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론 | 신약강론 | 설교집 | 교육자료 | 교회정치,기타 기독교신앙백과

기독교 신앙 백과

저자 지영근 목사

一.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는 이유

1. 이 세상에서 믿을 것이 무엇인가? 바로가기

2. 인생과 만물의 출처를 아십니까? 바로가기

3. 만물에 대한 지식 바로가기

4. 우주의 신비를 알고 창조자를 기억하라 바로가기

5.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바로가기

6. 인생의 가치와 목적 바로가기

7. 사람에게 영혼이 있음에 대하여 바로가기

8. 인생의 보람 바로가기

9. 왜 예수님을 믿어야만 합니까? 바로가기


二. 믿음생활의 시작에 대하여

10. 나는 왜 예수님을 믿게 되었나? 바로가기

11. 예수님을 믿는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바로가기

12. 무엇이 확실한 것인가? 바로가기

13. 기독교란 무엇인가? 바로가기

14. 죄를 청산하고 교회에 나와야 합니까? 바로가기

15. 신앙생활의 목적을 어디에 둘 것인가? 바로가기

三. 복음전파에 관한 말씀

16. 전도는 왜 하여야만 하는가? 바로가기

17. 심방은 왜 하는가? 바로가기

18-1. 전도지1 "구원의 복음" 바로가기

18-2. 전도지2 "구원의 소식" 바로가기

19-1. 전도지3 "귀하가 꼭 아셔야 할일"바로가기

19-2. 전도지4 "인생관광을 초대합니다" 바로가기

20. 예수 못 믿을 자의 형편과 권면 바로가기

21. 개인전도 상식 바로가기

22. 구역활동에 대한 지식 바로가기


四. 신앙의 초보자에게 드리는 말씀

23. 초보적 신앙생활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바로가기

24. 초신자가 이겨야 할 유혹들 바로가기

25. 신앙생활을 오해하는 잘못에 대하여 바로가기

26. 신앙생활의 본질(DY13:13-14) 바로가기

27. 신앙생활의 의미(시73:23-25) 바로가기

28. 바른 신앙생활을 지향함에 대한 문제점 바로가기

29. 믿음의 확증과 진단에 대하여 바로가기

30. 신앙생활 나태한 성도를 권면함 바로가기

31. 낙심자(신앙의 휴식자)에게 드리는 편지 바로가기


五. 하나님에 대한 지식

32. 하나님이 계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바로가기

33.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바로가기

34. 삼위일체 하나님이란 무슨 뜻입니까? 바로가기

35. 예수님에 대하여 꼭 아셔야 할 지식 바로가기

36. 성령님과 그 역사에 대하여 바로가기

37. 하나님께서 못 하시는 것 바로가기

38.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바로가기

39. 예수님의 3대 직분 바로가기


六. 기독교 예배의식에 대하여

40. 성수주일이란 무엇입니까? 바로가기

41. 예배란 무엇입니까? 바로가기

42. 구약의 성전과 신약의 예배당 바로가기

43. 과도한 교회적 허례의식 바로가기

44. 성례식에 대하여 바로가기

45. 교회의 절기에 대하여 바로가기

46. 찬송에 대하여 바로가기

47. 찬미의 제사를 드리자 바로가기

48. 하나님을 찬양하라 바로가기

49.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찬양 바로가기

50. 교회에서 드리는 헌금 바로가기

51. 헌금을 잘 드리는 지혜 바로가기


七. 기도에 대한 지식들

52. 기도에 대한 상식 바로가기

53 기도자의 유의할 점 바로가기

54. 기도의 응답에 대하여 바로가기

55. 기도를 배움에 대하여 바로가기

56. 대표기도할 때의 유의점 바로가기

57. 기도에 대한 몇 가지 질문 바로가기

58. 각종 기도의 예문 바로가기

59. 안수(머리에 손을 얹음)기도에 대하여 바로가기

60. 손을 들고 기도하는 문제 바로가기

61. 기도원 출입에 대하여 바로가기


八. 교회에 대한 지식

62. 교회란 무엇입니까? 바로가기

63. 교회에 대한 지식 바로가기

64. 교회의 직원 바로가기

65. 교회의 기관과 행정에 대하여 바로가기

66. 교회생활의 유익이 무엇입니까? 바로가기

67. 바람직한 교회상에 대하여 바로가기

68. 어떤 교회가 부흥이 잘될까요? 바로가기


九. 성경을 바로 앎에 대하여

69. 하나님의 뜻을 앎에 대하여 바로가기

70. 성경에 대하여 바로가기

71. 성경에 대한 지식 바로가기

72. 성경은 무엇입니까? 바로가기

73. 성경계시의 전달 바로가기

74. 성경말씀의 집결과 보존 바로가기

75. 성경말씀의 성격 바로가기

76. 성경말씀의 역할 바로가기

77. 성경이 권위있는 증거 바로가기

78. 하나님이 현시대에도 계시를 주십니까? 바로가기

79. 성도가 꿈을 믿어야 합니까? 바로가기

80. 박윤선박사의 성경관 바로가기


十. 성경공부에 관한 말씀

81. 성경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합니까? 바로가기

82. 성경을 어떻게 배우고 연구해야 합니까? 바로가기

83 성경에서 무엇을 터득해야 합니까? 바로가기

84. 성경과 구약의 역사 바로가기

85. 신약의 역사와 교회사 바로가기

86. 학습 세례(입교)받을 분들이 받을 수 있는 질문들 바로가기

87. 성경을 읽고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바로가기

88. 신앙적 용어를 사용함에 대하여 바로가기

89.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메시야 바로가기

90. 성경지리에 관한 상식(교안) 바로가기

91. 구약성경의 역사와 연대공부 바로가기

92. 일반역사와 성겅연대연구 바로가기

93. 역사 순위에 따른 선지자의 사역표 바로가기


十一. 구원을 받음에 대하여

94. 인생의 타락과 불행과 구원 바로가기

95. 죄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바로가기

96. 죄에 대한 지식 바로가기

97. 거듭남에 대하여 바로가기

98. 믿음에 대한 지식 바로가기

99. 회개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바로가기

100. 구원을 받음에 대하여 바로가기

101. 구원을 받는 절차에 대하여 바로가기

102. 십자가의 의미 바로가기

103. 죄사함과 구원의 확신 바로가기

104. 지각없는 자에 대한 구원(Ⅰ) 바로가기

105. 지각없는 자에 대한 구원(Ⅱ) 바로가기

106. 구원에 관한 질문들(Ⅰ) 바로가기

107. 구원에 관한 질문들(Ⅱ) 바로가기

108. 거듭난(중생) 성도가 죄를 지을 수 있습니까? 바로가기


十二. 은혜충만과 관련있는 말씀

109. 은혜를 받음에 대하여 바로가기

110. 신앙생활을 잘하는 형편(행11:26) 바로가기

111. 설교와 그 청취에 대한 상식 바로가기

112. 은혜받은 자가 누구인가? 바로가기

113. 주일낮예배에만 나오는 교인들에게 바로가기

114. 성령을 충만히 받음에 대하여 바로가기

115. 진리를 아는 자의 자유 바로가기

116. 성도가 누릴 자유 바로가기

117. 신앙생활 성장을 위한 4단계 바로가기

118. 신앙성장의 단계 바로가기

119. 은사와 방언에 대하여 바로가기

120. 성지순례와 신앙 바로가기

121. 더 귀한 믿음이 무엇입니까? 바로가기

122. 잘못된 신앙생활을 경계함에 대하여 바로가기

123. 세월을 아끼라 바로가기


十三. 성도의 일반생활에 대하여

124. 성도의 윤리관에 대하여 바로가기

125. 성도는 직업을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요? 바로가기

126. 술, 담배, 방탕, 불건전한 직업에 대하여 바로가기

127. 제례와 우상숭배에 대하여 바로가기

128. 성도의 양심생활에 대하여 바로가기

129. 성도의 사회적 사명에 대하여 바로가기

130. 성도의 나라와 정치에 대한 지식 바로가기

131. 축복을 받음에 대하여 바로가기

132. 성도에게 주시는 물질축복 바로가기

133. 주업과 부업 바로가기

134. 성도의 물질거래에 관하여 바로가기

135. 길흉사 처리에 대한 견해 바로가기

十四. 남녀교제 및 가정에 대하여

136. 교회 안에서의 남녀교제에 대하여 바로가기

137. 성도의 이성교제와 결혼관 바로가기

138. 복된 가정을 추구함에 대하여 바로가기

139. 배우자 선택을 어떻게 할까요? 바로가기

140. 혼인예식과 축복설교 바로가기

141. 이상적인 가족생활 바로가기

142. 산아제한에 대하여 바로가기

十五. 환난에 대처하는 신앙

143. 환난을 당하는 성도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로가기

144. 가난을 물리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바로가기

145. 환난 중에 거짓말하여도 됩니까? 바로가기

146. 사단의 역사를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바로가기

147. 하나님의 기적과 병고침의 역사 바로가기

148. 질병과 건강에 대하여 바로가기

149. 환자에게 드리는 복음 바로가기

150. 귀신병 들린 자에 대한 대책(Ⅰ) 바로가기

151. 귀신병 들린 자에 대한 대책(Ⅱ) 바로가기

152.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바로가기

153.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받는 이유 바로가기

154. 믿음, 소망, 사랑에 대하여 바로가기

十六. 신학과 그 이론에 대하여

155. 신학에 대하여 바로가기

156. 칼빈주의 신학과 그 특성 바로가기

157. 칼빈주의 5대교리 바로가기

158. 성경의 바른 해석 바로가기

159. 이성과 신앙에 대하여 바로가기

160. 믿음과 행위 바로가기

161. 하나님의 섭리와 예정 바로가기

162. 율법과 복음 바로가기

163. 십계명과 율법적용에 대하여 바로가기

164. 이성에 관한 연구의 변천에 관하여 바로가기

165. 신앙고백서와 성경의 번역에 대하여 바로가기

166. 사도신경과 신앙고백을 옳게 함에 대하여 바로가기

167. 사도적 사역의 특징 바로가기

十七. 교파분리와 타교파에 대하여

168. 종교개혁에 대하여 바로가기

169. 천주교의 교리가 우리와 어떻게 다릅니까? 바로가기

170. 한국에 있는 각종 교파들 바로가기

171. 교파를 선택함에 대하여 바로가기

172. 꼭 침례를 받아야 합니까? 바로가기

十八. 종말에 대한 지식

173-1. 세상의 종말에 관하여 바로가기

173-2. 인간개인의 종말에 관하여 바로가기

174.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바로가기

175. 심판에 대한 의문점 바로가기

176. 천국에 대하여 바로가기

177. 지옥에 대하여 바로가기

178. 천년왕국설에 대하여 바로가기

179. 666(六六六)에 대하여 바로가기

180. 잘못된 말세지식 바로가기


十九. 잘못된 신학사상과 이단들에 대하여

181. 해방신학에 대하여 바로가기

182. 세대주의란 무엇입니까? 바로가기

183. 신비주의란 무엇입니까? 바로가기

184. 구원파의 정체에 대하여 바로가기

185. 회회교에 대하여 바로가기

186. 몰몬교에 대하여 바로가기

187. 이단에 대하여 바로가기

二十. 평신도를 위한 성경개론

188. 성경이란 무엇입니까? 바로가기

189. 구약성경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바로가기

190. 구약성경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성경말씀들 바로가기

191. 정경과 가경에 바로가기

192. 모세오경 바로가기

193. 모세오경의 문서설 바로가기

194. 창세기 바로가기

195. 출애굽기 바로가기

196. 레위기 바로가기

197. 민수기 바로가기

198. 신명기 바로가기

199. 여호수아 바로가기

200. 사사기 바로가기

201. 룻기 바로가기

202. 사무엘상하 바로가기

203. 열왕기상하 바로가기

204. 역대상하 바로가기

205. 에스라 바로가기

206. 느헤미야 바로가기

207. 에스더 바로가기

208. 욥기 바로가기

209. 시편 바로가기

210. 잠언 바로가기

211. 전도서 바로가기

212. 아가 바로가기

213. 이사야 바로가기

214. 예레미야 바로가기

215. 예레미야애가 바로가기

216. 에스겔 바로가기

217. 다니엘 바로가기

218. 호세아 바로가기

219. 요엘 바로가기

220. 아모스 바로가기

221. 오바댜 바로가기

222. 요나 바로가기

223. 미가 바로가기

224. 나훔 바로가기

225. 합박국 바로가기

226. 스바냐 바로가기

227. 학개 바로가기

228. 스가랴 바로가기

229. 말라기 바로가기

230. 신약성경을 배움에 대하여 바로가기

231. 공관복음 바로가기

232. 마태복음 바로가기

233. 마가복음 바로가기

234. 누가복음 바로가기

235. 사복음서 바로가기

236. 요한복음 바로가기

237. 사도행전 바로가기

238. 편지서의 분류에 대하여 바로가기

239. 로마서 바로가기

240. 고린도전서 바로가기

241. 고린도후서 바로가기

242. 갈라시아서 바로가기

243. 에베소서 바로가기

244. 빌립보서 바로가기

245. 골로새서 바로가기

246. 데살로니가전서 바로가기

247. 데살로니가후서 바로가기

248. 디모데전서 바로가기

249. 디모데후서 바로가기

250. 디도서 바로가기

251. 빌레몬서 바로가기

252. 히브리서 바로가기

253. 야고보서 바로가기

254. 베드로전서 바로가기

255. 베드로후서 바로가기

256. 요한일서 바로가기

257. 요한이서 바로가기

258. 요한삼서 바로가기

259. 유다서 바로가기

260. 요한계시록 바로가기


二十一. 사명자 교육에 대한 자료

261. 90년 한남교회 제직세미나 교안 바로가기

262. 각 기관 운영에 대한 상식 바로가기

263. 교회기관의 발전책 바로가기

264. 여자에게 주신 은혜 바로가기

265. 장로에 대한 권면 바로가기

266. 장로부인에 대한 가르침 바로가기

267. 회장의 회의 진행법 바로가기

268. 교역자의 기본자세 바로가기

269. 목사후보생과 교회행정 바로가기

270. 부교역자가 알아야 할 사항 바로가기

271. 부교역자와 심방책임자의 유의할 점 바로가기

272. 설교를 준비하는 법 바로가기

273. 교인들이 보는 사모상(딤전4:7) 바로가기

274. 목사 권면과 격려사 바로가기

275. 예수님이 가장 칭찬하신 사람(마11:11;눅1:15) 바로가기

276. 특별한 인물 세례 요한(마11:11;눅1:8-17) 바로가기


二十二. 베드로, 바울, 천사, 사단

277. 베드로에 대하여 바로가기

278. 바울사도에 대하여 바로가기

279. 천사에 대한 지식 바로가기

280. 사단에 대한 지식(엡4:27) 바로가기

색 인바로가기

먼저 드리는 글(Ⅱ)


할렐루야, 이 글을 읽으시는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있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목회생활을 30년쯤 하면서 많은 성도님들, 특히 평신도님들의 신앙지식이 대체적으로 빈약하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성도님들의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에 관한 성경지식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몇 차례 출판되었던 신앙상식과 성경개론을 증보, 합본하여 이번에 기독교신앙백과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280개의 제목들이 평신도 또는 초신자님들의 기독교적 신앙지식을 상당하게 채워드릴 것으로 믿고 감히 기독교신앙백과란 제목을 붙였습니다. 혹 이 책에 없는 내용으로 질문을 받는다면 다음 재판을 할 때 보충할 것입니다.

필자는 학자가 아닙니다. 평범한 목회자일 뿐입니다. 그러나 현실교회의 많은 성도님들 중에 학자 이하의 지식이나 쉽게 표현한 글들을 필요로 하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내용을 읽으시기 전에 반드시 먼저 목록을 읽으십시오. 목록의 내용은 우선 " 무엇을 아셔야 하는가?" 에 대하여 지식을 제공할 것입니다. 성경을 사랑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의 내용이나 또는 신앙의 지식들을 한 조목 한 조목 아는 맛에 신앙생활을 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셔야만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여 명문대학에 들어간 청년이 말하기를 "나는 한 가지 한 가지씩 깨닫는 취미로 공부하였다 "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반드시 성경을 배우고 깨닫는 맛에 신앙생활을 하셔야만 은혜의 궤도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은혜를 충족시켜 드리고자 제시한 말씀들이 바로 표지에 기록한 필자의 친필 성구들입니다.

저는 목회생활 30년쯤에 기성교회를 전격 사임하였습니다. 이 사실은 저의 목회생명으로 보나 가족생계를 볼 때 큰 모험이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결정할 때 말씀연구와 집필 열망에 끌리는 것 때문에 그렇게 하였고 그 덕분에 조용한 분위기에서 평신도 중심의 글들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한 동안 증언한 것들과 생각한 것들을 글로 모아서 남겨 놓을 생각입니다. 평신도님들이 가장 편리하고 쉬운 방법으로 믿음의 지식을 얻도록 하는데 힘을 쓸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신앙의 기초가 되는 본서와 교회생활에 중요한 교회헌법연구를 많이 보급하였고, 이어서 성경강해집(창세기, 마태복음, 사도행전, 히브리서, 야고보서 등)과 성령님에 대한 설교(기간), 7분설교집(새벽기도회 설교를 요약한 것)등을 출판할 예정입니다. 현재 "성경요절연구" 란 책을 쓰고 있습니다. 이 책은 성경 육십륙권 중에서 해석하기 어려운 요절과 교훈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요절들을 ( )개 발췌하여 해설과 교훈을 나타낸 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증언하는 사명과 평신도님들이 쉽게 성경을 이해하시게 하기 위하여 집필한 것입니다. 곧 책이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하여 주십시오. 본인의 책이 중국교포 성도님들에게도 좋은 참고서가 된다는 소식을 듣고 더욱 용기를 얻었습니다.

앞으로도 부족한 사람을 많이 성원해 주시고 이 책들이 많은 평신도 성도님들의 가정에 비치되도록 협력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996. 4. 11

저자 드림

1. 이 세상에서 믿을 것이 무엇인가? 목록으로

믿을 대상은 참이어야만 하는데 과연 이 세상에 믿을 대상이 있는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참과 진실, 참된 이, 곧 진리는 예수님과 그의 말씀인 성경 뿐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아시기를 바랍니다.

신용이 고갈된 사회에서 인간이 믿을 대상을 찾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참이 아닌 세계에서 참을 찾고 믿어보다가 후회하는 일이 많지 않습니까? 누구를 믿겠습니까? 무엇을 믿겠습니까? 장사꾼을 믿겠습니까? 메이커제품을 믿겠습니까? 백화점이나 일류 슈퍼마켓에도 불량한 물품들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친구를 믿겠습니까? 이웃을 믿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은혜받았다는 교인이나 열심히 봉사하는 교인이나 신앙의 비도자도 믿지 마십시오. 물론 양심과 신앙을 지키려는 사람도 있지요. 그러나 인간은 변질성과 유한성 때문에 믿지를 못합니다. 변질성이란 착한 마음이 나쁜 마음으로 변하는 것이고, 마음이 변하면 행동도 변하게 되며, 유한성이란 인간이 약속과 책임을 다 이행하지 못한 채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심지어는 가장 신용하였던 부모와 자식과 형제도 약속 책임을 다 못하고 죽는데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양심없는 세계는 물론 믿지 못하겠지요. 양심있는 성도에게 돈을 빌려주었는데 그 집에 큰 환난이 생겨서 차용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보았고, 또 양심있는 자에게 빚 보증을 해 주었는데 그만 그가 책임도 이행하지 전에 죽으므로 그 보증자가 빚을 갚는 것도 보았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면서 봉사 잘하는 성도에게 돈을 맡겼다가 (무슨 사정이든 간에) 받지 못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나오셔도 사람은 믿지 마십시오. 물론 믿을 만하게 본이 되는 성도도 많이 있지만 결코 사람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계를 믿어 보시겠습니까? 지금까지 자연계는 낮과 밤과 춘하추동의 변동이 없음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추워서 죽고, 더워서 죽고, 수해로 죽고, 폭풍으로 죽고, 심지어는 지진으로도 죽지 않습니까? 그러니 자연을 어떻게 믿습니까? 자연을 하나님이 창조하여 통치하실지라도 역시 유한한지라 없어질 때가 있으니(벧후3:10;고후4:18)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믿을 만한 것입니까? 이는 진실과 능력과 영원을 가진 존재이어야만 하는데 오로지 이 세상에서 믿을 대상은 오직 예수님과 그의 말씀인 성경 뿐이란 것을 알려드립니다.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만 참되시다" 하셨고(롬3:4), 요3:33에도 그러하며, "내가 곧 진리" 라고 하신 말씀(요14:6)도 역시 예수님만이 참되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참되시면 예수님의 말씀도 역시 참됩니다(요4:18,8:14).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다 참되시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성경 뿐(유:3)이기 때문에 결국 참은 예수님(하나님)과 성경 뿐입니다. 따라서 성경말씀대로 믿고 행하는 것만 속지 않는 일입니다.

"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하신 것처럼(요2:22) 저희들도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믿는다는 뜻은 신용과 의탁을 겸하는 말씀인데 " 방백들(정치가)이나 도울 힘이 없는 인간도 의지하지 말라" 하셨습니다(시146:3). 인생은 호흡이 끊어져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되므로 햐곱의 하나님으로 도움을 삼고 그에게 소망을 두는 자가 복이 있음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시146:4,5).

2. 인생과 만물의 출처를 아십니까? 목록으로


사람에게 가장 시급한 일이 있다면 내가 어떻게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를 아는 일입니다. 어렸을 때에는 지각이 부족해서 알 수 없지만 지각이 있는 자는 제일 먼저 자신의 출처와 만물의 출처를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고아가 부모를 찾고 새끼가 어미를 찾듯이 인간이 태어나고 보니 자기로 말미암아 태어난 것이 아님을 아는 이상, 그 출처를 찾아 봄이 마땅합니다. 출처를 찾은즉 부모님이 낳으셨는데 부모님은 자녀의 출생시간과 성별과 생김새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낳으셨으며, 또한 인류의 시조로 소급하여 생각할 때에 인류의 조상은 누가 낳았는지 만들었는지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을 연구하던 과학자들이 " 사람은 원숭이의 진화로 되었다" 는 주장을 하여 이것이 교과서의 학문재료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귀하는 그것을 믿겠습니까?

어느 미개인들의 세계에서도 원숭이를 인간의 조상으로 숭배하거나 제사하는 일을 못보았고, 인간이 알고 있는 수천년의 역사세계 중에서 인간의 출생으로 입적하는 것이 아닌, 원숭이의 진화로 사람이 되어 인간 호적에 오른 일이 있었습니까? 이렇게 허무한 거짓이 우리 곁에 있음은 놀라운 일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은 생명의 주인이시라(요14:6) 하나님이 모든 생명체와 만물을 지으셨다고 하였습니다. 창1장과 2장을 읽어 보시고, 또 요1:1-3을 꼭 읽어보십시오. 거기에 보시면 하나님이 말씀과 솜씨로 만물과 인생을 지으셨다고 하셨지요? 사람은 세상에 있는 것(물질)을 변화시켜 무엇을 만들 수는 있지만 모래 한 알갱이를 창조하지 못하며, 또 심장을 치료하고 로보트를 만들지만 생명자체를 만들거나 자라게 하는 능력은 주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도 만물과 생명을 창조하고 지배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그 주인이라고 하셨습니다(행17:24-28). 따라서 사람이 안했거나 못하는 것을 하신 이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창17:1;출6:3;욥8:3;고후6:18;계1:8). 생명체를 자라게 하시고(고전3:6) 결실기를 주어 열매를 거두게 하시며(행14:17), 인간의 계획에 없던 생명을 탄생케 하시고 원치 않는 죽음을 당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십시오. 또 만물을 운전하시듯이 보존 운행케 하시는 것을 볼 때에 그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시고 씨앗을 주셨으며 사람의 창조자요 통치자가 되신다고 함에 무슨 의심이 있겠습니까? 만일 이것을 의심한다면 자기를 낳아준 부모도 의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앞에서도 말씀드린 자와 같이 성경을 추호도 의심없이 믿는 사람입니다. 히11:3을 보시면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하셨습니다.

끝으로 창1:26에서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다" 는 뜻은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며 선하신 품성을 인생의 정신적 요소로 품부하여 만드셨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만물과 함께 하나님의 지음심을 받아서 살고 있는 만큼 꼭 그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모시고 공경하는 것이 당연한 본분입니다(전12:13). 또 인생이 없애지 못하는 만물을 하나님은 이 세상 끝날에는 없애신다고 하셨습니다(롬11:36;벧후3:10;계21:1).




3. 만물에 대한 지식목록으로


앞의 말씀에서 인간의 피조성과 타락과 구원문제의 필연성을 말씀드렸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알기 전에 우선 보이는 것부터 살펴야 하겠기로 만물에 관한 것을 말씀드립니다.

1) 만물이란 모든 피조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보이는 것은 인간을 포함한 현상계의 모든 것이고, 여기에는 당연히 공기나 세균, 미립자 같은 물리적인 것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은 영적 세계에 관한 것들입니다.

2)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의 창조자입니다(창1:1,2:1;요1:3).

한동안 무신론자들은 만물과 인간의 창조설을 믿지 않았으나 근대에 와서는 많은 물리학자들도 창조설에 찬동하고 있습니다(" 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창조주 " 라는 책도 나왔습니다. 정신세계사 출판).

3) 하나님은 이 만물을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셨고(창1:10,31;골1:16) 인간과 모든 생물들의 삶의 거처를 위하여 주셨고(창1:11;행7:25), 또 하나님은 항상 그 만물을 붙드시며(보존하심, 히1:3), 자기의 규례를 따라 통치하시며(시119:91;마8:26), 인간들로 하여금 그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게 하셨으며(창2:28), 하나님은 그 만물을 초월하여 계신다고 하셨습니다(고전15:27-28).

4) 쉬운 방법으로 생각하여 보십시오. 사람이 자연을 창조할 수 있습니까? 또한 우주를 질서있게 운행시킬 수 있습니까? 모래알 하나를 만들 수 있습니까? 씨앗을 만들 수 있습니까? 씨앗의 싹을 나게 하고 자라게 할 수 있습니까? 열매를 맺게 할 수 있습니까?

맑은 하늘, 무수한 별, 시원한 바람, 아름다운 산천초목, 가지각색의 아름다운 꽃, 바람의 위력, 태양의 뜨거움, 바다물이 넘치지 않는 것, 춘하추동의 사계절, 가을의 결실, 이 모든 것이 다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인생은 만물과 자연의 은총을 주셨음에 대하여 크게 감사하셔야 합니다.

5) 불행하게도 이 만물들은 인간의 타락과 함께 퇴락되었습니다.

만물이 인간을 위한 것이었으므로 인간이 타락할 때 그 징계로 만물을 퇴락시킨 것입니다. 창3:17에서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소산을 먹으며,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하셨고, 자연의 일종인 짐승이 포악하여 사람을 해하는 것(왕상13:24;왕하2:24)도 그와 비슷한 의미라 하겠습니다.

6) 자연계가 퇴락하므로 인간생활은 더욱 고생스러워졌고, 피조물 역시 탄식하고 고통하며 구속자를 기다린다고 하셨습니다(롬8:19,22). 롬8:19에서 󰡒피조물이 탄식한다󰡓는 것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피곤하여진 세계를 영적으로 표현한 말씀입니다. 인간의 구속과 함께 만물도 새롭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구속사업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7) 인간은 만물 중에 포함된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하나님은 자연계를 창조하여 인간에게 주셨고, 하나님은 자연계를 자기의 법칙대로 통치하시며 인간들로 하여금 최대한 개발하고 이용하게 하셨으며(창1:28), 하나님은 그 자연계를 통하여 인간을 복되게도 하시며(신28:12;시121:1-6) 화가 되게도 하십니다(욥1:16,19).

8) 그런고로 성도들은 만물과 자연계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자연을 잘 다스리며, 자연의 혜택을 통하여 복되기를 더욱 힘쓰셔야 할 것입니다.

4. 우주의 신비를 알고 창조자를 기억하라(전12:1) 목록으로


1. 인간이 이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사람은 자기로 말미암아 태어나지 않았고, 또 인류의 시조가 스스로 출현하지도 않았습니다. 인생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만물은 먼저 있었습니다. 우리가 보고 사용하는 이 만물과 우주, 모든 자연과 생명체들이 어디로 말이암았을까요?

인간의 철학은 한계가 있어서 이 사실을 알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창1:1과 롬11:36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이 창조하시고 자신이 붙드시며(보존 히1:3) 통치하시고 장차 심판하시고 거두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시93:1;계19:6;요5:22,30;롬9:28).

2. 하나님이 왜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지으셨을까요?

1) 만물을 창조하신 이유

① 창조자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게 여기시기 위하여(창1:10),

② 이 모든 것을 자신의 형상을 닮아 창조된 인간에게 주시기 위하여(창1:28),

③ 인간에게 하나님을 깨닫게 하는 계시의 방편을 삼기 위함이었습니다(롬1:20). 따라서 인간은 창조된 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과 지혜와 사랑과 통치의 섭리등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물을 사용하면서 창조자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른 일이겠습니까? 만일 귀하가 고아상태에 있다면 부모를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2) 인생을 창조하신 이유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이 자신의 인격(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에게 만물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영광을 받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창1:26;롬3:23).

그러나 인간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당하고 영광을 가리우므로 하나님은 이 형상을 회복시키시고(롬8:29-30), 영광을 돌리게 하시기 위하여 구원의 방도(요3:16)를 베푸신 것입니다. 따라서 인생은 마땅히 창조자를 닮고 그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고전10:31).

3. 인간은 우주의 신비를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도 눈에 보이는 기적이 나타난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를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인간이 못하는 일들이 너무 많고, 숨겨진 하나님의 능력 또한 많습니다.

자연계가 무에서 유로 창조된 것, 천체가 공중에 떠 있는 것, 천체가 질서 있게 운행하는 것, 씨를 심으면 종류대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것, 종류따라 특색이 있는 것, 같은 토질에서 자란 식물의 종류에 따라 색깔과 맛과 특성이 다른 것, 같은 바다에서 자란 물고기의 종류따라 맛이 다른 것, 뜨거운 태양이 식지 않고 바닷물이 말라서 줄어들지 않는 것, 물고기가 물에서 살고, 많은 미생물들이 서식하는 것, 사람의 생긴 모양과 나뭇잎이 모두 다른 것, 인생이 태어나는 신비, 부모의 이모저모를 적당하게 닮는 신비, 무한한 미립자의 세계, 인간두뇌의 무한성… 이 신비한 능력을 누가 나타내시는 것입니까?

롬1:20에서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않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4. 어떤이는 하나님을 보여주어야만 믿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마치 미국을 가보아야만 믿겠다는 사람, 부모를 보아야만 그 존재를 믿겟다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공기가 보이지 않으므로 필요하게 쓰여지는 것처럼 만물의 창조자 하나님은 우주에 충만하신 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물체의 형상으로 계시지 않음이 마치 태중의 아기가 그의 어머니를 볼 수 없음과 같은 것입니다.

귀하는 꼭 창조자를 기억하고 경외하십시오. 우리는 이 우주의 신비를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5.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목록으로


귀하는 인생을 살고 있고 또 믿음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믿음생활은 하나님을 아는 것부터 시작됩니다만 먼저 인생자신에 대하여 아셔야 합니다(시9:20).

1. 인생은 이 세상에 스스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계획과 힘으로 세상에 태어난 인생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물론 부모에 의해서 태어났지요. 그러나 부모님도 인생을 자기 계획대로 출생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의 시조를 소급하여 올라가면 분명히 한 할아버지와 한 할머니 뿐인데 그 분들은 어디에서 태어났습니까?

인류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으며(창1:27,2:7) 생육하는 방법을 주셨습니다(창1:28;룻4:13;시139:13;사66:9). 하나님께서 인생을 출생시켜 주심에 대하여 위의 성경귀절을 반드시 읽어 보십시오. 그리고 인생은 창조자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꼭 믿으십시오.

2. 인생의 삶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십니다.

만일 인생이 자기의 길을 통치한다면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건강, 물질, 지식, 출세, 명예, 장수 등에 대하여 자기 마음대로 성취하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습니까? 또한 이런 것들을 송유하고 있어도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은 인생이 자기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로 살기 때문입니다.

행17:24-28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생명과 호흡과 연대를 주관하시고 거주의 경계를 정하심으로 인생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한다󰡓고 하셨습니다. 인생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시22:10) 인생의 시대는 주의 손에 있다(시31:15)고 하셨으니 바로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빌1:21;롬14:7-8).

3. 인생은 타락하였으므로 그 타락의 결과에서 구원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본래 하나님은 인생을 자기의 형상을 따라(창1:26) 하나님의 의와 선과 거룩성을 품부하여 순결하고 영원한 존재로 지으셨지만 인간이 자기의 자유의지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였으므로(창2:16-17) 영적 죽음과 수고의 고통과 각종 생활의 고통과 영원한 사망(지옥)이 오게 되었고, 또 영적 죽음에는 불신앙과 부패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생은 이 타락의 상태에서 회복되고 구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구원계획이 필요하였고 타락자 자신의 힘으로는 구원할 수가 없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구세주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요3:16;욥19:25;렘13:23;눅10:30-37).

4. 인생은 연약하고 유약한 존재임을 아십시오.

인생은 죄를 지었으니 연약하고 힘의 한계와 지식의 한계와 생명의 한계가 있으며, 또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으니(롬3:19;히9:27) 연약할 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조물이 창조자를 찾아 경외하고 통치를 받는 자가 통치자에게 의지하며, 타락자요 심판의 대상자가 구원자를 만나고 유한자가 영원자에게 의지하며 약한 자가 전능자에게 의지함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얇은 종이가 두꺼운 벽에 붙어 있을 때 찢을 수가 없고, 파리가 힘은 약하지만 그것이 외국에 가는 사람의 등에 의지할 때에 먼 곳을 갈 수 있는 것처럼 연약한 인생은 반드시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함이 마땅합니다.




6. 인생의 가치와 목적 목록으로


사람으로 태어나서 인생의 가치와 목적을 아는 것은 퍽 중요한 일입니다. 옛말에 󰡒죽을 쑤어서 개 좋은 일 시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어떤 목적을 위해서 수고한 것이 엉뚱한 결과로 돌아갔을 때에 하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인생의 삶도 잘못하면 그와 같은 결과를 낳게 됩니다.

1. 인생이 가치가 있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창1:26).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의미는 육신의 모양을 뜻함이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형상이 없으시므로(요4:4), 그 속성과 성품의 본질을 의미함이니 곧 거룩하고 의로우시며(행3:14) 선하심(마19:17)을 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가치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게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엡4:24).

2. 인간이 타락하여 그 형상을 잃어버리면 그 가치 또한 상실되는 것이니 시49:20에서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하였으므로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의 가치를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생의 가치는 죄사함 받고(행2:28) 깨끗함을 받으며(히9:14),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닮고(고후4:4;갈4:19)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으면(요1:2) 다시 그 가치를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회복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음으로 성취할 수 있습니다.

3. 인생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롬11:36;엡1:4;고전10:31).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아서 양육할 때에 그 자녀의 효도를 바라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도 피조물들을 그런 뜻으로 창조하셨습니다(창1:31).

4.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요?

1) 히11:6을 보시면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하셨고,

2) 요4:23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하심으로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를 원하여 말씀연구와 기도에 힘쓰는 자를 기뻐하십니다(잠8:17). 호6:6에서는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3) 삼상15:22에서 󰡒순종을 제물보다 더 원하신다󰡓하셨고, 요14:23에서도 역시 󰡒계명을 지키는 자를 사랑하시고 저와 거처를 같이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4) 살전4:3에서 󰡒하나님의 뜻은 너희의 거룩함이라󰡓하심으로 최대한의 순결을 위해서 힘쓰는 일이요(마6:6),

5) 하나님을 경외하고(사33:6), 섬기고(삼상7:3), 충성하는 일(계2:10)이요,

6) 더 나아가서는 성경을 사랑하고(요1:1,5:39) 교회를 사랑하고(행20:28;엡5:23) 복음사역자를 사랑하며(요13:20), 또 소자를 사랑함일 것입니다(마18:4).

5. 따라서 저희들은 인생의 가치와 목적을 믿음생활과 하나님의 영광에 두셔서 거룩과 순종과 경외하는 일에 몰두하실지언정 결코 헛된 영광에 이끌려서는 안되며(갈5:26) 저희들이 인생된 가치로 목적을 다하고 있는지 늘 반성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7. 사람에게 영혼이 있음에 대하여 목록으로


사람에게 영혼이 있고, 그 영혼은 죽지 않는 실체로서 현생과 내세를 살아야 하며, 그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할 경우에는 영원한 지옥의 고통을 받아야 함을 생각할 때에, 예수님을 믿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므로 전도의 내용이 될 수 있습니다.

현재 많은 불신자 중에는 영혼이 있음과 내세가 있음에 대하여 느끼지 못하고 사는 예가 허다하며, 혹 느낀다 하더라도 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 아닙니까?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사람이 죽었을 때, 영혼의 실재를 믿지 않고 종교를 신봉하지 않는 자라도 종교적 장례의식을 부정하지 않음은, 결국 영혼의 실재를 부정하지 못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기독성도는 영혼의 실재를 증명할 필요를 느낍니다.

1. 성경은 영혼의 실재를 증거합니다.

1) 욥32:8에서, 󰡒사람 속에 심령이 있고, 전능자의 기운이 총명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심령(영혼, 영, 혼, 마음등으로 표현함 히4:12;살전5:23, 영과 혼을 구별하는 해석도 있으나 성경적 근거는 적음)을 인간창조시에 󰡒자기의 생기를 주입하심으로 생령이 되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창2:7). 인간육신의 요소는 흙에서 취하시고, 거기에 생기(영혼의 요소)를 주입하심으로 이 육과 영의 신비한 결합이 곧 생령이요, 사람이 된 것입니다.

2) 약2:26에서, 󰡒육은 영혼이 없으면 죽은 몸이 된다󰡓하셨고(행5:5;창35:8), 죽은 시체에 영혼이 돌아와 결합되면 다시 살게되며(눅8:55;왕상17:20,21) 영혼은 육신을 떠나도 영원히 멸실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영원한 심판(히6:2), 영원한 구원과 영광(히5:9;벧전5:10), 그리고 영원한 멸망(살후1:9)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3) 따라서, 그 영혼은 죽음(육체와의 분리, 마27:50;요19:30) 이후에도 실재하게 됩니다.

욥19:26에서 󰡒내가 육신을 벗은 다음에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본다󰡓하셨고, 또 13:15에서는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 앞에 가서 내 행위를 변백할 것이라󰡓하셨고 예수님과 죄사함받은 강도도 󰡒그 영혼이 낙원으로 간다󰡓(눅23:43,46) 하심으로 영혼의 새로운 세계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지옥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눅16:23).

4) 영혼이란 어떤 것이냐에 대하여, 그것은 바람처럼 보이지 않고 신령한 것이기 때문에 그 신비성을 알기 어렵지만, 분명히 느끼고 생각하는 실체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또한 신자의 영혼과 불신자의 영혼이 질적으로 다름을 알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고, 다만 신자의 영혼 중에는 중생의 씻음과(딛3:5) 신앙력을 보유한 사실(딛3:5;요3:3)이 그 차이점이 됩니다.

성경은 이렇게 영혼의 실재를 말씀하시므로 우리는 믿고, 또한 죄사함과 내세를 사모하지만, 불신자나 사두개파는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행16:7).

2. 성경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요? 씨없는 과실이 없듯이 속 없는 사람이 없고, 속마음이 곧 영혼이라고 할까요?

1) 사람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으니(전3:11), 인과법칙에 의하여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영적인 요소가 있음이 사실이 아닙니까?

2) 귀하는 󰡒사람이 죽으면 그만인즉 죽은 다음에는 짐승처럼 취급해도 된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그런 말을 못함은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함이요, 그 존엄(만물의 영장)됨이 짐승처럼 멸실되지 않기 때문이란 사실을 귀하의 본능이 증명하지 않습니까?

3) 원시 종교의 발생원인이나,

4) 정령숭배사상이나,

5) 꿈의 세계가 그것을 증명하지 않습니까?

혼수상태에서도 영혼이 배회하는 일과, 무서운 꿈을 꾸고도 이를 부인하시겠습니까?

8. 인생의 보람(창47:7-10) 목록으로


이 세상에서 보람없이 살아도 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보람있게 살아야 함은 자신의 소원이기 전에 하나님의 요청입니다. 하나님은 목적없는 만물을 만드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 야곱은 보람있는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1) 야곱은 아브라함의 손자요, 그의 아들 열두 지파와 함께 약속을 받은 사람이요, 또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자기의 허락하신 것을 다 이루기까지 그를 떠나지 않겠다󰡓고 하심으로(창28:15) 하나님의 뜻을 성취한 사람이요, 또 하나님이 그를 선지자와 축복자로 세우신 것을 보면 그의 인생이 보람있음이 사실입니다.

2) 그러나 본문말씀에서, 그의 생에는 평안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네 연세가 얼마뇨?󰡓라는 바로의 질문에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길의 세월에 미치니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대답하였으니,

① 여기에서, 질문한 바로의 질문은 야곱의 나이만을 물은 것이 아니고, 그의 󰡒인생을 어떻게 살았느냐?󰡓고 물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② 그는 그의 인생과 조상의 인생을 다 함께 󰡒나그네길󰡓이라고 한 것입니다. 야곱이 알고 있는 조상과 자기자신을 나그네로 알고, 또 나그네처럼 살았음을 나타내 준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나그네처럼 살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현실을 나그네처럼 살고 내세를 소망하면서 살아야만 할 것입니다.

③ 자신의 130년의 생애가 󰡒조상의 나이에 미치지 못한다󰡓함은 그가 조상만큼 살기를 원한다는 뜻이 아닐 것이며, 다만 조상만큼 살지 못하였기 때문에 조상만큼 고생하지 않았음을 나타내려는 뜻이었습니다. 나그네 인생은 오래 살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④ 그는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보람있는 인생은 평안하여야 되는 것도, 또 오래 살아야 되는 것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이 험악한 세월을 보낸 것은 모든 인생이 당하는 고난 외에 속임수로 축복받고 쫓겨난 것 때문에 더 큰 고생을 한 것입니다. 따라서 거짓된 행위는 그 당대에 큰 불행을 당하게 됨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2. 야곱의 인생을 생각하면서 저희들 인생도 보람이 있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다섯 가지를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1) 창조자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사는 일입니다. 주인이나 부모를 외면하고 사는 사람이면 사람답다고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마땅히 하나님을 무조건 경외하여야 할 것입니다.

2) 영생의 입장권을 확보하여야 할 것입니다. 죽고 지옥에 갈 인생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죄사함받고 영생의 구원을 확보하셔야 합니다.

3) 깨끗하고 결백하게 사는 것입니다. 운동경기자가 규칙을 위반하면 승리할 수 없음같이 인생도 부정하게 살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런고로 최대한 결백하게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4) 현생에서 행복을 느끼며 즐겁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바로 고난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쁨으로 감수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을 요14:27과 롬5:3에서 나타내 주셨습니다.

5) 자신이 받은 달란트가 무엇인지 알아서 그 달란트대로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최대한 보람있게 노력하는 것입니다. 귀하의 받은 은혜로 하나님을 어떻게 기쁘시게 해드리고 있습니까?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결사적으로 노력하셔야 할 것입니다.

3. 인생의 참된 보람은,

1) 그 자원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생명과 은사의 달란트에 근거해야 하고,

2) 그 방법은 받은 달란트에 따라 최대한 노력하되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하여야 할 것이요,

3) 그 결과는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느냐에 따라 그 가치를 점검할 수 있을 것입니다.

9. 왜 예수님을 믿어야만 합니까? 목록으로


사람이 꼭 예수를 믿어야 할 이유는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1. 인생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자를 알고 섬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자식이 그 부모 섬기는 것을 본분이라고 한다면 피조물이 창조자를 섬기는 것 역시 당연한 본분입니다.

인생은 스스로 세상에 온 것이 아니고 그 부모가 낳아주심으로 출생하였습니다. 그 부모 또한 자녀를 출생시킬 때에 원하는 형태의 자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은 하나님이 조성하시고(시139:13) 또 그 부모의 원 조상인 인류의 시조 아담도 하나님이 지으셨으니(창1:27) 마땅히 창조자 예수님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십니다(요1:2,5:18,14:9).

2. 하나님께서 인생을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왕이 그 백성을 통치한다면 그 백성은 자기의 왕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만일 인생이 자기의 길을 통치한다면 자신의 앞길을 자신의 소원과 취미와 목적대로 실행해 나가야 할 것이 아닙니까?

사람마다 건강과 장수를, 지식과 출세를, 재물과 향락등을 자기의 뜻대로 이루지 못하며 운명에 처한듯 아쉽게 죽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인생과 모든 것을 통치하신다는 증거입니다.

히1:3에는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신다󰡓하셨고, 시31:15에서는 󰡒네 시대가 주의 손에 있다󰡓하셨으며, 행17:25에서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라󰡓하셨습니다. 그런고로 그 통치자를 당연히 공경하여야 합니다.

3. 인간은 두 가지의 결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1) 범죄 곧 타락으로 인한 심판의 대상이요, 영멸의 존재이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죄사함을 받고 영생의 구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죄로 인한 타락은 창2:16-19과 롬3:23을 살펴보시고,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말씀은 요3:16을 찾아 보십시오. 이렇게 타락한 인생이 구원을 받으려니까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2) 인생이 연약한 존재로서 지혜, 능력, 생명도 유한할 뿐만 아니라 질병, 가난, 억울함등 작은 환난으로도 크게 피곤할 때가 있으니 얼마나 연약합니까? 꼭 갓난아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갓난아기는 어머니의 품에 안김으로 만족하고, 연약한 파리가 여행자의 등에 붙으면 파리로서 상상조차 못할 태평양을 건널 수도 있듯이 연약한 인생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면 큰 도움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11:18과 시146:3에 의지의 대상인 하나님을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4. 사람이 사는 도덕과 생활윤리의 표준이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이 세상에는 지역과 인종과 종교의 차이에 따라서 사람 사는 방식이 다양합니다. 어느 방법을 택하여 사는 것이 가장 유력하겠습니까? 공자의 도덕입니까? 석가모니의 불경입니까? 미개인종의 생활전통입니까? 유교의 생활전통을 이어온 우리나라가 서양만큼 발전하였습니까? 또 불교가 성행한 인도, 태국, 원남등의 나라가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까? 󰡒부모의 시체를 나무에 매달아 까마귀가 그것을 속히 뜯어 먹어야 좋다󰡓고 하는 미개인의 생활발법을 따르겠습니까? 이러한 것들은 모두 어리석은 일이지요.

딤후3:15-17에는 성경만이 가장 옳게 사는 생활방법이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을 생활표준으로 삼는 미국, 영국, 스위스, 노르웨이, 덴마아크등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들은 대부분 기독교국이라는 사실을 아시지요? 상기의 다섯 가지 이유를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二. 믿음생활의 시작에 대하여



10. 나는왜 예수님을 믿게 되었나? 목록으로


그동안 하나님과 교회와 믿음생활을 전혀 알지 못하던 분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여 교회에 출석을 하였으면 자신이 왜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를 아셔야 합니다. 귀하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결코 자신의 계획이나 힘으로 된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작정과 능력에 의하여 믿어지게 된 것인고로, 하나님의 능력에 굴복당한 것임을 알고 크게 감사하셔야 합니다.

사람마다 자기 편에서 볼 때에는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오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그 동기에 따라 자기가 믿고 나올 결심을 갖고 시작한 것이 사실입니다. 어떤 이는 친구의 전도로, 어떤 이는 자녀의 애원으로, 어떤 이는 부모의 유언으로, 어떤 이는 이상한 체험에서 감동을 받고, 또 어떤 이는 질병이나 그 이외의 역경을 당하여 안위를 목적으로 교회에 나왔다가 믿게 되기도 하고, 또한 어떤 이는 군인 예배당에서 부르는 찬송소리에 감동이 되어 믿게 되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안드레는 요한의 소개로 예수님을 믿었고(요1:37), 베드로는 안드레의 소개로 예수님을 믿었으며(요1:41,42) 신비스럽게도 바울사도는 길을 가다가 하나님의 직접 부르심을 받고 핍박하던 마음이 변화되어 예수님을 믿고 따르게 되었습니다(행9:3). 그러나 이것은 인간 편의 절차에 불과한 것이요, 그 배후에서 그 일을 섭리하시고 지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반드시 아셔야 합니다.

1. 인간은 본래 허물과 죄로 죽은 자라(예2:1) 스스로 착한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렘13:23).

2. 사람이 태어날 때에 출생자의 뜻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믿음의 시작도 영원한 생명의 탄생으로서, 중생자의 뜻으로 탄생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거듭나게 하셔서(요3:3) 새로이 영원한 삶을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3. 󰡒믿음은 모든 이의 것이 아니라󰡓하였고(살후3:2),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하였고(엡1:4),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하셨습니다(행13:48). 또한 마16:17에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고백했을 때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라󰡓하셨고, 고전12:3에서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고 하셨으며, 마지막으로 고전 2:9과 막9:24에서는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는 분󰡓이라고 하셨으니 어찌 자기 힘으로 믿은 것이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귀하는 하나님의 선택과 믿음의 은혜를 이미 받았다는 사실을 아셔야 하며, 귀하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하나님의 복되신 구원계획에 의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끌려 가고 있음을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믿음으로 하나님을 모시고 죄사함 받으며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과 영생을 받음과 하나님의 복되신 통치를 받는 것은 모든 이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닌데, 이 귀한 축복이 하나님의 작정에 따라 귀하에게 전달되었은즉 귀하는 절대적 행운아요, 영생자임을 꼭 믿으시고 더욱 감사하시며 신앙생활 잘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택해 주심을 믿는 신앙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벧후1:10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않으리라󰡓하셨으니 내가 믿어 구원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로 아셔서 더욱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11. 예수님을 믿는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목록으로


귀하는 지금 예수님을 믿고 계십니다. 과거에 믿지 않았을 때에는 교회에 근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믿음생활과 관련된 일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교회에도 나오시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는 생활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생활은 곧 예배를 드리는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드리는 일이 예수님을 믿는 것인가?󰡓할 때에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형식일 뿐 전부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형식이란 외식으로도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입니까?

1. 예수님을 바르게 하는 지식을 가지는 것입니다.

많은 불신자들도 예수님을 역사적인 인물로 알고 있고 또는 선지자나 위대한 사회사업가등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지식만으로는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핵심적인 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되신 분이시고(빌2:6)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요3:16),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그리스도는 구세주, 구원자라는 뜻, 마16:16). 󰡒안다󰡓는 것은 󰡒믿는 것󰡓과 의미가 같습니다(엡4:13). 요17:3에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왕이 백성의 집에 왔을 때에 백성이 그 왕을 영접하지 않았다면 왕은 그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믿는 자도 예수님을 안다고 하면서 영접하지 않으면 예수님과의 관계가 이룩되지 못합니다. 요1:12을 보십시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을 경외의 대상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곧 의지하는 것입니다. 또한 신용하는 뜻도 있습니다. 신용의 대상이 아니고는 믿을 수도 의지할 수도 없기 때문에 믿음, 신용, 의지는 그런 면에서 모두 상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14:1에서 󰡒나를 믿으라󰡓하셨고, 요4:21에서는 󰡒내 말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과 그 말씀(성경)을 의지하고 따르는 것이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의지하고 따르려면 연약한 자기는 내세우지 말고 예수님의 뜻에 자기를 복종시켜야 합니다.

4. 예수님께 충성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나타내는 헬라어 󰡒피스티스󰡓에는 믿음과 충성의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마9:22;계3:14).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뜻은 곧 예수님께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마치 신하가 왕에게 충성하듯 예수님과 그의 말씀인 성경에 대하여 존경하고 복종하며 섬기면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을 서약하고 세례를 받으며(마28:19), 또 충성된 청지기가 되어야 하는데(눅12:37) 이는 성도가 곧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5. 예수님과 연합을 하는 것입니다.

연합이란 인격적으로 하나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나의 인격, 나의 옛 사람은 더러워졌으므로 포기해 버리고(엡4:22) 온전하신 예수님의 인격을 영접하여 내 속에서 그리스도가 사시게 하고(롬14:8), 또 나를 지배하시도록 맡기는 것입니다. 요15:4은 연합의 원리를 말씀하셨고, 롬11:17,23은 접붙임의 원리로 연합을 설명하셨은즉 성경을 읽으시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빌1:21에서도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라고 하셨습니다.

12. 무엇이 확실한 것인가? 목록으로


성경 딤후3:13에서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구원의 도리나 성경지식을 바로 알라는 말씀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확실한 것을 무관심하게 여기는 것 때문에 이 말씀을 드립니다.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을 많이 모르고 사는 것이 사실이지만, 어떤 것은 알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인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 그런 실수를 줄이고, 또 은혜받을 특권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하여 확실한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1. 이 세상에는 인간을 초월하는 일들이 많음이 확실합니다. 인간을 절대자로 오해하거나, 기적(인간의 힘을 초월하는 것)을 못 믿는 사람들도 많지 않습니까? 만물이 있는 것, 인간이 있는 것, 만물이 보존되고 유지되며 많은 생명체가 존재하는 것이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닌 이상 이 세상에는 초인간의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2. 절대자(하나님)가 존재하신다는 사실이 확실합니다. 원인 없는 결과가 어디 있습니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수 없다󰡓는 속담처럼 결과가 있은즉 원인자가 계실 것이 아닙니까? 가장 능력이 있는 하나님 외에 누가 그 일을 하겠습니까? 성경이 그 사실을 말씀하지 않았어도 우리는 믿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창1:1).

3. 지금도 절대자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은 만물이 그대로 보존 운행되고 있음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나라와 주권이 없으면 그 백성들은 어디에서나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또 보호를 받는 것 자체는 그 배후에 주권자가 있기 때문인 것처럼 세상이 있고, 인생이 있고, 만물의 운행이 있는 이상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4. 인간은 죄를 범하면 불행해진다는 것이 확실합니다. 성경에서는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불행과 사망이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증언이 아니라도 충분히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사회에서 범죄하는 사람이 불행한 상태에 있고, 우리도 범죄하면 마음의 가책을 받으면서 불행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런 것을 느낄 줄 아는 양심을 가진 것이 특색이며 죄가 되고 안되는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각을 가진 것도 사실입니다.

5. 성경은 진리임이 확실합니다. 성경은 신구약 66권이고, 진리는 참이란 뜻이며, 예수님도 자신을 가리켜 󰡒진리󰡓라 하셨고(요14:6), 또 하나님이라 하셨고(요14:9)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라고도 하셨습니다(요17:17). 어느 것이나 가짜는 퇴색하고 낡아 없어집니다. 성경도 잘못된 말씀이면 인간의 관심대상에 오를 수 없고 오래 보존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약 3,500년간 보존되고, 그 동안의 많은 성도가 이 말씀의 진실성을 체험하였기 때문에 항상 있고(벧전1:25) 살아 있으며(히4:12) 능력있는 말씀이(창1:3;히4:12) 아닐 수 없습니다.

6. 만물은 물론 우리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동하고 있음이 확실합니다. 행17:28에서 󰡒우리가 그를 힘입어 기동하며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땅, 호흡을 가능하게 하는 공기, 활력을 주는 햇빛, 먹는 양식인 물과 동식물들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생길 수 있습니까? 씨앗이 어디에서 생겼으며, 그것이 자라고 꽃피고 열매맺는 것이며, 결실기가 되어 거두는 것까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어디 있습니까? 또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의 수한까지도 붙드시고 한정하시는 분(행17:26)이기 때문입니다.

7. 사람에게 영혼(정신적 실존)이 있고(고후7:1;약2:26;벧전1:9), 내세가 있으며(눅23:43;16:23), 선약간에 심판하시는 일이 있다는 사실(계20:12;22:11-12)이 확실한 것입니다.

8. 하나님을 거역하는 선행은 선행일 수 없으며, 교회 중심의 신앙으로 바로 서지 않으면 그 신앙도 건실하지 않음이 확실한 것입니다. 성경은 교회생활의 승리를 인정하시기 때문입니다(계2:8-11). 성도는 확실한 것을 알고 확실한 생활을 하셔야 합니다.

13. 기독교란 무엇입니까? 목록으로


귀하가 기독교의 광법위한 교리를 다 몰라도 기독교인이 되려 하거나,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으면 기독교의 요약된 지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1. 기독교는 절대자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입니다.

어떤 이는 자연을 숭상의 대상으로 섬기는 이도 있으나 자연은 피조물인즉 숭상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또 잡신, 귀신, 마귀, 정령(죽은 자의 혼)을 숭배하는 종교인들도 있습니다만 절대자 유일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아닌 다른 잡신들을 섬기는 것은 진짜 앞에 가짜를 들고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며(신6:4) 그와 같은 신이 없으며(미7:18), 뉘게도 비교할 수 없으며(사40:25) 천지의 주재시며(행17:24), 만왕의 왕, 만주의 주시며(딤전6:15) 모든 신에 뛰어나신 분이며(시136:2), 하늘을 펴시고 만상을 명하신 분(사45:12)이니 그분이 바로 창조자시요, 통치자시요, 구원자요, 심판자시요,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절대자이십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최고의 절대신을 섬기는 절대 종교입니다.

2. 기독교는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자기를 계시해 주셔야 알게 되는 종교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곧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시기 위함이었고(요1:18), 또 하나님이 여러 모양으로 자기 뜻을 나타내 주셨다가 맨 마지막에 성경을 영감의 계시로 주셔서(히1:1;딤후3:16) 하나님이 자기의 뜻을 알게 하신 종교입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인간이 구상하였거나 체험해서 만든 종교가 아니고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자기를 보여주시고 또 말씀해주셔서 알려진 종교요 오직 계시의 말씀인 성경에만 의존하여, 그의 뜻을 깨닫는 계시의 절대종교입니다.

3. 기독교는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로만 구원을 받는 종교입니다.

다른 종교와 같이 선행이나 공덕을 쌓아서 그 공력으로 도를 닦아 구원을 받는 종교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은혜로 구원을 받는 종교입니다. 요1:12에서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하셨고, 요3:16에서도 󰡒저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는다󰡓고 하셨으며, 롬3:30과 갈3:10-11말씀도 역시 그 뜻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기독교는 인간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는 종교입니다.

4. 기독교는 대속의 공로를 힘입혀 주셔서 구원받게 하시는 종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하시는 것입니다(롬3:23-24). 즉 인간의 죄로 인한 불행을 예수님이 대신 의를 행하게 하여 그 공로를 믿는 자에게 힘입혀 주시는 것인데 그 의가 바로 예수님의 절대순종으로 인한 십자가의 고난입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대속으로 구원하시는 종교입니다.

5. 영생을 얻는 종교입니다.

특별한 사명으로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 현세에서도 복을 받습니다(신28:1-14). 그러나 현세의 복은 잠깐 누리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시하지 않고 다만 이 세상을 떠난 후 영생의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가장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영원한 구원(히5:9), 영원한 기업(히9:15), 영원한 영광(벧전5:10)을 주신다고 하셨으니 기독교는 궁극적 복을 받게 되는 종교입니다.

따라서 이 기독교를 신봉하는 성도는 큰 보람과 기쁨과 감사와 긍지를 가지셔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세상이 감당치 못할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창32:10).

14. 죄를 청산하고 교회에 나와야 합니까? 목록으로


위 질문에 대하여 우선 그렇지 않다는 것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1. 교회는 일반사회의 종합병원과 같기 때문입니다.

단과병원은 특수한 병만 치료 처방하지만 종합병원은 모든 병을 다 살피고 치료처방하는 곳입니다. 병원은 병든 자가 들어와서 자기 병을 말하고 의사의 진단에 따라 병의 치료를 받는 곳인데 일찍 고치고 나가는 사람도 있고, 어떤 고질병은 퍽 오랜 기간을 치료받는 경우도 있으며 또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죄병을 고치시는 의사이시고 교회는 죄병을 고치는 병원과 같습니다. 병원에서 병을 고치면 치료비 관계로 속히 나가지만 교회에서는 치료비를 일체 안받고 예방 보호치료해 주기 때문에 죄악의 오염이 많은 세계로 다시 나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전염병이 유행되어서 위험한 때에 병원 입원비를 받지 않는 곳이 있다면 그 곳에 머물러서 전염을 피하는 자가 지혜로울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교회는 죄병을 고치러 오는 곳이기 때문에 죄를 가진채 오셔도 괜찮습니다. 마9:12-13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으며……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세계에 찾아오셔서 죄인들과 상종하셨고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요4:7-8).

2. 인간은 다 큰 차별이 없는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잘하고 회개를 많이 하고 말씀대로 사는 교인은 그만큼 신앙이 성숙한 사람인데 그도 그렇게 되어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라 교회에 나와서 오랜 생활을 하는 동안 연단을 받아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또 아차하는 순간에 실족하여 죄의 치료를 다 받지 못한 사람과 방불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믿음에 깨어 있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실족한 자의 형편과 죄를 청산하지 못한 채 교회에 출석하는 자의 더러움의 형편은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 죄인들이 많이 있음은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며, 다만 속히 회개하여 씻음받고 변화의 생활을 나타내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자기의 신앙생활이 다른 이보다 조금 더 성결하다고 해서 그것을 내세우거나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성결치 못한 자를 지나치게 탓한다고 하면 그에게 덕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들을 인하여 영광을 받지 아니하시며 죄인들에게 복을 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꼭 기억하셔야 할 것입니다(시1:4-5;요8:21).

3. 불신자 가운데 어떤 이들은 교회에 가고 싶으나 술, 담배를 끊지 못하여 못나간다는 이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집안의 전통적 제사를 폐하지 못하여 못간다는 이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외모의 행동보다도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무엇이나 거리끼는 문제들을 시정하려고 노력만 하면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고 능력을 주시며, 또 편리한 형편으로 섭리하셔서 속히 그 문제들의 해결을 체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불신앙 상태에서 믿고 돌아온 많은 성도들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면서 주초를 끊지 못한 성도가 어떤 직분을 가졌다면 그것은 크게 부끄러운 일이므로 속히 그것을 결단있게 피하셔야 할 것입니다. 교회 헌법적규칙 제2조 5항에 보시면 󰡒교회직원으로서 성일을 범하거나 미신행위를 하거나 음주흡연을 하거나 의무금을 고의로 내지 않을 때에는 그 직임을 면함이 당연하다󰡓고 하였은즉 이런 경우에 해당되어서는 안됩니다.

따라서 초신자는 우선 교회에 먼저 나오시고 구원의 생명줄을 잡으신 후에 근절하기 어려운 범죄문제는 은혜를 더 많이 받음으로 해결하셔야 할 것입니다.

15. 신앙생활의 목적을 어디에 둘 것인가? 목록으로


신앙생활의 목적을 바르게 갖지 못하는 성도가 계셔서 이글을 씁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을 하나님 영광에 두지 않고 현실축복에 집착하는 것은 시정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1. 그 목적을 하나님의 영광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성도를 구속하신 목적이 󰡒자기의 영광에 있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창1:31;롬11:36;엡1:3-6). 성도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피조물의 마땅한 의무일 뿐 아니라 창조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확실히 아셔야 합니다. 살고 죽고, 잘살고 못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성도들의 신앙생활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중심을 버리시고,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며 바울사도의 고백처럼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런고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하는 것이요,

2. 인생의 최대의 불행요소인 죄책을 면죄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성도가 순결하지 못하면 자신에게도 복되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벧전1:16에서 󰡒하나님이 거룩하시매 성도들도 거룩하여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거룩은 순결이요, 순결은 죄사함과 계명순종으로 이룩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죄사함을 받을 때 하나님의 징계를 면할 수도 있고, 또 계속 순결을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은 성경대로 생활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함을 깨달은 시편기자는 시119:56에서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라󰡓하였고, 바울사도는 고후13:8에서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며 계명을 지킬 따름이라󰡓(고전7:19)고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의 신앙생활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죄사함을 받고 최대한의 거룩을 보존하며 진리를 순종함에 있음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3. 영생을 얻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경외함은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보이지 않는 신령하고 영원한 세계가 있어서 그 세계를 소유하기 위함입니다. 그 세계는 하나님을 교제하고 동거하는 생활로(계3:20) 현세와 내세를 연결하여 누릴 수 있습니다(요11:25,26 참조).

이것을 신령한 복이라고 합니다(엡1:3). 이 신령한 복은 차원이 높을 뿐만 아니라 영원하기 때문에 성도는 그것에 우선적 목적을 둡니다. 그래서 현실을 살아갈 때에도 육체적인 유한한 것보다 신령하고 영원한 것을 더 사모하여야 하고(고후4:17,18) 또 내세의 천국에 들어갈 만큼 목적을 성취하는 기쁨으로 부르심에 만족하셔야 하는 것입니다(고후5:8).

4. 죄의 유혹과 고통이 많은 현실을 살면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기 위함입니다.

사람이 의복을 입을 때 순서가 있듯이 하나님이 성도에게 요구하시는 것도 순서가 있습니다. 마6:33에 보시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회개하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면 복되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유익하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육신적인 생활은 이방인에게도 주시는 것인즉(마6:32) 성도는 순결한 생활이 더욱 중요합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의 첫째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과 신령한 복에 있고 현실의 복은 부수적으로 따르기를 바라야 하는 것입니다(시1:1-3;요삼2).


三. 복음전파에 관한 말씀


16. 전도는 왜 하여야만 하는가? 목록으로


귀하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성도로부터 끈질긴 전도의 공세와 추적을 받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꼭 저렇게 전도를 하여야만 하는가?󰡓하는 의문을 가지셨을 것입니다. 왜 전도를 하여야만 하는지의 이유를 살펴 보시지요.

1. 예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마28:19을 보시면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하셨고, 행1:8에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셨으므로 이 명령을 예수님의 유언(마지막 부탁) 또는 지상명령이라고 합니다.

2. 하나님께서 전도를 통하여 생명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시행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롬10:13-15을 보시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않는 자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않았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고 하셨으니,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전도하는 일󰡑을 구원의 방도와 절차로 쓰신다는 의미입니다.

3. 예수님과 사도들의 모범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예수님과 사도들의 생활모범을 본받을 사명이 있습니다. 요13:14에서는 󰡒예수님의 행적을 본받도록 하기 위하여 본을 보셨다󰡓하였고, 고전11:1에서는 바울사도가 그리스도를 본받음 같이 성도는 바울사도를 본받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사도들은 전도를 열심히 하셨습니다. 막1:15에서 예수님께서는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처음 외치셨으며, 막1:38에서는 예수님께서 전도의 일을 위하여 오셨다고 하셨고, 또 다른 사도들의 전도 모범이 사도행전에 나타나 있습니다(고전2:1-2).

4. 성도가 전도를 하지 않으면 불순종의 죄를 짓게 될 뿐만 아니라 살려 줄 수 있는 생명을 죽도록 버려두는 책임 때문에 화를 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9:16을 보시면 󰡒복음전도는 부득불 할 일이요 만일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하셨고, 겔33:7-8에서는, 전도자는 생명을 지키는 파수군과 같으니 하나님을 대신하여 악인을 깨우치되 󰡒만일 전하지 않음으로 그가 그 길에서 떠나지 않으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하셨으니, 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이와 같은 네 가지 이유로 인하여 열심히 전도해야만 하는 것을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면 전도자는 전도로 수고만 하는가 할 때에 여러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전도를 통하여 자신의 구원계획을 이루어 가시고, 둘째로, 교회는 전도를 통하여 부흥발전을 이룩하며, 세째로, 전도하는 당사자는 이웃에게 하나님과 영생을 소개하는 봉사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은혜받는 기회가 되고(롬10:10;눅12:8), 더욱 귀한 것은 천국에서 하나님의 상급이 따르는 것입니다(단12:3;딤후4:7-8). 그러므로 전도는 다른 이에게 커다란 유익을 주면서 자신도 영적인 복을 받고 또한 내세의 상급까지 예비하는 일이기 때문에 성심껏 힘써야 합니다.


17. 심방은 왜 하는가? 목록으로


바쁜 계절에 성도가 심방을 가면 이해하지 못하는 불신자는 마땅치 않게 여기거나 심지어는 영접을 하지 않으므로 적당한 말로 권면하고 나오는 예가 있습니다. 반면에 믿음이 있는 성도는 교역자의 심방을 하나님이 축복하러 오시는 것으로 알고 반가이 여길 뿐 아니라, 영접하고 감사하며 만사를 제외한 채, 같이 예배드리고 잘 대접합니다. 심방은 왜 하게 되는 것일까요?

1. 전도의 대상을 만나기 위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가서 전도하라󰡓(마10:16,28:19)는 말씀이 있습니다. 전도의 대상은 길에서나 직장에서도 만나지만 집에서 만나는 것이 더 시간의 여유와 친근감을 갖기 때문에 필요하고, 또 전도대상이 아닌 교인일 경우에는 그 기회에 성경교육과 친교와 예배로 신령한 유익을 나누게 되므로 심방이 필요합니다.

2. 연고자의 가정을 살펴 병을 앓거나 어려운 문제를 당했을 때 그 성도의 어려운 짐을 함께 져주며 인내하고 기도하며 신앙적으로 든든히 설 것을 권면하기 위함입니다.

성도가 어려움을 당하면,

첫째는 기도의 도움을 받고,

둘째는 성경의 지도를 받아 낙심하거나 탈선을 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이럴 때에 더욱 심방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가난한 가정에 심방을 하면서 물질로 크게 도와주지 못하거나 병자에게 심방하면서 그 병을 시원스럽게 치료해 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만 이런 중에서 인간의 부족과 연약을 알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든든히 의지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가장 큰 희망을 주는 일임을 아셔야 합니다.

3. 심방은 복음사역자가 예수님을 대리하여 축복하기 위함입니다.

마10:12에서 예수님께서는 12제자를 파송하시면서 󰡒그 집에 들어가 평안하기를 빌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복음사역자의 심방이 축복과 관계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어떤 성도는 복음사역자를 꼭 예수님이나 천사가 온듯이 반가와 하기도 합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전도행적을 보면 마태를 전도하신 후 그 집의 초청을 받으신 일이 있었고(마9:9-10), 마리아의 집에 가셔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대접을 받으신 일이 있었고(눅10:38-42), 또 그 가정에 가셔서 그의 오라비 나사로를 살려주신 일이 있었고(요10:43-45), 삭개오가 예수님을 믿었을 때 그 집에 가서 유하신 일도 있었습니다(눅19:5). 성도 간의 친교를 위주로 한 말씀은 행2:44에 있고, 범죄의 유혹을 경계하며 권면하신 말씀은 히3:12-13에 있습니다. 그 말씀에 보시면 󰡒누가 믿지 않는 악심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하며,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하게 됨을 면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죄와 유혹이 너무도 많아서 성도가 서로 연합하여 뭉치고 돌아보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매일 피차 권면하며 돌아보는 심방을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빌2:4;엡4:12 참조).

이와 같이 심방에는 전도, 친교, 권면, 상호협조, 축복의 목적이 있으니 이것을 아는 성도는 심방을 귀한 일로 여겨 영접을 하나 핍박을 하는 가정과 영접하지 못할 사정이 있는 가정은 억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 심방을 받는 가정은 꼭 복된 시간을 가지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심방받는 일을 부담없이 사모하는 가정쯤 되셔야 성숙한 신앙의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18-1. 전도지(1) 목록으로


< 구원의 복음 >


1.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1-12).


2.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3-24).


4.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


5.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 본 교회는 귀하를 기다립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새교회 드림


(주소와 전화번호 및 약도 생략)

18-2. 전도지(2) 목록으로


< 구원의 소식 >

귀하께서는 불행한 죄인이 되지 마십시오.

죄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불행하며 그 불행은 영원한 사망이라고 하셨습니다(로마서6:23).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리하면 귀하와 귀하의 가족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사도행전16:31). 예수님께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며(요한복음17:3) 그 하나님은 만물과 당신의 창조자이시며(요한복음1:1-3) 인류와 만유의 통치자이시며(사도행전17:24-28), 또한 구원자이시며 심판자시라고 하셨습니다(요한복음12:44-48).

귀하는 지금 창조자 하나님을 외면하거나 그 하나님에 대하여 무관심하거나 멀리하거나 배척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죄는 불효보다도 훨씬 크고 온갖 악행보다도 훨씬 더 큰 죄가 될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죄는 인간 자신을 불행하게 하고, 또 멸망의 구덩이로 이끌어 갈 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구원의 희소식이 있습니다.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예수님)을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하셨습니다(요한복음3:16).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바로 귀하의 죄를 대신 담당하신 것이며(요한복음1:29)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죄인들의 중보자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히브리서4:14). 이 소식은 하나님께서 귀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전해진 것임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속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십시오󰡓(마가복음1:15).

새교회는 귀하의 출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새교회 드림

19-1. 전도지(3) 목록으로


< 귀하가 꼭 아셔야 할 사실 >

1.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존, 통치하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영원히 살아계신다는 사실.(행17:24-28;히11:3,6)

2. 하나님의 형상(의, 선, 거욱)을 따라 지음받은 인생이므로 마땅히 그 하나님을 경외하여야 한다는 사실.(창1:27;시128:1;전12:13)

3.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시며(요10:30;14:9), 그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죄는 불효 이상의 가장 큰 죄요(요16:9), 모든 인생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므로(롬3:23)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마5:22;25:41,46;롬6:23).

4. 그러나 하나님은 범죄한 인생을 사랑하사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으니(요3:16), 이 구원의 길은 󰡒예수님이 구세주 되심과(마16:16)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속죄의 사역임을)사53:5;요1:29) 믿게 될 때에(요11:25-27) 죄사함과(행2:28) 하나님의 자녀되는 특권과(요1:12) 부활과(요11:25) 영생을 힘입게 되는 사실󰡓입니다(요14:1-6;마25:46).

5. 기독교인은 이 사실을 증언하여 깨닫게 할 사명이 있어서 알려드렸습니다. 장차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러(마25:31-46) 귀하가 영원한 불행을 당하게 된다면 귀하는 이 사실을 알고도 거역하셨으므로 핑계할 수 없을 것입니다(겔3:17-21;롬1:20).


대한예수교장로회 새교회 드림


(주소와 전화번호 및 약도는 생략함)

19-2. 전도지(4) 목록으로


< 인생관광을 초대합니다 >

이 세상은 구경할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관광 붐이 일고 있습니다. 귀하께서는 이 세상을 얼마나 구경하셨습니까? 앞으로도 계속 관광에 대하여 설계하여 보시겠습니까?

한남교회는 세계관광보다 더 보람있는 인생관광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인생관관이란 인생살이를 특별하게 행함으로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잘살아 보려고 애를 쓰지만 자기의 소원을 성취하고 마음에 평화를 누리며 만족하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돈을 버는 일도 자기 마음대로 안되고, 건강을 원하나 그것도 쉽게 되지 않고, 장수를 원하나 역시 임으로 더 살지 못하여 세상을 떠나야 하는 인생이 얼마나 많습니까?

혹 귀하가 인생관광을 그런 고장으로 다니는 것은 아닙니까? 만일 귀하에게 기쁨과 감사와 평안과 희망과 영생이 없다면 귀하는 인생살이 관광을 잘못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그리고 한 번 사는 인생을 행복한 고장으로 돌리십시오. 그것일 바로 하나님 없이 자기 마음대로 살던 생활에서 하나님을 알고 그의 뜻대로 사는 생활로 바꾸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고아가 잃은 부모를 찾아 그 품에 돌아간 생활과 같습니다.

"요한복음8:32 " "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인간은 누구나 죄와 고난과 사람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시면 이 세가지 속박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누릴 수 있사오니 즉시 결심하시고 새로운 인생관광을 시도하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8:32에서 "진리는 자유를 주신다" 고 하셨습니다.

저희 새교회에서는 귀하의 새로운 인생관광을 위하여 항상 기다리고 있습니다. 잘 지도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새교회 드림

20. 예수 못 믿을 자의 형편과 권면 목록으로


전도자가 전도를 하여 보면 여러 차례 권면을 하야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믿지 않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대략 무슨 핑계를 대는 것일까요? 제가 아는 경험대로 말씀드리면,

1. 차차 믿겠다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마치 자신이 미래의 역사를 아는 듯이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차차 믿겠다󰡓는 것은 자기가 죽기 전 어느 기회에 믿겠다는 말인데 그가 어떻게 그런 기회가 또 있을지 안다는 것입니까? 생명과 시간과 역사와 기회는 하나님의 주관에 달려 있습니다. 약4:4에서 (내일을 예측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하셨습니다.

2. 돈을 벌어 놓고 믿겠다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에 처음 나왔다가 헌금을 자주 해야 하는 형편을 알고는 다시 나오지 않으면서 󰡒돈을 벌어 놓고 믿겠다󰡓 하였고, 또 어떤 이는 생활고로 인하여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하지만 󰡒재물 얻는 능력을 주시는 이가 하나님이라󰡓하셨고(신8:18), 또 잠8:18에서도 󰡒부귀와 장구한 재물이 하나님께 있다󰡓고 하셨으니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물질의 축복을 받으려 하지 않음은 퍽 잘못된 일이라고 깨우쳐 주셔야 합니다(마6:33).

3. 거리끼는 생활 때문에 못나온다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에게 의원이 필요하다󰡓(마9:12)하시고 죄인들(세리)과 함께 생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죄악의 세상에 오신 것 자체도 그와 같은 뜻이 있습니다. 그런고로 교회는 의인이 나오는 곳이 아니며 환자같은 죄인들이 나와서 하나님의 은혜로 범죄근성을 치료받으셔야 하며, 인간의 힘으로 죄를 물리칠 수 없음을 아셔야 합니다(엡2:1). 따라서 자기 힘으로 죄를 물리친 다음에 교회에 나오려는 것은 잘못입니다. 어떤 분이 담배를 끊지 못한 채 교회엘 나왔다가 저절로 담배가 역겨워져서 못피우게 되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죄에서 건져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꼭 믿으라(시23:3-4)고 권면하셔야 할 것입니다.

4. 󰡒예수믿는 사람들이 잘하는 것 없더라󰡓 하면서 자기 행동보다도 못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것 뿐만 아니라, 자기 주변에서 빛이 되지 못하는 연약한 신자의 생활만 본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그는 경건한 신자와의 교제를 가져보지 못했고, 그의 주변에는 빛되지 못한 신자들의 덕을 세우지 못하는 형편 때문에 손해를 본 모양입니다. 이런 사람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예수님을 믿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돌 같이 완악한 자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마3:9;겔36:26;행9:1-5). 그에게는 결정적인 변화의 능력이 필요하며, 또 성도의 빛된 생활이 비춰져야 할 것입니다.

5. 바빠서 못나간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꼭 바쁘다면 안바쁜 기회에는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빠서 못나오는 사람은 바쁘지 않을 때에도 역시 나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바람은 바쁘다는 것 자체를 생활의 취미로 삼거나 그것을 인생의 보람으로 아는 사람입니다. 인생의 보람은 바쁜 일을 하는데 있지 않으며 또 예수 믿는 일 이상 더 귀한 일이 없음을 일깨워 줘야 할 것입니다.

6. 누구의 반대나 핍박 때문에 못나오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자신의 영생과 행복 문제를 타인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것과 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음을 알리셔야 할 것입니다.

7. 󰡒예수 믿는 사람이 더 잘 사는 것 없더라󰡓하지만 잘사는 것은 영생하도록 사는 것입니다.


21. 개인전도 상식(요1:45-50) 목록으로


전도와 개인전도, 이 제목은 생소하지도 않으면서 또 친숙한 분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전도용어가 친숙하지 못한 이유는 아직도 전도와 개인전도의 사명의식에 잡혀서 사는 성도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혹 이 시간을 통해서라도 전도의 사명을 깨달으시고 전도의 지식을 터득하시며 계획을 수립하여 전도하는 성도가 되신다면 큰 발전을 이룩하실 것입니다. 전도에 대한 사명을 가지고 계십니까? 전도하는데 필요한 지식을 구상하여 보셨습니까? 또 다방면으로 전도를 시도하여 보셨습니까? 이상의 일들을 실천하지 못했다면 그것을 실천케 하려는데 이 글의 목적이 있습니다.

1. 먼저 성경말씀을 살펴봅니다. 요1:35-50 말씀은 개인전도에 관한 모범을 보이신 대표적 말씀입니다.

1) 이 말씀에는 네 사람의 개인전도 모범이 나타나 있습니다.

① 세례요한이 자기의 제자 요한과 안드레로 하여금 예수님의 제자가 되도록 권유하여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자기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할 때에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하니까, 그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 계신 곳을 가보고, 또 그와 함께 거한 다음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② 안드레는 세례요한의 전도로 예수님을 알게 된 다음, 이어서 자기의 형제 시몬에게 예수님의 인도하였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은 그를 영접해 주시면서 그에게 베드로(게바)란 이름을 더하여 주셨습니다(눅5:4-).

③ 예수님이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안드레, 베드로와 한 고향사람인 빌립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하여 그를 맞이하셨고,

④ 빌립은 자기의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야가 바로 나사렛사람 예수라고 소개하였습니다.

나다나엘은 처음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사람이 나오겠느냐?󰡓하면서 의심하였으나 빌립의 와보라는 독촉에 못이겨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예수님이 그를 영접하시고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다󰡓고 하시면서 그에게 확신을 주셔서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2) 이상 네 사람의 네 차례의 개인전도에서 나타난 특징은,

① 전도자가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을 소개한 점,

② 자기 측근자에게 소개한 점,

③ 󰡐와 보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전도한 점,

④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힘있게 인도한 점,

⑤ 예수님을 만나자 예수님이 이끌어 믿음에 머물도록 하신 점등을 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특징을 저희들도 잘 응용하여 전도의 열매가 있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이 전도의 사명을 교회와 성도에게 주셨습니다.

1) 교회가 이 전도의 사명이 있는 이유는,

①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딤전3:15). 터는 본거지를 의미하고 기둥은 세우는 것이므로 교회는 진리를 확산시키는 근거지가 되어야 함을 뜻하고,

② 계1:20에서 교회를 촛대라고 하였습니다. 마5:15에서 󰡒등불은 등경 위에 두어 사람에게 비취게 하여야 한다󰡓한 것은 역시 교회의 전도사명을 말씀하심이요,

③ 골1:24에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해(복음전파로 교회가 확장되게 하기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한 것과,

④ 최초부터 예루살렘교회가 전도의 사명을 다하다가 핍박받은 사실이나(행8:1), 또 안디옥교회가 선교사명을 시작한 사실(행13:1)이 이를 증명하여 줍니다. 따라서 교회의 사명은 진리를 보존하는 것과 증거하는 것과 가르치는 사명이 있음을 인식하셔서 교회가 그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협력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성도에게 전도의 사명을 주신 예는,

우선 마28:19에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가르치라󰡓하였고, 살전2:5에서는 󰡒주께로부터 복음을 전할 부탁을 받았다󰡓하였으며, 막1:38에서는 예수님께서 친히 그 일로 인하여 오셨다 하시고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특히, 복음사역자에게 전도인의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딤전4:5). 그러므로, 구속함을 받은 성도가 어찌 그 사명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3) 하나님께서 자기의 구원사업을 성취하심에 있어서 이 전도의 사명을 왜 성도들에게 맡겨 주셨을까요? 여기에는 여러가지의 목적이 있으니,

① 내용을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하면 믿을 수 없기 때문에(롬10:13) 듣고 믿게 하시기 위함이요(마13:23;15:10),

② 복음은 기쁨의 좋은 소식이므로 전도로 나타내기를 원하셨기 때문이요(롬10:15;딛1:3),

③ 이 진리에 관하여는 천사도 흠모하는 것인 바 성도에게 주신 특권이기 때문이요(벧전1:12),

④ 성도가 전도하는 중에 은혜를 받게 되고(기도, 성경지식, 보호, 능력) 열매를 잘 맺을 때에는 하늘의 상급이 따르기 때문입니다(단12:3;딤후4:7-8).

따라서 이 사명은 하나님이 교회와 성도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개혁파교회에서는 국교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복음전파의 특권을 교회에게 주셨으므로 일반은총에 속한 불신앙의 권세자들에게 위탁될 수 없고, 오직 교회와 성도만이 전도의 빛된 사명을 감당하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3. 전도의 방법을 연구하기 전에 먼저 필요한 것은 자신이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1) 마15:14에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하였으니, 전도자는 적어도 신앙생활에 눈을 뜬 자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교리지식과 생활의 덕을 의미합니다.

2) 마5:6에서 󰡒너희의 착한 행실을 빛처럼 나타내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였으니 이렇게 전도자는 신앙의 지식과 행실의 덕이 어느정도(빛될 만큼) 갖추어져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귀하는 전도자의 식견과 행실의 덕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기에 자신감이 없으면 전도의 의욕도 일어나지 않으려니와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만일, 전도자의 자신감이 부족하다면 신앙의 연단을 더 많이 쌓으셔서 의욕과 능력이 생기도록 하셔야 합니다. 많은 교회들이 이에 대한 훈련을 시킨다고 합니다.

4. 전도자가 되는 문제를 위하여 어떤 과정으로 연단을 받으셔야 할까요?

1) 구속의 은총에 감격해지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입니다.

2) 구원의 은혜가 만물보다 크다는 사실을 실감하시고, 스스로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받은 구원은 은혜가 실감나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3) 예수님의 뜻(전도하라는 명령)을 따라 살고자 하는 목적의식이 뚜렷하여야 합니다. 전도하는 일이 모든 일보다 귀한 것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으면 전도제일주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4) 상대방의 믿음없는 상태를 불쌍히 여기시고, 불신자의 영혼이 지옥가는 것을 민망하여 볼 수 없다는 충격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쯤되면 전도의 사명이 소생할 것입니다.

5) 주 안에서 내가 죽고, 내 안에 주님이 사는 자기인격의 변화를 점검하셔야 합니다(롬7:9). 산 나무는 재목이 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인간소욕이 죽은 자를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마10:37-39). 전도는 구령사업이므로 인위적인 힘으로는 되지 않음을 아셔서 인간의 수단을 앞세우지 말고, 또 무능함도 개의치 말고 기도에 힘쓰시면서 겸손히 봉사하셔야만 합니다.

6)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위하여 상당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7) 교회에서는 물론 믿지 않는 세계에서도 덕을 세우며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덕을 세우지 못할 때에는 한 사람을 전도하고 두 사람을 잃기 쉽습니다. 따라서, 말로 덕을 세우는 일, 봉사로 덕을 세우는 일이 중요하며, 인내로 덕을 세우고, 긍휼로 덕을 세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러한 것에 덕을 세울 자신이 없으면 힘있는 전도도 못할 뿐 아니라, 배나 더 악한 사람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마23:15).

8) 이상의 덕을 갖춘 다음에 성경의 지식을 지녀야 합니다. 성경의 지식이 많을수록 좋으며 최소한 전도에 필요한 지식은 있어야 합니다. 지식이 없다 하여 전도를 전혀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식이 없으면 가르치지는 못하여도 와보라(요1:39,42)고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고로 자기 수준에 맞추어서 인도하는 전도, 설득하는 전도, 가르치는 전도를 행하면 됩니다.

9) 전도자가 갖추어야 할 성경지식은 하나님의 존재 증명, 인간의 연약과 구원의 필요를 설명, 심판에 대한 증거,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즐거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증거, 핵심적인 요절지식, 십자가도리에 대한 설명, 인생의 허무성을 증명하는 말, 기독교의 본질을 말할 수 있는 지식, 교회가 순결치 못함에 대한 설명등을 할 수 있으면 참 좋을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취지로서 전도자의 자격을 점검하도록 유의하십시오.

5. 전도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1) 누구나 할 수 있는 약식방법으로는 위 본문의 방식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2) 전문적인 방법을 시도함에 있어서,

① 씨뿌림처럼 전도하는 법(막4:3-8) : 이것은 많은 자녀의 생산으로 성도를 만드는 일입니다.

② 무언의 감화감동으로 빛과 소금처럼)마5:13-14), 누룩처럼(마13:33) 역할하는 법

③ 길에서나, 또는 호별방문으로 증거하고 설득하는 법(마10:12;행18:26-).

④ 기관이나 단체 활동(의료, 교육, 봉사)으로 전도하는 법(마13:31,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면)

⑤ 대중집회를 통하여 결심자를 얻는 법(눅12:1;요6:10;행3:41, 많은 결심자들이 따름)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에 따라 교회마다 전도의 어망을 쳐서 열매를 얻습니다만 이시간의 주제는 개인전도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6. 귀하가 지금부터 개인전도를 결심하고 시작하시려면,

1) 우선 특별기도를 시작하십시오. 전도하지 않을 때의 기도생활과 전도과제를 가졌을 때의 기도생활이 같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꼭 특별기도, 전도성취를 위한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저는 기도의 활성화를 통하여(금요철야기도회) 새신자가 생기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2) 가장 친교가 임의로운 사람을 선택하십시오.

자주 만나서 대화가 가능하고 친교할 수 있으며 협동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여 전도의 목적으로 접근하여야 합니다. 이때에 너무 많은 사람을 택하지 마시고, 두세 사람 정도로 택하여 시행하고 전도를 성취하였으면(결심하고 교회에 나오는 것을 뜻함) 그때에는 교회차원에서 살피게 하고 또 다른 사람을 선택하십시오. 이때에 너무 완악한 사람보다는 부드러운 사람을 선택함이 더 좋습니다.

3) 그 대상에게 부드럽게 친교하면서 인격적인 겸손으로 봉사하고, 사랑하고, 인내로 양보하며, 진실하게 접대하고, 축하해 주고, 상당기간 관심을 가져서 상대방이 그 전도자를 존경할 만하게 하여야 합니다.

이 때에 전도자는 무게있고 성실한 인격자로 행동하여 상대방의 인정과 존경을 항상 받아야 합니다. 존경받지 않는 자의 말은 권위가 없습니다.

4) 전도대상자가 인간의 연약을 느낄 때를 잘 선용하여야 합니다.

예를 들면 병들었을 때, 사업이 잘 안될 때, 연고자가 세상을 떠났을 때, 기타 괴로운 일을 당하였을 때에 소망적인 대화를 건네며 믿음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었더라면 질병을 이길 수 있고, 예수를 믿었더라면 죽어도 소망을 가질 뻔하였다고 말함으로 상대방이 믿지 않았음으로 인하여 상당한 불이익을 당하는 인식을 가지게 함으로써 믿음을 가지지 못한 것을 후회할 수 있도록 유도 권유하는 것입니다.

왕하5:3에서 󰡒우리 주인 나아만 장군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더라면 문둥병을 고쳤을 것입니다󰡓라고 한 말처럼, 󰡒당신이 예수를 믿었더라면 이 환난을 잘 극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함으로 믿음생활을 행복을 일깨워야 할 것입니다.

① 인간의 연약을 일깨워주는 것을 전도내용의 핵심으로 삼아야 합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요, 피조물이요, 연약한 존재라 의지의 대상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것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② 의지의 대상이 창조자 하나님이심을 알리고, 약자가 강자를 의지하여야 할 것을 알리고,

③ 인간의 모든 고난과 사망이 죄로 인하여 온 것임을 말하고,

④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죄사함받고 영생얻는 것이 큰 복임을 알려 주셔야 합니다. 사람이 답답한 일이 없을 때에는 남의 말이나 종교적 훈시를 잘 듣지 않지만 어려운 일을 당하였을 때에는 그 만큼 겸손해져 있기 때문에 일단 거절하지 않고 들음이 상례입니다.

일단 어려운 일을 당하였을 때에 전도의 공세를 자연스럽게 취하면 처음에는 무심하게 들어 넘기지만 다음에 또 그런 일을 당하였을 때에는 과거의 그 말을 다시 생각하여 보게 되는 것입니다.

7. 전도의 대화를 어떻게 할까요?

전도자와의 친교가 이루어지면 상대방이 전도의 대화를 은근히 원할 때도 있으나 어떤이는 항상 부정적인 견지에서 많은 부조리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 경우 대답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바빠서 못믿겠다, 가난해서 못믿겠다, 의복이 없어서 못나간다, 헌금이 우려된다, 집안에서 반대한다, 술이나 담배나 죄를 못끊는다, 예수 믿어도 성공하지 못하더라, 심지어는 고모가 반대한다, 제사지내는 것이 문제이다, 절에 이름이 올라 있다는 등등의 핑계를 대면서 애로사항이나 회피하기 위한 구실을 말하는 경우가 있으니, 이때에 항상 소망적인 답변을 잘 하여야 합니다.

1) 바쁘다는 문제는 칠일 중의 하루는 건강상 휴식함이 절대 필요한 것임을 역설하여야 하며,

2) 가난한 문제는 가난을 하나님의 은혜로 극복하기 위하여 복받으려고 믿는다는 말을 하여야 하고(잠8:17-18),

3) 의복문제는(자신도 검소한 의복을 입으면서) 사치를 배제하도록 말하여야 하며,

4) 헌금은 일절 강요하지 않음을 말하고, 기회따라 몇 차례 헌금을 내줄 수도 있어야 하며, 택시를 태워 인도하고,

5) 집안의 반대는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역설하고, 기독교문화의 발전을 선전하여야 하고,

6) 술, 담배, 죄의 문제는 병자에게라야 의원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여야 하며(눅5:31),

7) 예수 믿어도 성공하지 못하더라는 것은 그들이 잘못 믿기 때문이며, 또 인간의 성공이란 자기의 소원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임을 알리셔야 하며,

8) 친척이 반대한다는 문제는 친척이 자신의 행복과 구원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말로 구애받지 말도록 용기를 주셔야 하며,

9) 제례문제는 기독교식 추도예배가 있다고 말하여 의식을 바꾸게 할 것이요, 결혼예식은 구식에서 신식으로 바꾸면서 왜 제사의식은 못바꾸겠느냐고 하십시오.

10) 절에 이름이 있는 것이나 귀신이 노여워할 것은 그 잡신들이 하나님만 못하므로 아무 힘이 없으니 염려하지 말라 하시고, 불교나 다른 이방종교국가들이 잘살지 못하는 것들을 예로들어 설명하십시오.

완고한 자의 부정적 질문을 긍정적으로 답변하여 주는 화법을 많이 익히셔야 개인전도에 힘낼 수 있습니다. 전도자가 좀 더 유력하면 철학적인 견지에서 하나님의 존재증명이라든지, 인생의 의미라든지, 천국과 지옥의 필연성이라든지, 기독교가 건설적인 사회건설에 이바지한 사실들을 들어서 더 실감있게 전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8. 전도자의 자세와 어법에 대하여 주의를 요하는 것은,

1) 항상 기쁘고 밝은 표정을 가질 것

2) 말이 많은 사람이란 인상을 주지 말 것

3) 남의 흠을 말하지 말 것

4) 매사에 비판적인 자세보다는 긍정, 소망, 건설적인 입장을 가질 것

5) 억지로 시도하지 말 것

6) 자기의 자랑을 피할 것

7) 인간을 차별하지 말 것

8) 절대로 쑥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지 말 것

9) 피전도자의 무리한 요청에 함부로 말려들지 말 것

10) 엉뚱한 질문에도 당황하지 말고, 모르는 것은 교역자에게 문의하여 답변하여 주겠다는 친절까지 보여주어야 합니다.

때로는 성경을 못믿겠다든지 성경의 내용이 비과학적이라든지 천국이나 지옥, 이적을 못믿겠다는 등으로 퍽 고상한 질문을 던질 수도 있으므로 이럴 경우에 대한 답변도 잘 구상해 두어야 합니다.

9. 그리고, 전도를 받을 수 없는 대상에게나 이 전도가 마지막이라고 생각될 때에는 , 꼭 구원의 도리, 요3:16이나 행16:31 등 구원의 핵심내용(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우리의 구세주시라, 그의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다)을 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눅23:43).

10. 여러 사람의 구원체험을 많이 들려줄 수 있도록 예수를 믿고 행복하게 사는 일들을 말씀하시고, 자신의 생활부터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자처럼(요8:32) 항상 기쁨과 감사와 희망을 가지는 생활을 보여 주십시오. 전도자는 자신의 피곤함을 보이면 결코 덕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각종 신앙행사에의 모임을 권유할 때 억지로 이끌지 마시고 식사시간이나 바쁜 시간에 방문하지 마시며, 또 번거롭게 간섭하지도 마시고, 자연스러운 형편에서 서서히 신앙모임에 동화되도록 하십시오. 예를 들면, 우선은 주일낮예배에 참석하도록 권유하시고, 또 교회에서 새신자모임과 친교, 회식시간이 있으면 우선 참석하여 초신자 교육을 받도록 권유하십시오. 각 기관의 회원이 되는 것과 구역예배에 부담스럽게 모이게 하는 것보다는 서서히 참석할 수 있게 하십시오.

초신자는 정말로 어린아이를 키우듯 하셔야 합니다. 눈치와 정성과 관심이 세심하여야 하고, 신앙이 속히 자라지도 못하며, 또 신앙이 속히 자랄만한 열심도 내지 못하며, 또 그에게 신앙지식을 속히 공급할 만한 기회가 없으므로 서서히 자라는 것이 정상입니다. 신앙이 유력한 성도일수록 초신자를 이해하는 마음이 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답답한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고 인내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서서히 믿음에 동화되도록 하십시오.

초신자가 자신의 권유에 의존하여 교회에 출석하였을 때에는 그와 비슷한 수준의 초신자를 한두 사람쯤 친구로 맺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연령의 계층을 따라서 동년배들끼리의 친목이 더 잘되는 것처럼 초신자도 초신자와 어울리려면 믿음행위에 격차감을 주어서 동화되지 못하는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잘 감안하여 친교에 간격이 없도록 상당기간(2-3년)을 그 후견인이 되어 주어야 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11. 전도를 받은 사람이 스스로 자발적인 소원을 가질 때에는 적극성있게 그 동반자가 되어 주셔야 합니다.

예를 들면, 새벽기도에 나가고 싶은데 혼자 가기 싫다든지, 부흥회같은 특별집회에 가고 싶다든지 할 경우에 꼭 동행하여 주시고 대접하면서 그의 신앙을 키우고 은혜받게 하는데 최선을 다하십시오.

이것은 마치 물고기가 낚시를 물려고 할 때에 낚아채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은 전도를 고기잡이에 비유하였고, 그물로 잡는 것을 단체전도라 한다면 개인전도는 낚시로 고기를 잡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전도를 받은 자가 신앙의 싹을 보일 때에 즉시 기회를 포착하여 결심하게 하고, 교역자나 다른 성도 사이에서 입증이 되도록 확인시키는 일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성도의 주위에 신앙의 장애물이나 훼방건이 있는가를 살펴서 최대한 그것을 경계하도록 지도하여야 합니다.

12. 어떤 초등학교 여교사가 만혼기에 같은 교육공무원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 남편은 진실한 신앙인이었지만 시골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나 집안 어른들을 전도하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시간적으로 전도할 기회가 적었겠지요. 그런데, 결혼한 후 여름방학,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시골교향에 가서 거주하는 동안 그 부인이 예절바르고 어른 섬기며, 봉사하며, 대접하고, 형제의 일을 자기의 일보다 더 관심있게 여겨주고, 매사에 칭찬받도록 행하니까, 󰡒새며느리가 믿는 예수를 우리고 믿자󰡓하여 그 집안의 어른들이 단체로 감화를 받고 믿게 된 사실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온 집안을 믿음으로 인도한 좋은 실례(實例)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전도하는 것도 퍽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남편도 아내를 인도할 책임이 있지만 믿지 않는 남편이 더 많은 실정이므로 많은 아내들이 남편전도에 사명을 가지고 결심하고 시작하셔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의 심리적 자세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심리적 자세를 조절하면 반드시 그의 생활도 통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하고, 감동받도록 언행을 나타내는데 감동을 받지 않을 남편이 어디 있겠습니까? 경건한 부인이 기도하며 계획적으로 남편을 전도하여 성공한 사례가 많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부인이 남편을 믿게 하기 위하여 매일 발을 씻어주라는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먼저 빛이 되고, 다음에 누룩의 역할을 하여 보십시오. 사람이 완악하게 버티려 하여도 하나님이 그를 꺾어 주실 것입니다.

귀하는 개인전도에 자신이 있습니까? 자신을 좀 더 키우시고, 결심하고 시작하여 보십시오. 주께서 결심하는 자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우선 같이 사는 가족과 이웃, 형제, 친척, 친구들을 상대로 꼭 결심하시고 시도하여 보십시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고 하였습니다(시126:5-6).

22. 구역활동에 대한 지식(히10:23-25) 목록으로


교회마다 구역을 정하고 각 구역마다 구역장, 권찰, 구역원가정을 할당하여 갖가지 책임을 이행케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구역원들은 구역활동의 책임수행을 위한 지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1. 구역활동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교회에 성도수가 많으면 교역자가 일일이 살피지 못합니다. 교역자의 사명은 교인을 보살피고, 가르치고, 서로 친교하게 하고, 봉사에 참여하게 하는 것인데 이 네가지 사명을 교역자 혼자서 할 수 없으므로 구역별로 분업활동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네가지 활동은 교회부흥과 교인관리에 주요방법이 됩니다.

2. 구역은 대략 어떻게 정함이 좋습니까?

한구역의 가정수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 7-8가정과 초신자가정(심방예배를 못드리는 가정) 5가정 정도가 알맞습니다. 그 이유는 교역자의 하루 심방분량에 알맞고 관리범위가 적당하기 때문입니다.

구역원을 모으는 표준은 서로 친한 연고자별로도 할 수 있고, 지역별로도 할 수 있고, 직분자와 초신자를 고루 안배하는 방법으로도 할 수 있지만 모임의 편의를 주는 교통관계가 가장 긴요하므로 우선 지역단위를 기준으로 그 지역원 중에서 독립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타지역의 구역장과 권찰을 안배하고, 그 외에 연고자는 초신자에 한하여 특별히 원하는 성도만을 포함하도록 합니다. 전체의 성도가 다 잘알고 친교하여야 하므로 지역을 초월하여 자주 구역을 개편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나 교통의 불편과 생소한 교인을 교제하는 부담을 지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서 그러한 방법은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여러 성도님들은 성숙한 신앙 아래서 모든 계등에 대하여 성도의 광범위한 친교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셔야 할 것입니다.

3. 구역원들의 할 일이 무엇입니까?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네가지 사명이 있으니,

1) 교인을 보살핌입니다. 우선 주일예배에 못나온 식구가 있으면 권찰님이 알아보시고, 부득이한 출타이면 다음주일에 출석할 것을 기다릴 수 밖에 없지만 무슨 연고로 교역자의 심방과 기도를 필요로 하면 즉시 전도사님께 보고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교역자와 시간을 정하여 같이 심방하시면 됩니다.

2) 성경과 신앙생활의 가르침입니다. 성도는 자기 이웃 앞에서 빛을 발할 사명이 있습니다. 빛이란 그리스도의 지식과 생활입니다. 그것을 알기 위하여 구역단위의 성경공부와 신앙생활을 배우고 숙달하는 것입니다. 우선 구역장님이 말씀을 증거하시니까 성경을 배우게 되고, 가족적 분위기의 성경공부는 배움의 효과가 큽니다. 또 이웃간에 빛을 내도록 생활하는 연단도 숙달할 수 있습니다.

3) 성도의 친목입니다. 모임이 있으면 자동적으로 친목은 되게 마련입니다. 구역예배의 모임은 예배와 성경공부가 있기 전에 먼저 친목으로 성도를 기쁘게 합니다. 친목은 교회출석에도 힘을 주며 신앙생활의 용기도 줍니다. 친목만 잘되면 그다지 애쓰지 않고 교훈을 많이 하지 않아도 믿음을 잘지키는 것을 봅니다.

4) 단결봉사입니다. 구역적으로 봉사할 일이 있다면, 전도, 구제, 헌신하여야 합니다. 구역가정의 이웃에는 많은 연고자와 전도의 대상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전도하면 좋은 효력을 거둘 것이요, 또 전도의 방법으로 이웃을 구제하고 구역이 단합 협력하여 교회를 섬김이 헌신입니다.

이 네가지만 잘하시면 그 구역은 발전할 수 있음을 확신하십시오.

4. 구역예배는 어떻게 드려야 합니까?

지금까지 구역예배를 잘 인도하신 줄 압니다. 그러나 몇 가지 상식을 더 갖추시면 더 좋은 에배를 드리시고 더 많은 은혜를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1) 우선 모든 성도는 모임에 힘을 쓰십시오. 누구를 위해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복되기를 위하여 모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심자에게 은혜를 주시고(대하19:9) 합심기도가 힘이 있는만큼(마18:19) 합심기도로 복받기 위하여 모이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것이 힘드는 가정은 그 만큼 믿음으로 은혜받는데 힘드는 가정입니다. 얼마나 두렵고 섭섭한 일입니까? 매일 새벽기도를 나오는 성도에 비하면 구역단위의 모임에도 잘 나오지 못하시는 식구가 얼마나 미약한 편입니까? 그런고로 모임에 각별히 힘쓰시고, 또 사업상 불가피한 경우는 가능한 시간을 이용하여 모이시기를 바랍니다. 구역원의 모임의 열심은 권찰의 사명을 스스로 감당하는 일도 됩니다.

2) 자기집에 모이는 구역예배를 복된 일로 여기십시오. 자기집이 예배의 처소가 되고 합심기도의 장소가 됨은 복된 일입니다. 법궤를 보관하고 복받은 오벧에돔(삼하6:11-12)이 있지 않습니까? 하물며 자기집에서 합심예배를 드린 일이겠습니까?

어려운 가정이 접대문제로 꺼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연한 염려일 것입니다. 성도가 손님을 접대하는 일은 사명이고(롬12:13), 한번 모임에 물한잔만 대접하여도 5천원 이상 1만원을 쓰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려운 고비를 꼭 넘기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는 자에게 흔들어 넘치게 주신다 하셨고(눅6:38), 소자에게 준 냉수 한 그릇도 상급을 주신다(마10:42)고 하셨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마지막 양식으로 선지자를 대접하고 물질의 기적으로 흉년을 이긴 일도 있지 않습니까?(왕상17:11-14)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믿고 몇 차례만 실천하여 보시면 용기가 생기고 보람을 느끼며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3) 모임의 시간을 엄수하시고 또 헤어지는 시간(마치는 시간)도 엄수하십시오. 시간을 지키는 것은 문화인의 생활일 뿐만 아니라 전체 가족의 금같은 시간을 절약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꼭 10분전에 모여 정시에 시작하시고 일정한 시각에 마치십시오.

전체적인 시간의 안배와 소요는 모임의 준비와 기다림에 10분, 예배에 25분, 친교에 35분을 합하여 1시간 10분을 쓰심이 이상적일 것입니다. 헌금을 포함하는 찬송 2곡 7분, 헌금기도를 포함하는 기도 두번에 8분, 설교에 10분을 소요하면 25분의 예배가 되고, 준비된 음식을 드신다면 35분으로 넉넉합니다. 공과의 내용이 긴데 어떻게 10분에 설교하느냐고 하시겠지만 설교자가 공과내용의 취지를 알고 핵심을 일깨우는 설교를 연습하시면 잘될 수 있고, 그것이 오히려 은혜될 수 있습니다. 10분설교의 분량을 글로 적는다면 충분하고도 넘치는 내용이 담길 수 있습니다. 저도 설교를 길게 할 때가 있습니다만, 한정된 설교시간에 설교를 일정한 규모없이 이끌어 나가는 것은 크게 은혜를 손상한다는 점을 유의하셔야 하겠습니다. 시간이 없을 때에는 사도신경의 절차나 찬송가의 절수를 생략하여도 그것을 은혜삭감하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어느 특정인이 시간이 많아 긴 예배, 긴 찬송, 긴 기도를 은혜있다고 할지 모르나, 전체 성도의 형편으로는 간단한 것이 더 유익할 것입니다.

4) 구역장님은 설교를 부단히 준비하시고 공부하시고, 연습하셔서 설교자의 긍지와 특권의식을 가지고 멋있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설교는 예술적 기술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5) 헤어지기 전에 다음 예배의 준비(장소)와 연고있는 구역원의 안부를 묻고 기도하시는 일과 전도의 대상을 살피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구역부흥은 곧 교회의 부흥입니다.

5. 구역장님과 권찰님에게 드리는 부탁

바울사도는 자기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긴다고 하였습니다(롬11:13). 모든 직임이 다 영광스럽지만 구역장과 권찰의 직임은 교역자의 대리자라는 점에서 존귀합니다. 일반성도가 교역자를 흠모하고 존경함은 그 직임이 고상하기 때문인데 구역장과 권찰의 직임은 교역자와 꼭 같은 사명을 대리로 이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구역장님은 천사가 흠모하는(벧전1:12) 성직을 쉽게 받은 것으로 여겨 감사하시고 교역자 대행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충성하셔야 할 것이며, 권찰님도 마찬가지로 무급여전도사나 권사의 직임을 이행하는 것으로 여겨 긍지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요한 웨슬레는 말하기를 󰡐세계는 나의 교루󰡑라고 했는데 구역장과 권찰님은 자기의 구역이 바로 자신의 교구가 되는 것이고, 이 구역들이 합쳐져서 교회를 확장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1) 구역장님이 유의하실 것이 무엇입니까? 목회자의 사명과 기질과 은사를 많이 닮으셔야 합니다. 구역원을 위하여 늘 기도하시고, 구역원의 가정이 평안 중 발전하기를 기도하시고, 연고가 있을 때 심방하며 연고를 신앙적으로 승리하도록 권면하시고, 꼭 교역자의 심정으로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교역자는 교회 전체의 신앙순결(성경적으로 믿고 생활하는 것)과 진리파수와 교인들의 균형발전을 아울러 소원합니다. 구역장님의 신앙이 목회자를 닮을 때 목회자의 마음에 부담을 덜고 유익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심방을 가실 때에 말씀이 필요하면 목사의 지도를 받아 가실 수도 있습니다.

2) 권찰님이 유의하실 일이 무엇일까요? 모든 회집과 행사에 연락을 잘하셔야 하고 심방을 주선하며 동행하셔야 합니다. 권찰님의 사명이 전도임은 말할 것도 없지만 심방이 그 전무이므로 심방지식 몇가지를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심방의 시간은 취침시간을 피하여 오전 8시경부터 오후 9시이전이 좋습니다. 낮에는 바빠서 밤에 만나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가급적 전화로 미리 예고하심이 좋습니다. 심방동행자는 남녀유별이 무관한 경우에는 혼자 가셔도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꼭 동행하시되 그 구역의 권사님, 집사님과 동행하시고, 젊은 남녀의 동반행진도 건덕상 피하심이 좋습니다. 혹 어떤 집의 초청이 있을 때에는 초청하는 사람의 숫자 이상을 넘지 않도록 하시고, 초청자와 초청대상을 의논할 경우에는 필히 그 가정과 관계가 가까운 식구를 선별하십시오. 이것은 결코 인간차별이 아닙니다. 심방하실 때에 선물을 준비할 경우도 있으니 이 경우네는 꼭 구역원 대표(구역장, 집사)들과 의논하여 준비하십시오.

예배를 마친 다음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하여 대화할 때에는 우선 심방한 집의 연고문제를 충분히 말하고, 다음에 구역전체에 관한 대화를 끝내시고 시간이 남을 경우에 한하여 일반적인 대화를 덕있게 꽃피우십시오. 때로는 다른 집 심방을 말하지 않은채 그 한집을 위한 심방처럼 침묵하심도 좋을 것입니다.

심방목적이 끝났으면 주저없이 일어서야 합니다. 한국사람들은 너무 인정이 많아서 들어오고 나오는 시간의 절차가 길어 시간을 낭비하는 바 시정하여야 합니다. 어느 가정의 심방에서나 신앙의 대상을 추적하여 전도의 대상을 삼는 일에 유의하셔서, 꼭 그 대상과 연고자, 연락자를 메모하여 교역자에게 알려주셔야 합니다.

3) 구역장과 권찰님이 함께 교역자가 되어 주신다면 교회는 큰 성장을 쉽게 이룩할 것입니다.

6. 구역예배 시범설교(공과 참조 요약)

제 35과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

다같이 누가복음1:26-38을 교독하시겠습니다.

(교독이 끝난 다음) 오늘 배우실 공과의 제목은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입니다. 공과를 보니 오늘 공과 제35과부터 제39과까지는 성경에 나타난 귀한 여인들에 관한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에 대한 내용을 많이 알고 계시겠지만 특별히 이 시간에는 마리아의 순종을 배우겠습니다. 즉 마리아가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하였으나 세상은 그 사실을 알아주지 않았고, 음행한 여인으로 인정되면 큰 수치와 위험이 따르게 되지만 마리아는 이 위험하고 수치스러운 사실을 알면서도 그 수치와 위험을 잘 참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한 사실을 배우려는 것입니다.

이제 읽으신 신약성경의 누가복음은 주전 4년경에 갈릴리 땅 나사렛에서 일어난 실제사건을 주후 60년경에 누가라는 의사가 로마에서 성령님의 감동으로 기록한 말씀입니다. 본문말씀에는 구약시대부터 예고하신 하나님의 구속사업을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시작하시는 기적의 장면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본문에 보시면, 26절에 󰡐가브리엘󰡑이란 말씀이 있는데 이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좋은 뜻과 좋은 소식을 전달하는 천사장의 이름이요, 27절의 󰡐정혼한 처녀󰡑라는 것은 약혼만 하고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의 여인으로 임자가 있는 여인인지라 결혼한 사람과 같은 구속력을 가지기 때문에 그와 불륜관계를 맺는다면 간음죄가 충분히 성립됩니다. 31절의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여호수아를 희랍식 발음으로 나타낸 것으로 구원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그리스도󰡑란 이름도 역시 구원자란 뜻이 있는데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예수님을 그 인성의 대표적인 이름으로, 그리스도를 신성의 대표적인 이름으로 사용하였습니다(행5:42;18:5).

32절의 󰡐다윗의 위󰡑라는 말씀은 다윗의 왕좌란 뜻으로 예수님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기 때문에(마1:1) 이는 예수님의 구원적 통치와 영원한 왕권을 상징합니다.

성경에는 중대한 이적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흔히 병고침의 이적만을 기대하지만 하나님이 구원사업을 이루심에 있어서 피하지 못할 가장 큰 이적은 예수님께서 인간부부의 결혼이 없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신 사실이요, 또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신 일이요(오셔서 기적을 나타내심과 동시에) 자신이 부활승천한 일입니다. 이상의 이적들은 인생을 구원하는데 필요한 불가피한 능력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능력에 의하여 잉태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마리아는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하는 신앙고백과 함께 순종으로 그 고난을 감수한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마리아의 경건성을 꼽는다면,

1) 하나님의 뜻(동정녀에게서 메시야를 출생시키는)을 믿는 신앙이요,

2) 하나님의 뜻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요,

3) 하나님의 뜻을 이룸에 어떠한 고난이 있어도 인내로 감수하며 이를 은혜로 여겨 감사하고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도 이 말씀에서 마리아의 믿음과 순종과 희생을 본받으셔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마리아를 자기의 거룩한 사역에 쓰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어떤 일에 쓰시든지, 󰡒아멘, 주 뜻대로 봉행하겠습니다󰡓하고 순종하며 받드시는 성도님들이 되셔야 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교훈을 위한 기도, 구역발전, 유고가정을 위하여 간단히 기도하십시오).








四. 신앙의 초보자에게 드리는 말씀

23. 초보적 신앙생활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목록으로


초신자가 자신의 믿음성장과 형통하는 복을 위해서 그 방법을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위 문제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본인의 신앙경험과 은혜받은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유년시절에 수전(헌금)을 들고 유년주일학교에 나간 일과 중학생 때에 어른예배에만 참석하다가 목사님과 친구의 권유로 학생회에 나갔고 그 때에 새롭게 출현된 부흥강사들의 안찰기도란 것이 있어서 좋은 줄 알고 목사님의 추천을 받아 안찰기도를 받았으나 아무런 위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자신의 진로문제가 염려되어 더 열심있게 하나님께 기도로 구하고 애를 써보았으나 결국 진학의 길이 막힌채 집에 머물게 되었고, 그때부터 교회를 섬기는 일에 미친듯이 뛰었습니다.

고향교회에서 청년회 주일학교등을 앞장서서 봉사하였고, 또 직장따라 도시에 나가서도 일꾼없는 약한 교회를 찾아가서 역시 많이 봉사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면서도 말씀의 감화를 크게 느꼈거나 구속의 은혜에 대한 감격을 느끼지 못하고, 교인으로 교회만 섬기면 충성된 일로 알고 행하다가 직장에서 해고되어 고향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고 나를 인도하심에 대하여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 후 군에 입대하지 6개월 전 직장에서 해고되어 고향에 간 것이 은혜받는 동기가 되었는데 기도하는 전도사님으로부터 새벽기도를 권면받고 심령에 느껴지는 뜨거운 은혜가 있기를 바라서 새벽기도를 결심하고 힘썼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를 제일 먼저 나가고 가장 늦게 나왔습니다. 약 60여일이 지나던 어느 날 새벽에 찬송을 부르는데 저절로 눈물이 흐르면서 은혜에 감격하고, 죄가 두려우며 십자가의 은혜가 감사하고, 주님의 그 고난이 바로 제 앞에서 당하시는 것 같은 깨달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성경말씀의 맛을 알게 되어 성경읽기를 더욱 힘썼습니다. 또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확신이 생겨서 군에 입대할 때에 돈을 가지지 않고 계속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다녔는데 하나님이 순간순간 나의 길을 유익하게 인도해 주심을 깨닫게 되었으며 여전히 성경읽기와 기도생활을 계속하면서 지금에 이른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에는 하나님이 금방 건져 주시지 않는 것처럼 상당기간 고난과 연단에 방임하여 두십니다. 그러나 그 시기를 지나고 난 다음에는 그 때에도 하나님이 그런 연단을 통하여 저를 키워주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어떤 어려운 사건이 이적으로 해결되는 것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반은총의 범주 안에서 만사를 교훈과 연단과 적당하게 하심과 유익하게 하심과 덕되게 하심을 깨닫게 될 때에 오히려 큰 감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신앙의 초보자가 은혜받는 방법을 묻는다면,

1. 우선, 교회생활에 열심을 내야 되고,

2. 봉사해야 하며,

3. 성경읽기와 기도에 힘써야 하고,

4. 결심하고, 뜻있게 노력해야 하고,

5. 통회자복의 시간과 십자가의 은혜를 몸소 체험해야 하며(체험은 주님이 내 죄 때문에 내 앞에서 고난당하심을 보는 듯한 느낌을 말함),

6. 말씀의 깨달음과 절대순종의 생활이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그 후에는 모든 일을 주님께 맡기시고 의지하며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연단없이 큰 은혜를 주시지 않습니다.


24. 초신자가 이겨야 할 유혹들 목록으로


초신자가 믿음생활을 결심하고 교회에 나오면 여러가지 유혹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마귀가 자기 가족을 빼앗긴 것 같고 사자가 새끼를 잃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마귀들이 가만히 있을 턱이 없지요.

벧전 5:8을 보시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하셨고, 눅21:31에는 󰡒사탄이 베드로를 밀까부르듯이 유혹한다󰡓고 하셨으니 초신자인들 어찌 유혹이 없겠습니까?

초신자는 마치 흙이 얇은 돌밭에 뿌려진 씨와 같아서(마13:5) 신앙의 뿌리를 깊이 둔 나무와 같지 않은고로 당사자의 굳은 의지로 노력함은 물론 성도간의 교제와 서로서로의 협력으로 유혹을 대적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히3:12-13을 보시면,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않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초신자들은 어떤 유혹을 받을까요?

1. 옛 생활, 옛 친구, 옛 종교인들의 끈질긴 유혹과 감언이설, 심지어는 공갈까지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고(갈5:10) 또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었기 때문에(골3:10) 단연코 이를 멀리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람들과 그 생활의 인정을 멀리한다 해서 잘못될 것도 없고, 그들과의 옛 생활에 미련을 가짐이 추호의 유익도 없음을 아셔야 합니다. 출14:1-16을 참고하십시오.

2. 시간적인 유혹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성수주일과 성경공부, 교회봉사 등으로 생명같은 시간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시간을 바치는 것이 가장 보람있는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주일성수등에 시간을 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앙생활로서의 복받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앞에 나와서 은혜를 구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시100:2,118:26).

3. 축복이 더디다는 이유로 낙망하는 수가 있습니다.

성도가 받는 최고의 축복은 죄사함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존귀와 영생입니다(시103:1-5). 그런데 이것을 모르고 현실적인 축복이 속히 성취되지 않는 것을 이유로 낙망하는 이들을 봅니다. 성도는 자신의 목적성취를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행21:14) 그의 영광을 위하여 복종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마6:30-34과 갈6:9을 꼭 읽어 보십시오.

4. 󰡒한번쯤 빠지면 어떻겠는가?󰡓하여 부득이 교회에 출석을 못한 것이 연속적으로 그런 이유가 또 생기고 나중에는 그대로 습관이 되어 결국은 부끄럽고 쑥스러워서 못나간다는 이유를 대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저절로 되는 것 같으나 마귀가 그렇게 되도록 유혹한다는 사실을 아셔서 거기에 속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은 한란계와 같고 자전거 타는 것과 같다는 비유도 있습니다. 즉 열심내야 은혜받고 활동해야 넘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한번 쉬면 그것이 믿음의 불을 끄는 유혹임을 아셔서 절대로 쉬지 마셔야 합니다.

5. 신앙의 뿌리를 박기 전에 핍박을 받는 일입니다.

가족이나 친척의 핍박, 직장의 위협, 불의의 사고로 받는 비난등이 있으나 역시 믿음을 든든히 붙잡으셔야만 합니다. 신앙은 전쟁과 같고 천국은 침노하여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엡6:11;마11:12).

히3:12-14 말씀을 꼭 읽어 보십시오.

25. 신앙생활을 오해하는 잘못에 대하여 목록으로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가까이 살펴보면 여러가지 형편이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잘 모르기 때문에 성경과 거리감을 두고 생활하는 성도가 있고, 또 어떤 이는 성경을 사랑하면서도 자기의 주관적 체험을 더 앞세우는 이도 있습니다. 또는 미신적 사고방식이나 우상숭배하는 식으로 이방종교적 의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형편도 있고 때로는 신앙생활이 즐거운 기분에 도취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구하고 성취하는 것󰡓이 전부인 양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비적인 체험을 빼버리면 신앙생활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전부 오해입니다.

1. 먼저 정상에 오른 수준 높은 신앙생활의 형편을 말씀드리면 그것은 바로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생활󰡓입니다(요8:32).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성도는 우선 죄의 유혹이나 환난을 부담없이 생각하며 영원한 소망 안에서 자족하는 생활을 합니다. 이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품에 안긴 것으로 만족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저희들은 어린아이의 생활을 살피면서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유념하여야 합니다(마10:14).

지금 귀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어린아이는 어머니의 품 안을 떠나지 않으며 순결을 유지한 채 만족하며, 또 만족의 대상이 되어 있는 것처럼 저희들도 그러하여야 할 것입니다(시23:1).

2. 오해하는 신앙생활은 무엇일까요?

1) 자기를 앞세워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 자기의 목적등 자기나 인간을 위주로 하는 잘못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 안에서 자기은 죄로 인하여 죽은 자로 알고 그리스도가 자기 속에 사는 자로 여기는 생활입니다(롬6:11;골3:3;갈2:20). 신앙생활 중에 자기가 살아나거나 자기를 내세우려 해서는 안됩니다.

롬14:7에서는 󰡒우리 중에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도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하신 말씀이 바로 그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정과 육을 십자가에 못박은 듯이 없애고(갈5:24) 󰡒오직 주님의 뜻이면 무엇을 할 것이라󰡓는 계획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약4:15). 자신의 계획이나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줄로 아시면 안됩니다. 마치 종이 주인을 위하여 사는듯이 살아야 합니다.

2) 사람을 의식하면서 부자유함이나 부담을 느끼는 것입니다.

성도가 신양생활을 하는 것은 하나님과 자기의 관계를 위하여 하는 것이며, 특히 예배행위와 기도는 더욱 그렇습니다. 봉사와 충성도 역시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인간을 의식합니까?

만일 성도가 인간을 의식하면서 믿음과 충성열이 떨어졌다면 그것은 자신이 시험에 든 상태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인간을 의식하거나 인간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갈1:10). 많은 교인들이 인간을 의식하여 신앙생활에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대인관계에 있어서 상호간의 문제일 뿐 그것이 신앙생활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3) 성경을 절대의 규범으로 신봉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은 신앙생활의 절대 유일의 규범입니다. 󰡒성경 아닌 것을 숭상하지 말라󰡓해도 숭상하는 사람은 신13:1-5,렘23:23-32,유3,계22:18-19을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현실교회에는 신앙생활을 오해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닌 것에 분요하는 신자가 많습니다(갈5:26).

26. 신앙생활의 본질(요13:13-14) 목록으로


넓은 의미로서의 신앙생활은 하나님께 대한 것과 사람에 대한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계명들이 있지만(십계명 중 5계명 - 10계명) 인간은 신앙의 대상이 아닌고로 성도가 인간을 상대로 시행하는 생활은 모두가 도덕생활일 뿐 신앙생활은 아닙니다. 도덕적 생활은 불신자도 할 수 있습니다.

1. 신앙생활의 본질이란 성도가 하나님께 대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주일을 지키고,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를 드리고, 봉사와 헌금을 드리고, 찬송과 기도, 그리고 전도하면 그것을 신앙생활로 알기 쉽습니다. 이러한 외부적 생활이 신앙에서 나타나는 실천임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런 생활을 열심히 잘하는 성도를 귀히 여기고 존경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일 수가 없고 또 신앙생활의 본질(핵심)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위와 같은 종교적 행위를 외식으로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가룟유다가 3년 동안 예수님을 열심히 따라다니면서 돈궤를 맡은 것은(요12:6) 그의 종교행위가 사명적임을 의미하지만 그는 신앙생활의 본질을 이행하지 못한 채 타락자가 되었습니다(마26:24,27:5).

한국의 초대교회 당시에 이 모 목사는 성자와 순교자의 생활을 했으나 이단자로 경계를 받았고, 황 모 목사는 부흥사로 활약하며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끼쳤지만 그가 타락하여 술장사로 생애를 마칠 때 그 동료자들이 권면하기를 󰡒부흥사 시절을 생각해서 회개하고 돌아오라󰡓하니까 󰡒부흥사도 한번 해본 것이었을 뿐 예수를 믿은 일은 없었고 믿지도 않을 것이라󰡓고 대답하였다는 것입니다.

근대에 와서 박 모씨는 훌륭한 장로였으나 이단의 교주가 되었고, 양 모 목사는 역시 부흥사였으나 이단자가 되었으니 어찌 그들의 종교적 행사가 신앙의 본질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종교적 의식과 활동은 신앙생활의 본빌의 표식이 될 수는 없습니다.

2. 신앙생활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의 본질은 󰡒하나님을 왕으로, 스승으로, 아버지로 옳게 모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1)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충성된 백성의 생활입니다.

하나님(예수님)을 󰡒주󰡓라고 하는 것은 그 분을 절대자로 모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시요 의의 왕이요 사랑의 왕이십니다. 왕에게는 만유의 소유권과 만유통치의 절대권과, 또 홀로 영광을 받으셔야 할 절대적인 특권이 있습니다. 귀하는 그 사실을 알고 믿으며, 왕명에 순종하는 백성처럼 생활하십니까? 세상과 귀하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요, 귀하는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할 뿐이요, 또 영광의 제물이란 사실을 알고 생활하십니까?

2)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신 성실한 제자의 생활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인간으로 사셨을 뿐 아니라 가장 비천하시고, 고통 많은 생활을 하시면서 죄를 짓지 않으셨기 때문에 인간의 절대 스승이 되셨으며(눅18:19), 또 모범을 보이셨으며, 자기를 배우고 본받게 하셨습니다(마11:29). 따라서 예수님의 성품과 지식과 생활을 본받는 제자로서의 성실한 생활이 곧 신앙생활의 본질입니다. 제자는 그 스승(예수님)의 인격을 닮아야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효자의 생활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아버지이십니다(요1:12). 아들은 부모가 인정하는 권세(상속권)를 가졌으나 효자는 그 권세를 부리지 않습니다. 효자는 그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그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27. 신앙생활의 의미(시73:23-25) 목록으로


한 가지의 답변 만으로도 충분한 신앙생활이 무엇일까요? 또 신앙생활을 어떤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실제적이고 결론적인 내용으로 다섯 가지를 선택해 보았습니다.

1.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나와의 든든한 관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불신자는 하나님이 없으므로 하나님과의 아무런 관계가 없습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으냐 나쁘냐에 따라 신앙의 차이가 있지만 일단 하나님과 든든한 관계를 가지는 것이 원만한 신앙상태임을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계3:20에서 󰡒나는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씀과 성령님을 모시고, 가장 존귀하게 받들며 하나님과 동거동락하는 생활이 곧 신앙생활입니다. 이 생활을 또한 최고로 여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시73:23-25).

2. 신앙생활은 매사에 바른 선택을 의미합니다. 눅10:42에서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않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본래 인간은 바른 선택을 할 수 없는 타락자였습니다.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선을 선택하거나 하나님을 찾아서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렘13:23). 그러나 하나님이 거듭나게 해주신 후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와 능력을 힘입어(빌4:13) 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우상, 하나님과 나, 성경과 나의 사상, 선과 악, 영광과 욕됨, 순종과 거역, 양심과 비양심, 사랑과 갈등, 봉사와 이기심 등 매사의 상대적 관계에서 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 이 선택을 잘못하여 후회할 일이 있다면 즉시 회개하고 돌이키며 항상 조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3. 신앙생활은 성경말씀과의 생활일치, 즉 성경대로 사는 것입니다. 어떤이는 신앙생활 잘하는 것을 어떤 특기, 즉 은사활동에 있는 줄로 잘못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앙의 대상은 하나님과 성경전체이기 때문에 성경을 진리로 믿고, 많이 깨닫고, 깨달은 대로 실천하면 그것으로 만족한 것입니다. 고속도로로 끝까지 가면 부산이 나오고, 영동대로로 끝까지 가면 의정부에 도달하듯이 성경대로만 살면 자동적으로 신앙생활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고후13:8에서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하셨고, 요14:23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 계명을 지킨다󰡓고 하셨습니다. 성경대로만 사십시오.

4. 신앙생활은 신인에 대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하나님은 물론 사람까지 아울러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사랑한 것 때문에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다󰡓고 하셨습니다(눅7:47). 따라서 신앙생활은,

1)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고, 2) 또 사람도 꼭 같이 사랑하며, 3) 이 사랑의 근거와 성질을 하나님의 사랑의 정신과 방법에 두어야 합니다. 마22:37-40 말씀은 율법의 강령이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라 하셨고, 요일4:11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여, 즉 󰡒하나님이 우리를 이같이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함이 마땅하다󰡓하셨고, 또 20절에서는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도 사랑할 수 없다󰡓고 하심으로, 하나님사랑에 근거한 신인전체의 사랑이 곧 신앙생활임을 입증하셨습니다.

5. 신앙생활은 영원한 행복을(자유) 추구하고 확보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행복은 현실적인 것이 아닌 영적 축복이며, 이것을 현실에서는 추구하여 누리고, 또 내세에 가서 누릴 것까지 믿음과 충성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와지므로 성도는 보이는 것을 바라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 즉 신령하고 영원한 것을 사모하라󰡓고 하셨습니다(고후4:16-18). 영생복락을 위한 신앙생활이므로 영원히 누릴 행복을 소망하면서 영적 자유를 누리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을 하면서 신앙생활이 아닌 것으로 시간과 정력과 물력을 낭비하는 것을 볼 때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28. 바른 신앙생활을 지향함에 대한 문제점 목록으로


흙이 좋으면 곡식이 잘되는 것처럼 신앙세계가 좋으면 역시 신앙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이와 같이 교회가 좋고 믿음의 이웃이 좋으면 신앙에 큰 유익이 있을 것이나, 물행하게도 우리 주변에는 불신앙의 풍조, 미신풍조, 쾌락주의, 세속화의 물결, 기복신앙, 권위주의, 교권주의, 교파난립, 신학없는 교훈, 무질서등 너무도 많은 피해를 주는 여건 속에서 생활하고 있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고로 이러한 부조리 상황을 미리 알고 경계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라야 믿음직한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윗 물이 맑아야 아랫 물이 맑다󰡓는 속담처럼 첫째는 범 교회에도 문제가 있고, 지도자에게도 문제가 있으니 평시도들까지 본을 받아, 참신한 교회가 되지 못하므로 이것이 곧 바른 신앙생활에 문제점을 주는 온상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1. 지도자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면(여기는 필자 자신도 포함함)

1) 적당주의 목회가 있으니 이것은 몰두하고 전념하는 방법으로 돌이켜야 할 것이요,

2) 바리새인 같은 외식주의가 있으니 실천에 본이 되지 못하고 교인들에게만 무거운 짐을 지우려 하며 외형주의, 간판주의, 허영적 생활에 들뜨는 생활이요, 자신이 퍽 은혜있는 사역자인듯이 군림하는 것과 지교회의 통치를 독재하는 것등인즉 역시 시정되어야 할 일이며,

3) 자기의 이름을 세상 앞에 나타내기 위해서 이상한 방식으로 자기를 선전하고 공적인 회합에서 지위를 꾀하며, 정치적인 일에만 분요하여 기도나 말씀연구와 성도의 영적 안위를 경홀히 하는 경우인즉 이런 점도 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12:19을 참고하십시오.

4) 인기주의나 임기응변책에 따라 신학의 표준은 물론 예배모범이나 교회정치등의 규범을 마구 무시하면서 교인들의 감정주의에 편승하여 작태를 부리는 일입니다.

성경이 글로 표시되어 인간에게 주어졌으므로 벌써 웅변이나 증거상의 작태를 요하지 않는다는 것 쯤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도들 중에는 듣는 것이 둔하여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것처럼 웅변적이고 재치있게 증거할 필요를 느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웅변과 감정의 호소를 통해서만 깨달음이 온다는 것은 역시 듣는 것이 둔하다는 증거인즉 더욱 성장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가 목사님들을 모아 놓고 성경연구를 발표하는데 마치 부흥사처럼 초신자를 이깨우는듯이 호소하는 열변을 토했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이 목사님들에게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목사님들에게는 󰡒성경 몇장 몇절의 의미가 바로 그런 뜻이라󰡓고만 설명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렇게 알고 행동에 옮기면 되니까요. 모든 성도들도 그런 식으로 성경을 배우는 습득력이 있을 때 장성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2. 교회의 문제성입니다.

1) 신학도 없고, 2) 신학사상과 주의도 없는 교회가 있으며, 3) 다분히 교인들의 현실축복만을 위해서 부추키는 형의 교회가 있고, 4) 교세확장을 위해 문제가 있건 없건 무조건 편의주의와 변칙을 시도하고, 5) 교회의 권징을 효력시하지 않는 불건전한 교회들이 많은 중 이런 세계가 역시 신앙을 건전치 못하게 하는 온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개인 신앙의 문제

1) 성경과 신앙상식이 너무 없는 상태, 2) 기도생활등 신앙생활을 부수적으로 하는 상태, 3) 기복주의적 신앙상태, 4) 자기 정욕억제와 겸손이 빈약한 상태, 5) 일반은총보다 기적을 더 추구하는 상태, 6) 현세욕에 집착하고 내세를 입으로만 찬양하는 상태, 7) 사랑의 빈핍과 포용성이 약한 상태등 너무도 문제점이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이 무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매우고 받은 것 이상으로 더 배우고 노력하셔야 할 것입니다.

29. 믿음의 확정과 진단에 대하여 목록으로


고후13:5을 보시면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라.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버리운 자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자신의 믿음을 확증할 필요를 느끼는 것입니다. 믿음의 확증은 진짜와 가짜를 분변하는 의미이고, 진단이란 병든 신앙의 원인을 규명하는 일입니다.

1. 믿음을 확증하는 방법(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과 받지 못할 믿음)

1) 성경 66권을 하나님의 말씀(진리)으로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신앙고백이 서슴없이 나와야 합니다. 따라서 성경을 의심하거나 판단하는 마은, 또는 다 믿지 못하거나 성경 밖의 것을 진리로 믿는 믿음은 구원을 받지 못하므로 바른 믿음이 아닙니다(요5:39;딤후3:16;계22:18-19).

하나님의 말씀이나 그의 진실성을 부분적으로라도 불신하면 이는 역시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이 되어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따라서 성경관을 바로 가지는 신앙이 바른 신앙의 첩경입니다. 성경만 믿으면 그 안에 있는 모든 말씀을 믿는 것이니까 다른 교리에 대하여도 의심할 바가 없습니다.

2) 중생의 은혜로 믿어지는 신앙이라야 합니다.

본래 인간은 타락하여 스스로 믿는 믿음을 생산할 수 없어서 하나님이 중생하게 하심으로 믿음을 일으켜 주셨습니다(요3:3;엡2:1). 그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는다󰡓(행13:48)하셨고, 살후1:10에서는 󰡒우리의 증거가 믿어졌다󰡓고 하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천국, 예수님이 하나님이란 사실, 그의 대속의 십자가등을 믿는 것이 기적의 은혜가 아니면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마16:17;고전12:3). 따라서 믿어지는 신앙이어야 하며 성경에서 󰡒믿으라󰡓(요14:1)하신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의심하거나 교훈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에게 더욱 깨달으라(마7:14)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희들도 믿음은 가졌지만 깨닫는 것이 부적한 만큼 더 배워서 믿음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3) 순종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좋은 나무에 좋은 열매가 따르듯이 좋은 믿음에는 순종이 동반합니다. 전혀 순종이 없는 믿음은 외식이요 죽은 믿음이라 하셨으니(약1:26-27,2:14,17,22) 성경대로 생활하는 믿음이어야만 참믿음입니다(창12:4;행18:5). 따라서 자신의 믿음이 실천에 옮겨지고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지 않습니까?(약2:22).

4) 사랑이 실천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사랑은 행동윤리의 표준입니다. 사랑의 실천과 순종력을 보유한 믿음이 바로 그리스도를 모신 믿음입니다(고후13:5). 고전13:2,요일3:10-12,4:20,갈5:6을 살펴 보시고, 사랑없는 믿음이 진실한 믿음이겠는가를 확인하십시오.

5) 거짓없는 진실된 마음에서 자라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거짓성이 있으면 그 믿음도 신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마음에 심겨지며(약1:22), 마음 밭은 옥토이어야 결실합니다(마13:18). 정결한 마음, 선한 양심, 거짓없는 믿음(딤전1:5,19,3:9)이어야만하므로 믿음은 진실과 상통하는 것이요.

2. 명든 신앙은 낙망과 불안(시42:5), 공포(갈5:26;계1:17;딤후1:7)가 있고, 염려가 있고(마6:34;벧전5:7), 슬픔, 완악, 나태, 세욕등이 있으며 말씀 사모함과 실천함에 민감하지 못하여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불편하여진 상태를 의미합니다(욥22:21-28).

30. 신앙생활 나태한 성도를 권면함 목록으로


혹시 성도님은 주일예배를 꼭 참석하지 못하시거나 각종 예배에의 참석을 게을리 하시거나 아니면 주일을 세속된 생활에 방임하시지는 않습니까? 신앙생활의 표지는 여러가지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만 우선 위와 같은 생활에 귀하가 해당된다면 교역자는 귀하는 󰡒신앙의 나태자󰡓로 인정하여 권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 마26:41에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깨어 있는 생활󰡓은 기본적인 신앙생활(성수주일,예배참석)을 능가하는 생활인데 만일 그것을 나태하게 하면 시럼에 들 우려가 있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2. 지금은 세상의 마지막 때라(요일2:28) 마귀는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계12:12)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까지 미혹하려고(마24:24)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벧전5:8)고 하셨는데 신앙생활에 방심하셔서야 되겠습니까?

3. 어떤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신앙생활은 한란계와 같고 또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 뜻은 한란계가 더워야 올라가는 것처럼 신앙생활은 열심을 내셔야 올라가고(롬12:11), 또 자전거가 중단 없이 전진할 때 넘어지지 않는 것처럼 신앙생활도 꾸준하게 하셔야만 발전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히10:38에서 󰡒의인은 믿음으로 살되 뒤로 물러가면…… 저를 기뻐하지 않으신다󰡓하셨고, 대하16:9에서는 󰡒하나님은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하셨고, 욥8:5에서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비는 자를 하나님이 정녕 돌아보시고 미약한 상태를 창대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귀하는 이러한 약속의 은혜를 받기 위하여 다시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4. 마귀는 도적같고 이리 떼와 같다고 하셨습니다(요10:10,12).

도적과 이리가 무슨 사정을 살펴주는 놈입니까? 한 번 시험에 걸리면 큰 손실을 줄 것입니다. 이런 것을 미리 방지하는 비결은 신앙의 경성과 성경적 생활 뿐입니다. 히3:13에서는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 매일 피차 권면하여…… 죄의 유혹으로 강퍅하게 됨을 면하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귀하께서 이 권면을 들으시고도 열심을 내지 않으신다면 점점 더 나태하여지고, 부그러워지고, 두려워질 뿐 아니라 은혜받을 기회를 자주 놓치게 되어(사6:10) 신앙의 심한 중병을 앓게 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선민을 경성하기까지 징계하시기 때문입니다(히12:8).

5. 하나님께서는 많은 기회를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이 권면의 말씀을 귀중한 기회로 삼으셔서 질병을 조기에 치료하는 지혜로운 사람처럼 꼭 믿음에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음식은 곧 쉬게 됩니다. 미지근한 음식과 같은 신앙은 󰡒하나님이 토하여 내신다󰡓고 하셨습니다(계3:16). 그러므로 성도의 신앙도 썩지 않는 음식처럼 차든지 뜨겁든지 하여야 합니다(계3:15).

6. 신앙은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마6:24).

혹 돈을 모아 놓고 교회에 나오려 하시거나 세상 일을 우선시하여 믿음생활을 나태히 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행20:7-12에서 유두고가 창문에 걸터 앉은 자세로 말씀을 듣다가 조는 사이에 떨어져 죽었습니다. 창문턱은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닙니다. 이것은 확실치 않은 신앙생활에 화가 있음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또 약4:13-17과 마6:23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교역자는 귀하의 열심있는 신앙과 축복의 발전을 위하여 쉬임없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31. 낙심자(신앙의 휴식자)에게 드리는 편지 목록으로


귀하는 과거에 교회에 출석하셨고 믿음생활을 잘해 보시려고 노력을 하셨는데 왜 지금은 신앙의 잠을 주무시고 계십니까? 신앙의 휴신자가 되셨습니까? 아니면 완전히 낙심을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귀하를 다시 부르시기 위하여 이 편지를 보내도록 하신 줄 믿으시고, 꼭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돌아오십시오. 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는 넓으신 마음으로 귀하를 이해하여 주십니다.

낙심자들은 흔히 사정과 이유를 갖고 신앙생활을 중단합니다. 그러나 귀하는 그 사정과 이유를 외면하고 하나님께 여전히 붙잡혀 계셨어야만 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귀하를 해롭게 하신 일도 없고 귀하에 대한 사람을 변하신 일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귀하를 끝까지 사랑하시며(요13:1)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은즉 꼭 돌아오셔서 은혜의 잔치에 귀빈이 되십시오.

2. 하나님께서는 간절한 마음으로 귀하를 기다리십니다.

자식을 기다리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눅15장을 읽어 보십시오. 일백 마리의 양 중에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은 비유와 두 아들 중에 집을 나간 한 아들 탕자를 맞이하는 비유가 누구를 위한 교훈인지 아십니까? 바로 귀하를 위한 교훈입니다. 아들을 만나지 못하는 아버지는 늘 집 앞을 내다보며 기다렸고, 그 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에 죽은 아들을 살려 받는 것처럼 기뻐하며 선물을 주고 잔치를 했습니다. 눅15:7을 보면 󰡒죄인 하나가 돌아오면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한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소망스러운 일입니까?

3. 자기 생각과 자기 계획대로 살려고 고집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복종하는 생활이 아닙니다.

좋은 의복이 없어 교회를 못나간다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헌금이 아까와서 믿을 마음은 있으나 못나간다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돈을 벌어서 생활기반을 잡은 다음에 나간다는 사람도 보았고, 또 누구 보기 싫어서 못나간다는 말을 들은 일도 있습니다. 귀하도 혹 그런 이유를 대신 일이 있습니까? 어떤 분은 󰡒나 자신이 연약해서 못나가지요󰡓하고 겸손한 말을 하다가 이끌려 나오시는 분도 있습니다.

인생이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따르는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 자기 계획을 끝내거나 자기의 마음이 편하기 때문에 위하여 하나님을 멀리함은 진정한 평안이 아닙니다. 참된 평안은 예수님 안에만 있고(요14:27) 인생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기동하며(행17:28)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셔서 하루 속히 주인되신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4. 귀하가, 택한 백성이라면 결코 주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요, 꼭 하나님이 돌이켜 주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 때가 지금인 것을 귀하가 더 잘 알 것입니다. 오랫동안 방탕하고 회개하지 않던 어거스틴은 그의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를 힘입어서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을 싫어버리지 않는고로(사41:9) 꼭 귀하를 붙드실 것입니다.

5. 귀하가 하나님의 부르시는 권면을 거절하신다면 그것은 은혜받으실 기회를 놓치고 하나님의 노여움의 대상이 됩니다. 어거스틴은 롬13:12-14의 말씀을 받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지금이 바로 은혜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인즉(고후6:2) 지체하지 마시고 돌아오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귀하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제 곧 결심하십시오.

五. 하나님에 대한 지식


32.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목록으로


위의 질문은 꼭 필요한 질문이며 그 답변은 쉽고도 어렵게 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존재를 쉽게 답변하는 방법은

1) 성경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셨으니까 그런 줄 알아야 하고(창1:1;히11:6),

2) 인간의 세력을 초월하는 자연계의 세력이 우주에 편만하니 절대자의 존재를 믿을 수 밖에 없고(단4:2-3;요14:11),

3) 인간이 하나님 계시지 않음을 증명할 수 없으니 안계시다고 하지 못하며(시14:1),

4)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던 사람이라도 위급할 때에는 하나님의 찾는 선한 양심이 있으니 이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은(벧전3:1)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의 본성(롬2:14)으로서 인간 자신이 자기의 종교성에 근거하여(행17:22) 인정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존재를 어렵게 답변하는 방법은

1) 종교적 논증입니다.

인간의 본성에는 󰡒종교적 본능󰡓(롬2:14)이 있는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무엇을 숭배하려고 애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록 이방 종교인들이 숭배의 대상인 하나님을 옳게 찾지 못함은 그들의 무지 때문일지라도 숭배의 대상을 향하는 경배심을 가지고 있음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 종교의 참 대상이 계심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2) 본체론적 논증입니다.

이것은 만유를 포괄하는 구심점이 있음을 전제하여 신의 존재를 믿는 것입니다. 한 인간은 그를 지배하는 정신적 구심점이 있고, 한 나라도 그 나라를 통치하는 정치적 구심점이 있듯이 만유를 포괄 통치하는 구심이 곧 하나님이심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3) 우주론적 논증입니다.

인과법칙을 적용하여 우주만물이 인간적 원인에 의함이 없이 결과로 나타나 있은즉 그 원인자가 계실 것이 아니냐 하는데서 그 원인자를 하나님으로 증명할 수 있음이요(롬1:20).

4) 목적론적 논증입니다.

이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목적 없이 되어가는 것이 아닐 것이므로 그 배후에는 반드시 지능있는 존재의 계획적 통치가 있을 것임을 전제하여 신의 존재를 증명함입니다.

5) 심미학적 논증입니다.

우주와 자연을 깊이 음미할 때 너무나도 오묘막측하고 아름다우며 뜻 깊은 것이 많으므로 그 신비함과 장엄함과 아름다움을 만끽할 때에 인간의 자발적인 심리가 신의 존재를 인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6) 인학적 논증입니다.

이는 인간의 정신과 내면적 세계를 묵상하는 중에서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과연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으니 만큼 자식을 보아 그 부모를 아는 것과 같이 인간연구의 추론이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한다 함입니다.

7) 도덕적 논증입니다.

이는 인간 양심에 기초하여 최고의 선이 존재함과 악이 선을 이겨서는 안되므로 선악의 불공평을 최종적으로 심판하실 존재가 있음을 전제로 증명하는 방법입니다. 불신자도 잘못하는 사람을 향하여 󰡒천벌을 받을 놈󰡓이라고 하는데 그 심판자가 없으면 인간세계의 도덕을 어떻게 지켜 나갈 것인가에서 심판자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형상으로 보여주시지 않기 때문에(요4:23;출33:20). 구구한 증명이 필요하나 중생자는 하나님의 존재를 무조건 믿게 되는 것이 특징입니다(요3:3;살후1:10).


33.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목록으로


위 질문의 내용은 신학적인 용어로 󰡒하나님의 속성을 말씀하여 주십시오󰡓하는 의미와 같습니다. 즉 하나님의 신분을 설명할 대 이를 그의 속성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신분, 곧 하나님의 속성은 어떠합니까?

1.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니(출3:14) 이를 그의 자존성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시기 때문에 누구의 창조를 받아서 존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2. 하나님은 영으로 존재하시니(요4:23) 이를 그의 신령성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은 형상이 없는 신령한 분이시기 때문에 바람이 보이지 않으나 있는 것처럼 그렇게 계신 분입니다.

3. 하나님은 어느 곳에나 계시니 이를 그의 편재성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천국에도, 음부에도, 이 세상에도 어느 곳에나 계십니다. 엡4:6에 보시면 󰡒하나님은 만유 위에도 계시고 만유 가운데도 계시다󰡓고 하셨으므로 인간은 어디에서나 그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디로 가도 하나님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수2:11;시139:7-10).

4. 하나님은 영원토록 변하지 않으시니 이를 그의 불변성이라고 합니다(히1:12;약1:17). 이는 하나님의 본질과 언약과 뜻에도 변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5. 하나님은 그 본질의 불변성과 함께 영원히 살아계시니 이를 그의 영원성이라고 합니다(히1:11).영원성은 그 존재의 생명이 끝이 없다는 뜻입니다.

6.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 같은 인격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를 하나님의 인격성이라고 하는데 성경에 보시면 하나님에게 지식과 감정과 의지와 성정이 있어서 인격이 있는 인간과 상통하여 주신 일이 있으니, 그것이 곧 인격성의 증명이 될 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실 때에도 인간 예수님으로 보여 주셨습니다(요14:9).

7. 하나님에게는 인간적 지혜와 힘의 한계를 무한히 초월하는 절대적인 지혜와 능력이 있으니 이를 하나님의 초월성이라고 합니다.

하나님도 갖고 계시면서 인간에게 나누어주신 인격과 지혜와 능력을 공유적 속성이라고 하며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신적 탁월성은 하나님만 갖고 계신 것으로 이를 비공유적 속성이라고 합니다.

8. 하나님은 그 지혜와 능력이 무한하여 전지전능하시니 이를 절대성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다른 대등한 신이 있을 수 없고(신4:35) 비교될 신도 있을 수 없으며(신6:4;사44:6-8), 누구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고(행17:25) 홀로 안전하신 분이므로 이를 그의 완전성 또는 독자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9. 하나님의 속성 중에 없는 것은 죄 뿐이며(요18:38;19:4;고후5:21) 인격적 성품의 특징은 공의와 사랑, 거룩과 진실, 인내와 겸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존재하여 자기의 뜻을 성취하시는 일에 사역분담을 하신다고 하셨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삼위일체 교리에서 배우실 수 있습니다.

롬4:17에서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라󰡓고 하셨고, 엡4:6에서 󰡒그 하나님은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요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을 읽으실 때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를 깨달을 수 있도록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34. 삼위일체 하나님이란 무슨 뜻입니까? 목록으로


1.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엡4:6에서 󰡒하나님도 하나이시니󰡓하셨고, 딤전6:15에서도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하나이시니󰡓(딤전1:17;유4,25)라 하셨으므로 하나님은 그 본체가 한 분이심을 꼭 믿어야 합니다.

2. 그러나 󰡒하나님󰡓이란 용어 󰡒엘로힘󰡓은 복수명사로 되어 있고, 인간을 창조하실 때부터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창1:26-27) 하심으로, 한 하나님의 본질에 여러 인격이 있는 것과 그 인격이 다 한 하나님의 본직적 속성에 일치됨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따라서 한 하나님은 세 분은 인격적 하나님의 󰡒위󰡓를 가지고 각각 독립적 본질을 나타내시며 역사하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3. 이와 같은 사실은 성경에서 점점 구체화되었습니다.

시101:1에 보시면 󰡒여호와께서 내 주께 말씀하시기를󰡓이라 하심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나타내셨고, 창6:3에서 󰡒나의 신󰡓, 민11:17의 󰡒네게 임한 신󰡓이란 표현으로 성령님을 나타내셨습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이 삼위일체의 표현이 더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마3:14-17에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님은 비둘기같이 임하시고 하나님은 위에서 말씀을 주시므로, 성부 성자 성령님이 함께 역사하신 사실이 있고, 구약시대에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많이 나타내셨는데 복음시대에는 예수님으로 나타나셨고, 교회시대에는 성령님으로 나타나신 사실이 성경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요3:16에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다󰡓하셨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분으로 세상에 오셨으며(요14:9;빌2:6), 또 하나님과 예수님은 성령님을 보내셔서(행2:17;요14:16;15:26) 오순절 당시에 성령님이 오셨고, 또 그 성령님은 예수님을 잉태케 하여 탄생하게 하셨습니다(눅1:35).

4. 유일신 하나님으로 존재하시는 삼위의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가에 대하여 성도는 성경에 나타내 주신대로 믿으면 됩니다. 이 믿음은 이해와 계산으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신령하시고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시므로 이해의 성격을 넘어 무조건 믿는 것이 신앙인 바 어렵게 생각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신앙은 인간의 지식이나 이론적 증명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5. 다만 각 위의 하나님의 본질과 능력과 영광이 어떠하며 하나님의 구속사업에 있어서 그 사역 분담이 어떠하냐 함을 이해해야 합니다.

1) 삼위의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의 각각 그 본질이 같으시고 능력과 영광도 동등하시며 공동체적 관계가 있으므로(창1:26;요12:49,50;16:13,24;고전8:4), 하나님 각 위의 역사도 공통적인 역사이며, 각 위의 능력고 동등하므로 동등한 영광과 존귀를 각 위에게 드려야 합니다.

2) 구속사업에 관하여 각 위의 분담 사역을 구분해 본다면 성부 하나님은 계획하시고(벧전1:2;마26:39), 성자 하나님은 그 구속의 근거인 대속을 성취하시며(요17:4;19:30), 성령임은 인간에게 구원의 은혜를 적용시키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요16:13).

6. 이 신비한 사실은 어떻게 설명하기 어려우나 물리적인 방법으로 비유를 든다면 액체 고체 기체의 물, 뿌리 줄기 열매의 나무, 지와 정과 의의 한 인격등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엄위하신 하나님을 물질로 비유한다는 것은 영광스럽지 못한 일이므로 삼가야 하고 오직 하나님은 신비하신 하나님이시므로 무조건 믿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35. 예수님에 대하여 꼭 아셔야 할 지식 목록으로


며칠 전에 학습세례문답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노인들이야 대답을 잘 못해도 이해하고 가르쳐 드립니다다만, 중고등부 학생들은 해답을 잘하여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동문서답격이 많은중 예수님에 대한 지식을 알려드릴 필요를 느꼈습니다.

1. 요8:32에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예수님)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하셨고, 요17:3에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하셨고, 마16:16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로부터 󰡒자기를 아는 지식󰡓을 탐지하시고, 그중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받으셨을 때 만족하시고, 그 고백(신앙지식) 위에 교회를 세우실 것과 음부의 권세가 흔들지 못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들은 바로, 󰡒예수님을 바르게 아는 지식이 신앙의 초석이 되고, 구원의 방도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2. 귀하는 예수님에 대한 지식을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1) 역사적인 예수님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전 4년에 유대땅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민족 다윗의 후손(마1:1) 요셉의 아들로 태어나, 로마의 식민통치의 백성으로 33년을 사시던중 마지막 3년 기간 동안에 하나님의 구속사업을 위한 뜻을 펴시고, 죄는 없으시나 바리새적 이단종교인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분입니다.

2) 영적 관계에 있어서 예수님의 신분을 말씀드리면,

① 그분은 본래 삼위일체의 하나님중 2위격인 성자하나님이시요,

② 또 말씀으로 존재하시면서(요1:1-5) 하나님과 동등한 본질과 권능과 영광을 가지신 분인데(요1:18;14:8,9;빌2:6-8),

③ 그분은 구속사역의 중보제물이 되기 위하여 신인양성의 속성을 지니시고, 사람이 되어 오신 분입니다. 이 사실은 창3:15과 창26:3-4,삼하7:12-13,사53:-,눅1:31-33을 살펴 보십시오.

3) 탄생과 생활에 따른 기적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인성을 가지셨으나(히5:1,5,15;2:17), 부정모혈로 탄생하지 않으셨고, 마리아의 몸을 빌어 성령으로 잉태, 탄생하셨으며(사7:14;마1:18;눅1:28-31,35) 사람들에게는 요셉의 아들로 알려졌고(눅3:23;마13:55), 완전한 인간의 삶을 체험하셨고(히4:15;5:7-8;2:9), 신성으로서의 초자연적인 기적도 나타내셨으며 인간들과 꼭 같은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 없이 사신 분이십니다(히4:15).

4) 따라서, 예수님의 삶은 모든 인간들의 모범적인 삶이고(요14:6; 13:14-15), 그의 신적 능력은 신뢰와 흠모의 대상이며(요5:20;14:11-12), 그의 돌아가심은 택한 백성들의 죄(즉, 믿는 자의 죄)를 대속하심이 되었습니다.

5) 흔히, 세례문답에서 󰡒예수님께서 누구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셨습니까?󰡓라고 질문을 하면, 󰡒내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데, 그 의미는 우리가 받아야 할 범죄에 대한 심판(즉, 지옥의 형벌)을 예수님께서 󰡒그의 인간고와 십자가의 고난으로 대신 벌받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세전부터 인류의 타락을 아시고 타락자들 중에서 택하신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미리 대속자를 선택하여 놓으신 것입니다(엡1:3-6;사53:4,5). 역사적으로는 악인들이 죄없는 예수님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죽으심을 구속의 제물로 섭리하셨으니, 이것이 곧, 󰡒건축자자들의 버린 돌을 모퉁이의 머릿돌로 쓰셨다󰡓는 뜻입니다(마21:42;시118:22-23).

6) 그분은 3일만에 부활하여 하나님의 우편에서 영원토록 중보해주시고, 심판자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마28:6;행1:3,8;계22:20).


36. 성령님과 그 역사에 대하여목록으로


성령님께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位)이시며, 그 역사가 위대하기 때문에 배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님에 대한 관계와 역사를 잘못 적용하는 예가 허다한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1. 성령님께서는 제일 먼저 창1:2에서, 󰡒하나님의 신󰡓으로 표현되었고, 그 󰡒신󰡓은 히브리어 󰡒루하크󰡓란 말로 숨, 생기(창2:1), 바람, 기운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 용어입니다. 또 신약에서는 헬라말 󰡒프뉴마󰡓로서 󰡒영󰡓으로 번역됩니다(마4:9;22:43;눅4:18;행16:7). 그러나, 그 외에도 여러가지 명칭이 있으니,

1) 하나님과의 연합관계의 이름으로 여호와의 신, 하나님의 신,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성령, 아들의 영, 주 여호와의 신, 아버지의 성령, 예수님의 성령등이 있고,

2) 성령님의 속성을 표현한 명칭으로 영원한 성령, 영광의 영등이 있고,

3) 성령님의 사역에 관계되는 명칭으로 보혜사(요14:26)가 있습니다.

2. 성령님께서는 제 3위하나님이십니다.

1) 행5:3,4에서 󰡒성령님 속인 것을 하나님 속임이라󰡓하셨고,

2) 고전2:10에서는 󰡒성령님께서 하나님과 같아서 성령님 만이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아신다󰡓하셨고,

3) 요6:63에서 󰡒살리는 분이 영이라󰡓하심으로, 하나님과 같은 생명의 주이시며,

4) 행2:15에서 󰡒성령님을 거스림이 하나님을 거스림󰡓이고,

5) 마12:31에서 󰡒성령훼방이 하나님 거역함이라󰡓하심으로 지존과 영광의 일체성을 말씀하셨습니다.

3. 성부, 성자와의 관계를 말씀드리면,

1) 각위가 본질상 동일하시고,

2) 각위로 나타나실 수 있으며,

3) 역사하실 수 있으며,

4)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성령님의 잉태를 받아서 오시고, 성령님께서는 성부와 성자 사이에서 발출되신 인격의 영이십니다.

따라서, 성령님을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아시거나, 인격을 무시하는 논리를 펴거나, 하나님의 성령의 역할을 겸하는 것으로 아시거나, 성부님을 더크다고 주장하여서는 안됩니다(요14:28은 겸손의 뜻이며, 요14:9과 빌2:6을 참고하십시오). 마3:16에서 삼위하나님께서 동시 출현을 하셨고, 요15:26과 롬8:9에서 성부, 성자로부터의 발출되심을 말씀하셨습니다.

4. 성령님께서는 인격적인 일과 능력적인 일을 하십니다.

1) 인격적인 일은 사역자 임명(사48:16;행13:2), 전도할곳 지시(행8:29;9:31), 전도내용 지도(고전2:13), 책망(요16:8), 안위(행9:31), 도우심(롬8:26), 가르치고 인도하심(요14:26;16:13), 근심하고 슬퍼하심(엡4:3;사63:10), 증거하심(요15:26), 감찰하심(롬11:33), 성도와 내주, 동거하심(요14:17)등이며,

2) 능력적 사역은 천지창조와 섭리활동(창1:2;욥26:13;사32:15), 지혜와 총명을 주심(느9:30;호9:7;겔2:2), 능력을 주심(삿3:10;6:34), 말씀을 선포하심(슥7:12;미3:8)등 다양합니다.

3) 복음서에 나타난 사역은 눅1:34; 4:1,14,18; 마7:29;12:28; 요3:6;14:10,16,17등에 있고,

4) 사도행전에 나타난 사역은 2:5, 37, 3:11~15, 4:8, 31, 5:3~9, 6:3, 13:2, 16:9, 20:1, 28등이며,

5) 바울서신에 나타난 내용은 고전3:16;12:3-;14:15,롬8:9-13; 12:6-8;갈3:2;5:22;엡6:10;살전1:5;엡4:11-12등에 각종 사역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5. 특별한 성령님의 사역은 중생케 하심과 동시에 성도와 함께 하시며, 총명과 능력을 주시고 좋은 마음을 주시며, 사명자를 세우시고, 믿음을 전파하시고, 가르치시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일입니다.

보혜사의 역사를 살펴보십시오(요14:16;16:7,8,13).

37. 하나님께서 못하시는 것 목록으로


하나님께서도 못하시는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지 않으신가?

여기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도 못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못하심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미흡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되심을 증거되도록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속성에 반대되는 것은 없어야 하고, 하나님본질의 독특성(예를 들면, 거룩, 사랑, 공의등)은 가지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께서는 자기부인을 못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존재와 자기의 하신 일에 대하여 숨기시거나 거절하지 못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실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신다는 의미이고, 또한 계시다, 안계시다 할 수도 없습니다. 딤후2:13에서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할 수 없으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2.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못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참되시기 때문에 그렇고(롬3:4), 또한 예수님께서는 진리이시므로 그러하며(요14:6, 참=진리), 그분은 순수한 믿음의 대상이시며, 빛에 거하시는 자시라, 어두움과 그림자도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딤후2:13에서 주는 일향 미쁘시고,

약6:17-18에서 약속의 뜻을 변하실 수 없고, 거짓말을 할 수 없으시며,

약1:13,17에서, 󰡒악에게 시험받지 않으시고, 변함과 그림자도 없으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진실의 본질을 가지셨으므로 우리가 믿을 수 밖에 없는 분이십니다.

3. 죄를 알지도, 짓지도 못하십니다.

따라서, 죄가 없으시며, 또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죄가 있거나 예수님께 죄가 있으시면 하나님이 되실 수도 없고, 우리의 구세주가 되실 수도 있겠지요. 고후5:21에서, 󰡒예수님께서는 죄를 알지도 못하신다󰡓고 하셨는데, 이는 전지하시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고, 범죄에 무능하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과 꼭 같은 시험을 받으셨으되(마4:1-11;히4:15;약1:13=신격으로 시험을 받지 않으신다는 뜻) 죄를 짓지 아니하셨습니다. 민23:19에서, 󰡒하나님께서는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후회가 없으시며 󰡓삼상15:29에서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다󰡓고 하심으로 순결성을 유구하게 보존하심을 말씀하셨습니다(히13:8, 영원토록 동일하심).

4.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외에 다른 적자를 갖지 못하십니다.

만일, 이를 더 가질 수 있다면 하나 뿐인 독생자를 희생시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같은 본질의 아들을 더 두실 수가 없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유일하시므로 자기의 기본적이며 고유한 존재를 늘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존재의 유일성(막12:29)과 절대성(사40:18)때문에 자신의 영원 전의 존재성격(출3:14)을 변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말3:6;민23:19;시102:27).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독생자로 구속의 제물을 삼으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5.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은 범죄자의 죄를 대속물 없이 용서하지는 못하십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시는 성품 중에 공의의 성품이 있습니다. 이 공의의 성품이란 죄인을 벌하시고, 의인을 상주시는 성품입니다. 이 살후1:7을 보시면, 󰡒성도를 핍박하는 악인들에게 환난으로 갚으시고, 핍박을 받는 성도들에게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거저는 용서를 못하시고 대속물을 받으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 대속물의 대상과 방법은 오직 예수님과 그의 순종의 십자가 뿐이었습니다.

38.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목록으로


요14:6에서,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가리켜서 󰡒길이요, 진리요,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헬라 원문대로 번역하면 󰡒그 길, 그 진리, 그 생명󰡓이니, 이 말씀은 이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길과 진리와 생명, 바로 그것󰡓이란 의미입니다.

1.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길이 되십니다. 어떤 길을 의미할까요?

1) 하나님을 계시하시는 유일한 방도의 길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계시하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요1:18에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계신 독생하신 하나님(예수님)이 나타내셨느니라󰡓하셨고, 요14:9에서도,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하셨고, 또 요5:19에서는, 󰡒아들이 아버지의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하심으로, 예수님께서 하나님 계시의 유일 방편임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2) 인간이 하나님과 연합하는 유일한 중보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나타내 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알게하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게 하시는 중보사역을 하시는 것입니다. 요14:6에서,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는 말씀이나, 요3:3의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말씀도 역시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것이요(벧전1:3), 또 은혜의 보좌에 나가게 되는 것도(히4:14-16) 예수님의 대제사장되신 덕분이요, 기도의 응답도 주님의 이름으로 응답되기 때문입니다(요16:23-24).

3) 속죄와 구원을 받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속자이십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다󰡓는 말씀이나(요14:6)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이나(요3:16),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는 말씀(행4:12)이 바로 그 뜻입니다.

4) 인간의 삶(윤리적 생활)의 유일한 방도이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완전한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 삶의 본이 되셨기 때문입니다(요13:15;고전11:1;벧전1:16). 인간이 어떠한 형태로 살 것이냐에 대한 방도는 허다합니다. 이것이 곧 세계에 널리 형성된 전통과 유행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표준이 못되고 오직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성경적으로 사는 생활만이 바로사는 생활이며 복받을 삶이란 뜻입니다.

2. 예수님께서는 진리가 되십니다.

진리란 뜻은 󰡒참󰡓이고 󰡒진실󰡓이란 뜻입니다. 참과 진리는 거짓이 없는 것이고, 거짓이 없으려면 절대로 변하여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고(히7:24)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에(약1:17) 진리가 되십니다. 또한 변함 없는 예수님의 약속도 역시 변함이 없습니다(롬15:8;시146:6;사55:11).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과 그의 말씀만 믿고 의지할지언정 다른 것을 결코 믿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는 유일한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창조자가 생명의 근원이 되심은 당연합니다. 요11:25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하셨고, 행3:15에서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는 분󰡓, 마10:29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참새의 생명과 머리털까지도 보호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세상에 있는 모든 생명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며, 그 생명력을 통하여 자라게 하심도 역시 주님의 능력권에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고전3:6).

하나님은 모든 움직이는 것의 근원이시요, 생명과 힘의 공급자이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39. 예수님의 3대 직분 목록으로


예수님이 이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을 너무도 많습니다. 인간모범을 보이셨고(요13:15), 창조자 하나님을 보이셨으며(요1:2;3:18;14:19), 자비와 봉사와 능력을 나타내셨고, 십자가와 부활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이렇게 여러가지 일들을 많이 하셨지만 크고도 중요한 3대 직분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3대 직분은 선지자의 직과 대제사장의 직과 왕의 직을 의미합니다. 이 직분의 설명 출처는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뜻에서 비롯됩니다. 본래 󰡐예수󰡑라는 이름의 뜻도 󰡐하나님이 자기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입니다. 또 눅2:11에서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하였는데 이 그리스도란 뜻은 기름부름의 받은 자란 뜻이고, 이 기름부음은 성령의 충만을 의미합니다(눅4:18).

구약성경에 보면 선지자와(왕상19:15-16) 제사장과(레21:10) 왕에게(삼하2:4) 기름을 부었는데 예수님이 기름부음심의 가장 충만한 은혜를 받으신 분이므로(요1:14;행4:17) 더욱 그같은 사명이 있으며, 이 세가지 직분을 사람이 대행하였을지라도(선지자:엘리야, 대제사장:아론, 왕:다윗) 이는 다 일시적이고 부분적 직임을 수행한 것이요, 영원하고 완전한 직임을 예수님이 모두 이행하시는 것입니다.

1. 선지자의 직분은 어떤 것입니까?

선지자의 직임은 하나님을 계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직분입니다. 겔2:4-5을 보시면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이러하시다 하라.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 있는 줄을 알지니라󰡓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증언하는 것이 선지자의 사명임을 말씀하였습니다.

따라서 사도, 전도자, 목사, 선교사, 전도사, 교사등 말씀을 전하는 모든 직분이 다 예수님의 선지자 직임에 예속됨을 아셔야 합니다.

2. 대제사장의 직임은 선택받은 죄인들을 하나님과 화해시켜서 영원한 생명의 복락을 누리도록 중보사역을 하는 직임이며, 이 사역을 위하여 예수님의 인간되심과 십자가와 부활이 필요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속죄사업과 관련된 몇 가지를 더 말씀드립니다.

1) 하나님이 만족하게 받으실 제물이 되는 조건에서(히8:3), 속죄의 제물은 영원한 생명(많은 생명을 속량하여야 하므로), 완전무죄(죄를 대속하여야 하므로), 하나님의 아들신분(하나님의 진노를 유화시켜야 하므로)이어야 하고,

2) 하나님의 임명으로 중보자의 자격을 받아야 하고(히5:5;7:28), 또 그것을 맹세로 수락하셔야 합니다(히7:20-21).

3) 속죄사역을 이행하시는 방법에서 속죄대상과 의미의 지식을 가지고(사53:11;요17:9), 자원하며(요10:18), 완전한 순종과(빌2:8;히5:8), 피흘리심의 고난으로 생명을 버리심과(사53:10-12;히2:10;9:22), 부활과 열납(히4:14;9:12)을 이루셔야 하는 것입니다.

4) 열납이 끝나면 속죄의 효력을 베푸시는데 먼저는 하나님이 그 죄인에 대한 진노를 푸시고(롬3:25,유화) 그 죄인과 화목하시며(골2:15),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는 것입니다(요1:12).

5) 그리고 하나님과의 사이에 영원한 중보역할을 이행하여 주십니다(히7:24-25).

3. 왕의 직분은 예수님이 만왕의 왕(딤전6:15)이시나 구속사업을 위하여는 종 같은 인간으로 사셨고, 승천하신 후부터는 왕권을 행사하십니다(요5:27;빌2:6-11). 이 왕권은 영원한 영광을 받으심과 천국의 주인되심과 선악간에 심판자되시는 일을 수행하심을 의미합니다.








六. 기독교 예배의식에 대하여


40. 성수주일이란 무엇입니까? 목록으로


초신자님들이 주일날(일요일) 교회에 나오시면 많은 성도들이 주일을 성별하여 그날을 교회와 신앙에 관한 일로만 사용하고 세속에 관한 일은 되도록 피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 성수주일을 더 잘하는 성도들은 주일에 모든 사업을 중지함은 물론 매매와 쾌락된 일까지 금하고 예배, 기도, 성경공부, 심방등에 주력하는데 그와 같이 주일을 성별되게 지키는 것을 성수주일이라고 합니다.

1. 본래 구약시대에는 토요일을 안식일이라 하여 거룩하게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이날은

1) 하나님의 창조와 안식을 기념하고(창2:2),

2)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출20:11),

3) 성도에게 복을 주시며(막2:27),

4) 영혼의 소성을 위한 휴식과(레19:30;24:8;시23:2-3),

5) 육신적 휴식(출35:2),

6) 영원한 안식의 언약과 모형(출31:16;히4:4-9)으로 주셨던 것입니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날을 구별되게 생각하고 휴식과 제사를 위하여 미리 준비하였다가(출23:12;35:3;58:13) 그 날에 제사를 드리고(레19:30;24:8), 죄를 금하며 선을 행하고(사56:2;58:18), 혹 어기는 자는 사형집행까지 행하였습니다(출31:15;민15:32).

3. 그러다가 이 율법은 세례요한까지 마침이 되었고(마11:13),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안식일날 세상에 계시지 않다가 주일에 부활하신 후부터 사도들은 그 날을 󰡒주의 날󰡓이라 칭하고(고전16:21;계1:10) 예배를 드렸으며 제자들이 주의 날에 모였을 때에 주님께서 친히 찾아오셔서 평강과 축복을 하셨습니다(눅24:36;요20:21;행2:1-4).

그때부터 사도들은 주일에 모임을 가졌으며(요20:19;고전16:2;눅24:1), 그후에 사도들이 다시 안식일을 지킨 일이 없고, 주일에 모여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살후3:9;벧전2:12), 사도들의 모범을 기초로 하는 신약시대의 성도들도 사도의 모범에 따라(엡2:20) 안식일성수에서 주일성수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단교파 중에 안식교가 있는데, 그들은 다른 교리를 잘못 주장하는 외에 󰡒안식일도 구약의 방식대로 지켜야 한다󰡓고 하면서 토요일 안식일을 고집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1) 모형적 율법(안식일=천국안식의 모형, 제사=십자가 속죄의 모형 같은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성취되기까지 시한부였다는 사실(호2:10;마11:13;골2:6)과, 2) 율법과 복음시대의 전환점이 있다는 것(행15:28-29)과, 3) 사도들의 모범이 신약교회의 초석이 되었다(엡2:20)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4. 그러면 우리는 주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겠습니까?

안식일을 지키는 정신에 입각하여 그 날을 주님의 날로 신령하게 구별하고 신령한 복을 받는 날로 지키시되 세속을 일들을 사전에 정리하고 신령한 은혜, 즉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도록 힘써야 합니다(마6:33).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계명과 뜻을 따르는 일입니다. 즉 말씀에 붙잡혀 살 때에 큰 복을 받습니다(창12:4;행18:5). 기회있는대로 교회헌법적규칙 4조를 보십시오. 주일에는 영적 신앙의소성과 육체의 안식과 복음적 봉사를 아울러 성취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5. 영혼(믿음생활)이 잘되면 범사도 잘된다고 하셨습니다(요삼1:2).

성수주일은 영혼이 잘되는 최대의 방법입니다. 장마철 주일에 터진 둑을 막지 않고 예배드린 성도가 떠내려오는 사태로 둑이 막힌 것을 본 일이 있고, 성수주일로 모를 못내고 가문 논에 조를 심은 성도가 더 큰 소득을 거둔 사실도 있었다고 합니다.

성수주일은 믿음과 모험으로 시행할 일입니다. 아직도 성수주일의 터가 잡히지 못하였으면 성수주일할 수 있도록 기반을 구축하십시오.

41. 예배란 무엇입니까? 목록으로


1. 초신자가 교회에 나오면 제일 먼저 예배에 참석하게 됩니다. 작은 교회에서는 혹 예배의 분위기가 단조로와 보이나 큰 교회에서는 그 분위기가 퍽 엄숙하며 장엄하고 권위가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그 외형적인 분위기로 판단해서는 안되고 다만 예배를 드리는 성도 개개인이 얼마나 신령과 진정으로 행동을 취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2. 어떤 성도는 예배를 목사 혼자서 인도하는 것인 줄 압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정치 9장 4조 3항과 6조에 보시면, 엄연히 당회가 주관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예배를 목사가 인도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당회(당회장과 시무장로)가 모든 예비의 시간과 장소와 주보에 나타난 순서 및 주보편집에 이르기까지 주관하고 또 감독하는 것입니다. 또 찬양대원이 되고 안되는 것과 대표기도순서와 광고내용까지도 심사결의하여 목사가 진행하는 것임을 아셔야 합니다.

3. 예배의 순서는 주보에 나타난 대로입니다만 거기에 금식과 성례(세례,성찬)와 성경문답과 권징(시벌,해벌)도 포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보에 나타나지 않은 순서들은 특별한 때에만 행합니다. 이러한 모든 순서는 성경에 나타난 사도들의 모범을 본받아 시행하는 것임을 아십시오(요4:23-24;히11:6;9:1-10;엡2:20).

4. 예배의 시간과 장소는 모임의 편의에 따라 하면 되는 것이니 성경에는 날마다(행2:26), 안식일에(행13:14), 주일에(행20:7;고전16:2) 예배드린 근거가 있고, 장소는 다락방(행2:46), 회당(행15:21), 개인집(골4:15)에서 예배드린 일이 있습니다.

기독교가 점점 대중화되면서 모이기 좋은 예배당을 짓고 모임의 편의를 위하여 주일낮예배, 주일오후찬양예배(찬양중심), 수요일저녁기도회(기도중심), 매일새벽기도회를 정하였고, 또 교회의 특별행사(결혼, 장례, 개업)가 있을 때도 먼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 중에 주일낮 공예배는 성도가 제일 많이 나오는 시간이기 때문에 더욱 예배의 조합성을 기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공예배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혼자 또는 가족끼리도 드릴 수 있습니다.

5. 예배가 무엇입니까?

1) 예배는 하나님께 대한 예절입니다.

명절이나 생일에 어른을 뵙는 것과 같습니다. 어른에 대한 존경과 신뢰와 감사와 충성심을 갖고 예물을 지니고 가서 절하는 것과 같이 성도가 하나님께 최대한의 경의를 표함이 곧 예배입니다. 즉 만남의 예절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예배는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통치섭리에 대한 성도의 응답입니다. 즉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감사히 받는다는 표시로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입니다.

3) 예배는 성도가 모든 것을 주 뜻대로 행하는 생활입니다.

이 생활 속에는 하나님과의 진정한 대화와 말씀에 대한 순종과 봉사, 그리고 충성과 최대한의 경건이 포함됩니다. 따라서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생활의 결정체입니다.

6.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장로교회의 예배모범에는 먼저 주일성수를 강조하셨고, 예배의 순서는 적당하고 규모있게 행하며 집회 때의 태도는 경건해야 하고, 공식기도는 짧게 하되 영광, 감사, 자복, 간구의 순서로 하며 간구의 근거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심과 예수님의 공로에 두고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도 드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예배는 성도의 마땅한 의무요, 기독교생활의 가장 비중있는 활동입니다.

42. 구약의 성전과 신약의 예배당 목록으로


󰡒구약의 성전과 신약의 예배당󰡓이란 제목으로 글을 쓰는 이유는 성도들 중에나 혹은 지도층에서 성전(예배당)에 대한 관심을 지나치게 기울여 예배당을 구약시대의 성전처럼 신성시하거나, 과도한 사치에 얽매여 예배당을 위해 지나치게 낭비하는 경우가 있어서 이것을 어느정도라도 깨우쳐 보려는 것입니다.

1. 본래 성전의 사용 역사는 자연제단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벨의 제단, 노아의 제단, 아브라함의 제단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당시의 제단은 자연석으로 적당한 장소에 제단을 쌓고 거기에 제물을 드리는 목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2. 그러다가 모세 때에 와서 율법으로 성막을 짓게 하셨으니, 그때부터 성막제도와 제사드리는 법을 상세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출35:부터 40:까지의 말씀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모세 때에 사용하던 성전은 그 당시에 이스라엘백성들이 장기여행을 하던 중이라 정착된 집을 짓지 못하고 이동하기 좋은 장막성전을 짓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성전이라 하지 않고, 장막, 성막, 회막(출40:2.22;35:18)이라고 호칭하였습니다. 그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서도 전쟁등으로 안정되지 못하여(왕상5:4) 견고한 성전을 짓지 못하다가 솔로몬 때에 비로소 견고한 성전을 짓게 되었습니다.

3. 솔로몬은 성전을 지을 때에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성막을 짓듯이 솔로몬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지었으니(왕상5:12) 그 성전은 하나님의 감독하에서(왕상6:12) 완성되었고(왕상7:51) 봉헌식과 아울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왕상8:10,11) 응답의 말씀까지 주셨습니다(왕상9:3).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솔로몬의 지은 성전이 하나님의 계시대로 지어졌음을 뜻하며 성전에서 사용하는 기구들도 만들었는데(왕상7:40-51) 이는 모세 때의 것과 동일하게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왕상7:37).

이때부터 성막(장막,회막)이란 이름이 변하여 성전으로 바꾸어진 것입니다(왕상8:13).

4. 그러면 구약의 성전의 의미가 무었이었습니까?

1) 제사를 드리기 위함인데 이 제사는 단번에 제사를 완성하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모형이며(히9:28;10:10),

2) 속죄제에 대한 의미를 상세히 계시해 주심이며(히9:1-10),

3) 예수님을 계시하신 방편이라고 하셨습니다. 요2:21에서 예수님은 성전을 육체로 비유하셨습니다.

따라서 구약의 성전은 예수님과 그의 속죄사업을 계시하신 모형적 제단이었는데,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의 제사를 단번에 성취하심으로 간접적 계시와 모형적 제사가 다 성취되었기 때문에 구약의 성전제도는 예수님이 오심으로 끝난 것입니다.

5. 예수님은 공생애에 들어서시면서 성전에 나가서 구약식 제사를 드리신 일이 없었고, 다만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하셨으며(마21:13), 성경문답을 하셨고(눅2:46), 또 이제부터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하는데 이는 예루살렘 성전이나 특정지역이 아닌 어디에서든지 드릴 수 있으며, 두세 사람만 모인 곳이라도 주님이 함께 하신다(마18:20)하심으로 완전히 장소와 건물을 초월하게 되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6. 따라서 신약시대의 성전은 구약적 성전이 아닌 예배당, 집회소, 교육관, 기도실, 친교실, 봉사를 위한 사업소의 의미를 갖는 하나님의 집(건물)일 뿐이라는 사실을 아셔서 용도에 알맞는 시설 이상의 사치나 허영이나, 신성시하는 태도를 지양해야 할 것이요, 하나님께 소유된 재산이라는 의미에서 합당하게 관리할 뿐입니다.

예배당을 잘 지을 돈으로 구제나 전도를 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잘하는 일이라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치와 낭비를 좋아하시지 않으며 또 물질적인 것에 권위와 은혜성을 과하게 느끼는 것도 좋지 않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43. 과도한 교회의 허례의식 목록으로


교회적 허례허식에 대하여 드릴 말씀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성도의 신앙적 유익을 위하여 찬송이나 기도나 말씀연구의 시간을 많이 가졌다 하여 잘못될 것은 없겠지요. 또 헌금을 제한하거나 봉사와 전도를 제한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러나 예배드리는 시간이 길면 지루하기도 하고, 또 바쁜 사람들에게 은근히 편의를 제공하는 목적도 있어서 예배의 시간을 엄격하게 간단하게 규제하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딤전3:5에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할 것󰡓을 알려주시되 자세히 주의하여 행하라(엡5:15) 하셨고, 또 고전14:40에서는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따라서 교회적인 모든 행사도 무리가 없으며 합리적이고 적당하게 시행하여야 함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1. 저희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예수를 잘믿는 일)과 은혜받는 방법을 잘아는 것이요, 여기에 반대되거나 아닌 것은 하지 않도록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기도와 말씀연구, 성수주일, 예배와 봉사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요, 은혜받을 목적을 위하여 성경을 연구하고 충성하는 것은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자기 개인의 생각이나 가정의 일이라면 그렇게 아니할 것이나 교회(예수님)의 일이기 때문에 낭비하는 것을 예사로 아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2. 잘못된 계통의 교회가 아니면 어느 곳에 있는 교회든지 다 하나님의 교회요, 또 그곳의 사역자가 바로 자신의 형제이며, 동역자요, 다같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란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한동안은 󰡒교회가 서로 가까이 있으니 덕이 안된다󰡓하여 예배당 간격을 200미터이상으로 제한하였지만 이것도 사역자가 폭주하면서 지켜지지 않고, 결국은 교회경쟁에 급급하게 되었습니다. 선한 경쟁은 좋은 일이지만 이런 상황으로 교회유지책을 강구하는 목적이 되거나, 서로 투기하고, 건덕을 위반하는 처사가 된다면 예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교역자는 큰 교회를 간판으로 내세워 인기를 얻으려 하거나 그것으로 현실적 실리(명예, 권위, 현실적 이득등)를 얻으려 하여도 안될 것입니다.

3. 현실교회가 자제하여야 할 경우가 몇가지가 있습니다.

1) 자동차 이용문제입니다. 자동차가 필요한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실제적으로 필요 불가피한 일에 사용하는가? 차량운영비와 거기서 얻어지는 열매가 상당하게 일치하는가? 자동차 이용의 부진으로 그 생명이 갈 교회가 없어서 신앙생활을 못하게 되는가? 이러한 점들을 생각해볼 것이요,

2) 교회에서 사용하는 가운이 크게 거치장스러워진다는 것입니다. 구입할 때, 보관할 때, 세탁할 때 시간적 물질적 비용이 많이 듭니다. 성경에는 가운을 입어야 된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다만 목사의 단정함을 위하여 시행되었을 뿐인데 이것이 은혜를 끼치는 방법으로 둔갑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감을 느끼게 합니다. 가운은 의복일 뿐입니다. 지금은 이것이 어린이들에게까지 보편화되어 번거로운 일이 되고 있음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3) 행정절차와 행정사무에 지나치게 번거로움이 있는 것입니다. 단체생활에 행정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행정은 세례받은 절차와 직임을 받은 사실과 재정의 수지현황과 권징에 관한 사항일 것입니다. 그 외의 일들은 절차를 밟되 간소하게 하고 넘어가는 정도로 하여 사무재료와 시간을 절약하였으면 하는 것입니다.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성경배우고, 심방, 전도, 봉사하는 것은 믿음과 직접 관련이 있는 일이지만 그 이외의 일은 직접 관련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일에 대하여는 교회의 재정과 시간의 낭비를 줄이는 지혜를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진정 예수를 믿는 일에 시간과 정력과 물질을 유효하게 투자하고 있는가를 살펴서 허례의식을 많이 통제하여야 할 것입니다.

44. 성례식에 대하여 목록으로


성례식은 세례식과 성찬예식을 의미하는데 우선 한가지씩 살펴보겠습니다. 초신자가 교회에 나왔다가 의미를 모르고 성찬예식을 구경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의미를 알고보면 참으로 필요하며 또 은혜롭습니다.

1. 세례식은 학습받은 사람이 6개월 이상 신앙생활을 힘썼을 때 그의 신앙고백 여부를 시험한 후 합격이 되면 목사가 공회 앞에서 서약을 하고 그의 머리에 물을 뿌려 안수를 하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고 선포하는 예식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택한 백성을 인치는 󰡒할례󰡓란 의식이 있었는데(창17:9-14) 이것이 신약시대에 와서 세례의식으로 바뀌었고 예수님이 친히 모범을 보이시고(마3:16) 사도들로 하여금 시행케 하셨습니다(마28:20;막14:22;행2:41).

예수님께서는 󰡒구원받는 은혜를 더 확실하게 인치시기 위하여󰡓 이 예식을 행하도록 명하셨으니 그 인을 치는 예식은 마치 구두로 약정한 사실을 계약서의 서명날인으로 명확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을 뿌림은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죄사함받음을 상징하며(행2:38) 또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탄생하는 것을 상징(기념)합니다(골3:2). 따라서 세례는 주님의 모범과 명령으로 시행하는 것이기 때문에(성찬과 함께) 성례라고 하는 것입니다. 천주교회에서는 이 두가지 외에 견신, 고해, 임직, 결혼, 종유를 포함하여 7성례를 주장하지만 이 다섯가지는 성경상 근거가 없습니다.

유아세례는 만 2세 이하의 성도의 자녀에게 그 부모(부모중 1인이 세례교인이어야 함)가 신앙적으로 양육할 것을 서약하게 하고 베푸는 것으로 행16:34과 창17:9-14등에 근거합니다. 그때 신앙고백을 받고 다시 입교(교인등록)하게 됩니다.

󰡒학습󰡓이란 교회에 등록한지 6개월 이상된 사람에게 예비적인 신앙고백을 시켜서 교회생활을 다짐받고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표하는 예식으로 이는 세례를 합당하게 베풀기 위한 절차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세례를 받음은

1) 죄사함받고,

2)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3) 천국의 시민으로 입적되고,

4) 입교인이 되고(유형교회의 회원),

5) 옛 사람을 장사지낸 후 새사람이 되었다는 표가 되는 것입니다.

2. 성찬예식은 역시 예수님이 모범을 보이시고 명령하셨으므로 시행합니다(마26:26;막14:22;눅22:18;고전11:2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하신 만찬석에서 떡을 떼어 나누어 주시며 그 떡을 예수님이 구속의 제물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찢기신 살로 기념하고, 또 잔을(포도주) 나누어 주시면서 이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흘리신 생명, 곧 언약의 피로 기념하여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찬예식은 1) 예수님의 구속은혜와 고난을 기념하는 것이고, 2) 그 예식을 통하여 은혜를 받으며, 3) 또 그것을 통해서 그의 구속의 은혜를 전도하는 것입니다(고전11:26).

이 성찬예식은 마치 예수님을 곁에 모시고 음식을 먹는 것이요, 곧 고난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적으로 모신 것이고 그가 자기의 성체를 찢어 나를 주시고 또 그의 영원한 생명의 피를 흘려 나를 주신 것을 생생한 의식으로 음미하는 것이니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가 새행하는 은혜의 방편으로는 말씀과 함께 성례가 꼽히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성찬을 시행할 때 먼저 자기를 살펴 회개하고(고전11:28) 하나님과 이웃간에 불화의 담을 화해로써 완전히 헐어야 하며 또 고난을 감수하며 충성을 각오하는 자세로 임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성찬은 세례받은 자라야 참여할 수 있습니다.

45. 교회의 절기에 대하여 목록으로


현재 장로교회에서는 기독교 절기 행사로 성탄절, 부활절, 맥추절, 추수감사절을 4대절기라 하여 지키며 뜻있는 기념행사와 감사헌금을 하는 교회가 대부분입니다. 초신자가 교회에 나오셨다가 의미를 모르는채 성례식을 참관하게 되는 것처럼, 나오자마자 절기예배에 직면하여서 헌금을 드리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 이제부터 절기에 대한 말씀을 간략히 드리겠습니다.

1. 교회의 절기란 일반사회에도 명절(신년, 추석, 광복절등)이 있음과 같이 교회에도 있는 역사적 특이한 은혜와 사건을 기념하는 행사들입니다.

2. 예수님이 오시기 전인 구약시대에는 많은 절기가 있었습니다.

1)레23:에 절기의 말씀들이 있는데 우선 6일동안 일하고 토요일날 안식하는 안식일이 있고, 또 매년 1월 14-21일까지 지키는 유월절이 있고, 유월절 다음 50일을 계수한 주일날에 새소제를 드리는 오순절(16일)이 있고, 또 7월 7일은 나팔절이요, 7월 10일은 속죄일 및 초막절이요, 7월 15일은 토지소산을 처름 거둔 후 지키는 감사절이요, 또 민28:11에는 매월 초하루에 드리는 월삭이 있고, 또 4절에는 매일 드리는 조석제사가 있으나 조석제사를 절기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2) 이상은 다 율법에 명시된 절기요, 그 다음 포로시대에 와서 에9:24-29에 보시면 이스라엘민족이 하만의 궤계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는 부림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출23:14-16을 보시면 위의 절기들을 3대절기로 요약하여 강조한 말씀이 있으니, 곧 유월절(애굽에서의 구출을 기념하는 것,출12장)과 맥추절(첫열매의 소산을 감사하는 절기)과 수장절(추수감사절)로 강조되었습니다.

이렇게 구약시대에는 여러가지 절기들이 있었으나 신약시대에 와서는 선민제도가 폐지되고, 또 모형적 율법은 세례요한까지요(마11:13), 또 절기제도가 폐지될 것도 예언하셨고(호2:11) 신약시대에는 사도들의 모범으로 계시가 더 밝아졌으므로(히1:1;엡2:20) 구약의 절기제도도 개선된 것입니다.

3. 신약의 시대에는 무슨 절기가 있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낙과 달을 지키는 절기제도가 수립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골2:16을 보시면 󰡒먹고 마시는 것이나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심으로 그 제도를 일축하셨습니다.

그러면 신약시대의 절기는 왜 생겼을까요? 그것은 은혜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운 사건을 기념하여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자(고전10:31) 하는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선 4대절기를 말씀드리면

1) 성탄절은 하나님이 구세주 예수님을 보내시고 그 예수님이 사람의 몸으로 도성인신하여 오신 놀라운 축복을 감사하며 영광돌리는 절기로서 그 일자를 확실히 모르나 안디옥의 교사 󰡒데오빌라스󰡓(주후171-183년)의 문헌에 따라 12월 25일이 된 것입니다. 위 절기와 관련된 막간의 절기도 있습니다.

2) 즉 예수님의 고난일을 40일간 앞두어 고난을 기념하는 사순절,

3) 또 예수님의 고난을 일주일 앞둔 고난절,

4)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후 50일 만에 성령의 강림을 기념하는 성령강림절(행2:1-4)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러한 절기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에 감하사며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인만큼 뜻있게 보내심으로 영광과 은혜를 도모하셔야 할 것입니다.

46. 찬송에 대하여 목록으로


성도의 경건생활 중에 찬송이 차지하는 비중이 큽니다. 집에서도, 길에서도, 일하면서도, 예배드리는 중에도, 기도시간이나 설교시간 못지 않게 찬송을 많이 부르지요.

성경에도 믿음의 선조들이 찬송을 많이 불렀습니다. 제일 먼저 노아의 찬송기사(창9:26), 야곱의 찬송(창29:35),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의 찬송(출15:1), 다윗의 찬송(시145:), 또 신약에서는 마리아의 찬송(눅1:38), 천군천사의 찬송(눅2:13), 예수님과 제자들의 찬송(마26:30), 초대교회 성도들의 찬송(행2:47), 바울과 실라의 옥중찬송(행16:25), 하늘의 찬송(계5:8-9,13)등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왕상10:12과 대하9:11에는 악기제작을 전문으로 하였고 찬양대원의 조직도 있었으며(대상15:16-24) 찬양대원의 수가 4,000명에 이른 일도 있었습니다(대상23:5).

1. 찬송이란 무엇입니까?

성경에는 찬송, 찬미, 찬양, 송축, 신령한 노래 등의 용어가 있으나 같은 뜻으로 보아야 하며, 찬송은 성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부르는 신앙적 노래입니다. 기독교대사전에는 설명하기를, 󰡒성령에 사로잡힌 기독교인의 시적 발로󰡓라고 하였습니다.

2. 성도가 찬송을 드려야 할 이유는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찬미를 받으시기 위하여 성도를 택하시고 구원하셨다󰡓고 하셨습니다(엡1:6). 사람이 예술을 좋아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찬송받으심을 좋아하십니다. 성도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가 너무 크므로 마땅히 찬송으로 영광을 돌려드려야 하며(사43:21;시33:1), 또 찬송은 영광과 희락의 제사(히13:15;시27:6)라고도 하셨습니다.

3. 찬송을 어떻게 불러야 합니까?

1) 믿음으로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있는 자를 기쁘시게 받으십니다(히11:6).

2) 감사함으로 불러야 합니다. 󰡒그 은택을 잊지 말고 찬송하라󰡓고 하셨습니다(시103:3).

3) 기쁨으로 찬송하여야 합니다.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시100:1-2).

4) 새노래로 불러야 합니다. 시96:1과 계5:9에서 새로운 노래를 말씀하셨습니다.

5) 악기와 함께(시150:3-5) 공교하게 연주하라(시33:3)고 하셨습니다.

6) 죽을 때까지 영원토록 찬송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시146:2).

4. 요한 웨슬레는 찬송부르는 방법 몇 가지를 말하였는데,

1) 곡조를 배우고, 2) 악보대로 부르고, 3) 전부 부르고, 4) 열심있게 부르고, 5) 소리를 지르지 않는 방법으로 조심스럽게 부르고, 6) 영적으로 가사를 음미하면서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5. 장로교 헌법 예배모범에서는(예모4장)

1) 성경에 합당한 말과,

2)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가사를 사용하고,

3) 정성껏 부르고,

4) 뜻을 깨달으며,

5) 곡조를 맞추어,

6) 주님께 마음을 다하여,

7) 음악의 기술을 연습하여,

8) 시간의 적절함을 기하고,

9) 교인전체로 찬송하는 실력을 얻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6. 성도가 찬송할 때 그 가사를 통하여 신앙고백과 기도와 전도를 아울러 할 수 있고 감동적으로 찬송을 부르면 감사와 기쁨과 참회를 맛볼 수도 있습니다. 찬송은 영광의 방편입니다.

47. 찬미의 제사를 드리자. 목록으로


히13:15에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하셨습니다.

1. 위 본문 초두에 󰡒우리가󰡓라는 말씀은 찬송해야 할 의무자가 우리자신들이란 말씀입니다. 어떤 단체가 찬양의 밤이란 순서를 가지면서 찬송전문가들(합창단, 기악연주단)을 초청하여 함께 영광돌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교회 안에서도 찬양대로 하여금 찬양을 대신케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찬송은 성도 개개인의 심령의 노래로 드려져야 하는만큼 대신 불러주는 찬송은 자신의 찬송만큼 의미가 있는 것을 아닐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는 나 자신이 찬송을 드리는 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2. 다음 귀절에 󰡒예수로 말미암아󰡓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신앙으로󰡓 또는 󰡒예수님의 중보사역을 위해서󰡓라는 뜻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찬송하는 자는 믿음있는 신앙으로 불러야 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찬송은 노래에 불과할 것이고, 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중보적 역할로 상달되는 것이 아니므로 소용이 없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 또 󰡒하나님이 기뻐해주시는 관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에서 부르는 찬송을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3. 다음 말씀에 또 󰡒항상󰡓이란 말씀이 있으니, 즉 항상 찬송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항상󰡓의 뜻은 24시간 전부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이 그렇듯이 찬송도 다른 생활보다 가장 귀하게 여겨서 어떤 때나, 기분에 구애됨이 없이 사명적으로 불러야 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기분따라 부르려는 자세, 한가한 시간에만 부르려는 자세, 흥미위주로만 부르려는 것등은 항상 불러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바쁜 일보다 찬송을 더 귀하게 알고, 자기기분이나 흥미위주로 부를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소원에 따라 사명적으로 부른다면 항상 구애없이 부를 수 있을 것이니 하나님은 그런 자세의 찬송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4. 위 본문 중, 󰡒찬미의 제사󰡓란 말씀에서 찬미는 제사라고 하신만큼 찬송에는 정성과 경건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1) 정성이란 잘 연습하고 준비하여 부르는 것을 의미하고,

2) 경건이란 세속성을 피하여 성도로서의 구별된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자기기분대로 또는 흥미위주로 부르는 경우가 있지요. 그런 것은 자기를 위한 제사이지 주님을 위한 제사가 아닐 것입니다.

정성껏 연습한 찬송을 경건한 자세로 불러야 하는데, 어떤 것이 경건한 자세냐 할 때에,

1) 우선 세속적 자세를 모방하지 말고, 그것을 오히려 멀리 피하셔야 할 것이고,

2) 믿음있는 성도가 은혜롭게 인정하는 양심적 판단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것이 경건한 태도라고 말씀하신 바가 없지만 믿음과 양심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므로 믿음있는 지도자들이 󰡒세속성이 멀고 구별된 태도로 불렸고, 은혜롭게 했다󰡓고 여겨지는 것은 역시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5. 또 제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 만큼, 인간기쁨 중심이 되거나, 구경꾼이 있어야만 부르는 식의 제도는 옳지 않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구경꾼이 없어도 혼자 부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적 은혜 위주의 찬송을 많이 개혁해야 할 것입니다.

6. 마지막으로 󰡒찬송은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라󰡓하셨으니, 찬송을 잘함으로 전도에 기여할 수 있고, 물질적 봉사나 육체적 헌신이 아닌 마음과 입술로도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찬송이 우리들을 통해서 하나님께 직접 상달되도록 노력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셔야 하겠습니다.

48. 하나님을 찬양하라(시145:, 150:) 목록으로


찬양에 관한 지식을 보충하기 위하여 시149:과 150:을 상고하겠습니다.

1. 시138:부터 145:까지의 서두에 󰡒다윗의 시󰡓란 설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시146:부터 150:까지의 서두에 다윗의 시란 설명이 없다 하여도 그 찬양의 정신과 어투로 볼 때 역시 다윗의 시라고 예측함이 좋을 것입니다.

2. 다윗은 신앙인이었고 또 음악가로서 수금을 잘 탔으며(삼상16:23), 능숙한 신앙인의 가사를 작사하면서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두 편에 나타난 내용을 종합적으로 살피면,

1) 우선 󰡒할렐루야󰡓로 시작하고 󰡒할렐루야󰡓로 마친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용어를, ① 승리의 기쁨과 감사를 표현할 때, ② 함께 찬양하기를 호소할 때, ③ 신령한 은혜를 감탄할 때, ④ 찬송가 가사의 어두 어미에, ⑤ 하나님을 높여 축하드릴 때 사용하였습니다.

2) 찬송받으실 대상이 󰡒여호와󰡓(시149:1), 또 󰡒하나님󰡓(시150:1)이라고 하였으니 마땅히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부를 것이요, 그 영광을 다른데 두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3) 찬양의 단체와 장소를 󰡒성도의 회중에서󰡓(시149:1), 시온의 자민은(시149:2), 호흡이 있는 자마다(150:6)라 하셨고 또 그 성소, 그 권능의 궁창에서(150:1), 또 침상(잠자리에서 깨어)에서 하라(149:5)하였으니,

① 이는 찬송하는 자가 신앙있는 성도이어야 하며,

② 성도의 회중이 함께 찬송하고,

③ 또 성소(성전에 모임을 뜻함)와 권능의 궁창(권능으로 창조하신 자연계 어디든지)에서 찬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4) 찬송을 올려야 할 이유로서,

① 자기를 지으신 자이기 때문이며, ② 하나님이 성도를 통치하시는 왕이기 때문이며(149:2), ③ 자기백성을 기뻐하시며, ④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며(149:4), ⑤ 말씀의 존영(그 입에는)이 있고, 날카로운 두날 가진 말씀으로(히4:12) 역사하시기 때문이며(149:6), ⑥ 공의로 열방을 심판하시되 책에 기록된대로 하시며(149:7-9), ⑦ 성도에게 승리와 영광을 주시며, ⑧ 또 그의 능하신 행동과 광대하심 때문(150:2)이라고 하셨습니다.

5. 찬양의 방법을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1) 즐거워하며 찬양하고(149:2,5),

2) 춤추어 찬양하되(149:3;150:4) 이 춤이란 세속인들의 춤이 아니고 경건의 춤으로 특별하게 마련된 것이어야 합니다.

3) 악기를 동원하여 찬양하라 하셨으니, 그 악기들은 소고와 수금(149:3), 나팔과 수금과 비파, 소고치며 춤추는 방법으로 또 현악과 퉁소, 큰 소리나는 제금, 높은 소리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악기들은 다 그 당시에 있던 것입니다. 따라서 현대악기를 동원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현대악기를 동원할 때도 세속성이 강한 것이나 이방적 생활의 악기난 타락적인 악기를 함부로 사용하는 것을 삼가야 할 것입니다(롬12:2).

이때에 모든 악기소리는 공교하고 우아하며 경건의 감정을 발할 수 있는 곡으로 연주해야 하며, 결코 무질서하거나 시끄러운 찬양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좋은 예술(음악)의 표준은 경건하고 지식있는 성도가 지도하는데 따라야 할 것입니다. 경건하고 은혜있는 성도는 하나님 사상을 많이 닮았기 때문입니다.

6) 언제까지 찬양해야 할까요?

시150:6에서 󰡒호흡이 있는 자마다 찬양하라󰡓하셨는데 이 말씀은 호흡있는 모든 생물들이 마땅히 하나님을 찬양할 의무가 있으나 믿음이 없으면 찬양할 수 없으므로, 성도에 국한한 말씀이면서 호흡이 있을 때까지 찬양하라는 말씀으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성도의 호흡은 멎어지지 않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영원히 찬양하셔야 할 것입니다(5:8-12). 찬양할 자, 찬양장소, 찬양방법, 찬양시기에 대한 말씀을 배웠습니다.

49.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찬양 목록으로


1. 롬16:2을 보시면,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이 있다󰡓하셨고, 성도는 부르심의 목적에도 합당하게 행하고(엡4:1)주님께도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라(골1:10)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찬양도 합당하게 불러야 할 것입니다. 본서에서 찬송의 정의와 찬송의 이유, 그리고 부르는 방법과 받는 은혜등에 관하여 다루고 있으므로 중복을 피하고 다른 내용으로 몇 말씀드리겠습니다.

2. 찬송의 목적은 내가 감동과 은혜를 받기보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목적으로 불러야 하므로, 결코 자신의 흥미위주로 부르면 안됨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찬송은,

1) 부르는 사람의 영적 부요와,

2) 음악의 예술성이 합쳐져야 합니다. 이 때에 음악의 예술성이란 인간이 느끼는 음악적감각의 고상함을 의미합니다. 이 음악적감각의 고상함은 인간의 양심적 표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공감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부르는 찬송 중에는 그 가사를 참고해 볼 때에 전도용, 위로용, 회개용, 의식용, 󰡒권능받기를 간구하는 용(用)󰡓등의 가사가 많고, 하나님의 신분과 사역을 찬양하는 가사는 적고, 또 적게 불려지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찬송의 진정한 목적은 후자에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계4:8-11).

3. 제가 찬양대원들에게 󰡒찬양의 4대 요소󰡓를 말한 일이 있습니다.

1) 믿음을 가지고, 믿음있는 찬송을 드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불신하는 자의 찬송을 들으실 이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믿음이 있는 자를 의미하므로, 누구든지 찬송드릴 자격이 있지만, 각자에게 있는 믿음의 분량은 다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충만(엡5:18)과 예수님의 인격분량의 충만(엡4:13)을 강조하셨습니다.

따라서 믿음이 충만하려면 성경지식의 분량과 실천이 맞아야하고, 또한, 하나님과의 영적교제를 위한 기도가 많음으로 믿음의 충만을 이룩할 수가 있습니다.

2) 찬송을 드려야만 한다는 사명으로 불러야 합니다.

나를 위한 찬송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찬송이므로 찬송하기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부르려고 힘써야 한다는 것이요, 또 찬송의 성격상 인간의 흥미본위가 되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3) 감사와 기쁨으로 불러야 합니다.

찬송은 슬픔의 표현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찬송을 부르다가 참회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에 참회하는 중의 눈물의 찬송은 찬송의 성격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우울한 마음이나 초조한 마음으로 부르는 억지의 찬송은 역시 찬송의 목적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4) 음악적인 기술을 요합니다.

성악의 기술, 악기의 기술 자세의 기술입니다. 이런 것은 음악적으로 다듬어져야 합니다. 사람이 보기에 안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안좋을 것입니다.

찬송가 전문교수님의 말에 의하면 뒷짐을 지고 부르는 자세나 손짓 발짓을 하는 작태(제스츄어)를 하여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성경에 손을 들고 찬송한 내용(시63:4), 손뼉 친 내용(시47:1), 악기를 타며 부르는 내용(시148:3)이 있지만 그것이 자기 감정에 도취하는 종교적 󰡒쇼󰡓나 경건을 벗어나는 행위가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단체적 종교행사의 경건을 파하는 찬송의 작태를 피하고, 진실로 경건에서 우러나는 경건한 태도를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찬송은 하나님께서 직접 받으시는 제물임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히13:15).


50. 교회에서 드리는 헌금 목록으로


초신자가 교회에 나오시자마자 여러가지 헌금에 부딛히면 깜짝 놀랄 만큼 헌금의 종류와 분량이 많음을 보게 됩니다. 어떤 초신자는 처음부터 헌금에 인색함이 없이 잘 하기도 하는데 퍽 좋은 일입니다.

1. 성경에는 물질의 근거가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이시고(창1:1) 주인이시며(행17:24;대상19:14), 재물의 복과(대상29:12;잠8:18-21) 만물을 친히 주시고(행17:25) 또 재물을 얻을 능력까지 주신다고 하셨습니다(신8:18).

2. 성경에서 헌금의 근거와 모범을 여러 곳에서 명령하시고(신16:17) 장려하셨으며(눅21:1-4), 또 모범을 보이심으로(고후9:6-8) 교훈하셨습니다.

3. 헌금의 성격은 예물의 의미가 있고(이는 예배의 정성의 표시임, 신16:16) 헌신의 의미가 있으며(요12:3;고후8:5), 또 봉사의 의미가 있습니다(눅8:3). 따라서 헌금을 잘 드리는 성도는 마음도 주께 드리며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일이 됩니다(마6:21).

4. 헌금의 종류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1) 의무적인 헌금으로 소득의 십일조가 있으니(말3:10;마23:23) 이는 소득의 축복을 더하실 약속이 있는 계명이요,

2) 정성된 헌금으로 드리는 예배헌금(예물)이 있으니(출23:15;눅21:1) 이는 예배의 정성을 더하는 유익이 있으며,

3)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헌금이니 모든 은혜에 대한 감사를 비롯하여(시116:12;100:4) 맥추감사와 추수감사도 여기에 포함됩니다(출23:6).

4) 봉사적 헌금이 있으니 구제의 목적으로 드리는 헌금이며(행2:45;고후16:1),

5) 사명적으로 드리는 것도 있으니 전도헌금, 건축헌금등입니다(대상29:14;에2:68). 그리고 각기관의 회비는 헌금이 아닙니다.

5. 성미가 있으니 이것은 가정주부가 식사를 위한 쌀을 취할 때마다 예수님을 한가족으로 생각하여 쌀을 조금씩 취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예수님을 한가족으로 모시고 섬기는 뜻과(계3:20;막9:37-41) 복을 사모하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사렙다 과부는 어려움 중에서도 선지자를 대접하고 큰 복을 받았습니다(왕상17:9-16).

6. 헌금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은 헌금에 약속된 축복을 든든히 믿으시고(말3:10;고후9:6-10;마6:10) 과감한 노력으로 꾸준히 연습하셔야 하며(헌금은 할수록 더 잘하게 됨), 물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는 유혹에 빠지지 말며(마6:24) 재물로 일만 악의 뿌리가 되지 않게 하고(딤전6:10), 또 천국가는 데에도 재물이 장애가 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마19:33).

성실한 마음으로 드리고(마6:21;고후8:7), 하나님께만(교회에만) 드리며(막12:41-43), 은밀학게 한 후에 잊어버림이 좋고(마6:3) 형편대로 하며(고후8:12;9:6), 억지로나 인색함이 아닌 즐거움으로 행하고(고후9:7) 체면이나 눈치로 드리는 외식이 없어야 합니다. 헌금을 많이 드렸다고 자기를 나타내려 하거나 헌금한 만큼의 특권을 가지려는 것은 신앙적이 아닙니다(대상29:14).

7. 교회마다 헌금을 취하는 제도가 약간씩 다를 수 있지만 민주적 방식에 의한 취급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헌금의 수집방법은 당회가 주관하고, 수집된 헌금의 지출에 관하여는 당회가 예결산위원을 선출하여 예산하게 하고 1년예산을 초안하면 이것을 제직회와 공동의회에서 결의함으로 그 계획이 세워지며 또 결산과 감사보고도 제직회와 공동의회에서 받아야 합니다.

공예배 때 드리는 헌금항목은 십일조, 예배헌금, 감사헌금, 성미가 있고 다른 헌금은 필요에 따라 드리게 되며, 헌금은 반드시 명분있는 일에만 지출하여야 합니다.

51. 헌금을 잘 드리는 지혜 목록으로


1. 성도가 헌금을 잘 드리려면 신앙심, 봉사심, 기복심이 있어야 합니다.

1) 신앙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물질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또 헌금을 명하시고 축복을 약속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므로 절대순종하는 의미로 헌금을 드리는 것이고,

2) 봉사심이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교회에 덕을 세우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한다는 긍지와 사명을 가지고 자기의 소유를 아낌없이 드리는 것을 의미하며,

3) 기복심이 있어야 하는 바, 헌금에 축복이 약속되어 있고(마6:19;19:19) 헌금으로 받는 복은 씨를 심어 열매를 거둠과 같으므로(고후9:6;눅6:38) 복을 받고자 힘쓰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경우 기복심은 잘못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도록 힘써야 하고, 하나님께서도 십일조를 내고, 󰡒물질의 복을 주시나 아니주시나를 시험하라󰡓고 하셨으니(말3:10) 복받기 위하여 헌금을 드리는 것은 이기적이고 기복적이라도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헌금을 의무적으로만 드린다면 더욱 잘하는 일입니다.

또 성도의 헌금은 물질의 복만을 바라고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하늘의 상이 크다는 말씀도 있으니(마6:19) 이는 신령한 복을 의미하므로 영적축복에도 큰 관계가 있습니다. 우선 마6:21에서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하심은 헌금과 함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여 영적 은혜를 받게 된다는 뜻이고, 베드로도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른 후에 큰 사도가 된 것처럼(눅5:11) 헌금드리는 신앙으로 영적 축복을 받는 일이 더욱 귀한 일입니다.

2. 또 헌금을 잘하는 방법은 겸손한 자세로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헌금을 드리고 그것을 자기의 큰 공로로 생각할 뿐만 아니라 영원히 기억하여 주기를 바라며 교회에서 크게 대우받으려고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에게도 부끄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헌금열심과 봉사를 막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헌금을 드리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것을 드렸을 뿐이라󰡓(대상29:14)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3. 십일조를 어떻게 계산하여야 할까요?

십일조의 계산기준은 일단 소득의 십분의 일을 떼는 것입니다. 어떤 가정이 100만원의 농비를 풀어쓰고 소득을 거두어 그 값을 환산하였을 때 역시 100만원어치 뿐이라면 소득은 없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이 때에 자기가족의 인건비를 공제하면 안됩니다. 육신과 건강은 하나님의 것으로 계산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정한 봉급을 받는 사람은 십일조 떼기가 퍽 편리하지만 잡화상하는 상인은 소득계산이 어려울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그 가정은 기본자신의 시작에서부터 한달 또는 계간 단위나 반년 단위로 현자산과 저축액과 지출액을 계산하여 얼마의 소득이 있었는지를 계산해서 십일조를 떼도록 노력하셔야 할 것입니다.

십일조는 자주 떼는 것이 좋고, 오래 보관하면 시험이 되며, 밀려 나가면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십일조는 헌금의 기본임무이나 율법주의로 드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롬10:4).

4. 교회의 헌금에는 십일조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예배헌금(맥추, 추수도 포함됨), 헌신예배헌금, 구역예배헌금, 기관봉사헌금, 구제헌금, 선교헌금, 장학헌금 기타 봉사들로 많은 금액이 십일조 이외의 것으로 지출되어야 하는데(레23:38) 큰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십일조 외에 또 십일조를 떼어놓고 그것으로 다른 헌금을 드리면 부담없이 잘 될 수 있음을 경험으로 말씀드립니다. 십의 이조를 더하는 분도 많이 계시니까요. 또 물질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쓰기위하여 소득했다고 믿으셔야 합니다.

5. 위의 십일조 헌금은 율법에 속한 것(신14:22,말3:8)을 시행하는 것이 아니고(롬10:4), 교회봉사를 위한 의무로 시행하는 제도임을 이해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필자가 기록한 “교회 헌법 재탐구”의 마지막 부분의 “헌금에 대한 설명”을 참조 하십시오.








七. 기도에 대한 지식들

52. 기도에 대한 상식 목록으로


신앙생활 중의 기도는 말씀, 성례와 함께 은혜의 방편입니다. 성경에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항상 기도하라󰡑(눅18:1;살전5:17)하심으로 연속적이며 다량의 기도를 요구하신만큼 기도는 신앙생활에 큰 비중을 차지함이 성경말씀의 필요만큼 중요합니다.

1. 기도란 무엇입니까?

기도는 성도가 하나님께 자기의 뜻을 전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대상은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이시며 기도자는 성도입니다. 하나님은 비택자나 불신자의 기도를 듣겠다고 하신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중보를 힘입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여야 하므로(요16:23-24;17:9) 성도만이 기도할 자격과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왜 성도의 기도를 받으셔야만 할까요?

1)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며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격적으로 지으셨으므로, 인간의 세계에 대화가 필요하듯이(인격이 없는 동물세계는 대화가 없음)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하여 인간에게 기도가 필요합니다. 만일, 인간세계에 의사소통이 없다면 되겠습니까?

2) 성도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만큼 서로의 관계는 같은 천국백성이므로 한 권속(가족)입니다. 한 가족 간에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부모는 그 사랑하는 자녀가 자기 앞에 자주 보이며 대화하기를 기대하고 즐거워하듯이 하나님께서도 역시 기도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3) 성도들에게는 죄와 연약등 문제들로 인하여 전능하신 하나님께 사정하여야 할 경우가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형편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께서 󰡒너희는 와서 변론하라󰡓(사1:18),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시50:15), 󰡒구하라󰡓(마7:7), 󰡒내게 부탁하라󰡓(사45:11), 󰡒원통한 사정도 아뢰라󰡓(사40:27), 󰡒주시려고 작정한 것도 기도를 통해서 주신다󰡓(겔36:37)고 하심으로 대화의 광장을 열고 기다려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일반서민이 대통령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까? 만난다 한들 몇 분간이나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요즈음 사람들 중에 어려운 부탁을 하러 갈 때에 환영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연약을 채휼하신 분이시며(히4:15), 모든 연약을 아시는 상황에서 부탁할 것을 요구하신 중보자이시기 때문에(히4:16) 더욱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이 기도의 대상이 되어 주시고, 모든 청탁을 받으시며 대화의 창구를 넓게 여신 일에 대하여 큰 감사와 희망을 가지고 기도에 힘써 은혜를 받으셔야 합니다.

3. 성도가 기도해야 할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위의 말씀에서는 대화의 필요성과 연약으로 인한 청탁을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성도가 기도하여야 하는 이유는,

1) 예수님과 사도들의 기도생활을 본받아야 하고(막1:35;행1:14;고전11:1),

2) 기도할 것은 명령하시고 가르치셨으며(마6:9-13;살전5:17),

3) 하나님은 성도의 영원한 통치자로서 성도의 기도를 통하여 자기의 뜻을 이루시기도 합니다(빌2:13),

4. 성경에 나타난 최초의 기도를 살펴 봅시다.

창3:10에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하였으니 이것은 아담의 자기 상황의 고백입니다. 그 다음 12절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하였으니 이것은 핑계와 변명이며, 창4:9에서는 󰡒알지 못합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하였으니 이것은 거짓말이며 회피입니다. 창4:14에서 󰡒내 죄가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습니다󰡓한 것은 회개의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기도의 내용 중 사실고백과 회개만이 바른 것이라 하겠습니다.

53. 기도자의 유의할 점 목록으로


1. 우선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의 관계가 가까와야 합니다(요17:20-21).

인간의 대화도 친한 사이에서 임의롭듯이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시73:28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하였고, 잠8:17에서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라󰡓하였습니다. 이것은 친근한 상태에서의 응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친근하게 되는 비결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거리낌없는 생활, 그리고 계속되는 기도와 충성입니다.

2. 하나님께 대한 전폭적인 신뢰감을 갖는 것입니다.

시37:5과 벧전5:8을 보시면 길과 염려를 다 주께 맡길 때 정오의 빛과 같이 인도하시고 권고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를 붙드시며(마27:43), 인자를 베푸신다(시32:10) 하였고,

욥13:15에서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한다󰡓고 한 신뢰로 욥이 은혜를 받았으며, 마21:22에서 󰡒믿고 구하는 자가 받는다󰡓는 말씀이 바로 그러한 교훈입니다.

렘12:1에서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 주는 의로우시니이다󰡓한 말씀은 인간이 깨닫지 못하여 질문하거나 혹 쟁변(변론)할지라도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은 꼭 믿는다는 뜻이니, 기도자는 하나님께 대한 확실한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유익하도록 가르치시고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사48:17).

3.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전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특히 성도에게 베푸신 은혜가 한이 없으며, 대화의 창구까지 열어 주셔서 성도의 모든 사정을 수렴하시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받은 은혜를 감사함은 물론 어려운 문제를 아뢰는 경우에라도 󰡐모든 일을 감사함으로 아뢰라󰡑(빌4:7)고 하셨습니다.

기도자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이 흘러 넘쳐야 합니다.

4. 자기반성과 회개하는 자세입니다.

사1:15에 󰡒죄인의 기도를 듣지 않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또한 󰡒먼저 형제와 화목한 후에 예물을 드리라󰡓하였으며(마5:24), 장막에서 불의를 버리고 은금을 강가의 돌에 버릴 때 기도를 들으신다(욥22:23-27), 󰡒부부가 불화할 경우에 기도가 막힌다󰡓(벧전3:7)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기도자는 부단한 자기반성과 회개가 전제되어야 합니다.(눅18:13 참조).

5. 하나님의 뜻과 영광에 입각하여 기도드려야 합니다.

인간의 대화에는 상대방에게 부담과 불쾌감을 주는 대화가 있고 기쁨과 소망을 주는 대화가 있습니다.

실수를 범한 사람은 불쾌한 대화를 면할 길이 없겠지만 하나님이야 무슨 이유로 인간의 불쾌한 대화를 받겠습니까? 그러므로 기도자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과 하나님께 영과을 돌릴 목적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소망스럽게 들으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마26:46).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한 내용은 성경을 통하여 배워야 합니다(빌4:6;요일5:14). 성경은 곧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므로 성경으로 하나님의 뜻을 잘 아셔야 그 뜻대로 기도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혼이 잘 되기를 원하시는데 어떤 성도가 교리에 어긋난 기도를 드리거나 지나칠 만큼 현세적인 복에 얽매여 기도한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성경으로 많이 배우셔야 합니다.(요4:6;6:6).

6. 진실성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기도자가 주위 사람을 인식하고 체면을 세우기 위하여 외식적으로 기도하였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창4:9에서 가인은 거짓말기도를 한 일이 있습니다. 마6:5,12에서는 외식하는 기도와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지적하셨고, 눅18:11-12에서는 한 바리새인의 거짓된 기도를 지적하셨고, 반대로 요4:18에서 남편을 다섯이나 얻었던 여인의 말을 󰡐참되다󰡑하시고 은혜를 베푸셨으며, 간사함이 없는 나다나엘 역시 칭찬을 받았으니(요1:47) 기도자의 마음은 정말로 진실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입에 발린 약속이나 서원은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하며 사실만을 아뢰도록 힘쓰십시오.

7. 간절성의 표현입니다.

특별기도, 시간을 정하는 기도, 금식기도, 서원기도, 단체합심기도나 철야기도등은 모두 간절성의 표현입니다. 눅18:3,7에서 󰡒자주 가서 사정안 일과 밤낮 부르짖는 원한󰡓은 응답의 조건이 되었고, 눅11:8에서는 󰡒벗됨을 인하여서는 주지 않을 것이나 강청함을 인하여 준다󰡓고 하였으니 이 말씀은 간절하게 기도하라는 의미입니다(행1:14;2:42).

8. 믿음으로 구하여야 합니다.

믿음으로 구한다는 뜻은 하나님께서 잘되게 해 주실 줄로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은혜로우시기 때문에 결코 기도자에게 해를 주시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롬8:28). 인간의 뜻대로 되는 것이 잘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성취되는 것이 잘되는 것이기 때문에 성도는 그것을 믿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소원을 성취한 예가 있습니다(마9:21;15:28;막9:23).

믿음으로 구하는 자는 하나님의 존재나 속성을 의심치 않으며, 또 그의 사랑과 능력과 말씀도 의심하지 않습니다(약1:16). 믿고 구한다 함은 꼭 나의 뜻대로 될 줄로 확신하는 자세가 아니요 선처해 주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9. 꾸준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쉬지 말라 하셨으니까요(마15:21-28;눅18:1;살전5:17). 그러므로 어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기도도 평생을 해야 합니다.

야곱과 요셉의 형통한 기간도 20년이요,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해방과 함께 가나안 입국의 성취도 400년이 지난 후 40년 여행 후에 되었고, 바벨론 포로에서의 해방도 70년만에 성취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기도는 후시대에 성취되는 것도 있고, 또한 하늘에 저축되기 때문입니다(계8:3). 다윗왕도 자신의 성전건축 소원을 솔로몬의 대로 전달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대상22:6-12).

10. 기도자는 꾸준한 노력과 함께 응답성취를 대망하여야 합니다.

성도의 기도는 분명히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힘입고자 함이지만 결코 인간의 최대한의 노력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미 주신 지혜와 능력(활동력)이 있으니 이 지혜와 능력을 중단없이 활동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도 침노하는 자가 빼앗게 하시듯이(마11:12) 성령님의 역사를 기도로 의지하면서도 그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여야 합니다(골1:29).

또 마땅히 주시도록 약속되어 있는 복도 기도를 통하여 주신다고 하였고(겔36:33,37), 오순절 당시에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도 합심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는 일을 통하여 주셨습니다(행1:4,1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눅13:23)하심도 역시 같은 교훈입니다.

마지막으로 부탁드리는 것은 그 기도의 소원이 주님의 뜻 안에서 성취될 것을 간절하고도 꾸준히 대망하십시오(시40:1). 그리고 기도한 것 그 자체가 값있는 경건생활이므로 응답의 여지와 관계없이 하나님과 교제를 가진 것인즉 만족하게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54. 기도의 응답에 대하여 목록으로


기도의 응답이란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뜻합니다.

1.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를 받으십니다.

관청에서 신청서류를 접수하는 것처럼 받아 들이십니다. 시4:3에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하였고, 시116:1-2에서는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간구를 들으심으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기도하리로다󰡓하였으니 이 말씀은 어떤 내용의 기도이든지 일단 그 의사표시를 받으신다는 뜻이며 반드시 성취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기도는 청탁만이 아니고 보고와 질문, 기타 하소연도 있으니까 그 모든 것을 들으시는 것입니다.

2. 신속한 응답이 있습니다.

구하자마자 주시고 생각보다 더 빨리 주시는 응답입니다. 다니엘의 기도가 단9:3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23에서 󰡒네 기도가 시작될 즈음에 명령이 내렸다󰡓고 하였고, 눅8:44에서의 혈루증 앓는 여인의 기도, 마8:3에서의 문둥병자의 기도, 행3:7에서 발과 발목이 고침을 얻은 사실등은 다 신속한 응답입니다.

어떤 성도가 너무 초라하고 협소한 집에서 살면서 넓은 거처를 위하여 기도드렸는데 성취될 것을 생각하기도 전에 이루어 주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3. 소원대로 적당하게 이루어주시는 응답이 있습니다.

마15:28에서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하셔서 소원을 성취시킨 일이 있습ㄴ디ㅏ. 요16:23에서도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신다󰡓하심도 역시 소원대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4. 더 주시는 것도 있습니다.

넘치고 풍성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눅6:38;고후9:8). 다른 것까지 더 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왕상3:6-13에서 솔로몬왕이 지혜를 구하였으나 그 간구가 하나님 앞에 합당하자 13절에서 󰡒구하지 않은 부와 영광도 준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응답은 영혼이 잘되는 자에게 범사도 잘되게 하시고(요삼1:2),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에게 이 모든 것을 더하시는 응답이라 하겠습니다(마6:33).

5. 상당한 시간을 기다리게 하신 후에 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의 부흥도 6.25이후 40년만에 많이 부흥되었고, 모세의 출애굽 소망도 40년만에 성취되었으며, 가나안입국도 역시 출애굽 40년만에 되었듯이 성도는 한 생애를 두고 기다려야 할 때도 있고, 또 자손의 대로 넘겨야 할 일도 있습니다. 다윗의 성전건축 소원(삼하7:3,5,13)은 솔로몬의 대로 이어지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참고 기다리는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시37:7;잠20:22;애3:25). 따라서 성도는 미래에 다가 올 구원의 완성과 공의로운 심판을 기다리면서 기도응답에 조급함이 없이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래된 산삼이 값이 더 나가는 것처럼 늦게 받은 은혜가 더 귀할 수도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6. 응답을 부결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 더 좋은 것을 대신 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십자가의 고난이 모면되기를 원하셨지만 끝내 응답을 받지 못하시고(마26:39;27:46) 돌아가셨으나 큰 영광을 받으셨고(빌2:9-10), 다윗은 성전건축의 소원이 부결되었으나 그 소원을 아들로 성취되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시는 메시야의 복을 받았으며(삼하7:13), 또 아들의 병고침을 기도드리다가 응답되지 못한 대신에 여디디야(솔로몬)를 선물로 받았고(삼하12:16-25), 바울사도는 육체의 가시를 지닌 대신 하나님의 능력을 유지하였습니다(고후12:7-10).

기도는 즉시 성취되지 않아도 꼭 응답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눅11:13).

55. 기도를 배움에 대하여 목록으로


혹 생각하시기를 󰡐기도도 배우는가?󰡑하시겠지만 배우고 힘쓰셔야 합니다.

딤전4:7에서 󰡒경건을 연습하라󰡓하였고,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배우려는 제자들에게 우리가 애용하는 주기도문을 가르치셨습니다(마6:9-13). 기도는 배워서 성숙하는 이성작용의 산물이요 거기에 따라 성령님이 지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대상17:25;고전14:15;빌1:13). 빌2:13에서 하나님은 (성령님의 역사를 통하여) 자기의 기쁘신 뜻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마음에 합당한 소원을 주시고(대상17:25) 기도하여 성취케 하신다 하였으니, 이 말씀은 곧 성령님께서 기도를 지도하여 주신다는 뜻입니다. 또 마음으로 기도하라(고전14:15;벧전4:7)는 말씀은 인간의 노력, 즉 지각작용(히5:17)을 통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1. 우선 기도자는 기도의 대상을 부를 때 성부 하나님을 상대함이 좋습니다.

이유는 논리적인 견지에서 성령님은 기도를 도우시는 분이시고(마4:1;롬6:26;엡6:18;유20), 예수님은 중보역할을 하시므로(요16:24;빌2:13) 성자, 성령님이 같은 영광의 하나님이실지라도 논리적으로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한가지 더 부언한다면 하나님께 대한 기도자의 관계가 󰡐주여, 주여󰡑할 때에는 백성이 왕에게 아뢰는 상태임을 염두에 두셔서 정중함을 나타내셔야 할 것입니다.

2. 기도는 시작 전부터 준비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준비, 내용의 착상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대표기도 제목에서도 말씀드리겠지만 내용과 순서배열애 대하여 중언부언이 되지 않도록 힘씀이 바람직하기 때문입니다. 예비하는 마음은 일종의 제사준비와도 같습니다(고후9:5).

3. 기도의 내용을 전개시킬 때에는 영광, 감사, 회개, 간구의 순으로 뜻을 올립니다.

영광의 내용이란 하나님 자신과 그의 하신 놀라운 일들에 대한 찬사와 고백을 표하는 것이며,

감사란 받은 은혜, 깨달은 은혜등에 대하여 감사의 뜻을 아뢰는 것이며,

회개는 모든 부족과 잘못에 대한 깊은 반성과 자백이며, 간구는 필요한 은혜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필요한 은혜가 무엇이며 무엇을 간구할까요?

먼저 구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롬11:36), 영혼이 잘되는 것(요삼2), 그의 나라와 그의 의(마6:33)에 대한 것을 상당하게 구하신 다음에 육체적이고 현실적인 것(마6:33, 이 모든 것)을 구하셔야 합니다.

문제는 신령한 은혜를 위주로 구하고 일반은총에 관한 것(세속적인 것)은 소극적으로 구하여도 됩니다. 그 이유는 일반은총은 영적은혜에 따라서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왕상3:4-13;시1:1-3;마6:33;요삼2).

4. 기도를 끝낼 때에는 반드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셔야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중보자가 되셔서 자기의 이름으로 구하여야 주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요14:13). 어떤 이는 주님의 이름으로, 어떤 이는 예수님의 공로로, 어떤 이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이를 보았습니다만 그것은 잘못입니다.

5. 기도를 다 끝낸 다음에는 󰡐아멘󰡑으로 마칩니다.

아멘은 진실하다, 소원한다의 뜻으로서 사실확인(신27:15), 동감의 표시(왕상1:35), 맹세의 표시(민5:22), 엄숙한 확인(마11:9,26), 기도의 응답확신(고전14:16;계5:14), 그리스도의 신분표시(계3:14)로서 기도와 축복 끝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멘은 함부로 외칠 것이 아니라 공감하고 의미에 부합될 때에만 사용하셔야 할 것입니다.

6. 기도의 발성문제는 개인기도의 경우에는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마음 속으로 하는 기도나(삼상1:15), 보통 음성으로나 크게 부르짖거나(시5:1-2) 자유로이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방법으로 행하여 건덕을 해하는 일만 주의하십시오.

7. 기도의 자세는 무릎을 꿇는 자세(행21:5), 서서 하는 자세(막11:25), 엎드려 하는 자세(마26:39), 누운 자세(왕하20:2, 병든 경우), 손을 드는 경우(느8:6;애2:19), 또 성직자가 축복의 손을 드는 경우(눅24:50;딤전2:8)등이 있으나 공기도(합심기도)시에는 그 자세도 정중한 태도로 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몸의 자세를 취하는 예법은 사람 보기에 좋아야 하나님 보시기에도 좋을 것입니다.

8. 기도처소의 선택은 조용한 예배당이 제일 좋습니다(마21:13).

골방이나(마6:6), 산이나(눅6:12), 강가(행16:13)를 택하는 일이 있으나 이는 여행 중에 조용한 곳을 찾기 때문이며 일정한 장소에서 기도할 형편이 못되는 바쁜 활동이나 시끄러운 중에서라도 필히 마음의 기도를 잘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는 마음으로 하는 것인만큼 어떤 장소에나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숨쉬듯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9. 성경에 기록된 기도문을 참고함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1) 창18:23-33을 읽으시고 아브라함의 기도를 참고하십시오.

2) 시편은 기도문의 보고입니다. 시3:;5:;6:;13:;38:;51:;57: 등을 읽어 보십시오.

3) 스9:5-15의 에스라의 기도문과 단9:3-20에 기록된 다내엘의 기도문을 참고하십시오.

4) 요17:1-26과 마26:39-42에 나타난 예수님의 기도문을 참고하십시오.

5) 마6:9-13과 눅11:1-4의 주기도문을 대조적으로 살펴보십시오. 주기도문은 제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주어진 대표기도문이라고 봄이 좋을 것입니다.

10. 주기도문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이해하십시오.

하늘에 계신 :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나 그의 기본 보좌가 천국에 있음

우리 아버지시여 : 기도의 대상은 아버지시며, 그 분은 성도의 아버지이심. 개인기도시에는 나의 아버지도 되심. 자식이 부모를 대하여 대화하는 듯이 기도드림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하나님의 명성이 손상되지 않고 높여지기를 원함

나라이 임하옵시며 : 하나님의 주권과 명령적 통치가 인간의 복종으로 실현되기를 바람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 천국에는 훼방자가 없으므로 하나님의 뜻 실현에 장애가 없음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 땅 위의 마귀의 역사를 성도가 믿음으로 이기고 주님의 뜻을 실현시키게 하소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 적당한 육신의 양식, 생활보장을 위함. 영의 양식도 구하여야 함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 먼저 형제의 죄를 용서하여야 함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 믿음과 회개를 전제로 죄사함을 구함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환난으로 연약해지지 않기를 구함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 죄에 빠진 상태에서 건져주시기를 바람

주기도문은 주님이 가르쳐 주신 이상적인 기도문으로 일용할 양식 앞부분은 천국건설을 통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내용이요, 그 뒷부분은 성도의 순결생활을 통한 영광의 내용입니다.

주기도문을 입으로만 외우지 말고 마음으로 깊이 음미하면서 아뢰는 습관을 기르십시오.

56. 대표기도할 때의 유의점 목록으로


개인기도는 하나님과 자기만의 관계이므로 아량이 넓으신 하나님 앞에서 이해될 수 있고 취소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의 뜻을 대표하는 기도는 여러 사람의 공통 관심사를 지정된 시간 안에 표현하여야 하며, 공감이 되지 않는 내용이나 잘못된 내용에 대하여 마땅히 이해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실수를 노출하는 약점 때문에 잘 가다듬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다고 하여 신앙의 초보자가 대표기도를 사양하면 신앙의 성장과 덕을 세움에 지장을 주므로 간단한 대표기도로부터 모험을 시도하여야만 합니다. 대표기도에 큰 부담이 없으면 신앙의 큰 용기가 일어남을 체험하실 것입니다.

1. 공기도에는 각종 예배의 종류에 따라 목적이 있으므로 그 취지를 살리는데 주력하셔야 합니다. 낮예배기도, 찬양예배기도, 기도회를 위한 기도를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내용의 주안점을 구상하시고 시간의 폭을 예상하여 적당하게 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2. 가급적 용어는 전체가 공감할 수 있는 표준어를 사용하시고 대중에게 들릴 만큼 외쳐야 하며 이해를 돕기 위하여 논리가 정연하여야 합니다. 대표기도를 잘하면 전도도 잘할 수 있는 형편이 될 것입니다. 침착하게 평소에 생각하던 바를 활용하여 간단한 것부터 시도하여 보십시오.

3. 초신자는 대표기도의 기회도 별로 없거니와 기도한다고 해도 단순하기 때문에 실수가 별로 없지만 기도를 익숙하게 하고 교회의 일을 많이 염려하는 식구들이 오히려 실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겸손하게 기도하지 않고 설교조로 한다든지, 믿음이 약한 사람의 형편을 지적한다든지, 감사보다 유감을 표시한다든지, 교리나 교회방침에 맞지 않는 말을 조장한다든지, 적당한 것 이상으로 과장되게 요구한다든지, 가능성이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것을 무조건 󰡐믿습니다󰡑로 끝낸다든지, 너무 길게 하는 것 등으로 실수할 수 있음을 주의하십시오.

대체로 대표기도 시간은 1시간 예배에 5분이 적당하며, 30분 예배에 3분이 적당하다고 합니다. 기도회를 위한 시간에는 성경이나 다른 순서는 주목적이 아니므로 좀 길게 하여도 좋을 것입니다.

4. 다음의 내용은 개인성도의 평상시의 기도문입니다. 참고하십시오. 또 그와 같은 방법으로 각종 제목에 따른 모임에서 그 목적을 첨부하여 사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거룩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시여, 저에게 기도드릴 수 있는 믿음과 힘을 주사 하나님과 교통하게 하시며, 죄악으로 소망없는 중에서 선택하시고 부르셔서 성민이 되게 하시고, 영적 안위와 영생의 구원까지 받게 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미약한 종이 살아오는 동안 주님의 뜻을 성취하여 드리며 순종해보려고 노력하였지만 성경지식이 부족하고 순종력과 사명력이 연약하여 말씀대로 살지 못한 점이 너무도 많사오니 불쌍히 여겨 주시고,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며 죄의 유혹을 이기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경을 잘 배워서 신앙의 지식을 더 많이 알도록 하여 주시고, 신령한 은혜도 많이 받게 하시며 믿음 중심으로 사는 생활과 환경도 만들어 주셔서 모든 유혹을 이기고 예수님의 인격을 닮게 하옵소서. 건강한 몸으로 세상을 지혜롭게 살도록 하시고, 우리의 이웃과 사회에도 신령한 발전을 주시며, 특별히 주님의 몸된 교회가 크게 성장하여 신령한 안식처가 되게 하시며, 교회의 성장을 이룩하여 주셔서 시대적 사명도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범죄하며 하나님을 불신하는 이웃들에게도 빛과 소금의 사명을 잘 나타내어 전도가 되게 하시고,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과 모든 공무원들과 정치가들에게도 큰 은혜를 베푸셔서 지혜롭고 공의롭게 정치를 잘하게 하심으로 온 백성들이 평안하게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일일이 간구하지 못한 것까지 하나님께 의탁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57. 기도에 대한 몇 가지 질문 목록으로


1. 마6:13중, 󰡒나라와 권세와… 아멘󰡓의 내용은 왜 괄호를 하였으며, 눅11:1-3의 주기도문에는 왜 그 내용이 없습니까?

답 : 그 귀절이 괄호 안에 든 것은 유력한 사본(시내산, 바티칸, 베자사본)에는 없고 작은 단편사본에만 있기 때문에 성경으로서의 신빙성 문제가 있으나, 그 말씀의 의미가 대상29:11-12의 내용과 상통하므로 후대인들이 󰡐공기도문의 결론󰡑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이요, 눅11:1-3의 내용은 성경저자가 주기도문을 요약적으로 기록하였기 때문입니다.

2. 찬송가 첫 페이지에 기록된 주기도문에는 왜 성경에 없는 󰡐대개󰡑란 말이 기록되었습니까?

답 : 이 접속사의 뜻은 󰡐전체의 내용을 일괄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역시 전통적으로 사용하여 온 것으로 󰡐기도의 내용을 일괄하여 영광이 하나님께 있어야 한다󰡑는 뜻인즉 그 일괄한다는 의미는 실제 내용이 아니므로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3. 축도와 기도의 성격이 어떻게 다릅니까?

답 : 기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며, 축도는 그리스도의 직임을 대행하는 목사가 예수님을 대리하여 복을 전달, 선포하는 것입니다.

축도의 근거는 고후13:13에 표준적 내용이 있고, 삼위 하나님의 사역을 고루 넣지 않은 일부 생략된 내용도 있습니다(갈6:18;엡6:21;히13:20-21). 이는 복의 근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지금은 목사들)에게 자기가 주는 복을 대신 전하도록 지도하신데서 비롯되었고(마10:12), 구약의 종교지도자들에게도 그와 비슷한 실례를 볼 수 있습니다(출17:11;민6:24-27;삼상1:17).

요즈음 예배의식의 문란과 함께 축도의 방법까지도 통일성이 없어 문제이기도 합니다. 축도는 고후13:13을 표준으로,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사역자(목사)가 손을 들고 삼위의 하나님과 그 사역을 중심으로 선포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따라서 󰡐축원한다󰡑는 용어는 합당하지 않고 󰡐있을지어다󰡑가 합당한 용어입니다.

4. 기도과정에서 받는 체험이 있을 수 있습니까?

1) 기도를 간절하게 집중하여 계속하면 시간의 의식을 상실한채 하나님 앞으로 자기의 심령이 가까이 이끌려 감을 실감할 수 있고,

2) 기도가 간절하다 보면 그 기도의 고백을 따라서 감사와 회개(통회)와 기쁨과 소망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부탁한 후에 어찌 소망과 든든함이 없겠습니까?

3) 기도하는 도중에 방언은사를 체험하는 식구들도 있습니다.

이 방언은 하나님 편에서 주시는 은사로서 언어를 뜻하며, 성령님의 역사에 의하여 나타나는데(고전12:10) 하나님을 높임과 함께 나타난 방언을 성령님의 임재로 설명하셨습니다(행10:44-47).

고전14:2에서 󰡒방언을 통한 하나님과의 비밀대화󰡓가 있다 하였고, 22절에서는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라󰡓하였으니 이 때에 이 방언은 외국인을 상대하는 전도에 활용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심입니다. 방언이 통역되거나 깨닫는 내용으로 하나님께 아뢰어질 때에는 기도의 의미가 있겠으나 그렇지 아니할 때에는 방언이 체험으로 그치게 될 것입니다. 또 덕을 세우지 못하는 방언은 은사의 목적에 위배되는 것이므로(고전12:7;14:5) 성령님께서 그렇게 지도하시는 것인지 확신이 가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신에게 덕이 있고(고전14:4) 타인에게도 유익을 준다면 금할 필요가 없습니다(고전14:39).

4) 기도의 응답이 자연은총에 의하여 점차 성취되는 것과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상태에서 특별섭리로 성취되는 것은 체험할 수 있지만(골1:9-12) 그 이외의 체험에 대하여는 성경에 명시하신 바가 없습니다.

58. 각종 기도의 예문(초신자를 위한) 목록으로


두 사람 이상이 모인 공석상에서 대표기도를 부탁받는 일이 있습니다. 이 때를 대비하여 기도의 예문을 참고하십시오.

기도를 부탁받았을 때에는 당황하거나 부끄럽게 생각지 마시고 침착한 태도로 마음을 가다듬어 간단하게 할 것을 결심하십시오. 혹 기도의 내용이 막힐 때에는 󰡐부족하여 구할 바를 다 아뢰지 못하나 주께서 잘 이루어 주실 줄 믿사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하고 끝내십시오. 그러면, 오히려 큰 안도감을 주게 됩니다. 길게 기도를 하는 것만이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의 예문들을 참고하십시오.


1. 구역예배기도를 부탁받았을 때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그 동안 저희들에게 은혜를 베푸사 믿음과 생활을 지켜오게 하시다가 이 시간 구역예배를 성도님 가정에서 드릴 수 있도록 모임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먼저, 미참한 식구들의 가정에도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고, 저희들의 예배가 하나님께 합당하며 영광스러운 예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구역장님과 권찰님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구역을 잘 지도할 수 있게 하옵시고, 본 구역원 성도님들에게 시험되는 일이 없도록 지켜주시며, 때를 따라 돕는 은혜도 허락해 주시옵소서. 또한 믿음이 약한 가족과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가 없도록 하나님께서 보살펴 주시옵소서.

이 시간 구역장님이 성경말씀을 가르치실 때 함께 깨닫는 은혜가 많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 음식을 놓고 감사기도를 부탁받았을 때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시여, 이 시간 귀한 가정에 와서 좋은 음식으로 대접을 받게 하시오니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들은 다 하나님 앞에 죄인들이오며 하나님의 보족한 종들이온 바, 대접받을 자격이 없사오나 주님의 은혜와 공로로 받았사오니, 하나님께서 먼저 영광을 받아 주시옵고, 저희들이 이 음식을 먹고 더욱 합당한 생활을 잘하여 영광 돌려지게 하옵시며, 저희들에게 사랑의 봉사로 접대하는 귀한 가정에 하나님이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환자를 위한 심방 중에 기도부탁을 받았을 때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시여, 이 시간에 저희들은 ¶o¶o성도님의 병환을 인하여 기도드립니다.

하나님이 어떤 연고로 질병을 허용하셨는지 아버지 뜻대로 잘 깨닫게 하옵시고, 연단을 받게 하옵소서. 이 질병의 연고를 통하여 하나님께 더 가까와지게 하옵시고, 자신을 살피는 기회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환자나 주위의 식구들 중에 혹 회개해야 할 일들이 있사오면 이번 기회를 통해서 자복하고 정결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죄짐을 지신 주님께서 질병의 짐도 대신 지신 줄 믿사오니 ¶o¶o성도님의 병도 주님이 담당하시사 치료받게 하시고, 속히 나음을 입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입원환자를 찾아가셔서 기도하실 때에는 위의 기도문에 󰡐의사의 치료의 손길과 약의 처방이 하나님의 은혜로 큰 효험을 입게 하옵소서󰡑를 첨부할 수 있습니다.)


4. 가정예배에서 기도하실 때

(전문생략)

온 가족이 하나님 제일주의로 식구마다 맡은 일에 근면성실하고, 하루의 생활에 유혹되는 일이 없게 하시며 마음의 평강과 건강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후략)

그 외 식구 식구의 필요한 은혜를 따라 간구하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신령한 은혜를 강조하여 자녀들의 신앙이 현세욕이나 기복신앙에 기울어지지 않도록 유의하십시오.


5. 공예배 때 드리는 대표기도문의 예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큰 은혜를 베푸사 믿음생활을 유지하고 역경 많은 세대 속에서 영육의 생활을 아울러 지켜 주셨사오니 감사합니다. 또 이 시간에 ¶o¶o에서 ¶o¶o예배를 드리게 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이 예배를 주관하사 영광을 돌릴 수 있게 해 주시고, 특히 말씀을 증거하시는 ¶o¶o성도님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하나님이 저희들에게 교훈하시려는 진리를 잘 증언하실 수 있게 해 주시고, 저희들에게도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을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달아 영혼의 양식과 생활의 지침과 능력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 ¶o¶o교회 모든 권속들에게도 은혜를 베푸셔서 평안과 발전이 넘치게 하여 주시공 신앙생활과 교회에 대한 충성도 더 잘 할 수 있게 하셔서 교회가 부흥 발전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도님들 개개인의 가정과 생활에도 많은 은총을 주셔서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늘 경성하는 생활을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6. 어려운 기도의 예

성도가 여러가지 경우에서 대표기도를 하게 되는 중 특히 기도의 내용을 어렵게 구상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1) 믿지 않고 세상을 떠난 사람의 추도예배를 드릴 때 별세한 분의 소망적인 내용을 거론하지 않으면서 유가족들에게 위안과 교훈을 줄 수 있는 내용으로 기도하려니까 어렵습니다. 성경에는 믿지 않고 세상을 떠난 자에 대한 소망을 말씀이 없습니다. 자녀만 믿고 부모가 믿지 않다가 세상을 떠난 초상집에 가서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때에는 기도의 내용을 지혜롭게 구상하여 별세자의 소망을 거론하지 않으면서 유가족에게만 위안을 줄 수 있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2) 환자를 위해서 기도할 때에 경미한 질병을 위한 기도는 큰 어려움이 없으나 중환자나 사경에 처한 환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도 어렵습니다.

어떤 질병으로 죽든지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1:21)하신 바울사도의 신앙을 가진 성도 앞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성경에는 죽음(성도의 별세) 앞에서 소망을 주신 말씀이 많습니다(전7:1-4;요12:1-4;고후4:16-18;빌1:21,23;계14:13).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자기의 죽음 앞에서 소망스러움을 표현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는 것은 일시적인 수고이고, 죽는 것은 영원한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운명하려는 성도에게 살 소망을 불어넣는 기도도 삼가셔야 하며, 질병의 증상에 따라서 어렵다는 예감이 올 때는 자신이 느껴지는대로 하나님께 부탁하는 것이 바른 기도입니다. 성경에 󰡒믿음대로 되라󰡓(마9:28-30;막11:23;약1:6)하신 말씀은 성령님의 충분한 감동으로 느끼는 신뢰감에서 가능한 일이요, 확신이 약한 상태에서의 호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기도는 과장이나 언어의 작태를 피하고 진실한 느낌대로 표현하셔야 합니다.

3) 중대한 문제를 결정하기에 앞서 쌍방이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는 중간에서 기도할 때에 치우치지 아니하고 적당하게 소망을 양분해 주어야 하는 기도도 어렵습니다.

예를 들면, 기도하면서 상당한 기간 중매를 힘쓰다가 한 편은 성혼을 원하는데 다른 편이 원치 아니하여 서로의 교제를 끝내면서 드리는 기도나, 스포츠의 과열상태에서 상대와 상대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기도하는 경우입니다.

4) 불신자와 함께 기도할 때에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이 되도록 전문적 신앙용어를 피하셔야 합니다.


7. 교회를 위한 기도의 예문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시여, 하나님께서 뜻이 계셔서 이 곳에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 주셨고, 지금까지 하나님의 붙드심과 도우심의 은총 가운데 교회적인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오니 감사드립니다. 또한, 부족한 종이 이 교회의 교인된 것과 부족하나마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사명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먼저 자신이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진리의 실천자가 되어 모범적 신자가 되기를 원하오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대로 깨우쳐 주시고, 교회를 위한 사명을 옳게 감당할 수 있게 하옵소서. 교회의 화평과 일치와 발전에 도움이 될지언정 해를 끼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주여, 자신이 은혜를 더 많이 변화되어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본교회의 복음사역자님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모든 성도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필요한 은사로 채워 주시며, 건강을 주사 피곤치 않게 하옵시고, 하나님의 일을 항상 능력있게 하실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본교회의 다른 유급사역자님들에게도 항상 함께하셔서 교회의 일을 잘 감당하실 수 있게 하옵시고, 모든 장로님들에게 은혜를 베푸사 다스리는 직임을 잘 수행할 수 있게 하옵시고, 모든 성도가 뜻이 하나가 되어 당회의 치리를 잘 받들며 섬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본교회의 각기관들이 은혜롭게 활성화되어야 하겠사오니, 그 동안 주신 모든 기관의 발전을 감사하오며, 회장님 이하 모든 임원들에게 더욱 은혜를 베푸셔서 능력있는 봉사를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찬양대원에게도 은혜를 베푸사 더 좋은 찬양으로 큰 영광을 돌리게 하옵시고, 제직회는 교회의 물질적 살림을 잘하여 봉사와 구제, 선교등에 구애가 없도록 하옵시며, 주일학교는 성경과 신앙생활의 교육을 잘 담당하게 하옵시고, 각종 전도회 기관들도 사랑의 교제와 전도와 기도와 봉사를 잘하여 전도의 좋은 열매를 맺게 하여 주시옵소서.

각 구역장님들과 권찰님들이 구역원들을 살피며 기도하고 지도하실 때에 복음사역자의 심정과 은혜로 일할 수 있게 하옵시고, 먼저 믿는 성도들이 다 복음의 사절이 되고, 예수님을 보여주는 생활을 잘하여 예수님과 교회를 빛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성도님들이 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교회를 자기 일처럼 염려하여 받들게 하옵시고, 초신자님들에게 믿음의 성장과 유혹을 이기는 힘을 주셔서 신앙에 든든히 잡혀지게 하옵시고, 날이 갈수록 교회생활에 기쁨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온 가정이 믿음으로 합심하지 못하여 신앙생활과 축복에 큰 지장을 갖는 가정이 많사오니, 그 믿는 권속에게 담대한 믿음을 주셔서 신앙적 승리를 이룩하게 하옵시고, 그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충분히 발휘하게 하셔서 늘 전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사업에도 은혜를 베푸사 생활에 어려움이 없게 하시옵고 물질의 넉넉함을 베푸사 물질로 인하여 시험드는 일이 없게 하옵시며 주님의 사업을 더욱 많이 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도의 가정에서 자녀들 학업의 진로와 생업의 진로와 혼인을 이루기 위하여 소원하는 기도를 응답해 주셔서 모든 진로가 순조롭게 열려지게 하옵시고, 근심없이 주님을 섬길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병중에 있는 식구들에게 치료받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또, 출타 중에 있거나 군대에 나가 있는 식구들도 든든히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이웃과 교회의 이웃이 복음화되게 하여 주시고, 온 국민에게도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며, 모든 정치가들에게 은혜를 베푸사 나라의 정치를 성경적으로 잘 통치하게 하셔서 온 국민이 잘사는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일일이 간구하지 못한 것을 성령님께 의탁하면서 모든 말씀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기도의 용어는 성경적이고 교리적이고 현실적(상징이 아닌)이어야 합니다.

59. 안수(손을 머리에 얹음)기도에 대하여 목록으로


1. 안수란 󰡒머리에 손을 얹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축복하실 때(막10:16), 또는 병을 고치실 때(막8:23-25) 하신 일이 있고, 친히 11제자들에게 표적 따르는 권능을 주시면서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을 것이라󰡓고 하심으로 안수할 것을 권하신 일이 있었습니다(막16:14-18).

2. 그 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문전에서 앉은뱅이를 고칠 때에 안수하는 형식을 취하지 않은 채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며 낫게 한 사실이 있었을 뿐(행3:4-8) 안수로 병을 고친 예는 없으며, 그 대신 안수하여 성령을 받게 한 사실이 있었습니다(행8:17; 19:6;딤후1:6). 이 때에 안수로 성령을 받았음에 대한 실증은 성령충만의 역사를 나타내는 일일 것입니다(행10:46).

3. 안수의식은 꼭 병자에게만 따르는 것이 아니고, 임직을 할 때(딤전4:14;딤후1:6)와 세례를 베풀 때도 하는데, 모든 것을 󰡒경솔하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딤전5:22).

세례식의 안수는 꼭 사도들의 모범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성경에는 󰡒세례를 베풀었다󰡓는 말씀만 있을 뿐, 구체적인 의식이 침례인지, 세례인지, 간단한 안수인지 알 수 없습니다.

4. 안수와 비슷한 의식으로 안찰(몸을 만지고 비비는 것)이란 것도 있습니다. 이것은 혹, 병고침의 은사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병자에 대한 안위나 고침을 목적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소경의 눈에 침을 뱉으시고 손을 붙잡으시면서 낫게 하신 예가 있으므로(막8:23), 안찰의 근거가 성경에 없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5. 그런데, 문제는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과연 안수나 안찰로서 접촉이 되어야만 은혜(능력)가 전달되느냐 하는 것과, 또 하나는 아무나 되는대로 해도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1) 여기에 대하여, 우선 하나님의 은혜(능력, 성령)는 안수라는 도화선(연결통로)이 없어도 전달됩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그만큼 신비하시고 공간을 초월하시기 때문입니다. 말씀만으로 만물이 생겨나듯이 말씀만 하시고 뜻만 발하셔도 하나님의 은혜는 전달됩니다. 마8:8에서 󰡒다만, 말씀만 하옵소서, 내하인이 낫겠나이다󰡓하였고,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칠 때에도 상처에 손을 얹지 않고 스스로 씻어 고치게 하였으며(왕하5:11),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은혜받는 자를 크게 칭찬해주셨습니다(마8:10,13).

따라서, 안수의식와 함께 은혜가 전달된다 하여도 접촉없이 은혜가 전달됨을 믿는 신앙은 더 귀한 것입니다. 세례의식과 임직의식은 필연적으로 입교인이 되는 것과, 교회를 통하여 주시는 직임이 전달됩니다.

영적으로 주시는 성령님의 역사에 대하여는(딤후1:6) 그 정도를 파악하기가 어려우므로 언급하기 어려울 뿐이고, 병고침의 은사에 대하여는 차차 나을 수는 있어도 즉시로 낫는 일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칼로 쳐서 떨어뜨린 귀를 낫게 하셨고(눅22:51), 베드로도 앉은뱅이에게 󰡒내게 있는 것으로 준다󰡓 하면서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킴과 동시에 뛰게 하였으니, 이와 같은 효력이 전달될 때는 안수의 보람이 있고 권위가 있지만,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안수하면, 예수님처럼 고치지도 못하면서 고칠듯이 과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의식은 사실에 부합됨이 옳고, 의식이 사실보다 과장되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는 점만 유의하시면 될 것입니다.

2) 그러므로 , 성직자 외에는 병자에 대한 안수를 금하고 있으며(헌법적규칙12조), 안수로서 은혜의 효력을 나타내고자 할 때에는, 안수받는 자가 실망하지 않고 믿음과 격려를 받을 만큼 준비되어 있을때에 행할 수 있을 뿐, 그 외의 경우는 삼가심이 좋을 것입니다.


60. 손을 들고 기도하는 문제 목록으로


기도의 자세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고, 심지어는 병든 성도가 누워서 드린 기도도 응답하신 일이 있으므로(왕상20:1-2) 손들고 기도하는 것도 그 자세 중 하나라 하겠습니다.

1. 그런데 손을 들고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할 때에 그 설명이 구구합니다.

1) 손은 무엇을 받는 도구이므로, 은혜를 받고자 하는 성도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여 받기 위해 손을 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드는 손은 육신의 손이므로 물질적인 은혜를 받을 경우에는 쓸 수 있으나, 신령한 은혜를 받을 경우에는 소용이 없으며, 상징적인 표현에 불과한 것이 사실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모든 은혜를 위에서 주시기 때문에(약1:17) 기도자가 손을 들면 위에서 주시는 은혜를 먼저 받을 수 있다는 글을 본 일이 있는데, 퍽 우스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옛날에 마산방면에서 어떤 사이비 증언자의 유혹을 받고, 예수님의 재림을 평지에 있는 성도들보다 먼저 맞이하기 위하여 산위로 올라가 거처하였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과연, 주님의 재림과 주시는 은혜가 공간적 제한 속에서 차이를 둘 수 있겠는지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3) 성경에서 손을 들고 기도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있는 것을 모방할 때에는, 성경에 없으면 하지 않아야 하는 모범도 유의하셔야 합니다(고전4:6). 예를들면, 예수님께서는 열두제자를 안수 없이 임명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직분을 임명할 때에, 안수는 할 수도 있고 아니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 손들고 기도한 사례가 있고, 또 손들지 않고 기도한 기사가 있으면 그 역시 형편과 처지에 따라할 수도, 아니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2. 성경에서 손을 들고 기도한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1) 느8:6에, 󰡒모든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광장에 모인 대중 앞에서 성경을 낭독하고 송축을 하였을 때에, 화답의 표시로 손을 들었고,

2) 출17:11에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멜렉이 이겼다󰡓는 말씀에서 모세가 손을 들고 지도자로서의 대표적 기도를 한 것이었고,

3) 시28:2에서도 󰡒다윗이 성소를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하였다󰡓하셨으며(시63:4;141:2),

4) 눅24:50에서 󰡒예수님께서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신 일󰡓이 있고,

5) 딤전2:8에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한다󰡓고 하심으로 기도와 형식에 앞서 순결을 강조하셨고(마6:5),

6)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손을 들자󰡓(애2:19;3:41)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따라서, 기도시에 손드는 의미는 축복하는 의미와 기도로 은혜를 사모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목사가 축복하는 기도(축도)는 눅24:50과 고후13:13에 근거함이 합당한 것이요, 일반성도들이 손을 들고 기도함은 느8:6과 시28:2과 애2:19에 근거한다 할 것입니다. 또, 손드는 의미의 하나는 항복 표시입니다. 󰡒천부여 의지없어서 손들고 옵니다󰡓라는 찬송가의 가사처럼, 인간은 의지할 것이 없어서 전폭적으로 표기하고 하나님 앞에 온다는 뜻입니다.

3. 그렇다면, 기도시에 손을 들 것이냐, 아니면 그대로 할 것인가 할 때에,

① 개인 기도는 자기양심과 간절한 표현방법을 따라 자유롭게 하십시오. 다만, 손을 들지않고 함을 은혜와 방도에 미흡한 것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② 공예배시에는 언제나 전체적 질서에 따라가야 하므로, 규모와 질서를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고전14:33, 40).

61. 기도원 출입에 대하여 목록으로


1. 이 기도원이 언제부터 무슨 목적으로 생겼을까요?

그 출처를 본인이 아는대로 살펴보면, 8.15 해방 이후 나운몽 장로가 용문산 기도원을 개설하였고, 그 당시 많은 성도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나운몽 장로가 소속된 감리교단에서도 그 기도원의 불건전성을 지적하여 󰡐신학이 없다. 신비주의이다󰡑하며 교인들의 출입을 통제했었지만 여전히 전국에서 초교파적으로 교인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후에 여기저기 많은 기도원이 생겼는데 어떤 교회에서는 초교파적 기도원에 함부로 가는 것을 통제하면서 교회 자체에서 수양처를 겸한 기도원을 설립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기도원은 많은 사람들을 모아 기도집회를 벌여 들어오는 헌금으로 기도원을 확장하면서 헌금을 강요하는등 기업화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기도원은 신학과 사상의 표준이 없을 뿐 아니라 다수의 집회만 위주하므로 초교파적으로 나갑니다. 후대에 와서는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특별히 강조하고, 병고침이나 금식기도등을 목적으로 하는 기도원까지 생겨서 전국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설립되었습니다.

2. 칼빈주의적 신앙생활을 지향하는 성도의 입장에서 기도원을 필요로 한다면,

1) 우선 기도원에서 기도하는 방법이 교회에서 기도하는 방법과 다를 바가 없어야 하며,

2) 혹 다른 것이 있다면 예수님이나 모세의 산상기도를 본받아 기도의 담력을 키우고 산 속 골방에서의 기도인 만큼 주위의 사람을 의식함이 없이 자유로이 크게 기도할 수 있는 점이라 하겠고,

3) 기성교회에서는 신학의 혼잡성을 피하기 위하여 강단을 통제하는 것처럼 기도원 운영자도 역시 그래야 하고, 기복신앙을 경계시키고 말씀주의로 나아가며 교회생활에서의 굴레를 벗어난 것처럼 자유방임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4) 따라서 기도원을 운영하는 교회나 개인이 교회생활과 일치하는 방법대로 기도원을 운영하면 퍽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다시 말하면 참신한 교회상을 기도원에서도 반영하여 주었으면 합니다.

3. 어떤 이단자가 전도지를 받으라 하기에 받지 않았더니, 󰡒모 교회 모 목사님도 받았고, 모 교회 모 목사님도 사보셨는데 왜 안보려 하십니까?󰡓하기로 󰡒내가 그것을 사보면 당신이 다니면서 지목사도 사보았으니 사보라고 할 것이 아니요? 그래서 더욱 못사보겠다.󰡓 한 일이 있습니다.

어떤 기도원은 자신들의 불건전성이 노출되고, 또 복사의 협조를 얻어야만 교인들이 그 기도원에 오겠기에 목사를 초청하여 무료로 대접하며 󰡐아무 목사님도 우리 기도원에 잘 오신다󰡑는 말로 선전하므로 교역자의 기도원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하기도 합니다.

어떤 후배 목사가 기도원 강사로 온다고 본인을 청하여 간 일이 있었습니다. 설교를 마치고 통성기도를 너무 오래 하기로 눈을 떠본즉 안수하는 행열이 가까이 와 있었습니다. 안수하는 의미와 목적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안수로 은혜를 전달하는 방법에도 문제가 있고, 본인은 그 후배 목사님에게 안수를 받아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어서(히7:7) 급히 나온 예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그러한 문제까지도 잘 지도하는 기도원이 되어야 하고 여기에 수반하여 목사의 작은 행동 하나라도 잘못된 선전의 재료가 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4. 결론적으로 건전한 기도원에만 다니시고 가급적 시간과 물질타산도 잘 하셔서 󰡐내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사56;7) 하신 말씀따라 예배당을 최대한 사용하여 교회 중심의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八. 교회에 대한 지식

62. 교회란 무엇입니까? 목록으로


교회란 무엇일까요? 교회는 예배당이나 간판, 또는 어떤 장소가 아니라 성도의 단체를 의미합니다.

1. 교회의 주인

딤전3:15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집󰡓이라 하셨고, 골1:18에서는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고 하심으로 주임이심을 말씀하셨고, 예수님께서 자기의 교회를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같은 진리의 토대 위에 세우실 때에(마16:18), 자기의 피로 값주고 세우심으로(행20:28) 그 가치가 영원하고 음부의 권세가 해하지 못하며(마16:18;요10:28-29) 세상끝날까지 그 목적을 다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마28:18-20). 교회를 󰡒피로 값주고 세우셨다󰡓하심은 교회가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죄사함을 받은 고귀한 성도의 단체임을 의미합니다.

2. 교회의 시작

교회는 구약시대의 선민(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의 단체를 의미할 수도 있으나(행7:38 광야교회) 그 단체를 교회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교회라는 명칭은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말씀하셨고(마16:18)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전도의 역사로 교회가 새롭게 탄생한 것입니다(행5:1). 예루살렘교회가 최초에 있었고(행8:1) 그 다음이 안디옥교회였으며(행14:23), 안디옥교회의 선교의 열매로 이방땅 각처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행14:23;계1:11).

3. 교회설립 절차

마28:19 말씀처럼 전도하여 복음을 받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제자됨을 서약하고 신앙을 고백하였을 때에 세례를 베풀어 하나님의 백성을 삼음으로 되며, 이렇게 믿는 성도가 많아질 때 교회의 요원이 확보되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헬라어 󰡒에클레시아󰡓는 󰡒불러냈다󰡓는 뜻으로 불신앙의 세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거룩한 단체로 이끌려나온 구별된 식구들을 의미합니다.

4. 교회의 종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무형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의 영적 단체입니다. 이 무형교회는 진실한 신앙의 단체이며, 중생의 은혜를 받음과 동시에 확보되고 그 단체는 천국성도와 세상성도를 포함한 단체로서 하나님만이 아시는 진실한 세계입니다.

2) 유형교회는 이 세상에서 보이는 교인의 단체입니다. 이 유형교회는 세례받고 입교(교회에 입적됨)할 때에 확보되는데 사람(목사 또는 당회)이 그 신앙을 고백받고 인정하는 단체인 만큼 혹 외식적 고백인지를 분별해내지 못하므로 불확실한 성도가 없을 수 없는 이 세상에서만 존재하는 기관이며, 교파나 교회 단위에 따라 분립될 수 있고, 성경에 근거한 법규를 제정하여 다스리는 현실교회를 의미합니다. 귀하의 신앙이 진실하면 귀하는 무형, 유형교회의 회원이 다 될 수 있으나, 혹 외식하는 신앙이면 유형교회의 회원만 되었다가 구원에 이르지 못한채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마13:24-30;22:12-13).

5. 교회의 사명

1) 진리의 가감을 방지하고 보존하는 일이며(딤전3:15),

2) 진리를 전파, 해석, 교육하는 일이며(마28:19-20),

3) 온전한 성도가 되도록 연단시키며(행11:26;딤후3:17;히10:22),

4) 예배와 성례를 집행하며(마28:19;행2:42-47;고전11:23-26),

5) 사랑과 친교를 나누며(행2:44-46;엡4:12),

6) 은혜와 평강을 공급하는 사명이 있습니다(엡1:2).

6. 따라서 교회의 사명은 비유컨대 양을 치는 목장과 같고(시23:1) 병을 고치는 종합병원과 같으며, 체력을 연마하는 도장과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훌륭한 신앙의 용사는 이 교회에서만 배출될 수 있습니다. 교회 밖의 신앙은 옳다할 수도 없고 든든할 수도 없습니다.

63. 교회에 대한 지식목록으로


1.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고백하고 생활하는 이들의 단체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질적단체요, 물적건물이 아닙니다.

2. 교회란, 󰡒에클레시아󰡓로서 이는 불러낸 자란 뜻이니, 하나님께서 세속의 세계에서 불러내어 구별하신 단체입니다.

3. 마16:18에서,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운다󰡓하셨으니, 반석은 예수님 자신과 그의 말씀, 또는 베드로가 고백한 신앙을 뜻하고, 또 이 말씀에는 주님께서 세우신 주님의 교회란 뜻이 있으며, 마18:17에서,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라󰡓(교회는 권징의 기관이란 뜻)하셨고, 행5:11에서도 온 교회란 말씀을 처음으로 나타내셨습니다.

4. 교회의 시작

처음에 예루살렘교회가 있었고(행8:1), 다음 안디옥교회가 있었으며(행13:1), 그후에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와(계1:11) 마게도냐, 아가야, 로마지역으로 확장되었으며, 처음의 교회는 모두가 작은 집에서 작은 단체로 시작하였습니다(롬16:5,23;골4:15;고전16:19).

5. 구약교회

구약에는 교회라는 명칭이 없으나 출7:38에서, 출애굽한 선민단체를 󰡒광야교회󰡓라고 일컬은 말씀이 있으므로, 구약시대의 선민단체도 교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교회는 신약교회의 모형이며 서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1) 구약교회는 민족단체로 구성되고, 계시전개 중에 생활하였으며, 모형적 의식으로 예배드리며, 성령님의 상주사역이 아닌 상태에서 존속되었으나,

2) 신약의 교회는 예수님께서 직접 관할하신 때가 있었고(마16:18;18:17), 만인 중에서 선택된 백성으로 구성되며, 구속사업이 완성된 때이므로 모형적 경배가 아닌 신령한 예배를 드리며, 성령님께서 상주하여 간섭하시고, 완성된 계시 기반에서 생활하므로, 구약교회가 모형이고 신약교회가 모형의 성취라 할만큼 완성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지상의 교회도 천상교회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계7:9;히8:5).

6. 교회설립의 근거는 예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 하심으로(행20:28) 십자가의 구속사업으로 생명의 대가를 지불하시고 세우신 주님의 생명같은 기관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7. 교회에는 2가지 종류가 있으니, 지상에 있는 유형교회와 천상에 있는 무형교회입니다.

1) 유형교회는 신앙을 고백하고 입교한 성도의 단체로(마16:17,18;딤전3:9;딤후1:15;마28:49) 완전히 성별될 수는 없으나(마13:24-30;요17:12), 세상의 마귀와 싸워야 하는 전투적 교회입니다(엡6:10-20).

2) 무형교회는 지상의 진실한 성도의 단체와(이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심) 하늘의 신령한 단체(계7:9)로서,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떠난 승리적교회를 말합니다(마16:18).

8. 교회와 예수님과의 관계

예수님께서 주인이시고(딤전3:5), 예수님께서 세우셨고(행20:28), 머리와 몸의 연합관계를 가지셨고(골1:8), 남편과 아내의 관계라 하셨고(엡5:13-25), 교회를 사랑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사66:10-12).

9. 교회를 주신 목적

천국교회의 모형으로(히8:5;계7:9) 성도의 믿음생활의 집으로(시23:-), 연단의 도장으로(요일4:11), 사단을 이기고, 빛의 사명을 행하고(엡6:11;마5:13-14) 또한, 복음사업의 사명처로 교회를 주셨습니다.

10. 교회의 3대 사명

1) 진리의 보존, 전파, 교육의 사명,

2) 성례시행의 사명,

3) 권징의 사명이 있으니, 이 세 가지를 성실히 행하는 교회라야만 좋은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64. 교회의 직원 목록으로


초신자가 나오시면 여러 계층과 종류의 직원을 보시게 됩니다. 우선 직원의 명칭을 열거하여 보면(교파에 따라 직원의 명칭과 책임이 다를 수 있음) 목사, 장로, 집사, 권사, 권찰등이 있고 부교역자로서 부목사, 교육목사, 전도목사, 강도사, 전도사가 있으며, 또 책임분야에 따라서 구역장, 각 기관 임원, 찬양대원, 주교사등도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여러 직원들의 성질을 배움에 있어서 교회의 모든 직임은 성경에 근거하고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를 통하여 전달하시며, 교회의 편의에 따라 직임이 분담되는데 직임의 종류와 책임이 다를 수는 있으나 등위적 권위를 내세우지는 못합니다.

교회의 모든 직임은 민주적으로 시행하여야 하고(행1:26) 실권자라도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지 못하며(벧전5:3), 이는 앉아서 먹는 자보다 섬기는 자가 크다(마20:26;눅22:27)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직임을 받는 절차와 책임들을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목사

소속교단의 신학교를 나오고 강도사고시에 합격하고, 목회나 교육이나 전도등의 사명건이 있을 때 노회가 안수하여 세웁니다. 지교회의 청빙과 노회의 승인으로 교회에 부임하며 담임목사(당회장), 부목사, 교육목사, 전도목사등으로 봉직합니다. 담임목사는 그 교회의 대표자요 시무장로와 함께 행정치리권이 있고 당회장권, 제직회장권, 설교, 성례, 축도의 특권을 더 행하는 것이 장로와 다른 점이며 담임이나 당회장이 아닌 다른 목사에게는 행정권이 전혀 없습니다.

2. 장로

입교인으로 5년 이상 봉직한 자 중에서 노회의 승락을 받아 공동의회에서 당선이 되면 노회의 시취를 거쳐 당회가 장립하여 세웁니다. 장로는 교회에 대한 책임을 광범위하게 가지는 바 예배, 성례, 전관, 교인의 신앙감독, 교인의 입회 및 퇴회결정, 목사를 제외한 각종 임직, 교육, 헌금수집 주장, 권징, 상회봉사등을 행하며 모든 생활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3. 집사

교인의 투표에 의하여 당회가 장립하며 교회의 재정취급과 봉사의 직무를 맡게 합니다. 장립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1년에 1회씩 당회의 임명으 받아 세워지는 집사를 서리집사라 하는데 역시 봉사의 직임이며 제직회를 돕는 직임입니다. 위의 목사, 장로, 집사는 그 교회에서 직무가 계속되므로 항존직이라 하고, 그 이외의 모든 직임은 모두 1년씩 한시적으로 맡기는 직임이므로 임시직이라 합니다.

4. 권사

만 50세 이상의 여성도님 중에서 교회가 선발하여 안수 없이 임직하는 여성 최고의 직임으로 무급 여전도사처럼 심방, 전도, 위문, 봉사하는 직임을 맡는데 당회의 감독을 받습니다.

5. 권찰

전도, 심방을 잘할 수 있는 사람으로 당회가 세워 구역단위로 일하게 하는 직임이며, 때로는 서리집사 후보로 임명하고 교육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6. 담임목사의 목회를 돕는 유급사역자가 있으니, 담임목사를 돕고 수련을 닦는 부목사요, 신학을 졸업하고 목사후보자가 된 강도사요, 신학재학 또는 졸업한 전도사입니다. 전도사는 심방전임전도사가 있고, 주일학교 교육을 위한 교육전도사가 있으니 이분들고 역시 배우며, 수련하며 목사의 목회를 돕는 일을 합니다.

7. 그 외에도 교회건물이나 비품, 차량관리를 맡는 유급자와 찬양지휘, 반주를 맡는 유급자도 있는데 생활비를 받으면 유급사역자요, 교통비 정도로 사례를 받는 식구들은 유급봉사자하고 합니다.

65. 교회의 기관과 행정에 대하여 목록으로


초신자가 교회에 나오면 등록한 다음에 연령의 계층에 따라 어떤 기관에 가입되기도 하고, 또 교회 안에는 각종 봉사와 사업을 하기위한 기관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궁금한 것은 이런 단체들이 어떻게 운영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따라 기관설치의 차이가 있습니다만 대체로 아래와 같습니다.

1. 당회

당회란 그 교회의 최고기관으로 담임목사와 시무장로로 구성되며 교회의 제반문제를 감독 처리하는 기관입니다. 당회가 있는 교회를 조직교회라 하고 치리장로가 없어서 당회가 없는 교회를 미조직교회라고 합니다. 미조직교회는 상회(노회)가 직접 관리하는데 당회장목사를 통하여 일하게 하고, 당회장목사의 독재를 방지하기 위하여 2년 이상 시무를 못하도록 통제하므로 속히 당회를 조직하고 위임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조직교회는 교인의 대표인 장로들과 함께 공화정치를 행함으로 그 교회 위임목사는 종신토록 시무할 수도 있습니다.

2. 제직회

제직회는 담임목사, 시무장로, 시무집사가 자동회원이고 부교역자, 권사, 서리집사는 매년 당회의 임명을 받는 회원이 되어 교회의 재정과 구제와 봉사의 일을 맡는 기관입니다. 담임목사는 당회장과 제직회장의 직임을 가집니다.

3. 찬양대

매년 당회가 찬양대원을 임명하여 예배 중 찬양드리게 합니다.

4. 주일학교

이 기관은 교육기관으로 역시 매년 당회가 교장, 교감, 교사등을 임명하여 장년주교로부터 청년주교, 중고등주교, 유초등주교에 이르기까지 학제를 구별하여 성경과 신앙생활을 가르치게 합니다. 이 주일학교를 지도하는 기관으로 당회가 교육위원회를 설치하여 교육제도에 유익을 기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5. 남녀전도회, 청년회, 학생회

이러한 기관들은 모두 연령층에 따라 친목과 봉사와 전도를 위하여 자치단체를 구성한 것으로 각 기관의 규칙에 따라 운영하되 교회를 유익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기관입니다.

6. 선교위원회

개인 또는 각 기관의 협조로 선교비를 염출하여 선교사 파송사업을 행합니다.

7. 장학회

역시 특별한 방법으로 기금을 조성하여 장학사업을 행하는 기관입니다.

8. 구역회

구역단위로 구역장과 권찰을 두어 교인을 살피게 합니다.

9. 다만 자치단체를 제외한 모든 기관원은 당회가 임명하여 직임을 맡기고 모든 기관은 항상 당회의 지도와 감독 아래 있으며, 혹 교회를 다스림에 있어서 행정 또는 권징상으로 당회가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상회인 노회에 위탁하여 처리할 수 있고, 또 노회가 해결한 것이 문제가 되었을 경우에는 총회에 상소하여 최종적인 해결을 보게 됩니다. 장로교회는 당회, 노회, 총회의 삼심제도로 공화정치를 행하는 교단입니다.

10 교파마다 정치제도가 상이합니다.

예를들면, 천주교는 교황정치, 감리교는 감독정치, 또 몇 교회가 연합하여 조합정치를 행하는 교파도 있지만 장로교회는 교인들이 장로를 대표로 선임해서 정치하는 제도로 가장 성경적입니다. 기회가 있으면 교회헌법을 읽어 보십시오. 많은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66. 교회생활의 유익이 무엇입니까? 목록으로


교회생활은 유익이 많을 뿐 아니라 성도는 꼭 교회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요즈음 자율주의자나 현실주의자들 중에서 교회를 경홀히 여기며 무시하는 풍조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 과거와 현재에도 무교회주의라는 주장이 돌고 있습니다. 무교회주의란 󰡒교회라는 단체가 오히려 범죄의 온상이다. 교인이 모여서 사명수행은 아니하고 투기, 안일, 유흥, 교파싸움등에 빠져서 오히려 본연의 목적을 행치 못하니 차라리 교회 없는 상태에서 예수믿고 구원받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교회생활이 불가피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성도가 예수님의 지체를 떠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골1:22에서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시라󰡓하심으로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가 머리와 지체의 한 몸인 것을 말씀하셨으므로 마치 포도나무가 가지에 붙어 연합되어야 하는 것처럼(요15:4) 성도에게 교회생활은 필요합니다.

2.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로 성도를 양으로 비유하신 말씀에서(요10:11) 양에게 목자가 목자가 필요한 것만큼 양의 안식처인 목장도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는 신앙생활의 집이요, 영혼의 목장입니다. 목장은 양의 양육처요, 보호처요, 안식처인 것처럼 교회는 불순사상이나 이단이나 세속적 풍조에서 성도들이 최대한 보호를 받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3. 교회는 진리를 보호하고 전파하는 유일한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당시부터 현재까지 약 2천년에 걸쳐 진리를 보존하고 전파하고 가르친 기관은 교회였습니다. 개개인의 노력으로 성경해석과 전도와 선교를 못행할 바는 아니지만 교회라는 공적 단체의 힘을 따르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교회라는 공적 단체는 진리의 보존과 해석, 그리고 전도와 선교, 불순사상을 경계함에 있어서 불가피한 기관입니다.

4. 교회는 진리의 실천도장입니다.

1) 말씀을 배우는 도장이니 교회를 통해서만 바른 진리를 터득할 수 있고,

2) 봉사와 충성의 도장이니 성도가 교회를 통해서 예수님의 이름을 내세워 충성하며,

3) 인간의 교제의 도장이니 형제사랑에 대한 실천적 세계요,

4) 부조리에 대한 처방을 도모하는 면에서도 연습장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상 단체생활은 고달플 때가 많습니다. 혼자 행할 때보다 훨씬 마음을 쓰고 주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를들면 상대방의 인격존중, 공평교제, 타인의 실족방지, 문제있는 식구에 대한 이해와 포용, 예절과 규모이행, 단체생활 및 교회법규 이행, 건덕에 유익을 주기 위한 솔선, 책임감에 대한 압박감 들이 모두 단체생활에서 필요한 요건들이기 때문에 그만큼 고달프며 일이 많은 중에 신앙적 처세의 좋은 연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생활에 익숙해지고 단체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성도가 되면 그는 성숙한 신앙의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5. 어떤 성도는 교회에 출석하여도 꾸준히 견디지 못하여 이 교회 저 교회로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의 뿌리를 못내린채 세속에 끌러 중단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가 체험한 신앙을 고집하여 은혜를 못받는다는 이유를 드는 경우도 있고,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옮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교회되는 조건은 진리의 바른 선포와 성례의 바른 시행에 있습니다. 목사가 빈 평안도 받는 자에게 합당하게 임하며(마10:13) 의인의 소원은 어디에서나 수락하시기 때문입니다(잠11:13). 주 예수님의 교회는 마귀의 권세가 흔들지 못하므로 성도와 함께 영원히 보존됩니다(마18:18).

67. 바람직한 교회상에 대하여 목록으로


1. 초신자들은 교회에 대한 상식이 부족하므로 교회에 대하여 예민한 감각을 느끼지 못하지만 교회생활을 해오다가 이사를 가고 다른 교회로 옮기게 될 때에는 교회선택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는 수가 있습니다.

어떤 은퇴한 장로님은 자기가 사는 주위에서 여섯 교회를 다녀보고 본인이 시무하는 교회로 찾아온 일이 있었습니다. 또 그 장소에서 멀리 이사간 후에도 그 주변교회로 옮기고자 네 교회를 답사하였으나 갈 만한 교회가 없어 그대로 같이 봉사했는데 성찬예식을 행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일로 그 장로님을 섭섭하게 한 일 때문에 교회를 떠난 분을 본 일이 있습니다. 그 장로님이 몇 교회를 다녀보고 겨우 한 교회를 택할 만큼 마음에 드는 교회가 현실적으로 적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오신 성도를 섭섭하지 않게 하는 일도 어려운 일입니다.

2. 문제는 참신한 교회를 어떻게 선택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먼저 소극적인 고찰로서 잘못 선택하는 입장부터 말씀드립니다.

1) 어떤 이는 친구나 인척간등 연고자에 이끌려 나가는 수가 있습니다만 그것은 사람의 표준에 따른 처사이므로 옳지 않고,

2) 또 어떤 분은 믿음의 선배가 부덕을 나타내거나 범죄하는 교인들이 많은 것을 보고 실망하는 경우가 있는데,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그렇지 않은 교회가 어디 있겠습니까?

3) 사랑받기를 원하는 자세에서 사랑과 친절만 추구하다가 그것이 없으면 교회를 따돌리는 사람이 있는데 다 그와 같다면 누가 사랑을 베풀 것인가요?

4) 󰡒나를 알아 달라󰡓, 󰡒나에게 일을 맡겨주고 칭찬해 달라󰡓는 요청이나 소원을 가지고 왔다가 그대로 되지 않으면 󰡒좋지 않은 교회󰡓 또는 󰡒사랑과 표용이 적은 교회󰡓로 보기 쉬우나, 교회는 명예를 충족시키는 단체가 아닐 뿐 아니라 대체적으로 명예욕에 얽매인 성도들은 신앙생활에 고르지 못한 약점이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5) 열정적인 표현(기도, 찬송, 전도, 봉사)만으로 교회를 판단하는 일인데 지혜있는 생활과 종말이 더 귀하므로 그것만도 표준이 아니며(롬10:2-3;히13:7),

6) 병고치는 은사가 나타나는 것을 위주하는 경향으로 따라가는 경우도 있으나 이러한 현상에 가짜와 부덕이 많을 뿐 아니라 기적체험이 죄사함과 관계있음이 아니요(마7:22),

7) 모임의 숫자를 크게 보는 경향도 있으나 하나님은 좁은 문이나 골방에 계셨고, 적은 수라도 질적인 신앙에 입각한 성도를 들어쓰셔서 일하셨으며(마7:13;눅12:32;마18:19-20),

8) 화려하고 물질이 넉넉하고 웅장하여야 무엇이 있는 줄 알지만 그것 역시 초대교회에 없었던 일이며 그것이 신령상 은혜를 끼치는 것은 아니며(롬14:17;요2:19-20),

9) 목사의 학위와 지식과 인품등 간판주의로 나가는 경우인데 이것 역시 인본주의를 면할 수 없는 잘못입니다(고전1:27).

3. 어디에 표준을 두어야 참신한 교회를 알 수 있을까요?

1) 진리가 옳게 선포되는 교회,

2) 성례를 옳게 시행하는 교회,

3) 범죄를 최대한 경계하고,

4) 민주적 제도가 확립된 교회,

5) 인위적으로 일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르며 의지하는 교회,

6) 기복주의를 피하고 신령한 은혜를 강조하는 교회,

7) 빛을 나타내고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만 돌리는 교회가 참신한 교회입니다.

참신한 교회는 양적 성장도 참신하게 이룩될 것입니다.

68. 어떤 교회가 부흥이 잘 될까요? 목록으로


교회의 부흥을 갈망하는 교역자나 성도들에게 큰 관심이 있는 제목입니다. 자신이 출석하고 섬기는 교회가 부흥이 잘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자신도 큰 위안과 기쁨을 누려야하기 때문입니다. 부흥이 안되는 상태의 괴로움이란 작은 것이 아니지요.

1. 어떤 상태를 부흥으로 볼 것이냐에 따라서 견해의 차이가 있지만, 문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를 만들어야 하겠지요.

1) 물량적인 부흥으로, 사람많이 모이고 헌금 잘나오고, 예배당이 커지는 등으로 부흥을 원하는 경우인데, 여기에 질적 신앙만 순결하다면 퍽 좋을 것입니다.

따라서 질적 신앙이 결여된 방법으로 성취되는 경우를 경계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현실축복의 기대를 부각시키고 강조하여서, 말씀의 참된 지식과 영적 소망을 소극적으로 나타내는 겅우로서 알맹이가 적은 잎만 무성한 단체가 되기 쉽습니다.

2) 성경을 바르게 배우고 신령한 복에 비중을 두며, 순결을 위주하여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교회인데, 이런 교회를 부흥된 교회로 본다면 권징을 엄히 하고, 법도를 지켜야 하므로 좁은 길 중에도 좁은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면 교인으로 머물러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부흥되기 어려운 형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기를 원하실까요? 여기에 대기에 대한 분명한 대답은 󰡒순결한 교회󰡓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엡5:26-27에서 󰡒이는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깨끗하게 단장한 신부와 같아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좋은 사람만 모여 있는 단체가 아니고, 믿음생활을 배우는 미숙한 성도들도 함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부분은 교회순결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면 안됩니다. 교회는 종합병원과 같아서 죄의 부조리를 시급히, 또는 점차로 치료하는 기관이니까요. 따라서 질적 신앙을 앞세워 양적 부흥을 도모한다면, 그것을 합리적 부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좋은 교회로 부흥이 되려면 말씀으로 부흥되고 성령으로 부흥되고, 사랑으로 이룩되고, 규모와 질서를 최대한 존중하는 교회이어야 합니다.

1) 말씀증거가 바르며 풍성해야 합니다.

행19:20을 보시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하신 것처럼 말씀이 힘있게 (내용의 충실을 의미함) 전파되고, 가르침과 배움의 열심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것은 식욕이 강한 사람의 건강과도 같습니다.

2)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부흥되어야 합니다.

이 󰡒성령님의 도우심󰡓이란 하나님의 쓰임을 받고있는 교역자나 전도자는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체험은 자신이 기도를 힘쓰고 사명에 전력할 때 예상한 것 이상으로 잘되는 경우를 체험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님의 역사이시고, 하나님의 섭리적 통치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오순절당시에 성령의 충만한 역사로 부흥이 시작되었고(행2:4,38;4:8,28-37), 행9:31에서,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하여졌다󰡓하셨으니, 이 말씀은 기도를 통한 성령의 도우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3) 사랑의 역사로 부흥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병자에게 의원이 되어 주심같이(눅5:31), 성도가 흠있는 대상을 포용하여 지도하고, 구제하고(행2:42,46) 생활 속에서 기쁨을 맛보며, 교인수가 증가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4) 질서와 규모로 부흥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 헌법을 준수하고(행16:4-5), 계층간에 예의를 지키며, 전체의 교인들이 차별없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교회를 섬길 수 있는 민주적 교회가 이루어짐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교회의 부흥은 위의 4가지 요소에서 성취되어야 합니다.







九. 성경을 바로 앎에 대하여

69. 하나님의 뜻을 앎에 대하여 목록으로


마7:21-23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하셨고, 또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증인)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병고침의 기적)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각종 큰일)을 행하지 않았습니까?󰡓한 것을 보면 위선자에게도 말씀과 기적을 추종하고 성경을 경시하는 성도들에게 유혹의 위험이 있음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저희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생활하여야 하겠습니다.

1. 성경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을 강조하였습니다(마3:35;6:10;7:21;18:14;요4:34;행10:7;13:22;21:14).

예수님은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기도하셨고(마26:42),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하였습니다(엡5:17).

2. 주의 뜻을 어떻게 알 것입니까?

1) 주의 뜻은 하나님의 마음인지라 하나님 외에는 그 뜻을 알 자가 없는데(고전2:10) 하나님은 자기의 계시로 그 비밀을 알려 주셨습니다(엡3:3;고전2:10).

2) 하나님이 자기의 뜻을 나타내 주신 방법은 여러가지였으니 만물계시(롬1:20)와 예수님을 통한 계시(요14:9), 성경계시(딤후3:19)입니다.

이 성경계시(말씀)를 주셨던 방법은 직접적인 음성, 꿈, 비몽사몽, 천사의 말, 우림과 둠밈, 상징적인 의식과 행동등으로 알려 주셨으므로, 히1:1에서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다󰡓고 하셨습니다.

3)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을 주시는 분량과 시기가 있어서 그 분량을 다 주신 다음에는 다시 주지 않는다고 하심으로써(고전13:8) 신앙과 행위의 표준을 성경 66권으로 한정하셨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더 상세히 말씀드리면,

* 말씀분량이 있어 넘치면 안되고(요21:25),

* 주신 말씀으로 넉넉하며(딤후3:15-17),

* 말씀주시는 때가 있으니, 곧 그리스도의 때로 마지막임(히1:2;엡3:5)을 선포하셨고,

* 단번에 주셨고(유3;요17:8),

* 다 전하였으며(행5:20;20:27;엡3:2),

* 다 기록되었으며(엡3:3;계1:3),

* 더 기록하지 않으시며(엡3:5;계22:18-19),

* 이것을 읽어서 알 수 있고(엡3:4),

* 상고하여 알 수 있고(요5:38),

* 연구하여 알 수 있고(엡3:4),

* 배워서 확신하며(딤후3:14),

* 읽고 듣고 지며 복받고(계1:3),

* 자세히 살펴 알며(눅1:3),

* 성령님이 생각나게 하셔서(요14:26),

* 이해하고 분별하게 하신다(요5:17;롬12:2)고 하셨습니다.

4) 시47:5에서 󰡒너희 모든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하셨고, 행21:14에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한 것은 미래를 알려주시지 않는 상태에서 취할 태도입니다. 약4:13-14도 같은 의미로 교훈하셨습니다. 주님의 뜻은 오직 성경 뿐이며 우리의 삶의 목적입니다.

70. 성경에 대하여 목록으로


이제부터 우리의 신앙과 생활과 구원과 직접관련이 있는 성경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배운 것과 또 앞으로 배울 것들이 많이 있지만 성경자채를 배우는 것만큼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성도가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와 적용만 있으면 신앙생활의 목적을 충실하게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배우실 때 더욱 경건한 자세로 임하시기 바랍니다. 구약시대의 서기관들이 성경말씀을 옮겨 적을 때에 목욕하고 기도를 드리고 한자 한자 쓸적마다 붓을 빨아서 기록하였다는 말이 있습니다.

1. 성경이란 용어를 살피면, 신약성경 마21:42부터 󰡒성경󰡓이란 말씀이 나오는데 헬라어로 󰡒그라페󰡓라 하며 󰡒기록물󰡓, 󰡒기록된 것󰡓이란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으로 옮겨진 것을 성경으로 명칭한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성경이란 용어가 없으나 창15:4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가라사대󰡓라 하심으로 말씀의 전달을 표현하셨고, 또 전달된 말씀을 󰡒기록하라󰡓(출17:14;34:27;시102:18;렘36:4)고 하셨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신즉 󰡒예수께서 가라사대󰡓하신 말씀이 마4:17부터 나타납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통칭되었으나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행12:34;13:48)이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호칭하는 언어의 영향 때문입니다(구약시대에는 이방인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여호와란 성호를 많이 사용하였다 함).

신약시대에 주신 계시의 말씀도 󰡒기록하라󰡓(계14:13;21:5)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기록된 말씀󰡓만 성경이 되는 것입니다.

2.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님이 공히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왜냐하면 삼위의 하나님께서는 그 본질이 같으시기 때문입니다(요12:19;14:17).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다 성경이 아니고 󰡒기록하라󰡓고 주신 것만 성경이 됩니다. 요21:25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행적이 이 외에도(성경 외에도) 많지만 낱낱이 다 기록하여 주시지 않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많았을지라도 다 기록된 성경으로 주시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시대에 적당한 분량으로 기록하여 주신 다음에는 다시 주시지 않는다고 하신 것입니다(유3;히1:1-2;엡3:5). 따라서 성경의 분량은 󰡒기록하여 주신 말씀 뿐󰡓입니다.

3. 성경의 명칭과 범위

요즈음 성경을 󰡐성서󰡑라고 출판된 책도 있습니다. 그 성경책은 개신교의 일부 교파와 천주교회 단체가 공동으로 번역출판하였는데 개신교회에서 인정하지 않고 천주교회에서만 인정하는 외경 아홉 권을 포함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성서󰡑로 명기하였고 이를 애용하는 사람들도 성서라고 호칭합니다. 물론, 성서의 의미가 성경과 같다고 할 때에는 별문제가 없겠지만 성경은 말씀의 의미가 강조되고 성서는 책이란 의미가 강조되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아서 필자는 꼭 성경이라고만 호칭을 합니다.

성경과 성서의 명칭상 구별은 국문학적으로 또는 교리적으로 명확하게 판명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만, 문제스러운 것은 성경이 아닌 외경 아홉 권을 합동으로 번역 출판할 수 있느냐는 점입니다. 천주교와 개신교는 상당한 교리적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례는 기독교의 순수한 사상을 오염시키는 일이라고 단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일, 개신교에서 외경을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성서 합동출판을 하지 말았어야 할 것입니다. 우선 성경의 명칭문제와 범위를 말씀드렸습니다.

71. 성경에 대한 지식 목록으로


1. 성경은 기독교의 절대 유일의 경전임(절대:없어서는 안됨, 유일:다른 것은 용납되지 않음).

2. 성경은 신구약 66권 뿐임 : 더하거나 덜할 수 없고, 모자라지도 않음.

3.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임 : 󰡒성경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거나,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것󰡓이 하니고, 󰡒성경 만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임.

4.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자기를 나타내기를 원하셨음, 이를 자기계시라 함.

1)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면 인간은 그 하나님을 추적, 탐색하여 알 수 없음.

2) 하나님께서는, 자연계시(만물계시)로 그의 존재와 능력과 섭리를 알리셨고, 특별계시(성경)로 그의 마음과 구원적 상황을 알리셨음.

3) 만물로 통하는 지식만으로는 타락자가 구원을 받을 수 없으므로 특별계시인 성경을 더하여 주셨음.

5.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기의 말씀을 성경으로 주셨을까요?

1) 하나님께서 자기를 알리심(계시)

2) 감동을 받은 말씀을 기록하게 하심(일점일획에 이르기까지 오류없도록 하심).

3) 기록된 말씀을 붙드시고 보존하심.

4) 축자영감으로 기록하게 하심(만전적 영감).

6.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음에 대한 역사

1) 중생으로 믿음의 생명을 주시고, 성경을 믿는 신앙이 발생하게 하심.

2) 성경을 깨닫는 계시의 정신과 지혜를 주심.

3) 읽고, 듣고, 배워서 알게 하심.

7. 성경과 우리와의 관계

1) 무조건 믿을 것이요,

2) 무조건 읽을 것이요,

3) 성실하게 배우고, 또 가르칠 것이요,

4) 전파할 것이요,

5) 지킬 것이요,

6) 보존할 것이라.

8. 성경의 본질

1) 하나님의 말씀, 뜻, 하나님의 인격, 하나님의 능력이며,

2) 성도에게는 믿음과 행위의 절대적 표준임, 양심과 도덕의 표준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

9. 성경을 배우는 방법

1) 성경을 믿기 위한 출처를 알아야 함(본질이해지식)

2) 연대관념과 역사내용을 알아야 함.

3) 지리적 관념과 역사내용을 알아야 함.

4) 기록의 목적과 교훈을 알아야 함.

5) 하나님의 구속사업과 통치섭리와 영적교훈을 배워야 함.

6) 성경각권의 개론과 본문내용을 알아야 함.

7) 설교자의 입장에서 연구하는 방법을 배워야 함.

8) 자신이 터득하는 신비감을 체험해야 함.

9) 깨달음의 감사와 기쁨과 만족을 느껴야 함.

10) 설교자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배워야 함.

10. 항상 배운 바를 마음에 있게 하고, 그 말씀을 간직함으로 하나님을 모신 줄 알아야 하며, 말씀을 사모함이 하나님을 사모함이요, 말씀을 순종함이 하나님을 섬김인 줄 알아야 합니다.


72. 성경은 무엇입니까? 목록으로


성경이 무엇이냐고 질문하였을 때 이에 대한 대담은 여러가지로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성경은,

1. 신구약 66권입니다. 우리가 가진 성경은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이 있어서 도합 66권입니다. 이 66권의 제목을 잘 익히십시오.

2.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주신 것을 기록한 것이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경은 곧 하나님의 사상이기 때문입니다.

4. 진리입니다. 요17:17에서 󰡒아버지(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라󰡓고 하셨습니다. 진리는 참, 곧 거짓이 없는 것, 순결한 것을 의미합니다(시19:8-9).

5. 하나님의 인격과 능력이 동반됩니다. 성경을 인격으로 설명하시고 상대한 말씀이 있고(행18:5;20:32;요1:1), 또 능력이 말씀과 함께 나타난 경우도 있습니다(창1:3;눅1:37;살전2:13;히11:3).

6. 신앙과 행위의 법칙입니다.

장로교 신조 제1조에 󰡒신구약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본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성경은 󰡒믿을 것󰡓이고, 꼭 󰡒행할 것󰡓인데 정확무오하며 유일의 법칙임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어떤 성도나 어떤 교회에서는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못하고 의심과 비판과 선별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있는데 참으로 유감이며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성경을 신앙의 법으로 믿어야 함은 물론 행함의 유일한 법칙으로도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리에게 어떻게 행할 것과 행치 말아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십계명처럼 직설적인 말씀도 있지만 어떤 사건의 실례를 들어 함축된 내용으로 말씀한 곳도 있으니 잘 연구하여 뜻을 밝히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이미 주신 말씀으로 넉넉한 영혼의 양식과 생활의 지침과 구원의 방도가 되는 것을 성경의 충족성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모자라게 주시지 않았습니다(요21:25;계1:2;딤후3:15). 따라서 성경말씀을 떠나 다른 방도로 신앙과 행동의 지침을 삼는다면 그릇된 신앙입니다(수1:7). 성경이 󰡒믿을 것과 행할 것의 근거가 된다󰡓는 말씀은 성경부분을 참조하십시오(요14:6,10,11;17:17;고후13:8).

7. 영혼의 양식입니다.

렘15:16에서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라󰡓하셨고, 마4:4에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영혼이 잘 되려면(요삼2) 영혼의 양식인 성경지식을 잘 터득하여야 합니다.

8. 또 성경의 역할에 따라 비유적으로 설명하신 말씀도 있습니다.

예를들면 성경은 좋은 소식(눅2:10;롬10:15)이라고도 하고, 목마른 자에게 냉수 같다고도 하며(잠25:25), 마음을 두드리는 방망이 같고 또 마음을 뜨겁게 하는 불 같기도 하다 하셨고(렘23:29), 심령을 수술하는 칼 같다고도(히4:12) 하셨습니다.

9. 만물과 독생자와 성경, 이 세가지는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인 중에 예수님과 성경은 만물보다 귀한 선물이요, 구원의 절대선물임을 아셔야 하겠습니다.

10. 성경은 기독교의 절대유일의 경전입니다. 성경중심의 생활을 하도록 힘쓰십시오. 성경을 찾지도 못하면 참으로 부끄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11. 성경의 제목을 외우실 때 구약의 소선지서에서 외우기가 어렵지만 󰡒호욜아오욘미나하스학슥말󰡓이라고 기억하십시오. 이것도 책이름이 익숙하여졌을 때에 그 순서를 분별하는 기술이 뿐입니다. 성경을 잘 찾는 실력이 있어야만 잘 배우실 수도 있습니다.

73. 성경계시의 전달 목록으로


1. 성경은 하나님의 지식의 부분이며, 하나님 마음의 뜻이므로 하나님만 알고 계시지만 예수님과 성령님도 같은 하나님의 본질이시므로 그 뜻을 알고 계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하셨고(요17:8), 성령님도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여 아신다󰡓고 하셨습니다(고전2:10-11). 그러므로 말씀을 나타내 주실 수 있는 계시의 주도자는 성부, 성자, 성령님이십니다.

2. 그러면 이 삼위의 하나님이 각각 어떻게 말씀을 전달하여 주셨을까요?

1) 성부하나님은 그가 원하시는 선지자에게 여러가지 방법으로 나타내 주셨습니다.

곧 직접 음성으로 듣게 하셨고(창2:16;출3:4-5;마3:17), 천사를 통해서도 전달해 주셨고(창19:1-2;단9:22), 꿈으로도 알리셨고(창37:5), 환상으로도 보여주셨고(단8:1), 우림과 둠밈으로도 나타내셨고(출28:30;삼상28:6), 제비뽑는 일로도 나타내셨습니다(욘1:7).

2) 성자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곧 하나님이신고로 그의 말씀 역시 진리이며(요14:6;17:17), 예수님의 행적도 곧 계시인즉 예수님은 말씀과 생활로 자기를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언행이 다 성경은 아니고 기록되게 한 것만 성경입니다(요21:25).

예수님은 요17:14에서 󰡒하나님의 말씀만 우리에게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3) 성령님 역시 진리의 영이시므로(요16:13) 진리되신 예수님의 뜻대로만 계시하셨는데 성령님이 나타내시는 계시전달을 영감(하나님의 감동, 딤후3:16)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승천 후에 성령님께서도 직접 말씀으로 계시를 주셨고(행16:6;계14:13), 천사를 통해서도 주셨으며(눅2:10;마28:5;계1:1), 꿈으로도 나타내셨고(행1:26), 성도가 기도하고 의견을 모아 선택하는 일에도 역사하셨고(행6:5), 연구하여 깨닫는 과정에도 역사하셔서(단8:15-27;벧전1:10-11)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성령님의 이같은 역사를 영감이라고 하는데 이 영감은 유기적 완전영감입니다. 유기적영감이란 성령님께서 말씀을 주시기 위하여 선지자에게 역사하실 때에 그 선지자의 인격을 기계나 타자기처럼 취급하시지 않고(사람을 기계처럼 이용하였다고 하는 것을 기계적영감이라 함) 그 선지자의 지식과 경험과 연구노력을 활용케 하셔서 자기의 뜻을 전달하심을 의미합니다(행27:1;28:1;계5:4). 그리고 완전하게 영감되었다는 뜻은 성경말씀의 일점일획까지 영감이 되었다는 것으로(마5:18) 성경말씀의 뜻과 교훈은 한 점과 한 글자까지 포함되어 있으므로 면밀하게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3. 이 말씀이 어느 시기에 누구를 통해서 전달하여 주셨을까요?

이것을 연구하는 과목이 성경총론입니다. 성경내용에도 그 역사적 성격이 나타나 있습니다만 구약성경은 주전 1500년경에 모세오경(창,출,레,민,신)이 모세를 통하여 기록됨을 시작으로 주전 400년경 말라기 선지자의 말라기 기록까지 약 1000여년간에 27명이 39권을 기록하였고, 신약성경은 주후 100년경까지 8명이 27권을 기록하고 끝내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분명히 알고 지나가셔야 할 것은 계시의 전달은 주전 1500년경부터 시작되었으나 예수님과 사도시대로 끝났고(히1:1), 후에는 다시 주시지 않으며(엡3:5), 영감을 받는 사람도 사도와 선지자에 한하였다는 사실입니다(민12:4-8;고전4:10;엡2:20;히1:1).

성경총론은 본서 성경개론 부분에서 다루고 있으니 참고하십시오. 성경개론을 모르면서 본론을 배우는 것을 순서가 아닙니다.

74. 성경말씀의 집결과 보존 목록으로


성경의 역사는 약 3500년 전부터이며, 또 성경에 기록된 내용의 역사는 창조기록과 인류시초의 기록(창1:)들이 있는 만큼 퍽 오래전의 일입니다. 인류시조 아담의 역사를 주전 4000년경으로 보는 설과 해와 갈의 창조와 함께 하루라는 개념이 1주간 사이에서 생긴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훨씬 앞선다고 하는 이도 있습니다. 문제는,

1. 주전 1500년경의 모세가 그 이전의 역사를 어떻게 알고 기록하였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1) 모세 이전의 역사가 구전으로 전래될 수도 있다는 것이요(렘45:1),

2) 성령님께서는 이전의 일과 이후의 일을 넉넉히 영감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역사의 주인이시며 증언자이시요, 또 미래의 주관자도 되시므로 얼마든지 과거와 미래를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다(신34:은 모세의 미래를 모세가 기록하였음).

2. 모세시대에 기록된 말씀이 어떻게 진리의 말씀으로 인정되고 보존될 수 있으냐고 하는 점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물의 창조하셨다󰡓함을 믿는 것과 같이(히1:1;11:3) 하나님이 성경계시를 주어 보존케 하셨음도 믿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성경이 진리되는 것은 하나님이 주셨으므로 되는 것일 뿐, 사람이 인정하거나 증명하여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것을 성경의 내증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성경이 진리되는 이유와 권위는 성경 자체에 있을 뿐입니다.

다만, 인간이 그 말씀을 볼 때에 감동을 받고, 지식을 얻고, 확신을 가지며, 어떤 모순도 지적하지 못하므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게 되는 것을 󰡒성경의 권위에 대한 외증󰡓이라고 하는데 현재의 성경은 그 두가지 입장을 다 충족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성경)이 하나님의 간섭으로 잘 보존되었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은 인류의 문화를 성경기록에 이용하셔서 문자가 있을 때에 구약성경을 히브리어로 주셨습니다(신약은 1세기 당시의 헬라어로 주심).

그 당시에는 석판(출24:12)에 기록하였지만 그후에 두루마리 성경(시40:7)이 있음을 보면 성경문서가 석판, 토판(고고학적으로 발견됨), 두루마리(파피루스종이나 양피지종이에 말씀을 기록하여 말아놓은 것), 현재 인쇄된 성경의 순으로 발전된 것입니다.

4. 이러한 과정에서 전쟁이나 천재지변등의 소용돌이를 거치는 동안 어떻게 잘 보존되었느냐고 하실지 모르나,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종족을 보존하신 것처럼 성경말씀도 보존하셨습니다(히1:3).

성경은 세세토록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니(벧전1:25) 보존될 수 밖에 없고, 또 하나님이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성경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계획하신 일이므로 성경을 더욱 보존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5. 인간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부정할 만한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므로 성경을 진리로 인정하여야 하고, 또 신약의 사도시대는 계시를 주시는 마지막 시대로서 영감에 의하여 구약의 정경성을 얼마든지 재확인할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말씀(구약, 신약)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친히 사용하시던 구약성경을 그대로 인정하여 가르치셨으니(요5:39;눅14:16-21) 그것은 구약성경의 재확인인 것입니다. 또 사도시대에 기록된 신약성경은 문화시대의 산물이므로 더욱 그 보존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엡2:20;3:3;고전3:11;유3;계22:18-19). 따라서 성경의 보존성과 진실성을 꼭 믿으셔야 할 것입니다.

75. 성경말씀의 성격목록으로


성도가 성경말씀의 성격을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귀하는 성경말씀을 어떻게 대하며, 또 성경말씀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계십니까? 성경말씀에는 세 가지의 성격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임재의 방편입니다.

다시 말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 신령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성경으로 만나고 체험하는 것입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생명의 말씀이 잠시 성육신하여 예수님으로 세상에 오셨다가, 또 다시 예수님은 말씀으로(성경 66권) 자신을 세상에 계시하고 승천하셨습니다. 행20:32과 요1:1에는 예수님의 신분과 인격이 말씀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무소부재하심은(수2:11;시139:9-10) 어느 공간에나 계심을 뜻하고, 말씀으로 존재하신다는 뜻은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심(계시, 현현)에 있어서 성도가 언제든지 말씀 앞에서 하나님을 대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성경을 하나님의 임재로 믿는 성도는 성경책을 우상시할 것이 아니라 성경말씀 앞으로 하나님을 만나러 가셔야 하고, 또 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접견하는 줄로 아셔야 합니다.

2.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나타냅니다.

무릇 인격있는 자의 뜻은 그의 행위와 말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다스리시는 자연법칙을 볼 때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과 질서와 공의등을 알 수 있으며, 특히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일부분만 나타내셨지만 그 속에 구속사업의 뜻이 있음)을 성경으로 주셨습니다. 요5:39에서, 󰡒성경이 곧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라󰡓하셨고,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이요(마7:21,24,26) 그것을 알려면 주님의 말씀인 성경을 일고, 분변하고, 이해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롬12:1;엡3:4;엡5:17;6:19).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그 생활 전체의 목적일진대(히10:7,9) 그 뜻을 앎이 중요하고, 오직 성경말씀만이 그의 깊은 뜻을 나타내신 줄로 아셔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로 어떤 장소나 어떤 사람에게 물으러 다니는 성도가 되지 마시고, 어느 곳에서나 성경으로 일깨워주시는 교훈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성경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동반합니다.

성경을 바르게 알지 못하는 성도는 성경을 내용(하나님의 뜻)으로만 알고 능력으로는 믿지 않으며, 따라서 능력은 기도를 통하여 성령님이 주셔야만 받는 줄로 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성령님이 능력을 주시는 것은 사실입니다(마4:2,11;엡3:16). 그러나 말씀 그 자체도 능력을 동반함을 믿으셔야 합니다. 이것은 부산 기차표를 꼭 서울역에서만 사야하는 것이 아님과도 같습니다.

1) 말씀은 하나님의 도구이니 능력이 동반하고,

2) 진리의 말씀이 성령님과 동반하기 때문에(요14:7) 성경이 또한 은혜의 방편이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말씀으로 하늘을 펴시고 만상을 명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창1:1;사45:12).

성도는 성경말씀을 깨달으심과 동시에 그 말씀을 실천하는 능력이 자신에게서 소생하는 체험을 하셔야 합니다(고전4:19). 히4:12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갠다󰡓 하신 것은 그 말씀이 큰 깨달음과 회개와 실천력을 준다는 의미입니다.

이 실천력이 바로 주님의 뜻을 따르는 신앙생활이며 성경과 능력을 동시에 체험하는 것입니다. 약2:22에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한다󰡓는 말씀을 확인하십시오. 그러나 성경을 확신있게 받아들이지 못할 경우에는 그 만큼 실천능력이(성령이 역사하시는 힘) 부족한 것입니다. 성경말씀의 성격을 잘 이해하시고, 복되고 영광스럽게 활용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76. 성경말씀의 역할 목록으로


성경말씀의 역할이란 하나님이 자기의 말씀으로 무엇을 하시는가를 배우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이 그 말씀의 역할을 알 때 성경과의 바른 관계를 정립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은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계시의 방편입니다. 물론 성경 66권으로 하나님을 다 알리신 것은 아니지만(요21:25) 하나님의 존재와 그 생활의 부분과(요1:1;눅1:2) 구속사업의 비밀을(엡6:19) 성경으로 알려 주셨습니다.

2. 하나님은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창1:3에서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그의 인격(요1:1)과 능력(히4:12;눅1:37)을 동반하므로 󰡒대저 여호와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눅1:37)고 하셨습니다.

3. 하나님은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십니다.

히1:3을 읽어 보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것처럼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고 통치하심을 뜻합니다. 이 보존과 통치를 섭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만물에 관한 것만 섭리하시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통치에 관한 것도 말씀으로 섭리하십니다(욥1:12). 따라서 구속사업도 하나님의 명령(말씀)으로 이룩되고, 말씀으로 만물을 없애실 수도 있을 것이며(전3:6;롬11:36), 말씀으로 만유를 심판하신다고 하였습니다(마25:34,41;계22:7,10).

4. 말씀으로 중생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약1:18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 하셨고, 벧전1:23에는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지 않을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말씀의 능력으로(그리스도의 부활을 근거로, 벧전1:3) 중생케 하셨다는 것이요, 자식이 부모와 통하는 것처럼 거듭난 자는 그의 말씀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살후1:10;벧전1:22-23).

5.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여기의 거룩이란 의미는 성도의 인격이 깨끗하여지고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감을 말합니다. 이것은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마치 좋은 사람이 되려면 좋은 내용으로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1) 말씀은 구원의 도리를 알리고(요3:16),

2) 의롭게 교훈하며(딤후3:15-16),

3) 사람을 이끄는 능력이 있어서(행18:5) 그것으로 성도를 온전케 하고 성화되게 하는 것입니다. 시119:9에서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하셨고, 엡5:26에서는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신다󰡓 하셨고, 요17:17과 딤전4:5에서도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진다󰡓고 하셨습니다.

6. 하나님의 말씀은 기업을 얻게 합니다.

행20:32에서 󰡒그 말씀이 능히 너희를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하였고, 요5:39에서는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다󰡓하였으며, 요6:68에서는,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겠나이까?󰡓 하였습니다.

이 기업과 영생은 같은 뜻입니다. 성경을 통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구속의 도리도, 속죄도, 능력도, 지혜도, 거룩함도 받을 수 없은즉 성도의 궁극적 기업인 영생이 성경말씀을 통해서 주어지므로 은혜의 방편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성경을 은혜로 받은 저희들은 마땅히 성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성경을 신뢰하고 사모하고 사랑하며, 성경을 하나님 대하듯하고, 연구하고 묵상하며, 실천 동행하고, 말씀을 사수 간직하며, 또 바르게 해석하여 널리 전파 보급하는 사명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77. 성경이 권위있는 증거 목록으로


성도가 성경을 알지 못하면 마치 밥맛을 모르는 사람이 건강치 못한 것처럼 그 신앙이 건전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경이 권위가 있는 이유를 또 한번 확실하게 배우셔서 성경과 밀착된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권위있는 증거는,

1. 우선 많이 보급되었다는 점입니다.

세계에서 성경보다 더 많이 팔리거나 보급된 책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책 중의 책입ㄴ다.

얼마나 보급될까요? 통계문서에 의하면,

1) 1027개의 각국 방언으로 번역되었고,

2) 현재 세상에 떠돌고 있는 책이 약 2억권이 되며,

3) 이 책을 길에 늘어 놓으면 6만 8천리를 가고,

4) 1984년도의 한국성서공회의 출판부수가 985,859부요, 단편성경과 점자성경을 포함하면 50,442,783부를 발행하였으며, 외국어성경도 2,336,680부를 출판하여 62개국에 보급하였다는 것입니다. 또 성경은 세계 여러나라에서도 보급되지 않습니까? 무슨 신비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천문학적인 수로 보급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2.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만유의 통치자이시며, 또 심판자이십니다. 세상 왕의 명령도 지존하다 하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이겠습니까? 딤후3:16에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 하였고, 그 하나님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지존자이시며(사46:5), 여호와의 말씀은 엄중하며(렘23:33), 세세토록 있으며(벧전1:25), 생명의 운동력이 있다(히4:12)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왕명도 한 번 떨어지면 천지가 떠들썩하거늘 하물며 전능자의 말씀이겠습니까?

3. 성경말씀이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해 주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근본문제인 사망(정죄의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가는 것)의 문제를 해결하여 줍니다. 인생의 불행은 바로 이것입니다.

성경이 이 근본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요? 우선 요8:23을 보시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진리는 예수님이시고(요14:6), 성령님이시며(요14:7), 또 성경말씀입니다(요1:1;5:39;21:24). 딤후3:15에서,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 하였고, 또 요5:24에서는,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고 하였으며, 행20:32에서는, 󰡒은혜의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기업이 있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구원의 방편을 자기의 말씀인 성경으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타락한 자이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구원을 이루지 못합니다.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으로만 죄사함과, 고통에서의 해방과, 영멸에서의 영생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4. 성경은 예수님의 인격을 닮도록 교육하는 유일의 지침서입니다.

딤후3:17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한다󰡓하였으므로 자녀들에게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할 생활지침서입니다(신6:6-9). 세계의 인류가 그들 나름대로의 생활방법이 다양하지만 오직 성경대로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삶이며, 복받는 비결임을 현실적으로도 증명할 수가 있습니다.

5. 성경을 보는 백성은 인격의 변화로 건설적인 역군이 됩니다.

영국의 건설은 성경과 세익스피어전집의 덕이란 말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자가 죄를 지을 수 있으며 악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죄인을 회개시켜 정의의 사람을 만드는 일은 할 수 있어도 타락자가 되도록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사55:11;슥1:13).

78. 하나님이 현시대에도 계시를 주십니까? 목록으로


하나님은 계속 다른 말씀을 주시지 않는다는 원칙을 몇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 장로교회에서 믿는 신조 제 1조에서 󰡒신구약성경은 신앙과 본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라 하였습니다. 이 󰡐유일의 법칙󰡑이란 오직 성경 66권 뿐이란 뜻이요,

2. 성경으로 말씀을 넉넉하게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요1:14에서