 것입니다. 무덤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시체를 못 찾았거나 산화한 경우 등일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조상들은 유골을 보존하였습니다. 작은 무덤이라도 보존하는 것이 자손들의 결속을 다지는 일에 유익할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도 자기 유골이 조상들과 한 자리에 묻히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무덤의 사치는 금물이지만 축소된 가족 묘지는 필요할 것입니다.

3)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할 때 큰 아들 므낫세보다 둘째 아들 에브라임이 더 발전할 것을 계시로 알고 축복하였습니다(창 48:12~20). 이때 요셉은 큰 아들 므낫세에게 오른손을 얹게 하였지만 사람의 뜻대로 복이 전달되지 않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4) 선지자의 입장에서 열 두 아들들을 모아 놓고 그들의 후일에 될 일을 예언한 것입니다(창 49장). 이렇게 축복과 예언을 남기고 기운이 진하여 세상을 떠났으니 야곱은 임종의 복을 크게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이 받은 임종의 복이 저희들에게도 있기를 기도하셔야 하겠습니다.

3. 창세기 50장, 요셉의 마지막 기사에서 요셉은 애굽의 최고 장례법에 따라 야곱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1) 야곱의 무덤은 그의 유언에 따라(창 49:29~32) 조상들이 묻힌 가나안 땅, 마므레의 막벨라에 안장하였고, 애굽의 장례법은 시체를 썩지 않게 하는 미이라법이 있지만 육신의 요소가 흙에서 나오고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없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한 두 세대 정도 무덤을 남기는 것은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고 후손들이 조상의 무덤을 중심으로 친교, 우애하는데 목적이 있을 뿐인 것입니다.

2) 야곱의 장례를 치르고 나자 요셉의 형들은 요셉에게 다시 용서를 구하였고, 요셉은 용서하는 뜻으로 말하기를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할 수 있습니까? 모든 일을 하나님이 그렇게 되게 하신 것입니다. 형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지만 하나님이 그것을 선으로 바꾸셔서 오늘처럼 우리 가족을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창 50:20)하므로 안된 일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롭게 하시는 뜻이 있음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이 신앙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큰 희망을 준다는 것을 믿으셔야 할 것입니다.

3)창 그리고 요셉은 110세에 세상을 떠나서 그 형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창 50:24). 그는 세상을 떠날 때 하나님이 자기의 부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것을 말하고 인도가 있을 때에 “자기의 유골을 조상의 묘에 장사하게 하라”고 자손에게 맹세를 시켰습니다. 요셉이 죽으면서 “즉시 가나안 땅에 묻으라”고 유언할 수도 있었겠지만 자기가 죽은 후의 일인 만큼 애굽 정부에 누를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요셉은 다른 형제들보다 적게 살았지만 많은 모범과 많은 공적(애굽의 정치적 공적, 부족을 살린 공적)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보다 하나님의 섭리가 앞서고 의롭게 사는 자에게 복을 주시며 또 하나님은 노력하는 만큼 이 세상에서도 복을 주신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제 28 과 모세(1) (출 2:1~10) 목록으로


1. 이 시간부터 모세에 대한 공부를 하겠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신앙의 인물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이 모세일 것입니다.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욥, 모세, 여호수아, 다윗, 그리고 선지자들이 구약시대의 중심 인물들이고 모세 역시 40년간 민족의 어려운 시기에 지도자 역할을 한 점으로 볼 때 중요한 인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세에 대한 역사적 기사는 출애굽기, 민수기, 신명기에 나타나 있고, 그 외에도 성경 여러 곳에 간단한 기록들이 나타나 있습니다(히 3:2, 11:24~29).

2. 모세가 애굽에서 출생한 시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한 시기에서 80년을 소급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모세가 80세에 출애굽을 시도하였기 때문입니다(행 7:23, 출 7:7, 16:35, 민 14:33). 그리고 이스라엘의 출애굽 시기는 주전 1529년으로 계산할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다(기독교 신앙백과 270p, 구약성경의 연대 연구를 참조). 따라서 모세가 출생한 연대는 주전 1609년경이고, 애굽왕은 12왕조 아메네 헷 1세의 통치시기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번성을 막기 위하여 남자가 태어나면 죽이거나 “하수에 던지라”는 명을 내렸습니다(출 1:16, 22). 그러니까 남자로 난 아이는 살아 있을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노예로 핍박을 받은 것은 본래 예언하신 바이지만(창 15:13) 요셉이 죽고 난 후부터 천대받기 시작하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요셉이 죽은 후 359년 만에 출애굽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것을 추산할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다. 그 근거는 요셉이 17세에 애굽에 가서 30세에 총리가 되고, 39세 때에 고향의 가족을 영입한 점(창 41:26, 45:6), 그때에 야곱의 나이는 130세이며 애굽에서 17년을 살고 147세에 야곱이 세상을 떠난 점, 요셉이 39세에 고향 가족을 맞고 71년간 같이 살다가 110세에 죽은 사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거한 기간을 430년이라고 하셨으니까(출 12:40, 갈 3:17) 출애굽 연도에서 요셉이 죽은 연도를 빼면 359년이 됩니다. 이런 계산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성경 연구의 성격상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출애굽 당시의 애굽왕은 18왕조 투투모세의 통치 시기일 것이라고 예측을 합니다.

3. 모세는 레위 지파 제사장 아므람과 요게벳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출 6:20, 민 26:59). 그리고 모세보다 먼저 태어난 형 아론과 누이 미리암이 있었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낳고 준수한 아들임을 알았지만 석달 이상을 숨겨 키울 수가 없어서 역청을 바른 갈대 상자에 넣어 하수, 갈대 사이에 띄우고 그 누이 미리암으로 하여금 그 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감시하게 하였습니다. 마침 바로왕의 딸 공주가 시녀들과 그 곳에 목욕을 하러 왔다가 물에 떠있는 아이의 울음 소리를 듣고 버려진 히브리인 족의 아이임을 알고 불쌍히 여겨 건져서 유모를 두어 기르게 하였습니다. 그때 모세의 누이 미리암은 그 곁에서 관찰하다가 공주가 유모를 구할 때 나서서 자기 어머니를 소개하여 양육하게 하였고, 공주는 그 아이가 자라자 왕궁으로 데려다가 자기의 아들을 삼고 그의 이름을 (물에서) “건져냈다”는 뜻으로 “모세”라 하였습니다. 여기까지는 모세의 어릴 때의 일이므로 모세 자신의 신앙적 특징은 나타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예비하시는 차원에서 모세의 생명을 붙드신 섭리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1) 그 부모가 남자 아이를 죽일 수 없어서 강물에 띄운 것입니다.

2) 마침 애굽의 공주가 그 곳에 나왔다가 그를 발견한 것입니다.

3) 공주가 그를 양육할 마음을 갖고 유모를 구할 때 그 어머니가 소개된 것이나

4) 공주의 아들이 되므로 왕궁에서 자라게 된 일은 다 하나님의 특별 섭리에 의하여 모세를 붙드신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4. 여기에서 두 가지 중요한 것은 그의 어머니가 모세를 양육하면서 믿음과 선민주의 사상을 교육한 점과 공주의 아들이 되었기 때문에 살아 있을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일은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면 인간의 지혜로 성취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40세 되었을 때부터 모세의 생활에 대한 특징이 나타납니다. 모세가 40세에 애굽을 떠나는 일과 80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또 40년간 광야에서 은혜를 받았다는 말씀은 행 7:23과 30절, 36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모세의 40세 이후의 생활을 다음 과목에서 살피기로 하겠습니다.

 

제 29 과 모세(2) (출 2:11~25) 목록으로


1. 모세가 40세 되었을 때에 이스라엘 동족(형제)들이 고역 당하는 일을 보았고, 또 애굽인 감독자가 동족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의분을 참지 못하여 그 장소에 다른 사람들이 없음을 확인한 후 동족 형제를 위하여 애굽 감독을 죽여 그 시체를 모래 속에 감춘 일이 있었는데 또 그 다음날에는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보고 그 중 잘못한 자에게 “네가 왜 동포를 치느냐?”하고 지적하였더니 그 지적받은 자가 반항하며 말하기를 “누가 너롤 우리의 재판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하고 모세의 살인한 사실을 폭로한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바로왕은 모세를 죽이려고 찾았고 모세는 멀리 도망하여 미디안 땅으로 가서 자신을 숨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1) 모세는 장성하였을 지라도 자신이 히브리인임을 알고 동족애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계속 간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그 증거로써 모세는 왕궁에서 살았지만 자주 자기의 동족들이 고역 당하는 일을 살피며 마음 아프게 여겼던 것입니다.

2) 모세는 애굽의 감독관이 고역 당하는 동족을 심하게 학대하는 것을 보았을 때 의분을 참지 못하여 그 감독관을 죽일 만큼 의분도 강하였고, 보복심도 강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그 감독관을 죽일 때 다른 사람들이 없음을 확인하였으나(12절) 그의 살인한 사실을 본 사람이 그 사실을 유포하였을 것입니다.

3) 서로 싸우던 동족 중 한 사람은 자신의 나쁜 것을 지적하였다 하여 모세를 반항하고 그의 살인한 사실을 폭로하므로 모세를 위기로 몰아넣었으니 이 세상에는 은혜를 욕으로 갚는 인간도 있다는 사실과 죄는 언제든지 밝혀지게 되며 따라서 선을 행하기 위하여 악을 행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모세는 동족애는 있었으나 폭력으로 수단을 삼을 만큼 연약한 면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2. 살인자에 대한 왕의 심판은 엄격하였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세는 애굽의 국경을 넘어 미디안으로 도망하였던 것입니다. 이 “미디안” 지역은 시내 반도 서부지역이라고 합니다. 그 지역의 우물곁에 앉았다가 여인들이 물을 길어 자기의 양떼에게 먹일 때 다른 목자들이 훼방하는 것을 보고 그 여인들을 도와 물 먹이는 일이 속히 끝나도록 협력한 관계로 그 여인들의 집으로 초청을 받았고, 그 집은 그 지역 토속 종교의 제사장 “르우엘”의 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집에서 일을 하고 있다가 그 집의 딸 “십보라”와 결혼을 하여 “게르솜”이란 아들을 낳고 40년간 정착하게 된 것입니다.

1) 여기에서 모세는 공주의 아들이란 신분에서 목자의 한 사람으로

변하였고, 그의 봉사적 행동이 직업을 갖는 동기가 되었으며 직업에 성실함으로 가정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40년이 지난 후에 모세를 죽이려던 애굽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역이 여전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기억하셔서 그 백성들을 권념(보살펴 주심)하기를 시작하셨습니다(출 2:23~25).

3) 출 3:1에 보시면 모세의 장인의 이름이 “이드로”로 나옵니다(출 1:18에서는 “르우엘”로 되었지요). 이것은 그 당시의 사람들이 여러 개의 이름을 갖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40년간 목자로 있던 모세를 불러 쓰시기를 시작하셨습니다.

1)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들을 불러내실 때 먼저 사역자를 필요로 하신 것이었습니다.

2) 모세가 호렙산에서 양을 칠 때 가시떨기 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나무가 타지 않는 것을 보았고 모세가 그 광경을 유심히 보고 있을 때 그 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다”, “가까이 오지 말라 이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신을 벗으라”하셔서 모세가 (신을 벗고) 얼굴을 가리운즉 하나님이 “이스라엘 선민의 고통과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너를 ‘바로’에게로 보낼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3) 여기에서 하나님은 영광(불꽃) 중에 나타나셨고, 음성으로 말씀을 주셨으며 선민의 고통과 학대를 아시고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며 약속을 지키시고 또 지도자를 세워 자기의 하시고자 하는 일을 성취하게 하시는 분이심을 알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임재하신 곳은 거룩한 곳이 되며 그 거룩한 곳은 인간의 부정이 범접하지 않아야 할 것도 교훈하셨습니다. 그래서 “신을 벗고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5~6절).

4) 이 때에 모세는 “내가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습니까?”하면서 여러번 사양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려고 하시면 사람이 사양하거나 부족해도 아무탈 없이 쓰실 수 있습니다. “내가 하여야 더 잘 할 수 있다”고 나서는 것은 모세처럼 행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세는 처음부터 겸손하였습니다. 모세가 큰 일을 할 자격이 못된다고 사양할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와 함께 한다”(출 3:12), “나는 스스로 있는 자 하나님 곧 여호와라”, “너는 먼저 애굽에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이 사실을 고하면 그들이 들을 것이라”(출 3:16~18), 그리고 애굽왕에게 가서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기 위하여 3일 길쯤 광야로 나가게 해 달라”고 하여라, “내가 이적으로 그들을 친 후에 그들이 너희를 보낼 것이라”, “그 때에 너희들은 애굽인들로부터 은혜를 힘입어 물품들을 갖고 떠나게 될 것이라”하시므로(출 3:18~20) 대단히 상세하게 말씀하여 주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왜 가나안 땅으로 가는 것을 “3일 길 광야에서 제사드리기 위함이라”고 하였을까?“하시겠지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은 40년 동안의 일이고 3일 길 광야에서 제사 드리는 일은 곧 시행할 일이니까 우선 가까이 실천할 것을 사실대로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리 계획하시는 분이시고 그 계획을 어김없이 실천하시는 분임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사 25:1).

4. 그래도 모세는 자신의 연약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취될 확신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바로가 듣지 않고 허락하지 않으면 어찌 합니까?한즉

1)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이적으로 역사해 주시는 능력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모세가 가진 지팡이가 뱀이 되는 상태, 뱀의 꼬리를 잡은즉 다시 지팡이로 변하는 상태, 모세의 몸에 문둥병이 발하는 상태, 또 그것이 정상으로 되는 상태, 그 외에도 하수가 피로 변하는 능력도 나타내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입이 둔하여 말을 능숙하게 할 줄 모르니 “다른 사람을 보내시라”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노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누가 벙어리 되고 귀머거리 되며 눈 밝은 자와 소경이 되게 하였느냐? 내가 아니냐?”하시면서 “내가 네 입과 함께 있되 할 말을 가르치신다”는 것입니다(출 4:10~12). (나는 젊었을 때 무슨 지식으로 설교를 하였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때 그때마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신 모양입니다.)

3) 모세는 그 말씀을 듣고도 또 사양하니까 하나님이 말 잘하는 아론을 대변자로 세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출 4:14~15). 이렇게 하여 모세로 하여금 더 이상 사양할 수 없도록 하나님이 무장시켜 주시고 모든 조건을 구비하여 주신 것입니다.

4) 그래서 모세는 장인에게 허락을 받고 처자식들과 함께 애굽으로 향할 때 하나님께서는 “네 생명을 찾던 자(애굽왕)가 죽었다”고 알려 주셨고, 바로를 강퍅케 하실 것과(출 4:21) 그 앞에 가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장자이니 그들을 놓아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애굽인의 장자를 죽이신다”고 말하라고 하셨습니다(출 4:22~23).

5) 그런데 그 날 밤에 모세의 가족이 숙소에 머물렀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셨고, 그 아내 “십보라”가 아들의 양피를 베어 던지며 “당신은 참으로 나에게 피남편이라”한즉 하나님이 모세를 놓으셨다고 하셨습니다(출 4:24~26). ① 여기에서 모세가 죽을 뻔한 것은 하나님이 질병같은 재앙으로 모세를 위협하신 것이고 ② 아들의 양피를 베인 것은 할례를 뜻하며 ③ “모세를 피남편이라”한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구별된 백성된 것을 인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왜 이런 방법을 쓰셨을까요?” 아마도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언약의 백성된 것과 모세가 사명자로 나가야 할 일에 대한 사명적 신앙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깨우치시고 복종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출 18:2에 보시면 모세의 아내 십보라와 그의 두 아들이 미디안의 친정으로 돌려보내진 사실을 기록한 것을 보면 그 당시에 모세가 처자식을 돌려보낸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사역을 함에 있어서 그 처자식이 도움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6) 그리고 모세가 애굽의 동족들에게 갔을 때 하나님께서 먼저 아론에게 나타나셔서 모세를 맞이할 것을 말씀하셨고(출 4:27) 모세는 자기의 모든 일을 아론에게 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은 모세가 왕궁에서 나와서 다시 애굽왕 앞에 서기까지 있었던 일들을 말씀하신 중에 ① 하나님의 언약 실천 ② 모세의 변화된 생활 ③ 하나님의 인도 섭리 ④ 하나님이 사역자로 쓰시기를 원하시면 능력과 대변자를 세우셔서라도 쓰신다는 점 ⑤ 모세의 아내를 깨우치시기 위하여 모세를 때리시고 할례로 확신을 주신 사실(그 때에 그 가족이 이방 종교에서 기독교 신앙으로 개종하였을 것임) ⑥ 하나님의 사역에 도움되지 않는 처자식들을 잠시 떼어 놓게 하신 사실 ⑦ 협력자 아론에게도 감동을 주셔서 모세를 협력하게 하신 것 등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제 30 과 모세(3) (출 4:27~31) 목록으로


1.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쓰시기 위하여 부르시기까지 여러 단계로 연단을 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미리 준비하여 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준비의 단계를 보면 죽을 생명을 살리셨고, 부모의 양육과 교육을 받게 하신 점이며 애굽 왕실에서 권세자들의 속성을 익히게 하셨고, 또 광야에서 목자 생활 40년으로 겸손과 온유를 배우게 하신 후에 부르신 것입니다.

2. 다음에 모세가 바로왕 앞에 서기까지도 하나님이 설 수 있도록 역사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모세 자신에게 이적을 보이시므로 확신과 담력을 갖게 하신 것이고(출 4:4~5) 또 모세의 형 아론을 감동하여 대변자를 세우신 것이며(출 4:14) 모세를 죽이려 하였던 왕을 죽게 하셨고(출 4:19) 그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임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출 4:30).

3. 이리하여 모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아론과 함께 바로왕에게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왕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3일길 쯤 광야에 나가서 절기를 지키라”하셨으니 나가도록 허락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이때 바로왕은 “여호와가 누구관데 그 말을 듣고 보내겠느냐?”하고 듣지 않았습니다. 이방인이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때에 또 말하기를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온역이나 칼로 치실까 두렵다”고 하였습니다(출 5:2~3). 이 말도 하나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두렵게 여기라는 뜻입니다. 그랬더니 바로왕은 “그 말은 거짓말이요 이스라엘의 노역을 쉬게 할 뿐이라”하면서(출 4:4, 9) 더 어렵게 고역을 시키니까 고역 당하는 민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하나님의 감찰하심과 판단을 구하였다“고 하였습니다(출 5:20~21). 처음에는 모세의 말을 들었으나 고역이 심해져 원망한 것입니다.

4. 이리하여 일이 더 어렵게 되었을 때에 모세가 기도하기를 “어찌하여 이렇게 되도록 나를 보내셨습니까?”하였더니 하나님이 이제부터 강한 손을 펴실 것이라 하시면서(출 5:22~6:1) 또 “하나님은 언약을 기억하시는 분이시고 전능하신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역에서 건져 자기 백성을 삼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실 것이라”고 하신즉 모세가 그 말을 들은대로 백성들에게 전하였더니 그 때는 백성들이 역사의 혹독함을 인하여 듣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출 4:30, 6:9).

5. 이 때에 모세는 또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백성들이 나의 말을 듣지 않으니 어찌해야 합니까? 나는 입이 둔한 자입니다.”(출 6:12) 하였더니 “하나님은 여전히 모세와 아론(그들)을 쓰셔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실 것이라”(출 6:13)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바로왕 앞에 신처럼 될 것과(출 7:1) 그 강퍅을 꺾기 위하여 여러 가지 이적으로 재앙 내리실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6. 그래서 모세는 바로왕 앞에 두 번째 나가서 같은 요청을 하고(출 7:10) 지팡이가 뱀이 되는 기적을 나타냈으나 여전히 완강하므로 또 다음 날에도(15절) 요청하였으나 또 완강하여 하수가 피되는 재앙을 내렸고, 그 다음에 개구리 재앙, 이 재앙, 파리 재앙, 독종 재앙, 우박 재앙까지 내렸을 때 바로왕은 “자신이 범죄하였다”(출 9:27)하면서 뉘우치기 시작하였으나 그 다음에 또 강퍅해지면서 허락하지 않으므로 메뚜기 재앙, 흑암 재앙을 내리셨고, 결국은 장자를 죽이는 재앙까지 내리시게 된 것입니다(출 11:4~5). 이 때 바로왕은 아홉까지 재앙을 받고 장자 치는 열번째 재앙을 예고 받았을 때도 여전히 강퍅하였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출 11:10). 그리고 장자 죽는 재앙이 시작되었을 때에야 비로서 허락을 한 것입니다(출 12:31). 상대방이 강퍅하면 하나님이 저렇게 되도록 버려 두시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연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모세와 아론은 열번이나 바로왕을 상대로 대항하여 이겼으니 속담에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점차로 단계적으로 꺾으시는 뜻이 있음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무슨 일이나 서서히 하는 것이 좋습니다.

7. 이상의 말씀에서 교훈받을 것은

1) 하나님은 자기가 쓰실 사역자를 미리 점 찍어 놓으시고 점차적으로 연단하여 예비하신 점

2) 일을 시작할 때 담력과 능력을 주시는 점

3) 필요할 때는 동반자도 주시는 점

4) 또 일하는 대상 앞에 사역자(모세)를 크게 보이게 하신다고도 하셨습니다(출 11:3).

5) 그리고 열번쯤 찍도록 점차 강하게 역사하십니다.

여호수아 군대가 여리고성을 일곱 번 도는 것이나 나만이 일곱 번 순종한 것이나 모세가 바로 앞에 열번 나가는 일을 하나님은 원하신 것입니다. 무슨 일이나 “꾸준히 오래 하면 성공한다”는 원리를 깨우쳐 주신 것이라 하겠습니다.

 

제 31 과 모세(4) (출 13:17~22) 목록으로


1. 모세가 하나님의 뜻을 증언하기 위하여 바로왕 앞에 열번이나 나갔고, 하나님은 거기에 따라 단계적으로 능력(이적)을 나타내셔서 결국 바로왕을 꺾으셨습니다. 바로왕은 여러 가지 재앙을 다 극복하다가 장자와 초태생이 죽는 재앙에 가서야 굴복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악한 자의 완악을 뜻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모세가 바로왕을 꺾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꺾으신 것이며 모세는 하나님과 바로왕 사이에서 뜻만 전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성도가 전도 역할만 하면 되고 믿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에 달린 것과 같은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재앙을 앞두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먼저 준비를 하게 하셨습니다. 믿고 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출애굽하는 달을 첫달(1월)로 삼고 유월절을 지키게 하셨으며 유월절을 지키는 7일(1월 14~21일)동안 무교병을 먹으면서 출애굽을 기다리다가 바로왕의 허락이 떨어지자(출 12:29~32) 즉시 나오게 한 것입니다.

3. 유월절의 의미는 모세와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이해하셔야 할 것입니다.

1) 출애굽과 동시에 월력을 시작으로 바꾼 것은 출애굽의 의미를 신생(새생활) 또는 인생의 참된 시작으로 간주하신 것이고

2) 양을 잡아 문설주에 바른 것은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구원받음을 뜻하며

3) 누룩없는 떡과 쓴나물을 먹은 것은 7일동안 사이에 출애굽을 대기하면서 그 출발 시간을 모르는 만큼 시간과 공력 드린 음식을 준비할 수 없었던 것인데 이 사실을 영적 의미로 해석할 때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4. 이렇게 출발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애굽 사람들로부터 은혜를 힘입게 하셔서 은금 패물과 의복 등의 물품을 갖고 나오게 하셨으니(출 12:26)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오랫동안 노예로써 주인을 섬긴 일에 대한 사례를 받은 점과 또 광야에서 성막을 제조할 때 쓰시기 위하여 예비하신 뜻이 있는 것입니다. 또 그들이 나올 때 애굽인이나 다른 이방 민족도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민족으로 동화될 때는 출애굽에 합류시켰으니(출 12:48~51) 이것은 신약 시대에 이방인 구원에 대한 예표를 삼아 주신 것입니다. 또 이 시기에 애굽의 초태생은 다 죽이셨으나 이스라엘의 초태생은 죽지 않게 하시므로 그 일에 대한 대가로 하나님께 헌신(대속)하고 충성할 것을 교훈하셨습니다(출 13:15).

5.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방향을 정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야 할 종점은 가나안 땅이요, 우선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가는 곳은 3일길쯤 가는 광야라고만 하셨습니다(출 5:3). 이 때에 광야로 가는 쪽은 홍해바다 동쪽도 될 수 있고, 서북쪽도 될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가깝게 가는 지중해쪽(서북쪽)으로 인도하시지 않고 먼쪽 즉 동쪽의 시나이 반도 쪽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출 13:17). 왜 이렇게 멀고 험한 길로 인도하셨을까요? 사람의 판단으로는 당연히 부당하다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블레셋족과의 전쟁을 피하고 광야에서 능력과 연단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길을 인도하실 때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를 받게 하셨으니 이것은 직접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6. 결론적으로 모세는 인간의 모든 타산과 계획을 파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복종한 것입니다. 큰 민족의 인도자로써 어느 쪽으로 인도할 것이냐에 대하여 머리를 쓰지 않았습니다. 출애굽은 본래 시작부터 하나님이 하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맡긴 것입니다. 계시로 주시는 말씀에 맡겼고, 구름 기둥, 불기둥이 나타난대로 행한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성도가 허탄한데 뜻을 두지 않음은 물론 인간적 타산에도 얽매지 말고 오직 계시대로만 행하는 것이 성도의 할 일임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제 32 과 모세(5) (출 14:10~31) 목록으로


바로왕이 이스라엘 선민들의 출애굽을 허락하였으므로(출 12:13)

1. 모세는 백성들을 인솔하여 하나님의 지도에 따라 애굽을 출발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또 바로왕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고(출 14:4, 8, 17) 바로왕의 신하들까지 강퍅해져서 이스라엘 민족을 내보낸 것을 금방 후회하고 이들의 길을 막기 위하여 병거 600승으로 추격하게 하셨습니다(출 14:7).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추격 때문에 더 빠른 탈출을 하게 되었고(8절) 결국 홍해 바다 앞 “비하히롯”에 진을 쳤는데 그 앞에는 바다가 가로 막히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바로왕을 강퍅하게 하신 이유와 홍해가 막힌 장소에 오게 하신 이유를 몰랐을 것입니다.

1) 바로의 강퍅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추진력을 주신 것이고

2) 홍해의 막힘은 백성들을 시험하시는 일과 애굽의 추격병들을 바다에 수장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런 뜻을 성도가 안다면 강퍅한 자 앞에서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지혜롭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이런 추격을 당하였을 때 백성들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1) 그들은 두려워하였고

2) 하나님을 원망하는 뜻으로 부르짖었으며(10절)

3) 또 모세에게 항의하였고

4) 차라리 바로왕을 섬기다가 죽는 것이 낫다 하였으니 거의 타락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성도의 하나님께 대한 신뢰는 변함이 없어야 하고 특히 고난이 있을 때 믿음의 처신을 잘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신앙적으로 성숙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애굽에 있을 때 신앙연단을 받지 않았으니까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3. 앞 길은 막히고 추격군은 좇아 오며 백성들이 원망할 때 모세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1) 우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13~16절). 모든 일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성도의 기본자세입니다. 성도는 항상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확신을 갖고 침착하셔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어떻게 해 주실 것인즉 가만히 기다려 보자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가만히 기다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간섭을 확실하게 믿음으로 기다려 보자는 것입니다. 성도가 이런 신앙을 가지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까워져야 합니다. 영적으로도 가까워져야 하고 또 모든 일들에 대하여 기도의 응답이나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을 감지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2000년 1월 10일에 평생 처음으로 5천만원짜리 집을 계약하였습니다. 그 집을 보러 가서 위치와 집모양만 잠시 보고 집을 살 결정은 돌아오면서 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도 보지 않고 계약을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계약하기 전에 한 번 더 가서 구체적으로 모든 것을 살핀 다음 계약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왜 급하게 하였는가? 첫째는 내가 사는 주택을 공예배용으로 겸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과 둘째는 주택의 구조가 일반 주택이 아닌 원룸이어야 한다는 것과 셋째는 교회가 많은 도시보다 십자가 없는 시골이면 더 좋다는 것과 넷째는 가격이 많은 돈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무조건 한 것입니다. 이것은 평소에 기도하고 바라던 것이 상당하게 공통점이 있으니까 하나님의 인도라고 믿은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항상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의 섭리를 기다릴 때 어느 정도 성취가 되면 “그것을 하나님의 인도로 믿는다”는 확신을 갖고 생활한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희들도 모세처럼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 것인즉 가만히 기다려 보자”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니 너희가 애굽사람을 다시는 못 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① 하나님이 싸우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이것은 하나님이 열 번 재앙으로 바로왕과 싸우신 것을 보았으니까 넉넉히 믿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② “다시는 애굽 사람을 못 볼 것이라”한 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권고를 믿고 승리를 확신한 것입니다(출 13:19).

4. 그 다음에 어떤 역사가 나타났습니까?

1)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부르짖는 기도를 중지하고(15절)

2) 행동으로 옮기되 백성을 명하여 홍해바다로 나가게 하라

3) 그리고 지팡이 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바다가 갈라지게 하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첫째가 기도요, 그 다음이 실천이며 그 다음이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4) 이스라엘의 행열은 긴 행렬인 만큼 그들이 홍해까지 도착하는 동안 추격군들에게 피해를 당하지 않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추격군들 앞에 흑암을 주셨고, 또 병거 바퀴가 벗겨지도록 하셔서 추격을 저지하셨는가 하면(출 14:20~25)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 때는 또 애굽군들에게 강퍅한 마음을 주셔서(17절) 계속 추격하도록 하셨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통과하고 애굽의 추격군들이 바다 중심에 왔을 때 다시 물이 흘러 그들을 수장되게 하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사실을 체험한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모세를 믿었다고 하였습니다(31절). 이 말씀에서 저희들은 모세처럼 말씀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며 어려울 때 기도하고 믿음으로 실천하는 성도들이 되셔야 할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먼저 백성들을 홍해로 가게 하고 그 다음에 능력을 힘입은 것입니다.

 

제 33 과 모세(6) (출 15:1~21, 시 90:1~17) 목록으로


1. 본문 말씀은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 노래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21절에서는 미리암도 모세의 노래에 화답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찬송(1절, 21절), 찬양(삼하 18:28), 찬미(마 21:16)란 말씀이 나오는데 이 세 가지 뜻은 다 같은 것입니다. 성구 사전을 살펴 보면 찬송이란 용어는 사무엘 선지자 이전 기록에서 표기되어 있고, 찬양이란 용어는 그 이후 구약 시대에 표기되었으며 찬미는 신약 시대 용어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원문상으로 찬양과 찬미의 의미가 같습니다. 말이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임을 입증한다 할 것입니다. 찬송은 절대자 신에게 드리는 신앙적 노래입니다.

2. 성경역사를 보면 노아가 하나님을 찬양하였고(창 9:26) 아브라함도 전쟁에 승리를 했을 때 “하나님께 찬송을 드렸다”(창 14:20)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찬송의 역사는 노아 시대부터 나타나는데 저희들이 찬송을 잘 하려면 찬송의 요건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찬송의 요건은 믿음과 가사와 음악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한 심령으로 드리는 것이고, 가사는 신앙적 내용에 속합니다. 신앙의 내용은 하나님이시니까 하나님에 대한 내용이 가사의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 찬송하였느냐?하는 것입니다. 또 음악(곡조)은 시대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일정한 곡을 계시하지 않은 이상 문화 역사에 따르되 경건한 전통을 이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속적 음악은 영광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롬 12:2).

3. 모세가 어떤 경우에 찬송을 하였는가?할 때

1)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깨달았을 때

2)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았을 때

3) 특히 대적과 싸워 승리했을 때

4) 역경을 돌파했을 때 찬송한 것입니다. 약 5:13에서 “너희 중에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하나님께 찬송할 것이라”하셨으니까 감사한 일, 기쁜 일, 좋은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찬송하여야 할 것이고 또 시편 기자는 “종일 찬송한다”고 하였습니다(시 72:15). 그러니까 “항상 기뻐하라”하신 말씀처럼 종일 찬송하는 심정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4. 본문에 나타난 내용이 모세가 찬송한 가사입니다. 이 내용을 분석해 보면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내용과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말하는 내용, 그리고 대부분의 내용이 하나님의 섭리적 통치를 나타내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높고 영화로우신 분이며 여호와가 그의 이름이시고 신중에 여호와 같은 신이 없다”는 내용은 하나님의 신분을 나타낸 것이고,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요 노래이시며 구원이시다 나의 용사이시며 나의 높일 대상이시다 또 나의 하나님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다”한 것은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나타낸 내용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내용이 하나님의 섭리적 통치를 말한 것인데 하나님이 기이한 일을 행하셨다, 애굽장관들이 탄 말과 그 병거를 바다에 넣어 납처럼 가라앉게 하셨다, 큰 물과 깊음을 내리신 분이고 오른손의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신 분이며 콧김으로 바람을 일으키시고 물을 쌓아 파도를 언덕같이 만드시며 그의 오른손으로 원수를 부수시는 분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모세의 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는 것과 하나님과 자기 또는 자기 백성들과의 특별한 관계를 맺은 것과 그리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일일이 알고 나타내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5. 그런데 모세의 찬송과 관련하여 모세의 시 한 편이 기도의 형식으로 시 90편에 수록된 것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시편 90편에서 인생관을 읊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거처가 되시고 사람의 생명을 주관하시며 인간의 삶의 세월이 경점같이 빨리 가니 잠자는 것 같으며 인간의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니 하나님이 지혜를 주사 우리의 날 계수함을 알게 하시며 지혜를 얻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과연 모세의 생애를 그대로 고백한 듯 합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모세는 찬송하는 사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진 신앙, 하나님의 통치 섭리를 잘 알고 선전하는 신앙, 자신의 값진 인생을 위하여 은총을 구하는 신앙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시 90:17).

 

제 34 과 모세(7) (출 15:22~27) 목록으로


모세는 많은 난관을 겪으면서 연단을 받았고, 부름을 받았으며 사명 선상에서 일을 할 때도 여러 차례 난관을 당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이때마다 모세는 당면한 난관을 잘 견뎠고,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방책을 세워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1. 우선 사명자로 부름받기 전에 당한 어려운 일들은

1) 태어나자마자 강물에 띄움을 당하여 죽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섭리로 건짐을 받고 애굽왕실에서 자라게 되었으며

2) 40세때에 학대받는 동족을 동정하는 입장에서 살인죄를 짓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여 살 때 이드로 제사장의 집에서 40년간이나 목자 생활을 하였고

3)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애굽으로 출발할 무렵에 하나님이 모세를 치셔서 죽을 뻔한 사실이 있었는데(출 4:24) 모세의 아내가 아들을 할례하고 모세를 피남편(피로 구속된 남편)이라 하므로 살아난 사실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의 아내가 모세를 하나님의 구속한 백성으로 믿지 않고 모세의 헌신적 입지를 훼방하였기 때문에 일어난 일로 예측하는 것입니다.

4)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나설 때 백성들의 지지를 받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으나 하나님이 직접 아론을 감동케 하셨고, 또 이적을 보여 주셔서 백성들의 호응을 받게 하셨습니다(출 4:27~31). 하나님이 쓰시고자 할 때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2. 모세가 지도자 역할을 할 때 있었던 어려움은(앞으로 계속 있을 내용임)

1) 바로왕이 쉽게 허락을 하지 않으므로 열 번이나 바로왕 앞에 나가 허락을 받아내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이적을 보여 주신다 하여도 작은 백성이 포악한 왕 앞에 열 번이나 나가서 왕이 원치 않는 일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인데 모세는 그것을 해 냈습니다.

2) 백성들이 애굽의 삶의 터전에서 나와서 홍해 앞 “비하히롯”에 진쳤을 때 홍해는 막히고 애굽군의 추격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백성들의 원망이 있었습니다. 이 때에 모세는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는 섭리가 있을 것을 믿고 기다리자”하였고(출 14:13) 하나님께서는 ① 추격하는 애굽 병거들의 앞 길에 흑암과 교통사고를 주셔서 추격을 제지하셨고 ② 반대로 이스라엘의 앞 길에는 광명과 함께 홍해를 갈라 주셨으며 ③ 또 애굽군들을 강퍅케하여 기어코 홍해 가운데로 따라붙게 하셨고 ④ 그들이 바다를 지나기 전에 물이 채워지게 하셔서 수장당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3) 그런데 또 세 번째 어려움을 당하였습니다. 홍해가 열리고 추격군들이 죽으니까 자유로워졌지요. 그래서 찬송으로 영광을 돌렸는데 계속 전진하는 여행중 마라를 지날 때 쓴물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쓴물이란 곧 음료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단물은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인데 홍해를 건너서 지나가는 곳은 사막 해변가이기 때문에 모래 밑을 파면 침체된 바닷물이 그대로 나와서 쓴물로 나타난 것입니다. 바닷물은 맛보면 짜다기 보다 씁니다. 그것을 먹고 복통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물이 깊은데서 나오는 샘물이기를 바랐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과정은 잠시 지나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수가 많고 먹을 물이 없으니까 백성들은 원망을 한 것입니다(24절). 이 때에 모세가 기도를 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며 그 나무를 물에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나무가 무슨 나무였을까?하는 것도 연구해 볼만합니다. 제가 그 장소를 통과해 보았는데 물론 옛날 환경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그 곳이 사막이기 때문에 드문 드문 조각목이 서 있고 로뎀나무 숲이나 다른 종류의 풀만 약간 있습니다. 여기에서 쓴물에 넣은 나무가 쓴독을 흡수하거나 중화시키는 약용인지 아니면 순종을 위하여 명령하신 것인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여하튼 하나님이 쓴물이 달아지도록 고쳐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치시는 능력자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곳에서 율례와 법도를 주시며 그들을 시험하신 후 병을 내리지 않게도 하시고 치료도 해 주시는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2.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성도를 시험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시험하실까요? 법도와 율례는 우리에게 주신 성경입니다. 그리고 시험하시는 것은 성도가 성경대로 살려고 얼마나 노력하는가?를 보시는 것입니다(출 16:4). 그리고 거기에 따라 쓴물도 주시며 약처방도 주시고 고쳐주시며 질병이 걸리게도 하시고 안 걸리게도 하시며 단물도 주시는 분이심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그들이 계속 행진한즉 이어서 “엘림”이란 곳에 이르렀고 그 곳에 단물이 있어서 장막을 치고 휴식을 취하였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성도의 신앙생활이나 교회 생활도 여러 가지 난관들을 겪으면서 성장해 간다는 것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끝까지 잘 견디는 성도가 신령한 은혜를 받고 또 하나님의 권고를 받으며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성도는 무슨 일이나 신앙적으로 대처하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입니다.

 

제 35 과 모세(8) (출 16:1~11) 목록으로


1. 1월 21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마지막 유월절 기간을 보내고 출애굽한 날입니다. 그후 2월 15일에 신광야에 왔는데 그 곳은 엘림과 시내산 사이요 출애굽 25일쯤 된 날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양식이 떨어져서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이르기를 “애굽에 있으면서 고기와 떡을 먹다가 하나님의 손에 죽는 것이 나을 뻔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다가 어려움이 있다 하여 원망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은 원망이 있을 수 없지요.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을 하였습니다. 양식이 없고 배고프니 어찌 원망을 안 하겠습니까? 이해할만도 합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지도자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지만 이 원망은 곧 하나님께 한 것이고 하나님이 그 원망을 들으셨다고 하셨습니다(출 16:8~9). 그런데 이런 원망을 듣자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할 순간도 갖지 않았습니다(출 16:3~4). 그 이유는 이어서 하나님이 응답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하셨고(마 6:25)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물과 양식이 없는 곳으로 인도하셨으니까 당연히 먹을 것을 해결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원망한 죄도 용서하셨고, 구하는 기도도 없이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 해결은 하나님이 저녁에는 메추라기 떼를 주시고 아침에는 만나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메추라기와 만나의 기적을 보고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하셨음을 알라”고 하셨습니다(출 16:6).

1) 메추라기 떼가 진에 덮인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이것을 거두는데 대한 특별한 규례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2) 그런데 만나는 어떤 음식인가?할 때 먼 곳에 있는 식물성 요소(식물의 씨나 꽃가루)를 하나님이 바람으로 운반하여 이슬과 서리처럼 내리게 하신 것으로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모양은 작고 둥근(출 16:14) 꿀 섞은 갓씨(출 16:31, 삼씨 비슷한 풀씨)같이 생긴 것인데 구워도 먹고 삶아 먹을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이런 기적으로 양식을 주셨는데 언제까지 주셨는가?하면 40년을 주셨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에서 농사 지은 양식을 먹은 날까지 주셨습니다(수 5:12). 이것은 꼭 필요한 기간만 주셨다는 뜻입니다.

3) 그런데 매일 아침, 저녁으로 이 양식을 주실 때 하루동안 필요한 만큼만 거두게 하셨고, 안식일에는 그것을 거두지 않게 하시기 위하여 하루 전에 갑절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량은 1인당 한 오멜(1되 가량의 분량)씩만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욕심을 내어 한 오멜 이상씩을 거두어 다음 날까지 남겼더니 그것이 상하여 먹지 못하도록 되었고, 또 엿새날(금요일)에 안식일을 위하여 갑절을 거둔 만나는 그 다음 안식일에 먹을 때에도 상하지 않았습니다. 욕심없이 분량을 적게 거두었는데도 가족들의 하루 양식이 모자라지 않았으니 이것은 하나님이 양식을 주실 때 신축성 있게 하시는데도 역사를 하신 것입니다.

3. 이상의 말씀에서 저희들이 받아야 할 교훈이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은 자기 뜻대로 산 백성들에게 양식 주실 책임을 이행하시는 분입니다. 이 사실은 신약에서 예수님도 이행하셨습니다(막 8:1~10).

2) 하나님은 인간의 힘으로 양식을 구할 입장이 안될 때 기적으로 양식을 주셨고,

3) 매일 매일 예비하도록 일용할 양식만 주셨으며 안식일을 지킬 수 있도록 주셨습니다.

4) 욕심없는 자는 모자라지 않게 하셨고, 욕심을 낸 자는 많아도 남지 않게 하셨습니다.

5) 그리고 그 양식은 일반 은총에 의한 양식을 먹게 되었을 때 중지되었으므로 기적의 양식은 비상수단일 뿐이고 항상 주시는 것이 아니며(기적은 항상 있지 않음을 뜻함) 또 그 양식의 질이 농사 지은 양식보다 못한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6) 하나님은 이 만나를 증거궤 안에 간수하라 하셨습니다(출 16:24).

따라서 기적의 양식은 노력할 수 있는 환경에서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 주시는 것이 아니고 또 욕심이나 필연적이 아닐 경우에도 주시는 것이 아님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일단 성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 굶어 죽을 염려는 없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제 36 과 모세(9) (출 17:1~7) 목록으로


출애굽기 17장에는 두 가지 사건이 나타납니다. 하나는 신광야를 떠나 “르비딤”에 장막을 쳤을 때 또 물이 없어서 백성들이 모세에게 “왜 물 없는 곳으로 인도했느냐?”는 뜻으로 항의하며 다툰 것이고, 또 한 가지는 그 주위에 사는 아말렉 족속이 여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맞아 싸움을 걸어 온 것입니다. 역시 큰 어려움에 봉착한 것인데 모세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였는지 살펴야 하겠습니다.

1. 물이 없어서 모세에게 다툼을 걸어오는 백성들에게

1)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이 모세와 다툴 일이 아니란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기둥, 구름기둥을 따라 하나님의 인도대로 온 것이므로 다투기 전에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렸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하신 일을 책임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모세는 또 백성들에게 왜 하나님을 시험하느냐?고 하였습니다(2절). 무엇을 시험하였다고 한 것일까요? 이 시험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계속 믿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잠시 전에 마라에서 쓴물을 단물로 고쳐주시는 능력을 체험하였고, 또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으면서도 하나님의 계속적인 권고를 믿지 않았으니 그것이 곧 하나님을 의심하고 시험함이 된 것입니다.

3) 모세는 백성들의 다툼이 부당한 것을 일깨운 후에 하나님께 기도로 호소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해결해 주십시오. 저들이 나에게 돌질하려고 합니다.”(4절)하고 호소한 것입니다. 이 때에 하나님이 말씀 주시기를 “너는 장로들을 데리고 지팡이를 잡고 호렙산 위에 올라가서 반석을 치라”(5~6절)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순종하였더니 호렙산 반석이 터지고 물이 나왔습니다. 역시 능력으로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 곳 이름을 맛사(시험이란 뜻) 또는 “므리바”(다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오늘의 성도들에게 주시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성도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누구도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계속 믿고 의지하면서 하나님이 해결해주시는 은혜를 기다릴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2. 그 다음에 또 아말렉의 침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아말렉족은 에서의 후손들입니다(창 36:16). 그리고 아말렉의 침략을 받은 장소는 반석을 쳐서 물을 먹은 “르비딤”이었고, 기적의 물을 먹은 다음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신 25:17에 보시면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길에서 만나 그들의 피곤함을 틈타 뒤떨어진 연약한 백성들을 쳤지만 하나님이 사면의 모든 대적을 벗어나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이 때에 모세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1) 여호수아에게 “사람을 택하여 나가 싸우라” 명하고, 아론과 훌과 함께 산 위에 올라가서 기도를 한 것입니다(6절).

2) 모세가 산 위에서 “손을 들었다”는 의미가 곧 기도를 뜻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손을 들었다”는 뜻을 기도로 해석하는 것이 합당한 이유는 출 9:29, 33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을 “손을 폈다”고 표현한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손을 폈다”는 뜻은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소원의 표현이므로 곧 기도인 것입니다. 싸울자는 싸우고 기도할 자는 기도하므로 기도와 실천을 병행한 것입니다.

3) 그런데 여기의 아주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론과 훌이 기도에 피곤해진 모세를 도와준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선지자였으니까 기도에 앞장선 것이 자연스럽고 아론은 그 당시에는 제사장이 아닌 대변자였으며 “훌”은 모세의 매부(미리암의 남편)라는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이들이 모세의 기도를 어떻게 도왔는가?하면 돌로 의자를 만들어 걸터앉게 하였고, 또 두 사람이 모세의 양팔을 부축해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손이 들렸을 때는 이스라엘이 이기고, 내렸을 때는 아말렉이 이겼다”하셨으니 여기에서 주시는 교훈의 의미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① 기도는 마귀와 불신앙과 악을 이기고 재난을 극복하는 제일의 방법입니다. 따라서 기도가 충만할수록 승리의 복이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② 아론과 훌이 모세를 도운 것입니다. 이것은 장로나 성도가 교역자를 돕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도왔습니까? 피곤하지 않도록 도운 것입니다. 교역자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곤하지 않아야 하나님의 일을 능률있게 잘 할 수 있습니다. 목사가 한 주간에 설교를 12회쯤 합니다. 심방과 사무를 보면서…결국은 설교 구상과 조직에 소홀해지고 교인은 믿음이 침체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섬겨야 교역자가 피곤하지 않고 신바람이 나서 일을 잘 하겠는지를 연구하여 그 점을 만족하게 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자리를 잘 지키고 순종을 잘 하며 너그럽고 봉사적이고 항상 여유있는 자세로 받들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에게 외워들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이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최초의 명령이며 “여호수아에게 외워듣게 하라”는 것은 그가 모세의 후계자요, 또 역사의 전승자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으로 전달 된 것과 많이 외우고 듣도록 전파할 것을 교훈받아야 할 것입니다.

 

제 37 과 모세(10) (출 18:1~12) 목록으로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을 쳐서 이겼을 때 모세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하나님께서는 “대대로 아말렉과 싸울 것이라”는 약속을 하셨습니다(출 17:13~16). 아말렉은 선민의 대적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대적도 되었습니다. 따라서 아말렉이 에서의 후손이라도 비택자일 경우에는 불신앙과 하나님 영광을 훼손하는 입장에서 볼 때 항상 하나님과 성도를 대적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아말렉과 싸운 후에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의 처자식들을 데리고 모세를 방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모세의 두 아들은 게르솜과 엘리에셀인데 “게르솜”은 “객”이란 뜻이고, “엘리에셀”은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뜻이므로 모세가 나그네 생활을 기념한 것과 하나님이 자기의 생존과 생활을 도우신 일을 항상 기억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의 장인은 이방신을 섬기는 제사장이었는데 모세를 방문했을 때 개종한 증거를 보였습니다. 본문 10~12을 보시면 “여호와가 모든 신보다 크시다”하고 번제물과 희생의 제물을 아론과 모든 백성들 앞에서 먹으므로 개종의 증거를 보였습니다. 그러면 모세가 처음에 그의 딸과 결혼할 때 이방 결혼을 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으나 결혼 상대가 모세의 신앙에 일치하는 조건으로 결혼했을 수도 있고, 또 그 사실은 모세가 애굽으로 나올 무렵에 그의 아내가 아들을 할례하므로 하나님의 법에 복종한 증거를 나타냈으므로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출 4:20).

3. 이 때에 모세의 장인이 모세 혼자서 피곤하게 재판하고 있고, 또 송사에 얽힌 백성들이 종일 기다리는 광경을 보고 모세에게 권면하기를 “혼자 다 하려고 하지 말고 자격이 겸비한 사람들을 뽑아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을 세워 재판하게 하고 모세는 어려운 일만 하게 하라”하였을 때 모세가 그 말대로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23절에 보면 “이드로”가 자기의 의견을 말하면서 “하나님께서도 그대에게 인가하시면 그렇게 하라”는 단서를 붙였으니 이것은 자기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운 것입니다. 따라서 모세가 장인의 뜻을 순종한 것은 곧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의 장인은 자기 고장으로 돌아갔습니다.

4. 이 사실에서 교훈받을 수 있는 것

1) 이방 제사장이 모세의 전도로 말미암아 개종하게 된 사실과 이방인이 개종하여 하나님을 경외할 때 제물을 같이 먹을 만큼 차별없이 대한 점을 알 수 있고

2) 모세가 재판의 전문성을 나타낸 것입니다. 사람이 무지하거나 이기주의가 발동하면 이웃과의 다툼이 많아질 것입니다. 이 때에 지도자는 그 잘잘못을 잘 판단하여 죄를 통제하기도 하고 백성간에 화해를 시켜야 마땅할 것입니다.

3) 그래서 처음에는 혼자 재판하다가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제도를 두었으니 이것은 마치 지방 법원, 고등 법원, 대법원 같은 3심제를 시행한 근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가 깨끗해지려면 재판이 전문화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 교회는 재판을 피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화운동을 소극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죄가 있어도 책망이나 벌받는 것을 가장 싫어하고 회개보다 완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음을 개탄하는 것입니다.

4) 여기에서 재판관을 세울 때는 “재덕이 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 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뽑으라고 하셨습니다(출 18:21). 여하튼 재판관이 되려면 최대한 순결하고 또 법과 지식과 지혜가 많아야 할 것입니다.

5) 재판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맡기고 또 단계적으로 하게 한 것은 업무의 분업과 최대한의 공정성을 기하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처가를 전도한 것은 전도자의 사명을 이행한 것이고 어른의 자문을 들은 것은 그의 겸손이며 재판의 전문성을 띤 것은 공의의 사람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제 38 과 모세(11) (출 19:1~24) 목록으로


1. 출애굽한지 3개월만에 르비딤을 떠나 시내(시나이반도) 광야에 장막을 쳤을 때 하나님이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 말씀을 주셨습니다(출 19:1~3).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1)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을 독수리 날개로 업어 인도한 것처럼 하셨다”하셨고

2) “세계가 다 하나님의 것인즉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언약을 지키면 그 나라가 열국중에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하나님께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인즉 이 뜻을 백성들에게 전하라”하셔서 모세가 그대로 백성들에게 전한즉 백성들이 “일제히 응답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① “자기 백성을 독수리 날개로 업어 인도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능력으로 보호 인도하셨다는 뜻이고 ② “세계가 다 하나님의 것”이란 뜻은 하나님이 세계의 나라를 모두 다스리시는 것이요 ③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뜻은 메시야 국가 또는 신앙의 종주국을 뜻하며 ④ “거룩한 백성을 삼으심”은 하나님이 가장 영광을 많이 받으실 순결한 백성이 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성도가 이런 은혜를 받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말씀(언약)을 소중히 여기며 잘 지켜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빽빽한 구름 속에서 모세하고만 대화를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모세를 영구히 믿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9절). 그리고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될 백성들에게 ① 3일동안 옷을 빨고 몸과 마음을 성결케 하라 하셨고 ② 하나님이 말씀으로 강림하실 시내산 지경을 사람이나 짐승이나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말씀으로 임재하시는 하나님이 거룩하신 만큼 말씀을 받는 자들도 인격으로나 환경상으로 거룩한 입장을 취하라는 뜻입니다. 신 9:9에 보시면 이 시기에 모세는 40일 금식 기도를 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③ 그리고 나팔을 길게 불거든 산 앞으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나팔 소리는 하나님의 임재의 신호입니다(살전 4:16). 과연 3일이 되는 날 아침에 빽빽한 구름과 함께 우뢰소리와 나팔 소리가 진동하고 연기가 옹기점 연기처럼 오르는 중에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셨고 아론과 함께 올라오라고 하셨습니다. 출 19:20에서 분명히 “아론과 함께 올라오라”하셨는데 내려올 때는 아론은 회중에서 반역을 하고 있었고, 모세 혼자 내려오다가 중간 지점에서 여호수아를 만났습니다(출 32:15~17). 이것은 그 사이에 아론과 여호수아가 교체된 것을 알 수 있고, 그때에 아론이 여호수아의 자리에 서지 못한 이유는 모세를 불신하고 우상을 만든 그의 타락상을 보아서 믿음이 약했기 때문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민 12:1). 여호수아도 율법을 받는 자리까지는 함께 가지 않았으며 중도에서 기다렸던 것입니다.

2. 이상의 말씀에서 저희들이 교훈받을 수 있는 것은

1) 하나님이 자기가 원하시는 자에게만 계시의 말씀을 주셨다는 점(믿음 약한 자를 말씀 가까이 오지 않게 하셨음)

2) 하나님의 임재는 영광 중에(구름, 불, 나팔 소리 같은 것) 말씀으로 임하신 점

3)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은 직접 받거나 간접적으로 받거나 자기를 성결케 하여야 하고, 환경도 극히 조용해야 하는 점

4) 모세와 아론과 백성들의 입장을 구별하신 점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모세와만 대화를 하셨고, 아론은 모세와 백성들 사이에서만 중보 역할을 하게 하셨으며 백성들은 지도만 받게 하신 것입니다.

5) 그리고 계속 말씀을 주셨는데 그 말씀들이 출 20장부터 31장까지 기록된 율법의 내용이고 이 말씀을 마치신 때에 하나님이 두 개의 돌판에 친히 써 주셨다고 하였습니다(출 31:28). 이 두 돌판에 기록하신 말씀은 10계명만 기록해 주셨습니다(출 34:28). 나라마다 여러 종류의 법이 있는데 그 중에 헌법이 기본법인 것처럼 10계명이 기본법이고 다른 법은 제사법(성소건립과 제사장 임직법), 민법, 위생법, 형법 등을 자세히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과 백성들의 생활에 대한 법을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주신 것이므로 성도가 성경을 깊히 연구하여 믿음과 생활에 유익하도록 잘 적용하셔야 할 것입니다.

 

제 39 과 모세(12) (출 32:1~6) 목록으로


1. 모세가 시내산으로 부르심을 받고 올라가서 40일을 금식하며(신 9:9~10) 기다리는 동안에 백성들 세계에서 큰 반역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속히 내려오지 않고 40일간 지체하는 틈을 타서 백성들이 아론을 앞세워 여인들의 금 장식품을 거두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이 자기들을 인도하는 신이라 하면서 거기에 제물을 드리고 노래를 한 것입니다(출 32:18).

1) 금송아지를 만든 원인은 첫째 금이 있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애굽의 이방적 종교사상에 물들었기 때문이며 셋째는 보이는 신 섬기기를 좋아하였고, 넷째는 모세를 기다리는 인내가 부족하였기 때문입니다.

2) 여기에서 교훈받을 수 있는 것은 그 백성들이 이방종교에 물든 것을 속히 정화하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도 기독교 전통이나 토속종교(특히 기복)에 물든 것이 쉽게 개혁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환경을 주의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3) 애굽에서 나올 때 애굽인들로부터 보화를 선물받은 것이 복으로 주신 것이지만(출 12:36) 그것을 죄되는데 사용하므로 화가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셔서 간 것이니까 올 때까지 더 기다리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인데 여러날 지나도 안 내려오니까 죽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그 대신으로 금송아지를 만든 것인즉 이는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을 것을 예상하지 못한 것입니다.

2.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을 미리 아셨고, 그들을 진멸하시겠다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려가라 네 백성이 부패하였다.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숭배하며 그것에게 희생을 드리며 그것이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한 신이라 하니 이렇게 목이 곧은 백성을 진노하여 진멸하고 모세로 하여금 큰 나라가 되게 하시겠다”(출 32:7~10)고 하셨습니다. 이때에 모세는 하나님이 그 진노와 진멸을 거두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아브라함 등 조상들에게 그 자손을 번성케 하실 것을 약속하신 바가 있으신 즉 화를 내리시지 말아 달라”고 한 것입니다. 이때에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셨다고 하셨습니다(출 32:14).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신 이유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것과 하나님이 그들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기억하시고 긍휼을 베푸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모세의 기도가 중보자 역할을 한 것입니다.

3. 모세가 율법판을 갖고 내려오다가 여호수아와 동행하였습니다(17절). 내려와서 백성들의 방자한 모습을 보고 어떻게 하였습니까?

1) 모세가 대노하여 산 위에서 아래로 율법판을 내던져 금송아지를 깨어 부시고 그 깨진 부스러기를 가루를 만들어 물에 타서 그 자손들에게 먹인 후 아론을 책망하였습니다. 아론은 악한 백성들의 선동을 못 이겨 그렇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아론이 책망을 받고 아론이 핑계를 댄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율법판으로 금송아지를 때려 부순 것과 그것을 가루로 만들어 물에 타서 먹인 뜻이 무엇일까?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것도 연구의 과제입니다.

2) 우선 모세가 대노한 것은 혈기가 아닌 큰 책망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상황을 성경은 혈기 부린 것으로 지적하지 않았습니다(민 20:10, 시 106:33). 또 모세가 애써 기도하여 용서를 받은 만큼 사람의 징계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 드리려는 뜻이 있었을 것입니다.

3) 소중한 계명판을 던져서 우상을 파괴한 것인데 우상을 깨뜨린 것은 당연하지만 소중한 계명판을 던져 깨뜨린 것은 잘 이해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장에 보시면 하나님이 아무런 지적도 안 하시고 계명판을 다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상을 파괴하여야 할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말씀 신앙은 아무 우상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4) 가루를 만들어 마시운 것은 우상의 잔해를 깨끗이 없애고 그 죄에 대한 책임을 당사자들이 져야 할 것을 나타낸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4. 그런데 또 하나님께서는 그 주모자들을 도륙하게 하였습니다(27절). 그래서 모세는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를 나오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악행한 자들을 3000명 가량이나 죽였습니다. 그 죽은 자들은 바로 형제들이고 친구들이며 이웃들이었다고 하였습니다.

1) 죄를 척결하는데는 인정이 없습니다. 자기 심장에 병이 들면 심장도 수술해야 하고 자기의 뇌에 이상이 있으면 뇌도 수술하는 것처럼 죄를 척결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 영광을 돌리는데는 인정에 끌려서 안 됨을 나타낸 것입니다.

2) 그리고 나서 이제(죄의 근원을 척결하였은즉)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게 되었고 또 복을 내리시게 되었다고 선언을 한 것입니다(29절). 그러니까 헌신하기 전에 먼저 죄를 청산하여야 하고 죄를 청산할 때 복을 받고 하나님께서도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3) 그러면 하나님이 “진멸하실 뜻을 돌이키셨다”(14절)는 뜻은 무엇인가? 하시겠지요. 그것은 하나님이 직접 심판하시지 않고 긍휼을 베풀어 죄에 가담한 자들만 제거할 것을 모세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4) 여기에서 아론이 죽지 않은 것은 그가 막지 못한 잘못은 있으나 선동자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론은 그 후에 죽었습니다(신 10:6).

저희들은 우상숭배의 죄에 빠져들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 중보자의 기도가 얼마나 유효했는가를 아셔야 할 것이요, 인정을 초월하여 죄를 척결하였을 때 헌신의 자격이 있게 되고 또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제 40 과 모세(13) (출 32:30~35, 33:1~23) 목록으로


1. 금송아지 사건으로 3000명을 죽인 다음날 모세가 백성들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용서하시지 않으신다면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제하여 달라”(출 32:32)고 한 것입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지울 것이요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려니와 너는 내가 말한 곳으로 내 백성을 인도하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낼 것이라”(출 32:34, 33:2)고 하셨습니다. 이 사실에서 3000명이 죽은 것은 정화의 차원에서 범인들을 죽인 것일 뿐 하나님의 진멸이 아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은 모세의 희생적 기도(자기 이름을 지워 달라)에 의하여 참고 넘어가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모세 앞에 자기의 사자를 보내시면서 계속 모세를 쓰셨습니다. “사자를 보내셨다”는 뜻은 천사의 역할을 의미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성도들에게도 천사를 보내어 역사하게 하십니다(마 18:10).

2. 그런데 출 33:3에 보시면 “하나님이 사자를 함께 보내지만 하나님 자신은 백성들과 함께 올라가지 않을 것이라”하셨으니 여기에서 하나님이 백성을 멀리하시는 뜻은 목이 곧은 백성들이 중도에 범죄를 하여도 하나님이 멀리 계시니까 못 본척 하시고 “진멸하시지 않기 위함”인 것입니다. 의롭게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가까이 계실수록 좋으나 죄를 짓는 사람은 하나님이 멀리 계셔야 유익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참외를 사 먹을 사람에게는 주인이 곁에 있음이 좋고, 도적질 해 먹을 사람에게는 주인이 멀리 있어야 좋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죄짓는 백성들을 쳐 없애시지 않기 위하여 멀리 계실 것까지 약속을 하셨는데 이것은 백성들에게 완악해질 기회를 주시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회개할 기회를 주심인 줄로 아셔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이 목이 곧은 백성들에 대하여 “진노를 참으시려고 한다”는 사실을 백성들이 황송하게 받고 몸에 “단장품을 제하였다”고 하였습니다(출 33:4~6). 단장품이란 것은 외모로 자기를 과시하는 것인데 사람은 외모에도 가치를 부여하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니까(삼상 16:7) 사실상 하나님 앞에서 사는 성도에게는 단장품이 필요없는 것입니다. 단장품을 제하는 것은 외식과 사치를 떠나는 것으로 회개하는 태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남의 빚을 독촉받으면서 잘 입고 단장을 하였다면 잘 하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세는 단장품을 제하게 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 중에 단장품을 좋아하는 분도 있고, 좋아하지 않는 분도 계신데 좋아하지 않는 것이 더 잘 하는 것입니다. 단장은 외식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4. 출 33:7~11에 보시면 모세가 장막을 세웠는데(임시로 세운 성막일 것임) 백성들이 사는 진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하여 그 회막으로 갈 때 늘 구름 기둥이 내렸으며 또 회막에서 말씀을 받을 때도 그 구름 기둥이 떠나지 않았고 모세가 하나님과 대화를 나눌 때에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친근하였으며 여호수아도 그 회막을 떠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 모세는 하나님이 자기와 또 백성들과 함께 해 주실 것을 구하고 또 그 증표를 구하였습니다. 백성들이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이 멀리 계신다”(출 33:3)하신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더 알려 주시고 함께 해 주시며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총아래 있는 증표를 보여 달라”(출 33:13~16)고 구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푼다”하시면서 모세를 반석 틈에 두시고 영광으로 자기를 나타내셨다고 하셨습니다.

5. 출 33:17~23에 보시면 하나님이 모세와 그 백성들에게 은총을 주시는 표로써 모세에게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 주신 기록이 있습니다. 19절에 보시면 하나님은 이름이 있고, 선한 형상이 있으며 영광이 있고, 또 손이 있으셔서 손으로 모세를 덮었다가 거두시고 “등은 볼지라도 얼굴은 보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형상없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가까이 나타나신 것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름이 있다”는 것은 존재의 실상을 의미하고, “선한 형상”이란 하나님의 속성을 뜻하며 손은 능력의 역사를 상징하고 손을 덮었다가 뗀 것은 실제적인 능력을 체험케 하신 것이며 “등을 본다”는 것은 이미 임재의 역사가 지나간 것을 뜻하고 얼굴이 없음은 곧 형상이 없음을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6. 출 33:20에 보시면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의 본질이 순결하신 절대자이시기 때문에 불결한 인간이 하나님의 본질을 가까이 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태양과 초목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태양이 초목에 가까이 비취면 초목이 타 없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태양과의 거리를 적당하게 두고 있는 것입니다. 달빛이 태양빛의 반사인 것처럼 예수님을 볼 수 있는 하나님으로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본질 대신 영광과 역사로 자기를 나타내셨고, 마지막에는 예수님으로 자기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7. 마지막으로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출 33:19에서 “하나님은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신다”고 하셨습니다. 은혜와 긍휼에는 절대로 부정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대로 주시는 것이지요. 따라서 저희들은 꼭 하나님의 긍휼의 대상이 되고 은총의 대상이 되도록 노력하셔야 하겠습니다.

 

제 41 과 모세(14) (출 34:27~35, 민 3:1~10) 목록으로


1. 하나님께서는 금송아지를 깨친 계명판을 다시 써 줄 것이니 시내산 주위를 성결하고 고요하게 한 후 먼저 깨뜨린 돌판과 같은 것을 깎아 만든 후 시내산으로 가지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그대로 한 즉 하나님이 구름 가운데 강림하셔서 말씀을 주셨습니다(출 34:5~26). 그때도 40일을 금식하게 하셨고(출 34:28) 모세에게 모든 율법들을 기록하게 하신 후(출 34:27) 십계명만 하나님이 직접 기록해 주셨습니다. 모세가 이것을 갖고 내려올 때 그 얼굴에 광채가 있었으나 모세는 자기 얼굴의 광채를 알지 못하였고, 모세의 얼굴을 보는 백성들이 크게 두려워하였다고 하였습니다(출 34:29~30). 모세는 시내산에서 받은 말씀을 다 백성들에게 말하였고(33절),수건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받기 위하여 회막에 들어갈 때는 수건을 벗었고, 백성들 앞에서는 또 가리웠습니다(35절). 이 사실에서 교훈받을 것은

1)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당사자는 물론 주위의 환경까지 순결하고 고요하게 한 점을 배워서 저희들도 예배의 분위기만큼은 아주 고요하고 엄숙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며

2)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다 증언한 것처럼 오늘의 사역자들도 성경을 전체적으로 또 주밀하게 증거할 사명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다 증거하고(행 5:20) 다 배우는 성도들이 되셔야 할 것입니다(마 4:4).

3) 모세가 말씀을 받을 때 영광의 광채가 자기의 얼굴에 나타났지만 백성들이 그 광채를 볼 때 모세를 신처럼 존경하거나 지나치게 존경할 것을 염려하여 수건으로 그 광채를 가린 것이니 이것은 모세가 자기의 높아짐을 통제한 겸손인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 사역자는 스스로 자기의 인기를 통제하고 겸손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2.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모든 계명을 전달한 후에 성소 건립과 제사장 의복 등을 만들 때 마음에 감동되어 자원하는 자와 자원하여 드리는 예물을 받아 사용하였고(출 35:20~22) 또 하나님께서는 유다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엘”에게 성령의 감동으로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보석 기공사역을 하게 하셨고, 또 단지파 사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감동하셔서 지혜로운 마음을 주시니 그가 조각하는 일과 수 놓는 일을 하였고, 그 외에 다른 공교한 일들도 연구하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이 사실에서 주시는 교훈은

1) 하나님은 성도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때 자원하는 마음과 자원하는 봉사로 섬기는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억지로 하도록 강요할 필요가 없습니다.

2) 기술적인 봉사에 대하여는 특정인에게 은사를 주셔서 그로 하여금 기술적인 일을 감당하고 또 연구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로 하여금 은사적 봉사를 하게 하시는 교훈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출애굽기와 관련된 모세의 기록을 대략 말씀드렸습니다.

3. 그런데 모세의 역사는 출애굽기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고 민수기와 신명기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출애굽기에 나타난 내용이 신명기 9:10~11, 23에서 재설된 것이 사실이지만 대부분 역사적 순서로 기록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출애굽기는 출애굽 초기의 역사이고, 레위기는 제사법에 관한 내용이므로 역사적 사실과는 관계가 없으며 민수기는 출애굽한지 2년 2월부터(민 1:1)의 기록이고, 신명기는 출애굽 40년 11월부터의 역사를 기록한 것(신 1:3)이기 때문에 역사적 순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순서대로 모세와 관련된 사건들을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1) 민수기 1:~4:을 살피면 싸움할 수 있는 장정 계수와 통솔자 임명과 진을 치는 위치와 레위지파의 자손별 직무 분담에 대한 내용 등이 나옵니다. 이런 것은 국가적 단체가 적국과 싸우면서 평화를 유지하는 전략도 되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특별 통치를 받는 선민임을 감안할 때 신약적 교회의 전신입니다(행 7:38). 따라서 이 사실은 신약의 교회가 사탄의 역사와 대항하여 싸우는 전투적 단체인 것과 이 단체가 든든해지려면 통솔 계통, 책임 분야, 그리고 단결과 협동이 있어야 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2) 레위지파 중 아론은 제사장의 원조로 네 아들이 있었는데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은 불로 제물을 태우다가 죽임을 당하였고(민 3:4) 그 다음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제사장직을 계승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은 불로 제사를 드렸다”는 것은 어떤 불로 제물을 태울 것인지에 대하여 하나님의 지시를 받지 않고 임의로 행하므로 하나님이 엄격하게 징벌을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교회의 지도자나 먼저 믿는 성도들이 경건 모범이 되어야 하고 그 모범자들에게는 징계도 엄해야 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3) 민 3:10에 보면 “외인이 제사장직에 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라”하시므로 하나님이 주신 성직은 침해를 받아도 안 되고 또 성직을 안 받은 자가 허탄한 마음으로 침해하여도 안 되는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당시에 모세는 선지자의 직분에 있었고, 아론의 아들들은 제사장 직분에 있었는데 아론은 금송아지 사건이 있을 때 3000명에 들지 않으므로 죽지 않았으나 신 10:6에 보시면 모세가 2차로 계명판을 받은 다음에(신 10:1~6) “모세라”란 곳에서 죽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벌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벌하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저희들은 율법을 사랑하고 직분을 지키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으므로 건전한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을 합리적으로 잘 하셔야 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제 42 과 모세(15) (민 4:1~20) 목록으로


1. 제가 성경 인물 중심으로 말씀을 상고하는 것은 성경에 나타난 유명한 인물이나 또는 문제의 인물들이 자기가 당면한 정황에서 어떻게 신앙적 처신을 하였으며 또 어떻게 유혹을 받고 실수하였는지를 상고하는 것이 목적인데 역사를 살피다 보니 목적에서 이탈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세의 역사를 살피다가 모세가 시내산에서 2차로 계명판을 받은 것까지 앞에서 말씀을 드렸고, 출 35장~40장까지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여 성소와 성소의 제단과 기명들을 만들게 하셨는데 모세가 그대로 다 시행하므로(출 37:29, 39:42~43) 복을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출 40장에서는 성막의 완성과 함께 제사장 임직에 관한 말씀을 기록하시므로 출애굽기가 끝났고, 레위기는 제사법을 말씀하셨는데 이 제사법에 대한 자세한 연구와 교훈을 살필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이 퍽 안타깝습니다.

2. 그리고 민수기에 기록된 말씀은 출애굽기 역사에 계속 되는 말씀으로 출애굽기가 출애굽 초기(2년 정도)의 역사라면 민수기는 그 이후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 1~2장에서는 출애굽 2년째 되던 2월 1일에 민족 전체에 대한 방위 체제를 구성하였는데 여기에서 레위지파는 성막 봉사의 특권 때문에 방위 책임에서 제외되었고, 요셉 지파가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두 지파로 나누어졌기 때문에 방위 및 기업을 받는 12지파의 수는 변함이 없습니다. 방위 체제는 각 지파마다 두령을 세우고, 20세 이상 남자 장정을 계수하여 각 지파의 군대를 삼았으며 진을 칠 때나 행진을 할 때에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할 것까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3. 민 3~4장에서는 성막 기구들을 옮길 때 제사장이 할 일과(민 4:15) 레위 지파 자손들이 할 일을 따로 따로 명시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감에 있어서 하나님께 제사 드릴 사명과 안전 보호에 대한 사명을 분담시키신 것이고, 아울러 규모와 질서를 잘 지킬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민 3:12~13에 보시면 하나님이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자기를 섬기는 책임을 주신 것은 출애굽 당시에 선민의 장자를 살려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셨는데(출 13:1) 또 그 구별한 자들을 대신 하여 레위 지파를 쓰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속죄의 제물도 예수님으로 대신 쓰신 것처럼 하나님께 헌신할 사람도 다른 사람으로 대신 쓰시거나 사람과 짐승의 몸값을 물질로 바꾸어 헌납하게 하시는 대속의 규례를 주시기도 하셨습니다(출 13:13~16, 34:20, 민 18:15).

4. 민 5장에서는 “질병으로 인한 부정”을 제거하는 방도를 명하시되 불결한 병자들을 진 밖으로 격리하게 하셨고(1~4절), 또 백성이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범죄는 범인을 자복시킨 후 그 피해준 분량의 1/5을 더하여 갚게 하셨으며 보상 받을 당사가 없을 때는 제사장에게 드리라고 하셨습니다(5~10절). 또 민 5:11~31에서는 “의심의 소제”라 하여 부부간 의심나는 범죄에 대하여서도 해결하는 방법을 말씀하셨는데 여기에는 심리적으로 회개 자복을 유도하는 방법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맡기는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5. 민 6장에서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백성들의 특별한 서원을 관리하는 사명과 제사장들에게 백성을 위하여 축복하는 사명도 전달하였습니다. 민 7장에서는 장막 건설이 끝났을 때 각 족장들이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는데 그 예물이 소와 수례였기 때문에 그것으로 성소의 기구를 운반하도록 게르손과 므라리 지파에게 쓰게 하였고, 고핫족은 성물을 취급할 때 어깨로 메는 것만 취급하기 때문에 주지 않았습니다.

6.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드린 말씀을 정리한다면

1) 가장 중요한 것이 모세가 하나님의 계시를 음성으로 받아 전달한 것입니다. 출 7:1에서는 “바로왕 앞에서 모세가 신이 되게 하신다”하셨고, 민 12:8에서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대면하여 명백히 말한다”고 하셨습니다(민 7:89). 하나님의 계시를 말씀으로 받아 전하는 사명만큼 귀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2) 하나님을 대리한 가장 높은 지도자였습니다. 대제사장과 레위 지파에게도 일감을 맡기고 민족 전체를 지도하였으니까요(민 3:1~10).

3) 백성들의 질병 문제를 처방하는 사명과(민 5:1)

4) 범죄자에 대한 재판은 물론 자복, 변상, 화해에 대한 사명을 주셨고(민 5:6~7),

5) 부부간의 간음 또는 의심으로 오는 불화 문제를 해결하게 하셨고(민 5:12)

6) 하나님께 대한 서원이 있는 백성을 지도하는 문제(민 6:13)

7) 축복하는 특권(민 6:23~27)

8) 봉헌물을 적재적소에 사용하게 하는 직임(민 7:8)까지 주셨으니 이것을 다시 요약하면 계시 전달 사명(메시지 전달), 업무 지정의 사명, 범죄 처방, 고난 처방의 사명, 재판의 사명, 화해의 사명, 봉헌물 취급의 사명, 축복의 사명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충실하게 봉행하셔야 할 것입니다.

 

제 43 과 모세(16) (민 8:1~13) 목록으로


1. 민 8장을 보시면 하나님의 성소를 비췰 등대와 등잔을 만들도록 명하셨는데(1~4절) 8:2~3에 보시면 “등불을 등대 앞으로 비취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빛이라”고 하셨으니까(요 1:4~5) 성소 안의 어두움을 등잔빛으로 비취신 것은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심을 나타내신 것이고, 그리고 성소 안은 다른 빛이 들어오는 창문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빛으로만 밝아져야 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등잔 불로 등대를 비취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뜻은 “등잔 밑을 어둡지 않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빛을 가까이 하고 있어도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성도가 예수님을 가까이 하면서도 자신의 기본 생활을 어둡게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가까운 곳을 밝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2. 그 다음 6절을 보시면 “레위인을 성결케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레위인을 정결케 할 때 “속죄의 물로 뿌리고 그 전신을 삭도로 밀며 의복을 빨라” 하셨는데 이 정결케 하는 방법은 예수님의 보혈로 죄사함 받는 은혜를 상징한 것입니다. 마치 양의 피로 제사를 드리므로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함과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이 의식을 레위인에게 시행한 것은 레위인이 하나님을 가까이 섬기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가까이 대면할 때 신을 벗은 것도 그런 뜻입니다. 모세를 복음사역자에 비유한다면 레위인은 제직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섬기는 성도들이 더욱 성결하여야 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이 설교를 쓰는 시간에 누가 기독신보에 나온 기사를 읽어주는데 “목사가 미국의 영주권을 얻기 위하여 본부인과 이혼하고 미국 사는 여인과 결혼한 후 미국 간 후에 다시 이혼하고 한국의 전처와 또 결혼하여 미국으로 데려간 후 그 곳에서 목회하면서 총회에 총대로 온다는데 그것이 문책 대상이 아니냐?하는 기사였습니다. 여하튼 하나님을 가까이 섬기는 성도는 누구나 정결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3. 그 다음 민 8:24~25을 보시면 레위인의 봉사 연령을 25세 이상 50세로 하였습니다. 이것은 “가장 젊고 힘쓸 수 있는 체력으로 일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모세나 제사장은 정년제를 주지 않았습니다. 모세나 제사장은 육체보다 정신을 쓰는 직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직에 정년제가 없다”고 합니다. 죽도록 충성하여야 되기 때문이란 것입니다(계 2:10). 그러나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은 “죽기까지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고 또 자신이 죽어지도록 충성하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런 정신을 가지고 일하는 사역자는 자기보다 더 유력하고 활동력 있는 사역자가 나타날 때는 자기의 일자리를 언제나 물려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자기도 일을 잘 못하고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양보도 안 하면 하나님 앞에 큰 불충이 되는 것입니다.

4. 민 1:1에 보시면 출애굽 2년 2월에 된 일을 말씀하셨는데 민 9:1에서는 출애굽 1년 1월의 역사를 기록하셨습니다. 이것은 민수기의 역사가 출애굽 역사의 다음이기는 하지만 장별 따라 꼭 역사 순서대로 기록한 것은 아님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5. 그리고 9장을 보시면 유월절 지킬 것을 명하신 말씀에서

1) 시체를 만진 자가 부정하여 유월절에 참여할 수 없게 된 일에 대한 대책과

2)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 자가 백성 중에서 끊쳐진다는 말씀과(13절)

3) 타국인이 함께 우거하였을 때 그들도 차별없이 선민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게 하라(14절)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우선 시체를 만진 것 때문에 유월절을 못 지키게 된 것은 시체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었습니다. 시체는 실제로 부정한 것입니다. 따라서 죽음의 시체는 악의 상징이고 결과입니다. 그래서 위생적으로도 조심을 합니다. 따라서 거룩한 성회인 유월절 의식에 참석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시체를 만진 것은 봉사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시체 만진 자가 첫날 부터는 참석하지 말고 마지막 날에 참석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부정은 부정대로 인정하고 봉사는 봉사대로 인정을 하여 두 가지 성질을 다 만족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유월절에 참석하지 않은 자가 백성 중에서 끊쳐짐”은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을 자신과 관계없는 것으로 여긴 것이므로 하나님의 백성 즉 구원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말씀하신 것이며 세 번째로 함께 우거하는 이방인들도 유월절 참여 대상이 된 것은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생활 같은 신앙을 갖고 이방인들을 차별없이 구원대상으로 받으신 것이며 또 신약시대에 구원의 폭이 이방인 세계로 펼쳐질 것을 예고하신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9:12에서 “유월절 양을 먹되 조금도 남겨두지 말며 그 뼈를 꺽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조금도 남겨두지 않고 다 먹음”은 예수님의 완전 희생을 예고하신 것이고, 또 “뼈를 꺽지 말라”하신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그 뼈가 상하지 않을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출 12:46, 요 19:36, 시 34:20). 또 구약 시대의 유월절은 저녁에 시행하였습니다(민 9:11). 그래서 예수님의 성만찬도 역시 저녁에 시행하셨습니다(마 26:20). 예수님이 저녁에 시행하신 것은 구약적 예언의 성취라 할 수 있고, 이스라엘 민족이 유월절 행사를 출애굽 당시에 저녁(해질 때)에 시행하신 것은 저녁 해질 때가 하루의 시작이기 때문에 의미있는 일을 첫 시간에 시행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루의 생활을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시작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근거;창 1:8, 출 12:18, 27:21, 레 24:3, 시 55:17).

6. 마지막으로 9:15~22에 보시면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시는 신호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모양 같은 불기둥(출 13:22)으로 하셨습니다. 민 9:15에서 “불모양”이라고 하셨으니까 “불빛으로 나타난 모양”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움직이지 않으면 한달이든 1년이든 머물다가(22절) 그것이 움직일 때만 행진을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1년씩 머물고 기다린다는 것은 큰 순종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명하시면 움직이고 명하시지 않으면 1년이라도 머문다는 것은 바로 말씀 중심으로 치우치지 않는 생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3절에서 모세는 “여호와의 명을 따라 직임을 지켰다”고 하였습니다. 모세의 생활 중심은 오로지 말씀따라 가고 말씀따라 서는 생활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고후 13:8).

 

제 44 과 모세(17) (민 10:1~10) 목록으로


본문 1절을 보시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을 주셨는지를 살피고, 그 말씀에 나타난 교훈을 살펴 보겠습니다.

1. 하나님이 은나팔을 만들어 사용하는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1~10절).

1) 나팔의 용도는 세 가지입니다. ① 소집신호(2~4, 7절) ② 진행신호(5~6절) ③ 찬송과 영광 목적으로 부르게 한 것입니다(10절, 시 150:3).

2) 나팔을 제조하는 법은 “은으로 쳐서 만들라”(1절)하셨으니 은은 동보다 좋은 금속이고, 쳐서 만들면 부어 만드는 것보다 금속이 강해져서 더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3) 나팔의 수는 두 개를 만들어 하나의 소리와 두 개의 소리로 구별짓게 하셨고, 소리도 그대로 부르는 소리와 울려 부는 소리를 구별하게 하셨습니다(4, 7절).

4) 부는 사람은 반드시 제사장이 불어야 합니다. 이것은 통솔 지휘권을 제사장에게 주신 것이고, 또 제물을 드릴 때도 역시 제사장이 불게 하셨습니다(10절).

5) 용도에 따라 부는 방법이 있었으니 이것은 일종의 신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① 하나만 울리지 않고 불 때는 천부장(족장)들이 모세에게로 나오게 하였고(4절), ② 둘을 다 울리지 않고 불 때는 온 회중이 회막문 앞으로 모이게 하였으며(3절) ③ 하나만 울려 불 때는 동쪽 진이 진행하고(5절) ④ 두 번째로 또 울려 불 때는 남쪽 진이 진행하게 하였으며(6절) ⑤ 대적을 치기 위하여 나갈 때도 역시 같은 방법으로 신호를 하였습니다(9절). ⑥ 그리고 “희락의 날과 정한 절기, 월삭 때에 제사 드리는 제물과 화목 제물 위에도 나팔을 불라”(10절)고 하셨습니다. 희락의 날은 7월 1일에 시행하는 대속죄의 날인데 그 날은 백성들이 기뻐하는 날로써 제사를 드렸으며 그 제물 위에 나팔을 부는 것은 하나님께 찬송하고 제사를 받으시라는 의미로 나팔을 불게 하시므로 그 날을 나팔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레 23:24~25, 민 29:1). 그 외에 정한 절기는 안식일(레 23:1~3), 유월절(1월 14일;레 23:5), 무교절(1월 15일;레 23:6), 초막절(7월 15일;레 23:24), 희년(레 25:10)이 있었고, 월삭은 매월 초하루에 드리는 제사입니다(대상 23:34). 그러니까 모든 절기 제사에 다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이 절기 제사는 단체적 제사이기 때문에 제물이 드려질 때 찬송, 열납을 목적으로 나팔을 불게 한 것이고, 이 소리를 들을 때 백성들은 제물이 드려지는 줄을 알게 된 것입니다.

2. 민 10:11~28에는 4중대 편성과 진행법을 말씀하셨습니다. 구름이 떠오를 때 나팔을 불면 그 신호에 따라 진행을 하는데 12지파를 3소대씩 4중대로 편성하고 각 두령을 세워 1진, 2진, 3진, 4진(후진)으로 순서를 정하였습니다. 이 4중대를 편성할 때

1) 제 1중대를 수두진이라 하여 유다 지파의 진에 잇사갈 지파와 스불론 지파가 포함되었고, 지파별 영솔자는 나손, 느다넬, 엘리압이요, 2중대는 르우벤 지파의 진에 시므온과 갓 지파가 포함되고, 영솔자는 지파별로 엘리술, 슬루미엘, 엘리아삽이며 제 3중대는 에브라임 지파의 진에 므낫세와 벤야민 지파가 포함되었고, 영솔자는 지파별로 엘리사마, 가말리엘, 아비단이며 후진은 단 지파를 주축으로 아셀과 납달리 지파가 포함되었고, 영솔자는 지파별로 아히에셀, 바기엘, 아히라였습니다.

2) 이 4중대 구성의 성격을 보면 실력있는 지파(장정 수 많은 지파)가 중심이 되고, 그 다음에 연고있는 두 지파와 합하여 한 중대를 조직한 것입니다. 유다 지파, 잇사갈 지파, 스불론 지파는 다 야곱의 본부인 레아의 자손입니다. 또 레아의 아들 르우벤과 시므온에 갓 지파가 포함되었는데 갓 지파는 레아의 종 실바의 아들이기 때문에 연고가 있고, 에브라임, 므낫세, 벤야민은 다 라헬의 자손들이며 단 지파, 아셀 지파, 납달리 지파는 다 여종의 후손들로 구성되었고, 이들은 후진으로 따르게 하였습니다. 이 조직이 교회로 말하면 구역을 편성한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3) 그리고 1진과 2진 사이 또 3진과 4진 사이에 레위의 자손들이 성막 재료와 성물을 운반하는 행열을 두었습니다. 먼저 1, 2진 사이에는 레위의 아들, 게르손과 므라리 지파가 성막 재료를 운반하게 하였고, 진을 칠 때마다 성물보다 먼저 도착하여 성막을 세웁니다. 그러면 3, 4진 사이에 레위의 둘째 아들 지파인 고핫자손들이 성물(등대, 떡상, 제구 등)을 메고 뒤따라 가서 시설된 성막에 성물을 안치하게 한 것입니다(법궤는 앞에서 메고 갔음;민 10:33).

3. 이상과 같은 방법으로 행열을 지어 나갈 때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그 위를 덮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또 출발할 때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여호와여 이스라엘의 천만인에게로 돌아오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상의 내용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생활 할 때 신속하고(나팔신호), 질서가 있으며(전후진) 화합단결(조직)을 잘 하면서 하나님의 각별한 보호와 인도를 받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제 45 과 모세(18) (민 11:1~3, 23~30) 목록으로


1. 민 10:29~32에 보시면 모세 일행이 시내산 근방에 있을 때(민 3:1) 모세의 처남 “호밥”이 모세를 방문하였는데 이 때에 모세가 호밥에게 “자기와 동행하면 선대하겠다”하였지만 그들은 고향을 떠날 수 없다는 이유로 따라 가지 않았습니다(출 18:27). 그런데 모세의 장인의 이름이 “이드로”(출 2:18), “르우엘”(민 10:29)입니다. 한 사람이 두 이름을 가진 사례는 흔한 일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처남 “호밥”을 장인으로 기록한 말씀이 있습니다(삿 4:11). 이것은 호밥이 그의 아버지 “이드로”의 보냄으로 왔기 때문에 처남을 그 아버지의 이름으로 호칭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조상에서 몇 대 건너 뛴 다음의 자손을 아들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음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마 1:1).

2. 민 11:1~3에 보시면 백성들이 악한 말로 하나님을 원망하였고, 하나님은 그들을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진 끝을 태우셨으며 모세의 기도로 불이 꺼졌습니다.

1) 이 때에 백성들이 원망한 것은 양식 문제로 일어났고, 메추라기를 거둘 때 “섞여 사는 무리들(민 11:4)이 탐욕을 품고 거두다가 불태움을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33절). 백성들의 여행 중에 가담한 이방족입니다.

2) 그 섞여 사는 무리들이 탐심을 품고 메추라기를 거둘 때 “하나님이 진노하사 불로 진 끝을 태웠다”고 하셨는데 이 불을 “여호와의 불”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불을 명하여 제물을 태우시고(창 16:17, 왕상 18:38) 사람도 불태우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또 타지 않는 불을 보내시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모세를 부르실 당시에 떨기 나무에 나타난 불꽃이나(출 3:2) 이스라엘을 인도한 불기둥은 그런 상태로 나타난 것입니다(민 9:15).

3) 백성들이 먹을 것을 인하여 울며 원망할 때 고기 뿐만 아니라 생선, 채소, 파와 마늘을 먹지 못하여 정력이 쇠약해진다고 하였으나(4~5절)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만 주시고 다른 것은 주시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성도가 배를 채우는 주식으로 만족할 것이요, 음식 사치나 지나친 영양가에 치중하지 않아도 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떡반죽 그릇이 복이 있다”는 말씀과(신 28:5) “몇 가지 또는 한 가지 식단으로도 족하다”(눅 10:42)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따라서 좋은 음식 먹지 못하는 것을 아쉽게 여기지 말고 잘 참아야 할 것입니다(고전 8:8).

3. 이스라엘 백성들이 양식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을 때(출 16:2, 7) 출애굽기 16장에서는 모세의 기도가 기록되지 않았으나 민 11:11~15에서는 모세의 기도가 기록되었습니다. “주께서 어찌 하여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풀어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1) 이 기도의 내용을 보면 질문으로 시작하여 강한 호소로 끝났습니다. 질문은 모세가 왜 그 큰 책임을 지고 고난을 당하여야 합니까?한 것이고, 호소는 하나님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고 계속 곤고를 주실 바에는 차라리 자기를 데려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성도들은 이런 급박한 상황을 당할 일이 없지요. 그러나 모세는 민족의 가장으로 그 백성들과 황무지(사막)에서 살고 있었고, 우리는 적은 식구의 가장들로써 풍요로운 세계에 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도 우리의 생활이 고달픈 것은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모방하려 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의 생활과 책임에 비한다면 모세는 참으로 큰 책임을 진 사람이었고, 그 책임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기도로 하나님께 호소하게 되었고, 그 기도의 호소가 “차라리 나를 데려가 달라”는 극단적 호소를 한 것입니다.

2) 그래서 어떤 응답을 받았습니까? ① 70장로들을 회막 앞에 서게 하면 하나님의 성령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여 “모세로 하여금 짐을 혼자 지지 않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역자가 무거운 짐을 지고 피곤할 때 많은 성도가 성령 충만의 은혜를 함께 받는다면 짐을 서로 나누어 질 것이니까 문제 없을 것입니다. ② “내일부터 고기를 먹이겠다”(18절)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한다는 것인가?”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거짓말하시는 분으로 멸시하였다고 하였습니다(20절). “하나님이 한달 동안 고기를 먹이신다 하였는데 이 백성들의 수는 보행자(장정)만 60만 명인즉 어디서 소떼와 양떼를 잡아 들여 이들을 배부르게 먹인다는 것이냐?”하고 멸시한 것입니다. 사실 맑은 하늘에서 소떼 양떼가 떨어질 일이 만무하고, 그렇다고 하여 이웃의 주민이나 대적들이 갖고 온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는 일로 여겼을 것입니다. ③ 이 때에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하신 후에 먼저 70장로들에게 성령이 임하게 하여 예언하는 일까지 하게 하셨고(24~25절), 그 다음에 바람으로 메추라기 떼를 몰아 그 곳에 떨어지게 하시므로 고기를 먹게 하셨는데 어떤 백성들은 그 고기를 탐심으로 거두어들이다가 큰 재앙을 받아 죽은 일이 있다고 하셨습니다(32~35절). 기적의 은혜일수록 탐심을 가지면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도 탐심이나 이기주의로 하면 안될 것입니다.

4. 26~30절에 보시면 70장로들이 회막에 와서 성령을 받을 때 “엘닷”과 “메닷”은 장로이면서도 그 자리에 나가지 않았는데도 자기 진에서 성령을 받고 예언을 하니까 한 소년이 그들이 예언하는 것을 모세에게 고하고, “예언을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시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모세가 말하기를 “너는 나를 위하여 그들을 시기하느냐 나는 하나님이 모든 백성에게 성령을 주어 예언하게 하시기를 원한다”하므로 모세는 자기의 성직의 우월성으로 교만하거나 남을 견제하거나 시기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희들은 이 말씀을 통해서 백성들의 불신앙과 탐심을 경계하고 모세의 희생적 기도와 겸손,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책임져 주시는 은혜를 믿어야 할 것입니다.

 

제 46 과 모세(19) (민 12:1~3,9~16) 목록으로


1. 모세의 처는 “십보라”이고, 아들은 “게르솜”인데(출 2:21,22) 민 12:1에 보시면 “모세가 구스 여자를 아내로 취한 말씀이 있고, 모세의 누이와 형(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였다”고 하셨습니다.

1) 그러면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한 의미가 무엇일까?에 대하여 전처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후처를 맞이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모세 이전의 혼인한 역사를 보면 인류 초기에 하나님이 1남 1녀로 짝지워 주신 후(창 2:24) 다처다부 제도를 말씀하신 일이 없었고, 비택자 계열 라멕이 최초에 그 계율을 어겼습니다(창 4:19). 그런데 그 후에 선민 야곱이 또 그 계율을 위반하였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그것을 문책하신 일이 없었고, 오히려 그 후손 열 두 아들을 다 선민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야곱의 취첩을 모범으로 알면 안됩니다. 다만 하나님이 간과하신 것 뿐이지요. 그리고 일부일처제는 구약 시대에 계속 고수되었고(말 2:15), 신약에서 예수님과 바울사도도 그 사실을 확인하셨습니다(마 19:6, 고전 7:39). 그런고로 계명을 잘 지키는 모세가 취첩을 한 것은 아닙니다.

2) 그러면 왜 미리암과 아론이 비방을 하였을까요? 그것은 이방 나라 “구스” 여자를 취하였기 때문입니다. 구약 율법에서 이방인과의 혼인을 금한 것은 사실이나(신 7:3, 수 23:12) 이방인이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열에 합류하였을 때는 꼭 같은 대우를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출 12:38, 18:11~12, 44~50). 그러니까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한 것은 이스라엘의 대열에 종이나 동참자로 합류한 백성 중에서 취한 것이기 때문에 죄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대열에 합류한 이방 여인을 취한 것은 외면 당하기 쉬운 이방인 성도를 위로한 면도 있고, 또 그들을 환영하고 포용하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잘한 일인데도 이를 비방한 사람들은 종족의 체통이나 민족의 순결만을 내세워 비방한 것이므로 이기주의적인 잘못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모세는 좋은 일을 하고도 집안 사람들로부터 비방을 받은 것입니다.

2. 3절을 보시면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고 하셨습니다.

1) 이 말씀에 문제되는 것이 있습니다. 보수적인 학자들이 모세오경을 모세의 기록으로 믿습니다. 그 이유는 모세오경을 율법서로 총칭하는데 그 율법서를 모세의 기록이라고 예수님이 증언하셨기 때문입니다(마 8:4, 19:8. 막 10:5, 눅 5:14). 그런데 모세오경을 모세의 기록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은 본문의 “모세 자신이 온유하였다”는 것과 신 34:6에 기록된 모세의 장례 기록을 스스로 기록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오경은 퍽 후시대에 기록한 것이라”고도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또 예수님의 말씀이 거짓으로 되겠지요? 그래서 모세는 자기의 성품에 관한 것과 미래에 관한 것도 예언 영감을 받아 기록할 수 있었다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2) 모세는 온유가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역하고 원망할 때도 잘 참고 견뎠으며 또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고 “하나님이 우리와도 말씀하지 않았느냐”하면서(민 11:25) 시기하는 등 참기 어려운 태도를 취하였음에도 그것을 온유한 마음으로 소화시킨 것입니다. 자녀가 많은 부모나 대중을 다스리는 지도자일수록 온유한 성품의 소유자요, 예수님도 역시 그런 분임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인내와 온 가 참으로 값진 성품입니다.

3. 이 사실을 하나님이 지켜보시고 미리암과 아론을 책망하셨습니다(4~10절). 하나님이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회막으로 부르셔서 세 사람이 나갔는데(4절) 하나님이 구름기둥으로 가까이 오시고, 또 “미리암과 아론만 나오라”하시더니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른 사람에게는 꿈이나 이상으로(간접적으로) 계시를 주지만 모세와는 대면하여 말하고(직접 말씀을 주심) 은밀히 하지 않는다 이는 그가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하나님의 세계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충성됨을 뜻함) 또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나의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책망을 하시고, 미리암에게 문둥병이 들게 하셨습니다. 비방과 시기는 같이 하였는데 아론은 책망으로만 끝내고, 미리암은 문둥병까지 들게 하셨습니다. 아마 미리암이 모세를 더 심하게 비방한 모양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이 정당하게 보시는 사역자를 비방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임을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형상을 볼 것이라”는 뜻은 신약시대에 변화산에서 예수님과 만날 것을 예언하신 뜻일 수 있습니다(마 17:3).

4. 그래서 모세가 그 사실을 알고 “우매하여 범죄한 것이니 고쳐주십시요”하고 기도한즉 하나님이 고쳐주셨다고 하였습니다. 범죄로 질병을 주시는 사례가 많습니다(마 9:1~8, 고전 11:30, 약 5:15, 계 2:22). 이 때에 병고치는 방법은

1) 당사자의 회개와

2) 관련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과

3) 하나님의 인정 받는 자의 기도가 있을 때 고쳐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하나님의 인정 받는 것은 자신 또는 성직자임).

문둥병은 부정한 병이기 때문에 “병이 나았다” 하여도 금방 백성들의 총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 진단도 받고 결례식을 하여야 합니다(눅 17:14, 레 13:8). 이로 인하여 미리암과 함께 백성들이 여행하기 위하여 7일 동안 진행이 지연되었던 것입니다(레 13:1~8, 마 5:14).

이상의 말씀에서 모세의 재혼 문제, 비방 문제, 모세의 온유와 충성 문제, 하나님의 진노 및 치료에 관한 말씀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제 47 과 모세(20) (민 13:25~33) 목록으로


민수기 13장과 14장에는 모세가 하나님의 명에 의하여 가나안 땅에 정탐을 파송하여 보고받는 상태를 말씀하셨습니다.

1.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기로 작정하시고 약속하신 땅입니다. 하나님의 작정과 약속은 그대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을 거저 얻게 하시는 것이 아니고, 침노하여 뺏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노력을 요하지 않고, 주시는 것이 있고, 인간의 노력을 통해서 얻게 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연 만물이나 자기의 생명, 또 거듭난 생명, 구원과 천국 같은 것은 노력의 대가가 아니지요. 그러나 건강, 지혜, 현세의 복 같은 것은 다 노력을 통하여 성취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영적으로는 천국의 모형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삶의 터전이고, 산업입니다. 그런 면에서 침노하는 것입니다. 마 11:12에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뺏는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가나안 땅을 침노하여 뺏은 것을 마음에 두시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천국으로 비유하셨지만 그 천국의 복락을 많이 누리려면 침노를 잘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천국은 거저 받을지라도 천국의 복락을 누리는 분량은 침노한 자의 노력에 따라 다릅니다. 꼭 같은 성도라도 신앙 생활(천국 생활)을 맛있게 하는 이도 있고, 그렇지 못한 이도 있습니다. 따라서 천국의 영광도 침노를 잘 한 사람은 상급과 기쁨이 많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노력이 적은 만큼 누리는 만족도 적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시는 방법도 침노하는 노력으로 얻게 하셨습니다.

1) 그래서 바란 광야에 있을 때 12지파의 각 족장(민 13:2~3) 한 사람씩 뽑아서 그 땅의 지식을 사전에 알도록 정탐하라고 하셨습니다. 지식이라면 거민의 강약, 다소, 땅의 경치, 비옥한 여부, 성읍과 산성, 수목, 과실 등을 파악하고 처음 익은 실과를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2) 인간이 살아가는데 예비 지식을 갖는 것은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적을 알아야 전쟁에 승리할 수 있는 것처럼 천국의 예비 지식도 가지면 좋고, 이웃도 오래 사귀면서 사람의 인간성을 아는 것이 좋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침노하여 뺏게 하시는 가나안 땅이겠습니까?

2. 그래서 40일 동안 정탐을 하였고, 보고를 받게 되었는데

1) 우선 포도 한 송이 달린 가지를 나무에 꿰어 두 사람이 메고 오므로 그 땅이 비옥하고 풍족함을 증명하면서 “성읍은 크고 견고하며 거민도 강하고 특히 장수족으로 일컫는 네피림의 후손인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2) 그런데 문제는 이 땅을 정복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서 의견이 갈리는 것입니다. ①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족장들은 한 목소리로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 같은 존재다”하면서 침노할 의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백성들이 밤새도록 울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면서 “갈 곳이 없으니 광야에서 죽어야 하지 않느냐?”하면서 분노하였는데 ② 여호수아와 갈렙은 옷을 찢고(분하거나 슬플 때의 표현임) 말하기를 “그 땅은 아름다운 땅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면 인도하시고 주실 것이라 그러니까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고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그들의 보호자는 떠났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두려울 것이 없다”고 하니까 회중들이 그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그 두 사람에게 돌을 던지려 한 것입니다.

3) 이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모세에게 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상황이 급할 때 나타나시고(민 14:10) 말씀과 처방을 주셨습니다. 말씀은 “너희가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너희가 내 이적을 체험하고도 믿지 않는도다”하시고 염병으로 치실 것을 예고하시니(민 13:11) 모세는 “백성의 잘못한 죄를 용서해달라”고 간구하였고(민 14:17~19),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죄는 사하나 하나님을 열 번이나 시험하고 말씀을 청종치 않으며(22절) 원망하는 백성들(27절)은 다 광야에서 죽으므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요, 그 땅을 탐지한 40일을 1년으로 곱하여 40년 동안 유리하게 될 것이라”(26~38절)고 하여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20세 이상의 장정들이 다 광야에서 죽을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죄를 사한다”는 것은 즉시 내리려하신 염병을 거두신 것을 뜻하고, 20세 이상 장정이 광야에서 죽는 것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특권을 잃는 것입니다(이것을 꼭 영적 구원과 상통한다고 생각하면 안 될 것임). 그리고 또 20세 이상만 죽게 한 것은 그 때가 애굽에서 나온지 20년 쯤 된 때라고 예측할 수 있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출생한 사람은 다 가나안 땅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염병으로 죽을 뻔한 자들이 20년 안에 점차로 광야에서 죽어 갔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신령한 은혜도 성도의 노력을 통하여 주십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약속도 더디 믿게 되고, 의욕도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으면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대하고 용기가 생기며 희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저희들에게도 꼭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과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또 믿음 없는 자들은 응분의 대가를 받았고, 하나님은 12명 중 두 사람이라도 “믿음 있는 자를 쓰신다”는 것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제 48 과 모세(21) (민 15:32~41) 목록으로


민수기 15:1~13까지는 “제사드리는 방법과 범죄 성격에 따른 제사법”을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레위기 연구와 함께 시간을 충분히 갖고 연구하여야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읽으신 본문에는 ① 안식일 규례 어긴 자를 벌한 사실과 ② 하나님의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할 것에 대하여 교훈하셨습니다.

1. 안식일 규례 어긴 자를 벌함에 대하여(32~36절)

“안식일 규례를 어긴 자를 벌하되 돌로 쳐서 죽였으니 이 문제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셔야 할 것입니다.

1) 우선 안식일의 출처와 의미부터 아셔야 합니다. 안식일은 창 2:3에서 지정되었습니다. 하나님이 6일 동안 만물을 지으시고 7일에 쉬셨습니다. 그리고 그 7일을 복 주시는 날로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은 창조 7일째요, 하나님이 안식하신 날이며 거룩한 날이고 복 주신 날입니다. “거룩한 날”이란 세속과 구별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창세기에서는 “7일씩 반복한다”는 뜻과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문이 없습니다. 그리고 족장 시대 즉 출애굽 이전까지 약 2500년 간 안식일을 지킨 사례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창조 1일부터 7일간씩 주기적으로 반복한 사실의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2)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무렵 유월절 지킬 명령을 받으면서 그 날을 1월 1일로 정했습니다(출 12:7). 그리고 1월 14일까지 유월절 어린양을 예비하였다가 14일 해질 때 양을 잡고(해질 때가 다음 날로 바뀌는 기점임) “그 첫 날부터 7일 동안 무교병을 먹으라”하셔서(출 12:14) 1월 14일부터 21일까지 유월절을 지킨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창조 당시부터 출애굽 때까지 한 주간의 주기가 확실하게 연속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출애굽 때를 기점으로 한 주간씩의 생활이 시작된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안식일은 일곱째 날입니다. 그리고 이 일곱 날을 구별짓기 위하여 일, 월, 화, 수, 목, 금, 토를 붙인 것은 성경적 근거가 없고, 언제 누가 붙였는 지 알 수 없습니다(시작한 근거가 있겠지요).

3) 출애굽 당시에 십계명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규례와 함께 안식일 지키는 방법을 주셨는데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거룩은 세속을 삼가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는 뜻), 하나님이 안식하신 것을 기억하여 모든 가족이 쉬어라, 하나님이 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안식하셨다”는 것은 천국의 안식을 사모하게 하는 뜻이 있고, “거룩하게 하여 복을 주신다”는 의미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날로 지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이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주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안식일에는 만나를 거두러 나가지 않게 하셨고(출 16:22) 아궁에 불도 피우지 않게 하셨습니다(출 35:3). 식사를 위하여서도 번거롭지 않게 하라는 뜻입니다.

4) 그러면 “안식일을 옳게 지키지 못한 자를 죽이라”는 말씀이 어디 있느냐?하실 것입니다. 출 35:2에 보시면 “제 7일은 너희에게 성일이니 여호와께 특별한 안식일이라 무릇 이 날에 일하는 자는 죽일지니…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불도 피우지 않는 뜻”이 무엇일까요? 또 “이 날에 일하지 말라”는 뜻은 무엇입니까?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엄격하게 지키기 위하여 안식일에는 몸에 단장품을 제하였다고 합니다. “머리핀 하나라도 꽂으면 그것은 짐지는 일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 날 밀이삭을 비벼 먹은 것은 일이다”하면서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 것입니다. 이 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사장이 안식일 날 제사드리는 것이 일이지만 그런 일은 하여도 괜찮고, 또 안식일이라도 시장끼를 면하기 위하여 수고하는 것(먹기 위한 약간의 수고)도 괜찮으며 또 병을 고치는 것도 일이지만 생명을 살게 하는 것이므로 죄되는 일이 아니라”고 해명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은 내용이 있어도 자세하지 않았는데 예수님은 그 율법주신 의미를 다 아시고 자세히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문자만 보고 지키는 것 보다 새 계명을 주신 예수님의 생활을 본받는 것이 더 나은 것입니다. 따라서 안식일 계명에 “일하지 말라”는 뜻은 “세속의 욕심 갖는 일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즉 시장끼를 면하는 정도는 괜찮지만 그 이상은 죄가 되는 것입니다. “아궁에 불을 피우는 것”도 시장끼를 면하는 정도가 아닌 잘 먹기 위한 행사로 하는 것을 금하라는 뜻입니다. 간단한 식사를 미리 준비하는 정성을 쓴다면 구테여 안식일 날 불 피울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5) 그런데 어떤 백성이 안식일 날 불을 피우기 위하여 나무를 하러 나갔으니 결국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 사실을 모세에게 알린 것은 고발이고, 모세는 그 범죄의 정황을 살핀 후 사실이기 때문에 율법대로 “돌로 쳐서 죽이라”고 한 것입니다. 레 24:14에 보시면 “하나님을 저주한 자는 돌로 쳐서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안식일을 범한 것도 하나님의 거룩한 날을 범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저주한 경우로 간주한 것입니다. 법은 인정과 타협이 없습니다. 모든 죄인이 율법 앞에 섰으면 다 죽은 목숨입니다. 정상 참작도 없고, 회개해도 소용없습니다. 모든 인간들이 다 그 법 아래서 심판을 받게 되어 있는 것인데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율법의 속박에 있지 않으며(갈 5:1) 율법을 범한 죄의 심판을 예수님이 당하게 하시고, 율법이 아닌 복음으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6) 그러면 오늘날 성도들이 주일을 범하면 어찌 되나? 하시겠지요. 율법은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만 유효한 법입니다. 따라서 신약의 성도들은 그 율법 아래 있지 않기 때문에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주일은 새 계명에서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신약의 성도는 예수님의 뜻을 더 잘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주일에 부활하시고 제자들을 만나셨습니다(요 20:19).

2. 하나님의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한 일에 대하여(37~41절)

1) “백성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그 술에 청색끈을 붙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청색끈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계율을 기억하고 준행하라”는 것입니다. 그 치마 끝에 붙은 청색끈이 펄럭거리며 움직일 때마다 하나님의 계명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명에 얼마나 경성하게 하셨는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2) 그리고 민 15:41에 보시면 “인도하여 낸 하나님”이란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인도자이십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셨고, 또 계속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반드시 하나님의 인도를 믿고 의지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제 49 과 모세(22) (민 16:1~11) 목록으로


민수기 16장은 모세가 자기의 직위를 반항하는 무리들로부터 항의를 받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처리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민 14:29에서 “20세 이하만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하신 말씀이 출애굽 20년 만에 주신 말씀이라면 모세가 반역을 당한 것은 지도자 노릇한지 20년 쯤 되었을 때일 것입니다.

1. 그 때에 레위지파 고라와 르우벤지파 다단과 아비람이 주동자가 되고, 다른 족장급 250명이 합세하여 “모세와 아론만 지도자 되라는 법 없다”하고 항의하고 거스린 것입니다. 민 16:3을 보면 “모세와 아론이 분수에 지나치다 어찌 당신들만 거룩하겠느냐? 어찌하여 총회 앞에 스스로 높이느냐?”고 항의를 하였습니다. 많은 백성을 다스리려니까 엄한 규율을 세울 수도 있고, 때로는 책망도 하여야 할 것이며 권위를 나타낼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안식일 거역한 사람도 모세의 명에 따라 사형을 집행하였으니까 그런 일들을 지나친 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아셔야 할 것은 법대로 공정하게 한 것은 지나친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일부 백성들이 항의 소동을 벌인 것은 민주주의적인 발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한 두 사람(모세와 아론)이 장기 집권을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백성들이 자율권 행사를 한 것입니다. 민주주의 체제로 본다면 데모와 같은 것이고, 정권교체를 하자는 뜻입니다. 또 민주주의 체제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기본권을 가진 국민들이 투표하여 결정하면 될 것입니다.

2. 그런데 이스라엘 선민의 경우는 신정 통치아래 있기 때문에 무엇이나 하나님의 뜻을 물어 해결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민 16:4에 보시면 “모세가 백성들의 항의를 듣고 엎드렸다가…방책을 말했다”고 하였습니다. “듣고 엎드린 것”은 기도하는 자세로 백성들의 항의를 청취한 것이고, 그 다음에 말한 방책은

1) “모든 항의자들이 향로에 향을 담아 가지고 하나님의 제단 가까이 나오라 나온 자들 중에 하나님이 거룩하게 쓰시기를 원하시는 자가 있으면 그를 가까이 나오게 하여 분향하게 하실 것이라 그가 택하신 자이면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실 것이라”(민 16:4)하였으니 이 말에는 ① 모세가 지도자 된 것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과 ② 누구든지 하나님이 구별하여 쓰시면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2) 그리고 책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레위지파를 구별하여 성막 봉사를 하게 하신 것이 작은 일이 아닌데 그것을 경홀히 여기고 제사장직을 구하느냐? 아론이 어떤 사람이관데 그를 원망하느냐?고 책망한 것을 보면(민 16:8~11) 성도는 우선 하나님의 은혜와 직분을 크게 여겨 감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3) 그런데 그 주동자들이 쉽게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역하기를 “왕노릇하기 위하여 백성들을 이끌고 나와서 갈 곳도 없이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민 16:12~14). 이 때 모세가 노한 어조로 “나는 너희를 해롭게 한 일이 없은즉 너희는 본래 말한대로 향로를 갖고 회막으로 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물러나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융통성을 보인 것입니다. 이런 일은 현실 교회에서도 자주 나타납니다. 그것은 일부 교인들이 교역자를 불신임하여 배척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 교역자는 융통성 있게 대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교역자와 성도 간에 불신임 상태가 심하면 서로 유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쪽도 융통성이 없을 때는 단체가 분리 되겠지요. 모세는 단체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4) 그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회중에 나타나면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회중을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멸하리라” 하셨고, 모세가 기도하기를 “한 사람(반항하는 대표자 고라를 지칭한 말)이 범죄하였거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나이까?”하고 유감을 표명하였지만 하나님이 듣지 않으시므로 그 말씀대로 시행하게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반역자들로 250개의 향로를 들고 그 가족들과 함께 회막 앞에 서게 하고 다른 백성들은 그 자리를 떠나게 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로 향을 피우는 제사장 되게 하시기를 원하였을 것입니다. 그 때 모세가 말하기를 “당신들의 죽음과 벌 받음이 일반인과 같으면 나의 지도자 됨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요 다르면 나의 지도자 됨이 하나님의 뜻인줄 알 것이라”하자 이어서 땅이 갈라져 그들 전체가 생매장을 당한 것입니다(이 때에 죽은 250인이 가족을 포함한 수인지 대표자들만 헤아린 수인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땅이 갈라진 것은 지진같은 현상으로 나타난 일일 것입니다.

3. 이 일이 있은 다음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불타는 중에서 그들이 바친 향로를 거두어 그 불을 타처에 쏟고 그 향로를 모아 편철을 만들어 제단 쌓는 용도에 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거역한 죄로 생명은 죽으나 그들이 하나님께 드린 향로는 하나님의 성물이기 때문에 거룩하므로 거룩한 용도에 따라 쓰라는 것입니다(민 16:36~40). 이것은 곧 하나님의 성물은 거룩하게 취급하고 범죄자의 생명은 죄 값을 받는다는 뜻이며 그들이 드린 향로로 제단을 만든 것은 “하나님이 세운 사역자를 거스리다가 이렇게 죽었다는 사실을 기념하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39~40절).

4. 그런데도 사태는 진압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튿날 온 회중이 또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 것입니다. “그들 두 사람이 백성들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칠 때에 영광의 구름이 회막을 덮으면서 이제는 “염병으로 그들을 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과 함께 이 사실을 안 모세가 아론으로 하여금 “속죄제를 드리게 하므로(46절) 14700명이 죽은 다음에 그쳤다”고 한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교훈받을 수 있는 것은 ① 복음사역자들의 잘못에 대하여 합리적으로 대처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② 만일 성도들이 하나님의 세우신 자를 잘못 반항할 때는 큰 화를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③ 하나님은 몹시 완악한 자에게 벌합니다. ④ 그리고 그 가족까지 화를 당할 수 있습니다. ⑤ 제사장의 속죄제가 염병을 그치게 한 것은 성도의 회개를 받으시고 예수님의 대속을 받으시는 뜻을 나타낸 것입니다.

 

제 50 과 모세(23) (민 17:1~13) 목록으로


민수기 17장에서 하나님은 자기가 선택하여 세운 제사장 대표자에게 기적을 나타내주시므로 “하나님이 그를 세우셨다”는 확증을 보여 주셨습니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러 차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고, 또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기 전에 아론도 모세를 반항하는 일에 가담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론의 후손들을 버리시지 않고 제사장으로 쓰셨습니다. 부패한 인간들인지라 현세적 탐심을 가질 수 있겠지만 성직에 대한 것은 탐심을 갖거나 시기하거나 훼방하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 중에서는 “모세만 계시를 받고 지도자가 되라는 법이 어디 있느냐?” 하였고, 또 아론만 제사장 특권을 가진 것도 시기하였습니다. 그래서 반항을 하다가 땅이 갈라져 250명이 죽었는데도 또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염병으로 14700명이 또 죽은 사실을 16장에서 알리셨습니다. 16장에서는 “하나님이 세우신 자 즉 성직자를 거스리면 큰 화를 받는다”는 것을 보여 주셨고, 17장에서는 “하나님이 아론의 후손들로 제사직을 봉행케 하신 것”을 이적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2.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12지파 족장들이 각각 지팡이를 하나씩 갖고 와서 거기에 각 족장들의 이름을 쓰고 그것을 회막 안 증거궤 앞에 두라 나의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날 것이니 이것으로 그들(너희)에 대한 원망을 그치게 하리라”(15절) 하셨는데 과연 그 이튿날 아론의 지팡이에서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기적을 “레위집을 위하여 하셨다”(8절)고 하셨습니다.

1) 하나님이 레위 지파를 성막 봉사 요원으로 쓰신 것은 출애굽 때에 처음 난 자를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시고, 그 구별한 대상을 레위 지파 사람들로 바꾸어 쓰신 것입니다(민 3:12~13). 하나님은 주권자이시기 때문에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또 선택도 주권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르우벤 지파나 시므온 지파를 제외하시고, 야곱의 셋째 아들을 택하여 성막 봉사자를 삼으신 것이나 또 레위 지파의 아론을 택하여 그 후손들에게 제사장직을 주신 것은 다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입니다. 따라서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선택과 계획을 의당히 믿고 순종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자기의 하신 일에 대하여 확증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자이시고 전능자이시며 통치자이신 것을 자연계를 통하여 이미 확증해 주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면 벌을 받는다는 것도 노아 홍수나 소돔의 멸망 등으로 이미 확증하셨습니다. 따라서 모세와 아론만 하나님이 세운 종이냐?하고 반항이 있었을 때에도 하나님은 싹난 지팡이 이적으로 확인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레위 지파의 사역과 제사장직의 사역은 예수님이 오시므로 끝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성전이라 하셨고, 예수님이 대제사장이며 영원한 중보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모형하는 제사장 직임은 예수님이 오시므로 없어졌고, 신약 시대의 성직은 예수님을 대리하여 전도, 세례, 축복을 하고 성도를 믿음의 길로 인도하는 모범자적 지도자에 그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직자를 제사장에 비유하거나 지나치게 우상시 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3) 그런데 아론의 후손을 제사장으로 선택하셨다는 증거로 지팡이에 싹이 나고 열매를 맺게 하신 뜻이 무엇일까?에 대하여 “제사장의 직분은 생명의 주이신 예수님이 주신 것이고, 또 예수님을 모형한 것이며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는 직임 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이라”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씨를 주신 분이고, 싹을 나게 하시며 자라게 하시고 열매를 주시며 또 마른 막대기에서도 싹과 열매를 주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이 사실은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부활을 예표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필 살구 열매를 맺는 이유에 대하여는 잘 알 수 없습니다.

4) 마지막으로 “그 싹난 지팡이를 증거궤 앞으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패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히 9:4에 보시면 “그 지팡이를 만나와 십계명판과 함께 법궤 안에 넣어 간직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오래 간직해야 할 이유는 레위 지파가 신약 시대가 오기까지 성소의 일을 계속 하여야 하기 때문에 일시나마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하실 목적으로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이 법궤는 사사시대부터 전쟁에 밀려 수난을 당하다가 바벨론 포로시에 성전이 훼파되면서 없어졌을 것입니다. 따라서 모형적 물건은 있으면 교훈이 더 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나 실제적인 교훈만큼 깨우침을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이 벌 주시는 의미로 없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신약의 성도들은 이 말씀들을 통하여 ① 하나님의 주권에 승복하고 ② 성직에 대한 구별을 잘 할 줄 알며 ③ 또 은사를 받은 모든 성도가 받은 은사의 표징을 실제의 생활로 나타낼 수 있도록 노력하셔야 할 것입니다.

 

제 51 과 아론(1) (출 7:10~13, 19, 28:1~3) 목록으로


이 시간에는 모세의 형 아론에 대한 공부를 하겠습니다. “모세”란 이름의 뜻은 “건져냈다”는 뜻이고, “아론”의 이름 뜻은 “고상하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아론이 성경 인물로 등장한 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자신은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여 바로왕 앞에 나서서 말하기 어렵다”고 사양을 하니까 하나님은 “네 형 아론이 말 잘하는 것을 안다” 하시고, 아론을 모세의 동반 사역자로 쓰실 것을 말씀하시고, 두 사람을 같이 일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일을 계획하시는 분이시고, 또 수많은 계획 중 선민의 출애굽을 계획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의 일들도 계획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 자기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하여 사람을 쓰시는 분이고, 그 사람을 임의로 택하여 쓰시는 것입니다. 임의로 택하실 때 그 사람의 기술을 보시고 택하시는 경우도 있고, 전혀 쓸만한 소질이 없으나 있도록 만들어서 쓰시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출 4:11~12에서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나 여호와가 아니냐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고 하신 것은 기술 없는 자에게 기술을 주셔서 쓰시는 뜻이고(출 36:1), 출 4:14에서 “아론이 말 잘하는 것을 아느니라”하신 말씀은 상당한 기술을 보시고 쓰신 예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형제를 아울러 쓰셨습니다. 그런데 동생인 모세를 더 놓은 자로 즉 선지자격으로 쓰시고, 형인 아론을 협력자로, 또 대제사장으로 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일인자로 쓰신데는 아론에 비할 때 모세의 경력과 연단이 더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더 확실하게 아셔야 할 것은 모세와 아론이 바로왕 앞에서 지팡이를 던져 이적을 나타낸 것이 모세의 지팡이로만 나타난 것처럼 알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왕 앞에서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된 것이나(출 7:11) 또 팔을 펴서 물을 피되게 한 것과 개구리 재앙, 이 재앙 등은 아론의 역할로 된 것임을 아셔야 합니다(출 7:19, 8:5). 그러니까 아론은 대변인 역할을 하면서 기적도 나타낸 것입니다. 그 후 출애굽 당시 아말렉과의 전쟁이 있었을 때 산꼭대기에서 아론이 훌과 함께 모세의 팔을 들어주므로 전쟁을 이기도록 협력한 일이 있었습니다(출 7:13). 여기의 “팔을 들어 주었다”는 것은 기도를 도와주었다는 뜻입니다. “손을 들었다”는 것은 기도의 표식입니다(딤전 2:8). 아론과 훌이 모세의 양손을 들고 모세의 기도에 동참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때에 모세는 혼자 기도하는 것보다 더 큰 힘을 느꼈을 것입니다. 저희들도 혼자도 기도하면서 두 사람의 기도, 또는 세 사람의 기도가 큰 힘과 효력을 준다는 것을 확신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모세가 율법을 받으려고 시내산에 올라가 40일을 머문 사이에 아론은 백성들의 강요에 못 이겨 금송아지 우상을 만드는 일에 협력을 하였습니다(출 32:1~6). 이것은 백성들의 위협에 못 이겨 불의한 일인줄 알면서 가담한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를 벌하시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백성들의 완악함을 하나님이 아셨기 때문입니다(출 32:7, 9). 그 다음 모세가 이방 여인을 취하였을 때 아론이 누이 미리암과 함께 동생 모세를 비방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비방 내용은 “하나님이 모세와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세만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자로 여기지 말자”는 불평이었습니다. 이것은 성직의 명예욕이 투기로 변할 수도 있으며 또 이것이 형제 간에도 경쟁이 될 수 있음을 나타내 준 것인데 퍽 부끄러운 일입니다. 어떠니 교단에서는 형제가 총회장에 출마하여 서로 대결한 일도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신 하나님께서 모세 비방한 미리암을 일시 문둥병으로 징계하셨으나 하나님이 아론은 문책하시지 않았습니다(민 12:1~16). 아론의 처 이름은 “엘리세바”이고, 아들은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 4 형제를 두었는데(출 6:23, 24)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 아들들을 제사장 족으로 선택하셨으니(출 28:1, 레 8:1~13) 이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시행하신 일입니다. 모세가 특별한 은혜를 받은 것처럼 아론도 제사장족으로 선택받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는 불로 분향을 하였다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출 24:9~11, 레 10:1~2). 이것은 성직이 귀한 만큼 시행 규칙도 엄하고, 그 규칙을 위반하면 큰 벌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의 신앙생활이 귀한 만큼 성경적으로 바르게 살아야 하는 일도 중요하고, 성직자는 더욱 그러함을 교훈해 주신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중보자 예수님의 모형으로써 중보자의 역할을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어 고난을 당할 때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을 낸 사실이 있었지요. 이 때 모세는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하고 반석을 두 번 치므로 물은 냈으나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다” 하셨고(민 20:10~13), 이 일로 인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시 106:32).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이해할 때 이 일을 모세 혼자 한 일로 아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분명히 모세와 아론이 함께 한 것으로 나타나 있음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모세, 아론 두 사람이 다 가나안 땅에 못 들어 간 것입니다. 그리고 아론은 모세보다 먼저 광야 생활 말기에 호르산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민 20:28).

 

제 52 과 성소에서 섬기는 자들 (민 18:1~32) 목록으로


민수기 18장의 내용을 요약하여 교훈을 받고저 합니다. 18장 전체의 제목을 “성소에서 섬기는 자들”이라고 정하였는데 여기에 대하여 설명드릴 것이 있습니다. 1절에 “성소”란 말씀이 있고, 2절에 “장막”이란 말씀이 있는데 이 용어의 낱말 뜻이 있지만(성소:거룩한 장소 즉 성전 같은 곳, 장막은 집 또는 성소의 천막 등을 가리킴) 이는 모세 시대의 장막 성전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그 다음에 3절에 보시면 “단”(제단)이 나오는데 이 “단”도 성소 마당에 있는 제단입니다. 그런데 제사장은 제단에서 제사를 드리고, 또 성소 안에 들어가서 분향도 하며 지성소에 피를 뿌리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제사장은 제사드리는 일을 하고 레위인은 제사장을 돕되 제사 드리는 일을 돕는 것이 아니고, 성소의 모든 시설물을 보호, 정리하므로 제사장의 일을 간접적으로 돕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소”란 장막 성전 전체를 뜻하기도 하고, 또 성소의 마당이나 제단을 제외한 실내 성소를 의미하기도 하며 또 실내 성소 중 지성소를 제외한 부분을 뜻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소의 뜻은 세 가지로 통용됩니다. 하나는 성전 전체의 의미, 또 하나는 마당과 구별되는 의미, 또 하나는 지성소와 구별되는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주시는 교훈

1. 하나님이 자기의 주권으로 사역자를 쓰시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레위족과 아론을 그렇게 쓰셨고, 모세, 여호수아, 사울, 다윗, 12제자, 및 바울에 이르기까지 다 하나님의 주권으로 불러쓰셨습니다. “은사도 그렇게 주신다”고 하셨지요(고전 12:11). 혹 어떤 성도가 기도로 은사를 구하였다 하여도 역시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성취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빌 2:13). 따라서 저희들이 하나님의 쓰심의 대상이 된다면 큰 복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쓰시는 사역자들에게 직무를 분담해 주십니다(1~5절). 예를 들면 “아론과 그 아들들은 제사장이 되고 제단 봉사를 하라”, “레위족은 제사장을 돕되 성소(성막)의 일을 맡으라”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들에게 주의 사항도 각별하게 깨우쳐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증거의 장막 앞(가까운 곳)에서 살아라”(2절), “직무에 대한 책임과 죄를 지라”(3, 23절) “잘못하면 죽는다”(1, 3, 7절) 그런고로 “외인이 범접하면 죽이라”(7절)는 당부를 하셨습니다.

4.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들에게 “하나님이 기업이 되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24절). 여기의 기업이란 현실적 생활 대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1) 그러면 아론의 아들들을 포함하는 레위족에게 어떤 기업을 주셨습니까? ① 우선 십일조를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다른 지파처럼 땅을 기업으로 주시지 않고(20절) 성소 근처에 살게 하셨으니까 당연히 농사나 목축은 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 대신 다른 11지파가 “소산의 십일조를 떼어 레위지파에게 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② 이 십일조를 뗄 때 “첫 소산, 제일 좋은 것으로 드리라”(12절)고 하였습니다. ③ 그러니까 다른 지파는 소득의 9/10를 사용하는데 레위지파는 11지파의 십일조를 받으니까 일반 지파보다 20% 많은 소득을 받으므로 더 풍요롭게 살도록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그 다음에 레위 지파에 포함된 제사장들에게는 “레위 지파 소득의 1/10을 드리라” 하셨고, 제단에서 나오는 제물도 양식(응식:8절)으로 주신 것입니다. ① 제물에는 불태워 드리는 것과 태우지 않는 제물이 있습니다. 떡이나 삶은 고기 같은 것은 제사장이 먹되 제물을 갖고 온 자와 같이 먹는 것도 있습니다(9~13절). ② 처음 난 동물을 드릴 때는 그대로 드릴 수 있지만 처음 난 장자를 드릴 때는 은 5세겔로 대속하여 드리는 법이 있습니다(16절). ③ 10~12절에 보시면 하나님의 제물을 먹는 자는 “정결한 남자가 다 먹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제사장들의 생활이 순결하여야 할 것과 제사장을 남자로 세우신 것과 또 성물을 거룩하게 취급하는 뜻에서 함부로 버려서는 안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일을 하는 레위인과 제사장들에게 현실적 기업을 주시는 면에서 “하나님이 기업이 되신다”(24절) 하셨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자들의 생활을 직접 책임져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일반 백성들보다 더 잘 살게 하셨습니다.

5. 이 사실이 신약 시대의 사역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가?할 때에 신약 시대는 율법 시대가 아닌 만큼 제도적으로 적용되지는 않고 의미상으로 적용됩니다. 다시 말하면 신약 시대의 충성자들에게는 하나님이 특별 섭리로 또는 교회를 통하여 생활 대책을 세워 주신다는 뜻입니다. 율법의 제도는 예수님 때로 끝났고, 지금은 레위 지파와 아론 같은 제사장도 없고, 제사 드리는 일도 없기 때문에 적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오로지 예수님과 사도들의 본을 받으면 됩니다. 교회가 전문적 사역자들에게 생활비를 주면 잘 하는 것이고, 사역의 능률도 있을 것입니다(고전 9:7~11). 그러나 각자의 사명과 환경에 따라서 생활비를 받지 않고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신약 시대의 헌신적 사명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신약 시대의 사역자들이 의당한 생활비를 받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자들의 기업이 되시므로 여러 방도로 충분히 주실 수 있습니다. 히 4:16에 보시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은혜를 충성된 사역자들에게 충분히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가 고독한 지경에 있을 때 까마귀로 하여금 먹을 것을 보내주신 분입니다(왕상 17:4). 꼭 필요한 것을 꼭 필요한 때에 허락하시고,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거나 피할 길을 열어주시는 일(고전 10:13) 등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붙들어 주시고 기업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통하여 생활비를 받을 때는 하나님의 일을 더 많이 하고, 더 잘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 주신 규례와 은혜를 상고하였습니다.

 

제 53 과 모세(24) (민 20:1~13) 목록으로


1. 본문 1절에 보시면 미리암이 신광야 가데스에서 죽어 장사를 지냈습니다. 미리암은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아론과 모세의 누이입니다(민 26:59). 모세가 강물에 떠내려 갈 때에 그것을 지켜보고 섰다가 바로왕의 공주들이 모세를 건져서 유모를 구할 때 자기의 어머니 오게벳을 소개해 주므로 큰 역할을 하였고(출 2:4, 8),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후 하나님께 찬송을 할 때 화답하는 찬송을 하였으며(출 15:20) 그 후 아론과 합심하여 모세를 비방하였다가 문둥병이 들렸으나 모세의 기도로 나은 사실이 있었습니다(민 12:1~16). 그 후 정월에 세상을 떠났으니까 미리암의 생애에서 주목을 받게 하는 사건은 “모세를 함부로 비난하다가 문둥병이 걸린 사실”이고, 그것을 결정적으로 낫게 한 것은 비방을 받고도 대항하지 않은 “모세의 간절한 축복과 기도”가 있었음은 의미있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미리암이 죽은 시기는 출애굽 3년 째되는 정월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민 1:1에서 출애굽 2년 2월 1일이란 말씀이 있고, 그 다음에 정월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여러 곳을 진행한 후(민 21:10~14) 민 21:15에서 모압 경계에 들어선 것을 보면 광야 여행 말기에 해당함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민 20:1의 정월을, 민 1:1에 연결시켜 출애굽 3년째라고 이해하는데는 문제가 있다 하겠습니다. 이럴 때에 성경을 연구하는 성도는 여정의 일정과 시간을 대조하여 환산해 볼 필요가 있지만 자세히 연구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신광야 가데스에서 물이 없자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몹시 공박하였습니다. 물만 없는 것이 아니라 “무화가 포도, 석류 같은 열매도 없다”고 항의를 하였습니다(민 20:5). 이 사실을 보면 만나를 양식으로 먹은 백성들이 광야 오아시스에 이르면 그 곳의 토산물 열매도 먹은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때는 그런 열매 조차 없는 곳으로 인도를 받게 된 것입니다. 백성들로부터 심한 공박을 받은 모세와 아론은 회막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민 20:6). 이 때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지팡이를 가지고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너희 두 사람이)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지라”고 하셔서 모세가 그대로 시행을 할 때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말하기를 패역한 너희여 들어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라”하고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두 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셨다“고 하였습니다(10~11절).

3. 그런데 이어서 하나님의 책망이 나타납니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않고 백성들의 목전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민 27:14, 신 32:51).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은 것이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을 시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신가, 안 계신가?를 시험한 것입니다. 출 17:7에 보시면 만나와 메추라기 등 기적의 양식을 먹고 있으면서도 또 물이 없음을 인하여 하나님을 시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시험하실 수 있지만(창 22:1, 출 20:20) 성도는 하나님을 믿음의 대상으로만 모셔야 하는 것입니다.

2) 백성들이 하나님과 다툰 것입니다. “하나님과 다투었다”는 뜻은 하나님의 뜻을 이행하는 모세, 아론과 다툰 것을 의미합니다. 그 다툼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노엽게 하였으면 그 장소 이름을 “므리바”(다툼)라고 하였겠습니까? 하나님은 화평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고전 7:15, 14:33) 다투는 것을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성도 간에 다툰다든지 타 교파하고도 다투면 안됩니다. 다음 절에서 말씀드리겠지만 에돔족이 길을 열어주지 않았을 때 다투지 않고 피해갔습니다.

3) 말로 영광을 가로챈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면서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하고 자신들의 권위와 인기를 앞세우는 태도를 취한 것입니다. 반석에서 물을 내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물을 내랴”하였으니 얼마나 망령된 일입니까? 시 106:32에서 “입술로 망령되히 행하였다”고 하셨습니다.

4) 불순종한 것입니다. “지팡이를 갖고 그들의 목전에서 명하여 물을 내라”하셨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지팡이로 반석을 쳤으니까 말씀대로 한 것이 아닙니다.

5) “혈기를 부렸다”고도 합니다. “명하여 물을 내라”하셨는데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이나 쳤으니 혈기가 아니고 무엇이냐?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어떤 분하고 원통한 일이 있어도 혈기를 내면 안됩니다(마 11:29, 고전 13:5). 무슨 일이나 합리적으로 말하고 법적으로 해결하는 성격과 습관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6) 그래서 책망으로 그쳤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총회를 약속한 땅까지 인도하여 들이지 못할 것이라”(13절)하시므로 모세의 지도자 사역이 정지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도의 맡은 책임을 오래 수행하려면 무흠성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말씀을 기록하는 시간에 문공부 장관(박지원)이 한빛은행 대출에 관여하지 않았느냐는 문제로 사임된 뉴스가 나왔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역자는 흠이 많으면 하나님이 쓰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4. 에돔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통행로를 부탁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자 먼 곳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에돔”은 에서의 별명입니다. 따라서 형제족이요, 그동안 야곱의 후손들이 애굽에서 어떻게 지낸 것을 말하고, 통과만 하겠다고 하였지만 역시 허락되지 않은 것입니다. 각박한 인심은 피해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런데 그 후시대에 에돔 왕국은 이름조차 없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 에돔으로 통과하지 못한 백성들이 호르산에 왔을 때 그 곳에서 아론이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론이 죽을 것을 예고해 주셨으므로(26절) 모세는 아론이 죽기 전에 그의 제사장 옷을 벗겨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므로 대제사장이 없는 공백을 두지 않았습니다. 중보자는 영원한 직이기 때문입니다. 아론은 모세보다 3세 위입니다(출 7:7). 미리암과 아론이 몇 세에 죽었는지는 기록된 것이 없는 듯합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모세와 백성들의 잘못, 미리암과 아론의 죽음, 대제사장의 공백없는 세습에 대한 것을 유념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 하나님과 다투는 일, 말로 영광을 가리우는 일, 불순종하는 일, 혈기부리는 일을 삼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이 바른 행동을 나타내지 않았지만 백성들을 위하여 물을 주시고, 그 다음에 두 사람을 책망하셨습니다. 복음 사역자가 혹 실수를 하여도 하나님께서는 그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실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제 54 과 모세(25) (민 21:1~9) 목록으로


1. 모세는 백성들의 저항과 핍박을 받았고, “므리바”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지 못한 잘못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예고 받았으며 또 같이 일하던 “아론”이 죽었지만 여전히 자기의 책임을 이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자신의 명예나 이익을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니므로 어떤 역경이나 불길한 일이 있어도 하여야 할 것입니다.

2.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 가다가 아랏왕의 침략을 받아 몇 사람을 잡힘 당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랏왕이 전쟁의 실마리를 걸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주신다면 멸하겠다”고 서원 기도를 한 후 전쟁을 한즉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들을 전멸시켰습니다(1~3절). 왕이나 지도자는 자기의 백성 하나를 보호하기 위하여서라도 전쟁을 할 만큼 책임을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김현희의 고백으로 일본 여인이 이북으로 납치당한 것 때문에 북일 관계가 잘 풀어지지 않는 것처럼 어느 나라나 다 자국민을 보호하려고 애를 씁니다. 모세도 그런 취지로 전쟁을 한 것입니다. 삼상 17:47에서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전쟁을 하려고 하였을 때 하나님이 계시로 허락하셨을 것이고, 또 그 전쟁을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의를 발동하시면 민족을 전멸시키기도 하십니다. 오늘날은 전쟁 허락을 어떻게 하시는가? 국가 기관을 통하여 일반 섭리로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악을 대항하는 전쟁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3. 아론이 죽은 호르산에서 계속 진행할 때 에돔족이 길을 열어주지 않은 것 때문에 멀리 돌아가다 보니 오아시스를 만나지 못하였고, 실과 먹을 것도 없자 박한 식물, 즉 만나만 먹게 된 것을 불평하였고, 또 모세를 원망하였는데 하나님이 불뱀들을 보내어 물게 하셔서 죽은 자들이 많았습니다. 밤에 잠잘 때 독사가 들어와서 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벌레를 명하여 박넝쿨도 씹게 하시는데 뱀을 명하시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모든 생명체가 움직이는 것도 다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음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인간이 생태계의 질서를 파괴시키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 많을 것입니다. 출애굽 때도 파리 재앙, 이 재앙, 개구리 재앙, 메뚜기 재앙 등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연계를 통하여 벌도 내리시고 복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면 이 불뱀 재앙을 어떻게 물리쳤습니까? 모세는 원망을 들으면서도 그 죽어가는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놋뱀을 만들어 장대로 달아세우고 그것을 쳐다보게 하라”고 하셔서 그대로 한즉 불뱀에 물린 자들이 죽지 않고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불뱀은 독사의 일종을 말합니다. 모세가 뱀에 물려 죽게 된 사람들에게 “놋뱀을 쳐다보고 죽음을 면하라” 하였을 때 “그것이 무슨 병고치는 방법이냐?”하고 순종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 받는다”는 진리를 믿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 당시에는 불뱀에 물려 죽게 된 자들이 쳐다 보는 것 정도는 쉬운 일이기 때문에 무조건 순종하였고, 그렇게 하므로 나음을 받은 것입니다. 이 방법은 하나님의 구원의 방도인 십자가의 대속을 모형으로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요 3:14). 성도는 어린 아이들처럼 무조건 믿고 무조건 순종을 잘 할 때 복을 받는다는 것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4. 백성들이 모압 경계에 들어섰습니다. 모압은 요단강 동편으로 가나안 땅에 접근한 지역인데 그 지역 “브엘”이란 곳에서 우물을 팠고, 하나님이 약속대로 물을 주셔서 먹게 하셨습니다(민 21:18). 만나를 먹으면서 식물성도 먹은 것처럼(민 20:5) 반석의 물을 먹으면서 우물을 파서 물을 먹기도 하였습니다. 모압 땅에서 광야가 내려다 보이는 비스가 산(이 산은 모세가 죽은 느보산 맞은 편에 있음:신 34:1)에 이르러 아모리왕 시혼에게 사자를 보내어 통행로를 부탁하였지만 허락되지 않을 뿐 아니라 아랏왕처럼 대항해왔기 때문에 역시 전쟁으로 그들을 파하고 그들의 여러 성읍에 거하였습니다(민 21:23~25). 그때에 또 바산왕 “옥”이 같은 방법으로 대항해왔기 때문에 그들의 땅도 점령을 하였습니다. 저희는 이 사실에서 두 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의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없애 주셨다는 사실과 아모리왕의 땅과 바산왕의 땅이 점령되었다 하더라도 그 곳이 약속의 땅이 아니기 때문에 넘겨다 보거나 그 곳에 정착하지 않은 것은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이 세속에 머물지 않아야 할 것을 교훈해 주신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통행로 비협조 문제, 전쟁이 발생하는 문제, 자국 백성의 보호 문제, 지도자에 대한 원망으로 재앙을 당하는 일, 놋뱀을 쳐다봄으로 사는 문제, 대적을 쳐 정복하면서 용감하게 진행하는 모습 등으로 신앙 생활의 과정을 일깨워 주시는 것을 교훈받을 수 있습니다.

 

제 55 과 발람(1) (민 22:1~35) 목록으로


이 시간에는 발람 선지자에 대하여 상고하겠습니다. 발람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 동편 모압 땅에 이르렀을 때 모압왕 발락이 이스라엘의 침략을 받을 시에 쉽게 물리칠 수 있게 하기 위하여(6절) 선지자를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기도를 하게 하였을 때 지목된 선지자였습니다. 이방 종교 세계에서 신통력을 가진 사람이 축복이나 저주를 하면 그만한 효력을 본다고 믿는 일은 흔히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브돌”에 사는 발람 선지자를 찾아가게 되었는데 발람의 거주지인 “브돌”은 메소포타미아의 한 성읍으로 모압에서 북쪽으로 1000리 이상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죽을 때는 아모리인 지역에서 죽었음, 수 13:21~22)

1. 여기에서 저희들은 이 발람 선지자가 하나님의 선지자가 아닌 이방 종교의 선지자란 사실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그 이유를 들자면

1) 수 13:22에서 발람을 술사라 하였고, 벧후 2:15, 유 11에서는 “바른 길을 떠난 자라”하였으며 벧후 2:16에서는 “미친 선지자”라, 계 2:14에서는 “백성들 앞에 올무는 놓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2) 그리고 이방 나라 왕이 복술의 예물을 갖고 발람을 찾은 일과

3) 이스라엘 단체 외에는 하나님의 선지자로써 모세를 제하고는 나타난 일이 없었던 것과

4) 발람 선지자가 이방 종교의 제사 제도에 잘 적응한 사실을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민 23:1, 14).

2. 발락이 보낸 미디안 장로들이 발람을 찾아가서 이스라엘을 저주해 주도록 부탁을 하였을 때 발람은 말하기를 “이 밤에 여기서 유하여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대로 대답하리라”하였으니

1) 발람이 이방 종교 선지자로써 많은 잡신들을 상대하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도 받으려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먼저 발람에게 계시로 나타나 주신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이방 선지자나 죄인들에게 나타나실 수 있는가?할 때에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사탄과도 대화를 하셨고(욥 1:8), 악한 왕 “느부갓네살”에게도 계시를 주셨으며 예수님은 가룟유다와도 대화를 나누신 것을 볼 때 거짓자 또는 악한 자라도 하나님의 계시를 접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발람이 복 받아야 할 백성에게 저주하려는 일을 막으시기 위하여 나타나 주셨던 것입니다.

3) 하나님이 먼저 발람에게 물으시기를 “너와 함께 있는 자들이 누구냐?”고 하셨을 때 발람이 사실대로 말하였더니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들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발람은 자기를 초청하러 온 자들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거절을 하여 돌려보냈습니다.

2. 그런데 그 다음에 발락 왕이 더 높은 귀족들을 보내어 말하기를 “발람이 발락 왕에게 오면 크게 존귀케 하고 무슨 요청이든지 다 들어줄 것인즉 와서 도와달라”하였을 때,

1) 발람이 찾아온 귀족(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왕이 은금을 가득히 준다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거나 가감하지 못할 것이니, 너희는 이 밤도 여기서 유하여라 밤에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더 하실런지 알아볼 것이라”하였는데 그 밤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 “왕이 은금을 가득히 준다 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거나 가감하지 못한다”한 것은 잘한 것인데, 두 번 째 찾아온 높은 귀족들을 그대로 돌려보내지 않고 먼저처럼 유숙을 시킨 후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 하실런지 알아보리라”한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귀족들이 처음 왔을 때 18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거나 가감하지 못한다”해놓고, 두 번 째 왔을 때는 “내게 무슨 말씀을 더 하실런지 알아보겠다”하였으니 결국 하나님은 말씀을 가감하실 수 있는 분으로 변경한 것입니다. 욥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욥 23:12~13)하였고, 바울사도는 “예수님께는 예 하고 아니라 하심이 없다”고 하셨습니다(고후 1:19~20). 그러니까 “내게 무슨 말씀을 더 하실런지 알아보겠으니 오늘 밤을 여기서 유하라”한 것이 잘못한 것입니다. 발람이 지혜로운 자였다면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신 것을 변하시지 않으니 집으로 돌아가시요”하고 단호히 거절하였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발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또 그 밤에 하나님의 계시는 “그 사람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3) 여기서 한 가지 변화된 것은 12절에서 “가지도 말라”는 말씀이 취소된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는 20절의 계시가 하나님의 말씀이겠느냐?할 때 그 다음 절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발람의 길을 막은 것을 보면 분명 하나님의 말씀이나 뜻이 아닌 것을 발람이 거짓 계시의 유혹을 받고 행동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발람은 복 주신 백성을 하나님이 저주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신 23:4, 5). 그러나 뇌물의 탐심이 있으니까 일단 따라가 준 다음에 그 곳에 가서 하나님의 계시대로만 증거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런 타협적인 마음을 쓰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계시가 아닌 내용을 하나님의 계시처럼 착각하였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설교자가 성경을 잘못 해석하여 증언하였는데도 듣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인 줄로 믿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선택자만 구원하시는데 “만인이 다 구원받아야 한다”고 증언했다면 그대로 믿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잘못된 계시를 받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4) 그래서 발람이 모압 귀족들과 함께 나귀를 타고 가는데 하나님이 그 길을 막으시려니까 천사를 동원하여 칼을 들고 나귀를 막은 것입니다. 나귀는 막는 자를 보고 피하려 했으나 발람은 천사를 보지 못하였으니까 말을 듣지 않는 나귀를 노한 상태로 때리기만 한 것입니다. 이 때에 하나님이 나귀의 입을 여셔서 나귀로 말을 하게 하셨습니다. 나귀가 발람에게 말하기를 “내가 네게 어찌 하였기에 나를 세 번이나 때리느냐…나는 오늘까지 네 일생에 타는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든지 네게 이같이 하는 행습이 있더냐 없었느니라”고 한 것입니다.

5) 그 일이 있은 후에 하나님이 발람의 눈을 열어 천사를 보게 하셨고, 천사가 말하기를 “네가 나귀를 때린 것은 잘못이다 (너는 안 가야 할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내가 너를 막으려 왔는데 만일 나귀가 세 번 피하지 않았으면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을 것이라”하니 그 때에 발람이 깨닫고 “내가 범죄하였은즉 돌아가겠다”고 하였는데, 이 때는 천사가 “아니다 그대로 가라 (다만)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하라”하였으니 이 명령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고, 발람은 그 명령대로 귀족들과 함께 간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발람을 가게 하신 것은 발람을 많이 깨우치셨기 때문에 보내신 것입니다. 따라서 발람은 많이 깨달았은즉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면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 전달 이외에 다른 일을 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하셨다가 “가라”고 한 사실에 대하여 “하나님은 자기의 뜻이 아니라도 강청하면 들어주신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삼상 8:5, 9, 마 15:24~28). 그러나 발람의 지식에 혼돈이 온 점(민 22:18, 19 대조), 뇌물에 끌린 점(벧후 2:15), 천사가 그의 길을 막으려 한 점을 참작할 때 계시를 잘못 받은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유력하며 또 두 번째 계시에서 실제로 가게 하신 것은 발람에게 경책을 하셨고, 또 계시의 말씀만 전하도록 주의를 주셨으므로 그대로 가게 하신 것입니다.

 

제 56 과 발람(2) (민 25:1~28) 목록으로


1. 발람이 모압에 왔을 때 모압 왕은 큰 잔치를 베풀고 발람을 존귀케 할 것을 약속하였으나 발람은 여전히 “하나님이 자기 입에 주시는 말씀”만 말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에 발락 왕은 발람을 데리고 바알 신당이 있는 장소(기럇후솟)에 올라갔습니다. 그 곳은 높은 곳이라 벌판에 진을 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려다 볼 수 있었습니다.

2. 발람은 그 곳에서 자기를 위하여 일곱 단을 쌓고 수송아지와 수양으로 각 제단에서 제물을 드리게 하였는데 “자기를 위하여 드리라”고 하였습니다(민 23:1). 여기에서 발람은 왕보다 존귀한 입장에 있었은즉 신이나 다름없는 행세를 한 것 같으나 그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크게 존중하고 있었습니다. 발락 왕을 번제물 곁에 세우고 자신은 떨어진 곳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으려 하였는데 그때도 하나님이 자기에게 나타나시니까 발람이 말하기를 “일곱 제단을 쌓은 것은 하나님께 드린 것이라” 하므로 “자기를 위하여 드리라”는 말과 “하나님께 드렸다”는 말(민 23:1, 4)이 맞지 않고, 또 바알 신당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도 어울리지 않는 행동인 것입니다. 모순은 정도가 아닙니다.

3. 하나님은 모세에게 제사드리는 법을 율법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방법대로 드리는 제사만 받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발람은 하나님의 신을 초청하기 위하여 자기 뜻대로 제사를 드렸지만 하나님은 그 제사와 관계없이 발람에게 나타나주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위엄과 하나님의 간섭이 각별할 것을 예언”하게 하시므로 저주 아닌 축복을 하게 하셨습니다. 이 때에도 발람은 하나님이 자기 입에 주신 말씀대로 나타낸 것입니다.

4. 이 때에 발락은 자기의 기대에 어긋난 것을 알고 다시 발람을 “소빔”들 비스가산 꼭대기로 인도하여 처음과 똑같은 제사를 드리고 같은 방법으로 저주하기를 청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이방 종교인들은 제사 드리는 장소를 옮기면 더 좋은 일이 있을 줄로 믿는 신앙을 나타냈습니다. 이것은 마치 “터가 좋아야 잘 산다”는 풍수지리설 같은 것을 그 시대에도 믿은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하나님은 어디서나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성도는 어떤 장소를 우상시하는 잘못된 신앙을 갖지 마셔야 합니다(창 28:15, 요 4:21). 그런데 그 곳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시행하였으나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5. 두 번 째 시도에서도 실패한 발락은 또 “다른 곳으로 가면 하나님이 그들을 저주하게 하실 것이라”(민 23:27)하고, 발람을 데리고 광야가 내려다 보이는 브올산으로 갔습니다. 이 때에도 발람은 여전히 끌려다니면서 그 곳에서도 자기를 위하여 일곱 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는데(민 23:29) 그 때에는 자기가 이스라엘을 위하여 축복하는 것을 하나님이 선히 여기시는 것을 깨닫고 전과 같이 사술을 쓰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신이 또 임하여 저주 아닌 축복하는 말을 하게 하였습니다(민 24:1). 그러니까 발람이 앞에서 두 번 저주하려 하였을 때는 자기 딴에는 사술의 방법으로라도 저주를 하려고 하였으나 성령님이 그를 어거하여 축복의 말만 나가도록 한 것이었고, 이번에는 사술을 쓰려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령의 역사로 축복하게 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저주를 못하게 되자 발락 왕이 크게 노하였지만 어찌 할 수 없어서 발람을 집으로 돌아가게 하고 자기도 돌아갔는데 문제는 그 다음에 나타난 것입니다.

6. 그들이 세 번 제사를 드리는 사이에 “싯딤”에 머물렀던 이스라엘 남자들이 우상의 제단에 참여하고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는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이방인들의 제사에는 여인들이 음란한 태도로 춤을 추며 남자를 유혹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민 25:2에 보시면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바알브올에게 부속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바알신에게 제물을 차려놓고 제사드리면서 춤추는 여인들이 이스라엘 남자들에게 가까이 와서 유혹을 하니까 정욕에 굶주린 남자들이 그 여인들을 따라 산당에 가서 제물을 먹고 거기에 절하며 그 여인들과 음행을 한 것입니다. 발람이 그 사실을 어떻게 지도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세 번 씩 장소를 옮기면서 제사를 드릴 때 그 밑에서는 여인들의 유혹이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큰 범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발락이 발람을 이용하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음을 알고 다른 방법으로 발람을 이용한 것입니다. 그 다른 방법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짓도록 유혹한 것입니다.

7. 하나님은 우상 숭배와 음행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십계명에까지 명시하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하면 하나님이 벌하시고 저주하실 것인즉 저주와 범죄가 같은 것임을 알고 그렇게 되도록 유혹한 것입니다. 발람이 이 사실을 알고 그렇게 지도했다면 더 나쁜 선지자이고, 발람이 지도하지 않고 발락이 혼자 행한 것이면 발람은 권세자의 궤휼에 말려 이용당하는 잘못을 범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에 범죄한 자들을 “바알브올에게 부속된 자라”(민 25:3)하신 것을 보면 발람이 뇌물을 받고 그 대가를 치르기 위한 방법으로 그런 방책을 베풀고 돌아갔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그 때에 유혹을 받아 범죄한 자가 더 있었겠지만 성경에는 시므온 지파의 족장 시므리 한 사람만 기록하였습니다. 따라서 그 한 사람 또는 몇 사람의 범죄가 백성들에게 염병을 일으키는 근거가 되었고, 그로 인하여 죽은 자가 24,000명이었으며 제사장 “엘르아살”이 범인 시므리와 상대자(미디안 여인 고스비)의 배를 꿰뚫어 죽인 후에 그 염병이 그쳤다고 하였습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① 발락은 왕권으로 사이비 한 선지자를 이용하려 하였고, ② 사이비 선지자 발람은 뇌물과 명예에 끌려 왕에게 이용을 당하였으며 ③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주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을 알았을 때 저주와 범죄가 같은 맥락에 있음을 알고 범죄를 유도하였으니 입으로 진리를 전해도 범죄를 관망하거나 유도하는 것은 큰 불행을 자초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④ 또 하나님이 복주시는 백성은 아무도 그를 저주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⑤ 우리는 발람 선지자 같은 사람들을 크게 경계하여야 할 것이요, ⑥ 또 선지자는 진리를 바르게 증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듣는 백성들이 범죄하지 않도록 감독 지도하는 일도 중요함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제 57 과 발람(3) (수 13:22~23) 목록으로


이 시간에는 발람과 관련된 이방 종교인들의 신앙적 특징을 살피면서 하나님의 뜻에 따른 성도의 신앙에 대한 것도 함께 교훈을 받겠습니다.

1. 민 24:25에서 발람은 “자기 곳으로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발람이 올 때는 그의 고향인 “브돌”에서 왔다 하였고(민 22:5), 그가 여호수아의 군대에 의하여 죽은 곳은 미디안의 귀족들이 사는 고장에서 함께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브돌”이란 장소가 가나안 땅에 또 있었든지 아니면 발람이 “브돌”에서 와서 발락의 요청대로 저주는 못했으나 간접적 범죄 유혹으로 이스라엘에 큰 타격을 준 공로로 그 지역에서 발락의 상급을 받고 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하튼 거짓 선지자 발람은 여호수아의 군대에 의하여 불행하게 죽었습니다.

2. 이방 종교의 특징을 살피면

1) 우선 신의 계시를 받는 자나 신통력이 있는 자이면 무조건 존경하고 그의 축복과 저주를 효력있는 것으로 믿은 것입니다. 이것은 다르게 표현하면 귀신이 복과 저주를 내리는 줄로 믿은 것입니다. 우리는 만복의 근원자는 하나님 뿐이라고 믿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아닌 마귀나 잡신이 복을 준다고 한다면 엄히 거절하여야 할 것입니다. 병을 고치는 것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마귀를 부리시고 통제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마귀를 시켜서 고난을 준 사례는 있지만 축복을 전달한 사례는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축복은 하나님만 주시는 것입니다. 또 저주도 역시 하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신 11:26에서 “하나님이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둔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심판자 하나님만 복과 저주를 주관하시는 줄로 믿어야 합니다.

2) 이방 종교인들은 “제사 드리는 장소를 옮기면 그 장소 변경에 따라 복을 받는다”는 사상이 발락의 제사에서 나타났습니다. 발락은 제사 드리는 장소를 세 번이나 옮겼습니다. 장소를 옮길 때 높은 장소에서 저주의 대상인 이tm라엘 백성들이 보이는 곳으로 옮긴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방 종교의 제사 행위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유혹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날도 이방 종교인들은 죽은 이의 묘자리를 풍수지리설에 의하여 선택하는 것을 보면 역시 장소 따라 복이 온다고 믿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과학적 근거가 아닌 상태에서 하나님이 복 주시는 방법 이외의 것을 믿거나 바라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3) 이방 종교의 특성에는 음란 행위의 표현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대로 바알신을 섬기는 법에는 여인들이 춤추며 남자를 유혹하는 공식적 행사가 있었습니다.

4) 그리고 거짓 선지자는 발람의 경우로 볼 때 잡신들을 상대하는 것과 저주도 사양하지 않는 일과(종교인이 함부로 누구를 저주하면 안됨) 뇌물 또는 명예욕에 끌려 지조를 변하는 사례가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결국 그의 말로는 불행한 죽음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3. 그러나 발람과 관련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어떠 하였습니까?

1) 하나님은 한 번 나타내신 뜻 그대로 복종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무엇을 달라 하였을 때 부모의 뜻으로 그것을 거절하였다면 어느 부모가 계속 달라고 조를 때 주는 것을 원하겠습니까? 따라서 하나님은 베푸신 뜻대로 변동없이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자기의 말씀을 일점 일획이라도 변동없이 증거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설교도 성경 용어대로 또는 성경의 원뜻대로 설명하여야 하고, 설교자는 성경의 원뜻이 가감되는 것을 극히 주의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복 주시기로 작정하셨으면 결코 다른 것들의 저주를 용납하지 않으시고 막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으로부터 복받을 일을 하였으면 어떤 훼방자도 그 복을 헐어내릴 수 없다는 것을 믿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는 누구의 비난이나 저주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선민이나 이방인들을 막론하고 범죄하는 백성이면 진노하십니다. 그런데 이방인의 회개를 기대하신 일은 극히 드물고(니누웨성 뿐) 선민이 회개할 때는 진노를 거두시는 분임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세속을 멀리하는 차원에서 이방인의 종교적 습성을 버려야 하고, 하나님만 만복의 근원자로 믿으며 또 믿음의 지조를 지키고 복받을 일만 열심히 하는 성도가 되셔야 할 것입니다.

4. 선민들의 범죄와 그 결과에 대한 것입니다.

1) 선민들의 범죄는 우상의 제물을 먹고 거기에 절한 후 음탕한 이방 여인들과 음행을 한 것입니다. 이 죄악은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고, 도덕적으로 크게 탈선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크게 진노하시되 염병을 일으켜 24000명을 죽게 하셨습니다. 24000명이 죽어 나가고 그 시체들을 처치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천지가 개벽하는 일 같았을 것입니다.

2) 그들이 이런 범죄를 하게 된 이유는 신앙적 의지가 약한데 문제가 있고, 또 이방인들의 제사 행위를 관심있게 지켜 본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말씀으로 무장하는 일과 세속을 외면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세속은 물욕, 정욕, 향락욕 등으로 성도를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그 세계를 멀리하라고 교훈하셨습니다.

3) 백성들의 범죄가 하나님의 진노로 백성들이 죽는 것을 본 하나님께서는 먼저 백성들의 감독자인 두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해 목매달라”하셨고(민 25:4), 모세는 그 명령을 전달하였습니다. 책임자들을 먼저 벌하고 다음에 범죄한 백성들을 벌한 것입니다. 그때에 이스라엘 한 남자가 이방 여인을 데리고 음행하기 위하여 자기 장막으로 들어가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아론의 손자요, 제사장인 “비느하스”가 일어나서 손에 창을 들고 따라 들어가 두 사람의 배를 꿰뚫어 죽인즉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어 염병이 그쳤다고 하였습니다. 모세의 명대로 범죄자들을 처치해야 될 사사들이 인정에 끌려서 손을 쓰지 않으니까 제사장이 일어나서 범죄를 근절시킨 것 같습니다. 이렇게 백성이 범죄하면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지도자가 먼저 문책을 받으며 누구든지 나서서 범죄를 근절시켜야만 하나님의 진노가 떠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때에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질투심을 갖고 죄를 근절시켰다”하였고(민 25:11), 하나님은 그런 자에게 “평화의 언약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민 25:12).

이상의 말씀에서 범죄는 진노를, 회개는 평화를 가져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범죄를 근절시킬 때 인정을 초월하여 시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 드리는 것이요,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제 58 과 모세(26) (민 3:40~51, 26:1~4) 목록으로


발람의 사건으로 염병이 있은 후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인구 조사를 명하셨습니다. 이 인구 조사는 두 번째 명한 것입니다. 첫 번째 조사는 민 1:1~3에 기록되었고, 출애굽 한지 13개월 만에 시내 광야에서 있었는데 두 번째 인구 조사는 광야 40년 말기(모세가 죽기 전)에 모압 평지에서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나올 때 한 인구 조사는 광야의 여행을 위하여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고, 모압 평야에서의 조사는 가나안 입국 및 그 곳에서의 기업 분배에 필요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먼저 1차 인구 조사와 관련된 사항을 살펴보겠습니다.

1) 조사의 대상은 20세 이상 남자로 싸움에 나갈 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남자 장정만 헤아린 것이고, 20세 이하는 제한이 있었지만 20세 이상은 40세 인지 50세 인지 확실한 규정이 없습니다. 40세라도 몸이 약하면 제외되었을 것이고, 50,60세라도 “전쟁할 수 있다”하면 수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건강 심사와 싸움의 의지를 보아 선발하였을 것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자국에 전쟁이 일어났다면 외국에 간 사람도 전쟁하러 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에도 인구 조사에 가입되기 위하여 자원하였으리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럴 만한 이유는 2차 인구 조사를 근거로 그 조사된 장정을 중심으로 기업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기업을 받기 위해서라도 전쟁 요원이 되려고 하였을 것입니다.)

2) 또 인구 조사를 하되 두 부류로 나누어 하였습니다. 한 부류는 레위 지파를 제외한 12지파이고, 또 한 부류는 레위 지파만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12지파 중 레위 지파가 빠졌는데도 12지파가 된 것은 요셉 지파가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로 나누인 때문입니다.

3) 그래서 지파별로 조사를 하니까 제일 많은 수가 유다 지파로 76,500이었고, 제일 적은 수는 에브라임 지파로 32,500명이었으며 전체 수는 603,550명이었습니다. 여기에서 갓 지파를 제외하고는(45,650명) 다 100단위로 정리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차 조사에서는 르우벤 지파를 제하고(43,730명) 전부 100단위로 정리되었습니다.) 여기에 100단위로 정리된 경위는 신체 검사를 통해서 선발하였을 것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4) 그러면 1차 인구 조사에서 장정을 선발한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하여 그 뒤에 나타난 말씀을 살펴보면 백성을 호위하고 대적과 싸우며 질서있는 행진과 통솔을 하는데 필요한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5) 그런데 또 1차 인구 조사에서 중요한 것은 레위 지파를 별도로 계수한 것입니다. ① 레위 지파는 계수 대상이 1개월 이상의 모든 남자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전쟁과 상관 없이 모든 남자를 계수한 것인데 출생 1개월 이하는 제외되었습니다. ② 왜 1개월 이하는 제외시켰을까요? 아마 한달 안에 죽는 아이가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여자는 제외 하였을까요? 여자는 하나님이 구별하여 쓰시는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레위 지파를 성막 봉사자로 쓰실 때 남자만 쓰셨기 때문입니다. ③ 그래서 조사를 하니까 장자 게르손 지파에 7,500명, 차자 고핫 지파에 8,600명, 셋째 아들 므라리 지파에 6,200명, 합하면 22,300명입니다. 그런데 민 3:39에서 그 합계를 22,000명이라 하시므로 300명의 수를 생략하였습니다.(생략한 것인지 성경 인쇄에서 잘못된 것인지 원문 성경을 놓고 많이 연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④ 그런데 또 다른 인구 조사가 있었습니다(민 3:4~51). 그것은 이스라엘 12지파에서도(레위 지파는 빼고) 1개월 이상된 처음 난 남자를 계수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수를 계수하니까 22,273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레위 지파의 1개월 이상 모든 남자 22,000명 보다 273명이 더 많은 것이지요. ⑤ 이 때에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모든 장자를 칠 때에(짐승도 초태생을 레위 지파에 돌려주고 그것을 하나님이 자기 것으로 구별하심, 민 3:41) 이스라엘의 장자를 살리셨으니까 그 살려 준 장자 수대로 받으시되 그들을 레위 지파의 모든 남자로 바꾸어 받는다는 것입니다. 왜 바꾸어 받으실까요? 12지파에서 파송받는 것보다 한 지파 자손들을 구별하여 쓰시는 것이 더 편리하셨기 때문입니다(통솔을 사람이 하니까요). 그래서 이스라엘의 장자를 레위 지파 남자들로 바꾸어 받으시려니까 인구 조사를 하게 하신 것이고, 유월절 때 살려준 수 보다 레위 지파 남자 수가 273명이 적기 때문에 한 사람당 5세겔씩 계산하여 273명분 1,365세겔을 하나님께 더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사람 대신 돈으로 드리는 것을 대속이라고 합니다. ⑥ 그러면 또 중요한 것은 이 레위 지파를 어디에 쓰시려고 하셨는가? 레위 지파는 계수에 들었다 하여 다 쓰신 것이 아니고, 계수는 20세 이상 노인들까지의 남자를 다 헤아려 놓고, 쓰시기는 25세 이상에서 50세 까지만 성막 봉사자로 쓰셨습니다(민 8:24~25). 25세에서 50세 까지만 성막 봉사를 하게 하셨으나 제사장이나 특별 지도자(모세)는 종신토록 쓰셨습니다. 지금까지는 1차 인구 조사를 말씀드렸습니다.

2. 광야 말기에 모압 평지에서 시행한 2차 인구 조사를 살펴보겠습니다.

1) 먼저 이스라엘 12지파의 인구 조사입니다. 역시 20세 이상,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장정을 헤아렸는데 총 수가 601,730명으로 40년 전보다 2,820명이 줄었고, 지파 별로는 르우벤, 시므온, 갓, 에브라임 지파가 40년 전 수보다 줄었으며 다른 지파들은 다 조금씩 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생명을 겨우 보존하였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1개월 이전의 아이를 수에 넣을 수 없을 만큼 그 생명이 불확실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또 애굽에서 나올 때 20세 이상 장정으로 있었던 사람이 40년 후 광야 말기에 살아 있는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뿐이었으니까 20세 쯤의 군인도 60세 전에 죽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광야에서의 평균 수명이 60세를 넘지 않았음을 뜻하므로 광야 생활의 시련이 어떠하였는가를 짐작케 하는 것입니다(모세도 그 무렵에 세상을 떠났음).

2) 그러면 이 지파들을 계수한 이유가 무엇인가?할 때 이것은 가나안 입국 전쟁과 가나안 땅의 기업 분배를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자기 가문에 전쟁에 나간 장정이 없으면기업의 줄이 끊기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므낫세 지파 중에 “슬로브핫”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딸만 다섯을 낳고 죽었습니다. 그 죽은 자가 인구 조사에 빠지니까 그 딸들이 기업받을 계통이 없어서 모세에게 진정을 한즉 “아버지가 없으면 아버지의 형제 계열에 연결하여 인구 수대로 기업을 주고 나중에 그 기업을 물려주게 될 때 만일 자식이 없으면 그 형제에게, 또 형제도 없으면 가까운 친족에게 돌리라”고 명을 내렸던 것입니다.

3) 2차 인구 조사에서 레위 지파는 23,000명으로 1차 보다 700명이 증가되었습니다. 40년 만에 22,300명이 23,000명이 된 것은 3.1% 증가한 것입니다. 레위 지파가 3.1% 증가한 것은 전체 지파가 0.46%줄어든 것보다 좋은 현상이고, 레위 지파가 전쟁에도 안 나가는 등 보호와 대접을 받은 덕분이 아닌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이 말씀에서 살려 주신 초태생을 찾으시는 문제, 하나님 섬기자를 구별하여 쓰시는 문제, 사람이나 짐승을 대속으로 받으시는 문제, 인구 조사가 보호, 인도, 전쟁, 기업과 관련된 문제, 장정을 중심으로 그 가속에게 기업을 주시는 문제 등의 깨달을 바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을 실감있고, 깊이 있게 연구하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기셔서 성경 연구에 마음 쓰는 방법을 지도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제 59 과 모세(27) (민 29:1~16) 목록으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율법을 주실 때 제사 드리는 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1. 그리고 제사 드리는 전문가로 제사장직을 세우셨고, 제사에 대한 보조 요원으로 레위 지파를 세워 주셨습니다. 여기의 제사장은 중보자 예수님의 모형적 직임자이고, 또 종교적 지도자였습니다. 구약 시대의 지도자는 세 부류가 있었는데 첫째가 모세나 사무엘, 엘리사 같은 선지자직이고, 다음에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세습하게 한 제사장직이며 또 한 가지는 왕직이었습니다. 이 세 가지 직분은 예수님의 3대 직분을 사람들로 하여금 나누어 맡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선지자이시고 대제사장이시며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요 5:18, 14:9, 히 4:15, 딤전 6:15).

2. 율법에 보면 여러 종류의 제사법이 나오는데 이해를 돕기 위하여 용어상의 예비 지식을 아셔야 하고, 또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제사를 드리게 하신 이유를 아셔야 할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 의식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메시야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계시하여 믿음을 갖게 하는 목적이 있고,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성을 나타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는 정성을 다 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마 22:37).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고 또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시기 때문에 성도가 믿음으로 행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확실하게 아시고 또 세심하게 관찰하십니다. 부자가 헌금한 것의 비중과 가난한 과부가 헌금한 것의 비중을 비교하시고, “과부의 두 렙돈 헌금이 부자의 많은 헌금보다 크다”고 하셨습니다(마 12:41~44). 이런 하나님 앞에서 저희들은 성심을 다하여 하나님을 경외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정성에 인간적 요소를 포함시켰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속성이 인간의 인격성과 같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람으로서의 정성의 한계가 있는데 그것을 그대로 표현하여 하나님 섬기는 방도에 쓰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 고기를 좋아하고 더운 음식을 좋아하며 또 충실한 열매를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섬길 때도 고기를 구워드리고(번제) 더운 떡을 드리며(소제) 충실한 첫 열매를 드려서 정성을 다하게 하신 것입니다.

3.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제사 대신 예배를 드립니다. 제사를 안 드리는 이유는 십자가 계시의 목적이 성취되었기 때문이고, 또 제사에 대한 정성을 신령한 예배로 대신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희들은 십자가의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정성된 예배와 생활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신약의 예배 의식은 생활의 한 부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항상 정성된 생활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약 시대에 시행하였던 여러 가지 제사들이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다 예수님 안에서의 성실한 생활로 이어진다는 것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4. 그러면 구약 시대에 주신 제사 제도를 이해하기 위하여 몇 가지 예비 지식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제물과 예물은 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같은 뜻입니다(레 1:2).

2) 그리고 제물에는 소(레 1:1~9), 양(레 1:10~13), 염소(레 1:10), 비둘기(레 1:14~17, 5:7~10), 곡식가루(레 2:1~16, 5:11~13), 피(레 1:5, 출 29:12), 기름, 포도주, 유황, 소금이 있고, 그 이외에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릴 수 있습니다(레 2:12~14). 그리고 제물을 성전까지 갖고 가기 어려울 때는 돈으로 바꾸거나 돈을 갖고 현지에 가서 사 드릴 수도 있습니다(요 2:14). 성경에는 이상의 제물을 요리하여 드리는 방법을 자세히 말씀하셨습니다.

3) 목적에 따라 드리는 제사가 있는데 죄를 대속하는 목적으로 드리는 속죄제(출 29:14, 레 4:3~35)와 속건제(레 5:6)가 있고, 또 감사와 경외의 뜻으로 드리는 화목제(출 32:24, 레 3:1), 감사제(왕상 8:64), 수은제(레 3:1~17, 7:11~21)가 있으며 또 충성을 위하여 드리는 서원제(자원제, 레 7:16, 22:18) 위임제(레 7:37), 위임식(출 29:22)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제사의 명칭이 여러 가지로 분류된 이유는 제사의 방법이나 목적의 의미를 담아 여러 가지로 표현하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속죄제는 속죄 목적을 나타낸 용어이고, 속건제는 속죄 목적으로 드리되 정상이 참작되는 비 고의성 범죄를 대속할 때 드렸습니다. 그리고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화목을 사모하는 뜻이요, 감사제는 감사의 뜻을, 수은제는 은혜받기를 소원하는 뜻으로, 서원제나 자원제는 하나님께 충성을 표현하는 뜻이 있고, 위임제(위임식)은 직임을 맡기는 의미가 있습니다.

4) 제물 드리는 방법에 따라 드리는 용어의 표현이 있습니다. ① 번제란 고기를 구워(태워) 드린다는 뜻이고(레 1:3), ② 화제란 전부 태워 구수한 냄새를 드림을 뜻합니다(레 1:9). ③ 소제란 곡식 가루로 드리는 식물성 제사를 뜻하고(레 2:1), ④ 전제는 포도주나 기름으로 부어 드리는 뜻이요(출 29:40) ⑤ 거제는 제물을 들어 보이는 것이고(출 29:28) ⑥ 상번제란 제사 행위를 중단하지 않고 24시간 계속 드리는 것입니다. 등불을 계속 켜고 더운 떡을 갈아드리며 고기를 계속 구워드리는 것입니다(민 28:3).

5. 시기적으로 드리는 절기 제사가 있습니다. ① 조석제는 상번제로 매일 아침과 저녁 해질 때에 드리는 것이고(민 28:4), ② 안식일 제사는 7일에 하루 씩 드리는 제사이며(민 28:9~10) ③ 월삭은 매월 초하루에 드리는 제사이고(민 28:11~15) ④ 유월절은 1년에 한 번 1월 14~21일까지 출애굽을 기념하여 드리는 제사이며(민 28:16~24) ⑤ 77절이 있는데(이것은 신약의 오순절과 같음) 이것은 유월절이 지난 후 7주(50일 되는 날)에 드리는 절기로 맥추절과 상통하는 것이요(출 34:22) ⑥ 그 외에도 7월 1일에 드리는 나팔절(민 29:1~6, 레 23:23~24)이 있고(이 날은 기념 행사일), ⑦ 7월 10일에 드리는 속제일(레 23:26~32, 25:9, 민 29:7~11)이 있으며 ⑧ 7월 15일부터 8일간 초막절(레 23:34~44)이 있고(민 29:12~38, 요 7:2), ⑨ 또 50년에 한 번 지키는 희년이 있습니다(레 25:10~12). 희년에는 모든 부채를 탕감하여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새출발하는 의미를 갖습니다(희년은 절기일 뿐 제사 규례는 주시지 않았음).

결론적으로 구약의 제사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의미는 십자가의 믿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생활입니다. 믿음은 십자가 중심의 믿음을 간직함이고, 생활은 십자가 중심의 생활로 하나님을 성심껏 경외할 것을 명령하신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제 60 과 모세(28) (민 30:1~9) 목록으로


1. 본문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서원(제어)하는 법을 명하셨습니다. “서원”이란 하나님께 대한 약속입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 속에 결심하는 서원을 “마음의 제어”라고 하셨는데 이것도 역시 서원에 해당합니다. 성도가 어떤 서원을 하였으면 그 약속대로(또는 입으로 말한대로) 시험하고 파약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약속하고 다짐한 것을 파약하면 하나님을 속인 죄가 되니까 그 죄가 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 15:4에서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 지라도 변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여 믿습니다”하고서 떨어지거나 “주여 이렇게 하겠습니다”하고서 언제 약속하였느냐는듯이 버리는 사람은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2. 그런데 서원을 할 때는 반드시 자기의 독립적 권한으로 이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1) 예를 들면 아버지 밑에 있는 어린 딸이 하나님 앞에 무슨 서원을 할 때는 혼자 하지 말고 아버지의 동의를 얻어서 하여야 합니다. 그 이유는 자기의 생활권이 그 아버지의 보호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2) 남편있는 부인도 서원을 할 때는 그 남편의 허락을 받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부부는 성인이고, 부부로써 독립된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들의 부모의 동의까지 받을 필요는 없고, 아내가 남편의 다스림을 받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창 3:16)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때에 허락 여부는 그 상대자가 서원하는 내용을 알고 말리지 않으면 허락으로 여길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3) 그러나 과부나 이혼 당한 여인은 자유롭기 때문에 자기가 한 서원을 지켜야 하고, 또 부인된 여인이 서원을 하였을 때 처음에는 그 남편이 말하지 않으므로 허락한 듯 하다가 얼마 후에 반대하여 서원을 무효케 할 때는 그 부인은 서원 이행을 중지하여도 죄가 되지 않지만 그 중지하게 된 책임을 남편이 지게 된다고 하셨습니다(민 30:13~15). 여기에서 저희들은 자유자와 부자유자의 구별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서원의 내용과 실천에 대하여 엄히 이행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3. 민 31장에서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고 하셨습니다.

1) 미디안에게 원수를 갚게 하신 이유는 미디안 족(아브라함의 후처 그투라의 소생 ; 창 25:2)이 모압국의 구성 요원으로서 그 대표되는 왕이 이스라엘을 저주한 까닭이고, 또 그 족속들이 이스라엘의 남자들을 유혹하여 범죄하게 하였고, 또 거짓 선지자 발람을 용납하였기 때문입니다(민 22:1~6, 31:8, 16).

2)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1000만인 중(많은 수를 뜻함) 각 지파에서 1000명씩의 군사를 뽑아 12000명의 군사를 쓰게 하셨고, 이때에 성소의 기구와 신호 나팔을 들고 싸우게 하였습니다(민 31:4~6). 성소의 기구는 하나님을 앞세운 뜻이고, 신호 나팔은 군인을 통솔하는데 쓰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민 31:2~3에 보시면 미디안족을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 또는 여호와의 원수”라 하였으니 이 말씀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로 연합된 것을 보여주신 것이고, 또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란 이스라엘의 후손들에게도 유혹의 올무가 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없애도록 하신 것입니다.

3) 그래서 그 싸움에서 미디안 족 남자를 다 죽이고, 그 곳에 분포된 다섯 왕들(에위, 레겜, 수르, 후르, 레바)과 발람을 죽이고, 부녀들과 아이들(여아)과 가축들과 다른 물건들을 뺏어 왔는데 이때에 모세와 군장들이 남자와 동침한 여자들까지 살려준 것을 책망한 것입니다(민 31:14~18). 남자와 동침한 여인들은 음행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고, 또 미디안 족 혈육을 잉태하였을 수도 있기 때문에 순결 보존의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4) 그리고 전쟁으로 인하여 살인하였거나 시체를 가까이 한 것은 위생상 불결한 일이기 때문에 “3일과 7일에 결례식을 갖고 회중에 출입하라”고 하였습니다(민 31:19~20). 이 때에 전리품 물건들도 다 소독을 하게 하였습니다. 불에 견디는 것은 불로 소독하고, 불에 못 견디는 것은 물로 빨게 하였습니다(민 31:21~24).

5) 그리고 모든 전리품(사람, 짐승, 물건들)들을 반은 전쟁한 군인들에게 주고, 반은 회중에게 주었으며 또 군인들은 받은 것의 1/5을 하나님 곧 제사장에게 주었고, 백성들이 받은 것의 1/5은 레위 지파에게 주었습니다(민 31:25~31). 그때에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은 하나도 축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민 31:49).

6) 그 전쟁을 할 때에 군인들이 스스로 자기를 위하여 귀중품들을 챙긴 것이 있었는데 그 일에 대하여 크게 가책을 느끼고 자기들의 생명을 위하여 그것을 다 내어놓았습니다. 이것은 양심상 두려움을 느끼고 미리 회개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것을 관대히 받아 하나님께 거제를 드리고 기념을 삼았습니다(민 31:48~54).

이상의 말씀에서 교훈받을 것은 ① 성도가 서원은 할 수 있되 책임성 있게 하여야 할 것과 ② 하나님의 원수는 곧 성도의 원수요 하나님은 자기의 영광과 후손들의 믿음을 위하여 원수를 갚으시는 분임을 알 수 있으며 ③ 죄와 유혹의 뿌리를 뽑을 것을 교훈하셨고, ④ 위생의 철저를 기하였으며 ⑤ 분배를 공평히 하였고, ⑥ 스스로 회개한 일에 대하여 관대히 처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압왕 발낙을 죽였다는 기사가 없는 것은 그가 멀리 도망한 때문일 것입니다.

 

제 61 과 모세(29) (민 32:1~5)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